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청문회에 나와서 질의를 듣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장관 후보자 검증] 의정활동을 통해 살펴 본 김부겸·김영춘·김현미·도종환의 전문성은?
김부겸·김영춘·김현미·도종환 등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 4명이 문재인 정부의 각료로 지명됐다. 4선 중진 김부겸 의원은 행정자치부 장관에, 3선 김영춘, 김현미 의원은 각각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장관에 지명됐다. 재선의 도종환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현역 정치인의 입각이 드문 사례는 아니다. 참여정부에서는 이해찬·한명숙·김진표·김근태·정세균·천정배 등 10명의 정치인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각각 이재오·주호영·임태희·유정복·정병국 등 총 11명의 정치인을 기용했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완구·최경환·황우여·유일호 등 의원 8명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현역 정치인 입각을 통해 정부의 정무적 판단을 강화시키고 당청 간 소통도 원활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입각할 현역 정치인이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적 소양 혹은 비전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실상 선거 결과에 대한 논공행상 차원의 '전리품 나누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는 14, 15일 열릴 이들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점이 주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오마이뉴스>는 김부겸·김영춘·김현미·도종환 등 장관 후보자 4인의 의원 시절 대표 발의한 법안들을 살펴봤다.
[김부겸] 대표 발의법안만 아니라 정치적 행보로도 확인된 '지역균형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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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화기 든 김부겸 행자부 장관 후보자 30일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부겸(대구 수성갑·4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윤식 행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 |
| ⓒ 남소연 | |
김부겸 후보자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경기 군포시에서 당선된 이래, 17대 국회(경기 군포시), 18대 국회(경기 군포시), 20대 국회(대구 수성갑)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이 기간 중 그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현 안전행정위원회)뿐만 아니라 정무위원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현 외교통일위원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 등 다양한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의정활동 기간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38건이다. 구체적으로는 16대 국회에서 9건, 17대 국회에서 8건, 18대 국회에서 13건, 20대 국회에서 8건을 대표 발의했다. 이 중 행자부 장관 후보자로서의 소양을 엿볼 수 있는 법안은 지난해 7월 발의한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공공기관 이전)'과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지방대학 육성)'이다.
공공기관 이전 관련 법률안은 그간 '권고사항'이었던 지역인재 채용을 '의무사항'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행법상 혁신도시 등 지방에 이전한 공공기관장은 이전한 지역에 소재한 지방대학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거나 졸업예정인 사람을 우선해 고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으면서 지역인재 채용비율이 2014년 10.3%, 2015년 13.3%에 불과했다.
이에 김 후보자는 혁신도시 등 지방에 이전한 공공기관이 신규 채용인원의 40% 이상을 이전한 지역의 인재로 채용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그 결과를 해당기관 경영실적 평가 등에 반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역인재의 채용 기회를 확대하여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지방대학 육성 관련 법률안도 같은 내용이다. 현행법상 공공기관과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인 기업은 신규 채용인원의 일정비율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통령령을 통해 그 일정비율을 35%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의 경우처럼 '권고사항'에 불과해 그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김 후보자는 신규 채용인원 중 지역인재의 채용비율을 40% 이상으로 상향조정해 법률에 직접 규정하는 한편, 민간기업에 대해서는 '권고사항'이되 상시 근로자 200인 이하 기업으로 그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외에 저임금을 받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근로자 등에게 최소한의 인간적·문화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지방자치단체 생활임금법안'도 행자부 업무와 관계있는 법안으로 보인다.
사실 김 후보자는 이러한 대표 법안발의 외에도 정치적 행보를 통해서 지역균형발전 그리고 지역갈등 타파라는 행자부 장관 후보자로서의 비전을 내보인 바 있다. 그는 2012년 20대 총선 때 "한 지역구에서 4선 국회의원은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면서 민주당 소속으로는 극히 당선이 어려운 대구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낙선했다. 2014년 대구시장 때도 40.33% 득표율로 낙선했으나 그의 도전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도전으로 높게 평가받았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62.30%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영춘] 해운업 살리기-수산인 돌보기 법안 눈에 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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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 후 질문받는 김영춘 해수부 장관 후보자 30일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영춘(부산 부산진구갑·3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 ⓒ 남소연 | |
부산 출신의 김영춘 후보자는 2000년 16대 총선 때 서울 광진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17대 국회(서울 광진갑), 20대 국회(부산 진구갑)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이 기간 중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예산결산특위 등에서 활동했고, 현재 해양수산부를 감시·감독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맡고 있다.
의정활동 기간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46건이다. 구체적으로 16대 국회에서 6건, 17대 국회에서 20건, 20대 국회에서 20건을 발의했다. 이 중 해수부장관 후보자로서 주목할 만 한 법안은 지난 5월 발의한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3월 발의한 '선원법 일부개정법률안', 그리고 지난해 11월 발의한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다.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어획량 등을 결정하는 한일어업협정의 결렬·지연으로 2016년 7월부터 장기간 조업이 중단된 어업인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한 법안이다. 김 후보자는 이 법안을 통해 관련 문제로 조업구역 및 어업량 등이 제한되는 어업인들이 대체어장에 출어하는 경우, 그 출어비용을 수산발전기금에서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김 후보자가 해당 상임위원장임에도 이례적으로 직접 제안 설명에 나섰던 법안이기도 하다. 이 법은 해운시황을 분석해 독자적인 해상운임 개발 및 선박 가치평가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관, 즉 해운거래소를 지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국내 해운 업계가 시황분석, 효율적인 운임 변동 관리 수단이 부족해 대규모 시황 침체가 있을 때마다 유동성 부족 등을 맞게 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이 법안은 당시 한진해운 파산 등 국내 해운업계의 위기가 대두됐던 시기에 발의돼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김 후보자도 당시 제안 설명에서 "중요한 법안임을 강조하고 싶어 관례를 무릅쓰고 직접 제안 설명에 나섰다"면서 "한진해운 청산이 우리 해운사업 및 부산 경제에 미칠 여파를 해운거래소 신설로 상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 이력 없지만 '주거복지'-'4대강 비판'에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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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부 장관 후보 내정된 김현미 '함박웃음' 30일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현미(경기 고양정·3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 ⓒ 남소연 | |
김현미 후보자는 2004년 17대 총선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해, 19대 국회(경기 고양 일산서), 20대 국회(경기 고양정)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이 기간 중 그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했다.
의정활동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72건이다. 17대 국회에서 12건, 19대 국회에서 31건, 20대 국회에서 29건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들도 주로 '관세법 일부개정법률안', '장애인기업활동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세제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대다수다.
이처럼 상임위 활동, 대표 발의법안들만 보자면, 국토·교통 이력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재정을 통한 주거복지 등에 초점이 맞춰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공약을 감안할 때 관련 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와 국회 간 '가교' 역할로서 적절한 인사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김 후보자는 지난해 여성의원 최초로 국회 예결위원장까지 맡아 2017년 예산안 통과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김 후보자가 다른 동료의원과 함께 공동 발의한 법안들을 봐도 주거 복지와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지난 6월 양승조 의원 등과 공동 발의한 '공공주택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신혼부부를 공공주택 우선공급 대상에 추가하고, 관련 세제지원의 목적을 저소득층 주거안정뿐만 아니라 청년층·고령자·저소득층·신혼부부 등의 주거안정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주택 임차인이 4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보인다. 김 후보자가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낸 '4대강 및 문화재 복원을 위한 특별법'은 4대강 사업의 추진과정과 효과를 검토하여, 인공구조물의 해체, 4대강 및 문화재 복원여부를 결정하고, 이 법에 따른 사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4대강 복원 위원회'를 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도종환] 시인 출신 장관 후보자, 문화·예술 진흥에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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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은 2016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질의 모습 | |
| ⓒ 유성호 | |
시인 출신의 도종환 후보자는 2012년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입성했다. 이후 20대 총선 때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서 당선됐다. 주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했고 현재 민주당 간사이기도 하다.
의정활동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52건으로 19대 국회에서 34건, 20대 국회에서 18건을 발의했다. 20대 국회의 경우만 따로 볼 경우, 대표 발의법안의 80% 이상이 교문위 관련 법안이었다.
이 중 문화·예술 진흥에 관련된 법안들이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영화배급업 겸영에 일정한 규제를 가하여 영화상영관 독과점 피해를 방지하고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12년 발의한 '지역문화진흥법안'은 문화의 수도권 편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적·재정적·제도적 지원 등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고, 같은 해 발의한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당시 현행법에 '문화예술' 개념에서 빠져 있던 만화를 포함시키는 법적 미비점을 해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방송과 관련한 법안들도 주목된다. 2014년 발의했던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당시 현행법상 비위사실이 있는 사람도 이사로 선출되는 등 실효성에 문제가 있던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의 결격사유를 확대하여 방송의 공적책임을 실현하도록 했다. 2014년 발의했던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전원구조' 오보 사태 등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발의됐다. 재난·재해 관련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의하고, 언론을 대상으로 재난보도 관련 교육 실시하는 등의 내용이 주된 골자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청문회에 나와서 질의를 듣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엄마는 알고 싶었다. 한열이는 살려고 도망가다 죽은 것일까, 아니면 군사 독재에 맨주먹으로 투쟁하다 죽은 것일까. 최루탄을 맞고 앞으로 팍 고꾸라지는 순간, 무슨 말을 했을까.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쓰러졌을까, 아니면 그저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쓰러졌을까.
1987년 6월9일 오후, 2남3녀 중 넷째 큰아들이었던 이한열(사망 당시 22)은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피를 흘리던 아들의 모습은 6월 민주항쟁에서부터 6·29 대통령 직선제까지 이어지는 개헌의 기폭제가 됐지만, 아들은 26일 뒤인 7월5일 최루탄 파편에 의한 뇌손상으로 인해 끝내 숨졌다.
“뭔가 알고 싶어서 거리에서 살아왔지만,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뒤돌아보면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내 아들만 없어져버렸네요.” 30년이 지났지만 ‘건강했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엄마가 채 하지 못한 질문에 답해줄 유일한 사람, 아들은 이 세상에 없다. 답을 얻지 못한 엄마는 30년간의 삶에 대해 “허탈하다”고 했다.
이한열 피격 30주기를 맞아 9일 서울 연세대학교, 시청광장 등에서 이한열 기념 문화제가 진행됐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77)씨는 아들이 피격된 학교와 아들의 장례 행렬이 이어진 거리 위를 30년 만에 다시 걸었다. 6월이 되면 가장 바빠지는 삶을 살았던 배씨의 발걸음엔 지난 30년의 모진 세월이 엉겨붙어 힘이 실렸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내리쬐는 땅 아래 내디딘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두 아들을 기억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행사가 있대요. ‘못 가’ 소리 못하죠.”
9일 오전 11시. 옷깃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모양의 배지를 단 배씨가 벽화 ‘청년’ 복원 기념식이 열리는 서울 경희대학교 문과대 건물 앞에 도착했다. “경희대에서도 와보라고 해서, ‘못 가’ 소리 못하고 온 거죠. 행사 자체가 이한열이에 관한 것이란 말이에요. 그분들이 그때 당시 벽화를 그려 놓은 것을 복원을 했다고. 자기들 학교 동기도 아닌데, 그런 거 생각하니까 참 고맙더라고요.”
‘청년’은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해 1989년 경희대 문과대학(당시 문리대학) 흰색 벽에 그려진 가로 11m, 세로 17m 크기의 벽화다. 6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통일과 민중에 대한 염원을 담는 의미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청년의 모습이 담겼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낡고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화를 경희대학교 졸업생들과 학생들이 지난 5월28일부터 2주간 복원했고, 이날 복원 기념식이 열렸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경희대학교 민주동문회 등 약 100여명이 참석한 기념식에서 배씨가 축사를 하기 위해 무대에 섰다. 배씨는 경희대학교에서 ‘청년’의 이름으로 된 벽화가 남아 있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감격스럽다며 말을 이었다. “30년 전 우리 청년들이 지금 반백이 됐습니다. 반백이 된 우리 청년들의 모습이 여기서 부활한 것 같습니다. 그 속에 내 아들의 모습도 있겠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5, 4, 3, 2, 1!”
참가자들의 구호와 함께 벽화를 가리고 있던 천막이 걷히자, 주먹을 불끈 쥔 청년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박수를 치며 벽화를 바라보던 배씨가 말했다. “벽이 저절로 무너질 일은 없으니, 우리 세대, 다음 세대 계속 보존되어야겠죠.”
벽화 복원 기념식이 끝난 뒤, 배은심씨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소속 회원들과 함께 벽화 ‘청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유가협 공동의장인 배씨는 고 장현구 열사 아버지인 장남수 유가협 회장, 고 김윤기 열사 어머니인 정정원 부회장 등 유가협 회원들 10여명과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배씨에게 유가협 회원들은 같은 고통을 안고 사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1987년 7월 아들의 장례를 치른 뒤 고통스러워하던 배씨는 그해 8월 유가협 창립 1주기 행사에 참석했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만나 큰 위로를 받았다.
유가협 활동 덕분에 전국의 시위 현장을 누비는 삶도 시작됐다. 배씨는 1998~99년 유가협 회장을 맡아 자식 잃은 부모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1999년에는 국회 앞에서 274일간 천막농성을 하며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할 말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활동이었다.
“유가협에서는 매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때(80~90년대) 많은 아들딸들이 죽어갔고, 하나같이 돌아가면서 추모제 하는 거예요. 지난번에도 숭실대 박래전 추모제에 가서 사람들 만났는데, 매번 하는 일이 그거예요. 추모제에 못 가면 내가 섭섭할 정도로,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뭔가 알고 싶어서 거리에서 살아왔지만
“스스로 내가 미운 거야. 밥을 못먹다가도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불러줘서 감사해요.”
이한열 열사 30주기 추도식이 진행된 서울 연세대학교 한열동산. 오후 3시가 되자 뜨거웠던 햇볕이 걷히고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8769757922’. 이한열이 최루탄에 피격된 날짜(1987.6.9), 숨을 거둔 날짜(7.5), 장례식을 치른 날짜(7.9), 숨졌을 당시 나이(22)를 연이어 새긴 기념물 앞에 배은심씨가 앉았다. 이한열의 대학 후배들이 매년 6월마다 치른 추도식도 올해로 서른번째다. 배씨는 지난 3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도식에 참석했다.
“당신께서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이 됐느냐’ 하고 물으면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은데, 후배들에게 내준 숙제가 너무 어려워 입이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30년째 지속되는 침묵의 호통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김현수 연세대학교 상경·경영대 학생회장의 추도사가 시작되자, 추도식 식순이 적힌 종이를 쥐고 있던 배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한열을 잊지 않고 행사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힘든 몸을 이끌고 찾아와주신 어머니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배씨는 추도사를 끝낸 김씨를 말없이 끌어안았다. 추도사가 끝나고 헌화가 시작되자 흐렸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연세대에서 한열이 후배들이 추모제 해준 것도 30년이 됐네요. 이한열이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는 게 참,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미안한 감도 들고.” 배씨는 한열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후배들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매년 힘든 일을 하게 한다는 생각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추모제 할 때는 도서관 앞에서 하는데, 거기서 마음이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학생들 공부하는데 시끄러우니까. 그래서 항시 미안했어요.”
미안한 마음은 아들의 친구들에게까지 옮겨갔다. “이한열 부축했던 종창이가 30년 동안 상당히 마음이 아팠어요. 오늘부터 종창이 (그) 마음 털어버리고 세상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상호(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총학생회장도 마찬가지예요. (한열이가) 좋은 후배가 됐으면 괴롭게 안 했을 텐데, 그것이 참 괴롭네요. 이 나라가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지, 여기서 추모제 하는 것은 부속에 불과해요.”
“춤으로 그때 상황 기억하는 마음이 고맙죠.”
1987년 7월9일. 무더웠던 초여름날이 아들의 장례식이었다. 끝까지 아들이 깨어날 것이라 믿었던 배은심씨는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연단에 올라 절규했다. “이제 다 풀고 가거라. 엄마가 갚을란다, 한열아! 한열아! 가자, 우리 광주로!” 엄마는 영정사진 속에 담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연세대학교에서 서울시청 광장으로 이어진 장례 행렬을 따랐다. 시청에서는 1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쳤다.
저녁 6시. 30년이 지나 서울시청 광장에서 진행된 이한열 장례행진 재연 행사에서 이애주 전 서울대 교수의 ‘진혼의 춤’ 베가르기 춤사위 공연이 재연됐다. 30년 전 이애주 교수는 흰 민복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며 이한열의 운구 행렬을 이끌었다. 바람을 맞아 생명을 잇는다는 의미의 ‘바람맞이춤’이었다. 연세대학교 동문들과 이한열 장학생들이 양쪽에서 베를 들자, 이애주 선생은 30년 전 그랬던 것처럼 베를 가르며 당시 춤을 재연했다. 배씨는 30년 전 그날이 떠오르는 듯 공연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다.
“이애주 선생님이 춤췄던 것도 기억이 나요. 이 춤이 이쁘게, 멋지게 추는 춤이 아니잖아요. 춤으로 인해서 그때 상황을 기억하는 거라서, 춤추시는 분의 마음이 있어야 춤이 안 나오겠습니까.” 배씨가 말했다. “춤추시는 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때로는 춤으로 인해서 눈물도 나오고 참 고맙습니다.”
배씨는 이날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났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30명의 ‘416 합창단’은 노란색 옷을 입고 광장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사람’, ‘약속해’라는 제목의 곡을 합창했다.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곧은 자세로 무대를 바라보던 배씨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지난달 17일, 전라남도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난 배씨의 영상이 화제가 됐다. 배씨가 그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내 맘이 먼저 아파야 이 아픔도 전달이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그 사람들보다 먼저 아팠고, 그것이 전해진 거예요. (세월호 가족들은) 지금이 참 많이 울 때예요. 난 30년이 지나도 많이 울고 있는데 이제 3년이 됐잖아요. 눈물이 밥이에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밥은 먹으니까. ‘눈물이 밥이다.’ 그래요 항시. 똑같은 사람들끼리 뭔 얘기를 하겠어요. 밥 먹고 힘내시오. 그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자꾸 30년 해싸니까 이상해. 엊그제 같은데.”
지난 7일 저녁,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이한열 30주기 기념전시회 ‘2017이 1987에게’에 참석한 배은심씨는 30년 만에 공개된 아들의 피격 직후 사진 앞에서 한참을 흐느꼈다. 혹여 손으로 느껴질까. 배씨는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는 아들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치기를 반복했다. “30년을 살았는데 남는 건 사진밖에 없고, 참 허탈하네요.”
지난 30년, 배씨의 삶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아들을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좋아도 좋은 것도 모르고, 항상 마음이 괴롭게 살았던 나날들’이었다. 배씨는 최근 아들의 사진을 신문에서 봤을 때에도 마음이 아파 밥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사진을 볼 때마다 항상 힘들어서 아침을 못 먹었어. 그러다가 점심때 늦게 배가 고프더라고. 그게 인간이야. 그래서 그것도 미워. 스스로 내가 미운 거야. 밥을 못 먹다가 오후에 누룽지를 끓여 먹고 그랬는데.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그게 30년 세월이야. 오히려 30년이라고 하는데 나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아직도 바로 어제 일 같아요.”
‘허탈했던’ 지난 30년의 시간. ‘집에 가만히 있으면 버틸 수가 없어’ 거리에 나선 그 시간들을 버틴 엄마는 아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한열아 왜 그때 그 자리에 서 있었어?’ 물어보고 싶은 것밖에 없어요. 30년 동안 갖고 있던 질문. 기가 막히니까 할 말이 없고, 그냥 왜 그랬냐고 묻고 싶고, 그것뿐이에요.”
황금비 기자, 임세연 최호진 교육연수생 withbee@hani.co.kr

8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조기총선에서 '압승'을 자신했던 집권 보수당이 과반의석을 상실할 것이라는 출구조사로 충격에 빠졌다.
BBC 등 방송 3사가 이날 투표 마감 직후 발표한 공동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수당은 제1당은 유지하지만, 과반의석(326석)을 간신히 넘긴 330석에서 오히려 16석을 잃은 314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제1야당인 노동당은 37석이 늘어난 266석,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34석, 자유민주당은 14석 등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영국 언론들은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얻지 못해, 어느 당도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헝 의회(Hung Paliament)'가 출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 근소한 과반에서 더 많은 표를 얻어 '하드 브렉시트 협상'에 나서겠다며 조기 총선을 요구한 메이 총리. 8일 출구조사 결과 집권 보수당이 오히려 과반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됐다. ⓒAP=연합
<뉴욕타임스>는 "출구조사가 개표로 확인되면, 3년이나 앞당긴 조기총선을 요구한 테레사 메이 총리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조기총선의 취지대로라면, 조만간 재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메이 총리가 2년만에 조기총선을 요구한 것은 '브랙시트 협상'을 위해서는 과반수를 조금 넘긴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의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바닥인 여론의 동향을 볼 때 조기총선으로 의석수를 대폭 늘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의 적임자'로서의 단호한 의지의 '철혈여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당내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추앙받았으나 '불통의 여인'으로 추락했다.
재가요양 서비스 비용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던 복지정책을 노인이 보유한 주택의 가치까지도 소득 기준에 포함해 집을 가졌지만 소득은 없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갑자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혔다. 이 공약은 보수당의 주지지층인 노인층의 분노뿐 아니라 노인을 둔 가정의 많은 유권자들을 돌아서게 했다. 당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 공약을 관철시켰던 메이는 비난이 거세자 곧바로 이 공약을 철회하겠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오락가락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지난 4월 메이가 조기총선을 발표했을 때 보수당과 노동당 지지율 격차는 20%포인트가 넘었지만 이 공약이 발표된 직후에 8%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뉴욕타임스>는 "영국 정부가 어떻게 구성될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2주내에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된다"고 지적하며, 이번 영국 총선 결과는 영국 국민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선택하며 전세계에 파장을 던진 것처럼, 또다시 전세계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반영하듯 출구조사 직후 영국의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2%가 넘게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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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1987 우리들의 이야기' 특별 온라인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시회 내용 가운데, 가상 시민 인터뷰와 시대적 풍경이 기록된 사진 등을 갈무리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사리암의 50대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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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영가 49재 천도식 |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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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군의 49재를 맞아 서울 시내에서 진행된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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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3월 3일 어깨동무를 하고 청계천을 지나고 있는 시민들 |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오늘은 1987년 3월 3일입니다. 경찰 고문에 희생된 박종철 군의 49재 날이에요. 그런데 거리엔 최루탄만 날리네요.
조계사에서 범종단적으로 올리기로 했던 박종철 군의 49재가 결국 취소됐다는 소식이에요. 보이지 않는 압력에 밀려 조계사 대신 부산 괴정동의 작은 절로 바뀐 거지요. 경찰은 쫓고 시민은 쫓기는 험한 모습이 하루 종일 전국에서 펼쳐졌어요. 전투경찰이 도시를 봉쇄하고 거리를 장악해 버렸거든요. 온 세상이 깊은 슬픔과 매운 최루탄으로 뒤덮인 하루였어요.
지난 2월 7일 거행된 박종철 군 추모식 때에도 정말 서럽고 죄송했어요. 경찰이 절 입구에 진을 치고 있어 박종철 군 친척들도 못 들어왔대요. 스님들도 모두 자리를 슬며시 피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박군의 어머니와 누나가 추모 타종만 겨우 울렸대요. 젊은 생명을 그렇게 보낸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사람들이 모여서 추모도 하지말라는 건 어느 나라 법도란 말인가요.
부끄러워서 부처님 뵐 낯도 없네요. 사람이 사는 세상에선 사람이 해야할 예의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젊은 승려들과 시민들이 전국에서 최루탄을 뚫고 49재를 올렸다고 하니 고마움의 작은 빛이 비치는 것만 같아요. 나무 아미타불.
박종철 군의 마지막 길에 부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매운 최루탄 대신 온누리에 평화가 가득 차길... 두 손 모아 염원드려요.
형제복지원 사건의 20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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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조회를 끝내고 청소를 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원생들 |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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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3월 14일 명동 입구에서 총을 들고 시민을 검문 중인 경찰들 | |
| ⓒ 박용수·경향신문·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형제복지원은 대한민국의 아우슈비츠였어요. 여기에 잡혀 온 다음부터 내가 본 것은 딱 하나예요. 아수라가 지배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
여기가 처음 생긴 건 1975년이래요. 그러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으로 부랑아 단속을 하면서 수용인원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무자비하게 잡혀 왔대요. 밤늦게 귀가하던 회사원에서부터 바람 쐬러 나왔던 여성까지. 심지어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잡아 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짐승 취급을 받았어요. 가격이 매겨진 동물처럼,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가축처럼 말이에요. 여기서 우리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꽁보리밥에 소금 뿌린 깍두기와 썩은 전어 젓이 전부였어요.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새벽부터 군가를 부르며 구보까지 해야 했어요. 그리고 나선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야 했죠. 차라리 죄수들이 수용된 교도소가 여기보단 나을 거예요.
왜 우리가 매일 맞아야 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많은 원생들이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살해당했지요. 12년 동안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죽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암매장당하거나 해부용으로 팔려 나갔대요. 내가 살아남은 건 정말 천운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아직도 매일 밤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다시는 그런 데로 끌려가고 싶지 않아요. 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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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3월 3일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가두시위에 참가한 학생을 강제로 연행하는 경찰 | |
|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 사진 출처 : 박용수, 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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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8 14: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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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6-07 14:06수정 :2017-06-07 22:01
‘6월항쟁 정신계승 경남사업회’는 7일 “6월항쟁 30돌을 맞아 10일 저녁 6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사거리에서 기념식을 열고, 창동사거리 바닥에 지름 1m 둥근 동판으로 만든 표석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표석은 항쟁 당시 시위대가 마산 양덕파출소를 불태우고 이 과정에서 파출소에 걸려 있던 전두환씨 사진을 떼어내 불태운 한 청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표석엔 또 3·15의거,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밑거름 삼아 6월항쟁이 일어났다는 뜻으로 ‘3월의 의기, 4월의 선혈, 5월의 희생이 6월 민주항쟁으로 꽃피다’라는 글이 새겨졌다. 디자이너인 김의곤 경남사업회 운영위원이 도안했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의 열기로 뜨겁던 1987년 6월10일 저녁 6시 마산에서도 전국 동시다발 집회인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경찰이 행사장인 3·15기념탑 일대를 원천봉쇄하자, 참가자들은 거리행진에 나섰다. 시위대는 마산어시장, 불종거리를 거쳐 마산종합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마침 이날 마산종합운동장에선 대통령배 축구대회 한국과 이집트 대표팀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저녁 6시50분께 시위대가 마산종합운동장 앞을 지나가려 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마구 쏘며 이들을 막았다. 최루탄은 운동장 안으로도 날아갔다. 이집트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나뒹굴기 시작했다. 결국 이집트 선수들은 경기를 포기한 채 퇴장했고, 뒤이어 한국 선수들도 퇴장했다. 주심은 전반 34분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관중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경찰은 이들을 해산시키려고 운동장 밖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흥분한 관중들까지 시위에 참여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3만여명으로 불어났다.
그날 마산 축구경기장에 최루탄
시위대는 운동장에서 500m가량 떨어진 양덕파출소로 몰려가 파출소를 불태우고, 이어 민정당 지구당 사무실까지 불태웠다. 양덕파출소를 불태우는 과정에서 한 청년은 파출소에 걸린 전두환씨 사진액자를 떼어내 불태웠다. 이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20대 청년이 불타는 전두환 사진을 높이 치켜들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 청년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날 마산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200여명에 이르렀다.
조명제 ‘6월항쟁 정신계승 경남사업회’ 사무처장은 “마산에선 6월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까지 1987년 내내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전두환 사진을 떼어내 불태운 장면이 당시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다고 판단해, 이 장면을 6월항쟁 30돌 기념 표석에 새기게 됐다. 이와 함께 전두환 사진을 불태운 주인공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남사업회는 10일 창동사거리에서 표석 제막식에 앞서 이날 오후 4시 ‘제1회 대한민국 패러디·코스프레 축제’를 열고, 제막식 직후엔 기념공연 ‘6월에 서서’를 연다. 또 11일 오전 9시엔 창원시 마산합포구 만날재에서 ‘6.10㎞ 걷기대회’도 연다.
창원/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사진 ‘6월항쟁 정신계승 경남사업회’ 제공
6월항쟁 뜻 새겨 빈민 품은 약사
90년대 도시빈민과 노동자와 함께 하다 예상못한 일로 숨진 고미애(당시 28살)씨가 6월항쟁 30돌을 앞 두고 ‘고미애 약사상’으로 부활했다. 경기 부천시약사회는 지난 3일 부천시약사회 50 년사 출판기념회에서 ‘이웃사랑 고미애 약사상’을 시 상했다. 첫 수상자는 희망재단 아동학대 피해 예방기 금이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천지부가 기금 200만원을 전달했다.
고씨는 부산 출신으로 1984년 숙명여대 약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87년 5월 약대 학생회장으로 선출 되면서 6월항쟁에 본격 참여했다.
당시 같은 대학 음대 학생회장이었던 친구 최도은 (53)씨는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후 고문없 는 세상과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6·10시위를 준비하 던 중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자 연세대에서 미애와 함께 시위를 이어갔다. 6월10일에 는 전체 숙대생 6천명 중 4천명과 함께 서울역 시위에 참여했다. 미애는 88년 졸업과 함께 지역 현장으로 갔 다”고 말했다.
숙대 약대 학생회장 고미애씨
고씨가 동료와 함께 문을 연 아람약국은 당시엔 드문 공영약국으로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었다. 도시빈 민이 많은 이곳에서 그는 낮에는 약국일을, 밤에는 부천 지역민주운동협의회 상임위원과 주거권실현을 위한 부 천연합의 상담실장으로 일했다. 매주 1차례씩 도시 빈민 자녀를 위한 새롬공부방 자원교사로도 일했다. 고씨는 1992년 겨울 구정날 당번 약국을 지키던 중 외국인 노동 자의 폭력에 의해 숨졌다. 당시 부천주거연합 의장이던 지성수 목사(오스트레일리아 거주)는 “사회적 약자에 대 한 인간애가 가득한 그를 나는 ‘까칠한 성녀’라고 했다. 그가 비명에 갔을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있을까’에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고씨의 대학 후배인 부천시 약사회 부회장인 윤선 희(50)씨는 “6월항쟁을 통해 겪은 것을 실천하고 약자 들과 소통하려던 선배의 뜻을 항쟁 30년 만에, 그리고 돌아가신 지 25년을 계기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부천/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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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7 17: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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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 상원의원, 북미전쟁은 필연적 남은 것은 '언제냐' | ||||
| 기사입력: 2017/06/07 [05:4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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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러시아 관영언론 스푸트니크 보도에 따르면 조선(북한)과 미국간 신경전은 어느 순간 핵미사일을 포함해 실제 전쟁으로 불시에 번질 수 있다며 문제는 누가 먼저 '터트리느냐'에 있다고 러시아 국제문제 전문가 글례브 이바셴초프 상원 의원이 주장했다.
그는 "극동 핵전쟁, '만일'이 아니라, '언제'가 관건이다."며 지금 이대로 가면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세계 정세는 지금 풀지 못하는 매듭과 같다. 경제 관계가 너무 꼬여 있어 특히 북한 같은 소국 한 나라를 상대로 '수술학적으로 얇은' 군사작전을 실행하기란 그냥 불가능한 일이다"라며 "(터지면) 순간 도미노 효과가 작동할 것"이라고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즉, 한반도 전쟁은 필연적으로 도미노효과를 일으켜 극동 전체가 핵전쟁에 휘말려들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사실, 북은 이제 북미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 미 본토에서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국 본토까지도 필히 핵전쟁으로 초토화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소폭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있으면 영토의 크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국이건 대국이건 지상은 모조리 파괴되고 말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은 전 주민이 일년 이상 생활할 수 있는 지하도시를 건설해놓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국이 핵공격을 가하면 북은 주저 없이 핵으로 미국을 소멸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상원 국회의원의 진단에 따르면 이런 전쟁이 점점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언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정세 속에서 우리가 숨쉬며 살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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