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잡한마음

분류없음 2015/08/13 10:26

 

일하는 곳에서 리퍼럴 정책이 업데이트된 지 2개월이 넘었는데 리퍼럴을 보내는 사람들 가운데 여전히 몇몇은 옛날 방식을 고집한다. 전화로 설명하면 자기는 몰랐단다. 당연하지. 몰랐으니까 그랬겠지. 이 정도는 괜찮다. 몰랐다고 말하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라고 물으면 서로 대화하면 되니까. 

 

 

새 정책이 프론트라인 워커들에게 더 편리한 방향으로 업데이트되어 다들 좋아한다. 꽃개도 좋아한다. 가령 리퍼럴 전화를 받고 전화로 프리스크리닝을 하고 어세스먼트 약속을 잡고 직접 어세스먼트를 하고 인테이크를 한다. 시간과 여건만 허락하면 전과정을 한 사람의 워커가 담당할 수 있으니 보다 긴밀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어디에나 빈 지점은 있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이지 인간 개개인의 문제라고 하기는 다소 힘들다. 어제 어떤 사람 (A) 이 전화를 해서 새로운 정책을 심각하게 어기는 방향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해달라고 했다. 꽃개는 새로운 정책을 줄줄줄 떠들면서 그럴 순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대번 디렉터와 얘기하면 해결해 줄거냐고 하더라. 디렉터든 매니저든 니가 얘기하는 거니까 그건 니가 알아서 해 (that's up to you) 라고 말하는데 마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그 경비아저씨 "그건 난 모르겠고" 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 꽉 막힌 아저씨 - 모골이 송연했다.

내 보스를 바꿔달란다. 그 양반 지금 없어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전화해. 라고 했더니 꽃개와 꽃개 보스의 이름을 묻는다. 이름을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오전에 그 사람 (A) 이 다시 두어 번 전화를 했는데 꽃개의 동료가 잘 달래서 끊었다.

점심 무렵 꽃개 회사의 본사에서 일하는 어떤 매니저 (B) 가 전화를 해서 꽃개의 보스를 찾았다. 내선을 돌려 바꿔줬다. 잠시 뒤 꽃개의 보스가 쪽지를 한 장 들고 와서는 이 일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방법을 잠정적으로 찾아 보고했더니 그럼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하면, A 는 어제 나와 전화를 끊고 방법을 찾았다. 익일에 조금 더 파워가 센 워커랑 얘기를 해보면 되겠지 싶었는데 꽃개의 동료도 꽃개처럼 응대했다. 결국 A 는 자신의 파워를 이용해 B 에게 청탁을 넣었고 B 는 동료/같은 매니저 급인 꽃개의 보스를 찾았던 거다. 물론 과정에 교정시설 + 공공 하우징 서비스 + 정신건강 서비스가 얽혀서 A 가 원하는대로 결정하는 것이 A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최상의 일이겠지만 그러나 꽃개처럼 원칙을 따지는 워커는 그 원칙을 바꿔서 적용해야 하고 무엇보다 꽃개가 서비스하는 클라이언트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꽃개가 입밖으로만 떠들지 않으면 사실 아무도 모를 일이긴 하다 -- 잠깐, 누가 이걸 영어로 구글에 돌려서 읽거나 그럴 일은 없겠지. 이 대나무숲마저?) 하지만 무엇보다 꽃개의 보스가 결정한 일이니 책임도 그 사람이 지는만큼 꽃개는 여기서 보스의 결정을 따르면 될 일이다. 결정권자는 보스다. 책임권자도 보스다. 꽃개는 사실상 아무 책임이 없다. 일견 간단해 보인다. 

 

 

그런데 A, B, 꽃개의 보스, A의 클라이언트 모두 백인이다. 꽃개의 클라이언트는 흑인이다.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과정에서 누구도 그것을 염두에 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꽃개도 그런 생각은 못했고 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속이 불편했다. 우연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우연일 뿐일까?

옛말에 "여자팔자 뒤웅박"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남자를 만나 시집가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이긴 하다. 갑자기 클라이언트들의 운명이 옛말의 "여자"들과 진배없다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2015/08/13 10:26 2015/08/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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