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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28회 민족민주열사 범국민추모제

‘우리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28회 민족민주열사 범국민추모제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06/08 [22:0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이 열사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선 시민.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사회대개혁 실현하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적폐를 청산하자!”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사회를 맡은 유화영 전여농 사무총장은 “민주열사와 희생자 영령들의 뜻을 이어 기필코 민중 세상 이루겠다는 의지로 28회 범국민 추모제를 시작하겠다”면서 의의를 밝혔다.  

 

참가자들은 '열사들이 꿈꾸었던 세상, 자주 통일 평등 세상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실현하겠다'는 마음을 모아 묵상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 김중배 명예추모위원장이 추도사를 했다.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이날 추모제에서김중배 명예추모위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서로 가치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의 세상을 우리는 언제나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상투적인 애도나 그리운 말로 그칠 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는 그 날 통곡의 새날을 마침내 열여 젖혔다고 손을 마주 잡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하면서 큰 절을 올렸다. 

 

▲ 권재희 배우.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1968년 중앙정보부의 조작과 고문으로 간첩단 사건의 수괴로 몰려 사법살인을 당한 권재혁 선생의 막내딸 배우 권재희 씨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던 자녀를, 하늘처럼 든든히 여겼던 부모를, 친구와 선배와 후배를 우리는 강제로 먼저 떠나보내고 여기 이 곳에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들의 신념과 뜻을 잊지 않았다. 그 분들이 민족민주 열사와 희생자를 기리면서 모두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올린다”면서 '다시 피는 꽃' 도종환 시를 낭독했다.    

 

6.15합창단은 노래 공연으로 민주열사들과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특히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들은 "이미 시작된 한반도 평화번영, 통일의 새 시대는 난관이 있을지언정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촛불 민의를 거역하려는 적폐세력의 시대착오와 퇴행은 민중과 시대의 거센 파도 앞에 모래성처럼 쓸려나가게 될 것이다. 계속 전진, 계속 투쟁으로 영령들의 염원을 실현하고 기꺼이 자주, 민주, 민생과 평화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내자”는 결의을 밝혔다. 

 

끝으로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불의가 판치는 시대가 100년이 흘러도, 주체적이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우리 민중들의 의지가 단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 감동스럽다”면서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서자. ‘우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열사들의 외침을 기억하자”는 말로 사회 대개혁을 향한 투쟁에 함께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8일 오후 3시 청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추모제를 마치고 헌화와 분향을 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2019년 민족민주열사로 등재된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이창기 아내 김일심씨.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김승교 민주변호사.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민족민주열사 백남기 농민.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민족민주열사 박선애 선생님.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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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훨씬 더한 찬사로도 부족하다

문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에 반발하는 야당, 김원봉 몰라도 너무 모른다

19.06.07 20:29l최종 업데이트 19.06.07 20:29l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19.6.6
▲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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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의 제64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이 거론된 것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김원봉에 대한 문 대통령의 언급은 좌우합작에 의한 광복군 창설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루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지난  3월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 복원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 말을 꺼낸 것은 국민통합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임시정부가 좌우합작으로 광복군을 창설해 대일 항전에 나선 역사를 통해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럴 목적으로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거론한 다음, 김원봉이 언급됐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칭송한 것은, 임시정부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진영, 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 더불어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까지 통합해서 광복군을 결성했다는 점이었다. 주된 칭송의 대상은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아니라 김구의 임시정부였던 것이다. 김원봉 같은 인물까지 통합해서 한국광복군을 결성한 사실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한국청년전지(戰地)공작대는 1938년 결성돼 류저우·충칭·시안 등에서 활약한 독립투쟁단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 더불어 아나키스트 진영 및 조선의용대까지 함께 광복군이라는 통합 조직을 이뤄낸 사실에 문 대통령이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통합이 역사에 기여한 점을 높이 샀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원봉까지 참여시킨 좌우 통합에 기반한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김원봉을 칭송한 게 아니라, 김원봉까지 통합한 임시정부를 칭송하는 말이었다. 결과적으로 김구를 훨씬 더 칭송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전체 맥락을 놓고 보면 김구와 임시정부를 칭송하는 것인데도, 보수 야당들이 김원봉 부분만 떼어내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1948년 월북해 6.25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 뒤 "6.25 전사자들을 뒤에 모셔두고 눈물로 세월을 견뎌낸 가족들을 앞에 두고 북의 전쟁 공로자에 헌사를 보낸 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보수·진보를 떠나 최소한의 상식의 선 안에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6.25 전사자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곳에서 6.25 전쟁의 가해자에 대해서는 한마디 못하면서, 북한의 6.25 전쟁 공훈자를 굳이 소환하여 치켜세우며 스스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구와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을 소환해 치켜세운 것인데도 이처럼 김원봉한테 초점을 맞추었으니, 논의의 초점을 벗어난 엉뚱한 비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원봉은 전도유망했던 독립운동 지도자
 

 김원봉.
▲  김원봉.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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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과 미래당은 김원봉이 북에서 대단한 추앙을 받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그가 월북한 것은 김일성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가 김구·김규식과 비슷한 시점에 북으로 간 것은 남북 분단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분단을 기도하는 미군정과 이승만에 맞설 힘을 규합하고자 북에 올라갔다가 그냥 머물렀을 뿐이다.

거기서 김원봉은 최상의 대우를 받지도 못했다. 김일성의 정적들이 대거 숙청되던 때인 1958년 12월에서 1959년 1월 사이, 그는 공식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1958년에 그는 60세였다. 숙청됐다는 설도 있고 옥중에서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최후가 쓸쓸하기는 했지만, 해방 이전만 해도 김원봉은 전도유망한 독립운동 지도자였다. 문 대통령이 그를 직접적으로 칭송한다 해도 조금도 문제 될 게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격한 칭송을 들어도 모자랄 만큼 업적을 많이 세웠기 때문이다.

 

김원봉의 공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점은 일본이 가장 무서워한 독립투사 중 하나였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외무대신이 "김원봉을 체포하면 즉각 나가사키 형무소로 이송할 것이며, 소요 경비는 외무성에서 직접 지출할 것"이라고 상하이 총영사관에 지시한 사실은 일본 내에서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게 한다.

그가 이끄는 의열단은 한·중·일 삼국을 무대로 일본인과 일제 기관에 폭탄을 던지고 총탄을 발사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약산 김원봉 평전>은 "일제 군경과 관리들에게 의열단원은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며 "언제 어디서 의열단원이 나타나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들이댈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원봉은 일본인과 일본 기관에 대한 개별적 폭탄 공격만 한 게 아니다. 그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대 조직도 갖추었다. 후삼국 시대의 견훤과 궁예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독립군 군대를 만들었다. 조선의용대라 불린 이 군대는 한때 300명을 넘는 병력을 보유했다.

권혁수 중국 요녕대 교수의 논문 '중국항일전쟁과의 연관성으로 본 조선의용대 항일 업적의 역사적 의미'는 "1940년에 이르러 조선의용대는 총대부(본부) 및 세 개의 지대를 포함한 314명으로 발전"(<충청문화연구> 제10호)했다고 설명한다. 외국 땅에서 총 한 자루, 폭탄 하나를 구하기도 벅찼을 텐데, 무려 300여 명을 무장시켰다는 것은 그가 민족 독립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뛰어다녔는지를 짐작게 하고도 남는다.

기득권 포기하고 김구 중심 좌우합작에 참여 
 
 조선의용대 참립 기념 사진.
▲  조선의용대 참립 기념 사진.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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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대단한 것은 그만한 병력을 이끌고 스스로 광복군에 편입됐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 측의 압력도 있었지만, 기득권을 포기하고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그가 민족해방이라는 대의 앞에서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했음을 의미한다. 자기를 중심으로 한 좌우합작이 아니라 김구를 중심으로 한 좌우합작인데도 가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후보 단일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한국 현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라이벌을 대통령으로 밀어주고 자신은 후보직을 사퇴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김원봉은 그런 일을 해냈다. 라이벌일 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맞지 않는 김구와의 통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임시정부 및 광복군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좌우합작과 통합의 정신을 이처럼 모범적으로 보여준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용대라는 군대를 만든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라이벌 김구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대의를 위해 야심을 접을 수도 있는 큰 그릇이었던 것이다.

보수 야당들의 비판과 달리 문 대통령은 김원봉을 높이 띄우지 않았다. 김구와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김원봉과의 통합을 언급했을 뿐이다.

사실, 김원봉의 실제 활약상을 생각한다면, 문 대통령이 김원봉을 좀더 직접적으로 칭송했다 해도 별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격찬을 한다 해도 그의 희생과 용기에 보답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강렬하게 격찬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아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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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하나 키우는데 온 유역이 필요하다

조홍섭 2019. 06. 07
조회수 1188 추천수 0
 
알래스카 자연하천서 입증…남한 3분의 1 유역 이용
 
s1.jpg» 알래스카 누샤가크 강어귀에 몰려든 산란기 홍연어 수컷들. 이 강 유역은 남한 면적의 3분의 1의 다양한 생태계로 이뤄져 있다. 제이슨 칭, 워싱턴대 제공.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 속담이라고 인용해 유명해진 말이다. 그런데 이 격언은 아이뿐 아니라 연어와 같은 생물에게도 적용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션 브레넌 미국 워싱턴대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24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알래스카 브리스틀 만으로 흘러드는 누샤가크 강에 서식하는 연어가 수시로 변화하는 서식지 환경조건에서 어떻게 안정된 집단을 유지하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손때 묻지 않은 자연하천인 이 강은 남한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유역에 호수, 연못, 급류, 크고 작은 느리게 굽이치는 강 등 다양한 서식지가 펼쳐져 있다. 낙엽이 썩어 찻빛으로 물든 유기물이 풍부한 강이 있는가 하면 차고 청록색으로 반짝이는 맑은 강도 있다.
 
s2.jpg» 누샤가크 강의 다양한 경관. 연어는 그때그때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최선의 대응책을 찾는다. 온 마을이 아이 하나를 기르는 것과 같다. 션 브레넌, 워싱턴대, 제시 데이비스 제공
.
연구자들은 홍연어와 왕연어의 귀돌(이석) 속 스트론튬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하천마다 연어의 성장률을 알아냈다. 환경변화에 따라 연어가 잘 자라는 강이 따로 있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생산성이 높은 강은 한 곳에서 이웃 강으로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어린 연어는 먼바다로 떠나기 전 한 번은 유역에서 가장 여건이 좋은 곳에서 몸집을 불렸다. 마치 아이가 부모에만 의존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을이 챙겨주는 것과 비슷한 얼개다.
 
연구자들은 “안정적인 생물학적 생산을 위해서는 모든 경관이 관여한다”며 “보전과 관리를 위해서는 특정 서식지만을 우선순위에 놓아서는 곤란하다. (기후변화와 같은)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다양한 경관 이용 시나리오를 평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s3.jpg» 연어를 보전하려면 몇몇 핵심 하천만 지켜서는 안 된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면 더 넓은 유역 차원의 보전의 필요하다. 상류 번식지로 이동하는 홍연어 무리. 션 브레넌, 워싱턴대 제공
.
아이 키우기를 한 가정의 책임으로만 두는 것이 점점 위험해지는 것처럼, 하천의 보전과 이용도 특정 하천이 아닌 전체 유역을 대상으로 해야 만일의 사태가 닥쳐도 생태계의 회복 탄력성을 복원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자들은 “경관 사이의 다양성과 연결성을 유지하는 과정, 예를 들어 산불, 홍수, 생물 이동 등을 보전하는 것은 생물 집단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ean R. Brenn et al, Shifting habitat mosaics and fish production across river basins, Science, 24 MAY 2019, Vol 364 Issue 6442, https://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av431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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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출두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반드시 필요한 투쟁이었다”

자진 출두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반드시 필요한 투쟁이었다”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6/07 [17:0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명환 위원장이 경찰 출두에 앞서 3,4월 노동개악 저지 투쟁은 반드시 필요한 투쟁이었다고 밝혔다.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지난 3~4월 국회 앞에서 진행된 노동개악 저지 투쟁에서 불법행위를 계획하고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7일 오전 10시께 영등포 경찰서 앞에서 출두 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과 투쟁의 임무를 피하지 않겠다며 민주노총이 지난 3월과 4월 벌였던 저항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악순환에 빠진 한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투쟁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주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고최저임금을 적어도 시간당 만원으로 올리자는 요구는 우리 사회가 도저히 감당 못 할 무리한 요구가 아니며 노동자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권력자 시혜나자본가 양보가 아닌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의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사업을 총괄하는 위원장에게 돌아가야 할 책임을 단순히 실무를 맡은 민주노총과 가맹조직 간부들의 작은 책임에 맡긴다면노동자 전체의 생존이 달린 막중한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이 제 입장이라며 당당히 경찰 조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정책을 책임지라며 흥정이나 거래가 아닌나라의 대표로 국민과 한 약속이라고 지적했다나아가 김 위원장은 구속된 노동조합 집행 간부들을 석방하라며 “ILO 총회를 앞두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해결을 위해 투쟁한 민주노총 간부를 감옥에 가둔다면 전 세계 노정 대표자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노동 존중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향해 정부와 자본은 아직도 탄력근로제 개악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투쟁의 깃발을 단단히 틀어쥐고 준비하자고 호소했다현재 민주노총은 7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김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지난 3월과 4월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 저지 집회와 관련해 특수공무집행방해공동건조물침입공용물건 손상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김 위원장은 4월 3일 집회에서 경찰을 뚫고 국회 경내로 들어갔다 체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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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소환조사에 나서는 민주노총 위원장 성명>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과 투쟁의 임무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민주노총의 존립 근거는 백만 조합원만이 아닌 25백만 모든 노동자에 있습니다.

 

제가 경찰 조사에 응하는 것 자체가 조직 내 많은 우려를 낳는 이유도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위치가 제 개인 신상 문제가 아닌, 25백만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무게감을 동시에 갖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은 우리가 자칭해서도조합원이 많아서도숱한 집회와 시위를 벌여서도 아닙니다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걸고 투쟁해온 진정성 있는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이 지난 3월과 4월 벌였던 저항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악순환에 빠진 한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투쟁이었습니다주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고최저임금을 적어도 시간당 만원으로 올리자는 요구는 우리 사회가 도저히 감당 못 할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노동자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권력자 시혜나자본가 양보가 아닌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민주노총의 3~4월 투쟁은 이 의무와 가능성 대신 시행착오나 가진 자의 저항을 이유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유지하려 하는 정부에 대한 규탄과 저항이었고국회에 대한 온몸을 던진 문제제기였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를 대표해 진행하는 모든 사업의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우리들의 너무나도 정당한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모든 결과에 따른 책임 역시 위원장인 제게 있습니다.

 

사업을 총괄하는 위원장에게 돌아가야 할 책임을 단순히 실무를 맡은 민주노총과 가맹조직 간부들의 작은 책임에 맡긴다면노동자 전체의 생존이 달린 막중한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당당히 경찰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과 위원장의 임무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요구합니다대통령 역시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정책을 책임지십시오흥정이나 거래가 아닌나라의 대표로 국민과 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구속된 노동조합 집행 간부들을 석방하십시오. ILO 총회를 앞두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해결을 위해 투쟁한 민주노총 간부를 감옥에 가둔다면 전 세계 노정 대표자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노동 존중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자본은 아직도 탄력근로제 개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국회가 열리기만 기다리며 호시탐탐 노동법 개악을 노리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조합원 동지 여러분투쟁의 깃발을 단단히 틀어쥐고 준비합시다민주노총은 7월 총파업을 앞두고 있습니다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을 지키라는최소 국제기준을 지키라는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우리의 정당한 투쟁을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의 결의로 주저 없이 만들어 가겠습니다투쟁!

 

2019년 6월 7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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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특보, 트럼프 방한 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제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6/08 10:05
  • 수정일
    2019/06/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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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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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특보, 트럼프 방한 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제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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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7  15: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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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당사자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말에 방한한다. 그 전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비공식·비공개로 원 포인트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7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돌파구가 보이면 재빨리 미국과 협력해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곧장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만날 수 있고 남북미 회담까지 성사된다면 금상첨화”라는 것.

문정인 특보는 “현재 우리 정부는 민족 이익을 주장하는 북한과 동맹 이익을 요구하는 미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며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북미 양쪽에 모두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장관·참모들 중 악역을 맡는 ‘배드 캅’(나쁜 경찰)이 없다. 왜 대통령이 배드 캅이 돼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문 특보는 미국을 향해 “북한은 제재를 적대 정책의 가장 구체적인 증표로 본다”며 “지금 ‘와이즈 어니스트’호(북한 화물선)를 몰수하는 건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적대 정책을 눈곱만큼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시작은 미국이 화물선을 풀어주는 게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북한을 향해서는 “이미 폐기한 풍계리 시험장을 더 이상 쓰지 않을 요량이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이 들어와 살펴보고 감마 테스트 같은 것도 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평양선언 5조 1항을 통해 동창리 시험장도 조건 없이 폐기하겠다고 한 만큼 그 약속도 이행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그렇게 해줘야 우리 정부가 미 정부를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특히 “영변이 북한 핵 능력의 60~70%에 달한다는 지그프리드 헤커(미 핵 물리학자)의 평가가 정확하다고 본다”며 “영변 폐기에 합의하면서 ‘폐기하는 동안 핵 활동을 중단하라’고 단서를 달면 북한은 받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영변 외 시설까지 동결하고 신뢰를 쌓으며 신고, 폐기하려면 부분적 제재 완화뿐 아니라 연락사무소, 평화선언 등까지 화끈하게 북에다 줘야 한다”고 제시했다.

문 특보는 <조선일보> 등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관계자들의 숙청과 처형설에 대해 “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결렬 책임이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고 주장하려면 자기 협상팀을 숙청하거나 그들에게 큰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걸 자인하는 꼴밖에 안 된다”고 논박했다.

문 특보는 “셈법을 바꾸라며 자기가 준 연말 데드라인을 미국이 넘긴다면 김 위원장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내년이면 미국 대선 국면인데 북한이 그런 식으로 나올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모드로 돌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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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자주국가 제1의 목표다

농업은 자주국가 제1의 목표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0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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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1일 김영삼정부는 IMF에 긴급자원지원을 요청했다. IMF란 실질적인 소득이 없이 빚에 의한 이자만 증식시키며 한마디로 빚이 소득을 잠식시킨 것을 말한다.

 

1997년 우리의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소득보다 빚이 많은 부실기업들이었다. 정부는 외채를 빌려 은행를 통하여 재벌들에게 빌려주었고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재벌로 인하여 파산한 것이다.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농민들은 김대중 정부의 선거공약인 농가부채탕감으로 농정공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는 농민의 정부"라며 농촌 발전기초위에 다른 산업이 발전한다고 전제하고 "농촌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것이 국민정부의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IMF극복에 공적자금 200조를 조성하여 재벌기업에 수여하고 자신의 선거공약인 정부의 정책 잘못으로 인한 농가부채탕감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은 것이다.

 

김대중정부의 IMF 극복과정에 비교우위론이 활개를 치고 농가부채탕감은 언론들에 의하여 도덕에 헤이로 몰아가자 우리농업은 영농의욕이 꺾이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김대중 정부의 관료들도 농산물 원산지표시제가 국제적 망신이라며 차기 농산물협상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으려면 미국 쌀도 사줘야 한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농산물 수입 <마늘파동>으로 인한 농가와의 갈등을 김대중 정부는 소탐대실이라 운운했다.

 

IMF로 우리농업은 총체적인 위기가 현실로 닦아왔다. IMF로 한국의 농업소득은 급격하게 하락하여 2002년부터 마이너스가 되었으며 일부품목은 생산과잉과 수입증가에 따른 농산물가격하락, 농촌고령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의 73% 수준으로, 농가부채는 급격하게 상승하여 IMF이전인 1992년 569만원에서 2003년 2662만원으로 한국의 농업은 사양산업으로 몰락해갔다. 한마디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생산비도 건지기 힘들며 빚만 쌓여가는 프레임이 자리했다.

 

통계청은 2002년 농가소득이 2300만원이라고 하더니 2005년에는 4000만원이라 발표했고 2004년 농가소득은 2654만3천원으로 농가부채는 2697만1천원으로 부채가 소득을 앞질렀지만 통계청은 수치를 수정하여 농가소득이 2687만8천원으로 당초 발표보다 33만5천원을 증가시키고 농가부채를 2661만9천원으로 35만2천원을 적게 발표하며 탁상머리로 농업소득을 부풀렸다.

 

김대중 정부를 이은 노무현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통상정권이라 부르며 마지막 남은 쌀 의무수입량 5톤트럭 9만대분을 미국 등 쌀 수출국에 약속하며 한국은 수입쌀로 식량안보를 한다는 나라로 매년 쌀 재고미로 골머리를 앓는 국가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소고기 100% 개방을 밀어붙였고 한국의 포도나무, 복숭아, 배나무, 자두나무를 찍어내고 과수강국 한.칠에 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였다. 노무현 개방농정으로 인하여 이경해 열사가 이국 칸쿤에서 자결하고 정용품, 오추옥, 하진오 수많은 농민들이 절망속에서 유서 자살을하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은 경찰 군홧발에 생명을 잃었다.

 

2002년 이후는 100% 수입개방에 따라 풍년이 들면 농산물은 산지폐기로 감량을 하여 농가는 생산비도 건지지 못했다. 또한 흉년이 들면 수입농산물에 의하여 고스란히 농가에 손해가 발생하고 농가소득분에 비하여 농업경영비가 상승하여 한국의 농민들은 농사를 하면 할수록 빚이 늘어나 차라리 농사하는 것 보다 농사를 짓지 않는것이 이익인 기이한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농지의 공시지가를 매년 상승시켜 농업적자를 메우고 통계청은 농가소득과 재산이 꾸준히 증가한다고 통계를 내지만 한국의 농촌은 2002년부터 실질적인 농가소득은 마이너스로 한국의 농촌은 2025년 인구소멸 경고장이 내려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들로 농업농촌문제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농업통계에서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농가재산 증가는 폰지 게임에 불과하며 우리가 미래를 악마에게 매도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통계청은 무너져가는 농촌과 지방정부를 위해서도 실사구시가 필요한 시점으로 농가소득을 보전하는 대책을 정부가 세우기바라며 소멸되는 우리농촌에 애도사를 쓰고 있다. 농업은 국가의 안보로 식량자급은 국력의 제1의 목표며 경제의 기반으로 식량자급 없는 자주국가는 이 지상에 없다. 

 

정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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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단독]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입력 : 2019.06.07 06:00 수정 : 2019.06.07 07:27

 

“에듀파인 위법” 행정소송
지난 3월 ‘개학 연기 사태’ 여론 뭇매에 도입 수용 ‘제스처’
한국당 등에 업고 ‘반격’…‘유치원 3법’ 논의 악영향 우려

[단독]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사립유치원장들이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 도입을 막기 위한 법적 소송을 진행하면서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태’가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유총을 향한 비판 여론이 잠잠해지고, 국회에서 ‘유치원 3법’의 입법이 계속 미뤄지는 등 관심에서 멀어지자 사립유치원들이 재차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한유총의 개학연기 투쟁 철회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교육당국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에듀파인은 사립유치원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여러 대책 중 최대 핵심 정책이다. 유치원 비리가 만연하게 된 주요 원인이 유치원장들이 교비를 쌈짓돈 쓰듯이 마음대로 해왔던 문제였다. 에듀파인을 쓰게 되면 유치원 회계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정부가 상시적으로 회계부정 문제를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정부와 한유총이 이를 놓고 강경대응을 주고받은 이유다.

사립유치원들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에듀파인 도입을 극렬 반대하다가 3월 개학연기 발표로 학부모와 여론의 지탄을 받자 결국 에듀파인을 수용했다. 정부도 3월까지 에듀파인 적용 대상 유치원(원아 200명 이상)의 에듀파인 도입률이 100%에 달하자 “예정대로 2020년부터는 모든 유치원에 에듀파인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태가 잠잠해지자 원장들은 단체로 소송을 걸었다. 정부가 소송에서 질 경우 에듀파인 의무 도입 자체가 무산된다. 원장들이 유치원의 폐원 규정을 강화한 교육부의 지침 등 여러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들에 대한 추가 소송을 낼 가능성도 있다.

한유총의 법적 대응은 ‘예고된 저항’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덕선 전 한유총 위원장이 물러난 뒤에도 강경파가 한유총 이사진을 장악한 데다 자유한국당 등 국회 내 우군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말부터 국회에 계류 중인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 ‘유치원 3법’ 논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치원 3법은 오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갈 예정이지만 한국당이 국회에 불참하고 있는 데다, 당내에서 유치원 3법을 반대하는 기류도 여전해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에 행정소송까지 겹쳐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치원 3법 중 에듀파인 의무 도입을 법으로 규정한 ‘유아교육법 개정안’의 경우 국회 교육위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법 적용을 1년간 유예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법사위에서 이 수정된 안을 본회의에 넘겨 그대로 통과될 경우 이미 교육부가 규칙 개정으로 시행 중인 에듀파인의 법적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장들이 소송을 제기한 배경에는 신속처리안건으로 한창 진행 중인 유치원 3법에 좌초 혹은 무산 프레임을 씌워 법사위 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려는 꼼수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박 의원은 오는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행정소송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유치원 3법 통과를 촉구할 예정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070600025&code=940401#csidxc15352190d2aeae8c8e0a0bfdaaf7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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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73년,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창립 73년,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6/07 [09: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9년 6월 6일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진행된 '경축 73돌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     

 

북은 6월 6일을 <조선소년단창립일로 기념하며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올해는 <조선소년단창립 73돌이다.

 

<조선소년단창립 73돌을 맞아 평양에는 각 지에서 올라온 소년단원들이 평양을 참관하고 있다.

 

6일 노동신문은 논설 소년단원들은 사회주의조선의 보배이고 미래이다를 통해 조선소년단은 혁명의 계승자청년동맹의 교대자로 튼튼히 준비해나가는 우리나라 학생소년들의 대중적 정치조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6일에는 조선소년단창립 73돌 경축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가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열렸고 각 지역에서 조선소년단 도군연합단체대회들이 진행되었다

 

북은 <조선소년단의 기본임무>에 대해 소년들을 주체의 혁명위업을 떠메고나갈 주체형의 혁명가지덕체를 갖춘 전면적으로 발전된 사회주의 건설의 역군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선소년단>은 만 7세부터 13세까지 가입하며 김일성·김정일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의 산하조직이다.

 

▲ 조선소년단 창립 73돌을 맞아 각 지역에서 올라온 소년단 대표들이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하고 있다.     

 

▲ 조선소년단 창립 73돌을 맞아 각 지역에서 올라온 소년단 대표들이 만경대를 참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조선소년단>은 1946년에 창립되었지만 출발은 항일운동 시기로 봐야 한다.

 

이는 김일성 주석이 1971년 6월 6일 창립 25돌을 맞아 발표한 축하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김일성 주석은 축하문에서 “<새날소년동맹>과 <아동단>의 붉은 깃발은 해방 후 <조선소년단>의 깃발로 이어졌습니다항일 혁명투쟁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어받았으며조선노동당에 의하여 교양된 우리 소년들은 소년단 생활을 통해 간결한 젊은 투사로 자라났으며 새 민주조선을 일떠세우는데 적극 이바지하였습니다소년단원들은 혁명적 조직생활에 충실하였던 항일유격대원들과 아동단원들처럼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여기며 소년단 시절부터 그것을 빛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새날소년동맹>은 1926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 무송지역에서 12월 15일 소년들을 모아 만든 조직이다당시 14살이던 김일성 주석은 연설에서 나라와 민족을 묶어 세워 일제의 침략적 죄행을 폭로하고 조선독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조선민족이 단결하여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날소년동맹>은 8~16세의 소년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혁명을 위한 정치군사사상적으로 무장하고 혁명을 위해 동맹생활에 적극 참가하는 등의 맹세를 통해 반일투쟁반일선전 및 계몽사업 등의 활동을 했다당시 입단식에서는 곤봉과 수첩을 받았으며매일 하루생활총화매주 동맹생활 검토회의군사지식 학습군사훈련 등을 받았다.

 

1932년 5월 김일성 주석이 두만강 연안 일대에 소사하유격구를 창설하면서어랑촌우복동왕우구해란구소왕청요영구 등지 유격구 지역에 소년 조직인 <아동단>을 만들었다당시 김일성 주석은 아동단은 어린이들을 우리혁명에 무한히 충실한 참된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소년들의 반일적이며 공산주의적인 정치조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여기서 전 세계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라는 구호가 제시됐다현재 '항상 준비'라는 구호가 여기서 출발한 것이다또한아동단의 상징은 깃발붉은 넥타이경례곤봉 등으로 여기서 깃발과 붉은 넥타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항상 준비!

 

▲ 선배들이 소년단 붉은 넥타이를 메어주고 있다.     

 

▲2017년  8차 소년단대회에 참가한 어린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붉은 넥타이를 매줬다 

 

그리고 해방 후 1946년 6월 6일 <조선소년단>을 창립하였다.

북은 <조선소년단창립에 대해 역사상 처음으로 주체사상의 혁명적 기치 아래 지도되는 통일적인 자기조직을 가지게 되었으며모든 소년을 우리 혁명 위업의 믿음직한 후비대로 키울 데 대한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소년단>이 창립되고 새 민주조선을 위하여 항상 배우고 준비하자라는 구호에 맞춰 농촌일 돕기 등을 진행했다그리고 북이 천리마 운동을 벌이던 시기에는 꼬마계획 활동’, ‘토끼 기르기 운동’ 등 좋은 일 하기 운동’ 등을 진행했다.

 

토끼 기르기 운동’, ‘좋은 일 하기 운동’ 등은 지금도 <조선소년단단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조선소년단창립 66돌 경축 전국연합대회에 참석해 김일성·김정일 조선의 새 세대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으라고 축하 연설을 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 7차 조선소년단 대회, 2017년 8차 조선소년단 대회에 참석해 소년단원들을 격려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2017년 8차 조선소년단 대회에 한 축하연설 일부분을 소개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축하연설에서 온 나라 소년단원들 속에서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영원히 높이 받들어 모시는 깨끗한 충정과 사회와 집단동무들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아름답고 기특한 소행들이 수많이 발휘되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우리 조국의 자랑을 더해주었습니다오늘 우리의 사랑하는 소년단원들은 내일에 대한 푸른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여러 가지 사회정치 활동과 좋은 일 하기 운동도 적극 벌이면서 사회주의조선을 빛내일 혁명 인재로 자라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소년단원들의 아름다운 풍모와 씩씩하고 명랑한 모습에서 주체혁명의 밝은 내일을 내다보고 있는 우리 당은 소년단원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소년단원들의 행복에 넘친 웃음과 창창한 미래를 끝까지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창립 73주년을 맞는 <조선소년단>은 지금 사회주의 조국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라는 구호를 들고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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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돈 10억원 거부하고 산재 인정 받은 엄마와 딸

[인터뷰] 삼성LCD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와 모친 김시녀씨

19.06.07 07:35l최종 업데이트 19.06.07 07:35l

 

 6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10년만에 산재 인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를 찾았다.
▲  6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10년만에 산재 인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를 찾았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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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재 맞거든요? 그런데 이제서야 산재 인정을 받았다는 게 너무 웃겨요. 정말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했어요."

오래 기다렸다. 10년이 넘는 기다림이었다. 6일 강원도 춘천의 자택에서 만난 삼성LCD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42)씨는 마른 체구에도 우렁찬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산재 맞거든요?"라는 되물음 속에는 삼성과 싸운 10년의 세월이 녹아있었다. 결국 그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됐다.

예전에 한씨는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면 "내 말을 믿어달라"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쳤다. 한씨의 모친 김시녀(62)씨는 "가슴에 응어리가 져서"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30일 가슴에 응어리가 질 정도로 간절했던 산재 재신청이 마침내 승인됐다. 김씨가 그 소식을 전하자 당시 밥을 먹던 한씨는 밥숟가락을 채 내려놓지도 못하고 대성통곡을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한씨는 한참을 울부짖었다. 한참을 꾸역꾸역 울던 한씨는 10년 넘게 자기와 함께, 때로는 앞서서 싸운 엄마를 보고 웃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엄마가 말해주더라고요. 밥을 먹으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진짜 많이 울었어요. 인정이 되고 나니까 왜 이제야 됐는지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한혜경)
"그래. 이제라도 됐으니까 감격이 큰 거지." (김시녀)

"(끄덕끄덕) 엄마한테도 너무 고마웠어." (한혜경)
"뭐가 고마워?" (김시녀)

"엄마하테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울고 나니 웃음이 나대요?" (한혜경)


"저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한씨는 지난 1995년부터 삼성전자 경기도 기흥공장에서 꼬박 5년 10개월을 일했다. 맏딸이고 책임감도 강했다. 한씨는 상고로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월급이 세다는 삼성이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근무하던 5년 사이에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생리가 멈췄고 몸이 안 좋아졌다. 한씨는 결국 퇴사하고 춘천으로 돌아와 마트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그러던 2005년 10월 한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뇌종양이었다. 종양 제거 수술을 했지만 후유증으로 시각, 보행, 언어장애인이 됐다. 그 후로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한씨 모녀는 전국 각지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가보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였다. 

2009년 한씨는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이후 근로복지공단 심사, 재심사 청구에서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행정 소송을 했지만 2015년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춘천에서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 동안 울기도 많이 울었다. 힘들여서 3~4시간 걸려 서울까지 가면 재판을 받는 시간은 고작 3~4분. "(산재가 아닌) 개인의 질병"이라는 결정과 함께 들리는 판사의 '땅땅땅' 소리에 이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때로는 "너무 화가 나서", 또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권유한 끝에 이들 모녀는 2018년 다시 한번 용기를 냈고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을 신청한 끝에 지난 5월 최종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삼성LCD 피해자인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한혜경씨는 지난 5월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2009년 대법원에서 패소한지 10년만이다.
▲  삼성LCD 피해자인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한혜경씨는 지난 5월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2009년 대법원에서 패소한지 10년만이다.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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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씨가 근로복지공단에 낸 최종 의견진술서는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저는 꼭 산재로 인정받아서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최종 의견진술서 10문장을 쓰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제가 일할 때에는 비닐장갑도 잘 찢어져서 맨손에 약품이 묻기도 하고 마스크를 껴도 냄새가 다 났어요. 그런 게 위험하다는 건 몰랐어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반도체, LCD 공정에서 뇌종양 피해자가 많이 나왔고 또 명확히 입증 못해도 산재보험 취지상 뇌종양도 산재로 인정되는 분들이 여럿 생겼잖아요. 저에게도 공정하게 판정해주시면 좋겠어요."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삼성에서 회유가 들어왔다

모녀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활동가가 다 됐다. 다른 산재 피해자들도 도울 생각이다. 한씨는 주먹을 꼭 쥐고 "투쟁!"이라고 외치면서 "저 같은 사람이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저는 (투쟁)해야죠.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는 데까지 가야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번 "그럼! 가야지. 하는 데까지 해야지"라고 딸의 말을 거들었다.

지난 2018년 7월 반올림 농성이 1023일로 마무리가 되고 나서 김씨는 한동안 앓아누웠다. 그는 "3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면서 골병이 든 모양"이라면서 웃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때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이재용 재판을 참석하면서 태극기부대 사람들을 보았는데, 혜경이한테 '병신이 여기를 왜 왔냐'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사람들 눈에는 혜경이가 병신으로 보이겠지만 그 트라우마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김시녀)

2014년 무렵에는 삼성 측에서 10억원을 줄 테니 산재 소송을 하지 말라고 회유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김씨가 '혜경아, 엄마 너무 힘들어. 그냥 돈 받자'고 하자 한씨는 '엄마, 나중에 나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되잖아'라고 대답했다. 김씨는 '아차' 싶었다. 피해자가 계속 나오는 걸 보면서 김씨는 "이 일이 혜경이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딸 한혜경씨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 김시녀씨의 모습.
▲  딸 한혜경씨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 김시녀씨의 모습.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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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환자가 한 명 나오면 풍비박산이 돼요. 그런데 내가 겪은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겪는다? 내가 조금만 더 싸우면 되는데? 다시는 실습을 나가서 사망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요. 저희가 지금은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 과정에 넣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삼성 백혈병 문제가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서울로 다니고 있어요. 저희는 힘이 닿는데까지 싸울 거예요."

이들 모녀는 오는 1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산재인정 축하음악회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를 연다. 김씨는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워서요.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잔치도 파티도 아닌 그런 걸 열기로 했어요"면서 웃었다.

"혜경이랑 노래도 좀 부르고 감사 인사도 하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모녀는 서로를 다시 한 번 마주보았다.
 
 엄마의 품에 안긴 한혜경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엄마의 품에 안긴 한혜경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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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진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문재인은 빨갱이"

文대통령, 김원봉 언급하며 '광복군은 국군 뿌리' 발언에 한국당 발칵
2019.06.06 21:29:15
 

 

 

 

문재인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 시절 '좌우 합작'을 통해 창설된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언급하자 자유한국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광복군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 등이 참여한 것을 언급했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약산 김원봉의 이름을 언급했다.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합니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안정을 추구하고, 어떤 때는 변화를 추구합니다. 어떤 분야는 안정을 선택하고, 어떤 분야는 변화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습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지난 3월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복원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추념사에서 김원봉은 딱 한 차례 언급된다. 문 대통령은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좌우 합작'을 통해 창설된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임을 언급했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력 투쟁을 전개했고,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1944년에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냈다. 1948년 월북한 후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각료를 맡는 등의 이력으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분류된다. 이후 김일성에 의해 숙청을 당하게 된다. 
 
김원봉이 월북을 하게 된 계기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 대해 좌절을 느껴서였다. 김원봉 본인이 악덕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수사를 받기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아주경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약산 김원봉은 해방 후 북쪽으로 가지 않고 광복군 부사령관 직함을 갖고 남쪽으로 귀국했다. 그런데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모욕적인 수사를 받았다. 심지어 친일 경찰과 연결된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처지였다. 백범 김구 선생이나 몽양 여운형 같은 민족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당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남쪽에 약산이 있었다면 생명을 부지 못했을 것이다. 약산이 월북한 것은 여기서 쫓아낸 거나 마찬가지다. 남한에서 친일파가 득세한 현실에 절망해서 월북한 것이지, 공산주의가 좋아서 간 게 아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도피한 거다." (☞ 바로 가기 : 광복회장 김원웅 인터뷰 )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과 극우 진영은 약산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 및 서훈 추서 움직임을 두고 '역사 전쟁'을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김원봉이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를 들어 "김원봉에게 서훈을 주면 김일성에게도 서훈을 줘야 하느냐"고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은 김원봉 서훈 추서 문제를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 자문기구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지난 2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독립유공자로 평가돼야 할 독립운동가들에게 적정 서훈을 함으로써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권고했다. 
 
관련해 오창익 국가보훈처 위법·부당행위 재발방지위원장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독립 유공자 인정 여부에 있어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정권의 요직을 지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학교에서 개근상과 우등상을 준다고 할 때 개근상은 개근할 때 주는 상이고, 우등상은 성적이 우수하면 주는 상이다. 그런데 개근한 학생이 성적이 형편없다고 개근상을 못 주겠다고 한다면, 합당한가"라며 "'독립 유공자냐, 아니냐'의 문제와 '해방 전후 북한과 어떤 관계였느냐'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관련 기사 : "좌파 역사공정? 친일세력의 피해망상!") 
 
차명진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문재인은 빨갱이"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을 두고 강력 반발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6·25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며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했다.  
 
전 대변인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나라와 가족을 위해 붉은 피를 조국의 산야에 흘린 6.25 전사자들을 뒤에 모셔두고, 눈물로 세월을 견뎌낸 가족들을 앞에 두고 북의 전쟁 공로자에 헌사를 보낸 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보수, 진보를 떠나 최소한의 상식의 선 안에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세월호 막말' 등으로 징계를 받았던 차명진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을 두고 "김원봉이 누구인가? 김일성 정권 권력 서열 3위, 6.25 남침 최선봉에 선 그 놈이다. 그런 놈을 국군 창설자라고? 이보다 反 국가적, 反 헌법적 망언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현충일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자가"라고 비판했다.  
 
차 전 의원은 "내가 더이상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 한국당 뭐하냐? 이게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 우선 입 달린 의원 한명이라도 이렇게 외쳐야 한다.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비난했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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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반민족·반민주 행위자 65명 중 일부 묘역에 오물 뿌려

현충일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등 시민사회단체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0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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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는 반민족·반민주 행위자 65명 중 일부 묘역에 오물이 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국가공무원노조 등이 오물(단죄수)을 뿌린 곳은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김창룡 묘와 정부가 발표한 친일 명단에 속한 김석범 묘 등 모두 5곳이다.

 

이들은 국립묘지 안장이 부적절한 반민족·반민주 행위자들의 묘를 즉시 이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립묘지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현충일을 맡아 대전현충원에서는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 반민족행위자와 군사반란 가담자 등 부적절한 안장자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즉각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오늘 쪽 뒤편이 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이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 참석한 독립유공자유족회 윤석경 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경 지회장 뒤편으로 이날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가 발표한 이장 요구 대상자 65명 중 반민족·반민주행위자 29명의 명단이 보인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을 비롯한 대전 시민들은 이들의 이장을 촉구하고 부적절한 자들을 이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라는 요구를 지난 2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촉구하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외침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 부적절한 쓰레기 같은 안장자들에게 국가유공자라는 보호막을 제공하고 이들을 위하여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더이상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리 없다는 판단을 하고 친일반민족 행위자와 군사반란에 가담한 자 등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 될 부적절한 자들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공개하는 등 이들의 이장을 실천하는 여론 조성 등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창룡, 소준열, 안현태 등 반민족, 반민주행위자의 유족들에게 “그들이 국립묘지에 있는 한 국민들은 그들의 죄상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알게 되고 손가락질을 더 할 것”이라며, “진정 고인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현충원에서 그 묘를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우리가 수차례 발의 요청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과 냉대로 인하여 본회의에 상정도 못하고 폐기 또는 낮잠을 자고 있다”며 국립묘지법을 개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파묘(破墓) 퍼포먼스와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이장을 촉구하며 파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통일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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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 아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6/06 12:28
  • 수정일
    2019/06/06 12:2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독립·민주주의·경제발전에 보수와 진보의 노력 함께 녹아 있어”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9-06-06 10:37:47
수정 2019-06-06 10:37:47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하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2019.06.06.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하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2019.06.06.ⓒ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세 번째로 맞이한 현충일에 내놓은 주된 메시지는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보수진영 일각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수준의 극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 대한 사회적인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취임 첫해인 2017년 현충일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점을 내세웠고, 2018년에는 국가유공자의 의미를 소방 및 순직공무원 등으로 넓히는 데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우리에게는 사람이나 생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며 대립하던 이념의 시대가 있었다"라며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진보의 역사가 모두 함께 어울려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라며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누구나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특히 "어떤 때는 안정을 추구하고, 어떤 때는 변화를 추구한다. 어떤 분야는 안정을 선택하고, 어떤 분야는 변화를 선택하기도 한다"라며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통합'의 사례로 광복군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라며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라며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라고 부연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지난 100년, 우리는 식민지를 이겨냈고 전쟁의 비통함을 딛고 일어났으며 서로 도와가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라며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의 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선, 장엄한 길이었다"라며 "되찾은 나라를 지키고자 우리는 숭고한 애국심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숱한 고지에 전우를 묻었다. 경제성장의 과정에서도 짙은 그늘이 남았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면서도 과거를 잊지 않게 부단히 각성하고 기억해야 한다"라며 "우리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되새기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통찰력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라며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여전히 색깔 공세를 하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힐 여지가 있다.

문 대통령은 현충원에 안장된 유공자들을 거론하며 '기득권을 떠난 진전한 애국'의 의미를 되새겼다. 문 대통령은 "여기 묻힌 한 분 한 분은 그 자체로 역사이며, 애국이란 계급이나 직업, 이념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 2번 묘역은 사병들의 묘역이다. 8평 장군묘역 대신 이곳 1평 묘역에 잠든 장군이 있다"라며 "'내가 장군이 된 것은 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우들인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 유언한 채명신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또 "석주 이상룡 선생과 우당 이회영 선생도 여기에 잠들어 계신다. 두 분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 스스로 평범한 국민이 됐다.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모든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라며 "뿌리 깊은 양반가문의 정통 유학자였지만 혁신유림의 정신으로 기득권을 버리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에 이바지했다"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은 "우리의 가슴에는 수많은 노래가 담겨있다. 조국에 대한 노래, 어머니에 대한 노래, 전우에 대한 노래, 이 노래는 멈추지 않고 불릴 것"이라며 "우리에게 선열들의 정신이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은 미래를 향한 전진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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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에 제재가 도전인가, 제재 해제가 도전인가?

[현안진단] 제재 해제된다고 해도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돌아갈 수 없다
2019.06.06 05:22:37
 

 

 

 

대북 제재와 비핵화 협상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경제적 압박과 불이익을 주어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여러 겹의 대북 제재를 촘촘하게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채택된 11건의 안보리 결의는 대량살상무기 통제에서 경제일반에 대한 타격까지 망라하고 있다. 북한의 수출비중 1위-4위 품목인 석탄, 의류, 수산물, 철광의 대외거래는 금지되었고, 원유 수입도 민생용에 한해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되는데, 이는 한국 경제의 이틀간 소비량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개별국가 차원의 제재가 가세하고 있으며, 미국은 제재를 위반하는 제3국을 대상으로 2차 제재(Secondary Boycott)도 시행하고 있다. 

이렇듯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는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북한경제에 공급을 더욱 위축시키고 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압박하는 치명적인 외부요인이 된다.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이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낸 것이라면 협상에 거시적 진전이 있을 때까지 이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핵무장 때문에 미국이 협상에 응했다고 보는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회담 이후에 '적대세력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며 미국 태도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까딱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북한경제는 특수한 역사 경험 속에서 대북 제재라는 경제 외부요인의 도전에 대해 나름의 내성(耐性)을 다지면서 대응해 왔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애초 북한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매우 낮으며 에너지 구조도 석탄 중심으로 짜여있기 때문에 비록 최근의 제재로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과거에 해본 것처럼 내핍생활로 힘들게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수출이 막힌 석탄을 내수시장에 돌리면 오히려 연료사정이 나아질 수도 있다. 특히 민주화되지 않은 북한체제에서 경제적 고통을 하층 인민에게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전가할 수 있는 북한 지도부로서는 그야말로 '까딱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완화 문제에 집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북한 외교의 전술적 실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 경제의 다급해진 사정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된다.  

대북 제재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해 온 북한경제 

고난의 행군 이후 20여 년간 북한경제는 핵개발 비용의 부담과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온 국제적 제재 압박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나름 생존을 위해 여러 방법을 통해 악착같이 적응력을 키워 왔다.  

수해로 망가진 탄광과 농수로를 복구하고 소수력 발전소를 여기저기 만들며, 비료와 철강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와 수입대체품의 개발, 생산자원의 절약, 소비생활의 내핍을 강조하며 대응해 왔지만 한번 망가진 사회주의 계획경제(공적 경제)는 다시는 원래대로 복구할 수 없었다. 

결국 인민경제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계획경제만으로는 불가능해져 자생적인 장마당 경제가 확산됐고 시장의 역할이 경제생산과 경제관리 양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1차 북핵 위기 때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첫 대북제재(UNSCR 825호, 93년 5월) 이후 26년이 흘러가는 동안 북한경제가 환경변화에 적응해 온 경과를 시장의 역할 중심으로 살펴보면 세 번의 전기(轉機)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전기는 2002년 '7.1 조치'이다. 이 시기에 장마당 경제가 등장한다. 공급 부족으로 배급이 어려워지자 식량을 구하는 유일한 통로로 10일마다 열리던 농민시장에 사람들이 매일 몰려들었다. 여기서 공산품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필품이 거래되면서 장마당이 형성되었다. 부족한 상품의 조달을 위해 중국 국경의 통상구가 개방되고, 무역기관이 아닌 기관 기업소도 대외거래에 참여했다. 공급부족으로 물량지표 대신 금액지표를 부여받은 사업소와 기관들이 독립채산을 하도록 떠밀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발전한 장마당을 합법화한 조치가 2002년 '7.1 조치'이다. 북한당국은 장마당 거래를 용인하였고, 생산단위의 계획목표를 물량단위에서 금액지표로, 분배기준도 생산실적에서 벌어들인 수입(번수입)으로 변경했다. 사업장 고유의 생산품과 상관없이 다양한 품목의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한 생산단위는 당·정·군의 힘 있는 기관과 뒤섞여서 국내유통망과 대외무역망에 뛰어들었다. 내부공급 증가보다는 암시장과 밀거래를 통해 외부공급이 늘어 그럭저럭 인민경제에 숨통이 트였다. 여기에 외부원조 물품들도 한몫 했다.

이렇게 공식경제는 정체된 상태에서 오히려 비공식경제로 모든 물자가 유통되자 위기위식을 느낀 북한당국은 2005년 하반기 이후 장마당 경제에 점진적으로 통제를 가하고 이런 저런 단속을 강화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갑자기 화폐교환 조치를 단행해 장마당을 통해 축적된 화폐를 강제 회수하고 중앙집중식 계획경제로 회귀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장마당을 대신해야 할 공적부분이 정상화되지 못한 것이 뒤늦게 판명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고 경제부총리가 처형되었다. 이때가 두 번째 전기다.  

화폐교환의 실패는 이제는 계획경제로 회귀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북한경제에 구조화 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은 이를 교훈삼아 오히려 장마당 기능을 이용해 북한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장마당 돈주들의 자금력을 이용하여 평양시가지의 재건축이나 관광지 개발 등 여러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 번째 전기를 맞았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평남기계종합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2014년 경제일꾼과 담화를 하며 나온 이른바 '5.30 조치' 2016년 7차 노동당대회에서 밝힌 '우리식 사회주의 방법' 등이 이어지면서 농업분야에서는 분조관리제하에 포전담당제가 확대되어 초과생산량에 대한 분배단위를 쪼개서 영농의욕을 높이고, 국영기업소의 책임 관리제를 확대해 소매단위의 직거래와 가격협의 권한과 자율권을 허용하고 있다. 

대북 제재로 공급이 원천적으로 제약받는 상황에서 각급 경제단위의 의욕을 높이고 경제 관리를 효율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여기에 국산기술을 이용한 수입대체노력과 증산절약 및 부정부패 척결노력을 병행하며 국제사회로부터의 최대압박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시장을 억압하여 계획경제를 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을 이용하여 계획경제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외부공급이 차단된 상황에서 돈주의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권력기관들의 권한만 강화되고 반면 인민경제 전반의 성장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정은 집권이후 중앙과 지방에 지정한 26개의 경제개발구가 파리를 날리고 있고, 북한이 10년 만에 유엔대표부를 통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공식 요청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북한)는 적대세력들의 항시적 제재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 왔고...(중략) 장기간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돌풍을 자립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한 것처럼 앞으로도 북한경제는 제재라는 외부요인의 도전을 이런저런 대응책으로 그럭저럭(Muddling Through) 버텨 나갈지도 모른다.

제재완화도 지금의 북한경제 상황에서는 도전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상황에서나 앞으로 상황이 호전되어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국경이 없는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인민경제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강력한 국내시장의 역할이 필요하다. 관료들이 좌지우지하는 경제로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타고 성장 발전해 나가기 어려운 시대다.

북한이 비핵화로 대북 제재가 해제된다 해도, 현재 시장의 힘을 계획경제의 회복에 이용하려는 북한경제의 환경에서는 대규모 외부투자도 어렵거니와 자금이 들어와도 권력기관의 부정부패 속에 휩쓸려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의 주동력을 시장의 자율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는 시장을 이용하기보다 육성하는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하면서 시장에서 약자 처지에 몰린 사람들을 돕는데 힘써야 한다. 그런 준비가 없다면 제재해제도 오히려 북한경제에 큰 충격과 도전이 될 수 있다. 

최근 5월초 단거리 발사체 훈련 참관 이후 거의 한달 만에 현지시찰에 나선 김정은 위원장은 민생 현장에서 당 간부들의 '일본새'를 질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하며 화를 내는 모습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과 대립하면서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건설 총력전을 펴는 상황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경제의 활력은 야단맞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격려와 실질적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또한 그런 인센티브는 당 간부의 권한으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질서로 제공되어야 경제가 성장 발전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재 해제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 만일 제재 해제에 매달려 비핵화 협상을 진행한다면 약점을 잡혀 생각보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뿐 아니라, 해제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담아낼 그릇이 없어 자생력은 더욱 떨어지고 말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원하고 인민경제 향상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장 친화적인 시스템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협상을 촉진하고 제재 해제를 이끄는 힘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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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끈질긴 추적... 일본인도 감동시킨 '지쿠호의 기록자'

강제징용 진실 담은 13만 건 자료... 고 김광열 재일 향토사학자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19.06.06 10:54l최종 업데이트 19.06.06 10:54l

 

 

 강제징용 현장을 찾은 김광열
▲  강제징용 현장을 찾은 김광열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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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일본에서 산 '재일 향토사학자'이자 2017년 고인이 된 고 김광열 선생이 2019년 6월 6일 현충일을 기념해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이 뚜렷한 사람들에게 수여한다는 국민 훈장 '동백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살아생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사명감을 가지고 홀로 걸어갔던 길, 그 길의 의미를 너무 늦게 인정받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그의 수고를 알아주니 하늘에서나마 기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 초 다큐멘터리 <끌려간 사람들, 지쿠호 50년의 기록>을 준비하면서였다. 그가 한 일들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김광열의 헌신 : 13만 건에 달하는 강제징용 자료 모으다

2018년 2월 국가기록원에 재일 향토사학자 김광열이 기증한 기록물들이 도착했다. 김광열이 50년 동안 수집한 자료들은 사과 상자 43개에 달했다. 숫자로는 13만 건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자료였다. 국가기록원에 개인이 기증한 기록물로는 2번째, 외국에 거주하는 개인이 기증한 기록물로는 최고 많은 양이었다.
 

 김광열의 기록장, 자신이 모은 기록들을 언제, 어디에서 수집했는지 과정을 일일이 기록해 놓은 기록장
▲  김광열의 기록장, 자신이 모은 기록들을 언제, 어디에서 수집했는지 과정을 일일이 기록해 놓은 기록장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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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목록은 문서 형식의 기록물뿐 아니라 캠코더로 직접 찍은 영상, 직접 촬영한 사진, 녹음테이프 등까지 다양했다. 기록물의 내용은 전부 강제징용과 위안부들에 관한 자료들이었다. 

김광열은 일제강점기 많은 조선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후쿠오카에 살았다. 1970년대 후반 개발의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의 현장과 자료들이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가는 것을 목격한 그는 이 사료들을 지금 모으지 않으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에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월급을 준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 시작한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출발한 강제 징용자들이 첫발을 디딘 일본 땅이었다. 후쿠오카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지쿠호 일대는 조선인 징용의 대표적인 현장이다. 김광열은 지쿠호 일대 탄광들을 직접 다 찾아다니면서 남은 자료를 수집했다. 수집할 수 없는 자료들은 손으로 일일이 기록했다.
 

 후쿠오카 오노우라 탄광명부 원본
▲  후쿠오카 오노우라 탄광명부 원본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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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산이 많은 지쿠호 일대는 지금도 석회석 채취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 일대에 있던 오노우라 탄광이 폐광을 준비하던 1980년대, 김광열은 여러 차례 탄광사무소를 찾았다. 광부 명부에 남아있는 조선인들의 이름을 필사하기 위해서였다. 매일 찾아와 조선인 광부의 이름을 하나씩 필사하는 김광열의 열정은 일본인 직원조차 감동하게 할 정도였다. 

일본인 직원은 탄광이 문을 닫던 날 '조선인 명부'가 적힌 원본 노트를 김광열에게 몰래 줬다. '오노우라 탄광 조선인 명부'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조선인 광부명부' 중 유일한 원본으로 이 안에는 탄광 근로자들의 입소 일자와 본적, 해고 이유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김광열의 끈기 :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봉안묘역 만들다
 
13만 건에 달하는 자료 가운데는 조선인 명부 외에도 귀한 자료들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조선인 강제동원 기업으로 알려진 아소광업은 11개의 탄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던 10개의 작업장에 조선인 광부들을 동원했다. 

아소광업은 일제강점기의 모든 자료를 자신들이 설립한 도서관에 보관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접근을 아예 차단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광열의 기록물 가운데는 아소광업의 '건강보험 대장 원본'이 있었다. 이 자료가 향후 강제징용의 진실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김광열이 수집한 아송광업건강보험대장- 국가기록원
▲  김광열이 수집한 아송광업건강보험대장-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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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열의 열정은 기록수집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에 조선인 유골이 방치돼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직접 발품을 들여 찾아갔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유독 탄광으로 끌고 간 이유는 탄광이 일본인들이 가장 피하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었다. 지하 수백미터의 땅 밑에서 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혹사당한 조선인 노동자들, 후쿠오카 호슈 탄광에 17살에 끌려갔던 광부 안용한이 남긴 신세 한탄 노래 한 구절은 조선인 광부들의 노동이 얼마나 혹독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우리의 고향은 경상북도인데 나는야 어째서 숯 파러 왔노
배가 고파요, 어머니 보고 싶소,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내었네,
고향으로부터 쌀가루 부쳐왔네,
쌀가루 받아들고 눈물만 흘렸네

- 일본 호슈 탄광에 강제징용됐던 고 안용한씨의 신세타령 중에서


탄광 광부들 가운데는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아소광업에서 일하다 죽은 조선인들의 유골 항아리 수십 기가 동굴에 방치돼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광열은 직접 아소광업을 찾아간다. 여러 차례에 걸쳐 방문한 김광열은 아소 측에 격식을 갖춰 조선인들의 유골을 봉안해 달라고 요구한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방문이었을 텐데 김광열은 어떻게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을까? 김광열을 알아가면서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국 김광열의 끈기가 이겼다. 아소광업은 김광열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다가와시 미타테 묘지 한쪽에 조선인들의 유골 봉안실을 따로 만들었다. 김광열은 죽을 때까지 이 봉안실을 책임지고 돌보았다. 

 

강제징용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김광열의 행적에 조국의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을 때 김광열의 활동을 주시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 우익단체들이었다. 우익단체들은 김광열의 집 앞에서 시위하고 칼 같은 위협적인 도구를 넣은 우편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광열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김광열의 집은 날이 갈수록 자료들로 가득 찼다. 자료들은 목록별로 잘 분류가 돼 1층을 다 채우고 2층까지 채웠다. 타지에 있는 아들 가족이 집을 방문하면 머물 방이 없을 정도로 자료로 가득 찼다. 그의 아들은 모든 자료를 국가기록원으로 넘긴 뒤 이런 고백을 했다. 

"자료를 다 넘기고 나서야 우리 집이 이렇게 넓은 줄 처음 알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김광열은 자신의 돈을 들여 현장을 찾고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김광열이 없었다면 기록도 없다

그는 왜 평생 이 일에 몰두한 것일까? 김광열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는 그의 아버지 김선기가 일제강점기 핵심적인 독립투사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김선기는 대구 신간회를 만들고 대표로 활동했다. 독립투사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한 인물이다.

김광열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시대에 감옥은 아니지만 일본으로 끌려와 희생된 이들의 삶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후쿠오카 역사기행을 이끌었던 김광열은 젊은이들 앞에서 자신이 강제징용 자료 모으기에 평생을 바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 사람들이 다 메워버리고나면 우리 역사는 다 지워지는 것이지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서 고생하고 눈물 흘리고 죽고 살고 그 역사가 여기 다 있고 무너져 가고 있다. 이거 그대로 나는 모른다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 역사는 어디서 찾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김광열 생전 육성 중에서
 
 김광열이 기록을 위해 지니고 다녔던 녹음기와 카메라
▲  김광열이 기록을 위해 지니고 다녔던 녹음기와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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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는 2018년 11월 경남 MBC <끌려간 사람들, 지쿠호 50년의 기록>으로 제작돼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올해 그가 국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역사 속에 묻힐 뻔한 그의 노력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제작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주어지는 일도 아닌 길, 오히려 갖은 겁박과 위협을 감수해야 했던 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50여 년에 걸쳐 한 길을 갈 수 있었을까? 알아갈수록 김광열의 삶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긴 역사를 놓고 보면 이해타산을 뛰어넘어 묵묵히 걸어간 이들의 굳건한 발자취가 종종 역사의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바람결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13만 건의 자료들은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다. 올해 말 그의 자료들이 공개되면 강제동원의 진실을 밝히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억하기 위해 50여 년간 기록하는 수고를 스스로 감당했던 김광열, 이제는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때이다. 국민훈장 동백장은 그를 기억하는 첫 신호탄일 뿐이다. 13만 건에 달하는 그의 자료들을 통해 강제징용의 역사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때 '지쿠호의 기록자' 김광열의 수고는 진정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자의 개인블로그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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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기밀 유출..보수세력의 한반도 정세 판 깨기

가짜뉴스, 기밀 유출..보수세력의 한반도 정세 판 깨기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기사입력: 2019/06/06 [09:4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북한을 향한 가짜뉴스부터 여권 인사에 대한 추측성 의혹 제기심지어 불법 기밀 유출에 이르기까지 연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등 보수세력의 행동은 한반도 정세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판 깨기 전략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의 가짜뉴스 노림수

 

5월 31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김영철은 노역형김혁철은 총살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제목만 봐도 자극적인 이 기사는 어이없게도 단 사흘 만에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6월 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김영철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 나타난 것이다조선일보 보도는 가짜뉴스였다.

 

조선일보 보도는 가짜뉴스였지만 파장을 일으켰다기자들은 청와대에 해당 정보를 보도를 통해 알았는지 사전에 정보가 있었는지 추궁했다해당 기사가 오보임을 알고 있는 지금 돌아보면 억지스러운 질문이다.

 

이 뉴스는 바다 건너 미국까지 흘러 들어갔다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비핵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혀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5월 31일 숙청설이 5주 넘게 돌았으며 그동안 아무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며 백악관을 질타했다. 6월 2일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도 멀 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에게 북한과 계속 좋은 관계를 맺어도 좋냐고 따졌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조선일보가 가짜뉴스를 보도한 노림수는 북미 대화 깨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나쁜나라라는 인식을 만들어 북미 및 남북 대화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서울신문도 6월 3일 일부 보수세력이 북한=악마’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구사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올해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정책 변화와 시간이다북한은 이미 북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해야 함을 명확히 하고 그 마지노선을 올해 말까지로 못 박았다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은 6월 4일 미국은 지금의 셈법을 바꾸고 하루빨리 우리의 요구에 화답해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미 당국이 잘못된 북한 정보에 노출되고 오판을 하거나 혹은 때를 놓치기만 해도 북한과의 대화는 불가능해지며 한반도 정세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조선일보와 같은 가짜뉴스를 고의로 퍼트리는 행태는 위험천만한 망동이다.

 

남북 민간 접촉을 무산시킨 보수언론의 기레기’ 행태

 

실제로 최근 잘못된 언론 보도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가 무산된 바도 있다북한은 최근 남북 민간단체 실무협의를 제안했다북한의 제안은 남북대화가 중단된 상황에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틔울지 기대를 모았다.

 

실무접촉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 공동위원회 회의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와 남측 민화협 및 겨레하나가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국 심양에 모여 실무협의를 할 예정이었다각 단체는 사전에 합의했던 민족공동행사공동토론회 등을 논의하고자 했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이 재를 뿌리기 시작했다중앙일보는 5월 16일 <“南 만나지도 말라던 식량 급했나>라며 북측의 대화 제의가 식량’ 때문인 것처럼 여론을 조성했다.

 

결국 북측은 실무협의를 취소하고 담당자들을 철수시켰다. 6.15 북측위는 남측 및 해외 측에 남북관계의 현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결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지혜를 모으자는 취지로 남북 민간 대화를 제안하였으나 진의가 왜곡되고 이번 접촉 자체가 잘못 비춰질 것으로 판단하여 철수하기로 결정했다고이유를 밝혔다.

 

북측은 민간 대화가 식량을 지원받기 위한 회담으로 왜곡되면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에 해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은 페이스북에 이번 협의가 취소되기까지 언론보도가 한몫 단단히 했다.”고 짚었다.

 

이번 실무회담의 목적과 의제는 사전에 남측 단체들이 미리 밝혀 알려져 있었다보수언론들이 민간단체 접촉을 두고 북한이 식량지원을 바란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남북 대화의 판을 깨뜨리려 악의적인 행동이었다.

 

무엇을 위한 기밀 유출인가?

 

이와 같이 보수언론들은 남북관계 발전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5월 22일 한미 정상 간 통화를 유출한 사건도 이런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효상 의원의 한미 정상 통화 내용 공표는 불법적 기밀 유출로 국익을 침해했다는 여론이 48.1%로 정당한 정보공개라는 여론 33.2%를 훌쩍 앞섰다.

 

그 여파로 같은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9%로 나타났다전주(31.9%)보다 2.9%포인트 떨어진 수치다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전주 7.4%포인트에서 12.2%포인트로 확대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 기밀 유출을 했다고 보면 자유한국당은 실패한 셈이다그러나 보수세력의 의도는 따로 있다.

 

강효상 의원의 기밀 유출이 국익을 훼손한 범죄인 이유는 외교에서 신뢰를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중앙일보는 5월 24일 <“한미정상 통화록 유출 파문한국 외교관 안 만난다>라는 기사에서 한국 스스로 통화록 유출을 발표하면서 주미대사관은 신뢰할 수 없는 상대가 된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조차도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더욱이 6월 말에는 북미 대화 재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강효상 의원과 자유한국당의 기밀 유출로 인한 외교 신뢰 악화가 한미정상회담 및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통화 내용을 보면 강효상 의원은 5월 9일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7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5월 25~28일 방일 직후 한국을 찾아달라고 직접 요청했다고 밝혔다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트럼프를 설득해 가면서까지 한미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한 취지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6월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남북철도 협력은남북관계가 다시 활발해지면가장 먼저가장 빠른 속도로 진전될 협력 분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은 여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우선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또한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미 협상이 가능한 조속히 재개되는 것이라며 남북 간에 본격적으로 평화와 공동번영의 과제를 진척시키기 위해서도 북미관계의 진전이 병행되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문재인 정부의 한계가 여전히 드러나지만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내비치는 걸 볼 수 있다. 5월 말 한미정상회담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6월 말에 이뤄지게 되었다자유한국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이 승인받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한미정상회담을 망치기 위해 위법을 불사하면서까지 훼방을 놓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보수언론도 자유한국당의 기밀 유출 공작에 발맞춰 논란에 부채질하고 있다한국경제는 5월 31일 “6월 한미정상회담이 다가오는데 양국의 신뢰 회복은 오리무중이다미국 워싱턴 정가에선 한국 정부가 북한과 친해지기 위해 미국을 이용한다는 의심이 파다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라고 보도했다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저지른 기밀 유출을 미국의 신뢰 상실을 거쳐친북으로 귀결시키는 과도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서훈-양정철 논란문재인 정부 옥죄기 위한 포석

 

보수세력의 판 깨기 행보는 인터넷매체 더팩트가 5월 27일 보도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21일 비밀회동을 했다고 단독 보도한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더팩트'는 디스패치가 분화해나간 모체이기도 하다.

 

보도가 나가자 자유한국당은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원장이 선거’ 논의를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청와대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5월 29일 “(선거 개입이라는강한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고 같은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당하다면 10분 단위로아니면 30분 단위라도 누구와 어떤 얘기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양정철 원장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미행과 잠복취재를 통해 일과 이후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취재 및 보도 경위에 여러 의문을 갖게 된다고 했다.

 

보수세력은 이번 보도를 통해 문재인 정부 측 인사와 측근들의 운신 폭을 축소하고자 했을 것이다사소한 개인적 만남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압박이다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목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해당 자리에는 김현경 MBC 기자도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기자의 동석은 이 자리에서 선거 논의가 없었다는 주장에 힘을 보태는 사실이기도 했다양정철 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기자와 함께 민주당 총선 대책을 짰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기 때문이다양정철 원장도 상식적으로 판단해줬으면 좋겠다며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 무슨 총선 얘기가 오갈 수 있겠느냐고 자유한국당에 반박했다.

 

김현경 기자는 제가 그 자리에 있어서 그날의 상황을 밝힐 수 있게 된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미 단행된 국정원 개혁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그밖에 한반도 정세와 오래전의 개인적인 인연 등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한참 갔다며 총선 얘기는 없었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속내를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5월 29일 “(동석한 기자는대북 담당 기자라며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고 위기가 닥치면북한 이슈를 키워 여론을 휩쓰는 북()쓸이 정치북풍 정치가 내년 선거에서 반복되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북풍은 원래 자유한국당이 주로 쓰는 수법이다남북 대결을 고조시켜 보수표심을 자극하는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자유한국당은 반대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현상을 '북풍'이라며 청와대를 공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북풍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결국 자유한국당은 남북관계 발전만은 원천 차단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자유한국당은 지금 정부와 여당이 총선 전에 남북관계를 발전시킬까 봐 우려스럽다고 우는 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세력이 판 깨기에 나선 이유

 

보수세력의 공세는 사뭇 다른 것 같아도 결국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 운신의 폭을 좁히고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데 집중되고 있다.

 

2018년에 보았듯 국민은 평화와 번영통일을 지향하는 남북 및 북미대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올해 들어 교착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겨우 숨통이 트인 상황이다.

 

교착 국면을 넘어 남북 및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관계 발전을 이룰 것이다그렇게 되면 자유한국당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자유한국당은 적어도 이번 총선까지는 대화가 재개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대화판 깨기에 목을 매고 있다.

 

그 결과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은 남북관계북미대화가 재개될 사소한 조짐이라도 보이면 가짜뉴스기밀 유출밀착감시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고 있다.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발버둥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을 비롯한 보수적폐세력이 자기 살아남겠다고 한반도 정세 발전을 위한 자리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행패를 그대로 둘 수 없다평화와 번영통일을 바라는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들고 적폐세력을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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