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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검사·판사도 끊지 못한 '도화선'... 그는 어떻게 피고인이 됐나

김희원(가명, 여)씨와 이무영(가명, 남)씨는 교제관계였습니다. 김씨는 2019년부터 경찰에 31회 교제폭력 피해를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5월 11일, 이씨는 사망했습니다. 김씨가 불을 질렀습니다. 도화선, 한자로 풀이하면 불을 이끄는 줄이란 뜻입니다. 불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게 공권력의 역할입니다. "교제폭력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때까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을까". 항소심 김씨 대리인 이한선 변호사의 질문입니다.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얻어맞는 일, 그래서 경찰에 신고하는 일, 어떤 사람에겐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김희원씨는 남자 친구 이무영씨를 서른 한 번 신고했다.

법원에 제출된 교제폭력 사건 기록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 측으로부터 받은 신고기록을 종합한 결과다.

그 첫 번째 신고는 2019년 7월 29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맞기 위해 곤히 잠들어 있었을 월요일, 한밤중에 김씨는 이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전북군산경찰서 형사2팀 소속 A형사가 폭행사건을 접수한 시각은 같은 날 오전 1시 46분. 사건을 맡은 A형사 소속팀은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사는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사건 종결일은 2019년 8월 9일이었다.

두 번째 신고는 2019년 8월 5일이었다. 다시 A형사에게 사건이 날아들었다. 첫 번째 사건이 채 검찰로 넘어가기도 전에 김씨가 또 교제폭력 상황을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형사2팀의 판단은 앞서와 같았다.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사건은 불기소로 종결됐다.

신고, "공소권 없음"... 현행범, "혐의 없음"...

법원에 제출된 교제폭력 사건 기록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 측으로부터 받은 신고기록에 따르면, 김희원(가명)씨는 남자친구를 교제폭력으로 31회 신고했다. ⓒ 한승호

2019년 9월 3일, 김씨는 이씨를 세 번째로 신고했다. 이번에 사건을 접수한 곳은 같은 경찰서 형사3팀이었다. 신고 상황은 특수협박과 폭행, 즉 흉기가 동반된 협박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형사3팀은 특수협박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이씨는 불구속 상태로 기소됐다. 폭행 신고는 계속됐다.

2019년 9월 27일, 김씨는 이씨를 네 번째로 신고했다. 10월 3일, 수사 기록에 나와 있는 다섯 번째 신고 사건은 특수상해 및 폭행이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흉기로 인해 다쳤다고 신고한 상황이었다. 이들 사건을 접수한 사람은 앞서 1·2차 신고를 맡았던 형사2팀 소속 A형사였다. 형사2팀은 2019년 10월 25일자 신고를 포함해, 이들 사건을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넘겼다.

2019년 11월 2일 신고 사건의 경우, 전북군산경찰서는 접수단서를 '현행범'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형사1팀은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2019년 11월 13일, 김씨는 남자친구를 여덟 번 째로 신고했다. 다시 형사 2팀이 사건을 접수했고 "공소권 없음"이 반복됐다. 2019년 11월 30일, 김씨는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했다고 신고했다. 아홉 번째 신고였다. 형사2팀 A형사가 이번에도 사건을 접수했다.

A형사가 접수한 김씨에 대한 교제폭력 사건은 일곱 건이었다. 형사2팀은 일곱 건 모두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이들 사건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2년 9개월

김씨가 교제폭력으로 남자친구를 처음 신고한 2019년 7월 이후 약 2년 9개월만에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6월형을 선고했다. ⓒ 한승호

2020년 4월부터 2021년 4월까지 김씨 곁에는 이씨가 없었다. 그 기간 이씨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사건으로 목포교도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씨가 출소했다.

2021년 6월 17일, 김씨는 이씨를 열 번째로 신고했다. 폭행사건을 접수한 전북군산경찰서 형사1팀의 결정은 불입건이었다. 그 해 1월부터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에게 1차 수사종결권이 부여된 상황이었다. 김씨의 교제폭력 신고 이력이 누적되고 있는데도, 경찰은 정식 사건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김씨는 이씨를 고소했다. 사흘 후(2021년 6월 29일), 다시 형사2팀은 김씨의 폭행 신고를 접수했다. 열 한 번째 신고였지만, 형사2팀은 불송치했다. 사건을 검토했지만 혐의가 없어 검찰로 송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해 8월 17일에도 김씨의 폭행 신고가 이어졌다. 이씨는 입건되지 않았다.

"피고인은 2021년 11월 11일, 사귀다 헤어진 피해자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가 나 주먹으로 피해자 얼굴을 수 회 때리고, 발로 피해자의 얼굴 및 몸 부위를 수 회 때려 약 6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안와골절 등 상해를 가하였다... (중략) 피고인은 2021년 11월 30일, 피해자 주거지에서 피해자로부터 집에서 나가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아니하고..." (전주지법 군산지원 2021고단14○○ 상해·퇴거불응, 판결문 중)

김씨가 교제폭력으로 남자친구를 처음 신고한 2019년 7월 이후 약 2년 9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었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이 사건에 앞서 김씨가 남자친구를 폭행·특수협박·특수상해 등으로 경찰에 신고한 횟수가 무려 12회나 된다는 사실은 나타나지 않는다. 김씨가 오랫동안 겪은 교제폭력의 '연장선'에서 재판부가 사건을 검토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히는 점,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히며 이씨에게 징역 6월형을 선고했다.

이씨는 2022년 5월 출소했다.

마지막 신고는 '침묵'

전북군산경찰서가 '군산 교제폭력 방화치사 사건' 공판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피의자와 피해자 간 사건 접수내용 확인'. ⓒ 이정환

2022년 6월 7일부터 9월 22일까지 김씨는 무려 열 번에 걸쳐 이씨를 신고했다. 이 중 6건의 사건을 전북군산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아래 여청팀)이 접수했는데, 수사팀은 이들 사건을 모두 불입건(4건) 또는 불송치(2건)했다.

그리고 그해 9월 30일, 전북군산경찰서 여청수사4팀은 김씨로부터 스물세 번째 신고를 접수했다.

[상해] 2022년 9월 30일 17:20경, 피해자가 집에 가려고 하였다는 이유로 화가 나 욕설을 하며 피해자 목을 졸라 피해자를 땅바닥에 눕히고, 피해자 목을 조른 상태에서 주먹으로 피해자 얼굴과 머리 부위를 약 10회 때려... (전주지법 군산지원 2023고단4○○ 상해·상해·폭행·주거침입 병합, 판결문 중)

2022년 10월 23일, 전북군산경찰서 여청수사4팀은 김씨로부터 스물네 번째 신고를 접수했다.

[특수상해] "2022년 10월 22일 23:00경, 피해자의 목을 조르다가 다시 피해자 앞으로 와 주먹과 손바닥으로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을 약 10회 때리고, 계속하여 부엌칼을 가지고 와 피해자 목에 칼을 들이대고 부엌칼의 평평한 옆면으로 피해자의 머리 부위를 약 10회 때리고 피해자의 오른팔 부위를 1회 긁고, 위험한 물건인 담뱃불로..." (전주지법 군산지원 2023고단4○○ 상해·상해·폭행·주거침입 병합, 판결문 중)

2023년 3월 12일, 4월 4일에도 김씨의 신고가 이어졌다. 신고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4월 25일, 5월 4일, 5월 6일... 2023년 5월 8일에는 두 차례 신고가 있었다. 오전 2시 54분 신고, 그리고 9시 40분 신고는 "내용 없이 끊김"이었다.

그것이 김씨의 마지막 신고였다.

[상해] "2023년 4월 25일 01:30경,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주먹으로 피해자의 명치 부위, 어깨 부위, 눈 부위 등을 때려 피해자에게 치료 일수 미상의 명치 부위 타박상 등을 가하였다. 2023년 5월 8일 02:40경,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술에 취하여 팔로 피해자 목을 감싸고 손으로 피해자 얼굴 부위를 때리는 등..." (전주지법 군산지원 2023고단4○○ 상해·상해·폭행·주거침입 병합, 판결문 중)

법원은 이들 사건에 대해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이씨에게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전북군산경찰서가 법원에 제출한 사건기록에 따르면, 김씨 신고를 접수한 형사는 8개 수사팀, 12명이었다.

도화선

2024년 5월 11일 새벽, 김희원(가명)씨는 전 연인이자 교제폭력 가해자인 이무영(가명)씨의 집에 불을 내 그를 숨지게 했다. 사진은 이씨의 집 인근 위성사진이다. 주변이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 네이버 지도 갈무리

2024년 5월 4일, 이씨가 출소했다.

2024년 5월 11일, 두 사람은 이씨의 집에 함께 있었다. 술을 마시다가 이씨는 김씨를 때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김씨의) 턱이 찢어져 상·하의에 혈흔이 상당히 묻어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폭행"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씨는 잠들었다. 새벽 3시경, 김씨는 잠든 이씨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불포에 불을 붙였다.

피해자와 피고인은 바뀌었다.

김씨는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교제를 하기 시작하던 2019년경부터 약 4년간 피해자로부터 반복된 폭행을 당하였다.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2019년 7월 29일부터 2023년 4월 5일까지 총 23건의 폭행·상해(전북군산경찰서가 법원에 제출한 기록 기준, 기자 주) 등 사건이 접수되었고, 대부분은 불입건 또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중략)

피고인은 오랜 기간 동안 피해자로부터의 폭행에 노출되어 있었다. 피고인이 제출한 의료 기록뿐만 아니라 수사기관 제출의 수사 경력 자료들만 보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상습적인 구타를 당해왔음을 알 수 있다."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 2024노2○○, 현주건조물방화치사 2심 판결문 중)

그제서야 '피해자' 김씨를 옭아맸던 폭력의 도화선이 드러났다.

[관련 기사]

[도화선 ①] 31번의 구조 신호, '앙심' 두 글자로 요약한 재판부 https://omn.kr/2j8y8

#교제폭력#방화치사#불입건#불송치#데이트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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