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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필리버스터, 남은 것은 ‘역적 동탁, 문희상씨, 시정잡배’ 막말뿐

자유한국당 필리버스터, 남은 것은 ‘역적 동탁, 문희상씨, 시정잡배’ 막말뿐
 
 
 
임병도 | 2019-12-26 08:58: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의원 여러분 자정이 넘었습니다. 국회법에 따라 임시회기가 종료되어 더 이상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함께하신 의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25일 자정이 되자 문희상 국회의장은 회기가 종료됐다며 본회의 폐회를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50시간 10분 동안 진행됐던 필리버스터도 끝이 났습니다.

지난 11월 29일 자유한국당은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막기 위해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 199개 안건에 대해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민생법안에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폭주했습니다. 이후 민식이법 등 일부 법안은 여야 합의에 따라 본회의가 열려 통과됐습니다.

여야는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본회의 상정 시기를 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4+1 협의체의 선거법 합의안이 늦어졌고, 자유한국당 주최 집회 참가자들이 국회에 난입하면서 본회의는 계속 연기됐습니다.

12월 23일 본회의가 열리자 자유한국당은 회기 결정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국회법 해석상 회기 결정은 필리버스터를 할 수 없다는 해석이 나왔고, 표결 결과 임시국회 회기는 12월 25일까지로 가결됐습니다.

테러방지법 192시간 25분 vs 선거법 50시간 10분

▲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필리버스터 토론자와 발언 시간

12월 23일 오후 9시 50분부터 시작된 선거법 관련 필리버스터는 50시간 10분으로 끝이 났습니다. 2016년 2월 벌어졌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가 192시간 25분 동안 이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짧았습니다. 그러나 회기 기간이 짧아 시간 비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가 반대를 하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번에는 선거법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과 찬성측 민주당, 정의당도 함께 나섰다는 점에서 특이했습니다.

필리버스터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섰던 민주당 김종민 의원과 세 번째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3분가량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미국에서는 토론자가 중간에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2016년 안민석 의원도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2016년 필리버스터 최장 발언은 2016년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12시간 31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이 5시간 25분으로 제일 길었습니다.

4시간 54분 동안 토론을 이어갔던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은 회기 종료로 토론을 마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문희상 의장에게 쏟아진 막말들: 역적 동탁, 시정잡배, 쪽팔려서..

이번 필리버스터에서 자유한국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을 향해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선거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인지 문희상 의장 비난 필리버스터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문희상씨를 국회의장으로 생각하는 분이 과연 몇 명이 있을까 저는 의문이 간다. 저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자진해서 (의장직에서) 내려오겠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

“(한국당 의원들이) ‘아빠 찬스’, 지역구 세습, ‘아들 공천’을 외치면 외칠수록 자식의 지역 인지도만 올라갈 뿐이라고 문 의장이 설마 그렇게 말했나. 그런 말을 어떻게 국회의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할 수 있나. 그것이 시정잡배와 다를 게 무엇인가”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

“문 의장의 별명이 장비였다. 외모도 그렇지만 신의 있고 합리적인 성품을 가진 분으로 알았다. 어느 날 그 장비가 동탁이 됐다. 신의의 장비가 아니라 역적 동탁, 의회 쿠데타의 주모자가 됐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문 의장을 가리켜 ‘문희상씨’라고 부르며 쪽팔리다며 의장직에서 내려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문

권 의원은 문 의장이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자 “졸지 마세요. 나잇값을 하나, 자릿값을 하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문 의장은 “당신이 (나를 의장으로) 뽑았다. 의장을 모독하면 스스로 국회를 모독하는 것이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전희경 의원은 문희상 의장을 가리켜 ‘시정잡배’라고 불렀고, 박대출 의원은 삼국지에 나오는 ‘역적 동탁’에 빗댔습니다.

필리버스터의 본질은 다수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소수당이 무제한 토론이라는 방식으로 막는 동시에 법안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설득시키는 기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보는 내내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 싸움의 연장선으로만 보였습니다.

장시간 토론을 지켜봤지만, 귀에 들어오거나 공감할 수 있는 선거법 반대 논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가장 짧게 발언한 유민봉 의원의 파워포인트 화면과 마지막에 외친 ‘메리크리스마스’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민주당이 소집요구한 새 회기의 임시국회가 26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습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선거법은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하지만 공수처법이 상정될 경우 자유한국당이 다시 필리버스터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제출했습니다. 만약 26일 본회의가 열리면 탄핵소추안을 표결해야 합니다. 민주당이 휴식 등을 이유로 하루 쉬고 27일에 본회의를 열 수도 있습니다.

2019년이 끝나기 전에 패스트트랙 법안과 유치원3법 등 남아 있는 민생법안이 모두 처리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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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올해의 인물] 세상을 바꾸는 엄마들 - 선한 사람들의 연결

용균 엄마 김미숙, 하준 엄마 고유미, 민식 엄마 박초희, 태호 엄마 이소현, 해인 엄마 고은미

19.12.26 07:31l최종 업데이트 19.12.26 08:25l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2019 올해의 인물 '세상을 바꾸는 엄마들'  
(왼쪽부터) 태호 엄마 이소현, 해인 엄마 고은미, 용균 엄마 김미숙, 하준 엄마 고유미, 민식 엄마 박초희.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2019 올해의 인물 '세상을 바꾸는 엄마들' (왼쪽부터) 태호 엄마 이소현, 해인 엄마 고은미, 용균 엄마 김미숙, 하준 엄마 고유미, 민식 엄마 박초희.ⓒ 이희훈

지난 13일 오전 11시, 서울 홍대 부근 한 스튜디오에 다섯 엄마들이 모였다. 용균 엄마 김미숙씨, 하준 엄마 고유미씨, 민식 엄마 박초희씨, 태호 엄마 이소현씨, 해인 엄마 고은미씨. 다른 엄마들과 김미숙씨는 초면이었지만, 금세 친숙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식을 잃었다. 하지만 개인적 실의에만 빠져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외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내 아이처럼 죽게 놔둘 거냐고. 이제 그만 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사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세상은, 조금씩, 정말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 둘 조명이 켜지고 촬영이 시작됐다. 난생 처음 겪는 자리. 특별히 요청하지도,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드레스코드는 모두 검정이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엄마들과 사진기자 모두에게 어색한 상황이 잠시 흐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태호 엄마 이소현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 것일까.
 
저마다의 응어리를 간직한 채 세상을 바꾸는 엄마들. <오마이뉴스>는 이들을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권우성

 
동지가 된 엄마
 
지난해 12월 10일 늦은 밤 스물넷 김용균의 비참한 죽음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경북 구미에 살던 비정규직 엄마 김미숙씨의 삶을 바꿔놓았다. 용균씨 사망 며칠 후 원청 업체인 한국서부발전의 한 간부는 "(노동자가) 벨트가 있는 기계 안쪽으로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매뉴얼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김용균씨가 시키지도 않은 무리한 행동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뜻이었다. 김미숙씨는 억울했다.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이태의 집행위원장은 "거기서부터 엄마 김미숙의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아들 김용균을 그가 일하는 공장에서 잃은 엄마 김미숙씨. 김미숙씨는 아들을 잃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김용균 재단을 세웠다.
비정규직 아들 김용균을 그가 일하는 공장에서 잃은 엄마 김미숙씨. 김미숙씨는 아들을 잃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김용균 재단을 세웠다. ⓒ 이희훈

 
김미숙씨는 아들의 빈소에서 아들의 동료들을 처음 봤다. 그는 "다들 용균이처럼 죽을까봐 겁이 나있는 모습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들이 아들처럼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 그가 28년 동안 잠들어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에 집중한 이유다. 김미숙씨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 제한' 등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 법이 통과되면 아들과 같은 죽음이 없어질 거라 믿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27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세상은 이 법안을 '김용균법'이라 부른다.
 
지난 8월 19일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김용균 특조위)는 약 4개월의 조사 끝에 진상조사 결과와 권고안 22개를 발표한다. 권영국 특조위원은 "김용균은 작업지시를 다 지키다 죽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날 맨 앞에 앉아 발표를 지켜보던 김미숙씨는 오열했다. "이제야 우리 용균이가 자기 잘못으로 죽은 게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 때문에 죽은 게 밝혀졌다"면서 "확실하게 누명을 벗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미숙씨는 여전히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앞장서 통과시켰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더 이상 '김용균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년 1월 16일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부 시행령을 거치며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도급 금지 업종이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의 취급'으로 제한됐다. 산재사고율이 높은 조선과 철도, 건설업이 포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들이 일하다 사망한 발전설비 분야도 제외됐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렇게 이 법을 위해 그토록 뛰어다녔단 말인가.
 
지난 11월 11일, 김미숙씨는 두꺼운 검은색 패딩을 꺼내 입고 다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다. 그의 뒤에는 아들 김용균의 분향소가 차려졌다. 마이크를 잡은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한 해에 2400여 명이 산재사고로 죽고 있는데, 특조위가 강조한 22개 권고사항 중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와 정치인들이 노동자를 죽이는 기업들을 방관하고 눈감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국민들이 일을 하면서 자신이 죽을 걸 걱정해야 하는 것인가."
 
 아들의 1주기 추모식에서 엄마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견뎠다. 아들이 일했던 발전소에서 김미숙씨는  '남아 있는 아이들' 위한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분노가 차 올랐다.
아들의 1주기 추모식에서 엄마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견뎠다. 아들이 일했던 발전소에서 김미숙씨는 '남아 있는 아이들' 위한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분노가 차 올랐다. ⓒ 이희훈
12월 10일 아들의1주년 기일에 김미숙씨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입을 굳게 다문 채 서산지청과 태안화력, 광화문에서 열린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기자가 "어떻게 눈물을 참은 것이냐"고 묻자 "아들이 죽고 일 년 동안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용균이 앞에 자신 있게 서고 싶었는데…"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그는 광화문 광장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더 이상 지켜보지 않을 거다. 권력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눌려 살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 헛되이 죽지 않게 만들겠다. 더 이상 억울하게 죽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하겠다." 현장에 모인 노동자들은 김미숙씨를 향해 "동지"라고 불렀다. 아들 김용균이 떠난 지 1년, 엄마 김미숙은 노동자들의 동지가 되었다.
 
'내 아이 살려달라'를 넘어서
  
 네 명의 엄마들은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의 이름을 딴 '어린이보호법'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네 명의 엄마들은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의 이름을 딴 '어린이보호법'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 이희훈

 
"의원님, 잘 부탁드립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재 위로 정장 차림을 한 국회의원들이 걸어온다. 회의실 앞 복도에 서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엄마아빠들. 무표정한 금배지들의 말에 부모들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투박한 손으로 머리를 감쌌고, 때로는 분노가 찬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아이들을 떠나보낸 후 이들은 긴 시간 집에서, 거리에서, 국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4월 해인이가 경기도 용인의 한 어린이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응급처치가 늦어 세상을 떠난 뒤부터, 2017년 10월 하준이가 서울랜드 동문주차장에서 경사로에 굴러 내려온 차량에 영문도 모른 채 치인 뒤부터, 2019년 5월 태호·유찬이가 인천 송도신도시의 한 사설 축구클럽 노란색 승합차에 탄 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뒤부터, 2019년 9월 민식이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제한속도를 벗어난 차에 사고를 당한 뒤부터.
    
 태호, 해인이, 민식 군 부모들이 2019년 11월 27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을 붙잡고 어린이생명안전법의 신속한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왼쪽은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
엄마들은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을 붙잡고 어린이생명안전법의 신속한 처리를 호소 했다. 하지만 외면 당했다. ⓒ 이희훈
아이들의 이름이 별칭으로 담긴 법안들이 하나둘씩 발의됐다. 사고는 순식간이었지만, 법안 통과는 더뎠다. 오랜 기다림 끝에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하준이법(주차장법 개정안)이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신호등·과속 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고, 하준이법은 경사가 있는 주차장에 미끄럼 방지를 위한 고임목과 안내표지 등을 설치하는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나머지 해인이법(어린이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한음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권칠승 민주당 의원 발의), 태호·유찬이법(도로교통법-체육시설의 설치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정미 정의당 의원 발의)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길게는 3년 전부터 시작된 싸움. 하나의 우주를 잃은 엄마들을 움직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오마이뉴스>와 만난 엄마들은 '떠난 아이들'과 '남은 아이들'을 언급했다.
 
"떠난 내 아이, 내 아이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어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 민식 엄마 박초희씨
"이 사회에 남은 아이들 때문에 계속 이 일을 하는 거예요. 기본적인 안전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겠어요." - 하준 엄마 고유미씨
"제가 해인이랑 약속한 게 있어요. 세상을 떠나게 된 그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요." - 해인 엄마 고은미씨
"처음에는 법안에 아이의 이름이 걸려 있어서 시작했는데, 겪어보니 마음이 바뀌더라고요. 이 사회의 문제다, 이 문제를 꼭 바꿔내야겠다고. 그렇게 버텼고 버텨요." - 태호 엄마 이소현씨
 
선한 사람들의 연결의 힘
  
 함께 손을 모은 이들의 공통점은 엄마다. 자식을 떠나 보낸 엄마 그리고 남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또 희생하는 엄마다.
함께 손을 모은 이들의 공통점은 엄마다. 자식을 떠나 보낸 엄마 그리고 남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또 희생하는 엄마다. ⓒ 이희훈

 
다시 지난 13일 사진 촬영 스튜디오 현장. 촬영 도중 김미숙씨와 다른 엄마들이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김미숙씨는 다른 엄마들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휴대폰에 입력하면서, 한 명 한 명 얼굴 사진을 찍어 저장했다. 자신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웃으면서. 또 하나의 '선한 사람들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아무리 좋은 생각, 선한 의지가 있더라도, 혼자만으로는 이루기 힘들다. 지금은 '어린이 안전법'으로 자연스럽게 묶이는 엄마들도 처음부터 연결된 상태는 아니었다. 연결의 시작은 하준 엄마 고유미씨였다. 2017년 10월 하준이의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는 날, 직원이 해준 "비슷한 사고로 온 아이가 있다"는 말로 인해 고유미씨와 해인 엄마 고은미씨는 연결된다. 약 1년 6개월 뒤인 올해 5월 태호-유찬이 사건이 보도되자 고유미씨는 태호 엄마 이소현씨를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내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낸다. 가장 최근인 지난 9월 민식이 사건이 터지자 이번엔 태호 엄마 이소현씨가 민식 엄마 박초희씨에게 연락한다. 그렇게 하나씩 연결되어 오던 이들은 올해 10월경 유치원3법 활동을 열성적으로 벌이던 '정치하는 엄마들'과 집단적으로 연결되기에 이른다.
 
촬영 후반부, 다섯 엄마가 가까이 모여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허리를 감싸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촬영하는 상황이 됐다.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 분위기. 누군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 좋다…" 그래. 힘이 없는 사람일수록, 그래도 뭔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일수록, 연결은 좋은 거다. 선한 사람들의 선한 연결로 세상은 조금씩 선하게 변해간다.
  
엄마들은 세상에 다시 나설 것이다. 선한 사람들의 연결의 힘을 믿으며. ★
   
 
사진 : 이희훈
영상 : 권우성
글 : 김지현 / 김종훈
 올해의 인물
올해의 인물ⓒ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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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20년지기 박문진 곁으로’ 아픈 몸에도 걷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성탄절

암투병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 영남대의료원 향해 180km 도보행진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12-25 22:39:54
수정 2019-12-25 22: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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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인 25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걸음을 떼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100㎞가 넘는 거리를 도보로 걷겠다고 나섰다. 이는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177일째 고공농성 중인 친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돕기 위해서다. 2019.12.25
성탄절인 25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걸음을 떼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100㎞가 넘는 거리를 도보로 걷겠다고 나섰다. 이는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177일째 고공농성 중인 친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돕기 위해서다. 2019.12.25ⓒ김철수 기자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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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말> 

지난 23일, 지난해부터 암 투병 중인 김진숙(59)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에서 대구까지 100km가 넘는 거리를 걷는다는 소식이 트위터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노조 파괴 진상규명과 원직 복직’을 위해 170일 넘게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동지 박문진(59)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고 밝혔다.  

박 지도위원은 2006년 영남대의료원 주5일제 시행 등을 요구하며 사흘간 파업했다 이듬해 해고됐다. 함께 해고된 이들 중 7명이 법원 판결에 의해 복직됐지만, 박 지도위원을 포함한 3명은 구제받지 못했다. 그 사이 1000명에 육박했던 영남대의료원 지부 조합원은 70명으로 급감했다. 이들은 노조 원상회복, 해고자 복직을 위해 13년째 싸우고 있다.  

김 지도위원이 걷는다는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 지도위원을 아끼는 노동자 시민들, 박 지도위원의 투쟁 승리와 고공농성 종료를 기원하는 이들이 함께 걷기로 한 것이다. <민중의소리>도 크리스마스 하루 이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도보행진 참석자들은 25일 정오부터 네시간 반 동안 17k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경부선 삼랑진역 앞에 마흔 명 남짓한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다섯 살 아이부터 정년퇴직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이들은 “영남원 해고자 원직복직”, “영남대의료원 노조탈퇴 원천무효” 문구가 쓰인 형광노랑빛 조끼를 입은 채, 걷기 시작했다.

행렬의 맨 앞엔 김진숙 지도위원과 심진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있었다. 뒤 따르는 사람들은 제각각 편한 속도대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행렬엔 서울, 부산에서 온 노동자들과 대구에서 온 시민들이 뒤섞여 있었다. 휴일에 쉬고 싶은 마음을 이기고 나온 이들은 “김 지도위원이 걷는다기에 마음에 걸려서 나왔다”. “박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끝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보도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이는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177일째 고공농성 중인 친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돕기 위해서다. 2019.12.25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보도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이는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177일째 고공농성 중인 친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돕기 위해서다. 2019.12.25ⓒ김철수 기자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보도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이는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177일째 고공농성 중인 친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돕기 위해서다. 2019.12.25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보도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이는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177일째 고공농성 중인 친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돕기 위해서다. 2019.12.25ⓒ김철수 기자

대구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한다는 장명숙 씨는 친구와 함께 왔다. 그는 “박 지도위원하고는 알고 지내는 사이다. 고공농성이 벌써 178일째인데 해줄 게 없어서 걷기라도 같이 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라는 그는 “오늘날 예수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어찌하셨을까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에 이 땅에 살아있는 예수인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철도노조 부산본부 조합원 8명도 이날 도보행진에 참여했다. 이들은 ‘영남대의료원 노조 원직복직’ ‘박문진 동지 힘내소’라는 문구가 쓰인 피켓을 만들어왔다. 문구 사이사이엔 손으로 그린 ♡마크가 오밀조밀하게 들어차 있어 미소를 자아냈다.  

이명위 부산본부 조직국장은 “박 지도위원이 한여름에 올라갔는데 한겨울이 됐다. 며칠 후엔 해가 바뀐다”라며 “정치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진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해결 위해 나설 수도 있지 않냐.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좀 귀기울여 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아침에 눈을 뜨니 와야겠단 생각에 그냥 달려왔다”면서 “도보행진으로 연대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 노조도 많은 연대를 받고 있다. 그 연대를 돌려드리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지도위원이 참 훌륭하다. 유명한 분이지만 출세길을 찾지 않고 노동자들 곁에 계신다. 그를 따라 걷는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차해도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은 “김 지도위원이 걷는다길래 나왔다. 수십년 함께 해왔다. 이 도보행진도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이라며 “김 지도위원이 투병 중에 이 정도라도 기력을 차리고 사람도 만나고 활동한다니 다행스럽다. 이번을 기회로 툭툭털고 나와서 활동도 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보도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br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보도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김철수 기자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보도행진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br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보도행진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김철수 기자

도보행진 참가자들은 차분히 걸어 삼랑진읍 송지시장을 지나고, 미전천변을 걸었다. 한 시간에 한 번 쯤은 걸음을 멈추고 지친 다리를 쉬었다. 준비해 온 물을 마시고 삶은 계란, 떡과 과일을 나누었다. 피곤하기도 할테지만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날 만난 김 지도위원은 조금 창백했지만 강건한 모습이었다. 그는 도보행진 동안 지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뚜벅뚜벅 걸었다. 지인들과 수다도 떨고 웃기도 했다. 쉴 때는 여러 사람과 함께 사진도 찍고, 자신이 만든 ‘박문진 힘내라’ 부채를 손에 든 채 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완쾌된 것은 아니어 보였지만, 우리들 마음속 ‘소금꽃나무’는 여전한 모습이었다.

근황을 묻자 그는 “아팠다”고 말했다. 항암치료 이후 체력이 떨어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최근에는 황달에 관절염까지 겪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부산부터 대구까지 걷기로 했는지 묻자, “박문진을 너무 잘 아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보도행진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br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보도행진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김철수 기자
8월 박문진(58)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박문진(58)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대구시 남구에 있는 영남대의료원 본관 70m 옥상에서 농성하고 있는 모습
8월 박문진(58)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과 박문진(58)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대구시 남구에 있는 영남대의료원 본관 70m 옥상에서 농성하고 있는 모습ⓒ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제공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로서, 친구로서 두 사람은 20여 년의 세월을 함께 지내왔다.

김 지도위원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96년 부산 병원노조 투쟁현장에서 마주쳐 알게 됐고 동년배라 친해졌다고 한다. 1997년~1998년엔 함께 45일간 인도, 네팔 여행을 다니며 무척 싸웠지만 여전히 친구라고 했다. 김 지도위원은 우스갯소리를 섞어 “친구가 없으니 아쉽더라고. 현장 돌아다니다 보면 또 만나게 되니 그렇게 싸웠던 걸 잊고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가자’고 했지”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해고의 아픔, 고공농성의 아픔을 안다.  

김 지도위원은 “제가 해고자니 해고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저는 영남대의료원 민주노조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다. 1천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었고 투쟁의 열기가 대단했었는데, 지금은 조합원이 100명도 안 되게 줄었다. 13년 간 그걸 모두 지켜본 박문진은 어떤 마음이었겠나. 저도 2011년 이후 한진중공업에 복수노조 만들어져서 그런 과정들을 겪어봤다. 이심전심으로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 고공농성하는 동안 박 지도위원은 수 차례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박 지도위원은 왔다는 말도 없이 크레인 밑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김 지도위원은 사진에서 친구의 모습을 확인하고 왔다는 걸 알 정도였다고 한다. 참으로 ‘COOL’하지만 ‘질긴’ 사이다.

김 지도위원에게 이번 도보 행진으로 ‘친구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 것이냐’고 묻자, “그런 셈이 됐다”고 답했다. 그는 박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이 100일을 넘은 두 달 전쯤부터 싸움이 길어지겠다는 생각에 도보행진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걷는 구간을 조금씩 늘리며 연습을 했고, 다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도 했다고 말했다. 출발 며칠 전쯤엔 ‘이젠 걸을 수 있겠다’ 싶었고, 그래서 길을 나섰다고 밝혔다.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보도행진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br
성탄절인 25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출발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보도행진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3일부터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00㎞에 이르는 도보에 나섰다. ⓒ김철수 기자

‘박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많은 방법 중, 왜 걷는 일을 선택했냐’고 묻자, 김 지도위원은 “쌍용차 동지들을 보고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 2011년 7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경기도 평택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총 400Km에 달하는 도보행진을 했다. 한진중공업 보다 먼저 정리해고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구를 지나 부산으로 갈 때 박 지도위원도 동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지도위원은 당시 그 일이 “제일 감동이었다”라며, 크레인 위에서 트위터를 통해 물집 잡힌 발 사진, 비맞으며 걷는 사진을 보면서 “쌍용차 동지들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나도 그런 마음이다. 사실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천천히 친구를 향해 걸어가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24일, 쌍용차 사측은 마지막으로 복직해야 하는 무급휴직자 47명에게 ‘기한없이 휴직을 연장한다’고 통보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 지도위원은 “너무 열이 받는다. 내가 원래 욕 안하고 정말 점잖은 사람인데 참을 수 없다. 그 자본가들은 개새끼들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더 버텨야 되는 시간이다. 우리 몸도 마음도 망가지지 말고. 잘 버티자. 파이팅!”이라며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15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린 쌍용차 투쟁 2000일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쌍용차 김득중 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15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린 쌍용차 투쟁 2000일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쌍용차 김득중 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김 지도위원은 도보행진을 통한 ‘연대’가 박 지도위원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연대보다 큰 힘이 어디 있겠냐?”라며 “2011년 저도 농성 158일차에 희망버스가 오기 전엔 거의 보도가 안 됐었다. 투쟁하는 조합원들끼리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오고 희망버스가 왔다 가니 정치권도 관심을 가지고 청문회, 국정감사를 거치며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보행진을 하다 보면 사회와 언론에서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중단돼 있는 사측과의 협상도 진척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긴 도보행진 끝에 영남대의료원에서 박 지도위원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김 지도위원은 “하긴 무슨 말을 해, 건물 밑에서 얼굴이나 보고 ‘나 간다’하고 와야지”하더니, “아! 신발도 한 켤레 사달라고 할 것이다”라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우리가 막상 만나면 그렇게 친하지는 않아. 문규현 신부님하고 문정현 신부님이 같이 앉으셔서 ‘우리 별로 안 친해’ 하시는 거랑 비슷하다”고 해 기자의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참가자들은 밀양강변을 따라 밀양시내까지 긴 강둑길을 두 시간 넘게 걸었다. 오후 3시 40분쯤 강둑길에 멈춰선 이들은 다시 휴식을 취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이 되더니 원형으로 둘러서서 몸풀기 운동에 나섰다. 진행자는 ‘이런 만남 처음이야’란 구호를 외치며, “걸으면서 느낀 느낌을 몸으로 표현하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손을 높이 올리고 발을 차고 회전을 하는 등 각자 방식으로 마음을 드러냈다. 김 지도위원도 흥겨워하며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정오에 시작한 도보 행진은 4시간 30분이 지난 해저물녘 밀양역 광장에서 끝났다. 김 지도위원은 3일차 도보를 완주한 소감을 묻자 “참, 멀다. 영남대의료원이 밀양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행진 참가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성취감과 연대의 기쁨을 나눴다. 끝으로 “박문진 동지, 힘내소!”, “영남대의료원노조, 힘내소!”를 광장에 울려퍼지도록 크게 외쳤다.

성탄절인 25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밀양역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9.12.25
성탄절인 25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역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참가자들이 밀양역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9.12.25ⓒ민중의소리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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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원리주에 빠진 한일 정부, 실속없는 싸움만"

전문가들, '대법원 판결'과 '청구권 협정' 사이 타협점 찾아야
 
 
한일 정상회담과 일본의 수출통제 품목 일부 완화 조치 등으로 한일 관계가 개선 국면에 들어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문희상 안'을 한일 양측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일본 내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로 불리는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17일 '한일 기자 교류 프로그램'으로 도쿄를 방문한 한국 외교부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징용공 문제에 대한 괴리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좀 더 타협되지 않는 한 한일 관계가 풀리는 게 어렵지 않겠나"라며 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의한 법안을 언급했다.

기미야 교수는 "해당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가 되면 이건 일본 기업이 피해를 입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일본이 대항조치를 할 거라고 본다. 일본이 한국 산업과 경제에 가시적인 피해가 있도록 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만일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가만히 있을리 없고, (한일 양국이) 서로 보복하면서 경제 전쟁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위험성도 좀 있다고 본다. 이건 서로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 기업에 대한) 현금화 조치는 무기한 연기를 할 수 있게끔 하거나 당장 완전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더라도 파국을 면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의) 대법원 판결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도 존중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지불 주체가 반드시 일본 기업이어야 한다는 건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불주체가 반드시 일본 기업이 아니라 재단 등으로 유연하게 만들 수 있고, 거기서 관련 한국 기업이나 일본 기업의 출자가 있어도 된다고 본다"며 "물론 (출자 금액이) 얼마나 모아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판결과 협정을 양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지난 17일 한국 외교부 기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학대학원 교수 ⓒ외교부 공동취재단


기미야 교수는 한국 정부가 삼권분립을 이야기하며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판결을 그대로 반영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판결의 핵심을 잘 살리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며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왜 좀 더 앞서서 해결책을 찾지 않았느냐는 부분이 좀 불만스럽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사법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럼 문 의장도 삼권분립을 어기는 셈인가?"라며 "일본 정부 입장은 아예 협정이 끝났다는 것이기 때문에 판결과 협정을 양립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내야 하는 주체는 한국 정부밖에 없다"면서 한국 정부가 책임을 가지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희상 안‘에 대한 일본 내 평가는 어떠냐는 질문에 기미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적극 관여하고, 괜찮다고 하면 일본에서는 100%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 아닌가, 그 정도라고 본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10여 년 한국에서 취재활동을 했던 사와다 가츠미 <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은 19일 외교부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내에서는 일단은 안(문희상 안)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없는데 '진짜 되는거야?'라고 의심하는 분위기는 있다"고 전했다.

'실속 없는 싸움' 벌인 한일, 관계 봉합할 수 있나  

기미야 교수는 지난 7월 전격적으로 발표된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와 이에 따른 한국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종료 결정 등 일련의 한일 정부 간 움직임에 대해 "한일 모두에게 불이익"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소미아 파기는 일본에 대항해 (일본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없다. 일본은 (지소미아가) 있으면 아주 좋은 것이지만 없어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왜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라는 빗나간 선택을 했는지는 조금 의아하다"고 말했다.

기미야 교수는 일본이 조치 역시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징용공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에 뭔가 좀 해야겠다는 것으로 수출 관리 재검토 조치를 내렸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것 때문에 한일 경제에서 피해를 보는 건 한국보다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기미야 교수는 "일본 관광업은 한국 관광객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에 어려워졌고 일본산 맥주 소비 등도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일본산) 반도체 부품 수입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수출 통제 조치는 일본 정부가) 징용공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타협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보지만 실패했던 조치"라고 꼬집었다.  

사와다 외신부장 역시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해 "바보 같은 것"이라며 "실효성이 없고 일본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한국 반도체 사업에 영향을 주면 일본이 다른 나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 19일 도쿄에서 한국 외교부 기자단과 간담회를 가진 사와다 가츠미 <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 ⓒ외교부 공동취재단


그는 실제 일본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고 분석되고 있냐는 질문에 "수출 업체들은 수출이 지연됐으니 그 부분에서 피해를 본다. 또 지방 관광업체는 영향을 받는다"라며 "물론 일본 경제 전체로 보면 크지 않지만 여러 기업이나 당사자들은 힘들다"고 답했다.

이처럼 한일 양측이 출혈을 감수하며 외교전을 벌였지만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지난 10월 24일 이낙연 총리가 일본에 방문하면서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기미야 교수는 "이낙연 총리가 한국 정부가 청구권 협정을 존중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여기에 일본 정부가 안심을 했다"며 "일본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1965년 (청구권 협정) 틀을 벗어나려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양측이 갈등을 수습하려는 배경에 대해 "2019년 들어서 북미, 남북 관계가 불투명해지면서 한국이 외교적으로 어려운 처지가 됐다. 여기에 한일관계까지 악화되면 한국 외교가 다뤄야 하는 문제가 너무 커진다고 보고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일본 정부도 북핵 문제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일관계가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공유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기미야 교수는 양국관계가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일 정부 모두 관계가 안좋은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조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문재인 정부가 내년 4월 총선까지 일본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19일 기자단과 만난 이종원 와세다대학대학원 교수는 한일 양측 정부가 "역사 원리주의"에 빠져 있어 강제 동원 문제에서 입장 차를 좁히는 것이 쉽지 않다고 예측했다. 한일 양측 모두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의 입장에서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한일 갈등을) 봉합하려면 일본도 약간의 양보를 해야 한다. 징용 문제 자체의 기술적인 처리는 지혜를 내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문제는 아베 총리는 '우리는 1mm(밀리미터)도 못 움직인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한일관계를 봉합하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은 민주화, 일본은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보수화와 (역사) 수정주의가 생기면서 구조적인 골이 깊어졌다"고 진단했다.  
 

▲ 19일 도쿄에서 한국 외교부기자단과 간담회를 가진 이종원 와세다대학대학원 교수 ⓒ외교부 공동취재단


일각에서는 향후 일본의 욱일기 문제가 한일 간 갈등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사와다 외신부장은 지난 6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욱일기는 증오의 깃발이라는 내용의 트위터를 게시한 것과 관련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지"라며 "서경덕 교수 같은 분이 하는 것과 한국 정부가 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욱일기 같은 것은 (일본의) 보통 사람들은 신경 안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욱일기에 대해 언급하니까 문제를 삼으려고 하는 걸로 (일본에서는)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와다 부장은 지난해 제주도 국제관함식에서 욱일기 문제로 일본 측이 불참한 사안을 언급하며 최근 한일 간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에 대해 "일본 사람들은 '요즘따라 왜 이렇게 시끄럽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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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새로운 길, 미리 계획이 있었을지도...

<2019 송년특집 ②> 북한 내부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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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5  02: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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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019년은 연말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난해 순항하는 듯한 북미관계가 올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결렬로 갸우뚱거리더니 그 여파로 한반도 정세가 일 년 내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한마디로 북미관계가 막히자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모두 경색된 해였습니다. 

북한이 ‘연말 시한’으로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이 며칠 안 남은 연말까지 한반도의 진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불허인 가운데, 통일뉴스는 <2019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한 내부 ③북미관계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올 연말이면 1953년 이래로 남북의 삶을 옥죄이던 정전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항구적인 평화체제로의 이행 문제가 당면의 구체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지난해 초부터 한반도 정세에 극적 반전이 일어나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올해 초만해도 20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소기의 결론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한해의 끝자락에서 목도하게되는 현실은 '성탄절에 하늘에서 떨어질 선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일 것이다', '그렇진 않을 것이다'라는 험악하기 그지 없는 실정이다.

나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의 입장전환을 촉구하면서 직접 언급하고 여러 차례 확인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관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북한이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천명한 '새로운 길'이 드디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새로운 길', 준비하고 있던 계획 중 하나

상호 전략적 이해를 충족하기 위해 사상 초유의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북한과 미국은 어떻게 하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길'이란 무엇이며, 북미협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길일까? 앞으로 북미협상은 계속 이어지고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작별 악수를 하는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북미협상이 꼬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2월 27~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없이 노딜(no deal)로 끝난데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영변핵시설을 포기하는 대신 2016년 이후 채택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5개 가운데 일부인 민생·민수 분야 제재해제를 요구하는 안을 제시했고, 이에 미국은 합의서 채택의 조건으로 추가적인  비핵화 즉 '하나 더'를 추가해 협상이 결렬된 것. 

포괄적 비핵화 합의,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제시하는 미국의 주장과 단계적 비핵화, 단계적·등가적 교환을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이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된 셈이다. 

하노이 노딜에 대한 북한의 충격은 회담에 배석했던 당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 발언에서 그대로 전해져 온다.

"지난 시기 있어보지 못한, 영변 핵 단지를 통째로 폐기할 데 대한 제안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민수용 제재 결의, 부분적인 제재 결의까지 해제하기 어렵다는 미국측 반응을 보며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 조미 거래에 대해 의욕 잃지 않으시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이런 기회 다시 미국 측에 차려지겠는지 여기 대해선 장담 힘들다.”

급격히 냉랭해진 북미관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어갈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하노이 결렬 후 北의 최대관심은 '안전보장'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어갈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올해 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보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 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재확인하고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북)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연말 기한', '미국의 새로운 셈법', '자력부흥', '대북적대시정책 중단', '남측 당사자론' 등 주요 개념을 두루 밝혔다.

특히 “장기간의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해 제재해제를 기다리기 보다 자력으로 제재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수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새로운 길’을 언급한 대목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북미협상은 이후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을 거쳐 10월 5일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으로 이어졌으나 하노이 결렬 이후 북의 달라진 입장, 탄핵과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으로 인해 협상은 다시 난항에 빠져들었다.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북한은 하노이에서 제시한 제재해제 조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북이 선제적으로 취한 △핵·미사일 시험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군유해 송환 등에 대한 미국의 신뢰조치를 요구했다. 

미국은 영변핵시설 폐쇄와 우라늄농축 종료에 대한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소 외에 석탄과 섬유류 수출 36개월 유예 등의 조치를 제시했으나 북은 △한미군사연습 중단 △전쟁장비 반입중지 △싱가포르 회담 이후 취해진 15개 제재 해제 등 안전보장 조치를 요구했다.

한마디로 대북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라는 것. 또 비핵화 수준에 맞게 단계적으로 이행 가능한 상응조치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실무협상 결렬 직후 북한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제거될 때"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미국을 향해 말한 '새로운 셈법'이 '안전보장'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북미정상이 합의한 실무협상이 또 다시 결렬되자 북한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셈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자력갱생과 군사력 강화를 재차 강조했다.

4월 시정연설에서 이미 장기전 태세를 천명한 김 위원장은 그 뒤 20차례 이상 군사분야 공개 활동을 강화하고 10여 차례 이상 발사체 시험을 실시하는가 하면, 실무협상 이후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비롯해 김계관 외무성 고문, 김영철·리수용 당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박정천 군 총참모장 등 인사들이 19차례 이상 대미 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지리한 답보상태에서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과 공격형 무기 도입 반대 등 '안전보장' 요구를 집요하게 제기했다.

美 '새로운 셈법' 없는 한, 北 '새로운 길'은 불가피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월 28일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방사포시험사격을 참관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이에 따라 북한은 12월 하순 소집될 제7기 제5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에 대한 결정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재확인하고 북미 비핵화협상을 잠정 중단하며, '자위적 국방력 강화 차원의 전술·전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중국·러시아 등 국제연대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자력으로 경제건설에 집중하여 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완수하는 것 등이 '새로운 길'의 골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4월 제7기 제3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ICBM 시험발사 중지를 결정했을 뿐이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의 핵물질 생산과 동창리 발사장 엔진시험 등을 통해 핵무력의 질량적 증대를 과시할 수 있으나 당장 ICBM 발사 등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는 결정은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사항이다. 

미국과 적대적이지 않은 새로운 관계를 목표로 하는 북으로서는 적절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최소한 현상유지는 되어야 하는 범위안에 '새로운 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말 제5차 전원회의에서 핵·ICBM 시험발사 중지 결정을 되돌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내년 신년사에서 이에 입각해 '새로운 길'을 천명할 경우 ICBM 발사 카드도 테이블 위에 올려질 수 있다.

다만, 6차까지 진행한 핵실험은 기존 데이터를 근거로한 시뮬레이션 만으로도 기술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어쩌면 북의 '새로운 길'은 연초 신년사에서부터 계획이 다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남측 당국에 대해 북미협상의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4.27, 9.19합의 이행에 나설 것을 줄곧 요구했던 북으로서는 북미에 앞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나설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점은 아쉬울 뿐이다.

내년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 성공 선포할 것

   
▲ 지난 4월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모습. 12월 하순 제5차 전원회의 소집을 예고했지만 아직 일정은 공지되지 않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렇다면 북한 내부 사정은 어떨까?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 수정 보충을 통해 국무위원장의 권능을 확대·강화하여 김 위원장을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영도자로 부각한 북한은 내년 당 창건 75돌을 맞이한다.

최근 북한은 국기, 국장 등 국가 상징을 강조하고 있고, 국화, 국조, 국수는 물론 국견, 국주에 이르기까지 국가 상징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에 이어 '우리 국가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국제사회에서의 '보통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국정 지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인 내년에 가시적 경제성과를 내놓는 것이다. 

북한은 내년에 자력갱생 기조 아래 과학기술 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을 추구하면서, 제재와 무관하게 추진할 수 있는 관광사업 확대와 대규모 건설을 통한 경제부흥 효과를 과시하고 이같은 가시적 성과를 기초로 질적 지표와는 상관없이 어쨌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목표 달성을 대내·외에 선포할 것이다. 최근들어 북한에서 자력갱생을 넘어 자력부흥과 자력번영의 구호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 경제는 제재 장기화에 대응하는 과정에 축적된 내부의 인적 및 물적 자원과 금융, 과학기술역량에 기반한 자력갱생 체제 구축, 공장·기업소와 농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개혁 조치를 비롯해 제재 극복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제재로 인한 외화수입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시장물가와 환율 등 거시경제의 안정세는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앞으로 삼지연지구,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양덕온천문화휴양지 등이 모두 열리게 되면, 북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또 제재 영향에서 벗어나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해 생산·소비·투자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의 자율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조치를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 지난 12월 2일 2단계 공사를 마치고 완공한 삼지연군 삼지연읍지구 전경. [통일뉴스 자료사진]

여기에 북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지역 정세의 안정을 희구하는 중국·러시아와 교역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 내년에도 북한은 제재외 품목을 중심으로 중·러와 교역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특히 올해 30만명에 이르는 중국 관광객이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원료와 연료, 생필품 등의 원활한 공급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교역은 당분간 북한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최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북한 해외근로자 송환 규정 폐지 등 안보리 대북제재 일부 완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도 북에는 우호적인 환경으로 꼽힌다.

   
▲ 2019년 북한 주요 일지[편집-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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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연말 시한’, 마지막 해법은?

<통일시론> 다가온 ‘연말 시한’, 마지막 해법은?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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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4  01: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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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언명한 ‘연말 시한’이 다가왔다. 지금 북한과 미국 간 갈등의 첨단에는 ‘새로운’ 것들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길’, ‘새로운 계산법’ 그리고 ‘새로운 방법’이 그것이다.

지난해 북미는 싱가포르 성명 1항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한창 비핵화니 그것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니 하며 북한문제 전문가들과 여론들이 나발을 불었지만, ‘완전한 비핵화’로 간단히 정리됐다. 그것도 성명의 세 번째에 놓인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새로운 관계’ 수립이었다. 당시 성명은 대체적으로 북한 측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는데, 그렇다면 북한은 미국과 다른 무엇도 아닌 관계 정상화, 그것도 기존의 관계를 타파하고 ‘새로운 관계’를 얼마나 맺고 싶었나 하는 열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곧바로 양국관계는 부침이 심해졌다. 그러자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제재와 압박을 가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미 그 당시 미국 측의 분위기를 알아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실상 북미관계의 분수령이 될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다분히 미국이 의도적으로 결렬시킨 것으로 봐야한다. 북한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리비아 모델’을 요구했으며 또한 같은 시간에 열린 코언 청문회를 덮기 위한 판깨기 요소도 짙었다. 북한은 모처럼 ‘최고 존엄’이 열차를 타고 하노이로 가는 세기적 광경을 보여주었지만 결과는 ‘결렬’이었다. 북한 측의 당혹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일었을 터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침묵을 지키던 북한은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연말을 시한부로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물론 미국 측은 ‘연말 시한’에 대해 북한 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시한이지 자기네가 인정한 것도 아니고 또 자기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항변한다. 올해 12월이 지나도 내년에도 계속 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측은 다르다. 북한의 4월 시정연설은 일종의 출사표인 것이다. 한쪽이 접는데 다른 쪽이 조른들 성사될 리 만무하다.

며칠 안 남았다. 방법이 없을까? 이미 나온 바 있다. 비록 결렬됐지만 지난 10월 초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며 꺼낸 ‘새로운 방법’이 그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법’ 언명은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창의적인 방안’으로 개명돼 나타난 듯했으나 북한 측의 ‘새로운 계산법’에 부응하기에는 기대치 이하였던 것 같다. 스톡홀름 실무협상 역시 결렬됐으니까.

‘연말 시한’을 정한 북한은 자신의 일정표대로 착착 진행하고 있다. 북한매체 보도 기준으로 22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3차 확대회의가 진행됐으며, 곧 이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이 제시될 것은 요지부동이다. 북한의 ‘새로운 길’ 제시를 막아야 한다. 북한의 ‘새로운 길’ 제시는 북미관계의 파탄과 함께 남북관계 경색과 한반도 정세의 질곡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해법은 없는가?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법’을 더 다듬고 구체화해야 한다. ‘새로운 방법’에는 당연히 북한이 요구하는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들어가야 한다. 시간적으로 촉박하고 또 미국 내 탄핵 정국으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협소해 당장 ‘새로운 방법’을 내올 수 없다면, 믿을만한 보증수표를 통해 내년 초 북미 정상회담을 약속해 일단 북한의 ‘새로운 길’ 제시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북미관계 최상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새로운 계산법’ 요구에 미국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합의를 봄으로써 북한이 ‘새로운 길’로 가지 않고, 결국 북미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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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삭제' SPC 보도자료는 오늘도 언론서 펄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12/25 10:39
  • 수정일
    2019/12/25 10:3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언련 "SPC, 언론사를 기사 매매 중개사로 전락시켜"…언론의 후진적 상업화 가속화김혜인 기자 | 승인 2019.12.24 14:39
 

[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경향신문에서 협찬금을 대가로 기사를 삭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협찬금 제안으로 기사 삭제를 이끌어낸 곳은 SPC로 이번만이 아니었다. 

지난 22일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는 지난 13일 게재 예정이었던 기사가 ㄱ 기업으로부터 ‘협찬금 지급’ 약속을 받고 사장과 편집국장의 동의하에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지회는 ‘독자여러분들에게 사과한다’는 온라인판 기사에서 “ㄱ 기업은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협찬금 지급을 약속했고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고 해당 기자는 사표를 냈다”고 전했다.

이어 “19일 기자총회를 열고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은 이번 일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다”며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이 사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 사과 이후 ㄱ기업은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베스킨라빈스의 모그룹인 SPC라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삭제된 기사도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해당 기사는 중국 법원의 ‘파리바게뜨’ 상표 등록 무효 판결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13일 경향신문 ‘지역 배달판’을 입수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1면 <중 “파리바게트 상표 등록 무효”…한국 기업들 ‘2차 한한령’공포>와 22면 <프랑스도 인정했는데…‘몽니’ 앞에 속앓이> 기사다.

중국 베이징 지적재산권법원이 지난달 파리바게뜨의 상표 등록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놓았고 1심 판결대로면 중국 내에 300여 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인 파리바게뜨가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SPC그룹이 경향신문에 해당 기사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금액은 5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사태수습 중인 경향신문, 오늘 사원주주회 열려

지난 19일 기자총회가 열린 이후 경향신문 내부는 사태 수습 중에 있다. 박효재 경향신문 기자협회지부장은 “지회 차원에서의 결의내용으로 경향신문 23일자 지면에 사과문이 실리는 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해당 기자가 사표를 낸 이유가 기사 삭제 항의 차원으로 볼 수 있는지, 삭제된 기사를 내보낼지 등은 내부 논의를 거친 이후 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부 진상조사위원회 구성도 사측에 제안만 한 상태로 추후 협의를 통해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대광 전국언론노동조합 경향신문 지부장은 “지난 20일 노조는 집행부회의를 열고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편집권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한 사건으로 사장의 사의 표명은 당연한 결정 ▲진상조사위원회 사측 참여 ▲사측, 노동조합, 우리사주회가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이다. 

23일 경향신문 사장은 “퇴진하겠다는 뜻을 철회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며 편집권과 인사권은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규에 따라 본래 4명인 이사가 내부 사정으로 사장 포함 3명으로 사장이 당장 대표 이사직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태다. 24일 사원주주회가 열려 사장 선임과 관련한 안건이 다뤄질 예정이다. 사장의 입장을 바탕으로 차기 사장 선임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 돈으로 통제하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 

SPC의 기사 거래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는 22일 ‘고발뉴스TV’에서 “언론에 광고·협찬을 주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내리는 게 일상적인 업무”라며 “이를 통해 언론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대기업, 특히 삼성과 SPC 같은 그룹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2013년 5월, SPC가 고발뉴스에도 기사 매수 시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고발뉴스는 SPC가 <파리크라상 ‘가맹점 인테리어 강요’ 돈벌이 과징금>, <파리크라상, 세무조사 직전 매출기록 삭제 논란> 등의 기사를 내리는 조건으로 광고를 주겠다고 제안했던 사실을 보도를 통해 폭로한 바 있다.

지난 1월 뉴스타파는 조선일보와 SPC그룹의 기사 거래 의혹을 보도했다. 조선일보 기자 3명이 박수환 뉴스컴 대표로부터 금품 및 선물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박 대표가 SPC그룹과 조선일보 기자 사이에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다. 뉴스타파는 SPC그룹이 2015년 조선일보 기자 부녀의 항공권을 대신 구매해줬고 금품을 받은 기자가 파리바게뜨 홍보 기사 게재에 개입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3일 논평을 내고 “경향신문 기자들의 폭로로 확인할 수 있는 사태의 면면은 ‘기사 거래 관행’이 우리 언론계에 뿌리 깊게 구조화되어 있으며, 악습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에 스며들었음을 암시한다”고 강조했다.

민언련은 “언론사가 기사 매매 중개사로 전락한 현 상황에 기업들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이 언론을 자신들의 홍보 기구 쯤으로 취급하거나 돈으로 통제하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것”이라며 “이는 최근 미디어 환경의 급변으로 생존이 어려워진 언론사들의 경제 사정과 맞물려 우리 언론의 후진적 상업화를 가속화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SPC는 기사 삭제 파문이 불거진 이후 ‘SPC 그룹 계열사, 일자리 창출 정부포상 수상’, ‘SPC 한정판 크리스마스 케이크 30만개 품절’ 등을 보도자료를 발표했으며 이를 받아 쓴 기사들은 50개가 넘었다.

24일 12시 15분경 네이버 뉴스면에 'SPC'를 검색한 결과 (사진=네이버)

김혜인 기자  key_mai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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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
 
 
 
강기석 | 2019-12-24 11:27: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뒤늦게 「뉴스공장」을 듣다 전후석 감독을 알게 됐다. 재미교포 2세 변호사로 쿠바를 여행했다가 우연한 계기로 쿠바에 살고 있는 한국인 후예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고 한다. 구한말 헐벗고 굶주린 수많은 조선인들이 먹을 것을 찾아 자의 반 타의 반 조국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하와이와 중남미 사탕수수 농장 등으로 갔다고 하던데 이 영화는 그중 쿠바로 간 이들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고향을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로 떠나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나라를 빼앗긴 채 남의 땅을 전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 쿠바의 한인 후예들을 ‘한인 디아스포라’라 칭할 만 한데 1930년대에 연해주에서 살다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추방된 한인 후예들(고려족)도 그 범주에 속할 것이다. 재일동포, 조선족도 마찬가지다. 전 감독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는 8백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디아스포라는 ‘유태인 디아스포라’이다. 2천 수백 년에 이르는 이 ‘유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누군가 짓궂게 ‘이스라엘 삼국지’라 부르기도 하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유태인들은 결국 ‘시오니즘’을 통해 1948년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을 재건국했다. 그 과정은 미국의 부와 권력, 할리우드를 장악한 유태인들에 의해 극도로 미화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소개됐었다.

반면 우리는 ‘한인 디아스포라’, 즉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국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정이 없고 관심이 없고 역사의식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한인 디아스포라’는, 전 감독에 따르면, 조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크다. 전 감독은 “(‘유태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이 이스라엘 건국이라고 한다면)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은 ‘통일 한반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가슴이 뭉클하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라를 빼앗긴 채 이국땅으로 떠난 이들과 그 후손들에게 분단된 한반도는 아직 완전히 회복된 조국이 아닐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한반도 남쪽에서 헤헤거리며 살고 있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트럼프의 농간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완전히 원 위치로 돌아 온 지금,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얼마나 흉악한 것일까, 가슴 졸이는 오늘, 남한 땅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국기를 흔들어대는 이들이 새삼 역겹다.

이들을 선동하는 야당 대표라는 사람이 못 견디게 역겹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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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접어든 문재인 정부... 국정원이 문제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해야 할 이유 ⑤] 국민은 제대로 된 정보기관을 원한다

19.12.24 20:12l최종 업데이트 19.12.24 20:21l

 

국정원의 수사권 이관(폐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며 중요한 권력기관 개혁방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국정원법 개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정원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사이 국정원이 또다시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프락치를 활용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만들기 위해 증거를 날조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권한을 남용한 사례를 중심으로 '국정원 수사권을 폐지해야 할 이유'에 대해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기자말]

 

청와대, 권력기관 개혁 방안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형연 법무비서관,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2018.1.14
▲ 청와대, 권력기관 개혁 방안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형연 법무비서관,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2018.1.1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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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구성된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이하 국정원 개혁위)는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민간 전문가 8명과 전직 국정원 직원 3명, 현직(국내파트 담당 차장, 기조실장) 2명 등 13명으로 구성되었고, 2017년 6월 19일부터 1차로 6개월간 활동한 뒤 일부 인원이 남아 2차로 100일간 더 활동하였다.

여러 가지 아쉬움과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위는 2017년 12월 수사권 이관과 국내 정보 수집 금지를 명시한 국정원 개혁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댓글사건(사이버 외곽팀 최초 적발), 화이트리스트, 블랙리스트 사건 등 적폐사건(15개+7개)에 대한 조사를 통해 원세훈 전 원장 등 전직 4명, 민간인 50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국정원 개혁위의 국정원 개혁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2년 이상 지났다. 그런데, 개혁법안은 감감무소식·오리무중의 상태에 빠졌고, 법안은 패스트트랙에도 합류하지 못한 채 뒷전에 밀려나고 말았다.

위기에 처한 개혁

 

국정원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떠들썩했던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숨가빴던 적폐청산 과정에서 정작 국정원의 힘은 뺐는데, 적폐의 공범이었던 검찰의 기만 살려준 꼴이 되고 말았다.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국정원 개혁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과 답답함을 떨칠 수가 없다. 촛불혁명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천재일우의 기회가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개혁위가 제시한 이른바 '국정원 개혁안'은 국정원 측의 동의를 전제한 것이었다. 당시 분위기 탓이겠지만, 국정원은 '수사권 이관'과 '국내정보 수집금지'에 대해 원칙적으로 수긍했다. 국정원이 진정한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국정원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물론, 필자가 접촉해본 많은 직원들은 적어도 '수사권'과 '국내파트'에 대한 미련이 없는 듯했다(속마음까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런데 어찌된 이유인지 공수처법과 패키지가 되어버린 국정원 개혁법은 정치적 힘겨루기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보수야당은 "간첩은 누가 잡냐"라는 해묵은 프레임을 들고 나왔고, 여당은 지방선거 등을 핑계로 머뭇거렸다. 국정원은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호재를 맞아 이미지 쇄신에 일부 성공했지만, 개혁에 대한 자체 의지는 차츰 퇴색해갔다.

잘못된 시작은 바로잡아야 한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던 김종필은 생전에 "애초 중정이 수사권을 갖게 된 것은 (소위) '혁명정부'를 지켜야 하는 특수상황에서 비롯된 예외적이고 한시적인 것이었음"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는 "민간정부가 정식 출범한 뒤엔 수사권을 법무부에 환원하려 했지만 수사권을 유지했다. 정보부 창설자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토로한 바 있다. 덧붙여 그는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건 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처럼 수사권은 '잘못된 시작'에 의한 것이었지만, 60년 가까이 국정원 권력의 원천으로 기능해왔다. 국정원은 수사권과 국내정보수집이라는 두 가지 축을 통해서 정보기관이 아닌 권력기관으로 국민 위에 군림해왔다. 말로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며',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소리없는 헌신"을 외쳤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해" 일하고, "정보는 국력이다"(이상 중정, 안기부, 국정원의 원훈)라고 소리 높였지만, 권력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은 국민들에게 두려움과 분노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제라도 국정원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자 한다면 먼저 수사권을 버려야 한다. 수사권을 버려야 국정원이 살 수 있다. 단언컨대, 수사권은 국정원이 경쟁력을 갖추는데 독이 되는 요소이다. 세계는 지금 무한정보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탈북자들의 신상을 털고, 프락치 공작에만 열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껏해야 미국이나 일본 눈치를 보면서 종속 변수 취급을 받게 될 뿐이다.

사이버 전쟁, 대 테러 전쟁 등 신 안보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보기관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그런데, 국정원은 여전히 믿기 어렵고, 여전히 위험한 존재다. 수사권을 가지고 있고, (지금은 자제하고 있지만 법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국내 정치에 개입할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권력기관의 속성이다.

국정원이 국민들의 바람과 명령, 즉 '경쟁력 있는 정보기관'에 한걸음이라도 다가서기 위해서는 국민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야 하며 그 시작은 수사권 이관이다.

안보는 신뢰로부터 비롯된다

대공수사권이 검찰이나 경찰로 이관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은 '안보'를 앞세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보기관이 우뚝 서야 안보가 굳건해진다. 초기에는 다소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대공수사권이 이관되더라도 대북공작은 국정원의 임무이므로, 경계가 불분명한 사례도 생길 것이다. 대북공작을 하려면 첩보를 수집해 공작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첩보와 정보는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세계의 모든 선진 정보기관은 수사권 없이도 정보수집과 공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탕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다. 그리고 정보기관의 경쟁력이다. 정보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도 한몫하고 있다.

2019년 12월 지금은 모든 것이 막혀있다. 정권은 후반기로 접어드는데, 개혁작업은 마무리되지 못했고, 위임받지 않는 권력이 위임받은 권력을 위협하는 '권력투쟁의 장'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도 국회에 기대해본다. 먼저, 국정원법을 개정하라. 수사권을 이관하고, 국정원이 국내 정보수집에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도록 하라. 그것이 국정원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의 명령을 이행하라.

덧붙이는 글 | 장유식 변호사.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전임소장이자 현 실행위원으로, 시민사회에서 국정원 개혁 운동을 하고 있으며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의 공보 간사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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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호떡집 미국

[아침햇살59] 불난 호떡집 미국
 
북한의 ‘새로운 길’ 앞에서 난리난 미국
 
문경환 
기사입력: 2019/12/24 [23: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1. 자가당착에 빠진 미국 민주당

 

(1)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8명의 민주당 중진 상원의원이 지난 1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에 관한 서한을 보냈다. 언론들은 관련 기사 제목을 「미 민주 “화염과 분노 회귀 안 돼”...트럼프에 서한」(연합뉴스), 「미 민주, 트럼프에 “‘화염과 분노’ 복귀는 심각한 오산”」(동아일보) 등으로 뽑으며 마치 민주당이 트럼프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을 반대하는 서한을 보낸 것처럼 보도했다. 심지어 한겨레는 「주목되는 미 상원 중진들의 ‘대북 강경책 반대’ 서한」이란 제목의 사설까지 내보냈다. 하지만 정작 서한 내용을 보면 전혀 아니다. 

 

이들은 서한에서 “북한이 외교 및 비핵화 약속을 충족시키기 위한 중요한 조처들을 아직 하지 않은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약속을 위반하고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도 문제라며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영구적 금지를 보장하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지난 6개월 간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대응조처 없이 용인한 점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유린’에 책임을 묻는 노력을 저버린 점 등을 지적했다.

 

또 이들은 트럼프 정부가 해야 할 과제로 ▲북한의 핵무기·미사일 프로그램을 검증가능하게 동결하고 폐기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 ▲적절한 제재 지속 등 대북 압박 ▲단단한 억지 태세 ▲동맹 강화 ▲외교적 관여 강화 ▲완전한 비핵화와 지속가능한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을 제공할 남북간 대화 심화 ▲영변 핵 단지와 다른 핵 시설들을 검증가능하게 폐기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화염과 분노’ 위협이나 그 외 파멸적인 전쟁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북한에 대한 ‘핵 강압’ 시도를 재개하는 게 협상 테이블보다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심각한 오산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일단 서한의 내용을 보면 새로운 내용도 없고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 다른 점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서한이 트럼프 정부에 그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2) 자가당착에 빠진 서한 내용

 

미국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연말 시한을 이대로 넘기면 북한이 ‘새로운 길’로 갈 것인데 그것이 아무래도 군사적 행동일 가능성이 높으니 이를 막기 위해 서한을 작성했다. 그러면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걸 제시했어야 한다. 북한은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지금은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요구를 어떤 식으로 수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북한을 압박하고 위협하자는 주장은 그간 수십 년 동안 미국이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기에 무의미하다. 

 

그런데 서한을 보면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유린’에 책임을 묻고, 대북제재를 지속해 북한을 압박하고, 군사적 억지태세를 강화하고(이 말은 군비증강이나 군사훈련 강화를 의미한다),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라는 얘기밖에 없다. 그냥 전부터 하던 것, 지금 트럼프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을 다시 나열했을 뿐이다. 북한의 요구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어찌 보면 민주당 서한은 그냥 북한을 ‘새로운 길’로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한의 목적과 서한의 내용이 따로 논다. 자가당착이다. 

 

또 서한을 보면 영변 핵 단지와 다른 핵 시설들을 검증가능하게 폐기하라는 주문도 있다. 이는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의제로 다룬 내용이다. 당시 북한은 대북제재 가운데 민수분야를 해제하면 영변 핵 단지를 검증가능하게 폐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서한에서 대북제재를 유지하라고 주문했다. 제재유지와 영변 핵 단지 폐기라는 양립 불가능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것을 내줄 생각은 없고 남의 것을 뺏을 생각만 있는 극단적 이기주의다. 

 

서한이 주문한 단단한 억지 태세 유지와 동맹 강화는 결국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의 핵을 빼앗자는 논리다.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깡패의 논리, 패권주의 논리다. 

 

민주당은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었던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대북 핵위협을 하는 것보다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횡설수설이다. 

 

협상이란 양측의 조건이 맞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와야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고 조건을 분명히 제시했다. 민주당 생각처럼 아무 때나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협상이 아니다. 민주당은 대북압박을 지속하면서 협상을 하라는데 애초에 모순되는 요구다. 미국은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기 입장만 밀어붙이는 데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자기 처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아직 일방주의에 빠져 있다. 

 

이처럼 미국 민주당은 지금껏 북미 사이에 어떤 협상과 대결이 진행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서한을 썼다. 북한은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오면 협상을 하겠다, 대북적대정책 유지하면 ‘새로운 길’로 가겠다고 하는데 민주당은 엉뚱하게도 대북적대정책 유지하면서 협상을 하라, 아무 것도 주지 말고 비핵화만 얻어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기주의의 끝판왕이며 일방주의, 패권주의로 똘똘 뭉친 나머지 현실 인식도 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3) 입장 바뀐 민주당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자 민주당은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북미 공동성명에 대해 “매우 걱정스럽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도 성명에서 “비핵화 약속은 모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양보했다”고 지적했다. 브라이언 샤츠 상원의원은 트윗을 통해 “이건 미국의 리더십을 포기한 것”이라며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은 이번에 서한을 보낸 이유에 대해 “연말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한 당신의 노력이 교착되고 실패 직전에 가 있는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이제와서 싱가포르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1년 반 전에 자기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잊어버린 것 같다. 

 

반면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자 민주당은 안도와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회담의 핵심 이슈 중 하나는 영변 핵 시설 폐기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해 합의 없이 회담이 끝났다. 그러자 당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잘 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의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 것도 주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 서한에서 영변 핵 시설 폐기를 다시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이쯤 되면 기억상실증을 의심할 만하다. 

 

(4) 기억상실인가 조현증인가

 

민주당이 서한에서 횡설수설하는 걸 보면 과거 자신이 무슨 주장을 했는지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서한 안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는 걸 보면 기억상실보다는 조현증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차라리 과거에 했던 자기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해라도 가지만 지금 상황은 그냥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이상이 아니다. 

 

민주당이 이런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공포 때문인 듯하다. 사람이 공포에 질리면 이성적 판단 능력이 마비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지금 연말 시한이 다가올수록 북한의 ‘새로운 길’이 열릴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새로운 길’이 구체적으로 무언지는 미국도 모른다. 그래서 더 두렵다. 원래 공포는 예측 불가능 때문에 극대화되는 법이다.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민주당은 논리적이지 않은 해법을 내놓고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고 있다. 민주당뿐 아니라 미국 전체가 비슷한 상황이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해질 것이다. 

 

2. 세계 앞에서 공개적으로 수모를 자처하는 미국

 

(1) 비건, 수모를 당하다

 

국무부 부장관으로 발탁되어 출세가도를 달리는 스티븐 비건이 한국에 와서 공개적 수모를 당했다. 

 

▲12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스티븐 비건.

 

지난 15일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카운터파트에 직접 말하겠다”, “일을 할 때이고 완수하자.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당신들은 우리를 어떻게 접촉할지 안다”라며 북한에 대화를 요청했다. 애초 비건 대표는 북한과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던 것인데 물밑 접촉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자 공개적으로 만남을 제안한 것이다. 

 

비건 대표가 구차해보일 수 있음을 각오하고 이처럼 대화를 요청한 이유는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 발언 때문이다. 지난 3일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이 담화에서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연말 시한부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이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매우 신성한 날”이라며 “이 기간이 평화로운 날들로 인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발 ‘크리스마스 선물’로 군사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는 간청이나 다름없다. 

 

물론 비건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을 여론조성용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은 대화를, 북한은 대결을 추구한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면피용 발언이라는 것이다. 대화 제안의 외피를 쓴 경고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대화 제안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후통첩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건 대표의 이후 행보를 보면 여론전이나 경고 성격으로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비건 대표의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자 예정에 없던 중국 방문까지 하면서 북한의 대답을 기다린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크리스마스 전에 무조건 북한을 만나고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은 듯하다. 여론전이나 경고 성격이었다면 기자회견으로 끝내지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는 않는다. 

 

미 국무부는 비건 대표가 중국 정부 당국자들에게 “북한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유지할 필요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역전쟁 상대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꼴이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기다림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미국에 돌아간 비건 대표는 워싱턴 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 외에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며 외교 실패를 인정했다. 세계 면전에서 공개적인 수모를 당한 것이다. 

 

며칠 동안 계속된 비건 대표의 애원에 북한은 일언반구 대꾸를 안 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비건 대표가 스토커로 느껴졌을 수 있겠다. 북미 협상의 조건인 ‘새로운 계산법’을 이미 분명히 밝혔고, 또 이번 물밑접촉에서도 안 만난다고 했을 텐데 공개석상에서 또 떠드니 여간 귀찮은 상대가 아닐 듯하다. 

 

(2) 트럼프, 직접 나서다

 

비건이 성과를 못 내자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전화를 걸어 대북대응 공조를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 주석과 우리의 대규모 무역합의에 대해 아주 좋은 대화를 했다”, “북한 문제도 논의했다. 우리가 중국과 협력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무역전쟁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북한에 대한 논의도 했다는 걸로 봐서는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상당한 양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얼마전 1단계 무역합의를 이루었는데 이를 두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면서 양보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전쟁보다 북한과의 협상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해왔다. 예를 들어 2017년 4월 1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번복한 이유로 “중국이 북한이라는 더 큰 문제를 풀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데 무역전쟁을 벌여야 하느냐”고 말했다. 북한 문제를 ‘더 큰 문제’라고 말하면서 무역전쟁을 북한 문제 해결의 수단 정도로 표현한 것이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장기인 막말을 쏟아낼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침묵을 지키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12월 초만 해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부적절한 비유’를 한다거나 북한이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거라며 압박을 하더니 북한 당국자들의 강한 경고에 위축된 모습이다. 

 

당시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담화에서 “경솔하고 잘망스러운 늙은이여서 또다시 ‘망령든 늙다리’로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다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모욕을 주었다. ‘망령든 늙다리’는 2017년 북미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발언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픈 과거를 들쑤시기 위해 다시 이 말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영철 위원장은 “트럼프가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 자기는 놀랄 것이라고 했는데 물론 놀랄 것”이라며 “놀라라고 하는 일인데 놀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안타까울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예전 같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말들에 발끈하며 막말로 대답했을 텐데 이번엔 침묵을 지켰다. 괜히 막말로 시비를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수모를 당한 모양새다. 

 

3. 오가잡탕 형국인 미국

 

지금 미국 정가는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은 모습이다. 연말 시한을 앞두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정리되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건 대표는 한국에 와서 “미국은 비핵화 협상에 기한을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 시한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럼 연말을 앞두고 한국에 와서 북한과 대화하자고 떼를 쓰고 안 되니 중국까지 찾아가 도움을 구한 건 무엇 때문인가. 누가 봐도 미국 정부는 지금 북한의 연말 시한을 신경 쓰고 있는데 비건 대표의 발언은 비웃음만 살 뿐이다. 

 

민주당이 ‘화염과 분노’를 하지 말고 협상을 하라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자 다음날 공화당은 켈리 크래프트 유엔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그 다음날엔 미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연말 시한이 끝나고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우리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준비가 돼 있다”, “오늘 밤에라도 싸울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대비태세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경고에 밀려 한미연합훈련을 끝내 취소한 미군의 입에서 나올 얘기는 아닐 듯하다. 

 

한편 이 와중에 미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키며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 탄핵 정국과 관련해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북한의 자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2월 20일자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이후에는 야당 뿐 아니라 여당의 비판도 견뎌낼 여력이 있기 때문에 평양 방문을 통한 비핵화 선언 등 훨씬 더 큰 자유를 누릴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에 몰리지 않도록 북한이 ‘도발’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북한 보고 트럼프 재선 선거운동을 해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는데 염치도 집어던진 듯하다. 

 

중구난방 어수선한 미국의 연말 상황을 보면 내년에도 미국이 한반도 상황을 정리하고 주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4. 왜 호떡집에 불이 났는가

 

미국 상황이 심각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 미국은 양아치 사기꾼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껏 약소국을 상대로 자기는 하나도 주지 않고 상대에게 모든 걸 받아내는 양아치 깡패 국가로 살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틈만 나면 자기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를 막으면서 북한에 준 건 하나도 없다고 자랑한다. 미국에서는 이게 자랑이 된다. 합리적인 상거래, 정상적인 국제 협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미국에서는 자랑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다른 나라와 무역협상을 하고 나서 대통령이 ‘한국은 아무 것도 안 주고 오로지 받아내기만 했다’고 자랑하면 국민들은 뭔가 잘못 됐거나 거짓말일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시정잡배, 양아치, 조폭 세계에서나 통하는 자랑이 미국에서는 버젓이 통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당연히 양아치처럼 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렇다고 미국이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반성하고 갱생의 길을 걷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데 북한이 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수모를 당하고 자가당착에 조현증까지 보이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북한에 밀리고 있다. 

 

북한이 약하고 미국이 밀어붙이는 상황이면 지금 미국의 모습을 강온양면전술로 여길 수도 있다. 주먹경찰-담배경찰 전략처럼 한쪽에선 북한을 압박하고, 다른 쪽에선 북한을 회유하는 작전으로 봐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누가 봐도 미국이 세계 앞에서 체면을 구기고 수모를 당하는 형국이다. 미국이 힘에서 우위에 있다면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강온양면전술을 펼 이유가 없다. 이건 그냥 북한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승승장구하며 전진만 하던 부대가 한번 후퇴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밀린다. 질서도 없고 오가잡탕에 중구난방이 된다. 지금 미국의 모습이 그렇다. 

 

셋째, 미국이 공포에 빠진 듯하다. 

 

지난 1년 동안 미국은 ‘새로운 길’이 뭔지를 두고 온갖 상상을 해왔다.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협상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라는 사람, 심지어는 무슨 관광사업을 하는 게 새로운 길이라는 사람까지 별의 별 주장이 다 나왔다. 

 

실체를 모르면 불안하고 불안이 커지면 상상은 망상이 된다. 이성은 마비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급기야 탄핵당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도록 도와달라는 말까지 나왔다. 앞으로 무슨 말이 더 나올지 참으로 가관이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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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선거법 개정안 합의, 누가 수혜자인가

정의당: 처음과 달라진 선거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작됐다
 
임병도 | 2019-12-24 09:04: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여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습니다. 작년 5당 협의와 패스트트랙, 4+1 협의체까지 올 한 해 국회를 뒤흔들었던 선거법 개정안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셈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린 협상 끝에 이루어진 합의안이지만, 결과물은 그리 신통치 않습니다. 가장 먼저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린다는 당초 취지와는 무색하게 지역구 253석+비례47석의 현행 의석수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다만, 30석에 대한 연동률이 적용되면서 연동형비례제는 살아남았습니다. 끝까지 논란이 됐던 석패율제는 도입하지 않기로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4+1 협의체가 최종 합의했기에 그대로 본회의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롭게 바뀐 선거제도,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 이해득실을 따져봤습니다.

민주당: 선거법 주고 공수처 받았다.

원래 논의됐던 지역구 250석이 기존 253석으로 최종 합의되자 기자들은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에게 ‘무슨 차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윤 사무총장은 ‘군소정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한발 뒤로 물러섰습니다.

민주당은 4+1 협의체에서 가장 큰 힘이 있는 여당이지만 협상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습니다. 선거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강한 의지 대신, 다른 야당이 내미는 선거안을 조율하거나 선을 지키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거대 여당이 많이 양보하면 할수록 군소정당이 유리합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선거제 개혁에는 찬성하지만 현실적인 의석수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민주당이 4+1 협상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 법안입니다.

공수처법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가진 최후의 보루입니다. 만약 공수처 설치를 포기한다면 촛불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됩니다.

자유한국당이라는 제1야당이 버티고 반대하는 한 공수처법은 민주당 자력으로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은 선거법은 양보하고 공수처법을 받아오는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바뀐 선거제를 대입하면 민주당은 20대 총선 123석보다 9석이 적은 114석 정도가 됩니다. 의석수는 적어졌지만, 정치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동맹군을 얻었습니다.

정의당: 처음과 달라진 선거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작됐다.

“그동안 정의당은 작은 힘이지만 불가능했던 선거제도 개혁을 사력을 다해 여기까지 밀고 왔습니다. 하지만 6석의 작은 의석이란 한계 속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의 초심과 취지로부터 너무 멀리 왔고 비례의석 한 석도 늘리지 못하는 미흡한 안을 국민들에게 내놓게 된 것에 대해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첫발이라도 떼는 것이 중요하다는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이번 선거제도 개혁안에 대해 아쉽고 부족한 부분은 국민들께서 채워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정의당 심상정 대표)

이번 4+1 선거제 합의안에 따른 정의당의 이해득실은 심상정 대표가 상무위원회에서 했던 모두 발언에 담겨 있었습니다.

정의당 지지자와 과감한 선거제도를 요구했던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번에 합의된 선거법은 실망 그 자체입니다. 오죽하면 심 대표가 ‘미흡한 안을 국민에게 내놓아 송구스럽다’고 표현했겠습니까?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일단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첫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그렸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그림을 제대로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선거가 치러지면서 그 장점이 알려지면 충분히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정의당은 석패율제를 고집한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자기 밥그릇을 챙긴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정의당이 원하는 것이 결국 국회의원 배지냐는 비아냥도 들었습니다.

이번 합의로 정의당이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 전망입니다. 여기에 다음 선거에서 기존보다 더 많은 6석(20대 총선 지역2석+비례4)인 12석(협의안 지역2석+비례10석) 정도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과감한 개혁은 못 이루었지만, 출발선에 자리를 잡고 뛸 준비는 됐습니다.

바른미래당, 민평당+대인신당: 지역구를 유지하게 된 의원들

군소정당 입장에서 이번 선거제는 유리하면 유리하지 손해는 없는 결과입니다. 특히 지역구가 사라지거나 통폐합이 예상됐던 호남 지역 의원들은 살아남게 됐습니다.

4+1협의체는 선거구 획정 인구 기준을 ‘선거일 전 3년 평균’으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럴 경우 인구수가 적은 지역에서는 기준 인구수가 줄어들어 지역구 통폐합을 막을 수 있게 됩니다.

지역구가 축소될 경우 전남 여수갑, 전북 익산 갑을과 남원·임실·순창, 김제·부안 등은 통폐합이 불가피했습니다. 호남 지역에만 의석 3~4개가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역구 의석이 유지되면서 한숨을 놓게 됐습니다.

4+1 협의체에 참여한 정당들을 보면 누구 하나 엄청난 이득을 취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줄 것 내주고 받을 것은 착실하게 받아 큰 손해도 보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정치 협상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국회는 임시회의 회기가 끝나는 24일 자정까지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게 됩니다. 26일 오후 2시 본회의가 소집되면 선거법이 상정됩니다. 4+1 협의체 소속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면 무난히 통과될 전망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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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방부 “한미 특전사, 北 기지습격·요인생포 보도는 터무니없고 매우 위험”

군 관계자, “참수작전 등 확대 보도는 전혀 근거 없어”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9-12-24 10:08:04
수정 2019-12-24 10:09:31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미 국방부는 12월 16일 한미 특전사 대원들의 훈련 모습을 담은 12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미 국방부는 12월 16일 한미 특전사 대원들의 훈련 모습을 담은 12장의 사진을 공개했다.ⓒ미 국방부 공개 사진
 

미국 국방부는 최근 일부 한국 언론들이 한미 특전사가 북한군 기지를 습격해 요인을 생포하거나 ‘참수작전’을 실시했다는 보도에 관해 “터무니없고 매우 위험한 보도”라고 일축했다.

조선일보는 23일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주한 미 특수전사령부가 지난달 우리 군 특전대원들과 함께 북한군의 기지를 습격해 가상의 요인을 생포하는 내용의 훈련을 군산 기지에서 실시한 것으로 22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어 “북한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일종의 ‘참수작전’ 훈련을 한 셈이다”고 설명했다. 이 보도 이후 대부분 한국 언론들은 “한미 특수부대원들이 지난달 가상의 북한군 기지를 습격해 납치된 요인을 구출하는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보도들은 그 근거로 미 국방부가 이달 16일 특전대원들의 훈련 사진 12장을 공개한 점과 특전대원들이 건물 내부를 습격하는 훈련이 담긴 동영상도 유튜브에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미 국방부 관계자는 24일(한국 시간) 이 보도에 관한 입장을 묻는 기자 질의에 “미 국방부가 이런 훈련을 실시했다거나, 디지털 플랫폼에 이런 종류의 영상이 있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preposterous)”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런 보도는 잘못됐을 뿐 아니라, 무책임하고 매우 위험하다(flat-out dangerous)”라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의 또 다른 관계자도 “해당 보도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미 국방부가 ‘영상정보 배포시스템(DVIDS)’에 공개한 12장의 사진은 아직 게재돼 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한미 특전사 대원들의 일상적인 합동 훈련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매체가 공개한 동영상도 북한군 기지 습격이나 ‘참수작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군 관계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인 구출 등 한미가 일상적으로 진행하는 훈련의 일환”이라며 “이를 참수작전 등으로 확대해 보도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북미관계가 교착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언론이 앞서서 대결을 조장하는 듯한 보도를 내놓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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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기성 문법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文정부, 남은 임기 이것만은 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의원
2019.12.24 09:54:59
 

 

 

 

문재인 정부가 올해를 끝으로 반환점을 돈다. 지난달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이미 절반의 임기가 지났을 수도, 이제 반환점일 수도 있다. 그 사이 촛불로 표방된 정부의 개혁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정권 지지층과 반대층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정부는 대내외 악재에 둘러싸여 갈 길을 잃은 기색이 역력했다. 부동산 폭등과 저조한 경제 성적이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었던 소득주도성장과 충돌해 민심 이반을 낳았다. 아울러 갈수록 활로를 잃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대적인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고, 일각에서는 더 자유주의적 개혁만이 위기 돌파의 묘책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이 같은 갈등은 지난 10일 밤 겨우 국회를 통과한 512조2504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으로 일단 결론 지어졌다. 하지만 더 강력한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는 이른바 '퍼주기 예산' 논란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국 사태는 집권 세력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다는 평가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조국 사태는 진보 진영과 민주당 지지 층, 젊은 세대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정의당으로 대표된 주류 진보 진영은 이 사태에서 갈 길을 잃었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페미니즘 정권을 표방한 취임 시기 대통령의 목표와 달리, 정부 임기 내내 커져간 남녀 갈등은 특히 올 한해 들어 여성 연예인의 연이은 자살, 일제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야기한 한일 갈등과 이에 대한 정부 대처를 비판하는 여성계의 목소리,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의 주류 인터넷 문화 등과 맞물려 폭발하는 양상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캠페인은 특히 올해 '타다 논쟁'으로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표방한 정부는 톨게이트 노조 등의 문제에서 어떤 리더십도 보이지 못했다. 그 사이 특히 친재벌 노선으로 전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정부를 향한 노동계의 배신감이 올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구적 위기가 된 환경문제, 곧 기후위기 문제는 올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한국에서도 대규모 길거리 시위를 열어 정부를 압박했고, 미세먼지 문제는 올해도 한국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정부는 기후위기 문제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해 이 문제를 우려하는 이들의 실망을 샀다.  

현 정부에 반환점 이후, 곧 남은 임기가 특히 중요한 까닭이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프레시안>은 특히 경제, 노동, 여성, 환경, 진보의 다섯 분야에 관해 각 분야 전문가와 인터뷰를 준비했다. 여태 문재인 정부의 해당 분야 정책을 어떻게 보았는지,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최근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서해문집 펴냄)를 내기도한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현재 진보진영이 문재인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이유를 두고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오면서 만들어진 민주연합세력이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진보진영이 나가가야 할 방향은 민주연합세력과의 결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 장석준 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진영. 문 정부 개혁 후퇴에도 무력한 모습 보이고 있다"

프레시안 : 많은 이가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라고 칭한다. 스스로도 이를 자임하고 있다. 그러한 문 정부도 집권 2년 반을 지났다. 전환점을 돈 셈이다. 여러 의견이 분분하나, 상당수가 현 정부에서 집권 초기 약속했던 내용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 여기에는 진보진영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개혁적 성향이 옅어질 때,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진보진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판과 견제에 취약한 진보진영이 있었던가 싶다. 10여 년 전, 민주당 세력이 집권했을 때 보여주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 궁금하다.

장석준 : 이 말부터 먼저 해야 겠다. 현재의 진보진영은 문재인 정부에 착시효과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9년 정도 야당으로 있으면서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정책이나 입장을 상당수 수용했다. 그것에 대한 착시효과를 아직 가지고 있다. 사실 과거 민주당 계열 정치세력이 집권하면, 집권 전 내세웠던 정책을 충실히 수행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문제는 진보진영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던 듯하다.  

이러한 생각을 더 부추긴 건, '촛불 항쟁'이다. 비일상적인 계기를 통해, 그리고 조기대선을 통해 정권이 들어섰기에, 촛불연합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권을 자임했기에 뭔가 진지하게 개혁에 임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선,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3대 선거까지는 촛불연합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그래서 진보진영 내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몰비판적인 자세가 있었다. 그것이 진보진영이 문 정부의 개혁이 후퇴해도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프레시안 : 톨게이트 수납원 점거농성을 보면, 10년 전 이랜드 사태가 생각난다. 당시 대규모 정리해고를 진행한 이랜드는 사기업이었고, 그렇게 정리해고를 해도 법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현재 톨게이트 수납원 사태는 한국도로공사, 즉 공기업이 문제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 게다가 대법원에서는 이들이 정규직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수납원 점거농성 관련해서 진보진영에서 이 문제를 풀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이랜드 때,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총력을 기울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장석준 : 아까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씩 그런 착시효과, 내지는 안이한 생각들이 바뀌고 있다. 최저임금과 탄력근로제 등 노동현안이 후퇴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연대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에도 진보진영 내에는 여전히 현 정부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정리하자면, 지금은 진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던 서로 다른 세력들이 확연하게 다름을 드러내고 있는 시기라고 본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장석준 : 촛불연합이 분리된 것이다. 한 축으로는 여전히 촛불연합, 즉 민주대연합 시각에 있는 세력, 그리고 또 다른 한 축에는 민주대연합과 결별해야 한다는 세력, 이 두 세력이 진보진영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하나하나 이야기해보자. 민주대연합 세력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와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장석준 : 그들의 주장이 완전히 시효를 상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20년 총선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활개치고 다니지 않는가. 그렇기에 민주대연합의 필요성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해봐야 한다. 이미 신자유주의 파고를 한 차례 겪은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질서 자체를 의문시해야 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진보진영은 이러한 국면에서 새로운 의제나 근본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사회 변혁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보다는 여전히 민주대연합 구도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맞지 않는 목소리를 낼 경우, 차단한다. '우선은 이것이 급하다'는 이유다. 그렇다보니 근본 의제를 이야기하는 세력과는 격돌할 수밖에 없다. 이 두 세력은 정리되긴 어렵다고 본다. 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보진영에 묶여 있었지만, 같은 '진보'가 아니었던 셈이다. 간판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명박근혜' 정권의 지난 9년 간, 한국 사회의 후퇴를 막기 위해 뭉쳐 있던, 즉, 공공의 적을 막거나 제어하기 위해 모여졌던 힘이 이제는 분산할 때가 됐다는 건가.

장석준 : 지난 정권들은 한국 사회를 10년 이상 후퇴시켰다. 이들 정권에 맞서다 보니,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맞서는 의제 자체도 세계사 시간과 비교해 상당히 후퇴된, 뒤쳐진 그런 것들이었다.  

프레시안 : 4대강 사업, 부자감세 등이 대표적일 듯하다.

장석준 : 신자유주의 위기를 겪은 세계는 2010년부터 신자유주의 이후 질서를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2010년 당시 한국은 신자유주의 전성기 시대에 시계가 멈춘 세력들이 정권을 잡았다. 당시 의제는 이를 몰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6년~2007년에는 사회 의제에 관한 담론이 상당히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석준 : 당시의 한국 사회 진보 담론은 지금보다 오히려 더 앞선 측면이 있었다. 특히 2008년 광우병 촛불 때는 여러 다양한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촛불 실패 이후, 모든 담론과 의제들이 민주대연합론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명박근혜'를 몰아내는 게 최우선이라는 담론으로 정리됐다. 그래서 이른바 저항세력이나 민주세력, 그리고 진보세력조차도 세계사 시간에 뒤처지게 됐고, 그런 현실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장석준 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대연합, 반 자유한국당만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그래도 그간 민주정부가 만들어놓은 민주적 절차 등을 후퇴시키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순진하게 느낄 정도로 후퇴됐다. 이 공포심이 매우 크다. 진보진영이 쪼개져 있으면 다시 그때처럼 제2의, 제3의 '이명박근혜'가 나타나 다시금 사회를 후퇴시킬 거라는 두려움이 있는 듯하다.  

장석준 : 다시금 단순히 반 자유한국당이라는 안티 정체성 속에 다 합친다고 연합 질서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지금 시대에 맞게 기민하게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만 다양한 세력들의 연합이 유지가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연합을 유지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되레 연합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연합을 파괴하는 사람들을 586세대라고 할 수 있나.

장석준 : 세대론 보다는 중산층론이 더 맞는 듯하다. 중산층은 이미 현재의 안 좋은 경제 상황에서도 경제적 이해를 일정 충족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경제적인 이슈는 급선무가 아니다.  

프레시안 : 경제적으로 충족되면, 정치를 돌아보게 되는 듯하다.

장석준 : 그렇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이슈가 중요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을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말이 안 되는 행동과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청산하려면 다시 촛불 광장 같은 만남의 공간을 열고, 다수의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연합전선을 펼치는 데에는 비정규직도 필요하고, 젊은 세대도 필요하다. 쇠락해가는 지방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대연합을 형성하려면 반 자유한국당만을 부르짖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이며,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비정규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이를 억압하고, 중요하지 않다며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런 행보를 보여 온 게, 즉 촛불광장에 형성됐던 연합을 계속 깎아온 게,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세력들이다. 세대로는 586세대이고, 계층으로는 중산층이다.

프레시안 :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화두는 상당히 많다. 특권층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이를 담론으로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검찰 개혁이 우선이기에 나머지는 후순위로 밀리는 식이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선거에서 '부유세'를 담론으로 던졌다. 논쟁을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금은 그런 식의, 즉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없는 듯하다.  

장석준 : 구조적 문제가 있다. 민주당이야 정체성과 지향이 그렇기에 바뀌길 기대하기 어렵다. 남은 건 진보진영인데, 여기도 쉽지는 않다. 진보진영의 대표격인 원내정당 정의당이나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을 이야기해보자. 현재 이곳에는 아까 언급한 '민주대연합 세력'과 이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공존한다. 이는 한국 사회 구조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장석준 : 단순히 말해, 민주노총 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고, 대기업과 영세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이 있다. 정의당 내에도 민주노총의 조직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진보정당을 교차 지지하는 층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정규직, 대기업, 민주당지지)의 정서는 우리 사회의 범 중산층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 내에 있지만, 서비스연맹 소속 청소노동자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노동자간 정서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장석준 : 정의당이 '조국 찬성'이냐 '반대'이냐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건, 이러한 객관적인 토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문제는 이러한 토대는 진보진영의 구조적 문제이기에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연대 내지 협조가 체질화된 듯싶다" 

프레시안 : 현재처럼 분열된 세력이 공존하는 방식, 그리고 범 중산층 정서로 귀결되는 정체성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장석준 : 진보진영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겠다는 자기 입장을 분명히 정하지 않으면, 지금의 기성 진보세력들이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이 진보정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앞으로 명확한 노선 계획이다. 어느 세력을 어떤 식으로 세력화하고 연합을 구축해 개혁의 힘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내년 총선 때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없고 개방형 경선제와 같은 이벤트성 이야기만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지금의 정의당에서는 원내교섭 정당 의석수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듯하다.  

장석준 : 이해는 된다. 어쨌든 진보정당 운동 역사에서 선거법 개정이라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 처리까지 민주당과의 원내 연대를 이어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난 9년 동안 단단하게 쌓아온 민주당과의 연대 내지는 협조가 체질화된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프레시안 : 야성의 DNA가 아니라 원내 교섭의 DNA로 변화된 듯하다.

장석준 : 그러한 체질을 개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무엇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장석준 : 책임 있고 진지한 정치세력이라면 현 정권의 우클릭 내지는 재벌친화적인 행보를 정확히 잡아내고 대응해야 한다. 이제는 민주당과 연합이 아니라 경쟁으로 가야하며 필요하면 사안별 제휴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세력 대 정치세력으로 견제하고 대립하는 국면으로 넘어가야 한다.  

프레시안 : 진보진영에서는 그런 사안별 제휴 등을 총선 이후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런 변화가 총선 이후에 가능할까 싶다. 아까 언급했던 지난 9년 간 만들어진 DNA가 이후에도 유지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장석준 : 총선이라는 게 하나의 과정이다. 총선 전에, '우리가 어떤 정치 행위를 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그에 따라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는다. 만약 총선에서 유의미한 의석수를 얻는다면 총선 전에 밝힌 '어떤 정치 행위'를 하도록 위임을 받는 식이다. 그렇기에 지금 총선 이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결정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총선 이후, 뭔가를 결정해서 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내가 볼 때는 선거법만 정리되고 나면,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선택해야 한다. 만약 그 시기에 정의당이 시대상황과 맞지 않는 입장을 택한다면, 총선에서 민심은 정의당을 버릴 수도 있다. 새로운 진보 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2008년 광우병 촛불, 김진숙 희망버스 등을 지켜본 느낌으로는, 진보진영이라는 시스템이 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날것이면서도 필요한 담론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어느 곳에서도 담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는 듯하다. 이걸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내로 들어와서 '어떤 정치 행위'를 하겠다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듯하다.  

장석준 : 촛불 등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사람들이 계속 집행라인을 잡고,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인물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법 개정이 그나마 정의당이 역사에 봉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새로운 세력 진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게 선거제도, 정당제도다. 거기서 선거법 개정은 파열구를 만드는 것이다. 정의당 자신이 미래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해도, 미래의 주체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여는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쉽지 않은 듯하다.  

장석준 : 이런 걸 계속 막으면 혁명이 일어나든가, 사회가 망하든가 할 것이다. 임계점에 온 듯하다.  

프레시안 : 일례로 2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 게 모두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도 '중요하지만 난 모르겠다'는 식으로 있는 듯하다.

장석준 : 말로만 젊은 세력들이 진출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쇼윈도 마네킹'처럼 진출시키다 보니 그런 것이다. 실제로 젊은 세력들이 진출하게 하려면 기존 결정권자들이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물러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 않나. 자기네들이 물러나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오도록 해야지, 자기네들은 그대로 있으면서 보여주기 식으로 픽업해서는 안 된다.
 

▲ 장석준 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정당, 기성 문법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프레시안 : 세대교체론 이야기 나올 때 나오는 이야기가 리더십, 경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기존 인물들은 젊은층이 주도권을 쥐면 조직이 망가진다고 이야기한다.

장석준 : 모든 문제를 지난 세대의 퇴장으로 환원해서 이야기하면 매우 편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건 뻔하다.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어떤 종합 대책을 가져가든, 구 세대 지도층이 적절하게 퇴장해야 한다는 내용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퇴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건 분명히 지적하고 따끔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프레시안 : 40대 기수론 이야기도 나온다.  

장석준 : 세대가 지체되니 40대 기수론이 나오는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20대 30대로까지 내려가야 한다. 기후 위기 등은 세대적으로 더 내려갈수록 해결 능력과 의지가 강하다.

프레시안 : 당사자성이 중요한 듯하다.  

장석준 : 당을 이끄는 사람 가운데 집을 소유한 사람, 남성, 수도권 거주자, 대졸자, 나이든 사람 등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프레시안 : 그렇기에 부동산 문제나 기후 문제 등은 후순위가 되는 듯하다. '니 의견이 맞는데, 시급한 거는 검찰 개혁이다' 이런 논리가 되는 듯하다.

장석준 : 이는 지금 한국 정치 지형을 이끌어가는 세력들의 심각한 문제다.

프레시안 : 그래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듯하다.

장석준 : 어느 한 곳에서라도 조직 내 목소리 중심이 새로운 쪽으로 이행되어가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신선한 바람이 불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안 보인다.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심상정 의원이 당 대표를 하면서 의원도 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심 의원 지역구인 고양시는 잘 닦여진 곳이다. 그곳에 심 대표 대신 젊고 참신한 새 후보를 출마시킨 뒤, 당선하도록 하는 사례를 만들면 어떨까. 그러면 매우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라는 게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 않나. 지금 진보진영의 리더십은 그런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서 실패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아름다운 스토리가 나왔으면 한다.

프레시안 : 원내에 진출한 진보정당 정치인들을 보면, 기존 정치인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장석준 : 어느 특정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보진영이 원내진출 15년이 넘으면서, 각자 정치에 닳고 닳았다. 정치를 잘 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중 정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대중을 만족시킬 정치를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익숙해온 원내 정치, 이것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여의도 정치다. 그것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본인은 대중 정치라 생각하지만, 언론만 바라보는 정치, 타당 의원과의 협상만을 바라보는 정치에 갇혀 있는 게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때다.  

프레시안 :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얻었다고 해도, 이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장석준 : 이건 단호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원내진출 할 때의 포부는 새로운 정치 문법을 만들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원내 진출 15년이 지나면서 굉장히 세련되고 진화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새로운 문법을 만들기 보다는 기성 문법에 포로가 되어버렸다. 철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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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찰' 기무사 간부들의 변명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12/24 11:34
  • 수정일
    2019/12/24 11: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통령 보좌 사명감, 지시 따랐을 뿐"... 24일 소강원 선고로 첫 법적 판단

19.12.24 08:10l최종 업데이트 19.12.24 08:10l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앞에서 '기무사 고발 및 세월호참사 전담 특별수사단 설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강제수사를 통해 기무사와 국정원이 세월호 도입, 운영과 운항, 급변침과 침몰, 구조방기, 진상조사 방해 등 세월호참사 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기무사의혹 특별수사단은 지난 2일 수사경과 보고를 통해 기무사가 특별 TF를 조직해 유가족들의 성향, 사진, 학력,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사찰한 사실을 공개했다.
▲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지난해 8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앞에서 "기무사 고발 및 세월호참사 전담 특별수사단 설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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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정당한 첩보 수집이었다."
"대통령 국정운영 보좌 기관이란 사명감도 있었다."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명령을 이행한 것에 불과했다."


세월호 유족 등 민간인을 사찰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국군기무사령부(현 안보지원사령부, 아래 기무사) 간부들이 법정에서 내놓은 주장이다. 이 사안과 관련된 첫 법적 판단이 오늘(24일) 내려진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이익원)은 24일 오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아래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소강원 육군 소장(당시 기무사 610기무부대장, 대령)의 선고공판을 진행한다.

소 소장 외 김대열·지영관 전 기무사 참모장도 기무사의 세월호 관련 사찰 주요 피고인이다. 전역한 두 사람은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김미리)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재판은 현재 서증조사(문서증거조사)가 한창이다. 두 사람은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 내에 설치된 세월호 TF팀의 주요 책임자로 활동했다. 김 전 참모장은 TF팀장, 지 전 참모장(당시 융합정보실장)은 TF 정책지원팀장을 맡았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국방부 특별수사단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이들이 세월호 유족의 동정, 요구사항, 성향 등을 사찰하도록 지시했거나 관여했다고 판단했다(관련기사 : 헌법 흔든 기무사... 세월호 유족 사찰하고 '좌파세' 분석도). 재판에서 공개된 관련 문건에는 '여론 관리'란 명분으로 정치 개입의 소지가 있는 내용도 담겨 있었는데, 이는 모두 청와대에 보고됐다(관련기사 : "노란 리본은 노무현 상징색" 공개된 기무사 세월호 문건).

[주장①] "정당한 첩보행위"

 

하지만 주요 피고인인 기무사 간부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세월호 관련 사찰이 기무사 첩보활동 범위에 속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시를 이행한 것뿐인 자신들은 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대열·지영관 측은 지난 11월 11일 진행된 재판에서 "세월호 참사 때 군이 나가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이 상황에 대한 여론을 수집하는 건 정당한 첩보수집 범위에 해당한다"라며 "여론동향을 분석해 의견을 내는 것 자체는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재난관리시스템 개편, 정부부처 개편 등 정책정보도 (청와대 보고 내용에) 담겨 있는데 '군인이 왜 그런 것에 관여하냐'고 하면 부적절하다고 할 순 있겠지만 위법은 아니란 생각"이라며 "군 통수권자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통령 보좌 기관이란 사명감도 있었다. 정책정보를 보고한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위법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소강원 측도 지난 10일 재판에서 "국가재난사태에 따른 정보수집이라 생각했지 민간인 사찰, 정치적 목적의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세월호 사고는 사상 초유의 재난이므로 기무사 역시 예전보다 더 많은 구체적 정보를 수집할 필요성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장②] "지시에 따랐을 뿐"

이들은 공통적으로 윗선을 거론하기도 했다. 김대열·지영관 측은 지난 11월 11일 재판에서 "기무사 참모장은 각 처·실장의 고위업무의 지휘감독권을 갖지 않는다"라며 "TF팀에 편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기무사 조직상 형식적으로 이름만 올린 것이다. 실제 운영은 원래 지휘체계에 따라 기무사령관이 담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소강원 측도 지난 10일 재판에서 "당시 TF에선 610부대를 현장부대로 생각했고 통제대상으로 삼았다. 피고인은 지시를 수용했을 뿐"이라며 "사령부 지시에 따라 610부대원과 함께 활동한 피고인에게 고의가 있다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주장을 펼치다 보니 소강원 측은 김대열·지영관에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소강원 측은 같은 재판에서 "기존 대법원과 하급심 판결을 보면 직권남용 유죄는 의사결정 참여자에게 내려졌다"라며 "현재 김대열 등 의사결정 참여자들의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피고인의 경우 TF팀 구성원도 아니고 예하부대장으로서 수족처럼 명령을 이행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각종 사찰 보고받고 지휘한 공동정범"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 자료를 즉각 체출 할 것을 지시한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 기무사 정문 앞 모습.
▲  과천 기무사 정문 앞 (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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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은 지난 11월 11일 김대열·지영관 재판에서 "헌법상 국군은 정치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필하더라도 그 의무를 위반해선 안 된다"라며 "세월호 유족 동향을 파악하는 행위는 기무사 직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위법 근거로 사찰동기, 목적, 의도를 봐야 하는데 그런 의도와 목적을 대외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김대열·지영관 부하의) 이메일을 보면 '참모장 지시사항', '정보융합실장 지시사항'이란 내용이 있다"라며 "(두 사람은) TF팀 핵심 간부 지위에서 각종 사찰을 보고받고 지휘한 공동정범의 입장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소강원 재판에서 군검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기무사가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 등 정권 보위를 위해 어려움에 처한 세월호 유족을 상대로 무분별하게 첩보를 수집, 여론 압박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라며 "피고인은 예하 부대장으로서 상급자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지만 군인은 상관에게 충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 국민, 헌법정신에 충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해야 할 군인이자 경력과 지위를 가진 예하 부대장이었다. 위법 지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해야 했다"라며 "그럼에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음은 물론 적극 협력하기 위해 직권을 남용, 휘하 부대원에게 유족 사찰이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으므로 책임이 가볍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군검찰은 소강원에게 징역 3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유족 강지은(단원고 고 지상준군 어머니)씨는 같은 재판에서 "지금도 광화문에 가면 '종북좌파들이 자식들 이용한다'고 공격받는다. 선체 인양, 시신수습 하지 말라고 기무사에서 초기에 계획했던 내용이 다 실행됐다"며 "재판부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직권을 남용해 국민을 핍박하고 학대한 행위가 얼마나 큰 죄인지 꼭 선례를 남겨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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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사자’ 문제로 막히다

<2019 송년특집 ①> 남북관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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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3  1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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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019년은 연말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난해 순항하는 듯한 북미관계가 올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결렬로 갸우뚱거리더니 그 여파로 한반도 정세가 일 년 내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한마디로 북미관계가 막히자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모두 경색된 해였습니다. 

북한이 ‘연말 시한’으로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이 며칠 안 남은 연말까지 한반도의 진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불허인 가운데, 통일뉴스는 <2019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한 내부 ③북미관계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70여 년 분단사를 돌이켜 보면 남북관계는 끝없이 나쁘지도 마냥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2018년은 달랐다. 남북 정상은 세 차례 만났고, 군비통제를 실천하며 한반도 평화의 오솔길을 여는 역사적인 해였다. 그러나 2019년은 제대로 된 일이든, 허튼 것이든 어느 하나 이루지 않은 무관의 역사로 남았다. 한반도의 ‘당사자’ 문제로 남북은 막혔다.

지난해 12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019년에도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서로의 마음도 열릴 것”이라고 화답했다. ‘판문점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남북 간 다짐은 2019년의 산뜻한 출발을 예고하는 듯했다.

2019년 시계 ‘제로’..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남북

하지만 2019년 남북관계는 2018년에 비해 한 단계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보다는 ‘과연’이라는 물음부터 시작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대목은 문재인 정부의 숙제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숙제는 미국으로부터 어떻게 허락을 받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첫 번째 과제였던 인플루엔자 치료의약품인 타미플루 대북지원이 무산됐다. 한미워킹그룹이 약을 실은 차량의 방북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측의 남측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측은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했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풀 것이라는 기대를 높였다.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는 사명으로 한반도 평화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신한반도체제’를 열겠다며, 논란을 딛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결과는 결렬이었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남북 철도.도로 현대화사업은 무기한 연기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이유였다지만, 3.1운동 100주년 남북공동행사는 무산됐다.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도 불허됐다. 북측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3일 동안 철수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장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4월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 9월 평양공동선언 1주년 행사에 북측은 빠졌다. 11월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 초청장을 김 위원장은 거절했다. 국제기구를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북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남북 예선전에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2018년과 달리 2019년 남북관계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지난해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에 따른 일부 후속조치를 마무리하는 수준이었다. 한강하구 공동이용수역 해도를 완성하고 남북 철도.도로 협력 관련 자료를 주고받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유도, 여자농구, 여자 필드하키 등에서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것 뿐이었다. 

   
▲ 2019년 남북은 함께 한 사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사진은 2월 금강산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주최 새해맞이 행사. [자료사진-통일뉴스]

민간교류도 마찬가지였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2월 금강산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열었지만, 그뿐이었다. 각계가 만나 2019년 다양한 교류사업을 하자고 다짐했지만, 5월 북측은 “남북관계의 소강국면에 대한 진단과 과제를 논의하자는 취지에서 민간단체의 협의를 추진했으나, 남측의 언론보도 등에서 근본적인 문제들은 제외된 채, 부차적인 의제들만 거론되는 등 협의의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며 모든 민간 실무협의를 중단했다.

그나마 6월 이희호 여사와 10월 문재인 대통령 모친 별세에 북측이 조의문을 보내온 것이 남북교류의 한 줄을 차지했을 뿐이다.

‘당사자’ 문제로 어긋난 남북

이유는 하나였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역할론에 대한 남북의 차이였다. 대북제재 상황에서 미국의 승인없이 남북관계를 풀 수 없던 남측에 북측은 시쳇말로 ‘내 편이 돼라’는 당사자론을 요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비판과 함께 요구했다.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이 있기 전부터 북측은 각종 매체를 통해 남측에 ‘당사자’ 역할을 주문했다. <우리민족끼리> 등은 한미워킹그룹을 두고, “남조선 당국이 동족이고 북남선언에 합의한 상대인 우리에 대한 미국의 제재압박책동에 추종하면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미국에 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8.15경축사를 통해 평화경제를 강조했지만, 북측은 이를 폄훼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러나 남측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역할로 내놓을 해법이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구조로 운전자론을 내세워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를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는 북미대화의 성과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한미동맹 속에서 북측 편만 들어줄 수는 없었다.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났지만, 남측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닫힌 북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자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북한이 강조한 '연말 시한'에 다가가도 북미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사자’ 길잃은 남북, 결국 금강산에서 터지다

이는 결국 금강산 문제로 터졌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밝혔지만, 남측이 대북제재 속에서 ‘당사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김 위원장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훌륭히 꾸려진 금강산에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는 말에 무게를 둔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협의를 통해 금강산 문제를 풀자는 뒷북을 쳤을 뿐. 통일부는 ‘창의적 해법’을 내놓겠다지만, 무엇이 ‘창의적 해법’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기존의 (금강산) 관광 방식은 안보리 제재 때문에 계속 그대로 되풀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관광의 대가를 북한에게 지급하는 것은 제재에 위반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솔직했다.

하지만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당사자’ 역할을 못 하는 남측과 협력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10월 금강산을 현지지도한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지난해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이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확인했지만, 남측이 ‘당사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북측의 불만은 다시 군사적 긴장 상황에 직면했다.

북측은 하노이 결렬 이후 5월 4일부터 11월 28일까지 14차례 단거리 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 등을 13차례 발사했다. 급기야 11월 북측은 김 위원장의 지시로 서해 창린도에서 포사격을 실시했다. 수차례 미사일 발사에도 ‘9.19 군사분야 합의’ 위반이 아니라던 정부는 서해 포사격은 합의 위반이라며 항의했다. 남측도 12월 서해 연평도에서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했으며, 북측은 “군사적 도발소동”이라고 반발했다.

북측이 설정한 ‘연말 시한’ 동안 북미대화가 풀리지 않은 현재, 북측은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시험을 두 차례 단행했다. 북한과 미국의 힘겨루기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당사자’가 되지 못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경제’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다. 남측이 ‘당사자’가 아님을 확인한 북측은 금강산 문제에서 보여주듯 ‘자력부흥, 자력번영의 장엄한 새 시대’를 열겠다며 자신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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