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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는 왜 이리도 고요할까

[개벽예감 375] 폭풍전야는 왜 이리도 고요할까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12/23 [09: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똑같은 실패 반복하는 백악관의 불행

2. 세계는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을 목격하였다

3.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1. 똑같은 실패 반복하는 백악관의 불행

 

조미협상이 재개되느냐 마느냐 하는 초미의 문제를 놓고 긴장감이 끊임없이 감돌았던 2019년이 어느덧 저물고 있다. 연말시한을 불과 1주일도 남겨놓지 않은 지금, 협상재개전망은 사라졌다. 2020년에는 어느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시작되었던 조미협상국면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위태로운 결렬상태에 빠지더니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조미정상회동이 극적으로 성사된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았고, 10월 5일 스톡홀름 조미실무회담에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결국 막을 내렸다. 항구적이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8천만 민족의 요구와 기대는 조미협상국면의 종식과 더불어 열기를 잃어버렸다. 세인의 상상을 초월한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면 혹시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조미협상국면이 회복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협상국면이 막을 내린 어둠 속으로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폭풍전야의 분위기는 미국에서 이렇게 조성되었다. 2019년 12월 18일 미국 대외관계협의회(CFR)가 미국인 전문가 500여 명의 견해를 종합하여 발표한 보고서에는 2020년에 우려되는 국제위기상황 30건이 열거되었는데, “2020년에 조미협상이 중단된 상태에서 북조선이 장거리미사일시험발사를 계속하여 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하면서, 매우 높은 충격강도를 가진 조미대결위기는 내년에 미국이 감당해야 할 최우선 과제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또한 미국의 보도전문 텔레비전방송 <CNN>이 미국인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2019년 12월 15일에 실은 분석기사에 따르면, 조선이 2020년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거나, 핵시험을 진행할 ‘위험한 상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개선의 길로 나아갈 것처럼 보였던 조선과 미국의 관계가 이처럼 악화되면서 대결의 폭풍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원인은 조미협상을 파국으로 끌어간 백악관의 전략적 오판, 바로 그것이다. 단언컨대, 그것 이외에 다른 원인은 없다. 여기서 말하는 백악관의 전략적 오판이라는 것은 조선이 미국의 지속적인 ‘최대 압박’에 굴복하여 핵무기를 스스로 폐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오판, 그리고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요구를 거부해도 조선은 협상에서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오판이다. 

 

그런 치명적인 오판에 빠져 조미협상국면을 파탄으로 끌어간 백악관의 몰골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치명적인 오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백악관이 자초한 불행이다. 백악관의 전략적 오판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면서 미국에게 불행을 안겨준 역사, 그 시간을 계산해보면 2015년 1월부터 시작된 불행한 과거를 되짚어본다. 

 

<조선중앙통신> 2015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미국이 올해에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훈련을 림시중지하는 것으로써 조선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 것을 제기하고 이 경우 우리도 미국이 우려하는 핵시험을 림시중지하는 화답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2015년 1월 9일 미국에 전달했다고 한다. 조선 외무성이 ‘뉴욕통로’(유엔주재조선대표부)를 통해 미국 국무부에 전한 이 메시지는 조선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일념을 안고 제시한 첫 제안이었다. 미국이 조선을 위협하는 침략전쟁연습을 임시중지하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도 미국을 위협하는 핵시험을 임시중지하겠다는 조선 외무성의 메시지는 누가 봐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오바마 집권기의 국무부는 그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을 거들떠보지 않은 채 모략과 비난으로 응답하였다. 프랑스 통신사 <AFP> 2015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보도 당일 외국출장 중에 진행한 즉석기자회견에서 “한국과 미국의 일상적인 군사훈련을 핵시험 가능성과 부적절하게 결부시키는 북조선의 제안은 은연 중의 위협”이라고 모략, 비난하였다고 한다. 핵전략자산을 동원하는 침략전쟁연습을 일상적인 군사훈련이라고 뻔뻔스럽게 둘러대는 거짓말도 들을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심한 망발은 조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싫으면 그냥 거부한다는 의사만 밝히면 되는데도, 은연 중의 위협이니 뭐니 떠들어대며 모략, 비난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이 제시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에 대해 모략과 비난으로 응답했지만,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조선의 강렬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조선은 물러서지 않고, 또 다른 제안을 미국에게 제시하였다. <아시아 타임스> 2015년 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월 18일부터 이틀 동안 싱가폴에서 진행된 조미비공식대화에서 리용호 당시 조선 외무성 부상은 그 대화에 참가한 미국의 전직 관리들에게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핵시험을 중단하는 것과 더불어 핵탄두 소형화도 중단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미사일에 탑재하는 소형화된 핵탄두를 생산하는 조선에서 핵탄두 소형화를 중단한다는 말은 핵무기 생산을 중단한다는 뜻이므로, 그 제안은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그때 미국이 조선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여 조미협상이 시작되었더라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쯤 한반도는 전쟁위험이 사라진 평화시대를 맞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과 대화와 협상은 일절 하지 않겠다는 적의와 오만을 품고, 핵전략자산을 동원한 도발광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조선 외무성은 2015년 5월 30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다. 조선 외무성은 담화에서 “올해 초 우리가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할 데 대한 립장을 밝히고 그 실현을 위해 합동군사연습림시중지 대 핵시험림시중지 제안을 내놓았을 때 그와 관련한 대화조차 거부해나선 것이 바로 미국이며, 군사연습강행으로 대답해나선 것도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쌍기둥인 <전략적 인내>와 도발적인 합동군사연습을 계속 고집함으로써 끝끝내 조선반도 비핵화를 하늘로 날려보내고 말았다”고 지적, 비판하였다.  

 

2015년 당시 미국이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조선과의 대화와 협상을 무조건 거부하면서 핵전략자산을 동원하는 도발광기를 드러낸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2015년 1월 22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외부인사와의 대담 중에 조선에 대해 언급하면서 “요즈음 세상에서 그처럼 잔혹한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힘들다. 북조선은 잔혹하고 폭압적이며, 그래서 인민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한다”고 중상비방하면서 “북조선 정권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악담을 늘어놓았다. 2009년 10월 9일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오바마가 그처럼 적의를 품고 조선을 향해 중상비방과 협박공갈을 토해내며 도발적인 무력침공연습을 계속 감행하였으니, 협상은커녕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오바마 집권 8년 동안 도발광기만 지속되고, 협상이라는 말조차 들리지 않았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서방측 상업위성이 촬영한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있는 30MW 경수로의 외관이다. 조선의 핵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괴벽을 지닌 미국의 전문가들은 녕변경수로가 이제야 겨우 시험가동을 시작했다고 추정하였지만, 시험가동을 거쳐 2019년에 정상가동을 시작하였다. 녕변경수로를 정상가동하면 많은 전기를 생산할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무기급 핵물질도 생산한다. 핵탄두에 들어가는 무기급 플루토늄과 열핵탄두에 들어가는 트리튬을 생산하는 것이다. 2017년 내내 조선은 광란하는 핵제국과 정면대결하면서 자기의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핵무력 완성의 길로 나아갔고, 그 길에서 자력으로 경수로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미국의 도발광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도발광기는 협상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게 만든 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핵무력 완성의 길로 조선을 떠밀어주었다. 2015년 9월 15일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우라니움농축공장을 비롯한 녕변의 모든 핵시설들과 5MW 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였으며 재정비되여 정상가동을 시작하였다”고 하면서 “각종 핵무기들의 질량적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핵억제력의 신뢰성을 백방으로 담보하기 위한 연구와 생산에서 련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19년 9월 유엔총회 제74차 본회의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5MW 흑연감속로가 2018년 8월 중순까지 가동된 징후를 포착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온라인 매체 <38노스>가 2019년 6월 5일에 실은 상업위성영상자료 분석기사에 따르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30MW 경수로가 지속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위에 열거된 사실들을 살펴보면, 2015년 9월 15일부터 정상가동을 시작한 녕변핵시설들이 지난 5년 동안 가동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2015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회의에서 2020년에 이르면 조선은 인디아와 파키스탄을 능가하는 핵보유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는데, 그 예견은 현실로 되었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조선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핵전략자산을 동원하여 도발광기를 드러낸 험악한 상황에서 조선에게는 한반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핵억제력을 급속히 강화하는 것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선이 2015년 9월 15일부터 녕변핵시설들을 정상가동하여 무기급 핵물질을 대폭 증산한 것은 바로 그런 불가피한 선택의 일환이었다. 

 

미국의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 2016년 2월 21일 보도와 <연합뉴스> 2016년 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2월 조선 외무성은 ‘뉴욕통로’(유엔주재조선대표부)를 통해 미국 국무부에게 평화협정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의하였으나, 미국 국무부는 비핵화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우선이고 평화협정문제는 비핵화문제를 논의한 뒤에 논의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협상기회를 또 다시 날려버렸다고 한다. 

 

그처럼 협상기회를 계속 거부하는 미국을 더 이상 말로 상대할 수 없었던 조선은 미국에게 강타를 날렸다. 2016년 1월 6일 조선은 첫 수소탄기폭시험을 단행하여 미국에게 정면타격을 가했다. 2016년 1월 15일 조선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조선의 “첫 수소탄시험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을 수호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라고 하면서,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우리가 내놓은 미국의 합동군사연습중지 대 우리의 핵시험중지제안과 평화협정체결제안을 포함한 모든 제안들은 아직 유효하다”고 언명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수소탄기폭시험으로 정면타격을 당한 미국은 평화협정체결제안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더욱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미국은 조선이 제시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거들떠보지 않고 내던져버리는 행패를 부리면서, 조선이 핵무기를 일방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망발과 궤변을 늘어놓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제재압박을 비롯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여 조선을 짓눌러보려고 광란하였다. 그러나 핵제국의 광란 앞에서 물러설 조선이 아니다. 조선은 광란하는 핵제국과 정면대결하면서 자기의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핵무력 완성의 길로 나아갔다. 

 

 

2. 세계는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을 목격하였다

 

2016년 6월 15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태평양연단프로그램 국장 칼 베이커는 2016년 6월 1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진행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자신이 근래 조선측과 네 차례 만났는데, 조선측은 미국이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핵전쟁력량을 증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였다. 조선은 대미접촉통로를 끊어버리고 핵무력 완성을 다그쳤다. <조선중앙통신> 2016년 7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 정부는 2016년 7월 10일 유엔주재조선대표부를 통하여 미국 정부에게 “미국이 우리의 즉시적인 제재조치철회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상 이미 천명한대로 그에 대응한 실제적인 행동조치들을 단계별로 취해나가게 되며 첫 단계로 조미 사이에 유일하게 존재하여온 공식접촉통로인 뉴욕조미접촉통로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것을 통지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3년 6개월이 흐르는 동안 세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을 목격하였다. 

 

(1) 조선은 핵무력의 질적 발전과 양적 증대를 다그쳐 마침내 핵무력을 완성하였고, 지역 핵보유국의 지위밖에 갖지 못한 인디아와 파키스탄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2019년 12월 말 현재 조선은 세계적인 핵강국이 갖추어야 할 모든 종류의 핵무기를 생산, 배치하였다. 소형화된 수소탄과 전략핵탄과 전술핵탄을 체계적으로 생산, 배치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들을 탑재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신형 단거리비탄도미사일, 신형 대구경방사포를 만들어냈으며, 신형 핵추진잠수함도 건조하였다. 지금 미국, 로씨야, 중국에는 있지만 조선에는 없는 전략핵자산은 항공모함과 장거리전략폭격기 두 종류뿐이다. 대양을 건너가 다른 나라를 점령할 때 사용하는 항공모함과 장거리전략폭격기는 조선에게 필요하지 않으므로, 조선은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종류의 핵타격수단을 고루 갖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경축 열병행진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모습이다. 8축16축 발사대차에 실려 등장한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공식명칭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체연료로켓을 장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조선은 핵무력의 질적 발전과 양적 증대를 다그쳐 마침내 핵무력을 완성하였고, 지역 핵보유국의 지위밖에 갖지 못한 인디아와 파키스탄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미국, 로씨야, 중국에는 있지만 조선에는 없는 전략핵자산은 항공모함과 장거리전략폭격기 두 종류뿐이다.     

 

이것은 이미 2015년 1월부터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미협상을 시작하려고 힘쓴 조선의 성의 있는 제안과 노력을 미국이 끝내 거부한 결과다. 이렇게 놓고 보면, 지난 5년 동안 미국은 어리석게도 제 손으로 제 무덤을 깊이 파내려간 꼴이다.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들어앉은 것으로 하여 천만년 안전을 담보한다던 미국 본토에 핵재앙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자기파멸의 무덤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조미협상으로 자기파멸의 무덤을 메워보려고 시도하였지만, 싱가폴에서 협상의 첫 걸음만 내디뎠을 뿐 더 이상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한 채 세월만 허송하더니 결국 연말시한에 이르렀다.   

 

(2) 2016년 7월 6일 조선은 미국에게 비핵화의 정의를 명백히 제시하였다. 그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대변인 성명에서 “명백히 하건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다. 여기에는 남핵폐기와 남조선주변의 비핵화가 포함되여 있다”고 하면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는 “우리에 대한 핵위협공갈의 근원부터 완전히 제거하는 데서 시작되여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또한 성명에서 조선 정부는 비핵화를 실현하는 방도까지 제시하였다. 조선이 제시한 다섯 가지 비핵화실현방도는 다음과 같다.  

 

1) “남조선에 끌어들여놓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핵무기들부터 모두 공개하여야 한다.”

2)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그 기지들을 철페하고 세계 앞에 검증받아야 한다.”

3) “미국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수시로 전개하는 핵타격수단들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여야 한다.”

4) “그 어떤 경우에도 핵으로, 핵이 동원되는 전쟁행위로 우리를 위협공갈하거나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여야 한다.”

5) “남조선에서 핵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 한다.”

 

또한 성명에서 조선 정부는 “이러한 안전담보가 실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역시 그에 부합되는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며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그런데 일본 <요미우리신붕> 2019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29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정의를 합의하자고 하면서 자기들이 생각한 비핵화의 정의를 꺼내놓았다고 한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놓은 비핵화의 정의는 조선이 자기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반출하고, 조선의 핵시설 전반을 완전히 해체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선 조선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어린 아이의 지능도 갖지 못한 멍청이의 망상에 불과하다. 또한 조선 각지에 건설된, 3,000여 개소로 추산되는 핵시설들과 미사일시설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많은 시설을 완전히 해체하겠다는 것도 역시 어린 아이의 지능도 갖지 못한 멍청이의 망상이다. 

 

백악관이 그런 망상에 사로잡혔다면, 미국의 언론매체들이나 전문가들은 잠꼬대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미국의 언론매체들 가운데 그 어떤 곳도, 그리고 미국인 전문가들 가운데 그 누구도 2016년 7월 6일 조선 정부가 성명에서 언명한 비핵화개념정의와 그 실현방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조선을 향해 일방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만 중얼거렸다. 사태가 이처럼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미협상이 파국에 빠진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해놓은 연말시한을 앞두고 불안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12월 15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을 서울에 급파하였다. 그는 방한 이틀째 되는 12월 16일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조선 외무성에게 판문점에서 만나 협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조선 외무성은 응답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비건을 서울에 급파하여 판문점에서 실무협상을 재개해보려던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3.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2015년 1월 이후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체결을 끊임없이 요구하였고, 2018년 6월에는 미국을 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협상(조미정상회담)으로 끌어냈다. 하지만 미국은 조선과 협상을 몇 차례 하면서도 평화협정체결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로써 조미협상국면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였다. 

 

조미협상국면에서 ‘평화’라는 두 글자를 어루만졌던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는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제는 실망과 우려가 앞선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2019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2020년 어느 날 조미관계에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조미핵대결이 엄청난 폭풍을 몰아왔던 2016년의 경험을 돌아보면 2020년에 몰아칠 조미핵대결의 폭풍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2016년의 경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2016년 3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무모한 침략전쟁의 총포성을 도발자들의 참혹한 장송곡으로 만들어놓을 것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은 조선이 조국통일성전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1)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안전을 란폭하게 침해하다 못해 우리의 생존공간을 핵참화 속에 몰아넣으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핵전쟁도발광기에 전면대응하기 위한 총공세에 진입할 것이다. (중략) 우리 천만군민은 미제 완전소멸, 괴뢰역적 완전박멸의 구호 밑에 다지고 다져온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무진막강한 군사적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하는 총공세에 떨쳐나설 것이다.”

 

(2)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적들이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 생존권을 없애버리려고 피를 물고 덤벼드는 엄중한 상황에 대처하여 무자비한 섬멸적 타격을 가할 수 있게 선제공격적인 군사적 대응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중략) 우리의 군사적 대응조치도 보다 선제적이고 보다 공격적인 핵타격전으로 될 것이다.”

 

(3) “우리에게는 존엄 높은 최고수뇌부가 비준한 남조선 해방과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우리 식의 군사작전계획이 있다. 이에 따라 남조선작전지대 안의 주요타격대상들을 사정권 안에 둔 공격수단들이 실전배비되고 아시아태평양지역 미제침략군기지들과 미국 본토를 과녁으로 삼은 강력한 핵타격수단들이 항시적인 발사대기상태에 있다. 서슴없이 언명하건대 장장 반세기 이상 준비하여온 우리의 통일성전은 이 세계가 생겨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상상 밖의 주체적 전쟁방식으로 불이 번쩍 나게 이루어질 것이다. (중략) 이 결전은 우리 인민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피맺힌 원쑤들인 미제와 남조선괴뢰들과의 세기적 결산을 위한 애국전쟁이며 민족의 최대 숙원을 성취하기 위한 통일성전이다.”

 

그보다 앞서 2016년 2월 23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 운명의 눈부신 태양을 감히 가리워보려는 자들을 가차없이 징벌해버릴 것이다”라는 제목의 “중대성명”을 발표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중대성명에서 조국통일전쟁의 작전방침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1)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혁명무력이 보유하고 있는 강위력한 모든 전략 및 전술타격수단들은 이른바 <참수작전>과 <족집게식 타격>에 투입되는 적들의 특수작전무력과 작전장비들이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경우 그를 사전에 철저히 제압하기 위한 선제적인 정의의 작전수행에 진입할 것이다.”

 

(2) “1차 타격대상은 동족대결의 모략소굴인 청와대와 반동통치기관들이다. (중략) 2차 타격대상은 아시아태평양지역 미제침략군의 대조선침략기지들과 미국 본토이다.” 

 

(3) “우리에게는 임의의 시각, 임의의 장소에서 미국 땅덩어리를 마음 먹은대로 두들겨팰 수 있는 세계가 가져본 적이 없는 강위력한 최첨단공격수단들이 다 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2일 핵무기연구소를 시찰하면서 핵무기병기화실태에 관한 종합보고를 받는 장면이다. 사진에 나타난 회백색 물체는 조선이 만든 열핵탄두(수소탄)다. 이 열핵탄두는 화성-15를 비롯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전투부 안에 들어간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열핵탄두는 "핵탄위력을 타격대상에 따라 수십kt급으로부터 수백kt급에 이르기까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수소탄"이며,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탄두이며, "100% 국산화되어 마음 먹은대로 꽝꽝 생산하는" 열핵탄두다.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열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그런 조선을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미국이 조선을 건드리면 조선은 미국 본토에 보복핵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조선을 감히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조선에서 말하는 핵억제력이다. 미국이 조선을 감히 공격하지 못하므로, 조선은 조국통일성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조선과의 협상을 끝내 거부함으로써 조선을 통일전쟁의 길로 떠밀었고,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남조선 해방과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우리 식의 군사작전계획”을 비준하였지만, 2016년에 그 군사작전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2016년 당시 조선은 핵무력 완성의 막바지에 올라서고 있었다. 2016년 당시 조선은 미국 본토 서부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실전배치하였지만,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아직 시험발사하지 못하였다.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한 때는 2017년 11월 29일이다. 또한 2016년 당시 조선은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소형화된 수소탄을 만드는 중이었다. 조선이 화성-15에 장착할 소형화된 수소탄을 터뜨린 기폭시험에 성공한 날은 2017년 9월 3일이다. 

 

2016년 당시 조선은 핵무력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남조선 해방과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우리 식의 군사작전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한 2018년 이후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2020년에  조선에서 불어올 엄청난 ‘폭풍’을 미국이 우려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2016년 11월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는 색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선거유세 중에 그는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였고, 주한미국군철수문제도 거론하였다. 조선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는 색다른 목소리를 내는 트럼프 대선후보를 주목하면서 정권교체를 기다렸고, 그러는 사이에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 2016년 12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직후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를 만나 90분 동안 대화하는 중에 “북조선이 제기한 심각한 위협”에 대해 “경고”하였지만, 트럼프는 “그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북조선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갖지 않은 듯하였다”는 것이다. 

 

2017년 1월 20일 조선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갖지 못한 채 백악관에 들어간 트럼프가 조선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미치광이위장술밖에 없었다. 실제로는 조선을 침공하지도 못하면서 마치 미치광이처럼 행동하여 조선을 침공할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유치한 심리전술이다. 2017년 당시 유엔주재미국대사였던 니끼 헤릴리는 2019년 11월에 출판된 자기의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에게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라”고 하면서 “군사적 선택권이 탁자 위에 있다고 전하라”고 지시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토해낸 ‘화염과 분노’라는 망언은 미치광이위장술에서 나온 것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위장술을 다듬은 또 다른 심리전술은 미국이 조선의 핵시설에 대한 예방타격계획을 작성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 이른바 ‘코피타격설’이다. ‘코피타격설’은 미국이 정밀타격수단을 동원하여 조선의 핵시설 몇 군데를 폭격함으로써 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코피타격설’은 미국의 극우전쟁광 존 볼턴이 2017년 12월 16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서 진행된 송년만찬에서 연설하면서 처음 언급하였고,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허벗 맥매스터가 영국 런던을 방문하고 있었던 2017년 12월 20일 영국 언론매체 <텔레그라프>가 추측기사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코피타격설’도 미치광이위장전술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는 심리전술이다.

 

미국은 속이 뻔히 보이는 유치한 심리전술로 조선의 핵무력 완성을 가로막으려고 하였으나, 조선이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어댄다’는 속담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미치광이위장술과 ‘코피타격설’ 같은 미국의 심리전술은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지금 미국은 미치광이위장술과 ‘코피타격설’ 같은 유치한 심리전술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다.

 

2017년 1월 20일 조선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갖지 못한 채 백악관에 들어간 트럼프는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조미정상회담과 주한미국군철수를 추진하는 경우 미국 안에서 몰아칠 역풍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대통령 직권으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각료회의에서 주한미국군철수문제도 몇 차례 거론하였으나, 반대파들의 역풍을 맞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 심하지 않은 역풍에도 주저앉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제는 조선으로부터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차례다. 그런데 폭풍전야는 왜 이리도 고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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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판 강제징집’ 녹화공작 피해 1192명 첫 확인

[단독] ‘전두환판 강제징집’ 녹화공작 피해 1192명 첫 확인

 

 

등록 :2019-12-23 04:59수정 :2019-12-23 07:37

 

군 과거사위 작성 전체명단 입수

학생 강제 징집해 ‘프락치’로 활용
39년 만에 진실규명위 꾸려 “처벌” 촉구
유시민·심재철·김선수 등 포함돼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강제징집과 폭력을 당한 윤병기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추진위) 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의 책임자인 전씨의 처벌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강제징집과 녹화공작 및 선도공작 등 피해자들은 이날 전씨 집 앞에서 신군부의 강제징집이 시작된 1980년 이후 피해자 모임을 처음 꾸린 뒤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강제징집과 폭력을 당한 윤병기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추진위) 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의 책임자인 전씨의 처벌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강제징집과 녹화공작 및 선도공작 등 피해자들은 이날 전씨 집 앞에서 신군부의 강제징집이 시작된 1980년 이후 피해자 모임을 처음 꾸린 뒤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980년대 초 학생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고 이들을 ‘프락치’로 활용한 전두환 정권의 ‘녹화공작’ 피해자 전체 명단이 최초로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39년 만에 진실규명을 위한 모임을 꾸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한겨레>가 입수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녹화공작 및 강제징집 대상자 명단을 보면, 1천명이 훌쩍 넘는 피해자들이 교내 시위, 유인물 제작, 야학 운영, 동아리 활동 등의 이유로 강제로 휴학 등을 당해 군대에 끌려가거나 입대 뒤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명단에는 유시민(60) 노무현재단 이사장, 심재철(61)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함께 김선수(58) 대법관, 한상혁(58)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강택(57) 교통방송 사장 등이 포함됐다.

 

김 대법관은 서울대 고전연구회 회장을 맡았고 1981년 5월 불법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두달 뒤 강제징집을 당했다. 유 이사장은 1980년 5월 교내시위 참여, ‘농촌법학회’ 활동 등의 이유로 같은 해 9월 군대에 끌려갔다. 심 원내대표도 ‘농촌법학회’ 활동과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1981년 2월 강제 입대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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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라 짓밟고 자술서·프락치 강요…“죽지 못해 산 지옥”

 

“손톱 밑을 바늘로 찔렀던 고문 트라우마로 아직도 손톱을 짧게 못 깎아요. 초인종을 누르면 경찰인 것 같고, 아직도 누군가가 절 감시하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요.”

 

황병윤(58)씨는 1983년 경찰에 붙잡혀 강제로 군대에 끌려간 이후 3년의 기억이 아직도 꿈에 나올 정도로 생생하다. 1983년 7월 말께 대구대 4학년이었던 황씨는 동아리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대구남부경찰서에서 한달간 조사받았다. 황씨는 이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곧 육군 50사단에 강제징집됐다.

 

황씨는 군에서 3년간 꼬박 고문과 폭력, 따돌림에 시달렸다. 출생부터 강제징집 전까지 만난 사람들과 친구, 가족들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자서전’을 쓰도록 지시받았고, 쓰지 않으면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15일간 돌연 휴가증을 끊어주며 학내에 간첩과 북한 찬양자를 조사해 전하는 ‘프락치’ 노릇을 강요받았다. “데모하거나 사회 서적을 읽었다는 내용의 편지만 받아도 불려가 귀싸대기를 맞았고 부대 안에서 빨갱이 취급을 받으며 집단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어요. 군대 안에 있는 3년 내내 제 일거수일투족은 기록돼 위로 보고됐고 추궁당했습니다.”

 

김현동(57)씨도 1983년 3월30일 밤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집에 서울동대문경찰서 형사가 찾아와 잠깐 조사할 일이 있다고 해 따라나섰다가 유치장에 갇혔다. 4월1일 밤 11시 김씨는 경찰서 지하실의 작은 방에 끌려갔다. 붉은 조명이 비추는 방에서 누군가 007가방을 열더니 징집 영장을 꺼내 사인하라고 했다. “싫다”며 저항하자, 형사인지 군인인지 모를 6~7명이 김씨의 몸을 짓누르고 포박했다. 그는 4월2일 경기도 의정부시 101보충대에 실려 갔고, 삭발당한 뒤 군인이 됐다.

 

김씨가 강제징집된 것은 성균관대에서 ‘휴머니스트’라는 사회과학 동아리를 하면서 교내 집회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5월 김씨는 보안부대에 끌려갔고, 황씨와 똑같이 2주일 동안 100쪽이 넘는 ‘자서전’을 대여섯번씩 새로 썼다. 보안부대는 대학 시절 일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고 캐물었다. 부대는 김씨 역시 황씨처럼 휴가를 보내준 뒤 학교 동료들의 동향을 파악해 서울 퇴계로 ‘진양상가’에 있는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에 가서 보고하라고 했다. “프락치 짓은 죽어도 못하겠으니까 친구들한테 저를 피해 다니라고 하고 바깥으로 빙빙 돌았어요. 보고 거리가 없으니 진양상가에 가면 ‘너 그러면 군 생활 재미없을 줄 알라’고 협박당한 뒤 다시 학교 주위를 빙빙 도는 일이 반복됐죠.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었으니 경찰에 잡혀간 경력이 있어서 군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 동아리 사람 이름 정도는 말할 수밖에 없었죠. 지옥에 있는 심정이었어요.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했고,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이들을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공작을 진행했다. 2006년 7월 국방부 과거사위 발표를 보면, 강제징집자는 1152명, 녹화공작 대상자는 강제징집자 921명 등 모두 1192명이었다.

 

군대에서 동료를 배신하라고 요구하는 프락치 공작은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졌다. 1984년 종교·시민단체와 국회 등에서 녹화공작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은 뒤 강제징집은 중단됐지만, 군은 ‘선도공작’으로 이름을 바꿔 노태우 정권 때까지 수백명의 군인들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 2천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군에서 고통을 당했다.

 

강제징집·녹화공작 당시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6명이다. 선도공작 등까지 포함하면 모두 9명이 프락치 강요 등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의심된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강제징집·녹화공작 과정에서 군에서 숨진 6명 가운데 4명의 죽음이 국가폭력과 관련있다고 인정했다.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강제징집과 녹화·선도공작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맡았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2006년 녹화공작의 전반적인 규모 등을 조사해 발표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군이나 국가가 공식 사과하는 일은 없었고, 구체적인 피해자 명단도 확인해주지 않았으며, 피해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쉽게 나서지 못했다. 죽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던 시대에 강제징집은 큰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되레 ‘군에 끌려가 프락치로 활용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억눌러온 고통이 지금은 울분이 되어 터지고 있다. 전남대 학생이었던 노영필(58)씨는 1983년 군에 끌려가 군인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조사가 끝날 때쯤 목욕을 시켜준다는데,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니까 온몸이 엉망이더라고요. 그래도 참았죠. 동료들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노씨는 이제 40년 전의 고통이 세상에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희생된 사람이 많았잖아요. 오히려 군대에 끌려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녹화공작 자체가 국가권력의 명백한 폭력인데 가만히 두고 넘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강제징집 피해자 조종주씨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남긴 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강제징집 피해자 조종주씨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남긴 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종주(56)씨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사회과학 책에 대한 소감을 적은 편지가 경찰에 압수돼 대학교 2학년 때 대구북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조씨는 개학날 다시 경찰서에 끌려갔고 그길로 지프에 실려 대구 50사단에 간 뒤 군인이 됐다. 신병교육 때 강제징집된 동료들과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차이고 맞은 조씨는 2개월 만에 탈영했다. 하지만 몰래 만난 엄마가 “깔딱숨”밖에 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군으로 돌아갔다. 최근 그는 그 기억을 글로 써 다른 피해자과 공유했다. ‘전두환과 끝까지 싸운다’는 내용이다.

 

“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에요. 실제 친한 친구가 죽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전두환은 골프를 치고 쿠데타 날 잔치를 하더라고요. 40년이 지났지만 싸울 겁니다.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강제징집 문제 해결입니다.”

 

강제징집 피해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자택 앞에서 국군보안사령부가 부여했던 관리번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강제징집 피해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자택 앞에서 국군보안사령부가 부여했던 관리번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녹화공작 피해자들 “전두환 처벌받아야” 집앞서 회견

 

 

피해자 213명으로 구성된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추진위)는 21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전두환씨의 사죄 등을 요구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강제징집이 시작된 1980년 이후 강제징집과 녹화공작·선도공작 등 피해자들이 진실규명을 위한 모임을 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추진위는 이날 오전에는 서울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강제징집 등 진실규명과 주요 책임자 처벌”을 호소했다.

 

이들은 특히 전씨의 처벌을 강조했다. 윤병기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전씨가 29만원밖에 없다면서 골프를 치고, 치매라면서 술을 마시는 걸 보면서 피해자들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녹화공작 최종 지시자인 전두환이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병윤 공동위원장도 “피해자들이 전두환의 최근 행보를 보고 국가폭력을 공개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이날 정부와 국회,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보안사령부)에 △녹화·선도공작 관련 자료 공개 △공식 사과 및 재발 방지책 마련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전두환씨를 비롯한 책임자 사죄 등을 요구했다.

 

 

 

 

 

 

 

정환봉 권지담 기자 bong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1769.html?_fr=mt1#csidx0e119675b5e9b9d8f78c2d3ada5e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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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지선 스님 “여전히 분단의식에 사로잡힌 이들 안타까워… 민주화 멀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이석기 전 의원, 정치적 차원에서 석방해야”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9-12-22 17:35:54
수정 2019-12-22 19:47:08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 5층 조사실 복도에 섰다. 예전 이곳은 민주인사들을 조사하고 고문하던 곳으로 지선 스님도 1987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 5층 조사실 복도에 섰다. 예전 이곳은 민주인사들을 조사하고 고문하던 곳으로 지선 스님도 1987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김철수 기자
 

서늘한 기운이 온몸에 느껴진다. 좁은 복도 양쪽으로 작은 문들이 즐비하다. 발걸음 소리가 천정과 벽면을 타고 흐르며 묘한 긴장감이 퍼진다. 남영동 대공분실. 지난 1987년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민주인사가 고문을 당한 곳이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은 피의자가 이동하는 계단을 나선형 철제 계단으로 만들어 방향감각을 잃게 했다. 조사실 사이의 문들이 서로 마주 보지 않게 해 조사받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고문받은 이의 비명과 조사관의 호통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진다. 사무실마다 욕조가 갖춰져 있는 등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하고, 조사받는 이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다. 이곳은 지난해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위탁관리하며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수많은 민주인사가 이곳에서 조사와 고문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엔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도 있다. 1980년 ‘5.18광주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지선스님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맡았고, 1987년 6월 10일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의 종탑에 직접 올라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후보 지명 무효 선언문을 낭독함으로써 항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 일로 지선 스님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고, 내란음모죄가 적용돼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 19일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을 만났다.

지선스님은 인터뷰 내내 ‘낡은 분단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고, 이미 역사적 평가도 끝났는데 극우세력이 광주항쟁 등 민주화 역사를 뒤집으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이석기 전 의원 석방에 대해 지선 스님은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면서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선 스님은 아울러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지 40년이 되던 지난 12월 12일 기념 오찬을 갖는 등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지선 스님은 인터뷰를 마친 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있었던 전두환과의 악연을 소개했다. 지선 스님은 1988년 12월 전 전 대통령이 부인과 함께 백담사에 칩거할 당시에 스님과 승가대 학생들로 ‘민족자주통일불교협의회 체포결사대’를 꾸려 전세버스를 타고 전두환 이순자 구속 투쟁을 위해 백담사로 떠난 바 있다. 당시 공권력은 경찰과 백골단 등을 총동원해 이들을 잔혹한 폭력으로 제지했고, 여러 날을 투쟁하며 당시 대장을 맡아 체포결사대를 이끌던 지선 스님도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머리와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런 스님들의 항의에도 전두환은 부인과 함께 백담사에서 13개월을 지냈다. 더구나 백담사는 이후 30년 넘게 전 전 대통령이 은거했던 화엄실에 ‘제12대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달아 보존했다. 은거 당시 전 씨 부부가 쓴 의류와 목욕용품, 거울, 이불. 화장대, 촛대, 세숫대야 등도 함께 전시했다. 백담사는 전 전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부담스러웠던 듯 최근 인제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보전해오던 전 전 대통령의 물건을 백담사에서 치워버렸다고 한다. 지선 스님은 이런 백담사의 과거 행보를 비판하면서 일갈했다. 

다음은 지선스님과 일문일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김철수 기자

질문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취임한 지 2년이 넘었다. 이제 임기를 6개월여 앞두고 있다.

답변 처음에 들어올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같다.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임기가 6개월 남았으니깐 저보다 훌륭한, 경륜이 있는 분이 오셔서 이사장을 맡아주셨으면 하는 비림이다. 민주인권기념관을 짓는 것도 너무 늦어졌다. 훌륭한 분이 오셔서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질문 지난 9월엔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아직도 부마항쟁과 관련해 명예회복과 진상규명 등 가야 할 길이 멀다. 

답변 외형적으론 민주화가 보편화 되고, 이제는 질적인 민주시민사회로 가고 있다. 그런 만큼 길은 멀어도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 여야가 합의해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한다면 잘될 것이라고 본다. 해당 지역의 의원들도 그런 당부를 하셔서, 지역의 의원들이 힘을 보태 달라고 이야기를 드렸다. 

“이런 행태는 우리 민주화와 
통일 인권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동시에 세계 인류에게도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이 시간에도 광화문 광장과 국회를 점거해 
반공 궐기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뭐라 말할지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
 

질문 최근 극우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등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엔 자유한국당에서조차 이런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었다. 

답변 참 말문이 막힌다.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생각했다. 이제는 1970~80년대의 분단 이데올로기, 반공 멸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마음이 커져야 한다. 세계가 발전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낡은 이데올로기를 붙들고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특히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의원조차 의식이 변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 이건 국력 낭비다, 역사가 진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고, 국민의 정신을 퇴행시키는 것이다. 분단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역사적으로 평가가 끝났다. 제주 4.3, 부마항쟁, 광주 5.18, 6월항쟁 등 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문제를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선전 선동하고, 과거처럼 멸공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공격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우리 민주화와 통일 인권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동시에 세계 인류에게도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이 시간에도 광화문 광장과 국회를 점거해 반공 궐기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뭐라 말할지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 

“전두환 개인도 한심스럽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처럼 느껴진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러면 되겠나.  
그런 분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는 것도 문제다.”
 

질문 이런 배경엔 여전히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재판조차 거부하고 있는 전두환 씨의 행동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2,12 군사반란 40년이던 지난 12일엔 호화 식사 자리까지 가져서 비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답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정이 많아서 그렇다. 진정으로 민주화를 시키려는 열망도 있지만, 인정도 많다. 그들이 저지른 죄에 버금가는 처벌을 내렸다면 저리지 못했을 것이다. 전두환 씨가 저렇게 행동하고 발언하는 걸 활용하는 세력이 있고, 저 사람들 뒤에도 믿는 힘이 있기에 저런 일을 저지른다. 분단국가이기에 생기는 일이지만, 전두환 개인도 한심스럽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처럼 느껴진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러면 되겠나. 그런 분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는 것도 문제다. 12.12를 같이 일으켰고, 대통령도 같이 지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아들을 보내서 망월동 묘역을 두 번이나 참배하는 등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전두환 씨는 어떻게 된 것인지,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김철수 기자

질문 ‘민주’와 ‘인권’은 뗄 수 없는 가치다.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이곳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아직 ‘인권’이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일도 많다. 

답변 인문학을 바탕을 사회과학이 형성된 교육을 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민주화가 총체적이라면, 인권은 그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 행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권과 민주화는 하나이자 둘이고, 둘이자 하나이다. 인권이 완전히 보장된 사회라면 민주화와 인권이 다르다는 생각은 안 할 것이다.  

질문 ‘인권’과 관련해서도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답변 분단국가에서 교육이 잘못된 부분이 많다.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과 관련한 평등성이 교육에서 다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제 경제적으로 많이 부유해졌고, 성장이 되었고, 사상적으로도 자유로워진 세상에서 아직도 인권과 관련해서 난민 등 이런 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봤을 때 뒤늦은 감이 있다.

“역사가 더디 가더라도  
진보적으로 가고 있고,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촛불항쟁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 움직임이다.”
 

질문 촛불항쟁을 통해 민주화운동이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살아 숨 쉬는 힘임을 확인했다. 

답변 촛불항쟁에 대해 외국에서도 좋게 평가한다. 저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촛불항쟁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세계 모순이 집약된 한반도에서 민주화를 꿈꾸고 실천 노력했던 항쟁에서 터득한 것이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난 결과다. 과거와 현재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의 거울이 현재이고, 현재가 또 미래의 갈 길을 비춰준다. 과거, 현재, 미래 이 삼세는 늘 함께 살아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역사가 더디 가더라도 진보적으로 가고 있고,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촛불항쟁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 움직임이다. 

질문 한국사회에선 종북몰이가 여전하다. 수구세력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무조건 종북으로 몰고 있다. 이사장님께서도 과거 이런 공격을 당하셨는데 

답변 우리밖에 없는 분단국가의 슬픈 현상이다. 이념은 인간을 해방하는 면이 있지만,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면도 있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울면 불행해진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는 것은 안 된다. 우리에겐 그런 이데올로기에 빠지고, 집착해서 불행했던 과거가 있다. 인권과 생명을 유린한 비극이 많았다. 그전엔 빨갱이라고 했고,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이제 새로운 말이 나와 종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수구는 보수가 아니다. ‘수구꼴통’이 있을 뿐 진정한 보수는 없다. 열려 있지 않은 보수는 수구일 수밖에 없다.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이들이 수구다. 그분들은 역사를 후퇴시킨다.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세력을 매도한다. 이건 망국적인 사고방식이다. 그걸 버려야 하는데, 빨리 버리면 버릴수록 좋은데 수구는 그걸 못 버리고 있다.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
 

질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석기 전 의원 등 양심수 석방과 관련해선 종교계 등의 사면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저하는 상황이다.

답변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9년형을 받고, 7년이나 갇혀 있었다. 이제 2년이 남았다. 7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다. 오늘날처럼 스피드한 시대에 비춰보면 긴 시간이다. 이 전 의원도 그곳에 계시면서 많은 사색을 했다고 본다. 당신의 잘한 점 못한 점이 다 정리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쯤 나오면 훨씬 더 성숙한, 숙성한 사상들이 정리됐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정치에도 그런 생각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 

질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시면서, 완전한 통일 없이는 민주화가 없다고 강조하셨다. 분단 현실이 여전히 우리의 삶과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답변 민주, 민중, 통일 이 세 가지가 우리 민족의 화두다. 더 나가서 세계적인 인류의 화두도 된다. 그리고, 진보적 입장의 사람들에겐 자주, 민주, 인권, 평화통일이 영원한 화두다. 통일이 없으면 완전한 민주화도 없다. 통일이 됐다는 말은 완전히 민주화가 됐다는 말이고, 완전한 민주화가 됐다는 말은 통일이 됐다는 말이다. 분단 현실에서 모든 건 반쪽이다. 민주화도 반쪽, 철학도 반쪽, 사상도 반쪽, 종교도 반쪽, 문화도, 예술도 다 반쪽이다. 예전 활동할 때 민족 모순이 먼저냐. 민중 모순이 먼저냐, 무엇이 주요 모순이고, 부차 모순인지를 두고 논쟁했다. 하지만 이 모순이 존재하는 한은 그것은 겹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가 별로 진보하지 못했다. 두 모순이 해결돼야 민주주의도 희망이 있다. 분단 현실을 놓아두고, 해묵은 분단 이데올로기에 고착된 이들이 있는 한 민주주의도 안된다. 

박종철 열사가 조사를 받았던 509호 조사실엔 당시 모습이 보존돼 있다. 509호 조사실에 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박종철 열사가 조사를 받았던 509호 조사실엔 당시 모습이 보존돼 있다. 509호 조사실에 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김철수 기자

아울러 남북 모두, 분단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통엔 강대국의 책임도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이런 4대 강국들이 통일을 진실로 원하고 바란다면, 우리는 훨씬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겉으론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한국의 분단 모순 해결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거나 
게임을 할 때 파이팅(Fighting)이라고 하는데, 
화이통(和以通)했으면 한다.  
화합해서 대화해야 통한다.  
모든 것 갖추고 있는 큰 나라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작은 나라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데 
쉽게 대화문이 열리겠나.”
 

질문 북미 대화와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화해의 분위기를 이어가던 남북 관계가 최근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 어떤 지혜가 필요하다고 보시나? 

답변 우리 같은 이들의 상식으로 볼 때는 상호불신 관계가 문제다. 북미간에 불신이 크고, 서로 불안해서 진척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깐 큰 나라는 큰 나라답게 아량을 보이고, 작은 나라는 작은 나라답게 협조해서 잘 풀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강대국 열강들은 다 핵무장을 하면서,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가를 냉혹하게 지배하려고만 해서는 되겠는가. 자기는 선진 민주국가이고, 생명 존중, 인간 평등을 구가한다는 나라들이 왜 작은 나라에서 핵무기 만들었다고 트집 잡아서 없애지 않으면 가만 안 둔다는 으름장을 놓나. 그러니 작은 나라도 해볼 테면 해봐라, 죽기살기로 나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보일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는 예전 같은 전쟁 방식으론 안 된다. 그렇게 해선 세계 평화, 인류의 복지 국가 행복한 나라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니깐, 큰 나라에서 선물을 크게 주어서, 먼저 작은 나라의 불안감과 불신감을 씻어줘야 한다.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먼저 실천하면 제제 푼다고만 하니까, 작은 나라는 상대가 몇 배나 부강한 나란데, 한방이면 사라지는데 쉽게 포기할 수 있겠나. 지혜는 나눠주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거나 게임을 할 때 파이팅(Fighting)이라고 하는데, 화이통(和以通)했으면 한다. 화합해서 대화해야 통한다. 모든 것 갖추고 있는 큰 나라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작은 나라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데 쉽게 대화문이 열리겠나. 불신을 없애고, 불안감 없애야 한다. 

아울러 우리 국민도 이제는 폐기된, 구태의연한 안보의식, 그런 특정 이데올로기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 시민이 의식을 바꿔야 한다. 아직도 그런 망국적 개념과 인식에 머문 단체들은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걸 바꾸라고 강조하는 것은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민주 복지국가로 가려면 바꿔야 한다. 특히 이제 종교인들이 나서야 한다. 

“무한하게 부정하고,  
긍정해가면서, 더 세련되고,  
민주화의 선순환을 거쳐서  
행복한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뒤돌아보면 되는 것 적었고, 안되는 건 많아서 
제 고향말로 “민주화 어디 만큼 왔냐?”라고 
묻는다면 “당당 멀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질문 내년은 4.19혁명 60주년, 전태일 열사 50주기, 광주항쟁 40주기를 맞이한다.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큰 분기점이 된 내년을 맞이하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답변 해수가 많이 지났다. 그런 아픔을 해소 시킬 엄청난 세월이다. 빨리 변화시켰으면 좋은데, 이 속절없이 시간만 쌓이는 민족적 사건 앞에서 부끄럽다. 변하지 않고 늘 푸르다는 허공도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시사철 수많은 생명 살게 하고, 역사를 많이 바꿔가도록 한다. 허공도 이렇게 늦게, 더디 가진 않는다. 민주화운동의 분기점을 낳은 사건들이 전부 반세기가 다 지나고 있는데, 본질적 면에서 변하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런 60, 50, 40주기마다 참 안타깝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고, 인생을 살날이 많지 않은데, 세계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의 분열의식을 가지고, 지금도 정치인은 거기 포로가 되고, 수구세력이 지지 추종한다. 이러니 이제 우리보다 못한 나라가 우리를 언제 앞지를지 모른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김철수 기자

중요한 사건들의 분기점을 맞으며 새롭게 단 짧은 시간일지라도 새롭게 의미를 새기면서 맞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돌아보며 내 인식은 진보적인가, 퇴행적인가 반성해보는 시민이 되었으면 한다. 반성과 참회의 의식을 갖지 않는 시민이라면 나라의 장래가 없다. 어떤 집단과 개인도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고, 자기 발전의 구상을 창조해내야 하는데 여전히 분단 이데올로기, 후진적 역사의식에 머무는 이들을 보니 안타깝다.  

질문 임기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계획은? 

답변 역사에 풀지 못한 여러 사건, 풀리지 않은 사건들을 겸허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다. 민주화가 이제는 어떤 이들에겐 먼 과거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렇게 싫어하는 단어가 됐다. 살기에 바쁜 청소년들에게 민주화운동 관련 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하면 달갑게 생각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민주시민 교육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인문학이 바탕이 된 사회과학을 철저히 가르쳐 선진 민주국가로 가야 한다.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시기를 낡은 이데올로기, 편가르기, 낡은 정치에 갇혀 놓치고 있다. 경제는 조금 잘살게 됐지만, 정신적인 면은 후진적 면을 면치 못했다. 얼마 임기가 안 남았는데, 민주인권기념관을 빨리 지을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다. 설계를 마쳐서 내년엔 짓기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서울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도 세워져야 한다. 지자체가 땅과 돈을 내고, 부족한 부분은 정부가 지원해서 꼭 세워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시민교육도 다양하게 펼칠 수 있게 됐다. 민주시민교육센터, 민주화인권기념관 두 중점 사업에 힘을 쏟을 것이다. 

이사장을 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세계 인류와 공존 공생하려면 민주주의가 폭넓게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여러 선진국도 지금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역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화만 되면 큰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추구할 이상이다. 무한하게 부정하고, 긍정해가면서, 더 세련되고, 민주화의 선순환을 거쳐서 행복한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그렇게 완성돼도 그것이 끝이 아닌 만큼 모든 시민이 무한히 부정하고, 긍정하면서 가꿔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뒤돌아보면 되는 것 적었고, 안되는 건 많아서 제 고향말로 “민주화 어디 만큼 왔냐?”라고 묻는다면 “당당 멀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저 자신도 많이 반성했다. 제게 있어 비민주적이던 부분을 반성하고, 비민주적인 습관을 없애고, 민주시민이 되는 경험을 했다. 모든 것이 우리 성숙한 대한민국 시민 덕분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대동 세상, 제일 깊고 높고 성숙한 인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종교보다 거룩한 것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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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주통일' 외치다 사형당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이 언론탄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박정희 정신" 외치는 황 대표님, 58년 전 이 죽음 아십니까

'민족자주통일' 외치다 사형당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이 언론탄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19.12.22 20:02l최종 업데이트 19.12.22 20:21l

 

 조용수 사장 왼쪽
▲  조용수 사장 왼쪽
ⓒ 진실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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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58년 전인 1961년 12월 21일, 그날은 당시 가장 진보적인 신문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1930-1961)가 박정희(1917-1979)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적인 날이다. 박정희는 왜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지 7개월 만에 한 언론사 사장의 목숨을 앗아간 것일까?

1961년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한 직후부터 그해 연말까지 불과 반년 동안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왔다. 평소 '레드콤플렉스'가 강했던 박정희는 이 시기 진보인사들을 정당성 없는 자신의 군사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다. 미국이 과거 남로당원이었던 박정희의 전력을 의심하면서 나타난 박정희의 오버 액션이었던 것이다.

부정선거 원흉보다 진보인사 가혹하게 처벌한 박정희
 

역설적이게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60년 3.15 부정선거 원흉인 자유당 간부들이나 부정축재자보다 오히려 진보인사들을 훨씬 더 가혹하게 처벌했다. 박정희는 남북평화통일운동,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유족회 활동 등을 '특수반국가행위'로 규정했다.

그래서 1961년 5.16 직후 박정희 정권 아래서 "3.15부정선거 원흉들은 사형 등 중형을 선고 받았더라도 최인규 내무장관이 사형당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2~3년 내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혁신계와 청년·학생들은 다수가 장기 복역했고,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와 사회당 간부로 남북협상을 주장했던 최백근이 처형되었다."(서중석, <한국현대사 60년>)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빨갱이 경력을 세탁시켜주는 용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당해야만 했다. 그 어이없는 게임의 최대 희생자 중 한 사람이 바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였다." (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조용수 사장
▲  조용수 사장
ⓒ 진실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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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는 1960년 4.19 직후 혁신정당인 '사회대중당' 후보로 민의원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그 다음해인 1961년 2월 13일 조용수는 진보신문인 민족일보를 창간해, 당시 혁신계 인물들이 주장하던 남북협상, 중립화통일, 민족자주통일 등 진보적 논지를 중점 보도한다.

 

그런데 3개월 후인 1961년 5월 18일, 5.16쿠데타 집권 후 불과 이틀 만에, 박정희 정권은 조용수를 연행 후 구금한다. 그리고 조용수가 이른바 간첩혐의자 이영근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창간해 "국민을 선동하고 북한을 고무, 동조하였다"는 혐의로 박정희 정권은 조용수를 수사하고 민족일보는 곧 폐간 조치된다.

그러나 이영근이 간첩이 아니라는 것과 조용수가 이영근에게 어떤 자금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곧 밝혀진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박정희 정권이 이미 짜놓은 재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욱이 1990년 5월 14일 이영근이 사망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민족지 통일일보를 창간, 대 조총련투쟁과 재일교포의 법적지위향상에 기여했다'는 공적으로 이영근에게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한다.

그럼에도 1961년 7월 12일 박정희가 설치한 이른바 혁명검찰부는 1961년 7월 23일 조용수 등 민족일보 관련자들을 혁명재판소에 기소한다. 그리고 혁명재판소 심판부(1심)는 1961년 8월 28일 조용수에게 소급입법으로 제정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을 적용해 "사회단체의 주요간부로서 민족일보 사설 등을 게재하여 북한의 활동을 고무·동조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한다(당시 1심 재판부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배석했다). 그러자 당시 국제언론인협회, 세계신문인협회 등 언론인들은 조용수 구명운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조용수 구명운동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이어서 1961년 10월 31일 박정희 정권의 상소심판부(2심)는 "사회단체 간부를 적용한 것은 잘못이나 정당의 주요간부"였으므로 위 특별법 위반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조용수에 대한 사형선고를 확정한다.

언론사 사장을 사형시킨 박정희

형이 집행되기 전 국제펜클럽과 국제신문인협회 등의 항의전문이 발표되고 심지어 일본에서도 조용수 사장에 대한 구명운동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다수 국내언론은 침묵한 가운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1961년 12월 20일 조용수에 대한 사형문서에 결재한다. 그리고 결국 3심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그 다음날인 1961년 12월 21일, 추운 겨울날 조용수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집행당한다. 이때가 그의 나이 고작 31세. 사형 당하기 전 조용수는 이런 유언을 남긴다.
 
"민족을 위해 할 일을 못하고 가는 것이 억울하고, 신문을 만들기 위해 동지에게 꾼 돈을 갚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민족일보 창간호
▲  민족일보 창간호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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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말없이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조용수 사장의 사후 45년 만인 지난 2006년 1월 10일 그의 동생 조용준은 필자가 몸담았던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 조용수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을 신청했다.

1961년 5월 18일 당시 조용수 등에게 소급 적용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이 1961년 6월 22일 제정되기 이전인 상황에서 체포·구금되었다. 또한 당시 형사소송법상 구속기간이 수사기관 10일, 검찰 10일이며, 검찰은 10일을 초과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법원 허가를 받아 연장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용수 등은 1961년 5월 18일 체포·구금된 때로부터 66일간 구금되었다가 1961년 7월 23일 기소되었다. 결국 불법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권은 재판 과정에서도 역시 불법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저지른 것이다.

1961년 당시 육군중령으로 박정희가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원장을 지낸 이석제는 회고록에서, 1961년 5․16 직후 자신이 육군본부 상황실에서 상황을 점검하던 중 미국이 박정희와 김종필의 배경을 뒷조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이석재는 '미국의 사상공세를 일거에 역전시키기 위해서 비상한 조치가 필요' 하다고 판단해 '혁명군이 강력한 반공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만큼 미국 측에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보여줘야만 혁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보도연맹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반공에 대한 의지를 미국에게 보여주고자 결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전국 각지의 군경, 헌병대에 비상을 걸어 보도연맹 관련자들을 체포할 것을 명령'했으며, '나중에는 보도연맹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소위 혁신정당 관련자, 좌파이데올로기에 물든 지식인, 사회단체지도자, 노조지도자 등 4000여 명에 이르는 사회 불만세력과 좌익 활동 경력자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해 체포, 수감'했다고 적고 있다.

조용수 사건은 먼저 민족일보 관련자들을 체포해 구금한 후 그들에게 적용될 소급입법을 만들어 기소와 재판절차를 거쳐 처벌하는 과정을 밟았다. 조용수에 대해서는 사장의 지위에서 게재한 민족일보 사설 등을 '정당의 주요간부 지위에서 게재한 것이며 그 내용이 북한을 고무·동조했다'고 왜곡해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의 확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감형 없이 조용수에게 사형을 집행했던 것이다.

10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2006년 11월 28일 진실위는 조용수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에 대해 이렇게 발표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게 북한을 고무·동조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한 (박정희 정권) 혁명재판부의 판단이 잘못됐고...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조용수 사장의) 가족 3명을 간첩혐의로 불법감금하고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

...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은 당시 대외적으로 5.16 주도세력이 철저한 반공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주고, 대내적으로는 쿠데타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할 필요성이 있었던 상황에서 불법으로 제정된 소급입법에 의해 당시 혁신계의 주장을 강하게 대변하고 있던 대표적인 신문 민족일보의 사장 조용수를 희생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민족일보 논지만으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게 극형인 사형을 선고하여 다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생명권을 박탈한 것은 문명국가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비인도적, 반민주적 인권유린에 해당한다."


진실위의 진실규명으로부터 2년이 흐른 2008년 1월 16일 열린 재심에서 지난 1961년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박정희에 의해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결국 사후 4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 죽인 후 반세기 후에 죄가 없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박정희의 죄는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헌화를 위해 국화를 받고 있다.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헌화를 위해 국화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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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신을 배워야한다"는 황교안

그럼에도 지난 10월 26일 박정희 4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렇게 박정희를 평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독보적인 성취와 성공의 기적을 일구어낸 분이다. (우리는) 박정희 정신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야당 대표 황교안씨가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만약 황교안씨가 그토록 존경하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그가 야당 대표로 살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어두운 국정원 지하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이미 사형선고를 받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황교안씨가 최근 "민주주의가 종언을 고했다", "좌파가 언론을 장악했다" 또는 "문재인 정부는 역대 가장 비(非)민주적인 정권"이라는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

또, 한국당은 지난 20일 "좌편향으로 심각히 기울어진 미디어 환경을 바로 세우고자 한다"며 "불공정 보도에 대한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불이익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태그:#조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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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군사적 대책' 논의, '새로운 길' 터닦기?

北 "국가방위사업 결정적 개선 중요한 문제 토의"
2019.12.22 14:02:01
 

 

 

 

북한이 이달 말 당 전원회의 개최를 앞두고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어 국방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2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3차 확대회의를 주재했다며 "국가방위사업 전반에서 결정적 개선을 가져오기 위한 중요한 문제들과 자위적 국방력을 계속 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문제들이 토의되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이날 "조성된 복잡한 대내외 형편에 대하여 분석통보"했다며 "정세변화 흐름과 우리 혁명 발전의 관건적 시기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를 비롯한 나라의 전반적 무장력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조직 정치적 대책들과 군사적 대책들을 토의·결정하며 조직문제를 취급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통신은 이번 회의에서 "당의 군사 전략적 기도에 맞게 새로운 부대들을 조직하거나 확대 개편하는 문제, 일부 부대들을 소속 변경시키는 문제와 부대 배치를 변경시키는 중요한 군사적 문제와 대책들이 토의결정되었다"고 덧붙였다.  
 

▲ 22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3차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날 회의에서 북한은 국방력 강화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긴 했으나 그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북한이 이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전략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보아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과 관련한 결정이 이뤄졌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초대형 방사포와 이스칸데르급 미사일 등 북한이 올해 시험한 무기들의 상용화 과정에서 필요한 군 조직 개편논의가 이뤄졌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세부 내용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북한이 전원회의를 앞두고 군사위원회를 개최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공언했던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군사적 정비 작업으로 해석되는 측면도 있다.  

또 지난해 5월 열린 당 군사위원회 회의의 경우 한 달 전인 4월 전원회의에서 결정된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 결정을 이행하는 차원이었지만 이번 회의는 전원회의에 앞서서 열렸다는 점도 군사적 부문에서 준비 사항을 점검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한 것 아니냐는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이번 회의 결과 보도에서 미국이나 국제사회에 대한 적대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나름의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미국이 지속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요구하는 등 외교적 해결의 동력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향후 미국과 국제사회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군사적 행동 및 구체적인 대외정책 방향을 언급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당장 북한이 한일중 정상회의가 있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발사하거나 위성 발사 등의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미 간 대화 테이블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입장 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북한의 '새로운 길'을 향한 움직임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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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발포명령, 이순자는 돈에 민감했다

등록 :2019-12-22 09:05수정 :2019-12-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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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전두환 추적자 임한솔

세금체납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전두환 추적 10개월여 만에
골프장, 12·12 오찬 영상 공개

얻어맞고 입도 틀어막혔지만
온전한 진상규명과 처벌 때까지
전두환 추적은 계속될 것이다
지난 11월7일 강원도 홍천 한 골프장에서 전두환씨가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임 부대표 제공
지난 11월7일 강원도 홍천 한 골프장에서 전두환씨가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임 부대표 제공
 
“전두환씨에게 명함 줬는데, 연락 왔어요?”라고 물었더니 “진짜 연락을 꼭 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씨와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임한솔(38) 정의당 부대표를 지난 18일 서울시 서대문구의회에서 만났다. 그가 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임 부대표는 지난달 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강원도 홍천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12·12 쿠데타 40년 당일에는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호화 오찬을 하는 모습을 촬영해 잇따라 공개했다.

 

그가 전씨와 마주한 두 번의 시간은 짧았지만, 마주하기까지는 길었고, 마주한 뒤 파장은 컸다.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 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전씨를 강제구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임 부대표가 ‘전두환 추적자’가 된 이유는 뭘까? 아울러 서른여덟 나이에 15년의 정당 정치 경력을 가진 ‘청년 정치인’이 바라는 정치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골프회동과 12·12 오찬 모습을 잇달아 포착한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골프회동과 12·12 오찬 모습을 잇달아 포착한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0개월 넘게 추적했다고 들었어요. 지난 11월7일 전씨가 오전 9시23분께 집을 나와 오전 11시45분께 강원 홍천 ㄱ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시작했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알고 잠복을 했나요. ‘영업 비밀’이 궁금해요(웃음).

 

“ㄱ골프장에서 주기적으로 골프를 친다는 정보가 있었어요. 매월 특정일 당일과 전후로 몇차례 잠복을 해봤는데, 잘 포착되지 않았어요. 어떤 날은 벌써 떠났나 싶기도 하고, 새벽부터 지키고 있는데 오후에 가나 싶은 날도 있고…. 전씨 동선의 패턴을 어느 정도 그려갈 무렵에 광주 재판이 시작됐는데, 그 전후로 동선과 날짜를 바꾸었는지 오리무중이 됐어요. 자중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겪어보니 ‘너희가 뭐라고 떠들든 내는 내다’, 이런 스타일이더라고요.”

 

―그날은 정확하게 포착을 했어요.

 

“전씨가 바깥출입을 할 때 이런저런 제보가 들어와요. 전씨 차량이 대형 에쿠스 리무진이고 경호차가 따라붙으니 아무래도 눈에 띄거든요. 전날부터 뭐랄까, 이날이다 싶어 새벽부터 대기했죠.”

 

―영상 촬영자가 따로 있고, 준비도 치밀하게 한 것 같아요.

 

“골프를 쳐본 적도 없는데, 사전답사를 몇번 갔어요. 퍼블릭 골프장인데, 그 드넓은 곳에 코스도 여러 개여서 어느 코스를 돌지 알 수가 없었어요. 골프장 특성을 파악하고 골프 전문가한테 조언도 구해 전씨가 칠 코스를 예측했죠. 그날 산도 하나 넘었어요(웃음).”

 

골프 장면 포착은 사실 전씨의 체납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됐다. 임 부대표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의원에 당선된 뒤 ‘서대문구 연희동 주민’ 전씨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다. 1000억원 넘는 추징금 미납 말고도, 지방세 체납액(9억7800만원)이 수년째 서대문구 1위였다. “구청이 취한 행정조처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보통사람은 1억원만 체납해도 가택수색을 해서 압류하는데 말이죠. 구에 문의했더니 ‘하긴 해야 하는데요…’라는 식이었어요.”

 

그는 서대문구와 서울시에 여러차례 공문을 보내 압박을 가했다. 그해 11월26일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기동팀이 ‘체납 해소를 독려하러’ 전씨 집을 방문했지만, ‘알츠하이머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비서관 말에 철수했다.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구의회 등을 통해 이를 공론화했고, ‘빈손 철수’가 12월6일 밤부터 보도됐다. 그리고 제보가 들어왔다. “12월6일에 전두환이 골프 치는 걸 봤다”는 거였다. 전씨가 재판 출석을 거부할 무렵인 그해 여름과 12월6일 골프를 치는 장면이 목격됐다는 <한겨레> 보도(1월17일치)와도 일치한다. 임 부대표는 “반드시 현장을 포착해 공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골프장에서 전씨 일행한테 맞기도 했다면서요.

 

“너무 일찍 따라붙으면 눈치를 챌까 봐 1번홀 다 치고 2번홀에서 드라이버샷 하는 걸 보고 다가갔죠. 카메라를 여러 대 들고 갔어요. 하나 뺏기면 다른 거로 찍으려고요. 그런데 가장 비싼 걸 빼앗아 집어 던지더라고요. 저희 일행이 다 맞았는데, 다행히 골프채 헤드가 아니라 손잡이로 때렸어요(웃음).”

 

―이순자씨한테 욕도 많이 먹었다고요.

 

“골프장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손님으로 모신 분이야’라고 하기에 ‘그러면 이용요금은 받으셨냐’고 물었거든요. 그걸 들은 이씨가 갑자기 고성을 지르고 욕을 했어요. 입이 걸더라고요. ‘○○○야, 꺼져’ 등등…. 이씨가 제일 민감해하는 게 돈인 것 같아요. 서울시 가택수색(지난해 12월20일) 때 상황을 전해 들었는데, 전씨는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가고, 이씨는 세금 낼 돈 없다면서 길길이 소리를 질렀대요. 골프장에서도 돈 얘기 나오니까 욕을 하고, 참 저열하다고 느꼈어요.”

 

―이씨한테는 ‘알토란 같은 돈’이잖아요.

 

“이씨는 가택수색을 당한 게 분했는지 그 직후 1월1일에 유튜브 매체에 직접 출연했는데, 거기서 ‘남편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망언을 해요. 제가 일정 부분 도의적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까지 해요.”

 

망언은 골프장 영상에도 나온다. 임 부대표가 광주학살 책임을 묻자 전씨는 “광주하고 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광주학살에 대해 책임 없어” “나는 광주시민 학살하고 관계없어”라고 거듭 말한다. 임 부대표는 전씨가 ‘발포 명령’에 대한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느꼈다. “저한테 ‘뭐야, 인마’ 그러다가 발포 명령 했냐고 물으니까 ‘발포 명령 위치에 있지도 않은데, 명령권이 없는데’라면서 길게 항변을 하잖아요. 그러다 ‘너 군대 갔나 왔냐’ 묻고요. 4·19 때 발포 명령을 한 최인규 내무장관이 사형을 당했는데, 그래서 두려움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전씨는 발포 명령, 이씨는 돈에 민감하다는 말이네요. 전씨한테 명함도 주셨는데, 잘 갖고 있을까요?(웃음)

 

“연락을 꼭 줬으면 좋겠어요.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누고 싶어요. 왜 그러시냐, 노태우씨를 봐라, 어찌 됐든 광주에 사죄하고, 추징금도 다 내고 조용히 지내는데, 당신도 그럴 기회가 있다, 이렇게 권유하게요. 단 한마디라도 5·18에 대한 사죄를 끌어내면 더없이 좋을 텐데 그걸 기대하기는…. 끝까지 발뺌할 스타일이에요. 노태우씨 아들이 올해 광주에 두 번 갔고, 부인 김옥숙씨도 1988년에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는데, 진심 여부를 떠나 전씨와는 상반된 모습이죠.”

 

―식당 오찬은 12·12 쿠데타 날짜에 착안해 포착한 건가요?

 

“네. 설마 이날은 집에 있겠지 싶으면서도 혹시나 싶어 대기했는데, 가까운 데도 아니고 강남으로 넘어가더라고요.”

 

이날 역시 전씨 집에서 강남구 압구정동 중식당까지 따라붙었다. 골프장처럼 트인 공간이 아니어서 영상을 찍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이 ‘영업 비밀’은 자세히 밝히기 어렵다). 가장 싼 8만원짜리 단품 요리를 주문해 먹으며 2시간 넘게 전씨 일행을 기다렸다.

 

―전씨가 2층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왔는데, 여성 일행이 임 부대표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죠. 그때 심경이 어땠나요?

 

“골프장에서는 맞으면서도 웬만큼 할 얘기를 다 했는데,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첫 문장도 제대로 못 끝냈어요. 전씨는 그사이에 급히 차를 타고 가버리고….”

 

―입을 틀어막고도 ‘12·12 쿠데타 기념 오찬’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쏟아지자 전씨 쪽 민정기 전 비서관이 ‘우연히 정해진 친분 모임 날짜’라는 장문의 ‘보도참고자료’를 냈죠.

 

“네. 나흘 뒤 예정돼 있던 재판에 안 나간다고 했죠. 재판에서 대중에 공개되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것 같은데, 국민들이 분노할 모습이 두 번이나 포착됐으니 강제구인 될까 봐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착한 알츠하이머’라니, 기가 막혀요.”

 

전씨 쪽은 A4용지 3쪽이 넘는 자료를 통해 재판 불출석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씨는 “알츠하이머를 초기에 발견해 꾸준히 치료한 덕에 행동장애나 우울증, 공격성 행동, 환각 등의 중증 증세를 보이지 않는 ‘착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했다.

 

―이런 대목도 있어요. “(전씨는) 치료가 어려운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보다 아내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가슴 아파하고 절망한다.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깊은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불행에 대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모진 말을 입에 올리지는 말아야 한다.”

 

“자기가 피눈물 나게 만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참, 기가 막히죠.”

 

―‘서대문 주민 31만명을 잘 모시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딱 한 명 전두환씨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한 걸 봤어요. 집요한 추적 이유는 뭔가요.

 

“전 대전 출신인데, 예상대로 ‘너 전라도지’라는 악플이 많아요. 5·18은 광주만의 과거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죠. 하지만 최종적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고요. 전씨가 살아생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역사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고 생각해요. 특히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뒤집으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잖아요. 일베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이종명·김순례 의원이 공공연히 폭동 운운하고요. 이런 세력과 시도가 여전히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지난 12월1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식당에서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전두환씨에게 말을 걸고 있다. 임 부대표 제공
지난 12월1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식당에서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전두환씨에게 말을 걸고 있다. 임 부대표 제공

 

임 부대표는 2014년 지방선거 낙선, 2016년 보궐선거 낙선 등 3수 끝에 진보정당 처음으로 서대문구에서 구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의원이든 구청장이든, 자기 지역구에 전씨가 사는데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어요. 오죽 답답하면 제가 나섰겠어요.” 인터뷰는 자연스레 ‘청년 정치’와 ‘진보 정치’로 이어졌다.

 

―나이에 비해 정당 생활을 오래 했어요. 국회 고령화, 청년세대를 선거 때만 들러리 세우는 식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루 종일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한숨)….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대학 졸업 직후 17대 국회 노회찬 의원실에서 일했고, 19대 국회 심상정 원내대표 공보비서를 했고요. 두 명의 걸출한 진보정치인 가까이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트레이닝 된 거죠. 지방선거 출마를 통해 지역정치도 경험했고요. 어느 당이든 이런 경험들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일 등 선진국처럼 10대 후반부터 자연스럽게 정당을 접하고, 정당 활동을 통해 정치인으로 훈련되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핀란드에서는 서른네살 여성 총리가 나왔죠.

 

“제가 구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한 게 서른네살 때였는데(웃음)…. 우리는 청년세대가 정치권에 진입하는 데 아무런 기반을 제공하지 않고 있어요. 그걸 정당이 해야 하고, 진보정당인 정의당에서부터 활성화하는 데 제가 기여하고 싶어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육아요(그는 6살·4살 두 아이의 아빠다).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있거든요.”

 

―전두환 추적은 계속하는 거죠?

 

“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21671.html?_fr=mt1#csidx6563746550a44a2ab131ae473b65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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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강도의 논리, 협상 마감 시한 없다?

‘2019년 12월 31일’은 명확하고도 분명한 북미협상 마감 시한이다.
  • 김광수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승인 2019.12.21 08:58
  • 댓글 1
▲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비건 대표는 말한다. “미국에 협상 마감 시한은 없다.(12.16)” 발언 취지로만 본다면 미국은 ‘북이 얘기해온 연말’이란 시한에 개의치 않으며 계속 협상해 나가고 싶다는 정도의 의미 같다. “우리는 시한 없다. 일하자”는 발언에서도 같은 속내가 읽혀진다.

하지만, 이 발언은 명명백백하게 틀렸다. 이유는 미국 자신은 갑(甲)이고, 북은 을(乙)이라는 인식과 비례되어져 이 인식은 결국 마감 시한 결정권은 오직 미국 자신에게만 있다는 오만함으로 연결되어져서 그렇다.

그래서 만약 이 논리를 북이 수용하게 된다면 북은 협상 종료될 때까지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아무런 국가적 행위 없이 무조건적으로 인내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시한과 기간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줘야한단 말인가? 동등하지 않는 공정성이다.

시한이 있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지금의 문제, 즉 미국이 북의 요구인 ‘새로운 계산법’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시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자국이 처해있는 정치·군사적 및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는 미국이 풀어내어야 할 숙제이지 (이 숙제를) 자신들이 풀지 못한다 하여 그 책임 모두를 상대방인 북에게만 전가한다? 정직하지도 외교적이지도 않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협상을 계속 하겠다 면서도 미국은 북에게 줘야할 보상과 양보가 전혀 없다. 이른바 북은 미국과의 적대 관계개선을 위해 핵실험도, ICBM발사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도 단행하였지만, 이 선의에 대해 미국은 그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명백한 미국의 대북제재결의 위반이다. 왜 미국의 대북제재결의 위반일까? 유엔결의안 2397호 28항(강조, 필자. 이 결의안에는 명백하게 '대북제재 결의안'이란 용어는 없다. 원문도 제재를 의미하는 'sanction'이 아닌 'Resolution' 즉 '결의안' 또는 '해결책'이 나오며 연번호가 있을 뿐이다. 해서 '결의 제0호' '제0호 결의'라 번역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유독 북에게만 ‘대북제재 결의안’이라고 번역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의도 때문이다. ‘해결’보다는 ‘제재’에 방점 찍고 싶어 하는 미국과 분단적폐세력들의 농간 말이다.)에는 '북(조선)이 결의안을 준수하는 정도에 따라 (제재를 강화 또는) 수정·중단·해제할 수 있도록'한 조항이 있는데, 이 조항을 과연 미국은 이행하고 있으며 그럴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과 미국은 ‘유엔결의안 2397호 28항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이고,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역행하여 제재를 강화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은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협상을 계속하자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은 하나도 보상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목적인 북의 추가적 군사도발을 막고자 하는 자신들의 국익만 앞세우는 이율배반적 도발행위 다름 아니다.

공정하고 대등해야 할 약속이 이렇게 어느 일방(=북한)에만 적용되고, 희생적으로 적용되어져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 정의를 위배한다.

그래놓고 생각을 한번 잠깐 해보자. 미국은 당연히 자신들이 지켜져야 할 시한이 없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트럼프에게는 당장 좋다. 재선활용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도 패권지위를 계속 유지하는데 시간에 쫒기지 않는다. 북의 군사적 도발이 없는 한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러니 계속 그렇게 갑질 해나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북은? 절대적으로 그렇지(=괜찮지) 않다. 모든 주권국가에 규범적으로 보장되어있는 자주권과 발전권이 침해당해 북은 엄청난 고통과 곤란을 계속 겪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①대북제재가 지속됨으로 인해 국가의 정상적인 경제발전 경로를 왜곡시킨다.
②국가 간 외교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국가경쟁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③정전협정의 지속으로 인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계속 시달려야만 한다.

▲다음으로는 등가의 문제이다. 즉, 북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대가는 경제적 혜택이나 번영에 대한 언급 정도이다. 이걸 믿고 북이 핵을 포기한다? 너무나도 처절한 반면교사가 있어 이 논리는 북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날강도의 논리와 똑같다.

리비아의 경우가 그 예다. 미국으로부터 핵프로그램을 폐기만 하면 경제지원 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리비아는 핵프로그램 폐기했다. 그런데 돌아온 미국의 약속은 약속한 경제지원은 고사하고, 내전을 빙자한 미국의 공격에 무너졌다. 이걸 너무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북이 그 말만 믿고 핵을 폐기한다? 불가능한 상상이다.

동시에 확실한 등가가 보장된 것도 아닌다. 달리 말하면 안보와 군사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등가여야 한다고 한다면 북과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공정하고도 공평한 등가는 적대정책 철회 대(對) 평화협정체결을 중심에 놓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보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약속은 하지도 않았고, 양보라며 지금 한 약속도 미국은 쥐꼬리만 하게 보상하겠다는 것이고, 그것도 가역적인 방식으로만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북에게는 사실상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미국의 태도야말로 현찰 받고 어음 주는 격. 그것도 의도된 부도어음에 가까운 것을 주겠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미국은 위에서 확인받듯이 자신들이 지켜야 할 유엔의무는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북 보고는 핵·미사일 활동을 재개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며 전면전을 경고하는 미국이야 말로 완전 사기범이고 범죄국가가 아니고 뭣이란 말인가?

하여 굳이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정당하지도 외교적이지도 못한 방식으로 시한을 무한정 연장하려는 미국의 태도야 말로 제아무리 선의적으로 이해하려 해도 일방적이며 패권적이고, 마피아집단과 너무나도 똑같은 폭력적 범죄 집단이라고. 또 이런 ‘나쁜’ 폐단을 막으려면 오히려 국제사회가 미국에게 (마감)시한을 줘 유엔외교를 정상화해야 된다고.

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할 수밖에 없다. 백번양보해 재선을 앞두고 반드시 외교성과를 보여줘야 할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그 유일한 외교적 성과가 북의 추가 군사행동(ICBM 발사 등)은 막으면서도 예의 ‘bad deal’까지는 안가는 그런 외교적 성과라고 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트럼프 행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자 곤궁함이지 북이 풀어야 할 숙제이고 곤궁함은 아니지 않는가?

다른 말로는 북의 입장에서는 계속 시간을 유예하고, 고통을 감내해가며 인내해야 할 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협상이 결렬되면 결렬된 상태에서 주권국가로서의 국가행위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며 그 활동으로 미국과 다시 협상의 룰(rule)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연동해 지금의 문제가 시한의 문제라기보다는 위에서 확인받듯이 미국이 처해있는 정치·군사적 환경과 정파적 이해관계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고 한다면 북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질 필요는 없다. 하여 북의 입장에서는 협상 시한을 정해놓고 미국에게 요구할 자기근거와 주장, 입장을 충분히 분명하게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정당성도 비교적 명확하다.

▲우선은, 2017년 11월 29일 국가핵무력완성 선언이후 단 한 번도 유엔결의 위반을 한 적이 없다. 핵실험과 ICBM을 발사한 적이 없다는 말이고, 비례해 이에 대한 상응 대가를 유엔결의 정신에 비춰 미국에게 충분히 요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시한을 정해 그 이행정도에 따라 다음 전략을 선택해야 될 명백하고도 분명한 근거가 북에게는 있다. 다름 아닌,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올 12월 31일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라며 충분한 시간과 명분을 줬기 때문이다.

적용하려면 이렇듯 그것이 비록 시한이라 하더라도 똑 같이 두 국가(=북, 미국)모두에게 공히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외 다수가 있다.

김광수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webmaster@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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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녹화공작’ 피해자들, “우리의 벗들을 전두환 당신이 죽였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12/22 10:12
  • 수정일
    2019/12/22 10:1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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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공작 피해자들, 전두환 집 앞서 진상규명 촉구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9-12-21 17:41:32
수정 2019-12-21 17:41:3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소속 피해 생존자 윤병기 씨가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을 향해 강제징집(정권이 학생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 녹화공작(녹화사업, 강제 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해 육체·정신적 폭력이 수반된 정신교육)의 소명과 사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문앞에 서 있다. 2019.12.21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소속 피해 생존자 윤병기 씨가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을 향해 강제징집(정권이 학생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 녹화공작(녹화사업, 강제 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해 육체·정신적 폭력이 수반된 정신교육)의 소명과 사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문앞에 서 있다. 2019.12.21ⓒ뉴스1
 

"강제징집피해자
OO대 OOO
보안사령부 관리번호OOOO"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강제징집·녹화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고문 등 국가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21일 전두환 씨 집 앞에 섰다. 이들은 본인의 이름과 보안사령부 관리번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강제징집 녹화·선도 공작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소속 피해 생존자들이 21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강제징집(정권이 학생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 녹화공작(녹화사업, 강제 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해 육체·정신적 폭력이 수반된 정신교육)의 소명과 사죄를 요구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으로 향하고 있다. 2019.12.21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소속 피해 생존자들이 21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강제징집(정권이 학생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 녹화공작(녹화사업, 강제 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해 육체·정신적 폭력이 수반된 정신교육)의 소명과 사죄를 요구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으로 향하고 있다. 2019.12.21ⓒ뉴스1

21일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주최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렸다. 이들은 "우리는 지금 1,200여 명 강제징집 녹화 선도공작 피해자 당사자로 이 자리에 섰다"며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우리에게 가했던 무자비한 폭력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전두환 군사 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학생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고, 이들을 학생 운동권 시위 계획 등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공작을 벌였다. 

추진위는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고 민주화운동을 압살하기 위해 우리의 학생 신분을 박탈하고 강제징집했다"면서, "고문과 협박으로 우리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고 민주주의 수호를 같이 외쳤던 사랑하는 동지들을 배신하고 밀고할 것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추진위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명예와 숭고한 의지를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우리의 벗들이 세상을 떠났다"며 이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이어 "아직도 동지들의 사망경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실체적 진실이 감추어져 있다"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들은 계속하고 있지만 기무사령부의 자료제출 비협조로 아직도 진실은 의문 속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해자 중에는 가혹한 녹화공작의 여파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이행하지 못하고 병마와 씨름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지도 있다"며 "'좌경세력에 대한 근원발굴'이란 미명아래 가혹한 수사를 하고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허위 자백한 내용을 근거로 군사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벗들도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우리를 강제로 군에 끌고 가고, 우리의 인권을 짓밟고, 우리를 프락치로 활용하기 위해 협박하고 고문했던 자들이 아직도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며 "불과 며칠 전, 12월 12일 군사 쿠테다로 권력을 찬탈했던 전두환과 그 일당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그날을 자축하는 파티를 열었다"고 분노했다.  

추진위는 이날 정부와 국회,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기무사령부)에 ▲녹화·선도공작 및 의문사 관련 자료 즉각 공개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기본법' 개정,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전두환 씨와 관련 책임자들의 사죄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 뒤, 이들은 항의서한을 전씨 자택에 전했다. 이후 추진위는 오후 3시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창립총회를 진행했다.  

"사랑하는 우리 벗들을  
전두환, 당신이 죽였다.  
이미 당신들에게는 기억조차 없겠지만  
사랑하는 우리의 동지들을  
전두환, 당신과 당신의 졸개들이 죽였다.  
29만원 밖에 없다던 전두환,  
당신의 딸이 호화쇼핑으로 신문기사에 오르내릴 때  
우리는 우리 곁을 떠난 동지들을 생각하며 분노의 눈물을 삼켰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전두환 당신 패거리들,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국가와 헌법과 국민과 민주주의를 찢어 발겼던 당신들,
우리의 영혼을 죽이고자 우리를 협박하고  
우리를 고문했던 당신들,  
우리에게 밀고자가 되기를 강요했던 당신들로부터 우리는 살아남았다"

(항의서한 내용 중)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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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외치는데 죽어라 안듣는' 2019년

[文정부, 남은 임기 이것만은 ③]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2019.12.20 13:49:51
 

 

 

 

문재인 정부가 올해를 끝으로 반환점을 돈다. 지난달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이미 절반의 임기가 지났을 수도, 이제 반환점일 수도 있다. 그 사이 촛불로 표방된 정부의 개혁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정권 지지층과 반대층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정부는 대내외 악재에 둘러싸여 갈 길을 잃은 기색이 역력했다. 부동산 폭등과 저조한 경제 성적이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었던 소득주도성장과 충돌해 민심 이반을 낳았다. 아울러 갈수록 활로를 잃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대적인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고, 일각에서는 더 자유주의적 개혁만이 위기 돌파의 묘책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이 같은 갈등은 지난 10일 밤 겨우 국회를 통과한 512조2504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으로 일단 결론 지어졌다. 하지만 더 강력한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는 이른바 '퍼주기 예산' 논란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국 사태는 집권 세력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다는 평가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조국 사태는 진보 진영과 민주당 지지 층, 젊은 세대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정의당으로 대표된 주류 진보 진영은 이 사태에서 갈 길을 잃었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페미니즘 정권을 표방한 취임 시기 대통령의 목표와 달리, 정부 임기 내내 커져간 남녀 갈등은 특히 올 한해 들어 여성 연예인의 연이은 자살, 일제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야기한 한일 갈등과 이에 대한 정부 대처를 비판하는 여성계의 목소리,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의 주류 인터넷 문화 등과 맞물려 폭발하는 양상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캠페인은 특히 올해 '타다 논쟁'으로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표방한 정부는 톨게이트 노조 등의 문제에서 어떤 리더십도 보이지 못했다. 그 사이 특히 친재벌 노선으로 전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정부를 향한 노동계의 배신감이 올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구적 위기가 된 환경문제, 곧 기후위기 문제는 올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한국에서도 대규모 길거리 시위를 열어 정부를 압박했고, 미세먼지 문제는 올해도 한국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정부는 기후위기 문제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해 이 문제를 우려하는 이들의 실망을 샀다.  
 
현 정부에 반환점 이후, 곧 남은 임기가 특히 중요한 까닭이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프레시안>은 특히 경제, 노동, 여성, 환경, 진보의 다섯 분야에 관해 각 분야 전문가와 인터뷰를 준비했다. 여태 문재인 정부의 해당 분야 정책을 어떻게 보았는지,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이라영 작가는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정치적인 식탁>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해 목소리를 내 왔다. 인터뷰에서 이 작가는 올해를 지난해의 '미투 혁명'에 이은 사법 판결을 중심으로 설명해나갔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집권 초 '페미니스트 정부'라 자처했던 것에 비해 여성관련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 점을 지적하고 변화를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 서울시 마포구 프레시안에서 진행한 이 작가와의 인터뷰 전문을 정리했다.
 

▲이라영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죽어라 말 안 듣는' 백래시의 2019년 
 
프레시안 : 올해는 '장학썬'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이 세 가지 사건을 묶어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다. 여성단체가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었지만 수사는 결국 흐지부지됐다. 
 
이라영 : 많은 여성들이 올해 초부터 '장학썬'을 놓고 싸웠다. 그런데 지금 장자연 사건, 아니 '방사장 사건'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 방사장 사건은 엉뚱하게 윤지오 사건이 됐고 김학의 재판은 시간을 질질 끌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무죄가 나왔다. 아주 어이없는 상황이 됐다. 버닝썬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외치는데 이 사회는 죽어라 말을 안 듣는다는 생각이 든다. 2019년을 보면 딱 그렇다. 
 
그런 판결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 사법적인 결과들을 볼 때마다 여성 개개인들이 굉장히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법부가 특히 불법촬영을 너무 사소하게 취급하는 것 같다. 불법촬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성들도 있는데, 정작 실형을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 반성해서 봐주고 초범이라 봐준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미래를 더 걱정해주는 듯하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 여성은 살해당하는 비율도 높고 자살률도 굉장히 높다. 이는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라 생각한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여성들은 점점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있다. 동시에 거기에 대한 반동, 백래시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프레시안 : 많은 언론에서 이를 '젠더 갈등'이라고 표현한다.
 
이라영 : 정말 문제라 생각한다. '젠더 갈등'이라는 표현 자체가 차별적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많은 언론이 젠더 문제를 다룰 때 마치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다룬다는 태도로 이쪽 목소리 저쪽 목소리를 동일하게 다루는데 그건 결코 동일한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목소리, 큰 사람의 목소리가 유지되는 것이다. 언론에서 표현 하나하나 신경써야 한다. 
 
안희정 유죄판결, 민주진보진영 성찰의 계기 돼야 
 
프레시안 : 올해 의미 있는 일은 없었나. 
 
이라영 : 의미 있는 일도 많았다. 우선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판결을 냈다. 안희정 전 지사도 유죄판결을 확정 받았다. 변화의 움직임도 보인다. <한겨레신문>의 경우 젠더데스크가 생겼다. 주류 언론이 그만큼 젠더의식에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다. 백래시가 일어나고 있지만 동시에 변화하는 게 분명 있다. 
 
프레시안 : 안희정 성폭력 유죄판결은 젠더 이슈에서 올해 가장 의미 있었던 일 아닐까 싶다.  
 
이라영 : 역사적인 판결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안희정 같은 경우는 민주진보진영에서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팬덤을 형성하고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안희정 판결은 민주진보진영이 기존의 정치 방식을 성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희정 판결이 중요한 점은 법원 판결에 의해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게 공식화됐다는 점이다. 많은 남성들이 이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개념을 문제 삼았다. '감수성'이라고 하니 마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라 오해하는 듯하다. 성인지감수성은 젠더의식과 같은 말이다. 인권의식의 하나다. 막연한 개인의 주관적인 촉이 아니다. 권력의 불균형과 그로 인한 폭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정준영·최종훈이 유죄를 받은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라영 : 개인적으로 형량은 부족하다 생각하지만. 다만 여기서 그때 정준영이 법정에서 했던 말을 짚고 싶다. 정준영이 "도덕적으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성범죄를 도덕적인 범위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그들에게는 도덕적인 것과 사법적인 것이 명확히 분리돼있다. 도덕적으로 비판을 받는다 할지언정 사법적인 문제가 없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반면 여성들에게는 도덕적인 타격도 치명적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설리 씨나 구하라 씨가 법적으로,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최종범이 유포 협박을 하면서 한 말이 "너 끝나게 해줄게"였다. 구하라 씨가 법적으로 죄를 진 것도 아니고 연인 사이에 성관계 했다는 게 협박을 받을 거리가 되나. 엄청난 문제다. 사회가 성폭력범 남성보다 애인과 성관계한 여성에게 윤리적으로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설리와 구하라, 여성혐오에 의한 사회적 타살 
 
프레시안 : 최근 두 여성 연예인이 세상을 떠났다. 정작 그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혔던 여성혐오에 대한 반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더 죄책감을 느꼈다.
 
이라영 :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두 여성 연예인이 세상을 떠났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분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혔던 여성혐오를 짚어야 한다. 악플만 문제가 아니다. 그 악플을 용인하고 부추긴 것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대중, 나아가 한국 사회가 여성 아이돌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나. 
 
특히 구하라 씨 같은 경우는 문제가 꽤 명확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법적으로 재판이 오가는 중이었고 전 남자친구 최종범에게 집행유예가 나왔다. 촬영물 유포 협박은 무죄가 나왔다. 그 과정이 또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피해자임에도 비난받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 친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 것들이 본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정말 심각한 것은 구하라 씨 한 사람의 좌절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여성들에게도 메시지를 준다. '법원에 가서도 해결이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반대로 남성들에게는 '저 정도 협박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준다. 정말 나쁜 판결이다.
 

▲이라영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그럼에도'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프레시안 : 여성들의 요구나 인식의 변화에 비해 사법부의 변화가 더딘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백래시 아닌가 
 
이라영 : 백래시가 다방면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드러난 백래시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많은 남성들이 <82년생 김지영>에 거부감을 느끼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이 특별한 사건이 드러나는 내용은 아니다. 여성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일상 안에서 남성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남성들은 그게 억울하다고 한다. "내가 가해자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남자도 억울하고 힘들어!" 그런데 그 말도 재밌는 게, 남자들을 힘들게 하는 건 여자가 아니다. 가부장사회가 남자들에게 주는 부담감이다. 차별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지금 나타난 현실이 어떻게 차별적이지 않을 수 있나. 밝혀진 성차별 채용만 해도 몇 건인가. 그런데 이런 현상에는 침묵한다. 리얼돌 문제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자위도구가 여성을 재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성의 성적대상화 문제다. 불법촬영에 가담하는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나도 억울하다", "나는 우리 아버지들만큼 가부장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호소력이 있는가. 
 
프레시안 : 여성들이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 비해 변화가 너무 더디다. 거의 없는 수준이다. 많이 허무하고 지치는 것 같다. 
 
이라영 : 세상이 요지부동이니 결국 냉소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게임업체를 봤을 때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퇴출시키지 않았나.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거다. '너 까불지마, 너도 이렇게 될 수 있어' 이렇게. 2016년에 넥슨 성우 교체 사건 때 굉장히 위험하다 생각했다. 많은 여성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정의당에서 논평을 냈었는데 내부 반발 때문에 논평도 철회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않고 재갈물리고 침묵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여성들은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분노가 극에 달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이게 제도적으로 흡수가 안 되고 있다. 지금은 비동의 간음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게 핵심이라 생각한다. 제도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같은 일은 반복된다. 지금 사법제도가 여성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오히려 '강간문화'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여성 피해자가 뭔가 빌미를 줬다는 식이다. 그런데 비동의 간음죄처럼 여성들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정치인들은 자꾸 '국민적 합의'를 들먹인다. 이런 식이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모든 국민이 합의할 수 있는 문제가 뭐가 있나. 검찰개혁, 정치개혁 이런 걸 놓고 그런 말을 하진 않는다. 사회 소수자나 약자들에게 필요한 문제, 차별금지법이나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국민적 합의를 들먹인다. 기득권의 목소리에 편들어 주겠다는 뜻 아닌가. 정치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프레시안 : 법이나 제도는 변화가 느리더라도,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도 같다. 대중문화에서는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라영 : 지금의 변화를 의미 있게 보아야 한다. <겨울왕국>만 해도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나. 또 지난여름 <알라딘> 실사 영화도 그렇다. 알라딘이 아니라 자스민이 술탄이 되는 이야기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자스민이 술탄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알라딘이 술탄이 되는 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들과, 자스민이 직접 싸워서 술탄이 되는 이야기를 보고 자란 사람들의 생각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이면 기존 문화에 균열을 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문화적으로 그런 점이 미흡한 듯 같다. <82년생 김지영>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영화계 전반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듯 하다. 영화 속 여성은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된다. 구타당하거나 시체로 등장한다. 살아있는 여자도 정형화된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마저도 여성 배우들의 나이가 많아지면 안 보인다.
 
그래서인지 요즘 작은 영화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벌새>라든가, <보희와 녹양>, <우리집> 이런 영화들이 굉장히 좋았다. 분명히 어느 한 쪽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작지만 그 변화를 우리가 침묵하지 않고 자꾸 주목하고 보여줘야 한다.
 

▲이라영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공기와 같은 폭력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프레시안 :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다. '정상가족'이라는 게 무엇인가
 
이라영 : 저녁밥 먹고 나서 보는 공중파 일일드라마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가정 모습이 있지 않나. 사회활동을 하는 아버지, 집안을 돌보고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 자녀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기도 하고.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현실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건 굉장히 폭력적이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일상적이고 구조적이어서 폭력이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라영 :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무서운 점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이다. 가령 진보적인 사람들도 '이혼가정'에 편견이 있는 경우가 있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출생률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결혼제도 밖에서 태어난 아이는 인정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성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됐을 때 자기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정상궤도에서 이탈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여성은 나이와 관련된 재생산 능력으로 평가를 받으니까. 정상적인 삶이란 게 대체 뭔가. 정말 무서운 이데올로기다. 누가 누구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건 아니지만 다 같이 은연중에 동참하고 있다.
 
프레시안 :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결국 여성혐오 사회의 작동 원리라고 이해된다.
 
이라영 : 가부장제를 유지하려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모든 게 연결돼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동성애에 혐오적일 수밖에 없다. 이성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이데올로기가 주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거부해야 한다. 결혼하지 않으면, 애 낳지 않으면 제 역할을 안 한다는 그 느낌. 여성들에게 그런 불안감을 심어준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첫 번째 역할을 '엄마'로 둔다. 가정을 잘 돌보고 남성의 보조자로 길러낸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계속 자기가 부족하다 느끼는 이유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부족하다고 죄책감을 느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가 아프거나 학업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다 여성 탓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기 검열을 안 할 수 있나.
 
정부에서는 출산율이 낮아져서 문제라고 그러는데 저는 이 사회가 여성이 출산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사회라 생각한다. 동물적인 두려움에 가깝다.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자아이로 태어나는 것도 그렇지만, 전혀 사람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에서 사람을 낳으라고 하는 게 모순이라 느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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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전면 재수사, 국회 난동 황교안 구속" 광화문을 되찾자!

"세월호 전면 재수사, 국회 난동 황교안 구속" 광화문을 되찾자!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12/21 [23: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1일 오후 5시 30분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촛불연대 주최로 ‘세월호참사 성역 없는 전면 재수사, 책임자 처벌 및 국회 난동 황교안 구속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박한균 기자

 

▲ 광화문 촛불문화제에 한 시민이 핸드폰에 '촛불'앱 켜고 참가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故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씨도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묵념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참가자가 '국회난동 황교안 구속' 팻말을 들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아이들도 광화문 촛불문화제에 함께 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사회자 권오민 청년당 공동대표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이날 문화제에는 약 2천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으며, 22개 팀 유튜버가 참가해 집회 현장을 SNS로 실시간 생중계했다.     © 박한균 기자

 

▲ 문화제를 마친 참가자들은 “황교안을 구속하라! 공수처를 설치하라!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구호를 외치면서 광화문을 출발해 조선일보 앞까지 행진했다. 조선일보 앞에서 "검찰개혁 이뤄내자","조선일보 폐간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12.12쿠데타 40년이 되는 지난 12일 5.18단체들이 전두환 구속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포승에 묶여 무릎을 꿇은 채 쇠창살 안에 갇힌 전두환 조형물을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설치했다.     © 박한균 기자

 

▲ 유튜버 '김말순TV'의 김말순 공연. '국민이 기가 막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예술단 공연모습. 대진연 예술단은 ‘황교안 구속 가자’, ‘자유한국당 해체송’ 노래와 ‘누가 죄인인가’극 공연을 보여주었다.     © 박한균 기자

 

“세월호참사 전면 재수사하라!”

“국회 난동 황교안을 구속하라!”

“광화문을 탈환하자!”

 

21일 오후 5시 30분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촛불연대 주최로 ‘세월호참사 성역 없는 전면 재수사, 책임자 처벌 및 국회 난동 황교안 구속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문화제에는 약 2천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으며, 22개 팀 유튜버가 참가해 집회 현장을 SNS로 실시간 생중계했다.

 

사회를 맡은 권오민 청년당 공동대표는 “2016년 우리가 들었던 뜨거운 촛불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이곳 광화문 광장에 나왔다. 오늘은 민주주의의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 태극기 모독 부대에서 민주주의 성지 광화문을 되찾는 자리가 될 것”이라면서 이날 문화제의 의의를 밝혔다.

 

문화제는 “광화문을 탈환하자!”는 구호와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는 묵념으로 시작되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예술단의 ‘화인’ 노래 공연에 이어 무대에 오른 장훈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우리가 자유한국당 해체, 황교안 구속을 외쳐온 이유는 사회적 참사특조위 조사와 검찰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또다시 세월호 참사를 모욕해온 언론사 대표인 김기수를 사회적 참사특조위의 위원으로 추천하며 조사를 방해하고 있다. 그것은 본인들이 참사 책임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면서 “유가족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도 100여 명을 더 고소 고발하여 국민들 앞에 그 죄를 낱낱이 밝힐 것”이라고 결심을 전했다.

 

지금까지 약 800회에 걸쳐 세월호를 다룬 팟캐스트 방송 ‘새가 날아든다’ 제작자 푸른 나무는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도 왜, 누가, 그렇게 했는지 누구나 알고 싶어 한다.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 부대들은) 감옥에 있는 자들을 그렇게 지키려고 하면서 억울하게 떠나간 손자, 손녀 같은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제 이런 억울한 희생은 끝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남참전개혁연대 회원도 촛불문화제에 참가해 ‘박정희 해외 불법 재산 환수로 국민재산을 되찾자’라고 주장했다.

 

청년들도 ‘국회 난동 황교안 구속’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결의했다.

 

장규진 ‘황교안 구속수사대 504’ 대장은 청년을 대표해 “황교안이 있어야 할 곳은 박근혜 옆 방 ‘504’”라면서 황교안 대표를 구속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문화제 중간에는 유튜버 ‘김말순 TV’의 김말순이 ‘국민이 기가 막혀’ 공연을 펼쳐 보여 분위기를 돋웠다. 대진연 예술단은 ‘황교안 구속 가자’, ‘자유한국당 해체송’ 노래 공연으로 참가자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자유한국당은 서민들의 절박함을 외면하면서 유치원 3법 같은 기본적인 것도 방해하는 최악의 기득권이자 당장 해체해야 하는 역사상 최악의 정당”이라면서 “SNS에 ‘나경원 황교안 공동 고발’을 검색해서 국민연대 고발에 참여해달라. 참여 국민들 명단을 취합해서 다음 주 화요일에 수만 명의 이름으로 그들을 다시 한번 고발할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친일파와 미세먼지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보자”라고 외쳤다.

 

또 문화제에는 참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시민은 “우리 국민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자유한국당은 당장 사라져라. 그리고 세월호참사로 떠나간 아이들아. 너희들의 억울한 죽음을 온 국민이 알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 황교안을 구속하라!”라고 외쳤다.

 

이어 장경욱 변호사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한 해리 해리스 미국대사를 규탄하기 위해 미 대사관저 항의 행동을 한 대학생들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발언했으며, 대진연 예술단도  ‘누가 죄인인가’ 극 공연을 통해 구속된 4명 대학생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 박한균 기자

 

마지막 발언에 나선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는 “황교안 대표는 (박근혜 정권 시절) 법무부 장관을 하면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했으며,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을 뿐 아니라 총리직을 수행할 때는 사법농단으로 강제징용 대법원판결을 질질 끌게 만들고 이른바 위안부 합의로 피해 할머니들을 우롱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때는 내란음모까지 꾀한 자이다”라고 까밝혔다.

 

그러면서 정해랑 공동대표는 “우리가 민주화를 이루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었지만, 이들이 걸림돌이 되어 우리는 또 오랜 시간 고통을 당할지도 모른다. 이들의 난동은 우리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바로 토착 왜구, 친일잔당이며 군사독재 잔당이고 탄핵 잔당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정해랑 공동대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도 모두 하나가 되어 이들을 물리치고 이 광화문 성지를 되찾아야 한다. 2020년은 그런 해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됩시다!”라고 호소했다.

 

문화제를 마친 참가자들은 “황교안을 구속하라! 공수처를 설치하라!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구호를 외치면서 광화문을 출발해 조선일보 앞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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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과 특권 사이’ 국회의원 월급 이야기

의원회관 745호실 이야기(13) - 국회의원의 권한과 특권 사이①
  • 이희종 김종훈의원 수석보좌관
  • 승인 2019.12.20 14:31
  • 댓글 0

국민들은 가장 신뢰하지 않는 기관, 청렴하지 않는 기관 1위로 ‘국회’를 꼽는다. 20대 국회는 촛불국민의 개혁 요구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국회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임계치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민들의 비난을 아는 국회도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이런저런 대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내용도, 실천도 국민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 무엇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는가?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국회의원의 월급 이야기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월급을 받고 있다. 2019년 국회의원의 연봉은 1억 5천176만 원이다. 이 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각종 수당 872만 원(일반수당 675만 원, 관리업무수당 60만 원, 정근수당 56만 원, 명절휴가비 67만 원, 급식비 13만 원)과 활동비 392만 원(입법활동비 313만 원, 특별활동비 78만 원)으로 월 1264만 원 정도의 월급(세전)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스위스, 스웨덴 등의 나라에서는 국회의원 봉급이 GDP 대비 3배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 등과 함께 5배가 넘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 셈이다.

월급 항목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국회의원들에게만 있는 ‘입법활동비’와 ‘특별활동비’다. 국회의원이 당연히 해야 하는 입법활동에 따로 활동비를 지급하는 것도 문제지만, 과세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항목은 상대적으로 장·차관보다 낮은 국회의원들의 급여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임의로 만들어진 항목이라고 한다.

최근 심상정 의원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통해 국회의원의 보수를 최저임금의 5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는데 내용을 보면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를 폐지해 국회의원들의 월급을 낮추자는 것이다. 사실 파격적 안이라기보다 다분히 현실적인 안이다.

급여 외에도 의원들에게는 의원활동에 필요한 사무실 운영비, 차량 유지비, 출장비 등이 주어진다. 또한, 한해 1억 5천만 원의 정치자금 후원금을 모아 활동에 사용할 수 있고,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따로 정책개발비 등을 지원받기도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감시와 문제 제기 덕분에 국회의원들의 경비 사용이나 정책개발비 사용은 더욱 엄격해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부실한 정책자료와, 지출내역 중 증빙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항목도 있어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다.

이런 기형적인 월급이 만들어진 이유는 국회의원 월급을 국회의원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국회의원의 봉급을 결정하고 지출을 감시하는 별도의 독립기구를 두고 있고, 독일은 의원들의 급여가 연방 최고법원 판사 급여에 따라 정해진다. 프랑스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비슷한 공무원들과 연동해서 급여가 책정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유독 국회의원의 월급을 국회가 결정한다. 그래서 ‘셀프 인상’이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올해는 비난 여론을 감안해 의원 세비가 ‘셀프 동결’되었다.

‘국회의원들에게 적절한 월급을 주고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높은 급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의견도 있지만 지금 국회의 모습을 보면 ‘무급으로 일하라’, ‘무노동 무임금 적용하라’는 분노하는 민심을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다. 국회의원들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을 외치는 국민들의 분노를 조직하면서도, 정치혐오가 아닌 국민들이 정치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게 하는 진보진영의 군중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진보정치도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오래전 민주노동당은 처음 의회에 진출하면서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 민주노동당은 의원과 공직자들이 도시 노동자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의원들과 보좌진의 급여를 정했다. 당시 의원들은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문직 출신 보좌진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구 관리에 장애도 있었다. 현실과 이상에 모순이 존재하니 당사자들에겐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겐 이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앞서간다는 것은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기도 하다.

국회 밖에 있을 때 보다 국회 안에서 들여다보니 사실 현실적인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기업가 출신 의원들이나 공천만으로 당선되는 의원들은 오히려 자유롭다. 지금도 일부 의원들 중엔 세비의 일부는 기부하거나, 정치자금 후원금을 거두지 않는 경우, 보좌진을 줄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 의원실이 그런 페널티를 가지고 재선을 준비하라고 하면 ‘글쎄요?’다.

구의원이 무급인 시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외치면서도, 노동자 후보를 내기 어려웠다. 현대자동차 출신 윤종오 의원은 국회의원의 재취업 제한 규정 때문에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높은 기준이 진보정치의 일선에 있는 공직자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부메랑이 되지 않기 위해서 진보정치 내에서 국회의원들의 세비 제한 이야기와 함께 ‘선거공영제’, ‘지역구 의원들에 대한 활동비 보장’ 등 현실적 대안이 함께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희종 김종훈의원 수석보좌관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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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봐주기' 부동산 대책 ... "아파트 소유자만 봉인가?"

종부세·공시가격 현실화 등 대기업 토지는 '열외'... "불로소득 장려하나"

19.12.20 17:03l최종 업데이트 19.12.20 17:03l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차 그룹 신사옥 GBC 예정부지 모습. 이 토지의 공시지가는 실거래가격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차 그룹 신사옥 GBC 예정부지 모습. 이 토지의 공시지가는 실거래가격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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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재벌들은 빠져나갔다. 정부가 고가 아파트를 조준해 공시가격 현실화와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을 하기로 했지만, 재벌 부동산에 대한 개선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2018년 종합부동산세 개편부터 한결 같은 '재벌 봐주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공시가격 개편 방안의 핵심은 시세 9억 원 이상 아파트 공시가격을 실거래가 수준으로 현실화해, 보유 수준에 맞게 세금을 걷겠다는 것이다. 공시가격을 올려 부동산 수준에 걸맞게 세금도 더 걷겠다는 명분이다.

정부는 실거래가격 9억 이상 초고가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내년부터 70~80% 수준에 맞추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제시했다.

 

그런데 공시지가는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 땅값과 건물값을 합산하는 공시가격과 달리, 공시지가는 땅값만 책정한다. 대기업 빌딩과 공장 등에 대한 세금은 '공시가격'이 아닌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재벌들이 가진 부동산의 보유세 역시 '공시지가'(땅값)가 기준이다.

부동산 보유 수준에 맞게 세금을 걷겠다면, 재벌 부동산의 과세 기준인 '공시지가' 역시 현실화시키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서 공시지가 인상률은 상당히 낮다.

내년 공시지가 시세반영률 1%p 내외 수준 상승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공시지가는 실거래 가격의 64.8% 수준이다. 국토부는 7년 이내 실거래가격의 70% 수준에 맞춘다는 가정 아래, 내년 공시지가를 책정할 예정이다. 산술적인 평균을 계산하면, 1년에 1%p 정도 상승하는 수준이다.

실거래가 9억 이상 아파트 공시가격은 당장 내년부터 8~12%p 올려, 실거래가의 70~80%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소극적인 방안이다. 아파트 가진 사람들에 대한 세금만 올리고, 재벌들은 계속 봐주겠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은 "재벌들이 가진 토지, 공시지가를 매년 1%씩 올리겠다는 것은 사실상 재벌들이 가진 땅에 대해 제대로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그러면서 아파트 소유자에게만 세금을 늘리겠다는 것은 형평성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도 재벌 봐주기, 아파트 소유자만 봉인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5대 재벌들이 가진 부동산 규모는 현재 70조 원이 넘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5대 재벌(삼성, 현대차, LG, SK, 롯데)이 소유한 토지 자산(장부가액 기준)은 2018년 말 기준으로 73조 2000억 원이다. 지난 1995년과 비교하면, 61조 원 증가한 수치다.

기업별로 보면 현대차그룹이 가진 토지가 24조 7000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현대차 그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부지(옛 한전부지) 등을 사들인 영향이 컸다. 이어 롯데가 17조 9000억 원, 삼성이 14조 원, SK가 10조 4000억 원, LG가 6조 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재벌들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는 시세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게 경실련 주장이다.

일례로 현대차그룹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부지의 올해 ㎡당 공시지가는 5670만원, 3.3㎡로 환산하면 1억 8711만 원 수준이다. 한국전력이 현대차그룹에 토지를 매각할 때 가격(4억 4000만원)의 42.52% 수준에 불과하다.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발맞춰 공시지가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하얏트와 신라, 반얀트리 등 특급호텔들의 공시지가가 주변 주택가 토지보다 낮다는 사실이 오마이뉴스 취재로 밝혀지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재벌 부동산을 두고 여러 잡음이 나오는데도 이번 공시가격 대책에선 쏙 빠졌다"면서 "도대체 정부와 재벌간 무슨 관계가 있길래, 재벌 부동산에 대해서는 이렇게 봐주기식으로 일관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국토부 "내년 로드맵에 구체적인 수치 제시할 것"

김영한 국토교통부 토지정책관은 "공시지가 현실화 대책에 나온 공시지가 상승 부분은 내년 공시지가 책정에만 적용되는 수치"라면서 "장기적으로 공시지가를 어느 수준으로 현실화할 것인지는 내년 발표될 공시지가 로드맵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토지정책관은 이어 "재벌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 현실화 문제도 향후 관련 용역과 공론화 과정 등을 거쳐서 확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항공기로 롯데월드타워를 내려다본 모습
▲  항공기로 롯데월드타워를 내려다본 모습.
ⓒ 롯데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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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부동산은 종합부동산세 인상 대상에서도 빠졌다. 지난 12.16 부동산 대책을 보면,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인상 방안은 제시돼 있지만, 토지분(종합합산, 별도합산)에 대한 방안은 없었다.

재벌 토지(별도합산토지)에 대한 종합부동산 세율은 0.5~0.7%. 지난 2005년 종합부동산세가 처음 도입될 당시 세율(0.6~1.6%)보다 0.1~0.9%p낮아져 있는 상태다. 지난해 정부는 종합부동산 세율 인상을 결정할 때도 재벌토지에 대한 세율은 건드리지 않았다.

종부세 개편서도 빠져나가... "재벌들에 불로소득 장려하는 꼴"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앞으로의 경제 운영에 있어서도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그런 것에 대해서 신경을 썼다"고 했다.

결국 재벌들은 이번에도 부동산 대책의 칼날을 피해나간 셈이다. 전문가들은 재벌 부동산 과세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못하다고 꼬집는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정부 부동산 대책에서 재벌들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대책은 단 한번도 포함된 적이 없다"면서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세율을 높여야 하고, 철저히 과세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런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기업들이 정상적인 생산 활동을 통해 내는 법인세보다 토지 불로소득 세율이 훨씬 낮다면, 기업들은 생산 활동을 중단하고 부동산 투기, 불로소득을 내는데 몰릴 것"이라며 "비생산적인 활동을 장려하는 지금의 과세 체계는 정의롭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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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광주교도소서 ‘신원 미상’ 유골 40여구 발견..5·18 관련성 주목

김오수 법무부 장관 대행 “우리가 관리하지 않는 유골..모든 가능성 열고 확인할 것”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12-20 18:54:00
수정 2019-12-20 1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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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광주교도소 터 내 무연고 분묘 이장 작업 중 유골 수십여구가 발견된 20일 광주 북구 문흥동 솔로몬 로(law)파크 조성 부지 현장(옛 광주교도소)에서 교정당국 관계자 차량이 오가고 있다. 2019.12.20.
옛 광주교도소 터 내 무연고 분묘 이장 작업 중 유골 수십여구가 발견된 20일 광주 북구 문흥동 솔로몬 로(law)파크 조성 부지 현장(옛 광주교도소)에서 교정당국 관계자 차량이 오가고 있다. 2019.12.20.ⓒ사진 = 뉴시스

광주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부지의 무연고묘 개장 작업 중 신원 미상의 유골 40여구가 발견됐다.

20일 법무부는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골 40여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골이 발견된 곳은 최근 법무부가 솔로몬 로파크(law-park)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부지로, 무연고 수형자들의 묘가 일부 포함된 곳이다. 무연고자 분묘엔 교도소 안에서 사망했지만, 가족 등 연고가 없는 이들이 매장되어 있다.  

무연고 분묘 개장 사업은 지난 16일부터 이날까지 진행됐다. 법무부 관리대장에는 이 곳에 111구의 유골이 묻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번 개장 작업 과정에서 기록에 없던 40 여구의 유골이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골은 전남 함평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겨져 안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국방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해, 해당 유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할 예정이다.  

김오수 법무부장관 직무대행이 20일 오후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를 찾아 신원 확인이 안된 유골 수십구 발견된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옛 광주교도소는 1980년 5·18 당시 희생자가 암매장 됐다는 증언이 이어져 발굴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2019.12.20.
김오수 법무부장관 직무대행이 20일 오후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를 찾아 신원 확인이 안된 유골 수십구 발견된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옛 광주교도소는 1980년 5·18 당시 희생자가 암매장 됐다는 증언이 이어져 발굴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2019.12.20.ⓒ사진 = 뉴시스

한편, 이날 김오수 법무부 차관(장관대행)과 문찬석 광주지검장 등 관계자들은 현장을 찾아 개장 과정에서 유골이 발굴된 경위 등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김 차관은 "우리가 관리하지 않은 유골이 발견됐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확인·점검할 필요가 있다"라며 "어떤 연유로 관리되지 않은 유골이 교정 부지 내에 묻히게 됐는지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계엄군에 연행된 시민들이 대거 수감됐던 곳이다. 또 계엄군이 주둔하며 담양과 순천으로 가는 차량과 시민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수십명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5.18 사적지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계엄군이 이 곳에 시위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조사를 받다 사망한 이들을 암매장 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실제 2015년 광주교도소가 신축 시설로 이전한 후, 5.18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들에 대한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

김 차관은 "현재로서는 5·18과 관련이 있는지 속단하기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가능성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을 찾은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은 "옛 광주교도소 공동묘지 부근에 (행방불명자들을) 매장했다는 군 기록이 있는 만큼, 암매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골의 형태, 매장 형태 등을 정밀 분석하고 최종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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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관광' 재개...남북 당국에 공개 요청한다

경기도, '남북관계개선 평화대토론회' 개최..."제재 핑계론 어떤 일도 안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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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0  23: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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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는 20일 도청 회의실에서 평화대토론회를 개최하고 '개성관광' 재개를 남북 당국에 요청하고 공개적으로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번영시대에 대한 그 컸던 기대가 속절없이 어두운 전망으로 바뀌고 있는 와중에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창의적 해법 모색을 통해 기어이 평화시대를 개막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경기도와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개성공단 재개 범국민운동 경기본부는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제1회의실에서 '제재의 벽을 넘어 평화로-남북관계 개선 창의적 해법 모색을 위한 평화 대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경기도의원들과 도청 공무원, 평화활동가를 비롯한 각계 각층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반도 평화경제에 대한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고 경기도의 남북교류 추진방향과 구체적 사업에 대한 건의, 다각적 검토가 이뤄졌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개성관광 의미와 개성공단 재개'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분단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고 평화시대는 개막되고 있다. 새로운 평화시대의 개막을 개성관광으로 열자"는 '창의적 해법'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왜 개성관광인가? 김 이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먼저 북측 개별관광과 여행은 제재대상이 아니고, 별도의 준비없이 기존 출입경 제도와 철도·도로, 그리고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가장 쉽고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

또 부산·광주·대구 등 전국 어디서든 KTX를 타고 서울역이 아니라 바로 도라산역에 내리도록 하고는 이곳에서부터 버스편으로 13km 밖에 안되는 개성까지 관광객을 실어주면 된다. 개성관광은 전 국민이 손쉽게 갈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하겠다고 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교착상황을 극복하는데 인적교류만큼 신뢰구축에 좋은 일은 없다.

그리고 금강산관광은 북측이 관광 중단 11년동안 기다리다가 이제 범 국가적 차원에서 개발에 착수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늦었다고 보는 것이 엄존하는 현실이다. 지금은 오히려 남북이 개성관광 재개를 합의하기 쉬운 측면이 있고, 접경인 경기도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개성관광은 2005년 8~9월 시범관광이 시작된 이후 2007년 11월 관광 합의, 12월 5일 관광 개시 후 2008년 10월 15일 관광객 10만명을 기록한 후 그해 11월 29일 잠정 중단됐다. 우리 정부에서 더 이상 안보냈기 때문에 중단된 것이고 남북간 아무런 합의도 없었다. 새로 시작한다면 복원하는 문제만 남아있는 셈이다.

남대문, 선죽교, 숭양서원, 성균관, 공민왕릉, 왕건릉, 박연폭포, 영통사 등. 개성의 역사유적은 2013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다. 쉽게 갈 수 있게만 되면 너도 나도 가지 않겠나.

김 이사장은 그런 점에서 개성관광은 "평화적 남북관계를 확산하고 구조화할 수 있는 파급력이 큰 사업"이며, "개성관광이 열리는 순간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한 가지, 개성관광과 관련한 오해이기도 하고 쟁점이기도 한 문제는 유엔사령부의 허가없이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전협정에는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없이 군인과 민간인이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북측과 유엔사는 2000년 11월 17일  '비문장지대 일부구역 개방에 대한 합의서'를 통해 "서울-신의주간 철도와 문산-개성간 도로가 통과하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일부 구역을 개방하고 남과 북의 관리구역으로 지정"하고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정전협정에 따라 남과 북의 군대에서 협의처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김 이사장은 이 합의서를 근거로 "우리 국민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일은 남북 군당국이 합의하면 되는 일이고 유엔사령부가 막을 수 없다. 우리 정부가 그것을 양해하면 되는 일이며, 이미 완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 왼쪽부터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신명섭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이종철 6.15경기본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신명섭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전인 지난 1월부터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관계자들을 접촉하면서 파주-개성 마라톤을 비롯하여 북측과 합의한 6개 합의 사업에 대해 서로 기대를 하면서 협의를 했으나 하노이 노딜 이후 제대로 업무 진행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이걸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관광에 대해서는 지난 3~4월부터 북측과 협의를 했으며, 북측으로부터 우리 중앙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해 주면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듣고 6월부터 통일부와 협의를 진행했다고 그간 경과를 설명했다.

"통일부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경기도의 계획을 전달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지금까지 진척이 없었다. 오늘 평화대토론회를 계기로 경기도 차원에서 개성공단 재개 문제를 정부에 요청하고 북측에도 제안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씀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DMZ남북평화공원과 농촌시범마을 조성 등 북측과 여러 합의가 있었으나 대북제재 핑계를 너무 많이 댔던 것 갔다"며, "DMZ남북평화공원은 제재에 걸리지만 남북추진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해당되지 않을 것 같다. 농촌시범마을 관련한 설비나 장비의 경우에도 최근 북측 개풍군 양묘사업에 대한 제재면제 사례를 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경기도는 내년에 제재의 한계를 넘어 실천할 수 있는 문제를 뽑아 적극적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해 보겠다. 핑계대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것이 내년 방향이 될 것"이라는 것.

   
▲ '제재의 벽을 넘어 평화로-남북관계 개선 창의적 해법 모색을 위한 평화대토론회'는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동안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최근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로부터 개풍양묘장 지원사업에 필요한 152개 품목을 제재면제 승인을 받은 성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북제재를 사실상 주도하는 미 국무부가 구체적인 사정을 거의 모르는 것 같았다는 느낌이었다. 할 수 없다고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부딪혀보면서 어떤 식으로든 길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경기도는 지난달 초 미국 뉴욕에서 열린 대북협력국제회의에 참가한 기회에 미 국무부와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를 방문해 개풍군 양묘장 지원사업과 이에 대한 유엔 제재면제의 필요성을 적극 설득한 결과 2010년 5.24조치로 지원 중단되었던 개풍양묘장 사업 재개를 위해 양묘온실, 용기, 트랙터, 태양광발전기, 작업공구 등 80%가 제재에 해당하는 총 152개 품목에 대한 제재면제 승인을 받았다.

홍 사무총장은 "이번에 물자 육로 전달까지 허가가 됐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북측과 협의해서 일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종철 6.15공동선언실천 경기본부 상임대표는 "1,300만 도민이 민관소통과 협력으로 남북관계 교착 타개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며, "(가칭)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경기도대회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민관 소통과 협력 현황에 대해서는 "경기도 차원에서 평화부지사와 평화협력국, 통일기반조성팀을 만들고 남북교류협력 조례를 제정한데 이어 경기도 31개 시군에서도 평화통일사업 담당부서 및 조례가 갖춰졌다. 경기지역의 시민사회, 종교, 정당, 여성, 기업, 노동, 농민, 단체 등 각계각층을 망라해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범국민운동본부 경기본부를 구성해 확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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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8부두 미군기지 세균무기 실험실 잔말 말고 철거하라!

부산 8부두 미군기지 세균무기 실험실 잔말 말고 철거하라!
 
 
 
부산 통신원 
기사입력: 2019/12/20 [17: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일, 부산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은 부산 남구 8부두 미군기지 앞에서 ‘8부두 센타우르 체계 현장 설명회’를 규탄하며 ‘부산시민 위협하는 8부두 미군 세균실험실 잔말 말고 철거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부산 통신원

 

20부산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은 부산 남구 8부두 미군기지 앞에서 ‘8부두 센타우르 체계 현장 설명회를 규탄하며 부산시민 위협하는 8부두 미군 세균실험실 잔말 말고 철거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실험실을 철거하라’ ‘설명회를 반대한다’ ‘부산시를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국방부주한미군사 그리고 부산시는 20일 오전 10시에 8부두 미군기지 안에서 센타우르 체계라는 이름의 세균무기 실험의 안전성에 대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기자회견 주최 측은 주한미군이 허가된 시설물만 확인할 수 있어 정확하게 시설의 안전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과 설명회의 목적이 안전성 홍보이기 때문에 세균무기 실험실 철거를 요구하는 부산시민들의 요구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기자회견 참가자 일부는 부산 8부두 앞 홈플러스부터 약 2km를 가두행진을 하고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 부산 통신원

 

기자회견 참가자들 일부는 부산시 관계자들의 설명회 참가를 막기 위해 8부두 앞 도로부터 미군기지 입구까지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주최 측에서 8부두 미군기지 앞에 집회신고를 냈으나 경찰들이 막아서 한동안 참가자들과 경찰의 충돌이 이어졌다이 과정에서 참가자 한 명이 넘어지면서 옷과 신발이 벗겨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기자회견에서 박소영 부산여성회 남구지부장은 아이 셋을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나 불안하다근래 병원에 가니 독감 시기가 아닌데도 독감환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라고 말하며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미국에만 이익이 되는 세균무기 실험실을 왜 우리 땅에 세워 두느냐라며 세균무기실험실 철거를 호소하였다.

 

이어 설명회 참가자로 통보받은 김석흔 남구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은 취지와 내용 설명 없이 부산시가 일방적으로 나를 참가하라고 요구했다나는 전문지식도 없는데 어떻게 350만 부산시민의 대표가 되어 (세균무기 실험실의안전성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주한미군은 세균무기 실험하지 않는다고 말해 놓고 인제 와서 실험을 공식화하고 있다이런 미군을 어떻게 믿나라며 우리도 자주 국가로서 졸속적일방적 설명회 싫다고 당당히 요구하자저도 끝까지 함께 투쟁하겠다라고 발언했다. 

 

▲ 기자회견 중 노정현 민중당 부산시당위원장이 해당 설명회의 부당함을 외치고 있다.     © 부산 통신원

 

기자회견 사회자 전위봉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부산시는 현장 설명회를 함께 추진한 만큼 설명회 결과에 대한 사후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한다라고 말했다.

 

2016년 미군이 세균무기실험을 위해 탄저균 등의 세균을 국내 반입해온 것이 밝혀진 이후 부산시민사회단체 및 부산시에서는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자리를 요구해왔다그런데 주한미군사와 국방부는 지속적으로 사실을 부인해오다가 이번 현장 설명회를 통해 세균무기 실험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2016년 세균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던 것과 정반대로 세균무기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인정한 것에 대한 질문은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전해졌다. 

 

또한 현장 설명회 중 스티븐 윌리엄스 미 공군 소장과 국방부 대북정책원 등의 구성원이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북미관계에 영향을 주기위해 세균무기라는 공격용 전략무기를 선전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편현장 설명회에서 미군은 세균 샘플 반입에 대해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8부두 미군기지 내 세균시험 분석실 등급은 2등급으로 밝혀졌다탄져균보툴리늄 등 해당부대에서 실제 취급하는 세균들은 최소 3등급 이상의 시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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