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열린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답변은 ‘말 바꾸기’의 연속이었다.
처음에 이 후보자는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있던 시절 ‘홍보수석 요청’으로 국정원이 작성하고 홍보수석에게 보고한 ‘방송개입 문건’들에 대해 “거의 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전직 청와대 홍보라인들이 구체적으로 추궁하기 시작하자 “처음에 한두 번 가져와서 갖고 오지 말라 했다”고 말을 바꿨다. ‘본 적 있으면서 왜 본 적 없는 척 거짓말을 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과 ‘국정원 문건이 정상적인 문건이냐?’라는 질의가 이어지자, 이 후보자는 다시 “좌우지간 본 기억이 없다”고 또 말을 바꿨다. 그는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를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도 했다. 이 후보자는 몇 명 안 되는 행정관 중 일부가 국정원 직원이었다는 사실조차 “최근에야 알았다”는 의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 문건을 공개하며 질의하고 있다. 2023.08.18. ⓒ뉴스1
① 국정원 보고서 모르는 척하기
“거의 본 적 없다”
“모니터 보고 수준 아닌가?”
이날 인사청문회 오전 질의에서 고민정(서울 광진구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변인실과 홍보수석실에서 작성되거나 보고된 여러 방송장악 문건 목록을 이 후보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고 의원은 “보고받거나 요청했던 문건이 한 30여 건 정도 발견됐고, 그 가운데 실제로 실행이 확인된 것만 골라내니까 9건 정도”라며 “알고 있느냐?”라고 했다.
이 질문에, 이 후보자는 “언론을 통해서만 봤다”며 본 적 없는 문건이라고 답했다. 고 의원은 재차 “일상적인 보고까지 하나하나 다 보지는 못했다는 말인가?”라고 답변 취지를 물었고, 이 후보자는 “거의 본 일이 없다”고 재차 같은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해당 국정원 문건들은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2009년 12월 작성된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이라는 문건은 시사프로그램 제작진 및 출연자들을 “좌편향”, “골수좌파”, “노조원” 등으로 칭하며 “퇴출”, “교체”를 권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또 “가시적 성과 미흡 시 봄철 프로개편을 계기로 문제의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문서 가장 앞장 상단에는 “12.18 홍보수석 요청자료”라고 적혀 있고, 마지막 장 하단에는 “배포 : 홍보수석”이라고 적혔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요청에 따라 작성됐고, 홍보수석에게 보고됐다는 의미다. 당시 홍보수석은 이동관 후보자였다.
고 의원은 해당 문서 상단에 적힌 “홍보수석 요청자료”라는 문구를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도 했지만, 이 후보자는 마치 자신은 이런 문건을 전혀 본 적 없었다는 듯 “이미 여러 차례 해명했다. 그 당시 상주하던 국정원 직원이 수시로 각 수석실을 다니면서 뭐가 필요하냐 수집을 해서 보고를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문제의 국정원 보고서를 두고 “이건 모니터 보고서 수준의 것 아닌가?”라며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했다.
“해당 국정원 직원은 대변인실에 있던 사람이냐?”라는 질문에도, 그는 “나중에 홍보수석실에도 누가 한 명 와 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어서 알았다. 당시에는 몰랐다”라며, 홍보수석실에 국정원 직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이동관 후보자에게 질의하는 윤영찬 민주당 의원 ⓒ국회방송 생중계 화면 갈무리
② 못 봤다던 이동관의 ‘말 바꾸기’
“한두 번 가져와 갖고 오지 말라 해”
이동관 후보자의 발언은 오후 질의에서 추궁하기 시작하자 바뀌기 시작했다.
윤영찬(경기 성남시중원구) 민주당 의원은 △ 당시 청와대 홍보라인에서 근무한 5급 이상 행정관이 10~20명이라는 점 △ 노무현·김대중 정부에는 홍보수석실에 국정원 직원을 파견한 적 없었다가 이명박 정부 때 처음 파견했다는 점 △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에서 보면 국정원 파견은 홍보수석의 동의가 없으면 있을 수 없다는 점 등을 짚으며,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국정원 직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홍보수석이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라고 추궁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보고체계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추궁했다.
“황 모 행정관은 홍보수석실 내 유일한 국정원 파견관이었기에 뉴미디어비서관실 포함한 홍보수석실 내 여타 비서관실과 국정원의 업무연락을 맡았다. 이분이 한 일이 뭐냐면 매일 아침 데일리보고서, 기획보고서, 주문보고서 3가지 종류 보고서를 만든다. 김 모 보좌관은 아시죠? 김 보좌관은 수석의 보좌관이다. 그 보좌관에게 데일리보고서 등을 전달한다. 그건 아무한테도 주지 않는다. ... 그러니까 바로 홍보수석한테만 가는 문서라는 것이다. ... 박 모 비서관이 김 보좌관을 통해 (황 행정관에게) 지시했다. 거기에 포함된 게 김제동 등 일부 연예인,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KBS 조직개편 이런 (문건의) 내용들이다. 박 비서관으로부터 받아서 (황 행정관이) 국정원에 연락하면, 거기서 보고서를 가져오는 것. 그래서 다시 보고받고, 박 비서관에게 전달하는 거다. 근데 이 황 행정관의 데일리보고서와 기획보고서 이것은 홍보수석만 보는 건데, 수석만 보는 보고서에서 의문사항이나 수정요청이 있으면 박 비서관을 통해 다시 내려오는 거다. 그럼 그 얘기는 뭐냐면, 후보자가 수석을 할 때 그것을 보고 있었고 보고받아서 박 비서관에게 지시했다는 것. 거꾸로 주문보고서는 국정원에서 작성해서 황 행정관 통해 박 비서관 통해 수석에게 올라가는 거고. 근데 모른다고 할 수 있나?”
그러자, 이 후보자는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기관을 모욕하는 것 같아서 이 말을 안 하려 했는데”라며 보고서를 본 사실이 있다는 점을 실토했다. 그는 “그런 보고서를 처음에 한두 번 가져와서 갖고 오지 말라 했다. 참고가 되지 않는 내용뿐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이동관-국정원 문건' 주요리스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3.8.18. ⓒ뉴스1
③ 말 바꾼 이동관의 모르는 척
추궁 이어지자 “좌우지간 본 기억 없어”
‘정상적이냐?’ 질문엔 “무엇이 정상인가?”
이어지는 오후 질의에서, 고민정 의원은 “한두 번 가져와서 가져오지 말라 했다는 것은 봤다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 의원은 “문건 관련해서 후보자가 ‘모니터 보고서 수준’이라고 했다. 그래서 몇 개만 보여주겠다”며 2009년 작성된 ‘MBC 조기 정상화 추진 방안’ 등의 문건을 보여줬다. 해당 문건 ‘인적쇄신’란에는 “8월 27일 보수성향 이사 주도로 해임건의안 전격 발의, 공개적으로 사진사퇴 압박하라”고 적혔다. 고 의원은 “실제 3~4일 후 여권성향 이사장이 MBC경영진이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며 해임압박이 실행된다”고 부연했다. 또 고 의원은 “정규 편성에서 배제”, “문제프로그램 폐지” 등이 적힌 ‘방송사 가을 프로개편 계기 편파방송 근절 박차’라는 문건을 보여주며 “실제 폐지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파업 주동자 퇴출 등 후속조치 만전”이라고 적힌 문건을 보여주며 “이것 역시 며칠 후 MBC 노조위원장 해고되고, 집행부 18명 징계, KBS 노조위원장 비롯 60명 징계위 회부되며 실행됐다”라고 설명했다.
고 의원은 “이런 게 이동관식 모니터 보고서인가?”라며 “모니터 보고서 수준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사찰문건이다. 적절하고 정상적인 문건이라고 보나?”라고 추궁했다.
그러자, 이 후보자는 다시 말을 바꿨다. “좌우지간 나는 본 기억이 없다. 지시한 적도 없고”
재차 고 의원이 “정상적인 문건이라고 보나?”라고 반복해서 물었고, 그는 “정상이 아닌 것은 무슨 의미냐?”라고 되물었다. 고 의원은 “정상적인 문건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뭔가, 정상적인 문건인가?”라고 또 물었고, 그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정상이 아닌지부터 정의를 해주고 질문해야지”라고 되받았다. 비판적인 언론인, 제작진 쫓아내는 방안이 적혀있고 실제 실행된 문건에 대해 정상적인 문건이냐고 물었는데, ‘정상’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다.
“(한미일) 3개국 정상은 우리 세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 위기 또는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할 때 ‘협의할 의무’(a duty to consult)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을 서약하게 될 것이다.”
17일(아래 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한국 특파원을 비롯한 외신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개최한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오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들이 채택하게 될 문서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3국 정상은 한미일 협의 강화에 대한 정치적 공약을 담은 별도 문서를 채택하였다”면서 “역내의 공동 위협과 도전에 대해서 각국이 긴밀히 소통하면서 적시에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확인했다.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18일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캠프 데이비드 원칙」, 「캠프 데이비드 정신」,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이라는 문서 3개가 채택된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풀어 쓴 「공동언론발표문」 안에 “역내외 공통 위협요인이나 도전 요인이라든지 구체적 도발이 발생할 경우 3국이 각자 이익에 직결된다고 생각하면, 정보도 교환하고, 메시지도 조율하고, 대응 방안도 함께 협의한다는 문구가 있”는 데 “그 문구를 그대로 떼어 내서 별도의 문서로 정치적 공약(Commitment to Consult)이란 짧은 문건이 세 번째로 내일 발표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측 당국자와 달리, 한국 측 당국자는 이 문서가 법적 의무를 뜻하는 “duty”가 아니라 정치적 공약을 뜻하는 “commitment”임을 강조했다.
‘어쨌든 미니 나토(NATO)이거나 동맹에 준하는 합의 아닌가’는 의문에 대해, 미국 정부 당국자는 “공식 동맹 공약(a formal Alliance commitment)도 아니”고, “냉전 초기 안보 조약으로부터 솟아난 집단방위공약도 아니”라고 애써 선을 그었다.
“이 공약은 세 나라에 매우 중요한 데 지역 우발사태 또는 위협이 있을 경우 우리가 서로 즉각적으로 신속하게 협의할 것”이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일치시키고 함께 정책 조치를 취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 당국자도 “이러한 새로운 문건이 기존의 미일동맹, 한미동맹 조약을 침해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새로운 국제법적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 나라 중에 한 나라가 특정한 역내에서 발생하는 정치, 경제, 혹은 사이버, 혹은 군사 위협을 우리나라한테는 이게 위협이 아니니까 내가 세 나라 간에 지금 정보 공유를 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면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세 나라가 동시에 이것은 나한테 중요한 안보 위기다 할 때 즉시 얘기하면서 정보 공유하면서 메시지 조율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3자 협의체의 성격이 어떠하든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끼어들 발판이 되고, 미·일이 대만 문제에 한국을 끌어들이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이날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18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와 결과물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적 업적임을 누누이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둔 정치 행사임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한 미국 당국자는 1978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안와르 알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메나햄 베긴 스라엘 총리가 채택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기론한 뒤 “우리는 이번 정상회의가 그 수준이라고 믿는다”고 설레발을 쳤다.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23.08.17. 21:20:15 최종수정 2023.08.18. 07:28:37
미국 경제가 문자 그대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자리가 넘치고 활발한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1년간 30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미국 내 투자가 약속됐다.
경기 과열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져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미국 경제의 호조는 한국 경제에는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FT "미국에 300조 원 이상 투자 결정"
<파이낸셜타임스>는 16일(현지시간) '22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청정 기술 프로젝트 붐'이라는 기사에서 "1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은 IRA와 칩 및 과학법(반도체법)에 서명하면서 미국 산업 정책의 새 시대를 열었다"며 "8월 며칠 간격을 두고 통과된 두 법은 4000억 달러(약 536조 원) 이상의 세금 공제와 대출 및 보조금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FT는 지난 1년간 미국에서 투자가 확정된 11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직접 조사했다. 그 결과 "IRA 및 반도체법 통과 후 미국에서 최소 2240억 달러(약 300조1600억 원) 규모의 청정 기술 및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발표"됐다며 구체적인 투자 확정 내역을 정리했다.
최근 사례로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맥시온 솔라 테크놀로지(Maxeon Solar Technologies)가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10억 달러 규모의 태양광 패널 시설 투자를 발표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미국 회사인 퍼스트 솔라(First Solar)는 11억 달러 규모의 투자 지역으로 루이지애나주 이베리아 교구를 선택했다. 이는 루이지애나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자다.
미 전역으로 보면 최근 가장 큰 규모의 투자는 인텔(애리조나주 캠퍼스 확장), TSMC(두 번째 제조공장 건설 투자), IBM(뉴욕 허드슨 밸리에 투자), 마이크론(뉴욕 클레이에 미국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 건설) 등 반도체 업체로부터 나왔다.
대규모 투자로 미국 내 제조업의 귀환을 독려하는 한편, 투자 핵심을 재생에너지(친환경 및 전환)와 반도체(안보)에 맞춘 바이든 정부의 노림수가 맞아 들어갔다. 미국 산업 기반의 대대적인 재편을 꾀하고 동시에 강력한 도전자인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려는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미국 전역에 제조업이 돌아오고 있다. ⓒFinancial Times 캡처
"한국이 미국 투자 경쟁 주도"
이 대목에서 특히 FT는 한국을 콕 집어 미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국가로 꼽았다.
FT는 미국의 관련 법안으로 인해 "한국과 유럽 기업들이 국내(미국) 투자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며 "한국과 유럽 기업은 각각 20개와 19개 (미국 내 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해 외자 유입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투자 찬바람이 부는 국내 환경과 극히 대비된다. 경기 침체와 시장 확대 한계 등의 영향으로 인해 국내 글로벌 플레이어는 점차 해외 투자 비중을 키워가는 모습이다. 바이든 정부 정치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이른바 '팔 꺾기' 사례인 IRA 등의 장애물이 투자 경향을 결정적으로 정하는 영향도 있다.
관련해 FT는 관련해 한국과 유럽 등의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결정하는 배경으로 "미국 동맹국들이 불평등 경쟁의 장을 만들었다고 회자되는 IRA 보조금을 얻기 위해 자체 (투자) 정책을 발표하면서 프로젝트가 쇄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유럽 기업이 미국의 외국인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투자 건수가 20건으로 가장 많다. ⓒFinancial Times 기사 본문 캡처
이 같은 대규모 투자로 인해 미국은 새로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자리가 넘치는데 노동력이 부족하다.
FT는 반도체산업협회와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7월 보고서를 인용해 "컴퓨터 공학자와 엔지니어를 위한 100만 개 이상의 미국 일자리가 앞으로 10년 간 채워지지 않을 위험이 있다"며 "미국건설협회(Associated Builders and Contractors)는 미국이 새로운 공장 발표로 인해 올해에만 50만 명의 건설 노동자 부족에 직면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한편 바이든 정부는 정치적으로도 선거에 도움이 되는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FT는 "공화당 의원 80% 이상이 IRA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고 반도체법에도 미온적으로 지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공화당 지역구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공화당세가 강력한 지구에도 대규모 투자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다만 FT는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 위원회는 최근 IRA 약화 법안을 승인했고, 미국 우파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25는 이미 잠재적인 미래 공화당 정부가 (IRA, 반도체) 법안을 철회하도록 밀어붙일 장문의 매뉴얼을 만들었다"며 정권 교체로 인한 위험 요인이 있다고 밝혔다.
일자리 넘쳐서 문제, 소비 너무 뜨거워서 문제
일자리가 넘치는 가운데 소비는 강력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7월 소매판매(계절조정)는 전월 대비 0.7% 증가한 6964억 달러였다. 4개월 연속 증가했다.
아울러 이는 올해 1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였다.
고용-소비-투자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다. 이 같은 기조가 연방준비은행(Fed, 연준)가 주도하는 고금리 기조에서 나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연준으로서는 기준금리를 올려도 경기가 꺾이지 않아 인플레이션 위험이 더 커지는 점이 오히려 문제다.
관련해 7월 소매판매 발표 후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올해 3분기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를 종전 4.1%에서 5.8%로 상향조정했다. 미국과 같이 거대한 경제가 이처럼 빨리 성장한다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문제가 커진다.
실제 미 연준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관련해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채권 시장에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4.258%로 마감해 종가 기준 2008년 6월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이 올랐다.
앞으로 국제 물가 일제히 상승세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유가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올해 들어 최고치인 배럴당 84.40 달러까지 상승했다. 브렌트유(87.55달러), 두바이유(87.73달러) 역시 최고치였다.
이를 반영하듯 미 연준의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은 추가 긴축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연준 위원 다수가 미국이 여전히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에 노출됐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연준으로서는 기준금리를 더 끌어올려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경제 성장률을 꺾어야 물가 상승에 대비할 여유를 갖게 된다. 빠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공산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2022년 인플레이션 감소법 법안 서명 기념 행사에서 청중에게 주먹 경례를 하고 있다. ⓒReuters=연합
미국 기준금리 올리면 한국도 부담 커져
미국의 이 같은 경제 상황은 한국 경제에는 결과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우선 한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실제 미국 채권시장 움직임에 맞춰 17일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고점을 돌파하는 등 금융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10.9bp 오른 연 3.976%를 기록했다. 연고점이며 작년 11월 10일(4.07%) 이후 가장 높다. 지난해 당시는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시장이 요동쳐 긴급 유동성이 공급된 때다.
20년물, 30년물, 50년물 모두 연고점을 경신했다. 20년물은 8.4bp 올라 연 3.894%를 기록했다. 30년물은 7.0bp 상승해 연 3.841%가 됐다.
50년물은 6.6bp 올라 연 3.808%가 됐다.
이들 모두 작년 11월 16일(20년물, 30년물)과 11월 17일(50년물) 이후 최고치였다. 치솟는 미국 국채 금리에 맞춰 국내 국채 금리도 조정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미국과 정반대로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 상황을 고려해 한은은 기준금리를 장기간 동결 상태로 뒀다. 그러나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가 더 커지는 가운데 시중에 유동성이 대규모로 풀리는 현 상황을 언제까지고 내버려두는 것은 한은의 직무 유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서서히 커지고 있다.
다만 미국 소비 활황이 국내 기업의 수출 신장세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마침 원화는 약세를 이어가고 있고, 다시 강달러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수출 호조로 인한 혜택은 경제 전반에 퍼지기보다 일부 글로벌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한정될 공산이 커 보인다.
독립운동이 ‘공산 세력과의 싸움’이고, 민주화 투쟁이 ‘반국가세력의 준동’이라고 억설 하며 역사를 왜곡했다.
반공주의를 부활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를 야비한 패륜아 취급하고, 일본과는 이제 안보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마치 해방정국에 미군정과 이승만이 친일 경찰을 앞세워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처단하던 때를 연상케 한다.
예나 지금이나 퇴행의 목적은 명백하다.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더욱 소름 돋는 현실은 해방정국 친일파의 반공주의가 전쟁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윤 정권의 민주주의 퇴행도 전쟁을 향해 직진한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경축사의 4대 궤변
1. 공산 세력과의 싸움이 독립운동?
윤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며,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이는 궤변일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도 틀렸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전범국 일본의 강점에 맞선 조국 해방 운동이었다. 당시 독립운동의 최대 우군은 2차대전 연합군이던 소련. 이 때문에 해방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회‧공산주의를 지지한다는 결과가 77%P에 달했다.
▲1946년 8월 13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회주의 찬성이 70%, 공산주의 7%였으며 자본주의는 14%에 그쳤다.
독립운동은 좌우를 불문하고 일본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데 동의하는 전 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전개되었다. 연합군의 구성도 마찬가지. 소련, 미국, 영국, 중국으로 구성된 2차대전 연합군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힘을 합친 반파쇼 전선이었다.
이런 초보적인 상식을 대통령이 몰랐다면 경악할 일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미국과 일본을)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굳이 반공주의와 연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뒤이은 연설 내용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2. 공산전체주의 세력, 민주‧인권‧진보로 위장?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라고 진단하고,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라며 탄압을 예고했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민주‧인권 운동가와 진보 행동가는 군부독재에 맞서 이 땅의 민주화를 일구어 온 87년 세대와 그 토대 위에서 성장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의미한다. 이들이 민주시민과 힘을 합쳐 박근혜 퇴진 촛불을 들었고, 이들이 윤석열 정권을 검찰독재라 규정하고 퇴진투쟁을 벌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들을 표적으로 지목한 이유는 단순하다.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우리 현대사는 민주주의 발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민주화 세력이 한국사회의 주류다.
그러니 독재 권력을 부활하려는 윤석열 정권으로선 이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들을 탄압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윤 대통령은 이들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마치 해방정국에 미군정과 이승만이 친일 경찰과 극우 세력을 앞세워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구속한 때와 마찬가지 경우다.
이승만 정부가 수립될 당시 사회적 지지는 독립운동을 했던 사회주의자들에게 모아졌다. 이후 1949년 한 해 동안 이들 대부분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1만4천여 명이 투옥되었다. 반면 1949년 6월 6일 ‘반민족행위자처벌을위한특별위원회’(반민특위)는 테러를 당해 해산되고 말았다.
반민특위 해산으로 일제강점기 친일 경찰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정부의 경찰이 되었고, 친일 극우 세력은 활개를 치고 다녔다. 이들 친일 경찰에 의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구금되는 뼈아픈 역사가 시작되었다.
윤 대통령이 민주인사를 반국가세력에 비유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공안몰이를 예고한 것이다.
3. 유엔사 제공 일본 후방 기지, 남침 최대 억제 요인?
윤 대통령은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날조와 억측이다.
우선 유엔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군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1950년 7월 24일 도쿄에서 유엔사령부를 설립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는 유엔사를 창설할 권한이 없다. 유엔사 창설은 오로지 유엔 총회에서만 의결할 수 있다. 1975년 11월 유엔 총회에서 이 사실이 지적되면서 해체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미 국무부장관 키신저는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을 참칭한 한국 주둔 유엔사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유엔사는 아직도 해체하지 않았다.
일본이 후방 기지 7곳을 제공했다는 유엔사가 바로 유엔을 참칭한 가짜 유엔사이다.
다음으로 윤 대통령은 일본 기지가 남침의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언급은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및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꼴이되고 말았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안보관련 3대 문서를 개정하면서 ‘반격능력’을 확보한 상태다. 반격능력이란 유사시 적의 미사일 발사기지 등에 선제타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결국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일본은 북 미사일 기지를 선제타격할 명분을 얻었다. 또한 일본이 최근 영유권을 주장하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은 중국 본토를 향해 미사일을 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독도에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일본 후방기지가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요인이라고 했지만, 되려 최대 전쟁 발화 요인이다. 왜냐하면 북은 일본을 100년 숙적으로 여기고, 일본은 군국주의를 부활해 대륙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4. 한·일 양국은 안보 파트너?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추켜세웠다. 위안부와 강제동원,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정작 이날 기시다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특별히 사과의 메시지는 없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안보관련 3대 문서를 개정하면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공식 표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도 관련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일본은 과거 조선을 강점할 때 독도가 자기네 땅이었는데, 독도를 한국에 돌려준 적 없기 때문에 영유권을 주장한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에조차 독도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긍정적 신호를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미국은 지난 2월 동해상에서 한미일 훈련을 실시하며, 훈련 장소를 ‘동해’ 대신 ‘일본해’라고 표기했다. 한국은 미 측에 그러한 사실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훈련이 끝날 때까지 우리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앞으로 동해상에서 훈련할 때 일본해 명칭을 고수할걸로 확인됐다. 미 국방부는 “‘일본해’가 공식표기가 맞다”며 “‘일본해’라고 쓰는 건 미 국방부 뿐 아니라 미국 정부 기관들의 정책”이라고 답한 것으로 JTBC가 16일 보도했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공식표기한 미국이 만약 독도 관련 한일 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어느쪽 손을 들어 줄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석열, 궤변 쏟아낸 이유?
윤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를 보수 정권의 의례적 행태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경축사 내용이 너무 집중적이고 노골적이다.
윤 대통령이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궤변을 쏟아낸 결정적인 이유는 한미일 동맹을 강조한 미국의 요청 때문이다.
미국이 펼치는 신냉전 전략의 핵심은 북중러 악마화를 통한 고립압박이다. 이를 위해 미-일-한 군사동맹이 선차적 과제로 나섰다. 하지만 한일관계 개선은 한국 역대 어떤 정권도 풀지 못한 난제였다. 왜냐하면 한일관계는 일본의 진정어린 사죄가 전제이며, 위안부, 강제동원, 독도 등 현안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배상과 해명 없이는 풀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역대 보수 정권조차 지지율을 의식해 이런 전제를 허물 수 없었다. 일본도 과거 전쟁범죄를 인정하면 군국주의를 부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죄 요청을 외면해 왔다.
평행선을 달리던 한일관계에 조건 없는 개선을 먼저 제안한 쪽은 윤석열 정부다. 지지율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요청을 모두 수용한 것. 처음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구애 요청이 믿기지 않아 머뭇거렸지만, 바이든 미 대통령의 중재에 힘입어 한일관계 개선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국 일본은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재무장을 통한 군국주의 부활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북중러를 상대할 전쟁동맹인 미-일-한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3국의 군사훈련까지 정례화하기에 이르렀다.
18일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일본해’ 표기에 대한 문제 제기나 독도 영유권을 분명히 할 가능성은 없다. 한미일 전쟁동맹 구축이 순조로울 것이란 뜻이다.
한미일 전쟁동맹이 구축된 조건에서 미국은 미 본토만 위협 받지 않는다면 언제든 동북아에서 전쟁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 대만, 댜오위다오, 한반도 그 어디든 가능하다. 이중 가장 유력한 곳은 한반도다.
대만은 내년 1월 총통선거 전까지는 전쟁위기를 부추길 가능성은 낮다. 친미 성향의 민진당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댜오위다오도 마찬가지. 일본이 섣불리 중국과의 무력충돌을 결정할 리 없다.
결국 대선 때부터 선제공격 운운하던 윤 대통령만 남는다. 제 나라 국민 50만 명 이상이 죽어도 마치 전쟁 영웅이라도 된 양 화보까지 찍으며 국제사회에서 각광 받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보면서 윤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전쟁 까짓것 할만 하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78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윤석열 퇴진이야말로 한반도를 전쟁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며, 피땀으로 일구어 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독재로의 회귀를 막는 길임을 똑똑히 보여준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겨레, 국힘 추천 국회도서관장이 사용 자격없는 이동관에 북콘서트 개최
윤석열 미국 떠나 한미일 정상회의, 3각 안보협력 구축…동아 “평양 최근 폭발물 테러, 북한 정세 불안”
조선 “회사에서 반바지는 여전히 금기인가”…“사무실에서 반바지 입어도 세상 끝나지 않아”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18일 예정된 가운데 이 후보자의 아들 학교폭력 의혹에 대해 아들의 담임을 맡았던 전직 하나고등학교 교사가 경향신문에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아들이 하나고 1학년 때 이미 피해 학생들과 화해했으며 심각한 학교 폭력이 아니란 입장인데 해당 교사는 “화해했다는 입장에는 수긍할 수 없다”며 “화해한 적이 있더라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기 때문에 학생들이 진술서를 작성했고 상담하러 온 아이들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편 이 후보자가 사용 자격이 없는 국회도서관을 대관해 ‘북콘서트’를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겨레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등을 토대로 2019년 이 후보자가 공저한 ‘평등의 역습’ 북콘서트를 국회 도서관에서 개최했는데 국민의힘이 추천한 허용범 전 국회도서관장 지시로 열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허 전 관장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당시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국회도서관장이 됐다. 한겨레는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18일 미국에서 3국 정상회의를 열고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를 출범키로 한 가운데 평양 인근에서 폭발물 테러 정황이 있었다는 등 북한 정세가 불안하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동아일보는 1면 톱기사에서 ‘북한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1~2개월 전 평양에서 폭발물 테러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하며 지난 1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가정보원이 “북한의 올해 1~7월 아사자 발생건수가 240여건으로 같은 기간 평균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 사실을 함께 전했다.
조선일보 기자가 “사무실에서 반바지를 입어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며 반바지가 단정치 않다는 시각을 거두자는 칼럼을 썼다. 최근 여름 날씨가 유난히 더웠던 것도 반바지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했다.
▲ 18일자 아침신문 1면 모음
경향, 이동관 아들 하나고 담임 인터뷰
이 후보자의 아들 담임 교사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당시 한 피해학생이 작성한 진술서를 보면 “심각하게 몇 번 가해자(이 후보자 아들)에게 힘들다고 얘기했는데 효과는 며칠 뿐이거나 아예 없었다”고 적혀 있다고 전했다.
이 후보자는 지난 6월 입장문에서 ‘심각한 학교 폭력은 없었다’고 했는데 이에 해당 교사는 “정말 심각한 폭력이 없었으면 왜 아들이 전학을 갔겠나”라며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학교폭력위원회가 20번은 열렸을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하나고’라는 권력을 왜 그만두고 나가나. 서울대생한테 ‘너 잘못했으니까 서울대 그만 둬’라고 한다고 그냥 나가나. 당시 하나고의 상징성은 어마어마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피해 학생들 진술서가 ‘정식 진술서가 아니어서 효력이 없다’고 한 것에 대해 교사는 “지금까지 보도된 진술서는 원본 내용이 맞다”며 “지금 하나고 안에도 원본을 보유한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학폭위가 열리지 않은 데 대해 교사는 “생활기록부에 (학폭 사실이) 기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며 “해당 사실이 적힌다면 대학 입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학폭위를 열지 않고 이 후보자 아들이 전학간 것에 대해 교사는 “당시로써는 최선의 결정이었다”며 “생각보다 일이 커지자 당황한 피해 학생들이 ‘없던 일로 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 18일자 경향신문 사진기사
한겨레, 이동관 국회도서관 북콘서트 국힘 추천 관장이 허가해줘
이 후보자의 2019년 국회도서관 대관에 대해 국회도서관 담당공무원은 ‘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대관 허가가 가능하다’는 내규에 따라 대관 신청을 했다는 입장이다. 한겨레는 “같은 내규에는 ‘국회 운영 및 의정 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행사는 허가될 수 없다’는 ‘허가제한 조항’이 있다”고 했다. 이에 국회도서관은 “해당 북콘서트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전현직 의원이 참여해 의정활동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한겨레는 “전현직 의원들은 ‘손님’으로 참석한 것이어서 이를 의정활동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한 해석인데다가 2016년 이후 국회도서관이 국회가 주관하지 않거나 국회 운영과 무관한 외부행사를 직권으로 대관 신청·허가한 사례는 이 후보자 북콘서트가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는 “허 전 관장 등 국회 공무원(공직자)에게 국회도서관 시설(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재화)을 법령에서 정하는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특정 개인 등이 점유할 수 있도록 부탁한 행위가 부정청탁애 해당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후보자 측은 “공저자 6명 중 한명이 장소를 섭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국정원 국회 보고 다음날, 동아 ‘북한 최근 폭발물 테러’ 소식 보도
동아일보는 북한의 최근 폭발물 테러 소식을 전하며 “북한 내 정세 불안 정황들이 이어지는 건 코로나19 이후 가중된 식량난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북한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은 동아일보를 통해 북한 정세불안 상황을 자세하게 전했다. 폭발 사건뿐 아니라 북한 내 범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 장마당 거래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김정은 정권에 불만이 많고 이에 북한 당국이 불평분자 색출을 위한 TF를 신설한 사실, 탈북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 등을 함께 전했다.
▲ 18일자 동아일보 1면
해당 소식통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기사상으로 볼 때 국정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난 1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정원이 보고를 한 가운데 해당 내용 일부가 동아일보 해당 기사에 함께 실렸기 때문이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한다.
동아일보는 다른 기사 <김정은 공개활동 절반 뚝…주변엔 ‘방탄가방’ 추정 경호원>에서 “경제 사정 악화로 북한 내 조직화·강력범죄가 늘어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경호를 강화하는 동향도 포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내용 중 “러시아의 핵 미사일 핵심 기술이 북한에 이전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면밀히 추적 중”이라고 한 내용을 전했다. 또 “북한이 한미일 정상회의 또는 한미 연합훈련을 겨냥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여러 종류의 도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 18일 동아일보 3면
북한이 김정은 체제에서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러시아와 협력해 무기개발에 힘을 쏟는다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배경으로는 윤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삼각안보협력을 강화하는 행보와 맞닿아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각에선 최근 미국의 한미일 협력 강화 요구에 한국이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서며 신냉전체제를 만든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북한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과 국정원발 기사가 1면과 3면에 배치됐고, 동아일보 4면에선 대통령실 입장이 실렸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개별적으로 제공해 온 북핵 확장억제 관련 한미일 3국이 훈련과 정보공유를 할 때 협력을 염두에 두자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3국의 안보경제 협력의 역사는 8월18일(한미일 정상회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18일 조선일보 칼럼
조선, 반바지 출근 허용 주장 칼럼 실어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는 <회사에서 반바지는 여전히 금기인가>라는 칼럼에서 “폭염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것은 괴로움보다도 두려움에 가깝다”며 “이제는 남자들도 일터에서 반바지를 입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된 것이 아닐까”라고 주장했다.
해당 기자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일하는 건축가들 인터뷰한 경험을 인용하며 “살짝 놀랐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했다”며 “그들이 유망주로 주목받은 것이 반바지 때문은 아닐 것이지만 하나의 예시는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사무실에서 반바지를 입어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금기는 없다는 것을 그 자유분방한 옷차림이 보여주고 있었다”고 썼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와중에 수천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대참극이 벌어졌다.
10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학살의 진상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 당시 계엄령을 발표해 조선인 학살을 주도한 일본 정부는 진상규명과 사죄, 배상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고 다지는 일. 간토 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필요한 일이다.
[통일뉴스]는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를 맞아 특집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① 개괄-잊혀진 통한의 100년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② 기록으로 본 간토대지진과 조선인학살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③ 자료와 증언-일제는 조선인을 어떻게 학살했나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④ 北은 간토대학살을 어떻게 보고 있나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⑤ 강요된 망각과 시무(時務)의 역사연구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특집 ⑥ 특별기고-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진-동농기념사업회 강덕상자료센터 제공]
누군가 의도를 갖고 감추려는 100년 전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건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국가권력이 자신들이 저지른 참혹한 죄상을 덮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100년전 일본 도쿄도와 6개현, 즉 간토지역에 닥친 대지진과 그 와중에 벌어진 전대미문의 조선인 대학살은 그 엄중한 실례이다.
메이지유신의 후예들인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일찌기 겪어보지 못한 자연재해에 직면해 심각한 정치 사회적 위기에 봉착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열흘 남짓한 기간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방법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건너 온 '노동자'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대지진과 도시 전체를 삼킨 화재속에 관헌의 사주를 받은 자경단은 흡사 피에 굶주린 악귀들인 것 처럼 '조선인 사냥'에 광분했다.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조선인 6천여명 희생설은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체를 헤집고 다니며 조사한 최소한의 파악일 뿐이다.
그것은 명백히 일본 정부와 군대, 경찰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국가 개입에 의한 대학살이었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리히터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수십만채의 가옥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강풍을 타고 무서운 기세로 불길이 번져갔다. 숱한 사람이 깔려 죽고 불타죽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지진 발생 당일 도쿄 궁성앞 광장에 30만 여명의 피난민이 모여드는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경제공황의 와중에 1918년 전역을 뒤흔든 쌀폭동으로 흉흉한 민심을 겪은 바 있는 일본 정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조선은 물론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도 사회주의 노선에 입각한 혁명운동이 고양되고 있었고 무력투쟁으로 전환한 세력과 격돌을 경험한 일본 군부는 깊은 좌절감과 함께 '적화 조선인'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지진발생 당일 오후 임시각의를 열어 나온 긴급 대책은 뜻밖에도 '재일 조선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학살을 법제화'한 계엄령이었다.
당시 일본 법률에 따르면 계엄령은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사변이 발생한 경우, 그것도 반드시 내란 또는 폭동이 발생할 때만 공포할 수 있었다.
계엄령 공포 요건을 갖추기 위해 '조선인 폭동설'이 고안됐다. 그것은 민족배타주의를 부추기는 또 다른 범죄행위였다.
9월 2일 천황 칙령 401호로 계엄령을 공포하고 3일 내각비상회의에서 계엄사령부를 설치해 4만명에 달하는 군대와 경찰을 간토 일대에 집결시켰다.
경찰서와 파출소 게시판에 '조선인이 봉기했다',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는 게시물이 붙었다. 일본 당국이 직접 계획하고 집행한 일이다.
계엄사령부에는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3.1운동 당시 정무총감, 최고지휘관), 도쿄 경시총감 아카이케 아쓰시(3.1운동 당시 경무총감, 경찰책임자), 도쿄부지사 우사미 가쓰오(조선총독부 내무장관), 군사 참의관 오바 지로(간도 작전 당시 조선주둔군 사령관), 제1사단 사단장 이시미쓰 미오미(3.1운동 당시 헌병사령관), 계엄사령부 참모장 아베 노부유키(시베리아 출병군 참모장) 등이 자리를 틀고 앉아 조선인 학살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동원돼 동학농민군, 독립의병과 전투를 벌이고 3.1운동을 진압하다 귀환한 재향군인들이 이에 적극 호응했다. 억압된 전쟁체험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나 불안정한 사회에 던져진 이들은 3,000여개에 달하는 자경단의 주축이 되어 망설임없이 무기를 들고 '불령선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참살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어린 아이들을 줄 세워놓고는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자르고 그 다음 그 부모들도 찔러 죽였다. 살아남은 조선인들의 팔을 톱으로 켜는 자도 있었다. 그것도 도중에 팽개치고 또 다른 사람을 톱질하는 광경은 보기에도 끔찍했다. 죽은 사람들의 눈을 식칼로 도려내는 것도 보였다...경찰서 구내는 피바다를 이루어 장화를 신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조선 사람들의 비통한 울부짖음은 그후 오래동안 나의 귀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전 혼죠 경찰서 아라이 순사의 증언,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
"자경단원들은 조선사람을 붙잡아 몸을 전주대에 묶어 놓고 눈알을 도려내고 코를 벤 다음 배를 찔러서 죽였으며 기차칸에서 여러명의 조선사람을 순식간에 창문밖으로 내던졌다."(현대사자료6)
'납작한 뒤통수'와 '넓적한 얼굴', '작은 발'을 비롯한 외형상의 특징과 일본인이 아니면 정확히 내기 어려운 '15엔 55전(고엔 고쥬고센)' 발음 등. 조선인을 식별하기 위해 자경단이 사용한 방법은 1913년 내무성 비밀자료 제1542호에 바탕을 둔 것으로, 관헌의 전수없이는 활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타민족을 적대시한 야만적 '민족배타주의'의 발로이고, 이를 국가가 나서 부추긴 인류사에 기록될 범죄행위이다.
간토대지진 발생 40주년인 지난 1963년 『현대사자료6-관동대지진과 조선인』이라는 기념비적 사료를 발표한 재일사학자 강덕상은 '간토대지진 당시의 학살은 우연히 일어난 조선민족의 비극이 아니라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벌인 일본의 선전포고없는 전쟁이었으며, 계엄령은 조선인에 대한 몰살선언과도 같다'고 말했다.
학살된 조선인 시체 5구. 말뚝에 묶여있다. [사진-동농기념사업회 강덕상자료센터 제공]
점차 지진이 수습되면서 잔혹한 대규모 학살에 대한 책임 문제가 대두되자 일본 정부는 자경단이 지진 발생 후에 돌연 만들어진 것으로 조작해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자행된 대규모 학살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수는 없었다. 또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된 민간 자경단의 반발도 심했다.
책임을 회피하면서 골치아픈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사실을 모호하게 만드는 '가짜뉴스'였다. 당시 일본 신문을 보아서는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왜 그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조선인이 방화를 한다거나 샘물에 독을 탄다'는 등의 보도는 뒷날 실체없는 유언비어였다는 것이 확인되지만, 조선인 관련 기사를 일절 게재하지 못하게 한 정부의 통제에 따라 시정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이미 확산된 거짓소문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는 그렇게 관철됐다.
언론은 정부의 요구대로 통제에 순응했고, 일본 정부는 책임모면을 위해 70%에 가까운 보유자료를 파기하고 철저히 사실을 감춰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이 몇명이나 되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유일한 사료로 평가되는 것이 1963년 미국이 압수한 자료를 일본 정부에 넘길 당시 히토츠바시(一橋)대학교 강덕상 교수가 관동계엄령 사령부의 수집정보철인 '계엄사령부 정보'에 접근해 이를 토대로 남긴 『현대사자료6-관동대지진과 조선인』 정도이다.
현재 통용되는 6천여명 희생설은 간토 대학살 당시 중국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사장 김승학이 나고야에 있던 한세복을 도쿄로 파견하여 조선인 학살 진상을 보고하도록 한 뒤 1923년 12월 5일자에 6,661명이라는 숫자를 발표한 것이 중요한 근거이다.
국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그렇게 적혀있고 일본 도쿄시 요코아미초 공원내 '간토대진재 조선인 학살자 추도비'에도 6천여명 희생설이 기록되어 있다.
북측은 줄곧 간토대지진 당시 2만3천여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립신문이 그해 12월 26일자 기사에서 참살당한 전체 조선인이 2만여명에 달한다는 당시 현지 체류 독일인 브르크하르트 박사(Dr. Otto Bruchhardt)의 외지 기고문 전언 기사를 참고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분명치는 않다.
당시 간토지방에 살던 조선인이 1만4,100명이라는 인구통계를 바탕으로, 이중 1천명의 학생은 여름방학이었으므로 고향에 있었고 불에 타 사망한 800여명의 조선인을 제외한 나머지 1만 2,300명 중 귀국한 5,700명을 빼면 모두 살해되었다고 해도 6,600명이 된다는 계산을 근거로 하여 조선인학살 피해자는 '0'에서 최대 6,600명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존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 하버드대학교 교수의 주장이다.
이같은 혼선은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걸 넘어 적극적으로 자료를 폐기하고 은폐해 온 일본 정부의 탓이 가장 크다.
모든 걸 자신들의 의도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 때문일까. 그때도 그랬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죄, 배상 요구를 진지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1923년 9월 1일의 참상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일, 기억을 다짐으로 이어 가는 일.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를 맞아 새로운 미래를 일궈나가려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자세이다.
그는 “언론장악 지휘자”, “언론장악 기술자” 등으로 불린다. 군부독재 이후 최악의 언론탄압과 비판적인 언론인 사찰 및 축출·해고 등이 이루어졌던 이명박 정부 시절, 이를 이끌었던 인물이 이동관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언론장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런 이유로, 여러 언론인과 시민사회 등은 이동관이 방통위원장 자리에 앉으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공영방송 뒤흔들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면직시킨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 추천 방통위 위원 임명을 미루고 KBS 이사장, EBS 이사를 해임하는 등 이를 위한 사전 작업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윤 정부는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을 완료하면, 내년 총선 전까지 방송장악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로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① 언론장악의 꿈
지난해 4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확보해 공개한 대통령기록물과 국가정보원 내부 문건 등을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자행된 ‘언론장악 지휘자’는 이동관이었다. (▶ 이동관 언론장악 개입 입증 공공기록물)
이동관은 2008년 2월부터 2009년 8월까지 대통령실 대변인이었고, 2009년 9월부터 2010년 7월까지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지냈다. 이어 2011년 1월부터 12월까지 청와대 언론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공개된 문제의 대통령기록물과 국가정보원 내부 문건은 모두 이동관이 대변인·홍보수석·언론특별보좌관일 때 작성된 문건이다.
언론장악의 시작은 모니터 강화였다.
2008년 3월 청와대 대변인실 문건 '언론보도 점검 협조 요청' ⓒ민중의소리
2008년 3월 대변인실에서 작성한 ‘언론보도 점검 협조 요청’을 보면 “부정적 보도 및 정제되지 않은 보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며 언론 모니터 강화를 지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또 같은 해 12월 12일 대변인실 작성 문건 ‘MBC 뉴스데스크 보도 분석’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MBC가 방송3사 중 상대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많이 한 점, 대통령의 주식발언 및 측근 관련 비판적인 보도를 한 점 등에 주목했다. 그해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보도 중 20건을 “문제보도 사례”라고 적시했다. 특히 “앵커 클로징 등으로 재차 문제제기한다”며 앵커의 멘트도 문제 삼았다. 당시 대변인은 이동관이었다.
이 같은 언론 모니터 결과는 ‘축출’과 ‘보도통제’였다.
신경민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이듬해 4월 “지난 1년 제가 클로징멘트를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였다. 그러나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답답하고 암울했다”며 “회사의 결정에 따라 하차한다”고 밝혔다. (▶ 신경민 앵커의 하차)
2010년 5월에는 한중일 정상회담 관련한 부정적 보도를 통제했다. 그해 5월 31일 홍보수석실이 작성한 ‘YTN 보도 리스트’ 문건에 이 같은 정황이 담겼다.
2010년 5월 청와대 홍보수석실 문건 'YTN 보도 리스트' ⓒ민중의소리
그해 5월 한중일 정상은 회담에서 ‘천안함 사건’을 다뤘는데, 정부는 “한중일 정상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적정하게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국내 언론도 비슷한 취지로 보도했지만, 외신은 그렇지 않았다. APF 통신은 한국과 일본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중국이 북한을 비난하도록 압박했지만 이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 BBC 등도 비슷한 취지로 보도했다. 그리고 이 같은 외신의 보도를 YTN과 mbn이 상세히 다뤘다.
그런데, 당시 홍보수석실은 이 YTN·mbn 보도를 “문제”라고 봤다. ‘YTN 보도 리스트’ 문건에서 홍보수석실은 YTN·mbn 보도에 대해 “정상회담 관련 AFP·AP·BBC·NHK의 부정적 반응 보도”라며, 조치를 취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실제 ‘YTN 보도 리스트’ 문건 하단 ‘조치결과’란에 “10시 뉴스 이후부터 해당 기사 비보도”라고 적었다. 당시 홍보수석 역시 이동관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언론통제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2009년 12월 24일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민중의소리2009년 12월 24일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민중의소리
국정원이 작성한 ▲ 언론계 쇄신 진행동향 및 고려사항 (2008년 8월 5일 작성) ▲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2009년 12월 24일 작성) ▲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 (2010년 1월 13일 작성) 등의 문건을 보면, 당시 홍보수석실 등이 어떻게 언론을 통제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해당 문건에서 국정원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PD와 진행자 등을 “좌편향”이라고 칭하며, 이들을 “퇴출” 또는 “교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이조차 여의치 않으면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하여 “근절”해야 한다고 적었다. 심지어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작성된 문건에서는 비판적으로 보도한 기자, 비판적인 시민단체 관계자 및 방송사 관계자를 선거방송심의위원에서 “배제”하는 방안 등을 나열했다.
2009년 12월, 2010년 1월에 작성된 문제의 국정원 문건 상단에는 “홍보수석 요청자료”라고 적혔다. 당시 홍보수석은 이동관이었다. 2008년 8월 작성한 문건에도 보고처로 “대변인”이 적혀 있다. 당시 대변인 역시 이동관이었다.
이 같은 증거자료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도, 그는 “언론 장악에 나선 적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증거자료에 대해서만 일부 시인한 바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서면질의 답변 자료에서 청와대·대통령·가족·정부에 비판적인 조선일보 기사·칼럼 176건을 ‘문제의 보도’로 정리한 문건에 대해서만 “언론 현황을 파악하려고 모니터한 것”이라고 답했다.
② 지휘자의 귀환, 그리고 새로운 기술
언론현업단체들과 시민단체들 참석자들이 지난 7월 3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이동관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지명을 철회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3.07.31 ⓒ민중의소리
“십몇 년 전 경험해 보니까, 얘네들이 버텨서 살아남더라, 이 경험이 있는 거다. (이번에도) 장악이 안 될 거 같으니까 아예 없애버리거나 망가뜨리자는 것” - YTN 고한석 기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명박 정부가 낙하산 사장을 앉힌 뒤 비판적인 언론인을 축출·배제·해고하는 방식 등으로 이루려고 했던 언론장악의 꿈은 정권이 바뀌면서 결국 실패했다. 이에 시민사회와 언론인들은 언론을 재정적으로 압박하여 길들이거나, 그게 어려우면 아예 공영방송 기능을 무력화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TBS가 대표적인 예다. 재정적으로 압박하여 내부갈등을 일으키고 비판적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진행자를 퇴출시키는 식이다.
실제,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YTN과 KBS 등을 길들이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14조5천억원 규모의 공공기관 매각 계획 발표에서 YTN 지분을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KBS의 공영방송 기능을 약화하는 ‘수신료 분리’를 추진하면서다.
이동관이 방통위원장으로 내정된 후 여당도 ‘민영화 군불’을 떼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월 3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세계 각국의 방송은 ‘1공영 다민영 체제’인데 우리나라는 MBC·EBS·YTN·연합뉴스 등 ‘다공영 1민영 체제’”라며 “KBS 2TV는 민영화해서 선진국 체제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③ ‘YTN 3억 손배소’에서 엿보는 언론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지명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 지난 7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3.07.28. ⓒ뉴시스
이동관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최근의 행보는 ‘YTN 방송사고 3억원 손배소’이다.
YTN은 지난 10일 오후 흉기난동사건 피의자 관련 뉴스의 배경화면에 이동관 사진을 10여초가량 게재했다. 이날 YTN은 방송 말미에 “배경화면이 잘못 나갔는데 양해 말씀드린다”고 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온라인에서 해당 방송분을 삭제하고, 이동관에게 사과의 뜻도 표했다. 또 다음 날 “사고와 관련해 시청자와 이 후보자에게 깊은 유감의 뜻을 전한다”며 사과했고, “내부적으로 조사한 결과, 당시 뉴스 진행 부조정실 내 PD와 기술 스태프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한 단순 실수로 파악됐다”며 “의도성은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이동관은 지난 13일 단순 실수로 보이는 방송사고에 대해 “대한민국 언론 현주소를 아주 명명백백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YTN 대표이사 등 임직원을 상대로 법원에 3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징계를 요구하는 방송 심의도 신청했다.
이 같은 이동관의 최근 행보는 2009년 12월 홍보수석 요청으로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을 떠오르게 한다. 이 문건에서 국정원은 “정부시책 왜곡보도시 명예훼손 손배소 등 법적대응으로 경각심 환기”해야 한다며 언론 길들이기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이동관은 이 같은 언론장악 의혹과 부적절한 언론관 논란뿐만 아니라 아들 학교폭력 무마 등 각종 의혹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수사·국정조사를 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할 정도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 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지난 17일 성명에서 △ 극우 성향 기자 소송 지원 △ 대통령 ‘MBC 경영진 교체 및 개혁’ 서면 보고서 △ VIP 전화격려 필요 대상 언론인 보고 등의 의혹을 거론하며 이같이 밝혔다.
▲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10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주택금융공사, 은행연합회, 금융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서울 = 뉴시스
1. 줄어들던 가계부채가 연속 4개월 급증
고금리가 유지되는 가운데 가계부채가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3.5%에 올해 6월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4.81%로 높아졌다. 보통 금리가 올라가면 대출은 줄어든다. 그럼에도 은행권 가계대출은 오히려 가파르게 증가했다.
가계대출을 이끌고 있는 것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다. 은행권 주담대는 지난 4월 2조3000억원으로 증가세로 돌아선 뒤 5월 4조2000억원, 6월 5조8000억원으로 늘다가 7월에는 6조원까지 증가했다. 연속 4개월째 가파른 증가세다. 다시 “빚내서 집사라”가 유행하는 형국이다.
금융위는 지난 10일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에서 “가계부채가 위협적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8조1,000억원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5%였는데, 이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만으로도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주요 43개국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공식 가계부채에 포함되지 않은 1,000조 원 규모의 전세부채를 포함하면 한국 가계부채 비율은 157%로 튀어 올라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주요 선진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감소하는 추세와는 정반대 현상이다.
2.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부채 돌려막기 정책
가계부채의 핵심은 부동산 부채이다. 고금리에도 오히려 가계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집값 폭락 저지’ 정책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무주택 서민에게는 오히려 득이 된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왜 집값 하락을 막는 걸까? 집값이 너무 급속하게 하락하면 가계부채 폭탄이 터져서 정권위기가 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부동산 관련 ‘특례보금자리론’과 ‘특례역전세론’으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44조원 규모이다.
지난해 하반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여 서울의 경우 20%까지 하락하고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났다. 게다가 미분양이 급증하며 부동산 가격 경착륙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막대한 특례보금자리론을 풀어 주택가격 경착륙을 막기 시작하였다.
특례보금자리론의 핵심은 총부채상환율(DSR) 40%를 우회하여 대출을 늘이는 것이다. 현재 가계부채는 규모도 규모이지만 대출상환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갚을 능력만 있다면 빚을 더 낸다고 누가 뭐라 하겠나. 그러나 우리 국민의 부채상환능력, 즉 자기소득 대비 부채상환비율이 이미 평균 40%를 넘어섰다. 자기 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40만 원을 부채를 갚는 데 쓰고 있다는 뜻이다.
작년 말 현재 우리 국민 중 1,977만 명이 은행권에서 1200조 원의 대출을 받은 상태이다. 이중 175만 명은 자기 소득의 100% 이상을 부채상환에 써야 하는 상황이고, 1인당 3억 78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자기 소득의 40% 이상을 갚아 나가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DSR 40% 초과)은 624만 명으로 1인당 평균 1억 9,237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이러니 빚을 내고 싶어도 더 빚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원 이하 집을 구매할 때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최대 5억 원을 고정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 금리는 보통 연 4.15∼4.45%(일반형)와 연 4.05∼4.35%(우대형)이다. 부채상환비율이 40%를 넘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더 대출을 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원래 정부정책인데, 이를 무시하고 더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실수요자들이나 일시적 2주택자들이 또 빚내서 집을 사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은 올 9월까지 1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데, 이미 거의 소진상태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풀어 집값 하락을 겨우 막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을 올해 상반기 2월부터 매월 7조, 5조, 3조, 3조원씩 풀어대니 은행권도 덩달아 주택담보대출을 매월 2조~5조원씩 늘였다. 이렇개 해서 전체 가계대출 규모가 집값이 급상승하던 2020~21년 시기를 능가하고 있다.
정부는 특례역전세론을 이제 풀기 시작했다.
최근 전세사기, 깡통전세, 역전세 문제가 심각하다. 전세사기는 입주자가 모르고 실제 주인이 아닌 제3자와 계약을 맺어 전세값을 날리는 사기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을 말한다. 깡통전세는 집값이 전세가격보다 낮아진 상황을 의미한다. 역전세는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현재 전세가격이 낮아진 경우이다. 깡통전세는 주인이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없고, 역전세는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와도 주인에게 전세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한다.
올해 4월 현재 깡통전세, 역전세 위험가구는 52.4%로 절반이 넘는다. 역전세난은 전세를 끼고 무자본갭투자가 절정에 달해 전세보증금이 급격히 올랐던 2년 전 9월 경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만기가 시작되는 올해 7월부터 내년 5월까지 역전세난은 매우 심각해질 전망이다. 전세가가 평균 7천만 원 정도 하락한 탓이다. 향후 1년 안에 돌려주어야 할 전세보증금 총액은 300조원 가량으로 역대 최고치이다.
이미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보증금 사고가 전국적으로 지난 1월 5.8%에서 5월에는 7.2%에 달했다. 5월 전세보증금 사고는 서울의 경우 7.5%, 인천은 14.3%에 달한다. 지난 3월 기준으로 전체 전세가구 116만 7000가구 중 빚을 내야 반환이 가능한 가구가 16만6천 가구에 이르고, 아예 반환이 불가능한 경우도 7만1천 가구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사실상 ‘특례역전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정책을 발표하여 다시 가계대출을 대폭 늘렸다. 역전세난에 빠진 집주인들은 사실 부동산 광풍에 올라타 남의 돈으로 집을 산 사람들로, 집을 팔아 전세보증금을 내주도록 하면 될 것인데 또 대출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역전세 특례대출은 DSR 40% 한도를 또 풀어주기가 뭐하니까 DTI를 60%로 늘여서 대출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DTI(총부채상환율)는 갚아야 할 ‘주담대 원리금과 다른 대출의 이자’를 합해 계산하는 방법이다. 반면 DSR는 ‘주담대를 포함한 전체 부채의 원리금 총상환액’에 대한 비율이다. 따라서 DTI를 60%로 풀어주면 DSR 40%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연 소득이 5천만 원인 경우, DSR 40%로 계산하면 3억 5천만 원 정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DTI 60%를 적용하면 1억 7천500만 원을 추가해서 5억 2천5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다시 대출을 풀면 그 규모가 1년 동안 20조원이 될지, 30조원이 될지 알 수 없는 막대한 규모의 가계대출이 또 증가하게 된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위해 긴축재정을 한다고 하고,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려 대출을 억제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하면서 돈을 어마어마 풀고 있다. 이러고도 물가를 잡는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복지재정을 위해서는 돈 한 푼이 아까워 벌벌 떨면서도 갭투자자, 다주택자 이익을 보호하는 데서는 국민 혈세를 물 쓰듯 하고 있다.
3. 부동산 가계부채 돌려막기의 폐해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가계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부채 감축)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 보고서 역시 "주택가격이 여전히 소득수준과 괴리돼 고평가돼 있고 가계부채 비율 또한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정부의 규제 완화로 주택가격 하락세가 빠르게 둔화하고 주택대출을 중심으로 은행 가계대출이 재차 증가해 가계부채 디레버리징(축소)이 지연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가계부채를 축소 조정하는 대신 가계부채를 늘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부동산발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비율을 GDP 대비 80% 이하로 조정해왔다. GDP 규모를 뛰어넘는 채무조정은 많은 나라에서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돼 있다.
윤석열식 가계부채 돌려막기는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무엇보다 부동산 투기 심리를 조장하고 도덕적 해이를 양산한다. 부동산 거품과 투기 광풍을 주도해온 세력은 주로 고소득자들이다. 여기에 갭투자자들이 편승하며 부동산 가격을 더욱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그 수혜자로 살아왔다.
그런데 부동산이 위기에 빠졌다고 이들을 대출로 구원해준다면 부동산 투기에 올라타지 않은 선량한 국민들은 뭐가 되는가. 특히 특례보금자리론이나 역전세론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적자금이고, 대출이란 미래의 수입을 당겨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계부채 확대정책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다음으로 가계부채를 확대하는 것은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성장률을 잠식하게 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보고서에서 가계부채비율이 3년간 1% 상승하면, 4~5년 뒤 경제성장률(3년 누적)이 최소 0.25%에서 최대 0.28%까지 하락한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가계부채비율이 80%를 초과해 계속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인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였다. 가계부채비율이 80%대인 경우 1년 뒤 경기침체 가능성은 0.886p커졌지만, 90%대는 1.629p, 100% 초과면 2.068p까지 커진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부동산 가계부채 증가는 자산불평등과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 가계부채의 특징은 고소득자 부채가 많다는 것이다. 전체 가계부채에서 소득 하위 40%의 대출잔액 비중은 11%에 불과하다. 반면 소득 상위 40%는 76%에 이른다. 즉 부자일수록 대출을 받기 쉽고 가난할수록 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저금리시대에 싼 이자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차익을 남기는 방식의 자산투자가 증폭하면서 자산불평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2017∼2022년 5년 동안 부채를 보유하지 않은 가구의 순자산 증가폭은 7,100만원인데 비해 이때 저금리 대출을 이용한 가구의 순자산은 1억200만원으로 증가하였다. 근로소득보다 빚내서 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이 더 부자가 되는 사회가 한국 사회이다.
게다가 최근 주담대를 받아 집을 사는 무주택자들은 50년 만기 장기분할상환을 해야 한다. 과거에는 주택구입시 1억원 대출도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3억원 이상 대출은 당연하고, 전에는 30년, 40년도 길었는데, 지금은 50년 장기상환을 해야 한다. 50년 장기로 원리금 상환을 하려면 50년 동안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가? 집값을 올려놓은 것은 재벌이나 고소득 자산투기자들인데, 이제 그 집값 하락을 실수요자가 빚내서 막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윤석열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은 집값 폭락을 저지하기 위해 무주택 서민에게 50년 장기대출을 해주면서 ‘빚내서 집 사라’고 하는 국가적 사기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44조 원에 이르는 특례보금자리론은 서울 수도권에 집중된 것일뿐, 지방은 여전히 미분양사태가 확대되고, 집값이 하락 중이며,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정부의 가계부채 확대정책은 부채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특례보금자리론 44조원, 특례역전세론 수십조원을 소진한다는 것은 내년, 후년, 그 미래의 수요를 당겨다 쓴 것이다. 이 대출이 끝나고 나면 다시 부동산 경기가 하락할 것이고, 부채위기가 다시 커질 것이다. 그럼 또 무엇을 당겨다 부동산 경기를 부양할 것인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것은 누군가가 계속 빚을 내서 비싼 가격에 집을 사주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제 더 빚낼 국민도 없다. 가정경제에서도 카드 돌려막기가 영원히 가능한 것이 아닌 것처럼, 나라 경제도 돌려막기 무한정 가능한 것이 아니다. 가계부채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채폭탄의 충격은 더 커질 것이고, 그만큼 한국경제는 심각하게 망가지게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괜히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계속 부채확대정책을 쓰고 있다. 왜일까? 총선 전에 부동산 폭락하여 가계부채 폭탄이 터지면 안 되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4. 한국 부동산의 구조적 문제
부동산은 한국경제의 인질이다.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오기 힘든 늪과 같다. 그 구조적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로 부동산의 본질은 금융이기 때문이다.
집값은 집이 모자라서 오르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문제는 본질상 수요공급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문제의 근본은 금융에 있고, 부동산 금융의 본질은 약탈금융이다. 미국식 금융세계화 이후 세계 경제는 부채 주도 성장이 자리 잡았다.
특히 미국식 은행은 주택담보대출로 수익성을 올리는 소비금융을 위주로 한다. 이것을 선진기법이라고 받아들여 가계에 대출을 해주고 집을 사게 하여 집값을 올리고, 다시 대출을 내주어 원리금을 받아먹고 또 집값을 올리는 구조이다. 그리고 전체 국민을 부동산 투기 광풍에 휩쓸리게 한다.
빚내서 집 사지 않으면 불안하고 심지어 바보 취급한다. 그 결과 서민들은 평생 주담대의 노예가 되어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서 빚을 갚고 있다. 이것이 미국이 금융자본을 앞세워 세계에 확산시킨 약탈금융이다.
둘째로 건피아 카르텔이 주도하는 다단계 착취구조이다. LH는 택지개발을 국가의 이름으로 강제수용하여 비싼 값에 팔아먹고, 각종 시행사들은 모피아를 끼고 브릿지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부동산 금융으로 투자자금을 마련한다. 그리고 재벌건설사들은 다단계 불법, 편법하청을 통해서 중간착취, 부실감리, 부실공사로 떼돈을 번다.
재벌사치고 건설회사 한 두 개 안 가진 재벌이 없다. 한국에서 돈을 벌려면 건설사를 차려야 한다. 이것이 부동산 불패신화의 시작이다. 고관대작치고 부동산 투자를 안하는 자들도 없다.
여기에 공권력이 나서서 건설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시장에 값싼 외국인력을 투입한다. 숙련된 국내건설기술자들은 밀려나고 미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또 다른 착취를 당하며 복잡한 공정을 맡아 나선다. 건물의 안전도는 더욱 떨어지고 건물 붕괴, 무량판 건물 등 안전사고가 빈발한다.
여기에 언론사들, 유튜브 장사꾼들이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댄다. 집값이 반등했다느니, 강세로 돌아섰다느니 하면서 국민을 현혹한다. 가뜩이나 집이 없어 서러운 무주택 서민들은 전세사기, 깡통전세, 역전세로 피멍이 들고 있다.
대한민국이 부동산 때문에 미쳐가고 망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부동산을 가운데 끼고 앉은 약탈동맹세력을 청산하지 않고 국민이 부동산 인질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대출을 더 잘 받고, 경제신문, 인터넷 부동산 정보나 유튜브를 뒤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체제를 전환해야 한다.
가계대출 증가는 윤석열 정부의 피할 수 없는 뇌관이다. 돌려막기가 한계에 달하면 부채폭탄과 함께 정권의 운명도 폭망한다는 것을 윤석열 정부는 알아야 한다.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김은경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내 친명(親이재명)계와 비(非)명계가 16일 의원총회에서 정면 충돌했다. 비명계는 이날 작심한 듯 줄줄이 발언을 자청해 "대의원제 논의가 아니라 대여 투쟁에 집중할 때"라며 혁신안 폐기를 주장했다. 친명계는 이같은 비명계의 집단 반발에 대해 "혁신안에 불평·불만 있는 분들이 많이 얘기하는 것"이라며 의미를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 지도부는 의원총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바탕으로 오는 28일 의원 워크숍을 거친 후 혁신안에 대한 입장을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날 공개 발언 가운데 반대 의견이 압도적 다수를 이룬 데다가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와 '민주주의4.0'까지 사실상 절반 넘는 의원이 반대 입장을 표명한 터라 지도부가 혁신안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명계, 의총에서 '혁신안 반대' 집중포화…이낙연도 지원사격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은경 혁신위가 지난 10일 발표한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배제', '공천 룰 변경' 등 혁신안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이날 의원총회는 8월 임시국회 준비 차원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였던 만큼 혁신안이 정식 논의 주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박광온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에서 혁신안을 언급하며 혁신안에 대한 논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박 원내대표는 앞서 모두발언에서 "혁신위가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 자체를 우리가 폄하하거나 할 필요는 전혀 없다"며 "다만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의견을 수렴하는 그런 과정에 우리 모두가 함께 서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혁신위가 지난번 쇄신의총 의결로 구성이 되었는데, 혁신위의 결과가 잘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의원총회에서 진지하고 건설적인 대안들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는 무려 20여 명의 의원이 혁신안을 두고 찬반 논쟁을 벌였다. 세 시간에 걸친 토론이 끝난 후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적어도 오늘 발언한 20명 중에서는 '혁신안에 대해 토론할 때라기보단 윤석열 정권의 실정이나 헌법 무시 등 큰 문제에 대한 대여 전략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훨씬 더 대다수였다. (혁신안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고 하는 분은 상대적으로는 몇 분 되지는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의원총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20여 명의 자유 발언자 가운데 혁신안에 대한 찬성 발언은 두어 명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내대변인은 핵심 쟁점인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배제' 문제와 관련해 "대의원제는 통상적으로는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선출 제도에 관해 토론하고 정하게 된다"면서 "다음 전당대회 전까지 이 문제를 역사적 맥락, 우리 당 상황을 반영한 깊이 있는 토론을 해나가면 되지 않겠나. 총선 이후에 (논의하자) 하는 말씀도 있었고, 반대되는 말씀도 있었다"고 전했다.
혁신위가 '의원 평가 하위 평가자에 대한 불이익 강화' 방안을 제안한 데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이 원내대변인은 "(공천 룰은) 총선 1년 전 선거와 관련한 당내 규칙을 미리 확정하는 시스템 공천의 취지에 따라 특별당규로 확정돼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추후에 총선기획단이나 추가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다른 기회에 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심각한 헌법 무시, 민생 파탄에 책임을 묻고 대여 공세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가 더 시급하게 논의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상당수 있었다"고 전했다.
비명계는 의총에 앞서 반대 의사를 피력해왔다. 대표적 비명계 의원으로 꼽히는 김종민 의원은 이날 오전 불교방송(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대의원제를 무력화하는 혁신안은 '정청래 대표 만들기용'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질문에 "그게 사실이면 진짜 엄청난 일이다. 당을 완전히 망하게 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정인을 위한 게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어떤 결정이 나든 이번 전당대회 말고 다음 전당대회부터 실행한다'든가, 아니면 전당대회를 앞두고 보통 전준위가 꾸려지는데 그때 심도 있는 논의를 해서 고민해야 한다"면서 "지금 이걸 가지고 괜히 당에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가짜 엄마 같은 느낌이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친문계인 전재수 의원도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혁신위가 출범할 때 '당신들의 역할은 여기까지, 권한은 여기까지' 이런 광범위한 합의도 없이 돈봉투 사건이 터지고 위기로 몰리니 혁신위부터 먼저 출발시켜놓고 보자고 해놓으니 태생적 한계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이날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혁신의 핵심은 도덕성 회복과 당내 민주주의 활성화를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하는 것"이라며 "그쪽으로 가지 못하고 길을 잃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며 혁신위를 비판, 눈길을 끌었다. 이 전 총리는 "(혁신위가) 가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길에서 헤맸다"며 "혁신을 한다는 분들이 도덕적 권위를 잃은 것도 뼈아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나아가 구속 기로에 서 있는 이 대표를 향한 사퇴 요구도 나왔다. 친이낙연계 설훈 의원은 지도부 전원에 대해 "사퇴하라"고 공개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내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굉장히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당 지도부뿐만 아니라 책임 있는 모든 사람이 내려놓고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설명, 지도부를 향한 사퇴론이 나왔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김종민 의원도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해서 총선을 치르는 게 민주당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냉정하게 논의해보고 총선에 임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명계 "불만 있는 분들이 많이 이야기", "반대 이유 뭔지 궁금"
반면 친명계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주로 혁신안에 불평·불만이 있는 분들이 많이 이야기했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정 최고위원은 "저는 대의원제 폐지를 10년 전부터 주장했다. 그래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 왜 지금 이걸 이야기하느냐'(하는데), 총선 룰은 1년 전에 정하자고 해놓고 전당대회는 왜 1년 전에 정하지 말고 반대로 하자고 그러느냐"고 주장했다.
또다른 친명계 최고위원인 장경태 의원도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지금 해야 되느냐 가지고 시기적인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해야 될 논쟁이었다"면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비율을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룰 자체가 당의 후진적 체계"라며 혁신안을 지지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SNS에 쓴 글에서 "혁신안에 대해 특히, 대의원 1인 1표에 대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침묵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의총에서 혁신안을 두고 격론이 오간 데 대해 "의견들을 잘 모아나가야 되겠다"고만 했다. 이 대표는 '사퇴 요구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오는 17일 오전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 대표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 진술서 요약본을 올리며 "1원 한 푼 사익을 취한 것이 없다"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혁신안 처리 과정에 대해"당 내 선거제도나 공천제도와 관련해선 의원총회가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오늘 한 20분 정도 말씀주신 부분까지 반영해서 이 문제를 어떤 추가 조치 거칠지 아니면 다른 시점에 논의할지 여부는 별도 논의를 거쳐서 아마 지도부가 결정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서어리 기자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서 조사에 앞서 변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3.08.11. ⓒ뉴시스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고 채 모 상병 사망사건은 어쩌다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의 항명 사건으로 비화된 걸까.
국방부는 '경찰로 사건을 이첩하는 것을 대기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박 대령이 이에 불응하고 8월 2일 경찰에 이첩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박 대령은 경찰 이첩 전까지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시적인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 박 대령이 세세하게 설명한 전후 상황을 보면, 국방부의 주장에는 여러 의문이 뒤따른다.
국가안보실, 7월 30일부터 '수사결과보고서 보내라' 요구
"수사 중"이라며 거듭 거부했지만, "언론 브리핑 자료라도 보내라"
지난달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고(故) 채 모 상병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이 16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결재한 '해병대 1사단 상병 사망원인 수사 및 사건처리 관련 보고' 표지를 공개했다. ⓒ박정훈 대령 변호인 제공
민중의소리가 박 대령 측 변호인으로부터 입수한 진술서와 박 대령의 언론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보면, 7월 28일 오전 7시 20분경 박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임성근 해병1사단장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어, 내주 초 관할 경찰로 넘기겠다'며 대면 보고를 했다. 같은 날 박 대령은 채 상병 유족에게도 수사 결과를 설명했다.
채 상병 사건 처리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이 있기 하루 전날인 7월 30일, 오전에는 해군참모총장에게, 오후에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수사 결과를 각각 대면 보고했다. 박 대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할 당시 "8월 1일 관할 경찰서로 이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고를 들은 국방부 장관은 "사단장도 처벌받아야 하느냐"고 물었고, 해병대 사령관은 "사단장 과실이 확인돼 수사권이 있는 경찰에 넘겨 수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현행 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이후 개정, 시행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사망사건 중 범죄 의심이 되는 경우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 법원에서 재판권을 가진다. 또한, 대통령령인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에서는 일반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를 인지한 경우, 검찰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의 설명을 들은 국방부 장관은 "알았다"고 수긍한 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에게 "내일(7월 31일) 언론 브리핑 예정인데 수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도 물었다. 전 대변인은 "사단장까지 처벌범위에 포함돼 있어 국민들이 엄정하게 수사가 잘 됐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허태근 국방부 정책실장도 "수사 결과에 대해 문제 없이 잘 됐다"고 동의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해병대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에게 해병1사단의 보직과 관련한 독대 보고까지 했다는 게 박 대령의 설명이다.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회 설명 일정까지 갑작스럽게 잡히는 바람에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는 시기는 8월 2일 오전 10시 30분으로 조정했다. 이는 경찰과도 협의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사건 처리 과정에서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30일 오후 대통령실 산하 국가안보실에서 수사 내용과 관련한 자료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거듭해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보실에 파견된 한 해병대 대령은 박 대령에게 '안보실장이 보고 싶어 하는데, 장관 결재본을 보내줄 수 없느냐'고 했고, 해병대 정책실장도 박 대령에게 "대통령실 안보실에서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보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령은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안 된다"며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러자 오후 6시 22분께, 이번에는 해병대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안보실 대령에게 언론 브리핑 자료(사건 개요, 수사 결과, 사단장 등 8명 경찰로 이첩 포함)를 보내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까지 거절할 수 없었던 박 대령은 수사단을 통해 언론 브리핑 자료를 안보실에 전달했다. 최근 박 대령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지시 역시 거부했어야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7월31일~8월 1일, 국방부 법부관리관의 압박 "혐의자와 혐의 다 빼라"
언성 높이며 항의한 박정훈 대령 "군사법원법 따른 건데, 뭐가 문제인가"
7월 31일부터 혼돈의 시간이 시작된다. 해병대 공보정훈실장과 해병대 사령관은 잇따라 전화를 걸어 '당일 예정된 언론브리핑은 취소됐다'고 전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박 대령은 지시를 받고 부대로 복귀했고, 복귀 직후부터 해병대 사령관이 주관한 대책회의가 수차례 열다.
이때 국방부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장관이 우즈베키스탄 출국을 위해 오후 2시 20분경 국방부를 출발할 예정인데 긴급대책회의 중"이라며 "국방부 근처에 있는 해병대 부사령관을 신속히 회의에 참가시켜라"는 연락을 해왔다. 이후 부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당시 회의에 참가한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전화할 것"이라는 말만 전했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국방부 장관의 법무 참모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 대령과의 전화 통화는 5차례 이뤄졌다. 두 사람 사이 통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법무관리관은 통화에서 "경찰에 이첩하는 사건 서류를 보내라. 표지상에 있는 사건 인계서를 국방 메일로 보내라"며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고 압박을 가했다.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훈령'에서는 군검사 또는 군경찰이 검찰, 공수처, 경찰청 등에 사건을 이첩할 경우 인지통보서를 작성해 넘겨야 하는데 인지통보서에는 피의자의 죄명과 범죄 사실 등을 적어 넣어야 한다. 더욱이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대면 보고한 자리에 배석하지 않았고, 이때까지 법무관리관을 포함한 법무관리관실 누구도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보고서를 받지 못했다. 이는 국방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법무관리관은 규정에 따라 인지통보서에 적시해야 할 내용을 빼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박 대령은 "이미 수사 결과를 유가족에게 설명했고, 사단장 등 8명이 채 상병 사망에 과실이 있다고 판단돼 수사 주체인 경찰에 그대로 인계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밝히며 "보내라고 한 사건 인계서는 정리해서 보내겠다"고 답했다.
해병대 사령관도 박 대령에게 "국방부에서 경찰에 이첩할 수사 서류 중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고 수사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말고 조사로 정리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나"라고 물었다. 박 대령은 "유가족에게 이미 설명했고, 해군총장, 국방부 장관까지 보고한 내용을 이제 와서 빼게 되면 축소, 왜곡 수사로 대단히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건의했다.
2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서 엄수된 고 채 모 상병 영결식에서 한 해병대원이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다. 채 상병은 집중호우 피해지역인 경북 예천군에서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2023.07.22. ⓒ뉴시스
이튿날인 8월 1일에도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이날 법무관리관에게 '사건인계서를 보냈다'고 알리자, 법무관리관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내가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고 하지 않았느냐. 업무상 과실치사 죄명도 빼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박 대령은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혐의가 있는지 여부를 수사해서 혐의가 있는 경우 경찰에 인계하도록 군사법원법에 돼 있는데, 뭐가 문제냐"라며 원칙을 강조했다.
유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하자, 박 대령은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직접 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말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유 법무관리관이 "그렇다"고 답하자, 박 대령은 "그것은 협의의 과실로 보는 것이고, 사단장과 여단장도 사망의 과실이 있다고 광의로 보고 나는 과실 범위를 판단했다. 어차피 수사권은 경찰에 있으니 경찰에서 최종 판단하면 될 게 아니냐"고 언성을 높여 반박했다.
전화를 마친 뒤, 박 대령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간곡히 건의한다.
"해병대가 할 수 있는 것은 2가지 선택이 있는데, 우리 수사 결과를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첩해서 상급 부대인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재판단한 후 이첩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약속 시간 내 직접 경찰에 빨리 이첩해야 합니다. 수사 결과는 유가족도 알고, 수많은 수사관들도 알고 있는데, 이것을 고친다는 것은 수사 축소이고, 왜곡입니다. 부디 정직한 해병대를 지키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박 대령의 호소에 해병대 사령관도 "내가 옷 벗을 각오로 국방부에 건의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방안도 있다"며 "국방부에서 하라는 대로 했을 때 예견되는 문제점들을 정리해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해병대 사령관도 국방부에 건의했지만 상황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해병대 사령관은 국방부 차관이 보냈다는 문자메시지라며 이를 박 대령에게 읽어줬다. "혐의자 빼고, 혐의 내용 빼고, 죄명 빼고, 수사라는 용어를 조사라고 바꿔라. 왜 해병대는 말하면 듣지 않는 것이냐." 박 대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안보실장이나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보고하면 안 되나'라고 건의했지만, 해병대 사령관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이후 박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 관계자가 있는 자리에서 법무관리관에게 전화를 걸고, "오전에 언성을 높인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해서 문의한다"며 "수사 결과 사단장 등 과실치사 혐의 있다는 것을 유가족에게 이미 설명했는데 이제 와서 법무관리관이 말한 대로 사단장 등 혐의자를 빼고 혐의 내용을 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나. 장관에게도 그런 내용으로 직접 대면 보고했고, 결재본도 가지고 있다. 결재 내용과 다른 내용으로 경찰에 이첩하는 게 문제 되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깜짝 놀란 듯한 법무관리관은 "결재본이 있는지 몰랐다. 차관님과 얘기해 보겠다"고 말했다.
잠시 후 해병대 사령관은 박 대령을 호출하며,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지난 일요일(7월 30일) 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은 중간보고로 하고, 장관 복귀 시 수정해 재보고 후 경찰에 이첩하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라고 물었다. 박 대령은 "유가족들이 수사 결과를 알고 다수의 수사관들도 알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조작이고 왜곡이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빨리 경찰에 이첩하는 길만이 해병대가 논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정직한 해병대를 지켜달라"고 거듭 간청했다.
그럼에도 해병대 사령관은 "이첩 시기를 장관님 귀국 후에 하면 어떻겠나"라고 했고, 박 대령은 "장관님이 귀국하면 보고서 수정 축소해서 가져오라고 할 것인데, 거부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해병대 사령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해병대 사령관은 박 대령을 설득하려는 듯 '술 한잔 하자'며 자리를 만들었고, 여기서도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가 오갔다.
연달아 대책회의가 이뤄졌던 이 시기(7월 31일 오후부터 8월1일 사이), 해병대 사령관은 뜬금없이 박 대령에게 "비화폰(도청방지 휴대전화)도 포렌식 할 수 있나"고 묻기도 했다. 이에 박 대령은 "경우에 따라 비화폰도 포렌식 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문자메시지로 '혐의자와 혐의를 빼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필요하다면 포렌식이라도 하겠다"며 강력 부인하고 있는 상황인데, 박 대령은 국방부와 통화 및 문자 수발신 시 비화폰으로 소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예정대로 경찰에 사건 이첩한 8월 2일
해병대 사령관은 인계 중 갑자기 "멈춰라" 지시
이후 속전속결로 진행된 ‘항명’ 수사
20일 오후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 마련된 고 채수근 상병 빈소에서 채 일병의 어머니가 영정 사진을 보고 오열하고 있다. 2023.07.20. ⓒ뉴시스
경찰 이첩 당일인 8월 2일, 오전 10시경 해병대 사령관은 다시금 박 대령을 집무실로 불러 '어떻게 하지'라고 물었다. 박 대령은 "오늘 이첩하기로 해 포항에서 안동으로 출발시켰다"며 "경찰에 이첩하는 것만이 정직한 해병대가 살아남는 길"임을 재차 강조했다. 해병대 사령관은 "내가 너에게 중지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했고, 박 대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칫 직권남용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1분가량 고민하던 해병대 사령관은 "알겠다"고 답했다.
집무실을 나온 뒤 10시 51분께, 해병대 사령관은 다급한 목소리로 "당장 인계를 멈추라"고 지시했다. 박 대령 설명에 의하면,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는 과정 중 나온 이 지시가 처음으로 이첩 보류를 언급한 명시적인 지시였던 셈이다.
박 대령은 "이미 인계 중이다. 죄송하다"고 말한 뒤, 중수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이첩하러 간 1광수대장에게 전화해 멈추도록 이야기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1광수대장은 중수대장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함께 인계 중이던 다른 수사관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것이 국방부가 주장한 '항명' 당일의 상황이다. 같은 날 오후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관련 자료에 대해 "중대한 군기문란행위의 증거자료"라며 회수해 갔다.
이때부터 박 대령에 대한 보직해임과 수사가 전격적으로 이뤄진다. 해병대 인사처장은 "국방부에서 연락이 와서 보직해임해야 한다"고 알렸고, 해병대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마음 굳게 먹으라"며 5분여가량 위로하고 돌아갔다.
다음 날인 8월 3일, 박 대령의 휴대폰과 사무실이 압수수색됐고, 국방부 검찰단 조사도 시작됐다. 당초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에게 집단항명 수괴 혐의를 적용했으나, 항명으로 변경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령은 수사 외압의 주체인 국방부 검찰단 수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표하며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했고 8월 11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수사 외압 상황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해병대사령부는 사전승인 없이 생방송에 출연했다며 징계위원회를 소집해, 오는 18일 오후 2시 박 대령에 대한 징계위가 열릴 예정이다.
한편, 국방부는 현재 불거진 수사 개입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며, 박 대령이 경찰 이첩을 대기하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방부는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국방부 장관이 법무관리관에게 법리 검토를 지시했고 '혐의 내용을 적시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31일 당일 '경찰에 사건 관련 기록을 이첩하는 시기를 장관의 출장 복귀 이후로 미루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취지로 반론을 펴고 있다. 국방부 차관과 법무관리관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중간에 전달했다고도 했다. 국방부는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부사령관에게 직접 대면으로 지시를 전달했으며 이 지시가 해병대 사령관에게도 전달돼, 해병대 사령관이 수사단장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 연설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광복절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선열들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빼앗긴 국권을 되찾거나 과거의 왕정국가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었"으며,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는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그리고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 민주화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국권을 상실한 식민지 백성으로는 한 하루도 살 수 없어 항일 독립의 길에 온몸을 던진 선열들이 꿈꾸던 나라의 미래 그 어디에도 없던, 분단을 넘어서기 위해 분투의 역사는 '과감하게' 삭제했다.
나아가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과 번영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과 '최악의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뜬금없이 반국가세력 논란을 불지폈다.
해방의 의미를 되새겨 분단 극복의 의지를 담기 위해 애써 온 역대 정부의 광복절 경축사와는 너무 다른 이질적인 경축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하면서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대결과 분열의 메시지를 작정하고 발신했다.
대신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내세워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 'NATO와의 협력강화'를 주장했다.
특히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며,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광복절에 "우리는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 평화, 번영에 책임있게 기여해야 하는 역사적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숙명론'까지 꺼내들었다.
15일 오전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 연설을 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6.15남측위원회와 전국민중행동, 민주노총 등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윤 대통령의 8.15경축사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당장 내려올 것을 촉구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는 16일 논평을 발표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를 독재정권 시절로 회귀한 망언이라고 하면서,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 78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라는 이름으로 일제 침략역사를 지우고 일본을 찬양하며, 민주,통일운동을 반국가세력으로 모욕하고 국민에게 멸공을 강요하는 망언을 쏟아내었다"고 규탄했다.
또 대통령 경축사는 "일제와 분단독재정권에 항거한 역사를 부정하고 일제 식민통치와 분단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뉴라이트 식민사관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에 불과"라며,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반민주 반역사 반통일 주장을 2023년에 버젓이 되살리려는 퇴행이자 역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일제에 면죄부를 주고 일본과의 전면적인 군사협력을 선언'한 이번 대통령 경축사는 "북과의 평화협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북 대결을 위해 일본과 손을 잡겠다는 선언"이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과 한반도 개입을 보장하기 위하여 한미일 3각 군사동맹에 매진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이 유엔군사령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한반도에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을 개입시키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결국 전쟁동맹구조를 강화하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유엔사를 통해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6.15남측위는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참칭한 독재와 사대매국, 전쟁 추구, 멸공반북주의일 뿐"이라고 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을 택해,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고 탄압하려는 독재선언, '반공'을 강요하며 북과의 전쟁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멸공반북선언, 미국의 신냉전 패권 정책과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미일 3각동맹 구축에 매진하겠다는 친일매국선언을 발표하였다"고 말했다.
전국민중행동도 이날 논평을 발표해 "경악스러운 광복절 경축사, 일본을 파트너로 국민을 적으로 만드는 대통령은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촉구했다.
전국민중행동은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이 광복한 날,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에서 대결과 적대를 부추기며 평화가 아닌 전쟁을 택했다는 공언을 한 것과 다름없다"며, 유엔사 회원국 10개 나라가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실드'를 15일부터 사전훈련을 포함해 1, 2부로 나뉘어 31일까지 진행하는 것은 바로 그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또 오는 18일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방위 공동구상'을 발족하고 3각 군사동맹의 공식화를 선언하는 것 역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한미,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는 8.15경축사를 발표하는 와중에 미국 국방부가 동해상 훈련시 공식 표기를 '일본해'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기시다 일본 총리는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진자에 공물을 봉납하는 일이 벌어진데 대해서도 주권 침해를 국민들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역시 논평을 통해 "얼굴과 목소리를 가리고 누가 한 발언인지 맞춰보라고 했으면 서울 도심에서 울려 퍼지는 태극기 부대의 극우적 선동과 하나도 다를 것 없을 발언"이라며, '정치적 선 긋기와 편 가르기를 넘어 노동자, 시민의 보편적인 상식과 가치에 도전장을 던진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를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독립운동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은 헌법 전문의 부정과 다름이 아니며, 객관적 사실에 대한 연구와 학문적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고 "가해자인 일본의 태도 변화가 요원한 가운데 이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미래를 언급하는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이어 "졸지에 대통령에 의해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힌 노동자, 시민은 윤석열 정부를 두말할 나위 없는 반노동,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세력으로 규정한다"고 하면서 "이를 바로 잡는 길은 윤석열 정부의 퇴진밖에 없음을 확인하며, 보편적 가치와 상식, 역사 인식이 승리하는 사회를 위해 싸우고 또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6.15남측위원회 논평] (전문)
독재정권시절로 회귀한 광복절 기념사.
윤석열 정부는 역사부정, 멸공반북, 친일매국을 당장 멈추라!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 78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라는 이름으로 일제 침략역사를 지우고 일본을 찬양하며, 민주,통일운동을 반국가세력으로 모욕하고 국민에게 멸공을 강요하는 망언을 쏟아내었다.
이번 기념사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국민적 저항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멸공 반북 주의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함이며, 이후 공산세력과 맞서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한 공산세력, 추종세력에게 속거나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 온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진보운동 세력들을 공산세력으로 매도하였다.
우리 선열들의 독립운동은 주권을 강탈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서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이었지, 둘로 갈라진 국가를 세우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다. 독립운동가를 암살하는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나라, 국민을 반국가세력이라고 탄압하는 국가를 세우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은 나라를 반으로 가른 외세와 결탁하여 국민을 탄압하다가 쫓겨난 독재정권들의 멸공, 반공주의가 아니라, 일제에 항거하여 주권을 되찾으려 했던 항일운동, 독재정권과 분단냉전 체제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했던 위대한 국민들의 민주화, 통일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망언은 일제와 분단독재정권에 항거한 역사를 부정하고 일제 식민통치와 분단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뉴라이트 식민사관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반민주 반역사 반통일 주장을 2023년에 버젓이 되살리려는 퇴행이자 역사에 대한 도전이다.
이번 기념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일제에 면죄부를 주고 일본과의 전면적인 군사협력을 선언하였다.
이번 광복절 기념사 어디에서도 일본의 책임을 묻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일본 제국주의 침략 범죄를 지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기념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보편 가치 파트너’로,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가 북한 위협에 대한 ‘최대 억제‘ 역할을 하였다고 한껏 추켜 세우며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를 더욱 강조하였다.
미국과 한국, 일본이 북을 군사적으로 압박해온 기간 동안 언제 평화가 도래했었는가. 한반도에서 평화가 잠시라도 도래했던 것은 남북, 북미간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었던 시간들 뿐이었음을 모두가 똑독히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기념사는 북과의 평화협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북 대결을 위해 일본과 손을 잡겠다는 선언이다. 또한 일본의 군사적 역할과 한반도 개입을 보장하기 위하여 한미일 3각 군사동맹에 매진하겠다는 선언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마땅히 해체되어야 할 유엔사의 역할을 강조한 것 역시 한반도에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을 개입시키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종전, 대북 제재 완화, 그리고 유엔사 해체 주장에 대해 ’반국가세력‘으로 공격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결국 전쟁동맹구조를 강화하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유엔사를 통해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이번 기념사를 통해 윤석열 정권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결국 민주화운동을 매도하고, 평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을 탄압하는 것임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국가들간의 연대'가 통일의 상대방인 북과는 철저히 대결하며,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절대 선으로 포장하여 침략국가 일본과 묻지마 군사협력을 하자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는 ‘자유’도 ‘민주주의’도 결코 아니다. 그저 ‘자유’와 ‘민주주의’를 참칭한 독재와 사대매국, 전쟁 추구, 멸공반북주의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을 택해,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고 탄압하려는 독재선언, '반공'을 강요하며 북과의 전쟁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멸공반북선언, 미국의 신냉전 패권 정책과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미일 3각동맹 구축에 매진하겠다는 친일매국선언을 발표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결코 주권을 팔아먹고 국민을 탄압하고 전쟁을 조장하는 불의한 정권을 그대로 둔 적이 없다.
지난한 일제 식민통치와 독재정권의 파쇼 탄압을 넘어 독립과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위대한 겨레의 투쟁역사가 오늘로 이어지고 있음을 정부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2023년 8월 16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전국민중행동 논평] (전문)
경악스러운 광복절 경축사, 일본을 파트너로 국민을 적으로 만드는 대통령은 이제 그만 내려오라!
78돌 광복절 경축사가 우리 민족의 씻을 수 없는 또 다른 분노로 기록되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순국선열을 기리는 광복절에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강점 36년의 과오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순국선열의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으로 폄훼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점령, 식민지화는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반성 없는 일본을 미래지향적 관계로 규정했다. 한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서라면 일제의 한반도 강점마저 ‘자유 민주주의’라며 정당화할 셈인가.
이번 경축사로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무찌르자 공산당’, ‘해묵은 반공, 멸공’임이 드러났다. 또한 민주주의, 인권, 진보를 외치는 국민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으며 '적'으로 돌렸고,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퇴행적·극우적 사고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언급은 없이, 한미일 군사협력과 나토 강화를 천명하며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더욱 극대화했다. 북핵 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며 일본과의 실시간 정보 공유를 기정사실화 했다. 또한 나토와의 협력 강화를 언급하며 중국과 러시아까지 겨냥한 안보전략을 펼치겠다는 매우 위험한 전략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이 광복한 날,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에서 대결과 적대를 부추기며 평화가 아닌 전쟁을 택했다는 공언을 한 것과 다름없다. 다음 주 미국의 핵 전략자산과 유엔사 회원 10개국을 동원하여 실시되는 최대규모의 한미연합전쟁연습 '을지프리덤실드'가 바로 그 증거이다.
오는 18일 진행될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한미일 3국의 정상회의와 군사훈련을 정례화하고, ‘3국방위 공동구상’을 발족하며, 3각 군사동맹의 공식화를 선언하게 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 국방부는 동해를 '일본해'로 공식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전범들이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또다시 공물을 봉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군사동맹 완성을 위해서라면 미국과 일본이 주권을 침해해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우리 국민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해묵은 색깔론으로 지지율 탈환을 바라는가. 철지난 이념공세로 국민을 편가르기 하지말라. 우리 국민은 시대착오적이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대통령을 단 한 번도 좌시한 적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순국선열들과 독립유공자 앞에 무릎 끓고 사죄하라.
2023년 8월 16일
전국민중행동
[민주노총 논평] (전문)
정치적 선 긋기와 편 가르기를 넘어 노동자, 시민의 보편적인 상식과 가치에 도전장을 던진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얼굴과 목소리를 가리고 누가 한 발언인지 맞춰보라고 했으면 서울 도심에서 울려 퍼지는 태극기 부대의 극우적 선동과 하나도 다를 것 없을 발언이 광복절 기념사를 빙자해 대통령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마디로 나가도 너무 나갔다.
일본의 극우주의자들과 한국의 아스팔트 우파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대통령의 말은 이후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예고한 것이어서 매우 심각하다. 이는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주장하는 다수의 노동자, 시민에 대한 탄압을 예고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향후 우리 사회는 극심한 가치관의 갈등과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하다.
독립운동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은 헌법전문의 부정과 다름이 아니며, 객관적 사실에 대한 연구와 학문적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다. 가해자인 일본의 태도 변화가 요원한 가운데 이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미래를 언급하는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다.
오히려 맹목적인 한미일 동맹에 기댄 진영 간 대결 논리를 강화하고 정당화하며 이의 결과로 수반되는 긴장과 갈등, 이로 인한 노동자, 시민의 피해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 대통령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소위 ‘국익’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통령의 어제 발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시다 일본 총리와 일본 내각과 다수의 정치인들은 1급 전범의 유해가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치고 참배를 했다. 미국 국방부는 일본과 논란, 분쟁이 있는 동해의 표기에 대해 ‘동해’와 병기도 아닌 ‘일본해’ 표기를 결정했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결정이 있었음을 대통령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삼자 대위변제 대한 이의신청에 대해 ‘공탁관’이 아닌 ‘법원’이 기각을 결정했다.
이렇듯 폭주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졸지에 대통령에 의해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힌 노동자, 시민은 윤석열 정부를 두말할 나위 없는 반노동,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세력으로 규정한다. 또한 이를 바로 잡는 길은 윤석열 정부의 퇴진밖에 없음을 확인하며, 보편적 가치와 상식, 역사 인식이 승리하는 사회를 위해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
지난 8일 오전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에서 대원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개막을 석달 정도 앞둔 지난 5월 잼버리 조직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방문 보고회’가 개최됐으나, 공동 조직위원장 5명 가운데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등 정부 쪽 위원장 3명 전원이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보고회는 실무 차원의 최종 점검회의 이후 잼버리 조직위가 현장에서 잼버리 준비 상황을 살펴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된 처음이자 마지막인 자리였다. 정부 쪽 공동 조직위원장들이 불참하며, ‘예고된 파행’을 바로잡을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10일 오전 11시, 전북 부안군 잼버리 야영지 인근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에서 잼버리 조직위 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방문 보고회’가 열렸다. 한겨레가 15일 확보한 ‘잼버리 조직위 위원 현장방문 보고회’ 문건을 보면, 당시 보고회에는 공동 조직위원장인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를 비롯해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전북도지사 등 40명만이 참석했다. 조직위는 잼버리의 종합·운영 계획 및 관련 시설 설치·이용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주체’인데, 전체 조직위원 154명 가운데 불과 26%밖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김현숙 여가부 장관과 한창섭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이상민 장관은 탄핵 심판으로 직무정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부 쪽 공동조직위원장들은 당시 보고회에 전원 불참했다. 불참한 조직위원 가운데는 잼버리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위원장)·유정주(당시 야당 간사) 민주당 의원과 여당 간사인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도 포함됐다.
이날 현장 보고회는 잼버리 참가 52개국 대표단과 한국스카우트연맹, 잼버리 조직위 직원 등 실무진 차원에서 닷새간(4월27일~5월1일) 최종 점검을 한 직후 이뤄졌다.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조직위원들을 불러 준비된 현장을 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오후 4시까지 진행된 당시 보고회에서 조직위원들은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제공될 급식 품질을 점검하고, 야영지 전체를 볼 수 있는 경관 쉼터와 야영장, 영지 내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 공사 현장, 숲 밧줄놀이가 가능한 고사포 영외 과정 활동장 등을 차례로 돌아봤다. 보고회 직전인 어린이날 연휴 사흘 동안 부안군에 150㎜의 비가 내려 야영장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던 상황이다. 실질적 예산 집행 권한을 지닌 여가부 장관을 비롯해 조직위원들이 당시 현장을 제대로 돌아보기만 했더라도, 이후 발생할 문제점들을 좀 더 빨리 바로잡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당시 현장 보고회는, 조직위가 2인 체제에서 5인 체제로 확대(2월28일)되고 처음으로 공동 조직위원장 전원이 모여 잼버리 현장 준비 상황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공동 조직위원장 전원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날을 포함해 잼버리 개막 전까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조직위는 모두 11차례의 ‘위원총회’를 개최했는데, 대부분 서면회의로 개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총회는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 위원 등으로 구성된 조직위 내 최고의결기관이다. 잼버리 개최 직전인 지난달 마지막으로 열린 위원총회도 서면 회의 방식으로 조직위 위원을 변경·선임하는 안건만 심의했을 뿐이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의 한 관계자는 이를 언급하며 “유일한 현장 보고회 자리에 (공동위원장을 포함해) 위원 중 절반도 참석을 안 한 건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에서 “70년 동안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온 북한은 최악의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추구한 대한민국과 공산전체주의를 선택한 북한의 극명한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어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 등으로 위장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해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다. 이것이 전체주의 세력의 생존 방식이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주장했다.
▲16일 매일경제 1면.
▲16일 아침신문들 1면.
16일자 아침신문들은 1면에 일제히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신문들마다 경축사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야당과 언론 등을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도 국민 통합을 이끌어내야 할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전투적 언어로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경제와 매일경제, 세계일보, 서울신문 등은 “가감 없는 진단”, “민주노총 등 사회단체 내부에 간첩 조직이 침투해 암약해온 사실에 비춰 타당하다”고 평가하며 윤 대통령의 발언을 옹호했다.
‘공산전체주의’ 6번 발언 尹 대통령에 한겨레·경향 “비판적인 야당과 언론 겨냥”
경향신문은 <민주주의 운동가를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몬 광복절 경축사> 사설에서 “공산전체주의라는 생소한 개념어를 6차례나 사용했다”며 “이렇게 폭력적인 언사를 대한민국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듣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1950~1960년대 북한의 남침 규탄대회에서나 할 법한 연설을 듣노라면 지금이 2023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16일 경향신문 1면.
▲16일 한겨레 1면.
국내 정치에 대한 비판 의도가 있었다고도 했다. 경향신문은 “북한의 간첩 활동을 경계하자는 취지라면 정보기관의 역할을 강조하면 될 일”이라며 “하지만 연설 전반을 선동적 표현에 할애하며 국내 정치에 관해 말한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공산전체주의’에 민주주의·인권·진보를 덧씌워 건전한 정부 비판자들의 목소리까지 위축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 자체를 모독하는 발언이기도 하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설득하려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연설로 보기 어렵다. 드러내놓고 편을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는 분열의 언어이지, 통합의 언어가 아니다. 대통령의 연설은 국가 지도자로서 국론 통합을 이끌어내고, 비전을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 경축사 아닌가. 1987년 개헌 이후 매년 광복절 경축사에 나온 평화통일 언급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윤 대통령의 경축사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보통 시민들조차 공감할 수 없는 실망스러운 연설”이라고 지적했다.
▲16일 경향신문 사설.
▲16일 한겨레 사설.
한겨레도 <야권 싸잡아 “공산전체주의”, 또 갈라치기 앞장선 윤 대통령> 사설에서 “누가 봐도 자신에게 비판적인 야당과 언론을 싸잡아 겨냥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취지의 발언으로 ‘갈라치기’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때보다 더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며 “야권과 시민사회는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이면 곧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전형적인 선악 이분법이다. 이렇게 편협하고 독선적인 갈라치기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 집권자들이나 즐겨 구사하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새로운 차원의 한·미·일 협력 확대 강조한 8·15 기념사> 사설에서 “국권 상실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 통합을 이끌어야 할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전투적 언어로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역시 <尹대통령은 “보편가치 동반자”... 日은 야스쿠니 참배·봉안> 사설에서 “윤 대통령이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 말이라 해도 광복절에 마땅한 국민통합 메시지는 아니었다”고 짚었다.
▲16일 한국일보 사설.
▲16일 중앙일보 사설.
한국경제 “가감 없는 진단” 세계일보 “곳곳에 뿌리내린 불순세력을 가리켜”
한국경제는 <윤 대통령의 특별한 광복절 2대 메시지에 주목한다>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메시지에서 먼저 주목되는 것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경종과 경고”라며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으며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해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 공작을 일삼아 왔다’는 지적은 대한민국의 구조적 취약점에 대한 가감 없는 진단”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전체주의 반대”, “日일 가치 파트너” 강조한 尹의 8·15 경축사> 사설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반국가세력은 북한 대남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고 반미·친북활동을 한 민노총·시민단체 간부들, 특히 진보정권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불순세력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며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 채널에 심취해 유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했지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산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우호적인 발언을 일삼은 그간의 당내 인사들의 행태에 비춰보면 지금은 대통령의 말에 시비 걸 게 아니라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들의 행위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6일 세계일보 사설.
▲16일 한국경제 사설.
서울신문도 <자유의 가치와 연대의 힘, 거듭 되새길 때다> 사설에서 “특히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진단은 민주노총 등 사회단체 내부에 간첩 조직이 침투해 암약해 온 사실에 비춰 타당하다고 여겨진다”고 썼다.
▲16일 매일경제 사설.
매일경제 역시 <진보참칭 반국가세력에 직격탄 날린 尹대통령 광복절 축사> 사설에서 “실제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반정부 세력의 준동은 정치권, 노동계, 시민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며 “제주, 창원, 민주노총 등에서 올해 초부터 잇따라 터진 간첩단 사건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 추종 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개 치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진보정당 간부가 북한 지령을 받아 반정부 운동을 주도하고, 진보성향 노동단체 간부들이 수년에 걸쳐 간첩행위를 해온 것은 충격적이다. 곳곳에 암약하는 불순 세력은 더 있을 수 있다. 진보를 참칭하는 북한 추종 세력이 퍼뜨리는 가짜뉴스와 거짓 선동, 괴담도 자유민주주의를 멍들게 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가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펴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종북 세력은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B 때 극우 기자 소송 지원 시도에 경향 “이동관 결격사유 넘쳐”
오는 18일 청문회를 앞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과거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 시절 극우 성향 프리랜서 기자 소송 지원을 시도하려고 한 정황이 확인됐다. 2008년 극우 성향 김아무개 기자는 2008년 한 강연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분신 사망한 이병렬씨(42)를 두고 “민주노총 소속”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은 분신하면 평생 먹고산다” 등의 발언을 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김 기자는 재판에서 2000만 원 배상 확정 판결을 받았다.
15일 경향신문은 4면 <이동관, ‘광우병 분신 노동자’ 모독한 기자 소송 도우려 했다> 기사에서 “경향신문이 14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김모 기자의 광우병 동영상 관련> 대통령 서면 보고서 문건을 보면, 당시 이동관 대변인 산하 언론1비서관실을 중심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정기획수석실 등이 문제가 된 강연을 인터넷에 전파하고 김 기자의 소송 지원 방안을 강구했다”고 보도했다.
▲15일 경향신문 4면.
▲16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이명박 청와대 국책과제비서관실은 <김모 기자의 광우병 동영상 관련> 문건을 작성해 사안을 관리했다. 문건은 ‘(프리랜서 기자인 김 기자가) 현재 강연 내용과 관련하여 민노당, 민노총과 소송 중’이라며 ‘정부 내 관련 조치’ 사항을 정리했다”며 “문건은 ‘촛불집회, 광우병 사태의 원인은 ①MBC·KBS의 왜곡보도와 ②정부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세력의 선동에 있다’는 게 강연 내용이었다고 요약했다. 그 아래에는 해당 강연 영상의 전파와 김 기자에 대한 지원 방안이 ‘대응 조치’로 제시됐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16일 <이번엔 극우 기자 소송 지원 시도, 이동관 결격사유 넘친다> 사설에서 “대통령 서면보고서 문건에는 이 사안과 관련해 ‘소송과 관련한 지원방안 강구 중(변호사 선임지원 등)’ ‘대변인실에서 민정수석실에 기통보’라고 돼 있어 이 후보자가 A씨의 소송 지원을 추진한 정황이 드러났다. 문건에는 또 A씨의 강연영상 등을 인터넷에 전파하고 국회의원 및 군 등에 제공·활용토록 조치한다고 돼 있다. 쇠고기 졸속개방 항의 집회·시위를 노동계가 배후 조종하는 것으로 호도하려는 공작에 이 후보자가 간여한 것이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할 방통위원장 업무수행에 결정적인 결격사유”라고 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2023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2023 평화통일시민강좌는 한반도 평화체제, 한미동맹, 북한의 건축과 경제 및 기후위기 대응, 전쟁국가 미국, 미일동맹의 역사를 3월 18일부터 11월 18일까지 신촌에서 진행됩니다. 아래는 지난 7월 15일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상임이사가 진행한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미국, "아시아에 중간기지가 필요하다!"
남북이 통일하는 과정에서 남북의 역사학에 대해 서로가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를 만들었다. 북측의 역사 관련 자료를 살펴보
면 미국과 일본의 자료에 대한 분석을 상세히 해 놓았다. 미일동맹의 역사 또한 남북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설명하려 한다.
1784년 미국 상선이 청나라 광주에서 첫 무역을 시작했다. 첫해 순이익은 4만 불에 달했고 5년간 15척의 상선이 무역을 위해 광주를 꾸준히 드나들며 미국은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
19세기 초반, 미국은 유럽 수준의 산업자본주의 단계로 들어섰다. 1832년 미국은 인도양 연안 국가에 대한 (불평등)통상 조약 강요와 태평양 연안 국가들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아시아 특별원정대'를 파견한다.
대(大)선주이자 국무성 특별사무관으로 아시아 특별원정대 책임자였던 에드몬트 로버트는 이때 미 국무성에 "일본과 통상교역의 길이 열린다면 장차 조선과도 교역할 수 있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한 사람으로 유명한 링컨 정부의 윌리엄 슈어드 국무장관은 동방과의 무역을 위해 "아시아 대륙에 식민지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조우했다"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 주재 미공사 크레이는 "아시아에 육군과 해군이 튼튼히 의거할 수 있는 기지를 창설해야 한다. 지브로올터(Gibraltar, 지중해와 대서양을 이어주는 좁은 해협)와 같은 역할을 할 남해의 거문도를 우선 점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거문도는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영국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점령했었다. 거문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러시아 함대가 중앙아시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있다. 당시 영국 해군성 부상의 이름을 따 '해밀턴 항(Port Hamilton)'으로 불렸던 거문도에는 아직까지 영국군의 묘가 남아있다.
1845년 당시 미 상원 해군문제위원회 위원장은 "조선을 개항하려는 유럽 자본주의 나라들의 노력이 조선의 '쇄국 양이' 정책으로 실패하고 있는 상황으로 조선 개항을 위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하원 본회의에 제출했다. 여기에서 '특별한 조치'란 함포를 앞세워 문호를 개방시키는 '포함외교'를 말하는 것이었다.
1848년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까지 진출한 미국은 마침내 태평양 연안 국가가 되었다. 그전까지 중국과 교역하기 위해서는 인도양을 거쳤어야 했으므로 유럽국가들에 비해서 불리했다. 하지만 태평양 연안 국가가 되면서 태평양을 질러 중국에 바로 갈 수 있게 되면서 미국은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획득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일본이나 조선의 부산을 중요한 중간 기착지로 여겼다. 1853년 사우스 아메리카(South America)호의 동래 용당포 침입, 1855년 투브라더(Two Brother)호의 통천 남파 사건도 일어났다. 조선 사람들은 이 배들을 '이양선'이라 불렀다.
미국의 조선 개항 시도 실패
일본 막부 해군사령관 가쓰 가이슈는 <개국기원>에서 '미국은 일본과 통상하는 길을 열고, 조선을 샌프란시스코와 상해 및 관동을 연결하는 안정적 석탄 보급지로 만드는 것을 궁극 목적으로 두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 해군 동인도 함대가 일본 앞바다에 나타났고 그다음 해 일본을 개항시켰다. 페리는 1852년에 쓴 보고서에서 '거점기지'를 언급했는데 이는 단순히 식량창고를 지을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영토, 즉 정치 경제적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을 의미했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의 대동강 침입은 단순한 상선의 항로 이탈이 아닌, 18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조선 침략 전략의 첫 시도였다. 국기도 달지 않은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약탈을 일삼았다. 평안감사 박규수와 분노한 조선인들이 포를 앞세운 제너럴셔먼호에 맞서 싸웠고 대동강 수위가 낮아져 오도 가도 못 하는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다.
그 후 미국은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제너럴 셔먼호의 행방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야츄세트'호를 보내 조선의 해안선을 측량했다. 이때 만들어진 평양 만과 대동강 일대의 해도가 보스턴 공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미국은 1871년 5척의 근대함선을 이끌고 강화로도 들어왔다. 우리는 이를 '신미양요'라 부르지만, 미국의 공식적 기록에는 '1871년 조-미 전쟁'으로 남아있다. 신미양요로도 조선의 개항에 실패한 미국은 일본과의 결탁을 모색한다.
▲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상임이사. ⓒ평화통일시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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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를 선택한 일본
봉건적 모순과 억압이 쌓여있던 상태에서 일본은 페리 제독의 침략으로 졸지에 자본주의 강국들과 억지 통상을 맺어야 했다. 서양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으로 농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사회적 갈등도 증폭되었다.
일본과 구미 열강의 불평등 조약 이후 10년 동안, 미국의 대일 수출액은 59배, 수입액은 13.7배로 늘어났으니 일본에 대한 열강들의 수탈이 얼마나 막대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서양 열강은 자본주의 발전을 통해 제국주의로 바뀌었지만, 정상적인 자본주의 진입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일본은 군국주의 체제를 통한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정한론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때 일본은 자기 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미국과의 공모를 도모한다.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했다. 표면적 목표는 미일 불평등 조약의 개정과 근대화를 살펴보기 위한 시찰단이었지만 실제로는 신미양요 이후 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와쿠라 대표는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일본이 미국의 조선과 아시아에 대한 문호개방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면, 일본과 맺은 조약개정에 응하겠다'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1873년 일본 해군성이 만들어질 때 일본 해군의 군함은 철함 2척을 포함하여 17척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 목조함정이었다. 이러한 일본에 미국은 3척의 군함과 8천 만발의 탄약을 넘겨주었다.
1875년,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운요호를 앞세워 강화도에 들어왔다. 함포를 앞세운 일본에 조선은 굴복하고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조약을 통하여 부산항과 그 외 2개 항구 개항, 개항장에서의 일본인 거주권, 자유 무역권, 조선 연해 측량권, 해도 작성권, 치외법권을 보장받았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이 근대화를 이루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조선에서의 쌀이 일본으로 수탈되면서 조선의 쌀값이 폭등하고 일본으로부터 품질 낮은 면화가 들어오면서 조선의 면화 산업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조선의 근대화는 반봉건과 반외세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홍장과 슈펠트의 협상으로 체결된 '조미조약'
강화도 조약에 대한 반대여론과 청나라가 서양 침략으로부터 누더기가 되는 것을 보면서 조선은 더욱 서양과의 문호개방에 더욱 부정적이었다. 일본을 통해 조선과 조약을 맺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미국은 1880년 해군 제독‧외교관이었던 로버트 슈펠트가 주일 청나라 영사 하여장을 만났다.
슈펠트는 러시아가 조선과 청나라 침략을 위해 해군을 동부에 집결시킨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고 청나라는 해군을 강화하고 조선은 서양과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 침략을 막기 위한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의 이홍장은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오키나와까지 병합하자 일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또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과 미국 사이의 통상교류를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강 사이의 세력균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종은 이홍장에게 조미 교섭의 주선을 일임하고 이홍장과 슈펠트의 협상으로 1882년 '조미조약'이 체결되었다.
일본의 본격적 조선 침략과 미국의 지원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의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고 나서 7년 후 임오군란(1882년)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상시주둔하게 되었다. 일본은 청나라 군인이 조선에 주둔하는 한 조선 침략을 이룰 수 없다고 보고 청나라에 맞선 군사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1894년 육군병력을 13만 명으로 확장하고 청나라 북양함대에 맞서기 위한 '해군 확장 7개년 계획'도 추진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고 조선은 동학군을 진입하기 위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한다. 이를 빌미로 일본군이 인천항을 통해 5천 명, 부산항을 통해 1만 명이 들어왔다.
갑오농민전쟁 발생 일 년 전, 교조신원운동으로 농민봉기가 확대될 것을 예상한 미국은 농민봉기에 맞서 '거류민 보호'를 명분으로 청과 일본보다 먼저 인천항에 함대를 보내놨던 미국은 조선을 둘러싼 청일 각축전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일본을 앞세우기로 했다.
'전주 화의' 이후 조선 주둔 명분을 잃은 일본에 미국은 조선에 있는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본군이 주둔해야 한다며 일본을 지지해주고 일본이 청나라를 칠 시간과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일본은 청나라에 조선을 함께 개혁하자는 '내정개혁안'을 청에 제안했지만 조선에 대한 종주권이 있다고 생각한 청나라가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러자 일본은 단독으로 조선의 내정을 개혁하겠다며 청나라 군대의 철군, 전신선‧철도 개설권을 요구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내정개혁' 강요 이전부터 국가적 부패와 폐정을 인정하고 내정개혁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농민군과의 '전주 화의'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폐정개혁 없이는 나라를 도저히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주적 개혁으로 조선내정에 대한 일본의 간섭을 막아보려고 했던 것도 있었다.
결국, 조선은 일본의 내정개혁안을 거절한다. 그 후 조선은 김홍집을 중심으로 갑오개혁을(1894.7) 실시했다.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조선의 자체 개혁에 간섭할 여력이 없었다. 갑오개혁이 일본의 강요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해석이다.
조선이 일본의 개혁안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자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1894.6)하여 고종을 감금하고 조선 병사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다음날 일본군은 대원군을 협박하여 새 정부를 구성하고 조선으로 하여금 '조청간 체결했던 3개의 무역 장정을 폐기하고 아산에 있는 청군을 철군시켜 줄 것을 일본에 의뢰했다는 사실'을 청나라에 정식 통고하게 했다. 그리고 일본은 청나라 함선을 공격하여 청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력만으로는 이홍장의 북향함대를 이길 수 없었다. 미국은 1894년 10월 1만 톤급 군함 6척 등 막대한 군수물자를 지원해 주며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은 평양성 전투를 계기로 청나라 군대를 압록강 이북으로 완전히 몰아내고 연이어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를 침입했다.
고종은 미국에 조선 문제에 대한 열강회의를 소집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절했고 청나라가 조선을 포기하도록 독촉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요동반도를 차지했지만 시모노세키 조약(1895.4) 체결 6일 후 요동반도에 이해가 걸려있던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요동반도의 반환을 요구했고(삼국간섭) 일본은 청으로부터 추가 배상금을 받는 조건으로 요동반도를 반환했다.
러일전쟁. '0'차 세계대전
1900년 6월, 유럽 열강이 차례로 청나라로 진출한 가운데 산동성에서 발생한 '의화단 난'이 북경으로까지 확산 되었다. 이를 빌미로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며 일본을 비롯한 8개국(영국,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 일본)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청을 공격했다.
1896년 러시아는 요동반도에 대한 삼국간섭의 대가로 만주의 남북과 동서를 연결하는 철도 부설권을 획득했다. 러시아는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철도가 피해를 보았다는 명분으로 의화단 난이 진압된 이후에도 철군하지 않고 만주지역에 머물렀다. 러시아 견제의 필요성을 느낀 미국은 러일 전쟁에서 일본을 지원하고 영국은 영일동맹을 체결(1902)했다.
러일 전쟁(1904~1905)은 사실 일본을 내세운 영국과 미국, 러시아와의 전쟁이었다. 러일 전쟁을 0차 세계대전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전쟁비용 17억 원 중 미국과 영국이 8억 원을 보장해 주고 일본은 조선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전쟁에 나섰다.
러일 전쟁이 끝나갈 즈음 도쿄에서 가쓰라-태프트 조약(1905.7)이 체결되었다. 일본의 조선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서로 상호확인해 주는 이 밀약이 조선 침략에 대한 미일 결탁의 시초라고 알고 있지만 기실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의 미국 방문과 뒤이은 운요호 사건부터 미일의 결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잠깐의 와해 시기를 맞은 미일동맹
미일동맹은 잠깐의 와해 시기가 있었다. 러일 전쟁은 만주지역에 대한 이권을 노린 미국의 중재로 포츠머스 조약을 맺으며 종료하게 되는데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겠다고 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거부했고 그러자 러시아와 중재자 미국에 대한 일본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미국은 자국의 도움으로 일본이 만주지역에 진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획득한 남만주철도에 대한 공동경영을 1억 엔의 재정지원과 함께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들의 이권을 미국에 빼앗길 것을 우려하여 이를 거절했다. 이때부터 미국과 일본의 갈등이 생겨났다.
1912년 신해혁명 이후 세워진 중화민국은 미국과 가까운 사이가 된다. 1922년 미국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벨기에, 네덜란드, 포르투갈, 중화민국을 불러 군비제한에 대해 논의하고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했다. 미국은 이때 체결한 군축조약으로 영일동맹 파기와 중화민국에 대한 일본 진출 억제를 이끌어 냈다.
미국은 장작림 정권과 함께 만주철도에 대항하는 철도건설을 추진하고 일본의 만주철도-대련 항에 대항하여 대련과 발해만을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호로도에 무역항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더불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중화민국은 대일저항을 강화해 갔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일본의 거침없는 중국 침략이 계속되자 미국은 1939년 미일통상항해조약을 파기하며 일본에 석유, 철 등의 수출을 금지했다.
프랑스가 독일에 패하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반도(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일본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1940년 북부 인도차이나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독일, 이탈리아와 군사동맹을 맺었다.
1941년 남부 인도차이나 진출을 두고 미국과의 갈등이 더욱 선명해졌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으로의 중요한 수송로인 인도차이나반도의 일본 점령은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완전 점령 전까지 미국의 해군력을 붙잡아두기 위해 진주만을 공격(1941.12)했다.
2차 세계대전 종결과 미국의 원폭실험 성공,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구축 결심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미국, 영국, 소련이 독일의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독일 포츠담에서 모였다. 독일의 전쟁배상 문제, 독일의 군사주의‧나치 제거, 독일의 식민지 처리 문제를 한 달 가까이 모여 논의했다.
이 와중에 소련을 제외하고 중국을 끼워 넣어 미국, 영국, 중국이 일본에 무조건적인 항복을 촉구하는 '포츠담 선언'(1945.7.26.)이 발표되었다. 중국의 장제스는 당시 회담에 참여하지 않았고 미국의 트루먼이 전신을 보내 '서명만' 했을 뿐이다. 포츠담 회담과 포츠담 선언은 별개였다.
포츠담 회담 하루 전날, 미국은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종전의 정책을 재검토하기에 이른다. 사실 동부 유럽에서 독일과 전쟁은 소련이 담당했다.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1943)로 전쟁의 승기를 잡았고 독일의 패전으로 기울어 가던 1944년에 미국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있었다.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영국의 처칠,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이 모여 폴란드를 포함한 동부 유럽의 국경선 문제, 전후 독일의 처리, 유엔 구성 및 표결권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 구축 과정에서 중요한 의제들이 논의되었다. 이 회담에서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이 종료(1945.5)된 후 3개월 후에 대일전에 참전하기로 약속했다.
얄타회담 이후 루스벨트가 사망하고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대통령이 되어 포츠담 회담에 참가하게 된다. 세계대전 이후를 구상하는 미국에게 이제 새로운 고민은 '소련'이었다. 루스벨트는 소련을 끌어들여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려 했지만, 트루먼은 소련 없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소련의 대일전 참전(1945.8.9.)전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1945.8.6.)했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함과 소련에 대한 경고였다. 세계대전이 종결됨과 동시에 냉전이 시작되었다.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 6년이나 지나서야 전후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조약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9.3.)이 체결되었다. 중국은 이미 1949년 공산화가 되었고 소련도 사회주의 국가로 승승장구할 때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일본과 48개 '연합국' 간에 맺어진 다자간 조약이며 같은 날 미국과 일본 간에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미국과 일본은 동맹관계가 되고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전략에서 일본이 주요한 거점이 된다.
일본은 최대 전범국 지위에서 벗어나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최대 동맹국이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전쟁 범죄자 대다수가 면죄부를 받고 일본 재건의 주역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샌프란시스코 체제'라 부르며 전후 수십 년 동안 동아시아를 규정하는 국제 관계의 틀이 되었다.
951년 9월 8일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미 국무부
광복절 경축사와 삼일절 기념사는 대통령이 주요 대외정책을 발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통로입니다. 과거의 예를 봐도 정권의 대일정책과 대북정책이 두 연설을 통해 발표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역대 정권들은 삼일절과 광복절을 앞두고 각 부처와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하며 연설을 준비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연설문의 내용과 구성을 보면 메시지의 선명성에 비해 문장의 질이 매우 떨어지는 게 눈에 띕니다. 선명성에만 신경 쓴 나머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기에는 문장이 너무 허접합니다. 영국에 '퀸스 잉글리쉬'라는 말이 있듯이,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그 나라 말로 된 가장 품위 있고 격조 높은 문장을 구사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의 연설은 들을 때마다 큰 실망을 안겨줍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한 한 차례의 삼일절 기념사와 두 차례의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제104주년 삼일절 기념사가 최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길이도 역대 정권 기념사 중 가장 짧을뿐더러 일본의 폭압 통치에 전 국민이 들고일어난 삼일운동의 의미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78돌 광복절 경축사를 보니, 그때와 수준이 막상막하입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자유'라는 단어의 과다 사용입니다. 자유는 평등과 함께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평등은 없고 자유만 있습니다. 평등은 '공산주의' 용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정의했는데,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요? 당시 독립운동의 최대 목적은 일본제국주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다양한 세력의 운동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윤 대통령의 편협한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반독립운동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윤 대통령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표현도 썼는데, 자유와 쌍을 이루는 평등을 빼고 자유만 보편적 가치의 항목으로 집어넣는 것은 세계 보편적인 사상과 동떨어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의 연설문을 보면, 자유를 단순히 공산주의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위에 나온 광복절 연설문 대목이 윤 대통령의 자유관과 그 위험성을 잘 보여줍니다.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를 자유를 훼손하는 공산전체주의자로 몰아 탄압하겠다는 협박으로 들립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태연히 짓밟은 것도 자유를 이렇게 편의적으로 생각한 데서 나왔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한국방송, 문화방송, 언론진흥재단 가릴 것 없이 자유언론의 진지에 맹폭을 가하고 있습니다. 가히, '언론자유 대학살'이라고 불러도 될듯합니다. 바로 이것이 '기승전-자유'를 말하면서 '자유'를 사유화하고 훼손하는 윤 대통령의 방식입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광복절과 삼일절만 되면 한국 대통령의 연설을 긴장하며 지켜봐 왔습니다. 하지만 윤 정부 들어서 이런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규탄하고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마당이었던 대통령 연설이 친일적인 내용으로 싹 바뀌어 버린 탓입니다.
윤 대통령의 연설을 순차적으로 보면, 가장 첫 연설인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라고 비교적 점잖게 일본의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이때는 그저 '보편적 가치'라는 단어만 썼지, 자유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서울 방문을 두 달여 앞두고 한 제104주년 삼일절 기념사에서는 갑작스레 일본을 "과거 침략주의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격상합니다.
인권이 보편가치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며 강제 동원 피해 문제가 한일 간 가장 큰 인권 문제이고 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보면, 어불성설의 논리였습니다. 뒤돌아보면, 이 발언은 일본이 양보하지 않아도 우리가 일본의 요구에 맞춰 강제 동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예고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라는 수식어도 빼고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가 됐습니다. 아직도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피해와 고통을 당하고 있고 그에 공감하는 많은 국민이, 윤 대통령을 '더할 나위 없는 친일 정권'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북·중·러에 맞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로 돌진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비핵 개방 3000'을 본뜬 대북정책, 즉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북한을 향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상만 던져놓고 구상을 실현할 구체적인 노력은 방기한 채 오로지 대북 강경론으로 치달았습니다.
올해 3월 삼일절 기념사에서는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하더니, 이번 제78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강경 쪽으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담대한 구상'을 흔들림 없이 가동해"라는 말을 넣기는 했지만 "압도적인 힘으로 평화를 구축함과 동시에, 북한 정권이 핵과 미사일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와 북한 주민의 민생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공조"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화보다 이른바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에서 그동안 대통령 연설에서는 담지 않았던 유엔사가 일본 안에 운영하는 7개 후방 기지 역할을 처음으로 강조하고 나온 것이 눈에 띕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단순한 대북 압박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한미일 3자 군사협력을 부각한 것이 큰 특징입니다. 윤 대통령은 오는 18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릴 한미일 정상회의를 언급하며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3국 공조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인도 태평양 지역이 중국과 대만해협 위기를 염두에 둔 표현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 안보는 대서양, 유럽 지역의 안보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나토와의 협력 강화 역시 중요합니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인도 태평양 지역의 안보, 대서양과 유럽의 안보, 글로벌 안보와 같은 축 선상에 놓여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미국·일본과 스크럼을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겠다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미국, 일본과 손잡고 북한, 중국, 러시아와 대결을 불사하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발신했습니다. 그와 함께 나라 안의 정권 반대 세력에게도 주권자의 일원이 아니라 '적과 동지' 차원에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날렸습니다.
윤 대통령의 의도가 실현될지와 관계없이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앞으로 국내외 정세가 지금보다 훨씬 가팔라질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내년 4월의 총선은 그 정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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