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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칼, 황교안까지 갈까

세월호 특별수사단 출범, 특수통·세월호 7시간 수사 검사 등으로 구성... 유족들 "성역없이 수사해야"

19.11.06 19:03l최종 업데이트 19.11.06 19:03l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회원들이 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세월호참사 전면 재수사와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회원들이 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세월호참사 전면 재수사와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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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검찰이 움직인다. 이번에는 세월호다.

6일 대검찰청은 세월호 참사 관련 수사의뢰 사건 등 수사를 위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단장 임관혁 안산지청장)'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수사단은 서울고검 청사에 꾸려지며 대검 반부패강력부가 지휘하고, 일선 지검 차장검사나 지청장급 검사를 포함해 검사 8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검찰은 2014년 참사 당시 경찰과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선사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선원들, 구조를 맡은 해경과 선박 검사 등을 진행한 한국선급 등을 대상으로 침몰 원인, 선박 안전관리, 사고 후 구조과정의 위법, 청해진해운 유병언 회장 일가 비리, 해운업계 비리 수사 등을 파헤쳤다. 그 결과 2014년 10월 6일 수사 종료 당시 399명을 입건, 154명을 구속했고 이준석 선장 등 선원과 최초 현장 구조에 나선 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 등은 유죄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독한 검사가 제대로...' 윤석열의 결단

 

하지만 침몰이나 부실구조의 원인, 박근혜 전 대통령 등 당시 정부 관계자의 잘못 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도 가라앉지 않았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은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로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2018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이 강제수사를 진행한 뒤에서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침실에 있었고, 참사 6시간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유족 등은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외쳐왔다. 지난 3월 29일 시작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24만 529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윤석열 총장은 이런 흐름을 지켜보며 특별수사단 출범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국정농단 특검 때부터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수사를 지휘해왔고, 지난 7월 국회 인사청문회와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사건이 접수되면 종합적으로 잘 검토해보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10월 31일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아래 2기 특조위)가 구조 문제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수사 의뢰 방침을 밝힌 것도 영향을 줬다(관련 기사 : 세월호 구조학생은 배로 옮기고, 헬기는 청장이...).

윤 총장은 '독하고 수사 많이 해본 사람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기조 아래 수사단 인선에도 직접 관여했다. 그 결과 특수통으로 유명한 임관혁 지청장이 단장으로 정해졌고, 지난해 '세월호 7시간 보고조작' 사건을 수사했던 용성진 영동지청장도 발탁됐다. 대검 관계자는 "몇 년이 지났어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대형참사였기 때문에 (검찰이) 집중적으로 해봐야 한다는 총장의 생각이 있었다"며 "검찰의 수사 역량이 높은 사람들을 모아서 전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의 책임, 어디까지 드러날까
 
추도사 하는 황교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전 인천광역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추모관앞 광장에서 엄수된 '세월호참사 일반인 희생자 5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추도사 하는 황교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전 인천광역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추모관앞 광장에서 엄수된 "세월호참사 일반인 희생자 5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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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단은 세월호 참사 당일 상황부터 침몰 원인, 구조와 수사 관련 의혹 등을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4월 2기 특조위가 수사 의뢰한 세월호 CCTV 영상녹화장치(DVR) 조작·은폐 의혹과 최근 발표한 구조 문제도 수사 범위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고발을 예고한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 등 전 정부 관계자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구조 관계자 등도 조사대상이 될 전망이다.

황교안 대표는 세월호 참사 때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 등과 함께 수사팀의 해경 기소를 막으려 했고, 국정농단 당시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등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했다는 의심을 줄곧 받아왔다. 다만 과거 검찰은 수사팀이 원칙대로 수사해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여전히 황 대표의 법적 책임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재 제1야당 대표인 만큼, 그의 세월호 참사 관련 책임이 어디까지 드러나냐에 따라 향후 정국이 또 한 번 출렁일 수 있다.

유족들은 수사단 출범을 환영하며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기무사 등 그야말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 "전면적인 재수사가 대대적이고 철저히 이루어져 진실을 한 조각도 남김없이 밝혀내고 책임자 전원의 처벌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검찰은 지난 시절 부실편파 수사의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고 304분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 "특수단, '박근혜 청와대' 수사가 우선... '물타기'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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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사업자 공동점검단 방북하겠다'...北에 2차 통지

(추가)통일부, "금강산관광 문제, 남북간 만남 통해 언제든지 논의될 수 있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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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6  09: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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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금강산관광 문제해결을 위해 당국과 사업자로 구성된 공동점검단을 구성해 방북하겠다는  뜻을 북측에 통지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정부는 5일 금강산관광 문제해결을 위해 당국과 사업자로 구성된 공동점검단을 구성해 방북하겠다는 뜻을 북측에 통지했다.

통일부는 6일 오전 "정부는 11.5(화) 오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앞으로 당국과 사업자 등이 포함된 공동점검단을 구성하여 방북할 것임을 통지하였다"고 밝혔다.

이로써 '시설물 철거'를 의제로 '문서교환 방식'으로 논의하자는 북측과 '시설물 철거 및 금강산관광 문제해결'이라는 의제를 직접 만나서 논의하자는 남측의 입장이 각각 두차례씩 전달된 셈이다.

지난달 25일 오전 북측이 문서교환 방식으로 시설물 철거를 논의하자는 통지문을 보냈으며, 이에 대해 28일  정부가 금강산관광 문제해결을 위한 당국간 실무회담 개최를 제의했으나 바로 다음 날 북측이 통일부와 현대아산 앞으로 각각 답신 통지문을 보내 시설 철거계획과 일정을 의제로 별도의 실무회담 없이 '문서교환방식'으로 합의하자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 2차 통지문은 현대아산과 한국관광공사, 금강산기업협회를 비롯한 금강산관광 사업자들과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후 북측 당국과 협의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으로 북측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6일 정례브리핑에서 "남과 북의 만남은 북측이 제기한 문제, 그리고 우리 측이 제기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그런 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며, 북한이 말한 문서교환 방식은 철거계획과 일정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우리는 합의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그리고 남북간의 만남을 통해서 논의를 해나가야 된다는 입장하에 계속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본적으로 금강산 관광 문제 관련해서 합의를 통해서 해야 된다는 원칙, 그리고 남북간의 만남을 통해서 해야 된다는 그런 방침 하에 진행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번 공동점검단 방북 같은 경우에도 북측이 제기한 문제, 또 우리 측이 제기한 문제 여러 가지를 논의해서 또 시설안전에 중점을 두고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안인 시설철거 문제와 관련해서는 " (우리 정부가 철거문제를) 아직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있지는 않은데, 기본적으로 그게 철거문제가 됐든 또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됐든 시설점검은 필수적인 절차"라고 하면서 "어쨌든 금강산 관광에 문제나 해법 마련 차원에서도 시설 안전검검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필수적인 절차로 이행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방북 일정과 기간은 북측과 구체적인 협의를 통해서 정할 계획이며, 이에 따라 통지문에도 구체적인 날짜를 정하지 않고 북측과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또 공동점검단에는 현대아산은 포함이 될 것이지만 다른 사업자의 포함여부는 좀 더 구체화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통지문의 성격상 앞으로 논의해야 할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는 않지만, 금강산 관광 문제 해법에 대해서는 "남북 간의 만남을 통해서 언제든지 논의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금강산 방문은 기본적으로 북측과 협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번 민간합동점검단의 방북 역시 북측과 협의를 통해서 정해지게 된다.

(추가-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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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원수, 늘리는 게 좋은가, 줄이는 게 좋은가?

국회원수, 늘리는 게 좋은가, 줄이는 게 좋은가?
 
 
 
김용택 | 2019-11-06 09:12:5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회의원 수는 많은 게 좋은가? 적은 게 좋은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개특위에서 의원정수를 놓고 힘겨루기가 시작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의원’이라는 말만 나오면 ‘특권’ ‘싸움질’을 연상할 만큼 불신이 ‘비싼 세비 받아먹고 노는 사람’을 연상해 현재보다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전 새누리당 이재오의원은 국회에 놀고먹는 국회의원이 100명쯤 된다면서 국회의원 수를 100명 정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당들 중에는 정의당만 유일하게 ‘현행 300석에서 10%범위 내에서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상태다.

<사진 출처 : 시사우리신문>

1948년 제헌의회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2000만 정도였는데, 국회의원은 200명이었다. 박정희정권 5공화국에서는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해 정원을 줄였다. 현재는 소선거구제로 뽑는 지역구 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의원 47명 전체의원은 300명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2019년 현재 5천만명 인구의 20대 국회의원 숫자는 300명이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100만 명이 넘는 정부조직, 400조에 달하는 국가예산에 대한 심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이 늘어나면 세비부담 증가로 인한 손실보다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의 누수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국민들의 정서는 우선 혈세가 아깝다는 정서다.

뉴질랜드는 의원 1인당 인구수는 3만7천258명(인구 447만1천명·의원 120명)이고, 독일은 13만7천299명 (인구 8천210만5천명·하원 의원 598명)이다. OCED 국가들은 평균 6만 2000명당 국회의원 1인으로 전체 3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31위로 최하위권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802석이 되어야 맞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국민의 수는 초대 국회의 9만5954명에서 점점 늘어 20대 국회에서는 17만2천명에 달하고 있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며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국회에 비해 3만명이나 늘어났다.

<국회의원 수 줄여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란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다. 그런데 평등을 말하면 색깔을 칠하는 세력들이 있다. 경제문제를 놓고도 효율, 경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성장이 먼저라는 사람이 있고 골고루 잘살면 생산율이 높아져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분배가 우선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형태를 놓고도 작은 정부가 좋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큰정부가 좋은 정부라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를 좋아 하는 사람들, 경쟁이나 효율 그리고 작은 정부가 좋다는 사람들은 경제논리로 무한경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정당한 경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자본의 논리, 신자유주의경제로 모든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국회의원 수 논쟁을 보면 과거 이명박정부가 주장하던 작은 정부와 박근혜정부가 주장하던 줄푸세 생각이 난다. 작은 정부라고 하면 놀고먹는 공무원이 많은데 숫자를 줄일수록 좋다는 게 이명박의 주장이었다. 박근혜도 세금을 줄이는 게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순진한 유권자들은 작은 정부나 줄푸세가 좋은 정책이라고 그들을 지지해 대통령에 당선 됐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자유라는 가치, 경쟁이니 효율이라는 가치, 그리고 작은 정부라는 포장은 자본의 다른 얼굴이다. 범법자가 판을 치는 세상에 경찰을 줄이면 안전한 세상이 되는가? 공무원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다. 작은 정부는 자본의 무한질주를 허용하자는 규제를 풀자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세금을 줄이는 것은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이 환영하는 정책 아닌가?

이명박정부나 박근혜정부는 시합전에 승부가 결정 난 이런 게임을 작은정부니 줄푸세로 포장해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 지는 양극화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은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산다. 국회의원 세비는 일반수당, 관리업무수당,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정액급식비 등 월정급여와 정근수당, 명절휴가비 등 상여금으로 구성되며 모두 합치면 올해 연기준 지급액은 1억5176만원으로 1인의 월평균 1100만원으로 월급쟁이 평균 소득의 3.75배 이상, 최저임금노동자의 6.52배 이상 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 : 국민일보>

국회의원들을 의사당 안에 149∼163㎡ 사무실을 무료로 이용하고, 차량 유류비로 매월 110만 원, 차량유지비로 매월 38만 8,000원을 지원받고, 선박, 항공, 철도 등을 사실상 무료로 이용하는가 하면 그들이 받는 세비는 1억 4,000만 원 정도다. 공무원 연금은 5년간 동결하면서 자기네들이 받는 세비는 해마다 인상해 지난해 보다 2.6% 올랐다. 국회를 팽개치고 장외투쟁을 하고 다녀도 이들에게는 무노동 무임금원칙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사무실 운영비나 통신요금, 소모품, 차량 유지비 등도 지원한다. 의원의 일을 도와줄 보좌진 7명을 두고 해외에 나갈 때 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다.

국회의원을 현재와 같은 특권계급으로 만들어 주권자들 위에 군림하는 수를 늘리는 것을 찬성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현재 국회의원들이 가진 특권과 세비를 대폭적으로 줄이고 주권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봉사자로서 국회의원 수는 당연히 늘려야 한다. 독일 연방하원의 숫자는 약 600명 정도로 인구 약 13만 명에 1명꼴인데 반해, 우리는 약 17만 명당 1명으로 독일에 비해 국회의원 수가 많이 부족한 편이다. 만약 우리가 독일의 기준에 맞추고자 한다면, 먼저 의원 정수를 최소한 70명 이상 확대해야 하고, 동시에 지역구는 줄이고 비례대표는 대폭 늘리는 조정이 필요하다. 내년 총선에서는 주권자를 졸로 아는 국회의원들을 제대로 물갈이 하는... 주권행사만 제대로 한다면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 행복추구권을 누리는 나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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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만 RCEP 타결 보도...실제론 타결된 적 없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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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11/06 10:41
  • 수정일
    2019/11/06 10: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고] RCEP, 타결인가, 연내 타결 무산인가?
2019.11.06 09:51:22
 

 

 

 

4일 밤 정부 발표로 갑자기 RCEP이 타결되었다는 기사가 국내 언론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정부 발표 몇 시간 전만 해도 연내 타결이 무산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왜 돌변했을까? 연내 타결 무산 보도는 공동성명서 초안을 입수한 AFP의 보도가 시작이었다. 공동성명서 초안에는 대부분의 시장 개방 협상이 끝났고 양자간 쟁점은 내년 2월까지 해소할 것이라는 문구(Most market access negotiations have been completed and the few outstanding bilateral issues will be resolved by Feb 2020)가 담겨 있었다. 이를 본 대부분의 언론은 RCEP 연내 타결 무산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언론도 이런 식의 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밤 산통부가 협상 타결을 발표하면서 국내 언론의 보도가 180도 바뀐다. 산통부는 보도참고자료에서 “협상 타결” 대신 “협정문 타결”이라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15개국간 타결”이란 표현을 썼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는 있지만, “타결”에 방점을 둔 정부 발표가 있자 언론들은 더 취재도 하지 않고 협상 타결로 방향을 틀었다. 이어서 장밋빛 평가가 쏟아진다. 세계 최대 규모의 FTA 타결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었다거나 신남방 정책이 날개를 달았다는 홍보가 대표적이다. 정부의 이런 홍보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먼저, 해외 언론들을 살펴보자. 국내 언론처럼 타결에 방점을 찍고 보도하는 예는 찾기 어렵다. 어제밤(11월 4일) 9시 54분발 일본 교도통신 기사 제목은 우리 언론과 정반대다: “RCEP 연내 타결을 단념했다는 공동성명”. 내용도 제목 그대로다. “[방콕 공동] 동아시아지역포괄적경제연합(RCEP) 수뇌회합은 4일,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목표로 했던 연내 타결을 단념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1시간쯤 뒤에 실린 요미우리 신문 온라인 기사도 “RCEP, 연내 타결 보류 … 인도는 참가하지 않기로”로 잡았다.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홍콩 언론(South China Morning Post)도 “7년이나 협상하고 아직도 타결못한 RCEP”을 제목으로 뽑았다. 
 
기사 검색을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뉴질랜드나 태국, 말레이시아 등 RCEP 협상 국가들 대부분의 언론들이 같은 논조의 기사를 내고 있다. 유독 한국만 장밋빛 타결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우리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과 또는 협상에 참여했던 통상교섭본부의 성과로 치장하려고 타결 불발보다 타결 성공 쪽으로 보도자료를 냈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의 받아쓰기다. 이번 보도를 보면서 대한민국에는 RCEP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기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협상이 5년을 넘기면서 ‘연내 타결’이 2017년부터 ‘연례 행사’가 되었지만, 타결 소식은 없었다. 올해는 해를 넘기는 더 이상 동력이 없어 RCEP 자체가 날아갈 판이였다. 그래서 올해 여름부터 그야말로 ‘초집중’ 협상을 이어갔다. 공식협상이 한달에 2번 열리는 초유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기를 쓰고도 인도가 빠지고 아직 미해결 쟁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협상 타결이라고 쓰기 어렵다. 정부도 협상 타결이라고 하기는 민망했던지 “협정문 타결”이라고 표현했다. “협정문 타결”은 공동성명서의 이 문장 “15 RCEP Participating Countries have concluded text-based negotiations for all 20 chapters”(RCEP 참여 15개구은 총 20 챕터에 대한 텍스트 기반 협상을 마쳤다.편집자)에서 나왔다. 여기서 text-based negotiations(텍스트 기반 협상.편집자)을 근거로 산통부는 “협정문 타결”이라고 발표했는데, 협상 타결도 아니고 협정문 타결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이런 식의 조약 타결 방식은 없다. 어떻게든 타결이란 말을 집어넣고 싶어 만든 일종의 꼼수다.
 
새로운 기회 창출? 
 
정부의 장밋빛 전망은 어떻게든 타결로 방향을 잡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RCEP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협정일까?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아태지역 6개국(한중일, 인도, 뉴질랜드, 호주), 총 16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우리를 뺀 15개국 중 우리나라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곳은 한군데다. 바로 일본이다. 그럼 정부 말대로 RCEP이 타결되면,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과 처음 FTA를 맺는 결과다. 과거사 문제와 경제보복 조치가 이어지는 지금 우리가 일본과 FTA를 체결한다고? 생뚱맞다. 이걸 가지고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신남방 정책이 날개를 달았다고 하지만, 아세안과 우리가 맺은 FTA는 12년 전인 2007년에 발효되었고 여러 차례 추가 개방을 했다. 아세안 회원국인 베트남과는 별도로 FTA까지 맺었다. 정부 발표만 봐도 한-아세안 FTA에 비해 RCEP에서 더 추가되는 것은 전자상거래와 지재권이다. 전자상거래를 두고, 정부는 “디지털 가치사슬 참여 촉진과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발전 가속화가 기대”된다고 하고, 지재권에 대해서는 “포괄적인 보호 규범 마련”, “저작권 보호 강화를 통해 RCEP 지역내 한류 콘텐츠의 안정적인 확산”을 기대치로 제시한다. 전자상거래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모순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안다. IT 기업들이 요구하는 ‘디지털 자유’와 정책 주권이 충돌하는 묘한 지점에 전자상거래 협정문이 자리잡고 있다. 지재권은 한-아세안 FTA에는 없던 것이 추가되긴 했지만, 트립스-플러스가 아닌 다음에야 별로 달라질 일도 없다. 한류 확산도 저작권 조항 몇개로 달라질 일이 아니다(한류를 저작권에 기대 확산하겠다는 것은 더 문제다).
 
협상문안의 공개와 통상민주화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일방적인 홍보와 치적 내세우기가 아니라 협정문안과 협상자료의 공개다.(FTA 협정문이 서명 전에 공개된 사례로 TPP를 들 수 있다. 미국이 빠지기 전 TPP는 협상 타결 1개월 뒤인 2015년 11월 5일 협정문이 1차 공개되었다. 1차 공개본은 법률문안 작업을 하기 전에 공개된 것이었고, 최종본을 2차 공개했다. 한미 FTA도 이와 비슷한 절차를 거쳐 공개되었다.필자) 이걸 공개해야 RCEP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가 가능하다. 그리고 정부가 우리 사회 구성원 중 누구의 이해를 주로 반영하는 협상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국익’을 내세워 기업들의 이해를 편향적으로 반영해 왔다는 점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이해당사자 의견 청취 내역만 봐도 드러난다.
 
2013년 12회, 2105년 3회, 2016년 2회에 걸쳐 철강, 화학, 기계, 자동차, 화학 등 산업계와 포럼을 했고, IT 분야, 유통업계, 제조업계 등과는 수도 없이 간단회를 해서 의견을 들었다. 이에 비해 노동자, 농민의 의견은 듣지 않았다. 시민단체 의견도 듣지 않겠다는 것을 겨우 설득해서 만났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통상관료들의 이런 편향적인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이제 이런 내역들도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통상 협상을 상품무역 중심의 산업적 시각이나 경제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좀 더 포괄적인 사회경제문화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평가의 틀이 문제라면 인권 영향 평가를 도입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 통상 협정의 인권 영향 평가는 유엔에서 오랫동안 방법론을 연구해 왔고, 유럽연합은 몇년 전부터 인권 영향 평가를 실제로 해 오고 있다. 
 
협정문안의 공개와 평가 방식의 혁신, 이것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통상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ilys123@pressian.com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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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공사’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최인기 빈민스토리(19)
  •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 승인 2019.11.05 13:44
  • 댓글 1
▲ 2003년 6월 청계천 복원공사에 항의하는 노점상

1.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 홍보에 주력하였다

▲ 표-4. 2003년 11월 28일~12월 16일까지 도시빈민 관련 보도현황 재구성 1)

청계천 복원사업의 시대적 명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서울시는 막강한 조직력을 이용해 복원공사 초기부터 ‘친환경 복원’ 그리고 ‘역사문화 복원’이라는 시대의 주요 의제를 접목해 복원공사의 필요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나갔다. 서울시는 다양한 언론 대중매체를 통해 청계천 투어와 같은 시민참여 프로그램, 하이서울 페스티벌과 같은 대 서울시민을 상대로 한 축제와 이벤트를 진행하며 복원 이후의 장밋빛 청사진을 입체적이고 화려하게 홍보해 나갔다. 또,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소설 박경리씨와 도올 김용옥 등 문화계, 학계 인사의 입을 통해 사업의 정당성을 알려 나가면서 일부 서울 환경단체까지 청계천 복원사업에 지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한편 정당한 문제제기를 한 시민사회단체에겐 ‘대책 없이 발목 잡는 집단’과 ‘청계천 복원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대안 없는 세력’으로 몰아붙였으며 영세상인·노점상·철거민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숨바꼭질 영업, 과격, 격렬 저항, 아수라장……’ 과 같은 단어를 동원해 집단이기주의 또는 과격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등 서울시는 압도적인 방법으로 여론 홍보 사업에 주력하였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서울시민과 이해당사자를 둘러싼 여론이었다. 서울시 내부 자료에 따르면 1년간 4,000회 가까운 여론 수렴과정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실체는 누굴 만났고, 어떠한 논의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공청회 1차례, 시장 면담 2차례, 부시장 2차례 만남 이 있었다고 하지만 내용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면담 역시 논의를 열어놓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정을 위한 하나의 절차나 압박용으로 마감 시한을 정해놓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이었다. 2005년 10월 1일 서울시 ‘새물맞이 축제’ 홍보비만으로 12억의 비용을 집행하였으며, 2박 3일 동안의 축제기간동안 33억에 가까운 예산안을 투입한 것으로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을 위하여 여론홍보에 얼마나 많은 열을 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2. 돈 잔치로 점철된 청계천은 친환경적인가?

청계천 복원은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처음 서울시는 3,600억 원을 집행하기로 했지만, 실제 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청계천이 유지되기 위해 많은 에너지와 돈이 들어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자연의 이미지를 지속해서 연출해내기 위해선, 150마력짜리 전기모터와 대형 변압기를 이용해 12만 톤의 물을 한강에서 끌어다 24시간, 365일 내내 수도꼭지로 흘려보내야 한다. 10년 전 기준으로 전기료는 매일 238만 원(연 8억 7천만 원)과 물값은 469만 원(연 17억 1445만 원)에 이르러, 매일 707만 원의 시민 세금이 물과 함께 그냥 흘러가고 있다. 물값, 전기료를 포함한 전체 유지관리비를 계산하면 연 70억 원이 될 것으로 서울시는 밝히고 있다. 한강의 20개 다리를 유지·관리하는 데 연 24억 원이 드는 것과 견준다면, 현재 5.4km 구간을 유지·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은 ‘돈의 힘으로 물이 흐르는’ 하천이 된 셈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재정적 투자가 과연 적절했고 효과적이었는지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

3. 정치적 희생물이 된 청계천

청계천 복원공사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치적 일정에 맞춰 2003년 7월부터 2005년까지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 도시를 둘러싼 정책이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으로 추진되어 임기 안에 서둘러 끝마치는 대표적인 선례가 되었다. 복원공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4시간 내내 작동해야 할 양수 시스템에서 사고가 발생하며 안전 문제가 대두되는 등 관리와 유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름철 집중 폭우 뒤에 하도를 원상 복귀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으며 특히 악취 문제는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녹조가 생기거나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는 등 생태적 기능도 심각해 ‘친환경 청계천’이 아니라 ‘뚜껑 없는 어항’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청계천의 성공적 복개에 쏟아졌던 국민적 찬사가, 전기동력을 이용해 상류 지천의 물을 저류 해 흘려보내고 시멘트로 덧칠된 구조물은 진정한 생태 기능이 갖추어지지 못했다는 인식으로 전환 되었다. 지속 가능하지 못한 복원은 미래세대에게 엄청난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 된다. 진정한 청계천 복원을 통해, 즉 서울에 사라진 자연의 생명을 되돌려내고, 묻힌 역사를 되찾아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시민들이 쾌적하면서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도시 실험의 기회, 즉 ‘서울을 진정 서울답게 만들 기회’를 박탈당한 것에 따른 비용이 가장 큰 것일 것이다. 그 비용은 모두 서울시민들이 떠안아야 할 과제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희생물이 된 청계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4. 청계천 시민사회 연대기구에 대한 약평

청계천 복원공사를 둘러싸고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여러 당사자의 문제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함께 연대했던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이런 이해당사자들의 문제를 집단이기주의와 이익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일정 정도 존재했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청계천 연대기구’를 구성하는 과정속에서 부딪혔던 미묘한 문제였다. 시민의 공적 문제와 생존권의 문제는 서로 공존해야 할 사안으로 청계천 복원 이후 이곳의 변화가 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떤 공간으로 재편되는가를 간과한 것이라 하겠다. 이에 노점상 철거민 조직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청계천 연대’에서 탈퇴하게 된다.

청계천 복원 사업이 추진되던 시기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던 때로 합의 기구를 통해 이해 당사자와 협력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외계층을 포함한 도시 빈민이 시민사회단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론기구가 뒷받침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저소득 도시빈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중단체와 정책적으로 협력 보완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 및 정치조직 간의 유기적인 사업이 일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해당사자 또는 주민들의 참여가 계획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보장되거나, 아래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공동으로 기획하며 논의와 합의를 통해 진행돼야 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를 가능케 하는 풍부한 경험과 토대가 미흡한 상태다.

5.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와 구둣방 할아버지의 죽음

2014년 3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의 오픈에 대해서도 언급이 필요한 대목이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나고 2006년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 및 대체 야구장 건립 추진계획이 나온 지 8여 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랜드마크 건설은 주변 노점상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5월 어버이날을 앞두고 평화시장 앞 노점상을 강제 철거하더니 같은 해 6월 신당동 노점상에 대한 단속이 있었다. 그리고 6월 25일에는 청계천 황학동 성동공업고등학교 옆 노점상을 철거했다. 수십년 노점에서 장사하던 노점상 20여 명의 물건이 트럭에 실려 가는 과정에서 중구청에서 고용한 용역에 의해 강탈당하고 훼손되었다. 이로 인해 노점상은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재산 피해를 입게 된다. 한두 명 노점상에 대한 정비가 아니라 황학동 노점상을 거의 싹쓸이하는 수준이었다. 강제 철거에 나선 원인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오픈 일정을 앞두고 있었고, 박정희 기념공원 건립을 위해 길목에 있는 성동공업고등학교 근처 노점상에 대한 단속을 위한 것이었다.

▲ 2014년 노점상 조병호 씨의 운명

한편 2014년은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고와 같은 사건이 연일 벌어지고 있던 시기다. 3월 7일 성동공업고등학교 옆 노점상이 사망하게 된다. 직접적인 사인은 폐렴이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80살인 조병호 씨는 한평생 구두를 꿰매고 수선해주는 대가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단둘이 사는 아내와 함께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왔다. 중구청에서 수차례 포크레인과 지게차 그리고 용역반을 동원해 장사 자리를 철거하고 싹 쓸어 갔다. 조병호 씨는 구둣방 노점을 운영하는 것 말고는 달리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빼앗긴 신발과 물건을 되찾아와 장사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12월 12일 중구청은 조병호 씨를 비롯한 중구 중앙시장 앞 20여 명의 노점상 자리 위에 화단을 설치해 버렸다. 그 후 노점상은 자신이 비용을 들여 화단이 있는 곳에 박스 형태의 노점 마차를 설치해 장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중구청에서는 이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무려 2014년 2월 한 달 동안 조병호 씨를 비롯하여 노점상에게 두 차례에 걸쳐 40만 원씩 총 8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였다. 그 후 조병호 씨는 생활고와 스트레스, 그리고 지병인 폐렴으로 국립의료원에 입원하였다가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점상의 운명을 무시한 행정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나고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파크’가 들어서면서도 마찰은 멈추지 않았다. 2015년 7월 30일 새벽 2시경 최창식 중구청장은 종종 디자인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각적으로 문제가 된다며 노점상을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피력했다. 청계천 황학동 성동공업고등학교 주변 노점상에 대해 다시 대대적인 행정대집행이 전개되었다. 중구청 직원과 용역반 50명은 지게차 5대를 동원하여 마차 20여 대를 부수고 4대를 압수해 갔다. 당시 한국 사회를 강타한 메르스 여파에 따른 소비침체로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당해왔던 노점상들은 대부분 노동능력이 없는 고령의 상인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들이었으나 ‘디자인화’ 사업은 이들에게 한 뼘의 공간도 허용하지 않았다.

6. 도시재생 속에 은폐된 개발

한국전쟁이 끝난 후 청계천 변에는 낡은 판잣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공구상가를 중심으로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면서 한국 산업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같은 시기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새마을 운동으로 고물들이 늘어나자 구제 물품이 청계천으로 모여들었다. 골동품과 헌책방들이 들어서면서 커다란 규모의 벼룩시장이 만들어졌다. 청계천 일대를 땀으로 일구어내며 한평생 살아왔던 사람들은 복개와 복원이 반복되고 개발이 전개될 때마다 낡거나 추한 것으로 찍혔고 광풍 같은 여론에 밀려나야 했다. 그들은 지금도 어디론가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최대 치적으로 손꼽히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과정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차례 새로운 서울시장이 등장했지만, 청계천을 황금알을 낳는 금싸라기 땅으로 둔갑시키겠다는 계획은 누구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청계천 복원공사는 서울시 주도의 사업이었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청계천과 을지로 개발사업은 다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형성되어온 산업 시대의 도시경제가 금융,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도심 공간 역시 변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은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제도 개악을 통해 용적률을 높여 주거나 주민을 분열시켜 자본의 이윤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점상 문제를 살펴보면서 청계천이란 공간까지 들여다봤다. 그리고 ‘도시재생사업’으로 은폐된 채 ‘세운 재정비촉진지구’라는 개발이 전개되고 있다. 세운상가 주변 한쪽은 요란한 굉음과 함께 굴착기가 고갯짓한다. 작은 공장 안에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지만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또 한쪽은 핫플레이스로 밤에는 불야성을 이루며 호프집에 사람이 넘쳐나고 축제공간으로 뒤바뀌고 있다. ‘고생하면 성공한다’는 말 대신 평생 일한 사람들에게 돌아온 대가는 삶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이 되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거짓이 되는 세상이다.

현재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계천 을지로 공구상가 지역의 개발 중단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더 늦지 않게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주민참여를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저항이 시쳇말로 ‘뼈를 때린다’는 말처럼 공간을 둘러싼 저항, 투쟁의 중요한 선례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본문 주석>

1) 빈민생존권 문제에 관한 최근 언론보도의 문제점 토론자료 중
- 2003년 12월 17일 이송지혜(민언련 모니터 부장) -

2) 미디어다움 - 6월 이명박 시장 인터뷰 -

3) 도시빈민에 대한 언론의 태도 - 민언련 주최 토론자료 최인기 -

4) 청계천 복원사업의 갈등관리 전략 - 성지은 -

5) 서울시 공공갈등관리연구 - 시정개발연구원 -

6) 국감자료에 따르면 해외광고를 비롯해 대교 현판, 포스터, 방송 생중계, 광고제작 등에 모두 12억950여만원이 지출됐다. 항목별로는 해외광고에 3억9300만원, 중계 및 일간지·잡지 광고 4억2000여만원, 홍보탑(4개) 1489만원, 포스터 950만원 등이다. 여기에는 또 대교 현판(20개), 배너기(1500개), 리플렛(7만개), 가이드맵(14만개), 프로그램지(10만개) 등의 비용도 포함된다. - 2005년 10월 7일 한겨레 -

7) 자연을 거세한 청계천 복원 - 조명래 -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minplusnews@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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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남북 군사 합의 역행하는 대규모 군비 증강 중단해야”

참여연대, “남북 군사 합의 역행하는 대규모 군비 증강 중단해야”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11/06 [08:09]  최종편집: ⓒ 자주시보
 
 

본격적인 내년도 예산 심사를 앞두고 참여연대가 정부의 국방 예산안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행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5일 2020년 국방 예산 주요 문제 사업에 대한 의견서를 발행하고 남북 군사합의에 역행하고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태롭게 하는 대규모 군비 증강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2020년 국방 예산안은 지난해보다 7.4% 증가한 501,527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며주로 무기 도입 예산인 방위력개선비는 전년 대비 8.6% 증가한 약 167,000억 원으로 국방 예산 중 무려 33.3%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문재인 정부의 방위력 개선비 평균 증가율은 11.0%지난 9년 간 평균 증가율 5.3%의 약 2배에 달한다.

 

▲ 2020년 국방 예산안(단위: 억 원)출처 : 국방부, 보도자료 <2020년 국방예산, 50조 원 시대 개막>, 2019.8.29 / 재인용 : 참여연대     © 편집국

 

참여연대는 2020년 국방 예산안의 가장 큰 문제점을 무기 체계 획득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추진해 온 3축 체계(킬 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구축 사업을 ·WMD 위협 대응’ 관련 사업으로 이름만 변경하여 그대로 추진하고 있으며관련 예산을 2016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액된 62,149(전년 대비 약 20% 증가)이나 편성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3축 체계 예산은 2016년 31,814억 원, 2017년 38,119억 원, 2018년 4조 3,628억 원, 2019년 5조 691억 원 등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2020년 예산 62,149억 원은 2016년에 비해선 95% 증가한 수치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군비 증강은 지난해 남북이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군사적 긴장 완화군사적 신뢰 구축에 따른 단계적 군축 등에 합의한 것에 역행하는 것이며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어렵게 만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한국의 무기도입이 미국산에 편중되어 있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한국은 지난 13년 동안 전 세계 국가 중 세 번째로 많이 미국산 무기를 구매한 나라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전체 해외 무기 구매액의 약 78%인 358,345억 원을 미국산 무기 구매에 사용했다게다가 지난 9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향후 3년 미국산 무기 구매 계획까지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미국산 무기 편중에 따라 한국군의 무기 체계와 군사 전략이 미국의 무기 체계와 군사 전략에 심각하게 종속되어 있다며이러한 상황이 남북간의 군비 통제나 점진적 군축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며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과 안보 딜레마를 심화하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국회를 향해 공격적인 군사전략과 대북 공세적 작전 개념한국형 3축 체계 구축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관련 예산을 삭감할 것대표적인 공격형 무기인 F-35A 도입을 전면 재검토하고 F-35A 추가 도입과 F-35B 도입 검토를 즉각 중단할 것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은 국회 내 검증위원회를 설치해 사업 타당성 및 기술 개발 현황 등을 철저히 점검할 것F-35B 도입을 위한 경항공모함 건조 사업 관련 선행 연구 및 기술 개발 예산을 전액 삭감할 것제주를 군사기지화하고 동북아 군비경쟁의 격전지로 전락시킬 남부탐색구조부대 창설에 관한 선행 연구 용역 예산을 전액 삭감할 것비대한 병력과 과도한 장교 숫자 감축 등 군 구조 개혁 우선 요구 등에 나설 것 등을 촉구했다.

 

아울러 참여연대는 국방 예산안이 국방부가 발표하는 보도자료나 홍보자료전력운영비 예산 외에 구체적인 자료가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특히 무기 획득 사업으로 구성된 방위사업청 예산안은 관련된 모든 자료가 일체 비공개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의견서를 국회 국방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위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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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역사는 제대로 기록돼야 한다”

<통일뉴스 창간 기념 인터뷰> 제1회 조용수언론상 수상자 김자동
김치관/조정훈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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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5  16: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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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조용수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된 민족일보 기자 출신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과 4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기념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상을 받게 된다는 게 부끄럽지만 기쁜 일이다.”

통일뉴스 창간 19주년 기념식과 더불어 진행될 ‘제1회 조용수언론상’ 시상식 수상자로 선정된 민족일보 기자 출신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은 구순을 넘겼지만 소년스런 부끄러움을 내세웠다.

조용수언론상심사위원회는 “다방면으로 수상 후보자를 추천받고 물색해 제1회 조용수 언론상 수상자로 김자동 회장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며 “만시지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고 오히려 죄송함을 표했다.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찾아가 만난 김자동 회장은 귀가 어두운 것을 빼곤 건강한 모습이었다. 오랜 벗 임재경 한겨레신문 초대 부사장이 통역사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김자동 회장과의 인터뷰에는 김 회장의 오랜 벗 임재경 한겨레신분 초대 부사장(오른쪽)이 배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김자동 선생은 “조용수 사장은 사실 나이가 나보다 한두 살 밑”이라며 “박정희가 자기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려고 이 사람도 빨갱이, 저 사람도 빨갱이라고 해서 죽였다고. 그때 언론계에서 대표된 게 조용수 사장이야”라고 먼저 조용수 사장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1961년 4.19 공간에서 민족일보를 창간한 조용수(1930-1961) 사장은 5.16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1961년 12월 21일, 31세의 꽃다운 나이에 사형이 집행됐다. 민족일보(1961.2.13.~1961.5.19.)의 폐간과 언론사주의 처형은 역사를 찾아보기 힘든 일로,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심에서 무죄를 판결했다.

김자동 선생은 “신문은 그때 분위기에 맞춰서도 그렇고 상당히 제일 진보적인 신문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할 소리 하고 그랬다”면서도 “별거 아닌데 군사깡패들이 와서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일보의 사시(社是)나 논조가 지금 기준에 비추어 보면 보편적 민주주의나 평화통일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

고승우 심사위원장은 “아마 민족일보 기자를 지내고 현재까지 민족일보의 사시내지 정신을 지키며 사신 분은 김자동 회장이 거의 유일한 분이라 심사위원 모두가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민족일보는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근로 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양단된 조국의 통일을 절규하는 신문’을 사시로 내걸고 창간돼 가판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 5.16군사쿠데타 직후인 5월 19일 92호를 끝으로 폐간당했다.

<선정 이유>

조용수언론상 심사위원회는 제1회 수상자로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을 선정했습니다. 민족일보기념사업회는 2019년 조용수언론상을 제정하고, 심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다방면으로 수상 후보자를 추천받고 물색해 제1회 조용수 언론상 수상자로 김자동 회장을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만시시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아마 민족일보 기자를 지내고 현재까지 민족일보의 사시(社是)내지 정신을 지키며 사신 분은 김자동 회장이 거의 유일한 분이라 심사위원 모두가 의견의 일치를 봤습니다.

조용수 언론상 선정 기준은 <민족일보>와 조용수의 정신입니다. 그것은 바로 <민족일보>의 사시에 오롯이 박혀있습니다. ‘민족의 진로를 가르키는 신문, 근로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조국의 통일을 절규하는 신문’ 그것입니다.

<조선일보>에서 언론계 활동을 시작한 김자동 회장님은 61년 <민족일보> 사건을 기화로 언론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한국전쟁의 기원>과 <모택동 전기> 등 <민족일보> 사시처럼 민족의 진로를 가르키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특히 1997년에 직접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고, 초대 위원장으로 민족일보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 섰습니다.아무도 <민족일보>의 진실과 비극을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당시 그의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민족일보 사건은 영원히 묻혔을지 모릅니다.

김 회장은 1987년 헌법에 임시정부 법통이 명시되자, 임시정부 독립정신의 의미를 확산시키기 위해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에 매진했습니다. 이 역시 <민족일보>가 창간 후 첫 번째 사업으로 시행한 독립운동가 생활을 돕는 사업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의 노력으로 드디어 임정기념관이 건립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김 회장은 민주화 역행 국면에서, 특히 지난 촛불혁명의 중요한 시기에서 올바른 민주화의 길을 지도했습니다. 김 회장은 구순이 넘었지만, 자서전의 제목과 같이 <영원한 임정소년>이었으며 <영원한 민족일보 기자>였습니다. 그가 <민족일보>에 기여한 공로를 따져볼 때 이 상이 오히려 작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다시 한번 김자동 회장께 제1회 조용수언론상을 드리게 된 것을 축하드리며 아무쪼록 건강하시 빕니다.

2019. 11. 6.

조용수언론상 심사위원장 고승우(민주언론운동연합회 전 이사장)
                  심사위원 원희복(민족일보기념사업회장)
                  심사위원 이계환(통일뉴스 발행인)

김자동 선생은 “4.19후 분위기는 평화통일이 고조된 분위기야. 민족일보는 그 분위기에 맞추기도 하고 상당히 평화통일을 주장했다”며 “자기(조용수)가 과거에 우파 관계한 사람인데, 군사정권이 왔다고 해서 큰 해가 오리라고 생각 안 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는데 그런 위험성을 안 느꼈다”고 안타까워했다.

   
▲ 2007년 통일뉴스 창간 7주년 기념식에서 민족일보 관계자들이 통일뉴스 기자들에게 민족일보 영인본을 전달하며 민족일보 복간운동을 마감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창간 11주년 기념식은 '민족일보 조용수 50주기 기념 학술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선생과 지금은 고인이 된 민족일보 기자 출신 전무배 선생 등과 민족일보 복간 운동도 한때 추진했던 선생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경제적 여유도 없고, 신문사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한겨레신문이 잘하고 있고, 경향신문도 괜찮은 신문”이라고 칭찬했다.

김자동 선생과 조용준, 전무배 선생 등은 2007년 통일뉴스 창간 7주년 기념행사에서 ‘민족일보의 얼을 통일뉴스가 이어 받는다’고 공포하고 민족일보 영인본을 통일뉴스 기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복간 추진운동을 마무리지은 바 있다.

김자동 선생은 1928년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탄생했다.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과 부친 김의한 선생과 모친 정정화 여사 모두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2004년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생은 “평양 갔을 때 분위기가 연례 행사로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었다. 이명박이 와서 완전히 남북관계가 끊겨서 지금까지 안 된다”며 “현재 남북관계가 문재인 대통령 오고 나서 어떻든 조금씩 좋아지는 편이니까 잘하면 금년에 되리라고 했는데 어렵고, 내년에는 가능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  2006년 평양 룡성구역 소재 재북인사의묘를 찾아 선친 김의한 묘를 처음으로 참배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선생은 2006년 재북애국지사후손 성묘단을 조직해 평양을 방문해 선친 김의한이 묻혀 있는 재북인사묘역을 참배한 바 있지만 딱 한 차례로 끝나고 말았다.

고승우 심사위원장은 “김 회장은 1987년 헌법에 임시정부 법통이 명시되자, 임시정부 독립정신의 의미를 확산시키기 위해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에 매진했다”며 “김 회장의 노력으로 드디어 임정기념관이 건립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선생은 “지금은 사실 친일파 앞잡이 하던 사람은 다 죽었다”며 “인적 청산 문제는 지금 논의할 수 없고, 단지 역사는 제대로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람은 왜놈 앞잡이, 이 사람은 독립운동을 위해, 항일투쟁을 위해 노력하고, 이런 것을 계속 밝혀나가야 한다”는 것.

   
▲ 김자동 회장은 통일 보다는 우선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며 통일뉴스의 분투를 당부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받기로 한 통일뉴스가 창간 19년을 맞았다고 덕담 한마디를 부탁하자 선생은 “생전에 통일이 되는 걸 보려고 오래 살았는데 지금은 그런 기대를 안 한다”며 “우선 평화가 정착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 통일뉴스가 계속 분투해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제1회 조용수언론인상은 6일 오후 6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통일뉴스 창간 19주년 기념식과 함께 진행되며, 원희복 (사)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시상할 예정이다.

<수상자 김자동>

   
▲ 김자동 회장은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외길을 걸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1928년 상하이 임정청사 인근 아이런리에서 독립운동가인 부친 김의한 선생과 모친 정정화 여사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김구, 이동녕, 이시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품에서 임시정부와 함께 자랐다.

1946년 조국에 귀국한 필자는 보성중학과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조선일보》와 《민족일보》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사형당하는 것을 겪으며 언론계를 떠났다. 쿠데타 직후 민주공화당이 요직을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군사정권에 협조하지 않은 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민주화운동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1980년대에 브루스 커밍스의《한국전쟁의 기원》,《모택동전기》(한수인 저) 등을 번역하면서 표출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새롭게 탄생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 기술되면서 저자는 임시정부의 의의를 교육하고 사료를 발굴하는 일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역대정부의 무성의로 여의치 않았다. 이 사업을 민간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2004년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든 저자와 유가족 등의 노력으로《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명예를 회복했다. 2011년 《한겨레》 ‘길을 찾아서’란에 ‘임정의 품 안에서’라는 제목의 글을 83회 연재했다.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저자는 지금도 국제관계에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다.

(제공 - 민족일보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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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평화경제실현·DMZ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원한다면...

‘유일한’ 돌파구는 문재인 정부의 결단뿐이다
  • 김광수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승인 2019.11.04 19:37
  • 댓글 0
▲ 노동신문은 10월 23일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을 현지지도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사진 : 노동신문 캡처]

오늘(11/4) 국정원의 언급이 있었다. 북미정상회담이 12월중으로 열린다고. 사실이라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남북문제는 여전하다. 상기해보면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 포진해있었다. 이른바 레드 플래그(Red Flag)현상을 일컫고, 불행히도 우린(남측정부) 이를 포착하지 못했다.

지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이 미국에게 한 말을 우리에게도(남측에게도) 똑같이 적용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말이다.

다름 아닌, 북이 미국을 향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쳤다고 했고, 똑같은 문제의식으로 지금의 남북관계를 대입해보면 대북제재 안에서도 충분히 민족내부 문제인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은 아무런 ‘조건 없이’ 이행할 수 있는 그런 문제였는데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그 타이밍을 놓쳐 이 지경까지 온 엄중한 결과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 스스로는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엄중한 위기의식이 느껴져야 한다는 점이고, 직설적으로는 금강산 관광(나아간다면 개성공단 재가동)이 이제는 영원히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발언-금강산 내 남측 시설물 철거-으로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엄중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동시적으로 위 현실이 실제 발생한다면 통미봉남(通美封南)은 불을 보듯 뻔하고, 남북관계도 이 정부 들어서서 3번의 정상회담을 이뤄냈지만 결과는 남북관계 단절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의 결과가 만들어지고, 이는 지난 이명박·박근혜로 상징되는 적폐정부보다도 더 못한 최악의 남북관계와 똑같다.

이렇듯 지금의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자,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적 성격이 강하다.

해서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나름 잘 나가던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최악의 상황까지 직면해 있어 말 그대로 메가톤급 태풍이 곧 들이닥칠 상황이다. 아니, 이미 들이닥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정치에는 all or nothing이 없다지만, 분명 지금의 남북관계는 현 정부의 탓이 너무나도 크다. 북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가 너무나도 주권국가로서의 당당함과 촛불정부로서의 사명에도 충실하지 못했음을 성찰해라, 그런 말이다.

다시 말해 계속 현재진행(~ing)형으로 존재해야 될 남북도로와 철도연결 사업은 착공식이 열린 지 1년이 다 됐지만 착공은 요원하고, 동맹국가 미국과 조금만 불편함을 감내해내고자 했다면 충분히 가능했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재개를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상황이 돼버렸다. 참다못한 그 한계가 남측의 시설조차 다 들어내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북(北)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록 하나의 계기가 완전한 봄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봄 전령사와 같은 ‘제비’ 역할을 예술단 교환 공연을 통해, 축구경기 등 스포츠 교류를 통해, 학술문화 행사를 통해, 계급계층별 인적교류를 통해, 인도적 지원과 교류를 통해 곳곳의 봄 전령사들이 지금쯤은 수시로 넘나들면서 남북교류와 분단극복에 대한 의지들이 모아져야 했건만, 역설적이게도 상황은 오래된 과거로 기억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고 이 상황은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장 최근의 남북 축구가 그 현주소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응원단도 관중도 없이 남북 선수들만이 거친 몸싸움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남북의 현주소는 안타깝게도 가장 차가운 저점 고도를 지나가려 한다. 하지만, 본질은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데 있다.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에게서는 위기감과 그 위기감에 대한 극복의지가 전혀 없다. 이미 2번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고, 3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획기적인 남북관계 진전’을 약속했지만, 지금의 그 결과는 북은 북대로 신형 전술유도무기들과 초대형 방사포를 개발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대로 미국으로부터 신형 미국 무기들을 사들이는 등 여전히 한반도 긴장고조 유발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른바 3번의 남북정상회담 결과가 고작 위와 같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함도, 또 ‘세기적’·‘민족사적’ 의미까지 부여했던 남북정상회담이 분명 벌써부터 ‘오래된 과거’로만 기억될 조루증을 소망한 것도,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런 정상 간의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반드시 했어야만 했고, 합의 이후 서로 눈치 보며 기 싸움만 하는 그런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노력이 너무나도 가열 차게 진행되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하나, 부처도 보이지 않는다.

즉 합의를 했는데도, 그것도 최고 지도자들끼리의 합의였음에도 그것조차도 이행할 수 없는 그런 기이한 현상, 이른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그런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그런 노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나아간다면 지금의 이 상황까지 온 것에 대해 과연 이 정부는 그 근본이유에 대해 정말 고뇌하고 있는지를 의심될 수밖에 없는, 마치 정상회담을 필요에 따라 정치적 이벤트 행사하듯 하고, 그 뒤는 내 몰라라하는 그런 정치적 행위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고, 문제제기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남북관계 국면전환을 위한 정치적 상상력은 전혀 불가능했고, 고작 한다는 것이 뭔가 사건이 터지고 나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실무대책과 ‘자그마한’ 제안들이 난무한다.

실체적으로는 위기가 곧 현실화될 태풍급인데도, 고작 상상해낸다는 것 자체가 문서교환협의에 실무회담을 역제안하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국무부 부장관에 지명되어 북·미 협상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희망만 낙관하고 있다.

정상회담 약속전반을 점검하고 이행할 범부처별 협동대책팀을 꾸려 여기서 이행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렇게 정해진 우선순위를 갖고 북과 협의하고 협상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또 그 과정에서 분단 70여 년간 오직 한 길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민간평화통일세력들과 협업하고 협동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했는데, 이 정부는 그러하질 못했다.

여전히 민간통일·평화세력은 귀찮고, 적대시만 되고, 범부처 간 통합의 협업장치는 가동되지 않는다.

좀 더 구체화해보자.

앞서 얘기했듯이 본질은 김정은 위원장의 금강산 내 남측시설물 당장 철거지시와 북의 통일부 제안인 당국자 간 실무회담 제의거부가 지금의 남북관계를 말 그대로 풍전등화임을 그대로 안내해주고 있는데, 이 본질적 함의를 전혀 볼 생각은 않고 계속 표월지(標月指,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으나 손가락을 보느라고 달은 보지 못한다는 뜻, 편집자주)만 해댄다는데 있다.

즉 남북관계가 지난 적폐정부보다 더 후퇴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도, 이는 분단 이후 우리 민족발전사에 있어 유례없는 (한 정권아래에서, 그것도 임기 초반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음에도 왜 이런 상황까지 발생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데 그런 고민과 생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상주와 고인에 대한 ‘아름다운’ 예의 차원에서 온 조의문조차 정치차원으로 해석해내는 그런 천박한 인식들이 지금의 남북관계를 있게 한 주범인지도 모른다는 성찰이 필요하나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위에서 잠시 언급하고 있지만, 분명 지금의 남북관계는 선미후남(先美後南)을 넘어 점차적으로는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까지 이동시켜 나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남측 시설물 철거 지시’와 이후 통일부의 금강산 관광문제해결을 위한 실무회담 제의 단 하루 만에 기존방식인 서면교환방식으로 답변한 북의 통지문은 적어도 남측정부의 태도변화 없이는 앞으로는 그 어떠한 남북 간 대화는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그리고 그 징후는 이미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부터 나타났으나 그런 위기신호를 읽을 줄도 몰랐고, 그러다 보니 위기의 남북관계를 다루는 이해방식과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비례해 상황은 재차 말하지만 심각해도 너무나도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결과도 대통령께서 하시는 말씀마다, 예로 들면 ‘평화경제’다, ‘DMZ생태평화공원 조성’언급에 대해 북이 왜 그렇게 시큰둥한 반응과 함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붙였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코앞에 놓여있고, 당장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도 이행하지 못하는데, 또 약속한 정상 간의 선언도 이행하지 못하는데 웬 뜬구름 잡느냐고 하는 그런 이의제기였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이 위기는 절대 임시방편적인 위기관리차원만으로는 풀릴 수 없다.

시간을 역산해보더라도 왜 이런 위기상황까지 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북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전달된 일관된 메시지는 남에게는 민족자주와 자결원칙을, 미에게는 신뢰관계 회복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에서 남과 미 모두 이 메시지를 잘 읽어낼 생각은 없이 남은 남북관계문제를 ‘맹목적’ 한미동맹과 한미워킹그룹에 의해, 미는 신뢰관계 회복문제를 트럼프 자신의 재선전략과 딥 스테이트(Deep State)세력들에 ‘깊은’ 음모에 의해 판판히 좌절되는 오류가 작동했다.

그러므로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가 한미워킹그룹을 넘어설 수 있느냐(그 뜻은 한미워킹그룹을 해체하거나 혹은 설득,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배짱을 가질 수 있느냐의 뜻이다.)의 문제였고, 북미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로만 보려는 시각과 딥 스테이트세력을 극복할 수 있느냐하는 그런 문제였으나, 남의 문재인 정부는 아예 그럴 생각이 없고, 그나마 미 트럼프 대통령은 노력하는 편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규정해주고 있다.

그 전제로 계속 반복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세부적인 성찰지점을 한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왜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적폐정부 때보다도 비정치적, 인도적 지원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 한 예로 타미플루 5만 개(약 20만 명분)도 한미워킹그룹에 의해 막혔고, 박병석 의원이 이번 국감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김연철 장관이 취임 직후 독일 방문단과 함께 고성 통일전망대를 방문하려고 했는데도 유엔사가 통과를 불허해서 가지 못했고, 또 지난해 8월에는 남북 경의선 철도 공동 조사를 위해서 북측 구간을 조사하기로 했음에도 유엔사가 남측 인원과 열차의 MDL 통행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무산되는 등 한미워킹그룹과 유엔사(한미동맹)는 판판히 남북관계를 가로막았다.

이렇게 북으로 하여금, 남측은 민족내부의 남북문제조차도 미국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만들었다.

둘째, 3차례 남북정상회담과 군사 분야 부속합의서를 채택했음에도 순수한 인도적 문제라 할 수 있는(이 말뜻은 유엔 대북제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이다.) 이산가족 상봉 등을 8.15때나 설날·추석 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전략자산 무기 국내반입 및 F-35A 등 최첨단 무기구매,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실시되는 등 그 약속불이행과 되려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고조가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는 문재인정부가 마음만 먹었으면 미국의 대북제재가 작동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이었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가 김정은 위원장의 남측시설물 철거지시 이후 부랴부랴 금강산 개별관광은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며 이제라도 한시바삐 만나서 ‘창의적 해법’을 논의하자고 역제의 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는데, 이 또한 북의 반응이 알려지고 있듯이 그럼 이제까지 뭐했느냐이다. 남측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까지 왔다는 말이다.

넷째,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발언 중에서도 ‘합의’ 발언에 무게를 두면서 통일부가 ‘서면교환’방식이 아닌, 금강산관광 문제 해결을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를 통보했지만, 하루만에(10월 29일) 되돌아온 답신통지문에서 서면교환방식을 재차 알려왔음은 그 어떤 시그널이었을까? 정말 진지하게 해석해내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한 세 가지가 읽혀진다. ① 진정성문제에 대한 북의 의심문제이다. 근거는 김정은 위원장의 철거지시 이전까지는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과 워킹그룹에 숨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다가 부랴부랴 놀라 그때서야 ‘개인 관광 가능’ 언급과 ‘창의적 해법’ 운운해대니 아무래도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② ①의 연장선상에서 통일부가 제안한 창의적 해법 그런 것 집어치우고 철거에 국한한 실무협의만 하자는 그런 시그널이다. 그것도 직접대면방식이 아닌, 문서교환방식으로 말이다. 이른바 적나라한 통미봉남의 실체이다. ③ 그리고 결국 ②의 문제의식은 당분간 남북대화는 절대 없고,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북협력사업 우선방식보다는 금강산국제관광국이 만들어진데서 확인받듯이 독자사업방식으로 우선하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말이다.

그럼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언제쯤에 남북 간 직접대면방식의 남북대화가 이뤄질 것인가 하는 그런 문제인데, 이에 대한 북의 기준과 원칙은 매우 분명하며 이미 남측에 확인해줬다.

김성 대사의 UN연설(9월 30일)에서 남북관계 개선문제와 관련해 "남조선 당국의 사대적 본성과 민족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 책임을 다할 때에만 이뤄질 수 있다"고 한데서 확인받는다.

해석하자면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는 민족자주와 자결원칙에 입각한 민족공조에 나서라는 말이고,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에서 확인받는 것은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제발 이행하라는 것이다.

이를 풀어쓰면 본인이 지난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 왜 뿔났나?”(2019.10.26.)에서 밝히고 있듯이 첫째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이 하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을 해소하라는 말이다. 이름하여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해 남북 간 정상이 합의한 선언이행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굿 아이디어는 가칭)남북정상회담 선언이행을 위한 남북 간 공동TF 구성(강조, 필자)을 제안하고, 끈질기게 그 진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

둘째는, 4.27판문점선언의 부속합의서인 군사분야 부속합의서에 따라 남북 간에 조성되어 있는 군사적 긴장과 군비확장문제를 완화하고 축소할 수 있는 그런 실질적이고도 실효적 조치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름 하여 한미합동군사훈련 완전중지(백번 양보하여 정부의 논리대로 작전권 이양으로 인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정말로 최소한 꼭 필요하다면 이 문제는 북과 충분히 협의하여 북이 오해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 후 시행하는 것이 맞지, 그냥 한미동맹의 논리에 포획돼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운운하면서 밀어붙여서는 절대 북을 설득시키지 못한다.)라는 최소한의 신뢰회복 장치를 마련하고, F-35A 등 최신 공격형 무기 구입과 전략자산 무기 국내반입 등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늦었지만, 그런 최소한의 시그널이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도 위 두 가지 문제를 or적 방식이 아니라 and적 방식으로 결합해만 반드시 이행될 수 있음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드리워진 위기의 남북관계 먹구름을 걷어치우고, 정말로 평화경제실현· DMZ생태평화공원 조성을 하고 싶으면 말이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외 다수가 있다.

 

 

김광수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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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의 가장 성공적인 식민지 국가

‘미국유사시의 역할론’은 미국의 철저한 식민지국가라는 징표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11/05 [02:24]
 

 

 

미국이 세계도처에서 제국주의 정책을 추구한 이래로 가장 성공적인 경우가 바로 한국에서 친미정권을 수립한 것이라는 사실이 최근의 한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요즘에 고개를 드는 ‘미국유사시 한국의 역할론’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소위 '연합위기관리 각서'의 범위를 ‘미국의 유사시’까지 넓히는 문제가 한-미 군 당국 협의에서 다뤄진 가운데, 워싱턴의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군의 지원 범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워싱턴의 군사 전문가들은 동맹으로서 한국군의 역할 범위가 넓어져야 할 때가 됐다는데 보다 무게를 두고 70년 가까이 지속돼온 동맹이 한국의 달라진 국력과 새로운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회견에서 이를 “동맹의 자연스러운 성숙”으로 표현하면서, 동맹은 북의 위협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동맹의 성숙’을 한국과 직접 연관이 없는 국외 분쟁에도 한국군이 지원해야 한다는, 사실상 한미연합사의 대응 범위를 한반도를 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한국이 아프가니스탄 등 한반도를 벗어난 지역에서 미국을 지원해야할 조약상의 의무를 지지는 않지만 그동안 한국민과 한국군은 역내를 벗어나 전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 활동을 지원해왔으며 베트남전이 대표적인 예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재 두 나라의 군사 지원 의무는 상호방위조약의 틀안에 매여 있지만, 앞서 역외에서 이뤄진 협력이야말로 동맹을 각인하는 특징이 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같은 욕심은 그야말로 가소로운 작당이 아닐수 없다. 같은 동족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주하고있는 마당에 이제는 또다시 국경을 넘어 자신들의 점령욕구를 채우는 일에 한국군이라는 용병집단을 투입할 광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상이 나오는 것 자체가 바로 한국에 대한 모독이고, 저들이 만든 식민지 하수인쯤으로 본다는 반증이 아닐수 없다

 
한국은 미국의 가장 성공한 식민지형 ‘국가모델’이다. 겉으로는 동맹이라는 형태를 띄고 마치 상대방이 어떤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으나 사실은 빈깡통 그 자체이다. 죽으라면 죽고, 기라면 기는 시늉을 해야하는 것이 오늘날의 한미관계이다. 멀리 이국땅 베트남에까지 따라가 무자비한 정복전쟁에 총알받이 돌격대가 된 사실은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 용병국가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런 미국이 또 다시 저들의 야욕을 달성하기위해 한국군이라는 허수아비 민족군대를 이용할 구상을 오늘날에도 만지작 거리고있는 것이다. 
 
한국군 내부에는 민족의식을 가진 군인, 자의식을 가진 집단이 거의 없다. 만약 제정신을 가진 민족군대라면 한마디로 무례하기 짝이없는 미국의 요구를 단 칼에 거절해야 한다. 그들은 그러나 장막뒤에 숨어서 나라를 팔아먹는 을사조약 매국노들처럼 나라의 군사주권을 하나씩 하나씩 팔아먹으면서 오늘날까지 더러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은 그 존립자체가 미국이 만들어놓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미국식 군사조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군과 정부가 미국대하기를 상전모시듯이 하는 것은 이같은 본질적인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같은 한국군에게 민족적 자존심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국가’라는 사실은 비단 군부의 종속관계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 미국은 남과 북의 소망인 개성공단의 재개와 금강산 관광 재개같은 남북 동포들의 여망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청와대에 압력을 가하는 만행을 서슴치않고 저지르고 있다. 민족분단이라는 타민족의 불행을 포로삼아 70년가까이 이 땅에서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것 뿐인가. 한국군은 주인국의 승인이 없이는 군사작전권을 행사할수 없다. 그것도 주인국의 군대주둔에 매년 꼬박 꼬박 조공을 바쳐야 한다. 모든 기지 및 시설물 사용은 전부 무료이다. 심지어는 미국 대사관건물도 무료사용이다. 주미한국대사관은 임대료만으로 연간 수백만달러를 지불하는데도 말이다.
 
또한 주인국의 무기외에는 사서는 안되며 자주국방을 해서는 안된다. 자주국방을 하려하다가는 일개 '국가'의 수장이 부하의 손에 처형당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또한 체제가 다른 북녘 동족과의 교류나 상호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솔직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공한하게 "한국이 우리의 승인없이 할수있는 것이 없다"고 까지 말하는 실정이다.
 
이런 모든 현상을 보고도 한국이 정상적인 국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신이상 증세로 보아야 옳다. 한국의 사대주의는 심각한 정신질환 증세이다. 한국정부가 스스로가 미국의 가장 성공한 식민지국가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바로 사대주의라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있기 때문이다.
 
박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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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2공항을 '설러불라'

[제주2공항을 반대한다] 신공항 건설, 주민 삶 위협한다
2019.11.05 10:25:09
 

 

11월 3일, 세종시 환경부와 국토부 건물 앞에서 제주2공항 건설을 막기 위해 단식농성 중이던 제주 청년 노민규 씨가 응급실로 실려갔다. 천막 농성 20일, 단식 17일째 되는 날이었다. 혈당이 57까지 떨어져 쓰러졌고,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광화문 세종로공원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천막농성장에서는 박찬식 상황실장이 지난 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다. 비상도민회의를 비롯한 사회시민단체는 제주 제2공항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도민공론화를 요구하고 있다. 단식에 돌입한 박찬식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제주 제2공항 반대와 공항 연계도로인 비자림로 확장공사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광주에서도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시민이 있고, 서울은 물론 제주도청 앞에서는 천막촌 사람들이 300여 일이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와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생명, 평화의 섬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3일부터 11일까지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제주 2공항 건설 계획 전면 취소' 9일 기도회에 나선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제주 2공항은 강정마을에 들어선 제주해군기지처럼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추진되고 있다." 
 

▲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는 천주교에서 진행하는 기도회가 이어지고 있다. ⓒ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따라서 주민들의 동의 없는 제주 2공항 건설은 또 다시 제주 주민들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아름다운 섬 제주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점을 우려케 한다. 즉 제주 주민들의 입장에서 제2공항 건설은 민주주의와 공정성이 없는 밀어붙이기식 토목공사이며, 그것은 4대강 사업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항을 더 지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제주도와 국토부의 발상 자체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제주 청년이 들고 있는 '4대강은 녹조라떼 제2공항 쓰레기섬'이라고 적힌 녹색의 피켓이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사람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도덕적인 어리석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가 결론부터 내리고 이유는 그저 가져다 붙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국토부가 강행하려는 제주 제2공항 역시 결론부터 내려놓고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려는 '어리석음'이다. 도덕적이라는 기준은 항시 이성보다는 감성, 또는 낭만에 치우쳐 직관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는다. 흔히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정부는 인간의 삶을 이루는 공동체 복원에는 관심이 없다. 제주 희귀종인 비바리뱀의 서식지나 멸종과 같은 생명의 문제를 우선시하지도 않는다. 이미 도덕성을 상실한 자들의 어리석음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분별력을 잃은 지 오래다. 화산섬 제주도의 환경수용능력이나 제주도의 인구 대비에 따른 발전의 지속가능성 따위는 그들이 지닌 개발이라는 명목의 '어리석은 이유' 중에 어느 것 하나 들지 못한다.  

그들에게 제주 제2공항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떤 확신이다. '인간의 삶과 자연, 생명의 가치'는 그들의 확신을 바꾸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당연한 논리가 아닌 사소한 갈등쯤으로 여긴다. 그들은 그 가치를 따르지도 않을 뿐더러 가치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상생의 가치를 이해해야만 협동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해버린다. 

이를테면 그들은 백년대계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항공수요가 늘어남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단지 제주에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기에 공항 건설은 불가피하다면, 과연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게 맞는 일인지를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정말로 제주의 관광객이 이대로 괜찮은가. 

제주공항에는 하루 476회 꼴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는데, 10년 전에 비해 1.7배나 늘었다고 한다. 공항 이용객은 2018년 한 해, 무려 2946만 명에 달했다. 관광객만 보면 1431만 명이 다녀갔다. 국토부는 2030년의 이용객 수요를 3569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와이나 오키나와가 연 900만 명 수준이고 발리가 1500만 명이라고 하니, 제주의 관광객 숫자는 발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하와이도 그렇고 오키나와와 발리는 제주도보다 훨씬 큰 섬이다. 관광객으로만 놓고 보면 단연 제주도가 최고 수준이다.

 

 

▲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하던 노민규 씨가 17일째 되던 11월 3일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그럼에도 제주도는 현재 제주 면적의 30%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개발은 모두 제주도와 제주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개발업자와 부동산 자본을 위한 것이다. 예컨대 오라관광지구 같은 경우, 5만 원 남짓 하던 땅값이 1000만 원 대까지 치솟을 거라는데, 200배가 넘게 오르는 땅값 상승의 개발이익은 전부 투기자본의 손아귀로 들어간다. 하물며 중국 자본만 해도 제주 부동산의 거의 1%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제 경관 좋은 요지는 어느 곳이나 휘황한 카페촌으로 변했고, 해변에 줄지어 늘어선 콘도는 중국인들의 휴양지로 전락했다. 어딜 가나 제주도는 무분별한 공사판이 되고 말았다. 포클레인 삽날이 개발 가능한 땅을 모조리 파헤치고 있다.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발위주의 관광산업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제주 도내에서 처리할 수 없는 쓰레기 문제, 오폐수, 지하수 고갈은 한계에 이르렀고, 이대로 계속되는 개발은 곧 제주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끝내 관광객도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은 결코 제주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으므로 항공수요가 늘어난다고 해서 늘릴 게 아니라 오히려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정책이 미래의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며, 기존의 제주공항을 확장해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항공수요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제주 주민들에게는 과잉관광(over tourism) 문제가 생존의 화두가 되었다. 제주 인구는 올해 말이면 65만 명을 넘을 거라고 한다. 제주 지역 물가상승률은 최근 5년간 전국 1위였다. 쓰레기 배출량(1인당)도 전국 1위이다. 제주 토지의 개별공시지가는 매년 20% 이상이 올라 전국 최고의 상승률을 보인다. 이주자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이후, 제주 토착민들에게 삼다도라는 제주도의 이름은 잊혀졌다.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 

관광지가 되어 지역 원주민들이 밀려나고 관광객 유입으로 지역의 구성원이 변화하여 주민들이 떠나는 현상을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라고 한다. 베니스에서는 과도한 관광객 때문에 삶이 질이 나빠진 주민들이 '관광객들은 꺼져라'고 시위를 벌였다. 이런 현상이 제주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제주도 인구의 23배나 되는 관광객들이 제주를 찾아오는 것은 분명 제주 주민의 주거환경은 물론이고, 기반시설 부족으로 주민들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부탄은 연간 10만 명으로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 무조건 관광객을 많이 유치한다고 해서 경제적 이익이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규제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지혜이다.  

대다수 제주 주민들은 신공항 건설이 주민들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민 행복'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제주2공항 설러불라('그만 두라'는 뜻의 제주 방언)"고 간절히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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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국감날 울려 퍼진 국정원 ‘해편’ 목소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11/05 10:30
  • 수정일
    2019/11/05 10: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시민사회, 국정원 프락치 공작 진상규명 및 국정원법 개정 촉구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11/05 [00: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국가정보원 프락치 공작사건 대책위원회’가 국정원 국정감사가 열리는 4일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진상 규명과 국정원법 개정을 촉구하는 투쟁을 펼쳤다. (사진 : 민중총궐기투쟁본부 페이스북)     © 편집국

 

국정원 국정감사가 열리는 4시민사회단체들이 국정원 개혁과 국정원 프락치공작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민들레민변민주주의법학연구회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한국진보연대)는 4일 성명을 통해 국정원 프락치 공작’ 진상규명과 수사권 폐지(이관)을 포함한 국정원법 전면 개정을 촉구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국정원이 불법적인 수사행태를 반복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정부를 비롯해 국회조차 진상규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 당연한 책무를 방기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에게 불리하다며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국회는 국정원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사이 국정원이 또 다시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불법수사를 진행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국정원 개혁법 처리에 나서야 한다며 아무리 개혁정부가 들어서도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국정원의 조직문화와 불법적인 수사관행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이 다시 확인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국정원 개혁과 국정원 프락치공작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 민중총궐기투쟁본부 페이스북)     © 편집국

 

국가정보원 프락치 공작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도 4일 기자회견 등 국정원 앞에서 하루 종일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진상 규명과 국정원법 개정을 촉구하는 투쟁을 펼쳤다.

 

▲ 국정원 개혁과 국정원 프락치공작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 민중총궐기투쟁본부 페이스북)     © 편집국

 

특히 대책위는 국정원은 국내수사는 물론 대공수사를 포함한 모든 수사에서 손을 떼고 사회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정보기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국정원법 개정을 통한 국정원 해편(解編)’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 국정원 개혁과 국정원 프락치공작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 민중총궐기투쟁본부 페이스북)     © 편집국

 

한편 해편(解編)’은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신조어로 풀어서(엮는다()’는 뜻이다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를 사실상 해체하고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라고 지시하면서 사용한 단어로청와대 측은 해체에 가까운 근본적 재편을 원하는 대통령의 의중을 담은 표현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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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선량한 흔치 않은 선각적 지식인”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 열려
마석=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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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4  22: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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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이 4일 오전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허영구 발간위원회 위원장이 자료집을 권재혁 선생 묘역에 헌정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의를 세우는 일, 민주와 자유를 쟁취하고 지키는 일, 민족의 자존과 통일을 이루는 일이 천하의 지난사(至難事)임을 마음을 두지 않은 자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백전노장 노투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께서 50년 전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암울한 시대상황과 선생이 당면한 곤궁한 입지에서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으시고 죽는 순간까지 분단 조국민의 불행을 아파한 충정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 하겠다”는 것.

숱한 동료를 사법살인으로 떠나 보내고 살아남은 2차 인혁당 관계자 박중기(85) 추모연대 명예의장이 4일 오전 11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미술관 교육장에서 열린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 추모사에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 것은 권재혁 선생 가족들의 수난사를 언급하면서부터다.

“40여 년이 지난 후 재심판결이 나고 장남 권병덕은 기자의 물음에 첫 마디가 “아버님의 구속후 ‘아’ 자만 봐도 두려웠고 무서웠습니다”하는 이야기는 내 머리에 각인돼 있습니다. 병덕이만 그랬겠습니까. 가족 전체가 그랬겠죠. 가녀린 가슴에 뽑을 수 없는 대못을 박은 이 형벌의 보상은 누가할까요?”

   
▲ 권재혁 선생 부인 이종식 여사와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이 나란히 자리잡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도 “오늘 이 자리에 나와 계신 구순 넘으신 사모님, 큰 아드님, 따님들 나오셨는데, 이 가정에 대한 것도 사실은 이 자료집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한 혁명 가족이 어떻게 일어나고 죽어가고 또 다시 부활되는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공감했다.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모 자료집’에는 재판기록과 과거사청산위 및 진상규명 활동 등은 물론 인권의학연구소가 채록한 권재혁 선생의 부인 이종식, 아들 권병덕, 딸 권병희.권재희의 인터뷰가 고스란히 실려있다. 뿐만 아니라 1958년 몬타나대 석사논문 「한국의 경제 문제와 1945~1955년 해외 원조」도 우리글로 번역해 포함됐다.

박중기 선생은 “추모연대를 맡고 일을 하면서 내 마음속에 가장 보람있고 감격스러운 한 부분이었다”며 권재혁 선생 묘역을 마석 모란공원에서 찾아내 김영옥 선생과 함께 비를 세우고 가족들과 극적으로 추모식에서 만난 사건을 회고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보기]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권재혁 선생(1925~1969)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과정을 이수했고, 1960년 5.16쿠데타가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육사와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는가 하면, 한국 수산개발공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1968년 7월 30일 중앙정보부로 연행된 뒤 ‘남조선해방전략당’ 당수로 지목돼 1969년 11월 4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권재혁 선생 약력>

1925년 9월 27일 함양 산청에서 독립운동가 소계(小溪) 권숙봉(權肅鳳)의 6남으로 출생

1939년 부친 권숙봉,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산청 신등면 단계리에 소계서당 설립

1946년 서울대 사회학과 입학

1950년 5월 졸업후 경신중학교 공민담당교사 임명

1952년 10월 경신중학교 퇴직후 부산세관 서기로 임명

1956년 6월 미국 몬타나대학교로 유학을 떠남

1957년 8월 몬타나대학교 경젷꽈 석사학위 획득 후

           9월 조지타운대학교 경제학과 박사학위 과정 수학

1959년 9월 오레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로 전학하여 박사과정 이수

1961년 12월 5.16군사쿠데타가 발발하자 학업ㅇ르 중단하고 귀국, 육사에서 경제학 강의

9162년 9월 건대에서 경제학과 강의, 경제문제연구소 상임위원 역임

1963년 8월 한국수산개발공사 영업책임자로 임명

           9월 민주사회동지회에서 개최한 세미나 ‘미국경제현황 및 후진국개발문제’에서 주제발표를 함. 이 자리에서 이일재 등과 만나 시국에 대한 환담을 나눔

1968년 7월 30일(혹은 31일) 중정, 선생을 강제로 연행하여 20여일간 고문 등 불법조사를 자행하고 ‘남조선해방전략당’ 당수로 지목하고, 검찰에 송치

           8월 24일 중정, 통혁당과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공개발표

1969년 9월 23일 대법원 사형 확정

1969년 11월 4일 형확정 42일만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집행

2009년 4월 6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 진실규명 결정

2014년 5월 16일 대법원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

2015년 2월 23일 민보위에서 선생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2019년 11월 4일 선생의 50주기를 맞아 추모자료집 발간

(자료제공 - 추모자료집발간위)

그러나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는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고, 2014년 대법원 재심을 통해 처형 후 45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 남조선해방전략당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기념행사는 마석 모란미술관 교육장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관계자로서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은 “권재혁 선생은 참으로 심성이 선량한 그런 분이셨다”고 회고하고 “권재혁 선생님은 흔치 않은 선각적 지식인이었다... 탁월한 분석을 통해서, 그 당시 이야기가 됐던 우리사회의 ‘3대 특징, 5대 모순’이라는 이론을 정리해 냈다”고 평가했다.

자료집에 실린 권재혁 선생 11회 진술서에 따르면, “3대 혁명특징의 첫째가는 특징은 38선 즉 휴전선의 定置(정치)이며, 둘째는 미군 및 軍·經(군·경)원조, 셋째는 우리 스스로가 內有(내유)하고 있는 半(반)봉건성”이다. 5대 모순은 ① 미제국주의 대 전체인민, ② 봉건주의 대 민주주의 ③ 매판자본 대 민족자본 ④ 자본 대 노동 ⑤ 지주 대 농민의 모순이다.

노중선 선생은 “사회과학적 이론들을 대중과 함께 운동현장에서 그걸 펼치고자 노력하셨고 청년학생들을 설득하고 동지규합활동을 열성적으로 하셨다”며 “외세에 의해서 분단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용트림치는 이 시기에 있어서 우리 각자 이런 식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자기 반성과 다짐을 하는 그런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권오헌 선생도 “국가보안법도, 파쇼 법정도, 양심수도 없는 자주통일시대를 앞당겨야 할 것”이라며 “오늘 부활하신 권재혁 선생 뒤를 따라서 우리 과제를 열심히 실천해 내자”고 당부했다.

   
▲ 발간위원회를 대표해서 허영구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발간위원으로 참여한 권재혁 선생의 둘째 딸, 연기자 권재희 씨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왼쪽은 발간위원인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모자료집 발간위원회’를 이끈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여기 있는 분들과 함께 1년 정도 준비했다”며 “50년이라는 세월이 한 매듭을 짓는 것이 쉽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히고 “앞으로 평전도 펴내야겠고, 선생님에 관한 논문도 발표돼야 할 것 같고, 수필집, 소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책, 또 권재희 선생도 계시니까 다큐멘터리도 필요하지만 권재혁 선생 영화가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쏟아냈다.

발간위원회에 참여한 둘째 딸 권재희 연기자는 “그저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 밖에. 다른 말이 더 안 떠오른다”며 “여기 오신 분들 마음에 한분 한분 담고, 이 감사함을 담고 기억하겠다”고 사의를 표했다.

권재혁선생50주기 추모자료집 발간위원회는 허영구, 이계환, 전명혁, 권재희, 김익흥, 이단아, 이창훈 등이 참여했다.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에서 가족을 대표해 아들 권병덕 씨가 감사의 인사를 했고, 전명혁 전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서울대민주동문회 관계자와 등이 추모발언에 나섰고 가수 박준 씨는 ‘나의 살던 고향’ 등 추모곡을 헌정했다.

그러나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은 건강이 여의치 않아 추모사에 나서지 못했고, 권오헌 선생은 병원 진료를 위해 자리를 먼저 떴고, 추모발언에 나선 고령의 노투사들도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 시론에 글을 쓴 지 10년 만에 권재혁 선생 묘역에 술을 올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참배와 헌화를 마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념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모란공원 권재혁 선생 묘역으로 이동해 참배, 헌화했다. 특히 10년전 <한겨레> 시론에 “죽은 뒤에도 전략당 사건의 권재혁이라 불려야 하는 젊은 경제학자의 40주기에 술 한잔을 올린다”고 적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10년 만에 권재혁 선생 묘역에서 술 한잔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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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까도 까도 끝이 없는 기무사와 박근혜 세력의 친위쿠데타 전모 ③

내란은 음모만 해도 중죄다! 그런데 왜 이석기와 통진당만 유죄인가
 
권종상  | 등록:2019-11-04 09:39:57 | 최종:2019-11-04 09:56: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펌]까도 까도 끝이 없는 기무사와 박근혜 세력의 친위쿠데타 전모 ③ 
-내란은 음모만 해도 중죄다! 그런데 왜 이석기와 통진당만 유죄인가


벗님이 다시 글을 올려 주셨군요. 이번 글에서는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 저들의 잣대의 이상함에 대해 짚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억 속에서 지금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을 이석기, 통진당 문제에 대해 짚었습니다.

이석기 내란 음모는 황교안이 법무부장관 때 요청됐던 것이고, 이때 동영상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는 있습니다. 그때 통진당이 해산될 거라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석기가 실제로 무기를 들고 설쳤던 것도 아니고, 저도 그때 저 세력들이 참 무리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결국 이석기가 내란예비음모 죄인가로 유죄가 됐고 지금 감옥 안에 있으며, 통합진보당은 해산됐지요.

같은 잣대를 들이민다면 지금 무력을 지닌 군의 쿠데타 내란음모에 대해서는 어떤 과정이 진행돼야 정상일까요? 군은 마땅히 탈탈 털리고 국헌문란을 꾀한 혐의를 받고 수사받고 털려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검찰은 이를 덮어 버렸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그리고 대신 열심히 표창장이나 털고 있습니다. 이게 정상입니까?

벗님의 글을 한 번 읽어 보시죠.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 작년에 벗님께서 쓰셨던 글 하나를 링크로 걸어둡니다. 이미 그때부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번에도 많이 읽어 주시고, 또 많이 퍼 날라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애틀에서…

권종상(서프라이즈 논객)

작성자: 나그네
출처: http://cafe.daum.net/saseamo/JCx6/716

까도 까도 끝이 없는 기무사와 박근혜 세력의 친위쿠데타 전모③
-내란은 음모만 해도 중죄다! 그런데 왜 이석기와 통진당만 유죄인가 -

갑자기 주제를 잠시 바꿨다. 예정된 편은 4편으로 가고 그 이전에 상식적으로 하나 짚어야 할 사안이 있어 급하게 다른 글을 올린다.

모든 범죄는 실행으로 죄가 형성되고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미수에 그쳐도 중죄로 처벌받는 경우가 일반 형법에서는 살인이다. 살인은 설사 미수에 그쳐도 피해자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결코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다. 대개의 절도를 포함한 일반 범죄의 미수가 피해자와 합의를 보거나 하면 반성의 의사표시로도 가볍게 넘어가거나 감형되지 그 자체로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예외는 동일범죄 전과가 여러 번 겹쳤을 때)는 별로 없다.

일반 형법에서 살인에 해당하는 중죄가 국사 사건의 경우에는 내란이고 반란이다. 잘 알려진 대로 군사반란은 수괴에게 사형만이 법정형이 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군형법에서 반란 미수도 중죄로 처벌된다. 심지어 미수 시 수괴에게도 사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내란 미수는 살인미수와 같이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는 내란시도 및 군통수를 부정하는 군사반란은 국가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중범죄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자체로도 큰 죄이며 무엇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지난 수사에서 조현천이가 달아났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사안을, 조현천 기소중지 그 외 다른 주요 참고인(한민구 김관진)중지라는 납득불가한 명분과 근거를 내세워 사건을 사실상 종결했다.

하나, 정작 검찰이 작성한 기소중지문의 본 내용에는 수많은 범죄사실의 인지가 그대로 적혀 있었다. 박근혜 일당과 군부의 강경세력들은 분명히 내란을 음모하고 반란을 시도하려 했었다.

그렇다! 검찰은 다 알고도 덮은 것이다.

이런 일이 왕조시대에 일어났다면 어떤 상황이 뒤따랐을까. 아마 조선이었다면 추국관이 대역죄인들과 내통하여 주상을 속이고 나라를 기망한 죄를 물어야 하며, 이 역시 대역죄에 해당하니 추국관을 엄히 벌하라고 상소가 빗발쳤을 것이다.

아직도 윤석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얼마나 엄청난 죄를 저질렀는지 감이 안 오시는가. 기무사의 계엄문건은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거명하여 엄중 수사를 명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자신의 직인으로 종결했는데 전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이 대목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조국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의 치열한 수사 열정과 처벌 의지와 사뭇 비교되지 않는가.

검찰의 논리에 천만번 양보해 조국 장관 가족에게 죄가 있다 해도 개인의 일이다.

그러나 기무사 계엄문건은 기무사령관은 물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부 장관 그리고 육군참모총장과 육본, 수방사령부과 특전사령부 그 외 이 나라 육군의 최정예 기계화사단과 특전여단들이 죄다 연루된, 규모상 초대형이자 사건의 파장 역시 핵폭탄급이었는데도 검찰은 같은 수장이 사건을 처결하는 온도와 강도가 너무도 비교된다.

조국 일가 사건들과 기무사의 내란 미수는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데도, 21세기 민주 정부 치하의 검찰이 전자를 더 중죄인 취급하는 작금의 기현상을 상식과 정의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 지금의 검찰이 도를 넘어도 과하게 넘었고 선은 이미 애저녁에 넘어버렸다.

이쯤에서 저들 수구세력의 집권기에 벌어졌던 내란 미수사건 하나(?)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현재 이 사건은 엠네스티에 의해 지난 15년 인권 침해사건으로 규정되어 있고 우방국인 미 국무부 보고서에서도 인권협약 위반으로 인식하고 있다)

과거 이석기와 통진당 사건과 이번 기무사 계엄수사는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법 해석과 적용이 너무도 고르지 않음을 의심하기에 족한 사례다.

법의 잣대가 일관되고 공정했다면 이 두 사건은 모두 무죄로 판결 났거나, 둘 다 유죄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이석기는 중죄로 장기형을 사는 반면, 군 인사 중 내란 모의가 의심되는 세력들은 모두가 자유롭게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더구나 계엄문건의 주체인 군(軍)은 이석기 일당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실제의 힘, 그것도 무력(武力)을 가진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 집단이 이석기 일당(?)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정교한 실행계획을 모의하고 있었는데도 이걸 그냥 넘어간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어느 시민이 이를 용납한단 말인가.

이게 다르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지난 2016년 겨울에 역시 조현천 기무사의 사주로 출몰했었던 ‘군이여 일어나라’며 계엄령을 주장했던 태극기 모독부대뿐일 것이다.

기무사 문서에 나온 진보(종북) 표현만으로도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이런 도저한 인식은 현 군 통수권자가 종북이라는 건데, 이런 참담한 인식을 하는 군(일부세력이라고 하더라도)에 대해서 아무런 수사도 기소도 처벌도 없었다는 것으로도 검찰은 그 충성심을 의심해야 마땅하다. 집권당이나 청와대 역시 이렇게까지 면종복배하는 집단을 제대로 틀어쥐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문재인이 선임한 이석구 신임사령관을 데려다가 정초에 허수아비 충성 퍼포먼스나 해대면서도 정작 문서는 손질하고 조작하고 감추려 했던 기무사가 이름 바꾼다고 그 본질이 달라지겠는가?

현재 검찰은 그간 유시민 작가나 김어준 총수의 조국 관련 반박에는 따박따박 반론을 달고 조직의 옹호 논리를 폈으나, 군 인권센터의 계엄문건에 대해서는 수일째 꿀 먹은 벙어리 형국이다. 아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니 섣부른 반박을 했다가 인권 센터에게 카운터 펀치라도 허용하는 날에는 더 뒷감당이 안 될 거 같아서 아닌가.

이러니 더 기가 막힌 건 군이 아니라 검찰이다. 이 뻔한 수사를 덮었다. 그리고도 조국 일가는 무슨 대역죄인 잡듯이 여전히 수사를 지속한다. 이걸 언제까지 두고 볼 셈인가? 집권당과 청와대는?

지금 시민들은 폭발 직전이다.
https://blog.naver.com/andie0712/221319754378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883&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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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 5년간 못 올린다” 베를린의 파격 입법

“집세 5년간 못 올린다” 베를린의 파격 입법

등록 :2019-11-03 19:04수정 :2019-11-04 09:54

 

 

인구 연 5만명 유입돼 집세 폭등
저소득층 밀려나자 시 정부 결단
내년 발효…“사회적 임대료 시동”
“임대료 폭등, 독일 전체의 문제”
…다른 도시로 확산 전망
독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어느 다세대주택으로,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 “미친 임대료” 등 임대료 인상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독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어느 다세대주택으로,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 “미친 임대료” 등 임대료 인상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임대료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독일 베를린시가 내년 1월부터 주택 임대료를 5년간 아예 동결하는, 전례 없이 파격적인 조처에 나서 독일 전역이 떠들썩하다. 위헌 논란도 불거지고 있지만, 도심 세입자로 끊임없이 유입되는 청년층 주거 부담을 대폭 줄이는 데 주로 목표를 둔 이번 조처에 전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 베를린 시정부는 지난 10월22일 주택 임대료 동결을 담은 ‘베를린시 주택임대료 법안’을 합의 통과·발표했다. 당장 내년 1월부터 발효된다. 베를린 의회(상원)를 조만간 통과할 것으로 보이는 이 법안에 따르면,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약 150만채)은 지난 6월18일(법안 초안 발표일) 당시 임대료를 기준으로 향후 5년간 기존 세입자에게 주택 임대료를 더 인상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임대료 동결 조처는 독일 16개 주 가운데 최초다. 다만 수도·전기·난방비는 동결 대상이 아니다.

 

2022년부터는 물가 상승률(약 1.3% 예상) 정도만 인상을 허용하고, 임대인의 주택 개보수 비용이 발생해도 극히 제한된 수준만 인상을 용인하기로 했다. 베를린세입자협회는 “적정하고 더 많은 임대를 제공하는 역사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거주자는 약 85%가 세입자다. 다만 2014년 이후에 건축된 주택은 이번 임대료 동결이 적용되지 않는다.

 

새로 임차계약을 맺는 세입자들도 임대료 상한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번 법안은 새 임대계약에 대해 1제곱미터당 9.80유로(10.90달러·2013년 당시 평균 임대료)를 임대료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임대인이 이를 어기면 무려 50만유로(6억2천만원)를 벌금으로 물린다. 나아가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의 기존 임차계약도 이 상한선의 20% 이상은 부과할 수 없도록 묶었다. 20% 이상이면 세입자가 해당 관청에 신고해 임대료를 인하할 수 있게 하는 추가적인 법을 내년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베를린 시당국은 이 업무를 처리할 대규모 인력 채용(250명의 임대료 관리위원)을 계획 중이다.

 

베를린 임대료는 오랫동안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견줘 싼 편이었으나 2008년 이후 두배 이상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매맷값은 거의 3배로, 임대료는 2배 이상 뛰었다. 개보수한 집은 임대료가 4배가량 오르기도 했다.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면서 전세계의 투자자가 몰려오고, 창업 열풍이 일면서 한해 평균 4만8천여명이 새로 유입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임대주택으로 흘러들어오는 층은 주로 젊은이들이다. 도심에 살던 노인과 아이들을 둔 가족들이 임대료 폭등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고삐 풀린 임대료가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급기야 “아파트 수천채를 소유한 거대 임대기업의 임대용 집들을 몰수하자”는 급진적 시민청원 운동이 작년에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임대료 동결안을 발의한 카트린 롬프셔 베를린시의원(좌파당·베를린 도시개발주택부)은 지난달 28일 베를린 지역민방 <에르베베>(RBB)와 한 인터뷰에서 “임대료 폭등은 베를린만의 문제가 아니라 독일 전체 대도시의 문제다. 우리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의회의 사민당 원내총무 라에드 살레도 최근 열린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앞으로 독일의 다른 주들도 베를린 임대료 동결 정책을 모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를린 세입자협의회는 “이번 조처로 ‘사회적 임대료’ 정책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장에서 수요-공급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임대료를 넘어 주거복지 차원의 임대료 정책이 도입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임대사업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베를린의 임대업자단체 ‘하우스운트그룬트’는 “베를린 주택시장의 미래는 암담하다”며, 임대료 동결은 근본 해결방안이 될 수 없고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말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사설에서 “장기적으로 신규주택 건설 및 주택투자가 감소하면서 주택난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임대료 동결·상한 법안은 독일 헌법재판소에 회부돼 위헌 여부를 다투고 있다. 울리히 바이스 베를린 훔볼트대 명예교수(헌법 및 건축법 전공)는 ‘5년 동결’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고, ‘상한선의 20% 제한’ 규제는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독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어느 다세대주택으로,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 “미친 임대료” 등 임대료 인상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독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어느 다세대주택으로,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 “미친 임대료” 등 임대료 인상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915620.html?_fr=mt1#csidxb3e67fd283325c190d006aef757f1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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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방사포의 출현과 그것의 정치적 함의

[개벽예감 370] 핵방사포의 출현과 그것의 정치적 함의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11/04 [08:5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3세대 국방과학자들이 개발한 초강력 방사포

2. 시험사격에서 나타난 방사포의 특징들

3. 사격정확도 높은 방사포를 개발한 이유

4. 해답의 열쇠는 사격시차에 들어있다

5. 5세대 극소형 전술핵탄 탑재될 핵방사포

 

 

1. 3세대 국방과학자들이 개발한 초강력 방사포

 

2019년 10월 31일 한국군 합동참모본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당일 오후 4시 35분경과 38분경 평안남도 순천에서 동해 상공으로 발사체 2발이 발사되었다고 한다. 올해 들어 조선에서는 각종 미사일과 방사포를 이미 11차례나 쏘는 시험사격이 연속 진행되어왔고, 그날에는 12번째 시험사격이 진행되었다. 미국과 한국의 군사전문가들은 12번째 시험사격에 대해서도 이전에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여러 성능지표들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거나 낮게 평가하였다. 하지만 진실은 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세상에 알려지기 마련이다. 

 

한국군 합참본부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0월 31일 조선에서 발사된 발사체의 비행거리는 약 370km, 비행고도는 약 90km인 것으로 탐지되었다고 한다. 지난 8월 24일 조선에서 발사된 초대형 방사포의 비행거리는 약 380km, 비행고도는 약 97km로 탐지되었고, 지난 9월 10일에 발사된 초대형 방사포의 비행거리는 약 330km, 비행고도는 약 50~60km로 탐지되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지난 10월 31일 조선에서 초대형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9년 8월 25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월 24일 초대형 방사포 제1차 시험사격을 현지에서 지도하면서 “정말 대단한 무기라고, 우리의 젊은 국방과학자들이 한번 본적도 없는 무기체계를 순전히 자기 머리로 착상하고 설계하여 단번에 성공시켰는데 총명하다고, 큰일을 해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높이 평가한 것처럼, 조선의 젊은 국방과학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방사포를 자력으로 연구, 개발, 완성하였다. 초대형 방사포를 만들어낸 조선의 젊은 국방과학자들은 누구일까? 

 

2013년 6월 4일 나는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중무장전시실을 참관하면서 조선에서 생산된 각종 방사포들을 살펴보았는데, 조선이 1968년에 자체로 개발한 첫 방사포가 200mm 4관 방사포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고, 조선이 각종 방사포를 개발해온 역사가 장장 50년에 이른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조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각종 방사포를 개발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올해 초대형 방사포를 만들어낸 그들은 조선국방과학원에서 근무하는 3세대 국방과학자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국방과학원은 올해 두 종의 신형 방사포를 각각 성공적으로 시험사격하였다. 조선국방과학원이 지난 7월 31일에 시험사격한 것은 새로 개발한 대구경조종방사포이고, 지난 8월 24일에 시험사격한 것은 새로 개발한 초대형 방사포다. 조선의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대구경조종방사포는 조선국방과학원 2세대 국방과학자들이 개발한 것이고, 초대형 방사포는 조선국방과학원 3세대 국방과학자들이 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올해 개발된 대구경조종방사포는 400mm 6관 방사포이고, 올해 개발된 초대형 방사포는 600mm 4관 방사포다. 조선은 2014년에 300mm 8관 방사포를 실전배치하였는데, 그로부터 5년 뒤 300mm 방사포보다 구경이 2배 더 큰 600mm 초대형 방사포를 만들어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조선국방과학원이 비약적인 속도로 신형 방사포를 개발해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9년 10월 31일 조선국방과학원이 진행한 600mm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의 한 장면이다. 조선국방과학원은 그날 오후 4시 35분과 38분에 평안남도 순천비행장에서 동해 상공으로 600mm 초대형 방사포 2발을 쏘았다. 비행거리는 약 370km, 비행고도는 약 90km였다. 조선은 2014년에 300mm 8관 방사포를 실전배치하였는데, 그로부터 5년 뒤 300mm 방사포보다 구경이 2배 큰 600mm 초대형 방사포를 만들어냈다. 초대형 방사포는 방사포와 미사일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어떤 군사전문가는 초대형 방사포를 미사일로 분류하기도 한다. 600mm급 초대형 방사포를 개발한 나라는 세계에서 조선과 미국밖에 없다.     

 

2013년 6월 4일 내가 참관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중무장전시실에는 지난 시기 조선이 자체로 개발한 8종의 방사포들이 전시되었는데, 거기에 더하여 올해 2종의 신형 방사포가 더 개발되었으니 조선은 모두 10종의 방사포를 보유한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조선이 자체로 개발해온 10종의 방사포를 개발시기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968년식 200mm 4관 방사포

1973년식 122mm 30관 방사포

1973년식 122mm 40관 방사포

1984년식 240mm 12관 방사포

1984년식 240mm 18관 방사포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

1990년식 240mm 22관 방사포

2013년식 300mm 8관 방사포

2019년식 400mm 6관 방사포

2019년식 600mm 4관 방사포

 

위에 열거한 10종의 방사포들 가운데 300mm 8관 방사포, 400mm 6관 방사포, 600mm 4관 방사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개발된 대구경 방사포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 방사포개발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국방과학원이 올해 개발한 400mm 6관 방사포와 600mm 4관 방사포는, 2016년 5월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제시한 무력건설포병현대화 전략적 방침에 따라” 개발된 초강력한 방사포들이다. 400mm 6관 방사포는 구경이 300mm에서 400mm로 커진 것은 물론이고 저고도수평비행능력, 변칙비행능력, 정밀타격능력을 두루 갖춘 초강력한 방사포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미사일방어체계도 조선이 개발한 400mm 6관 방사포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다. 400mm급 대구경 방사포를 보유한 나라는 세계에서 조선, 중국, 파키스탄이다. 그런데 파키스탄이 보유한 400mm 방사포는 발사관이 4문인데, 조선이 올해 개발한 400mm 방사포와 중국이 보유한 406mm 방사포는 발사관이 각각 6문씩이다.    

 

그러면 조선국방과학원 3세대 국방과학자들이 개발한 600mm 4관 방사포는 얼마나 더 위력적인 무기인가?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방사포는 “거대한 전투적 위력”을 가진 무기라고 한다. 600mm 초대형 방사포가 출현한 것으로 하여 방사포와 미사일의 경계가 무너졌다. 그래서 어떤 군사전문가들은 대구경 방사포를 단거리미사일로 분류하기도 한다. 600mm급 초대형 방사포를 보유한 나라는 세계에서 조선과 미국뿐이다. 미국이 보유한 610mm 방사포는 발사관이 2문인데, 조선이 개발한 600mm 방사포는 발사관이 4문이다. 

 

이렇게 비교하면, 조선의 대구경 방사포 및 초대형 방사포가 다른 나라의 대구경 방사포 및 초대형 방사포에 비해 발사관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사관이 많을수록 파괴력은 더 강해진다. 그래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이번에 개발된 600mm 방사포를 가리켜 “세계적인 최강의 우리식 초대형 방사포”, 또는 “세상에 없는 주체병기”라고 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8대 방사포강국의 각종 방사포들을 구경이 큰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나라이름

 

명칭

포탄지름

발사관

탄두중량

사거리

 

조선

 

 

300mm

방사포

 

300mm

8

미상

200km

 

로씨야

 

9M542

토르나도

300mm

6

280kg

90km

 

벨라루쓰

 

폴로네즈

300mm

8

480kg

200km

 

이스라엘

 

엑스트라

306mm

8

120kg

150km

 

이란

 

파즈르-5

333mm

4

175kg

75km

 

조선

 

400mm

방사포

400mm

6

미상

200km

 

중국

 

웨이쉬-3

406mm

6

200kg

200km

 

파키스탄

 

나스르

400mm

4

400kg

70km

 

미국

 

MGM-140

에이태킴스

610mm

2

230kg

300km

 

조선

 

 

600mm 방사포

 

600mm

4

미상

400km 이상

 

 

     

2. 시험사격에서 나타난 방사포의 특징들

 

방사포의 첫 번째 특징은 빠른 기동력에 있다. 방사포는 구조가 간단하고, 가벼워서 고속기동전에 아주 적합하다. 방사포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에 탑재된 것으로 하여 고속기동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고속기동전을 중시하는 조선인민군은 모든 타격수단들에 엔진과 바퀴를 달아놓고, 전시에 매우 빠른 속도로 진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것은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을 고속기동전으로 제압하여 전쟁을 72시간 만에 끝내고 전쟁피해를 극력 줄이려는 초단기속결전략에 따라 각종 신속공격무기체계들을 집중적으로 실전배치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국방과학원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에 따라 초강력한 방사포를 개발하는 사업에 힘을 집중해온 까닭을 알 수 있다.

 

2019년 8월 2일 새벽에 진행된 400mm 방사포 시험사격을 현지에서 지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포차의 전투전개시간을 측정하시며 대구경조종방사포체계의 운영방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고 한다. 이 인용문에 나타난 정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사포병들에게 사격명령을 내리고, 그들이 방사포를 사격지점까지 이동시켜 사격준비를 마친 시간을 직접 측정하였음을 보여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사포의 작전기동력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포차라는 것은 무엇인가? 남측에서는 발사차량이라는 말로 통칭하지만, 북측에서는 방사포를 탑재한 차량을 포차라고 부르고,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차량을 발사대차로 부르면서 양자를 구분한다. 포차에 실린 포대와 발사대차에 실린 발사대는 다른 것이므로,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방사포를 탑재한 각종 포차들 가운데는 바퀴가 달린 포차도 있고, 무한궤도가 달린 포차도 있다. 방사포를 탑재한 조선의 포차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기동할 수 있을까? 조선에서 그에 관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으므로, 다른 나라의 포차들과 비교하면서 추산하는 수밖에 없다. 

 

로씨야련방군이 운용하는 9A52-4 토르나도 방사포를 탑재한 자국산 4축8륜 KAMAZ-740 포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90km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운용하는 웨이쉬-3 방사포를 탑재한 자국산 4축8륜 TAS 포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80km다. 이란혁명수비군이 운용하는 파즈르-5 방사포를 탑재한 도이췰란드산 3축6륜 머씨디즈-벤즈 2631 포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90km다. 

 

조선이 생산한 각종 포차들 가운데는 300mm 방사포를 탑재한 3축6륜 포차도 있고, 600mm 방사포를 탑재한 4축8륜 포차도 있다. 로씨야련방군, 중국인민해방군, 이란혁명수비군이 각각 운용하는 포차들과 비교하면, 조선에서 생산된 300mm 방사포를 탑재한 3축6륜 포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90km에 이르는 것으로 보이고, 600mm 방사포를 탑재한 4축8륜 포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80km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조선국방과학원이 2019년 9월 10일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에서 진행한 600mm 방사포 제2차 시험사격에 나온 4축8륜 포차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에서 새로 만든 포차다. 이 4축8륜 포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80km인 것으로 보인다. 붉은 마개뚜껑이 닫긴 600mm 발사관 4문이 실려있다. 방사포는 구조가 간단하고, 가벼워서 고속기동전에 아주 적합하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한미연합군을 고속기동전으로 제압하여 전쟁을 72시간 만에 끝내고 전쟁피해를 극력 줄이려는 초단기속결전략에 따라 방사포를 비롯한 각종 신속공격무기체계들을 집중적으로 실전배치하였다.     

 

조선이 생산한 각종 포차들 가운데 400mm 방사포를 탑재한 포차는 무한궤도가 달린 포차다.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 무한궤도 포차는 앞쪽에 향도바퀴 1개, 중간에 지탱바퀴 8개, 뒤쪽에 추동바퀴 1개가 달렸는데, 최고속도는 시속 60km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각종 전차의 최고속도가 시속 60km다. 

 

400mm 방사포를 탑재한 조선의 무한궤도 포차는 전시에 미국 정찰위성을 피해 산속에 들어가 자신을 은폐할 수도 있고, 전시에 파괴된 잔해들이 널린 도로에서도 기동할 수 있으며, 수심이 얕은 하천에서 도하장비가 없이 수중도하를 할 수 있다. 

 

방사포의 두 번째 특징은 연발사격에 있다. 연발식 방사포는 짧은 시간에 여러 발을 사격할 수 있으므로, 기습타격전과 연속타격전에 아주 적합하다. 연발식 방사포는 단발식 탄도미사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연발사격이야말로 방사포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한다.  

 

2019년 9월 11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10일 600mm 방사포 제2차 시험사격을 현지에서 지도하면서 “앞으로 방사포의 위력상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되는 련발사격시험만 진행하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시였다”고 한다. 그런 평가에 따라 2019년 10월 31일에 진행된 600mm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은 포탄 2발을 3분 간격으로 한 발씩 쏜 연발사격시험이었다. 그에 비해, 지난 8월 24일에 진행된 600mm 방사포 제1차 시험사격에서는 포탄 2발을 15분 간격으로 쏘았고, 지난 9월 10일에 진행된 600mm 방사포 제2차 시험사격에서는 포탄 2발을 19분 간격으로 쏘았다. 600mm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에서 연발사격성능이 검증되었다. 3차에 걸친 시험사격에서 600mm 방사포의 각종 성능이 전반적으로 검증되었으므로, 앞으로 시험사격은 없을 것이다.  

 

 

3. 사격정확도 높은 방사포를 개발한 이유

 

방사포의 세 번째 특징은 밀집사격에 있다. 방사포는 포탄을 쏘아 목표물 한 개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포탄을 연속으로 쏘아 넓은 면적을 초토화한다. 재래식 화력으로 넓은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는 방사포밖에 없다. 방사포의 특징은 단발식 조준사격이 아니라 연발식 밀집사격에 있다. 

 

그런데 방사포의 특징이 밀집사격에 있다고 보는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조선에서 벌어졌다. 2019년 9월 11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10일 600mm 방사포 제2차 시험사격을 현지에서 지도하면서 “초대형 방사포무기체계는 전투운영상 측면과 비행궤도특성, 정확도와 정밀유도기능이 최종검증되였다”고 평가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정확도는 사격정확도를 뜻한다. 정밀유도기능을 가져야 사격정확도가 높아지므로, 정밀유도기능을 가진 방사포는 자연히 사격정확도가 높아져 정밀사격기능을 갖게 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국방과학원이 이번에 개발한 600mm 초대형 방사포는 연발사격만이 아니라 조준사격도 할 수 있어서 사격정확도가 매우 높은 방사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방사포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밀집사격이므로, 600mm 방사포는 사격정확도가 높지 않아도 되는데, 왜 사격정확도가 높은 방사포를 만든 것일까?  

 

한반도는 작전반경이 넓지 않기 때문에 군사시설이 비군사시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이 전시에 비군사시설에 부수적 피해를 주지 않고 군사시설만 족집게식으로 선별하여 공격, 파괴하려면 사격정확도가 높은 무기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한 기존 방사포는 밀집사격을 하는 무기이므로, 전시에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서울을 공격할 때 혹심한 부수적 피해가 일어나게 되어 도시공격에 섣불리 사용하기 힘들다. 그러나 조선국방과학원이 개발한 신형 방사포는 정밀유도기능을 가졌고, 조준사격을 할 수 있으므로, 전략거점들만 선별하여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 정밀사격으로 파괴할 수 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조선국방과학원이 2019년 8월 24일 함경남도 선덕비행장 활주로에서 600mm 방사포 제1차 시험사격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2019년 9월 10일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에서 진행한 제2차 시험사격에서 조준사격으로 쏜 600mm 방사포탄은 동북쪽으로 날아갔는데, 사격지점에서 330km 떨어진 곳에 있는 함경남도 화대군 무수단리 앞바다 알섬에 설치된 승용차 만한 표적을 정확히 맞췄다. 이것은 조선인민군이 300~400km 밖에 있는 승용차를 600mm 방사포 조준련발사격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의 1차 공격대상은 주한미국군의 전략거점들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전후방에 흩어져있던 주한미국군기지들을 통폐합하여 집결시킨 경기도 평택의 군사기지가 최우선 공격대상으로 될 것이다. 4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평택미국군기지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건설한 해외군사기지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그러므로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평택미국군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전쟁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중대한 요인으로 된다. 

 

그런데 평택미국군기지에는 군사시설만이 아니라, 비군사시설도 있다. 이를테면, 주한미국군 가족들이 생활하는 거주구역이 있고, 주한미국군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5개소가 있고, 교회가 5개소가 있으며, 병원, 상가건물, 체육시설도 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평택미국군기지에 있는 비군사시설들과 기지 밖의 지역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군사시설들만 선별하여 파괴하려면, 조준련발사격으로 쏠 수 있는 무기체계를 사용해야 한다. 정밀유도기능을 가진 기존 탄도미사일은 조준사격으로 쏠 수 있어도 연발사격으로 쏘지는 못하고, 밀집사격기능을 가진 기존 방사포는 연발사격으로 쏠 수 있어도 조준사격으로 쏘지는 못한다. 조준련발사격을 요구하는 군사작전방침에 따라 조선국방과학원이 개발한 신형 무기체계가 바로 400mm 대구경조종방사포와 600mm 초대형 방사포다. 이 신형 방사포들은 정밀사격기능을 지녔다. 이를테면, 300~400km 밖에 주차된 승용차를 조준사격으로 파괴할 수 있다.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2019년 9월 10일 조선국방과학원이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에서 진행한 시험사격에서 조준사격으로 쏜 600mm 방사포탄은 동북쪽으로 날아갔는데, 사격지점에서 3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승용차만한 표적을 맞췄다. 한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방사포탄은 사격지점에서 330km 떨어진 함경남도 화대군 무수단리 앞바다에 있는 작은 암초인 알섬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600mm 방사포탄은 바로 그 암초에 설치된 승용차만한 표적에 명중한 것이다.   

 

군사시설과 비군사시설이 뒤섞인 방대한 군사기지를 경기도 평택에 건설해놓은 미국은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방사포 밀집사격으로 그 기지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인민군은 300~400km 밖에 있는 승용차를 조준련발사격으로 파괴할 수 있는 방사포를 보유하였으므로, 평택미국군기지는 더 이상 안전구역이 아니다. 조선이 이번에 새로 개발한 두 종의 신형 방사포로 평택미국군기지를 파괴할 수 있는 조준련발사격능력을 검증한 것은 주한미국군에게 그 기지를 버리고 어서 이 땅을 떠나라는 무언의 압박인 것으로 생각된다.  

 

 

4. 해답의 열쇠는 사격시차에 들어있다

 

영국 통신사 <로이터즈> 2019년 10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국방과학원이 600mm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을 진행하였을 때, 일본 미사와공군기지에서 긴급대피경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미사와공군기지는 일본 혼슈 아오모리현 최북단 태평양쪽에 있다. 홋까이도에서 가까운 곳이다. 미사와공군기지에는 F-16 전투기를 운용하는 미공군 제35전투비행대가 주둔하고,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인근의 엘먼도프-리처드슨합동기지에 본부를 둔 미공군 제373정보-감시-정찰단 산하 미사와안전작전쎈터가 있으며, 일본항공자위대 산하 북부항공방위군 본부가 있다. 

 

2019년 10월 31일 조선국방과학원이 600mm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을 진행하였을 때 미사와공군기지에서 긴급대피경보가 발령된 까닭은, 미사와안전작전쎈터가 600mm 방사포탄이 자기들이 있는 미사와공군기지까지 날아오는 줄 알고 화들짝 놀랐기 때문이다. 순천비행장에서 미사와공군기지까지 직선거리는 1,320km다. 순천비행장에서 발사된 600mm 방사포탄이 조선의 내륙상공을 통과한 비행거리는 약 170km이고, 그 방사포탄이 동해 해상 탄착점까지 날아간 비행거리는 약 370km이므로, 동해 상공에서 날아간 비행거리는 약 200km다. 함경남도 함흥 인근 동해안에서 미사와공군기지까지 거리는 약 1,180km이므로, 미사와안전작전쎈터는 600mm 방사포탄이 미사와공군기지에서 약 1,000km 떨어진 동해 상공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긴급대피경보를 발령한 것이다. 미사와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주일미국군은 조선의 600mm 방사포 시험사격을 보고 겁에 질려 세인의 웃음거리로 되었다.    

 

조선국방과학원이 2019년 9월 10일 개천비행장에서 진행한 600mm 방사포 제2차 시험사격에서는 함경남도 화대군 무수단리 앞바다에 있는 작은 암초인 알섬을 향해 쏘았는데, 2019년 10월 31일 순천비행장에서 진행한 600mm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에서는 알섬이 아닌 동해 해상을 향해 쏘았다. 9월 10일에 600mm 방사포를 알섬을 향해 쏜 것은 그곳에 설치된 표적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여 정밀사격기능을 검증한 것인데, 10월 31일에는 왜 알섬의 표적을 향해 쏘지 않고 먼바다로 쏜 것일까?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조선국방과학원이 2019년 9월 10일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에서 진행한 600mm 방사포 제2차 시험사격장면이다. 사격하는 순간 엄청난 화염과 연기와 후폭풍이 발생하였다. 600mm 방사포 제2차 시험사격은 알섬에 있는 고정표적을 향해 쏜 조준사격이었고, 제3차 시험사격은 동해 해수면 위에서 움직이는 이동표적을 향해 쏜 조준련발사격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국방과학원이 600mm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에서 조준련발사격으로 쏜 해상이동표적은 미국 항공모함이나 상륙공격함 같은 거함을 가상한 이동표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선국방과학원이 개발한 600mm 방사포는 전시에 동해로 들어서는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과 미국 해병대 상륙강습전단을 조준련발사격으로 격침시킬 무기다. 그래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600mm 방사포가 조선인민군의 핵심무기로 될 것이라고 보도하였던 것이다.     

 

이 물음을 푸는 해답의 열쇠는 사격시차에 들어있다. 지난 10월 31일 제3차 시험사격에서 600mm 방사포를 동해 먼바다로 쏜 것은 연발사격기능을 검증한 것인데, 제1탄을 쏜 때로부터 약 3분 뒤에 제2탄을 쏘았으니, 연발사격시차는 3분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기존 방사포의 연발사격시차는 대체로 30초 안팎인데, 이번에 600mm 방사포의 연발사격시차는 그보다 6배 더 길어졌다는 점이다. 조선국방과학원이 신형 무기를 개발하여 성능검증시험을 진행할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저평가하려고 애쓰는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600mm 방사포의 연발사격시차가 기존 방사포보다 6배 더 길어진 것을 두고 그 방사포의 연발사격기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느니 뭐니 하면서 심중한 결함이 드러난 것처럼 웅성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600mm 방사포가 조준련발사격기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연발사격기능만 가진 것으로 잘못 알았다. 600mm 방사포의 연발사격시차가 기존 방사포보다 6배 더 길어진 까닭은, 동해 해상에서 움직이는 이동표적을 향해 조준련발사격으로 쏘았기 때문이다. 600mm 방사포 제2차 시험사격은 알섬에 있는 고정표적을 향해 쏜 조준사격이었고, 제3차 시험사격은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이동표적을 향해 쏜 조준련발사격이었다.

 

만일 600mm 방사포를 지상에 있는 고정표적을 향해 조준련발사격으로 쏘면 연발사격시차는 약 1분이지만,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이동표적을 향해 조준련발사격으로 쏘면 연발사격시차는 약 3분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무인전략정찰기가 탐지한 해상이동표적의 위치정보를 지상통제기지가 수신, 분석한 다음, 사격지점에서 대기하는 600mm 방사포에게 발신하기까지 2분 정도 더 걸리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600mm 방사포 제3차 시험사격에서 조준련발사격으로 쏜 표적이 항공모함이나 상륙강습함을 가상한 해상이동표적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선국방과학원이 개발한 600mm 방사포가 전시에 동해로 들어서는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과 미국 해병대 상륙강습전단을 조준련발사격으로 격침시킬 무기라는 점을 말해준다.     

 

 

5. 5세대 극소형 전술핵탄 탑재될 핵방사포

 

파키스탄군 전략군은 2019년 1월 24일 나스르 방사포 제1차 시험사격을 진행하였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월 31일에는 제2차 시험사격을 진행하였다. 파키스탄이 개발한 나스르 방사포는 포탄길이가 6m, 포탄지름이 400mm이며, 무게가 400kg인 탄두를 탑재하고 70km를 날아간다. 파키스탄의 방사포개발기술은 그리 높지 못해서, 사거리가 그처럼 짧은 방사포밖에 만들지 못한다. 나스르 방사포의 사거리는 원래 60km였는데, 사거리를 10km 더 늘려 2019년 1월에 두 차례 시험사격을 진행한 것이다. 조선이 개발한 400mm 방사포는 사거리가 300km인데, 파키스탄이 개발한 400mm 방사포는 사거리가 70km밖에 되지 않으니, 기술수준차이가 너무 크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파키스탄이 개발한 400mm 나스르 방사포의 전투부에 재래식 탄두만이 아니라 핵탄두도 탑재된다는 사실이다. 파키스탄이 개발한 400mm 나스르 방사포에 탑재되는 핵탄두는 지름이 300mm으로 소형화되고, 무게가 400kg으로 경량화되고, 폭발위력이 0.5~5킬로톤으로 감소된 전술핵탄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파키스탄이 자기의 핵탄제조기술을 소형화, 경량화된 전술핵탄을 만드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08년 미국의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조선은 핵탄소형화기술을 20년 전에 파키스탄에 전수해주었다. 조선은 1999년에 조선을 비공개로 방문한 파키스탄 핵개발 총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를 평양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떨어진 어느 지하핵무기고로 안내하여 전술핵탄 실물 3발을 보여주면서 핵탄소형화기술을 가르쳐주었다. 지난 1990년대에 조선은 파키스탄에게 핵탄소형화기술만이 아니라 미사일제조기술도 전수하였다. 만일 조선이 그런 핵심기술을 전수하지 않았더라면, 파키스탄은 전술핵탄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그것을 탑재하는 탄도미사일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통신사 <맥클랫취 뉴스페이퍼즈> 2008년 6월 4일 대담기사에서 칸 박사는 자신이 1999년에 조선을 방문하여 목격하였던 조선의 핵탄제조기술에 대해 말하는 중에 “그들은 뛰어난 기술(excellent technology)을 가졌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앞섰다(they are much more advanced than we are). 그들은 매우 정교한 설계(very sophisticated designs)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워싱턴포스트> 2008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2006년 미국 중앙정보국이 칸 박사와 연계된 스위스 핵기술거래업자 티너에게서 압수한 핵탄설계도는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소형 핵탄을 만드는 설계도라고 하였는데, 바로 그 핵탄설계도가 칸 박사가 1999년에 조선에서 입수한 핵탄설계도의 복사본이다. 그 핵탄설계도를 보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조선이 파키스탄에게 제조기술을 전수한 핵탄은 탄체지름이 600mm이고, 뇌관 64개가 부착된 소형 전술핵탄이었다. 이 소형 전술핵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한 소식을 전한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을 통해 세상에 실물이 공개되었고, 2017년 12월 12일 제8차 군수공업대회가 진행된 평양 4.25문화회관에 전시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탄두를 살펴보는 영상문헌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사진 5>  

 

 

▲ <사진 5> 위쪽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부문의 과학자 및 기술자들을 만나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하는 중에 화성-13 대륙간탄도미사일 전투부에 탑재하는 핵탄두 실물을 살펴보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핵탄두는 탄체지름이 600mm이고, 뇌관 64개가 부착된 소형 전술핵탄이다. 아래쪽 사진은 2017년 12월 12일 제8차 군수공업대회가 진행된 평양 4.25문화회관에 전시된 영상문헌인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탄두를 살펴보는 장면이다. 이 영상문헌에 나타난 핵탄두는 1999년 조선을 비공개로 방문한 파키스탄 핵개발 총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평양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떨어진 어느 지하핵무기고에서 직접 관찰한 소형 핵탄두와 같은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으므로, 오늘 조선은 탄체중량을 300kg으로 경량화하고, 폭발위력을 1킬로톤 이하로 감축한 5세대 극소형 전술핵탄을 보유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9년 파키스탄은 탄체지름이 300mm인 소형 전술핵탄을 탑재하는 나스르 방사포 시험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런 정황은 파키스탄이 조선에서 전수한 핵탄소형화기술을 지난 20년 동안 더욱 발전시켜 탄체지름을 300mm로 소형화하고, 탄체중량을 400kg으로 경량화하고, 폭발위력을 1킬로톤 이하로 감축한 극소형 전술핵탄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말해준다. 1킬로톤은 TNT폭약 1,000톤에 해당하고, 탄체중량이 400kg인 파키스탄의 극소형 전술핵탄은 4세대 핵탄으로 분류된다. 

 

폭발위력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1킬로톤 이하는 극소형 핵탄이고, 1킬로톤에서 15킬로톤 이하는 소형 핵탄이고, 15킬로톤에서 100킬로톤 이하는 중형 핵탄이고, 100킬로톤에서 1메가톤 이하는 대형 핵탄이고, 1메가톤 이상은 초대형 핵탄이다. 핵탄의 폭발위력을 감축하고, 핵탄체적을 소형화하고, 핵탄중량을 경량화하는 것은 고도로 발전된 핵탄제조기술이다. 

 

20년 전 조선으로부터 핵탄제조기술을 전수한 파키스탄이 오늘날 4세대 극소형 핵탄을 만들었다면, 핵탄제조기술에서 파키스탄보다 20년 이상 앞선 조선은 탄체지름을 300mm로 소형화하고, 탄체중량을 400kg으로 경량화하고, 폭발위력을 1킬로톤 이하로 감축한 4세대 극소형 전술핵탄을 아주 오래 전에 만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일본 <교도통신> 2009년 3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2009년 당시 조선은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소형 전술핵탄을 북부지역에 있는 지하핵무기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보도가 나온 때로부터 10년이 지났으니, 오늘 조선은 탄체중량을 300kg으로 경량화하고, 폭발위력을 1킬로톤 이하로 감축한 5세대 극소형 전술핵탄을 보유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국방과학원이 올해 3차에 걸친 시험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600mm 방사포에 5세대 극소형 전술핵탄이 탑재된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쏘면 미국 항모타격단과 강습상륙전단을 격상할 수는 있어도 격침할 수는 없고, 5세대 극소형 전술핵탄을 사용해야 그것들을 바다속으로 격침할 수 있다. 

 

조선에서 올해 600mm 초대형 방사포를 개발, 완성된 것은 군사적 의미만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도 지닌다. 미국 항모타격단과 강습상륙전단을 향해 조준련발사격으로 5세대 극소형 전술핵탄을 쏘아 격침할 수 있는 600mm 핵방사포의 출현이 조미협상에 주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올해 2019년 말까지 낡은 계산법을 버리고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여야 조미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시한부 통첩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바 있다. 이제 그 시한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밖에 없다. 미국이 앞으로 두 달 안에 낡은 계산법을 버리고 새로운 계산법을 조선에게 제시할 것인지 아니면 전략적 오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낡은 계산법에 계속 매달리다가 시한을 넘길지 정세분석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글을 집필하는 2019년 11월 초 현재, 미국이 낡은 계산법을 버리고 새로운 계산법을 조선에게 제시하려는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나는 손익계산에 밝은 트럼프 대통령이 낡은 계산법을 버리고 새로운 계산법을 조선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미국의 국가안보이익을 챙길 것으로 예견한다. 

 

하지만 조선으로서는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에 모두 대비해야 한다. 전략적 오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국이 낡은 계산법에 계속 매달리다가 시한을 넘기는 사태에도 대비하여야 하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시한을 넘기면, 지난 2년 동안 중지되었던 조미핵대결이 2020년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이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마련해야 할 것은 2020년에 재개될 수 있는 조미핵대결에 대비하는 방책인데, 조미핵대결이 재개되는 경우 미국 항모타격단과 강습상륙전단이 동해에서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핵탄피폭위험을 들씌우는, 가공할 접근차단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조선의 2020년도 대비책이다. 핵위협은 오직 핵위협으로만 막을 수 있다. 이번에 조선국방과학원이 5세대 극소형 전술핵탄을 탑재하는 600mm 핵방사포를 개발, 완성한 것은 내년에 있을지 모르는 조미핵대결에서 수행할 접근차단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이제껏 언제나 변함없이 그러해왔던 것처럼, 지금 조선은 협상재개에도, 핵대결재개에도 모두 준비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계산법을 조선에게 제시할 것인지 아니면 시한을 넘겨 핵대결을 불러올 것인지 양자택일의 전략적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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