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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자 '십알단과 새누리당' 기억하자 '불법선거'

 


지난 대선에서 '십알단'이라고 불리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 불법 댓글 알바팀을 운영했던 윤정훈 목사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선관위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된 십알단 사건이 단순한 집행유예로 끝났다고 단신으로 처리했지만, 십알단 사건에는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의 쟁점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는 새누리당이 SNS와 댓글을 활용한 선거 전략을 미리 준비하고 불법으로 이를 자행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국정원과의 연계성입니다.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봤습니다.

' 헌법의 가치를 훼손한 범죄행위,그러나 처벌은 솜방망이'

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 (재판장 김기영 부장판사)는 구속 기소된 윤정훈 목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직선거법에서 설립을 금지하는 선거사무소와 유사한 조직 또는 시설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사무실에 'President War Room(PWR)[SNS선대본부]’라는 문구를 게시해 놓거나 매일 ‘D-6’ 등 대선일까지 남은 일자를 표기해 놓았던 점과 새누리당 관계자들만 얻을 수 있는 내부자료와 임명장이 다수 발견됐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SNS 교육기관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박근혜 후보 선거 운동을 '대선 사역'으로 지칭하고 <새누리당 산하 국민소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무실을 운영했다는 점은 '공직선거에서의 자유 및 공정 등 공직선거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것이어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십알단의 행위가 선거의 자유 및 공정을 해하는 별도의 위법행위를 했다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며, 선거운동을 위한 근로자임에도 이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치] - 발각된 '새누리당 불법 SNS 선거 운동' 그마저도 감추다니

재판부는 공정선거에 대한 헌법정신을 훼손한 범죄행위라고 해놓고 이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는데, 이는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 불법 선거 사무실 비용을 댄 국정원과의 관계는 왜 수사하지 않았나?'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선거 사무실 비용을 누가 댔느냐는 부분입니다.

사무실 비용이 새누리당에서 흘러나온 것은 맞지만, 이 자금을 국정원이 제공한 것으로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연계성을 알려주는 증언이 윤정훈 목사 본인의 입에서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십알단 윤정훈 목사는 자신의 입으로 " 여의도에 오피스텔을 얻었거든, 41평짜리, 내가 돈이 어디 있어, 나를 지원하는 분이 '국정원'이랑 연결이 돼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실을 여의도로 얻은 이유에 대해서도 "김무성씨와 박 후보님이 직접 방문할 수도 있다고 해서 사무실을 여의도로 옮겼다"는 말도 '나는 꼼수다'에서 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불법으로 선거 사무실을 이용하고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면, 이에 대한 배후까지 캐야 마땅하지만, 검찰과 재판부는 그 자금의 출처는 물론이고, 국정원과 같은 국가 기관이 자금을 댄 엄청난 사건은 아예 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국정조사까지 열렸으며, 원세훈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실에 대한 재판에서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이 국정원 요원 김하영에게 "선거도 끝나고 이제는 흔적만 남았네요. 김하영씨 덕분에 선거 결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런 여타의 증거물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도 단순히 십알단 윤정훈 목사만 조사하고 집행유예로 풀어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할 의지가 없었고, 오히려 조직적인 연관성을 은폐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는가 의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 새누리당의 불법 선거운동, 다시 파헤쳐봐야 한다'

지난 대선이 시작되기 전에 새누리당은 유독 약했던 SNS와 인터넷 여론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었습니다. 중앙선대위, 대선기획단에서는 '뉴미디어를 담당할 본부의 확대 개편'을 추진했으며, 'SNS를 포함한 뉴미디어 총괄 컨트롤 타워' 등에 대한 논의도 계속 있었습니다.

디지털정당위원장이었던 전하진 의원도 "페이스북은 가슴을 담다 빠른 대응으로 지지자를 확보하고, 트위터에선 반복적으로 집단으로 대응해 네거티브를 저지한다"는 대응지침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이런 SNS 전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2012년 9월 17일 ROTC 정무포럼 정례 세미나에 박근혜 후보가 참석한 부분입니다.

새누리당 성향의 ROTC 모임에서는 'SNS 현황과 전략'이라는 주제를 통해 "정무포럼은 영향력 큰 일반 논객들과 '새마음포럼'을 공동으로 조직하여 이미 30여명의 논객이 활동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2012년 12월 13일 서울시 선관위가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증거물에는 '새마음 포럼' 파일 자료가 있었습니다. 이는 새누리당이 SNS와 인터넷상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서 자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적으로 움직여지고, 이것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이 투입됐다면, 이것은 명백한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하며, 대개 이런 불법 선거운동이 적발되면 국회의원은 대부분 의원직을 잃게 됩니다.

[정치] - '십알단','박사모 사이버 전사'를 아시나요?


 



지금 청와대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불법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는 말과 '수사 중'이라는 말로 넘어가고,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해서는 국정원 특수요원을 '여성인권'을 내세우며 발끈했던 바 있습니다.

헌법 정신을 훼손한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당시에 수사 중인 사건이라 말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국민 앞에 해야 합니다.

 

 

 


조직적인 정부기관의 선거 개입과 관변 단체와 새누리당 불법 선거사무실의 불법 선거운동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관권선거,부정선거가 자행됐던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 재연됐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이제는 흔적만 남았습니다"
그 흔적을 법으로는 절대 파헤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번에 자행됐던 불법 선거의 증거를 모으고, 다시 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앞으로 치러야 할 모든 선거를 공정하게 치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이는 선거를 '편히 지켜볼 수 있었다'고 자신의 부하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었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애간장이 녹고,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습니다.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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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국의 포위 전략 군사적으로 맞대응

러시아 인접 국가들과 항공 우주방어군 합동 훈련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9/02 [19:04] 최종편집: ⓒ 자주민보
 
 

러시아가 미국의 대 러시아 포위 전략에 맞서 강력한 국방력으로 맞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일 정세론해설을 통해 “러시아가 국방력강화에 힘을 넣고 있다.”고 일갈하고 “위력한 군사력의 담보가 없이는 강력한 국가건설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러시아의 일관한 입장이다. 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의 전략적공간은 부단히 사방에서 압축되었다. 미국주도의 나토무력은 이미 러시아의 서부국경가까이에 접근하였다. 미국이 내놓은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은 이 지역에서 힘으로 지배권을 유지확대하며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아시아주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의 주요목표로 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고 미국의 러시아 군사정책을 지적했다.

로동신문은 “사실들은 미국이 러시아를 서쪽과 동쪽에서 동시에 압축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해준다.”며 “이것을 러시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날로 노골화되고 있는 미국의 대 러시아 포위환 형성책동에 대처하여 러시아는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을 전략적 노선으로 내세우고 그 길로 변함없이 나아가고 있다.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이 나라들을 망라한 반항공 방어훈련이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전투적우의-2013’이라고 명명된 이번 훈련은 모스크바 주에 전개된 항공우주방어군 반 항공부대들과 구 분대들을 최고의 전투준비태세에 진입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서 “훈련에는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의 20여개 부대들이 참가하였다. 러시아에서는 500여명의 군인들과 대공미사일종합체 《С-400》과 미사일-포종합체 《빤찌리-С》를 포함한 항공우주 방어군의 100여대의 전투 및 특수기술기재들이 동원되었다. 첫 단계는 훈련에 참가하는 나라들의 인원 및 전투기술기재들을 러시아의 아슐루크 사격장에 재배치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며 이 사격장에서 훈련의 적극적인 단계가 진행된다고 한다.”고 훈련 일정을 공개했다.

신문은 “훈련에는 벨라루씨와 카자흐스탄, 따쥐끼스탄, 키르키즈스탄의 반 항공부대들도 참가하였다. 기타 여러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은 옵서버로 참가하였다.”고 훈련 참가 국가들을 소개했다.

또한 “러시아는 냉전시기 강국이었던 이전 소련의 계승국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서도 국방력강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중국과의 군사적 협력 강화에도 힘을 넣고 있다. 얼마전 러시아는 중국과 두차례의 합동군사연습을 진행하는 등 군사적 접촉과 내왕, 군사협력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두 나라 군대사이의 관계를 밀접히 하고 있다. 두 나라 군부측은 지난 7월 5일부터 12일까지 해상합동군사연습 《해상합동-2013》과 7월 27일부터 8월 15일까지 합동반테러군사연습 ‘평화사명-2013’을 각각 진행하였다.”고 중러 군사협력을 강조했다.

이어 “군사관계강화와 해상에서의 공동작전수행능력 제고 등을 목적으로 진행한 이번 합동군사연습에서는 납치 된 선박구출, 조난선박 탐색 및 구조, 함선호송, 예비물자보충, 반항공 및 반함선, 반잠수함 훈련, 해상 및 공중목표타격훈련들이 진행되었다.”며 “러시아와 중국은 이번 합동군사연습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연습에 앞서 러.중 무력 총참모장들은 두 나라 무력사이의 전략적동반자관계를 확인하였으며 러중 군사협조를 심화시키고 호상관계를 계속 발전시킬 데 대한 중요한 합의들을 이룩하였다. 이번에 두 나라가 진행한 합동군사연습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군사적세력권 확장과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포위환 형성을 견제하고 테러위협을 막으며 지역의 전략적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공동조치로 된다고 여론들은 전하고 있다.”며 중러의 긴밀한 군사협조가 대미 전략임을 시사했다.

아울러 “얼마 전 러시아대통령 푸틴은 최근 집단안전조약기구 성원국들이 첫째도 둘째도 중요한 것은 기구성원국들과 인민들의 안전을 무조건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게재했다.

특히 “나라의 국방력을 강화하고 지역의 안전보장을 위해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혀 러시아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에 맞서는 전략적 노선을 채택했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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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간토조선인 학살사건 공식 사죄해야"

유기홍 의원 등, 90돌 맞아 '진상규명특별법.결의안' 추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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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2 1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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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수경 의원 등이 2일 간토조선인 학살 90돌을 맞아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를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일본 아베 총리는 1923년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해 공식 사죄하라."

 

유기홍.임수경 의원과 '1923 한일재일시민연대' 등은 2일 오전 11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만 3천명의 조선인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에 무참하게 학살됐고, 일본 군대와 경찰, 민간자경단이 학살을 자행했지만 9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며 이같이 촉구했다.

임수경 의원이 낭독한 회견문을 통해, 이들은 또한 일본 정부에 지금까지 은폐해온 '간토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모든 공식적인 자료 공개와 함께 역사교과서 왜곡 중단을 촉구했다. 한.일 양국 정부를 향해서는 이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도 요구했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 대표인 유기홍 의원은 "90년전 어제가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날이었고 그 다음날인 2일에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방화한다는 헛소문을 퍼트렸다"며 "우리가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 유기홍 의원이 일본 정부가 간토조선인 학살에 직접 관여했음을 뒷받침하는 공문서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유 의원은 1923년 9월 3일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이 각 지방장관에 보낸 공문서를 들어보이며, 일본 내무성이 '조선인들이 각지에 불을 지르고 폭탄을 소지한 자들이 있다'며 '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에 '간토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과 '간토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촉구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의 증언을 듣는 자리도 추후 따로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김경호 목사는 김종수 목사를 일본에 보내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왔으며, 이를 통해 확보한 희생자 명부를 바탕으로 각 교회조직을 통해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찾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10월 31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기간에 '간토재일코리안 제노사이드 사진전'도 열 계획이다.

이해학 '1923 한일재일시민연대' 대표는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며 "이 문제를 늦게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다시 같은 역사가, 다시 같은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군국주의 침략역사를 미화하며, 우경화.재무장으로 치닫는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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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명장면】나루터는 어디인가

"저는 다만 세상의 변화를 나 몰라라 하는 고루한 선비가 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이인우 2013. 09. 02
조회수 897추천수 0

 

問津
 문진
 
 나루터는 어디인가? -‘미자’편 6장① 


 1. 갈림길에서 
 
 서기전 489년경, 부함을 떠난 공자 일행은 남방의 평원을 가로질러 서북 쪽으로 회수(淮水)가 바라다보이는 언덕배기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강변으로 내려가 나루터에서 배를 타면 채나라 도읍 신채(新蔡)로 가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런데 전란 때문에 군대와 유민들이 어지럽게 오가서인지 나루터로 이어지는 원래 길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강 상류 쪽으로 난 길도 있고 하류 쪽을 향해 난 길도 있었다.
 
 이쯤에서 나루터 가는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방향이 혼란스럽자 일행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먼 길을 온 피로를 풀면서 다른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듯 했다.
 나는 내려놓은 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생각할수록 실의의 여정이었다.
 공자께서 노나라를 떠난 지 7년 여, 이미 이순(耳順)을 훌쩍 넘기셨건만 역정(歷程)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모처럼 기대를 가지고 찾았던 부함에서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자로’편 16장)의 순리를 설파했으나, 섭공(葉公) 심제량은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의 덕목으로 삼기보다는 교양과 치술(治術)의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부함은 공자 일행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자로는 섭공을 생각할 때마다 화가 치미는지 옆구리에 찬 칼자루를 쓰다듬었다.
 일행은 하루빨리 채나라로 돌아가 잠시라도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었다. 제자들은 스승 앞에서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저마다 애를 썼다. 숲속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도 그런 자신들을 조롱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과연 선생님은 불가능한 일에 덤벼드는 무모한 사람인가?
 혹시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안연 곁으로 가 앉았다. 왠지 안연은 해답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안연님. 나루터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나루터? 비유인가?…음, 그렇군….”
 “오늘따라 이 강을 건너는 것이 예사롭게만 여겨지지 않는군요.”
 “자네도 그런가? 나도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기분일세 그려.”
 

편집나루터공자5.jpg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 중에서

 


 2. 나루터를 찾는 사람들
 
 ‘다른 세계로 가는 배’라는 안연의 말에 나는 문득 도연명(陶淵明. 365~427. 중국 동진시대의 시인)을 떠올렸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고사(故事)를 남긴 일사(逸士). 공자 사거 800여 년 뒤의 사람으로 자신을 종종 안연과 비교하며 공자의 이 유랑길을 흠모했던 은둔자. 내가 살아서 그 시인이 그리워 했던 안연을 마주하고 있을 줄이야…. 나는 잠시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찾은 어부같은 기분에 휩싸여 안연에게 바싹 다가앉았다.
 “안연님, 제가 조선에서 이상한 나루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무릉(武陵)이란 지방에 한 어부가 살았습니다.
 어느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물길을 잃고 복숭아꽃이 만발한 이상한 숲속을 헤매다 숲 끝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산이 하나 있고 작은 동굴이 나 있었습니다.
 배를 대고 걸어서 동굴을 통과해 가니 넓은 들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모습이 여느 세상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부를 보자 놀라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며 술과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저마다 바깥 세상 소식을 물었다지요.
 그들은 중국의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온 뒤 다시 나간 적이 없어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조차 모르고 있더랍니다.  
 그 곳은 사람들이 철따라 곡식을 거두고 누에 실을 뽑아도 세금이 없고,
 사계절이 순행하여 꾀를 부리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며 한평생 즐겁고 화목하게 산다 합니다.
 어부가 며칠을 더 묵은 뒤 돌아가려 하자,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부는 동굴을 나와 배를 찾아 온 길을 되짚어 가면서 곳곳에 물길을 표시해 두었답니다.
 자기가 살던 마을로 돌아온 어부는 군수에게 그동안 겪은 일을 고했습니다.
 군수는 곧 사람을 시켜 어부의 표시를 따라 가보도록 했으나 끝내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후 어느 고상한 선비가 이 이야기를 듣고 그 곳이야말로 진실된 선비가 살아갈 이상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평생 그 복사꽃 피는 숲을 찾아 헤매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그 후론 아무도 그리로 가는 나루터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병시>②)
 
 안연이 멀리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으로 신비로운 이야기일세. 나루터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니 왠지 나도 아쉽군.”
 “어부가 갔다는 그 마을은 인의(仁義)조차 필요없는 무위무욕의 세계이겠지요? 그런데 과연 그런 세상이 있을까요?”
 “그 피안(彼岸)의 마을이란 데도 사실 선생님이 이루고자 하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걸세. 다만 그런 삶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도달할 수 있고, 보통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희망이라면 그것은 선생님이 바라는 바가 아닐걸세. 선생님을 비웃는 은자들이야 노상 입에 달고 다니는 세상이겠지만…. 은자들은 이 혼탁한 세상에서 진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세상을 피해 자연과 벗하며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면, 이 땅의 눈물겨운 백성들은 누가 돌볼까? 그냥 내버려두는 게 과연 현자의 지혜라는 것일까?”
 
 3. 은사(隱士)와 일민(逸民)
 
 생각해 보면 공자의 여정에서 우리의 마음을 진짜로 아프게 한 것은 어리석은 군주도, 노회한 권신도 아니었다. 같은 이상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려는 공자를 비웃고 비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반짝이고 있다가 공자가 이상의 실천을 말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수같은 조롱으로 공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들은 ‘현세에서 구원을 찾는 일이 부질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공자가 허명과 권세라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대중들을 속이고 있다’고 매도했다.
 
 자로가 제나라 석문에서 읍재의 자문역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자로가 관청으로 가기 위해 성문을 통과하는데 문지기가 제지하며 물었다.
 “누구요?”
 “자문역 자로입니다.”
 그때 문지기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공씨에게서 왔다는 사람이요?”
 “그렇소만.”
 문지기가 옳다구나 싶은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흥, 그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겠다고 나대는 그 자 말이지?”(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헌문’편 41장③)

이런 일도 있었다. 위나라에 있을 때 선생님이 심란하여 경(磬)을 연주하고 있는데 삼태기를 진 사람이 지나가다 말하였다.
 “음악 속에 욕심이 담겨 있군.”
 한참을 더 듣더니 또 말했다.
 “비루하구나, 저 소리!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물이 깊으면 바지를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너면 그만인데”
 하고는 가버렸다. (‘헌문’편 42장④)
 이 또한 공자를 속으로는 권세를 탐하고 벼슬에 집착하는 소인으로 치부하고 비난한 말이었다.
 
 은자로 존경받는 미생무가 하루는 공자를 찾아왔다. 그가 공자와 대작하다가 취기를 빌어 공자에게 말했다.
 “이보시게, 구.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어떤가? 그만큼 수모를 당했으면 됐지, 왜 여전히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고 다니는 건 말재주만 믿고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닌가?”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미생무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선배님, 아직도 저를 모르십니까? 저는 다만 세상의 변화를 나 몰라라 하는 고루한 선비가 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孔子曰 非敢爲영(아첨할 영)也 疾固也. ‘헌문’편 34장⑤)
 
 그러고나서 공자는 미생무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선배, 내가 사람들의 조롱과 배척 속에서도 열국을 돌아다니며 군자의 치도(治道)를 말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일념 때문입니다. 인류의 진보를 믿지 않은 채 사람들을 무지와 핍박의 압제 속에 가둬놓고 있는 이 화석같은 세상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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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TV <공자> 중에서



 4.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지 않으시니
 
 “하지만 선생님도 좌절하고 절망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닙니까? 언젠가 당신의 한계를 한탄하시며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차라리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다’(‘공야장’편 6장⑥)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때 자공과 함께 나타난 염유가 말했다.
 “도가 행해진다면 그곳이 다 이상향이 아니겠는가?”
 “선생님이 그 기담(奇談) 속의 고상한 선비였다면 아마도 커다란 배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하하. 그 배에 가득 사람들을 싣고 함께 이상 세계를 건설하려 하셨을 것만 같네.” 
 “선생님은 동쪽의 주나라(東周), 즉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싶으셨다.”(子曰 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양화’편 5장서 차용⑦)
 자공이 제자들과 짐꾼들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한다.
 “우리가 선생님을 모시고 북방의 황하도, 남방의 평원도 건너지 못하고 이렇게 온 길을 되돌아가게 되니 끈 떨어진 연마냥 자못 처량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이미 나루터가 어디인지 알고 계시네.”
 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선생님의 나루터는 어디인가요?”
 “나, 자공이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셨다.
 
  ‘사람은 쉼없이 자기를 수양하여 인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군자가 된다. 인을 추구하는 군자는 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고(忠), 남을 위해 진실로 애쓰는 마음을 닦는다(恕). 이처럼 인을 추구하는 군자들이 세상에 많아져서 그들이 예(禮)로서 협동(協同)하고, 의(義)로서 협덕(協德)하고, 인(仁)으로 협치(協治)한다면, 우리가 사는 바로 이 땅에서 대동(大同) 세상을 실현할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러한 생각에 더 이상 의혹이 없게 되자, 당신과 제자들이 먼저 협력하여 군주와 대부들을 설득해 당신이 세운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셨다. 선생님께서 분연히 일어나 현실정치로 나아가신 뜻이 여기에 계시다. 선생님께서 분연히 일어나 천하열국을 주유하시는 뜻이 여기에 계시다. 한 사람의 선비로서 쉼없이 자신을 닦고, 군자로서 인의의 도를 추구하는 것, 선생님은 이 사명을 당신의 천명(天命)으로 세우셨다.”

 안연이 화답하듯 말한다.
 “사람들은 선생님의 높은 이상을 오해하여 비웃고 심지어는 해치려 하지만, 어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저 높은 뜻을 어떤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을 위해 세상을 호도하는 위장이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혼탁한 세상을 한탄하고 저주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 자기만의 구도(求道)에 안주합니다. 이들은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며 무위무욕한 삶을 지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선생님은 그들과 다릅니다. 구도의 길을 가되 그것을 위해 세상을 피하지 않습니다. 탁류 속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이입니다. 정치는 탁류를 정화하는 유력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도의 수단이 되는 순간 도로부터 멀어집니다. 바로 여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무릇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고뇌, 위선과 위악, 영광과 비극, 나아가 죽음까지도 이 딜레마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과연 이런 이치를 모르고 길을 떠나셨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기에 그것을 경계하고 삼가는 은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비판을 존중하며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당신의 길을 당당히 가십니다. 가함도, 불가함도 없이(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미자편 8장⑧) 일월사계(日月四季)의 운행처럼 나아가는 자,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자 하는 사람(不可而爲之者), 그것이 선생님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문도들에게 읍하며 가르침을 주신 데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한 뒤 큰 소리로 선생님의 말씀을 흉내냈다. 
 
 하늘이 이 문명을 없애지 않으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 선생님을 해치겠는가!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자한’편 5장⑨서 차용)


 어디서 나타났는지, 팔짱을 낀 채 우리들 뒤에 서 있던 자로가 수염을 쓸며 의(儀)땅에서 있었던 일화를 전해준다.  

  위나라와 진나라 사이 국경도시에서 그곳 지방관이 선생님 뵙기를 청했지.
  지금 저 수레에 계신 분이 공구이십니까?
  그렇소이다만.
  아, 저 분이 그 유명한 공자이시군요. 공자와 같은 분이 저희 마을을 찾아주시니 너무나 영광입니다.
  그 관리가 자기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선생님을 배웅한 뒤 뒤따르는 우리들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지.
  제가 살펴보니 공자께서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제자들이 낙담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제가 공자를 뵙고 그 말씀을 들어보니 아닙니다.
  천하에 도가 사라진 지 오래이니, 머지않아 하늘이 선생님을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팔일’편 24장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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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TV <공자> 중에서


 

4. 용과 이무기

 공자께서 돌아가신 후 나는 세상에 떠도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공자가 주나라 낙양에 갔을 때 노자를 만났다는 전설이다. 그 이야기만으로는 노자가 이담(李聃)인지, 초나라 현인 노래자(老萊子)인지, 혹은 제3의 은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후대에 그렇게 전해진 것인데, 이야기는 이러했다.
 
 공자께서 노자에게 예를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말하려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군자는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아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며 떠도는 다북쑥같은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오.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공자가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가 잘 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물고기가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잘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떨어뜨린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비로소 용과 같은 존재를 보았다. (<사기> ‘노자·한비열전’⑪)
 
 나는 이 이야기가 공자가 직접 한 말이라고 믿지 않는다. 만약 이러한 말이 공자 생전에 알려졌다면, 회수가의 그 언덕에서 내가 문도들에게 꼭 물어보았을 것이다. 노장의 무리들이 그들의 종주를 높이기 위해 선생님의 명성을 빌린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 속 공자의 말만큼은 선생님의 진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자께서 어찌 노자의 힐문의 본의를 헤아리지 못했겠는가. 그런 허무의 처세를 초월했기에 선생님은 불가능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전설의 이면에 숨어 있는 공자의 고뇌를 꿰뚫어 본 후대의 어떤 이가 “공구의 겸양한 독백”이라며 남긴 우화가 있다. 나, 이생은 그 우화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외람되지만 여기에 다시 기록한다.
 
 용은 맑은 물에서 먹으며 맑은 물에서 놀고
 이무기는 맑은 물에서 먹고 흐린 물에서 놀고
 물고기는 흐린 물에서 먹고 흐린 물에서 논다
 지금 나 구(丘)는 위로는 용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물고기와 같지 않으니
 아무래도 나는 이무기인가 보다. (<여씨춘추> 제19권 팔일편⑫) 
   
 汲汲魯中수(늙은이 수) 彌縫使其淳
 鳳鳥雖不至 禮樂暫得新
 洙泗輟微響 漂流逮狂秦
 終日馳車走 不見所問津
 
 노나라 노인 바쁘게 애써
 세상을 바로잡아 순박하게 만들려 했네
 봉황새 비록 오지 않았으나
 예악은 잠시 새로워졌다네
 수사 땅에서 심오한 말씀 끊어지고
 세월은 흘러 미친 시대에 이르렀건만
 하루종일 수레를 몰고 돌아다녀도
 나루터를 묻는 사람 보이질 않네
 (도연명, <술을 마시다 20> 중에서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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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원문 보기>

 

 

*<논어명장면>은 소설 형식을 취하다 보니 글쓴 이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논어를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글쓴 이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돕기 위해 원문을 글 말미에 소개한다. 소설 이상의 깊이 있는 논어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논어> 원문의 한글 번역은 <논어집주>(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편)와 <안티쿠스 클래식6-논어>(한필훈 옮김)를 나란히 싣는다. 각각 신구 번역문의 좋은 사례로 생각되어서이다. 표기는 집(논어집주)과 한(한필훈 논어)으로 한다. 이와 다른 해석을 실을 때는 별도로 출처를 밝힐 것이다.
    ***<논어>는 편명만 표시하고, 그 외의 문헌은 책명을 밝혔다.
 
① 問津
 <논어> 미자편 6장 ‘長沮桀溺우(밭갈 우)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에서 두 자를 꺼내 썼다. 공자가 길을 가다 자로를 시켜 은자들인 장저와 걸닉에게 나루터가 어디인지를 물었다는 내용으로, 이후 ‘나루터를 묻는다’는 표현은 진리, 이상을 추구하는 구도(求道)를 은유하게 되었다. 미자편 6장의 일화는 다음 편에 다룰 예정인데, 이 편은 그 전편격이다. 인용 이외의 내용은 필자의 상상에 의한 허구이다.
 
 ② 桃花源記倂詩
 동진의 시인 도연명이 쓴 글과 시로, 사람들이 전란이나 관리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는 일 없이 평화롭고 즐겁게 사는 이상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이치수 역주 <도연명 전집>) 무릉도원이라는 이상향은 이 작품에서 유래하였다. 무릉은 지금의 중국 호남성 상덕현 서쪽에 위치한 지명이다. 여기서는 이야기 전개상 조선에 있는 지방처럼 묘사하였다.
 
 ③ 헌문편 41장
 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집-자로가 석문에서 유숙하였었는데, 신문(문지기)이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하자, 자로가 “공씨에게서 왔소”라고 대답하니, 그는 “바로 불가능한 줄을 알면서도 하는 자 말인가.”하였다.
 한-어느날 자로가 성문 근처에서 묵게 되었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요?” “공씨 댁에서 오는 길입니다.” “아,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하는 사람 말이로군!”
 
④ 헌문편 42장
 子擊磬於衛 有荷궤(삼태기 궤)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旣而曰 鄙哉 경(돌소리경)경(")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려(옷벗고건널 려)淺則揭 子曰 果哉 未之難矣.
 집-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두들기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씨의 문앞을 지나가는 자가 듣고서 말하였다. “마음이 천하에 있구나. 경쇠를 두들김이여!”조금있다가 말하였다. “비루하다, 너무도 단단하구나! 나(자신)를 알아주지 못하면 그만두어야 할 것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과감하구나! 어려울 것이 없겠구나!”
 한-공자가 위나라에 머물 때였다. 어느 날 숙소에서 경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삼태기를 지고 대문 앞을 지나던 사람이 말하였다. “흠, 음악 속에 큰 포부가 담겨 있구나.”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공자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던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천박하구나, 저 고집쟁이.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않으면 그만둘 것이지. ‘물이깊으면 바지를 벗고 건너고,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넌다’는 말도 모른단 말인가?“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저 사람은 세상을 미련 없이 단념했구나.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어려울 게 없겠지.”
 *‘물이 깊으면 바지를 벗고 건너고…’운운은 <시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때에 맞춰 유연하게 처신한다’는 뜻이다.
 
 ⑤ 헌문편 34장
微生畝謂孔子曰 丘何爲是栖栖者與 無乃爲영(아첨할 영)호. 孔子曰 非敢爲영也 疾固也.
 집-미생무가 공자께 말하였다. “구는 어찌하여 이리도 연연해 하는가. 말재주를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감히말재주를 구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집불통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한-혼탁한 세상을 피해 숨어사는 은자 미생무가 공자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왜 그렇게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혹시 말재주를 부려 남의 환심을 사 보려는 것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고집불통을 미워할 뿐입니다.”
 
 ⑥ 공야장편 6장
 子曰 道不行 乘부(뗏목 부)浮于海(…)
 집-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내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한-공자가 말하였다. “이 세상에서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차라리 뗏목을 타고 저 바다로 나가고 싶구나.(…)
 * 이 말씀에 뒤이어 자로에게 한, ‘나를 따라나설 사람은 중유뿐이다’라는 말이 이어진다.
 
 ⑦ 양화편 5장
 公山弗擾以費畔召子欲往 子路不說曰 未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子曰 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집-공산불요가 비읍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니, 공자께서 가려고 하셨다.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이지, 하필이면 공산씨에게 가시려 하십니까?”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하릴 없이 하겠느냐? 나를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동쪽 주나라를 만들 것이다.”
 한-계씨의 가신인 공산불요가 반란을 일으킨 뒤 공자를 초빙하였다. 공자가 가려고 하자 자로가 못마땅해 했다. “정 가실 곳이 없으면 포기할 일이지, 하필이면 그에게 가려고 하십니까?”“부질 없이 나를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겠다.”



 ⑧ 미자편 8장
 逸民 伯夷叔齊虞仲夷逸朱張柳下惠少連.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叔齊與. 謂柳下惠少連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집-일민은 백이와 숙제와 우중과 이일과 주장과 류하혜와 소련이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자는 백이와 숙제이다.” 류하혜와 소련을 평하시기를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윤리에 맞으며 행살이 사려에 맞았으니, 이런 점일 뿐이다.”하셨다. 우중과 이일을 평하시기를 “숨어 살면서 말을 함부로 하였으나 몸은 깨끗함에 맞았고, 폐함(벼슬하지 않음)은 권도에 맞았다. 나는 이와 달라서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하셨다.
 한-학문과 덕행을 지니고도 세상을 피해 숨어 산 사람으로는 백이, 숙제, 우중, 이일, 주장, 류하혜, 소련이 있다. 공자가 이들에 대해 말하였다. “뜻을 굽히지 않고 몸을 더럽히지도 않은 사람은 백이와 숙제이다. 류하혜와 소련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지만, 말이 도리에 맞고 행동에 분별이 있었으니, 그들은 그 정도 수준이었다. 우중과 이일은 숨어 살면서 말을 마음대로 하였지만, 행실이 깨끗했고 세상을 등진 것도 시기와 방법이 적절했다. 그러나 나는 이들과 달라서,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다.”
 
 ⑨ 자한편 5장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집-공자께서 광땅에서 경계심을 품고 계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왕이 이미 별세하였으니, 문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장차 이 문을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는 사람(내 자신)이 이 문에 참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셨으니, 광땅 사람들이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한-공자 일행이 광 지방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를 양호로 오인한 그곳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와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이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공자가 말하였다. “문왕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세운 문화를 계승할 책임이 내게 있지 않느냐. 하늘이 그 문화를 없애 버리려 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할 여지도 없겠지만, 하늘의 뜻이 그렇지 않다면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⑩ 팔일편 24장
 儀封人 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집-의땅의 봉인이 뵙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군자가 이곳에 이르면 내 일찌기 만나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하였다. 종자(공자의 수행원)가 뵙게 해주자, (그가 뵙고)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공자께서) 벼슬을 잃음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천하에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한-공자 일행이 위나라 국경지방을 지나는데, 그 지방의 한 관리가 공자에게 만나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현인 군자가 이 지방에 오시면 제가꼭 만나뵈었습니다.” 제자들이 공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공자를 만나고 나온 그 관리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왜 선생님이 벼슬 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낙심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혼란스러운 지가 오래 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님을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으로 삼을 것입니다.”
 
 ⑪ <사기> 노자·한비열전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가 주나라 낙양에서 노자를 만난 장면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문헌·고증 학자들은 도교의 창시자로서 <도덕경>을 지었다는 노자는 공자보다 후대의 사람이거나, 실존인물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⑫ <여씨춘추>(정영호 해역) 제19권 팔일편
 龍食乎淸而游乎靑 이(이무기 이)食乎淸而游乎濁 魚食乎濁而游乎濁 今丘上不及龍 下不若魚 丘其이邪. 
 
 ⑬ 飮酒 連作(이치수 역주)
 도연명의 오언시 <음주>연작 20편 중 맨 마지막 시 10행 중에서 4행을 차용했다. 원시는 다음과 같다.
 羲農去我久 擧世少復眞
 汲汲魯中수(늙은이 수) 彌縫使其淳
 鳳鳥雖不至 禮樂暫得新
 洙泗輟微響 漂流逮狂秦
 詩書復何罪 一朝成灰塵
 區區諸老翁 爲事誠殷勤
 如何絶世下 六籍無一視
 終日馳車走 不見所問津
 若復不快飮 空負頭上巾
 但恨多謬誤 君當恕醉人.
 
 복희와 신농 시절 오래되어
 온 세상 참됨 되찾는 사람 적구나.
 노나라 노인 바쁘게 애써
 세상을 바로잡아 순박하게 만들려 했네.
 봉황새 비록 오직 않았으나
 예악은 잠시 새로워졌다네.
 수사(노나라 곡부를 가리킴)지방에서 심오한 말씀 끊어지고
 세월은 흘러 미친 진나라에 이르렀네.
 <시경>과 <서경>은 또 무슨 죄가 있기에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던가.
 부지런한 여러 노인들은
 참으로 정성스레 경전을 전수했다네.
 이찌하여 세상이 쇠망하여
 육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 하나도 없는가.
 하루종일 수레를 몰아 달리지만
 나루터를 묻는 사람 보이질 않는다.
 만약에 다시 통쾌하게 마시지 않으면
 머리 위의 두건을 헛되게 하는 것이리라.
 단지 잘못한 말 많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대는 마땅히 이 술 취한 사람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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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한쪽에 유리한 기사만, 불리하면 모르는 척

이석기 사건, 언론이 함구하는 한 가지
 
[분석] 한쪽에 유리한 기사만, 불리하면 모르는 척
 
육근성 | 2013-09-02 09:55: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사건과 국정원 촛불집회 관련 언론 보도가 자취를 감췄다. ‘이석기 사건’이 터지자마자 국정원 불법선거 의혹과 서울광장 촛불집회, 민주당의 장외투쟁 등에 대한 보도가 언론에서 사라졌다.

 

국정원 불법선거, 촛불집회 언론에서 사라졌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 진보성향 언론들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이석기 사건을 균형있게 다룰 뿐이다. KBS, MBC, 조중동 등은 내란음모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물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있다. TV조선, 채널A 등 종편들은 내란음모가 확실하다고 스스로 단정하고 온종일 특집편성을 통해 국정원의 ‘입’ 역할을 하느라 바쁘다.

 

시민 2만여 명이 서울역 광장에 모인 촛불집회, 김용판 전 서울청장 공판 소식 등은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이석기 사건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기사화한다. 촛불집회가 열렸던 지난 31일 MBC 뉴스데스크는 ‘내란음모 통진당 3명 구속’ ‘통진당 국정원 앞 집회’ ‘방통위 이석기, 국방자료는 왜?’ ‘내란음모 녹취록 확보 경로는?’ 등 네 꼭지를 할애했다.

 

 

9일 1일 방영된 KBS의 <뉴스9>은 다섯 꼭지를 쏟아내며 이석기 사건에 집중했다. ‘내란음모죄 관련자 줄 소환’ ‘10여 차례 감청영장 전격압수수색 지시’ ‘진보당 국정원 협조자 매수...국정원 터무니 없어’ ‘이석기 체포동의안 이번 주 국회 처리될 듯’ ‘장남감 총도 개조하면 위험천만’ 등의 보도를 통해 충실하게 국정원 입장을 대변했다.

 

 

국정원 ‘입’ 역할에 충실한 대형 언론들

 

조선일보는 연일 ‘이석기 사건’을 메인으로 다루며 하루 10건 정도의 관련기사를 올린다. ‘이석기 사건’을 위험천만한 내란음모인 것인 양 포장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충실하게 국정원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촛불집회와 관련해서는 제 입맛에 맞는 부분만 발췌해 보도한다. 1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도전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결연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민주당이 “종북세력과 맞설 것임”을 천명한 것이라고 반기며 “촛불집회의 동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조선과 비슷한 행태다. ‘내란음모 사건’ 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2일자에는 ‘촛불집회 고교생에 다가간 쌤들, 이석기 키즈 키운다’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청소년 시국선언에 참역하고 권은희 수사과장을 위로 방문해 빵을 전달했던 고교생들 단체에 통합진보당 관계자가 접근해 통진당 청년연합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있어 왔다며 통진당원에게 포섭돼 청년연합에서 활동하다 핵심 당원이 된 사례를 나열하기도 했다.

 

 

 

 

 

 

편파·정파 방송의 진수? 궁금하면 지금 종편을 보라

 

TV조선과 채널A 등 종편들은 이것이 바로 ‘편파·정파적 방송의 진수’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기로 작심한 듯하다. 뉴스, 대담, 토론 프로그램 거반을 할애해 온종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TV조선은 ‘국정원 당원 매수해 사찰, 통진당의 물타기’ ‘여, 통진당 사실상 녹취록 진위 자백한 셈’ 등의 보도를 통해 통진당 전체를 내란음모집단으로 단정하는 등 ‘자가발전’에 열을 올렸다. 국정원이 통진당 당원을 거액을 주고 매수했다는 통진당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통진당이 물타기하려는 것”이라는 국정원 입장을 열정적으로 대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채널A는 이석기 의원이 RO를 조직한 사람이고, RO아래 말단조직이 존재한다며 RO가 체제전복을 목적으로 한 조직화된 지하조직이라고 단정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조직화된 반국가 지하조직이라는 게 입증돼야 내란음모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의식한 기사다.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을 종편이 나서서 열심히 길을 닦아 주고 있다.

 

 

이들이 절대 기사화하지 않으려는 한 가지

 

KBS, MBC, 조중동, 종편 등 편파적인 매체들이 절대 언급하지 않고 기사화를 꺼려하는 한 가지가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데도 이들 매체들은 눈 감고 귀 막고 모르는 척이다. 왜 하필이면 국정원 개혁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직전에 3년간 내사해 온 내란음모 사건을 터뜨렸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국정원의 파워부서인 국내파트와 수사파트의 대폭축소 혹은 해체 요구가 빗발 치고 있는 때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또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불법대선개입과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촛불이 점차 커지는 시점이다.

 

왜 이때를 노린 걸까. 국가와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내란을 모의한 위험천만한 사건이라면서 대체 무슨 이유로 시간을 끈 걸까. 위험 수위가 높은 상황이라면 서둘러 진압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RO와 이 의원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직무유기를 했다거나, 통진당 움직임에서 내란의 위험성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다.

 

 

기사 쓰지 않고 정치 하느라 바쁜 언론들

 

국민은 두 가지 의혹을 갖고 있다. ▲이 의원과 통진당 간부들이 정말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등을 타격하고 총기로 무장해 내란을 일으키려 모의한 게 사실인지 여부와 ▲국정원이 위기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사건을 부풀려 정략적으로 이용한 게 아닌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전자에만 모든 기사를 집중시키고 후자에는 시선 한 번 주지 않는다. 한쪽에 유리한 부분만 부각시키고 불리할 수 있는 부분은 블라인드 처리한다면 어찌 언론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일부매체만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보도했을 뿐이다. 한겨레는 “내란음모 수사 탓에 국정원 개혁 물건너갈까 걱정”이라는 시민의 목소리를 기사화했고, 오마이뉴스는 ‘빗속 촛불집회’ 광경과 제10차 범국민대회를 상세히 다루며 특검 실시를 주장하는 촛불의 외침을 담았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공정한 보도를 하는 언론이 없다. 한쪽만 보고 들으라고 강요하는 매체들만 수두룩하다.

 

언론은 없는데 언론사 간판은 넘쳐나고, 기사는 없는데 기사처럼 각색된 거짓말만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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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21> 간첩사건 피해자의 호소

당신도 '이석기'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북한 체제 선전 활동 혐의 <민족21> 간첩사건 피해자의 호소

13.09.01 20:17l최종 업데이트 13.09.02 09:4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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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 압수수색 받은 이석기 의원 지난 8월 29일 오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의원실을 나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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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내란음모다. 총기 탈취, 기간시설 파괴, 인명 살상이란 말까지 나온다. 무시무시하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덧씌워진 혐의다. 가히 충격 그 자체다. 정국을 한순간에 마비시키고,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된 국민적 규탄 분위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진보적인 인사들조차도 섣불리 입을 못 열고 있다.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며 몸을 사린다. 벌써 민주당은 촛불 정국에서 한 발 빼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설마'라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번지고 있다. 그런데 웃긴다. '명색이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내란'이라는 어마어마한 짓을 음모했을까'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설마'가 아니다. '아무렴 국가기관이 근거도 없이 그런 주장을 할까'라는 점에서의 '설마'다. 여기에다 다시 덧붙는다. '그 사람, 종북이라는데', '걔네들, 주사파라는데', '진짜 그랬던 거 아냐…….'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2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아니, 지금도 재판이라는 형식으로 계속되는, 내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갉아먹고 있는 악몽이다.

2년 전 악몽의 데자뷰

2년 전인 2011년 7월의 어느 날, 신문지상을 뒤덮었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민족21> 간첩사건이다. "<민족21>의 편집주간과 편집국장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민족21>을 통해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이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요지다.

그때도 이렇게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들이닥친 국정원 수사관들이 우리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유는 '간첩 혐의'였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변명과 반박 한 번 하지 못하고 '간첩'이 되었다.

보수언론에서는 국정원에서 흘려주는 혐의 내용을 사실인양 보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민족21>은 간첩의 소굴로 변모했다. <조선일보>는 <민족21> 사무실 사진을 싣고, 친절한 도표까지 동원해 <민족21>을 '선군정치'의 홍보부대로 돌변시켰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황당하고 착잡했던 것은 주위의 반응이었다.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설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묘했다. '설마 <민족21>이 간첩 활동을 했겠어?'가 아니라 '설마 국정원이 근거도 없이 그러겠어?'가 주였다.

처음에는 225국의 지령을 받았다고 했다. 225국은 주로 간첩 남파, 요인 암살을 전담하는 북한 노동당 대외연락부의 핵심조직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그러다 다시 왕재산 조직의 지도를 받았다고도 했다. 왕재산 조직의 체계도 아래 <민족21>도 버젓이 올라가 있었다. 급기야는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았다는 말도 나왔다. 정찰총국은 북한의 국방위원회 직할 조직으로 천안함을 폭침한 곳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덧붙었다. 도대체 나의 상부조직이 어디인지 내가 다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런 보도들이 반복되는 와중에 발행인인 명진스님이 나를 급히 찾았다. 스님의 첫 마디가 이랬다. "진짜 아니야?" 발행인조차 의심할 수밖에 없을 만큼 국정원과 언론의 보도는 집요했다.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강변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님은 그제야 "그럼 결사적으로 싸워야지" 하셨다. 그리고는 바로 국정원의 주장을 요목조목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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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4일 <민족21> 발행인인 명진 스님이 서울 장충동 만해NGO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 수사를 비판했다.
ⓒ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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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아내조차 내게 "진짜 아닌 거 맞지?"라고 물었을 정도니 다른 이들은 말해서 무엇하랴. 당시 시민사회운동의 한 간부는 "이참에 털건 털고 가는 게 어떠냐"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안영민 편집주간의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고, <민족21>은 대대적인 혁신선언으로 살아남아야 하지 않냐는 충고였다.

국정원과 보수언론의 양공작전은 <민족21>에 엄청난 후과를 남겼다. 당장 <민족21>의 독자들부터 구독을 중단했다. 취재원들도 우리와의 만남을 꺼렸다. 인터뷰를 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피했다. 얼마 안 되는 광고수입도 종쳤다. 그 덕분에 <민족21>은 창간 이래 최악의 경영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경영난 속에 기자들과 직원들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나 역시 취재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민족21>은 현재까지도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 초기의 대대적인 마녀사냥 내용과 달리 국정원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 어디에서도 정찰총국 혹은 225국의 지령은 나오지 않았다. 내 휴대폰과 집 전화, 사무실 전화와 전자우편, 우편물 등 2007년부터 감청해온 모든 통신내용과 컴퓨터, USB 등 저장파일 어디에서도 지령과 보고의 흔적은 없었다.

국정원에 10차례 이상 출두했지만 그들의 시빗거리는 내가 쓴 책과 강연자료를 비롯한 몇몇 문서, 일본의 총련 간부와 사업협의를 위해 주고받은 전자우편에 불과했다. 결국 국정원과 검찰은 애초의 혐의가 대폭 축소된 내용으로 나를 기소했을 뿐이다.

더 웃긴 것은 <민족21> 편집국장이다. 나와 함께 간첩 혐의를 받았던 편집국장은 3~4차례 국정원 출두 후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민족21>을 세상과 단절시킨 정찰총국의 지령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 몸과 마음뿐이다.

다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되는가

그래서다. 나는 이석기 의원 사건 또한 이러한 경로를 밟을 게 뻔하다고 본다. 녹취록이다 뭐다 하지만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 태산을 울려 흔들게 한 것은 쥐 한 마리뿐이란 뜻)의 결과가 눈에 선하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내란음모혐의는 증거부족으로 은근 슬쩍 빠지고 결국 남는 것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 鼻懸鈴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의 한역)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태산명동'이라는 것을. 몇 달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이참에 국정원 댓글 사건도, 대선 부정의혹도 다 덮고, 나아가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도 짓눌러버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그런데 '태산명동'에 현혹된 세상은 훗날의 '서일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용머리만 보던 시선이 뱀꼬리까지는 닿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오직 용머리만 남겨둔다. 그러면서 똑같은 일이 터지면 다시 말한다. '설마'라고.

이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민족21>과 나를 두고 '설마'라고 했던 사람들은 오늘,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두고 다시 '설마'라고 의심한다. 어느 순간 국정원이 흘리고 보수언론이 받아 적는 외눈박이 '팩트'에 더 관심을 가진다. 정작 국정원이 대대적인 '마녀사냥'으로 자신들의 생존권 지키기에 나섰다는 진짜 팩트에는 눈을 돌린다. 이 정권이 대선 부정의혹 규탄 촛불시위를 불끄기 위해 총공세에 나섰다는 진짜 실체는 뒤로 제쳐둔다.

<민족21> 사건 때, 나는 기자들로부터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은 사실이 없냐는 질문공세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가. 혐의를 덧씌운 자들이 근거를 밝혀야 할 문제 아닌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수사기관에서는 이웃의 한 사람을 용의자라 붙들고는 "네가 살인을 안 했다는 것을 증명해봐"라고 다그친다. 이게 옳은 처사인가. 살인했다는 증거부터 먼저 명백히 밝히는 게 우선 아닌가.

이런 몰상식이 유독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만 적용된다. 내란음모라. 최소한 총기라도 몇 개 꺼내놓고, 그럴듯하게 만든 계획서라도 펼쳐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진보진영 내에서도 꽤 있다. 그 사람들의 생각을 탓할 마음은 없다. 또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편들 생각도 없다. 다만 충고하고 싶은 것은 감정이 앞서면 이성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이성이 흔들리는 순간 주객이 전도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이다. 우리의 이성은 오직 추악한 댓글로 여론을 호도하고, 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대대적인 역공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역사 이래 최대의 비이성적 집단을 향한 강력한 저항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당신도 '이석기'가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안영민 기자는 <민족21> 편집주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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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충돌 사고, 정말 '인재'인가?

[서리풀 논평] 시스템형 사고가 너무 많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02 오전 9:15:46

 

 

시스템형 사고가 너무 많다

지난 주말, 대구역에서 열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여행 계획을 짰던 많은 사람이 큰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도 별 인명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라지만, 대체로 또 다른 인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쪽 기차를 움직이게 한 여객 전무와 기관사가 무엇인가 크게 잘못한 것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잘못' '착각' '과실'과 같은 익숙한 말이 쏟아지고 있다.

인재라는 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결국은 사람이 저지른 일이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리라. 그러나 사람이 개입되었으니 '인재'다? 그러고 말기는 못내 찜찜하다.

코레일 노동조합이 밝힌 사정에 눈길이 더 가는 이유이다. 논란이 있다고 하니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재의 한 당사자인 여객 전무가 오랜 동안 현업을 떠나 있었다는 것은 노사가 모두 인정했다고 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그리고 그 경험과 전문성을 가볍게 여긴 것이 한 가지 중요한 사고 원인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이런 사고가 생겼을 리가 없다.

나아가 효율성만 따지는 노동의 조직 방식이 주범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동안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몰아붙인 노동의 원리를 생각하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재라기보다는 아마도 시스템으로 인한 재해, 즉 '시스템재(災)'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연합뉴스


최근 들어 효율성만 추구하는 노동의 동원과 조직 방식이 만든 재해는 더 잦아졌다(그런 의미에서 이야말로 진정한 '인재'다). 7월 26일 울산의 삼성정밀화학 공장에서 생긴 물탱크 사고도 그런 예다. 빈번한 사고 속에 벌써 헷갈리지만, 이 사고로 노동자 세 사람이 생명을 잃고 열두 사람이 다쳤다.

사고를 조사한 정부가 밝힌 직접적인 이유는 불량 너트를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최종 원인이지만 피상적 이유일 뿐이다. 심장과 폐가 멎었으니 사망에 이르렀다는 진단과 다를 바 없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근본적 이유를 따져야 옳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사고의 배경에는 원청-하청이라는 구조가 얽혀 있다. 실제 이 사고로 죽거나 다친 사람 대부분은 20대와 60~70대 건설 하청 업체 직원이었다.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두고 원청과 하청에 어떤 동기가 작용할지는 불을 보듯 환하다.

사고의 원인이라면 당연히 이 구조에 책임을 돌려야 한다. 나아가 이를 가능하게 하고 또 강요하는 더 심층에 있는 구조–극대화된 이윤 추구의 구조–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스템 재해로 짐작되는 사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3월에는 여수 대림산업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열일곱 명이 죽거나 다쳤다. 하청 업체가 공사를 맡았던 것은 울산의 사고와 꼭 같다.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한 작업을 하거나 안전 보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도 판박이처럼 닮았다.

또 5월에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질식 사고로 노동자 다섯 사람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협력 업체 직원이 공사 기한을 맞추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던 중 밀폐된 용광로 내부에서 질식해 숨진 것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패턴이 되풀이된다.

소규모 인명 사고는 제대로 헤아리기도 어렵다. 8월만 하더라도 창원의 주물공장, 군산의 주조공장, 영주의 OCI 머티리얼즈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자세한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으니, 인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시스템 오류는 짐작만 할 뿐이다.

공공 기관이 관리하는 공사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지난 7월 일어난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가 그렇다. 그 며칠 후 일어난 방화대교 공사장 붕괴도 서울시가 관리하던 공사였다. 예의 원청-하청이라는 건설 생산 체계가 같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인재 아닌 인재는 공장과 작업장에 한정되지 않는다.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로 고등학생 다섯 명이 숨진 것을 벌써 잊을 수는 없다. 전형적인 인재지만, 그 원인은 효율성을 최고로 치는 또 다른 시스템 탓으로 돌려야 정직하다.

학교는 돈을 아끼느라 허가받지 않은 사설 캠프 업체에 교육을 위탁했다. 이럴 때 업체는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아주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임시직을 고용하고 제대로 훈련조차 시키지 않은 채 학생 교육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사이 참 많은 사고를 경험했다. 구체적인 원인은 다양하고 때로 복잡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공연한 사고 분석(또는 '태도'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은 일관성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원인이다! 앞서 말한 대구역 기차 사고의 원인 분석도 그랬지만, 아주 예외적인 것을 빼고는 대부분 사고가 인재 때문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이 짝을 이루는 것도 늘 비슷하다. 그러니, 해결 방법과 대책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재라고 하는 것은 잘해야 동어반복이다. 불가항력을 빼고야 사람이 원인이 아닌 것이 무엇이 있을까. 기껏해야 "잘못한 것이 없어야 잘못되는 것이 없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원인을 인재로 정리하는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명확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렇다. 이른바 '인재론'은 뚜렷한 목적을 가진 원인 찾기인 것이다.

무엇보다, 인재라는 말은 비난 받을 대상자를 분명하게 가리킨다. 여객 전무든 현장 근로자든 관리 책임자든, 초점을 맞춘 비난은 관심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원인을 잊게 만든다. '하이라이트 효과'라고 해도 좋다.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든 비난은 학교 당국자와 무허가 업체에 쏟아졌다. 이런 비난은 흔히 법적 처벌까지 이어진다. 물론 잘못한 것이 맞고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다른 원인은 자연스럽게 관심을 벗어나기 쉽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구조적 원인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효과다. 울산의 삼성정밀화학 탱크 폭발 사건을 보자. 당장 삼성에게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사고가 난 며칠 후 공사를 맡은 원청업체인 삼성엔지니어링의 사장이 경질되었다(책임을 진 게 아니라 '잘렸다').

그리고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건희 회장이 '진노'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사장이 책임을 진 모양이 되었고, 최고 책임자는 사소한 사고에도 책임을 묻는 윤리 경영의 상징이 되었다. 아마도 사고의 원인이 되었을 (효율성과 이윤을 최고로 치는) 구조는 금방 묻히고 잊혔다.

 

사고의 구조를 숨기는 것은 결국 문제 해결의 개인화로 연결된다. 안전 불감증이란 말이 이를 대변한다. 조심하고 교육하고 개인 수칙을 지키는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개인의 행동 지침이 필요하지 않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인재와 불감증만 탓해서는 사고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 보호 장비와 장치는 부분적인 해결책을 넘기 어렵다. 또한,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람에게 사고가 집중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시스템과 구조를 주목하고 이를 교정해야 할 이유이다.

그렇다고 구조의 구조, 즉 가장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구조만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건설 산업이라면 원청-하청을 둘러싼 '중간' 수준의 구조도 당연히 개혁 대상이다. 근본인가 중간인가가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을 고려하고 또한 거기에 개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 가지 더. 앞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의료 분야에서도 점점 더 사고가 늘어난다. 건설이나 교통, 제조업처럼 대규모 사고보다는 개인 사고가 많다. 하지만 인재가 아니라 시스템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다.

개인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만으로, 그리고 윤리 의식과 주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적은 인력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면 사고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의료에서의 안전과 사고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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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음모'가 몰고 온 광풍의 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9/02 10:26
  • 수정일
    2013/09/02 10:2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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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터트린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석기 의원의 행위와 발언,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행태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것을 이용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 사건의 법리 적용 여부를 떠나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에는 상식보다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더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내란음모'라는 사건이 벌어졌으니, 이석기 의원 등이 속한 통합진보당과의 결별을 주문하는데, 그들을 만난 적도 그들의 사상조차 제대로 모르는 아이엠피터가 무슨 결별씩이나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적이 아니면 동지'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국을 보면 광풍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나옵니다. 지금 한국에 불어닥친 '광풍'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왜 '내란음모' 일까?'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등을 내란음모죄를 적용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33년 동안 전혀 나오지 않았던 내란음모죄라는 형법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석기 의원 등이 참석한 RO라는 지난 5월 모임의 녹취록이나 그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살펴봐도 국가보안법 이상의 법리 적용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국정원은 '내란음모죄'를 들고 나왔을까요?

 

 

 


진보,좌파 세력이라고 불리는 집단 속에는 무수히 많은 사상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흔히 참여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부르지만, 그 속에서 각기 다른 집단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다양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국정원의 내란음모 적용으로 진보,좌파 세력은 이제 모두가 종북세력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국정원이 발표한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진보,좌파는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는 세력이 됐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촛불집회,국정원 개혁조차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종북세력의 움직임으로 바뀌었습니다.

국정원의 '내란음모죄' 적용은 단순히 어떤 법리적용이 아니라, 그동안 각기 나뉘어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사건에만 모였던 진보 세력을 똑같은 색깔로 덧칠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보수 아니면 진보에서 보수 아니면 모두가 종북세력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 일타 오피, 모든 것은 종북때문이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적용 사건이 터지자, 보수 언론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조중동의 모든 신문들이 1면과 특집면을 통해 이석기 의원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여기에 살과 뼈를 붙여 판타지 무협 소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이석기 의원이 '민혁당' 사건으로 형기를 절반도 안 살고 특사로 나왔으며,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습니다. 이석기 의원은 2002년 민혁당 사건으로 징역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항소심을 통해 징역 2년6월로 감형됐습니다. 2003년 이석기 의원은 특별,사면 대상자로 신청을 했으나 수형기간이 3분1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제외됐습니다. 이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이석기 의원은 가석방됩니다. 당시 이석기 의원의 총 구속기간은 1년 3개월이었습니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도피 기간의 절반밖에 안 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2년 6개월 선고와 비교하면 큰 문제도 없었고, 참여정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이석기라는 사람을 특별 사면 대상자로 언급했던 기억이 없다고 할 만큼, 참여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아닙니다.

보수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현재 대한민국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석기 의원과 참여정부의 연관성을 억지로 만들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민주당 또한 이런 간첩들과 연계하여 동조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권은희 과장에게 장미꽃을 준 청소년들에게 이석기 의원 세력이 접근했었고, 이는 '이석기 키즈'를 만들기 위한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정치적인 색깔을 가진 집단이 청소년들에게 접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정치색이 싫어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무슨 간첩의 활동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동아일보가 노린 것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고교생들을 간첩에 노출된 아이로 만들어 촛불집회 참석 그 자체가 간첩이 득실대는 위험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의도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마 학교의 교장선생이 간첩이 오는 촛불집회 참석하면 정학,퇴학을 내리겠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거 간첩단 사건에서 나오는 수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묵비권'은 강제적인 고문에 의한 자백의 강요를 방지하고 피고자,피고인의 인권을 옹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간첩들의 수법이고, 이 때문에 그들이 간첩이라고 볼 수 있다는 소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과거 조작했던 사건들은 대부분,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고, 이런 자백은 모두들 법정에서 채택돼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을 살게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법적인 제재를 받거나 불리한 추정, 선고의 불이익을 받은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사가 그런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간첩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 진보를 버려야 살 수 있는 나라'

아이엠피터가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을 보면서 땅을 치고 분노하는 이유는 모든 싸움에서 승자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정국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시작된 촛불집회는 벌써부터 힘을 잃고 있습니다. 국정원 개혁은 이제 물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부정선거는 말도 못 나올 지경입니다.

국정원이 터트린 '내란음모' 사건 한 방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쳐도 공안정국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모든 언론은 '내란음모' 사건만 다루고 있으며, 이는 지방선거까지 계속될 분위기입니다.

공안정국으로 변했지만, 민주당은 그것을 헤쳐나갈 힘이 없습니다. 오로지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지 않도록 죽창을 피해 '나는 아니다'만 외치고 있습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은 박정희가 유신정권을 영구히 하기 위해 반유신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자행한 공작이었습니다. 국민투표를 이용해 유신정권의 명분을 찾은 박정희는 1975년 2월 15일 핵심인사를 제외한 일부 관련자들을 석방했습니다.

박정희는 1975년 2월 21일 문화공보부를 연두순시한 자리에서 최근 석방된 자들은 긴급조치가 아니더라도 국가보안법으로 극형에 처할 수 있는 자들인데도“이들이 형무소를 나올 때 마치 개선장군처럼 만세를 부르고” 나왔다면서“민청학련 사건은 이들(인혁당)이 뒤에서 조종한 것이 명백한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이를 부인하고 오히려 이들을 동지니 애국인사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도 법에 안걸리는가, 법무부와 중앙정보부는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냐”며 매우 격앙된 어조로 관계자들을 질책했습니다. (아마 비슷한 얘기를 박근혜 대통령이 앞으로 할 것입니다.)

아이엠피터는 어떤 간첩사건이든 그 내면에는 단순한 접촉이나 찬양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사형이나 내란음모,변란으로 법의 처벌을 받을 정도인가를 묻는다면 악법이 아닌 이상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이석기 의원 등이 수사를 받아야 할 사안은 맞지만, 그 처벌 수위가 과연 정상일까?)
 

 

 

 


“유신체제 반대하면 붉은 마수 밀려온다"라는 식으로 이분법된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한국전쟁 당시, 좌익이라면 무조건 죽창에 찔려 죽어도 괜찮다는 광란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으며, 이런 비정상적인 모습을 경계하며,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광풍(狂風)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 광풍 속에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인권이라는 말은 꺼낼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종북세력이냐 아니냐만 따질 뿐입니다. 아이엠피터가 원한 것은 이런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그 광풍 속에서 참담한 칼바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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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집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집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우리 2013. 09. 01
조회수 166추천수 0
 

2009 유해동물 지정 뒤 먹이주기 금지로 개쳇수 관리, 실태조사 안해 증감 몰라

체감으로 감소 느낄 뿐…행사 때 방사와 높은 번식률이 폭발적 증가 불러

 

pi.jpg » 지난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든 비둘기 떼의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까치랑 참새는 가까이 와서 (떨어진 음식을) 먹던데 비둘기는 거의 못 봤어요.”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낙산공원의 낙산매점 주인 이아무개(54)씨가 가게 밖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가게에선 비둘기 모이를 팔지 않는다.

 

같은 날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매점에서도 비둘기 모이를 팔지 않았다. 청계천변 조류상가는 비둘기 모이를 팔고 있었지만 마술용 흰 비둘기를 키우는 마술사들이 주 소비자다.

 

거리의 비둘기에게 줄 모이를 사고파는 사람도, 심지어 비둘기도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떼지어 다니던 비둘기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몸길이 31~34㎝. 몸에 비해 머리가 작고 목은 가늘다. 부리는 굵으면서 짧고 부드럽다. 짧은 다리엔 총 4개의 붉은 발가락이 있다. 3개는 앞으로, 1개는 뒤로 나 있다. 발톱은 짧고 튼튼해 나무나 땅 위에서 생활하기에 알맞다. 깃은 부드러우나 빠지기 쉽고 깃의 빛깔은 기본적으로 어두운 회색 바탕이다. 날개에 두 줄의 검은 띠가 있으나 검은색, 회색, 갈색, 흰색 등 깃털 색의 변이가 심하다. 목 부분은 초록색과 보라색 광택이 나며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인다.
 

비둘기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고 ‘닭둘기’라고 비하하는 이 새의 정식 이름은 집비둘기(Columba livia, 일명 ‘납빛 비둘기’). 조류도감에서 소개하듯 적고 나니 흔히 보던 비둘기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640px-Rock_pigeons_on_cliffs.jpg » 비둘기의 야생종은 절벽에 살았다. 도시로 왔다가 다시 야생화한 비둘기들이 절벽에 자리 잡았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비둘기는 인간의 요청으로 인간 옆에 살기 시작했다. 1만년 전 유럽에서 비둘기의 조상 격인 바위비둘기를 사육했다. 이 비둘기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면서 지금처럼 도시에 사는 야생 비둘기가 됐다.

 

평화와 희망의 상징인 비둘기는 국내에서 1960년대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 동원됐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각각 3000마리 방사했고 한강에 비둘기집을 지어주고 살게 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대통령배 고교야구 개막식, 한민족 체전 등 비둘기를 날려주는 행사가 모두 90차례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전시행정의 결과 비둘기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둘기의 생태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과다 증식한 결과였다. 집비둘기는 다른 비둘기종에 비해 수컷의 정소가 크기 때문에 1회 사정당 더 많은 수의 정자를 배출해 번식성공률이 높다.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포식자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못한 비둘기는 짝을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유전적 다양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비둘기의 생김도 다양하다.

평균 2개의 알을 낳는 비둘기의 포란 기간은 20일 정도다. 포란 17일이 지나면 암수 모두 젖(crop milk)이 나와 새끼에게 먹이는데 젖이 새끼의 면역력을 높여준다.

 

한달이면 둥지를 떠나는 새끼는 생후 7주면 다른 성체와 어울릴 만큼 다 자란다. 선천적으로 비둘기는 뛰어난 번식력과 적응력을 타고났다.

비둘기는 한 둥지에서 오래 머물기를 즐긴다. 동굴이나 동굴처럼 어두운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건물 창문 틈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깔고 둥지를 만든다.

 

창문과 에어컨 실외기 사이, 다락의 바닥을 좋아한다. 비둘기의 일상은 먹이를 먹고 건물의 난간같이 공기가 잘 통하고 너른 공간에서 쉬는 것이다.
 

04424500_P_0.jpg » 비둘기가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가시 철망을 설치한 모습.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사람에 대한 높은 친밀감과 서식지가 인간과 겹친다는 점이 비둘기에게는 불운의 시작이다. 정부는 비둘기를 2009년 6월1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고시했다. 배설물이 건물을 부식시키고 곡물을 훔쳐 먹는 등 도시경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관리지침이 지자체에 내려졌고 전국 공원에 있던 비둘기집이 하나둘씩 철거됐다. 퇴치제 이용, 그물 설치, 둥지와 알 제거, 포획과 살상 등이 가능해졌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쉴 곳과 먹이가 없어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의 생태를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다고 비판했다.
 

조류퇴치제 제조 및 판매 회사인 ㈜이지플렉스 황창영(45) 관리이사는 건물 옥상이나 주택가, 공공시설같이 사람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조류퇴치 제품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고 말했다. 황 이사에 따르면, 요즘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은 냄새에 둔감해져 과수용 조류퇴치제인 스프레이(메틸안트라닐레이트: 포도에서 추출한 식물성 물질)만으로 퇴치하기 어렵다.

 

껌의 기초원료를 첨가해 만든 젤형 퇴치제를 주로 쓰는데, 친환경적이기는 하나 끈적이는 성분 때문에 조류 깃털에 달라붙어 새에게 불쾌감을 주고 비행 능력을 떨어뜨린다. 이밖에도 비둘기가 앉지 못하게 건물 벽에 그물을 치거나 버드스파이크(뾰족한 침), 초음파 및 음향 퇴치기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종로 사거리의 한 건물 턱에 비둘기들이 모여 아래에 있는 건물 출입문이나 주변 노점상들에게 배설물을 떨어뜨린다 해서 건물 턱 바닥에 제품을 설치해준 적이 있어요. 서울역 대합실에서도 요청이 들어와요. 그런데 그렇게 사람 다니는 바닥까지 끈적끈적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비둘기가 그렇게 싫으면 그냥 문 닫고 사는 수밖에….”
 


강재훈-효창공원 비둘기s.jpg » 먹이 주기 규제의 효과일까, 대도시의 비둘기가 현저히 줄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비둘기 떼.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그 후 4년, 비둘기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환경부와 지자체에서는 수가 줄었을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실태조사는 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2010년부터 각 지자체에 매년 1월31일까지 개체수 조사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들어온 것은 2009년 서울시 자료가 유일하다.
 

환경부 자연보전국 자원생태과 담당자가 말했다. “안 들어오더라고요. 새니까 밀도조사를 해야 하는데 조사인원이 없는지 조사를 따로 안 하나봐요. 사실 시·군·구 단위에는 비둘기가 많이 없어요. 개량종이라 대도시에서만 사는데 2009년 이후 딱히 조사를 한 적이 없죠.”
 

2009년 3~4월에 걸쳐 조사요원들이 눈으로 확인해 정리한 서울시의 ‘집비둘기 서식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에 서식하는 비둘기는 총 3만5575마리, 자치구당 평균 1423마리였다. 예상보다 수가 적었다. 밀도조사 결과 1㎢당 98마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공원(35), 교각(19), 주택·단지(16), 상가·빌딩(15), 하천(6), 학교(6), 사찰(1) 순서였다. 조사 결과 총평에는 개체수 조절보다 집단 서식지 관리가 중요하다고 적혀 있다.

 

pi2.jpg » <한겨레> 2013년 8월31일치 15면

“동네 사람들이 똥 싸놓는다고 싫어하는데, 다리 하나 없는 비둘기가 불쌍해서. 난 동물 애호가야.”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아무개(74)씨가 집 앞 골목길에서 도정하지 않은 밀 한 주먹을 바닥에 뿌리며 말했다. 옆 집 지붕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 3마리가 날아들자 밀은 금세 사라졌다. 한씨 부부는 하루에 한두번씩 3마리의 비둘기 먹이를 1년째 챙기고 있다.
 

인간이 비둘기와 도시에서 공존하며 비둘기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먹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먹이를 주는 것은 지역 내에서 개체수를 늘리기 때문에 나중에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죽는 비둘기 수만 늘린다. 결국 비둘기를 학대하는 행동이다.

 

스위스 바젤의 먹이조절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먹이주지 말기 캠페인 결과 굶주린 비둘기 사이에 먹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번식성공률이 감소했다. 1988~1992년에 걸쳐 바젤시 전체 비둘기 수는 2만마리에서 1만마리로 줄었다. 비둘기 피해가 줄자 조류퇴치 비용도 감소했다.

환경부는 유해야생동물 지정 5년째인 2014년에 전국의 비둘기 개체수를 확인하는 용역조사를 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비둘기와의 공존에 성공했을까.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한데, 혹시 공원, 광장, 거리에서 비둘기 먹이 주는 것을 금지하자 먹을 것이 없어진 비둘기들이 주택가와 상가로 몰려와 더욱 사람에게 의존적으로 변한 건 아닐까?

 

조류를 전공하는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최유성 박사후 연구원에게 비둘기가 예전만큼 안 보인다고 이유를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어느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생명이 유지되려면 번식을 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안전한 장소와 먹이가 필요하잖아요. 어쩌면 먹이가 많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고, 아예 개체수가 줄었을 수도 있겠네요.” 비둘기는 정말 줄었을까?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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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박정희, 그는 ‘원조종북’ 이였다

 
 
박정희, 민주주의와 양심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이유
 
耽讀 | 등록:2013-09-01 08:49:25 | 최종:2013-09-01 09:11: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합격시킨 8개 교과서 중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5·16 군사반란에 대한 서술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오마이뉴스> '한일협정·쿠데타 미화… 한국사 교과서 논란'기사 참조.

보수우익들과 딸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에서 구원해준 위대한 구국의 아버지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 '5.16군사쿠데타'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당시 나라가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남북 간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며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다. 그때는 단순히 박 대통령이 혼자 생각이었지만, 이제 버젓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박정희 미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박정희는 공산주의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5.16군사반란은 구국의 혁명일까? 그 당시로 돌아가면 그렇지 않다. 역사교과서를 기술하려면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 박정희는 해방정국에서 대한민국 전복 '반란기도죄'로 1심서 무기징역, 2심서 징역 15년에 형집행정지를 받은 '빨갱이'였다.

박 대통령 새누리당 비대위원 시절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바로 그 국회의원들이 30년만에 부활된 '내란예비음모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다. <조중동>은 이미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죄'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빨갱이였던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도 두 번의 '쿠데타'로.

그럼 박정희가 왜 빨갱이였는지 보자. 이는 단순한 비난과 박근혜 대통령을 모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부가 판결한 것이다. 빨갱이가 아닌데도 사법부가 박정희를 빨갱이로 만들었다면, 제2인혁당과 김대중 내란음모처럼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을 받아내면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박정희 무죄판결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는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1948년 11월 11일 박정희는 체포된다. 당시 그는 육군 소령, 보직은 육사 1중대장이었다. 당시 군은 한 달 전 10월 14일 발생한 '여순사건' 이후 좌익분자를 색출했는데 박정희가 연루된 것이다. 남로당 군 총책인 이재복을 수사하다가 박정희가 남로당 당원임을 알았다. 이재복은 박정희 형인 상희씨 친구였다. 박정희는 이재복에게 포섭됐다.-2012.06.14 <진실의 길> '좌익' 박정희 군사재판 '판결문' 보셨나요? 참조

<진실의 길> 해당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숙군(肅軍) 당시 실무책임자로 조사과정에서 박정희가 쓴 '자술서'를 직접 읽어본 김안일 특무과장은 "박정희는 '대구 10.1사건'으로 형 박상희가 우익에 피살되자 그에 대한 복수심과 형 친구 이재복의 권유로 남로당에 가입한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춘천 8연대 시절 박정희의 직속상사였던 김점곤 장군(평화연구원장)도 "박정희가 체포된 후 그의 자술서를 봤더니 이재복을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었다"고 97년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

박정희는 1946년 '춘천8연대'에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경비중대장을 지냈고,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김점곤 평화연구원장은 정운현씨와 인터뷰에서 박정희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춘천 시절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이 춘천까지 찾아와서 박정희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 때 박정희는 나에게 이재복을 '숙부'라고 소개했습니다. 박정희가 체포된 후 그의 자술서를 봤더니 이재복을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더군요."-2004.08.11 <오마이뉴스> "형님 친구 꾐에 빠져 남로당 가입"

<오마이뉴스>는 김 원장은 "남로당에서 박정희에게 군 총책을 맡길 때 이미 그는 당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정희는 빈농 출신에다 형의 죽음 때문에 원한이 있었고, 특히 사범학교 때 조선공산당사건을 접했으며, 또 군관학교 수석 졸업 등 이른바 '최고의 성분'을 가지고 있어 남로당 측에서 탐낼만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박정희는 자신이 남로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박정희와 관계했던 사람들 증언은 그가 남로당원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박정희는 1949년 1심에서 국방경비법 제18조, 제33조 위반으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심에서는 징역 10년으로 감형받았다, 더구나 형집행정지까지 받았다. 당시 정국에서 육사 중대장이 남로당에 연루됐는 데도 2심에서 형집행정지라는 '특별대우'를 받은 이유는, <진실의 길>은 해당 기사에서 "당시 재판에 관계했던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가 수사과정에서 적극 '협조'한 공로를 군 지휘부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그가 적극 협조한 것은 무엇일까? 동료들을 판 것이다.

하지만 '빨갱이'란 주홍글씨가 박정희에게도 두고두고 따라 붙었는데 1961년 군사반란으로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남로당 전력은 미국과 한국내 보수세력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안겨주었다. 박정희와 육사 동기생인 정강 장군은 1960년대 후반 청와대 사회·언론 담당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김종신씨에게 "5.16 쿠데타가 일어난 아침 주동자가 박정희 소장이라는 말을 듣고 나라가 뒤엎어질 줄만 알았다. 나는 그와 동기생이기 때문에 그의 전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위험한 인물로 봐 왔다"고 말했다(위 <오마이뉴스>기사 참조)

그리고 "평생 전 같은 군인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군복을 벗고 나선 제5대 대통령 선거( 1963년 10월 15일)를 이틀 앞둔 '민정당'(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이 아님)윤보선 후보측은 박정희 사상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동아일보>는 13일 호외까지 발행한다.

<동아일보> 호외에는 '민정당 여·순사건 자료를 공개', '당시의 두 신문 보도 제시라는 통단 제목에 '49년 2월13일 군법회의서 박정희씨에게 무기 언도 심판관은 김완용 중령 등 7명'라는 제목 설명이 실렸다.

"민정당은 13일 상오 박정희 후보가 '여순반란사건 이래 진행된 숙군 당시 1949년 2월 13일 군법회의에서 김학림, 조병건, 배명종 등과 같이 무기징역형을 언도받았다'는 요지의 1949년 2월 17일 경향신문기사와 '서울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관 김완룡 중령 이하 6명, 검찰관 이지형 중령 이하 1명이 참석한 가운데 심리한 결과 박정희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요지의 1949년 2월 18일 자 서울신문 기사를 증거물로 발표했다."

박정희는 누구인가? 일제식민지때는 '황군장교'였고, 1948년 여순반란 사건처럼 좌익이 한국사회를 지배하자 남로당에 가입했지만, 숙군 대상에 올라 처형 당할 처지가 되자 동료들을 밀고했다. 당연히 그는 자기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1961년 5월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18년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1972년에는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긴급조치를 난발해 말하는 자유를 빼앗았다. 그는 지독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지향한 사람이다.

우리가 박정희를 지지할 수 있고, 노무현을 지지할 수 있다. 김대중을 지지할 수 있고, 이명박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박정희든,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국을 팔고, 사상을 팔고, 동료를 판다면 비판해야 한다. 이런 것은 감추고, 잘한 것만 들추어내 미화한다면 민주주의와 정의에 위배된다.

박정희는 분명 황군장교로 조국을 팔았고, 남로당원으로서 동료를 팔았다. 또 권력을 잡기 위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가 아무리 우리 먹을거리를 해결해주었다고 할지라도, 민주주의와 양심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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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건조한 인공지능전투함

북이 건조한 인공지능전투함
 
한호석의 개벽예감 <7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9/01 [09:43]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지도하면서 군지휘관들과 수행간부들에게 지침을 주었다. 뒤쪽에 신형전투함 선체 일부가 보이고, 오른쪽에 천막조립대가 보인다. © 한호석 소장 제공


신형전투함의 특이한 이층포탑

북이 개발하는 세계 정상급 성능의 각종 첨단무기를 볼 때마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이 놀라고 있다. 이것은 과장어법이 아니다. 2012년 4월 15일 인민군군사행진으로부터 2013년 7월 27일 인민군군사행진에 이르기까지 1년 3개월 동안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은 북의 각종 첨단무기들과 첨단군사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놀랐다. 이를테면, 지구관측위성 광명성-3호와 함께 지구궤도 위에 올라선 북의 군사정찰위성이 그러하였고, 전 세계에서 오직 세 나라만 실전배치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이 그러하였고, 세계 정상급 첨단전차 선군-915가 그러하였고, 초정밀타격능력을 시위한 무인타격기가 그러하였고, ‘불벼락’의 대명사로 알려진 300mm 신형방사포가 그러하였고, S-400급 최첨단요격미사일체계가 그러하였고, 핵배낭으로 무장한 세계 유일의 특전병대오가 그러하였다.

그런데 북이 아직 세상에 보여주지 않은 것은 공군력과 해군력이다. 인민군 항공군과 해군이 지상에서 펼쳐지는 군사행진에 첨단무기를 참가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공군력과 해군력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미국과 정면으로 대치한 북은 자기의 공군력과 해군력을 공개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자체 기술로 제작한 것을 보면 스텔스전투기나 전략잠수함도 능히 자체 기술로 개발하여 실전배치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하늘과 바다를 누비는 그런 첨단무기들은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 8월 25일 <로동신문>에 실린 보도기사와 현장사진이 북의 군사과학기술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또 다시 입증해주었다. 현대군사과학기술정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보도기사와 현장사진이 평범한 것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전혀 그런 게 아니다.

주목할 점은, 북의 군대와 인민들에게 8월 25일이 매우 중요한 날이라는 사실이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북에서는 8월 25일을 선군절로 지킨다. 1960년 8월 25일 근위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의 표현을 빌리면, “선군혁명령도의 첫 자욱을 새긴” 날이 바로 선군절의 기원이다. 특히 올해는 선군절 63주년을 맞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하여 “중대한 군사문제”를 토의결정하였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담화 ‘김정일 동지의 위대한 선군혁명사상과 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자’가 발표되었다. 북이 선군절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북에서 그처럼 중시하는 선군절에 북의 언론매체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군사부문 현지지도를 일제히 보도하였으니, 그 보도야말로 선군절에 즈음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특별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부에 실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새로 건조한 전투함선의 기동훈련을 지도하시였다’는 제목의 기사와 보도사진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직접 지도하는 현장을 촬영한 <사진 1>이다. 그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알루미늄파이프조립대가 세워져 있고, 철사 여러 가닥이 그 조립대를 지탱해주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누가 봐도 그것은 천막조립대인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지도하는 현장에 천막이 설치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긴 시간 동안 현장에 머물면서 각별히 지도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천막이라면 당연히 햇빛을 가리는 비닐 또는 천이 조립대 상부에 펼쳐져 있어야 하는데, 사진에는 천막조립대만 보인다. 천막을 걷어놓고 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왜 천막을 걷어놓고 사진을 촬영하였을까?

그 까닭은 천막을 원상대로 설치해놓고 사진을 촬영하면 계류장에 정박된 신형전투함이 천막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천막을 걷어놓고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천막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촬영하면, 신형전투함의 전모가 사진에 담기게 되므로 선체 일부만 공개하려는 의도에서 그처럼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선체 일부만 보이는 그 신형전투함은 어떤 전투함일까? 보도사진에서는 신형전투함 갑판에 설치된 포탑만 보인다. 일반적으로 전투함 갑판에 설치된 그런 종류의 무기체계를 근접방어무기체계(close-in defense weapon system)라 부르는데, 그것의 작전임무는 외부방공망을 뚫고 들어와 낮은 고도로 접근하는 전투기, 공격헬기, 순항미사일, 유도폭탄 등을 마지막 단계에서 근접 요격하는 것이다. 항공모함을 비롯한 거의 모든 수상전투함들에 근접방어무기체계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북의 신형전투함에 설치된 근접방어무기체계는 2문의 자동고사포를 위아래에 각각 1문씩 장착한 이층포탑이다. 보도사진을 보면, 이층포탑 위아래에 각각 장착된 2문의 자동고사포는 포신길이가 서로 다른데, 위쪽 자동고사포의 포신은 조금 짧고, 아래쪽 자동고사포의 포신은 조금 더 길다.

이층포탑 아래쪽에 장착된 자동고사포는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에 전시된 1991년식 30mm 6렬(six-barreled) 자동고사포다. 2013년 6월 초 내가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을 참관할 때 직접 목격한 그 자동고사포의 해설판에는 속사능력이 분당 5,000발이고, 사거리는 4km라고 쓰여 있었다. 이층포탑 위쪽에 장착된 또 다른 자동고사포는 1991년식 30mm 자동고사포의 성능을 향상시킨 개량형 30mm 자동고사포로 보이는데, 외형이 러시아 해군 전투함에 설치된 자동고사포 AK-630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 AK-630의 분당 속사능력은 10,000발이고, 사거리는 5km이므로, 북의 신형전투함에 설치된 개량형 30mm 자동고사포의 성능도 그와 같을 것이다.

자동고사포 2문이 위아래로 있는 특이한 이층포탑을 설치한 전투함은 전 세계에서 북이 이번에 새로 건조한 신형전투함뿐이다. 전투함에 자동고사포 2문을 설치하는 경우, 다른 나라 전투함에서 그러한 것처럼 횡렬 또는 종렬로 나란히 2문을 설치한 일층포탑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북은 왜 설계와 제작이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이층포탑을 만들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부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이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각종 대상물들에 대한 타격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층포탑에 장착된 2문의 자동고사포가 180도 다른 방향으로 포신을 서로 돌려 사격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래쪽 고사포는 동쪽으로 사격하고 위쪽 고사포는 서쪽으로 사격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전투함에 설치된 포탑에는 방탄철갑을 씌워놓은 것이 일반적인데, 특이하게도 북의 신형전투함에 설치된 이층포탑에는 중간부분에 불투명한 판유리처럼 보이는 몇 개의 평면판이 둘러쳐져 있다. 왜 그런 불투명한 평면판을 포탑측면에 죽 둘러놓았을까? 그것은 평면배열안테나(flat panel array antenna)다. 포탑측면에 평면배열안테나를 배열한 목적은 타격목표를 찾아내는 식별장치와 고사포를 쏘는 사격통제장치를 자동적으로 연동시키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된다.

날아오는 대함미사일의 적외선유도장치를 교란하기 위해 발사하는 섬광탄(flare) 3기가 이층포탑 아래쪽에 장착된 것이 보인다. 그 섬광탄을 쏘면, 대함미사일이 열을 추적하며 날아오다가 섬광탄이 뿜어내는 강한 열에 의해 교란되면서 방향을 잃는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의 무장력은 사진에 나타난 30mm 자동고사포 2문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신형전투함선을 건조할 때 30mm 고사포 2문만 설치하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 비록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신형전투함에 대함미사일도 설치된 것이 확실하다. 다시 말해서, 신형전투함 앞쪽에는 30mm 고사포 이층포탑이 설치되었고, 뒤쪽에는 대함미사일 발사대가 설치된 것이다. 사진에 실물이 나타나 있지 않아서, 그 대함미사일의 성능을 정확하게 지적하기 힘들지만, 그 신형전투함과 같은 급의 전투함에 탑재하는 대함미사일은 사거리가 100∼120km에 이르는 대함미사일이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에는 그런 대함미사일 2기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각각 사격할 수 있는 30mm 6렬 자동고사포 2문과 대함미사일 2기로 무장한 전투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현장에서 지도하면서 “함선의 높은 기동력과 타격력을 보시고 대만족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신형전투함은 위에서 언급한 2종의 무장장비를 갖춘 것만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항해하는 고속기동력도 지닌 것이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항해할 수 있을까? 그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북의 보도기사에 나오지 않아서 정확하게 지적하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신형전투함의 경우 시속 60km 이상으로 항해하여야 고속기동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종합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시속 60km 이상 매우 빠른 속도로 항해하는 신형전투함이 공중과 해상에 출현한 여러 개의 타격목표를 동시에 추적, 식별하고, 대함미사일과 30mm 자동고사포를 동시에 발사하여 격파하는 실탄사격기동훈련에 대해 큰 만족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북은 왜 소형전투함을 건조하였을까?

이층포탑 아래쪽에 일부만 보이는 선체는 높이가 낮고, 길이도 짧아 보이는데, 이것은 신형전투함이 소형함선임을 말해준다. 그처럼 크기가 작은 소형함선을 왜 만들었을까?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부 보도기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보도기사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대와 해당부문에서 최첨단군사과학기술성과들이 도입된 전투함선을 자체의 힘과 기술로 훌륭히 건조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고 서술되었는데, 첨단수준이 아니라 최첨단수준이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첨단군사과학기술로 건조한 소형함선은 사람이 전혀 타지 않는 무인선밖에 없다.

사람이 전혀 타지 않는 소형비행기를 무인기(unmanned aerial vehicle/UAV)라 부르고, 사람이 전혀 타지 않는 소형선박을 무인선(unmanned surface vehicle/USV)이라 부른다.

오늘날 무인선을 건조하는 최첨단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 이스라엘, 스웨덴, 이탈리아인데, 그 가운데서도 미국이 무인선건조부문에서 단연 앞서간다. 미국이 무인선건조부문에서 앞서간다는 말은 미국이 다른 무인선건조국들보다 한 발 앞서서 무장력을 갖춘 무인선 곧 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는 뜻이다. 미국 이외에 다른 무인선건조국들은 무인선을 해양연구선박이나 해양기후관측선박 등으로 건조하지만, 아직 무인전투함을 건조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다만 이스라엘이 그 분야에서 미국과 어깨를 겨루며 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를 살펴보면, 북은 최첨단군사과학기술을 집대성하여 이번에 전투함의 무인화를 실현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북이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에게는 이미 2011년 초에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선행경험이 있다. 2011년 8월 22일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이 무인어뢰정을 2011년 초에 개발하였고, 같은 해 8월부터 동해와 서해의 해군함대에 실전배치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남포조선소의 927연락소기지와 원산조선소의 313연락소기지에서 올해(2011년을 뜻함-옮긴이) 12월 말까지 총80대의 무인조정어뢰정이 생산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 어뢰정은 다른 어뢰정과 달리 1발의 어뢰를 장착하고 무인자동조종기술을 이용한 GPS장치를 이용하여 해상목표물을 타격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북이 그처럼 이미 2년 전에 무인어뢰정을 건조하여 실전배치하였으므로, 만일 이번에 그 무인어뢰정과 성능이 비슷한 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군절을 맞아 기동훈련을 직접 지도하면서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 보도기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기존 무인어뢰정을 능가하는) 새로운 전투함선을 건조할 데 대한 임무를 인민군대와 해당부문에 주”었고, 최고사령관명령을 받은 “인민군대와 해당부문에서는 창조적인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 우리 식의 현대적인 전투함선을 건조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여기서 다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5개월 전에 나온 보도기사와 보도사진이다. <조선중앙통신> 2013년 3월 24일부 보도기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1501부대를 시찰한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군부대에서 자체로 연구제작한 첨단전투기술기재들을 보아주”신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부대지휘관으로부터 장비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 “장비들을 오래도록 쓸어보시며 멋쟁이라고, 연구를 많이 했다고, 정말 잘 만들었다고 환하게 웃으시”며, “첨단장비들이 싸움에 편리하게 제작되었고 당장이라도 결전장으로 튀여나갈 것만 같이 보기에도 좋다고, 적진을 향해 명중탄을 날리며 맹렬히 돌진하는 모습이 선히 보이는 것만 같다고 말씀하시”고, “군부대에서 개발한 첨단전투기술기재들이 전투환경에서 기동이 대단히 빠르게 제작되고 지능화, 경량화된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시였다.” <사진 2>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날 인민군 제1501부대를 시찰하면서, 그 부대가 제작한 첨단군사장비를 살펴보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 <사진2> 2013년 3월 2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 제1501부대가 제작한 첨단군사장비를 살펴보았다. 북은 이 첨단군사장비를 제작한 때로부터 꼭 5개월만에 인공지능전투함을 건조하였다. © 한호석 소장 제공

위의 보도기사가 나온 때로부터 5개월이 지난 2013년 8월 25일에 나온 보도기사는 신형전투함에 대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높은 평가를 이렇게 서술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능화가 높은 수준에서 보장된 함선은 항해와 사격조종을 비롯한 모든 전투행동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으며 각종 대상물들에 대한 타격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21세기의 전투함선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에 인용한, 5개월 시차를 두고 나온 두 가지 보도기사를 종합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 제1501부대에 무인전투함을 건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에 따라 제1501부대가 지난 3월 하순 무인전투함에 설치될 첨단설비를 개발하였으며, 그 첨단설비를 갖춘 신형무인전투함을 그로부터 5개월 만에 건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위에 인용한 두 보도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지능화(intelligentize)라는 개념이다. 지능화는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의 최첨단성능을 단적으로 표시해주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지능화는 무인화(unmanned)보다 한 급 더 높은 수준의 자동화기술로 개발하는 최첨단설비체계를 일컫는 것이므로, 북은 전투함을 무인화하는 단계를 지나 전투함을 지능화하는 최고단계에 올라선 것이다.

여기서 전투함의 무인화와 전투함의 지능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투함의 무인화를 실현하였다는 말은 조종사의 원격조종을 받으며 작전하는 첨단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는 뜻이고, 전투함의 지능화를 실현하였다는 말은 조종사의 원격조종조차 필요 없이 무인전투함이 작전상황을 스스로 판단식별하고 스스로 작전하는 최첨단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는 뜻이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의 성능을 묘사한 위의 인용보도기사에서 “지능화가 높은 수준에서 보장된 함선은 항해와 사격조종을 비롯한 모든 전투행동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다”고 서술한 문장에서 인공지능전투함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북이 2년 전에 건조한 무인어뢰정은 원격조종식 무인전투함이고,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원격조종이 필요하지 않는 인공지능화된 무인전투함인 것이다. 땅위에서 걸어 다니는 로봇(robot)이 스스로 판단식별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것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인공지능전투함도 스스로 판단식별하고 스스로 작전한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고도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움직이는 초현대식 전투함인 것이다.
 
▲ <사진 3> 2013년 3월 2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살펴본 첨단군사장비는 인공지능전투함에 장착하는 전자광학조준장치(EOTS)였다. © 자주민보

<사진 3>은 2013년 3월 24일 인민군 제1501부대를 시찰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부대가 제작한 첨단군사장비를 살펴보는 장면을 촬영한 것인데, 그 보도사진에 나타난 군사장비가 무엇인지 당시에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5개월 뒤 신형전투함을 건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 다시 살펴보니, 그것은 인공지능전투함에 내장되는, 타격목표를 스스로 추적, 식별하는 전자광학조준장치(electro-optical targeting system)였다.

북의 인공지능전투함이 북의 초정밀무인타격기와 함께 해상공중작전을 전개하는 경우, 미국해군 항모타격단과 미국해병대 원정강습단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 <사진 4> 이스라엘이 2006년 8월 세계 최초로 건조한 원격조종식 초소형무인전투함 '보호자' © 한호석 소장 제공


무인전투함 개발에 뛰어든 선진국들

세계 최초로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이 건조한 무인전투함의 공식명칭은 ‘보호자(Protector)’다. <사진 4>에 나타난 것처럼, 이스라엘 무인전투함 ‘보호자’는 고속기동력을 지닌 초소형함선이다. 그런데 무장력을 견줘보면, 이스라엘해군 무인전투함 ‘보호자’의 무장력은 북이 이번에 건조한 인공지능전투함의 무장력에 대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하다. 그래서 이스라엘해군은 무장력이 매우 약한 무인전투함 ‘보호자’를 해상전투에는 투입하지 못하고, 해상정찰용이나 해적퇴치용으로나 운용한다.

그런데 양자 사이에는 그런 무장력 격차보다 더 중요한 기술적 격차가 있다. 이스라엘해군이 지중해 연안에 배치한 무인전투함은 지상기지에서 조종하는 원격조종식 무인전투함이다. <디펜스 업데이트(Defense Update)> 2006년 제2호의 자료에 따르면, 원격조종식 무인전투함 ‘보호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첨단무기생산업체들인 라파엘(RAFAEL)이 주도하고 BAE시스템스(Systems)과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이 개발과정에 참가하여 건조된 것이다. 2006년 8월 이스라엘은 세계 최초의 무인전투함 ‘보호자’를 미국에 보내 미국 해군기지, 연안경비대기지, 특수전부대, 수도 워싱턴 등지를 순회시키면서 시범기동훈련을 통해 그 성능을 시위하였다.

이스라엘이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것을 보고 자극 받은 미국은 그에 뒤질세라 무인전투함 건조에 달라붙었다. 그리하여 2008년 5월 2일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 <우주전쟁(Space War)> 2008년 5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11MUC0601’이라는 공식명칭으로 불리는 미국산 무인전투함은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계열사 로봇시스템스(Robot Systems), AAI 코퍼레이션(Corporation), 마리타임 어플라이드 피직스(Maritime Applied Physic)가 3자 합작으로 건조하였다.

미국산 무인전투함은 해상정찰만이 아니라 해상전투에도 참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장력이 약한 이스라엘산 무인전투함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산 무인전투함은 적국 잠수함을 추적, 공격하는 대잠무인전투함이다. 미국해군이 잠수함공포증에 걸려 있기 때문에, 그들은 무인전투함을 건조해도 대잠작전에 참가하는 무인전투함부터 서둘러 건조하였는지 모른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각각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것을 보고 자극 받은 영국도 무인전투함 개발계획을 2012년 8월에 발표하였고, 캐나다도 무인전투함 개발계획을 2012년 6월에 발표하였다. 군사과학기술이 발달한 선진국들이 무인전투함 개발경쟁에 속속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국산 무인전투함이 전자동식 인공지능전투함이 아니라 반자동식 무인전투함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산 무인전투함은 독자적으로 해상작전을 전개하지 못하고,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능력과 적국 잠수함을 구축하는 구잠능력을 갖추고 연안전투함(Littoral Combat Ship)의 해상작전을 지원해주는 작전만 전개할 수 있다. 실상이 그러한데도 미국해군은 자기의 무인전투함을 함대급(fleet-class) 무인전투함이라는 과장명칭으로 부른다.
 
▲ <사진 5> 미국이 2008년 5월에 건조하여 2013년 8월 현재 시험운용 중인 함대급 무인전투함 '11MUC0601' © 자주민보

<사진 5>에 보이는 미국해군의 함대급 무인전투함 ‘11MUC0601’의 배수량은 7.7t이고, 선체길이는 12m이고, 선체높이는 3.4m이며, 적재중량은 2,300kg이며, 항해속도는 시속 65km이며, 작전시간은 48시간이다. 2013년 8월 현재 미국해군은 함대급 무인전투함 4척을 시험운용 중인데, 2015년에 가서야 시험운용을 마치고 실전배치할 수 있다. <웨이니 닷컴(wany.com)> 2011년 7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해군은 ‘트라이던트 워리어(Trident Warrior)’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개최하는 해군력실험에 무인전투함 시제품을 참가시키고 있다.
▲ <사진 6> 미국에서 2010년 8월에 건조된 항만급 무인전투함 시제품 ©한호석 소장 제공

<사진 6>에 보이는 무인전투함은 원래 무인기를 만드는 미국 무기생산기업인 AAI가 건조한 항만급(harbor-class) 무인전투함 시제품이다. <지구비행(Flight Global)> 2010년 8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그 시제품의 선체길이는 11.9m, 선체높이는 3.1m, 항해속도는 시속 52km, 항속거리는 2,200km, 적재중량은 1,950kg이다. 2.5m 높이의 파도를 헤치며 항해할 수 있고, 6m 높이의 파고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항만급 무인전투함은 연안에서 정보수집, 감시, 정찰을 할 수 있고, 다른 전투함들을 위한 병참보급활동에도 동원될 수 있고, 적진에 침투하는 특전병을 수송하는 해상침투작전에도 동원될 수 있다.

<네이벌 테크놀로지 닷컴(naval-technology.com)> 2012년 1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해군은 함대급 무인전투함의 무장력을 강화한 본격적인 무인전투함 ‘펨(PEM)’을 2012년에 개발하였다. 선체길이가 11m인 무인전투함 ‘펨’은 사거리 2.5km의 스파이크(Spike) 미사일 6기와 사거리 6.8km의 M2 기관총 1정으로 무장하였다. 현재 미국해군이 시험운용하고 있는 무인전투함 ‘펨’은 2012년에 실시한 실탄사격시험에서 스파이크 미사일을 쏘아 해상표적을 격파하였고, M2 기관총으로 공중이동표적도 격파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해군이 시험운용하고 있는, 무장력을 갖춘 무인전투함 ‘펨’도 함대급 무인전투함, 항만급 무인전투함과 마찬가지로 지상기지에서 조종하는 원격조종식 무인전투함이다. 전 세계에서 군사과학기술이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미국도 인공지능전투함을 아직 건조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무인전투함 앞지른 북의 인공지능전투함

무인전투함은 현대군사과학기술의 최고 결정체이므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무기생산기업이라 하더라도 단독으로는 개발하기 힘들고,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건조경험에서 보는 것처럼,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첨단기술을 가진 무기생산기업들이 상호 협력하여 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인전투함들보다 월등히 우수한 인공지능전투함을 북이 독자적으로 건조하였으니 북의 군사과학기술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명백하게도, 북은 전투함을 인공지능화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으며, 그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수준을 앞지르기 시작하였다. 해군력이 강하다는 선진국들이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전투함을 건조한 북의 실력을 보고 그만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인민군에게는 성능이 뒤떨어진 노후무기밖에 없다는 식의 거짓말만 들어오며 주입된 북의 군사과학기술에 대한 무지와 편견과 오해에서 한시바삐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다용도화된 전투함선들을 많이 건조하고 장비시켜 해군의 해상작전전투능력을 부단히 높여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해군무력을 21세기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더욱 강화발전시키는 데서 나서는 강령적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고 한다. 다용도화된 전투함선이란 이번에 건조한 인공지능전투함만이 아니라 적국 항모강습단과 원정강습단을 공격할 인공지능전투함, 적국 잠수함대를 공격할 인공지능전투함 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와 같은 각종 인공지능전투함들을 “많이 건조하고 장비시키라”고 지시한 것이다.

2011년 8월 22일 남측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2011년 초에 무인어뢰정을 건조한 북은 같은 해 12월 말까지 총80척의 무인어뢰정을 건조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무인어뢰정을 연간 80척씩 건조한다면 대량건조능력을 갖춘 것이다. 북의 무인어뢰정 건조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북이 그런 수준의 무인어뢰정 건조능력을 가졌으므로, 인공지능전투함 건조에 박차를 가하면 앞으로 1년 동안 40척 정도 건조할 것으로 예견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8월 25일 선군절에 즈음하여 발표한 담화 ‘김정일 동지의 위대한 선군혁명사상과 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자’에서 “국방공업부문에서는 우리나라를 천하무적의 군사강국으로 빛내이기 위한 투쟁에서 보다 큰 전진을 이룩하도록 하는데 힘을 집중하여 정밀화,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된 우리 식의 무장장비들을 더 많이 더 질적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고 지적하였다. 2013년 8월 25일 선군절을 맞아 인민무력부가 마련한 경축연회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차수는 연설을 통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력적인 선군령도가 있어 군건설의 최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번에 북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전투함을 건조하였으니 군건설의 최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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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대책위, 국정원 앞에서 '내란음모 조작' 규탄

“그 티셔츠 저희 집에도 있습니다”

국정원대책위, 국정원 앞에서 '내란음모 조작' 규탄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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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31 18: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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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대책위는 31일 국가정보원 앞에서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국정원이 지하조직을 운영했다고 지목한 이석기 의원 보좌관의 집과 사무실을 사흘 꼬박 뒤져서 고작 티셔츠 한 장 압수해갔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내란음모의 증거입니까? 아니죠? 그 티셔츠 저희 집에도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원장 남재준, 이하 국정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의 딱딱한 분위기가 갑자기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국정원은 지난 28-29일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 당시 우위영 보좌관 사무공간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했지만 압수한 메모리카드와 핸드폰을 관리소홀로 분실해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증거물을 되돌려준데 이어 30일 우 보좌관의 자택을 압수수색 했지만 티셔츠 한 점만 압수해간 바 있다.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로 구성된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과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원회’(국정원 대책위)가 31일 오후 2시 국정원 앞에서 개최한 규탄대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국정원이 그래서 총 한 자루라도 찾아냈다는 것이냐”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데는 국정원이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5.12녹취록’ 외에 특별한 물적 증거를 제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5.12녹취록’은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해 이미 여론재판에서 정치적으로 유죄를 선고한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대표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정희 대표는 “통합진보당은 공식적으로,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은 날조된 모략극임을 분명히 한다”며 “국정원이 위법하게 유출시킨 왜곡 편집된 녹취록에 따르더라도 이석기 의원이 총기소지나 파괴행위를 지시한 바가 전혀 없다. 모인 사람들이 파괴행위를 하기로 결정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국정원은 불법으로 허위 피의사실을 유포하면서 여론 재판하는 것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동영상 있으면 전부 편집 없이 공개하라”, “어떻게 입수했는지 말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우리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끓어오른 이 시점에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국정원의 반격을 우리 촛불의 힘으로, 국민의 힘으로 제대로 제어해야만 국민이 강력히 요구해온 남재준 해임과 국정원 해체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며 “마녀사냥을 중단시키고 진실을 밝힘으로써 무고한 피해자들의 인권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기로에 놓기있는 시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며 “우리는 통합진보당을 전적으로 지지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이것을 지향하는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권 명예회장은 “통합진보당에 권총 한 자루 없다. (내란의) 의지도 없고 현실성도 없다면 법원에 간다 하더라도 무죄”라고 말하고 “우리 모두가 당사자다... 우리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반드시 국정원의 이러한 불법적인 공안탄압 분쇄하고 국정원 해체 반드시 이뤄내자”고 말했다.

 

   
▲ 전국 각지에서 모인 3천여명의 참가자들은 손피켓과 깃발, 구호판 등을 흔들며 적극 호응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3천여명(주최측 추산)의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대책위는 이 사건이 단순히 통합진보당만을 압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다”며 “우리는 국정원의 내란음모조작을 규탄하며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해 이 땅의 모든 민주시민들과 함께 ‘국정원해체’와 ‘박근혜 책임’을 관철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끌까지 싸워나갈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시대착오적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당장 중단하라, △국정원은 불법적 증거유출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 △불법대선개입 정치공작 국정원 해체하라, △불법대선개입 정치공작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 등을 요구했다.

장대현 국정원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규탄대회에는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최헌국 예수살기 목사, 박민정 통합진보당 전 청년위원장 등이 나와 규탄발언과 피해자 발언을 이어갔으며, 개사곡 공연 등도 선보였다.

이석기 의원은 규탄대회에 참석했지만 무대에 오르지 않았으며, 오병윤 의원 등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과 최고위원들도 대부분 참석했으며,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등 사회단체 대표들도 참석했다.

 

   
▲ 국정원 건물에 더 가까운 쪽에 먼저 자리잡은 보수단체들이 '맞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날 규탄대회가 열린 국정원 앞에서는 보수단체에서도 1천여명이 ‘맞불집회’를 열었으며, 경찰은 양측을 철저히 분리해 마찰을 예방했다.

 

한편, 이날 통합진보당은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명백한 허위사실을 정확한 출처 없이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 <TV조선>, <채널A>, <JTBC>, <문화일보> 등이 지면과 방송으로 계속하고 있는 진보당에 대한 허위날조 보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결의문] 국정원 내란음모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

지난 대선에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하고 정치공작을 자행하며 초유의 국기문란 사태를 벌인 당사자인 국정원이 뻔뻔하게도 현직 국회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10명의 진보당 전·현직 간부들이 압수수색을 받았고, 3명의 당원에 대한 구속이 확정되었으며 현직 국회의원인 이석기 의원의 집무실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집행되었다. 공안당국은 구속된 3명의 진보인사를 즉각 석방하고 진보당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국정원이 발표한 내란예비음모사건이라는 것은 조직해체의 궁지에 몰린 국정원과 박근혜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이고 조작극이며, 이는 역대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사용해 왔던 구태한 습관이다. 게다가 ‘내란음모’라는 것은 유신독재시대에 대표적인 민주인사에 대한 탄압도구였고, 국제사회에서 사법살인으로 규정한 박정희 유신독재시대의 ‘인혁당 사건’, ‘서울대생 내란 예비음모 사건’,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자행한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은 오늘날 모두 무죄로 밝혀졌다.

국면전환을 위한 내란음모 사건발표에도 불구하고 국정원대선개입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책임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자, 국정원은 왜곡 편집한 녹취록을 불법적으로 언론에 공개하였으며 ‘밀입북설’ ‘북한자금설’ 등의 확인도 되지 않은 선정적인 기사거리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 그리고 민감한 시기에 진행된 사건발표에 대해 의문이 끊이지 않자, 급기야 ‘내부조력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사건조사에 프락치를 활용했음을 자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NLL녹취록조차 조작하고 불법적으로 공개했던 국정원이 계속해서 불법을 자행하고 있지만, 녹취록에서 조차 이석기 의원이 ‘총기사용’ ‘국가기간시설 폭파’등의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우리 국민들은 국정원이 의도하는 바를 점점 더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있다.

이에 우리는 사건이 발표되고 하루 만에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국정원 내란음모조작과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를 구성하였으며, 날이 갈수록 각계 명망가와 단체들이 속속 대책위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국정원을 규탄하는 성명이 수도 없이 발표되고 있다.

이토록 시민사회가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참여하는 것은 국정원이 벌인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국민들과 법조인조차 황당해 할 정도의 조작사건이 확실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고, 이번 사건이 국정원과 박근혜정부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대선개입’ ‘정치공작’ ‘NLL대화록 불법 조작공개’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법적 행위로 국정조사까지 받은 국정원이 최근에 벌인 작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정원을 해체하거나 해체수준의 개혁을 하라는 요구로 응수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은 이번 내란음모조작사건을 통해 또 다시 국민의 요구를 배신하고야 말았다.

대책위는 이 사건이 단순히 통합진보당만을 압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여기 모인 우리는 국정원의 내란음모조작을 규탄하며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해 이 땅의 모든 민주시민들과 함께 ‘국정원해체’와 ‘박근혜 책임’을 관철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끌까지 싸워나갈 것을 결의한다.

- 시대착오적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당장 중단하라!
- 촛불분열 획책하는 조작사건 당장 중단하라!
- 구시대적 조작사건,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 규탄한다!
- 국정원은 불법적 증거유출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
- 불법대선개입 정치공작 국정원 해체하라!
- 불법대선개입 정치공작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

2013년 8월 31일
국정원 내란음모조작과 공안탄압규탄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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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이어진 촛불... "특별검사로 진실규명!"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9/01 12:54
  • 수정일
    2013/09/01 12: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서울역광장서 제10차 범국민대회... "국정원 '히든카드' 경계해야"

13.08.31 23:07l최종 업데이트 13.09.01 10: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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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 가득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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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너의 모습... 긴 머리 소녀야'

국정원 정치개입 규탄 10차 범국민대회가 '우중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31일 오후 7시, 촛불집회 시작 무렵 서울역 광장에는 많은 비가 쏟아졌다. 미처 우산과 비옷을 준비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건물 아래로 자리를 피했다. 깔고 앉아있던 돗자리나, 손에 들고 있던 피켓을 비 막이로 쓰는 이들도 있었다. 우산도, 비옷도 없이 비를 맞는 참가자들도 보였다.

"이럴 때 별거 있습니까. 노래나 불러야지."

민중가수 손병휘씨가 무대 위에 올랐다. 손씨는 "이 비는 가뭄에 단비, 우리 마음에 내리는 단비"라면서 "매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노래들은 1970년대, 박 대통령 시절에 금지곡으로 지정됐지만 지금은 명곡인 곡들"이라고 덧붙였다. <행복의 나라><물 좀 주소><고래 사냥>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손씨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건 너, 그건 너, 정원아."

손씨의 재치있는 공연이 이어졌다.

"그건 너, 그건 너, 국정원. 바로 너, 너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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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와 함께 시작된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대회 비를 피하던 한 어린이가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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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 가득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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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를 대표해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무대 위에 올랐다. 이 처장이 외쳤다.

더욱 높아진 구호 "국정원 해체하라"

"비가 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많은 비가 오고 있습니다. 억수같이 비가 오는데, 민주주의 찾는 것 포기하시겠습니까?"

시민들이 답했다.

"아니요."

"빗속에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모인 여러분,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받아서 국민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진상규명 됐습니까."
"아니요."

이어 이 처장은 시민들과 함께 "특별검사로 진상규명" "정치공작 책임자 처벌하라" "박근혜가 책임져라""국정원을 전면 개혁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소음과 함께 음향기기에 문제가 생겼다. 마이크가 나오지 않았다. 순간, 무대 앞에서부터 뒤로 시민들은 힘차게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구호가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쳤다. 참가자들은 우산을 접고 자리에 앉았다.

앰프가 고장 나면서 이날 집회에는 '소리통'이 등장하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 당시 사용했던 마이크를 쓰지 않는 소통 방식이다. 사회를 맡은 윤희숙 청년연대 대표가 외쳤다.

"민주시민 여러분, 지금 앰프가 고장 났습니다. 촛불은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촛불을 하늘 높이 들어주십시오."

참가자들은 윤 대표의 발언을 따라하며 뒤편으로 소리를 전달했다.

"다 같이 외치겠습니다. 촛불이 이긴다! 국민이 승리한다!"

지난 28일 새벽, 국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를 제기하며 압수수색에 들어가면서 많은 언론은 '이석기'로 도배됐다. 이어 일부 참석자의 '총기마련', '기간시설파괴' 등의 발언이 나오는 이른바 '5월 합정동 모임'의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 선을 긋고 나서면서, 31일 범국민대회 참석자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만 명, 경찰추산 4000명이 참석했다. 오균희(49)씨는 "종편을 보니 하루 종일 이석기 이야기만 나오더라"며 "국정원 대선 개입 진실에 대한 관심이 내란음모 의혹에 묻힐까봐 걱정이 돼 나왔다"고 말했다.

변주연(38)씨는 "촛불 나올 정도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 "(내란음모 의혹에 대한) 조사는 조사대로 지켜보되,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은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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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 가득 "박근혜가 책임져라"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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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 가득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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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민(30)씨 역시 "별개로 보고 싶다"면서 "(진보당이) 잘못한 게 있으면 처벌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처벌받아야 할, 대선개입에 책임이 있는 국정원이, 그것도 이렇게 시기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번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11살, 13살 두 아들과 함께 수원에서 왔다는 이지영(41)씨는 국정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씨는 "국정원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히든카드'를 지금 꺼낸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묻힐까봐 걱정돼 나왔다"

앞서 국정원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진보당은 국정원에 대해 "촛불 분열 획책하는 조작사건 중단하라"며 "촛불과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촛불집회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앞자리에는 이정희 진보당 대표, 김선동·김재연 의원이 보였다. 이석기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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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개혁 촛불 높이 든 이정희 대표와 김재연 의원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원들이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국정원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김재연 의원이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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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가 '시민자유발언대'로 진행되면서 진보당 의원들은 연단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당원들이 자유발언을 통해 '연대'를 호소했다. 진주에서 왔다는 한 진보당 당원은 "열불이 나서 진주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작년에 다 이겼던 그 수많은 선거, 왜 졌나. 갈갈이 찢어졌기 때문이다. 저들은 틈만 있으면 갈갈이 찢으려고 한다. 여러분, 진보당 버리면 여러분이 죽어요."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자유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김지윤씨 역시 "하나로 뭉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시민'들은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꽉 채웠다. 인근에서는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시국회의 측은 오는 9월 13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범국민 행동의 날'을 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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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다 별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아채리오

하늘보다 별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아채리오

 
청전 스님 2013. 08. 29
조회수 4720추천수 1
 

 

청전 스님의 라닥 순례기 4편 - 하늘보다 별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아채리오

 

 

다음날 이른 아침을 때우고 점심도시락으로 감자를 으깨 넣어 구운 밀개떡 빠론따를 챙겨 받았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올 지점에 이르니 이미 전날 도착한 두 스님이 말 세 마리를 끌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도 젊은 스님 둘이 나왔다. 최소한의 개인 짐과 링세 곰빠와 주변 마을에서 쓸 약품의 짐 보따리가 상당하다. 처음 걷는 기세가 당당하지만 이 힘이 계속 될지는 의심이다. 모두 스틱과 등산구로 제법 그럴싸하고, 다행히도 뙤약볕이 아닌 구름이 낀 걷기 좋은 날씨다. 점심 먹을 장소로 물이 맑게 흐르는 바위벽 그늘에서 말꾼 두 스님이랑 꿀맛 나는 점심을 끼니로 이 때 만큼은 행복해 하며, “누가 인생을 고(苦)라 했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다음부터 오르는 힘든 고개(뿌르피 라:3950m)라니 첫 번째 고개를 자기 힘 따라 넘기로 했다. 나와 야크님은 늘 꽁지다. 마지막에 걸어야 대원들이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산행 경험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다.

 

<<첫 고개 쁘르피 라 고개 정상 마루에서, 두 신부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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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정상에서는 앞서간 모든 대원이 기다리며 쉬고 있다. 말꾼 두 스님은 이미 어느 지점에 기다리기로 하고 진즉 떠났다. 내려가는 길이 완전 지그재그로 무척 가파르다. 아니 무섭게 가파르다. 심 신부님은 무릎이 약하다며 제일 꽁지로 천천히 내려부친다. 평지에 닿으니 말을 초지에 풀어 두고 두 스님은 야크 똥 주워 모아 불을 지피며 소금차를 만들고 있다.

 

<<징첸에서 비박한 날, 아침으로 말 밥 축내고 다음 고개를 오르니 어제 넘은 고갯길이 환하게 보인다. 워메 징헌 놈의 비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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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를 스님들이 징첸이라고 부르는 비박 장소다. 얼마나 피곤한가. 각자 풀이 우거진 곳에 깔개를 삼으며 잠자리를 만든다. 레오 신부님과 빠리 스님은 유목민이 만들어 둔 흙집 바닥에서 자기로 하고 나머지 넷은 낭만을 즐길 요량으로 그냥 하늘을 지붕으로 삼는다. 라닥 지역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기에 비 걱정 없이 텐트 없이도 이런 잠자리를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누어서보는 밤하늘의 별무리는 그 얼마나 황홀한가. 인공 불빛이 없는 이 맑고 맑은 별무리를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늘 보다 별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아채리오. 이미 쟌스카 계곡에 들어와 밤마다에 밤하늘을 보고는 감탄과 찬탄을 얼마나 연발했었는지. 카르샤 곰빠에서 밤하늘에 뿌옇게 펼쳐진 은하수를 처음 보면서 지 교수님은 그게 구름이라고 빡빡 우겨대다가 매일 그와 똑같은 모습에 스스로 우기던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아참 자리에 눕기 전에 비상식량으로 챙겨 가져온 <비록 말린 야크 똥으로 끓였지만> 우리 라면의 맛이라니. 누구하나 그만이란 사양의 말을 안 하며 퍼주는 대로 받아먹는데, 배고플 때 먹는 이런 맛을 누가 바른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마부스님 둘에게 따로 라면 두 개를 주었는데, “뻬 심뽀둑, 뻬 심뽀둑”을 연발 하는데, 정말 맛있다는 티벳 말이다.

 

<<가끔 이름 모를 고산 야생화, 어딘지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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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가 바쁘게 다들 자리에 눕는다. 필자에겐 이런 잠자리가 신기할 게 없다. 매 해 마다에 이런 경험을 하니까. 지금 이 길만 몇 번째인가 헤아려보니 여섯 번째이다. 반대로 거슬러 간 일이 두 번이었다. 첫 걸음은 1992년 철없이 호기심으로 넘었던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땐 트레킹이란 빌미로 그저 놀기 좋아 싸돌았었고, 그 인연으로 라닥의 실상을 알아차리게 되었으니 연장선상에서 매년 이런 의료 봉사의 길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이라도 저녁엔 쉽게 잠에 빠졌는데 이 밤은 생각이 깊어진다. 내일 들어가는 링세 곰빠의 체링 도르제 스님 때문이다.

 

작년 여름이니 꼭 일 년 전에 신장 결석이 탈이 되어 끝내 이승을 마쳤다. 칠십 전이라 더욱 애잔한 생각이다. 이 길을 다섯 번이나 함께 걸었었다. 만약 작년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마땅히 그 스님이 말을 끌고 나왔을 거다. 2007년에는 한국에도 함께 나드리도 했는데 바로 필자가 이 길을 오갈 때 함께 한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늘 언젠가는 함께 티벳을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아, 인생은 무상하지요 체링 스님,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이른 새벽 누가 깨우지 않아도 부스럭대며 자기 침구를 정리한다. 처음 말을 띤 지 교수, 간밤에 하늘을 두 개로 완전 가르는 별똥이 기가 막혔다는 즐거운 비명의 말을 쏟아낸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촌놈의 호들갑을 충분히 이해한다. 1993년 카일라스 성산 순례 길에서 티벳 장탕 고원을 가로지르며 걸을 때 밤마다에 많이도 보아온 별똥의 유희라니. 티벳 사람들은 별똥을 “깐다”라고 부르는데 “별이 쏜 화살”이란 뜻으로 표현이 너무 예쁘다.

 

오늘 올라 부칠 고개가 험하며 최고 높은 고개로 둘이나 된다. 서둘러 가야 될 길이라지만 그래도 아침은 챙겨 먹어야 되는데, 특별히 준비된 먹꺼리가 없다. 이곳 스님들의 주식인 짬빠(보릿가루)를 먹기는 어설프다. 두 스님이 소금차를 끓이는데 한쪽에 처박아둔 지저분한 식기에 뭐가 잔뜩 담겨있다. 노란 카레를 넣어 해 논 인도식 밥이 가득하다. 두 스님이 먹을 밥인가 물으니 세 마리 말에게 먹일 것이란다. 그럼 당신네 아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으니 계면쩍게 웃으며 바로 이 밥에서 조금 덜어 먹을 거란다. 맙소사! 필자야 먹는 문제라면 어떤 험한 먹꺼리라도 문제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우리 대원이 문제다. 일부러 지 교수한테 저 밥 먹을 수 있겠소 물으니 선뜻 손으로 집어먹는데 하는 말이라니, “스님, 이건 완전 기내식인대요!” 아무리 궁한 처지라도 말이 먹을 밥을 기내식이라 하다니. 결국은 모든 사람이 이 밥을 데워 함께 먹기로 했다. 챙겨온 밑반찬으로 장아찌가 조금 남아 있어 가능할 듯 했다. 우리가 먹은 밥이란 바로 우리 말 세 마리에게 먹일 아침 끼니를 우리가 축내는 꼴이 된 것이다. 지금도 그 때 누구 하나 군소리 없이 먹어준 우리 대원에 감사한다. 그런 밥을 어느 누가 먹을 수 있겠는가.

 

<<걷는 만큼 이익이다, 이 무슨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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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이렇게 때우고는 서둘러 길을 떠나게 했다. 해가 나기 전 그늘 속을 걸어 부쳐야 속력을 낼 수가 있다. 생각 보다는 수월하게 한 고개(네르쩨 라:3900m)를 넘으며, 어제 고갯길에서 내려부치는 가파른 길이 보인다. 누군가 저 길을 되돌아 갈 용사는? 하고 물으니 천만금을 준다한 들 온 길을 다시 되돌아 넘지는 못하겠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른다. 이때 순발력을 발휘, “바로 그거요! 지금 우리는 얼마나 편한 산행 길인지 알아야 해요. 이 두 스님은 말을 몰고 우리를 위해 어제 저 길을 넘었으니 우리의 두 배가 넘게 힘이 들었다는 것을!” 하는 필자의 말에 누구 하나 토를 못 붙인다. 이 말을 듣고는 쉬었다가자는 말도 없이 걸어 부치기만 한다.

 

<<퇴약볕 아래 점심이라니, 모두 지쳤는지 먹꺼리에 무관심인 듯. 모두 퍼진 듯 널부러져 앉아만 있다.

두 시님이 소금차를 원시적 방법으로 끓인다. 짬빠와 마른 야크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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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만 라 고개 정상에서 북쪽의 끝없는 바위 산의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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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부님과 함께, 이 인연 영원하게 --- 생사를 같이한 전우니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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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스님과 야크님이랑 키념 촬영을 꼭대기 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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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하나 마다에 기를 쓰고 넘으면 으레 오른 만큼 내려 부친다는 게 사실 맥 빠지는 일이다.

이제 넘을 다음 고개가 제일 힘든 고개(하누만 라 :4950m)로 악명이 나 있는 사람 잡는 고개다. 어찌 고갯길이 그리 지루하고 힘들게 되어 있다. 한 시경 물이 흐르는 데서 점심이라고, 그것도 뙤약볕 아래서 라니. 짬빠로 때우는 방법 외에 어떤 먹꺼리가 없다. 마른 야크 고기를 씹으며 끼니라고 때우고는 쉴 참 없이 오르도록 했다. 늘 말씀 없이 오르던 레오 신부님도 좀 짜증스런 말투로 이놈의 길은 끝이 나올 때도 되었는데 아무리 걸어도 그 자리가 그 자리라고 불평을 처음으로 하신다. 예상 보다 시간이 걸려 고갯마루 정상에 두시가 훨씬 넘어서야 올랐다. 저쪽 아래 절벽 산을 버티고 자리한 링세 곰빠가 아스라이 보인다. 또 레 쪽으로 협곡 끝이 뻗어 있는데 이 풍광은 참으로 대단한 볼거리다. 미국에서 유학중에 많이도 가봤다는 그랜드 캐년, 그보다 수십 배나 장엄하고 아름답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지 교수도 이쪽저쪽 사진 담기에 열심이다. 모두 기념사진이라고 많이도 찍어댄다. 이제 하산길이라지만 너무 가파른 내리막길이라서 오히려 위험이 따른다. 많이도 한참을 내려 부쳐야 마을의 파란 보리밭의 평탄한 길을 걸을 수가 있다. 필자는 일부러 제일 늦게 꽁지에 남아 길을 걸어 부쳤다.

 

평지에 다다를 즈음에 하얀 천막에 쉬어갈 간이 가게가 있다. 말꾼 두 스님이며 대원이 나를 기다린다. 가야할 대원들의 모습이 완전 녹초가 된 듯, 모두 주저앉은 모습이 패잔병 꼴이다. 애원어린 말투로 여기서 절까지는 아직도 다섯 시간을 더 가야 하니 하루 여기서 묵자는 제안이다. 나중에 알아냈지만 너무너무 피곤하고 지쳐 더 걸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필자가 오기 전에 서로 입을 맞춘 말이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온 길도 일반 여행객들 기준으로는 사흘 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내 고집으로 세 시간이면 들어갈 수 있다며 말꾼 두 스님부터 떠나도록 하니, 모다 억지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인데 정말 걷기 힘든 걸음 거리를 본다. 이제 조금 후에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모르는 채 말이다.

 

<<양떼를 만났는데 군기가 들어 있는지 순서대로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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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둔덕을 넘는데 이제 내가 꽁지에 선다면 더욱 늦어질 것 같아 앞장서서 밤이 되기 전까지 곰빠에 다다르려 속도를 내어 걷기로 했다. 이건 잘못된 판단인 것을 후에 알게 된다. 지쳤을 때의 한걸음은 왜 그리도 힘이 드는지, 세 시간이면 닿을 줄 알았던 절이 늘 멀리만 보인다. 거의 마을 보리밭이 닿을 무렵 거대한 양떼를 만난다. 목동에게 물으니 700여 마리라고. 자기들끼리 질서 정연히 게울 다리도 건네며 보기에 참 평화롭다. 마침 마을에 들어서니 곳곳에 주민들이 나와 있는데 신통한 모습을 봤다. 열 집 정도의 주인인 듯 양들이 자기 주인을 쪼르르 찾아 또 다른 단체를 만들며 걸어가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현상에 신통한 양떼라며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저쪽에 곰빠가 보이며 스님들이 죽 나와 하얀 카타를 들고 우리를 맞이한다.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노스님까지 모든 스님들이 다 나와 우리를 반기는 것이다. 그런데 빠리 스님이 올라오지 않는데 무려 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야크님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방에 들어와 누워버린다. 길가에서 토하면서 늦어졌단다. 나의 강행군 결정이 너무 무리한 것이다. 원래 이런 산행도 처음이라며 내색은 안 해도 힘들게 고개를 오르고 내렸다. 빠리에서도 학교 공부에만 치중하다 보니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진데 나의 섣부른 시간 단축 강행군이 탈을 만든 것이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우리식 수제비 텐툭이 끓여 나왔다. 빠리스님은 수저도 못 든다. 완전 지쳐서 탈진 상태로까지 빠져버린 것이다. 쉬면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고소 증세를 적응해낼 수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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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도 전쟁 중이다!" 그 상대는…

[기억, 그 힘든 싸움] 역사학자 김기협이 사회학자 김동춘에게 묻다

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30 오후 7:17:02

 

 

"나는 빨갱이 아니다. 잠자는데 인민군이 들이닥쳐 밥 해달라고 해서 밥 해준 것밖에 없다." 울부짖음은 총성 속에 묻혔다. 1950년 8월 초, 칠곡 신동고개 근처에는 매일 같이 농민, 더러는 학생 차림을 한 사람까지 포함한 수십 명을 실은 트럭이 두세 번씩 드나들었다. 헌병들은 쌍소리와 욕설을 섞어 가며 굴비처럼 엮인 사람들을 총살했다. 학살은 6일 동안 계속되었고, 마지막 날엔 삽으로 시체를 묻었다. 갈치 구운 냄새 비슷한 시체 썩는 냄새가 한여름 코를 찔렀다. 대부분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개, 돼지'처럼 죽었다.

한국전쟁 초기 민병대에 들어갔다가 헌병의 민간인 학살에 가담하고 만 어느 가해자가 2001년에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앞에서 털어놓았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가족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명령과 트라우마 때문에 그는 평생 침묵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입회했던 끔찍한 현장은 한국전쟁기 무수히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일부 중 일부였다. 그 학살 가운데서도 국군과 경찰에 의한 학살은, 전쟁 이후 반공을 외치는 사회 속에서 완전히 어둠에 묻힌 터부였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기 좌익 관련 민간인 피학살자들이 역사 속에서 세 번 죽었다고 말한다. "학살 자체가 첫 번째이고, 1960년 당시 진상규명 요구를 탄압하고 그 일에 앞장선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진상규명 요구를 폭력으로 틀어막은 것이 두 번째이며, 그 후 유가족과 자식들을 모두 '빨갱이'로 취급하여 1980년대까지 연좌제로 묶어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세 번째다." 그는 평생을 고통 속에 침묵해야 했던 이들 편에 서서 한국 정부와 미국의, 사회와 여론의 부인·망각·무지와의 싸움을 벌여 왔다.

 

▲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펴냄). ⓒ사계절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펴냄)는 원래 노동사회학을 연구했던 김동춘 교수가 "한국전쟁기 학살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와 정치·사회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부드러운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연구자로, 운동가로, 정부 조직의 일원으로('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활동해 온 지난 10여 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은 단순한 회고나 고발을 넘어 '기억과의 싸움' 자체와 그 싸움의 핵심 쟁점들을 좇는다. 세상의 무지에 맞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국가와 싸워 본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 책은 2013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왜 한국전쟁기 학살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준다. 그는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기에 학살을 자행하고도 그것을 은폐해온 과정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와 사회의 야만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가 폭력의 메커니즘을 다룬 2000년의 <전쟁과 사회>(돌베개 펴냄)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은 전쟁을 체감하지 못하지만, 고문 등 가시적인 국가 폭력이 사라졌다 믿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부드러운 방식'의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이 책의 서문을 읽자마자 시민으로서, 운동가로서, 연구자로서 한 사안에 대해 넓고 깊게 천착해 온 그의 경험과 역사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1945년 8월부터 1948년 8월까지 3년간 펼쳐진 해방 공간의 매일을 세심히 기록한 '해방 일기' 연재를 막 끝낸 참이었다. (☞'해방일기' 그간의 연재 바로 가기) 그는 여전히 이 시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 방식을 묻고자 했다. '프레시안 books'는 두 학자와 함께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를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그 기억, 국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왼쪽), 김기협 <해방일기>(너머북스 펴냄) 저자(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한(恨)과 정의 사이에서

김기협 : 일단 고생이 많으셨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한국전쟁기의 학살이라는 사안을 놓고 시민으로서, 연구자로서, 운동가로서, 또 몇 년간은 정부 기구의 관리로서 고민하고 실천해 오셨으니까요. 이 중 한 가지 입장에 머물러 있다 해도 괴로움이 많은 일인데, 여러 가지 입장을 겪다보니 그것들이 상충되는 측면도 있었을 거고요. 이 사안을 오랫동안 파고들 수 있었던 동력은 역시 그 기억으로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었겠지요.

김동춘 : 그렇습니다. 그 분들이 먼저 제게 호소를 하고, 절실하게 대변해 주길 바랐습니다. 전 거기에 응답을 하게 된 거지요. 당사자들에 비해서야 제가 한 고생은 많지 않습니다.

김기협 : 한국전쟁기 학살이라는 문제에 대한 관점을 처음으로 뚜렷이 밝힌 게 13년 전 펴낸 <전쟁과 사회>일 텐데요. 그때는 기본적으로 연구자의 관점이었죠. 그렇지만 거기서도 완전히 연구자 위치에만 머무른 건 아니었죠?
 

▲ <전쟁과 사회>(김동춘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김동춘 :

맞습니다. <전쟁과 사회>도 100퍼센트 아카데믹한 책은 아닙니다. 학술적 입장이 80퍼센트쯤, 나머지 20퍼센트엔 운동적인 관점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기협 : 어쨌든 저는 이 문제에 임하는 선생의 입장부터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운동가로서 '유족 주도인가, 시민사회 주도인가'라는 운동 방향의 문제로 고민하신 대목도 눈에 띄는데요. 유족 개개인의 억울한 입장을 풀어주는 역할,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근본적인 처리 방법이나 전략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살펴서 주장해야 하는 역할 간의 대립이라고 할까요.

김동춘 : 네. 그 두 가지가 충돌하는 측면이 있지요. 바깥에서도 그렇고, 제 내부에도 있고요. 피해자의 대변자로서 말할 때는 당사자들의 감정이나 인권이라는 층위가 강하게 작용한다면, 후자의 경우엔 피해자의 개인적인 억울함을 넘어서는, 사회의 어두운 점을 폭로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을 바꾸고 반공주의를 허물고 정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짐을 지게 되는 것이지요. 두 부분은 분명 충돌을 했기에, 필요에 따라서 적절하게 다른 수사를 구사해야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발언할 때와 유족들에게 직접 이야기할 때 사이에 표현의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지요.

김기협 : <전쟁과 사회>를 쓰게 된 문제의식 중 하나는 '한국 역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정리가 전제되지 않고는 어떤 새로운 사회과학 이론이나 주장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썼습니다. 한국전쟁이 그 후의 남북관계나 한미관계, 남북한 정치사회의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산악"임을 확인했던 것이, 노동 문제를 연구했던 선생이 이 문제에 천착하게 된 이유인 셈이지요.

<전쟁과 사회>에서 문제의 초점처럼 제기한 것이 국가주의였죠. 그런데 저는 좀 의문이 듭니다. 과연 그게 지나친 국가주의 때문에 일어난 문제였을까, 그 당시의 국가가 과연 국가다운 국가였는가, 오히려 국가주의의 취약성 때문에 일어난 일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의문입니다.

 

▲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동춘 : 제가 어디선가 '국가의 과도함은 국가의 부재를 표현한다' 비슷한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일단 거시적으로 보면 근대국가의 수립 과정에서 전쟁 등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때 국가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있고 국민들의 동의를 얻고 있었다면 구태여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근대국가로의 이행이 가능할 텐데, 그게 미비했기 때문에 폭력이 전면에 등장했다면, 선생 말대로 국가주의보다는 국가의 부재에서 오는 사설 폭력과 내전 상태였다고 볼 수 있겠죠.

이 문제가 바로 대안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국가다운 국가를 지향하는가, 혹은 국가 시스템 자체를 넘어서야 하는가, 라는 문제이지요. 제 경우 연구자로서는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나 국가주의의 문제를 강조했다면, 운동이나 실천의 면에서는 국가의 '제대로 된' 완성과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국가를 지향하는 입장이 제 안에 착종되어 있습니다. 또 글에서는 국가 자체를 문제 삼는 데 비중이 가 있다면, 제도권에서 활동할 때는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웠고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국가가 제대로 책임을 지는 국가가 된다 하더라도, 가시적인 폭력은 사라져도 보이지 않는 다른 형태의 폭력은 지속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소실점


김기협 : 이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반응·조처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시점은 연구자로서의 이론적인 지향과 일치할까요, 아니면 보다 현실적인 눈에 가까울까요.

김동춘 :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의 접근 방식은 후자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그런데 책에서도 스치듯 언급했지만 이 문제를 미군 범죄로 봐야 한다며 반미로 접근하는 NL(민족해방) 계열 사람들하고 논쟁이 많았어요. 여전히 '크게 봐서는 미군 범죄의 문제이고 그래서 반미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맞다'라는 시각을 가진 세력이 있고, 일부 유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해서 입법 투쟁으로 끌고 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현실론을 택했습니다. 미군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우선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요. 그래야 작전 수행 과정에서 한국군의 위치와 한계, 그리고 전쟁에서의 미국 책임 문제도 드러날 수 있겠지요.

김기협 :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요. 피해자 유족에 대한 배상 주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그렇고, 이전까지의 한미관계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그것을 전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밝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동춘 : 필요합니다. 그 점에서 이데올로기로서의 반미주의보다는 당시의 실질적인 책임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로 문제를 좁혀 가야 합니다. 4.3사건 같은 경우 정부 수립 이전인데, 그럼 과연 그때 주권이나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을까요. 나아가 1948년 정부 수립과 미군이 철수하기까지 1년간의 지휘권의 문제도 따져봐야 할 거고요. 1950년 7월 대전협정(당시 임시수도 대전에서 주한미군의 지위 및 재판 관할권에 관해 체결된 한미 간 서한교환형식의 협정-편집자)에서 작전지휘권이 맥아더에게 넘어간 이후 한국군의 작전지휘에 있어서의 미군의 책임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구태여 반미라는 이데올로기로 갈 필요도 없이, 국민의 입장에서 법적으로 문제제기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1950년에 미국도 나중에 발생할지 모르는 책임 문제를 다 대비해 놓기도 했습니다. 물론 법정에서 한국 정부나 피해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로 이라크 등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 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부각시키는 계기라고 볼 수 있죠.


김기협 : 그러고 보니 <전쟁과 사회>와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사이에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창비 펴냄, 2004)이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제목대로 '전쟁과 시장'이란 엔진으로 돌아가는 미국의 국가 성격을 다뤘는데,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사의 굴절에 큰 배경이 되기도 했을 테고요. 미국의 특이한 국가 성격은 통상적인 국가론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현상이라고 보십니까?
 

▲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김동춘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김동춘 : 네. 전 미국이 통상의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국인데요. 전통적 제국주의라고 부르기도 적절치 않습니다. (보통의 국가의 외교부에 해당할) '국무성'이라는 명칭이 보여주는 대로, 전 세계가 미국 안에 있고 전 세계의 문제가 미국 문제인 나라 아닙니까. 폭력보다는 주로 이데올로기의 지배, 특히 문명론적인 측면이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강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다수의 '너희'에게 물질적 행복을 주고 있고, 그게 문명이다,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이 명제를 스스로 의심하지 않죠. 저는 확신범이라고 봅니다. 그것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반대 세력도 있지만 취약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특이한 제국이고 국가론에서 이야기되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미국이 아닌 나라들은 주권국가가 아닌 것이죠.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정 정도의 주권이 미국에 양도되어 있는 상태이니까요. SOFA 내용의 각 나라 별 차이가 있다고 할까요. 그런 특이한 상태이기 때문에 전통적 제국주의론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국을 용인하자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김기협 : 미국 존재에 대해 그렇게 규정한다고 하면, 거기 연계되어서 한국의 국가 성격도 현실적으로 규정되는 측면이 있겠죠.

김동춘 : 그렇죠. 그렇게 보면 한국이 주권을 100퍼센트 확보한 국가라고 하기에 현실적으로 안 맞는 측면이 있지요.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가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옹호하는 게 지배 엘리트들의 역할일 테지만, 거기서도 한국과 미국의 국가 위상이 아예 다르다는 현실의 레이어가 있음을 받아들여야겠지요.

국가는 힘이 세다

 

▲ 김기협 역사학자·<해방일기> 저자. ⓒ프레시안(최형락)

김기협 : 2000년 <전쟁과 사회>, 올해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를 내기까지 여러 곡절을 겪었던 시기의 정치적 배경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입니다. 공화당에서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권력을 운용하는 주류 세력이 있었고, 거기에 반대하거나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생각했던 세력이 정권을 잡고 10년간 국가 운영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모처럼 권력을 넘겨받고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비판들이 있지요.

그러한 한국 현대사의 고충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당 혹은 세력이 정권을 잡느냐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존재 양식 자체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김동춘 : 거기에도 근본주의적인 접근과 현실주의적 접근 사이에 긴장이 있습니다. 1948년 이후로 대한민국의 권력은 줄곧 변함이 없었다는 극단적인 반미민족주의의 입장이 있고, 1987년 민주화 이후로 생겨난 정치적 공간이 있는데 이것의 역할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운동 진영에서 나타나는 입장의 차이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제가 4년간 제도권에 있으면서 절감했던 게 있다면, 역시 국가와 정권-정당의 기반이라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정치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으레 정당 정치를 떠올리지요. 그런데 제가 후배들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했던 게 있습니다. "정치, 정당이 하는 거 아니야. 검찰이랑 경찰이 하는 거야." 만약 박정희 정권 때라면 그 자리에 중앙정보부가 들어갔겠지요.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었을 때도 원하는 대로 입법도 못 했고, 그 법이 통과되었다 하더라도 법을 적용할 때 정당을 넘어서는 힘 앞에 멈출 때가 많았습니다. 행정자치부의 힘은 막강합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예산권을 가진 쪽과 물리적 강제 수단을 가진 쪽이고요. 입법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실천 과정에서 계속 부딪치는데, 거기에서 힘을 가진 기구들이 협조 안 하면 그만인 거죠. 그런 기구마다 또 오랜 역사와 나름의 조직 문화가 존재하고요.

진실화해위에서의 4년간은 정당을 넘어서는 국가의 힘을 피부로 느끼고 제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건 심지어 대통령조차 함부로 못 할 정도의 힘이지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좌초, 심지어 정권이 끝난 뒤에도 자살로 몰리게 할 정도의 비극이 우리 사회의 엄혹한 역관계를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기협 : 현대국가의 형식적인 요건이라고 하면 헌법에 의거해 법을 존중하는 정치일 텐데요. 그런데 요즘 헌정이 유지되고 있는 건가 의심스러운 사태가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루신 문제 역시 전부 헌정 파괴라는 혐의를 갖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그럴 때 가해자를 국가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국가를 끼고 있는 어떤 집단이나 권력자라고 봐야 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동춘 : 가해자 개개인은 국가 권력의 대행자들일 테고, 그 사람들이 초법적이고 위헌적인 행동을 반복해도 그걸 옹호·정당화하거나 혹은 처벌하지 않고 놔두는 힘이 근본적인 가해 주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법전에 나와 있는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나 직접적인 물리력으로 존재하는 것일 테고요. 이는 평범하다 생각될 정도로 우리가 매일 매일 확인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전두환 추징금 환수 작업은 왜 그동안 안 하거나 못 했을까, 청문회에서 위증을 해도 왜 처벌을 받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해 보면 알 수 있어요.

법 지배의 원칙은 가해자 개인을 색출해 단죄하고 처벌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현실 속에서는 그 가해자들의 행동을 끊임없이 뒷받침해주는 이데올로기를 어느 정도 균열 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헌법(정신)이란 게 다수의 생각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중의 인식의 지평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겠지요. 그 지형을 약간만이라도 변화시키는 것이 역사의 발전일 테고요.

이 점에서 사회학자인 저는 아무래도 법학자들과는 다른 관점입니다. 법학자들은 법적으로 잘 따지면 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전 사회를 보고 '안 될 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법으로 단죄하자고 해도 그게 다 사회가 움직여주는 만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관여한 문제에 대해서도 애초부터 '이 정도까지라도 가면 아주 잘 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피해자 유족 분들이 들으면 약간 섭섭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요.

 

ⓒ프레시안(최형락)


해방은 진정한 해방이었는가

김기협 : 지난 3년간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해방일기'를 얼마 전 마무리했습니다만, 그동안 깨우친 사실 중 하나가 '해방은 진정한 해방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하면 1945년 8월 이전에도 국가란 것이 존재하기는 했다는 사실일 텐데요. 이 연재는 45년 8월부터 48년 8월까지의 미군정 시기를 다루는데, 그 3년을 세밀히 뜯어보니까 당시 사람들에게 식민지 시절이 그리웠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적어도 남조선에 있는 사람들은 말이지요. 민생의 조건부터 시작해서 폭력과 보복의 연속 등 많은 면에서 일제의 식민 통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고요.
 

▲ <해방일기>(1권, 김기협 지음, 너머북스 펴냄). ⓒ너머북스

그게 제국주의 국가의 총독지배였기에 문제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현실 차원에서는 (미군정기보다) 오히려 국가답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48년 정부 수립 이후는 아직 세밀히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이때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즉 분단이라는 명목상의 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이때의 국가도 우리 민족의 국가라고 이야기할 만한 실질적인 조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었을까 회의적으로 봅니다.

제 작업은 48년 8월에서 끝났기에 이런 것까지 확신할 수 없지만, 선생은 그 이후의 일들을 많이 살펴보셨지요. 제가 식민지 시대와 미군정 시대의 상태를 국가로서의 실질적 의미로 비교하는 관점에 비추어, 미군정 이후의 상황은 어땠다고 보십니까.

김동춘 : 말씀하신 대로 일제 강점기가 물론 고통스러운 세월이긴 했으나, 해방 이후에 펼쳐진 것과 같은 엄청난 폭력과 빈곤의 만연은 비교적 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태가 계속될 수는 없는 체제였지요. 탈피는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만일 미·소 양 강대국이 분할 점령을 하지 않았더라고 해도 정치 폭력을 비롯한 광범위한 진통이 발생했을 겁니다. 탈식민지 공간의 폭력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했으니까요. 그 진통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국주의는 늘 떠날 때 분열의 씨앗을 뿌리고 떠나 다시 개입할 명분을 만듭니다.

어쨌든 크게 본다면 양 강대국의 개입이 가장 결정적인 변수였음에는 틀림이 없고, 이 변수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45년 말~46년 초에 송진우나 장덕수 같은 분들이 암살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한민당도 친일 혹은 지주세력을 중심으로 재편되기보다는 건강한 민족주의 세력, 우익 중에서도 반 이승만 우익 세력들의 설 자리가 있는 정당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48년까지의 미군정이라는 압도적 변수가 남한 내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뒤집었고, 그 과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좌익들의 공세와 극도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던 우익들의 공격성이 결합해서 걷잡을 수 없는 정치 폭력에 다다랐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쪽에서 김일성이 내려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남한 내에서 준 내전 정도의 정치 폭력이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방 이전의 한반도 상황과 해방 이후 분단을 겪을 것을 가정하고 '어느 국가가 더 나았느냐'라고 물을 수야 없겠지만, 민(民)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 이후의 공간이 일제 강점기보다 혹독했던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자료를 토대로 통계를 내 보면 1948년부터 53년까지의 기간에 일제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고문, 학살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김기협 : 1950~53년은 전쟁 중이라 비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는데, 48년부터 50년까지도 그랬습니까?

김동춘 : 1948, 49년 그리고 50년 전쟁 이전까지 전국의 모든 경찰서에서 고문이 이뤄진 정도였습니다. 아주 작은 파출소에도 고문 도구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1948년 말에 국가보안법이 공포되고 1년 만에 10만 명이 체포되었는데, 이들 모두 크고 작은 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그 규모나 양, 강도를 봤을 때 일제 강점기 때보다 심했을 거라고 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현실을 느끼면 역사가 보인다

김기협 : 책에도 묻어나지만 아쉬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게 또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동춘 : 제 본연의 연구자로서의 입장을 앞세운다면, 저는 전부터 한국전쟁의 진실 가운데 보통 한국인들이 경험했던 진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거기엔 피학살자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월북자, 실종자, 혹은 군에 징집되었던 보통 한국인 남성들이 있지요. 군사적·외교적·정사적 진실에 비해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총 2만 5000여 명이 징집되었으리라 추산되고 그 중 상당수가 실종, 사망했는데 이를 국가가 전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나오지만 길거리에서 그냥 잡아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또한 당시 국제법상 17세 미만은 징집 불가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고요. 더 비참한 것은 전장에 나갔다가 거의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 온 청년들이 있었는데, 징집 기록이 없어서 두 번 입대한 경우도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에 있을 때 꽤 많은 숫자가 접수되었어요. 군대 두 번 가는 거, 한국 남자들에게 제일 큰 지옥이지요.(웃음)

돈 많은 이들은 징집에서 빠지고 돈 없는 이들은 전장에서 죽음을 맞고…. 이런 보통 한국 남자들의 경험이 한국전쟁의 진정한 진실일 텐데, 그것이 충분히 밝혀져야만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을 텐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연구자 입장에선 굉장히 괴로운 일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일방적 정보만 전달받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은 거의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에 가 있습니다. 저 용산의 끔찍한 전쟁기념관에 박제된 채로요. 정부 기구에 들어가서 일하면서도 우리가 수집한 기록, 사료들을 평화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담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었어요.

김기협 : <전쟁과 사회>의 중요한 테마가 이 전쟁이 우리들에게 내면화되어서 계속되고 있다는 건데요. 그런데 80년대까지 그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 뒤로는 약화된 셈이고요. 그런데 이 추세를 낙관적으로 보십니까? 전쟁 국가로서의 성격을 벗어나는 길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김동춘 : 기억은 정치라고 봅니다. 어떤 건 과도하게 기록하려 하고 어떤 건 완전히 망각하는 게 곧 정치이지 않습니까. 지금 한국도 전쟁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의 국가 폭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건 단지 용역 폭력에 대한 경찰의 묵인처럼 물리적 차원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합리적인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는 정당 간 경쟁이라든지, 내부 고발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보복, 위험하다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사찰까지, 지금은 말하자면 목숨이 아니라 일자리를 끊는 방식으로 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과장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전히 동일한 종류의 국가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국가 기관이 일개 시민한테 명예훼손 소송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요. 국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일반인이 쟁송에 휘말린다는 것은 돈과 시간, 정신적인 파괴를 의미합니다. 과거는 물리력이었다면, 지금은 법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내부의 반대자들을 완전히 파탄시키고,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검열하게 만드는 교육적인 효과까지 거두고 있습니다.

김기협 : 우리가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생각이 대대적으로 드러난 것은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에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굉장히 놀란 사람들이 많았어요. 전시라는 마인드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온 선생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주변 사람들보다 그런 일들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나요.

김동춘 : 저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굉장히 취약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심하게 말해 하루아침에 깨질 수 있는 유리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회의적인 글을 많이 썼습니다. '민주화 된 한국'은 기업 사회라고, 거기서 관철되는 방식은 과거의 전체주의적인 방식 거의 그대로라고요.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정치적 반대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고문당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까지는 진전했지만, 사회적으로 폐기될 수 있는 위협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에서 적시한 대로 청산되지 않은 한국전쟁과 얽혀 있고요.

그런데 이 원인을 분단 문제로만 환원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권력과 계급 차원의 문제가 저간에 깔려 있습니다. 어떤 권력이든지 자신들에게 정치적 위협이 된다면 법과 폭력을 사용해 누군가를 억압할 수 있는 준비하고 있으며, 민주적인 시민들이 제재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이쪽의 견제하는 힘이 약해지는 순간, 폭력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아르헨티나의 과거 군부정권 아래에서 '더러운 일'을 했던 군인들은 지금 월마트에 고용되어 노조 파괴 작업에 종사하고 있다. 월마트의 노동자 감시 체제는 과거 군부 정권이 유지하던 국가적 감시 체제의 연장이다. 그 작업에 과거 학살과 고문의 가해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것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청와대 주도의 민간인 불법 사찰, 용산 참사, 쌍용차 문제 등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을 목격했는데, 나는 이것이 한국 정치의 저류에 흐르던 국가폭력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았다." (6~7쪽)

김기협 : 문제들은 역으로 기억이 흐려짐으로써 극복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과 관련해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생각나는데, 9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통일 시대의 역사학에 관한 학술대회 토론 중에 어느 교수가 독일 사례를 언급하면서 '독일 통일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조건 중 하나는 민족사 교육의 부재였다'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서독에서는 서독 식의 독일사, 동독에서는 동독 식의 독일사를 가르쳤다면 통일이 오히려 더 어렵지 않았을까, 이런 취지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앞으로 전쟁에 대한 기억, 혹은 기억과의 전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특히 한국전쟁에 대한 감각이 더욱 희미해지는 시대에 젊은이들에 대한 바람과 당부를 듣고 싶습니다.

김동춘 : 역사 교육이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요. 그러나 제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때부터 역사가 다시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민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노력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제들을 얼마나 자기 피부로 느끼고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야만 역사와 현실 사이를 오갈 수 있고요.

2000년 무렵 참여연대에서 활동할 때, 롯데호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호텔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이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어 보고 처음으로 파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파업 중 어느 날 경찰이 와서 "손 뒤로 하고 엎드려"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가씨들이 '광주(5.18 민주화운동)는 옛날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 뭐였는지 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폭력이 자행되는 현실이 자기 피부로 와 닿았을 때,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있음을, 현재 속에 과거가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죠. 한국전쟁의 문제들 역시,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도 알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공부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기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느냐, 과거에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폭력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기협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직장을 빼앗는 것이 덜 가혹하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과거엔 거친 수단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훨씬 더 정교한 방법으로 탄압과 억압이 이뤄지고 있기도 하고요. 바로 목숨을 끊는 게 아니라 숨을 못 쉬도록 하여 서서히 목을 죄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김동춘 : 네. 그러니까 우리는 현실로부터 전쟁을 추체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의 부친이신 김성칠 선생님의 일기(<역사 앞에서>(김성칠 지음, 정병준 해제, 창비 펴냄))를 읽고 너무나도 강렬한 리얼리티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끊임없이 전선이 바뀜에 따라 하루는 대한민국이, 하루는 인민공화국이 되는 혼란 속에서 이 비극을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그건 제가 운동 세대로서 답을 요구받은 질문들과 비슷했기 때문에 훨씬 더 가깝게 육박해 왔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라고 그 고리가 없을까요. 있죠. 회사에 노조가 있다고 칩시다. 거기 들어가면 힘들지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는 거지요.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똑같은 문제에 직면합니다.

자기 문제를 고민하면서 역사를 보면 정말로 역사가 보일 겁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하잖아요. 문제는 반복입니다. 역사를 모른다고 질책하기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과거를 함께 고민하면 훨씬 더 정확한 이해해 이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기협 :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의 다음 작업도 기대하겠습니다.

 
 
 

 

/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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