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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나와 ‘코로나 종식’?…무증상 감염자, 백신 맞고 활보 땐?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입력 : 2020.12.14 06:00 수정 : 2020.12.14 09:48

 

과학계, ‘마스크 세상’과의 섣부른 결별 경계하는 이유 

백신 나와 ‘코로나 종식’?…무증상 감염자, 백신 맞고 활보 땐?
 

지난주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영국에서 세계 첫 접종에 들어갔다. 각국 정부가 백신 사용 승인을 서두르고 있고, 다양한 제약사에서 잇따라 제품을 내놓고 있어 전 세계에서도 의료진과 건강 취약계층,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접종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올겨울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마지막 고비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과학계에선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돼도 ‘마스크 세상’과 이별하는 일이 생각보다 빨리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 ‘감염 확산 엔진’ 무증상 감염 

감염자의 40~45%가 무증상
백신 맞았다고 마스크 벗으면
감염 확산 고리 끊기 어려워
 

지난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현지 과학계의 분석을 인용해 화이자와 모더나의 약효가 놀랍다면서도 코로나19 확산세를 잡을지는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두 회사가 개발한 백신의 예방 효과는 95% 수준에 이른다.

뛰어난 백신에도 이런 시각이 나오는 이유는 ‘무증상 감염자’ 때문이다. 무증상 감염자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지만 발열이나 기침 등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무증상자도 말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침방울을 공중에 뿌리며 얼마든지 코로나19를 옮길 수 있다. 무증상 감염자가 바이러스의 조용한 전파자가 되는 이유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스크립스연구소, 한국 질병관리청의 자료를 종합하면 코로나19 감염자의 40~45%가 무증상이다.

■ 백신만으로 대응 어려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무증상자
감염력 최대 59% 떨어지기도
화이자·모더나에선 확인 안 돼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전체 감염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무증상 감염자가 백신 주사를 맞은 뒤 바이러스 차단막 구실을 했던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직장생활이나 취미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 닥치는 위험은 더욱 커진다. 감염 확산 고리를 신속히 끊는 일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유행이 단기간에 극적으로 소멸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돌파구를 열려는 시도도 있다. 지난주 국제학술지 ‘랜싯’에 실린 논문을 보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무증상 감염자가 맞았을 경우 감염력을 최대 59% 떨어뜨렸다.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에선 확인되지 않은 장점이다.

하지만 일부 긍정적인 결과를 놓고 봐도 결국 현존하는 백신으로는 무증상 감염자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확산하는 일을 확실히 차단하는 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무증상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 능력을 완전히 틀어막기에는 역부족이고, 나머지 백신들에선 이런 효능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스트라제네카와는 선구매 계약을 했고, 화이자와 모더나와는 협상이 진행 중이다.

■ “섣불리 마스크 벗지 마라”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이 본궤도에 오른 뒤에도 마스크를 벗는 건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자신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믿는 무증상 감염자가 백신 접종 뒤 안심하고 마스크를 벗고 다니며 바이러스를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실제 어느 정도 문제가 될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무증상 감염자의 비율 추이, 무증상 감염자 체내의 바이러스 감염력과 백신 접종의 상관관계를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런 분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시점까지는 마스크를 벗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금 개발 중인 백신으로 완전히 제압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로선 백신 접종 뒤 항체가 얼마나 유지될지, 바이러스가 변이돼도 항체가 계속 효과를 보일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마스크를 벗어도 안전한 시점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자신이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140600015&code=610100#csidx8d4d72e71de0ab5b653673c45e8b6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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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미스터리로 남은 덕수궁 미술관 불상 도난 사건

[한국의 유물유적] 마을 도로공사 중에 발견한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

20.12.14 08:07l최종 업데이트 20.12.14 08:07l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마을 도로공사장 자갈밭에서 발견된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마을 도로공사장 자갈밭에서 발견된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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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경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건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일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 각각의 국가를 건설했지만 건국 초기에는 공인된 국교가 없었다. 하늘신과 조상신, 자연신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삼국의 국가 체제가 점차 중앙 집권 국가 형태로 발전하게 되면서 백성들을 통합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체계화된 종교와 사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여 국가 이념으로 삼았지만, 신라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귀족들의 반발에 부딪쳐 이들 국가들보다 150여 년 늦은 527년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정식으로 공인되었다.
  
 제작연도가 밝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불상은 전체 높이 16.2cm의 소형 금동불상이다
▲  제작연도가 밝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불상은 전체 높이 16.2cm의 소형 금동불상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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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는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소수림왕 2년 전진(前秦. 351~394)의 왕 부견(符堅)이 고구려에 사신을 보냈다. 아울러 전도승 순도(順道)와 불상·경문을 함께 파견해 불교를 전했다."
 
이후 한반도의 삼국과 중국은 서로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하여 불교문화를 받아들였지만, 불교가 수용의 단계를 넘어 우리 땅에 정착하여 독자적 발전을 이룰 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됐다. 특히, 숭배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불상(佛像)'은 중국에서 직수입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졌다.
 
 광배 뒷면에 새겨진 ‘4행 47자의 명문’은 이불상이 연가 7년(539년) 고구려 평양의 동사에서 만들어진 1000개의 불상 중 29번째로 만들어진 ‘인현의불’ 임을 설명하고 있다
▲  광배 뒷면에 새겨진 ‘4행 47자의 명문’은 이불상이 연가 7년(539년) 고구려 평양의 동사에서 만들어진 1000개의 불상 중 29번째로 만들어진 ‘인현의불’ 임을 설명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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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고구려 금동불상이 신라 땅에서?
 
불교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서에 맞는 불상이 필요했다.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7년이 지난 연가 7년, 서기 539년.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있는 절 동사(東寺)에 사도 40여 명이 모였다.
 
동사에 모인 승연(僧演)을 비롯한 불자들은 나라의 번영과 백성들의 평온함을 발원하고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천 개의 불상 '현겁천불(賢劫千佛)'을 만들어 전국에 유포하기로 결의한다. 이때 만들어진 1000개의 불상 중 29번째로 만들어진 '인현의불(因現義佛)'은 법영(法穎)이라는 비구 스님이 모시고 공양하고 있었는데 어느 때인지 모르게 소실되고 말았다.
   
그렇게 인현의불은 까맣게 잊혔다. 그로부터 14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1963년 7월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에서는 마을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일당을 벌기 위해 공사현장에 나온 마을 주민 강갑순 아주머니는 산비탈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있었다. 얼마쯤 파내려 가자 넓적한 돌덩이 하나가 나왔다. 돌덩이를 제치는 순간 사람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네모 반듯한 공간에 금빛 찬란한 불상이 누워 있었다.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이 누워 있는 모습
▲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이 누워 있는 모습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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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의불이 고구려 수도 평양에서 만들어진 지 1424년 만에 신라 땅에서 빛을 보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불상을 처음 감정한 전문가들은 신라 땅에서 발견된 터라 당연히 신라시대 불상으로 알았다. 하지만 광배 뒷면에 새겨진 '4행 47자의 명문'은 이 불상이 연가 7년(539년) 고구려 평양의 동사에서 만들어진 1000개의 불상 중 29번째로 만들어진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희대의 국보 도난사건'
 
제작연도가 밝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불상은 전체 높이 16.2cm의 소형 금동불상으로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이 잘 반영된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인의 얼굴을 닮은 부처님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둥근 연꽃 형상의 대좌 위에서 중생들의 두려움을 덜어주고 자비를 베푸는 수인을 취하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불꽃 무늬가 새겨진 배 모양의 광배(光背)가 부처님의 아우라를 더해준다.
  
 한국인의 얼굴을 닮은 부처님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오른손을 위로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펴서 중생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펴서 자비를 베푸는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  한국인의 얼굴을 닮은 부처님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오른손을 위로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펴서 중생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펴서 자비를 베푸는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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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중 돌무더기 자갈밭에서 찾아낸 금동불상은 광배 뒤에 새겨진 명문 덕분에 별다른 이견 없이 곧바로 8개월 뒤 1964년 3월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불입상'으로 지정 명명됐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1400여 년만에 드라마틱하게 세상에 나온 인현의불은 국보로 지정된 지 3년 만에 또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1967년 10월 24일 오전 10시. 덕수궁 미술관 2층 제3 전시실 진열장에 전시 중이던 불상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사라진 불상의 자리에는 범인이 남긴 메모가 있었다.
  
 둥근 연꽃 형상의 대좌
▲  둥근 연꽃 형상의 대좌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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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기록을 남기기 위해 불상을 훔쳐 갔으니 경찰에게 알리지 마시오. 알리지 않는다면 오늘 밤 12시까지 돌려주겠소."

그럼에도 경비원은 경찰에 신고했다. 덕수궁의 모든 문들은 닫히고 관람객들은 검문검색을 받아야 했다. 김포공항을 비롯한 모든 공항과 항만이 즉각 폐쇄됐다.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순간, 범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불상은 한강철교 제3교각 16번과 17번 받침대 사이 모래밭에 있으니 찾아가라..."

전화를 받은 미술관 국장은 급한 나머지 경찰도 대동하지 않은 채 한강으로 달려가 모래밭을 뒤졌다. 천우신조. 부처님의 보살핌이었을까. 다행히 불상은 비닐봉지에 쌓인 채 훼손되지 않고 모래 속에 묻혀 있었다.
  
 금동불입상의 옆모습
▲  금동불입상의 옆모습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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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지 1400년 만에 옛 신라 땅에 묻혀 있던 국보가 또다시 한강변 모래밭에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우리나라 문화재 도난 사건 중 가장 엽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까지도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희대의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격월간 문화잡지 <대동문화> 122호(2021년 1, 2월)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연가 7년명 금동불입상, #고구려 금동불상, #국보 제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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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방문에 얽힌 해괴하고 복잡한 사연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2/14 09:36
  • 수정일
    2020/12/14 09: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423] 고별방문에 얽힌 해괴하고 복잡한 사연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12/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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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

2. 모화사상, 모일사상, 모미사상

3. 비건의 거짓말과 허망한 기대

4.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

 

 

1.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

 

스티븐 비건(Stephen E. Biegun)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조선특별대표가 서울을 방문하기 직전인 2020년 12월 6일 미국 국무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비건 부장관은 “한미동맹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인도-태평양의 안전, 안정, 번영을 위한 공동노력을 논의하고, 북조선에 대한 지속적이고 긴밀한 공조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 정부 관리들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비건 부장관이 중대현안을 논의하려고 서울을 방문했었구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비건 부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의미를 너무 크게 부풀려놓았다. 그가 서울을 방문한 목적은 퇴임을 앞둔 때에 서울에 가서 그 동안 알고 지낸 고위관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려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비건 부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때는 그가 퇴임하기 약 40일 전이다. 그의 부장관 임기는 2021년 1월 19일에 끝난다. 퇴임을 앞둔 그가 새로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에 업무를 인계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에 서울에 가서 무슨 중대현안을 논의할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그가 서울방문 중에 꺼내놓은 것은 알맹이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퇴임을 앞둔 관리에게서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2) 비건 부장관은 즉흥적인 초청발언을 즉석에서 수락하고 서울을 방문했는데, 그렇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20년 11월 17일과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한미재계회의 제32차 총회를 대면회의 및 화상회의로 진행했는데, 회의참석자들 중에는 비건 부장관과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도 있었다. 그런데 최종건 제1차관은 화상회의에 참석한 비건 부장관에게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면서 그를 초청했고, 비건 부장관은 “닭한마리라면 언제든지 좋다”고 말하면서 즉석에서 초청을 수락했다. (인삼, 대추, 밤, 당귀, 찹쌀을 닭 뱃속에 넣고 푹 끓이는 삼계탕과 달리, 닭한마리는 전골처럼 끓이는 요리인데, 그 담백한 맛에 매료된 비건 부장관은 서울에 갈 때마다 광화문에 있는 닭한마리식당을 찾는 단골손님이다.) 

 

최종건 제1차관의 즉흥적인 초청을 수락한 비건 부장관은 2020년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4박5일 동안 서울을 방문했다. 그런데 자기 혼자 가지 않고, 다른 관리들을 데리고 갔다. 알렉스 웡(Alex N. Wong)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부대표와 앨리슨 후커(Alliosn M. Hooker) 백안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비건 부장관과 함께 서울에 나타났다. 원래 최종건 제1차관은 비건 부장관에게 서울에 오면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즉흥적인 초청의사를 전했는데, 외교부는 비건 부장관의 서울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의 동료들까지 초청했다. 그렇게 되어 비건 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고별방문단이 서울에 나타났던 것이다. 퇴임을 앞둔 미국 고위관리들이 고별방문단으로 서울에 나타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020년 12월 8일 고별방문단이 탑승한 전용기가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오산미공군기지는 한국 정부의 행정권이 미치지 않는 미국통치구역이므로, 고별방문단은 출입국 절차를 전혀 밟지 않았다. 그들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제공한 헬기를 타고 오산기지를 이륙해 서울 용산기지에 내렸다. 서울에서 4박5일 일정을 마친 고별방문단은 12월 12일 이른 아침 오산미공군기지에서 전용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20년 12월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한남동에 있는장관공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조선특별대표의 고별방문을위해 차린 성대한 사은만찬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비건 부장관,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부대표,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얼굴이보인다. 퇴임을 앞둔 미국 차관급 관리가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외교부 제1차관의 즉흥적인 초청을 받고 서울을 찾은 고별방문인데도, 외교부 장관,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 사은회동을 했고, 사흘 동안 연속해서 그를 위해 사은만찬을 차렸다. 옛날 한양을 방문한 명제국 황제의 칙사를 극진히 영접했던 조선왕조 고위관리들의 굴욕적인 보은환대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고별방문단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해괴한 사건이 벌어졌다.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느라 법석을 떨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그들은 앞을 다투어 비건을 극진히 대접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대등한 지위에서 외국 관리를 상대하는 외교활동의 기본원칙을 내던지고, 아부하고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퇴임을 앞둔 비건에게 왜 아부하고 굴종했을까?  

 

2020년 12월 1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은 비건 부장관이 한미관계발전에 이바지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비건 부장관이 한미관계발전에 무엇을 어떻게 이바지했는지 알 수 없지만,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건 부장관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사례행위로 나타났는데, 그게 바로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였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2020년 12월 9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각각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회동을 했다. 2020년 12월 10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조찬을 차렸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그를 위해 사은오찬을 차렸다. 같은 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각각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회동을 했다. 

 

사은환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0년 12월 9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비건 부장관을 위해 첫 번째 사은만찬을 차렸다. 12월 10일에는 최종권 외교부 1차관이 비건 부장관을 위해 두 번째 사은만찬을 차렸다. 그리고 12월 11일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한남동에 있는 장관공관에서 성대한 사은만찬을 대접했다. 퇴임을 앞둔 미국 차관급 관리가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즉흥적인 초청을 받고 서울을 찾은 고별방문인데도,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 사은회동을 했고, 사흘 동안 연속해서 그를 위해 사은만찬을 차렸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퇴임을 앞둔 비건 부장관에게 사은환대를 베풀며 아부하고 굴종한 것은, 옛날 한양을 방문한 명제국 황제의 칙사를 극진히 영접하였던 조선왕조 고위관리들의 굴욕적인 보은환대를 연상케 한다.  

 

 

2. 모화사상, 모일사상, 모미사상

 

‘조선왕조실록’에는 굴욕적인 보은환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역사기록이 있다.

 

“명나라 황제의 칙사가 와서 칙서를 받으라고 고하니 임금이 절하고 나서 서쪽 층계로 올라가 칙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리며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을 받들지 않겠나이까 하고 아뢰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리며 아부, 굴종한 임금은 1400년부터 1418년까지 조선왕조 제3대 국왕으로 재임한 태종 이방원이다. 태종은 명제국 황제에게 겉으로만 아부하고 굴종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1407년에 명제국을 숭모하는 모화라는 뜻을 지닌 모화루(慕華樓)라는 건축물을 세운 것만 봐도, 명제국 황제를 향한 그의 아부와 굴종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태종은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한양을 방문할 때 지나가는 돈의문(서대문의 원래 명칭) 밖에 모화루를 세웠는데, 그 누각 앞에는 명제국 황제의 은덕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닌 영은문(迎恩門)을 세웠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조선을 방문하면, 2품 이상 고위관리인 원접사(遠接使)가 한양을 떠나 압록강 국경에 있는 의주까지 올라가서 극진히 영접했고, 2품 이상 고위관리인 선위사(宣慰使)가 의주에서 한양에 이르는 먼 행로에 있는 5개소를 지날 때마다 성대한 환영연회를 차렸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모화루에 당도하면, 왕세자가 고위관리들을 거느리고 그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배례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경복궁에 입궐하면, 조선 국왕은 칙사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황제의 칙서를 받고 황제에게 아부, 굴종하는 보은환대의식을 진행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한양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는 고위관리들이 영은문 왼쪽 도로변에 길게 늘어섰다가 일시에 배례하면서 그를 전송했다. <사진 2>

 

▲ <사진 2>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경복궁에 입궐하면, 조선 국왕은 칙사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칙서를 받고 황제에게 아부, 굴종하는 보은환대의식을 진행했다. 명제국 황제인 영락제가 사망했을 때, 세종은 자기와 영락제는 군신관계라고 하면서 궁궐에 영락제 위패를 모시고 그 앞에서 27일 동안 소복을 입고 식음을전폐하며 곡을 하는 해괴망측한 행동을 계속하는 바람에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훌륭한 임금으로 후세에 알려져 서울광화문 한복판에 동상까지 건립하고 세종대왕으로 칭송받는 그는 자기 건강을 해치면서 명제국 황제에게 아부하고 굴종한 지독한 모화사상 중독자였다.  

 

그런데 태종보다 한 술 더 떠서 명제국 황제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부하고 굴종한 조선 국왕이 있었다. 그는 1429년에 모화루를 모화관으로 개칭했고, 1433년에는 모화관을 확장, 개축하면서 모화관 남쪽에 연꽃이 만발하는 연못을 만들어놓았고, 연못 주위에 버드나무도 심었다. 명제국 황제인 영락제가 사망한 1424년, 그는 자기와 영락제는 군신관계(임금과 신하의 관계)라고 하면서 궁궐에 영락제 위패를 모시고 그 앞에서 27일 동안 소복을 입고 식음을 전폐하며 곡을 하는 해괴망측한 행동을 했다. 27일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 곡을 하는 바람에 그의 건강은 매우 나빠졌다. 이처럼 명제국을 숭모하는 모화사상 중독자라고 부를 만한 그가 바로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이다. 세종은 27명에 이르는 조선 국왕들 가운데 가장 심한 모화사상 중독증에 걸린 왕이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훌륭한 임금으로 후세에 알려져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동상까지 건립하고 세종대왕으로 칭송받는 그가 실은 자기 건강을 해치면서 명제국 황제에게 아부하고 굴종한 지독한 모화사상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를 더 이상 세종대왕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위에 서술한 역사적 사실은 조선왕조 통치계급이 모화사상에 얼마나 중독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모화사상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 동안 조선왕조 통치계급의 사상정신에 파고들어 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19세기 말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청제국이 일본제국과 싸운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한 이후, 중국을 숭모하는 모화사상은 일본을 숭모하는 모일사상으로 변천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제국이 미제국과 싸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고, 미제국이 북위 38도선 이남지역을 점령한 이후, 일본을 숭모하는 모일사상은 미국을 숭모하는 모미사상으로 변천되었다. 

 

조선왕조 518년 동안 모화사상에 중독되었고, 일제식민지시기 36년 동안 모일사상에 중독되었던 것처럼, 8.15해방 후 지금까지 75년 동안 미국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은 ‘한미동맹’을 떠받드는 모미사상에 중독되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의 장관급 인사들과 고위관리들이 서울을 고별방문한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환대의식을 진행한 사건은, 모화사상에서 모일사상을 거쳐 모미사상으로 변천되어온 아부와 굴종의 추악한 역사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동맹’이라는 허울을 쓰고 자행되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모미사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3. 비건의 거짓말과 허망한 기대

 

고별방문단은 4박5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사은환대만 받고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미국의 고위관리인데, 어찌 얻어먹기만 할 수 있었겠는가. 비건 부장관은 회담도 했고, 강연도 했다. 2020년 12월 9일 미국 국무부는 비건 부장관이 최종건 제1차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각각 만나 진행한 회담과 관련하여 논평을 내놓았다. 그 논평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부장관은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재확인했고,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하여 한국이 지속적으로 협조해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또한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것(U.S. support for inter-Korean cooperation)을 재확인했고,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 위한 조선과의 의미 있는 대화에 관여하기 위해 계속 준비해왔음을 재확인했다. 부장관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과 지역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이) 일본과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을 권고했다.”

 

위의 인용문에 들어있는 초점은 한미동맹, 남북협력 및 조미대화, 그리고 한일안보협력으로 요약되는데, 지면이 제약된 이 글에서는 남북협력 및 조미대화에 관한 비건 부장관의 견해만 선별적으로 검토한다. 

 

1)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을 오도하는 허위발언이다. 미국은 남북협력을 지지하기는커녕 대조선경제제재를 가중시켜 남북협력사업을 전면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지금 남과 북이 상호협력을 하려고 해도 미국의 극단적인 대조선경제제재에 가로막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그런데도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으니, 참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2017년 조미적대관계가 폭발 직전 상태에 이르렀을 때, 조선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혀 광분하던 미국은 조선에 대한 무력위협과 경제제재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그런 광란 속에서도 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은 미국을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 끌어냈다. 2018년 6월 1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전날에 진행된 회담준비접촉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당시 직책)은 조선이 핵시험과 미사일발사시험을 중지하고, 미국인 억류자 3명을 석방하고, 지하핵시험장을 폐쇄하는 성의 있는 행동을 취했으므로,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조선제재를 해제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지만, 미국측은 끝내 거부했다고 한다.   

 

더구나 미국은 남북협력사업을 통제, 차단하기 위해 2018년 11월 20일 한미실무단(Working Group)이라는 것을 만들어놓았다. 한미실무단의 미국측 대표가 바로 비건 부장관이다. 한미실무단을 통해 남북협력사업을 통제, 차단하는 장본인의 입에서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말이 나왔으니, 그처럼 뻔뻔스러운 거짓말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2019년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된 남북교류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남측 취재기자들이 휴대용 컴퓨터와 카메라 같은 취재장비를 가지고 금강산에 가려고 했지만, 미국은 그런 취재장비들이 제재품목에 속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방북을 가로막았다. 미국의 대조선제재는 취재장비는 물론이고 작은 나사못 한 개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남북협력을 완전 봉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다. 그런 극단적인 제재만행으로 남북협력사업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미국은 더욱 광란적으로 대조선제재를 가중시켰다. 미국은 2019년 3월 21일 조선 선박 49척과 조선과 거래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외국 선박 46척을 무더기로 제재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그런 횡포가 거듭되면서 미국의 대조선제재대상은 개별인사 177명과 주요기관 313개소로 늘어났다. 

 

2020년 1월 27일 일본 <요미우리신붕>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백악관을 방문한 2020년 1월 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협력을 재개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사를 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묵묵부답으로 거부의사를 밝혔고, 그 전날 로벗 오브라이언(Robert C. O'Brien)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을 때도 금강산관광재개, 개성공단재개, 북측 철도 및 도로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오브라이언은 제재를 무시하고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반대했다고 한다. 

 

2)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조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조선과 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비건 부장관은 2020년 12월 10일 고별방문 중에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2년 반 동안(비건이 부장관으로 재임한 기간을 뜻함-옮긴이) 우리는 미국이 70년 묵은 갈등관계를 뒤로하고 새로운 관계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음을 북조선에 언명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2년 동안 북조선측 협상상대는 참여의 기회를 잡는 것 대신에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일에 자주 몰두함으로써 많은 기회를 허비하고 말았다. 하지만 주목되는 것은, 우리가 비록 합의사항을 진척시키지는 못했어도, 싱가폴 정상회담은 아직 온전히 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20년 12월 10일 고별방문 중에 서울에 머물던 비건 부장관이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을 하는 장면이다. 그는 강연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고 주장했고,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조선이 제시한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이제 와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느니,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느니 하면서 협상재개의사를 표명해봤자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조선은 협상을 재개하려는 미국의 거듭되는 제의에 대해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비건 부장관이 조미협상이 파탄된 책임을 부당하게 조선에 돌리면서도,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협상을 재개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아산정책연구원 강연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협상이 재개되는 경우, 조선이 제시했던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사도 표명했다. 강연에서 그는 만일 조미협상이 재개되면, “우리는 행동계획(roadmap for action)을 수립하는 것을 합의해야 하며, 그 행동계획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목표도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이 그런 말을 꺼내놓기 전에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은 2020년 7월 9일 취재기자들에게 “트럼프 행정부는 북조선이 제기하는 전략적 위협에 관한 진지한 대화에 참여하는 접근법을 취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비건 부장관이 이제 와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느니, 조선이 제시한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느니 하면서 협상재개의사를 표명해봤자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가져가겠다는 “날강도 같은 요구”를 꺼내놓아 회담을 결렬시켰을 뿐 아니라, 회담결렬 이후 대조선제재를 더욱 광란적으로 가중시키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을 형태와 방식만 바꿔 계속했는데, 이런 일련의 도발행동들을 본 조선은 조미협상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버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비건 부장관이 이번 고별방문 중에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기 훨씬 전부터 백악관과 국무부가 조선에 협상재개를 거듭 제의했건만, 조선은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2020년 1월 10일 로벗 오브라이언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의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와 대담하면서 “우리는 2019년 10월에 진행된 스톡홀름 조미실무회담을 다시 이어가기 바란다는 의사를 조선에 전했다”고 밝혔지만, 조선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2020년 7월 16일 미국의 언론매체 <어메리컨 컨서버티브>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2020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전에 그 동안 오랜 교착상태에 빠진 조미협상에 돌파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희망을 품은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월과 3월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다. 

 

2020년 9월 17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 조선의 수해복구와 코로나방역을 위한 인도적 지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은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을 보면,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비건 부장관의 기대야말로 허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

 

조선이 미국의 협상제의에 응답하지 않는데도, 팜페오 장관과 비건 부장관이 조선에 협상재개의사를 거듭 밝힌 것은 그들이 2019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차례에 걸쳐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망각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명한 중대한 문제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2020년 7월 10일에 발표한 담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담화에 따르면,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조선 경제의 밝은 전망과 경제적 지원을 설교하며 전제조건으로 추가적 비핵화조치를 요구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화려한 변신과 급속한 경제번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제도와 인민의 안전과 미래를 담보도 없는 제재해제 따위와 결코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하여서와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해온 고통이 미국을 반대하는 증오로 변했으며 우리는 그 증오를 가지고 미국이 주도하는 집요한 제재봉쇄를 뚫고 우리 식대로, 우리 힘으로 살아나갈 것임을 분명히 천명하시였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이 녕변핵시설과 다른 핵시설들을 폐쇄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조건을 즉석에서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거부의사를 밝힌, 말이 되지 않는 협상조건을 다시 꺼내놓고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2)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2019년 8월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직접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가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을 면담한 자료를 가지고 집필한 책 ‘격노(Rage)’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나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게 될 우리 두 나라의 실무협상에 앞서 도발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취소 또는 연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연합군사훈련은 취소도 연기도 되지 않았다. (중략) 조선반도 남반부에서 벌어지는 연합군사훈련은 누구를 상대로 하는 것이며, 누구를 억지하려는 것이며, 누구를 패배시키고 공격하려는 것인가? 개념적으로나 가설적으로, 전쟁준비훈련의 대상은 우리 군대이다. 이것은 우리의 오해가 아니다. (중략) 나는 이런 감정을 당신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 나는 정말 매우 불쾌하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9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2019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판은 협상상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고 변칙적으로 계속하면서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밥 우드워드가 집필한 책 ‘격노’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당시 국방장관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작은 단위의 군사훈련은 필요하다. 장병들이 훈련하지 않고 막사에 앉아있는 것은 좋지 않다. 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몰가치하다”고 말한 뒤에 국방부 청사로 돌아가서 사단급 대조선전쟁연습을 하지 않는 대신 연대급, 여단급, 대대급, 중대급, 소대급 대조선전쟁연습을 지상과 공중과 해상에서 중단 없이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매티스가 억지주장을 늘어놓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조선전쟁연습 중단공약을 반대했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공약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매티스의 반대를 제지했다면,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의 억지주장을 용납하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을 묵인하는 최악의 실책을 저질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하여 협상상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이 중단되지 않는 한 조미협상을 재개하지 않을 것임을 친서에서 언명했다. 그러므로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고 변칙적으로 계속하면서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2020년 7월 10일에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은 대화의 문이나 열어놓고 우리를 눅잦히면서 안전한 시간을 벌기를 원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나는 조미 사이의 심격한 대립과 풀지 못할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립장변화가 없는 한 올해 중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도 조미수뇌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이것은 조선과 미국이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미국이 협상재개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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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야영 기지’에 서서 역사를 읽다!

[기고] 김상일 전 한신대학교 교수

  • 기자명 김상일 
  •  
  •  입력 2020.12.13 23:11
  •  
  •  댓글 0
 

비 내리는 북야영 기지의 밤

평소 머릿속에 늘 가지고 있던 현대사에 대한 의문 가운데 하나가 일본이 원자폭탄 두 번이나 세례를 받고도 왜 저렇게 미국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오히려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우리가 전 세계에서 반미감정이 가장 높다는 통계도 있는 마당에 말이다. 백주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 대사의 얼굴에 칼자국을 낸 곳이 일본일 것 같은 데 그 반대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리가 새삼 알아야 할 사실은 일본은 연합군에 대해서도 항복한 것이 아니고, 조선에 대해서도 항복한 것도 아니다. 일본 천황은 당연히 항복문에서 조선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숙제로 남겨져 있다. 그 이유는 일본은 ‘미국에만’ 항복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은 당시 밀려 내려오는 구 소련군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었고, 그 때문에 일본은 항복은 하지만 푸들로 잘 길러 줄 것을 미국한테 항복과 함께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지켜졌고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패자인 동시에 승자의 위치에 엄연히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경제도 기적적으로 성장했고, 한미일 동맹 구실로 한반도 재진출의 길도 탄탄대로이다.

이렇게 일본이 ‘애지중지’ 미국의 푸들로 된 것은 항복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에 잡혀갔던 한국 사람들이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듣고 만세를 부르다가 그 자리에서 일본형사에 의해 사살 당한 예들이 다반사로 있었다. 그러면 일본 안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 안에서 사정은 어떠했던가?

미국이 8월 15일 일본 관동군 사령관에게 내린 ‘대륙령 제1381호’에 의하면, “따로 명령을 내릴 때까지 각각 임무를 계속할 것, 군기를 엄격히 세우고 단결을 공고히 하여 한결 같은 행동을 취할 것...”과 같다. 미군이 우리 상해임시정부에 내릴 법한 내용이 아닌가?

이에 맞장구나 치듯이 8월 18일 조선군 관구 보도국장이란 자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와 조선군은 엄연히 건재해 있다”고 방송했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군’이란 일제 침략군을 지칭하는 것이다. 미국에 항복은 해도 조선 지배는 계속될 것이란 약속을 미국은 해 주었기 때문에 일본군을 ‘조선군’이라 엄연히 호칭한 것이다. 해방 후 3일이 지난 다음에 나온 방송이다.

8월 20일에는 일본군 경성사관구 사령관이란 자를 ‘경성 경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드디어 8월 30일에는 “조선은 황국의 영토이며 조선 인민은 황국의 신민이다. ...독립운동은 허락하지 않는다. 조선 국기 게양은 엄금한다. 치안 유지를 위한 단체 결성을 허락하지 않는다”(‘조선 종전의 기록’ 중에서) 모두 일본 천황 항복문서 이면에 적힌 내용 그대로이다.

그러면 1945년의 대륙령 제1381호가 지금은 무효가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 대륙령은 미국의 지시 하에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그대로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지금 우리 역사의 현주소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은 설령 미국에는 항복을 했어도 조선 지배를 계속하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을 내 세워 그대로 조선 지배만은 허용하려고 했었다. 그러면 왜 미국은 그런 착각 아닌 착각을 했을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조선은 자주적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 없는 나라이고 누군가가 대신 다스려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19세기 말부터 일본이 전 세계에 선전해 놓고, 이를 자신들의 조선 식민 통치에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은 사대주의 하지 않고는 한순간도 자주 독립할 수 없다는 이 논리가 전 세계에 만연돼 있었고 미국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은 물론이다.

191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했던 밀사들이 현장에서 목격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준 열사의 비분강개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밀사’에서 3인의 대표들이 근방을 돌아다니며 각국 지도자들에게 줄 뇌물을 사는 장면들, 그러나 가져다 바칠수록 ‘너희는 사대근성에 망하도록 돼있는 존재’라는 것이 답이었다.

그러면 미국과 일본의 이 밀애密愛를 순간에 좌절시켜 그것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자각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소 국경지역 북야영 기지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의 패망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할 곳이 소련의 남하였다. 생각보다 쓰나미같이 파죽지세로 소련군이 밀려 내려오는 것을 본 미국은 상상 밖이었다. 당시 소련은 혁명이후 사람들이 신질서에 도취돼 행복에 젖어 있을 때이다.

김일성 회고록 7-8권은 김일성 부대가 산에서 내려와 하바롭스크 시가지를 지나가면서 본 기록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하바롭스크 시가지를 남녀 쌍쌍이 지나가는 모습을 본 김일성 부대원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산에서 갓 내려와 망국노의 신세의 참담한 모습을 그려 놓은 기록은 가장 눈물겨운 회고록의 한 장면이다.

혁명 직후 자기 나라 안도 아직 허술한 틈에 참가한 소련군이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떠밀려 전쟁에 참가한 마당에, 소련이 무슨 애착을 가지고 일본 정예군과 목숨 바쳐가며 싸워줄 아무런 이유도 없었던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일본은 패망은 해도 조선은 놓지 않겠다는 입장인데 이를 안 소련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할 의지를 담보할 수는 없었다.

일본이 항복은 해도 조선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이 대륙 진출의 교두보가 조선이기 때문인 것은 오랜 역사가 그대로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조소 국경지대에 첨예 정예부대를 배치, 참호를 수천 개 설치한 후, 대포까지 배치해 놓고 있었다. 말 그대로 ‘철옹성’이었다. 이를 본 소련이 어떻게 이 방어선을 뚫고 남하할 엄두조차 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날 밤 비마저 내리는 백아영 기지에서 출정한 조선인민혁명군은 돌격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파죽지세로 남하하였다. 그 단서는 김일성 조선인민해방군(‘혁명군’)이 그 동안 쌓은 사기와 강한 의지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혁명군은 국내 진출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1937년 보천보 전투는 그 신호탄일 뿐이었다.

이어 1939년 ‘고난의 행군’은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 진출을 위한 계획된 작전이었다. 흰 눈 덮인 백두산을 이정표 삼아 이동하기 시작한 혁명군은 백두산 삼지연에 집결, 각 곳에 밀영을 꾸린다. 고난의 행군은 일본군을 100여 일 동안 눈구덩이 속을 끌고 돌아다니며 일본군을 탈진시키기 위한 전투 아닌 전투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고난의 행군을 통해 강철 같은 정신력을 배양했으며, 이 정신력은 주체사상의 원동력이 되었다. 모세의 40년 광야 행군이 유대교를 탄생케 했듯이 위대한 종교와 사상은 고난의 씨앗이다. 누가 주체사상을 한 개인 숭배를 위한 조작된 것이라고 하는가?

그 이전, 간산봉 전투 등에서 자신 감을 얻은 조선인민혁명군은 항공 낙하산 훈련과 도하를 위한 부교 설치 훈련 때문에 잠시 소련에 들른 다음, 국내 진출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드디어 1945년 8월 9일 혁명군 사령관은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 데 대하여’라는 명령을 내린다. “우리 민족이 일일천추로 갈망하던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결정적 시각이 목전에 도래했다”로 시작되는 명령은 즉각 실천에 옮겨져 파죽지세로 남하하기 시작한다.

작전회의에서 소련군은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요새’는 난공불락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요새 돌파를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았지만, 김일성 사령관은 요새를 정면 돌파하지 않고는 승기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 두만강 유역의 토리 요새부터 급습해 대성공을 한다.

이 장면을 본 한 소련군 장교는 ‘나진해방전투를 보고서’란 수기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전투일 것이라고 판단한 전투에서 “우리는 조선 빨치산들이 일본군의 통로를 막고 그들이 도시를 빠져 나갈 수 없도록 만들게 된 것을 알았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무기를 내 던지고 포로로 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이 나바론을 점령하는 만큼이나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첫 번째 전투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혁혁한 용맹스러움을 소련군들과 장교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기들이 주도권을 잡고 혁명군은 추종세력일 줄 알았는데, 그 반대 장면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소련군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의 용맹스러움에 오히려 역으로 사기가 진작될 정도였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소련 장교들은 일기와 수기에서 남기고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은 마치 소련군이 주도권을 가졌고 김일성은 소련군의 한 장교에 불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련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할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조선인민혁명군이 주동적으로 추동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에 항복은 해도 결코 조선만은 전초기지로 삼아야 하겠기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허망한 꿈은 이렇게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하여 여실히 콩가루가 되고 말았다. 만약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없었더라면 해방된 후에도 조선은 여전이 일본의 통치하에 지금까지 있었을 것이고, 미국은 당연히 이를 허용했을 것이다.

조선은 수천 년 사대주의 하던 나라라 결코 자주적으로 한 나라를 경영할 수 없는 국민성 소유자들, 그래서 누군가는 대신 통치해 주어야 하는데, 미국이 볼 때에 누구이겠는가? 자기가 아니면 일본. 자기들이 하는 것보단 일본이 해 주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너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신탁통치 23년 운운이 그들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온 것이다.

패자이면서 승자 노릇하는 일본의 코스프레

일본은 패자이면서 승자 노릇을 코스프레 하려고 했다. 이런 만용적 기세를 꺾은 것이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일본의 천년 야망은 대륙 진출이고, 그 전초기지가 두만강 유역의 국경 요새였다. 망해도 이 요새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일본의 속셈을 늦게나마 읽어야 북조선과 우리 현대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일제는 1930년대부터 소위 자기들이 자랑하는 ‘난공불락 방어선’을 두만강 일대, 중소국경 일대에 구축하기 시작했다. 한 개 요새에 튼튼한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영구 화점’과, 기관총이나 포를 사격할 수 있는 ‘토목 화점’을 평균 500여개나 구축하였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하게 화점들을 만들었다. 여기에 탱크 차단벽까지 포함하면 수천 개의 방호벽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다 정예 관동군까지 배치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민혁명군의 강철 같은 정신력 앞에 철옹성이 모래성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소련군은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다고 판단, 우회를 강조했지만 김일성 사령관은 이곳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국내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승패를 좌우하는 바로 이곳을 혁파해야 한다고 실천에 옮겼다. 그 첫 번째 타격 요새지가 토리 요새였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일성 사령관은 오백룡 소부대에게 토리 요새 습격에 대한 구체적인 작전 명령을 내렸다. 마침 “비가 내리는 야심한 밤에 작은 배로 두만강을 건너 경찰관 주재소를 불시에 습격, 적들은 미쳐 반격을 가할 틈도 없이 혼비백산 쓰러지고 흩어지고 말았다.”

일시에 토리를 해방구로 선포하고 난 다음, 웅기-나선 요새를 습격했다. 이렇게 요새들은 도미노 같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훈춘현 남별리 요새-경흥 요새-훈융 요새-웅기-나진지구-청진지구-무산-단천-신의주-평양-안주-개천-황주-철원-경성 일대로 연결되는 혁명의 도미노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 올랐다.

나라가 없던 마당에 조선인민혁명군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주체는 아직 없었다. 그래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전공은 소련의 몫이 되었다. 일본 대본영은 “만주는 버려도 좋으나 조선은 최후의 1선으로 절대적으로 틀어쥐고 있을 필요가 있다”며, 군사적인 재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 천황의 항복 목소리에 우리는 또 한 번 속고 말았다. 우리 세상이 온 줄로 착각했었다.

소련이 모든 작전을 틀어쥐고 있었고 김일성은 일개 소련군 장교에 불과했고 소련의 꼭두각시로 평양에 등장했다고? 그러면 꼭두각시가 어떻게 소련을 북조선 땅에서 내 보낼 수 있었던가? 앞뒤가 안 맞는다. 우리가 지금 미군을 한반도에서 내 보낼 수 있는가?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해방을 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미국의 입에서 미군이 한국에 영구 주둔하자는 결의안까지 내자고 한다고 한다. 갑오전쟁 이후 청과 일 두 나라 군대가 나라 안에 주둔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땐 잠시였다. 한미일 동맹 19조 같은 것은 일본의 재진주를 합리화, 합법화 한 것이 아닌가? 역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승만이 새 정부 수립에 급급하지 말고 외세부터 추방하려 했다면 왜 이런 결과가 생겼겠는가? 단독정부를 세워서라도 권력부터 잡고 보자는 그 이승만의 심보, 아직도 역사는 심판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바보 천치 같은 마지막 사무라이의 반값도 못한 미국 하버드 대학 박사의 행각이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 역사를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지 모른다.

만약 토리 요새 습격 전투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소련의 말을 듣고 우회 작전을 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북조선이 소련을 혁명 후 나가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날 밤, 한순간 사령관의 판단하나 때문이다. 단호히 정면돌파로 마지노선을 넘은 결단 말이다.

그러나 남한 일각에서는 모든 것이 소련의 사주에 의한, 소련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방관자적 자세로 참가했지 적극적인 참가 자세가 아닌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단적인 예로 1945년 8월 9일은 소련군이 대일전 개시일인데,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실현되지 못했다.

그날 조선인민혁명군은 북야영 기지에서 만반의 전투 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 작전에는 그 동안 국내 진공을 위해 낙하 훈련과 도강 훈련을 해온 부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취소된다. 그 이유는 스탈린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자국 군인들의 불필요한 손실을 막기 위한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군 지도부에서 볼 때에 국내 진공은 소련이 생각하듯이 타산지석이 아니었다. 우리 힘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저 부산과 제주도까지 파죽지세로 몰고 내려가 일제를 한반도에서 우리 힘으로 몰아낼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이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철옹성 요새 돌파를 통한 일제와의 정면대결로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었던 힘은 소련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조선인민혁명군에 있었다는 역사를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8월 9일 공격은 낙하와 도하라는 소련의 지원과 도움이 없이는 될 수 없었던 만큼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만주벌에서 중공당과 관계에서나 1940년대 소련군과의 관계에서나 조선이 양국에 대하여 당당하고 떳떳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이것을 뒤바꾸어 가르치고 있다.

8월 9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은 우리에게 행이고 불행이다. 불행이라 함은 우리 힘으로 조국을 완전히 광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일본 천황의 항복은 조국 광복의 상에 재를 뿌린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불과 며칠만 더 있었어도 우리 힘으로 충분히 광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상상 밖으로 빠른 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하자 미국은 ‘한반도 분할 점령’이란 꾀를 부려 한 나라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미래와 장래는 아랑곳도 없이 미국의 대중 잡지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에 그려져 있는 한반도 지도를 내놓고 멋대로 선을 그었다. 그것이 원한의 38선이다. 일개 대령 본스틸과 중령 딘 러스크가 저지른 만행이었다.

그래서 조선인민혁명군은 38선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이 38선 안은 ‘일반 명령 1호’로 맥아더 사령관에 보고돼,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자 보자. 맥아더는 1945년 9월 7일 ‘조선인민에 고함’에서 “본관은 본관에 부여된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써 이에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과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총 6조 가운데 제3조에 의하면 “주민은 본관 및 본관 권한 하에서 발포한 명령에 즉각 복종해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모든 반항 행위 또는 공공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와 같다. 이틀 후에 발표된 포고 2호는 “조선인으로서 포고령을 위반하는 자는 사형 등 엄벌에 처한다.”이다.

청천벽력 같은 이 포고령을 들은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고 인천에서는 인명 희생까지 있었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말 그대로 해방은 ‘한순간’이었다. 일본놈들한테 35년간 시달리다 기사회생 하는 듯하더니, 아니 봄이 온 줄 알고 밖으로 나왔다가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미국은 너무나도 황당하게도 그 일본놈들의 주구들 모두에게 한 자리씩 되돌려 주었고, 그 자리를 지금까지도 수구 보수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옆에는 권총 찬 미군들이 지켜 보호하고 있다,

한번 이 맥아더의 포고령을 위에서 말한 8월 15일 패망한 일본 관동군 사령관에 내린 ‘대륙령 1381호’와 ‘1385’ 그리고 8월 16일 악명 높은 ‘정치운동 단속명령’과 비교할 때에 무엇 하나 다른가? 항복한 일제는 ‘관내 일반 민중에게 고함’에서 민심교란 행위를 엄벌에 처한다고 했으며, 8월 18일 방송에서는 ‘조선군은 엄연히 건재한다’고까지 했다. 여기서 조선군이란 일본군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독일이 패망한 후 히틀러가 국회의사당 지하에서 권총 자살한 것과는 너무 다르다.

아베란 자가 저렇게 고압 자세로 나오는 데는 이미 해방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던 일이다. 일본은 미국에 항복하는 조건으로 일본군은 조선군으로 그대로 주둔하게 할 것을 담보 받은 것이다. 1381호와 1385호 그리고 맥아더의 포고 2호는 ‘일란성 쌍둥이’로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의 엄호를 받으며 건재하고 있다.

안타까운 이러한 현실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은 38선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련마저 이 원한의 선을 인정하는 꼴을 보았을 때에 이들이 왜 소극적으로 전쟁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38선 철창 너머 고개를 남쪽으로 돌려 보았을 때에 거기에는 아직도 그들이 향해 싸우던 일제들이 그대로 남아 오히려 애국지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을 하나 하나 죽이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기서 6.25를 두고 남침이다, 북침이다 논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군 이래 유래 없던 민족상잔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왜놈들이고, 그 일본놈들과 그 앞잡이들이 38이남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저 북야영 기지에서부터 걸어내려 온 발걸음을 예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들에게 ‘적화통일 운운’ 하는 것은 넋두리이다. 북야영 기지에서 내려온 일군一群의 해방군일 뿐이었지 한 나라의 조직된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방의 종은 누구를 위해서 울렸나? 민들레 핀 임진강 강변에서 통곡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익힌 도하 훈련과 낙하 훈련은 저 일제를 이 땅에서 영원히 몰아 쫓아내자는 것이었다. 반만년 우리 역사는 이 엄연한 현실을 어떻게 보고 판단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남북 모두가 북야영 기지 그날 비 내리던 날 밤으로 되돌아 가 한번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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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거리두기 상향 검토 착수 “지금이 3단계 막을 마지막 기회”

문 대통령, 직접 현황 점검 및 대응 지휘...“3단계 불가피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결단”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12-13 19:22:00
수정 2020-12-14 09: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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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있다. 2020.12.13.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있다. 2020.12.13.ⓒ뉴스1  
 
정부는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체계 붕괴가 우려된다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는 수도권은 2.5단계, 비수도권은 2단계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13일 오후 코로나19 대응 정례브리핑에서 "지금 확산세가 계속 이어지면 한계에 달한 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3단계 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3단계로의 상향 검토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앞서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접 주재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높이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라며 "중대본에서는 그 경우까지 대비하여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결단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3단계 격상 기준 임박할 정도로 확진자 폭증세
"지금 이 순간이 3단계로의 상향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는 전국적 대유행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정부가 사회활동을 사실상 전면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3단계 격상 기준은 전국 주 평균 확진 환자 800~1천 명 이상이거나, 2.5단계 상황에서 환자가 배로 증가하는 등 급증해야 한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전날 950명에서 이날 1천30명으로 이틀 연속 최대 기록을 경신하며 폭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3단계로 격상할 기준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지금 추세가 이어진다면 3단계 격상 기준에 곧 도달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지금 확산세를 꺾지 못하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도 검토해야 하는 중대한 국면"이라고 보고 있는 '비상' 상황이다.

박 1차장은 "최근 1주일간 국내발생 신규 확진자는 일평균 662명으로 지난주에 비해 174.3명 늘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상향에도 국민들의 이동량이 감소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언제, 어디서 감염됐는지 알지 못하는 '감염경로 불명' 사례 비율 역시 20%대를 웃돌고 있다.

하지만 거리두기 3단계가 시행될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큰 충격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섣불리 시행할 수도 없다.

박 1차장은 "거리두기 3단계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민생경제에 광범위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수많은 시설의 영업중단과 제한이 더는 권고가 아니며 강제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미 장기간 상업의 피해를 감수하신 자영업자, 영세 소상공인분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은 3단계로 격상되는 것을 막으려면 코로나19가 더 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이제 K-방역의 성패를 걸고 총력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박 1차장 역시 "지금 이 순간이 거리두기 3단계로의 상향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여러분의 일상과 생업이 중단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고 있다.ⓒ뉴스1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
우리가 가진 방역 역량을 최대한 가동"

우선 정부는 방역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라며 비상하고 신속한 대응을 거듭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신속하고 광범위한 검사로 코로나 확진자 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감염자를 최대한 신속하게 찾아내고 확산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확산을 빠르게 억제하는 근원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며 역학조사 지원 인력 긴급 투입, 임시선별진료소 설치, 검사량 확대와 신속항원조사 등 특단의 대응 조치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진단검사, 역학조사, 확진자 격리와 치료 등에서 우리가 가진 방역 역량을 최대한 가동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코로나 전파 속도를 능가하는 빠른 검사, 선제적인 방역으로 코로나를 단기간에 제압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수도권 긴급의료 대응도 이날 회의에서 집중 논의됐다. 현재 수도권을 집중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병상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단 정부는 앞으로 20일간 매일 1천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모든 환자가 신속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3주간 1만 병상 이상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생활치료센터 7천 병상, 감염병 전담 병상 2천700병상, 중증환자 치료 병상 300병상이 추가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합심하여 병상과 생활치료센터 확보에도 더욱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민간 의료기관과 기업 등도 병상과 의료진, 생활치료센터 등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특별히 감사드리며, 더 많은 참여를 요청드린다"며 "정부는 그에 대해 충분히 보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민들을 향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하게 지켜줄 것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백신과 치료제가 사용되기 전까지 마지막 고비"라며 "그때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가장 강한 백신과 치료제이다.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비상한 상황인 만큼 특히 만남과 이동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며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켜주시고, 일상적인 만남과 활동을 잠시 멈춰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 1차장도 "국민 여러분의 실천이 필요한 순간으로 안전한 집에 머물며 이동을 최소화해 주시길 바란다"며 "사람이 밀집하고 밀폐된 시설, 밀접한 접촉이 발생하는 시설은 이용하지 말고, 모든 모임과 약속은 취소해 달라"고 촉구했다.

또 "외출을 할 때는 마스크를 정확히 착용해달라"며 "실내에서는 항상 착용하고 증상이 있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시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박 1차장은 "오늘 외출과 모임을 한 번이라도 줄일수록, 개인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킬수록, 또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으실수록 우리의 일상이 강제로 멈출 가능성이 줄어든다"며 "국민 여러분의 실천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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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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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암입니다’…두려움과 희망 사이에 서다

등록 :2020-12-12 16:47수정 :2020-12-12 19:14
[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1) 암 진단

집에 오면 실신하듯 잠자고 출근
전투적으로 일하다가 받은 진단

침착하자 되뇌며 서점으로 직행
거리 두고 차분히 공부할 결심

내 잘못 아닌 걸 알긴 하지만
분노했고 이해도 할 수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유병자(1999년 1월1일부터 2017년 12월31일까지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전국민의 3.6%인 187만명이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0%로 나타났다. 국민 다수가 자신이 암환자가 되거나 암환자의 가족이 되는 경험을 한다. 지난해 12월12일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부 양선아 기자가 투병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안타깝게도 암입니다.”정확히 기억한다. 2019년 12월12일이라는 날짜를. 그날 진료실에서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동행한 친정어머니는 얘기를 듣자마자 휘청거렸고, 남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의사는 “유방암이고 암 크기는 약 2.5㎝이며 전이는 안 된 것으로 보이니 빨리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 인생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암과 나를 한 번도 연결해 생각해본 적 없었다. 2017년 기준, 기대수명(83살)까지 살 경우 우리나라 국민이 암에 걸릴 확률은 35.5%이다. 국민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고 하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중에 암 환자는 거의 없었다. 회사 동료 가운데 암 환자가 몇 명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암은 나와는 동떨어진, 아주 먼 세상 일일 뿐이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맞닥뜨린 사람의 그 황망하고 어이없고 이해 불가였던 심정을 어떤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른 수건 쥐어짜듯 일하다
“왼쪽 가슴에 혹이 만져져요. 2㎝ 정도 되네요. 가슴 마사지해보면 혹 잡히는 분들 많아요. 요즘은 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수술 간단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병원 빨리 가보세요.”일은 많고 좀처럼 쉴 틈이 없는 나날이었다. 곰 세 마리, 아니 열 마리가 내 어깨에 앉아 시위하고 있는 것 같아 하루 월차를 내고 집 근처 마사지숍을 찾았다. 어깨 근육을 풀려면 뭉친 가슴 근육도 함께 풀어야 한다며 가슴을 구석구석 마사지해주던 마사지사는 자신 역시 수년 전 유방에 있던 종양을 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노라고 했다. 목욕탕 세신사나 피부관리 마사지사가 유방 쪽 종양을 자주 발견한다는 말도 덧붙였다.2019년 한 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내게 역동적인 한 해였다. 교육 분야를 취재하다 사회정책팀 데스크로 발령이 났고, 또 몇 달 안 돼 사회정책팀 팀장이 됐다. 사립유치원, 자사고, 대입 정책 등 교육 관련 굵직굵직한 이슈가 많아 전투적으로 일했다. 그러다 교육, 복지, 노동, 젠더 분야를 포괄하는 사회정책팀 팀장이 되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게 다반사였고, 집에 오면 ‘떡실신’해 잠만 자고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월차도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아 연말에 몰아 쉬겠다며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일하다 쉬는 첫날 집 근처 유방외과에 갔다.30대 후반부터 건강검진할 때 유방 엑스선 촬영은 물론 초음파 검사까지 꼬박꼬박 했다. 2018년 말 검진에서도 이상 소견이 없었기에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방 엑스선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한 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표정이 어두웠다. 의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문을 열었다.“혼자 오셨어요?”“네…. 결과는 어떤가요?”“왼쪽 가슴에 혹이 있는데 모양이 안 좋아요. 암일 수 있어요. 양성 종양이면 표면이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워요. 그런데 환자분의 종양 주변은 울퉁불퉁하지요? 조직검사를 진행하면 3일 뒤 정확한 결과가 나옵니다. 확률은 반반이에요. 일단 조직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보죠.”‘암이라고? 암? 설마~ 아닐 거야~ 내 건강이 얼마나 좋은데….’암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머리가 ‘띵’했다. 누군가 뒤통수를 호되게 내려친 것만 같았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의사는 영상을 보면서 가슴 멍울이 있는 자리에 굵은 바늘을 총처럼 발사했다. 조직검사라는 것이 그렇게 금방 끝날 줄이야. 암에 대해 몰랐을 땐, 조직검사라는 말만 들어도 큰 수술처럼 느껴졌다. 검사는 의외로 간단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한쪽 가슴이 뻐근했다.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오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슬픈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없는 서러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난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에이, 아닐 거야. 하늘이 나한테 그럴 리 없어.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두 아이 키우랴 일하랴 고생고생하다 이제 조금 살 만하니까 암이라고? 운동도 나름 열심히 했고, 나쁜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잖아. 아닐 거야. 의사가 확률은 반반이라고 했으니 아닐 거야.’‘그럴 리가 없다’는 신념과 ‘그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을 헤집어놨다. 날마다 마음은 쑥대밭이 됐다. 3일이란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불면의 밤은 계속됐다. 가족들에겐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불안감은 똬리를 틀고 내 마음을 집어삼켰다. 특히 두 아이를 볼 때마다 ‘우리 애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암 진단을 받은 날, 의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수술 날짜를 빨리 잡는 것이 좋겠다며 어느 병원으로 갈지 결정하라고 했다. 아무 준비도 못한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부랴부랴 같은 팀에서 일하는 김양중 의학전문기자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 김 기자가 추천해준 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돌아왔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책들을 구매해 관련 정보를 먼저 섭렵하는 습관이 있던 나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는데 무릎이 탁 꺾이면서 넘어졌다. 넋이 나간 상태였나 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신 차려, 양선아! 침착해, 양선아!’라는 말을 수백 번 되뇌었다.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도착해 ‘유방암’을 검색어로 넣어 책을 찾고 암 관련 코너도 한참 둘러봤다. 서울아산병원 유방암센터에서 펴낸 <유방암 환자를 위한 치료 안내서>를 비롯해 유방암 관련 책 4권과 생존율 5%라는 말기 간암 진단을 받고도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낸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박사가 쓴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가 눈에 들어왔다.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날 내가 서점으로 달려간 건 신의 한 수였다. 암 선고를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다면, 그 끔찍한 날에 가만히 앉아 신만 저주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못했을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에 먼저 질식돼 병이 더 악화됐을지도 모르겠다.“왜 벌써 절망하는가? 암에 걸렸다고 다 죽지 않는다.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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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는 책 뒤표지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밑엔 ‘암, 여기에 답이 있다’는 말과 함께 1. 먼저 암 박사가 되자 2. 수치는 숫자일 뿐이다.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3. 거리를 두고 차분히 사귀자 4. 암은 언젠가는 돌려보낼 수 있는 친구라고 여기자 5. 어설픈 대체의학을 믿지 말자 6. 항암 식품에 현혹되지 말자 등이 쓰여 있었다. 프롤로그와 책 목차, 뒤표지만 읽어도 뿌옇고 안개 가득한 내 삶의 터널 속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 박사는 항암치료 기술이 덜 발달했던 1998년, 간에서 발견된 암덩이를 잘라낸 뒤 불과 두 달 만에 암이 폐로 전이돼 생존율 5% 미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았고 항암치료를 받은 뒤 자신만의 원칙을 정해 일상을 지켜나갔다. 그 결과, 그는 2017년 84살의 나이에 자신의 책 개정판 서문을 썼고, 2019년 암 진단을 받은 나는 그를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암 진단을 받으니 잠시 시한부 환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런데 선배 암 환우이자 전문가인 의사가 들려주는 암 극복법을 살펴보니 나 역시 암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제야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방법도 많고 치료 효과가 뛰어나며 5년 생존율도 90%가 넘는다는 정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유방암에 대해 공부나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한 박사가 권한 대로 ‘암 박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책을 고른 뒤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직에 빨리 이 소식을 알려야 대체 팀장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선배…. 제가 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요…. 검사 결과가 안 좋아요. 제가 암이래요. 유방암.”“뭐라고?”“오늘 조직검사 결과 들었고, 수술할 병원 정했어요. 수술 날짜는 아직 안 잡혔고요. 아무래도 제가 빨리 복귀하지 못할 것 같아 우선 선배께 연락드렸어요.”놀란 선배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통화하다 보니 가슴 한구석에 잠잠하게 고여 있던 눈물이 큰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참고 또 참고 참았지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흐… 흐… 흐흑흑흑… 선배… 죄송해요…. 이런 일로 걱정시켜 드리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아니야… 선아야, 진정해…. 너무 걱정 마…. 지금은 너만 생각해. 회사 걱정하지 말고. 일단 치료에 집중하자. 수술 날짜 잡히면 다시 연락줘.”집에 돌아와 유방암 관련 책을 보니 가슴이 절제된 사진들이 수록돼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고, 사진을 보니 무섭게만 느껴졌다. 잠시 느꼈던 희망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책에서는 유방암 발생의 위험 인자로 ①성과 나이 ②가족력과 유전인자 ③여성호르몬의 과다한 자극 ④유방치밀도 ⑤동물성 지방과 비만, 과다한 음주 등 생활환경 요인을 꼽았다.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는 40대 여성에게 가장 많다는데 나는 40대다. 가족력은 없었고, 두 번의 출산과 함께 두 아이 모두 1년 넘게 모유수유를 했다. 여성호르몬의 과다한 자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었다. 유방치밀도는 높은 편이었고, 동물성 지방 섭취나 과로, 비만 등은 해당되는 듯했다. 그러나 치밀유방이면서 나보다 동물성 지방을 더 섭취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만 그들이 모두 암에 걸리진 않는다. 더구나 한 개의 유방암 세포가 자라서 손으로 느껴지려면 적어도 1㎝는 되어야 하고, 이론적으로는 평균 4~7년의 기간이 걸린다고 했다. 내 암의 크기는 2.5㎝라고 했으니 상당한 시간 동안 암이 자라왔다는 이야기인데, 왜 이전 건강검진에서 어떠한 낌새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왜 내가 암에 걸렸는지, 왜 이제야 암이 발견됐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2019년의 마지막 달, 그렇게 나는 청천벽력 같은 암 진단을 받았고 울고 또 울었다.사회정책팀 기자 anmadang@hani.co.kr
양선아 기자
양선아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3922.html?_fr=mt1#csidx8500a136e4d5c798c4e304cf99c83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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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확진 1000명 육박, 문대통령 "매우 심각한 상황"

12일 0시 기준 950명, 역대 최대 확진자... 정총리 "확산세 못 꺾으면 3단계"

20.12.12 15:30l최종 업데이트 20.12.12 15:36l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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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국내 유입 뒤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2일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잇따라 메시지를 내놓고 긴급방역대책회의를 여는 등 강한 조치를 예고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12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950명 늘어(지역 발생 928명, 해외 유입 22명) 누적 확진자수 4만 1736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6명 늘어 총 578명(치명률 1.38%)이 코로나 19로 사망했다.

지난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하루 신규 확진자수 최대치를 기록한 때는 지난 2월 29일(909명)이었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세가 퍼지던 때였다. 이후 8월 말 2차 유행(최대 400명 대), 최근 3차 유행의 추이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면목 없어", 정세균 "최고 수준 대응"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에서 11일 하루 동안 68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 누적 화진자가 91명으로 집계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12일 0시 기준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950명 늘어 누적 4만1천736명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
▲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에서 11일 하루 동안 68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 누적 화진자가 91명으로 집계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12일 0시 기준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950명 늘어 누적 4만1천736명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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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대통령은 현 상황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며 "마지막 고비"임을 강조했고, 정 총리는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시사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실로 방역 비상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정부가 국민들의 큰 불편과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방역강화 조치를 거듭하고서도 코로나 상황을 조속히 안정시키지 못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불안과 걱정이 크실 국민들을 생각하니 면목 없는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까지 마지막 고비이다.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헌신과 함께 국민들의 경각심과 협조가 지금의 비상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될 것"이라며 "철저한 거리두기와 방역수칙 준수로 코로나 확산의 고리를 일상에서 차단하는 노력을 함께 해 주시기 바란다. 지금의 고비도 반드시 슬기롭게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정세균 국무총리가 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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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방역대책회의를 열어 "지금의 확산세를 꺾지 못한다면 거리두가 3단계 격상도 불가피하다"라며 "코로나19 발생 이후 최대의 위기다. 경제적·사회적 타격을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지금 단계에서 확산세를 반전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SNS 올린 글을 통해서도 "지금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상황 관리와 방역 대응을 최고 수준으로 가동한다"라며 "정부와 전국의 지자체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가용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위기 대응에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모든 공공병원의 가용 병상과 민간병원 협력을 이끌어 내어 의료자원을 총동원하겠다"라며 "치료받지 못하거나 무작정 대기하는 확진자가 없도록 현장 중심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문 대통령과 정 총리의 메시지 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코로나가 국내에 유입된 이후 하루 확진자 수가 최대인 950명을 기록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격상하며 코로나 확산세를 꺾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전국 곳곳 일상의 공간에서 코로나 감염과 전파가 늘어나고, 특히 수도권은 어제 하루 669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등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실로 방역 비상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큰 불편과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방역강화 조치를 거듭하고서도 코로나 상황을 조속히 안정시키지 못해, 송구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불안과 걱정이 크실 국민들을 생각하니 면목 없는 심정입니다.

정부는 심기일전하여 더한 각오와 특단의 대책으로 코로나 확산 저지에 나서겠습니다. 비상상황으로 인식하고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총력대응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감염자를 빨리 찾아내는 것이 신속한 극복의 길입니다. 군과 경찰, 공무원, 공중보건의를 긴급 투입하여 역학 조사 역량을 강화하겠습니다. 이미 검사를 많이 늘렸지만, 타액 검사 방법을 확대하고 신속항원검사를 활용하여 진단검사의 속도를 더욱 높이겠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서울역, 대학가 등 이동량이 많은 지역 150곳에 임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하여 조금이라도 염려되는 분은 누구나 검사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드라이브 스루와 워크 스루 검사방식도 대대적으로 늘려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검사 수를 대폭 늘리게 되면 코로나 확진자 수가 더욱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집중적으로 감염자를 찾아내어 전파와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입니다. 일시적으로 확진자가 늘게 되더라도 상황을 조속히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국민들께서도 확실한 방역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을 이해하며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확진자가 대폭 늘고 중환자도 늘어남에 따라 병상확보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정부는 치료할 곳이 없어서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 결코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코로나 전담 병원을 긴급하게 지정하여 1,000개 이상의 병상을 확보하도록 하는 조치를 우선 취했습니다. 당장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추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생활치료센터도 확보하여 환자들의 대기시간을 대폭 단축하도록 했습니다.

부족한 의료인력도 문제입니다. 다행스럽게 민간의료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고, 의대생까지 코로나 진료 지원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까지 마지막 고비입니다.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헌신과 함께 국민들의 경각심과 협조가 지금의 비상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될 것입니다. 철저한 거리두기와 방역수칙 준수로 코로나 확산의 고리를 일상에서 차단하는 노력을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국민을 믿고 특단의 조치를 집중적으로 시행하여 지금의 중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무수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의 고비도 반드시 슬기롭게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금일 코로나19 발생 이후 역대 최고치인 95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지금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상황 관리와 방역 대응 체제를 최고 수준으로 가동합니다. 정부와 전국의 지자체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가용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위기 대응에 집중하겠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고 최우선적인 일은 충분한 병상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모든 공공병원의 가용 병상과 민간병원 협력을 이끌어 내어 의료자원을 총동원하겠습니다. 치료받지 못하거나 무작정 대기하는 확진자가 없도록 현장 중심으로 대응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방역이 무너지면 민생도 함께 위협받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매우 위중하고 비상한 상황입니다. "나부터 나서서 코로나와 싸운다"는 생각으로 모임과 만남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정부는 초유의 감염병 위기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는 일에 모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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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채에 맞고 계란·밀가루 범벅된 전두환

김영란 | 기사입력 2020/12/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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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 5·18 광주학살 전두환은 사죄하라!”

“학살자, 살인마 전두환을 심판하자!”

“5·18 특별법 통과되었다. 5·18 망언자 강력 처벌하라!”

“망월동 쇼 기만이다. 국힘당은 사죄하라!”

 

▲ 전두환을 골프채로 때리는 상징의식  © 김영란 기자

 

▲ 계란과 밀가루로 범벅이 된 전두환  © 김영란 기자

 

▲ 감옥에 갇힌 전두환  © 하인철 통신원

 

▲ 전두환에게 주먹을 날리는 촛불시민  © 김영란 기자

 

▲ 김태현 21C조선의열단 단장이 전두환 나오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기자회견 후 전두환 집 앞으로 가는 시민  © 김영란 기자

 

전두환이 골프채에 맞고, 계란과 밀가루 범벅을 당하고 결국 감옥에 갇혔다.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41년에 즈음해 12일 오후 2시 시민단체들이 연희동 전두환 집 근처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 처단 상징의식’을 위처럼 다양하게 했다. 

 

‘12.12 전두환 심판 연희동 동시다발 기자회견’에는 (사)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지부, 5.18민주화운동구속부상자회 서울지부, 보훈개혁연대, 주권자전국회의, 민청학련동지회, 긴급조치사람들,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서울대민주동문회, 경희총민주동문회, 성대민주동문회, 청년건대, 촛불혁명완성연대, 광화문촛불연대, 서울의소리, 21C조선의열단, 국민주권연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등이 참여했다.

 

이날 동시다발 기자회견은 전두환 집 근처를 비롯해 네 군데에서 진행되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 취지를 “전두환을 반드시 심판하고 단죄하자는 것이 국민들의 뜻이다. 국민들의 뜻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12.12 군사반란은 그 뒤 5·18 광주집단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이어서 전두환 일당의 집권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고통 속에 살게 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10여 년이나 지체하게 만든 대역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전두환과 그 일당을) 역사의 법정에 세워서 이들의 죄과를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용만 5·18 서울기념사업회 회원은 “얼마 전 국회에서 5·18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5·18을 부정하는 것은 유럽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전두환은 아직도 5·18 학살에 대해 부정하고 있으며 사죄하지 않고 있다. 전두환과 그 일당은 12.12 군사반란과 5·18 학살을 통해 권력을 찬탈했다. 전두환은 하늘을 속이고 땅을 속이고 5·18 민주영령을 속이고 민주 국민을 속이는 짓을 멈춰야 한다. 전두환은 죽기 전에 모든 것을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와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송해철 보훈개혁연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전두환과 같이 반성하지 않는 세력 때문에 나라가 바로 서지 않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박준의 광화문 촛불연대 팀장은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다.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 있어서 전두환을 심판하는 것은 무엇보다 상징적이면서 핵심이다. 우리 국민은 전두환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12.12 전두환 심판 연희동 동시다발 기자회견'은 전두환 집 근처 네군데에서 진행되었다.     ©김영란 기자

 

© 박대윤 통신원

 

  © 하인철 통신원

 

전두환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인선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국민의힘 행태에 대해 “지난 9일 5·18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보인 행동은 가관이었다. 5·18 학살 주범 전두환의 후예, 똘마니처럼 온갖 망언을 내뱉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5·18 영령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은 보여주기식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국회 표결에서 여실히 그 가증스러운 가면을 던져버리고 수구꼴통, 국민 기만의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5·18 광주민중항쟁의 역사를 왜곡하고 폄훼해온 모든 이들을 당장이고 처벌해야만 한다. 바로잡을 때다”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한 뒤에는 연희동 일대에서 ‘전두환 심판’의 내용으로 1인 시위를 했으며, 대표단은 전두환 집 바로 앞에서 전두환 나오라고 호통을 쳤다.  

 

김태현 21C조선의열단 단장은 전두환이 법적으로 사면 받았지만, 국민은 사면한 적 없기에 다시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들은 전두환에게 다음과 같이 호통쳤다.

 

“이제 국민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이름으로 처단받으라.”-김용만 5·18 서울기념사업회 회원

 

“전두환이 끝까지 저항하고 반성하지 않을 때는 전두환을 처형하라!”-송해철 보훈개혁연대 대표

 

“희대의 살인마, 희대의 학살자 전두환은 역사와 민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21C조선의열단 단원 

 

“권력욕의 화신, 군사반란으로 대한민국 군인들을 살인한 살인자, 광주에서 국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국민 학살자가 바로 전두환이다. 전두환을 처형하자.”-정영훈 촛불혁명완성연대 대표 

 

▲ 전두환 집 앞으로 가는 대표들  © 김영란 기자

 

▲ 대표들은 전두환을 다시 구속해야 한다며, 전두환 나오라고 호통쳤다.   © 김영란 기자

 

▲ 대표들이 전두환 집 앞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최수동 5‧18 서울기념사업회 회장이 ‘12.12 군사반란 제 41주년, 전두환 집 앞 5‧18 서울기념사업회 성명서’를 낭독한 뒤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아래는 공동기자회견 전문과 5‧18 서울기념사업회 성명서 전문이다. 

 

-----------아래------------------

 

[공동성명서] 

 

12.12 군사반란의 진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과 그 일당을 심판하자!!!

 

우리는 오늘 12.12 군사반란 41주년을 맞아 반란의 수괴 전두환의 집 앞에 왔다.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 추운 날씨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반란 수괴 전두환을 꾸짖는 것은, 비록 반란의 주모자와 핵심 가담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것이 대단히 미약한 것일 뿐 아니라, 이들의 행태가 정확하게 단죄되지 않은 까닭에 우리 사회에 군사반란의 독버섯이 은연중에 자라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12.12 군사반란을 확실하게 진압하여, 다시는 이러한 망동을 본받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12.12 군사반란은 그 뒤 5.18 광주집단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이어서 전두환 일당의 집권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고통 속에 살게 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10여 년이나 지체하게 만든 대역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죄과에 대해 전두환과 그 일당은 일말의 반성도 없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를 무슨 자랑이나 되는 듯한 언행을 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 확실하게 단죄해야 한다.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철저하게 하되, 그것이 마땅치 않으면 새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하고, 또 역사의 법정에 세워서 이들의 죄과를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둘째, 그 주모자와 핵심 가담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으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으며, 그들은 정치적 권세에서만 배제되었을 뿐 여전히 호의호식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고, 그들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의 후손은 3대가 가난하게 살고, 친일을 한 자들의 후손은 3대가 잘 산다는 속설이 오늘날에도 통용되어서, 역적의 무리들이 잘 살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불법적인 폭력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국민을 학살한 자들의 호의호식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 정의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셋째, 12.12 군사반란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그 수괴와 일당들이 아직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들이 자신의 죄과를 사죄하지 않는 까닭에 공공연하게 혹은 숨을 죽이며 그들의 반역을 옹호하는 자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본받아 유사한 짓을 벌이는 자들도 있다. 12.12 군사반란은 공적인 국가권력보다 자신이 속한 집단 혹은 사조직을 위하여 폭력도 불사하는 만행이었고, 공식체계를 무력화하는 하극상의 난동이었다. 오늘날 윤석열 검찰이 저지르는,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 또한 이와 너무나 유사한 망동이다.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완전한 진압만이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할 것임을 우리는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실천 지침을 제안한다.

 

하나, 12.12 군사반란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하여 그 죄과를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내자.

 

하나, 12.12 군사반란의 부당성과 이에 대한 항쟁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헌법 전문에 기록하자.

 

하나, 12.12 군사반란의 죄과, 그 주동자와 핵심 가담자들의 만행을 교과서에 싣고 후대에 경각심을 갖게 하자.

 

하나, 12.12 군사반란을 옹호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시키고, 그에 대해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자.

 

하나, 12.12 군사반란의 주동자, 핵심 가담자 본인과 그 직계 가족의 재산을, 그 형성에서부터 축재과정을 철저히 조사하여 부정부패와 관련된 일체를 몰수하자. 


 

 

[12.12 군사반란 제 41주년, 전두환 집 앞 5‧18서울기념사업회 성명서]

 

5·18 학살자 전두환은 역사와 국민 앞에 단죄 받으라

 

민주주의를 짓밟고 두 번째 군사독재로 인권을 탄압시대를 연 12.12 군사반란이 41주년을 맞이했다. 지난해 오늘, 당신 전두환은 군사반란 40주년을 맞이해 신군부 일당을 모아 강남 중국집에서 1인당 20만원을 호가하는 호화판 오찬을 벌여 국민적 분노를 샀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미 5·18민중항쟁은 대법원 확정판결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국내외의 평가가 완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당신 등 광주학살 책임자들은 5‧18의 진실을 왜곡해왔다. 이로 인하여 국론은 분열되고 5·18의 역사적 가치는 훼손되었다. 우리 5·18 서울기념사업회는 전두환에게 역사와 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히 요구한다.

 

첫째, 5.21 전남도청앞 집단사살 명령자가 당신 전두환이었음을 자백하라

전두환 당신은 항쟁기간 내내 광주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오원기, 김용장, 문광식 씨는 5.21~22 당신이 헬기로 광주에 왔음을 증언했다. 지난해 4월 MBC는 보안사 기록에서 당신이 부마항쟁 진압을 지휘한 사실을 찾아내 보도했다. 이 모든 정황이 당시 신군부의 최고권력자였던 당신이 사살명령을 내렸음을 가리키고 있다. 반인륜적 양민학살의 주범이 자신이었음을 자백하라!

 

둘째, 5·18 당시 행방불명자와 사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상세히 자백하라   

5·18 기간 내내 사체들을 가매장했다는 당시 계엄군의 양심고백이 있었다. 허장환 씨는 당시 특전사 사체처리반이 광주에 파견되어 가매장 시체를 지문 확인후 처리했고, 국군 광주통합병원에서 소각로를 밤낮없이 가동했다고 증언했다. 육군본부의 기밀문서 ‘소요진압과 그 교훈’에는 5·18 기간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시체’를 옮긴 기록이 나온다. 계엄군이 죽인 사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상세히 자백하라!

 

셋째, 12.12와 5·18집단학살 후 쌓은 부정한 치부내역을 상세히 자백하라

전두환 당신은 집권후 자신은 물론 일가와 측근들 모두 수천억대 부자가 되었다. 1997년 선고받은 2,205억의 추징금 중 아직 체납액이 1,005억원에 이르는 당신은 29만원밖에 없다면서도 추종자를 수십 명씩 몰고 해외골프를 즐겼다. 연천 일대는 전재국 제국, 서울 서소문 일대는 전재용 타운이라 불리며, 전재만은 술집여자에게 4,600만원까지 초호화 시계를 턱턱 안겼다. 시중에는 전두환 당신의 숨겨진 비자금이 계속 불어나 10조가 넘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5공 이후 지금까지 엄청나게 불어난 당신의 부정한 치부내역을 낱낱이 밝혀라!

 

넷째, 불법적인 경호를 중지하고 단죄를 받으라

전두환 당신은 유죄판결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모두 상실했으나, 법적 경호기간을 17년이나 넘겨 불법적인 경호를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CBS는 1997년 사면 이후 지난해까지 전두환의 경호비용으로 최소 100억 이상의 혈세가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올해에도 2억의 비용, 5명의 경호인력과 3채나 되는 경호용 건물을 쓰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후안무치함에 분노한 한 시민은 청남대에 세워진 당신 동상의 목을 자르려다 구속되었다. 역사의 죄인 전두환은 경호를 중지하고 단죄를 받으라!

 

5‧18 서울기념사업회는 5·18의 조작되고 은폐된 진실이 밝혀지고 역사왜곡 처벌법이 제정되어 숭고한 희생을 욕보이는 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는 그날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2020.12.12

5‧18 서울기념사업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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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특별부문 공로상 정수근

 
20.12.11 17:03l최종 업데이트 20.12.11 17:31l
 

묵묵히 힘든 길 가던 환경운동가를 위한 헌사낙동강 지킴이 정수근이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가 제정한 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특별부문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정수근은 지난 20여년 환경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뭇 생명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이번 수상은 현안에 매진하는 모든 활동가를 위한 헌사이기도 합니다.

정수근 개인의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전국 각지 수 많은 환경쟁점의 한 가운데서 묵묵히 공익을 실천하고 있을 이름 모를 분들을 위해 쓴 이 글을 공개합니다. <필자 주>  

 

 낙동강의 강바닥은 시커먼 펄이다. 정수근 시민기자는 이 펄에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를 찾아냈다.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사는 생명체다.
▲  낙동강의 강바닥은 시커먼 펄이다. 정수근 시민기자는 이 펄에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를 찾아냈다.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사는 생명체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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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녹색평론사에서 10여년간 근무하며 대한민국 전역에 자연과 인간이 따로 있지 않음을 알리는 일에 일조했고, 대구의 대표적인 명산 앞산(정식명칭은 대덕산이지만 대구에서는 앞산으로 더 많이 불림)을 뚫고 터널 공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나무 위에 집을 짓고 풍찬노숙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긴 시간 앞산터널반대를 위해 싸웠으나 결국 터널은 개통되었고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비록 터널을 막는데는 실패했지만 정수근의 활동은 앞산터널을 지키기 위해 모였던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정수근은 앞산꼭지 활동을 계기로 대구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그에게 유산 상속한 까닭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앞산터널건설에 반대하며 지은 나무위의 집을 방문한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앞산터널건설에 반대하며 지은 나무위의 집을 방문한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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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은 대운하 사업의 또 다른 이름인 4대강 사업을 막아내기 위해 평일과 주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낙동강을 돌아보고 사진, 영상, 글로 기록을 했습니다. 힘과 권력을 앞세운 토건세력들은 전국의 강바닥을 파헤치고 모래와 자갈을 퍼내며 본인들의 욕심을 채웠습니다. 그 사이 한 분의 스님이 분신을 하셨고 공사 중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했습니다. 개발독재시대 이후 최대의 토목사업이었던 4대강 파괴현장을 다니며 그가 쓴 기록들은 469건의 오마이뉴스 기사로 남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실린 정수근의 글은 한 스님은 유산기증으로 이어졌습니다. 2018년 입적하시면서 당신의 남은 재산을 강 운동을 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희사하라는 유언을 남기셨고 대구환경운동연합은 정수근의 활동에 힘입어 30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기부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창립 이래 처음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다시 없을 너무도 소중한 기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수근은 밀양 송전탑과 청도 삼평리 송전탑 사건에도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주민들과 연대하고 거대자본과 공권력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연대과정에서 주민들과 함께 소송을 당하기도 했지만 밀양과 청도에서도 누구보다 먼저 가서 연대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송전탑 활동 당시 전 국민의 안정적 전기사용을 위해 희생당하는 지역주민을 위한 송전탑 투쟁
▲ 송전탑 활동 당시 전 국민의 안정적 전기사용을 위해 희생당하는 지역주민을 위한 송전탑 투쟁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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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활동으로는 영풍제련소의 오염행위에 맞선 것입니다. 정수근이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봉화지역 주민들이 꾸린 대책위를 중심으로만 알음알음 알려졌던 이 문제는 정수근이 연대하면서 전국 사안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낙동강 최상류에서 중금속 물질을 배출하며 영남의 식수원을 오염시킨 영풍제련소의 행위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낙동강탐방을 진행하고 유관단체에 항의했습니다.

정수근의 이러한 노력은 MBC PD수첩과 KBS 추척 60분 등 지상파의 대표적인 탐사보도팀의 현장취재를 이끌어냈습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경북지부'는 정수근의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 그가 속한 단체인 대구환경운동연합에 민주시민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환경운동에서, 특히 환경쟁점의 현장에서 승리한 역사는 동강댐 반대운동 백지화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개발사업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겁니다. 하지만 정수근은 묵묵히 그 길을 걸었습니다. 1998년 녹색평론사에서부터 2018년 영풍제련소까지 20여년간 숱한 좌절을 견디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힘을 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쉽고 빠른 길보다 어렵고 힘든 길을 가던 사람
 
환경운동연합 대의원대회 환경운동연합 전국대의원 100여 명이 영풍제련소 제1공장 앞 낙동강변에서 영풍제련소 폐쇄촉구 현장 액션을 벌이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대의원대회 환경운동연합 전국대의원 100여 명이 영풍제련소 제1공장 앞 낙동강변에서 영풍제련소 폐쇄촉구 현장 액션을 벌이고 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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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정수근의 방식은 옛날 방식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거버넌스로 가야한다고, 이제는 투쟁이 아니라 교육이라고, 반대만 해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거버넌스도 중요하고 교육도 중요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는 소모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정수근의 활동은 환경부를 움직이고 수자원공사를 움직여 국가물관리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각종 협의체를 발족시켰습니다. 거버넌스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시민교육에 쓸 수 있는 지원을 이끌어냈습니다. 수자원공사 대구경북 지역본부가 운영하는 보현산댐협의회가 그렇고 낙동강사람들이 그렇고 낙동강 상류(영풍제련소~안동댐) 환경관리 협의회가 그렇습니다. 그의 활동으로 많은 이들이 거버넌스 테이블에 초대되었고 부족하나마 민관 협의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수근은 우리 곁에 없습니다. 아!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닙니다. 심신이 피로해서 잠시 쉬고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50년 평생의 절반 가까이를 환경운동가로 살아온 사람이 활동을 접고 2년째 칩거에 들어간 것은 어쩌면 사망선고에 가깝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여전히 정수근을 아끼는 이들은 그를 세상밖으로 끌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 추천서도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가 제정한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은 정수근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고, 양쪽 무릎과 팔꿈치와 이마를 땅에 대며 절하는 것은 보통의 마음으로는 행하기가 어렵고 지속하기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고소고발의 위험이 상존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 번듯한 직위 한번 탐내지 않고 폼도 안 나는 현장에서 약자들과 연대하며 개인에게 돌아오는 직간접적 불이익을 감내하는 일은 어쩌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행하는 길과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이해관계가 복잡한 환경쟁점의 한 가운데에서 늘 묵묵히 약자들과 뭇 생명들과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현실은 팍팍하더라도 더 큰 것을 보고 가다보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 믿으며 꿋꿋하던 사람입니다. 쉽고 빠른 길보다 어렵고 힘든 길을 가던 사람입니다. 그가 지난 20년 간 환경파괴와 오염의 현장을 꾸준히 기록하였듯이 이제는 우리가 그를 삼보일배 오체투지의 이름으로 기록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걸어온 길이 실패의 역사로 남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낙동강 상수원보호구역에서 발견된 붉은깔따구 4대강에 건설된 일부 보에서 상시 수문 개방이 시작된지 이틀째인 2일 오후 대구광역시 달성군 낙동강 강정보 상류 상수원보호구역 강바닥에 쌓인 뻘에서 붉은깔따구가 발견되었다. 붉은깔따구는 수질 최하등급인 4급수 지표종이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물 속에서 삽으로 떠낸 시커먼 뻘과 붉은 깔따구를 들고 있다.
▲ 낙동강 상수원보호구역에서 발견된 붉은깔따구 2017년 6월 2일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물 속에서 삽으로 떠낸 시커먼 뻘과 붉은 깔따구를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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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열린 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공로상 시상식
▲  11일 열린 제1회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 공로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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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이력 >
2015년 제3회 임길진환경상 수상
2019년 환경부장관상 수상

<출간저작물>
2016년 녹조라떼 드실래요? 주목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공저 (필진 참여)
2018년 내성천의 마지막 가을, 눈물이 흐릅니다. 도서출판참 정수근 저

<기사 및 블로그 기록>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정수근 페이지
http://www.ohmynews.com/NWS_Web/iRoom/index.aspx?MEM_CD=00536714

앞산꼭지의 초록희망
https://aps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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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역사왜곡처벌법, 국가보안법을 소환하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규탄한다

그런데 공수처법 외에도 문제적인 법안이 처리되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5.18 특별법'에 역사왜곡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 즉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국가가 역사적 사실을 정의하고 이를 부인할 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차원의 포괄적인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올해 처음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도 출범하는 지금,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은 국가폭력의 역사를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피해자 회복에 노력할 것인지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5.18 역사왜곡처벌법, 국가보안법을 소환하다


 

민주당은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의 이유로 '잘못된 역사인식의 전파와 국론분열의 방지'를 들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유들이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 '다른 역사인식'을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론을 분열시키는 사회해악적인 범죄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법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보수세력은 천안함 사건이나 6.25 왜곡에 대해서도 처벌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한국사회에는 이와 유사한 법률이 이미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과거사나 역사인식을 직접 규율하는 법률은 아니지만, 북한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에 '다른 인식'을 퍼뜨릴 시에는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로 처벌해왔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5.18의 역사적 진실과 국가폭력의 문제를 한국사회에 알리는 과정 자체가 국가보안법과의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를 처벌'하겠다는 국가보안법에 맞서 정치사상의 자유, 비판의 자유를 옹호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회복을 위한 투쟁이 5.18 운동이었다. 그런데 5.18에 대해 부인, 비방할 경우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국가보안법과 동일한 논리구조를 지닌 법이 5.18의 이름으로 제정되려는 것이다. “역사왜곡이 아이들 역사관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라의 정체성을 흔드는 정신적 내란죄”라며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옹호하는 민주당 양향자 의원의 발언에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혐오와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명예훼손죄 고소?


 

그럼에도 5.18 역사왜곡처벌법에 대한 비판을 찾기 쉽지 않은 이유는 지난해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5.18 망언과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과의 결탁이 준 충격과 함께, 5.18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던 5.18에 대한 왜곡과 혐오가 주요 정당의 국회의원을 통해 공언되고 학살 책임자 전두환이 회고록을 출간해 이를 반복하는 상황은 5.18 피해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폭력이다. 이러한 상황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게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총선과 겹친 세월호 추모 시기가 되면 후보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한 주된 대응은 해당 발언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죄 고소였다. 세월호의 경우 형사입건되어 수사로 이어진 것만 200여 건이 넘는다. 지난 주 전두환 유죄 판결도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이었고, 올 초에 있었던 지만원 유죄 선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거나 거짓 사실을 드러내어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어떤 명예인지를 사회적, 공적 차원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소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행위 일체에 대해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는 전통적으로 권력집단이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성폭력 가해자, 국가기관, 기업, 법인, 선거 시기 정치인들이 입막음을 위해 민형사상 명예훼손죄 고소를 남발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한국사회가 국가폭력 피해자 혐오행위에 대해 적절한 규제와 대응방법을 찾지 못한 사이, 피해당사자들은 명예훼손죄 고소를 통해 개별 사건, 특정인을 상대로 한 대응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는 5.18,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한국사회 공통의 인식지평 속에서 나온 사법적 판단이 아니다. 어떤 '명예'든 상관없이 보호하려는 명예훼손죄에 따른 판결일 뿐이며, 이러한 판례가 쌓이는 것은 국가폭력에 대한 사법정의의 실현이 아닌 명예훼손죄 처벌 활성화로 귀결될 뿐이다. 명예훼손죄는 고소인에 대한 객관적 사회적 평가라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당한 비판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하는 명예훼손죄 구성요건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며 등장한 5.18 역사왜곡처벌법 역시 기본권 침해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상규명의 목적은 처벌의 정당성 확보가 아니다


 

5.18,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인과 왜곡,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행위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회복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5.18은 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법률'부터 시작해 전두환, 노태우 처벌, 국가유공자 예우, 국가기념일 지정까지 이루어졌지만, 법률에 근거해 조사권한을 부여받은 진상규명 조사위는 2020년에야 겨우 출범했다. 5.18에 대한 국가 차원의 포괄적인 진상규명보고서조차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주의와 결합한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되어왔고 그 결과 5.18에 대한 부인과 왜곡이 정치적 자산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 역시 진상규명조사위를 꾸리는 과정 자체가 투쟁이었고, 이제야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다.


 

국가폭력 및 국가범죄에 대해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진상규명을 남긴다는 건, 한 사회가 해당 사건에 대한 공통의 인식지평을 마련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을 시작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이 폭력인지, 어떤 행위가 인간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인지, 피해자 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정부와 사회가 지속해야 할 책무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합의해나갈 수 있다. 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어떤 행위가 차별인지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고용, 교육, 재화서비스, 행정서비스와 같은 '공적-시민권 영역'에서 차별 금지와 예방, 피해 구제를 분명히 규정해 차별과 혐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을 세우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국가기관-정치인-언론과 같은 공적 기관과 인물들에 의해 국가폭력이 부인되거나 왜곡될 때 가장 큰 충격을 받고 공적 부인과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 지만원의 국회 강연,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 총선 후보들의 세월호 혐오 발언이 그것이다. 차별과 혐오를 막고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충실한 진상규명을 통해 혐오표현이 국가폭력 피해자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공통의 인식을 만드는 것. 이를 통해 '공적-시민권 영역'에서부터 국가폭력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고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예훼손죄의 확대, 역사왜곡처벌법에 의한 형사처벌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 상임위에서 40년 만에 구성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기간을 연장하고, 조사범위도 확대하는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지난 20대 국회 때 개정된 과거사법에 따라 '2기 과거사위'도 새롭게 출범하여 일제강점기 이후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조사를 추가로 할 예정이다. 너무나 오래 지연되고 지체되어왔다. 그 시간만큼 피해자들은 차별과 혐오에 고통받아왔다. 이번 진상규명은 과거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준거점을 만드는 소중한 작업이 되어야 하며, 진상규명의 목적이 형사처벌의 정당성 확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보다 형사처벌을 앞세우는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111525226433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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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정까지…” 아들 2주기 다음 날 ‘단식농성’ 시작한 김용균 어머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2/12 09:44
  • 수정일
    2020/12/12 09: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당, 중대재해법 또 미루나 “임시국회 내 ‘상임위’서 통과”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20-12-11 14:00:24
수정 2020-12-11 15:12:27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씨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씨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있다.ⓒ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매일같이 용균이처럼 끼어서 죽고, 태규처럼 떨어져서 죽고, 불에 타서 수십 명이 죽고, 질식해서 죽고, 감전돼서 죽고, 과로로 죽고,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화학약품에 중독돼서 죽습니다. 너무나 많이 죽고 있습니다. 제발 그만 좀 죽었으

면 좋겠습니다."

 

2년 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11일 국회에서 이같이 말한 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아들의 참혹한 죽음 이후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전면 개정됐음에도 여전히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다며 "세상은 변한 게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서 반드시 중대재해법이 필요하다는 게 김 이사장의 절실한 요구다.

김 이사장을 비롯해 일터에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이날 정의당과 함께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단식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이사장은 중대재해법 촉구를 위한 국회 농성을 이어가기 위해 전날 태안에서 열린 2주기 추모제에도 함께 하지 못했다.

김 이사장은 "중대재해법을 좀 만들어 달라고, 정부와 국회가 안전을 책임져서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국회에서 7일부터 노숙 농성을 했다. 국회의원들에게 법 좀 만들어달라고 허리 숙여 얘기도 했다. 그러다가 때로는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소리 높여 답답한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아직 논의도 안 되고 있다고 하니 너무도 애가 타고 답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그래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선택을 했다"며 "저는 평생 밥을 굶어본 적이 없어 무섭기도 하고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자신을 갉아먹는 투쟁 방식인 단식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뜯어말리고 싶었는데 이제 저 스스로 택한다"고 단식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김 이사장은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법이 제대로 만들어질 때까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단식을 할 것이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될 때까지 잘 버텨보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열악한 방송제작 환경을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과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도 김 이사장과 함께 단식 농성에 돌입한다.

이 이사장도 지지부진한 중대재해법 논의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차오르는 눈물을 꾹 삼켜가며 준비해 온 발언문을 읽어나갔다.

이 이사장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저희 가족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저 모든 삶이 부서져 버린 저희와 같은 가족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나라, 일하러 갔다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위해, 계속되는 죽음을 보며 계속 고통받지 않기 위해 그래서 저희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다"며 "오늘부터 중대재해법이 제정될 때까지 단식 투쟁을 할 것이다. 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살아서 제 발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이 이사장은 "국회는 조속히 중대재해법을 제정해달라"며 "제발 저희가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전날 단식농성 시작을 알렸던 강은미 원내대표는 중대재해법 제정을 약속했던 거대 양당 지도부를 향해 "더는 미루지 말자"며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강 원내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뒤로 밀려나는 동안 지난 정기국회 막바지의 모습은 어떠했나. 174석의 의석을 가진 집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나"라며 "중대재해법보다 12일 늦게 발의된 공정거래법은 절차와 논의를 무시하고 사활을 걸면서 왜 국민들 생명 지키고 안전 지키는 일에는 사활을 안 거는지 엄중히 따져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강 원내대표는 "말뿐인 중대재해법으로는 노동자들을 살릴 수 없다"며 "중대재해법의 제정으로 안전한 일터, 생명존중 대한민국이라는 결과로 보여달라. 반드시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중대재해법을 만들자"고 당부했다.

중대재해법의 운명은 사실상 거대여당인 민주당의 의지에 달려 있다. 정의당과 시민사회계에서는 늦어도 올해 안에는 중대재해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중대재해법 제정이 원칙이라는 말만 할 뿐 정확한 입법 시간표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최대한 이번 임시국회 내 상임위에서 통과시킨다는 목적으로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이를 위한 정책 의원총회가 소집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본회의 처리까지는 어렵다는 입장인 것이다.

최 수석대변인은 '이번 임시국회 때 통과 가능성은 상임위 정도인가'라는 질문에는 "중대재해법은 제정법이라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 많다"며 "법과 관련된 범위가 워낙 넓고 관계되는 법률이 이미 있고, 법안끼리의 충돌이나 여러 부분에 있어서 검토해야 할 사항이 상당히 많은 법"이라고만 답했다.

이번 임시국회는 해를 넘겨 오는 1월 8일까지 이어진다. 물론 임시국회를 추가로 소집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면 곧바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제대로 법안을 논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정의당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현관 앞에서 열린 가운데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앞줄 왼쪽 세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2020.12.11. (공동취재사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정의당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현관 앞에서 열린 가운데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앞줄 왼쪽 세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2020.12.11. (공동취재사진)ⓒ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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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소파합동위, 12개 미군기지 반환 합의

용산기지 2개 구역 첫 포함...오염정화책임 지속 논의키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0.12.11 17:57
  •  
  •  댓글 0
 
한미 당국은 11일 제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화상으로 개최하고 12개 미군기지를 반환받기로 했다. 우리측 위원장인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과 미국측 위원장인 스콧 플로이스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합의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 외교부]
한미 당국은 11일 제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화상으로 개최하고 12개 미군기지를 반환받기로 했다. 우리측 위원장인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과 미국측 위원장인 스콧 플로이스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합의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 외교부]

한미 당국은 11일 경기도 의정부시 소재 캠프 잭슨 등 11개 미군기지와 용산기지 2개 구역을 포함해 모두 12개 미군기지를 반환받기로 합의했다. 용산기지는 대규모 기지로 전체 폐쇄 전에 일부 반환이 처음으로 추진된 것이다.

외교부는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12월 11일 오전, 미국과 제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이하 소파) 합동위원회를 화상으로 개최하고 11개 미군기지와 용산기지 2개 구역(이하 12개 기지)을 반환받기로 하였다”며 반환기지들을 발표했다.

반환이 결정된 기지는 필승 사격장 일부(태백), 캠프 워커 헬기장(대구), 포항해병대, 캠프 모빌 일부(동두천), 캠프 잭슨(의정부), 성남골프장(하남), 극동공병단(서울), 서빙고 부지(서울), 니블로 배럭스(서울), 8군 종교휴양소(서울), 캠프 킴(서울), 용산 기지 2개 구역(스포츠필드 부지, 소프트볼경기장 부지)(서울)이다. 12곳의 총면적은 약 146만5천㎡ 정도로 여의도 면적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외교부는 “양측은 기지 반환의 추가적인 지연은 기지 주변 지역사회가 직면한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반환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였다”며 “합동위는 한미 양측이 △오염정화책임, △주한미군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지의 환경관리 강화 방안, △한국이 제안하는 소파 관련 문서에 대한 개정 가능성에 대해 지속 논의한다는 조건으로 총 12개의 기지들을 반환키로 결정하였다”고 전했다.

또한 “한미 양측은 소파 환경분과위를 통해 △오염관리 기준 개발, △공동 오염조사 절차 마련, △환경사고 시 보고 절차 및 공동조사 절차 검토 및 이에 대한 개선방안 등을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정부는 “반환받은 미군기지들은 깨끗하고 철저하게 정화하여 국민들이 안심하고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환경단체들은 미군기지 반환시 기지를 사용해온 미군이 환경오염 정화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외교부는 특히 “용산기지는 미군이 사용 중인 대규모 기지로 전체 기지 폐쇄 이후 반환을 추진할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어, 정부는 기지 내 구역별 상황과 여건에 따라 순차적으로 구역을 반환받는 것을 미측과 협의해 왔고, 2개 구역(스포츠필드, 소프트볼경기장 부지)을 우선 반환받게 되었다”고 경과를 설명했다.

나아가 “정부는 용산공원 조성계획이 차질없도록 용산기지 내 구역들의 순차적인 반환을 미측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반환받은 용산 2개 구역 부지는 약 5만㎡로 보안 등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완료한 후 사용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정부는 용산기지(미군 잔류부지 제외)를 포함하여 반환대상인 기지들도 미측과의 기지 이전 및 환경 협의 진행 상황,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개발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시점에 반환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미는 2002년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YRP)에 따라 전국의 주한미군 기지 80곳에 대한 반환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번 12개 반환으로 남은 곳은 12개 기지다.

화상으로 진행된 제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이하 소파) 합동위원회는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이 우리측 위원장을, 스콧 플로이스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미측 위원장을 맡아 진행됐다. 차기 합동위원회는 내년 중 상호 편리한 시기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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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부동산 ‘펄펄’ 실물경제 ‘싸늘’…빈부 양극화 키울라

등록 :2020-12-11 05:00수정 :2020-12-11 10:29

 

 

[뉴스AS] 자산시장·실물경제 괴리 심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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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뜨겁다. 주식시장은 코로나19 감염사태 속에서도 연일 최고치 행진이다. 반면 실물경제는 부진의 늪속에 빠져 있다. 경기부진이 심화돼 일자리는 줄어들고 실업급여는 급증세다. 국가방역 강화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은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다.

 

 이른바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 현상이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실물경제를 구하기 위해 정부가 푼 대규모 유동성과 금융완화 정책이 자산시장 랠리의 핵심 동력원이다. 감염병 위기엔 방역을 위한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인 탓에 ‘돈을 풀어도 돈을 쓸 수 없어’ 당장 실물경제 회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만큼 풀린 돈이 자산시장으로 몰려가기 좋은 환경인 셈이다. 문제는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이런 식의 자금쏠림이 계속되면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실물경제 회복 국면에서 급격한 자산가격 조정으로 인한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 지난 3월 코로나19 충격으로 1400대까지 급락했던 코스피지수는 이후 급반등해 지난달 24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이달 들어서도 7거래일 가운데 6거래일이나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2700선에 안착했다. 부동산 시장도 과열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종합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지난해 8월 100.1을 기록한 이후 11월 105.3까지 15개월째 기록을 갈아치웠다.자산시장과 별개로 실물경제는 코로나19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은 전분기 대비 2.1% 성장했으나, 내수 지표인 민간소비는 0%로 제자리였고, 총투자율은 1.8%포인트 떨어졌다. 수출이 사실상 나홀로 성장률을 떠받친 것이다.
자산시장 가격이 치솟는 근본 원인은 금리 인하 등 완화적 통화정책과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이다. 이는 통화량과 대출 급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금과 예금, 현금화가 수월한 금융상품까지 합친 ‘광의통화량(M2)’은 지난 9월 기준 3115조원에 이른다. 코로나19 전인 지난해 12월(2914조원)보다 200조원 넘게 늘어난 것이다. 시중에 풀린 풍부한 돈이 부동산으로 몰려 집값 폭등을 낳았다. 자산가격 상승의 ‘연료’가 된 것이다. 개인들은 대출이자 부담이 적어지니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을 일으키며 주식시장을 끌어올렸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 7일 기준 신용융자 잔고는 18조5734억2600만원으로, 1998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신용융자는 개인투자자가 주식매매를 위해 증권사에 자금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가계대출도 꾸준히 늘어 3분기 가계신용(대출과 신용카드 사용액 등 포괄적 빚) 잔액은 1682조1천억원으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87.7%에 이른다.
문제는 경제가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국면에 들어가면 자산시장 랠리를 이끌어 온 싼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라는 ‘연료’가 소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내년에 성장률이 플러스로 전환되고 경기가 개선되면 (유동성 회수를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데 생계형 대출을 받은 이들부터 타격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자산시장 투자 열풍 현상에 우려를 표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6일 “세계 실물경제의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는 상황에서 실물과 금융간 괴리가 자산가치의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부동산시장 참가자들은 의사결정시 정부 대책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완화적 거시경제 기조가 코로나19 위기 이후 정상화될 가능성까지 감안해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자산시장 쏠림 현상이 지속될 경우 자산 양극화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부동산·주식 가격은 오르는 반면 소비재는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상황이므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자산 쪽에 투자하는 경향이 생긴다”며 “문제는 주로 돈 있는 사람들이 자산시장에 뛰어들고, 투자의 과실도 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인데, 현재 전반적인 정부 정책도 자산시장 가격을 꺼트리지 않으려는 방향이어서 자산 양극화는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3770.html?_fr=mt1#csidxfc64555f91a59b9b9754c9dfd433e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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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국가보안법

이인선 통신원 | 기사입력 2020/12/1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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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12월호를 발간했습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내가 겪은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 그것이 어떠한 법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국가보안법 속에서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국가보안법이 만든 세상은 국민을 연극 속에 갇혀 살게 만든 것과 비슷합니다. 국가보안법은 국민을 무대 위 배우처럼 정해진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무대 안에서만 살아가는 우리는 무대 밖에는 우리의 적이 살고 있다는 얘기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하지만 밖이 진실로 어떻게 생겼는지 공연장의 꺼진 불 때문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을 걷고 진실을 알려고 시도하는 순간 어디선가 서슬 퍼런 칼날이 날아와 저를 겨누었습니다. 그 칼날의 실체를 모르다가 이제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래다 못해 무대 안팎의 경계에서 우리 모두의 목숨을 위협하는 ‘국가보안법’이었습니다.

광주에서 20년을 살았던 나에게 5.18 광주민중항쟁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 마음이 뜨거워지는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중학생 시절 우연히 지만원의 책을 접하면서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책에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북한군의 소행이니, 특정 누군가를 지칭해 빨갱이들이니 하며 폄훼하는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때는 단순히 몇몇 소수의 몰지각한 사람이 하는 왜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보니 그러한 일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18년에만 여러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남북 교류 사업 등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은 멀지 않다고 생각했고 우리 민족이 하나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에서는 아직도 빨갱이 타령, 종북몰이 등이 계속되며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에서 활동하면서 동아리 홍보, 미군장갑차 추돌 사망사건 진상규명단 활동 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들의 활동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북한이 시켜서 하는 애들, 빨갱이, 종북좌파, 친북단체라고 불렀습니다. 그 앞장에는 친일과 친미로 100년을 살아온 조선일보와 대학생 전자소통공간인 ‘에브리타임’이 있었습니다. 

실례로 조선일보를 보시는 많은 분이 집회, 기자회견 등을 하는 대진연 대학생들을 보시면 “북한으로 가!”라는 말부터 꺼내십니다. 에브리타임의 경우 대진연 동아리라고 알려지는 순간 ‘김정은 위원장 환영했던 단체 아니냐’, ‘빨’(빨갱이를 표현), ‘여기 대진연이다’ 등 낙인처럼 찍어 내리기 만무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동아리에 들어온 회원들조차 반미, 통일, 북한 등에 반감을 느끼기 마련이었습니다. 대진연을 검색해보고 들어오지 않거나 나가기도 만무했습니다.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사회는 국가보안법이 통제한 대로, 국가보안법이 정한 틀 속에서만 정보를 얻으며 사람들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요? 우리 민족끼리 싸워야만 하는 걸까요?

어두웠던 무대 밖을 밝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우리 생각의 확장을 사사건건 막아 나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를 겨누던 실체에 헛웃음만 났습니다. 그리고 법 하나 때문에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 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웠습니다. 국가보안법이 규정한 반국가단체가 북한인 이상 종북, 빨갱이 논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과 귀와 입과 모든 것을 막아 죽일 수 있는 법, 국가보안법. 이 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생각을 그곳에 맞춰야 하고 종북, 빨갱이로 매도되지 않게 자기검열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만약 내 생각 하나가, 행동 하나가 위험한 건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게임의 전환」만 보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국가보안법이 72년간 이 사회를 지배해왔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국가보안법을 사문화된 법이 아니냐고 하지만, 사문화된 법이라면 더욱더 우리에게 필요 없는 법이 아닐까요? 사실 국가보안법은 1945년 해방 후 이승만과 친미파가 단독정부 수립과 이승만 정부의 만행을 반대하는 국민을 처벌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든 법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민주화, 평화통일, 노동자 처우 개선 등의 목소리를 내는 국민을 억압하는 데 쓰였습니다. 그렇기에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기득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이라는 것이 명확합니다.

최근 민주당 일부 의원이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 법안을 법사위에 상정시켰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의 제7조(찬양, 고무) 조항이 사라진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제나 악용될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남아 있으면 종북몰이, 빨갱이몰이 등은 끊이지 않고 사회적 배제는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생각 폭을 넓히고 더 많은 대학생이 함께 목소리 내는 우리나라가 되기 위해 이뤄져야 하는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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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연속 코로나 확진자 700명 육박, 사망자는 8명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2/11 10:34
  • 수정일
    2020/12/11 10:3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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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유행 후 최대 규모 확진자 집계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 국내 발생 신규 확진자 673명, 해외 유입 확진자 16명이 각각 확인됐다며 이 같이 밝혔다.

 

지난 2월 29일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한 1차 대유행 시기 하루 909명이 나온 이후 이날 신규 확진자가 286일 만에 가장 큰 규모다.

 

국내 발생 신규 확진자 규모(673명) 역시 지난 3월 2일 684명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집계됐다.

 

의료 마비 사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날 위중증 환자는 전날보다 3명 줄어든 169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날 사망자가 8명 발생했다. 누적 사망자 수는 572명(치명률 1.40%)으로 늘어났다.

 

520명이 새로 격리 해제됐으며, 이날 현재 9057명이 격리 중이다.


 

수도권에서 518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서울에서 252명(해외 유입 2명), 인천에서 37명, 경기에서 229명(해외 유입 4명)의 새 확진자가 각각 보고됐다.


 

부울경 지역과 충청권의 감염 전파 양상은 이날도 이어졌다. 이날 부산에서 26명, 울산에서 47명, 경남에서 12명의 신규 확진자가 각각 보고됐다. 울산의 경우 요양병원에 이어 중구 초등학교, 남구 중학교, 기숙형 고등학교 등 학교 곳곳에서도 집단 감염이 전파되고 있어 심각한 상황으로 감염 양상이 발전하는 중이다.


 

충북에서는 20명, 충남에서는 10명(해외 유입 1명)의 신규 확진자가 각각 보고됐으며 대전에서도 10명(해외 유입 2명)의 새 확진자가 나왔다.


 

대구에서는 6명, 경북에서는 3명의 새 확진자가 나왔다. 3차 유행 과정에서 대구와 경북 지역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확진자가 이날까지 집계됐다.


 

그러나 이날 0시 기준 집계에는 보고되지 않은 새 집단 감염이 이날 오전 대구에서 확인됐다. 대구 달성군 영신교회에서 신도 20명의 집단 감염이 이날 오전 중 보고됐다. 해당 감염 사례는 내일자 신규 확진자로 집계된다.

 
이날 광주에서 3명, 전북과 전남에서 각각 7명과 4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전날 대규모 신규 확진자가 나온 제주에서는 이날 5명의 새 확진자가 집계됐다.  


 

▲11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689명으로 집계됐다. 10일 오후 제주성안교회에 선별진료소가 마련돼 교회 예배 참가자 등에 대한 코로나19 진단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1109465307508#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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