사인훔치기
분류없음 2015/09/04 09:36
트윈스가 죽을 쑤는 동안 실로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타이거즈와 이글스가 맞붙은 9월 2일 청주구장. 시즌 양팀 간 14차전 경기. 사실 패넌트레이스 1위-4위는 거의 굳어졌고 올해 처음 도입한 와일드카드 때문에 5위 싸움이 더욱 재미진 것은 사실. 주지하다시피 런기태님의 타이거즈가 올라갈 것인지, 마리화나 이글스가 올라갈 것인지 흥미진진 관전 포인트. 개인적인 바람이야 이글스가 올라가서 더욱 더 재미난 포스트시즌을 이끌었으면 하지만 타이거즈가 올라가는 것도 그닥 나쁘지 않다. 결국 팔짱끼고 구경?
4회말 2사, 두 점 차이로 타이거즈가 이기고 있는 상황. 투수는 토종좌완 양현종, 타석은 이제 이용규 순서. 순간 런기태 감독님께서 덕아웃으로 구심을 불러들임. 상황도 상황이지만 런감독님 표정이 압권. 증말 순진한 표정을 지으시긴. 대단해. 왜 하필이면 이용규 타석 바로 앞에서?
요약하면, 덕아웃에 설치한 세 대의 스크린 가운데 하나가 조이스틱-카메라로 연결되어 구장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해석하면, 조이스틱을 이용해 투수-포수-2루의 센터라인은 물론 1루 타격코치 - 3루 주루코치 등을 통해 상대팀의 사인 (signs) 을 훔칠 수 있다는 것. 런기태 감독님은 이런 게 있는지 몰랐다고.
한국야구위원회 (KBO) 규정에 "상대팀의 사인을 훔치면 안된다"는 규정은 사실 없다. 하지만 다른 규정을 적용해 사인을 훔치는 것이 명명백백할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기는 하다.
사인훔치기는 경기의 한 맥락이다. 수많은 전략과 전술 가운데 하나라는 거다. 어떤 분이 일찍이 말씀하셨듯이 사인훔치기를 당하는 팀이 바보다. 그만큼 어리숙한 전술을 써서 상대팀에게 간파당한 것이니 그것은 당한 팀의 감독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그러면 사인을 훔치는 팀은 잘한 거냐? 전혀 그렇지 않다. 알아서 잘하란 말이다. 들키지 않게. 아주 세련되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잘 하란 말이다. 가령 2루에 나간 주자가 포수의 사인과 투수의 투구동작이나 쿠세를 보고 사인을 알아차려 1루 혹은 3루 코치에게 전달하고 타석에 선 타자가 투수의 구질을 알아내어 대처한다면 -- 그리고 이 과정을 상대팀은물론 중계석, 관중석 그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히트앤런 같은 간단한 작전이나 번트같은 기본적인 보수적 플레이도 해내지 못하는 선수들이 2루까지 갔다한들 상대팀 배터리의 사인을 알아내어 1루 혹은 3루 코치에게 전달하고 또 이들이 다시 타자에게 전달하고 코치는 덕아웃에 다시 보고해서 덕아웃에서 작전을 수령하여 타격과 동시에 진행하는 별도의 타격/주루작전을 진행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동시에 왜 그토록 김성큰 감독님이 선수들을 들들 볶는지, 야구는 감독이 하는 거라고 주장하는지 아주 잘 납득이 가지 않나? 아니라고? 나는 아주 잘 납득이 가는데? 한편 2루까지 간 선수들이 이런 사인을 훔쳐내지 못하니까 별도로 알아낼 방법을 쓰는 것은 아닐까? 가령 운동장 곳곳을 비추는 감시카메라나 관중석에 들어앉은 제3의 인물이 망원경으로 포수 사인을 살펴보고 텍스트메세지를 보낸다든지. 듣자하니 언젠부턴가 덕아웃에서는 어떤 디지털디바이스도 쓰지 못하게 한다는데 왜 쓰지 못하게 했을까?
꽃개는 김성큰 감독님이 지시해서 청주구장에 요상한 물건을 설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성큰 감독님이 계신 한화구단의 세컨홈구장에 운동장 곳곳을 비추는 카메라가 설치되었고 그 카메라를 덕아웃에서 조이스틱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는 그 팩트만 인정할 뿐이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어웨이팀은 그 사실을 몰랐고. 하필이면 그랬다는 거다. 그 뿐이다.
사인훔치기는 사인을 잘 짜내고 작전을 잘 운용하는 고도로 훈련된 팀, 아니면 야구의 신 같은 사람이 감독으로 있지 않는 한 할 수도 없고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머리만 아플 뿐이다. 왜 얀이 도망갔겠는가?
덧: 메이저리그의 "경기장을 이용한 사인훔치기"를 아주 잘 정리하신 어느 블로거의 훌륭한 글모음을 볼 수 있다. http://bravesblog.co.kr/220321756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