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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해병대 수사관들, '이첩 보류' 부당한 외압으로 인식했다

'외압' 들어오자 오히려 사단장 수사내용 100페이지 이상 보강...'VIP 격노' 발언도 공유한 듯

23.08.31 15:46l최종 업데이트 23.09.01 00:03l
큰사진보기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 8월 28일 오후 항명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 하기 위해 변호인과 함께 도착하고 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 7월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숨진 해병대 채 모 상병 관련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혐의(군형법상 항명)로 입건됐다.
▲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 8월 28일 오후 항명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 하기 위해 변호인과 함께 도착하고 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 7월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숨진 해병대 채 모 상병 관련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혐의(군형법상 항명)로 입건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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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대령 이외에 해병대 수사단 다른 구성원 역시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음을 파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의 경찰 이첩 보류 지시가 있었던 7월 31일 직후부터 해병대 수사단은 'VIP 지시'를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혐의자에서 임성근 해병1사단장을 빼지 못하도록 수사내용을 100페이지에 걸쳐 보강했다는 것이다.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에 따르면 박 대령은 '지난 7월 31일 오전 대통령 주재 비공개 회의 도중 수사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윤 대통령)가 격노하면서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취지의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언급을 다른 수사관들과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광역수사대 수사관, 이첩 보류 지시 후 사단장 혐의 보강"

<오마이뉴스>가 31일 입수한 박 대령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의 내용 중에는 "특히 1광역수사대 수사관 OO OOO은 '사령관으로부터 VIP에서 국방부장관에게 말하여 피혐의자에서 1사단장을 빼라고 지시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피혐의자에서 1사단장을 제외하지 못하도록 이첩 보류 지시가 있었던 2023. 7. 31 이후인 2023. 8. 1에 사단장의 혐의와 관련된 내용들을 100페이지 이상 보강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다. 

영장의 이 내용은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의 항명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관의 진술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첩을 강행하기까지 수사관들의 행동 이유와 배경을 설명한 것.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첩 보류 직후부터 박 대령을 포함한 해병대 수사단이 'VIP 지시'를 기정사실화 할 만큼의 정황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더 분명한 것은, 'VIP 지시'에 맞서는 걸 무릅쓰면서까지 보강조사를 벌일만큼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지시가 부당하다고 해병대 수사단 구성원들이 판단했다는 점이다.   

보강조사는 장관 결재 이틀 뒤인 지난 1일에 진행됐다. 이날은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처리 보고서 경찰 이첩 보류 여부와 보고서에 적시할 혐의자, 혐의 내용 등을 두고 국방부와 해병대 수사단의 실랑이가 한창 벌어지던 때였다.  

해병대수사단은 임성근 해병1사단장을 빼라는 지시에 맞서 오히려 혐의를 보강하기 위해 보강조사를 벌였고, 이 서류들은 지난 2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됐다.

김 변호사는 최초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결재받은 보고서만으로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가 충분했지만, 상부에서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압력이 계속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뺄 수 없다는 점을 보강하기 위해서 해병대 수사단이 보강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해병대 수사단 수사관들이 경찰 이첩 보류 지시를 부당한 외압으로 인식했다는 정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이첩의 주체인 해병대 O광수대장은 '만약 수사단장이 이첩을 보류하라'고 해도 나는 그 명령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부당한 이첩보류 지시는 결코 듣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군 검찰에 진술했다고 전했다.

군 형법상 항명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대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9월 1일 오전 10시 용산 국방부 영내 군사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 대령은 피의자 심문을 하루 앞둔 이날 국방부 검찰단의 사전구속영장 청구가 정당한지를 판단해달라며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관련기사] 
- "VIP가 '쾅쾅쾅쾅'했다고..." 박정훈 대령 육성 녹취 공개  https://omn.kr/25f2u
- 박 대령 측 "외압 증거 녹음 틀자 군 검사가 당황해 제지" https://omn.kr/25e2c 
- [단독] 박 대령이 "정말 VIP가 맞느냐" 묻자, 해병대사령관은 고개 끄덕였다 https://omn.kr/25e7i
 
태그:#박정훈 대령#고 채 상병#VIP#해병대 수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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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룰라가 갈등?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벌어진 일들

브릭스의 다양한 목소리, 다극화의 징표

8월 22일부터 남아공에서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렸다. 지난 6월 일본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비해 우리 언론은 그다지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그나마 언론이 보도한 것은 브릭스의 ‘균열’ 양상. 시진핑이 반미, 반서방 전선 강화를 위해 브릭스 회원국 확대를 강조했지만, 브라질과 인도 정상은 미국과 서방의 관계를 중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 우리 언론은 브릭스 '균열상'을 보도하는 데 급급했다.

균열 아닌 다양성, 다극화의 징표

브릭스 정상들이 하나의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과 전략 대결을 펼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은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제멋대로 탄압”하는 미국을 지칭하며 반미 연대를 강조했다. 이에 반해 자국 경제 성장을 우선하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과 인도 무디 총리는 미국과의 협력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룰라는 취임 후 미국과의 관계 회복에 나섰고,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 가입국이다. 이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시각과 입장이 같을 수 없다.

▲ 8월 22~24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문제는 이런 시각 차이가 브릭스 공동가치인 ‘탈달러’, ‘다극화’와 충돌하는가에 있다. 브릭스 정상들은 이번 회의에서 6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승인하고, 회원국 화폐 사용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이견이 공동가치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의장국이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라마포사 대통령이 언론 브리핑에서 언급한 것처럼, 브릭스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비전을 공유하는 국가들의 동등한 파트너십”이다.

요약하자면 반제·반패권에서는 일정한 의견 차이가 있지만, 탈달러화, 다극화에 대해서는 거의 일치된 견해를 갖는다. 브라질 룰라 역시 정상회의에서 “브릭스는 역내 경제를 달러화로부터 디커플링 하기 위해 역내 협력을 늘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극 패권을 거머쥐고 있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서 ‘이견’은 허용되지 않았고, 이견의 표출은 곧 ‘균열’로 해석되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한미,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은 동일한 목소리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브릭스가 추구하는 다자주의에서 이견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견이 곧 균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견의 존재는 다양성의 징표이다. 다양성은 다자주의의 전제이다. 우리 언론이 부각하는 시진핑과 룰라의 이견은 그 자체로 브릭스가 다자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징표가 된다.

탈달러, 다극화로 전진하는 브릭스: 요하네스버그 선언의 주요 내용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요하네스버그 선언은 브릭스 국가가 탈달러, 다극화로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채택된 요하네스버그 선언은 서문과 포용적 다자주의를 위한 파트너십, 평화와 발전을 위한 환경 조성, 동반 성장을 위한 파트너십,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 인적교류 심화, 제도의 발전을 주제로 다룬 6개 분야에 대한 합의 내용이 담겨있다.

선언은 서문에서 브릭스 정신을 강조했다. “상호존중, 이해, 주권평등, 연대, 민주주의, 개방, 포용, 협력 그리고 합의”라는 내용을 가진 브릭스 정신에 따라 “정치와 안보, 경제와 금융, 문화와 인적교류의 세 가지 기둥 아래 브릭스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평화, 공정한 국제질서, 활력 넘치는 다자시스템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증진하기 위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6개 분야의 세부 합의가 지향하는 것은 다자주의와 탈탈러였다. 그 대표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선언은 다자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향이 담겨있다. 브릭스 정상들은 평등과 상호존중의 원칙에 따라 공동 이익에 대해 협력을 강화하고 특히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한 유엔의 포괄적 개혁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또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다자주의와 유엔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거부하고, 모든 국가가 평등하게 권리를 행사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브릭스의 의지가 피력된 것이다.

경제, 사회 영역에서도 다자주의가 강조되었다. 선언은 다자간 금융기관과 국제기구를 장려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다자간 대응을 강조했다. 이번 선언에 다자(multi)라는 단어는 18번 등장한다.

선언은 다음으로 브릭스 국가 간 협력의 구체적 방안을 피력했다. 이 대목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브릭스 국가 간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공급망과 결제 시스템을 서로 연결하고, 더욱 효율적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대화를 지속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브릭스 정상들은 통화와 결제 시스템에 대한 보고서를 다음 정상회의까지 보고하도록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농업 협력을 강조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선언은 브릭스가 세계 식량의 1/3을 생산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탄력적인 식량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식량 공급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는 현실에서 아프리카 등 식량 부족 국가들은 이들의 농업 협력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 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요하네스버그 선언의 주요 내용. 이 선언은 총 94개 항으로 이뤄져있다.

브릭스 도외시, 윤석열 정부의 패착

브릭스의 규모는 더 확대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5개국은 브릭스 파트너 국가의 모델과 파트너 국가 목록을 작성하고, 이것을 내년 16차 정상회의 때 보고 하도록 외무장관들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신규 회원국 확대에 대한 브릭스 국가들의 의견 차이는 이 과정을 통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40여 개국이 브릭스 가입을 신청하거나 가입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6개국이 가입 승인이 났으니, 회원가입 후보국은 여전히 30여 개국에 이른다. 그리고 이번 남아공 정상회의에 50개 가까운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관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새롭게 회원 가입 의사를 피력할 가능성도 있다.

브릭스의 영향력 또한 커질 것이다. 이미 브릭스 5개국이 세계 GDP의 1/3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회원국의 확대는 브릭스 국가들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구매력 기준 GDP 총합에서 브릭스는 이미 G7을 따돌렸다. 브릭스 국가와 G7 국가 사이의 GDP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 세계은행이 2022년에 발표한 각국의 실질GDP 추정치로 브릭스 5개국과 G7의 실질 GDP 총액을 비교한 결과, 브릭스가 G7을 6조 달러 앞섰다.

브릭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속도에 따라 탈달러와 다극화의 속도 역시 빨라질 것은 자명하다. 정치·경제적으로 혼란과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는 현실은 브릭스 국가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이들과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신냉전의 늪에 빠져 미국·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며, 브릭스와의 관계는 등한시한다. 브릭스 협력이 강화할수록 윤석열 정부의 시대착오적 정책이 실패로 귀결되는 시간은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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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홍범도 흉상 이전에 어리둥절해 하는 국민 적지 않다"

  • 박서연 기자 
  •  
  •  입력 2023.08.31 07:46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일보 “홍범도 흉상 문제 평지풍파는 국정에 도움 안 돼”

김의철 KBS 사장 해임제청안 상정에 경향 “이동관표 폭주 시작”

거액의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 논란에 휩싸인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제명을 면했다. 30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소위원회는 김남국 무소속 의원 제명 징계안을 두고 투표했다. 이날 오후 이양수 국회 윤리특위 제1소위원장은 소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김남국 의원 제명 징계안에 대해 가결 3표, 부결 3표로 동수가 나왔다. 과반이 되지 않아 김 의원에 대한 제명안은 부결됐다”고 밝혔다. 윤리특위 소위는 여야 의원 각각 3명씩 6명으로 구성되는데, 징계안은 4명 이상 찬성해야 전체회의로 넘어갈 수 있다.

31일 아침 신문들은 대부분 이 소식을 1면에 다뤘다. 또 사설로 민주당을 향해 ‘제 식구 감싸기’ ‘공당 자격이 있느냐’ 등의 비판을 했다. 한겨레는 민주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국민의 대표를 국회가 제명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31일 아침 신문들 1면.

 

민주당 반대 김남국 제명안 부결에 한겨레 “조심스레 접근해야”

앞서 지난 22일 윤리특위 소위는 김남국 의원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려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소위 개회 30분 전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이 소식을 들은 민주당이 표결을 한 차례 미뤘다.

한겨레는 5면 <김남국 제명안 결국 부결... 민주당 또 ‘제 식구 감싸기’> 기사에서 “표결은 무기명으로 이뤄졌으나, 부결표는 김 의원이 원래 소속돼 있던 민주당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윤리특위 야당 간사인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의원들 논의에서 유권자들이 뽑은 선출직의 특성상 제명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정치적인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점도 참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31일 한겨레 5면.

▲31일 조선일보 8면.

한겨레는 “비이재명계에선 김 의원 제명안 부결이 ‘또 다시 온정주의가 발동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 비명계 의원은 ‘김 의원이 당 차원의 징계를 피해 탈당하는 것도 막지 못했는데, 징계안까지 유야무야시키는 모습이 국민 눈에는 어떻게 비치겠냐’고 했다”고 보도했다.

 

신문들은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김남국 제명안 부결, 민주당은 이번에도 ‘제 식구 감싸기’> 사설에서 “김 의원을 엄중하게 징계해 국회와 정치권의 윤리적 잣대를 바로세우고, 이해충돌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했다. 400회 이상 코인 거래를 했다는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징계안도 뒤이어 논의될 문제였다. 특히 민주당은 김 의원의 ‘꼼수 탈당’을 방관하더니 도덕성 회복 약속마저 저버렸다. ‘유권자가 뽑은 선출직 특성상 제명이 적절치 않다’는 말은 구차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도 <김남국 제명도 부결시킨 민주당, ‘기본 윤리의 파산’ 개탄한다> 사설에서 “불출마한다는 이유로 민주당은 그의 제명안을 부결시켰다. 불출마하면 어떤 비위도 징계하지 않고 면책한다는 것은 민주당식 윤리인가. 김 의원 같은 사람도 제명하지 않는다면 국회의원 제명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 옳다”며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민주당 출신 의원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 어떤 징계도, 체포도 불가능하다. 김 의원이 의원 자격이 없다고 믿는 국민은 이런 민주당이 공당의 자격이 있는지 다음 선거에서 물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31일 조선일보 사설.

▲31일 한겨레 사설.

그러나 한겨레는 <김남국 징계안 부결, 민주당의 ‘내 식구 감싸기’> 사설에서 “민주당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 사안인데도, ‘내 편’에 관대한 민주당의 온정주의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면서도 “물론 김 의원의 잘못이 크지만, 국민의 대표를 국회가 제명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사안이다. 현재 국회법상 국회의원 징계는 최고 수위인 제명을 제외하곤 30일 출석정지, 사과, 경고 등 네 가지뿐이다. 이참에 국회 윤리특위가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해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홍범도 흉상 문제 평지풍파는 국정에 도움 안 돼”

30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 홍범도 장군 흉상을 독립기념관 등 학교 밖으로 이전하는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8일 국방부는 기자들에게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 자료를 보내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 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입장 발표에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역사를 지우고 과도한 색깔론을 입히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기로 했다.

▲31일 조선일보 5면.

▲31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5면 <홍범도 장군 흉상, 육사 밖으로 이전하기로> 기사에서 “홍 장군과 함께 설치된 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 흉상은 육사 내 육군 박물관으로 이전한다. 국방부와 육사는 이런 내용의 흉상 이전 방향을 확정하고 육사 전체 조경 계획을 수립하는 대로 흉상을 이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금 홍범도 흉상 갖고 논란 벌일 때는 아니지 않은가> 사설에서 “ 느닷없이 나온 홍범도 등의 흉상 이전에 어리둥절해 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밀어붙이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검토하는 게 불필요한 분란을 막는 길”이라며 “흉상 문제 평지풍파는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김의철 KBS 사장 해임제청안 상정에 경향 “이동관표 폭주 시작”

30일 KBS이사회(서기석 이사장)가 서울 영등포구 KBS본관에서 이사회를 열고 여권 이사 5명이 제안한 김의철 사장 해임제청안을 상정했다. 해임제청안을 두고 표결이 진행됐고, 찬성 6인(여권 전원), 반대 4인, 기권 1인으로 안건이 상정됐다.

KBS이사회는 총 11명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여야 4:7 구도였다. 그러나 2020년 TV조선 재승인 점수변경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년 전 이사와 KBS 부실경영 관리·감독 소홀 및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빚은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해임됨에 따라 여야 6:5 구도로 재편됐다.

▲31일 경향신문 사설.

이사들은 다음 날 6일 사장 해임제청안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진행하고, 12일 오전 9시 김의철 사장 청문을 진행한다.

경향신문은 <KBS 사장 해임안 상정, ‘이동관표 폭주’ 시작인가> 사설에서 “방통위가 2주 전 이사장·이사를 해임해 이사회를 재편한 뒤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며 “이동관 위원장이 지휘하는 방통위는 공영방송을 정조준했다. KBS 사장 교체는 시작이다. 방문진도 김기중 이사 해임을 내달 완료하면 여야 5 대 4 구도로 바뀌면서 MBC 사장 교체에 나설 걸로 관측된다. 김효재 위원장 대행 체제에서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장과 이사들을 줄줄이 쫓아내놓고, 이제 일사천리로 사장 교체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빚는 무리한 결정이 줄 잇는 이유는 뻔하다. 이 위원장 주도로 언론 통제·장악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이다. 비판 여론에 귀를 닫고 공영방송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방송을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국론 분열과 극한 정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즉각 멈춰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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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걱정한 뉴질랜드 전직 총리 "그건 끔찍한 일"

[정치신대륙을 찾아서①-1] 선거개혁 이정표 세운 제프리 파머 "민주주의 계속 고쳐야...참여하라"대결을 넘어 전쟁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는 어떻게 해야 달라질까요? <오마이뉴스>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국민투표로 선거제도를 바꾼 뉴질랜드, 선호투표제로 사표를 막는 호주 두 '정치신대륙' 탐방에 나섰습니다. [편집자말]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뉴질랜드 총선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총선처럼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제1투표'와 지지 정당을 뽑는 '제2투표'로 1인 2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역구 72석(지역 65석+마오리족 대표 7석), 비례대표 48석으로 의회를 구성한다. 다만 선거 결과에 따라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도 있다. ⓒ 유성호

아오테아로아(Aotearoa), 길고 하얀 구름의 땅이라는 뜻으로 뉴질랜드를 가리키는 마오리어다. 1642년 이곳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은 여느 정복자들처럼 선주민과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오랜 충돌 끝에 1840년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이 맺어지면서 백인과 마오리족은 불완전하게나마 손을 잡는다. 그 정신은 공공장소 어디에나 있는 '영어-마오리어' 병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통합과 관용의 정신은 선거제도에도 담겨있다. 현재 뉴질랜드는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 representation, MMP)에 따라 120명(지역구 65명+마오리족 대표 7명+비례대표 48명, 선거 결과에 따라 초과의석 발생)으로 의회를 구성한다. 유권자가 한 표는 정당에, 다른 한 표는 후보에게 투표하면 득표율에 연동해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가령 A당이 30%를 득표했을 경우 이 정당이 지역구에서 24석만 확보했다면 A당은 추가로 비례대표 12석을 가져간다. 다만 전국 득표율이 5% 미만이거나 지역구 당선자가 없으면 비례의석을 할당받지 못한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1990년대에서야 MMP를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1표라도 많은 후보가 당선하는 단순다수대표제였고, 그 결과 의사당 안에는 사실상 국민당과 노동당만 존재했다. 1978년 사회신용당은 16%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겨우 하나뿐이었다. 1984년 12%의 지지를 받은 뉴질랜드당은 아예 한 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거대정당인 노동당 또한 국민당보다 더 많이 득표하고도 더 적은 의석을 차지하는 일을 겪었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에 분노했다.

하지만 개혁을 향한 열망이 '끓는 점'에 쉽게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오마이뉴스>는 늘 '선거제도 개혁의 모범사례'로 꼽히며 매년 '선진민주국가'로 평가받는 뉴질랜드가 어떻게 100℃를 넘겼는지 알기 위해 전직 총리, 제프리 파머(Geoffrey Palmer)를 한국 언론 최초로 만났다.

 
의회 무력화, 거대 양당 독점... "우리도 똑같았다"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 법학교수 시절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그는 정치에 입문한 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Electoral System)' 설립을 주도, 뉴질랜드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 유성호

"정말인가? 흠, 과거 뉴질랜드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7월 4일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의 한 연구실, 백발이 성성한 파머 전 총리가 '한국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다들 무관심하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1979년 저서 <무소불위의 권력?(Unbridled Power?)>에서 왜곡된 선거 결과가 의회의 행정부 견제를 무력화했고, 거대 양당만 의석을 독식하게끔 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파머 전 총리는 크라이스트처치 지역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 부총리 겸 법무부 장관을 거쳐 1989~1990년 총리를 지냈다.

노동당은 1978년과 1981년 선거 모두 득표율로는 1위였지만 국민당에 의석 수로 밀렸다. 단순다수대표제의 피해자였던 이들은 1984년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고, 선거 승리 후 법무부 장관이 된 파머는 그간 주장해온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Electoral System)' 구성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서 있는 곳이 달라지자 노동당 역시 입장이 달라졌다. 당 내부에선 '위원회를 꼭 꾸려야 한다면 전직 의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파머 전 총리는 위원회가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으리라고 봤다. 그는 내각에서 추천한 이들을 거부했다. 그 덕에 위원회는 존 월러스(John Wallace) 판사, 정치학자 리처드 멀건(Richard Mulgan) 교수, 헌법을 전공한 케네스 키스(Kenneth Keith) 교수, 전직 정부 통계학자 존 다윈(John Darwin) 박사, 마오리족 대표인 여성 훼투마라마 훼레타(Whetumarama Wereta) 등 독립성과 다양성을 갖춘 위원들로 꾸려져 1985년 출범한다.

1986년 12월 왕립위원회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하여(Toward a Better Democracy)>라는 보고서를 내며 ①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② 의석 수 확대(99석→120석) 여부를 ③ 국민투표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반대했다. 파머 전 총리는 "노동당 의원 중 찬성하는 이들은 8, 9명 정도였다"며 "1987~1990년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노동당은 1989년 '의석 수 확대를 위한 국민투표 실시 반대'라는 입장도 정했다. 국민당도 다르지 않았다.

 
개혁 외면한 정치인, 꼼수 거부한 국민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에서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여성의 정치 진출이 활발한 나라이다. 지난 2022년 뉴질랜드 하원의원 성별 구성이 여성 60명, 남성 59명으로 여성 과반이 됐다. ⓒ 뉴질랜드 의회 홈페이지 갈무리

개혁을 외면한 정치인들과 달리 유권자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직시했다. 왕립위원회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뉴질랜드 사회에선 선거제도 개혁을 주제로 하는 토론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지자 전환점이 생겼다. (대중에게) 의제를 던져 (그들이) 토론하게끔 해야 한다. 또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꽤 좋은 논거가 있어야 하는데, 왕립위원회 보고서에는 명료한 논거들이 담겨 있었다. 이 보고서가 없었다면 개혁은 불가능했다."

뉴질랜드 선거개혁의 또 다른 특징은 '국민투표'다. 한국의 선거제도 개편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치인의 손에 이뤄졌다. 파머 전 총리는 "대부분의 나라가 그럴 텐데, 뉴질랜드는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라며 "1857년부터 의원내각제이고, 1879년 모든 남성에게,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국민들이 투표해야 하고, 그래야 정부가 정당성을 갖는다"며 "이것이 뉴질랜드의 전통"이라고 덧붙였다.

왕립위원회도 이에 따라 국민투표를 거쳐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파머는 "선거제도 개혁은 큰 변화라 대리인(정치인)이 아닌 유권자들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며 "그게 더 민주적"이라고 설명했다. 양당은 여전히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노동당 데이비드 랑이(David Lange) 총리가 1987년 총선 과정에서 '재집권하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원고를 잘못 읽고, 국민당이 노동당 견제를 위해 1990년 국민투표 실시 공약을 내걸면서 국민투표는 양당의 약속이 됐다. 그러나 집권 후 국민당 역시 돌변했다. 어렵게 이 사안을 끌고 온 파머 전 총리마저 정계를 떠난 상태였다.

꺼져가던 개혁의 불씨를 되살린 이들은 시민이었다. 1986년 출범한 시민단체 'ERC(Electoral Reform Coalition)'도 그 중 하나다. 파머 전 총리는 "ERC는 변화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분위기를 바꿨다"며 "아주 좋은 캠페인을 벌였다"고 말했다. 결국 국민당 정부는 여론을 수용했다. 하지만 1992년 선거제도 개혁 찬성 여부와 어떤 대안을 원하는지를 묻고, 1993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MMP와 기존 선거제도 중 선택하라는 식으로 투표를 복잡하게 설계했다.

국민들은 '꼼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1차 국민투표 결과 선거제도 개혁 찬성 의견은 84.7%, 선호하는 투표제도 1위는 70.5%의 지지를 받은 MMP였다. 이듬해 2차 투표에선 MMP는 유권자 53.9%의 선택을 받았다. 1차 투표 당시 55.2%였던 투표율도 2차 때는 85.2%로 치솟았다. 2011년 국민당 정부는 또다시 MMP를 흔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번에도 MMP를 택했다. 'MMP를 위한 캠페인'으로 재출범한 ERC도 거들었다.
 
"당시 MMP를 포기했다면, 우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시대로 퇴행했을 것이다. …(중략)… MMP는 거대양당의 독점체제를 타파했다. 이제 권력은 과거보다 더 많이 나눠지고 있으며, 주요 정책을 채택하기 전에는 더 많은 토론과 협상이 있어야 한다." - 제프리 파머, 2013년 발간한 회고록 <개혁(Reform)> 중에서


 
"무관심은 재앙으로... 참여가 민주주의 본질"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가 7월 4일 뉴질랜드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한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과 선거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10년이 흘렀지만 그의 생각은 변함없다. 파머 전 총리는 "제가 의원이 됐을 때만해도 백인 중년 남성들이 의회를 지배했다"며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더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 안에 존재하고 소수자들이 더 대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제도가 바뀐 뒤 뉴질랜드에선 꽤 오랫동안 과반을 넘긴 정당이 나오지 않다가 2020년 처음으로 노동당이 단독집권에 성공했다. 현재 의회는 노동당 64석, 국민당 34석, 녹색당 10석, 뉴질랜드 행동당 10석, 마오리당 2석으로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파머 전 총리는 "뉴질랜드 민주주의 또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민주주의를 계속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뉴질랜드는 이슬람사원 테러, 코로나19 등을 겪었다. 우리는 이 모든 도전을 뚫고 나갈 정부를 필요로 하는데 이 일은 선거제도에 달려 있다"며 "선거제도는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또 "뉴질랜드와 한국은 다르다"면서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MMP는 단순다수대표제보다 대표성 면에서 월등히 나은 제도"라고 얘기했다.

1942년생 파머는 여전히 개혁을,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꾼다. 그는 지난해 손녀와 함께 <뉴질랜드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otearoa New Zealand, Aotearoa는 뉴질랜드 지명을 뜻하는 마오리어)>란 책을 썼다. "사람들에게 정부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파머 전 총리는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남으려면(To survive in democracy)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사람들을 재앙으로 이끈다. 끔찍한 일이다. 참여해야 한다. 동네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서 당신이 원하는 것 또는 싫어하는 것을, '내가 유권자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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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임명한 인권위 상임위원의 ‘수상한 행각’과 ‘앞뒤 다른 답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8/31 07:29
  • 수정일
    2023/08/31 07:2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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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보호위 개최 보름 미루고 상임위도 불참한 군인권보호관, ‘외압 있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08.30. ⓒ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위원회는 이달 9일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수사단의 해병대원 사망사건 조사결과’를 국방부검찰단이 도로 회수한 행위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이 성명에서, 군인권보호위원회는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등은 즉각 보류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런데도, 국방부검찰단은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한 수사 등을 강행했다.

이에 군인권센터는 지난 9일 인권위 성명과 같은 내용으로 인권위에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한 긴급구제조치를 신청했는데, 군인권보호위원회가 보름동안 열리지 않아 논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한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동료 위원의 일정을 핑계로 군인권보호위원회 개최를 보름가량 미루고, 지난 29일에야 개최한 회의에서 기각을 결정했다. 보름가량 시간을 허비해 놓고, 그 사이에 이미 인권침해가 발생했으니 구제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또 긴급구제 건 처리가 미뤄지는 동안 해당 안건의 긴급성을 고려해 상정될 예정이었던 상임위원회에도 불참했다. 그런 뒤 상임위에 긴급구제 안건을 상정한 군인권조사과장 등에 대해 조사 및 중징계를 요구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김 보호관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한 질의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김용원
긴급한 사안인데...
군인권보호위 미루고, 상임위 불참
“건강 때문에”, “일정 때문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2023.02.20. ⓒ뉴시스

논란이 된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윤 대통령이 올해 2월 3일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김 보호관도 윤 대통령처럼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검사 출신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지지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보호관에게 박 전 수사단장의 긴급구제 건을 보고받고도 군인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고, 상임위에도 불참한 이유를 물었다. 김 보호관은 건강과 다른 위원 일정 등을 이유로 들었다.

 

 

 

민병덕 의원과 김용원 보호관

▷ 민병덕 : 군인권보호위원회 소집을 왜 하지 않았나?
▶ 김용원 : 위원 중 한 분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 민병덕 : 그분이 누군가?
▶ 김용원 : 위원 중 한 분이다.
▷ 민병덕 : (군인권보호위가 열리지 않아서) 18일 상임위가 있었는데, 보호관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 김용원 : 상임위에서 다룰 사안인지, 군인권보호위에서 다룰 사안인지에 관해서 국가인권위원장 측과 이견이 있었다. ...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군인권보호위원회 소관업무를 상임위가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그래서 내가 참석하더라도 같은 이유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두 번째는 그 주 동안 내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빴다. ... 그래서 8월 18일 임시상임위를 개최하더라도 거기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목요일 오후 5시에 퇴근했다.


박 전 수사단장의 긴급구제신청에도 불구하고 몇날며칠 동안 군인권보호위원회가 열리지 않자, 인권위는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상임위를 열고 해당 안건을 다루려고 했는데, 김 보호관은 이곳에도 불참했다. 김 보호관은, 해당 사안은 군인권보호위원회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며 상임위에서 다루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상임위에서도 다룰 수 있다고 봤다. 고영인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송 위원장은 이같이 답했다.

 

 

 

고영인 의원과 송두환 인권위원장

▷ 고영인 : (위원장은) 긴급구제신청 건을 상임위에서 논의 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 딱 한마디로 왜 상임위에서 가능하다고 판단했나?
▶ 송두환 : 인권위원회 법과 거기에 근거한 우리 인권위 운영규칙을 보면...
▷ 고영인 : 법률상도 그렇고 시기적으로 급하다 생각했나?
▶ 송두환 : 그렇다. 그렇게 생각했다.

 

긴급구제 건 보름 미뤄놓고
상임위에 안건 상정하자
조사 및 중징계 요구
“무조건적인 중징계는 아니다”


김 보호관은 군인권보호위원회 소집을 보름가량 미루고 상임위 참여도 불참한 점에 대해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공직자는 법령에 정한 바에 따라 공직을 수행해야”하기에 문제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그는 긴급구제 안건을 상임위에 상정한 인권위 사무총장과 군인권조사과장에 대해 조사와 중징계를 요구했는데, 김 보호관은 이에 대해서도 정당한 조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고영인 의원과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 고영인 : (김 군인권보호관은) 8월 18일 상임위 회의 참여를 거절했다. 지금 여러 가지 요구가 긴급하게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긴급구제에 대해 (인권위가)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까 몸도 아팠다 그런 얘기를 했는데, 지금 이것이 어떤 직급에서 필요한지 아닌지 따지기 전에, 박 전 해병대수사단장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참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김용원 : ...
▷ 고영인 : 참여해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 김용원 : 공직자는 법령에 정한 바에 따라 공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고영인 : (상임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박 전 수사단장 보호 진정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 그 결과가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인권을 위해서 상호 경쟁할 수는 있다. 서로의 역할과 부처에 따라서. 그런데, 인권위 사무총장과 군인권조사과장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했다.
▶ 김용원 : 무조건적인 중징계를 요구한 게 아니다.
▷ 고영인 : 무조건이 아니면 뭔가? 무슨 조건인가?
▶ 김용원 : 엄정한 조사결과를 거쳐서 잘못이 드러날 경우에...

 

김용원 보호관에게 질의하는 고영인 의원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화면 갈무리

 

심경변화 있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9일 성명을 발표한 뒤 29일 성명과 정반대 취지의 기각을 결정하기까지 “심경의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 등에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다소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고영인 의원과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 고영인 : (9일) 성명과 (29일) 기각 사이의 모순, (상임위) 불참, 중징계 요구 등 이 세 가지는 본인 임무, 취지와 완전 모순된다. 중간에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아닌가?
▶ 김용원 : 천만의 말씀이다.
▷ 고영인 : 중간에 외압이 있었나?
▶ 김용원 : 천만의 말씀이다.
▷ 고영인 : 그런데 왜 이런 모순된 행위를 했나?
▶ 김용원 : 지금 겉으로 드러난 일만 가지고 피상적으로 보고 ...
▷ 고영인 : 없는 사실을 가지고 말하나? 분명히 논거를 제시했다. (9일 군인권보호위원회) 성명의 내용 취지에 입각하면, 그런 행위들이 상식적인 판단에서 모순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긴급구제건 보름 지나 기각해 놓고
“항명죄 수사, 이첩서류 회수 등은 부적절”
앞뒤 다른 답변에 혼란


김 보호관은 그러면서도 9일 군인권보호관 명의로 발표한 성명 내용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지난 9일 성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오기형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그는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답했다. 그는 박 전 해병대수사단장에 대한 국방부검찰단의 항명죄 수사 등은 부적절하고,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서류를 국방부검찰단이 회수한 행위 또한 “부적절한 조치”라며 기각 결정과 상충되는 답변으로 의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오기형 의원과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 오기형 : 이번에 8월 9일 군인권보호위원회 성명에서, 해병대수사단장이 경찰에 이첩했던 서류를 회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이런 입장을 표명했다. 지금도 회수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나?
▶ 김용원 : 그렇다.
▷ 오기형 : 해병대 수사단이 부대지휘관의 범죄를 인지했다고 명시할 당위성이 있었다, 이것도 공감하는 건가?
▶ 김용원 : 그렇다.
▷ 오기형 : 해병대수사단장에 대한 보직해임, 집단항명죄 수사가 오히려 문제가 있다, 즉각 보류되어야 한다, 이런 입장도 지금도 적절하다 보는 건가?
▶ 김용원 :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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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간토 조선인 대학살’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⑥ 특별기고-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 기자명 이만열 
  •  
  •  입력 2023.08.31 00:00
  •  
  •  수정 2023.08.31 01:12
  •  
  •  댓글 0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연재 순서


① 개괄-잊혀진 통한의 100년
② 기록으로 본 간토대지진과 조선인학살
③ 자료와 증언-일제는 조선인을 어떻게 학살했나
④ 北은 간토대학살을 어떻게 보고 있나
⑤ 강요된 망각과 시무(時務)의 역사연구
⑥ 특별기고-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들어가는 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간토(關東) 조선인 대학살’이 있은 지 올해가 100년이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군경은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으며, 피해자측에서도 정부나 국회 모두 이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간혹 한일관계의 아픈 상처를 씻어내야 한다고 양념삼아 들먹이고는 있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이 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하여 이 큰 상처를 풀어보려고 하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역사의식이 있는 한일 양국의 인민들 가운데는 저 비극의 역사를 그냥 방치해 둘 수 없다고 하면서 그 비극의 실상을 밝히고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온 이들이 있다. 1963년 재일사학자 강덕상(姜德相)과 금병동(琴秉洞)이 <현대사 자료 6: 간토대진재와 조선인>을 출간, 이 문제에 대한 학문적인 정리에 힘썼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을 규명하려는 한국측 시민운동과 관련해서는 김종수가 언급한 것이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도 간토지역에서 자행된 조선인 학살을 잊어서는 안된다면서 추도행사를 계속하는 이도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도 관심을 갖고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조협회는 1973년 9월 1일,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고 50년 동안 추도식을 열고 있으며, 니시자키 마사오 봉선화 이사는 1982년 이래 학살 장소인 아라카와 강변에 자리잡고 진상규명과 추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일본 시민과 단체들에 대해 감사의 말을 먼저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간토조선인학살은 그것을 치유하지 않는 한 언제나 간헐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아픈 상처다. 그 비극이 일어난 지 100년을 맞아서도 일본은 이 상처를 아물게 할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지 않는다. 동양에서 가장 일찍이 근대국가로 발돋음했다는 일본이 왜 이 야만적인 ‘제노사이드’를 없는 듯이 방치해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의 호기를 부리며 자기들은 동양의 야만인들과는 다르다고 하면서, 유럽인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상대로 야수적인 학살을 자행했던 것과 같이, 이같은 학살행위를 국가 공인 하에 거리낌 없이 자행했던 것일까. 

일본이 간토대학살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보여준 자세는 근대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야수적이었다.

그 동안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대학살’에 대해서는 당시 일본 정부나 조선총독부가 이를 정직하게 밝힌 바 없다. 그 원인이나 진행과정, 가해자와 희생자들, 특히 당시 일본의 군․경․민(自警團)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공식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그 사건의 전말과 관여자 및 희생자들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을 일본 정부가 제대로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3년 9월,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를 계기로 ‘조선인대학살’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국인, '류구인'(琉球人, 오키나와인)에 대한 학살도 있었고, ‘대역(大逆) 사건’이라 하여 무정부주의자(혹은 공산주의자)들을 소탕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박열과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와 관련된 사건도 이 때 일어났다. 여기서는 <간토 조선인 대학살>에 국한해서 언급하겠다.

 

간토대지진 전체 지역 조감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재촬영]
간토대지진 전체 지역 조감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재촬영]

1. 1923년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1923년 9월 1일 토요일 11시 58분, 도쿄(東京)를 중심으로 한 간토 일대에 진도 7.9의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지는 가나가와(神奈川) 현 앞바다인 사가미(相模) 만에서부터 도쿄 만, 지바(千葉) 현이 있는 보소(房總) 반도까지 간토 지역 남쪽 바다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이 지진은 간토 지역의 1부(府), 6현(縣)에 걸쳐 있었으며 이로 인해 99,331명이 사망하였다. 가옥 파괴로는, 128,266 가옥이 전파되었고 126,233 가옥이 반파되었으며, 소실된 가옥 수는 447,128호에 달했다.(피해규모는 여러 형태로 알려져 있어서 그 숫자는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수치에 차이가 있지만 2015년에 번역된 가토 나오키(加藤直樹)의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썼다.

“도심은 거의 괴멸상태였다. 지진이 점심 무렵 일어난 탓에 화재 피해는 더 컸다. 무너진 가옥에서 새어 나온 불길이 동시다발적인 화재를 일으키며 강풍을 타고 퍼져 나갔다. 화재는 9월 3일 아침에야 완전히 진압되었다. 도쿄 시의 약 44%가 소실되었고, 요코시마의 경우 80%에 달하는 지역이 소실되었다. 도심의 광범위한 지역이 불타 허허벌판이 된 탓에 다음 날, 구단자카 언덕 위에 서면 도쿄 만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파괴된 가옥은 약 29만 3천동,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10만 오천명을 넘었다. 피해 총액은 당시 국가 예산의 3.4배에 달했다.”    

그 무렵 오산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나섰던 함석헌은 지진 당일 ‘간토대지진’을 경험하고 뒷날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함석헌전집 6, 255-296)이란 긴 글을 남켰다. 당시 그는 정주 오산학교를 마치고 유학차 도쿄 유시마(湯島)에 하숙하면서 간다(神田)에 있는 세이소쿠(正則)학교에 다니다가 그 무렵 하숙집을 혼고구(本鄕區) 사카나마치(肴町)로 옮겼다. 그는 9월 1일 아침, 유시마에 있는 지인 함덕일(咸德一)을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지진을 당하게 되었다. 함석헌은 그 때 직접 경험한 간토대지진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만세 부르고 헤어진 후 못만나고 있던 그[함덕일]를 5년만에 여기서 만나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정오가 거의 다 됐습니다. 그래 시계를 끄집어내 보며 일어서 가려고 하니 덕일이가 붙잡으며 점심 때가 됐으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갑자기 우르르 하고 진동이 왔습니다. 입에서마다 ‘지진이다!’하고 외침이 나왔습니다.…그래 우리도 첨엔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지진이다’ 하면서도 나가려고는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조금 있다간 흔들흔들 또 조금 있다간 흔들흔들 점점 심하게 오는데 보통이 아닙니다. 순간 겁이 번개같이 머리들을 스쳤습니다. ‘나가야 한다!’…황급히 층계를 달려내려와 현관을 썩 나서니 지붕에서 떨어지는 기왓장이 비오듯 합니다. 빈 곳으로 달려가려 하니 어찌 심이 흔들리는지 걸음을 옮겨놓을 수가 없습니다. 전신주를 바라보니 노대(태풍) 만난 뱃대처럼 누웠다 일어났다 합니다.…조금 뜸해지는 것을 타서 사방을 바라보니 사람마다 집앞에 서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오 가미사마(神樣), 오 가미사마’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조금 있노라니 사람들이 모두 이삿짐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첨에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습니다. 후에 들으니 지진이 심하면 반드시 화재가 난답니다.…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가 바로 정오 직전 모든 집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있던 때이므로 불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한 지진이 왔기 때문에 모두 집이 무너지고 치어 죽을 생각만 하고, 미처 불을 끌 생각을 못하고 그냥 놓고 달려나갔기 때문에 사방에서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지진으로 수도관이 모두 끊어진 데가 많기 때문에 불끌 물을 구할 수가 없어져서 더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전 시가 다 타버렸습니다.”(함석헌전집6 268-270)

함석헌의 술회는 더 계속된다. 그는 자기 하숙으로 돌아오지 않고 친구와 함께 간다쿠(神田區)가 활활 붙타는 것을 보면서 우에노(上野) 공원으로 가서 거기에 있는 시노바츠노이케(不忍池)라는 넓은 연못을 의지, 불길을 피하면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몇 시간 동안 피난하다가 자기 하숙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밤에 바람이 연못 쪽으로 불어 불길이 연못가의 피난민들을 덮치게 되자, 연못가의 피난민들은 불길을 피하려다 대부분 연못에 빠져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함석헌은 자기 하숙으로 돌아와 생명을 건졌지만 그 뒤 ‘이제 진짜다!’라고 표현한 조선인 사냥, 즉 조선인 학살을 경험하게 되었다.

‘간토대지진’은 45만여의 가옥을 파괴했고 10여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대지진은 생명과 주거를 잃은 민중들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이를 수습해야 할 정부는 책임전가를 위한 유설(流說)을 퍼뜨렸다. 책임전가 음모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될 수 없는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풀고 있다’, ‘조선인이 부녀자를 강간하고 있다’는 등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내용이었다. 자연재해에 의한 사회불안을 인위적으로 그 사회의 약자에게 전가시키려는 수작이었다. 이 내용이 조선인과 관련된 것이 많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는 이 엄청난 자연재해에 대한 희생양을 찾았던 것이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라 할 조선인이 주 타깃이 되고 ‘지나’(중국)인과 류구인, 공산주의자들도 희생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계엄령을 발포, 도쿄부 전 지역과 가나가와 현으로까지 확대시켰다. 일본 헌법 제 8조에 규정되어 있는 계엄령은 전쟁 또는 사변시에 대외방비를 목적으로 일반 행정권을 정지시키고 군에 의해 국민생활을 통제하도록 한 것이다. 계엄령법 제 1조는 “계엄령은 전시 혹은 사변 시의 병비(兵備)로서 전국 혹은 한 지방을 경계하는 법이다”라고 명시하여 전쟁 또는 사변이 일어났을 때에 발하는 것이다. 그 전에는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등 모두 전시하에서 선포되었던 것이다. 강효숙은 당시 발포된 계엄령이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발포되어 계엄법을 따르지 않았고 추밀원 고문의 자문도 받지 않아 절차상의 하자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엄령이 발포됨으로 계엄령이 아니면 다스리지 못할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는 잘못된 신호를 일본 사회에 주고 있었다.

계엄령을 유발한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그 진원지를 두고 내각설, 군벌설, 경시청설, 사회주의자설 등이 있다. 당시 도쿄의 히비야(日比谷)공원이나 궁성 앞에 50만, 우에노(上野)공원및 야스쿠니(靖國) 신사 등에 10여만명 등이 모여 극도의 혼란과 사회불안이 조성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와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 후미오(後藤文大), 경시총감 아카이케 미노루(赤池濃) 등이 사실상 치안대책을 총괄하면서 비상수단으로 계엄령 선포를 논의했고 군 당국자에 대해서도 군대의 출병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가 9월 1일 오후 2시경이었다. 

문제는 전시나 내란에만 선포토록 된 계엄령을 선포할 명분이었다. 당시 내무대신이었던 미즈노 렌타로는 계엄 선포이유를 ‘조선인 내습’이라는 폭동설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9월 2일 오후 6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무렵이면 일본 정부가 조선인 폭동에 대한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하고 있었다.

강덕상은 간토대학살 당시 계엄사령부에 관련된 인사들 중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활동한 이들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무장관이었던 미즈노 렌타로는 조선 정무총감으로 있다가 영전해 왔으며, 조선의 내무장관을 역임한 우사미 가쓰오(宇佐美勝夫)는 지진 당시 동경부지사였다. 관동대지진 당시 군사참의관 4명 중 가장 우수한 우쓰노미야 미야타로(宇都宮太郞)는 3.1운동 당시 조선주둔군 사령관으로 7천 수백명을 살해했고, 오바 지로(大庭二郞)는 3천 수백명을 죽인 간도사건 침공군 총사령관이었다. 간토대지진 때 도쿄 주둔의 제1사단장 미시미쓰 나오미(石光眞臣)는 3.1운동 당시 헌병사령관이었고, 간토대지진 때 계엄사령부 참모장인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뒤에 조선 총독이 되었다. 

따라서 강덕상은 이 때 계엄령을 발동한 원인으로 “식민지 반란과 사회주의적 항일세력의 출현, 시베리아 출병과 패배, 청산리전투의 대패 등에 따른 위기감”과 관련시켜 설명했다. 강덕상, 「한일관계에서 본 관동대지진」『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33-35, (동북아역사재단, 2013) 

일본에서도 계엄령 선포는 전쟁 또는 사변을 전제로 한 것으로 대외 방어를 위해 행정권을 정지시키고 군이 국민생활을 통활토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군의 통활 하에서 이뤄진 조선인 학살은 ‘일본 내에서 발생한 일본 민족과 조선민족 사이에 발생한 민족전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눈여겨볼 것은 계엄령이 발포되기 전에 군대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군 보병여단 제1연대가 9월 1일 밤 10시에 출병했을 때는 계엄령 반포 전이었다. 피난민 구호가 출병목적이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치바현 나라시노(習志野)와 이치가와(市川)의 고노다이(国府台)에서 도쿄로 진군한 후 9월 2일 오전 9시경부터는 도쿄 고토(江東)지역 거주 조선인 학살로 그 목적이 변경되어 있었다. 재일조선인은 단지 조선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유 없이 일본군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것이다.

당시 경시청 자료에서도 ”유언비어가 처음 관내에 유포된 것은 9월 1일 오후 1시경인 것같고, 2일부터 3일에 걸쳐 가장 심했으며, 그 종류도 또한 다종다양하였다”, “조선인 폭동의 비화(蜚話)는 홀연히 사방으로 전파되어 그 유포 범위 또한 대단히 넓었다”. 뒷날 일본 변협이 보고서를 통해 적절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당초 조선인이 방화, 폭탄소지 및 투척, 우물에 독물투입 등의 ‘불령행위’를 했다는 선전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유언비어“였다. 

조선인이 음해를 가하고 있다는 비화 혹은 유언은 대지진 발생 후 한 시간 정도 후인 1시경부터였는데, 도쿄 지역에서는 이미 유언비어가 퍼져가고 있었고, 경시청도 “조선인 폭동”, “불령행위” 등의 언설이 적어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점은 당시 자료에 “비화” 혹은 “유언”이라는 말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 당시 경시청조차도 “조선인 폭동”, “불령행위” 등을 객관적 사실로 보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아니라 경시청 관내의 각 경찰서가 조선인에 대한 살해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자료인 「대정대진화재지초」(大正大震火災誌抄)에도 “조선인 폭동에 대한 유언이 기세 좋게 퍼져”, “조선인 폭거 유언이 퍼져”, “유언비어가 처음으로 관내에 전파되어” 등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자료에 일관되게 '유언'이란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경시청도 이미 조선인의 '폭동' 등이 유언비어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조선인 폭동의 실체가 의심스러웠지만, 9월 5일 임시진재사무국 경비부에 각계 관리들이 모여 선인(鮮人)문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결정을 했다. “조선인 폭행 또는 폭행하려고 한 사실을 적극 조사해서 긍정적으로 노력할 것. 동시에 아래 사항에 대해서 노력할 것. 1. 풍설(風說)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이를 사실로 할 수 있는 한 긍정할 수 있도록 힘쓸 것. 2. 풍설선전의 근거를 충분히 조사할 것” 등이었다. 이렇게 진재 관리를 맡은 관청이 풍설의 근거 없음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철저히 조사하라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지만, 조선인에 대한 학살은 지진 당일부터 시작되었다. 

일본 사법관청이 ‘불령선인’에 대한 범죄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는 이 해 10월 20일 사법성의 발표에서 보인다. 지진이 있은 지 한참 후에 발표된 것은 아마도 사법적 절차를 밟은 후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법성은 “금회의 변재(變災)에 즈음하여 조선인에게 불법행위를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는데, 지금 그 진상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반 조선인은 대체로 양순하다고 인정되지만, 일부 불량 조선인 무리들이 있어 일정 범죄를 저지르고 그 사실이 유도되기에 이른 결과, 변재로 인한 민심 불안에서 공포와 흥분이 극에 달해 왕왕 무고한 조선인 혹은 내지인을 불령조선인으로 오인하여 자위의 수단으로 위해를 가한 사범이 생겼기 때문에 당국은 이에 대해서도 엄밀히 조사하고 이미 기소된 것이 수십건에 이르고 있다. 요컨대 일부 불량조선인이 범죄를 일으켰기 때문에 오살(誤殺)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들의 조사에서도 조선인들은 양순하지만 ‘일부 불량조선인 무리들’이라고 함으로써 이미 저지른 그들의 조선인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사법성 조사에 따른 관동대지진시 조선인 ‘범죄’의 신빙성 분석표에 따르면, 범죄 유형은 유언비어, 방화, 협박, 강간, 강도, 상해, 강도살인, 강간살인, 교량파괴, 절도, 독살예비, 절도, 횡령, 절도횡령, 장물운반 등이었다. 

여러가지 정황에 비춰볼 때, 당시 정부 당국은 근거없이 떠도는 조선인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들이 ‘유언비어’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천재지변에서 오는 국민들의 좌절감을 카타르시스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조선인을 포함한 중국인 유구인 등이 유언비어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들은 방조하거나 더 부추겼고 조선인 희생자가 나타났을 때 오히려 이를 방치함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제노사이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 당국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는 군대와 경찰, 그리고 관청의 방조하에 조직 활동한 자경단(自警團)이 있었다.   

 

계엄령 공포와 조선인 학살 명령을 내린 주범으로 꼽히는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왼쪽)과 아카이케 아쓰시 도쿄 경시총감. 3.1운동 당시 각각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경무총감의 지위에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재촬영] 
계엄령 공포와 조선인 학살 명령을 내린 주범으로 꼽히는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왼쪽)과 아카이케 아쓰시 도쿄 경시총감. 3.1운동 당시 각각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경무총감의 지위에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이민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재촬영] 

2. 조선인 학살의 양상과 규모

일본 정부의 방조하에 생산된 유언비어는, 간토대지진의 혼란을 틈타 조선 사람들이 폭행, 약탈, 방화, 폭탄투척, 집단습격, 부인능욕 및 우물에 독극물을 투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조선인들이 내습하여 일종의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는 일본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유포되었고, 일본 언론들 또한 이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확인 절차 없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의 고지(告知)와 신문들의 허위 보도에 흥분한 일본 민중은 9월 1일 저녁부터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학살이 본격화된 것은 4일 전후해서다. 일본의 군과 경찰은 물론 흥분한 민간인들도 관청의 묵인 하에 자경단을 조직, 조선인들을 학살하였다. 

그러니까 이 학살사건은 관동대지진을 빌미로 일본 정부의 유언비어 방관에 일본 민족이 현혹되어 저지른 일종의 집단학살 제노사이드라고 할 것이다. 

조선인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일본인과 혼동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서 자신은 일본인이라고 항변해도 구출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일본정부는 식민지 초기(1913)부터 전국 경찰서나 관청에서 조선인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조선인 식별 자료에 관한 건(朝鮮人識別資料に関する件)」이라는 일종의 메뉴얼을 내무성 경보국(警保局)에서 작성한 바 있다. 이 중 언어 부분이 특히 강조되어 있는데 조선인은 “탁음 발음이 곤란하다”든가, 발음할 때 일본어의 ‘라행(ラ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예를 들면 당시 조선인이 일본의 탁음 발음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경단원들도 통행인을 검문하면서 ‘15엔 55센’(쥬고엔 고쥬고센)을 연속으로 말해보라고 하고 탁음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조선인으로 간주, 그 장소에서 살해되곤 했다. 조선인은 탁음이 없기 때문에 ‘쥬고엔 고쮸 고센’으로밖에는 발음이 되지 않았다. 또 ‘라행(ラ行)’을 발음하도록 유도했는데 그들은 한국인이 라(ラ)는 나(ナ), 리(リ)는 이(イ)로 발음한다는 것을 알고 조선인들에게 “라리루레로를 해보라”고 반복적으로 유도하여 발음이 의심스러우면 처단했던 것이다.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피살된 조선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도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일본 당국과 조선총독부가 강력한 언론통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실상이 밝혀질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학살 당시의 일제 당국의 발표는 축소지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간토 지방에 살고 있는 조선인은 노동자 3천명, 학생 3천명 도합 6천명인데 조사 결과 조선인 피살자는 2명 뿐이라 했고, 일본 정부도 1923년 11월 13일 현재 조선인 피살자 233명, 중상 15명 경상 27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밝혀진 것은 당시의 발표가 얼마나 허구였는가를 보여준다. 최근에 간행된 가토 나오키(加藤直樹)의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는 공공 기록은 아니지만 민간 기록들에서 밝혀진 학살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 책 앞부분에 제시된 몇 몇 사례들만을 예시코자 한다. 

▶지진이 발생한 9월 1일 저녁, 오이마치 거리에는 이미 일본도나 도비구치, 톱 따위를 든 사람들이 나타나 ‘조선인을 죽여라’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37쪽, 전석필) 

▶ 그리하여 자경단이 통행인을 붙들고 “‘바 비 부 베 보’라고 말해 보라”거나 “‘15엔 50센’이라고 말해 봐”라며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말을 시키고 힐문하는 광경이 각처에서 벌어졌다. (40쪽)    

▶ 요쓰기바시 다리를 건너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 셋을 두들겨 패 죽이고 있더라구. 우리는 그걸 곁눈질로 보면서 다리를 건넜어.(41쪽, 조인승)…스무 명에서 서른 명의 사람들이 소총이나 칼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44쪽)

▶ 도쿄 부 내에만 그 수가 1천개 이상이었던 자경단은, 거리 모퉁이에서 길가는 사람을 붙들어 신분을 조사하고 조선인으로 의심되는 경우 마구 폭행을 저지른 후 맘에 내키는 대로 죽이거나 경찰에 넘기거나 했다.(48쪽) 경찰이 자경단과 함께 조선인을 뒤쫓는 경우마저 있었다고 한다.…경시청 간부들도 수많은 보고가 밀어닥치자 점점 유언비어를 믿게 된다.(51쪽)

▶ 하지만 도쿄로 습격하러 온다던 선(조선)인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10시쯤이 되어서는 그 정보가 허위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50쪽, 쇼리키 마쓰다로 正力松太郞)  

▶ 유언비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명령을 내린 경시청이었지만, 2일 밤과 다음날인 3일에 이르러서는 조선인 폭동이 과연 실재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조사를 해 봐도 유언비어를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어었다.(54쪽)

▶ 가메이도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쯤이었다.…그 안에 섞인 조선인은 모두 끌려내려왔다. 그리고는 즉시 칼과 총검 아래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일본인 피난민 속에서 만세를 외치고 환호하는 소리가 폭풍우처럼 끓어나왔다. “나라의 원수! 조선인은 모두 죽여라!”그들을 첫 제물로 삼아 우리 연대는 그날 저녁부터 밤에 걸쳐 본격적인 조선인 사냥을 시작했다.(56쪽, 엣추야 리이치 越中谷利一)

▶ 아마도 3일 점심때였어. 아라카와 강의 요쓰기바시 하류에 자경단들이 줄에 묶인 조선인 몇명을 끌고 와서 죽였지, 정말 잔인했어. 일본도로 자르거나 죽창이나 쇠막대기로 찌르거나 해서 죽였어. 여자, 그 중에는 배부른 사람도 있었지만 다 죽였어. 내가 본 것만 30명 정도 죽였어.(67-68쪽, 아오키-가명)[이하 268쪽까지는 생략]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자들의 수가 얼마나 되었을까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견해를 밝혔으나 아직도 그 정확한 수자를 알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처음에는 2명, 나중에는 813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사법성이 230명을 발표했으나 그것은 터무니 없는 수자이며 그 무렵 일본 신문들은 4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었다. 일본인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가 처음에는 724명, 뒤에는 2,613명을 발표한 바 있고, 재일본 관동지방 이재조선동포위문단 조사발표에서도 1,781명이라고 발표한 바가 있었다. 

‘간토대학살’이 일어나자 당시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여기에 가장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임정은 그 기관지 『독립신문』(1923년 12월 5일)에서 6,661명을 제시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현재 한국사 개설서나 고등학교 교과서 등에서는 6천여명이 희생되었다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장세윤의 「관동대진재시 한인학살에 대한 『독립신문』의 보도와  최근 연구동향」(『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 밝힌 바 있어서 이를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하겠다. 

'관동대학살’ 당시 독립신문사 사장은 김승학. 그의 술회에 의하면 학살 소식을 듣고 그는 나고야(名古屋)에 있던 한세복을 도쿄로 파견,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보고토록 했다. 한세복의 활동은 ‘재일본관동지방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이 해 10월 5일에는 상해거류 한인들이 독립신문 사장 김승학과 윤기섭, 여운형 등 7명을 집행위원으로 선정했다. 그 뒤 『독립신문』에는 조선인학살과 관련된 기사들이 오르는데, 기사의 정확도에는 문제가 있으나 기사화된 사항 중 몇 개를 소개한다. 

▶ 1923.9.19: 천재지변의 화를 조선인에게 전가, 군경(軍警)에 수금된 한인 1만5천명이 조선인 참살(慘殺) 등 항의, 1만 5천 조선인 석방 

▶ 1923,10.13: 군에서 동포 13,000인 별도 수용 후, 기관총으로 사살 조선인 사망자 6,7천인 

▶ 1923.11.10: 우리 동포 수천명이 학살되었는데 그 원인은 일본 당국이 일본인들의 민원을 한인 동포들에게 전가한 데 있다고 파악, 보도함

▶ 1923.12.5: 본사 피학살교일(僑日)동포 특파조사원 제 1신 <1만의 희생자>, 각 지역의 희생자 통계를 적시하고 합계 6,661명이 피살되었다고 보도함

▶ 1923.12.26: “적에게 희생된 동포 횡빈(橫濱)에만 1만 5천”-총계 2만 1천 6백여명/ 독일인 부르크하르트 박사의 증언을 토대로 2만1,600여명 피살로 종합 보도 

12월 26일자 기사에서 “'덕국'(德國, 독일) 뿌 박사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횡빈(橫濱, 요코하마)에서만 1만 5천의 학살이 잇섯다 한즉 본사 특파원이 조사한 바는 횡빈의 분(分)이 포함되지 아니한 모양이니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보도되는 바를 종합하면 전부 2만여명이라는 가경(可驚)할 다수로 산정되더라”는 기사가 있다. 이는 그동안 연구자들이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부르크하르트(Dr.Otto Bruchardt)는 동양미술 전공자로 1923년 9월 1일부터 8일까지 일본에 체류했는데 이 때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참살당하는 것을 보았고, 이 해 10월 9일자로 [Vossiche Zeitung]지에 'Japanische Blutherrschaft in Korea'(한인에 대한 일본의 대량학살)이라는 글을 썼다. 또 상해의 [독립신문](1923년 12월 26일)은 부르크하르트가 귀국한 후 그를 방문한 한국유학생 고일청(高一淸) 황진남(黃鎭南)에게 “이 참상은 나만 보고 들을 뿐아니라 일본이 발표한 영자보(英字報)에 공보(公報)로 발포한 것이 있고 '서서국'(瑞西國, 스위스) 친구 한 사람은 나보다 더 자세히 보았습니다,”라고 보도했다. 부르크하르트가 독일 신문에 기고한 것을 본 한인 유학생들은 <유덕(留德)고려학우회> 이름으로 10월 12일 ‘한인학살’과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부르크하르트의 목격과 관련된 부분은 그 동안 학계에서 놓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당시 간행되고 있던 국내 민족지로 출발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관동대진재 시기의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서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9월 1일부터 11일까지 학살사건과 관련해서는 게재금지 602건, 18건의 차압조치를 당했다. 당시 언론의 노력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할 수 없으나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간토대학살 때 희생된 조선인들의 숫자가 독립신문에 발표된 6,661명설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와 관련, 강덕상의 연구를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그는 조선인대학살 당시 간토(關東)지방에 약 2만명의 조선인이 살았는데, 간토대진재 때 일본 관헌이 조선인을 강제수용한 숫자는 1만1천여명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1만 1천명 이외의 9천여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그 차이 9천명이 모두 살해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로 보아 6천 6백이란 숫자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6천여명 설은 소홀하게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또 앞서 언급한 독일인 부르크하르트가 제기한 문제를 좀 더 조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제 3자적 위치에 있던 학자로서 근거없이 요코하마(橫濱)에서만 1만 5천여명이 희생되었다고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북한에서 1980년대 초반에 2만 3천여명 피살설(『조선전사』 연표, 1983, 478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수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독립신문]등에 나타난 부르크하르트의 기록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당시 관동지방에 거류했던 조선인들의 숫자가 적게는 6천여명에서 많게는 2~3만명이었다는 세론이 있었던 만큼, 여러 자료를 이용하여 좀 더 면밀하게 조사가 진행된다면 조선인 학살 상황도 더 정확한 수치에 이를 것으로 본다.

 

지난 28일 열린 간토학살100주기 추도문화제에서 한일 시민들은 일본 정부에 더 이상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간토학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28일 열린 간토학살100주기 추도문화제에서 한일 시민들은 일본 정부에 더 이상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간토학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나가는 말

‘간토대지진’과 ‘조선인학살’은 1923년 9월 1일부터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간토대지진’으로 불안감을 갖고 방황하던 일본인에게,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는 그들의 허탈감을 카타르시스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왔을 지도 모른다. 일본 정부는 군․경과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을 방조하고 있었다. 명백한 제노사이드였다. 일본 정부는 풍설을 조장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군․경․민이 합심하여 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었다. 의도적인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이같은 대학살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어가는 데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표명이 없다. 그러나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고무적이다. 그들은 2003년 8월 25일자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게 “국가는 관동대지진 직후에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학살사건에 관해 군대에 학살된 피해자와 유족, 허위사실의 전달 등 국가의 행위로 자경단에게 학살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해 그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지진을 틈타 ‘불온한 조선인’에 의한 방화, 폭탄투척, 우물에 독극물 투입 등의 불법행위와 폭동이 있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내무성이라는 경비당국의 견해로 전달하고 인식시켰다”면서 이런 허위사실과 유언비어의 전달에 대해 “국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권고를 외면하고 있다. 간토대지진의 발생과정이나 그 피해에 관한 통계는 일본의 중앙방재회의에서 2006년부터 공식보고서를 간행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남북한 당국이나 인민을 향해 사죄하는 것이 낯부끄러운 일이라면 굳이 한국 인민을 향해서가 아니라도 좋다.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역사 앞에라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죄받아야 한다.

1923년 9월 간토대진재 때에 조선인 학살 문제와 관련하여 부끄러운 것은 남북한 정부와 국회다. 남북한 정부가 ‘간토조선인대학살’에 대해 그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간토대학살이 자행된 때가 국권이 상실된 때였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가능할 듯하지만 이런 제노사이드는 천부적인 인권사상에 의해서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오히려 남북한 정부가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 1965년 6월 22일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제 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는 조문에 의거해서라도, 비록 그 조문의 ‘이미 무효’라는 시기를 양국이 달리 해석하고 있지만, 정부는 일본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만시지탄이 없지 않지만, 19대 국회에서 유기홍 의원 등 103인이 2014년 4월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대 국회는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2016년 5월 29일 19대 국회가 임기만료됨에 따라 이 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19대 국회에서는 또 2015년 3월, 이명수 의원 등 11인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되었으나 이 역시 2016년 5월 19대 국회의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도 이명수 의원 등 10인이 2016년 9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2020년 5월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국회가 이렇게 몇 번 시도했지만 법률로써 성사시키지 못한 이 현실,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 민낯이다.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올해도 여야 의원 100명의 이름으로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했으나 언제 의결될 것인지 부지하세월이다. 간토조선인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정부와 국회가 이 지경이라면 시민단체라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올해 9월이면 ‘간토조선인대학살’이 있은지 꼭 100년이다. 우선 한일 양국민은 그 실체를 알아야 한다. 

‘민족적인 차별로’ 다른 민족을 대량학살한, 문명인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야만적인 행위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앞서 자행된 이민족 대학살 제노사이드다. 우리는 먼저 그 만행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실체에 대한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용서와 화해는 책임을 통감한 데서 가능하다. 

이 문제로 한일 양국이 언제까지 적대시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이런 껄그러운 과거를 도외시한 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화해와 용서가 이뤄지면 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도 열릴 것이다. 이 또한 양국민의 몫이다. 우리는 이 수치스런 유산을 후세에 물려주어 그들의 짐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양국은 정부든 민간단체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직해져야 한다. 아직도 제 본향을 찾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혼령들에게 한일 공동의 이름으로 안식처를 마련해 주는 것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 글은 2021년 9월 6일(월) 오후 1시, 국회 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된 학술회의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학술토론회: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과 ‘대역사건’-의 기조발제를 보완한 것이다.

*이 글은 일일이 그 참고문헌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다음의 책과 논문들을 주로 참고했음을 밝힌다.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동북아역사재단, 2013)/ 가토 나오키(加藤直樹),『구월, 도쿄의 거리에서』-1923년 간토재지진 대량학살의 잔향-(갈무리, 2015)/ 강효숙, 「1923년 관동지역 조선인학살 관련 향후 연구에 대한 고찰-일변협(日辯協)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전북사학 제 47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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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부활’에 실종된 '정경유착' 질문을 찾습니다

  • 박재령 기자 
  •  
  •  입력 2023.08.30 00:05
  •  
  •  댓글 0



전경련, ‘한경협’ 이름 변경하며 삼성·SK 등 4대 그룹 재가입

회장 직무대행 맡았던 김병준 전 상임선대위원장 상임고문으로

“정경유착 그림자” 지적 나오지만 다수 언론 “싱크탱크 역할 기대”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이후 7년 만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재가입했다. 재가입 배후에 정권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전경련을 놓고 ‘정경유착’ 고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사실상 기업들이 7년 전 입장을 번복한 상황에서 다수 신문은 새로운 경제단체의 역할을 기대·환영한다는 논조의 기사들을 냈다. 진정으로 정경유착이 끊어졌는지, 진정한 경제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

▲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 모습. ⓒ연합뉴스

전경련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새 회장으로 선임하면서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변경했다. 동시에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해 4대 그룹의 15개 계열사가 한경협에 가입하게 됐다. 한경연 회원사였던 삼성증권을 제외하곤 모두 한경협 회원이 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4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 대부분 ‘전경련 부활’에 참여한 것이다.

전경련과 4대 그룹은 2016년 박근혜 정부 요구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해 ‘정경유착’ 비판을 받았다. 그해 12월, 4대 그룹이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전경련 해체 수순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교수가 지난 2월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에 취임했고, 이후 각종 해외 행사에 4대 그룹 총수가 동행했다. 김병준 전 직무대행은 현재 전경련 상임고문에 선임됐다.

▲ 지난 22일 전경련 회관 앞에서 4대 그룹 재가입을 규탄하고 있는 시민단체. 사진=참여연대

전경련 부활을 놓고 “윤석열 정부 작품”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겨레는 <꼼수로 간판만 바꾼 전경련, 정경유착 회귀 우려한다> 사설에서 “당선자 시절 윤 대통령은 경제단체장들과의 오찬을 전경련이 주선하게 했다. 전경련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여 ‘국민 지지가 높다’는 자료를 발표하는 등 윤 대통령 지원에 적극 나섰다”며 “지난 2월엔 윤석열 후보 캠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조직 부활을 이끈 김 직무대행은 상임고문으로 남는다고 한다. 누가 봐도 독립한 경제단체의 모습은 아니다.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전경련 회귀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정경유착 고리가 여전히 있다는 지적은 시민사회에서도 나온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 22일 전경련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경련 즉각 해산을 요구했다. 2016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뇌물죄, 제3자뇌물공여죄 등으로 고발했던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 등은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 화합, 경제살리기 명목으로 모두 특별사면을 받았다”며 “4대 재벌대기업의 전경련 재가입은 재벌공화국으로의 회귀를 공식화한 것이자 반성 없이 국정농단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 23일자 조선 경제B 1면.

▲ 23일자 중앙일보 10면.

사실상 기업들의 7년 전 약속이 무색해진 상황이지만 이를 지적하는 언론은 소수다. 오히려 한경협이 내건 ‘싱크탱크’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목소리가 빈번했다. 일간지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이 한경협 출범 소식을 알리며 ‘미국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정책 싱크탱크’ 등을 제목으로 달았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성명이 비중 있게 담긴 곳은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뿐이었다. 경향신문은 “한경연의 경우 박사급 인력이 25명에서 6명으로 줄어 기존 인력만 갖고 글로벌 싱크탱크가 되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9일 <전경련서 한경협으로… ‘기업가 정신’ 되살리는 주역 돼야> 사설에서 “이번 류 회장 체제 출범은 6년 넘게 난항을 겪어온 전경련의 정상 궤도 복귀 신호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위상 추락의 주원인인 정경유착의 폐습을 철저히 털어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대기업 이익만 대변하는 모습, 정치권력과 기업의 물밑 소통채널 역할에서 탈피해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는 ‘싱크탱크’로 새 출발을 하겠다는 약속도 차질 없이 이행돼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지난 9일 <‘뉴 전경련’ 류진 한경협 회장에게 기대한다> 사설에서 “이와 함께 한경협이 재계의 이익단체를 넘어 기업가 정신과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힘 있는 싱크탱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도 미국기업연구소(AEI)나 헤리티지재단처럼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싱크탱크가 나올 때가 됐다”고 했고 세계일보는 지난 18일 <삼성 복귀 수순 밟는 전경련, 새 출발해 경제위기 극복하길> 사설에서 “한경협은 초심을 되살려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주역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 23일자 한국경제 사설.

▲ 22일자 매일경제 사설.

경제신문도 같은 논조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구성의 사설을 잇따라 냈다. 한국경제는 지난 23일 <새 출발 한경협, 굳건한 자유시장경제 파수꾼 돼라> 사설을 냈고, 매일경제는 지난 22일 <새출발하는 한경협, 자유시장경제 지킬 주역으로 거듭나라> 사설을 냈다. 서울경제의 23일 사설 또한 <한경협, ‘민간 주도 역동적 경제’ 위한 싱크탱크단체로 거듭나라>이다.

결국, 전경련이 진정으로 ‘정경유착’을 끊어냈는지 질문은 흐려진 상황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18일 <정경유착이라는 낡은 프레임> 칼럼에서 “대기업집단을 대하는 정치적 프레임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단적인 예”라며 “무엇보다 재벌과 특혜, 정경유착으로 연결되는 과거의 프레임으로 기업을 엮기에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전경련의 환골탈태 못지않게 과거의 왜곡된 잣대로 기업을 재단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경제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이창곤 한겨레 기자는 지난 1일 칼럼에서 “우리가 짚어야 할 서구와는 다른 한국 사용자단체의 특성이 있다. 배타적 경영권주의와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며 “주요 단체에 대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점도 있다. 사용자단체가 처음 출현한 이래 거의 바뀌지 않은 데다 사용자단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특성이다. 이는 국내의 사용자단체가 권한과 책임 간의 균형을 취하고, 또 기업별 교섭보다는 초기업별 단체교섭이 활성화하도록 하는 데는 강한 사회적 압력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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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정치세력화’ 선언 5천 돌파.. 민주노총, 다음달 14일 대의원대회

  •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3.08.2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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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을 논의할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대대)가 다음 달 14일 경기 일산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린다.

민주노총은 대대에 앞서, 다음 달 5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대대에 성안할 방침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 지난 4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노총 76차 임시대의원대회 ⓒ김준 기자

내년 총선이 220여 일을 앞둔 가운데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열망이 현장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총선 방침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는 ‘현장노동자 정치선언’ 운동이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5천 명을 돌파했다.

정치선언엔 “민주노총이 ▲9월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분명한 방침(정치·총선방침)을 반드시 결정하고 ▲투쟁의 힘과 정치적 힘을 쥐고 반노동, 반민주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켜야 하며 ▲2024년 4월 총선에서 노동중심 대안정치 세력의 등장으로 기득권 양당정치를 끝내고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갈라진 진보정치를 단결시켜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와 결심이 담겨있다.

이 정치선언 운동은 대대가 열리기 전까지 계속되며, 선언 명단을 모아 대의원들에게 제출할 예정이다. 현재의 가파른 참여 속도로 봤을 때 선언운동 참가자가 얼마나 될지는 쉬이 짐작할 수 없다.

▲ ‘노동자 정치세력화’ 요구를 담은 조합원 인증샷 ⓒ마트노조 부산본부

또, 각 단위 노조에서도 자체 선언운동이 준비되는 등 정치·총선방침을 수립하자는 현장 움직임은 다양하게 벌어지는 중이다. 지역에서도 선언운동이 예고되어 있다.

‘절박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등의 문구가 담긴 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촬영해 SNS에 올리는 등 대대를 앞두고 정치세력화에 대한 현장 요구는 더욱 빗발칠 예정이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10년 넘게 미뤄온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될지 민주노총 대대에 관심이 쏠린다.

‘120만 민주노총 현장노동자 정치선언’ 보기

조혜정 기자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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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팽개친 정부, 내년 예산 역대 최소폭 증가…R&D 17% 삭감

657조 긴축 예산 편성에도 재정적자 더 커져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23.08.29. 16:52:59

 

내년도 예산안이 근래 가장 낮은 폭으로 증가한 채 편성됐다. "민생을 내팽개쳤다"는 질타가 곧바로 쏟아졌다.

 

29일 정부는 내년 예산 총지출을 전년 대비 2.8%(18조2000억 원) 증가한 656조9000억 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정부 예산 총지출 2005년 이후 최소 증가

 

이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20년 만에 최소 증가 폭이다. 올 6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재정전략회의에서 논의된 긴축안보다 증가율이 낮다.

 

당시 4% 중반대 증가율이 반영된 예산안이 오르자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내년도 예산을 다시 짜 올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던 윤석열 대통령의 회의 발언에 따라 결정된 조치다. 그 같은 요구안이 이번 '짠돌이 예산안'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내년 한국의 경상 성장률을 4.9%로 잡은 만큼, 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역대급 긴축 재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줄곧 강조해 온 재정 긴축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지는 셈이다. 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지출 규모를 크게 늘리기보다 강도 높은 재정 정상화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편성 이유를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문재인 정부가 연 7~9%대 총지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짠 예산안과 크게 대비된다.

 

▲내년도 예산안. ⓒ기획재정부
 

총수입 612.1조 원… 통합재정수지 적자 44.8조 원

 

내년 총수입은 전년 대비 2.2%(-13조6000억 원) 줄어든 612조1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국세수입을 올해 예산 대비 33조1000억 원 줄어든 367조4000억 원으로 잡고, 국세외수입에서 19조5000억 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정부는 편성했다.

 

올해의 경기 둔화와 자산시장 침체로 인해 국세 수입이 적게 걷히는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이에 따라 내년 예산은 총지출(656조9000억 원)이 총수입(612조1000억 원)을 웃도는 적자재정으로 편성됐다. 그만큼 재정수지 악화가 발생하게 됐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올해 58조2000억 원에서 33조8000억 원 증가한 92조 원으로 잡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불어나 정부 재정준칙 한도(3.0%)를 넘어서게 됐다. 정부가 재정 졸라매기를 했음에도 재정 악화가 일어났다. 이에 관한 비판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채무는 올해 1134조4000억 원에서 61조8000억 원 증가한 1196조2000억 원이 됐다. 이에 따른 내년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보다 0.6%포인트 오른 51.0%로 잡혔다. 즉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 국가채무 비율은 더 올라간 셈이다. 

 

한편 이를 반영한 내년도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올해 13조1000억 원 대비 31조7000억 원 증가한 44조8000억 원이 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사전브리핑에서 "그간 확대된 재정수지 적자와 누적된 국가채무로 재정 상황이 어려운 데다 올해와 내년 세수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경제 상황, 민생, 국민 안전을 위한 재정 소요를 감안하면서도 건전재정 기조를 놓지 않는 지점이 어디일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건전재정 집착 결과…민생 희생 선언" 

 

정부의 이번 예산안이 발표된 후 시민사회에서는 곧바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됐다. 

 

참여연대는 이날 배포한 논평에서 "거듭된 세수 부족 사태에도 감세로 점철된 세법 개정안을 내놓은 윤석열 정부는 예상대로 2024년 총지출을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증가율인 2.8% 증가한 656.9조 원으로 편성했다"며 "지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내년도 경상성장률 4.7%(실질성장률 2.4%, 소비자물가상승률 2.3%)를 감안하면 사실상 지출을 크게 줄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 경제가 가라앉는 마당에 "재정지출까지 이렇게 줄이는 것이 적정한지 우려된다"며 "이는 결국 상반기에만 40조 원 발생한 역대급 세수결손과 건전재정 집착이 결합된 결과"라고 촌평했다.

 

참여연대는 "경제위기 시 정부가 긴축에 나설수록 경제는 악화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이는 결국 재정만 고려해서 민생을 희생시키겠다는 것과 같다"며 "재정지출 감소로 민생이 악화되고 이는 다시 세수 부족으로 이어지고, 재정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정 정상화로 포장된 재정 역할 포기 선언과도 같은 내년도 예산안으로 인구변화의 구조적 위기, 경제위기, 기후위기 등 복합적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며 참여연대는 "적극적 재정운용 기조로의 전환과 이를 위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처럼 삭감된 예산안이 나옴에 따라 야당은 물론, 한 표가 아쉬운 처지인 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구개발 예산 큰 폭 감소내년 예산 어디 쓰이나 

 

정부 예산의 분야별 재정 편성 내역을 보면, 보건·복지·고용에 올해(226조 원) 대비 16조9000억 원(7.5%) 증가한 242조9000억 원이 편성됐다. 

 

일반·지방행정에는 올해 112조2000억 원 대비 9000억 원 감소(-0.8%)한 111조3000억 원이 잡혔다.

 

다음으로 덩치가 큰 교육 예산은 올해(96조3000억 원) 대비 6조6000억 원(-6.9%) 줄어든 89조7000억 원이 배정됐다. 

가장 큰 폭의 예산 감소가 일어난 부문은 연구개발(R&D) 분야다. 올해 31조1000억 원 대비 5조2000억 원이 줄어든 25조9000억 원이 됐다. 예산안 감소 폭이 16.6%에 달한다. 

 

이에 관해 정부는 "그간 R&D 투자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 도출에는 미흡했다"며 "도전과제 대신 나눠먹기식 소규모 R&D 사업이 난립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지난 2018년(19조7000억 원) 이후 올해(31조1000억 원)까지 연평균 R&D 예산 증가율은 10.9%였다.

 

정부는 이에 "나눠먹기·관행적 지원 사업 등 비효율적인 R&D는 구조조정하고, 도전적·성과창출형 R&D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고 이번 예산안을 설명했다. 관련해 바이오 분야 연구 프로젝트(KARPA-H)dp 495억 원이, 민간 발사장과 우주환경시험시설 및 특화지구별 거점센터 구축에 100억 원이, 반도체 첨단패키징과 차세대 이차전지 관련 지원에 600억 원이 각각 신규 책정됐다. 

 

하지만 이에 관한 과학계와 기술계 반발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 한국 기술 경쟁력의 바탕이 될 과학분야에 가장 큰 폭의 삭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격변이 이뤄져 기술 격차가 곧 국가 경쟁력이 될 시대에 과학 분야 투자가 줄어드는 데 따르는 과학계 우려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환경(2.5%)에는 올해보다 1000억 원 증가한 8조700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에는 올해 대비 1조3000억 원(4.9%) 증가한 27조300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사회간접자본(SOC)에는 올해 대비 1조1000억 원(4.6%) 증가한 26조1000억 원의 예산이 잡혔다. 

 

국방 예산은 올해(57조 원) 대비 2조6000억 원(4.5%) 증가한 59조6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내년도 분야별 예산. ⓒ기획재정부

 

내년에도 "건전재정 기조 견지"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견지하고 재정을 정상화해 예산의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고 이번 예산 편성 취지를 밝혔다. 아울러 "정부가 해야 할 일에는 제대로 과감하게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관련해 내년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생계급여액은 올해 대비 4인가구 기준 21만3000원 인상된 183만4000원으로 잡혔다. 이는 최근 5년간(17~22년) 총 인상액 19만6000원보다 많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주거급여 선정기준은 종전 중위소득 47%에서 48%로 상향해 2만 가구를 추가 지원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장애인 취업 지원을 위해 조기취업수당이 신규 도입되는 것도 변화다. 장애인 연금은 월 최대 40만3000원에서 41만4000원으로 인상됐다. 

 

특히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한 노인일자리 부문에는 관련 수당을 6년 만에 2~4만 원가량 인상하기로 했다. 종전 88만3000명 수준이던 노인일자리는 103만 명으로 증가한다. 14만7000명이 늘어나 역대 최대로 노인 일자리가 늘어나게 됐다. 

 

소상공인 대상 새출발기금은 올해 2800억 원에서 내년 7600억 원으로 확대된다. 소상공인의 경영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고효율 냉난방기(6만4000대)와 식품매장 문달기(1만5000대)에는 1100억 원의 예산이 신규 책정됐다.

 

소상공인 융자 총액은 올해 3조 원에서 내년 3조8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니트(NEET, 무직이면서 취업 활동을 하지 않는 이)족 청년을 대상으로는 발굴‧심리상담‧교육‧온보딩 종합지원 플랫폼(10개소)과 특화형 일경험 프로그램이 신규 지원된다. 대상자 규모는 6000명이다. 

 

저소득 대학생을 대상으로 국가장학금 지원한도와 대상을 확대하고 대중교통요금 할인을 지원하는 '케이-패스(K-pass)를 신규 도입하기로 했다. 적용 대상자는 177만 명 규모다. 

 

모든 기초생활수급가구 아동은 출생시부터 17세까지 디딤씨앗통장 가입을 지원받게 된다.

 

에너지 바우처 지원대상 확대 

 

급등하는 에너지 비용에 관한 대응책으로 올해 85만7000가구이던 에너지 바우처 지원대상이 내년에는 115만 가구로 증가한다. 지원단가는 올해 19만5000원에서 내년 36만7000원으로 늘어난다. 

 

중소기업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진단 지원이 확대되고 일반가구의 경우 탄소포인트 지원 대상이 250만에서 260만 가구로 증가한다. 

 

정부는 아울러 에너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주요 광물과 석유 등의 공공비축을 확대하고 국내유전과 해외자원 개발 투자와 융자를 강화하기로 했다. 

 

원전과 관련해서는 원전 생태계 조기복원을 위해 2000억 원 규모의 저리융자와 보증지원이 이뤄진다.

 

출산율 정책으로는 신생아 출산 가구(출산 2년 내, 23년 이후 출생아)에 총 2조1000억 원 규모의 주택 구입, 전세자금 융자 및 주택 우선공급 지원이 이뤄진다. 신생아 출산 가구의 디딤돌·버팀목 대출 소득요건은 연 소득 7000만 원 이하에서 1억3000만 원 이하로 줄어든다. 

 

자녀 돌봄을 위한 유급 육아휴직 기간은 6개월 연장하고 영아기 맞돌봄 특례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로, 급여는 상한 300만 원에서 450만 원으로 각각 확대된다. 

 

아빠의 돌봄 휴가 문화 정착을 위해 중소기업 노동자의 배우자 출산휴가 급여기간은 종전 5일에서 10일로 확대된다.

 

안정적인 보육지원이 가능하도록 정원에 미달하는 어린이집 영아반(0~2세)에는 미달 1명당 62만9000원~23만2000원가량의 보육료가 추가 지원된다. 

 

난임가구에는 남녀 필수 가임력 검진비, 난임시술, 난임휴가 등의 신규 지원이 이뤄진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른바 '노동시장 합리화'를 위해서는 우선 대기업과 하청기업 노동자 간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원·하청 공동복지기금이 종전 1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증가 책정되고 2, 3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50억 원 규모의 상생연대기금이 신설됐다. 

 

총 167개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주 2시간 이상 실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월 30만 원의 단축장려금이 신규 지원된다.

 

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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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간첩단 사건' 첫 재판, “검찰 공소사실 전면부인, 기획·조작극” 규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8/30 00:35
  • 수정일
    2023/08/30 00: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창원 국가보안법 피고인 4명, ‘9월14일 석방 유력’

  • 기자명 김래곤 통신원 
  •  
  •  입력 2023.08.29 15:43
  •  
  •  댓글 0
 
'창원간첩단 사건' 첫 재판 참가자(방청)들이 재판이 끝난 후 법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창원간첩단 사건' 첫 재판 참가자(방청)들이 재판이 끝난 후 법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창원간첩단 사건' 첫 재판이 28일 오후 2시10분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합의 30부, 강두례 부장판사)에서 열린 가운데, 변호인단은 이 사건이 철저히 국가보안법에 의한 정치적 공안탄압이라고 주장하였다.

변호인단은 “이번 사건은 정치적 목적 실현을 위해 기획·조작됐다”라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또한 국가보안법 피고인 4명도 모두진술을 통해 허위 날조라며 모든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특히 “검찰 공소장에는 국가보안법 상 다수 규정 위반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단체”라고 했는데 반국가단체도 아니고 이적단체도 아닌 형법과 국가보안법을 뒤섞어 놓은 애매모호한 첫 법률적용에 대해, 그만큼 증거능력이 입증이 안 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소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검찰의 공소장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계속해서 영장이 발부되어 집행과정에서 국정원 수사관들이 영장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비인간적인 강제행위와 어린이에 대한 난폭한 폭력적 행위 등 인권을 무참히 유린한데 대한 성토와 함께 그 사실들이 낱낱이 폭로되었다.

또한 검찰은 공소장에 판사에게 ‘유죄의 예단을 심어줄 수 있는 혐의와 무관한 사실을 적어선 안 된다’는 형사소송 규칙, 즉 공소장 일본주의를 어기고 증거능력을 다투는 지령문 등을 공소장에 무수히 기재했다면서 180여 페이지의 공소장은 사실상 8페이지밖에 안된다면서 황당하다고 비난하였다.

국제사법절차에서는 아직 기소단계에 있는 사건을 국제공조 수사신청서에 범죄가 확정된 것처럼 꾸며낸 문제점에 대해서도 강하게 지적하여 재판부에서는 검찰측에 다시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주문하였다.

장경욱 변호사가 끝난 후 법원 앞에서 오늘 재판성과와 다음 재판준비 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장경욱 변호사가 끝난 후 법원 앞에서 오늘 재판성과와 다음 재판준비 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끝으로 재판부는 검찰의 추가기소 의견에 대해 잠시 휴정을 하고 합의를 거쳐 의견수렴을 한 후 추가 구속영장 발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 사건 구속기간 만료는 9월14일이므로 이후부터는 불구속 재판이 확실시 된다.

이날 첫 재판은 4시간이 넘는 동안에 경남지역에서 많은 방청객들이 함께 하였으며, 재판정은 꽉 채워진 상태에서 입석까지 하면서 20~30분간 교대로 자리를 바꿔가며 방청하였다. 국가보안법 피고인들의 모두진술이 끝났을 때에는 방청석에서 박수도 터져 나왔으며 재판부에서 추가 구속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에는 안도의 한숨도 나왔다.

다음 재판은 9월 4일 오후 2시1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2호실이다.

장경욱 변호사와 신윤경 변호사가 재판이 끝난 후 법원 앞에서 이날 재판성과와 다음 재판준비 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장경욱 변호사와 신윤경 변호사가 재판이 끝난 후 법원 앞에서 이날 재판성과와 다음 재판준비 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 수원지방법원에서는 '민주노총 간첩사건' 검찰측 증인 국정원 직원 2명의 심문이 있었다.

국정원 직원들이 수집한 사진, 동영상 등에 관한 국제사법절차에 따른 증거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변호인단의 지적과 사실관계 심문이었다. 오후 2시부터는 스테가노그래피에 대한 증거능력 다툼으로 속개되었다.

현재 국정원 직원들은 자신들이 수집한 모든 증거들이 국제공조수사가 아닌 것으로 대답해 명백히 불법적 행위였음을 스스로 자인하였다.

민주노총 국가보안법 피고인들의 구속기간 만료는 11월 9일경이다.

하원오 전농의장, 이병하 경남진보연대 상임대표, 양옥희 전여농 회장이 재판 참가자들에게 감사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하원오 전농의장, 이병하 경남진보연대 상임대표, 양옥희 전여농 회장이 재판 참가자들에게 감사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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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뉴라이트 세력, 홍범도를 지우려는 진짜 이유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을 포함한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시스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옮기겠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 보수세력과 여권 내부에서조차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오자 국방부는 한발 후퇴해 공산주의 경력을 문제 삼으며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을 옮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육사뿐 아니라 국방부 앞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도 이전을 검토하고 있고,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 변경도 고려할 수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국가보훈부도 홍 장군이 지난 1962년에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을 받은 데 이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8월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1등급인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과정에 편법은 없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
이후 소련공산당 활동에 동조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달리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국방부


윤석열 정부와 군은 왜 홍 장군의 동상을 육사에서 옮기려 하는 것일까? 군은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28일 브리핑을 통해 “육군사관학교는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호국간성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6.25전쟁 발발 당시 육사 선배님들은 전선에 투입되어 북한 공산군에 맞서 싸웠고, 6.25전쟁 기간에 다시 개교하여 지금까지 북한과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 왔다”면서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 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더욱이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어 “홍범도 장군께서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신 업적은 부정할 수 없으며, 정부도 이를 인정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을 수여하였다. 국방부가 이를 폄훼하거나 부정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장군께서 1921년 소련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이신 행적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며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 이후 소련공산당 활동에 동조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달리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더욱이,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공산당의 사주를 받고 불법 남침하여 6.25전쟁을 자행한 엄연한 사실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대통령 특사단의 황기철 단장(국가보훈처장)과 특사단인 우원식 의원, 조진웅 배우가 14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열린 추모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8.15. ⓒ뉴시스, 국가보훈처

하지만, 홍 장군과 항일 무장세력은 만주와 연해주 등 중국과 러시아(소련) 지역을 거점으로 일본과 맞서 싸웠다. 많은 항일 무장세력들이 중국과 소련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았다. 당시 중국은 일본의 침공을 받아 오랜 기간 전쟁을 벌였고, 소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으로 참전해 일본·독일 등과 맞서 싸운 국가다. 이런 역사를 무시한 채 냉전 시기의 인식을 바탕으로 홍 장군의 이력을 문제삼는 건 불합리하다.

 

 

 

보수세력 내부에서도 이어지는 비판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 씌워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홍범도 장군은 해방 2년 전에 작고하셨으니 북한 공산당 정권 수립이나 6.25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윤석열 정권의 이념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같은 날 홍준표 대구시장도 페이스북에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 씌워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한다”며 “그것은 반(反)역사다. 그렇게 하면 매카시즘으로 오해받는다. 그만들 하라”고 쓴소리를 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도 28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홍범도 장군은 조국을 위해 타국만리를 떠돌며 십전구도(十顚九倒) 했던 독립운동 영웅”이라며 “6.25전쟁을 일으켰던 북한군도 아니고, 전쟁에 가담한 중공군도 아닌데 철 지난 이념논쟁으로 영웅을 두 번 죽이는 실례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는 등 여권 내부에도 비판이 줄을 이었다.

사실 군의 이런 움직임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직간접적으로 의지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저는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 2023년 광복절 경축사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


‘자유’를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포함한 자유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배격하자는 반공 구호로서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다. 이런 윤 대통령의 의도는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 잘 나타나 있다. 윤 대통령은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힘써온 독립운동은 1945년 바로 오늘, 광복의 결실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라며 “그 이후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통해 계속되어왔고 현재도 진행 중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인식은 한발 더 나아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주장한 것처럼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는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그리고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 민주화로 이어졌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윤 대통령의 주장은 독립운동의 역사가 곧 공산주의 세력을 배격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해방 이후 좌우대립과 분단,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를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3.08.15. ⓒ뉴시스

이런 규정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로 이어진다. 자유민주주의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규정하면서 일본은 과거 우리를 지배하고, 침략했던 국가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하는 동지가 될 수 있다. 올해 3.1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104년 전 3.1 만세운동은 기미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면서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있는 기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우리 선열들의 그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건국절’ 주장과 함께 등장한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일제로부터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북과의 이념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자유민주주의 국가


문제는 이런 주장이 단순히 과거 일본은 침략자였지만 지금은 동반자가 되었다는 주장을 넘어, 일제강점기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를 쌓아 건국을 준비한 시기로 미화한다. 이는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해온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이런 주장이 본격화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지나 이명박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2008년이다.

2008년 광복절 경축식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그해 광복절 행사 명칭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 경축식’으로 바꾸려 시도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로 이런 시도는 무산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또다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건국 68주년’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됐다. 새누리당은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건국절 발언을 하기 불과 3일 전에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 회장이 건국절 주장에 대해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라며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며,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비판했지만 무시당했다.

건국절 주장이 최초로 등장한 2008년은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가 출간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는 “개화기와 식민지 시기에 걸쳐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해 온 근대화 세력과 해방 이후 미국을 따라 들어온 자유민주주의 국제세력의 결합으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가 대한민국 건국과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사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충칭, 1945.11.3.) ⓒ뉴시스

 

그들은 임시정부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한 채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일제로부터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북과의 이념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는 홍범도 장군, 여운형 선생, 김원봉 선생 등 일제에 맞서 싸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폄훼하고, 일본군에 복무하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백선엽, 김창룡 등 친일 군인들을 ‘민족 반역자’에서 ‘건국 세력’으로 신분을 세탁한다.

 

 

 

한홍구 교수
“건국절부터 시작하게 되면
이전의 행적이 어땠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죠
전에는 친일파로 통했지만 이제 반공투사가 되는 겁니다
왜?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으니까요”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2009년 출간한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에서 뉴라이트 세력의 역사왜곡 시도를 이렇게 분석했다. “뉴라이트들이 정말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다시 쓰려고 하는 겁니다. 그들 입장에서 건국절을 만들려고 그럽니다. 그동안 광복절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왜 건국절이 나올까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역지사지해보면 됩니다. 여러분이 친일파 입장에서 보세요. 어떤 날을 기억하고 싶을까요? 1945년 8월 15일은 친일파한테 무슨 날입니까. 제삿날입니다. 사실 집단으로 제삿날이 될 뻔한 날이죠. 반면에 1948년 8월 15일은 친일파한테 어떤 날입니까? 서광이 비친 날입니다. 살 수 있다, 드디어 살았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날을 기억하고 싶으시겠습니까?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순국선열이 떠오르고, 순국선열이 떠오르면 그 반대편에 친일파가 떠오르는 구도 아닙니까? 건국절부터 시작하게 되면 이전의 행적이 어땠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죠. 전에는 친일파로 통했지만 이제 반공투사가 되는 겁니다. 왜?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으니까요. 이 사회주의자를 잡는 기술자, 전문가가 최고의 반공투사, 최고의 애국자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역사를 새로 쓰는 겁니다. 건국절을 자꾸 들이미는 이유가 바로 그런 맥락입니다.”

이런 역사관을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을 선언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던 2012년 건립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뉴라이트 세력에겐 일종의 ‘신전’(神殿)이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렸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런 시도는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역사왜곡 시도는 더욱 집요해졌다.

집요해진 역사왜곡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그 중심에 있다. 2019년 7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뉴라이트 학자들은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뉴라이트 학자들은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주장을 전면 부정한다.

 

 

 

2019년 ‘반일종족주의’ 출간
“일제시기, 쌀 수탈이 아니라 수출”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은 일제시기 농민의 궁핍을 엉뚱하게도 일제가 쌀을 수탈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형성된 일반인들의 통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수출한 것인데도 말이죠. 생산과 수출이 크게 늘고 가격도 불리해지지 않았다면 소득이 올라가는 것은 경제의 상식인데, 이를 뒤집어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셈입니다”라고 주장하며 일제에 의한 쌀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고 주장했다.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이승만TV 갈무리

일본군 ‘위안부’ 배상,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독도 영유권 문제 등 한일간의 첨예한 현안들을 ‘반일종족주의’에 기반한 주장으로 치부하며 일제강점기에 대한 비판이 우리나라를 망국으로 이끌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어느 나라가 전 국민을 몇 사람의 무녀가 벌이는 진혼굿으로 동원하는 정신문화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요. 어느 나라가 그런 수준의 외교로 일관한다면 격동하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반일 종족주의는 이 나라를 다시 한번 망국의 길로 이끌어 갈지 모릅니다. 109년 전 나라를 한 번 망쳐본 민족입니다. 그 민족이 아직도 그 나라가 망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한 번 더 망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절반의 국민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망국 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그 근원을 이루는 반일 종족주의의 횡포에 대해 이 나라의 정치와 지성이 너무나 무기력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인
일본과는 손잡을 수 있지만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대상인
국내의 진보세력과도 손잡을 수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


‘반일종족주의’ 집필을 주도한 이영훈 교수는 2016년 9월 출범한 ‘이승만 학당’의 교장이다. 이승만 학당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자유의 소중함과 대한민국 건국 정신을 가르치겠다는 목적으로 설립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시민 대상 강좌를 열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극우세력과 뉴라이트 세력을 중심으로 ‘광화문 광장’을 ‘이승만 광장’으로 만들자는 식으로 이승만 미화 작업이 그동안 이어졌고, 윤석열 정부 들어 그 시도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황교안) 주관으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신 제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보훈처장은 “진영을 떠나 이제는 후손들이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을 재조명할 때”라고 밝혔다. 하루 뒤인 27일엔 이승민 기념관 건립을 위한 예산을 국가보훈처가 내년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추앙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나라가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진 국가라는 역사적 규정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다. 이런 역사적 규정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인 일본과는 손잡을 수 있지만,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대상인 국내의 진보세력과는 손잡을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이승만 찬양'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6쪽

윤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국민통합위 출범 1주년을 맞아 “우리가 더 자유롭고, 자유로운 가운데 더 풍요롭고 더 높은 문화와 문명 수준을 누리는 것이, 그리고 함께 이 지구에서 사는 모든 인류와 평화롭고 번영되는 그런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결국 우리의 방향인 것이지, 시대착오적인 그런 투쟁과 혁명과 그런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우리가 국민통합을 추진해 나가는 모든 분들이 함께 여기에 공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 왜곡 시도는
미국과 일본의 바람인
한미일 삼각 동맹에 힘을 실어준다


아울러 이런 역사 왜곡 시도는 미국과 일본의 바람인 한미일 삼각 동맹에 힘을 실어준다. 한미일 삼각 동맹을 통해 미국은 안보, 외교, 경제 등에서 중국을 견제할 힘을 얻길 원했고, 일본은 중국과 북한을 상대로 한국을 대륙 방어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전쟁이 가능한 이른바 ‘정상국가’로 가는 길을 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런 한미일 동맹으로 가는 길에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는 큰 걸림돌로 여겨졌고, 미국은 한국을 향해 일본과의 화해를 압박해왔다.

이런 압박은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졸속 처리와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졸속 해결시도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묵인한 것도 바로 이런 압박 때문이다. 보수세력 내부의 만만치 않은 반대에도 홍범도 장군 동상을 이전하려는 등의 무리한 시도가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와 압박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역사왜곡 시도는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집요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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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변태적 ‘하이브리드 정치’

  • 이정훈 통일시대연구원
  •  
  •  승인 2023.08.28 13:02

1. 하이브리드 전쟁

2. 하이브리드 정치(통치)

3. 조국, 윤미향, 개딸, 민주노총

4. 이재명, 민주당, 진보정당

5. 하이브리드 전략, 총선과 전쟁위기

ⓒ대통령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21일 을지 국무회의 발언에서 “오늘날의 전쟁은 가짜뉴스를 활용한 여론전과 심리전, 테러를 동반한 비정규전,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이버전, 핵 위협을 병행한 정규전 등 모든 전쟁을 혼합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을지연습에서 북한의 핵 위협, 반국가세력 준동, 사이버 공격 등에 대비해 실전과 같은 훈련이 진행된다”고 했다.

대통령의 위 발언 내용이 바로 ‘하이브리드 전쟁’이라는 개념이다. 대통령이 그 의미를 알고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하이브리드 전쟁’과 ‘하이브리드 정치’의 도구이며 당사자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반민주적, 변태적 ‘하이브리드 정치’ 양상에 대해 살펴보자.

1. 하이브리드 전쟁

‘하이브리드’(hybrid)는 ‘서로 이질적 성질을 가진 요소들이 둘 이상 뒤섞인 것’을 말한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사자도 호랑이도 아닌 ‘라이거’ 같은 ‘잡종’을 의미하며, 긍정적으로 보면 혁신적 혼합종이다. 흔한 사례는 우리가 잘 아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이다. 이 경우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 + 전기모터처럼 두 종류 이상의 구동장치를 함께 탑재한 차를 의미한다. ‘하이브리드 행사’란 온라인 행사와 오프라인 행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행사를 말한다.

그러면 ‘하이브리드 전쟁’이란 무엇일까?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전쟁 양상은 종래 우리가 정규군 중심으로 생각해왔던 1.2차 세계대전, 이라크전쟁 등 재래식 전쟁과 많이 달라졌다. 즉 대중심리전, 사이버전, 테러, 군중시위, 비정규전, 경제봉쇄, 세균전(=바이러스전) 등이 혼합되어 벌어진다. 이 개념은 이렇게 복합, 혼종 되어 전개되는 현대 전쟁의 양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이 현대전 현상을 미국의 프랭크 호프만(Frank Hoffman), 러시아 연방군 총참모장인 발레리 게라시모프 등 여러 국제군사 전략가, 학자들이 다양한 용어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하나로 정립된 정의는 없다.

쉽게 말하면 이른바 ‘아랍의 봄’ 사태나 유럽에서 진행된 이른바 ‘색깔혁명’과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어느 한 국가의 주민, 대중을 대상으로 은밀하고 인위적인 자극으로 진행되던 군중시위, 사상 심리전이 정치혼돈으로 발전하며 어느 날 외세가 개입된 군사전투와 국가 간 전쟁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양상의 전쟁을 말한다. 이는 정치와 전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상호 연계되는 전쟁이다. 내전이 쉽게 국제전으로 비화되기도 하고 전쟁과 평화의 분명한 경계도 사라지는 전쟁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기 상대방이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한다.

2. 하이브리드 정치(통치)

‘하이브리드 정치’란 또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변태적, 기형적 반동정치의 일종을 설명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변형되고 진화된 독재정치다. 정당, 의회중심의 정치방식과 비정치적 집단(특히 검찰, 군대)의 정치가 복합적으로 혼종 되면서 정치 전면에 나서는 기형적 통치방식을 말한다. 의회와 정당정치는 있으나 제 역할을 못한다. 검찰, 공안기관, 극우언론, 민간 극우 정치부대 등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득권 집단의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시대의 통치를 말한다. 정치가 월권적 공권력 행사, 편파적 검찰권 행사, 여론조작은 물론, 대중심리전, 극우 대중시위 등에 의존한다.

과거 군사독재가 군경의 탄압과 언론지배를 통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힘으로 통제했다면, 최근의 윤석열 검찰독재의 통치는 무력보다 법과 검찰 권한을 지능적으로 악용하여 이른바 ‘법치’를 표방하는 통치를 한다. 한국 극우보수도 높아진 대중의 지식수준, 정치의식과 정보화시대의 사회 환경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이다.

정권이 주요언론을 통제장악 하면서도 동시에 대중의 눈과 귀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가공된 지식과 정보를 주어 대중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편이 되도록 만드는 방식을 쓰고 있다. 태극기부대와 극우 유튜버가 구조적으로 양산되는 이유이다.

극우 매체의 사상 심리전 핵심은 ‘교란’이다. 사실과 진실의 폭로에 기초한 선전과는 거리가 멀다. 쉽게 말해 초점의 교란과 분열 공작이다. 명분으로 이길 수 없다면 결국 분열 교란시키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제공하는 정보가 진실이건 진실이 아니건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 결과가 중요할 뿐이다.

이미 한국 정치의 주된 장이 의회나 정책경쟁이 아니라, 법원과 정치인 사건이 되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극보수 중심으로 변했다. 사법부에 제2의 양승태 집단이 등장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기형적 ‘하이브리드 통치’가 국민들이 피로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무력화시키고 있다.

3. 조국, 윤미향, 개딸, 민주노총

한국 극우 보수가 집권 전에 벌인 하이브리드 전략의 대표적 성공작은 조국, 윤미향 사건이다.

이 사건을 키우며 윤석열이 집권했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이 사건들이 그들의 구체적 정책이나 정치이념 자체에 대한 공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매국적 극우보수도 윤미향이 평생을 바쳐 쌓아온 지난한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와 일본 식민지배 사과와 배상 투쟁의 대중성과 정당성에 대해서 열패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 한국의 매국적 극우보수가 윤미향 의원과 구체적 정책으로 싸워서는 대중적으로 어떤 명분과 논리로도 승산이 없다.

이들이 윤미향과 구체적 정책 싸움을 접고 새로 시도한 ‘윤미향 죽이기’는 이른바 시민단체(정의기억연대) 모금과 자금운영 비리이다. 이른바 비대칭 접근법이다. 논쟁과 정책을 접고 윤미향에 대한 근거 없는 보수언론의 사실왜곡 폭로로 시작해 검찰이 기소하는 일련의 과정을 한 편의 영화처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조선, 동아, 중앙에 이번에는 한겨레까지 동원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며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중에게 미래는 없다. 검찰의 부풀려지고 근거 없는 기소내용이 1심 재판에서 거의 모두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물론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어떻게든 2심에서 중형유죄로 전복을 꾀할 것이다.

윤미향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물론 한겨레, 경향, 진보단체, 민주당, 진보정당조차 윤미향을 여론재판에 따라 같이 비난하는 어이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왜 윤미향의 말을 믿지 않고 검찰과 조중동의 말을 그리 믿었을까?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자신들이 윤미향의 처지가 되었다. 검찰의 칼은 이제 시민단체와 민주노총으로 향했다. 시민단체, 민주노총소속 건설노조가 같은 방식으로 당하고 있다.

조국사건의 본질은 조국일가의 비리와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그가 일말의 비리도 없으며 그 정도는 누구나 했으니 정당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건의 본질 역시 비대칭 접근법이다. 극우보수가 사법개혁 논쟁과 정책경쟁으로 조국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대중의 공분을 사는 자녀 입시비리 혐의로 조국을 잡는 것이 쉽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조국장관이 과연 사법개혁 각오와 의지가 있기는 했나 싶을 정도로 그의 사법개혁 시도는 어설픈 것이었다.

한국에서 군사독재로 회귀는 더는 가능치 않은 환경이다. 이제 극우보수의 주요 통치수단은 ‘무단통치’가 아니라 ‘문화통치’(일제의 문화통치본질과 유사)로 변했다. 사법과 언론이라는 두 기둥이 분단체제와 친미친일 보수체제를 유지하는 지지대인 시대이다. 이것을 허무는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을 극우보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것은 사실상 혁명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조국은 혁명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간단한 싸움조차 준비 되지 않았다.

민주당과 조국도 기득권 보수세력이라고 욕하며 비난하는 사람도 ‘일리’가 있으며, 검찰의 편파적 기소로 멸문지화를 당하는 조국을 수호하자는 사람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검찰이 바라는 것은 바로 두 가지 ‘일리’와 주장이 싸우며 대중이 분열되는 것이다. 검찰의 의도대로 검찰개혁을 바라는 촛불투쟁과 국민들의 하나의 전선은 조국사태로 둘로 갈라졌다. 진보와 개혁 모두 핵분열 되었다. 정치검찰과 언론이 전면에 나서며 기존 어느 보수정치도 못한 전과를 올리며 성공했다. 변태적 하이브리드 정치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은 없다.” 그것이 검찰의 신조이다. 그것이 채용비리, 미투문제, 재산문제, 주식문제, 가족불화 등 상관이 없다. 설사 먼지가 안 나와도 상관없다.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노동자 양회동 열사는 분노했다. 정당한 노동조합운동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아간 것에 대한 모멸감이 그들 죽음으로 저항하게 했다. 이러한 변태적 하이브리드 정치의 본질을 먼저 간파한 것은 의외로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들’이다.

4. 이재명, 민주당, 진보정당

민주당과 문재인정부의 오만과 무능, 개혁배신, 촛불항쟁 배신에 대해서 국민들의 분노와 허탈함은 지금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 바로 문재인이라 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대선이 허탈하게 끝나자, 윤석열의 인간적, 정치적 준비 부족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시작한 것은 ‘이재명 죽이기’이다. 대통령과 여당 국민의힘은 뒷짐을 쥐고 한동훈 사단이 정치를 주무르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상대와 링에 올라 싸우는 것보다, 아예 상대를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비열한 수를 쓰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대응이 고작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와 ‘여야 영수회담’이니 그들이 보기에도 민주당이 만만하고 한심할 것이다.

조국, 윤미향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표 사건의 본질은 대장동, 백현동, 이화영 대북송금비리가 아니다. 비대칭 접근법이다. 역시 털어서 먼지가 나오면 좋고 설사 안 나와도 좋은 ‘패’다. 이 사건을 지난 흥행작 ‘조국 사건’처럼 재현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한 총선전략이다.

보수정치권의 다양한 관행적 편법, 불법거래는 여야가 예외 없으며 국민의힘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렇다고 검찰이 이런 관행을 발본색원하는 정치개혁을 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검찰도 이런 관행에 익숙하며,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야 보수정치권의 다양한 관행적 편법과 불법거래를 먹잇감을 사냥하듯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분열은 가관이다. 개혁과 단합은 고사하고 개인적 계파적 이해관계와 내년 총선 공천을 위해 검찰의 공격도 서슴없이 활용한다. 결국 현재 제1야당 민주당은 분열되었고 윤석열 정부의 망국적 맹동외교와 거듭된 실정으로 초래되는 국난과 민생위기에도 제 역할을 못하는 거대 식물야당이 되었다. 이낙연 비리는 왜 안 나올까? 그가 이재명보다 과연 깨끗해서 일까?

한국진보가 한동훈과 민주당의 진흙탕 싸움을 보고 보수정치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면 그것이 진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이 원칙적인 태도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과연 민주당이 그나마 유지하던 차기 대선 유력후보와 미온적이나 그나마 표방하던 개혁 가능성도 완전히 상실하게 되면 과연 그것이 한국민주주의와 한국진보에게 유리한 도약의 기회가 될까?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만약 한국진보가 정치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면 그것은 도약의 기회로 된다.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진보정당이 구심이 없이 사분오열되어 지리멸렬한 상태라면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순차적으로 각개 격파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진보의 준비란 무엇일까? 진보의 대단결과 진보의 국민적 지도자, 진보의 사상, 정책, 정치교양수준을 질적으로 높이는 것을 말한다. 대중은 결코 한순간에 조직화되고 정치적으로 각성되지 않는다.

5. 하이브리드 전략, 총선과 전쟁위기

한국정치를 면밀히 연구한 사람이라면 미국이 외부세력이 아니라 한국 정치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것을 잘 안다. 한국에서 반동적 하이브리드 정치의 기획주도자는 검찰집단이 아니다. 윤석열정권과 검찰 역시 도구이며 하위 수단일 뿐이다. 하이브리드 통치를 남북을 대상으로 한 한반도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바꿀 수 있는 전략적 단위도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미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전쟁권한과 한국군에 대한 전시 군작전지휘권조차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한국 정책 최우선 순위는 한국 경제, 민주주의, 인권 등이 아니다. 북한(조선) 정권을 붕괴시키고 끝나지 않은 북미 70년 여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한국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 여전히 한국의 반북 반통일 정권창출이다. 미국은 5년 임기의 한국 대통령보다 장기적 전략적 관점에서 한국문제를 다룬다. 미국이 청와대, 대통령실 도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NED(민주주의 진흥재단= 세칭 민간 CIA)뿐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종교단체를 정치화하며 반북 민간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며 공을 들이는 이유이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권 집권유지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대체로 예상하고 있다. 밖으로는 친미친일 맹동외교와 안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찰주도의 변태적 하이브리드 통치가 계속되는가 저지시키는가를 가늠할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위기속에 검찰의 칼춤은 계속될 것이며 마약과의 전쟁, 묻지마 테러를 명분으로 한 공안기능 강화와 공안통치도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삶은 갈수록 불안하고 팍팍한데 하루하루를 견디는 백성들이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극우의 공안통치와 결합된 변태적 하이브리드 통치는 자신감의 산물이 아니다. 미국의 신냉전 전략과 한국 민중의 정치의식 성장에 따른 위기의 산물이다. 한국 진보개혁 세력이 저열한 반동정치에 분열되어, 각자도생 또는 각기 아름다운 정책선거로만 대응해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혁명적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새로운 정치적 구심과 진보개혁 총단결, 조직된 국민항쟁 없이는 국민이 피로 가꾸어온 민주주의의 계승과 승리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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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이동관... 법원이 '이런 방송 장악 안 된다'고 판결해야"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MBC 사장 역임한 최승호 <뉴스타파> PD

23.08.28 20:01최종 업데이트 23.08.28 20:01

▲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방송 장악의 원흉으로 꼽히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장을 수여했다. 현 정부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를 임명한 것은 16번째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에 따라 방송계는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이미 남영진 KBS 이사장과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을 해임하고 본격적으로 공영방송을 손 볼 태세다. 현 상황에 대해 들어보고자 MBC 사장을 역임한 최승호 <뉴스타파> PD를 지난 2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최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 청문 보고서가 채택 안 된 채로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임명되었는데 그 과정을 어떻게 보셨어요?"처음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임명할 거로 생각했어요. 예상대로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임명했네요. 기본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있더라도 총선 전에 공영방송을 확실히 장악하고 총선에서 이기겠다는 확고한 전략과 결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 방통위원장은 방송을 잘 알아야 하는데 신문기자 출신이 가는 게 맞을까요?
"방송의 기술적인 측면도 물론 전문 영역으로서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민주주의 사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방송의 역할이 무엇이냐 하는 데 대해서 깊은 성찰이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동관씨 같은 경우 신문 출신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보다도 이른바 자기가 이야기하는 우익들 그다음에 현재 정권의 이익에 방송을 다 종속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단히 부적절한 것 같아요. 물론 방송 그 자체에 대해서도, 방송에 대해서 그 사람이 뭘 알겠어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리한 인사죠."

- 이동관 위원장이 파시즘적이란 평가도 있는데요.
"그 사람이 공산당 기관지 같은 방송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잖아요. 아마 MBC나 KBS 같은 방송을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런 시각 자체가 굉장히 파시즘적인 사고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언론을 공산당 기관지라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노동신문>이 북한 공산당에 대해 비판하는 건 불가능한 거잖아요. 공산당 기관지는 정권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선전 홍보하는 거죠. 윤석열 정권을 MBC나 KBS가 비판하기 때문에 공산당 기관지 같은 언론이란 얘기는 정반대로 이야기하는 거죠."

"스핀 닥터였다고 자랑하는 사람... 비극적인 현실"
 

▲ 최승호 뉴스타파 PD ⓒ 이영광


- 인사청문회에 결정적 한 방이 없었다는 평가도 있어요.
"인사청문회 이전에 많은 문건이 나왔어요. 문재인 정부 시절에 국정원에서 정보 공개를 해서 나온 많은 문서가 있잖아요. 사실 이전에는 어떤 인사청문회에서 그렇게 많은 과거 정부가 만든 문서들이 공개된 경우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생각한다면 이미 굉장히 많은 팩트들이 나왔죠.

이동관씨 아들의 고1 담임 선생님이 국회까지 오셔서 학폭에 대해 기자회견도 했잖아요. 거기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왔고 충분히 중요한 많은 팩트가 나왔음에도 그러한 팩트들을 과연 언론이 전체적으로 제대로 보도했는가? 굉장히 부족했다고 봅니다.

KBS MBC YTN 그다음에 진보 언론을 제외하고 나머지 언론은 거의 이웃집 불구경하는 수준으로 이 사안을 다뤄왔어요. 그래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됐고요.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뭐가 나오더라도 임명한다는 거니까 그런 측면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는 어려웠다고 생각하죠."

- 청문회 중 어떤 게 가장 문제라고 봤나요?
"청문회 내용 중에 생각나는 게 '나는 스핀닥터고, 그래서 보도를 정권에 유리하게 하도록 노력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과거에 내가 YTN 등 여러 언론사에 영향을 줘서 보도가 나온 걸 없애거나 표현 바꾼 것은 지극히 당연한 거다. 문제가 없는 거다'라는 식으로 얘기했잖아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안 되는 거죠. 우리나라 방송법의 근간을 이루는 굉장히 중요한 원칙인 중립성이나 공정성 같은 것들은 도외시하고 스스로 정권의 어떤 스핀 닥터였다고 자랑하는 정도의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방송의 독립성을 보호하고 지켜야 되는 자리에 앉는다는 건 비극적인 현실이라고 생각했죠."

- 스핀 닥터가 뭔가요?
"스핀 닥터라는 건 '권력에 유리하게 기사를 쓰도록 사건의 내용을 뒤틀어서 설명하는 정치권력의 대변인'이라는 뜻이거든요. '스핀'이라는 게 뭔가를 뒤튼다는 뜻이잖아요. 의미를 뒤틀어 권력에 유리하게 왜곡하는 기술자를 말하는 부정적인 용어예요. 그런데 이동관씨는 그것을 긍정적인 용어로 이해하고 쓰더라고요. 저걸 무식하다고 해야 되나요? 원래 굉장히 부정적인 뉘앙스의 용어인데 저걸 저렇게 긍정적인 말로 생각하고 쓴단 생각에 놀랐어요."

- 21일이 고 이용마 기자 4주기였는데 최근 언론계 상황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착잡했을 것 같아요.
"이용마 기자가 가장 염원했던 것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거죠.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에 이용마 기자를 두 번이나 만나 약속했는데도 결국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안 했죠. 문재인 정부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면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생각 하면 이용마 기자의 4주기를 맞아서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착잡하죠."

- 사장 선임 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임명하는 제도인 특별 다수제로라도 바꾸는 게 나았을까요?
"그 문제는 다른 문제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에 원래 합의가 됐던 특별다수제를 당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면 현재 공영방송에 대한 엄청난 혼란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법원의 방통위 해임 처분 집행정지 기대"
 

▲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2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 현 정부나 이동관 위원장도 가짜뉴스 문제를 제기했는데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차기환씨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임명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요.
"근데 차기환씨나 이동관씨,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거 보면 컬러가 비슷해요. 그러니까 서로 굉장히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관씨가 공산당 기관지라고 이야기하면서 '보수 이념의 전사를 육성해야 된다'고 자기 책에 썼잖아요.

그리고 차기환씨가 '5·18 때 북한군이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건 비슷한 얘기고 또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시민사회나 야권이 공산 전체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게 같죠. 결국 이 정부가 극우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진보도 건강해야 되는 만큼 보수도 건강한 보수가 돼야 되는데 지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본류가 보여주는 모습은 극우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 가짜뉴스 문제 강조하는 건 어떻게 보세요?
"자기네를 비판하면 가짜뉴스라는 식인데 그건 가짜 뉴스란 용어를 굉장히 오염시키는 말이죠. 공영방송에서 정부나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는 걸 가짜 뉴스라 얘기하면 공영방송에 대한 엄청난 공격이 되는 거고 그걸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기관이라는 정도까지 생각한다면 도대체 공영방송을 앞으로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가죠. 결국 자기네 정책 지지하는 뉴스를 생산하는 방송사로 만들겠다는 결론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부분들은 앞으로 굉장히 문제를 많이 일으킬 겁니다."

- 지난 14일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에 이어 21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도 해임했어요. 두 이사장은 소송을 제기했는데 효과가 있을까요?
"나는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법원이 문재인 정부 때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또 고대영 KBS 사장이 낸 해임 취소 소송에서 이 두 사람 손을 들어줬거든요. 고영주씨 같은 경우는 방문진 이사장으로 김재철, 김장겸 사장을 비호하고 MBC를 거의 계엄 상태같이 언론 자유의 불모지로 만든 인물입니다. 고대영씨는 KBS 저널리즘이 무너진 데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었던 인물이고요.

이런 사람들에 대한 해임조차도 무효라고 판단했다면 오늘날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남영진 KBS 이사장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을 거예요. 공영방송을 수호하고 독립성을 지켜야 되는 직무의 중차대함이 엄청난데 이런 사람들을 그 정도 이유를 가지고 해임한다? 그런 거를 만약에 법원에서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공영방송에 대한 정권의 영구적인 쟁탈전을 법원이 승인해 주는 그런 결과가 될 겁니다. 저는 두 이사장이 본안 소송에서 이길 거라는 것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아요. 

다만 당장 방통위의 해임 처분을 집행정지하고 두 분이 이사장으로서의 직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하는 '해임 집행정지'를 법원이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중요한 거죠. 몇 년 뒤 방송장악이 끝난 뒤에 잘못된 해임이라고 판결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이런 식의 방송 장악은 안 된다'고 법원이 판결해줘야 되는데 과연 그럴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법무부가 직무집행정지와 정직 처분을 내렸을 때 윤 총장이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했고 법원이 받아들였잖아요? 그래서 윤 총장이 검찰총장으로서 직무를 계속하다가 사퇴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죠. 그러나 막상 본안 소송에서는 '징계처분이 정당했다'는 판결이 나왔어요.

이처럼 본안 소송에서 징계가 정당하다고 나온 사례에서도 집행정지를 받아들였는데, 본안 소송에서 두 이사장이 이길 것이 관측되는 이번 경우는 충분히 법원이 집행정지를 선언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퇴행하고 발전 어려워지는 상황 걱정"
 

▲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임명에 반대하며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공작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 앞으로 윤석열 정부가 방송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예상해야 할 것 같아요. 공영방송 경영진을 교체하고 민영화도 추진할 것 같고 내부 갈등도 있을 거로 보이는데요.
"만약 법원이 공영방송 이사장들과 이사의 해임에 대해 당장 집행정지를 선언하지 않고 윤석열 정권의 해임 조처를 추인하면 아마 그런 방향으로 갈 겁니다. 당장 윤석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장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조직을 장악하고 그다음에 보도의 방향을 윤석열 정권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맞추겠죠.

그러면 내부에서 상당히 저항이 일어날 거고, 또 민영화 문제도 아마 추진할 것 같아요. 물론 민영화는 이게 법을 바꿔야 되는 문제라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지금 하는 태세로 봐서는 거기까지 나가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방송사 내부에서는 틀림없이 저항이 있을 겁니다."

-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뭔가요?
"이런 과정을 통해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도가 자꾸 떨어지는 거죠. 이명박 정부 때 엄청나게 저항도 했지만 결국은 이명박 정권 낙하산들이 KBS, MBC, YTN을 장악했잖아요. 그게 박근혜 시대까지 이어진 거고, 공영방송들이 비판을 전혀 못 하다 보니까 언론 지형이 극단적으로 편향이 돼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졌거든요. 견제가 있었으면 탄핵이 되는 사태까지는 안 갔을지도 몰라요.

제가 생각할 때는 그런 일들이 또 벌어질 수도 있죠. 당장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될 거란 얘기가 아니라 공영방송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과연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제대로 굴러가겠는가죠. 상당히 한국 사회가 퇴행하고 발전이 더 이상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가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입니다."

- 정권과 노조가 격돌할 경우 이명박 정권 때만큼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줄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 언론인들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언론인들은 기본적으로는 자기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어려운 얘기고 지극히 좀 한가한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가면 누가 시민들이 도와준다고 더 싸울 거고 안 도와준다고 안 싸울 거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건 결국 언론인들의 자기 자신의 자존 문제예요.

언론인으로서 자기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비판할 것이 있으면 비판하고 하는 것이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본질이잖아요. 그런 걸 안 하면 언론인으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는 거죠. 자기 역할에 충실하려고 하다가 낙하산 사장이나 정권에 의해 더 이상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탄압받는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외압에 순응하면서 언론인으로서 해야 되는 자기의 본질을 저버린 채로 언론인인 척하는 것보다 더 이상 언론인으로 역할을 못 하게 되는 게 더 언론인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지금 내가 언론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 중복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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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간토학살100주기 추도문화제 '100년의 통곡...'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08.29 01:12
  •  
  •  댓글 0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를 맞아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간토100주기추진위)가 주최한 '간토학살100주기 추도문화제'가 28일 저녁 서울 대방동 스페이스 살림 다목적홀에서 진행됐다.

100년이 되도록 학살의 진상을 분명히 드러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잊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워서, 전적으로 조선인 학살의 책임을 져야 할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를 받아내기는 커녕 산산히 부서진 그 이름들을 찾으려 하지도 않고 단 한번도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은 이 나라가 정녕 해방된 우리의 나라인지 자책하느라 추도문화제의 분위기는 사뭇 무거웠다.

그 세월이 무려 한 세기, 100년이되었지만 결코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는 지금의 일본은 군국주의 부활의 야욕을 꺾지 않고 한미일 군사협력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라는 기가 막힌 역사의 보복을 자행하고 있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식민주의를 넘어선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울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추도문화제는 양심적인 한일 시민사회의 굳건한 연대를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100년의 통곡.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라는 주제로 진행된 추도문화제는 목회자들의 합창 '마른잎 다시 살아나'로 시작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00년의 통곡.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라는 주제로 진행된 추도문화제는 목회자들의 합창 '마른잎 다시 살아나'로 시작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바람의 춤꾼' 이삼헌이 진혼무를 펼쳐 간토학살의 희생자들을 어루만져 달랬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바람의 춤꾼' 이삼헌이 진혼무를 펼쳐 간토학살의 희생자들을 어루만져 달랬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쓰다'는 '칼', '나의 그림자를 안아주세요'라는 제목의 노래를 공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쓰다'는 '칼', '나의 그림자를 안아주세요'라는 제목의 노래를 공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손병휘는 식민지 강점시기 아픔을 노래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선보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손병휘는 식민지 강점시기 아픔을 노래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선보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이지상과 간토100주기추진위 김종수 목사가 지난 100년간 묻히고, 또 잊혀진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의 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이지상과 간토100주기추진위 김종수 목사가 지난 100년간 묻히고, 또 잊혀진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의 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이지상은 간토학살 90주기에 만든 노래 '아직 잠들지 마시오'를 불러 학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가다듬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이지상은 간토학살 90주기에 만든 노래 '아직 잠들지 마시오'를 불러 학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가다듬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도문화제의 네번째 마당.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부르는 노래에는 피리연주자 한충은의 애달픈 곡조가 유정하게 흘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도문화제의 네번째 마당.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부르는 노래에는 피리연주자 한충은의 애달픈 곡조가 유정하게 흘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손병휘는 온라인으로 연결된 일본의 민중가요 합창단과 함께 '인간의 노래'를 열창해 감동을 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수 손병휘는 온라인으로 연결된 일본의 민중가요 합창단과 함께 '인간의 노래'를 열창해 감동을 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도문화제 참가자들은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과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이 낭독한 결의문을 통해 일본 정부에 더 이상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간토학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도문화제 참가자들은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과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이 낭독한 결의문을 통해 일본 정부에 더 이상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간토학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참가자들이 진혼을 위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참가자들이 진혼을 위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본은 간토학살 인정하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본은 간토학살 인정하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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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윤석열을 탄핵하라”···1,082인 긴급 선언 발표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3/08/28 [11:38]
  •  
 

  © 국민주권당

 

국민주권당(준)은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진행한 ‘일본 핵오염수 방류 저지, 투기 공범 윤석열 탄핵 긴급 국민선언’(아래 긴급 선언)에 1,082명의 국민이 동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긴급 선언에서 “일본의 만행에 분노한다. 돈을 조금 아끼자고 인류와 전 세계에 테러를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일본을 성토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핵오염수 방류를 적극적으로 도운 공범”이라며 “국회가 나서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 중단과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해 온 국민이 촛불을 들자고 제안했다.

 

한편 국민주권당(준)은 “핵오염수 방류 공범 윤석열을 해고한다”라며 “방류 중단시킬 대통령 새로 뽑자!”라는 현수막을 게시해 눈길을 끌었다.

 

  © 국민주권당

 

아래는 긴급 선언 전문이다.

 

일본 핵오염수 방류 저지, 투기 공범 윤석열 탄핵 긴급 국민선언

 

일본이 기어이 핵오염수를 방류했다.

 

일본의 만행에 분노한다. 돈을 조금 아끼자고 인류와 전 세계에 테러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로 우리 국민은 상시적인 불안과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방류를 하루라도 빨리 중단시키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일본의 공범,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자.

 

오염수 방류를 중단시키기 위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핵오염수 방류를 적극적으로 도운 공범이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와 국힘당은 총선에 악영향이 적도록 빨리 방류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 국회가 나서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국민이 나서자.

 

세상을 바꾸는 힘은 국민에게 있다. 오염수 방류 중단과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해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함께 나서자.

 

일본은 핵오염수 방류 즉각 중단하라!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라!

 

온 국민이 윤석열 정권 퇴진 촛불을 들자!

 

2023년 8월 28일

 

국민주권당(준) 및 선언자 일동(1,082명)

강경모, 강경미, 강근영, 강기훈, 강남형, 강명현, 강병준, 강석한, 강선옥, 강성근, 강성용, 강성우, 강숙, 강신찬, 강영구, 강우리, 강윤미, 강인서, 강주희, 강지현, 강철구, 강철웅, 강현미, 강효수, 강희창, 고계자, 고민성, 고민수, 고방현, 고서권, 고성심, 고영란, 고영미, 고영재, 고유미, 고은하, 고장갈, 고주환, 고형필, 공미희, 공성숙, 곽중록, 구금회, 구나영, 구다원, 구산하, 국혜진, 권동준, 권상돈, 권소리, 권소영, 권순용, 권순욱, 권영심, 권오혁, 권완선, 권용기, 권이소, 권태균, 권혁주, 권현정, 권효석, 권희숙, 기어진, 김건수, 김경민, 김경민, 김경선, 김경세, 김경숙, 김경아, 김경아, 김경중, 김경화, 김경희, 김계관, 김계향, 김광배, 김광석, 김광신, 김금례, 김기만, 김기봉, 김기순, 김기연, 김기옥, 김기웅, 김기정, 김기현, 김나경, 김나혜, 김남석, 김남훈, 김단희, 김대기, 김대명, 김대준, 김대현, 김대희, 김도연, 김동수, 김동안, 김랑은, 김만태, 김명선, 김명성, 김명은, 김명화, 김목순, 김문숙, 김문숙, 김미경, 김미애, 김미연, 김미연, 김미진, 김미화, 김민기, 김민석, 김민선, 김민주, 김배홍, 김보경, 김보령, 김복순, 김복희, 김봉림, 김봉숙, 김부은, 김상만, 김상미, 김상열, 김상진, 김상태, 김상희, 김선경, 김선애, 김선자, 김선태, 김선혜, 김성겸, 김성기, 김성기, 김성길, 김성남, 김성민, 김성진, 김성태, 김성훈, 김세기, 김세진, 김소망, 김소명, 김소희, 김소희, 김수연, 김수연, 김수인, 김수정, 김수진, 김수진, 김숙기, 김순규, 김순임, 김순자, 김순철, 김애진, 김양순, 김어진, 김연숙, 김연지, 김연태, 김연희, 김영규, 김영덕, 김영미, 김영민, 김영서, 김영숙, 김영심, 김영혜, 김예선, 김완, 김용옥, 김용호, 김우경, 김우식, 김운기, 김원형, 김유숙, 김유정, 김윤경, 김윤기, 김윤복, 김윤실, 김윤주, 김은경, 김은규, 김은미,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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