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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격동시대에 산다

 

[개벽예감 586] 우리는 격동시대에 산다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4/05/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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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외부에 공개된 작전도표

2. 교전상대가 바뀌었다

3. 공격거점으로 개조된 4개 공군기지 

4. 군사기지들이 생존력을 상실한 이유

5.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 못한다

6.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외부에 공개된 작전도표

 

미 제국 제7공군사령부 휘하에 2개 작전단이 있다.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51작전단(51st Operations Group)과 전라북도 군산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8작전단(8th Operations Group)이다. 

 

그런데 미 제국 제7공군 홍보국이 제8작전단의 군사 활동을 보여주는 보도사진 몇 장을 2024년 5월 7일 웹사이트에 올려 놓았다.

 

우선 군산 공군기지에 어떤 전투부대들이 주둔하는지 살펴보자. 제8작전단은 제35전투기대대(35th Fighter Squadron), 제80전투기대대(80th Fighter Squadron), 제8작전지원대대(8th Operations Support Squadron)로 편성되었다. 제35전투기대대와 제80전투기대대는 F-16 전투기를 각각 20대씩 운용한다. 또한 군산 공군기지에는 미 제국 공군 제515항공기동작전단(515th Air Mobility Operations Group), 미 제국 육군 제35방공포여단(35th Air Defense Artillery Brigade), 미 제국 육군 제25수송대대(25th Transportation Battalion)와 제65의료여단(65th Medical Brigade)도 주둔한다. 

 

2024년 5월 7일 미 제국 제7공군 홍보국이 웹사이트에 올려놓은 보도사진은 2024년 5월 2일 제8작전단 제8작전지원대대 작전정보단 소속 하사관 어맨다 잭슨(Amanda Jackson)이 전투복 차림으로 제8작전지원대대 전투원들 앞에서 작전 정보를 해설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어떤 정황인지 알기 위해 제8작전지원대대 작전정보단 지휘관 조너단 로벗츠(Jonathan Roberts) 공군 대령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작전정보단과 무기 검열단의 공동사업에 관해 언급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제8작전단 지휘관이 전투훈련 명령을 하달하면 무기 검열단이 전투훈련 목표를 열거한 목록을 작성하고, ‘백색 세포(white cell)’라고 불리는 작전정보단이 무기 검열단과 함께 전투훈련 씨나리오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제35전투기대대와 제80전투기대대가 그 씨나리오에 따라 전투훈련을 실시한다고 한다. 

 

위와 같은 사정을 보면 2024년 5월 2일에 촬영된 보도사진은 작전정보단과 무기 검열단이 전투훈련 씨나리오를 검토하는 장면인 것으로 생각된다. 보도사진을 보면, 실내 벽면에 대형 액정화면이 걸려있는데 액정화면에 나타난 작전도표 앞에서 작전정보단 소속 하사관 어맨다 잭슨이 해설하고 있다. 

 

그런데 액정화면에 나타난 작전도표 상단에 ‘중국의 역내 미사일 위협(China’s Regional Missile Threats)’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이런 정황은 그들이 중국인민해방군과의 교전 상황을 가정한 전투훈련 씨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 미 공군 제7공군

 

보도사진에 나타난 작전도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 영토 전역이 검은색으로 표시되었고, 작전도표 하단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이 운용하는 순항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같은 다수의 다양한 미사일들이 인디아양-태평양에 있는 미 제국군과 동맹군에 중대한 위협을 주고 있다. 이 도표에는 중국의 다른 전투부대들에 실전 배치된 지대함 미사일들이 표시되었다.”

 

작전도표에는 중국인민해방군이 실전 배치한 지대함 미사일 13종이 표시되었고, 중국 근해로부터 서태평양에 이르는 해역을 삼등분한 미사일 타격권이 표시되었다. 작전도표에 나타난 3중 미사일 타격권에 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1) 중국인민해방군은 중국 해안선으로부터 1,000km에 이르는 해역까지 도달하는 단거리 지대함 미사일 750~1,500발과 발사대차 250대를 배치했다. 한국 전역과 서해 및 동해 전역, 일본 열도 전역과 동중국해 전역, 대만 전역, 필리핀 루손섬(Luzon Island) 북부, 남중국해 면적의 약 70%가 1차 미사일 타격권 안에 들어있다.

 

2) 중국인민해방군은 중국 해안선으로부터 3,000km에 이르는 해역까지 도달하는 중거리 지대함 미사일 150~450발과 발사대차 150대를 배치했다. 미 제국의 역외 영토인 괌(Guam)이 2차 미사일 타격권 안에 들어있다. 

 

3) 중국인민해방군은 중국 해안선으로부터 5,500km에 이르는 해역까지 도달하는 중거리 지대함 미사일 80~160발과 발사대차 50대를 배치했다. 서태평양 면적의 약 70%가 3차 미사일 타격권 안에 들어있다.

 

2. 교전상대가 바뀌었다

 

위에 서술한 작전도표는 군산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미 제국 공군 제8작전단의 교전 상대가 조선인민군이 아니라 중국인민해방군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교전 상대를 중국인민해방군으로 규정한 전략방침은 제8작전단 지휘관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런 중대한 전략방침은 미 제국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결정 사항이다. 조선인민군이 아니라 중국인민해방군을 주한미국군의 교전 상대로 규정한 전략방침은 인디아양-태평양사령부, 주한미국군 사령부를 거쳐 제8작전단 지휘부에 하달되었다. 

 

주한미국군의 교전 상대를 조선인민군에서 중국인민해방군으로 대체시킨 전략방침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된 국가안보전략에 따라 결정된 방침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중화인민공화국을 미 제국의 제1적대국으로 규정했으므로, 미 제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도 중국인민해방군을 주한미국군의 교전 상대로 규정한 것이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주한미국군의 교전 상대로 되었으므로, 주한미국군의 모든 군사 활동은 중국인민해방군과의 대결로 집중된다. 따라서 군산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미 제국 공군 제8작전단의 군사 활동도 당연히 중국인민해방군과의 대결로 집중된다.

 

2024년 5월 2일 제8작전단에서 중국인민해방군과의 교전 상황을 예상한 전투훈련 씨나리오를 검토하는 장면이 담긴 또 다른 보도사진이 제7공군 웹싸이트에 올라있다. 이 보도사진에는 중국인민해방군이 주둔하는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 기지들을 촬영한 항공정찰 사진들이 들어있는 작전도표가 나타나 있다. 군산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미 제국 공군 전투원들이 중국인민해방군이 주둔하는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기지를 촬영한 항공정찰 사진을 놓고 전투훈련 씨나리오를 검토하는 모습은 중국에 대한 미 제국의 군사도발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제8작전단이 작성한 남중국해 작전도표에는 중국인민해방군이 남중국해 인공섬들에 건설한 9개 군사기지가 표시되었다. 그것을 열거하면, 시사군도(西沙群島, Paracel Islands) 군사기지, 황옌다오(黃巖島, Scarborough Shoal) 군사기지, 그리고 난사군도(南沙群島, Spralty Islands)에 있는 수비 산호초(Subi Reef) 군사기지, 게이븐 산호초(Gaven Reef) 군사기지, 휴즈 산호초(Hughes Reef) 군사기지, 존슨 산호초(Johnson Reef) 군사기지, 피어리 크로스 산호초(Fiery Cross Reef) 군사기지, 미스칩 산호초(Mischief Reef) 군사기지, 콰터른 산호초(Cuarteron Reef) 군사기지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을 보면, 유사시 제8작전단 산하 제35전투기대대와 제80전투기대대는 F-16 전투기 40대를 군산 공군기지에서 약 3,000km 떨어진 남중국해 상공으로 출동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유사시 그들은 중국 근해 상공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공군과 교전하려 하지 않고, 왜 남중국해 상공까지 멀리 날아가 교전하려는 것일까? 

 

2024년 5월 2일 제8작전지원대대 작전정보단과 무기 검열단이 전투훈련 씨나리오를 검토할 때 사용한 첫 번째 작전도표에는 한국의 군산 공군기지, 일본의 미사와(三澤)공군기지, 미 제국의 역외 영토 괌이 표시되었다. 괌에는 앤더슨 공군기지(Andersen Air Base)가 있다. 이것은 이 세 공군기지들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이 중국 근해 상공으로 출동해 중국인민해방군과 교전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군산 공군기지와 미사와 공군기지에서 각각 이륙한 전투기들은 중국 근해 상공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공군과 교전할 수 있지만, 장거리 비행 능력이 없는 F-16 전투기들이 군산 공군기지에서 약 3,000km 떨어진 남중국해 상공에서 교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공격거점으로 개조된 4개 공군기지 

 

군산 공군기지에 배치된 F-16 전투기는 197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해 지금은 퇴역을 앞둔 ‘고물 전투기’다. 미 제국 공군은 그 ‘고물 전투기’를 2025년까지 운용하고, F-35A 스텔스 전투기로 교체하려고 한다. 군산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고물 전투기들’이 남중국해 상공까지 날아갈 수 있겠지만 남중국해 상공에서 중국인민해방군과 교전하지는 못한다. 교전하지 못하는 전투기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미 제국은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2023년 4월 12일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미 제국 공군은 군산 공군기지에 배치된 F-16 ‘고물 전투기’ 40대의 작전성능을 대폭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작전성능 개선작업을 마친 첫 번째 F-16 전투기가 군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어 군산 공군기지에 배치된 F-16 전투기들은 ‘고물 신세’를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2) 2023년 미 제국은 필리핀에 있는 4개 공군기지를 중국인민해방군 공격거점으로 개조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4개 공군기지를 열거하면, 루손섬 팜판가(Pampanga)에 있는 바사 공군기지(Basa Air Base), 팔라완(Palawan)에 있는 안또니오 바우티스타 공군기지(Antonio Bautista Air Base), 막탄(Mactan)에 있는 베니또 에뷰엔 공군기지(Benito Ebuen Air Base), 카가얀 데 오로(Cagayan de Oro)에 있는 룸비아 공군기지(Lumbia Air base)다. 이런 사정을 보면 군산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16 전투기들이 남중국해에서 가까운 필리핀에 있는 4개 공군기지로 이동해서 작전 지시와 급유를 받고, 무장을 탑재한 다음 다시 이륙해 남중국해 상공으로 날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5월 9일 군산 공군기지 웹싸이트에 실린 보도기사에 의하면, 그 기지에 주둔하는 미 제국 제7공군 제8작전단은 2024년 5월 6일부터 9일까지 ‘베벌리 팩(Beverly Pack) 24-1’이라는 명칭의 전투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 전투훈련은 ‘민첩한 전투 근무(Agile Combat Employment)’라는 명칭으로 진행되어오는 연속 전투훈련의 일환이다. 이번에 진행된 ‘베벌리 팩 24-1’ 전투훈련은 군산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16 전투기들이 전라남도 광주 공군기지로 이동하는 훈련이었다. 그런 식의 전투기 이동 훈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베벌리 팩 훈련 모습.  © 미 공군 제7공군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 제51기지 산하 제810여단, 제816여단, 제822여단은 한국을 조준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대거 배치해놓았다.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 1개 여단이 운용하는 미사일 발사대차는 36대이므로 3개 여단이 운용하는 미사일 발사대차는 총 108대다. 그러므로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은 전시에 한국을 향해 중거리 탄도미사일 초탄 108발을 집중 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에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도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과 더불어 한국에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집중 발사할 것이다.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이 한국에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공중 타격수단은 훙(轟)-6K 폭격기다. 이 폭격기 1대는 중거리 순항미사일 6발을 공중에서 발사할 수 있다. 

 

2024년 3월 5일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은 훙-6K 폭격기 16대를 출동시켜 한국을 공격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이런 훈련 정황을 보면, 전시에 훙-6K 폭격기 16대가 한국에 중거리 순항미사일 96발을 집중 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과 공군이 전시에 한국을 향해 발사할 미사일은 200발 이상이다. 주목되는 것은, 훙-6K 폭격기가 전술핵 미사일을 탑재하는 폭격기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훙-6K 폭격기들이 전시에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창젠(長劍)-20A 순항미사일을 한국에 발사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준다. 

 

4. 군사기지들이 생존력을 상실한 이유

 

전시에 중국인민해방군이 한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말은 한국군을 공격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에 주둔하는 미 제국군을 공격한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4년 3월 5일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은 훙-6K 폭격기 16대를 출동시켜 한국 공격을 가정한 공중 핵타격훈련을 실시했다. 공중 핵타격훈련을 보여주는 상황도에는 서울 용산, 부산 해군기지, 오산 공군기지, 평택 군사기지, 왜관 병참기지, 대구 지원기지가 공습 표적으로 표시되었다. 6개 공습 표적 중에서 한국 대통령실과 한국군 수뇌부가 있는 서울 용산을 제외한 나머지 5개 공습 표적은 전부 주한미국군 기지들이다. 이것은 전시에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과 공군의 미사일 공격이 주한미국군 기지들에 집중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준다.

 

미 제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했고 미 제국군이 중국인민해방군과의 교전을 예상하고 있으므로 중화인민공화국도 그에 상응해 미 제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했고, 중국인민해방군도 미 제국군과의 교전을 예상하고 있다. 미 제국군이 중국인민해방군을 공격하면 중국인민해방군도 미 제국군을 공격하게 된다. 따라서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과 공군의 미사일 공격이 한국에 있는 미 제국군 기지들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위에 서술한 공중 핵타격훈련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주한미국군을 공격하는 상황을 예고해준다.

 

전시에 중국인민해방군이 한국군을 공격하지 않고 주한미국군에 공격을 집중시키면, 조선인민군은 주한미국군을 공격하지 않고 한국군에 공격을 집중시킬 것이다. 이런 군사 상황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미 제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한 정치 상황과 일치한다. 

 

김정은 총비서는 그런 전쟁 상황을 예견하고, 대한민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하였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3년 12월 2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였다”라고 말했고, 2024년 1월 8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이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해야 할 력사적 시기가 도래하였다”라고 말했고, 2024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6돌을 맞이하여 국방성을 축하 방문하고 연설하면서 “우리 당과 정부는 (중략)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였다”라고 언명하였다.

   

조선이 한(조선)반도 전역을 자국 영토로 인정하고 군사분계선 이남에 존재하는 실체를 남조선으로 규정했던 이전 시기에 중국인민해방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미 제국군을 공격하면 그것은 조선의 영토인 남조선을 공격하는 것으로 되었다. 어떤 경우에도 중국은 동맹국인 조선 영토를 공격할 수 없고, 조선도 동맹국인 중국 영토를 공격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인민해방군은 남조선에 있는 미 제국군 기지들을 공격하기 위한 전투태세를 갖춰놓고서도 그 기지들을 공격하는 전투훈련을 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런데 조선이 군사분계선 이남에 존재하는 실체를 대한민국으로 규정하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인민해방군은 대한민국에 있는 미 제국군 기지들을 공격하는 전투훈련을 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2024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6돌을 맞이하여 국방성을 축하 방문하고 연설하면서 군사분계선 이남에 존재하는 실체가 제1적대국으로 규정되었다고 언명한 날로부터 1개월 뒤인 2024년 3월 5일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이 훙-6K 폭격기 16대를 출동시켜 주한미국군 기지들을 공격하는 공중 핵타격훈련을 실시한 배경에는 바로 그런 급격한 정세변화가 있는 것이다.  

   

전시에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과 공군이 주한미국군 기지들에 미사일 공격을 집중시키면 그 기지들은 초토화될 것이다. 주한미국군 기지들에 구축된 미사일 방어망이 아무리 강력해도,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과 공군이 집중적으로, 연속적으로 발사한 미사일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것을 막아줄 미사일 방어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전쟁 상황을 예상하면 주한미국군 기지들이 생존력을 상실하였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생존력을 상실한 군사기지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나? 그런 군사기지를 버리고 다른 기지로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군산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8작전단이 군산 공군기지를 떠나 다른 공군기지로 이동하는 전투훈련을 진행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24년 5월 초 제8작전단이 진행한 ‘베벌리 팩 24-1’ 전투훈련에 참가한 F-16 전투기들은 군산 공군기지에서 광주 공군기지까지 매우 짧은 거리를 이동했지만 전쟁이 임박하면 그 전투기들은 한(조선)반도를 벗어나 아주 먼 곳에 있는 다른 기지로 이동할 것이다. F-16 전투기들이 군산 공군기지를 떠나 이동할 다른 기지는 일본과 필리핀에 있는 공군기지들이다. 

 

5.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 못한다

 

전쟁이 임박하면 군산 공군기지에 배치된 F-16 전투기들만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 배치된 미 제국 육군 전투부대들도 다른 나라로 이동할 것이다. 

 

한국에 배치된 미 제국 육군 전투부대 중에서 다른 나라로 신속하게 이동할 전투부대가 바로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SBCT)이다. 기갑여단전투단(ABCT)은 육중한 전차를 운용하는데,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은 전차보다 가벼운 장갑차를 운용한다.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은 이동명령을 받으면 96시간 안에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있다. 

 

2022년 6월 30일 미 제국 육군성은 2022년 가을부터 주한미국군 순환배치 전투부대가 기존 기갑여단전투단에서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으로 바뀐다고 발표했다. 그에 따라 한국에 순환 배치된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은 9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다가 다른 나라로 이동하게 되었다. 

 

미 제국은 중무장한 기갑여단전투단을 한국에 상시 배치하는 것보다 경무장한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을 한국에 순환 배치하면 유지비용이 적게 든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미 제국 육군대학 전략연구소가 2017년에 펴낸 보고서에 의하면 기갑여단전투단은 한국에 9개월 동안 머물면서 3억8,000만 달러를 소비했고,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은 한국에 9개월 동안 머물면서 4억7,000만 달러를 소비했다고 한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 제국이 유지비용을 더 많이 쓰면서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을 한국에 순환 배치하는 까닭은 상시 배치한 기갑여단전투단이 중국인민해방군의 미사일 선제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024년 2월 1일 미 제국 육군 제3기갑군단 제3기병연대 소속 전투원들이 수송기를 타고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으로 편성된 이 전투부대는 자기보다 앞서 한국에서 9개월 동안 머물렀던 다른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과 교대하기 위해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것이다.     

 

미 제국 육군 제2보병사단이 한국에 상시 배치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 제국 육군 제2보병사단은 원래 제1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 제2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 제81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 순환배치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 제2전투항공여단, 제210야전포병여단, 지원여단으로 편성되었다. 3개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은 미 제국 본토에 남아있고, 순환배치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 제2전투항공여단, 제210야전포병여단, 지원여단만 한국에 배치되었다. 그러므로 미 제국 육군 제2보병사단 중에서 한국에 상시 배치된 전투부대는 제2전투항공여단, 제210야전포병여단, 지원여단뿐이다. 

 

한국에 상시 배치된 3개 여단은 신속한 이동 능력이 없기에 전쟁이 임박해도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 못한다. 한국에 상시 배치된 전투부대들은 중국인민해방군의 미사일 공격을 피할 수 없다. 

 

중국인민해방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한국에 상시 배치된 3개 여단만 전멸하는 게 아니라, 주한미국군 전체가 전멸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 징후를 감지한 주한미국군 주력부대가 일본과 필리핀으로 이동하기 위해 한국을 빠져나가기 전에 중국인민해방군이 먼저 미사일 선제공격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6.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전시에 주한미국군이 중국인민해방군의 선제공격을 받는다면 주일미국군은 어떤 상황에 처할 것인지 궁금하다. 중국인민해방군을 단독으로 공격할만한 전투력을 갖지 못한 주일미국군은 동아시아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 자위대와 동맹군을 결성해 중국인민해방군과 교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시에 주일미국군이 어떤 상황에 처할 것인지 예상할 게 아니라 미일동맹군이 어떤 상황에 처할 것인지를 예상해야 한다. 

 

2024년 2월 4일 교도통신 보도에 의하면 미일동맹군은 대만 유사시에 중국인민해방군과 교전하는 작전계획을 2024년 안에 완성하고 2025년부터는 그런 작전 계획에 의거한 전투훈련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일동맹군은 중국인민해방군과 교전하는 작전계획을 완성하기 이전부터 중국인민해방군과의 교전을 가정한 전투훈련에 광분하기 시작했다.

  

미일동맹군은 2024년 2월 1일부터 8일까지 중국을 적국으로 명시한 작전지도를 사상 처음으로 사용해 전투훈련을 감행했다. 또한 미일동맹군은 2024년 2월 15일 남중국해에서 양국 구축함들이 중국인민해방군과 교전하는 상황을 가정한 합동군사훈련을 감행했다. 또한 미일동맹군은 2024년 3월 1일 B-52 전략폭격기 2대와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 8대를 동중국해 상공으로 내몰아 중국인민해방군과 교전하는 상황을 가정한 합동군사훈련을 감행했다. 또한 미일동맹군은 2024년 4월 7일 남중국해에서 오스트레일리아군과 필리핀군까지 끌어들여 중국인민해방군과 교전하는 상황을 가정한 합동군사훈련을 감행했다. 

 

그리고 2024년 5월 16일 주일 미 제국 대사 람 이매뉴얼(Rahm I. Emanuel)은 일본 요꼬스까 해군기지에 정박한 미 제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USS Ronald Reagan) 비행 갑판에서 연설하고, 이튿날 미 제국 해군 수송기를 타고 대만에서 아주 가까운 일본 열도 최서단에 있는 작은 섬 요나구니지마(與那國島)에 도착해 그곳에 전진배치된 일본 육상자위대 기지를 시찰하면서 무력침공을 선동했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보면, 동아시아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중국인민해방군과 미일동맹군의 대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미일동맹군의 공격 징후가 나타나면 미일동맹군 기지들에 미사일 선제공격을 집중시킬 것이다. 

 

이런 전쟁 상황을 예견한 김정은 총비서는 중국인민해방군과 미일동맹군의 대격전이 벌어지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즉각 미사일을 발사해 미일동맹군을 측면에서 타격할 전투태세를 갖출 것을 명령하였다. 김정은 총비서의 명령은 이미 3년 전에 하달되었다. 2021년 6월 29일 데일리 NK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6월 11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만일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경우 전략군이 미국의 중국 공격을 방어해주고, 대응 타격으로 미국을 제압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보도기사에 나오는 “대응타격으로 미국을 제압하라”라는 지시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사일을 집중 발사해 미일동맹군을 제압하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동아시아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인민해방군은 주한미국군을 섬멸하고, 조선인민군은 한국군을 섬멸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동아시아 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은 “전략전술적 협동”으로 미일동맹군을 제압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조성된 동아시아 군사 정세를 분석하면 동아시아 전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고, 어느 쪽이 패배할 것인지 예상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이 동아시아 반제전쟁에서 승리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을 병합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미 제국이 동아시아에 구축해놓은 제국주의 지배 체제는 무너질 것이고, 자주와 평화와 번영이 실현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격동적인 시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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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언급도 안 한 윤 대통령, 뭐가 두려운걸까?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4.05.18.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3년 연속 참석하면서도 대선 시기 약속했던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가 한 목소리로 이 문제에 힘을 모으겠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대통령의 기념사는 ‘경제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 문제를 외면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의 정신이 깊이 뿌리내리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워냈지만,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시대적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며 “온 국민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오월의 정신을 이 시대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광주의 희생과 눈물에 진심으로 보답하는 길”고 밝혔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이 불러온 계층 갈등, 날로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가 자유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며 “정치적 자유는 확장됐지만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다”고 했다. 이어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켜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고 국민이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수준을 더 높이 끌어올려야 한다”며 “성장의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고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여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번 5.18기념식 참석에서 대통령실이 강조하는 내용은 ‘3년 연속 기념식 참석’ 자체였다. 그 외에는 ‘경제성장’이라는 추상적인 키워드 외에 눈에 띄는 내용이 없었다. 5.18정신을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키는 논리였다. 

 

야권 대선 주자 시절 국립5·18민주묘지 열사묘역을 참배하는 윤석열 대통령(자료사진) ⓒ뉴시스


윤 대통령이 5.18 관련 입장이 주목을 받았던 때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였다. 그는 2021년 7월 17일 제헌절에 5.18민주묘지와 민족민주열사묘지를 참배한 뒤 “5·18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피로써 지켜낸 헌법 수호 항거”라고 평가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삽입하는 데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방문은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보수정당 대선 후보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5·18정신을 헌법에 넣는 것은 ‘개헌’이기 때문에 국민 전체가 동의해야 할 문제”라며 “이 때문에 제헌절에 5·18을 기리기 위해 광주를 찾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 후 첫 5.18기념식에 참석해 “앞으로 계속 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고 있지만, 정작 후보시절 공언했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서는 기념식에서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에는 기념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도전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면서 5.18정신을 ‘색깔론’으로 연결시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2대 국회 앞두고 여야 ‘5.18 헌법 수록’ 한목소리

이번 윤 대통령의 기념사가 주목된 이유는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은 물론 국민의힘도 ‘5.18 헌법 전문 수록’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18일 논평을 통해 “이제 더는 5·18민주화운동이 왜곡 당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기 위해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나서야 한다”며 “22대 국회 임기 중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정부·여당이 전향적 자세로 논의에 응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 역시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이상의 5·18 폄훼와 왜곡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며 “그래야 다시 이 땅에서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남겼다.

조국혁신당도 논평을 내 “여야 모두,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야당의 모든 당대표들이 찬성한 일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이날 주목을 받은 건 국민의힘의 입장이었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5·18 정신은 더 이상 특정 정치 세력의 상징이 아닌 온전한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 돼야 한다”며 “여야간 초당적 협의를 기반으로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사실상 22대 국회에서 ‘5.18 헌법 전문 수록’을 반대하는 정당은 없는 상황인 셈이다. 때문에 대통령이 이번 기념식에서 구체적 실현방안이나 여야의 논의를 촉구하는 등을 언급해 이 문제를 ‘공식화’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던 것이다.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소속 시의원 8명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국립 5·18민주화운동 44주년 기념식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 중 5·18헌법전문수록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이런 기대는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기념식 중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소속 시의원 8명이 대통령 기념사 직전에 ‘518 헌법 전문 수록’이라는 문구를 한 글자 씩 담은 손피켓을 들어 시위를 하기도 했다. 피켓을 들고 있던 시의원들은 기념사가 끝나고 뒤를 돌아 참석한 시민들에게 인사했고,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슷한 내용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행사가 끝난 뒤 윤 대통령이 행사장을 떠나기 전 오월단체장들의 요구에 ‘잘 챙겨보겠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논의 피하고 싶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한다는 것은 ‘개헌’을 뜻한다. 즉, 이 문제를 현실화하자고 하는 순간 ‘개헌 논의’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5.18 정신 헌법 수록’을 대통령이 처음 언급한 때는 2007년이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제기하면서 ‘5.18정신’을 함께 언급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하고 당선 이후 첫 5.18기념식에서 다시 약속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도 적극적으로 정치체제를 바꾸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5.18 헌법 전문 수록’은 개헌 이슈와 함께 해 온 것이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다시 ‘개헌’에 대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제7공화국 헌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변경하자고 주장했는데, 이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조 대표는 ‘5.18 헌법 전문 수록’도 함께 주장했다.

결국 ‘5.18 헌법 전문 수록’을 대통령이 공식화하려면 뒤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개헌’에 대한 입장까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정치체제 변화’를 담은 개헌에 찬성할 것인지 아닌지, 자신의 임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기념식이 끝나고 나서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당원과 함께 민주당이 합니다' 호남 컨퍼런스에서 “이번에는 반드시 5·18 광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함께 꼭 해내자”라고 밝혔다.

만약, 윤 대통령이 이 문제에 진심이라면 ‘원포인트 개헌’ 제안을 할 수도 있다. 실제 원포인트 개헌 주장은 계속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결국, 윤 대통령은 ‘5.18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커진 시점에 그에 대한 언급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의지 자체가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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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막장 드라마에 종지부를 찍자”…90차 촛불대행진 열려

특별취재단 | 기사입력 2024/05/18 [20:44]

 

기사: 문경환 기자

시민 대담: 박명훈, 이영석 기자

사진: 김영란 기자

 

5.18민중항쟁 44주년인 18일 오후 5시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90차 촛불대행진’이 서울시청과 숭례문 사이 대로에서 열렸다.

 

© 김영란 기자

 

‘친일매국 막장권력 윤석열을 타도하자!’라는 부제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연인원 3천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대통령 ‘탄핵’에서 ‘타도’로 구호를 바꾼 이유에 관해 촛불행동 측은 “검찰 방탄 인사 등 막장으로 치닫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강력한 비판 민심을 담아 더 강한 구호를 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를 맡은 김지선 서울촛불행동 공동대표가 이날 집회의 주제가 담긴 구호를 선창했다.

 

“친일매국 막장권력 윤석열을 타도하자!”

“술판 회유 불륜 거래 정치검찰 해체하라!”

“회초리는 효과 없다, 몽둥이로 때려잡자!”

“김건희 방탄 정권 윤석열을 탄핵하라!”

 

구본기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윤석열은 일본의 라인 탈취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도 오히려 우리 기업을 향해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순응하라는 식이다. 이러니 윤석열 정부를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 라인이라고 하는 거 아니겠나?”라고 규탄했다.

 

▲ 구본기 공동대표. © 김영란 기자

 

또 “김건희가 153일 만에 캄보디아 정상 부부 방한 일정에 참석하며 공식 석상에 등장”했지만 “아무런 설명도 사과도 없다. 이런 철면피가 어디 있는가?”라고 분개하며 “이제 윤석열이 권력을 이용해 찍고 있는 막장 드라마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외쳤다.

 

임기가 며칠 안 남은 윤미향 국회의원이 이날 발언하기로 했지만 건강 문제로 참가하지 못해 사회자가 발언문을 대독했다.

 

윤 의원은 발언문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독립된 나라인가?”라고 물으며 “일본 정부가 ‘독도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교과서에 싣고 국제사회의 외교력을 동원하여 알리고 있어도 윤석열 정권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윤석열의 굴종 외교에 자신을 얻은 기시다, 일본 정부는 드디어 역사와 영토 문제를 넘어서서 기업 강탈까지 시도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익을 침해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서는 한마디도 못 하고 국민과 싸우겠다는 대통령, 일제 조선 강점기 일제 수탈 기구였던 조선총독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또 윤 의원은 “이제 10일 후면 저도 촛불 국회의원이 아닌 촛불시민으로 여러분과 더 뜨겁게 연대하겠다”라고 다짐하였다.

 

강진구 뉴탐사 기자는 “윤 정권의 핵심 조직인 검찰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던 검사들이 ‘나부터 살고 보자’로 바뀌고 있다. 윤석열은 김건희 보호에 눈이 멀어서 검찰 조직 전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고, 정치검사들은 김건희 때문에 우리까지 죽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 강진구 기자. © 김영란 기자

 

그러면서 1,300개의 ‘장시호 녹취 파일’을 언급하며 “윤석열부터 한동훈, 강백신, 김창진, 박주성. 검찰 조직 내 하나회로 불리던 이들은 박영수 특검 때부터 한솥밥을 먹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야당 탄압과 언론 탄압, 정권 보위의 최일선에 있는 정치검사들”이라고 폭로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지하철로 합정역까지 이동한 후 합정역에서 홍대입구역까지 행진했다.

 

홍대입구역 4번 출구 앞에서 진행된 정리집회에서 두 아들과 함께 올라온 인천 시민 이은지 씨는 “윤석열과 김건희는 국민의 심판과 경고를 겸허히 받들기는커녕 반성과 수치심 따위는 없고 뻔뻔스럽게 국정을 계속 몰아붙이고 있다”라며 “당신네가 지은 그 어마어마한 죄의 대가는 반드시 제대로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이은지 씨. © 김영란 기자

또 “정치권에서 또 대화니 협치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 ‘이 틈새로 윤석열 일당들이 또 살아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우리 국민은 이 사태를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정치에 맡겨만 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집회 시작에 앞서 진행한 구본기 공동대표의 현장 인터뷰에서 한 시민은 “전철을 타면 광고판이 텅텅 다 비어 있다. 중소기업이 지금 쫄딱 망해서 광고를 못 내고 있다. 2년 동안 그 똑똑한 윤석열이가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개탄했다.

 

또 중국에서 온 며느리와 함께 나온 시어머니는 “윤석열 탄핵 빨리해야지 우리가 산다”라고 주장했다.

 

© 김영란 기자

주최 측은 다음 주 토요일인 25일 ‘거부권 거부 대회’가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윤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을 거부할 시)이라 전국 집중 촛불대행진을 오후 5시에 시작한다고 공지했다.

 

시민 대담

 

시민들에게 최근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것과 김건희 씨가 5달 만에 활동을 재개한 것에 관해 의견을 물어봤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20대 남성 유 씨는 “국회의장 후보에 추미애 당선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쉽다. 정성호 의원과 조정식 의원의 사퇴가 우원식 의원에게 몰아주기 위한 단일화였던 것 같다”라며 “민주당이 민심과 거리가 있다는 한계를 다시 보여줬다”라고 꼬집었다.

 

또 “(윤석열 정권이) 민심을 듣겠다고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키더니, 결국 보여준 건 김건희를 수사하는 서울지검 검사들 교체”라면서 “김건희 방탄 작전을 실행한 것”이라고 분노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30대 여성 김 씨는 “추미애 당선인이 국회의장 후보에서 떨어져 민주당 당원과 국민은 의지가 좀 꺾였다. 하지만 잘할 것이라 믿고 뭉치자. 윤석열을 빨리 끌어내려야 한다”라면서 “국회의원들이 잘하면 응원하고, 잘 못하면 민심을 잘 반영하도록 따끔하게 이끌어야 한다”라고 국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50대 남성 노 씨는 김건희 씨의 활동 재개에 대해 “민주시민으로서 굉장히 혐오스럽다. 자기가 한 것도 모르고 뻔뻔하게 나왔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씨를 수사하는 서울지검 검사들을 교체한 것을 두고 “(윤석열은) 자기 마누라 지키는 상남자다. 국민이 준 권력을 이렇게 써서 개탄스럽다”라고 심정을 밝히며 “더 단단히 뭉쳐야 한다. 촛불국민이 힘을 모아 촛불집회에 더 참여”하자고 호소했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50대 여성 최 씨는 “특검을 통해 (김건희 씨가) 죄지었으면 벌을 받게 해야 한다”라면서 “수사 검사들을 교체한 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리고 “이승만을 추방했던 것처럼 윤석열과 김건희의 죄를 낱낱이 밝혀 벌을 받게 한 뒤에 추방해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국회의원들을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촛불국민이 정치세력화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60대 남성 류 씨는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으로서 적폐세력과의 전쟁을 잘하도록 국민이 힘써야 한다”라고 했다.

 

5.18민중항쟁 44주년인 오늘 집회에 나온 소감도 물어봤다.

 

‘5.18 추모·계승’이라고 적힌 리본을 가슴에 달고 경기도 안산에서 온 60대 남성 박 씨는 “답은 간단하다. 윤석열을 끌어내리기 위해 나왔다”라면서 “아직 5.18학살을 저지른 적폐세력이 완벽히 심판받지 못했지만 국민은 5.18에 관해 이미 다 알고 있다”라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온 30대 남성 송 씨를 만났다. 촛불합창단 소속인 송 씨는 이날 본대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송 씨는 “여건이 안 돼 광주까지 가지는 못했는데 매주 서울에서 촛불을 들어왔다”라면서 “오늘은 5.18을 기념하기 위해 나왔다”라고 답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온 60대 여성 ㄱ 씨는 “5.18 당시 그런 일이 있었단 걸 몰랐다. 오늘은 5.18의 의미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나왔다”라고 강조했다.

 

또 지금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정치를 주도하는 시대라며 “윤석열을 탄핵해 몰아내고 사회를 개혁해 젊은이들을 위한 밝고 건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 촛불합창단. © 김영란 기자

 

▲ 정리집회에서 공연한 가수 백자 씨. © 김영란 기자

 

▲ 노래패 우리나라 공연.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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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진을 위해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민들.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행진 대열을 응원하는 시민.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이호 작가

 

© 이호 작가

 

© 김영란 기자

 

© 이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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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과 미국, 꼭 기억해야 할 세 가지 문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5/19 08:48
  • 수정일
    2024/05/19 08: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988년 광주청문회에서 5.18 당시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와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이들은 출석을 거부했다. 대신 미국은 “1980년 5월 광주 사건에 대한 미합중국 정부 성명”이라는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서면 답변에 따르면 미국은 “10.26 박정희 암살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12.12 사건에 대해 사전 통보받지 않았고, 5.18 당시 광주에서 어떤 폭력 상황이 벌어졌는지 몰랐”다.

 

“12.12도 미국이 지원했고, 5.18 진압도 미국이 승인했다는 <소문>은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언론에 조작한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진실이 밝혀졌다. 5.18 당시 미국이 모든 전개 과정을 알고 있었으며, 미 백악관에서까지 대책 회의를 진행했으며, 전두환 세력으로 하여금 군부를 앞세워 광주 민주화운동을 진압하라는 ‘승인’이 내려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미국 관련 세 가지 문제가 있다.

 

미국은 한국군의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울 시각으로 12월 12일 초저녁, 전두환 보안사령부 및 일단의 한국군 장교들이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 장군을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서울 남부 중심지(용산)에서 몇 발의 총성이 들렸으나 사망자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음.”

 

1979년 12월 12일 당일 미 국무부가 백악관, 주한미대사관, 주한미군, 미 국방부 등을 수신처로 보낸 ‘한국에서 군부의 실력행사 발생’이라는 문서의 일부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군 일각에서 전두환 파벌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한국공군 및 해군의 일부 고위 멤버들이 1979년 12월 13일 육군의 권력장악 사건을 주도한 전두환 소장이 사임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권력이 억제되지 않으면 그와 그의 파벌에 대한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 함. 이들은 전두환이 계속해서 최규하 정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면 해병대를 동원하여 그 파벌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함.”

 

1980년 1월 9일 미 국방정보국 정보요원이 작성한 ‘첩보’ 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그런 미국이 전두환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음은 상식에 해당한다. 다음은 1980년 3월 12일 주한미대사관에서 국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일부이다.

 

“지배 구조 내에서 특히 우려되는 현상은 전두환이 가지고 있는 권력임. 그는 정부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 있음.”

 

12.12로 군부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이 기다리는 ‘때’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2차 쿠데타를 의미한다. 이미 미국은 3월부터 전두환이 2차 쿠데타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문제의 5월, 전두환이 군사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5월 7일 주한미대사관에서 미국무부에 보낸 보고서이다.

 

“위 2개 여단(제13공수여단, 제11공수여단)의 총병력은 약 2,500명이며, 학생 시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로 이동하고 있음. 또한 미군은 포항 주둔 해병대 제1사단이 대전과 부산 지역에 필요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음. 해병대 제1사단은 연합사 작전통제 병력이며 이동을 위해서는 미국의 승인이 필요함. 아직 이러한 요청은 없으나 유엔군사령관은 요청이 있을 경우 승인할 계획임.”

 

그리고 잘 알려진 5월 22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미국 정부의 주요 결정자들이 모여 “최소한의 무력으로 광주 질서 회복”을 결정한다.

▲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상황실, ‘한국관련 정책검토위원회’ 회의록

미국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보았다

 

미 국방정보국은 5월 22일 광주의 상황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20여명의 젊은이들이 무기를 탈취하고 자신들을 돕지 않으면 폭력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함. 폭도들은 모두 칼이나 쇠파이프로 무장하였고, 아주 흥분한 상태였음. 화순탄광에서 탈취한 TNT와 수류탄이 송정 고속도로 다리를 파괴하기 위해 광주로 옮겨지고 있음.”

 

5월 23일 보고에서도 “현재 상황은 여수 순천 반란사건과 유사함.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강경하게 현재 상황을 진압해야 함”이라고 적었다.

 

미국이 광주 시민을 폭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미국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만들고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자주 보여왔던 패턴이다. 제주 도민의 3.10 총파업을 빨갱이의 소행으로 몰았던 것처럼,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야 군부에 의한 강경 진압에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무부에서 작성한 5월 25일자 한국 상황보고는 “광주에서 인민재판부가 설치되어 몇몇 처형이 있었으며, 학생 시위는 혁명 정부 설치를 주장하는 미상 무장 과격세력에 의해 전반적으로 대체되었음”이라고 적었다.

 

다음은 6월 6일 보고.

 

“1개 대대 규모의 무장 반란군이 광주 인근 산악지대로 도주했고, 전라남도 지역에서 약 2,000명이 무기를 확보하고 무인지대로 들어갔고, 2,000명이 전두환 군부세력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일 것이고,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학생 시위대는 어느 순간부터 폭도로 묘사되기 시작했고, 폭도는 어느 순간 게릴라 무장 세력으로 묘사되었고, 또 어느 순간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항상 미국과 독재 세력에 의해 폭도, 무장 세력, 공산주의자의 소행으로 매도되었다.

 

5.18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인권 대통령’ 지미 카터였다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박정희 면전에서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들을 가능한 많이 석방”할 것을 요구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지미 카터는 ‘인권 대통령’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 1979년 6월 지미 카터가 박정희에게 긴급조치 9호 철회와 양심수 석방을 요구한 대화록.

퇴임 후에도 빈곤층 지원 활동, 사랑의 집짓기 운동, 국제 분쟁 중재 등의 활동을 해왔으며, 1994년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핵문제 해결을 위한 극적 타결을 이뤄낸 인물이기도 하다.

 

백악관 상황실에서 광주 시민에 대해 무력 진압을 ‘승인’하는 정책 결정이 내려졌던 1980년 5월 22일, 당시 미국 대통령 역시 지미 카터였다.

 

당시 재선을 노리고 있던 카터는 이란에서 발생한 미 대사관 인질 사건, 뒤이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사건이 발생하면서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받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국의 정치적 혼란은 카터가 직면한 정치적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은 한국에서의 ‘정치 안정화’를 추구했다. ‘정치 안정화’는 곧 광주에서의 조속한 ‘질서 회복’이었다.

 

지미 카터 미국 정부는 ‘광주 질서 회복’을 통한 ‘정치 안정화’를 위해 전두환에게 군부대 동원을 ‘승인’했다. 그 결정을 내리는 데 걸리는 회의 시간은 75분. 1980년 5월 광주 시민의 운명은 백악관에서 단 75분 만에 결정된 것이다.

 

당시 한국 상황을 관리하던 비상대책팀의 이름은 “체로키”였다. 건국 시절 자신들이 학살했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국의 인권을 위해 박정희와 설전을 벌였던 ‘인권 대통령’ 지미 카터는 11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광주 학살의 칼자루를 전두환 군부에게 쥐어주었다.

 

지미 카터가 추구한 ‘인권 외교’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것이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우리 국민의 인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16 쿠데타가 ‘정치적 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미국이 기획한 것이라면, 그와 정확하게 똑같이 전두환의 5.18 광주 학살은 ‘정치적 안정’이라는 미명 아래 미국에 의해 ‘승인’된 것이었다.

 

장창준 객원기자92jc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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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당원을 배반한 국회의장 후보 결정

[정조준66] 국민과 당원을 배반한 국회의장 후보 결정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5/1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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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과 당원을 배반했다

 

16일 민주당 국회 당선인 총회에서 예상을 깨고 우원식 의원이 89표를 얻어 80표를 얻은 추미애 당선인을 누르고 국회의장 후보가 되었습니다. 이 결과는 국민과 민주당 당원을 배반한 것입니다. 

 

미디어토마토가 4월 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장 선호도에서 추 당선인이 40.3%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로 정성호 의원 6.0%, 조정식 의원 5.9%, 우 의원 4.7% 등이 나왔습니다. 추미애:우원식의 비율이 대략 9:1 정도로 나온 것입니다. 민주당 지지층만 놓고 보면 추미애 70.6%, 우원식 3.7%로 비율을 따지면 대략 19:1 정도로 더 벌어집니다. 다른 여론조사들도 대체로 추 당선자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습니다. 

 

6:4, 7:3이 뒤집어지면 배반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운데 9:1, 19:1이 뒤집어지면 이건 명백한 배반이고 배신입니다.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 선출 결과는 앞으로 민주당이 22대 국회를 국민, 당원의 마음과 다르게 운영할 수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혁신공천이라 여기고 새로 당선된 의원들은 21대 의원들과 달리 국민과 당원의 뜻을 잘 받들어 실천할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가 허망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은 국민이 압박하고 견인해야 할 대상임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지도력 문제?

 

13일 자 한겨레 기사 「민주 국회의장 후보, ‘친명’ 아닌 추미애로 정리되나」는 “국회의장 후보 경선(16일)을 나흘 앞둔 12일 친이재명계의 조정식(6선)·정성호(5선) 의원이 잇달아 후보직에서 물러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의중이 또렷해졌다. 이른바 ‘명심’이 ‘원조 친명’ 측근이 아닌 개혁성과 당심을 앞세운 추미애 6선 당선자를 향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명심’은 추 당선인이었던 것입니다. 

 

기사는 특히 친명계 핵심인 박찬대 원내대표가 조정식, 정성호 의원을 만나 “당의 주인인 당원이 뽑은 국회의원이 당원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라며 불출마를 종용하는 등 ‘교통 정리’를 했다고 전하면서 ‘명심’은 추 당선인이 확실하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명심’이 추 당선인이었는데 ‘명심’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지금이 이 대표의 권위와 당내 장악력이 제일 강력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이 대표 뜻대로 일이 안 되면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에게 실망하고 질려서 이 대표에게 희망을 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을 ‘이재명 민주당’으로 만들면 좋아질 거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당원과 국민이 총선에서 이재명 민주당을 만들어줬는데 정작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이 대표의 생각과 별도로 움직인다? 그러면 이재명 민주당을 향한 지지자들의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변심?

 

이 대표가 추 당선인을 밀다가 나중에 우 의원으로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습니다. 

 

추 당선인은 13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대표가 ‘잘해주시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다른 후보들한테는 그렇게 안 했다”라며 이 대표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우 의원도 같은 방송에 나와 “이재명 대표가 ‘국회는 단호하게 싸워야 하지만 한편으로 안정감 있게 성과를 내야 된다는 점에서 우원식 형님이 딱 적격이죠’라고 말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얼핏 모순되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이 대표에게 직접 들었다고 했으니 거짓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이틀 사이에 이 대표가 추 당선인에서 우 의원으로 지지 후보를 바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럴 개연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와 추 당선인은 대선후보 경선에 나와 경쟁했습니다. 이 대표에게 추 당선인은 대선후보급 경쟁 상대입니다. 반면 우 의원은 대선후보급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또 이 대표는 그간 추 당선인보다 상대적으로 ‘고구마’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래서 추 당선인이 국회의장이 되면 이 대표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대표가 불안해할 요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 의원은 오랫동안 이 대표와 호흡을 맞춰온 순응형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대표의 마음에 안정감을 줬을 수 있습니다. 우 의원도 이런 면을 친명 쪽으로 꾸준히 설득해서 이 대표의 마음을 바꿨을 수 있습니다. 

 

이변의 가능성은 이재명이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국회의장 후보 선출의 이변 가능성은 처음부터 이 대표가 만들었습니다. 

 

원래 국회의장은 관례에 따라 원내 1당의 최다선, 최고 연장자인 추 당선인이 국회의장으로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친명계 조정식 의원이 관례를 깼습니다. 조 의원은 “‘명심’은 나다. 이재명 대표와 당과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국회의장이 돼야 (한다)”라며 국회의장에 도전했습니다. 조 의원이 이 대표와 상의 없이 단독으로 나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마 이 대표는 처음에 추 당선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조정식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만들려고 했던 듯합니다. 

 

조 의원이 출마하자 ‘추대’라는 관례가 깨지고 ‘경선’을 하게 됐으며 경선 공간이 열리자 정성호 의원, 우원식 의원도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이 대표는 9일 병원 입원 직전 추 당선인과 여러 측근에게 “국회의장 선거 과열이 걱정된다. 순리대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순리’대로 추 당선인을 추대하는 방향으로 몰아갔으면 우 의원도 출마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 대표가 ‘선거 과열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정치인도 절대화하면 안 된다

 

국민과 당원이 추 당선인의 국회의장 도전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것은 전 정권 시기 법무부장관으로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격렬하게 싸운 ‘추-윤 갈등’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추 당선인은 2020년 1월 법무부장관에 취임하자 곧바로 검찰 인사를 단행해 윤석열 총장 측근을 좌천시켰고 그해 말 윤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에 회부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추 당선인만큼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강경하게 대처한 민주당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윤 총장의 기세에 겁을 먹고 추미애 장관을 도와주지 않았고 오히려 사퇴 압박을 넣어 내리눌렀습니다. 

 

국민은 윤 대통령에게 당한 피해자이면서도 잘 싸운 추 당선인이 국회의장이 되어 윤 대통령을 제압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무도하게 행사할 때 국회의장이 나서서 무력화시키는 통쾌한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국민이 추 당선인을 원한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추 당선인이나 우 의원이나 본질을 보면 민주당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추 당선인은 “협치가 아닌 민치”를 선택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추 당선인의 과거 경력을 보면 ‘민치’에 부합하는 행동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을 사퇴하라고 압박했을 때 추 당선인은 끝까지 사퇴를 거부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국민은 윤 총장과 끝까지 싸우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추 당선인이 끝까지 사퇴를 거부했다면 문 전 대통령은 사퇴 압력을 거두든, 해임하든 선택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 성향상 자기가 직접 해임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사퇴 요구를 거뒀을 것입니다. 그렇게 국민 뜻을 받드는 ‘민치’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추 당선인은 당시 ‘민치’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와서 추 당선인은 당시 문 전 대통령이 요구해서 사퇴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당시 국민이 원하는 대로 버텼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성이 없습니다. 자기 부족함은 없고 문 전 대통령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만 이야기합니다. 

 

물론 추 당선인이 개혁적이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추 당선인은 민주당 내에서 손꼽히는 개혁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추 당선인이 가진 한계도 잘 봐야 합니다. 어떤 정치인이든 마찬가지지만 추 당선인도 절대화해서 보면 안 됩니다. 추 당선인도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국민이 직접 압박, 견인해야 하는 정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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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법 국회 논의 존중” 공수처장 후보자에 발끈한 국민의힘

조정훈, 공수처장 후보자에게 “공수처 위해 일하면 안 된다”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자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2024.05.17. ⓒ뉴시스


‘채 상병 특검’에 관한 국회 논의를 “존중한다”는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자의 답변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발끈했다.

김 의원은 17일 열린 공수처장 인사청문회에서 오 후보자의 답변에 “고발내용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그 말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뭘, 특검 입법 존중한다는 그 말을. (왜 하나?) 고발사건이나 충실히 수사하라”라고 꾸짖듯 말했다.

오 후보자는 이날 여러 차례 ‘채 상병 특검’에 관한 국회의 논의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특히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질의응답 순서에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반복하여 행사하며 국회의 입법을 가로막는 행위를 언급하며 “국회의 권능은 매우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듣고 싶은 답변이 나오지 않자, 김 위원장이 직접 끼어들어 “공수처장, 작년 9월 5일 민주당에서 공수처에 고발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틀 뒤에 이거 관련한 특검법이 발의됐다. 그걸 알고 답변해야 할 거 아닌가”라며 이같이 나무란 것이다.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4.5.17. ⓒ뉴스1

특검 막기 위해 “공수처 수사 잘 한다”
공수처 폐지 위해 “공수처 못한다”
공수처·특검 두고 이랬다저랬다 국민의힘 의원들


오 후보자에게서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순되는 질문과 다소 기이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먼저,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서 공수처) 인력도 안 늘려주고, 수사범위도 협소하고, 수사권과 기소권도 불일치하면, 솔직히 어떤 공수처장이 와도 (수사) 못할 것”이라며 “3년 뒤 (임기가 끝나) 소임을 밝힐 때 ‘이럴 바에는 없애자’ 이런 양심선언을 할 의사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오 후보자는 조 의원이 바라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오 후보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 관련해서도 업무를 착실히 하겠다. 염려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러자, 조 의원은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이라고 가정하면서 “그런 결론을 내릴 양심과 용기가 있나”라고 재차 물었고, 이번에도 오 후보자는 “공수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하겠다”면서 답변을 이어가려고 했다. 당황한 조 의원은 답변을 자르며 “공수처를 위해 일하면 안 된다”라고 강요했다. 조 의원은 “3년 해봤는데 공수처는 태어나면 안 될 조직이었다고 결론 내주는 게, 우리 사회 엘리트이자 법률적으로 해박한 경험을 가진 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여”라고 주장했다.

그래도, 오 후보는 “저는 공수처가 권력기관 견제와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를 위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조직이 되도록 만들어가겠다”라고 밝혔다.

오동운 후보자에게 질의하는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 ⓒ국회방송 화면 갈무리


공수처 무용론·폐지론에 관한 조 의원의 질의에서 의미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정반대의 논리로 특검이 불필요하다는 답변을 유도했다.

장 의원은 “(일반론적으로) 필요하면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와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공수처에서 진행하는 다른 사건에 비해 (이 사건은) 수사 속도가 늦지도 않고, 충분히 수사가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왜 특검이 필요한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도 오 후보자는 국민의힘이 원하는 답변을 꺼내지 않았다.

오 후보자는 “특검에 관한 입법부 논의는 존중하고, 장기적으로는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이 일치되어서 꼭 채 해병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런 특검 수요가 있을 때 공수처에 수사를 맡길 수 있는 있었으면 하는 게 제 소신”이라고 답했다.

한편,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 29일 판사 출신 오동운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 변호사를 제2대 공수처장 후보로 선정했다. 당초 여권 측 후보추천위원들은 공수처장 후보자로 ‘윤심’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선호했으나 김 부위원장은 추천 후보가 되지 못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오동운·이명순 중 판사 출신 오 변호사를 공수처장 최종 후보로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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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김오랑, 그리고 박정훈…정부는 국민에 '모욕감'을 줘선 안된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4/05/18 09:44
  • 수정일
    2024/05/18 09: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세열 칼럼] 아직도 계속되는 이 '모욕감'들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5.18. 05:03:06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1995년 검찰이 내놓은 논리다. 당시 이 논리를 내세웠던 검찰에 따르면 내란 미수는 처벌할 수 있지만 내란이 기수(행위 완료)되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윤석 검사(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이 법리를 설명하며 이성계가 쿠데타로 이씨 조선을 세웠는데, 조선이 이성계의 쿠데타를 처벌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검사들은 그런 족속들이다. 이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5.18특별법이 국회를 통과되자 검사들은 새로운 논리인 '사정변경의 원칙'을 내걸고 수사에 돌입한다. 법률 행위의 기초가 된 사정이 '예견치 못한' 중대한 변경을 받게 되어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뒤집게 됐다는 말이다. '예견치 못한' 중대한 변경이란 김영삼 정권의 등장이 되겠다.

'모욕감'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에 온 국민은 집단적 모욕감을 느꼈다. 그렇게 검찰은 '전두환 신군부'를 위한 '완벽한 형법 논리'를 내세웠지만, 정작 국가가 국민이 모여 이뤄진 것이란 사실은 망각했다. '성공한 쿠데타'라는 집단 기억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 검찰 집단이 간과한 건 국민들이 겪을 모욕감이었다.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김오랑 소령이나 정선엽 병장 같은, 신군부의 군사 반란에 저항한 '제복 입은 영웅들'이 있어서였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반란의 '증거'를 남겼고, 역사는 일부나마 바로 세워질 수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44주기를 맞아 서울 마포구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 음악인, 연극인, 역사가들의 자발적 참여로 열린 '오픈콘서트-기억록'을 16일 저녁에 찾았다. '사랑 많은 세상'이라는 단체가 주관해 '기억'을 주제로 한 이 콘서트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키워드로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의 하나회에 맞서다 전사한 고(故) 김오랑 소령(후에 중령으로 추서)을 선정했다. 작곡가 윤일상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고 박학기, 김장훈, 이정렬, 손병희, 배우 이기영, 이원종 등이 참여해 제각각의 재능을 녹여 김오랑을 기렸다.

최근 영화 <서울의봄>에서 많은 이들이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김오랑(극중 이름은 오진호)의 마지막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잊혀져 가던 김오랑을 불러낸 건 1000만 영화였지만, 매해 5월이 되면 제각각의 기억을 더듬어 온 사람들은 늘 있어왔다.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기억은 개인적이지만 또한 집단적인 것이다. 콘서트장을 꽉 메운 사람들과 함께 앉아 하나의 기억을 위해 집단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기억의 원동력은 저마다 다를 터다. 내가 김오랑을 떠올리며 내내 떨치지 못한 감정은 '모욕감'이었다. 정부는 국민에게 모욕감을 줘선 안된다.

김오랑은 같은 관사에 사는 '절친' 박종규 중령에 의해 교전 중 전사했다. 전두환, 노태우 일당은 김오랑을 특전사령부 뒷산에 마치 "죽은 강아지(김오랑의 조카 김영진의 말)" 마냥 묻어버렸다. 국가를 지키려 한 군인을 암매장해버린 것은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남겼고, 아직도 그 모욕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김오랑의 모친은 홧병으로 세상을 뜨고 그의 부인은 눈이 먼 채로 남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백방을 뛰어다니다 실족사했다. 온 가족이 멸문의 화를 당했는데, 대한민국 군은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김오랑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다. 좋다. 이 모욕감은 기억의 집단화를 자극한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군사 반란은 전두환이 주도했지만, 그걸 완료해 '성공한 쿠데타'로 만든 사람은 노태우다. 노태우는 전두환이 위기에 빠지자 국가 안보의 대의를 땅바닥에 팽개치고 전방을 지키던 9사단을 출동시켜 서울 광화문을 점령했다. 김오랑과 같은 군인들의 죽음을 기어이 '개죽음'으로 만들어 모욕감을 줬다. 노태우는 2021년 죽었는데 그가 속죄 했는지 안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나라는 그를 국가장으로 예우했다. 내란죄로 처벌받은 사람도 국가장을 치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얘기다. 노태우에 대한 예우는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줬다. 윤석열 정부라고 다를 게 없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수석비서관이 노태우 정권의 언론인 회칼 테러를 기자들 앞에서 농담이랍시고 내뱉어 또 다른 모욕감을 주고 떠났다.

그 노태우의 딸 노소영 씨 측은 최근 이혼 소송 과정에서 재산 분할을 요구하면서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1년경 비자금 300억원을 사돈인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건넨 뒤 어음을 담보로 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기여해 일궈낸 '부'가 '노태우 비자금'에 근거하고 있다고 당당히 주장하는 그 모습에 국민들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쩌면 순수한 '탐욕'은 얼굴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군사 반란의 후손들이 군인 김오랑을 모욕하고 있고, 그 모욕감은 1979년 12월과 1980년 5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단단하게 벼려지고 있다.

총선에 패배한 집권 세력은 "방향은 옳았지만, 국민이 체감하기에 부족했다"고 강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모두 발언을 통해 지난 2년의 국정 추진 상황을 보고한다면서 경제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넓혔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렇게 잘 하고 있다. 국민들은 왜 몰라주고 있나'라는 식이다. 국가를 잘 운영한다고 (실제 잘 운영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많다) 해서 선거를 이길 순 없다. 정치란 국가를 이루는 '유권자'들의 복합적인 감성을 이해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자존감'을 건드리는 순간 모욕을 느낀다.

그런 모욕감들이 이번 총선을 윤석열 대통령의 심판으로 이끌었다. 이를테면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에 맞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머나먼 이국 땅에서 쓸쓸히 죽은지 80년만에, 그의 흉상이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철거당할 상황에 처했다. 집단 기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인식들이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줬다. 스스로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착각한 자들은 타인에게 '모욕'을 주면서도 그것이 '모욕'인지 모른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이 특히 그렇다. 채상병 사망 진상 규명을 위해 초동 조사를 맡은 해병대 박정훈 대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한 후에 갑자기 '항명 수괴죄(후에 항명죄)'로 입건됐다. 그가 조사해 국방부장관 결재를 거친 서류에 적혀 있던 채상병 사망의 책임자 리스트는 '윗선'의 개입으로 갑자기 쪼그라들었고, 채상병 죽음에 책임을 느껴야 할 '별'들은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급급하다.

부당한 지시에 항의했다가 졸지에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혀 재판을 받고 있는 군인 박정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이란 게 대체 뭐겠나? 군인 김오랑을 야산에 묻어버리고, '성공한 쿠데타'를 위해 '불의'에 저항한 그의 행동을 역사에서 지우려 한 것들과 같은 모욕감을 주는 일들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면서 '집단 기억'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모욕 주지 않는 사회는 우리가 품격 있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적 합의다. 거듭 말하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모욕감을 줘선 안 된다. 박정훈 대령에게 국가가 행하고 있는 일들이 그걸 지켜보는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는 행위라는 걸 깨지 못하는 한 윤석열 정부에는 희망이 없다.

아직도 명예회복이 요원한 김오랑 소령을 5월에 떠올리며 든 생각이다. 그는 군의 본보기같은 인물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김오랑의 명예를 제대로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모욕감'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김오랑 중령, 박정훈 대령,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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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모두 옮겨라"... 5·18 이튿날 전두환 거품물게 한 경찰이 있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전라남도경찰국 안병하 도경국장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

24.05.17 20:30최종 업데이트 24.05.17 21:59

▲ 전남지방경찰청이 세운 안병하 치안감 흉상 ⓒ 연합뉴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실정법 준수가 큰 의미가 없었다. 전두환과 신군부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실정법을 뛰어넘는 저항권 행사가 용인될 수 있었다. 광주시민들이 전두환과 신군부를 향해 총을 들고 무장한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였다.

그런데 또 다른 형태의 저항으로 볼 만한 상황이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났다. 이른바 준법투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안병하 도경국장이 이끄는 전라남도경찰국에 의해 전개됐다. 신군부의 영향을 받는 내무부 치안국은 '시위를 강력하게 진압하라'는 지시를 거듭거듭 내렸다. 하지만 전남도경은 총을 내려놓고 시민 안전에 역점을 뒀다. 전남도경은 이런 식의 비협조를 통해 결과적으로 전두환에 맞서는 형국을 만들었다.

1980년 5월 19일, 안병하 국장은 경찰의 총기와 실탄을 광주 시내 제31보병사단(충정부대)으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5·18 이튿날에 광주 경찰을 비무장으로 전환시킨 이 소산 조치에 관해 당시의 현지 경찰관 일부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5·18 시민군의 일원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 있었던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이 쓴 <안병하 평전>은 그런 평가들을 소개한다.

 

"경찰에게 무기가 있었다면 시민에게 발포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민과 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 최아무개(전남도경 상황실)

"만약 그때 무기를 소산하지 않았다면 여러 가지 참혹한 일들이 생겼을 것입니다." - 안아무개(광주경찰서 수사과)

일선 경찰의 말에서도 느껴지듯이, 전남도경이 계엄사령부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면 1980년 5·18은 '시민군 대 계엄군'이 아니라 '시민군 대 군·경'의 대결이 됐을 것이다. 5·18이 전두환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데 전남도경이 일조한 셈이다.

물론 전남도경도 당시 국가권력의 죄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가 작년 12월 26일 펴낸 보고서인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군과 경찰 등 국가권력에 의한 연행, 구금, 조사과정 등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사건>은 "5·18 기간 중 체포된 사람들은 제31사단, 상무대, 공군 헌병대, 광주교도소, 지역 경찰서/파출소 등으로 연행·구금"됐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전남도경의 지휘를 받는 광주 경찰에서도 국가권력에 의한 5·18 인권침해가 일어났다.

안병하 국장을 비롯한 전남도경의 발포 거부는 그런 한계점과 더불어 인식될 필요가 있다. 신군부의 인권 탄압에 동조한 측면과, 신군부의 강경진압 요구를 거부하고 총을 들지 않은 측면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병하의 판단

 

▲ 안호재 안병하인권학교 대표 ⓒ 김종성

 

1928년 7월 3일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안병하는 도쿄의 중학교와 서울의 광신상고에서 공부한 뒤 1948년 11월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했다. 이듬해 5월 23일 소위로 임관한 그는 22세 때 발발한 한국전쟁 기간 중에 춘천전투와 음성전투에 참전했다. 그러고 나서 5·16 쿠데타 1년 뒤인 1962년 11월에 육군 중령으로 군을 나와 경찰의 길을 걸었다.

 

지난 9일 경기도 하남YMCA교회에서 인터뷰한 안호재 안병하인권학교 대표는 "부친은 처음에 경찰 발령을 받고 치안국에 있다가 곧바로 부산중구경찰서장으로 갔다"고 말했다. 특채 형식으로 총경 계급장을 달고 첫 발을 내디딘 34세의 안병하는 그 뒤 승승장구했다. 간첩 검거와 대간첩작전에서 성과를 거둬 내무부장관 표창과 중앙정보부장 표창도 받았다.

서울 서대문경찰서장, 치안국 과장, 강원도경국장, 경기도경국장을 거친 그는 51세 때인 1979년 2월에 전남도경국장에 취임했다. 마지막 임지가 될 광주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해 10월 박정희가 쓰러지고, 12월에 전두환이 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했다. 이는 안병하의 경찰 내 위상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그는 육사 11기인 전두환·노태우와 막역한 사이였다. 노태우와는 밤중에 만나 술도 마실 정도로 각별했다고 안호재 대표는 말했다.

안 대표는 1980년 전반기 상황과 관련해 "항간에 이야기 돌기로는 부친이 공직자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다 그런 소문까지 나왔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부탁하러 연락하고 찾아오고 그랬어요"라고 한 뒤 아버지가 전두환과 가까워진 계기를 설명했다. 아버지가 경찰 지위를 활용해 전두환의 인맥 관리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 안 대표의 말이다.

"전두환이 정치군인이잖아요. 정치군인을 하려면 옛날에는 경찰 없이는 안 됐거든요. 누구를 만나게 해달라는 연락이 오면 (부친이 만나게 해주고). 특히 사업가들."

안병하는 대간첩작전뿐 아니라 시위 진압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안병하 평전>은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시위 진압도 남 못지않게 잘한다며 유능한 경찰로 평가를 받아왔다"고 말한다. 거기다가 신군부 실세인 전두환·노태우와도 친밀했다. 그랬기 때문에 1980년 5월 19일부터 안병하가 보여준 모습은 전두환·노태우에게는 뜻밖일 수밖에 없었다.

안병하는 5월 18일 새벽부터 치안본부의 강경진압 지시를 받았다. 평전에 따르면, 손달용 치안본부장은 그와의 통화에서 "계엄당국의 시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가며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평전에 따르면 안병하의 판단은 이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압 강도를 더 높이면 시민들이 학생시위에 합세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안 국장은 어떻게든 시위가 더 커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서 시위대가 제풀에 지쳐 가라앉도록 하는 게 서로 피해를 줄이면서 사태를 수습하는 현명한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안병하를 움직인 배경

 

▲ 경기경찰국장 시절 안병하 치안감(왼쪽) ⓒ 안호재

안병하는 시위 진압에 능한 경찰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시민에게 총을 들면 사태가 악화될 뿐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일선 경찰관들에게서 총기를 거둬들였다. 평전에 따르면, 전남도경이 작성한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 상황'이란 문서에 이렇게 적혀 있다.

 

"광주권 2개 경찰서 무기·실탄 및 비밀문건 소산 완료(5.19. 22:00)."

이 조치는 신군부를 경악시켰다. 시위가 들끓는 광주에서 무기를 치워버린 이 사건을 신군부는 황당해 했다. 그런 신군부의 반응을 1980년에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이 작성한 '전남도경국장 직무유기 피의 사건'이란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전에 따르면, 이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치안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찰 무기를 폭도들로부터 피탈을 방지하겠다는 소극적인 발상하에 치안본부장에 건의한 후 경찰 2개 서(署) 및 4개 기동대의 무기 약 1300정을 도경 안전가옥에 이동·소개시킴으로써 5.21. '진도개 둘'이 발령되고 5.22. 자위권이 발동되었음에도 광주 시내에 근무하는 전 경찰의 무장을 불가능케 하였고."

광주 경찰의 무장을 불가능케 한 안병하의 조치에 대해 '친한 후배' 전두환은 한심하다는 어투로 혹평했다. <전두환 회고록> 제1권에서 전두환은 광주 상황이 확산된 것은 안병하 국장 때문이라며 이렇게 서술했다.

 

"광주사태 초기에 경찰력이 무력화되고 그로 인해 계엄군이 시위진압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전남경찰국장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었다. 파출소가 습격당하고 경찰차가 불타는 등 소요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는데 시위진압을 지휘해야 할 전남경찰국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점심을 먹는다며 경찰국 청사를 떠난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이 연락두절 상태가 된 것이다."

안호재 대표는 아버지가 치안본부장뿐 아니라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김종환 내무부장관 등의 압력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압력하에서도 안병하가 시민의 안전을 우선시했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소신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데는 '믿는 구석'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9년 4월 7일 자 <경향신문>에 보도됐듯이, 안병하는 일선 경찰관들과의 소통에 신경을 쓰는 상관이었다. 그래서 경찰 직원들이 자신의 명령을 따라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신군부 핵심부가 자신과 절친하다는 점도 자신감의 요인이 됐을 수 있다.

그에 더해, 안호재 대표는 참전 군인인 아버지가 전쟁 경험이 없는 육사 11기 이하의 장교들 앞에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경찰이라면 마땅히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소신에 더해, 그런 소신을 관철시킬 만한 자원들을 갖고 있다는 점이 1980년 5월의 안병하를 움직인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전남도경이 총을 들었다면

 

▲ 2018년 10월 22일 전남지방경찰청은 5·18 당시 순직 경찰관 4명의 부조상을 청사 입구에 세우고 '5·18 순직경찰관 부조상 제막·추념식'을 열었다. 사진은 함평경찰서 소속 정충길 경사와 이세홍·박기웅·강정웅 경장의 부조상과 안병하 치안감 흉상(왼쪽)의 모습. ⓒ 연합뉴스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장악한 뒤인 5월 25일, 안병하는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의 강경진압 요구에 대해 "경찰이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발포를 거부했다. 다음날 그는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8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6월 2일 의원면직 형식으로 경찰복을 벗은 그는 6월 13일 귀가한 뒤부터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8일간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은 8년간이나 이어졌고, 국회 광주청문회 출석 요구를 받은 상태에서 1988년 10월 10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찰에서 쫓겨난 뒤에 안병하는 유럽과 미국의 병원들을 다녔다.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국립경찰병원, 국립의료원에서도 치료를 받았다. 안호재 대표는 아버지의 건강이 호전되지 않은 이유를 육체적 요인보다는 정신적 요인에서 더 많이 찾았다. 후배 군인들에게 고문과 수모를 당한 것이 훨씬 더 큰 상처가 됐다고 말한다. 안병하는 고문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안병하가 소신 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자신이 참전 군인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그런 자부심이 후배 군인들에 의해 상처를 입은 것이 건강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던 것이다.

안병하는 사후 5년 뒤인 1993년에 5·18 피해자로 인정됐다. 2017년에는 '제1호 경찰영웅'으로 선정되고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특진됐다. 2019년에는 전남경찰청에 안병하공원이 개장됐다.

전두환은 안병하 때문에 광주 상황이 악화됐다고 핑계를 댔다. 경찰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계엄군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고 둘러댔다. 전남도경이 총을 들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을지는 확단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안병하가 총을 치우지 않았다면 전남도경이 국민들을 상대로 무기를 드는 역사의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남도경 #광주경찰 #5·18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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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검찰 '학살 인사'의 설계자는 윤 대통령... 위기 피하려다 감당 못할 사태 올 수도

 

24.05.17 07:09최종 업데이트 24.05.1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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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생중계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9일 오전 열렸다. 서울 용산역 로비에 마련된 텔레비젼을 통해 기자회견이 생중계 방송되고 있다. ⓒ 이정민

 

김건희 여사 수사 지휘부 전격 교체의 설계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여러 정황으로 분명해지고 있다. 검찰총장의 이례적 침묵 항변이 이번 인사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검찰 '인사 학살'의 단초는 올해 초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의 김 여사 조사 요청으로 짐작된다. 특검에서 난도질을 당하느니 미리 면죄부를 주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을 텐데, 윤 대통령은 이마저도 "너희가 감히"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느닷없는 민정수석 부활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의문이 풀린다. '민심 청취'는 구실이었을뿐 실은 검찰 지휘부를 숙청하기 위한 포석이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칼을 들 수는 없으니 대신해서 손에 피묻힐 대리자가 필요했을 터다. 민정수석에 검찰총장보다 아홉 기수나 높은 선배를 택한 것도 검찰 조직 전체에 '찍소리 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그림을 그린 뒤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의아한 건 이런 위험한 계획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무모함이다. 그 사이 '거사'를 중단해야할 많은 일이 있었다. 총선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했고,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보수층마저 등을 돌렸다.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치솟았다. 하지만 모든 신호가 불리하게 나타나는 데도 윤 대통령은 짜놓은 작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배우자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지 않겠다는 일념에서일 것이다. 그것은 홍준표가 말한 '상남자'의 도리가 아니라 '누가 감히 내 아내를 건드리느냐'는 제왕적 오만함의 발로다.

 

윤 대통령의 무참한 검찰 인사로 김 여사 수사는 더 볼 것도 없게 됐다. 불신임을 당한 검찰총장이 "인사는 인사고 수사는 수사"라고 해봤자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권력의 풍향계를 누구보다 잘 감지하는 이들이 검찰 아닌가. "사건의 실체와 경중에 맞는 올바른 판단 나오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신임 중앙지검장의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김 여사 수사팀에게 그 말은 빠르게 무혐의로 결론내라는 지시로 들릴 것이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대하는 윤 대통령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VIP 격노설'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한 것처럼 해석됐지만 실은 그 안에 속내가 담겨있다. 윤 대통령은 경찰 수사에서 사단장의 무혐의가 밝혀지면 대통령실 외압 의혹도 자연히 해소될 거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의 과실치사 적용이 틀렸으니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외압 의혹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의 전제로 수사 결과를 제시한 건 바로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어떻게든 경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특검법을 거부해 시간을 끌어보자는 심산이다. 믿는 것은 공수처의 부실한 수사력이고, 경찰의 '충성심'이다. 윤 대통령의 동문서답식 답변에는 경찰에 대한 수사가이드 라인이 숨어 있는 셈이다.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두고, 고교 후배 장관과 경찰청장을 '이태원 참사' 책임에도 꿋꿋하게 남겨둔 이유가 뭐겠는가.

 

윤 대통령이 한사코 자신과 배우자를 향한 수사를 막는 근저에는 사법적 두려움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 게다. 본인이 특검의 수사 선상에 오르고,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허울로 남에게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힌 당사자이니 그 두려움은 더욱 클 것이다. 김 여사도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고, 재판정에 출석할 지 모르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윤 대통령 부부의 두려움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잘못한 게 있으면 응당 책임을 지고, 그렇지 않으면 조사받고 해소하면 될 일이다. 그 당연한 것을 거스를 경우, 후에 감당못할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시중에는 윤 대통령을 향해 '윤똑똑이'라는 비아냥이 돈다. 자기만 혼자 잘나고 영악한 체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윤달의 윤(閏)에 윤 대통령의 성씨인 윤(尹)을 붙인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딱 그꼴이다.

 

이충재 (h871682)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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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술자' 尹, 노동자를 '조삼모사' 원숭이로 보나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윤석열의 '노동약자보호법'에 도사린 이데올로기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 기사입력 2024.05.17. 08:58:14

 

 

영국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거대한 타락(the Great Degeneration)>이란 책에서 '법의 지배'(the rule of law)가 '법기술자의 지배'(the rule of lawyers)로 타락한 현실을 개탄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새로 법률을 만들어 '과도한 규제'와 '부패한 제도'를 양산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에서 '법의 지배'가 '법기술자의 지배'로 타락한 대표적 영역이 노동 문제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실업)보험법, 산업재해보험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자참여증진법 등 무수한 노동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노사법치 이데올로기의 일환인 '노동약자보호법'

 

법기술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노동법 조항을 개정하고, 그 해석을 보완하며, 나아가 적용을 확대하려는 사회적 대화와 정치적 논의를 조직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이런 저런 논리를 만들어 현행 법제도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우기면서 자꾸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 노동법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논리의 통합성을 사회적 통합성보다 중시하는 이들의 논리에서 핵심은 노동시장 상층에 적용하는 법률을 노동시장 하층에 적용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시장 하층을 위한 법률을 따로 만들어 법제도에서 상층과 하층을 분리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노동시장이 분단되어 있다면서 노동법도 분단시키자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분단과 양극화를 빌미로 제도적으로 '노동법의 분단과 양극화'를 노리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졸업 이후 평생을 법기술자로 살아온 이력에 걸맞게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법 분단과 양극화'의 선두에 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민생토론회에서 "거대 노조에서 소외돼 있는 미조직 비정규 근로자"를 위해 '노동약자보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스물다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노동현장'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노동시장 양극화' 빌미로 '노동법 양극화' 추진

 

대통령은 '노동약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의 토론회 발언에 따르자면 "노동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동약자의 대척점에 "이념으로 무장한 기득권 노조 카르텔"을 내세웠다.

 

윤 대통령의 '노동약자보호법' 구상에 깔려 있는 이데올로기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실업)보험법, 산업재해보험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자참여증진법, 건강보험법, 국민연금법 등 기존 노동법과 사회법의 적용을 이른바 '노동약자'에게 확대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념적으로 '노동약자보호법'의 배후에는 '일의 세계'(the world of work)에서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으로 영구히 분리하려는 음모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시장 분단체제'를 완성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의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적용을 거부

 

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들이 진심으로 노동약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법의 지배' 원리의 출발점인 '법 앞의 평등'을 추구하면 된다. 다시 말해 "기득권 노조 카르텔"에 속한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들이 누리는 법률적 권리와 이익의 법제도적 적용을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확대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노동법과 사회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에는 관심이 없다. 노동법과 사회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이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을 점진적으로 통합시키면서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기술자 가운데 한 명인 윤 대통령은 노동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을 모색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를 위한 법제도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본심은 노동자를 일류와 이류로 분열시키겠다는 것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법률가의 지배'

 

국제노동기구(ILO)는 2019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선언문에서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노동시장과 사회복지 제도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각국 정부가 근로시간과 안전보건 등 노동기준을 통일적으로 적용하고 노동기본권을 노동시장 하층까지 보편적으로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1776년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 사회가 부패 단계에 이르면 지배 엘리트들이 정치와 경제에서 '지대 추구'(rent-seeking)에 몰두한다고 썼다. 2014년 니얼 퍼거슨은 <거대한 타락>에서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는 엘리트의 지대 추구가 '법의 지배'를 대체한 '법률가의 지배'라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썼다.

 

그리고 2024년 윤 대통령은 '노동약자보호법'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법과 사회법의 적용 대상을 차별적으로 분단시킴으로써 한국의 노동 문제를 '법률가의 지배' 하에 두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본질적으로 그의 '노동약자보호법' 제안은 한국 지배 엘리트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분할통치'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을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로 보는 권모술수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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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취업자 26만1천명 증가…60살 이상이 29만명 증가

통계청 ‘4월 고용동향’

기자박수지
  • 수정 2024-05-17 08:47
  • 등록 2024-05-17 08:47
 
지난 10일 경북 경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산시 잡(JOB) 페스티벌'을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경북 경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산시 잡(JOB) 페스티벌'을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취업자 수가 26만1천명 늘어났다. 10만명대로 꺼진 취업자 수가 한달 만에 20만명대로 반등했지만, 60대 이상 취업자 수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15살 이상 취업자는 2869만3천명으로 1년 전보다 26만1천명 증가했다. 올해 1~2월 30만명대를 유지했던 취업자 수 증가폭은 3월 17만3천명으로 급감했다가, 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며 20만명대를 회복했다.

연령별로 보면 청년층(15∼29살) 취업자가 8만9천명 감소했고, 40대 취업자도 9만명 줄었다. 30대는 13만2천명, 50대는 1만6천명, 60살 이상은 29만2천명 각각 증가했다. 고용시장의 ‘허리’로 불리는 40대 취업자 수는 줄고, 60살 이상 취업자수가 늘어나는 현상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산업별로는 수출 호조 및 반도체 경기 회복의 영향으로 제조업 취업자가 10만명 늘었다. 2022년 11월 10만1천명 이후로 1년5개월 만의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9만3천명), 정보통신업(6만8천명)도 취업자가 늘었다.

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 분야는 6만6천명 줄었고, 교육 서비스업과 도매 및 소매업도 각각 4만9천명, 3만9천명씩 취업자 수가 감소했다. 15살 이상 고용률은 63.0%로 1년 전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1982년 7월 월간 통계 작성 이후 4월 기준으로 가장 높다.

실업자는 8만1천명 늘어 2021년 2월(20만1천명) 이후 3년2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실업자는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째 증가세다. 실업률은 3.0%로 1년 전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실업자 증가세에 대해 서운주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2022~2023년 코로나 극복으로 실업자가 감소한 기저효과가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설명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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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수사에 구속영장 남발”…대진연 기자회견 열려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5/1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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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2시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대통령실에 면담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문경환 기자


지난 1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다음 날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대통령실을 방문해 면담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면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학생들은 전원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는데 최근 검찰이 사건 관련자라며 대진연 회원 등 4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해 17일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에 대진연과 서울촛불행동 등 12개 시민사회단체와 96명의 개인 연명인이 구속영장 청구를 규탄하고 기각을 촉구하는 연대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대진연 회원 ㄱ 씨는 “(영장이 청구된 4명 중) 3명은 대통령실 면담 요청과는 전혀 무관했던 사람들”이라면서 “주동자와 배후 세력을 찾겠다고 대진연을 무리하게 표적 수사하며 구속영장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진연에) 올해만 벌써 15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심지어 최근에도 2명의 대학생을 구속해 2개월간 구치소에 가두어 놓기도 했다”라며 정권의 대진연 탄압을 규탄했다. 

 

대진연 회원 ㄴ 씨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유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이후에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이었다면서 “(검찰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투쟁하겠다’ 이런 말을 한 것이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라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이 오만방자한 윤석열을 탄핵시키지 못하고 김건희를 아직도 구속하지 못한 것이 내가 유일하게 반성할 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진연 회원 ㄷ 씨는 “진짜 구속되어야 할 자 누구인가? 김건희이자 윤석열이다. 주가조작, 고속도로 종점 변경, 허위 경력,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 수많은 범죄 의혹이 차고 넘치는 김건희 아닌가?”라며 “윤석열 독재 정권은 탄핵만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대진연 회원 ㄹ 씨는 “소통하겠다던 대통령을 찾아간 것, 국민이 분노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 대학생들이 한 모든 것이지만, 윤석열 정권은 대학생들을 향해 검찰 권력을 이용해서 공안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는 “청년 학생들의 대통령 면담과 그 요구는 지난 22대 총선 민심에서 확인되고 확정되었다. 죄를 지은 자 특검에 나서라 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실은 이와 같은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 김민웅 상임대표.  © 문경환 기자


그러면서 “정권의 범죄에 저항하는 것은 청년 학생들의 마땅한 권리이자 역사의 진실”이기에 “구속영장을 즉각 철회해야 마땅하다”라고 외쳤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잔고 조작 및 사문서위조 등으로 구속되었던 윤석열의 장모 최은순은 1년 형을 다 채우지도 않고 가석방”되었다며 “공정과 상식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김건희 특검법을 거부한 윤석열에게 면담 요청을 한 정의로운 대학생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 아니라 의혹이 넘쳐나는 김건희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대진연 측은 구속영장 기각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지금까지 1,600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대진연은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는 17일 오전 9시 30분에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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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행 깬 김건희…동아일보 “국힘 반성문, 용산 눈치에 할 말 삼켜”



[아침신문 솎아보기] 명심 추미애 꺾였다...국회의장 ‘이변’ 우원식에 신문들이 쏟아낸 주문은

법원, 의료계 ‘증원정지’ 신청 기각…한겨레 “필요한 곳에 의사 늘릴 방안 구체적으로”

 

기자명김예리 기자

  • 입력 2024.05.17 07:44

  • 수정 2024.05.1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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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김건희 여사가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의 부인과 함께한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자취를 감춘 지 5개월 만인 어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방한 중인 캄보디아 훈 마넷 총리 내외와의 오찬에서다. 17일 신문들이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공식 오찬에 참석한 모습을 사진으로 전했다. 한겨레는 “윤 대통령이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를 공식 사과한 지 일주일, ‘김건희 방탄’ 논란을 부른 검찰 고위급 인사를 한 지 사흘 만”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검찰의 김 여사 수사 지휘라인이 갑자기 교체돼 ‘김건희 방탄 인사’라는 시비가 불거졌다. 박성재 법무장관은 16일 “(검찰 인사시기를 늦춰달라 했던 이원석 검찰총장 의견을) 다 받아들여야 인사를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두고 “이 총장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해 신속한 수사를 지시한 후 갑작스럽게 인사가 단행되다 보니 대통령실이 이 총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경찰은 모친의 통장 잔고 증명서 위조 공모 혐의로 고발된 김건희 여사에게 16일 무혐의 처분했다고 보도했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지난해 7월 김 여사가 모친 최은순씨의 잔고 증명서 위조를 공모했을 것이라 보고 용산경찰서에 김 여사를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신문들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이 사건을 각하 처분했다.

한겨레는 “최은순씨는 2013년 경기도 성남시 땅 매입 과정에서 4차례에 걸쳐 약 349억원이 저축은행에 예치된 것처럼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받고 복역하다 지난 14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세행이 “최씨는 징역 1년의 형량을 다 채우지도 않고 가석방됐다. 법 앞에 평등이 철저히 무너진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통탄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일부 신문은 사설을 내고 김 여사를 둘러싸고 불거진 의혹 해소를 요구하는 사설을 냈다. 세계일보는 “김 여사의 등장 자체가 뉴스가 되는 비정상적 상황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검찰 수사만이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해소하는 해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 수사 지휘부를 ‘검찰총장 패싱 물갈이’한 데에 “인사 시기나 내용으로 볼 때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17일 세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 ‘첫목회’가 “(정부여당의) 공정과 상식의 붕괴를 지적”하면서도 김 여사 관련해서는 말을 아낀 점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이들의 반성문엔 ‘주어’가 생략됐다”며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지목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뒤 “김 여사 관련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지휘부 교체 인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용산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삼킨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김 여사가 공개 활동하려면 공적 감시·관리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며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을 꼽았다. 그 중 제2부속실은 국회 추천 없이 윤 대통령이 설치하면 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김 여사는 명품백 수수 이전에도 리투아니아 방문 당시 명품 매장 방문, 봉하마을 코바나컨텐츠 직원 동행 등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잠행 기간에는 국무총리 인선을 두고 비선 논란도 불거졌다”며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김 여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후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 중’이라고 했으나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17일 경향신문 3면 사진기사.

의대증원 이대로… “정부 졸속 정책, 국민 피해 키워”

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증원추진을 멈춰달라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등의 신청을 각하·기각했다. 대입 수시모집 요강을 이달 안에 확정하도록 한 일정을 고려하면 27년 만의 증원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이들의 항고를 각하·기각 결정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법원 결정에 대국민 담화에서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고, 의료계는 즉시 재항고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일보는 “재판부가 의대 증원을 ‘공공복리’라고 인정한 만큼 투쟁 명분은 사라지게 됐다”고 했다. 재판부는 전공의와 의대교수의 신청에는 각하 결정했지만, 의대생에 대해서는 “회복이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원고 적격을 인정했다. 그러나 의대생이 일부 손해를 입더라도 의료개혁이란 공익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의료의 질은 우수하나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있다”고도 밝혔다. 의료계가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주술적 영역”이라고 밝힌 데에는 그 규모 자체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한 건 아니지만 집행정지 이유가 될 순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밝힌 필수·지역의료 복원을 위한 길은 험난해 보인다. 지역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을 늘리려면 공공병원을 늘리고 늘린 의사를 지역과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해야 하는데, 정부의 의료정책은 이를 보장하지 않는 탓이다. 공공의료 시민단체들은 광주와 울산 등에서 기존 공공병원 설립 계획도 무산시키면서, 의사가 늘어도 수도권 비급여 진료에 몰려 ‘돈벌이 의료시장’이 더 과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해왔다.

9개 아침신문이 모두 관련 사설을 냈다. 대다수가 법원 결정을 계기로 의료계가 현장에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국민일보는 사설 제목에 “의대 증원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항고심 심리 과정에서는 의대 증원이 졸속 추진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법원도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인다’고 지적했다”며 “정부가 주먹구구 식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국민 피해를 키웠다”고 했다.

한겨레는 “의대증원만으로 부족한 곳에 의사를 늘릴 수 있느냐는 의구심은 의료계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필요한 곳에 의사를 늘릴 방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증원은 의료개혁 논의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그동안 뒷전으로 밀린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방안에 대해 지금부터 본격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17일 경향신문

우원식 의장 당선…한겨레 “경선 과정, 민주당 뼈아픈 성찰 해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당선인 총회에서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과반 1당 민주당 투표 결과로 다음달 5일 새 국회 첫 본회의에서 우 후보의 의장 당선은 사실상 결정됐다.

신문들은 우 후보 당선을 놓고 ‘예상을 뒤엎은 결과’ 또는 ‘이변’, ‘명심 뒤집기’ 결과라고 표현했다. 경선은 당초 ‘대여 강경파’ 추미애 당선인이 친명계 후보로 정리되면서 대세가 정해진 것처럼 보였으나 이와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우 의원은 후보 수락인사에서 “중립은 몰가치가 아니다. (22대 국회는) 앞의 국회와는 완전히 다른 국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당원들의 ‘탈중립’ 요구를 일정 부분 의식한 것으로, 과거처럼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주요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사태를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경향신문은 “특정 정당 독주에만 힘을 보탤 때는 민심이 최소한의 균형을 잃고 오만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어의추(어차피 의장은 추미애)’란 말이 나오던 경선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우 후보로 결론 난 것도 이런 주문”이라고 했다. “우 후보가 당내 ‘을지로위원회’를 이끈 민생 전문가인 점은 기대를 걸게 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난맥이 심하다 해도 민심은 어느 일방 독주를 용인하지 않는다”며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면 당내에서부터 언제 또 역풍이 닥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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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민주당은 ‘명심’ 논란을 빚은 이번 경선 과정을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경선 후보들을 접촉해 구도를 정리하고, ‘당심이 곧 명심이고, 명심이 곧 민심’(추 당선자)이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은 민주당이 과연 민주정당인지 의심케” 한다“고 했다. 이어 우 의원이 “‘현장형’ 정치인으로 꼽힌다”며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은 물론 민생 현안 해결을 위해 설득과 중재의 정치력을 적극 발휘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예상과 다른 선택이 나온 것은 한 사람을 황제로 모시는 ‘1인 당’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때문일 것”이라며 “이 대표가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우 의원도 사실상 친명 중진 역할을 해왔다”며 “책임에 대해 새로 생각하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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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 “교육기관들 가운데서 최고의 기준 창조”

완공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현지지도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4/05/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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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완공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현지지도했다고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이 현지지도에 동행하였으며 현지에서 중앙간부학교 건설을 한 설계 및 시공 단위 관계 성원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맞이했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공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전경을 보며 “보면 볼수록 위엄있다. 정말 본보기적인 교육기관다운 학교를 우리 손으로 일떠 세웠다”라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교양 구획과 교무행정청사, 교사 종합강의실, 다기능 강당, 회의실, 도서관, 체육관, 기숙사와 식당을 비롯한 여러 곳을 돌아보며 지난 3월 30일 이곳을 현지지도하면서 준 과업들의 집행 정형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설계 부문 및 시공 단위의 일꾼들과 건설자들이 지난번에 지적한 문제들을 올바로 퇴치하고 건축 마감 공사를 최상의 수준에서 질적으로 진행함으로써 학교의 교육환경과 조건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흠잡을 데 없이 꾸린 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건축물의 구조적 특성도 현대 교육 발전 추세와 교육학적 원리에 맞게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되었으며 원림 녹화 사업도 세계적 수준에 부합되게 높은 경지에서 실현되었다”라면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는 정치성과 현대성, 실용성이 확고히 보장된 만점짜리 교육시설이다. 우리나라 교육기관들 가운데서 최고의 기준을 창조하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새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 당의 정치학원으로 거연히 일떠선 중앙간부학교가 진짜배기 핵심 골간들, 김일성-김정일주의 정수분자들을 키워내는 자기의 중대하고도 성스러운 사명에 항상 충실함으로써 조선노동당의 강화발전과 영원무궁한 번영에 참답게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면서 개교식을 앞두고 운영 준비를 빈틈없이 갖출 것과 준공식을 정치적 의의가 크게 훌륭히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신문은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완공과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히신 새 시대 5대 당건설의 휘황한 진로를 따라 전당 강화의 새로운 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는 역사적인 시기에 우리당 간부 양성의 최고전당인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가 주체건축과 주체교육 부문의 본보기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섰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새 시대 5대 당건설 노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2년 10월 17일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해 교직원, 학생들에게 한 기념 강의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시대 우리 당건설방향과 조선로동당 중앙간부학교의 임무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정치건설, 조직건설, 사상건설, 규율건설, 작풍건설’을 새 시대 당건설 방향이라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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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 향했던 청년, 5·18 ‘뒷것’으로 남다

[5·18 민주화 운동 44주기]
계엄군에 맞서던 강학 손남승씨
동지 두고 빠져 나왔다는 죄책감에
유공자 신청 거부하고 세상과 단절

기자정대하
  • 수정 2024-05-16 07:53
  • 등록 2024-05-16 05: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11:04
1980년 12월 광주 백제야학 학생들이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공연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홍곤 제공
1980년 12월 광주 백제야학 학생들이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공연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홍곤 제공

지역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대학생 가객. 노동야학 교사로 무장 계엄군에 맞서 싸운 시민군.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노동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린 청년 연출가. 손남승(66)의 찬란했던 20대를 대표하는 이력들이다. 하지만 그는 ‘살기 위해’ 도청을 빠져나온 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은둔자로 남아 있다. 그는 왜 세상과, 5·18과 단절하며 살고 있을까? 몇해 전 손남승의 ‘스토리’를 전해 듣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이달 초 그의 근황을 다시 들었다. 지인을 통해 만남을 요청했으나 “나 같은 놈한테 앞에 나서 말할 자격이나 있겠느냐”며 모습을 끝내 드러내지 않았다.

가요제서 대상 받은 대학생 가객

“며칠 전에 통화허는디, 그럽디다.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도저히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다고.”

그와 접촉한 선배 김홍곤(67)이 15일 전해준 말이다. 김홍곤은 젊은 시절 지인들 가운데 손남승이 거의 유일하게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다. “얼마 전 김민기 선생 다큐 보셨지요? 김 선생 얘기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나서지 않겠다’는 남승이 말이 꼭 ‘오월의 뒷것으로 살겠다’는 뜻으로 들리데요.”

두 사람은 광주 ‘백제야학’에서 처음 만났다. 손남승의 광주일고 동기인 박용성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김홍곤과 박용성은 전남대 국어교육과 입학 동기였다. 백제야학은 1980년 2월 강학(교사) 8명이 만든 노동야학이다. 손남승, 김홍곤, 최문수 등 대학생들은 60여명의 학생들과 광주 방림신협 지하실에서 공부했다. 백제야학 교장이던 김홍곤은 “근현대사, 한문, 근로기준법 위주로 가르쳤고, 음악은 구전가요나 민중가요를 함께 불렀다”고 했다. 학생들은 무등양말, 호남전기, 태광산업, 일신방직 등에 다니던 10대, 20대 노동자들이었다.

광주의 노동야학인 백제야학 강학(교사)들이 1980년 4월 야유회를 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뒷줄 맨 왼쪽이 김홍곤씨, 둘째가 손남승씨다. 김홍곤 제공
광주의 노동야학인 백제야학 강학(교사)들이 1980년 4월 야유회를 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뒷줄 맨 왼쪽이 김홍곤씨, 둘째가 손남승씨다. 김홍곤 제공

백제야학은 검정고시 야학으로 출발해 얼마 안 가 노동야학으로 전환했다. 강학들이 들려준 사연은 처연하다. 1978년 사직공원 근처 승공회관에서 검정고시 야학을 하던 손남승·박용성 등은 1979년 산수동오거리로 자리를 옮겨 ‘사랑의 학교’라는 야학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아이스크림 공장에 다니던 학생 하나가 포장용 프레스에 손가락 세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회사는 합의금으로 손가락 한개에 3만원씩 9만원을 제시했다.

검정고시 야학을 노동운동 야학으로

소식을 전해 들은 강학들은 분노했다. 박용성의 분노가 특히 컸다. 그는 회사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수집해 유인물을 만들어 뿌릴 준비를 마친 뒤 사장을 찾아가 담판했다. 결국 300만원을 받아냈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 현실은 그대로였다. 허망하고 괴로웠다. 격론 끝에 노동운동에 방점을 둔 ‘노동야학’으로 바꾸기로 했다. 김홍곤의 고등학교 은사 임기석 방림신협 이사장의 도움으로 전남대병원오거리의 신협 건물 지하실에 터를 잡았다.

1980년 봄 5·18이 터졌다. 백제야학이 문 연 지 석달 만이었다.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강학인 손남승과 김홍곤, 학생 김순옥과 이정례가 5월19일 백제야학 지하실에 모였다. ‘광주시민이여, 궐기하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제작했고, 다섯차례에 걸쳐 배포했다. 같은 시기 광주의 또 다른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이 외부로부터 고립된 광주 상황을 시민들과 공유하려고 유인물을 제작해 시내 곳곳에 뿌렸다.

손남승과 김홍곤은 5월21일 오후 전남대병원오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다가 총격을 받았다. 김홍곤은 “(도청 집단발포 후) 화순 방향으로 퇴각하던 계엄군이 탱크에서 기관총을 쐈다. 가드레일 철판에 맞아 튄 총탄 파편이 근처 상점의 셔터에 박혔다”고 회고했다. 두려웠다. 두 사람은 김홍곤의 집으로 도망쳐 다락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다. 도청 앞 집단발포로 많은 시위 군중이 희생되자 분노한 시민들이 무장을 시작하던 때였다.

“파리코뮌도 실패…도청 남으면 죽는다”

손남승은 “(시민군 본부인) 도청으로 가겠다”고 했다. 김홍곤이 “나는 무섭다. 노동자 혁명정부인 파리코뮌도 실패하지 않았냐. 결국엔 진압되고 죽을 테니 가면 안 된다”고 말렸다. 당시 손남승에겐 미래를 약속한 여성이 있었다. 손남승은 “사랑도 소중하지만 내겐 혁명이 더 중요하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전남대병원오거리에서 헤어졌다. 김홍곤은 그길로 광주를 걸어서 빠져나와 화순을 거쳐 고흥으로 몸을 피했다. 살고 싶었다.

손남승은 도청 1층의 상황실에서 일했다. 백제야학을 하며 알게 된 노동운동가 출신 이양현(74)을 그곳에서 만났다. 이양현은 학생투쟁위원회 기획위원이었다. ‘최후의 날’인 5월27일이 왔다. 그날 새벽, 손남승이 다급한 목소리로 “계엄군이 유동삼거리까지 왔다. 자는 사람들 다 깨워야 한다”고 이양현에게 말했다. 비상이 걸렸고, 새벽 3시를 조금 넘겨 무장한 시민군들이 도청 전면과 후면에 배치됐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의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손남승은 도청 담장과 도지사 공관의 철책을 연달아 넘은 뒤, 재래식 야외 화장실 안으로 숨었다. “똥물에 몸뚱이를 담그고 콧구멍만 내놓고 있었다고 그래요.” 김홍곤이 전한 손남승의 당시 상황이다. 아침이 밝자 손남승은 도지사 공관의 가사도우미에게 집으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뒤 아버지가 타고 온 짐자전거에 ‘똥범벅’으로 올라타 집으로 도망쳤다.

살아남은 손남승은 백제야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80년 12월 학생들과 함께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을 무대에 올렸다. 손남승은 1979년에 열린 제2회 전일방송가요제(VOC대학가요제)에 훗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박현희와 함께 ‘전남대 중창단’이란 이름으로 나가 대상을 받을 만큼 음악 실력이 출중했다. “멋쟁이였제. 얼굴은 이국적으로 잘생겼고, 기타 솜씨도 대단했어요. 그뿐이여? 글도 진짜 끝내주게 잘 썼어요.”

‘혁명 철학’ 익히려고 떠난 독일 유학

‘공장의 불빛’이 노동자들 참여로 무대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김홍곤은 기억한다. “남승이 주도로 강학들이 연출하고 학생들 전원이 배역을 맡아 출연했어요.” 당시 공연장엔 백제야학을 후원했던 최연석 목사의 주선으로 김민기와 임진택 등 서울의 문화운동권 사람들도 왔다. 김홍곤은 “공연 내내 눈시울을 붉히던 김민기 선배가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만들었지만, 노동자의 현실이 이렇게 슬프고도 생생하게 드러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백제야학은 1981년 ‘미리내 야학’으로 이름을 바꾼 뒤 장소를 옮겨 1984년까지 운영됐다.

손남승은 그 후 군에 갔다 제대한 뒤 백제야학 강학 출신인 여성과 결혼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손남승은 1989년 독일 유학을 떠났다. 김홍곤에겐 “혁명을 위해 헤겔과 마르크스를 더 공부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1994년 김홍곤이 한국에 잠시 들어온 손남승을 만났을 때 “그날 새벽 도청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자괴감에 여전히 시달린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손남승은 끝내 학위를 받지 못한 채 1990년대 후반 귀국했다.

광주로 돌아온 손남승은 김홍곤의 말처럼 ‘5·18의 뒷것’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그는 1995년부터 시작된 5·18유공자 보상 신청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김홍곤은 그에게 정부가 지난해 말까지 받았던 8차 유공자 보상 신청을 권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신청하라”고 몇번을 설득했으나, 손남승은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홍곤은 “결벽증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격 조건에 조금 미달해도 유공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뭐가 그리 부끄럽다고 나서지 못하는지 안타까웠다”고 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으나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은 하고 있다”는 짤막한 답변만 들었다.

여전히 5월을 아파하는 백제야학 사람들

4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해 5월을 아파하는 백제야학 사람은 또 있다. 박용성은 5·18 직전 전남대 총학생회 교육부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가 수배가 떨어져 여수로 도피했고 가족들의 설득으로 그해 6월 자수했다. 하지만 구타와 고문으로 척추에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는 실어 증세를 보여 기소 중지로 풀려났다. 박용성은 전남 여수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전교조 지부 결성을 주도한 일로 해직교사가 됐다. 몇해 전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고 박관현에 관해 인터뷰한 뒤 석달을 앓았다는 그는 이번 한겨레가 요청한 인터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남 지역 사립학교에서 2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공단에서 용접공으로 6~7년을 보낸 김홍곤은 요즘 식당을 운영한다.

광주의 노동야학인 백제야학 교장이었던 김홍곤씨.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광주의 노동야학인 백제야학 교장이었던 김홍곤씨.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백제야학은 5·18 이후에도 ‘뒷것’ 역할을 담당했다. 백제야학이 들었던 노동자 교육운동의 깃발은 와이(Y)야학, 한얼야학, 무등야학이 이어받았다. 김홍곤은 “야원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강학들과 학생 20여명이 지금도 모임을 한다”며 “손남승이 세상 밖으로 나와 남은 생을 옛 동지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설득하고 또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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