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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3
    아버지의 수술
    달팽이-1-1

아버지의 수술

 

놀랍기도 하고 덤덤하기도 했던 아버지의 건강 소식

솔직히 뒤늦게 효녀인 척 했지. (진정 효녀였던 적도 있었다!)

암튼!

지난 금요일(2월 15일) 아부지 수술

8시래서 6시 반쯤 집을 나서서 병원에 갔다.

아부지 주무시고 계시길래 그냥 가만히 깨시길 기다렸다.

원래 일찍 일어나시는 분인데 2인실 옆 환자 깰까봐 기다렸던 듯 싶다.

옆에서 뒤척이는 소리 나니 바로 일어나셔서 테레비 켜시더라.

흑 딸년 올때는 모르시더니.. --;;

 

간호사 오시더니 옷 다 벗기신다. 간호사, 의사 앞에서는 환자는 뭐 아기다.

시키는 대로 다 하시는데 피부가 참 거치시네.

다 벗고, 다리에 스타킹 비스무리한(발가락 부분 뚫린) 흰색의 긴 양말을 신으시고

짙은 녹색의 가벼운 천 하나 덮고 수술실 앞 대기, 대여섯 명의 수술 환자 마구마구 들어 온다.

다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맨 먼저 온 아버지만 안 들여 보내네.

수술대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는 정말 그냥 한 마리의 연약한 사슴 같은..

마음이 짠해 자리를 못 뜨겠다.

아무래도 아버지 수술 관련 뭔가 차질이 있는 것 같다.

처음 한명 이것 저것 챙기는 듯 하더니 함흥차사, 의사가 늦는게 아닌가 내심 화가 나있었다.

전날 수술하는 의사가 와서 이것 저것 설명한다고 하더니 오지 않았고

밤 11시가 지나서야 내일 오전 8시에 수술 들어간다고 그것도 동생이 가서 물어보고야 알았댄다.

그저 의사 앞에서는 환자는 연약해 진다.

안되겠었는지 왠 남자분 아버지 밀고 수술실로 들어가신다.

그래도 바로 앞에 계시고 당췌 어디로 옮겨 가시질 않네?

그 사이 또 환자들 들어 오시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는 아이의 공포에 섞인 울부짖음.

 

아버지도 힐끔 힐끔 우리를 보시더니 어느 순간 문이 닫혔다 열렸는데 안 계시다.

병실에 왔다가 난 사무실로, 가족은 수술만 4시간에 회복실 1시간이래서 집으로.

연락 달라고 하고 사무실에 있는데 뭐라고 해야하나?

비행기 탈때마다 이상하게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올 수 있을까?'하는 것 처럼

'아버지 다시 나오시겠지?'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

 

나중에 확인해보니 말로는 8시지만 실제 수술은 9시 시작이랜다.

2시가 넘어도 가족들에게 연락이 없다. 수술실에서 나왔다는 말도 없고.

안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는 나오셨고, 여전히 옷 하나 못 걸치신 체 입에 거즈를 물로 계신다.

물도 드시면 안 되는데 물 달라고 하셔서 거즈에 물을 적셔 입에 물려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보는 나는 또 그게 아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말 없으시던 아부지가 아픔을 삭이고 계시는 모습은

역시나 덫에 걸려 신음하는 한 마리의 사슴처럼 대책이 없다.

마취가 풀리면서 고통도 심해지고 몸도 결리시나 보다.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주문하신다.

 

거즈를 바꿔 드리고, 어깨를 주물로 드리고, 가끔은 진통제가 많이 들어가게 눌러 드리고.

거친 피부에 로션이라도 발라드리고 싶은데 계속 목욕을 못 하길 것 같으니 그러지도 못하고.

 

첫날은 남동생이 있었다.

수술 첫날은 할일도 많더라.

둘째날

병원에 간 나는 너무 쌩쌩한 아부지 때문에 또 놀랬다.

6인실로 옮기신 아버지는 이제 안 아프다고 오지 말랜다.

내가 봐도 너무 멀쩡하시다.

어제의 그 분이 아니시다.

그래도 이래 저래 사람이 필요 한 것 같아 이틀을 병실에서 잤다.

동생은 일 때문에 준비 할게 있고, 오마니는 병실에서 주무시면 담날이 너무 힘들 실 것 같더라.

근데 병실에서 잔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더군.

 

나름 애쓴 줄 알았는데 홍시리에게 혼도 나구 ㅎㅎ

 

그리고 오늘 아부지 퇴원하셨다.

딱 1주일 만의 퇴원.

빠르기도 하여라.

그리고 수술비는 대략 300만원선이다.

위 세 놈이 1/n 하기로 했는데 100만원 내고 끝났다.

(이래 저래 빚이 늘어가고 있긴 하지만, 병원비는 각오했던것 보다 무지 작아서

너무 다행이었고, 그동안 해준게 없었는데 부모님께 뭔가 해드릴 수 있는게 좋기도 하다.) 

 

아부지 건강 나빠지고 그냥 못난 딸년인게 너무 미안했다.

사회생활도 잘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문제나 만들고 다니고.

너무 너무 죄송해서 그냥 눈물이 났다.

두 분께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혼자 다짐하긴 했는데...

근데 부끄럽다의 기준이 여전히 햇갈려서 어쩌면 여전히 부끄럽게 살지도 모르겠다...

 

오마니, 아버지

부디 천년 만년 건강하게 옆에 계셔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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