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를 기리기 위한 ‘공교육 멈춤의 날’이 시작됐다.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 49재를 기리기 위해 추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지난 2일 여의도 국회 앞에선 20만 명이 참여한 추모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주요 신문사들은 이번 집회에 참여할 계획을 세운 교사들을 압박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오죽하면 연가까지 쓰려는지 그 취지를 살폈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 ‘공교육 멈춤의 날’은 지난 7월 숨진 서이초 교사를 애도하기 위한 날이다. 교사들은 전국에서 집회와 추모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전국 초등학교 30곳은 교장 재량 휴업일로 지정했고, 일부 학교는 단축·합반 수업 등을 준비 중이다. 교육부는 교사들에게 집단행동을 자제하라고 요청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교사들은 입 다물고 침묵하라는 말인가”라며 정부가 집회 참여 교사를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7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요 아침신문들은 4일 지면에 이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했다. 경향신문은 1면 <교사들이 광장에 선 이유 – 교권을 짓누르지 마라> 보도를 통해 “정부가 추모에 동참하려는 교사들의 단체행동을 징계 등으로 막으려 하면서 되레 추모제 규모는 예상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부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와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내놓았으나 교사들은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교육 당국은 민원 대응팀과 민원 예약 시스템 등을 통해 악성 민원을 막겠다고 했으나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9월4일 한국일보 8면.
한국일보는 8면 <“학폭 문제 반복에 병가… 보건실 찾아 ‘숨이 안 쉬어진다’ 호소”>에서 지난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양천구 초등학교 교사 발인 현장 소식을 전했다. 한국일보는 “변인들은 14년차 초등교사가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진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A씨가 평소 악성 학부모 민원 등에 시달렸다는 의혹을 규명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발인식에 참석해 고인의 사망 이유를 빠짐없이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9월4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2일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가 질서정연하게 진행됐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교권 문제보다 집회 질서에 더 주목하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1면 <‘집회의 교과서’ 보여준 교사들>에서 “시위 현장마다 등장하는 정치인, 민주노총은 찾아볼 수 없었고 쓰레기·폭력 등 민폐도 없었던 3무 집회였다는 평가가 나왔다”며 “민주노총 계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9월4일 조선일보 5면.
또 조선일보는 5면 <자체 질서요원 뽑고, 시간도 딱 지켜… 경찰 “집회하려면 이렇게”>에서 “지난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추모 집회가 시작됐는데, 집회 주최 측은 줄곧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과 거리를 두고 있다”며 “현장을 관리했던 경찰에서는 이날 집회의 질서 유지와 뒷정리가 훌륭했다는 평이 나왔다”고 전했다.
▲9월4일 한겨레 사설.
사설에선 집회 참여 의사를 밝힌 교사에게 강경 대응을 예고한 정부를 향한 비판이 나왔다. 한겨레는 <교사 극단 선택 잇따르는데 ‘엄단’만 외치는 교육부> 사설에서 “교육부는 교사들이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한 4일 연가나 병가를 사용하면 중징계와 형사고발 등으로 엄단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분출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틀어막기에 급급한 모습”이라며 “교육부의 강경한 태도로 교육 현장에선 갈등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작금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부 부처로서 한심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9월4일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또 교사 2명 사망... 연가집회 엄단한다고 될 일 아니다> 사설을 내고 “교육부는 집단으로 연가·병가를 쓰거나 재량휴업 강행 시 우회파업으로 보고 최대 파면·해임의 중징계는 물론 형사고발까지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오죽하면 연가까지 쓰려는지 그 취지를 살폈으면 한다. 제주에서, 또 지방에서 휴일까지 반납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교사들에게서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가”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추모집회의 물리적 대응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교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부족한 해법들을 메워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9월4일 세계일보 사설.
세계일보는 사설 <커지는 교사들 집단행동, 교육당국 경청해 해법 찾아야>에서 “왜 이토록 많은 교사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부의 강경 대응 방침이 자칫 반정부 시위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사태가 확산하지 않게 하려면 현장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 그래야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교권 침해에 오남용되는 법을 바로잡아 달라는 외침에 귀를 닫고 그 책임을 교사에게만 넘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세계일보는 교사들도 연가투쟁 등 집단행동을 삼가야 한다고 했다.
▲9월4일 서울신문 사설.
서울신문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신문은 사설 <전교조, 교권 회복 논의 앞에 설 자격 없다>에서 집단행동은 명분이 약하다면서 “교권 훼손 책임의 한 축인 진보 교육감들과 전교조가 집단행동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은 “전교조는 교사들의 집단 연가를 불법행위라고 규정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까지 했다. 교육부와 교사들을 편 가르는 진보 교육감들의 행태도 옳지 않다”고 했다.
▲ 8월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보수언론도 의문 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육군사관학교가 끝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교정 밖으로 철거 이전하기로 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3일 자신의 SNS에서 홍 장군을 “볼셰비키즘(소련 공산주의)을 신봉한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하며 정부 결정을 옹호하고 나섰다.
▲9월4일 중앙일보 칼럼.
이에 대해 보수언론은 현 정부의 ‘홍범도 장군 지우기’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는 칼럼 <합의가 사라진 정치, 모욕받는 역사>에서 “국방부는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자유시 참변 때의 독립군 탄압 역할을 이전 이유로 들었다. 북한 김일성이 등장하지 않았던 한 세기 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대기자는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 당시 땅을 치고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박정희 정부는 1962년 홍 장군에게 훈장을 추서했고, 노태우 정부는 유해 송환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최신 잠수함을 홍범도함이라고 명명했다. 모두 보수 정부가 한 일”이라고 했다.
▲9월4일 동아일보 칼럼.
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은 <조소앙의 ‘홍범도 평전’으로 돌아가라> 칼럼에서 “윤석열 정부가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조명하고 육사 흉상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뿌리 깊은 정체성 대결, 역사 전쟁의 연장선에 있음은 물론”이라며 “분명한 건 (홍범도 장군이) 북한 김일성 정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됐고 1943년 75세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정 논설실장은 “문 정부의 홍범도 띄우기는 과했다. 그렇다 해도 현 정부의 홍범도 지우기 방식도 자연스럽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권력에 의한 역사의 이념화, 진영화는 위험하다”고 밝혔다.
▲9월4일 경향신문 칼럼.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 <홍범도, 이것은 역사논쟁이 아니다>에서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은 결국 역사논쟁이 아니라 역사를 재료로 삼은 정치투쟁”이라며 “정녕 물어야 할 질문은 따라서 이것이다. 국가방위에 헌신해야 할 육군의 정예 장교를 육성하는 교육의 장을 앞에 두고 왜 이런 저열한 정치투쟁을 벌이나. 왜 평가 잣대에 대한 합의는커녕 애매한 잣대를 강요하는 일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용하나”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치투쟁의 본안에 들어가서도 각자 할 말들이 있겠지만, 먼저 이 희비극은 역사 논쟁에 속하지도 않는다는 점부터 분명히 하고 싶다”고 밝혔다.
▲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사진=미디어오늘
‘김만배 언론재단 설립 시도’… 한국·중앙 “철저한 진실 규명 필요”
김만배가 100억 원을 출연해 언론재단을 만들고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을 이사장으로 앉히려 했다는 검찰발 보도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신 전 위원장이 대선 직전 김씨와 인터뷰하고, 1억6500만 원을 수수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신 전 위원장은 정당하게 계약서를 쓰고 책을 판매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신 전 위원장은 한국일보 노조위원장을 지냈으며 2013년부터 4년간 미디어오늘 대표를 지냈다.
▲9월4일 동아일보 5면.
동아일보는 5면 <“김만배, 100억 들여 ‘신학림 이사장’ 언론재단 추진”> 보도에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는 최근 대장동 개발사업 관계자로부터 ‘김씨가 신 전 위원장을 중심으로 초기 자금 100억 원 수준의 언론재단을 만들어 언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김씨가 대장동 사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언론사 인수를 추진하다 무산되자 언론재단을 만들어 여러 언론사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9월4일 경향신문 8면.
경향신문은 8면 <“김만배, 신학림에게 100억원 출연해 대장동 사업 도울 언론재단 설립 시도”>에서 “검찰은 ‘천화동인 6호’ 실소유주로 알려진 조우형씨로부터 ‘김씨가 인터뷰 내용을 미리 알려주며 이를 용인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며 “김씨가 해당 인터뷰 직전 조씨에게 ‘윤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 조사에서 네게 커피를 타줬다고 이야기할 테니 입장이 곤란해져도 모른 척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9월4일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사설 <대선 허위 폭로는 국기문란행위... 돈거래 의혹 진실 밝혀야>를 내고 인터뷰가 허위였다면 국기를 흔드는 사안이라면서 “신씨는 녹음파일을 6개월 동안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투표 사흘 전 보도된 이 인터뷰는 언론에 대서특필돼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책 3권 판매대금이 1억6500만 원인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돈거래라면서 “인터뷰 내용의 사전 조작 여부, 폭로와 돈거래의 연관성, 대선투표 직전 보도 배경 등 철저한 진실 규명이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9월4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거액 받고 ‘가짜뉴스’ 내보낸 전직 언론노조 위원장> 사설에서 “신 전 위원장은 김씨의 일방적 주장을 소개하면서 윤석열 후보의 반대 세력에 힘을 실어줬다”며 “인터뷰 내용이 허위였다면 사기꾼의 거짓말에 온 나라가 놀아난 격이다.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사실 확인도 없이 한쪽의 주장을 섣불리 기사화하지 않는다. 언론사 경력만 40년에 가까운 신 전 위원장이 이런 언론의 기본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한때 언론노조를 대표하며 활동했던 만큼 신 전 위원장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히길 바란다. 검찰은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로 한 치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2일 오후 도쿄 소재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한국중앙회관 8층 강당에서 '무엇이 시민들을 학살로 몰고 갔는가?-간토대지진의 비극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는 주제로 간토대지진 100주년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사진은 주제발표를 하는 와타나베 노부유키 전 아사히신문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를 기억하는 일본내 동포들의 행사가 2일에도 이어졌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2일 오후 도쿄 소재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한국중앙회관 8층 강당에서 '무엇이 시민들을 학살로 몰고 갔는가?-간토대지진의 비극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는 주제로 간토대지진 100주년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이성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의 개회사에 이어 와타나베 노부유키 전 아시히신문 역사전문 기자가 '왜 사람들은 학살로 치달았나'를 주제로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당시 언론보도 등을 심층적으로 추적한 주제 강연을 진행했다.
와타나베 전 기자에게 '왜 사람들은 학살로 치달았는가'라는 질문은 자신을 포함한 '일본인'들로서는 매우 불편하고 인정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으나 10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논쟁'이야말로 더더욱 괴로운 일이었을 것.
와타나베 노부유키 기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오랜 기간 취재와 탐구는 매우 치밀했지만 결론은 조심스러웠다. 특히 논쟁이 된 조선인 학살자 수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지난 2009년 일본 내각부 중앙방재회의가 발표한 '재해 교훈 검증에 관한 전문조사회' 보고서의 내용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기를 든 다수자가 비무장 소수자를 폭행한 끝에 살해에 이르는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가 많았다. 살상의 대상이 된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
"살상사건으로 인한 희생자의 정확한 수는 없지만 지진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1~수 퍼센트에 해당하며, 이는 인적손실의 원인으로 보기에 경시할 수 없다."(이상 위 전문조사회 보고서)
그에 따르면, 당시 유포된 유언비어의 핵심은 '무장한 조선인이 집단적으로 습격한다'는 것이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집에 불을 질렀다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수준을 훨씬 넘은 것이었다.
1973년 소설가 요시무라 아키라는 『관동 대지진』에서 대지진의 혼란속에 사람들의 집단적인 정신이상이 벌어져서 '조선인들의 습격에 대비한 자경단을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일본)민중의 자발적 의지만으로는 자경단의 횡포가 탄생할 수 없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조선인 살해에 깊이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보다 차원높은 '선동', 그리고 '무기'가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재일 사학자 강덕상의 견해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당시 언론보도와 소학교 6년, 고등과 1년 학생들의 기억이 반영된 작문 자료 등을 근거로 '조선인 폭동설'이 강력하게 유포되었으며, 조선인 박해와 학살의 정황도 분명하다고 확인했다.
학생들의 작문을 검토한 뒤에는 "유언은 근거없는 허보였으나 지진 재해 반년 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학살이 유언비어를 믿고 자행된 민족적 박해였다는 자각이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옳은 것이 전달되지 않은 가운데, 아이들이 들은 루머나 '무서운 조선인 인상'은 바로 잡히지 않고, 자각과 반성없이 다음 전쟁의 시대가 준비되어 간 것 같다"고 가슴 아픈 결론을 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와타나베 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이성시 관장의 사회로 이규수 전북대학교 학술연구교수, 토나베 히데야키(戸邉秀明) 도쿄경제대학 교수, 배영미 한국독립기념관연구위원이 종합토론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위기에서도 질서정연하게 행동했다는 자부심이 있는 일본인으로서는 "다른 선례도 없는 그런 일(조선인학살)을 일본인이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와타나베 기자가 찾은 단서는, 관점을 한반도와 대륙으로 넓혀 역사적 사실을 연결해서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1910년 조선병합과 의병활동, 1919년 3.1운동과 시베리아 출병을 비롯한 여러 계기에 일본은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조선의 빨치산'(불령선인)과 일상적으로 격돌하며 적대감을 키워왔다.
전쟁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재향군인들은 '무장한 조선인들이 집단적으로 습격한다'는 '유언비어'를 실제로 믿고 맹목적으로 반응한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 잠정적인 그의 가설이다.
국가권력의 개입 문제는 '내각부 중앙방재회의' 보고서가 웅변하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지만, 이 문제 역시 최근 일본 정부가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인학살에 대한)유감의 뜻을 표명할 예정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공전하는 모습이다.
전날 한일우호를 기대하는 일본 시민단체와 재일동포들은 일본 정부에 '모든 공적기관의 당시 서류를 재조사하고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규명팀을 구성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정부요청서를 발표한 바 있다. 간토학살 100주기를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자는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앞서 와타나베 기자는 지난달 18일 『관동대지진 '학살부정'의 진상』(도서출판 삼인) 번역 출간을 계기로 방한해 국내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애플TV+ 드라마 '파칭코' 시즌 1,2 각본을 쓴 제작 총책임자인 한국계 미국인 수 휴씨가 '영상제작으로 본 간토대지진'을 주제로 자신의 드라마 제작 체험을 바탕으로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 대한 생동감있는 발표도 진행됐다.
수 휴씨는 드라마 '파친코' 제작과 관련해 원작에 없는 간토대지진을 삽입하게 된 계기와 세계적인 호평속에서도 일본에서만 '반일드라마'라는 예외적 반응이 있었던 것에 대한 감상을 묻는 질문에 온라인 영상으로 차분히 답변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서 1일부터 11월 24일까지 간토대지진 100년 '1923-2023 역사의 증언자들'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어 이성시 관장의 사회로 이규수 전북대학교 학술연구교수, 토나베 히데야키(戸邉秀明) 도쿄경제대학 교수, 배영미 한국독립기념관연구위원이 종합토론을 펼쳤다.
이 관장은 "올해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학살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물음을 갖고 최신 연구성과와 현장을 검증한 시민들의 노력으로 확인된 여러 사실에 근거하여 의견을 나누면서 미래를 향한 신뢰가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을 개최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재일 코리안에 관한 자료 수집과 전시를 통해 재일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난 2005년 재일 사학자인 고 강덕상 시가현립대학 명예교수를 초대관장으로 하여 설립됐다.
1일부터 11월 24일까지 '1923-2023 역사의 증언자들' 이라는 주제로 간토대지진 100년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관동대지진 100년-조선인 학살 희생자의 추도와 책임추궁의 행동실행위원회'는 2일 오후 도쿄 시내 블라썸 중앙회관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책임과 과제'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간토학살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한편, 전날 간토 학살 100주기를 맞아 일본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집회를 개최한 '관동대지진 100년-조선인 학살 희생자의 추도와 책임추궁의 행동실행위원회'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심포지엄과 같은 시간 도쿄 시내 블라썸 중앙회관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책임과 과제'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백년 동안의 증언-한일 작가와 시민이 본 간토대진재와 조선인 학살), 정영환 메이지대학 교수(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과 '부정론' 문제), 이진희 이스턴 일리노이대 교수(램지어 논문, 미국발 간토학살 부정론과 제노사이드에의 대응), 정영수 조선대학교 교수(재일 조선인운동에 의한 간또대진재 조선인학살의 진상규명과 책임추궁), 마에다 아키라 도쿄조형대학 명예교수(국제법에서 바라본 간토대지진 제노사이드)가 발표하고 '조선인 학살사건의 해결과 식민주주의의 불식'을 주제로 종합토론을 벌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3.08.25. ⓒ뉴시스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입니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입니다. 저는 이것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고, 또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다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이런 철학과 방향성 없이 실용이 없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우리가 갈 것인지를 우리가 명확하게 방향 설정을 하고, 우리 현재 좌표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우리가 제대로 갈 수가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
연일 사상전 벌이는 윤석열 대통령
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이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우리가 지금 국회에서 여소야대에다가 언론도 지금 전부 야당 지지 세력들이 잡고 있어서, 그래서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합니다”라며 자신을 비롯한 집권세력을 향한 비판이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아니 뭐 이번에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것 보십시오.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을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그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전면적인 사상전(思想戰)을 주문했다.
하루 뒤인 8월 2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전체주의의 생존 방식입니다. 인접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발전하면 사기적 이념에 입각한 공산전체주의가 존속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글로벌 중추국가로 발전해 우리의 통일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라며 야당과 진보세력을 상대로 사상전을 벌일 것을 또 다시 독려했다.
앞서 8월 25일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1주년 성과보고회에선 “시대착오적인 그런 투쟁과 혁명과 그런 사기적 이념에 우리가 굴복하거나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는 등 8월 들어 연일 이념과 사상을 강조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아울러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동상이 육사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며 이전을 추진하는 등 곳곳에서 이와 관련한 행동전도 펼쳐지고 있다.
사실 보수세력은 한동안 이념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보수세력들은 전통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와 북풍을 앞세운 선거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그러한 이념 공세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해왔고, 중도층 등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용·경제 등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강조해왔다. 오히려 진보세력이 이념에 매몰돼 민생경제에 무능하다는 프레임을 활용하곤 했다. 윤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화두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공정과 상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8일 인천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8.28. ⓒ뉴시스
윤 대통령도 8월 이전까진 과거 보수세력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이전에도 ‘이념’을 언급한 적은 있었지만, 최근의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과거의 낡은 이념에 기반한 정책”(3월8일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축사), “과거에 이념적으로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2022년 12월 21일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모두 발언),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정책을 폐기”(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 발언) 등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언어였다. 잘못된 이념으로 경제와 사회를 망쳤다는 뜻으로 ‘이념’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썼을 뿐이다. 불과 3개월 전인 5월까지만 해도 “이념이나 정치 논리가 시장을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탈이념과 탈정치, 그리고 과학 기반화가 바로 정상화입니다”(5월 23일 제21회 국무회의 모두 발언)라며 탈이념과 탈정치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를 앞두고 왜 이런 발언을 쏟아낸 걸까? 흔히 총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마지막 정기국회에선 여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총선 승리를 위한 주도권 싸움이다. 이런 상황에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이념전’과 ‘사상전’을 강조하는 건 어떻게 봐야하는 것일까? 의아한 상황이지만, 한덕수 총리가 앞장서서 이런 윤 대통령의 주문을 실천하고 있다. 한 총리는 8월 31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의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군함”이라며 “소련 공산당원 자격을 가졌던 사람은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해군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명칭 변경을 시사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자 하는 것은 아니신가”라고 되물으며 적극적인 사상공세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 요직을 차지한
이동관을 비롯한 뉴라이트 세력
사실 윤 대통령의 이런 이념적 행보는 내년 경제전망이 어두운 상황이고, 부자 감세와 경제 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 등 다양한 경기 부양책 등을 제시하며 선거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일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최근 기용한 인사들을 살펴보면 이런 변화는 고육지책을 넘어 확고한 신념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뉴라이트 성향 인사를 대거 기용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2022년 5월 임명)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을 지낸 인물로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손꼽힌다. 특히 그는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2년 7월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통칭 지소미아(GSOMIA)) 체결 추진을 주도하다 논란이 일어 물러난 바 있는 인물로 친일 성향이 강하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2022년 12월 임명)은 2008년 뉴라이트 계열 단체 교과서 포럼이 펴낸 역사 교과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한 인물이다. 이 책은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경제성장 주역론 등을 담아 논란이 됐다. 이런 인물이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혀야하는 진실화해위 수장을 맡으며 논란이 인 것이다.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가 6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3.06.29 ⓒ뉴시스
김영호 통일부 장관(2023년 7월 임명)은 과거 뉴라이트 학자들의 싱크탱크인 ‘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장을 지냈고, 김광동과 마찬가지로 2008년 발간된 뉴라이트 교과서 제작을 위한 운동에 함께했던 인물이다. 남북화해와 통일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통일부에 반북 성향의 뉴라이트 출신 인사를 기용한 것이다. 이밖에도 한오섭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2022년 5월 임명), 김종석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2022년 8월 임명) 등 뉴라이트 단체 활동 의혹을 받는 인물이 대거 등용됐다.
2004년 뉴라이트 용어를
처음 만들고
동아일보에 기획기사를 연재하며
뉴라이트를 확산시킨 이동관
윤석열 정부에 등용된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바로 지난 8월 25일 임명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월28일 이동관을 지명한 뒤 자녀 학교폭력 논란 등 여러 의혹과 각종 언론방송단체들의 반대에도 꿈쩍하지 않았고, 지명 29일 만에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동관은 대선 당시 윤석열 선대위의 미디어소통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당선 후에는 당선인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다. 이어 2022년 5월엔 장관급인 대통령비서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으로 위촉되었고, 이번에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2004년 뉴라이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또 이를 소개하는 대규모 기획기사를 주도해 뉴라이트를 국내에 확산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신동아 2008년 9월호에서 한기홍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는 ‘뉴라이트’란 명칭은 2004년 이동관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최홍재씨와 함께 술자리에서 만들었다면서 “우리는 원래 자유주의 운동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국민에게 쉽게 와 닿지 않는 것 같아 ‘뉴라이트’를 쓰기 시작했는데 전부 따라 하더라. 조선일보만 해도 처음엔 다른 용어를 쓰더니 한 달쯤 지나면서 따라왔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보수진영은 1997년과 2002년 연이어 대선에서 패배하고, 2004년 탄핵정국에 휩쓸려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위기론이 커졌다. 이때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이동관이 뉴라이트 연재기사를 실으며 새로운 보수세력과 이념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동관이 정치부장으로 일하던 시절 동아일보는 2004년 11월 8일부터 2005년 2월 23일까지 4부작 25회에 걸쳐 다양한 뉴라이트 기획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 캡쳐
동아일보는 2004년 11월 8일자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기획을 통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옹호하는 ‘뉴 라이트’ 그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이들 뉴 라이트 그룹은 국가주의에 기울었던 기존 보수세력과 차별성을 보이면서도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이 충분한 국민적 의견 수렴 없이 급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며 최근 부문별로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동관 2004년 칼럼
“이제 한나라당의 유일한 활로는
‘뉴 라이트(New Right)’로 상징되는
이념의 중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
이동관은 동아일보 2004년 11월 18일자에 “‘뉴 라이트’를 잡아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제 한나라당의 유일한 활로는 ‘뉴 라이트(New Right)’로 상징되는 이념의 중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며 “‘실용주의’와 ‘좌(左)편향’을 오락가락하는 포퓰리즘적 태도나 수구기득권의 이미지와 절연하지 못하는 소극적 방어논리로는 합리적 비판세력의 무한 잠재시장인 ‘뉴 라이트’를 잡을 수 없다. 여고 야고 먼저 자기 이념좌표부터 정확히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2005년 2월 23일까지 4부작 25회에 걸쳐 다양한 기획기사를 실었다. 뉴라이트 기획이 시작됐던 2004년 11월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주도한 자유주의연대가 창립됐다. 기획이 마무리된 뒤인 2005년 11월엔 뉴라이트 대중운동 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만들어졌고, 2006년 4월엔 뉴라이트 이념과 사상을 연구하는 뉴라이트재단이 설립됐다. 보수적 성향의 학자나 정치인은 물론 과거 운동권 활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이 새롭게 생겨난 뉴라이트 단체에 결합했다.
사실, 보수세력이나 우파세력이 ‘신보수주의’, ‘신우익’, ‘대안우익’ 등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건 우리나라만의 흐름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앞서 다른 나라들도 냉전 분위기가 수그러드는 등 시대 변화에 맞춰 변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세, 작은 정부, 공기업 민영화, 사회복지 축소, 시장 기능 강화 등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지지하는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 Neo-Conservatism)과 대처 총리의 영국 보수당 등이 있다. 반면에 세계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대안우익’(Alternative Right)과 유럽의 새로운 극우정당들과 일본의 신우익 등도 있다.
유럽·일본·미국 등 다른나라
신보수 또는 신우익과 확연히 다른
우리나라 뉴라이트의 친미·친일 노선
우리나라 뉴라이트는 다른 나라의 새로운 우익 또는 보수주의 흐름과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민족주의를 주장하며 미국 의존 정책을 비판하는 일본의 ‘신우익’,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웠던 이탈리아 신극우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과 프랑스 신극우정당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민족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내걸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뉴라이트는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친미·친일을 내세우는 등 이들 정당과는 차이가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상임의장 김진홍)의 안보조직인 뉴라이트안보연합(대표 정정택 예비역 장성, 이하 안보연합)이 2007년 3월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창립 대회를 개최했다. ⓒ민중의소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분명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지배를 경험한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1940년부터 1944년까지 프랑스 본토는 나치 독일의 괴뢰국인 ‘비시 정부’가 지배하고 있었다. 영국, 콩고, 알제리 등을 옮겨다니며 존속됐던 프랑스 망명정부인 ‘자유프랑스’와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 ‘비시 정부’다. 망명정부가 다시 프랑스를 되찾았고, 2차대전이 끝난 뒤 나치에 대한 협력 혐의로 35만여 명을 조사하였으며 12만 명 이상을 법정에 세웠다. 이 가운데 약 1천500여 명을 처형하고 3만 8천여 명을 수감했다.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 9천여 명은 약식 처형됐다. 35년간 일제 식민지배를 겪고도 단 한명의 친일파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숙청과정을 거쳤지만, 프랑스 내부에서는 1950년대 초의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사면 이후 과거사 청산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프랑스의 ‘국민연합’도 비시정부를 옹호하는 발언을 꺼린다. 국민연합 지도자 마린 르펜은 2017년 “나는 프랑스가 벨디브 사건(비시정부 당시 벌어진 대규모 유대인 학살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책임이 있다면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이지 프랑스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비시정부는 프랑스가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의 공식적인 책임은 없다는 식의 발언이었지만, 비난이 거셌고, 결국 사과해야만 했다. 때문에 ‘국민연합’은 공개적으로 과거 나치 협력을 옹호하는 발언을 조심하고 그런 이미지를 벗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국민연합’은 ‘국민전선’으로 활동하던 2015년 유대인 학살 옹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창립자이자, 당 지도자 ‘마린 르펜’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을 출당시키기까지 했다.
반면 우리나라 뉴라이트는 일제시기를 거치며 우리나라가 근대화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등을 주장하며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부정하면서도 일본의 민족주의는 용인하는 모순된 모습도 보인다. 경제에 있어서도 자국우선주의나 보호주의를 내세우기보다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추종한다.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청산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라는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념적으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명박과 손잡으며
2008년 정권 잡은 뉴라이트
하지만, 8년만인 2012년 괴멸
이동관이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뉴라이트 운동에 불을 지폈고, 뉴라이트전국연합을 비롯한 뉴라이트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이명박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를 이기고 대선후보가 되었다. 결국 이명박은 48.7%인 1천149만2천389표를 득표하며 10년만에 보수세력은 정권을 되찾았다. 이후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가 요직을 차지했고,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했다. 2008년 건국절 법제화,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출간 등 “개화기와 식민지 시기에 걸쳐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해 온 근대화 세력과 해방 이후 미국을 따라 들어온 자유민주주의 국제세력의 결합으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는 그들의 역사관을 이식하기 시작했다. 이동관을 중심으로 KBS, MBC, YTN 등 방송 장악에도 나섰다. 4대강 사업, 의료를 비롯한 공공부문 민영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등을 밀어붙였다.
2015년 12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웨딩홀에서 열린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출판 기념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이 전 수석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5.12.15. ⓒ뉴시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수입반대 촛불시위, 미국발 금융위기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2010년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진 그해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정권 심판론과 함께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북풍몰이에 대한 역풍도 컸다.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뉴라이트 인사들은 공천에서 탈락하는 등 박근혜를 비롯한 기존 보수세력에게 밀려났고, 2004년 등장 이후 8년만에 괴멸이라고 부를 정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당시 뉴라이트 세력들은 잠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정국을 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지진 못했고,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로 활동을 이어왔다.
절치부심하던 이동관과 뉴라이트
2019년 ‘평등의 역습’ 출간···
윤석열 정부 경제·노동·사회 정책의 기초
한동안 숨 죽이며 절치부심하던 뉴라이트 세력은 윤석열 정부의 등장과 함께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이동관이 동아일보 기획기사를 통해 뉴라이트를 띄우며 청사진을 그리고 이명박을 선택해 대통령으로 당선 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그는 지난 2019년 ‘평등의 역습- 좌파의 역주행, 뒤로 가는 대한민국’을 운동권 출신 뉴라이트들과 함께 출간했다. 이 책을 살펴보면 지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노동·사회 정책의 기초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윤 대통령의 어조도 이 책과 놀랄 정도로 닮았다.
이동관은 ‘평등의 역습’ 서문에서 책을 쓰게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평등과 분배 중시의 좌파이념을 내세운 문재인정권이 정작 기득권 상층노동자의 이익은 지켜 주고 하층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자기부정과 정책 역주행을 계속한 결과 불평등의 확산이라는 역설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문제의식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연말 즈음이었다. 2004년 보수담론 확산의 기폭제가 됐던 뉴라이트운동의 주역들인 이재교 세종대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최홍재 신문명연대 대표(전 고려대 총학생회장, 시대정신 편집인) 등은 다같이 문 정권의 평등 파괴 행보에 놀라고 있었다.”
‘평등의 역습’은 문재인 정부의 주축 세력이었던 386 정치인들을 “정작 자신들은 산업화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여전히 낡은 감수성에 빠져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비판했다. ‘2년간 30퍼센트’에 육박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른 파국은 예정된 것이었고, ‘따뜻한 마음’만 앞세운 비현실적 최저임금 강행은 산업과 고용을 초토화하고 실업자를 양산하는 핵폭탄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귀족노조’가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확대시켰고 미취업자들의 새로운 일자리 진입을 가로막는 ‘노조 우대 친노동정책’은 현실경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그 이면에 ‘정권과 노조의 특권적 결탁’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약자를 울리는 파탄의 주범이라고 비난했다.
공공부문을 향해 7억 더 벌고 연금은 6배인 ‘신의 직장’이라며 81만 명 증원정책은 나라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고 양극화를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규직 확대를 몰상식하게 밀어붙이는 고용정책은 ‘비정규직은 비정상이다’, ‘정규직은 동질집단이다’라는 두 가지 거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면서 기존 상층노동자의 기득권 양보 없는 무분별한 정규직화는 불평등의 골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반기업·반재벌 정책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원전은 안전하며, 사용후핵연료는 안전하게 처리되고 있으며, 원전 유지는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을 선택해
격렬한 사상전과 이념투쟁으로
‘뉴라이트 시즌2’에 돌입한 뉴라이트
이동관은 ‘평등의 역습’에서 “이 책이 정권의 시대역행의 폭주를 널리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국가사회적 담론의 출발점이 되기를 소박한 마음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책 말미에선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날개를 달아 줄 것인가, 희망을 향한 유턴인가? 일시 왼쪽으로 옮아간 진동추를 오른쪽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정통 보수의 가치를 견지하는 것과 함께, 더 젊고 미래지향적인 어젠다를 선점하려는 절치부심의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준비 안 된 세력에 미래는 없다’고 저자들은 거침없는 쓴소리를 날린다. 고까우면 또 지는 거다. 역사 속에서 떠나간 진동추가 자기네로 옮아올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 갖고 시대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미래 준비에 소홀했던 정치집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소멸됐다. 어느 때보다 절치부심의 각오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때다. 다가오는 제21대 총선은 희망의 2022년을 위한 예비고사가 될 것이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을 포함한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8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시스
보수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윤 대통령은 2019년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 조국 법무부장관 수사 등 곳곳에서 문재인 정권과 부딪히며 보수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총선이 끝난 뒤 2021년 3월 검찰총장에서 물러나, 3개월여 만에 출마선언을 한 뒤에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대선후보가 됐다. 절치부심하던 뉴라이트 세력은 이 과정에서 과거 이명박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적 이상을 현실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윤 대통령을 선택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격렬한 사상전과 이념투쟁으로 ‘뉴라이트 시즌2’에 돌입했다.
이동관을 중심으로 KBS, MBC, YTN 등 방송을 장악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처럼 이번에도 이동관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방송장악을 위한 첨병으로 나섰다. 방통위원장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8월 1일 이동관은 방송·언론 장악 시도를 비판하는 기자들을 향해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언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서 “자유 민주 헌정 질서 속에서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언론은 반드시 책임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연일 공산주의 운운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도 맥을 같이하는 말이다.
더욱 독해진 ‘뉴라이트 시즌2’
보다 원리주의적이고,
근본적인 뉴라이트 전사 윤석열
윤 대통령의 사상전으로 본격화된 ‘뉴라이트 시즌2’는 ‘시즌1’에 비해 더욱 독해진 모습이다. 시즌1 주연이던 이명박도 윤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그래도 물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하거나 일본과 역사문제로 충돌이 빚어지자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방문하는 등, 뉴라이트 정신에 어긋하는 행보도 실용적 필요성이 있다면 추진하는 일부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올드라이트가 세력의 상징이던 박근혜도 과거 북을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대통령이 된 뒤 통일대박론을 외치거나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천안문 성루에 올라 군의 사열을 받는 등 실용적 행보에 나섰다. 이런 행보와 비교해보면 연일 이념투쟁을 외치고, 교과서에까지 독립운동가로 수록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고, 그의 이름을 딴 잠수함 명칭까지 변경하려는 시도 등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 입장에선 보다 원리주의적이고, 근본적인 전사다.
그리고, 그런 원리·근본주의적 뉴라이트 철학을 담은 발언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도 “지금 우리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며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의 강경 이념 발언으로 점점 본격화하는 뉴라이트 시즌2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내년 4월 총선이 마무리된 뒤에도 이런 발언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국민의 반대가 계속되는데도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같은 사상전이 계속될 수 있을까? 대중과 괴리되며 ‘폭망’했던 뉴라이트 시즌1의 결말이 자꾸 떠오른다.
소설 <범도>를 쓰기 위해 지난 13년간 홍범도의 삶을 추적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홍범도가 대한민국의 첫 군인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최초의 헌법인 '헌장'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선포하고 제6조에서 '대한민국의 인민은 병역의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2년(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했다. 1920년을 '대한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포한 대한민국 군무총장 노백린은 '군무부포고 제1호'를 발동한다.
충용한 대한의 남녀여. 혈전의 시각, 광복의 계절이 도래하였도다. 너도 나아가고 나도 나아갈지라. 정의를 위하야, 자유를 위하야, 민족을 위하야 철과 혈로써 조국을 살릴 때가 이때가 아닌가. 혼 있고 피 있는 대한의 남녀여. 선조를 위하야, 후손을 위하야, 무도한 왜적에게 학살을 당하는 너의 부모 형제자매를 위하야 최후의 희생을 바칠 때가 이때가 아닌가...(<범도>2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병역의 의무를 부여한 다음 대한민국 군인의 자격으로 전쟁에 나선 첫 군인들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 참전 장병들이었다. 홍범도는 대한민국의 첫 군인 중의 한 사람이었고, 첫 부대를 지휘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었다.
두 번째는 봉오동전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에 따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수행한 최초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첫 전쟁의 개막전이 봉오동전투였다. 홍범도가 대한민국 첫 군인으로 대한민국의 첫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선전포고와 전투개시 명령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1919년 12월에 그가 발표한 '유고문'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대한독립을 세계에 선포한 후 상으로는 임시정부가 군국대사를 주관하며 하로는 민중이 단결하여 만세를 제창하니 우리의 공전절후한 독립군이 출동하였도다. 강권 아래에서 오직 정의와 인도만 주창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요, 무권리 상태의 민중들이 한갓 평화회의와 국제연맹에만 의뢰함도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고로 배수의 진을 치고 일전을 벌여 적의 무릎을 꿇려야 마땅하나 가벼이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오직 정부의 공명정대한 선전포고를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 노령 주둔 대한독립군 대장 홍범도/참모 박경철 이병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여한 1919년 노령(연해주)에 집결했던 홍범도부대는 이듬해 대한민국 군무부가 포고령 1호를 발동하고 '공명정대한 선전포고'를 하자 만주로 이동해 봉오동에서 대한독립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봉오동전투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첫 군인들을 이끌고 홍범도가 결전에 뛰어드는 장면을 나는 <범도>에서는 이렇게 그렸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이기려 하오. 이겨보이려 하오. 기어이 이길 것이오. 그러니 우리, 끝내 이깁시다. 대한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오늘 우리는 죽을 수는 있어도 져서는 아니 될 독립전쟁의 첫 번째 대회전을 벌이고 있소. 반드시 이겨서, 지울 수 없는 승리의 이정표를 이 봉오동에 새겨두어야 하오." - <범도>2권
그렇게 싸워서 봉오동과 청산리에 지울 수 없는 승리의 이정표를 새겨둔 대한민국 첫 군인들이 바로 홍범도와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이다.
연해주와 만주 동포들의 존경을 한몸에
▲ 서울겨례하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 철회!" 서울겨례하나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독립문 앞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 철회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관보와 다름없었던 상해판 <독립신문>은 이 전투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포한 독립전쟁 제1회전에서 거둔 대승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심지어 이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도 홍범도에 대한 경외감을 표시했다.
홍범도의 성격은 호걸의 기풍이 있어서 일반조선인들, 특히 부하들로부터 하느님과 같은 숭배를 받는다. 홍범도가 각 독립군이 단호한 결심이 없음을 분개하며 단독으로 삼수, 갑산 방면으로 국경을 습격하여 여론을 환기시키고 독립군의 의기와 기백을 보이려고 하는 것에서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 일본군의 간도 출병 기록 문서 중
연해주와 만주의 동포들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적들조차 경외감을 표시한 대한민국의 첫 군인이 홍범도였다. 그렇지만 홍범도에게 승리는 언제나 승리한 그 하루뿐이었다. 남은 모든 날이 패배였다. 그는 승리한 그 하루의 힘으로 남은 모든 날의 패배에 맞서야 했다.
아내는 일본군의 고문을 받다 죽었다. 큰아들 홍양순은 16세의 나이로 그와 함께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던 중에 태백준령에서 전사했다. 마지막 남은 가족인 둘째 아들 홍용환도 일본군과 싸우다 이역만리에 죽었다. 일본군에게 빼앗긴 아내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 두 아들을 전장에 묻어둔 채 어금니를 깨물고 돌아서야 했던 홍범도다. 재산 한 푼 남기지 않았고, 핏줄 한 점 남기지 못한 채 평생을 일제에 쫓겨 다니며 싸웠다. 끝내는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당해 극장 수위로 최후를 마친 그다. 죽어서도 80년 동안 후손이 차려주는 제삿밥 한 그릇 얻어 먹어보지 못한 홍범도다.
누가 감히 자신의 모든 것을 나라와 동포들을 위해 바쳤으면서도 무엇도 바라지 않고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그의 삶을 능멸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이념이나 노선, 정치적 이해득실의 문제로 따질 일이 아니다. 애국과 매국의 문제도 아니다. 심지어 일본군조차도 용맹과 헌신성을 경외했던 그를 다시 어디로 내쫓겠다는 것인가...)
수위로 일하며 모은 월급을 평생토록 누구에게도 대접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독립군 동지와 부하들에게 모두 털어주고 카자흐스탄에서 죽은 그를 78년만에 모셔올 때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이라고 말했던가.
'이제야 모시러 와서 죄송합니다.'
모셔온 지 고작 2년 만에 평생을 일본군에게 쫓겨다니다 끝내는 러시아에서 강제추방당했던 그를 이번에는 대한민국이 강제추방하겠다는 것인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역사에서도 첫 번째 군인으로 자기 나라의 첫 번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독립영웅을 이렇게 능멸한 적은 없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결단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고려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 홍범도
▲ "모셔갔으면 제대로 모셔라" 지난 1일 유보비 예술총감독이 홍범도장군이 수위로 일했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배우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흉상 이전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첫 군인 홍범도 장군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다.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부터 카자흐스탄 정부와 봉환 교섭을 한 끝에 2년 전에 간신히 모시고 왔다. 그의 봉환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인 홍범도를 차마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 50만 고려인들의 마음을 달래는 일이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끝내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장군께서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쉬시기를 바라며 어렵게 봉환에 동의했다. 그렇게 눈물 속에 떠나보낸 홍범도 장군이 고국에서 당하는 능멸을 지켜보며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동포들은 지금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한고려인협회 노알렉산드라 회장은 '이럴 거면 차라리 장군님을 다시 돌려보내라. 창피해서 못 살겠다'는 얘기들이 터져나온다고 전했다. 고국에서 홍 장군이 당하는 모욕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직접 서울로 온 카자흐스탄독립유공자재단 청년회장인 독립지사 계봉우 선생의 후손 계이리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어떻게 독립영웅인 우리 장군님에게 대한민국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 대한민국이,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차마 사람이 해서는 아니되는 일이 있다. 대한민국의 첫 군인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수행한 첫 번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네 장군과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지휘관 3500명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인 이회영 선생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쫓아내고 옮기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의 말씀대로 차라리 깨끗이 파쇄해서 없애는 것이 이미 충분히 능멸당한 그분들을 더 능멸하지 않는 길이다. 오죽하면 분노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이 시위 피켓을 들고 외치겠는가.
"모셔갔으면 제대로 모셔라. 홍범도 장군이 문제면 고려인 동포 50만도 적인가."
홍범도장군이 수위로 일했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요즘 화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한다. 홍범도 배역을 맡아 열연해온 주연배우 최로만과 함께 극단을 이끌어온 유보비 예술총감독은 말했다.
"카자흐스탄에는 천산산맥이 있다. 아무리 눈보라 치고 태양이 작렬해도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홍범도 장군은 이 산맥과 같은 영원한 우리의 정신적 지주다. 체제와 정권은 바뀌어도 홍 장군님은 변치않는 우리의 독립전쟁 영웅이다. 7천만 겨레의 가슴 속에서 홍범도 장군이 사라지지 않도록 고려극장은 온 힘을 다해 지킬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의 첫 군인으로 대한민국의 첫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가 대체 대한민국 군대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어서까지 이런 능멸을 당해야 하는가.
10년 넘게 소설 <범도>를 쓰기 위해 그의 삶을 추적하며 취재하고 조사한 나는 홍범도 장군이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 단 하나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은 못하더라도 자신의 재산과 목숨, 가족들까지 모두 나라에 바친 독립영웅들의 흉상 하나는 온전히 지키고 모시는 것이 그가 남긴 나라에 사는 사람 된 도리가 아닌가.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이하 한미연합훈련)는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할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8월 31일 사실상 별다른 것 없이 종료되었다.
국방부는 이번 한미연합훈련은 고도화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변화하는 안보 상황을 반영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실전과 같이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1일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진정한 평화는 일방의 구걸이나 선의가 아닌, 오직 압도적인 힘에 의해서만 지켜진다”라고 강조했다.
정리해 보면 이번 한미연합훈련 목표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하여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하여 실전 같이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훈련 과정을 살펴보면 국방부의 주장대로 훈련 목표에 맞게 진행되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국방부는 이번 한미연합훈련에서 연합통합화력훈련, 공군 쌍매훈련 등 30여 건의 다양한 야외 기동훈련을 진행한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들었다. 단순 수치로는 올해 상반기보다 증가한 수치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실전에서 핵을 사용한다고 주장하고 국방부 역시 고도화된 북한 핵·미사일 능력에 대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단순히 기동훈련의 수를 증가하였다고 압도적 대응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한미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해 훈련 막바지인 8월 30일 B-1B 전략폭격기를 투입하여 서해 상공에서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B-1B는 지난 2월과 3월에도 한반도에 전개된 바 있어 새로운 것이 없는 훈련이었다.
한편 한미연합훈련 기간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는 8월 29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미사일 방어훈련을 실시했다. 사실상 한·미·일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그런데 만약 실전 같은 훈련을 진행한다면 남해 공해상이 아니라 동해에서 진행했어야 한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에는 낮은 수준의 훈련이었다.
2. 북한의 움직임
강순남 북한 국방상은 7월 27일에 열린 열병식 연설에서 “이제는 조선반도[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떻게 핵전쟁을 일으키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핵전쟁이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대로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며 나간다면 우리 국가의 무력 행사가 미합중국과 ‘대한민국’에 한해서는 방위권 범위를 초월하게 된다는 것을 엄중히 선포”한다고 경고했다.
북한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월 중순 해군을 현지지도했다. 이때 공개된 경비함 661호가 눈길을 끌었다. 이 경비함은 헬기 착륙장과 대공 미사일 발사대를 갖춘 최신의 스텔스 군함으로 추정된다. 또 북한은 이날 경비함에서 전략 순항미사일 발사 훈련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해군절을 하루 앞둔 8월 27일 해군사령부를 방문해 연설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가핵무력 건설 노선이 밝힌 전술핵 운용의 확장정책에 따라 군종 부대들이 새로운 무장 수단들을 인도받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 해군은 전략적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핵억제력의 구성 부분으로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만간 신형 핵무기가 북한 해군에 도입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월 29일 총참모부 훈련지휘소를 방문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원수들의 불의적인 무력 침공을 격퇴하고 전면적인 반공격으로 이행하여 남반부 전 영토를 점령하는 데 총적 목표를 둔 연습참모부의 기도와 그를 관철하기 위한 각급 대연합부대, 연합부대 참모부들의 작전계획 전투문건”을 파악했다고 한다. 북한이 남한 점령을 총적 목표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8월 30일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였다. 한국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의 탄도미사일 2발은 각각 360여 킬로미터를 비행한 후 동해상에 탄착했다. 북한도 “전술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였으며 목표 섬 상공의 설정 고도 400미터에서 공중 폭발시켜 핵타격 임무를 정확히 수행하였다”라고 보도했다. 이날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비행거리를 고려할 때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를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3. 평가
1) 훈련에서 한미가 밀렸다
이번 훈련에서 한미가 밀린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한미연합훈련 기간 한미가 보여준 훈련은 야외 기동훈련의 수가 증가하고 B-1B 전략폭격기를 전개하였으나 전반적으로 특별한 것이 없는 훈련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한이 선보인 무기들은 핵을 탑재한 신형 무기들로 보인다.
훈련의 목적은 내부적으로 전투준비 태세를 점검하는 것도 있지만 훈련을 공개하여 상대방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것도 있다. 이런 면에서도 한미가 밀린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이번 한미연합훈련에서 가장 강력한 훈련은 B-1B 전략폭격기를 전개한 연합공중훈련이다. 일부 언론에서 북한이 B-1B 전략폭격기 전개를 매우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B-1B 전략폭격기 전개는 매번 반복되는 훈련이고 비행 전개만 할 뿐 구체적 폭격 훈련이 없다. 이런 반복적이고 새로운 것이 없는 훈련을 북한이 얼마나 두려워할지 의문이다.
반면에 북한에서 8월 30일 발사한 전술 탄도미사일 훈련은 구체적이다. 북한은 중요 지휘거점과 작전비행장을 가상한 전술핵 타격훈련을 하였고 목표 상공의 설정 400미터에서 공중 폭발시켰다고 발표하였다. 훈련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전도를 보며 한국 계룡대 부근을 가리키는 사진이 공개한 적이 있어 계룡대를 구체적으로 상정하여 폭격훈련을 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보도를 접한 계룡대 근무자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아마 계룡대 근무자는 머리가 하얘졌을 것이다. 우선 북한의 핵공격 위치가 구체적이고 핵공격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크며 핵공격을 막을 방법도 없으므로 계룡대 근무자의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비단 계룡대뿐만이 아니다. 과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재하는 군 관련 회의 사진을 보면 용산, 평택 등 우리 지역을 지적하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공격할 지휘부와 주요시설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지휘소(탱고)는 언론에 위치가 공개되었고, 용산 벙커는 이미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위치가 공개되었다. 목표 위치가 구체적이면 공포심과 두려움은 배가 된다. 반면에 북한 지휘부의 정보는 알려진 바가 없다.
2) 의지에서도 밀리고 있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핵공격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우리의 핵무력은 전쟁 억제와 평화 안정 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 시 제2의 사명도 결행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강순남 국방상은 이번 열병식 연설에서도 이와 같은 부분을 숨기지 않았다. 강순남 국방상은 연설에서 “전략자산들을 조선반도에 들이밀기 전에 미 본토 전역을 뒤덮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핵무력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발언했다.
북한은 일관성 있게 핵무력 사용과 필승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선제타격을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요격이 사실상 불가하다. 조짐이 보일 때 3축 체제의 가장 앞에 있는 킬 체인(Kill-Chain)이라는 선제타격밖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지금 없다”라고 선제타격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선제타격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0월 14일 출근길 문답에서 선제타격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선제공격에 사전 대응하는 선제타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인한 듯한 발언을 했다. 그 이후에 윤석열 대통령의 선제타격 발언은 사라졌다.
또 북한이 공격하면 2~3배로 대응하는 비례 대응 원칙도 사라졌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북한에 강력한 대응책으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그것에 대응하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비례 대응 원칙을 천명했다.
2022년 11월 초에 북한이 4차례에 걸쳐 다양한 위치에 다량 다종의 미사일 발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북한이 울산 앞바다에 발사하였다고 주장한 2발의 순항미사일은 탐지 실패 논란까지 불거졌다. 당시 합참은 북한의 주장을 부인하였지만 비례 대응은 고사하고 탐지마저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무인기 사건에서도 비례 대응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2022년 12월 26일 북한 무인기 5대가 남쪽 영공으로 넘어온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중 1대는 수도권까지 침투하여 7시간 동안 머물다가 북한으로 돌아갔다. 뒤늦게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무인기들이 우리 쪽 영공에 침투하자 비례성 원칙에 따라 우리도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우리 무인기 2대만 잠깐 북한에 보냈을 뿐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비례 대응 원칙은 완전히 무너졌다.
4. 분석
그렇다면 이번 한미연합훈련을 원래 목표대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강력하게 진행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태평양 실사격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이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2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태평양을 우리의 사격장으로 활용하는 빈도수는 미군의 행동 성격에 달려 있다”라고 밝혔다. 북한이 태평양 상공에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주변국들과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여 미사일을 고각 발사했다. 그런데 김여정 부부장의 성명을 통해서 태평양으로 정각 발사하겠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뒷부분에 미군의 행동 성격에 달려 있다는 단서 조항을 붙였다. 미국으로서는 한미연합훈련에서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태평양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사격했을 때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선 미사일이 발사되면 이것이 훈련인지, 실전인지 알 수 없으므로 문제가 발생한다. 또, 훈련이라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도 문제이고 요격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만약 요격하지 않는 경우 북한은 앞으로 계속해서 미사일을 발사하게 될 것이고 미국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요격을 시도하면 북한이 전쟁으로 받아들여 바로 전면 핵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요격에 실패하였을 경우 미국의 위신은 땅바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사격 자체를 막는 것이 최선책이다. 따라서 미국은 실사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미연합훈련을 강력하게 진행하지 못한 것이다.
둘째는 국민 여론이다.
이번 한미연합훈련은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열린 훈련이어서 주목도가 높았다. 한·미·일 정상회의 후 윤석열 대통령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이것은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의 발언에서 알 수 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8월 20일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 및 을지훈련 관련 브리핑에서 “어느덧 돌아보니 우리가 세상의 맨 앞에 서서 미국, 일본 같은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와 있다고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로 지지율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국정 운영은 물론 한미연합훈련도 강력하게 진행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하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잼버리, 이동관 사건을 소개하였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한·미·일 정상회의였다. 여론조사공정이 8월 24일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국민 38.8%가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53.2%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미·일 정상회의는 사실상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회의였다. 우선 많은 국민은 한·미·일과 북·중·러 대결 국면에서 전쟁 불안감이 높아졌을 것이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돌격대 행동이 경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우리나라를 짓밟는 마치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지지율은 하락했다.
전쟁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여론이다. 실전 같은 훈련 역시 적극적인 국민 여론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때문에 한미연합훈련을 강력하게 진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5. 결론
현재 한반도 전쟁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자칫 한미연합훈련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위기를 평화적으로 관리해야 할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에 밀착하여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북한은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가용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며, 핵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라고 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모두 공산 전체주의 세력으로 매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모든 것을 국민의 책임으로 돌리고 급기야 국민을 적으로 삼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8일 국힘당 연찬회에서 “이번에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거 보라”며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건 없고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를 반대하는 국민을 향해 선전포고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윤석열 대통령을 가만히 두었다가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어렵다. ‘윤석열 퇴진’이 평화고 답이다. 모든 민주진보 세력은 국민과 함께 윤석열 퇴진에 나서야 한다.
저는 1999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자라면서 저는 종종 제 아시아인으로서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곤 했는데, 그럴 때면 부모님께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이유가 부모님의 입양 때문이라고 대답해주시곤 했습니다. 입양에 관해 자세히 모르던 저는 오랫동안 입양 대신 부모님을 탓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그리고 지금 한국에 와서 대학원을 다니며 줄곧 한국 해외입양의 역사와 제도적 배경을 연구하고 조사하고나서 부모님이 네덜란드로 입양된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과 그리고 제가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것 모두 바로 한국 정부의 뚜렷한 정책적 선택의 결과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2022년 12월과 2023년 6월에 각각 34명과 237명, 총 271명 한국 해외입양인의 불법적 해외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개시를 결정했습니다. 과거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시기에 이루어진 해외입양 과정에 발생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와 그 과정에서 입양기관과 국가의 책임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루어질지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첫 디딤돌을 놓았다는 점에서 해외입양인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반갑고 뜻깊은 소식입니다.
이 실천에 힘입어 저는 부모님과 함께 네덜란드·한국인진상규명그룹(NLKRG, Netherlands Korean Rights Group)을 세워 네덜란드의 입양기관과 국가에 대한 책임규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두 부모님 모두 한국 해외입양인인 저처럼 전세계에 공식적으로 17만 명이 넘는 해외 한인 입양인의 후손들(자녀나 손자녀)은 한국 사회에서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한국 정부가 다양한 한국 문화 프로그램에서 해외입양인 자녀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몇 년 전이며, 지금도 입양인 후손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은 여전히 부재합니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는 해외입양인 후손이 자신의 혈통에 대한 정보에 대한 접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입양기관과 정부가 입양 배경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해외입양인이나 그 후손에게 공유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입양인 모두가 느끼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후손들은 자신의 혈통과 뿌리에 대해 정보를 요청할 자격이 없으며, 또한 법적으로 부모나 조부모의 친생가족을 찾고 알 권리를 전혀 갖지 못하고 배제되어 있습니다. 입양 배경과 입양 전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에 관한 한국 입양특례법의 조항은 입양인 본인만이 정보 접근을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입양인의 후손은 입양된 부모나 조부모가 사망했거나, 살아 있더라도 한국의 친생가족 찾기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조부모나 증조부모, 또는 한국의 가족, 친척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해외입양인 자녀가 직면하는 또 다른 문제는 한국 국적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해외입양인은 2010년 국적법 개정으로 입양 당시 박탈된 한국 국적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외입양인의 직계비속은 양부모와 달리 다른 외국인과 동일하게 귀화 신청을 해야 하며, 이들의 국적 회복에 대한 별도의 법적 규정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적법 제6조는 후손이 3년 이상 대한민국 거주자라는 조건으로 해외입양인이 한국 국적을 회복하지 않아도 귀화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7조의 규정에 따라 '특별귀화'를 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입양인인 부모가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한국에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두고 있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두 가지 방법 모두 해외입양인에게 적용되기에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또한 국적법 제10조 제2항 제3호에 따르면 해외입양인은 한국에서 다른 국적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기존 국적의 포기 의무를 면제하는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국적법 제10조에 따라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2010년 국적법 개정으로 해외입양인이 면제 대상에 추가되었지만 당시에는 해외입양인의 직계비속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해외입양인인 부모가 한국 국적을 회복할 경우 그 자녀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자리매김하려 해도 현재 법상으로는 그게 어렵습니다.
이러한 법적 어려움은 여러 세대에 걸친 언어적, 문화적 단절에 더해집니다. 한국 정부와 사회는 해외입양인을 지원 대상자로서 인식하는 것처럼 해외입양인 자녀들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한국 아동이 처음으로 해외로 입양된 지 46년 만인 1999년, 저는 태어났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24년이 흐른 지금, 저보다 어린 한국 아동 2만7000여 명이 추가로 해외로 입양되었습니다. 매년 1000명이 넘는 수입니다.
해외입양 70년을 맞는 우리는 해외입양인의 자녀뿐만 아니라 손자녀까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해외입양 경험이 입양된 당사자인 해외입양인의 경험을 넘어 세대간 전승이 어떻게 이루어갈지 해외입양이 개인, 가족, 입양국가와 출생국가에서 어떤 무게와 의미를 갖는지 살펴볼 때가 무르익었음을 말해줍니다. 해외입양은 어떤 의미에서든 과거에 머문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도 이어지고 있고 또 미래로 이어져갈 이야기인 것입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 개시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플릭워트 씨. (제일 왼쪽) ⓒ필자 제공
▲어린 시절의 플릭워트 씨 가족 사진.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입양인이다. ⓒ필자 제공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조사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 과정에서 인권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6월 8일 추가로 237명에 대한 조사 개시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입법촉구 7차 교사 집회에서 서이초 교사의 대학원 동기들이 추모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뉴스1
"우리는 서로를 살리려고, 어떻게든 교육을 놓지 않으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을 파면·해임하겠다는 교육부는 대체 뭐했습니까!"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를 이틀 앞둔 2일, 교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은 미흡한 수준이고, 학교 현장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서이초 교사의 49재에 맞춰 진행하는 교사들의 추모 행동을 '불법 행위'로 규정한 교육부는 교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에 참석한 인원만 25만여명. 당초 10여만명의 교사들이 모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집회 당일 예상을 훨씬 웃돈 교사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번 집회는 서이초 교사가 숨진 뒤 매주 열린 집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집회다. 전국에서 대절 된 버스만 600여대로 알려졌다. 이른 시간부터 검은색 옷을 입고 모인 교사들은 국회 앞 도로부터 여의도공원까지 이어지는 긴 도로를 가득 메웠고, 집회가 시작된 후에도 참석 인원은 계속 늘어났다. 그만큼 교사들의 분노와 슬픔이 깊고 크다는 방증이다.
'법·원칙' 운운한 교육부에 현직 교사의 분노 "교사 지키는 게 두렵나"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입법촉구 7차 교사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3.9.2 ⓒ뉴스1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 알려진 직후부터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는 49재에 맞춰 '공교육 멈춤의 날'을 추진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49재가 평일인 만큼 교사들이 연가·병가 등을 사용해 추모의 마음을 모아내자는 취지였다. 학교 자체에서 임시휴업이나 단축 수업을 결정한 곳도 많았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가 이러한 교사들의 추모를 '집단 불법 행동'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을 예고하면서 교육 현장을 혼란에 빠트렸고, 교사들의 반발도 절정에 달한 상태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인 A 씨는 이날 집회에 참석해 최근 교육부가 학교에 보낸 공문을 공개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A 씨가 공개한 공문에는 '아이들의 학습권을 외면한 채 수업을 중단하고 집단행동을 하는 등 불법 행위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 교육부에서도 법과 원칙에 의거해 학사 운영과 복무 관리가 이뤄졌는지 점검하고 대응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A씨가 공문에 적힌 내용을 한 문장씩 읽어내려가자 집회 현장 곳곳에서 거센 야유가 쏟아졌다.
A 씨는 "그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을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지켜왔고, 지금도 지켜오고 있다"며 "그런데 그 법과 원칙을 열심히 지키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돌아가셨다. 이런 선생님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추모하는 게 동료 교사로서의 법과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A 씨는 "당신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해야 할 상대는 법과 원칙을 누구보다 열심히 지킨 교사들이 아니라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아 공교육을 멈추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법과 원칙을 누구보다 열심히 지키는 교사들이 모이니 두려운 건가. 돌아가신 선생님을 죽음으로 내몰아 공교육을 멈추게 만드는 사람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벌하는 게 두려운가.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한 교육 활동을 하는 교사를 보호하는 게 두려운가"라고 따져 물었다.
A 씨는 "우리는 오늘도 대한민국 공교육이 정상화되길 바라는 국민으로서 법과 원칙을 지키고 있다. 우린 언제나 학생들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가르치는 교사로서 법과 원칙을 지키고 있다"며 "이제는 당신들이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교단 떠난 한 교사의 호소 "49재 함께 기리는 건 권리"
"명분·가치 없는 칼날에 떨지 않을 것" 결기 보인 교감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앞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서 지난 7월 숨진 서이초 교사 대학·대학원 동기 동료들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전직 고등학교 교사 B 씨도 무대에 올라 49재 추모에 마음으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B 씨는 지난해 세종시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학생이 작성한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에서 성희롱 피해를 당했던 교사다.
B 씨는 "이제 더이상은 누군가 지쳐서 교단을 떠나는 일, 부당하게 직업을 잃는 일, 망가져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실효성 있는 입법과 행정 시스템 정비로 답해야 한다"며 "전 여러모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까지 고인을 추모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B 씨는 "9월 4일, 여러분들이 각자 연가, 병가를 써서 고인의 49재를 함께 기리는 일은 한 인간이자,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여러분이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리"라며 "그 누구도 여러분을 부당하게 겁박할 순 없다. 너무 쉽게 겁을 먹고 입맛에 맞는 호소만 해서는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저도 서이초 선생님의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9월 4일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며 "고통스럽더라도 살아남아 끝까지 기억하고 말하고 행동하자"고 당부했다.
충북 괴산북중학교 최진욱 교감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교사들의 49재 추모를 지지했다. 최 교감의 발언은 대독을 통해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에게 전해졌다.
최 교감은 "아빠는 너 같은 네 동료의 죽음을 지키지 못해 부끄러웠다. 네 동료가 죽어가며 우리를 불렀을 그 부름에 이제 나도 용기를 내련다"라며 "내 나이 들어 교감하려, 교장하려 너에게 부끄러운 모습 보이지 않겠다"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최 교감은 "명분도 가치도 없는 징계 운운하는 칼날에 떨지 않겠다. 그들이 주는 징계에도 끝까지 저항하겠다"며 "징계를 받아야 할 이는 어린 교사를 지켜주지 못한 우리들이다. 당당한 너희가 아니다. 살아 실천하는 선생님이 되어라. 역사에 맞서고 불의에 싸워라"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한편, 이번 집회를 주최한 '교육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9.2 교육을 지키기 위한 정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7월 18일 그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생존권과 교권을 보호해달라는 요구에 교육 당국은 몇 가지 정책과 고시로 응답했지만, 그 정책들은 교사를 보호해 줄 수 없다"며 정책 요구안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정책 요구안에는 ▲아동복지법 개정 ▲학생, 학부모, 교육 당국의 의무와 책무성 강화 ▲즉시 분리된 학생의 교육권이 보장되는 현실적인 대응 방안 마련 ▲전국적으로 통일된 민원 처리 시스템 개설 ▲학교폭력 개념의 재정의 ▲교육과 보육의 구분 ▲교사의 수업, 평가, 생활지도 등 교육에 대한 권리의 온전한 보장 ▲모든 교육 관련 법안 및 정책 추진 전 과정에 교사 참여 등의 내용을 담았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입법촉구 7차 교사 집회에서 서이초 교사의 대학원 동기들이 추모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뉴스1
모두가 윤석열 대통령의 '화려한 변신'에 관한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통합의 정치인"이 되겠다고 한 그는 어떻게 '이념의 투사'가 됐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완성형 정치인이 아니다. 학습형 정치인이다. 관료에서 정치로 직행한 많은 정치인들이 그랬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운동권 정치'에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 보인 적은 있지만, 최소한 '이념형 정치인'으로 분류되진 않았다.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한 윤 대통령은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취임 1년 반만에 그는 '이념'을 초고속으로 학습하고 "국가에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이념"이라고 주장하며 '반공 투사'가 됐다. 처음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을 통합의 정치인인 줄 알고 뽑았던 중도층 유권자들은 아주 낮선 정치인 윤석열을 마주하고 있다. 1년 반 동안 대통령직을 '경험'하면서 이것 저것 해 보더니 어느새 박근혜를 능가하는 '이념'에까지 당도했다.
사실 우린 그런 정치인을 한 명 알고 있다. 자유한국당 시절 황교안 대표다. 황교안은 관료 시절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외유내강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직접 연주한 색소폰 CD를 발표해 검찰 안팎에서 '색소폰 부는 검사'로도 알려져있다(조선일보)"는 평을 받았다. 그는 보수 정당의 대표가 된 후 '이념 전사'로 거듭난다.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패스트트랙은 좌파독재정권 수명연장을 위한 입법 쿠데타"라고 했고, "공수처가 들어오면 자유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왜 우리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싸워야만 합니까"라고 자문한 뒤 "(문재인 폭정으로부터) 이 위대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자답했다. 그리고 아스팔트로 나가 전광훈과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투쟁했다. 결말은 모두 다 알고 있다. 대표직을 걸고 총선에서 종로구에 나가 패배했고, 당도 참패했으며, 대선 후보도 못 됐고, 정치적 부활도 요원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시절 황교안 대표 수준의 '이념'으로 지금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념 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황교안 대표가 중도 표를 흡수해야 할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기 어려웠던 것처럼, 윤 대통령이 만약 후보 시절 "공산전체주의"와 투쟁을 다짐하거나 "국가에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이념",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가려고 그러고 왼쪽 날개는 뒤로 가려고 그런다면 그 새는 날 수 없고 떨어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장 참모들의 질책에 선거 전략을 교정당했을 것이다. 사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나오는 '수도권 위기론'의 핵심은 이 부분에 있다. 대선을 앞둔 윤석열 후보와 총선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2022년 이념 학습 전' 윤석열 후보가 아니라 '2024년 이념 학습 후' 윤석열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우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들은 알고 있다. 2022년 윤석열과 2024년 윤석열이 달라져 있다는 걸. 그러나 말은 못할 것이다. 공천 때문에.
'이념 투사' 버전의 윤석열 대통령이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말하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김성태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이 이런 말을 했다.
"역대 보수진영의 대통령께서 다 누구나 이런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이 평가에는 모종의 '속 시원함'이 담겨 있다. 김성태 의장의 평은 '역대 보수 대통령이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 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역대 보수 대통령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특히 역사와의 대화에 골몰한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3자 변제'를 추진하고,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명분을 제공하고, '한미일 동맹'의 가 보지 않은 길을 추구한다. 대만 문제에 대한 발언은 거침없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 지원을 시사한다. 한반도 주변 4강 국가에 관한 주요 현안들마다 불쑥불쑥 개입하고 발언하고, 과거 보수 대통령들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소원풀이 하듯 해치워 나간다.
그런 사이에 러시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이끄는 군사대표단이 지난 7월 25일 평양을 방문했고 '무기 거래'가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국경을 개방하고 교류 채비를 하고 있으며,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계기로 자국 내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미중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한국과 북한이 모두 분쟁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애틀랜틱카운슬)는 보고서를 냈다. 미중 전쟁이 남북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마저 점쳐질 정도로 동북아 정세는 불안하다. 한미일이 결속할수록 북중러도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에 안기고 일본을 끌어들이면 북한 안보 위협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정은 틀렸다. 이건 마치 부푼 풍선을 누르는 것과 같다. 대통령이 호전적이 될 수록 북한도 호전적으로 변한다. 중국을 껴안고 러시아를 끌어들인다.
대다수 사람들 그게 육사 교정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홍범도 장군 흉상을 콕 짚어내 정치권 한 복판에 던져 넣는다. 가만히 잠자고 있는 일제 괴뢰 만주국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을 복권하겠다며 '역사 내전'을 촉발했다. 노태우 김영삼 보수 정권에서 한중 우호 차원으로 시작한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사업'에 갑자기 제동을 걸더니, 시민들이 혁명으로 몰아낸 독재자 이승만의 기념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광복회장과 충돌한다. 공산전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나라 절반을 적으로 돌리더니, 자신이 몸담은 진영(보수)까지 가르며 나라를 '반의 반'으로 쪼개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은 "국가에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이념"이라며 "우리 모두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완벽한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이게 역대 보수 대통령들이 하고 싶었던 일들이었단 말인가? 어쩌면 보수 진영 '일부'는 속이 시원할 것이다. 문제는 전방위적으로 전선을 확장하고 있는 이념 잔치 후에 날아올 계산서다. 고독한 결단을 연신 내리는 "완벽한 자유인" 대통령, 그는 '반의 반쪽'이 지지하는 '이념의 이데아'를 하늘에서 잡아 끌어 지상 위에 구축하려 하고 있다.
좋다. 역설적이면서 흥미롭게도 한국 보수 정권의 순수한 이념적 평가가 가능해졌다. 무대는 내년 총선이다. 기왕 '이념 정치'를 전면에 내건 김에 제대로 된 평가가 있으면 좋겠다. 이건 '체념'이 아니고 '관찰'이다. 전광훈류의 반공 이념으로 총선에서 심판을 받아보면 좋겠다. 어쩌면 내년 총선은 대한민국에서 한번 쯤 보수 진영이 완벽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치른 역대 최초의 선거가 될 지 모르겠다. 그 결과는 보수의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는 스스로의 신념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윤 대통령식 '보수 밑천'의 앙상함이 입증될 것이다.
참고로 내년 총선에 당선될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보다 길다. 그리고 여당 의원들은 '정권 재창출'의 목표를 갖게 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목표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비극이 시작된다. 이건 한국 정치사의 공식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표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해병대 동기 전우와 함께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국방부 군 검찰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채 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항명 혐의와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더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23.09.01. ⓒ뉴시스 항명 등 혐의로 입건된 전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에 대한 국방부 검찰단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가 1일 군사법원에서 기각됐다.
군사법원은 이날 오후 박 대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후 “증거인멸 우려가 적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박 대령은 조사 보고서의 경찰 이첩을 중단하라는 해병대 사령관의 지시에 항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 장관에 대한 허위사실을 일방적으로 주장해 상관의 명예를 훼손시킨 혐의도 추가됐다.
군사법원의 박 대령 구속영장 청구 기각에 따라 국방부 감찰단의 박 대령에 대한 강제수사 시도가 무리했음이 드러났다.
앞서 박 대령 측이 신청해 열린 수사심의위원회 회의에서는 ‘수사 중단’ 의견이 더 많이 나왔음에도 출석 인원 부족으로 과반수가 나오지 않자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박 대령 측은 수사심의위원회 재소집을 요구했지만 국방부 검찰단은 이를 거부하고 곧바로 박 대령에 대한 소환 조사를 강행했다. 이것도 모자라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달 30일 박 대령에게 사전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그동안 검찰단은 피의자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위해 노력했으나, 피의자가 계속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안의 중대성 및 증거인멸 우려를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 검찰단의 구속영장 청구는 ‘입막음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박 대령이 진술서를 통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VIP가 격노한 뒤 상황이 바뀌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주장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VIP’는 대통령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에 따르면 박 대령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수사 결과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경찰로 이첩하려는 과정에서 ‘혐의를 빼라’는 등의 압력을 받았는데, 그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셈이다.
군인권센터는 시민 1만7천139명이 동참한 ‘해병대 박정훈 대령 구속 기각 탄원서’를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변호인단을 통해 군사법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우리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을 대표해 오늘 방송의날 행사에 왔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우리는 욕받이가 아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라!”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2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방송협회 행사장에서 피에로 가면을 쓰고 피켓을 든 채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방송사를 규탄한다. 방송을 만드는 진짜 주인공은 비정규직”이라고 외쳤다.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행사장을 지키던 경호원 5명은 이들에게 출입을 위해 사전 등록 확인을 요구하다, 이들이 일렬로 서서 시위를 시작하자 “나가세요”라며 제지했다. “준비할 시간을 줄 테니 5분이면 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구호를 계속 외치자 이들을 마주보고 일렬로 섰다. 소리를 듣고 일부 행사 참가자들이 나와 지켜보는 등 관심을 보였다. 경호원들이 시위 중인 활동가들 사진을 채증했다가 활동가들이 ‘경찰도 정해진 기준과 지침에 따라서만 채증할 수 있다’고 항의해 사진을 삭제하기도 했다.
기습시위를 마친 뒤 같은 장소에서 방송노동자 당사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이 방송사들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엔딩크레딧엔 방송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와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 샛별노무사사무소,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직장갑질119 등이 참여하고 있다. 회견 무렵엔 경호원들이 15명가량으로 늘어났다.
고 이재학 PD 동생 이대로씨는 여는 발언에서 “우리 사회에서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면, 특히 차별 받는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얘길 하면 선입견을 갖고 심지어 그들을 탓한다”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그나마 비판하고 이야기한 곳이 있다. 방송사들”이라고 했다.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사진=노지민 기자
이씨는 이 자리에서 “방송사들이 과연 (비정규직 문제가 있는 기업을 비판할) 자격이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들이 비판하는 그 어떤 기업, 기관보다도 속은 썩어있고 곯아있는 곳이 바로 방송사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방송사 노동자 절반 넘는 비율이 비정규직이고 이를 방관하다 못해 그들의 권리를 빼앗고 노동자 개인 인생과 목숨까지 빼앗는 곳이 방송사”라며 “방송사는 말 그대로 비정규직 백화점, 비정규직의 무덤”이라고 했다.
이씨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노동 문제와 사건 사고들이 방송사와 제작사들의 만행으로 벌어졌는데도 (방송사들은) 여전히 이 문제를 숨기기 급급하다. 방송사는 더 이상 스스로 정화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이제 우리 당사자들이 직접 나선다. 늘 접하는 미디어 속 화려한 영상과 연예인, 그 뒤엔 피와 땀을 녹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진짜 주인공들이 따로 있다. 바로 이들이 방송의날 주인공”이라고 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방송사의 6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방송의날 행사에서조차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방송의날에 참석하는 여러 관계자들이 정확하게 한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며 “엔딩크레딧은 작지만 아주 강력한 뜻을 모아 향후 여러 활동을 통해 비정규직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엔딩크레딧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소수의 정규직이 아니다. 비록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지만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땀과 희생 없이 방송 산업은 성장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 권리는 수십 년간 철저히 박탈 당했다”고 했다.
이들은 “(방송계갑질119, 방송스태프지부와 고 이재학 PD 사망 이후 결성된 대책위원회 등) 노동자들의 선명한 저항 이후 사용자 방송사들의 비정상적 맞대응도 뚜렷해졌다”며 “방송 제작 현장의 불법과 부당한 처우, 차별의 ‘엔딩’을 위해 내딛는 첫 걸음을 통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앞으로 주요 활동으로 △개별 법률 투쟁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더 폭넓은 대응 △전국에 흩어진 방송비정규직 연결고리 구축 △정규직-비정규직 간, 직종 간 벽을 넘어선 연대 등을 밝혔다.
9월 1일 일본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 추도비 앞에서 재일 도쿄 동포들이 주관한 '간또대진재조선인학살 100년 도쿄동포추도모임'이 거행됐다. [사진-이승현 통일뉴스 기자]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를 맞아 9월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의 요코아미초 공원 추도비 앞에서 일조협회와 재일 도쿄 동포들이 주관한 추도모임이 거행됐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경도본부와 동경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주최한 '간또대진재조선인학살 100년 도쿄동포추도모임'은 100년전 지진 발생시각인 오전 11시 58분에 시작했으나 100주기인 올해는 일조협회가 주축이 된 '9.1관동대진재조선인희생자추도식전실행위원회'의 추도식이 끝난 오후 1시 30분부터 진행됐다.
추도모임은 희생된 동포들을 위해 도쿄조선가무단의 가수가 낯익은 선율의 아리랑을 부르면서 시작됐다.
100년전 그날과 달리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에 유난히 많은 인파가 요코아미초 공원을 찾아 간토대지진 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도했다.
도쿄도지사의 추도사도 없었고, 우려했던 우익단체의 소란도 경찰 통제탓인지 찾아볼 수 없었다.
추도사를 하는 고덕우 총련 도쿄도본부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덕우 총련 도쿄도본부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1923년 9월 1일 도쿄를 비롯한 간토지방을 뒤흔들어 놓은 미증유의 대지진과 대화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갔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주민들을 죽음의 공포와 불안으로 떨게 하였다"며, "엄청난 자연재해와 사회적 혼란속에서, 일본정부는 무능하고 속수무책이었던 자기들에게 향한 민중의 불만과 비난을 억누르고 무마해보려고, 조선인 탄압을 그 더러운 수작으로 정하였다"며 일본정부의 조선인학살 책임을 분명히 밝혔다.
"열흘 남짓한 기간에 6천600여명의 무고한 우리 동포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범죄를 저지른, 일제에 의한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은 국제법이 엄금하고 있는 집단학살, 제노사이드"라고 딱부러지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9일 총련측에서 일본 정부에 간토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항의 요청을 했으나 도쿄도지사가 이를 거절했다고 하면서 "1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도 억울하게 학살당한 조선인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역사적사실을 은폐 왜곡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100년전 대진재를 당해 일본 당국이 무능한 대응을 무마하기 위해 자행한 조선인 학살과 오늘날 일본 정부가 코로나 대응 실패, 경제생활난을 막기 위한 실책을 무마하기 위해 더욱 더 국책을 극우로 몰아가면서 재일 조선인들과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 박해를 비열하게 감행하고 있는 사실이 너무도 유사하다"고 하면서 "이제라도 일본은 간토대지진 학살 만행을 스스로 진상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영혼앞에 용서를 빌고 배상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식민지 범죄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고, 평양선언의 정신에 따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조일관계 정상화를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에 대한 비판은 여러 차례 발언에서 계속 나왔다.
니시자오 기요시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일본측 대표는 올해 100주기를 맞아 도쿄도지사에게 처음으로 '추도비문' 정신 실현을 요청했으나 지난 지난달 14일 "대지진 피해자와 지진에서 살아남았지만 극도의 혼란속에서 발생한 희생자가 많다. 별도의 추도문은 보내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하고는 "많은 희생자를 낸 조선인 후손들의 추도식에 참석해달라, 추도문을 보내달라고 한 매우 정중한 요청에 대해 '대법요'에서 한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은 예의가 결여된 잘못된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날 100주기 추도식에는 허종만 총련 중앙 상임위원회 의장이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허 의장은 별도 발언을 하지는 않았는데, 양쪽으로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걸음을 떼면서도 추도비에 헌화하고 묵상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측 '조선인강제연행피해자, 유가족협회'에서도 추도문을 보내와 "희생자들의 상주가 되고 혈육이 되어 이국의 찬바람으로부터 그들의 넋을 지켜주고 위로"해 주었다며, 총련 조직과 재일동포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 "민족의 수난자들을 마음에 안고사는 조국 인민들과 재일동포들, 인륜을 귀중히 여기는 모든 이들의 위로속에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들의 영혼들이 부디 안식을 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발족한 '간토학살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 대표단도 추도모임에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연대 인사를 겸한 추도사에서 "일본 정부는 100년간의 기만을 멈추고 역사정의를 바로 세워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저녁 '조선인학살희생자추도와 책임 추궁을 위한 집회'에서 이홍정 6.15공동선언남측위원회 대표상임의장이 낭독하기도 한 추도사에서 이들은 "(간토대진 당시)허위사실로 계엄령을 발동하여 조직적으로 (조선인을)학살하였음에도 피해사실을 조사할 계획도, 유감을 표시할 의지도 없다고 밝히는 것이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이라면 이 얼마나 반인도적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인가"라고 개탄했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한반도 불법강점과 식민지지배, 강제동원과 일본군 성노예제 등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거부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평화헌법의 전수방위 원칙을 무력화하여 다시 '전쟁하는 국가',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고 과거사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에 한일 양국간 화해와 협력을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정부는 더 이상 간토학살의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간토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 △일제식민지 전쟁범죄의 진실을 교과서에 올바로 기술하고 교육하라. △전쟁하는 국가로 다시 돌아가려는 군사대국화 정책을 당장 멈춰라.△평화롭고 평등하며 공존 공생의 한일관계를 위해 적극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보존회 일본 도쿄 지부장인 김순자 한국전통무용가가 일조협회 추도식에서 조선인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무를 공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에 앞서 일조협회가 주축이 된 '9.1관동대진재조선인희생자추도식전실행위원회'는 오전 11시부터 역사적인 100주기 추도제를 시작했다.
추도제에는 12시 40분까지 2시간 가까이 일본의 측 각계 인사들이 추도사를 하고 요코아미초 위령당과 위령공원을 찾은 많은 인파가 긴 행렬을 이루며 헌화했다.
유난히 많은 인파의 헌화, 참배행렬이 이어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00년전 지진 발생 당시의 시간에 맞춰 정오를 2분 앞두고 울린 사이렌 소리와 함께 공원내 모든 사람들이 진혼을 위한 추모의 묵상에 들었다.
기쿠치 이사오(菊地功) 가톨릭 됴코 대주교는 이날 "100년전에 일어난 생명에 대한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행동의 역사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향해 힘을 합쳐 생명을 지키는 것을 맹세하고 세계의 평화,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가 유지되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바친다"는 추도문을 보내왔다.
호세이대학 교수인 나카자와 케이 작가는 "매년 9월 1일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백년전의 참극이 떠오른다"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기원했다.
또 "백년의 시간이 쌓이는 동안 한반도와 일본 사이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은 매일 평화롭고 풍요로운 소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렇지 못했던 현실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100년간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서로 존중하며 사는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카지마 쿄코 소설가는 "차별이 일상화된 가운데, 차별받았던 이들로부터 복수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최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100년전 간토학살을 기억했다.
"일본사회에는 차별의식과 표리일체된 외국인에 대한 공포가 지금도 존재한다. 외국인은 '범죄예비군'이라는 편견은 국가 행정이나 법의 이면에조차 숨어있다"며, "이 편견을 극복하지 않는 한 백년전의 학살을 과거의 일로 묘비에 담을 수 없다. 여러번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맹세가 필요하다. 9월 1일은 그런 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일본내 양심적 지식인의 고백을 들려주었다.
야스다 나츠키 '사람들을 위한 대화'(Dialogue for People)부대표는 "100년의 지평에 서서 현재의 (일본)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단지 모호하게 '추도'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통감한다"며, "애도와 함께 도쿄도를 비롯한 일본 정부당국이 역사를 직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본 각지에서 재해가 반복될 때마다 외국인을 비롯한 마이너리티를 가해자로 모는 사실무근의 '소문'이 돌아다닌다. 같은 폭력이 언제 반복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기감이 흐르고 있다"고 하면서, 이는 "가해의 역사를 외면하는 권력의 태도는 생명을 모독하는 것이고,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생명도 경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요코아미초 공원 내 위령당.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위령당 내 추모의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요코아미초 공원 정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금도 요코아미쵸 공원은 지진 발생시 집합장소로 사용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도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기자]
한편, 오코아미초 도쿄 도립공원은 1923년 간토대지진 발생 한해전 육군 피복창이 있던 곳으로 당시 많은 지진 피해자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가 때마쳐 불어온 강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간토대지진 피해자 위령당을 만들고 이후 도쿄 대공습(1945.3.10) 희생자들을 안치해 위령공원이 되었다.
1973년 도쿄도 의회의 찬성으로 '조선인 희생자 추도행사 실행위원회'가 처음으로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 조선인에 대한 추도행사를 진행했고 추도비도 이때 세워졌다.
추도사(전문)
그때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고모는 25살때 작은 삼촌을 가슴에 안고 이곳에서 불길에 휩싸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후 '지진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이 수 많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당했습니다.
당시 11살이였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고이시카와 방면으로 도망쳐 오른쪽 반신에 화상을 입으면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아버지는 지진 당시의 학살사건에 대하여 '너무하다. '요꼬하마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어 공객해온다'고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인간이란 무서운 존재다'라고 죽을 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100년이 지났습니다.
희생자 여러분, 그리고 추도비건립에 노력하신 여러분, 오늘은 기쁜 일이 있습니다.
제가 기다리던 많은 '일본인 동지'들의 참여입니다. 평화포럼이 실행위원회를 조직하여 년초부터 학습을 거듭하여 오늘 참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73년에 이곳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도립고등학교 교원이였던 저는 조합역원으로서 당시 미노베도정을 지지하고 운동했습니다.
조선인학살은 현실이고,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시 목격자, 경험자는 우리 주변에 수십만명이 있었습니다. 만약 력사수정주의자가 당시 '학살은 거짓말'이라고 했다면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학살'은 과학적으로 말하면 '공리'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일본인의 립장과 결의를 표현한 것이 위령비의 비문입니다.
이에 따라 도지사는 매년 '많은 재일조선인이 말못할 피해를 입고 희생된 사건은 우리나라 력사에서도 보기 드문 참으로 가슴 아픈 사건'이라며 비문정신의 실현을 위한 결의를 다짐해왔습니다.
주최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진상조사단도 운동단체로서 그 당시 전국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100년을 맞이한 우리는 도쿄도지사에게 '처음으로 요청'을 했고, 14일에 답변이 왔습니다. 거기에는 고모와 같은 '대지진 피해자'와 지진에서 살아남았지만 '극도의 혼란속에 있는 피해자'가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극도의 혼란속의 희생자'는 '학살당한 조선인'외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많은 학살 희생자'를 낸 '조선인 후손들의 추도식'에 '참석해달라',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매우 정중한 요청에 대해 '대법요'에서 한다는 리유로 거절해 온 태도는 례의가 결여된 잘못된 태도입니다.
8월 15일의 '종전기념일'에 일본무도관에서 '전몰자 위령제'가 열리고, 많은 분들이 참석합니다. 그 자리에서 천황이 '추도 및 위령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쟁희생자들에 대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황 부부는 각지를 돌며 사이판까지 위령의 려정을 통해 전쟁희생자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왔습니다.
유족의 곁에 다가가서 희생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추모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간또대진재 100년을 계기로 앞으로의 운동의 중심을 '사태의 발생을 막지 못한 국가(당시 군대, 국가경찰)와 그 잘못을 뉘우치지 못한 일본인의 책임, 특히 자경단의 정체와 죄,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사건의 본절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선 '극도의 혼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꾜도에 명확히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학살'의 원인의 뿌리에 있는 식민지지배의 실체, 에도시대와는 다른 메이지정부의 아시아·주변국 멸시의 정책, 학살시의 국제정세와 일본정부의 태도, 마을회란 무엇인가, 자경단을 '선량'으로 규정한 것은 무엇인가, 학살사건에 대한 정당의 움직임, 조선에 대한 정당의 태도 등을 다면적으로 추구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평화, 다문화공생, 인권존중 등의 길을 모색하자고 합니다.
저는 지난해에 피해자 여러분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올해부터는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그리고 일체화된 운동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하겠습니다. 생사를 넘어 서로 손을 굳게 잡고 나갑시다.
[추모비 명문]
추모비에는 문학가 후지모리 나루요시(藤森成吉)씨의 '이 력사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재일 조선인과굳게 손을 잡고 아시아평화를 이루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1923년 9월에 발생한 간또대진재의 혼란속에서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 때문에 6천여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대지진 50주년을 맞이하여 조선인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합니다.
이 사건의 진실을 아는 것이 불행한 력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민족차별을 없애고 인권을 존중하며 선린우호와 평화의 길을 여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사상, 신념의 차이를 넘어 이 비석 건립에 보내주신 일본인의 정성과 헌신이 일본과 조선 량 민족의 영원한 우호의 가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새겨져 있으며, 도의회 각 정당의 간사장, 로동조합 대표와 센다 코레야 씨 등으로 구성된 건립실행위원회의 '학살당한 조선인들에 대한 맹세문'이 있습니다.
10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우리 유가족들도 몇번이나 대가 바뀌고 억울하게 숨진 선조들의 모색조차 희미해졌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그날의 참화가 결코 지나간 옛일이 아닙니다.
살길을 찾아간 땅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생죽음을 당한 우리 선조들의 원한이, 간또땅 그 어딘가에 묻혀있을 혈육을 부르며 눈을 감지 못하던 부모들의 슬픔이 우리의 가슴에 피멍으로 맺혀있습니다.
어찌 유가족들뿐이겠습니까.
온 조선민족이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마저 조선민족 말살에 악용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잔인성에 치를 떨며 수난자들의 원한을 풀지 못해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분노를 더욱 더 끓게 하는 것은 일제가 패망한지도 80년이 가까워오는 오늘까지 억울하게 살해된 수만명의 조선사람들의 령혼을 향해 일본의 당국자들이 단 한번도 사죄나 추모의 인사를 드린 적 없고 오히려 그 유가족들인 재일조선인들을 그때처럼 차별하고 박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의 피해국이고 피해자들인 우리 나라와 우리 인민을 함부로 모독하며 파렴치한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해도 일본은 저들이 지은 죄악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 또 다시 100년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뀐다고 해도 민족수난의 력사를 잊지 않고 그 피값을 기어이 받아내려는 우리 유가족들, 우리 인민의 의지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당국은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들은 물론 히로시마와 나가사끼, 혹가이도와 마쯔시로 일본땅 곳곳에 쓰러진 수천 수천만명의 조선사람들의 원혼이 온 일본땅을 뒤덮고 있으며 수십년 세월 쌓이고 쌓인 우리 유가족들의 저주와 징벌이 일본땅을 노려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회에 희생자들의 상주가 되고 혈육이 되여 이국의 찬바람으로부터 그들의 넋을 지켜주고 위로해 준 총련 조직과 재일동포 여러분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외롭고 억울한 희생자들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따뜻한 보살핌은 조국과 고향의 정든 손길로, 혈육의 사랑과 정으로 간직되였을 것입니다.
정의와 민족을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면서 민족의 수난자들을 마음에 안고 사는 조국 인민들과 재일동포들, 인륜을 귀중히 여기는 모든 이들의 위로속에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들의 령혼들이 부디 안식을 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조국의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 유가족들의 이름으로.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주체 112(2023)년 9월 1일
일본 정부는 100년 간의 기만을 멈추고, 역사정의 바로 세워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 (전문)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으로 일본 지진 사상 최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조작된 ‘조선인 습격설’을 확산시키면서 계엄군을 출동시켰다.
1923년의 계엄령 발동은 허위사실에 근거한 국가명령이었고, 조선인과 중국인은 그 계엄령에 의해 학살당한 것이다. 1923년 국가책임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당시 총리는 ‘지금 조사 중’이란 말로 즉답을 회피했다.
2015년 이후 계속되는 의원들의 질의에는 ‘정부 내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도쿄도 공문관에 소장되어 있는 "간토계엄사령부 상보" 외 관련 기록들에 의하면 당시 군대나 경찰, 신문 등이 유언비어 전달에 기여해 혼란을 증폭시킨 점, 화재로 인한 폭발이나 우물물이 탁해진 일이 생긴 것에 대해 폭탄투척, 독 투척 등 테러 행위에 의한 것으로 오인한 점, 군대나 경찰에 의한 무기사용이나 보호를 위한 연행 등이 유언비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오인하였음을 의원들의 질의과정에서 정부관료가 확인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국가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정부내 자료가 없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하며 의회와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더구나 허위사실로 계엄령을 발동하여 군*관*민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학살하였음에도 일본 자경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며, 피해사실을 조사할 계획도, 유감을 표명할 의지도 없다고 밝히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면 이 얼마나 반인도적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란 말인가?
더우기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한반도 불법강점과 식민지 지배, 강제동원과 일본군 성노예제 등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거부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평화헌법의 전수방위 원칙을 무력화하여 다시 ‘전쟁하는 국가’,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간토 학살의 바탕에 깔려 있던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 역시 오늘날 재일조선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차별과 폭력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한일 정부는 역사정의와 평화를 향한 양국 시민들의 노력과 열망을 짓밟고 한일군사협력,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주변국과의 적대를 강요하기까지 하고 있다.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식민주의의 극복과 역사정의 회복이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역사부정과 왜곡은 또 다른 갈등과 적대를 부추기며 침략과 분쟁의 역사로 되풀이될 수 있다.
한일 양국 간 화해와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일본 정부는 더 이상 간토학살의 국가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1. 일본 정부는 간토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
1. 일본 정부는 한반도 불법강점과 간토학살, 강제동원, 일본군 성노예제 등 일제 식민지•전쟁 범죄의 진실을 교과서에 올바로 기술하고 교육하라.
1. 일본 정부는 ‘전쟁하는 국가’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군사대국화 정책을 당장 멈춰라.
1. 일본 정부는 평화롭고 평등하며 공존·공생의 한일 관계를 위해 적극 노력하라.
실물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생산, 소비, 투자 3대 지표가 7월 일제히 하락했다. 1일 아침신문은 일제히 정부 전망과 달리 하반기 첫 달부터 경기 지표가 1월 이후 6개월 만의 ‘트리플 감소’를 기록하면서 ‘상저하고’ 가능성은 더 멀어졌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현재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는 상저하고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7월 전산업 생산(계절조정)은 전월보다 0.7% 줄었다. 산업 생산은 지난 4월(0.9%) 감소한 뒤 5월(0.7%)과 6월(0.0%) 증가 또는 보합을 보였다. 소비와 투자도 크게 위축됐다. 7월 소비는 전월보다 3.2% 감소해 2020년 7월 이후 3년 만에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설비투자 감소폭은 전월보다 8.9% 감소했고 11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1일 아침신문 1면
▲1일 경향신문
국민일보 “상저하고 흐름에 빨간불”, 서울신문 “빗나간 ‘하고(下高) 전망”, 조선일보 “상저하고 전망 흔들” 등 다수 신문이 경기가 하반기부터 반등하리란 정부 전망이 깨졌다고 했다.
정부는 계절 요인이 크게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예년에 비해 강수 일수와 강수량이 많아 외부 활동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또 “중국 경제가 살아나지 않아 수출이 6월보다 7월에 부진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7월 산업생산이 전월 대비 0.7% 감소했지만 월별 변동성이 큰 공공행정을 제외할 때 보합 수준”이라며 소매판매와 설비투자 역시 “기상악화와 차량 개별소비세 변동 등에 따른 일시적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일 국민일보
▲1일 조선일보
여러 신문이 이 같은 정부 시각에 우려를 표했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지속적으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1.8%)보다 0.6%포인트나 낮췄다. 한국은행(1.4%), 기재부(1.6%), 한국개발연구원(1.5%), 경제협력개발기구(1.5%), 국제통화기금(1.5%) 등 국내외 주요 기관 전망치와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하반기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민간의 분석과는 적지 않은 괴리감을 가진 ‘장밋빛’ 관측”이라는 지적이다.
▲1일 경향신문
중앙일보는 “일각에선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경기가 상승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말을 전했다. 한국일보는 “경기 반등 열쇠를 쥔 중국경제의 침체 우려가 커지는 데다 주력품목 반도체 수출 회복도 미진”하다고 했다.
▲1일 중앙일보
▲1일 한겨레
월급 역주행 “첫 마이너스 기록”
올해 상반기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임금이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다. 같은 기준으로 통계를 낸 2012년 이후 처음으로 낸 ‘마이너스’ 기록이다.
고용노동부가 31일 발표한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인당 평균 실질임금은 지난 1~6월 월 355만8000원으로 지난해 동기(361만3000원) 대비 1.5% 감소했다. 명목임금이 2.4%(9만2000원) 올랐지만 물가인상 때문에 실질임금이 되레 줄어든 것이다. 9개 신문 중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한겨레가 이 소식을 다뤘다.
상용직과 임시·일용직의 임금 격차도 눈에 띈다. 한겨레는 1·2면, 조선일보는 13면에서 상용직 노동자는 396만 3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5% 늘었지만 임시·일용 노동자는 174만 7000원으로 0.2% 감소했다고 했다.
▲1일 한겨레
▲1일 조선일보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소장은 한겨레에 “실질임금 감소는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소폭 오른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 외적인 환경 변화에 노동자 임금 상승이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며 “고용구조로는 일용직·초단시간 노동자 등이 늘면 전반적인 실질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비자발적 이직의 경우엔 임시·일용직이 87%가량을 차지하는 반면, 자발적 이직은 상용직이 83.7%를 차지해 일자리 안정성에 따른 차이가 뚜렷했다”고도 했다.
경향신문은 3면 기사에서 “노동자들 사이에선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지만 내년 최저임금(9860원)은 올해 9620원보다 2.5% 오르는 데 그쳤다. 이는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라고 짚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단식에 “당황” “명분 의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부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한 데 대해 다수 신문이 ‘명분’을 되물었다. 민주당이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한 핵심에 이재명 대표가 있다고 지적했고 일부는 체포동의안 처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배경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31일 취임 1주년을 맞은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권의 퇴행적 집권과 민주주의 파괴를 막지 못한 제 책임이 크다. 사즉생의 각오로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고 밝히고 국회 본관 앞 천막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또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을 윤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1일 세계일보
▲1일 세계일보
다수 신문이 이를 두고 ‘리더십 문제 타개 카드’라고 했다. 세계일보는 “김은경 혁신위원회 조기 좌초와 김남국 제명안 부결, 총선 위기론 부상 등에 따른 리더십 위기를 타개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취임 1년을 맞아 제기된 리더십 문제를 ‘대여 투쟁 강화’로 돌파하기 위한 수”라며 “사법 리스크에서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꼼수라는 시선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단식에 들어간 당대표에게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기는 부담스럽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일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이 대표 단식을 두고 기사 제목에 “3중 방탄 단식”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당내 사퇴론·국회 체포안” 방어를 위해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사설에선 “이 대표는 자신이 만든 민주당 혁신위 요구도 듣지 않았으면서 남에겐 쇄신을 요구할 수 있나”라고 했다.
한겨레는 “다만 이날 단식 선언을 두고 ‘사법 리스크’ 국면 전환용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피할 수 없었다”며 “지난 1년간 민주당이 대안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의 핵심에는 이 대표가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방탄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보유 파문 등에도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지지율이 낮음에도, 민주당에 국민 지지가 모이지 않는 것에는 이런 점들이 작동한 탓”이라고 했다.
▲1일 한겨레 사설
국민일보는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단식 투재이 “당황스럽다”며 “야당 대표가 단식으로 국정 쇄신과 개각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풍경이다. 단식 명분이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여권에서 ‘개인 비리 수사에 단식으로 맞서는 것’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1일 국민일보
한국일보도 “이틀 전 검찰 소환을 거부한 이 대표는 11일 이후 출석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은 다시 4일 소환을 통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한 단식으로 이 대표 건강이 악화된다면, 검찰은 소환 조사나 구속영장 청구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며 “문제는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당 전체와 연결시킨다는 점”이라고 했다.
▲1일 한국일보 사설
일 오염수를 처리수로 하자는 여권
정부와 국민의힘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되고 있는 ‘오염수’를 ‘오염 처리수’로 바꿔 부르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우리바다지키기 검증 TF’ 성일종 위원장은 지난 30일 “정치 공세를 위해 오염수라 부르고, 핵 폐수라 부르는 것”이라며 용어 변경을 공식화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0일 국회 답변에서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를 거쳐서 ‘처리된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맞는 표현”이라며 “용어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오염수를 처리하기 전의 오염수와 처리한 다음의 오염수는 방사성 물질 등 여러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구별해서 부르는 것이 보다 과학적”이라고 했다.
▲1일 한국일보
경향신문과 한겨레,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이 이 사안을 다뤘다. 한국일보는 이를 두고 “방류 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며 “일본의 방류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제해사기구(IMO) 런던협약·의정서 총회’에서 일본의 협약 위반 여부를 다퉈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폐기물 투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재절차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은 “현재로는 해양 투기로 보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일본 정부도 그런(희석했다는) 이유로 ‘처리수’ 또는 ‘오염 처리수’라고 쓰고 있긴 하다. 오염수라는 용어가 수산물 기피 심리를 과도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다면 수산업 종사자들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명칭을 변경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일본의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방류로 인해 우리 국민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산물 소비 감소로 판로가 끊기면서 생계를 위협받는 국민이 늘고 있는데, 방류가 언제 끝난다는 기약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에 추가 안전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게 맞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까지 수산업계 피해가 ‘가짜 뉴스와 허위 선동’ 때문이라며 야당과 언론에만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이날 예비비 800억원을 긴급 투입하는 피해 구제 대책을 내놓은 것을 두고 “방류 기간은 30년 이상이다. ‘일본 정부가 끼친 피해를 왜 우리 국민 세금으로 언제까지 메워야 하느냐’는 비판이 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1일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한국 정부가 방류 1주일 만에 처리수로 방향을 트는 것은 독단적이고 성급하다. 향후 수십년간 이어질 원전 폐로와 오염수 방류에 대해 그나마 인접국이 쥐고 있던 ‘제한적인 발언권’마저 포기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 않았다면 애초 생겨나지 않았을 불안감이다. 그런 불안감엔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했다.
▲1일 조선일보
한편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반일이 곧 정의’이며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는 악의 산물’이라는 믿음 때문에 수산업계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라며 처리수라는 단어를 썼는데, 조선일보는 8면 <尹, 우럭탕 싹 비우고 ‘국물 추가’> 보도에서 이를 인용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방문을 두고 “대통령의 노량진수산시장 방문은 1927년 경성수산 개장 이래 96년 만에 처음”이라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뒤, 일본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독립군은 물론이고, 민간인까지 무차별로 살해했다. 홍 장군은 수천 명이 죽는 간도참변을 겪은 후 러시아로 향했다. 타국에서 한인사회를 건설하여 독립운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해야 했다. 그는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레닌 이후 최고지도자가 된 스탈린은 한인들을 반사막지대인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쫓아냈다. 홍 장군은 1943년 10월 일본 패망과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홍 장군의 공산당 입당은 소위 ‘친일파’로 거론되는 이들처럼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독립과 한인사회 건설을 위한 일이었다. (▶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무장독립투쟁의 전환기’와 ‘강제이주와 쓸쓸한 말년’ 참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입당 경력을 문제 삼아 해군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함명 변경을 시사했다. “극우적 역사관에서 기인한 것 아니냐”라고 비판하는 야당 국회의원에게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자 하는 것 아니냐?”라며 사상을 검증하려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 총리는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체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야당의원 사상검증
“자유 빼려는 거 아니지?”
이날 예결위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범도함 개명 논란에 관해 질문했다.
홍범도함은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건조된 신형 잠수함이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등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홍범도함 함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과거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었다는 이유를 문제 삼았다.
이날도 한 총리는 당연히 잠수함의 함명을 변경해야 한다는 취지로 강변했다.
▷ 기동민 : 정부 입장에서 홍범도 잠수함 개명 문제 검토하고 있습니까?
▶ 한덕수 : 국방부에서 검토하리라 생각하고요. 군함에다가 그 전 소련에 공산당원의 자격을 가진 사람을 ... 저는 그거는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기동민 :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잠수함을 개명한 사례가 있습니까?
▶ 한덕수 : 글쎄요. 전 세계 사례가 어떤지는 저희한테 중요할 게 없습니다.
▷ 기동민 : 중요하죠.
▶ 한덕수 : 우리의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그 군함을 상징하는 ..
▷ 기동민 : 사례가 두 가지가 있는데, 나라가 망했거나,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이 마음대로 잠수함의 명칭을 개명하는 거죠. 대한민국이 망했습니까?
한덕수 국무총리가 3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8.31. ⓒ뉴스1
‘민생을 챙겨야 할 시기에 극우적 역사관으로 이념문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우리 국가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와 홍범도함 개명 등을 검토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역사관과 이념이 “우리의 국체”라며, “어떻게 국체를 극우라고 표현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 기동민 : 국방부 설명에 의하면 창군 이후 사람들로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1910년 돌아가신 안중근 의사의 탑이 거기 세워져 있어요. 어제 운영위에서도 논란됐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논란과 지적이 반복될 때마다 기준이 추가돼요. 전향됐기에 상관없다, 경제발전에 이바지했기에 상관없다, 도대체 무엇이 윤석열 정부의 기준입니까?
▶ 한덕수 :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확한 국체는 자유민주적기본질서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헌법 제1조에 의한 민주공화국에 맞지 않는 일은 당연히 고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 대답입니다
▷ 기동민 : 그게 기본신념에 맞지 않는다?
▶ 한덕수 : 주적과 싸워야 하는 군함이!
▷ 기동민 : 한쪽의 지극히 편협한 보수적이지 못해 극우적 역사관에 기인하는 겁니다. 왜 그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까지 그런 극우적 인식을 국민에게 설파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 한덕수 : 그걸,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우리의 국체를 어떻게 해서 도대체 극우라고 표현하는 겁니까!?
한 총리는 기 의원에게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자 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며, 기 의원의 사상을 검증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기동민 : 독립투사 5인에 대한 흉상을 이전할 것인가 철거할 것인가 이런 걸 당장 백지화하는 게 맞습니다. 건의도 총리가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한덕수 : 의원님 질문 들으면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자 하는 그런
▷ 기동민 : 전혀 그런 말씀 드린 적도 없고요.
▶ 한덕수 : 그건 아니죠? 그건 아니시죠? 자유를 빼고자 하는 건 아니죠~?
▷ 기동민 : 다시 질문드립니다. 민생이 중요한데, 국민을 이념 대립의 논쟁으로 비화시키는 잘못된 논쟁에 대해 백지화를 선언할 혹은 대통령에게 건의할 의향 있습니까?
▶ 한덕수 : 우리의 국체를 지키는 일이라면, 그런 건 거의 할 생각 없습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지법(농지개혁법) 위반 의혹에 대해 이균용(61) 대법원장 후보자가 ‘취득 당시 잡종지처럼 쓰여 법 위반’은 없었다고 해명한 가운데, 과거 이 후보자가 해명과 반대되는 판결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후보자는 “농지로 회복 가능한 땅은 농지로 봐야한다”고 판결했는데, 이 후보자가 ‘잡종지’라고 주장한 땅은 원상회복이 가능한 땅이었다.
31일 한겨레가 확인한 2011년 서울고법 판결문을 보면, 2011년 서울고법 민사26부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지목(땅의 용도)이 전(밭)인 토지의 경우에, 농지로 쓰이지 않더라도 그 변경 상태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농지로서의 원상회복이 이뤄질 수 있다면 그 토지는 여전히 농지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개인과 재단법인이 밭 증여로 놓고 벌인 ‘소유권이전 등기 등’ 소송으로, 재단법인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이 후보자는 해당 땅을 농지로 보고 개인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이 토지에 농작물 경작 흔적은 없었고 경사가 있어 밭으로 이용하기 어려웠지만 나물류 등을 재배할 수 있고 나무가 자라던 상황이었다.
이 후보자는 ㄷ씨 쪽의 손을 들어줬는데, 당시 이 후보자는 “옛 농지개혁법에 따르면 어떤 토지가 ‘농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토지의 사실상의 현상을 기준으로 정해야 하지만, 이 같은 현황주의를 철저하게 하면 실력으로 비농지를 만들어 국가의 농업정책에 파탄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내용대로라면, 이 후보자가 1987년 구입한 땅은 ‘농지’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이 후보자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1987년 장인과 처남 등 3명과 함께 지분 4분의 1씩 나눠 부산 동래구 명장동 530-2번지 땅을 구입했는데, 땅의 지목은 ‘답’(논)으로, ‘농지’였다. 국토교통부의 국토정보 플랫폼 항공사진을 보면, 1996년 부산 동래구 명장동 530-2번지 땅은 나무나 숲이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건물이 올라가는 등 농지로 원상회복이 불가한 상태가 아니었다.
대법원의 최근 판례도 지목이 농지인 땅이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해서 농지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2021년 대법원은 “법적 지목과 관계없이 실제 경작에 사용하는 토지의 현황에 따라 판단하도록 한 농지개혁법, 농지법의 취지는 농지를 보전하고 그 이용을 증진하고자 하는 것이지, 농지가 불법 전용돼 다른 용도로 이용된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농지에서 제외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땅의 상태에 따라 농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이 후보자의 판결도 있었다. 농지법에 따라 농지를 살 수 없는 법인이 직원 명의로 농지를 구매했다가 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물게 된 사건에서, 이 후보자는 “농지로서의 현상을 상실했고 그 상실 상태도 일시적이라고 볼 수 없어 이를 농지법에서 정한 농지라고 할 수 없다”며 “이 토지에 농지법이 적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이 땅과 관련한 농지법 위반 혐의 수사를 했던 검찰은 땅에 쓰레기가 매립돼 있어 농지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됐다고 판단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연출되고 있다. 니제르 군부가 프랑스를 반대하는 민중의 시위를 엄호하며 반프랑스 투쟁을 함께 하고 있는 것. 미국을 반대하는 민중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경이 동원되었던 우리 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지난 7월 26일 니제르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모하메드 바줌(Mohamed Bazoum) 대통령을 축출했다. 바줌은 현재 군부에 의해 구금된 것으로 전해진다.
2021년 출범한 바줌 정권은 친프랑스 정책을 추진했다. 바줌 정권은 프랑스를 반대하는 니제르 민중의 시위를 진압하고, 더 많은 프랑스 군인을 ‘초청’함으로써 프랑스 꼭두각시라고 불려 왔던 인물이다.
바줌을 추출하는 쿠데타의 주역은 바줌의 경호 대장 압두라흐마네 치아니(Abdourhmane tchiani)이다. 치아니는 바줌 축출 이후 국가수호위원회(CNSP) 의장이 되어 정권을 장악했다.
니제르 민중, 쿠데타 지지하며 반프랑스 운동 활발히 전개
쿠데타가 발생하자 반프랑스 운동을 전개했던 니제르 민중은 쿠데타 지지를 선언하며 반프랑스 투쟁을 적극화하고 있다. 쿠데타 발생 직후부터 수도 니아메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앞에 모여 쿠데타를 지지하는 한편, 프랑스 국기를 불로 태우면서 “프랑스를 타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개최된 쿠데타 지지 시위. 한 참석자가 "프랑스 타도, CNSP 만세" 피켓을 들고 있다.
8월에 접어들면서 이들의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프랑스 대사관에 이어 시위대가 향한 곳은 프랑스 군대 기지였다. 니아메 외곽에 위치한 프랑스군 기지에 연일 수천 명의 인원이 모여들어 프랑스 군대 철수를 주장했다. 쿠데타 이후 사실상 반프랑스 민중항쟁이 진행되고 있는 셈.
1904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던 니제르는 1960년에 독립했다. 비록 독립국이었지만, 니제르는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친프랑스 세력이 니제르 정치를 주도했으며, 니제르 민중들은 반프랑스 운동을 오랫동안 전개해 왔다.
우리 언론은 관심을 두지 않지만, 현지 상황을 보도하는 외신은 아래와 같은 니제르 민중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들은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저항할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군이 니제르에 주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형제, 우리 아버지, 우리 아이들을 죽였다. 프랑스인들은 떠나야 한다."
치아니 정권, 프랑스에 수출 금지령 내리고 프랑스 대사관 추방 결정
그렇다면 쿠데타에 성공하여 집권한 치아니 군부 정권은 이들 니제르 민중에 어떤 조처를 했을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은 집권 군부가 반프랑스 민중항쟁을 탄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치아나 정권은 그들을 탄압하지 않았고, 오히려 프랑스를 니제르에서 몰아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군부 쿠데타 성공 이후 치아니 정권이 처음 취한 조치는 축출된 바줌 정권이 프랑스와 체결한 모든 군사 협약을 파기한다는 선언이었다. 프랑스는 1,500명 정도의 군대를 니제르에 주둔시키고 있고, 그 기지에는 1,100명의 미군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치아니 정권의 요구는 표면적으로 프랑스 군대 철수이지만 이는 미군 철수가 수반되는 조치인 셈이다.
▲ 니제르 군부의 반프랑스 정책은 니제르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8월 6일 쿠데타의 주역 치아니가 지지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치아니 정권이 취한 다음 조치는 프랑스에 대한 수출 금지령이었다. 7월 31일 새로운 정권은 프랑스에 대한 우라늄과 금의 수출을 금지했다. 니제르는 세계 최대 우라늄과 금 생산국 중 하나이다. 프랑스는 니제르 경제를 장악하여 이들 광물 자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우라늄, 석유, 금 등 우리나라의 모든 부를 착취했다”, “니제르 국민들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없는 것은 프랑스 때문”이라는 니제르 민중의 성토가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취해진 조치는 니제르 주재 프랑스 대사관 추방령. 그러나 프랑스는 치아니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추방령을 거부했다. 결국 치아니 정권은 8월 27일 프랑스 대사관에 전기와 물 공급을 차단했다. 프랑스 대사관과 군사 기지에 물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도 “주권 국민의 적”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입장도 발표했다.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이 민중과 함께 반외세 자주화 투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반제 자주 세력과 제국주의와의 전쟁 위기 고조
제국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지배에 부역했던 현지 정치세력을 앞세워 반외세 자주화 투쟁을 억압하고 진압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법칙이다. 프랑스와 미국은 치아니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피력했고, 군사 개입을 시사했다. 과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15개 나라로 구성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역시 군대 동원을 언급하며, 니제르 쿠데타 세력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 8월 3일 미 국무장관 블링컨은 축출된 바줌 정권의 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미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국가수반들은 8월 10일 “연합대기군 배치”를 명령하고 자기 나라 참모총장들에게 “즉시 기동”을 지시했다. 연합군 지휘관들은 군사 기동을 위해 8월 12일 회의를 가질 예정이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소속 일부 국가들이 군사 개입과 지원을 거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가나에서 대규모 반전 집회가 일어났고 가나 의회는 병력 배치를 반대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나이지리아에서도 반전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의회에서 군대 배치 계획을 거부했으며, 나이지리아 시민들도 반전 시위에 나섰다. 나이지리아 반전 시위대는 “니제르인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니제르 침공은 서방 군의 음모(a plot by Western forces)”라고 주장했다.
니제르 접경국들은 군사 개입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니제르와 함께 반제국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니제르 접경국들은 최근 쿠데타에 성공하여 새로운 정권이 등장한 나라들이다. 말리는 2020년에, 기니는 2021년에, 부르키나파소는 2022년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각각 외세 추종 정권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이들 삼국과 니제르는 서아프리카에서 강력한 ‘반제국주의 벨트’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 빨간색 표시 국가는 '반제 연대'를 구축하는 니제르, 말리, 기니, 부르키노파소. 회색 표시는 니제르 군사개입을 시도하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소속 국가.
이들의 ‘반제 연대’는 상당히 견고해 보인다.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국가들이 군사 개입을 모색하자 니제르 군부 정권은 8월 25일 “대규모 기습을 피하기 위해” 니제르군에 “최대 경보”를 발령했다. 전쟁 불사를 천명한 셈이다.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정권은 “니제르에 대한 무력 개입을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니제르 실권자가 된 치아니는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의 군대가 나이지리아 영토에 개입할 수 있는 조치를 승인했다.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군대가 나이지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니제르 영토를 통과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치아니는 8월 26일(현지시각) 토요일 “우리에 대한 공격이 가해지면 (상황은) 공원 산책이 아닐 것”이라며 격렬한 군사적 대응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했다.
니제르 쿠데타로 촉발된 아프리카의 위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쿠데타 이전으로 돌리려고 하는 외세의 군사적 개입을 ‘반제국주의 벨트 역량’이 억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언제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아프리카 전쟁 위기는 서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 세력을 축출하려는 반외세 자주 세력과 제국주의 세력 간의 치열한 정치·군사적 대결의 성격을 띠면서 고조되고 있다.
니제르 시위 현장에 나부끼는 러시아 국기와 인공기
프랑스를 타도하자는 구호가 외쳐지는 시위 현장에 러시아 국기가 휘날리고, “푸틴 만세”라는 피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아프리카를 침략했던 국가와 달리 아프리카에 우호적인 접근을 하는 러시아에 대한 호감이 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아 왔다. 지난 7월 말 러시아는 아프리카 50여 개 국가와 정상회의를 진행한 바 있으며,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식량 공급을 늘리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 니제르 시위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러시아 국기와 "푸틴 만세" 피켓.
한편 최근 북 인공기가 니제르 시위 현장에서 펄럭이는 장면이 포착되어 눈길을 끌었다. 8월 28일 니제르 시위 현장을 소개하는 한 영상이 트윗에 올라왔다. 24초 분량의 이 영상 초반에 니제르인이 인공기를 들고 있는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 배경은 아직 확인되지 않지만, 미 제국주의에 맞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펼치고 있는 북에 대한 연대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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