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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최 “촛불집회와 한국민주주의”
긴급 시국대토론회 개회사 (2008. 6.16)
촛불집회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최장집 (고려대 교수)
1.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집회는 한국민주주의발전에 있어 21년 전 6월 민주항쟁에 비견될 만한 또 하나의 이정표적 사건이라 하겠다. 먼저 오늘의 대규모시위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한국의 시민들의 의식은 광범하고도 깊숙이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 민주화는 시민의식에 있어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시에 체제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통령과 보수정부는 국가권력의 운영방식과 정책결정방식에 있어 과거 권위주의적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우리는 민주화이후 깊숙이 변화된 사회를 한편으로 하고, 보수적 리더십이 갖는 민주주의에 대한 협애한 이해와 구시대적 통치방식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자 사이에는 위태로울 만치 커다란 간극을 보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국민을 통치할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이해한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제도적 실천과는 크게 다르다. 대통령은 좁게는 자신을 통치자로 만들어준 지지자들을 넓게는 국민전체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에 대해 책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통치자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대의제민주주의의 핵심 원리 가운데, 대표의 선출과 통치의 위임을 내용으로 하는 “대표”의 원리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수준은 높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현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대표의 역할이 책임을 수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이해의 정도가 얕다. 책임의 원리는 그가 통치자가 된 선거와 다음 선거사이, 즉 평상시에도 항상적으로 이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상시 통치의 방법과 정책결정에 대한 민주적과정의 실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정책내용에 대해서도 상시적으로 국민의 여론과 의사에 반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 통치행위, 권력행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군주나 독재자를 선출하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
누구로부터 견제 받지 않는 무책임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오늘의 촛불정국의 직접적 원인이라 하겠다. 또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학자들이 그들의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위임민주주의” (delegative democracy)와 유사한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의회를 우회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과정을 뛰어넘으며, 투표자들의 의사와 요구를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대통령 명령에 의존해 통치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촛불집회 정국에서 보게 되는 것은 한국에서의 대통령은 집권과 더불어 국익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스스로의 결정을 실제의 정책으로 만들고, 강력한 국가기구와 강력한 여론매체를 동원하여 이를 홍보하고 집행하는, 상명하달식의 일방주의적, 권위주의적 결정방식을 당연시 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정부와 집권여당은 민주화된 사회에서 이러한 방식의 정책결정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본 강연자는 오늘의 촛불집회는 한마디로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의 결과이고, 그러한 현상을 표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 원인으로, 강력한 국가와 제도적으로 강력한 대통령이 허약한 입법부-허약한 정당 (역시 권력에 대해 자율성이 약한 허약한 사법부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갖는 어떤 구조적 특성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정당-의회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집행부에 아무런 견제력을 갖지 못하고, 정책결정의 이니셔티브를 포함하여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즉 국가기구 내지는 정부구조 내에서 이른바 삼권분립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정부 밖에 존재하며 사회경제적 균열과 갈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익과 가치, 요구와 의사들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이익집단을 포함하는 자율적 결사체들의 발전수준 역시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이들 자율적 결사체 가운데서도 시민사회의 의사를 조직하여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정당의 역할은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조건이 정부 밖 시민사회가 강력한 국가를 관장하는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민다수의 의사 및 이익에 반하는 권위주의적 정책결정들에 대해 견제력을 행사하고, 대안적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 내에서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견제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지 못하는 조건은 사실상의 권위주의를 의미한다.
오늘의 촛불집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선출된 통치자가 스스로의 공적행위에 대해 시민에 대해 책임지도록 강제 내지는 압박하는 반대와 견제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촛불집회가 한국민주주의 발전에 확실하게 기여한 부분은 제도권정치와 정당이 무력화 되었을 때 시민사회의 의사를 결집하고 항의를 조직함으로써, 권위주의적 권력행사와 정책결정에 결정적 제약을 가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과 대부분의 언론들은 대통령이 촛불집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대통령의 의사가 바뀌고 있는지 아닌지, 혹은 대통령의 심기가 어떤지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곤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마음의 향방이나 심기를 살피는 것은 민주주의의 작동의 문제를 구시대적이며, 권위주의적 문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을 민주주의 제도의 틀 속에 위치시켜, 독단적, 권위주의적인 정책결정과 권력행사를 제약하고 견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무기력하고, 작동하지 않고, 그 중심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허약할 때 그 자리를 대신한 일종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점에서 촛불집회는 한국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본 강연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운동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성격으로부터 나온다. 무엇보다도 현대민주주의는 대의제민주주의라는 점이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직접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여 그에게 통치를 위임함으로써, 대표로 하여금 통치토록 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그 통치가 주권자로서의 시민의 의사와 요구에 봉사하도록 하기위해서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최대한 광범해야 하고, 이들의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이익과 요구는 정당을 중심으로 한 자율적결사체들을 통해 최대한 광범하게 정책과정에 투입되어야한다. 민주주의는 제도 내에서 사회적 갈등이 처리되고, 문제가 타협되고 결정에 이를 수 있는 제도를 허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운동에 대한 필요는 그 만큼 적어진다 하겠다.
한국의 조건에서 운동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과 그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① 운동은 광범한 대중들의 의사의 분출과 강렬한 에너지를 동원을 통해서, 강력한 권위주의적 권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 조직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은 그것은 찬반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해결에 필요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형성하거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여러 대안들을 조정하여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는 지난한 것이며, 따라서 조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② 운동은 강력한 에너지의 동원을 통해 단일의 목표와 이슈를 다루고 성취하는 데는 유효한 반면에, 여러 이슈들이 다투는 과정에서 각 이슈들 간의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위계적으로 배열하고, 이에 기초해 정책의 추구를 일상화 하는 것이 어렵다.
③ 하나의 정책이슈를 운동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때, 쇠고기수입협상문제가 끝나면, 민영화, 교육 등, 이슈가 출현할 때마다 시민들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가와 운동 간의 충돌로 일관하게 된다.
④ 운동은 강렬한 열정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고, 그 참여가 많은 열정과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계층적 범위를 한정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⑤ 운동은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강화하는 동안, 하나의 시민사회가 다른 시민사회의 동원을 불러들이는, “시민사회 對 시민사회”의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운동이 헤게모니를 불러들이게 될 때, 그것은 위험스러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연구한 미국의 정치학자 세리 베르만이 지적하듯이, 운동이 자율적결사체를 통해 사민사회를 활성화하는데 몰두하는 반면, 제도정치 내에서 정당을 강화하는데 무관심했던 결과, 반대편에서의 파시즘을 불러드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하여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촛불집회가 시위 또는 운동을 통해 정치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하나의 정치관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운동이 낭만주의적 정치관의 확산을 통해 반정치주의적 정치관 내지 정조를 강화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운동과 더불어 유발될 수 있는 정치관은 민주주의가 대의제민주주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또는 “대통령소환제”의 요구와 같은 현실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현코자하는 논리나 정조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런 방법이 민주주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19세기말 서구에서 보통선거권이 확대되고 대중정당이 발전할 때, 정치이론가들은 투표권을 “종이돌” (paper stone)에 비유했다. 지난날에 혁명과 무력사용을 통해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했던 방법이, 종이로 된 투표권의 행사로 대체되면서 평화적이고 제도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갈등을 처리하게 된 것을 압축한 표현이다. 오늘의 촛불집회는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는 평화적 제도로서의 종이돌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촛불집회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주주의제도를 넘어서는 어떤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통해서이다.
3.
결국 문제의 핵심은 촛불집회에서 발현된 긍정적 힘과 요소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그 힘이 정당, 자율적 결사체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대표체계를 강화, 발전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이다. 앞에서 본 강연자는 촛불집회를 민주주의제도의 허약한 발전 내지는 실패의 결과로 보았다. 그것은 핵심은 사회적 이해관계가 폭넓게 대표되지 못하고, 참여기반이 협애한 정치적 대표의 체제 즉 정당체제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촛불집회는 촛불이 꺼지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참여의 기반을 확대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정치적 참여의 폭과 성격은 곧 한 사회 내 존재하는 사회경제적 이익갈등의 해결의 내용과 직결된다. 이는 한국사회의 최상층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하는 현 이명박 정부의 인적구성이 한국사회에서 폭넓은 사회경제적요구와 공익성을 대표할 수 없는가를 아울러 설명한다.
이번 촛불집회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시민들이 민주화라는 큰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실생활과 직결된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정책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중요한 전환이다. 민주화이후 한국의 정당들은 그것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그 이념적 호칭과는 별개로, 시민들의 실생활문제와 직결되고 그에 기초한 대안적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갖지 못했다. 참여의 기반을 확대한다는 것은 그동안 참여로부터 소외된 사회세력의 대표성을 넓히고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의 폭의 변화는 정책의 내용과 결과를 바꾸는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참여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제도의 변화를 가져왔어야 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앞선 6월항쟁이 남긴 유산은 그렇게 성공적인 것이라 평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는 오늘의 촛불집회가 참고해야할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촛불집회가 참여의 폭을 확대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21년전 6월항쟁이 남긴 긍정적 유산의 목록에 더해질 것이다.
광우병 사태의 본질은 '확률은 낮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위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과학적으로는 완벽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할 것인가 하는 판단의 문제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 조류독감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2005) / 정병선 옮김 / 돌베게 / 2008년 1월 7일 한국 초판
0. 서문
1997 홍콩 처음 - 'H5N1'이라는 유전자 번호 부여 (독감아형)
2005? 방콕 - 인간 대 인간 감염 사례로 기록
조류독감 위기의 핵심은 지구적 규모의 농업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태적 조건에 확고하게 적응한 치명적인 변종 독감이 새로운 유전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
인간이 환경에 가한 충격 - 해외여행, 습지 파과, 기업의 '축산업 혁명', 제3세계의 도시화와 그에 따른 대규모 슬럼의 성장-은 인플루엔자의 비정상적 변이 가능성을 지구에서 가장 두려운 생물학적 위험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1. 진화의 고속 차선
인플루엔자 A : 야생의 상태이며 매우 위험 - 주요 보유숙주 : 오리, 물새류
인플루엔자 B : 특히 어린이 들이 많이 걸리는 전형적인 겨울 독감 - 사망자 많은 편
인플루엔자 C : 통상 감기
현재 인플루엔자 A는 다른 조류와 포유류, 인간으로 횡단해가는 초기 단계 - 현재 기록적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항원 소변이 ( antigenic drift ) : 단백질이 해마다 아미노산을 바꾸로 변종을 만들어 냄
항원 대변이 ( antigenic shift ) : 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경우 - 대유행병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
도로시 크로퍼드 "군집 내에 부분적인 면역성이 높은 수준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항원 소변이로는 대유행병이 발생하지 않는다."
02. 빈곤의 발병력
인류 최악의 악몽은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 리처드 웨비 · 로버트 웹스터
p. 33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결과 일차적 심장마비, 재발성 심근경색, 심장병, 뇌졸중의 발병 위험성이 크게 감소했다.” 현재 미국의 연구자들은 한 해 평균 3만 6000에서 5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망한다고 보고 있다. 대다수가 노년층(특히 빈민)이다. 현실은 독감이 겨울철의 성가신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안이한 이미지를 배반하고 있는 셈이다. 주로 아이와 노인을 죽이는 전염병은 청장년층을 죽이는 질병만큼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세계 보건기구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질병 사태’라고 규정한 1918~19년의 대유행병은 임박한 조류독감의 위협과 관련해 공중보건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본보기이다. ‘스페인 독감’..
불가사의한 탄생 배경(재배열인가? 재조합인가?), 지리적 기원(켄자스의 군 기지, 프랑스의 참호, 중국 남부가 진원지로 지목되었다), 특이한 공격 양상(기묘하게도 청년층의 사망률이 높았다)등이 문제가 되었다.
왜 인도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밀스는 이렇게 말한다. “기근과 유행병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일련의 대재앙을 만들어냈다.”
03. 그릇된 교훈
예측에 따르면, 이 바이러스가 1976년에 미국인 100만 명을 죽일 것이라고 한다. - 보건교육후생부 장관 데이비드 매슈스
http://gerecter.egloos.com/3731040
1. 투우사의 노래
2003년 5월 작살나게 비싼 표값을 자랑했던, 오페라 "투란도트"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 공연 이후, 소위 "운동장 오페라"에 대한 논란이 좀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운동장 오페라"라는 것은 장대한 무대 장치와 매우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오페라 공연을 위해서, 축구장이나 육상경기장 등의 거대한 장소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2003년 9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된 "아이다"의 경우에는, 유명한 2막의 이집트군 개선 행진 장면을 위해서, 실제 코끼리를 동원해서 잠실 주경기장에서 이집트군 코끼리 전차군단이 행진하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아이다" 잠실 주경기장 공연, 코끼리 등장)
이런 식의 공연이 과연 오페라를 정말로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냐, 오페라의 노래와 연주를 잘 들을 수 있는 것이냐, 돈값을 하는 것이냐. 하는 비판이 나돌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투란도트" 이후로는 그 폐해를 직접 체감한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이런 류의 거대 공연이 갑자기 겹치면서 희소가치에 대한 거품도 꺼져들어서, 점차 "운동장 오페라"들은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와중에, "운동장 오페라" 유행의 막판 즈음에 나온 것이 바로, "카르멘"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공연이었습니다. 2004년 5월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던, 이 "카르멘" 공연은 "운동장 오페라"의 열기가 사그라들 무렵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난관이 많았습니다. 희소가치가 떨어져서, 투자자들을 모으기도 어려웠고, "카르멘" 공연 자체가, "투란도트"나 "아이다" 보다야 거대하고 장엄한 장면을 집어넣기도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은 "운동장 오페라"라면 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카르멘)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카르멘" 공연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한가지 복안이 있었습니다. "카르멘"에 이야기에 잘 어울리고 현란한 엑스트라 많이 나오는 장면을 넣으면서도, 한국에서 보기 쉽지 않은 이국적인 부분을 짜넣자는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카르멘"의 내용은 "군복무 하던 청년이 여자한테 잘못 빠져서 해롱해롱 하다가 패가망신한 뒤, 그 여자 조차도 고무신 거꾸로 신어서, 칼부림하며 난동부린다"라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럴듯하게 꾸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 주인공이 주인공을 버리고 새로 사귀는 남자의 직업이 인기 "투우사" 입니다.
그런 고로, 당시 "카르멘" 제작진은 바로 이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등장한 후에, 진짜 "투우" 를 잠실 주경기장에서 벌여 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투우"라면,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고, 한국에서 보기는 매우 어려운 것인 동시에, 오페라 내용에도 잘 부합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2004년 운동장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이국적인 내용의 절정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카르멘" 잠실 주경기장 공연의 기획진, 제작진은, 스페인에서 투우에 사용되는 소를 데려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소 여덟 마리를 스페인에서 가져오고, 스페인의 투우사들이 잠실 주경기장에서 오페라 공연 중에 이 소들과 투우를 벌이는 것입니다. 물론, 경기장 복판에서 소에게 진짜 칼질을 해서 잡아 죽이려면, 도축에 관련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마취침이 달린 칼을 이용해서, 죽은 듯 잠들게 한다는, 꾀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올레!)
그런데, 이 계획은 중대한 난관에 부딛혔습니다. 바로,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 때문에, 유럽의 쇠고기나 유럽의 소를 원료로 한 제품을 한국으로 반입해 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투우에 쓰이는 살아 있는 소는 소의 뼈, 척수, 뇌와 많은 쇠고기 덩어리가 통째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당연히 반입 금지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페라 경기 하던 도중에 사용되는 소를 갑자기 분해해서 그 척수를 관객들이 쪽쪽 빨아먹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투우에 사용되는 소까지 반입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정부 규제란 그런 것입니다.
그만큼, 정부의 정책은 엄격하게 결정되고 집행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그냥 아는 사람이 서류 들이미니까 아무 생각없이 날림으로 서명해 주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 없이 한 서명 하나의 영향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곳,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까지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오페라 "카르멘"의 제작진과 기획진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아니라, 광우병과 광우병 규제를 피할 방법에 대해, 조사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 양머리를 쪼개 보는 농대 교수
광우병 파동의 원조는 1988년의 영국 광우병 파동이었습니다. 최초의 광우병 파동이라고 할 수 있는 19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은 기본적으로 양에서 관찰되던 스크래피(scrapie) 병의 증상이, 소 한테서도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스크래피 병의 증상은 양의 뇌에 구멍이 생겨서 양의 뇌가 스펀지 처럼 되어 버리고, 때문에 양이 뇌를 쓸 수 없게 되면서 죽는 병이었습니다. 스크래피 병은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별대단한 전염력이 있는 병도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는 별 관심을 받는 병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양의 머리를 쪼개서 연구하는 것을 스포츠 비슷한 느낌으로 생각하는 학자들 사이에, 그 특이한 특징이 이야기 되곤 하던, 어찌보면, 비교적 한가하고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농대 교수들의 관심거리 정도라고 할 수도 있을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크래피 병의 증상이 영국의 소에게 발견되면서 부터, 갑자기 사태는 전혀 다른 길을 향해 내달리고, 나아가 지구의 역사를 바꿀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순하고 평화로운 동물의 상징이었건만)
우선은 병의 발병 원인에 때문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소에게서도 스크래피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 즉 광우병의 원인이 양 시체를 소에게 사료로 먹인 것 때문에, 병든 양의 병이 소에게 전염된 것이라고 잠정 결론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본다하더라도, 최초의 광우병 파동인 19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은 어찌 보면, 그냥 소가 걸릴 수 있는 병을 하나 더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간단하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80년대말은 유럽 통합 운동이 여러가지로 일어나던 시기이고, 유럽 나라들 간에 수입수출개방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농민, 독일 농민들은 영국 농축산물과 살벌한 경쟁을 시작하는 터라, 여러모로 견제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리하여,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영국 축산물을 공격하기 위해, "광우병이 전염되면서 세상을 망칠 것이다" 내지는 "광우병이 인간에게도 전염될지 모른다"라는 주장을 강하게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일리 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을 소가 먹고, 소가 광우병이 걸렸다면, 그런 소를 사람이 먹으면, 사람이 병이 난다는 것도 그럴싸합니다. 더군다나, 이제 광우병이 처음 발견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이 얼마나 잘 걸리는 것인지, 병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부족 했습니다. 때문에, 영국 농축산물과 경쟁하는 프랑스, 독일에서는 "잘 모르지만 일단 광우병 퍼진 영국소는 먹으면 뇌에 구멍 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지원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사건을 다음 단계로 끌고 나가게 됩니다. 영국으로서는, 영국이 프랑스, 독일로 수출을 못하게 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웃나라의 이런 분위기로, 영국 국민들이 큰 불안을 겪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광우병 의심 소는 신고를 의무화 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소가 광우병이 걸린 소인지, 아닌지 하는 검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광우병으로 확인 된 소들은 태워 없애 버리고, 고기 성분이 들어 있는 사료를 소에게 먹이는 것도 금지시켰습니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려서, 프랑스, 독일 정부와 영국 국민들에게 그 안전함을 과시하려고 했습니다.
(존 검머 장관의 TV광고 장면: 영국 소는 안전합니다. 모든 부위가 안전합니다. 특히나 개뿔이 안전합니다.)
이때 프랑스, 독일 등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영국 정부는 광우병과 관련된 시비는 한톨도 남기려고 하지 않으려는 철저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광우병이 걸린 소를 없앨 때, 그 소의 피나 뇌수 등이 물이나 땅에 남겨지는 것까지도 철저히 피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광우병 쇠고기가 들어오면, 그 쇠고기를 씻은 수도물도 오염된다 - 쇠고기 씻은 물만 마셔도 죽는다" 라는 요즘 도는 이야기는 바로, 80,90년대 광우병 파동에서 영국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 영국 정부는 소가 걸린 광우병이 인간에게는 퍼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과의 교역을 정상화 시키고, 영국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광우병이 소에게는 위험하지만, 사람에게는 별로 안 위험하다는 증거를 내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특히, 광우병에 관한 검사를 철저히 하기 시작하니, 90년 무렵에는 1주일에 수백건씩 광우병이 보고되는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오면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수천마리의 광우병에 걸린 소가 확인되었다는 말은, 그것이 확인되기 전까지, 그런 소들을 거의 모든 영국사람들이 모르고 계속 먹어 왔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압박을 벗어나고, 영국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광우병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도록 하던 영국 정부는, 그러나, 1996년 3월 16일. 희망과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발표를 내어 놓게 됩니다.
3. 치사율 100%
90년대초, CJD라는 희귀질환을 두고, 영국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CJD는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병인데, 역시 치매 처럼 보통 노인들에게 보이는 병입니다. 문제는 CJD라는 병이, 뇌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서, 결국 뇌가 스펀지 처럼 되고, 그 때문에 뇌가 망가져 죽어 버리는 병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CJD는 병의 형태가 광우병과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스크래피에 걸린 양을 먹고 소가 광우병이 걸려 죽듯이, 광우병이 걸린 소를 먹으면 사람이 CJD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설이 생긴 것입니다.
1993년 5월에 영국의 15세의 소녀가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이러한 영국의 논란은 본격화 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CJD 증세를 보였는데, 그러면서도 나이가 보통 CJD가 나타나는 나이든 연배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통상적인 CJD가 아니라, 광우병 걸린 소를 먹고 발병한 새로운 형태의 CJD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으로 낭패에 빠진 영국 축산업을 살리기 위해, 이런 분야의 연구에 많은 관심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CJD와 광우병의 관계는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20대에 CJD로 사망한 엘리자베스 양. TV광고에서 영국소 안전하다고 한 장관의 친한 친구 딸이었습니다.)
CJD에 걸리면, 치료법 없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CJD로 인한 사망은, 서서히 뇌가 망가지면서 죽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환자의 비참한 모습이 TV에 비춰지자, 감정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연구 결과가 대체로 정리되던, 1996년에는 극심한 논박이 있었습니다. 1월말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서 CJD와 광우병은 관계가 없다고 했다가, 불과 2개월후인, 3월에는 당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 때문에 CJD가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꺼내기도 합니다.
결국 1996년. 소의 광우병이 인간에게 기존의 CJD와 다른 방식으로 변종CJD (vCJD)를 생기게 한다는 잠정결론이 내려집니다. 1996년 3월 영국에서 나온 이 발표 이후, 영국은 물론이요, 유럽 일각이 술렁이게 됩니다.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으로 광우병이 문제로 부각 되기 전까지, 영국산 쇠고기 제품은 유럽에 얼마든지 돌아다녔고, 그렇다면, 유럽 각지에서 그 쇠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그득그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2000년까지 영국산 쇠고기로 만든 제품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고기로 만든 사료가 들어와 돌아다녔습니다.
이 사람들 중 상당수가, 변종CJD에 걸린채로 잠복기에 빠져 있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더우기 영국에서는 당시,1주일에만도 6백건 이상의 광우병 소가 발견되던 시기라, 광우병 걸린 소들은 온 영국에 가득하던 때였으므로, 공포감은 엄청났습니다.
(거의 이 정도 공포감)
쇠고기 제품의 소비가 절반가까이 뚝 떨어지는 등, 정말로 말그대로 "난리"가 나자, 결국, 영국 당국에서는 결단을 내립니다. 대대적인 소의 도축, 처분, 소각이 이루어졌고, 90년대말까지, 1백 3십만 마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들을 태워 없애 버렸습니다. 그 비용은 대체로 30억 파운드 이상, 5조원에 가까운 규모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파장으로 유럽전체적으로는 총도합 4백만 마리 정도의 소가 도축되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영국은 광우병이 창궐한 광우병의 본산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리고 그 광우병은, 사람의 뇌를 파괴해 죽여버리는 무서운 것이 되어 버렸으므로, 세계에서 영국산 쇠고기, 유제품등이 본격적으로 금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이런 일이 그저 "남의 일"처럼 상당히 안일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껏해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소에게 고기를 먹인 서구문명의 오만함이 재앙을 부른 것이다. 음양조화 동양문명 만만세-" 류의 사상적인 이야기가 가끔 얼치기 사설에 눈에 뜨이는 정도였습니다.
(인도 선조들이 계속 믿어온 힌두교의 지혜는 과연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멋지고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던가?)
그러나, 사건이 다시 한 번 반전되면서, 결국 광우병 파동은 아시아권에도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게 됩니다.
4. 대영제국의 역습
영국에서 광우병이 창궐하고, 그 광우병으로 인한 변종CJD - 일명 인간광우병 - 환자까지 나타나자, 영국 축산업은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일이 묘하게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대량으로 발견되고, 또 변종CJD 까지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영국에서 철저하고 엄격하게 광우병을 다루고 처리하는 제도와 기술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기술이 발달하고 처리가 엄격해진, 영국의 기준으로 독일, 프랑스의 축산물을 보니, 위험해 보인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조금만 의심나는 동물이 있어도 철저히 조사해서 광우병인지 아닌지 밝혀내려하고, 만약 광우병이라면, 완전히 파괴해 없애기 위한 장치도 잘 발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국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니, 프랑스에도 의심나는 동물이 많은 것 같은데, 별로 검사도 안하는 것 같고, 독일에도 광우병이 터질 것 같은데, 독일에는 광우병을 어떻게 다룰지 별 대책도 없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평화를 위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야 하는거 아니오?)
사실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광우병 발생 원인을 이상한 고기를 소에게 사료로 먹인 것 이라고 보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짓을 한 경우는 많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영국산 사료를 먹인 나라도 있었고, 영국보다 사료 관리가 더 엉성한 나라도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생긴 조건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나라들이 보였으니, 이런 나라들에서도 광우병이 생겨야 마땅했던 것입니다.
특히, 활발한 EU 교류 때문에, 유럽 각국의 국민들이, "우리나라도 영국보다 상황이 나을것도 없는데, 영국보다 너무 부실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광우병 총본산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영국에서 이런 점들을 자극하면서, 광우병 파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렇게 먼저 광우병이 발견된 나라들이,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나라를 향해, 도리어 "그럼 너네는 깨끗하냐?" 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도는 앞으로, 전형적인 한 형태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것은 나라 사이에서 광우병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 지는지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름다운 프랑스 요리는 육수를 뽑기위해 갖은 재료로 온갖 짓을 다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장 먼저, 포르투갈에서 90년대말 수백마리의 소가 광우병인 것으로 판명되고, 스위스에서도 광우병 소가 발견되게 됩니다. 포르투갈 산 소와 쇠고기 제품이 유통되지 못하게 되자, 포르투갈에서는 영국이 했던 것처럼, 광우병을 뿌리뽑기 위해,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을 금지하고, 소에게 먹이는 용도로 생산한 동물성 사료를 모두 폐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광우병을 막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강화하게 됩니다.
포르투갈이 이처럼 광우병 방어에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고, 그러면서도 쇠고기 제품에 대한 경쟁력은 잃게 되자, 포르투갈 정부는 광우병의 총본산인 영국과 손을 잡고, 한가지 계책을 내놓습니다. 즉, "유럽 전체의 안전을 위하여", 다른 EU 모든 나라에서도 다같이,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고, 쇠고기에 대한 조치를 강화하자는 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까, 광우병이 발생한 영국-포르투갈 뿐 아니라, 다같이 광우병에 신경좀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 소 동상의 행진)
이러한, 영국과 포르투갈 등의 주장을, 영국/포르투갈 축산업이 망할 위기에 놓인 김에, 다른 나라 축산업도 괴롭히고 보자는 심보라는 비난이 나오게 됩니다. 특히, 독일과, 동물성 사료의 생산과 사용이 금지되면 일자리를 잃는, 사료 회사의 노동자, 값싼 동물성 사료를 애용하는 농민들이 이런 비난에 가담합니다. "너네 나라가 썩어서 광우병 걸린 걸 갖고, 왜 애꿎은 우리나라 사료까지 욕을 하냐"라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독일의 칼-하인츠 풍케 농업장관 같은 양반이 대표적입니다. 이 양반은 독일 농민과, 독일의 사료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서, 동물성 사료를 계속 생산해서 유통시키는 쪽을 지지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비판과 찬성 의견으로 나뉘어 계속 논란을 빚었습니다.
때문에, 동물성 사료가 광우병을 일으키는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이 vCJD에 걸려 죽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등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유럽 각국에서 광우병에 대한 논란과 연구, 조사와 규제가 더욱 치밀해지기 시작됩니다. 이무렵 즈음에, "동물성 사료가 광우병의 원인이므로 규제해야 한다", "광우병에 걸린 나이가 많은 소의 뼈 뇌등을 먹으면 vCJD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규제해야 한다" 와 같은 설이 표준안, 정설로 자리잡게 됩니다.
2000년 11월. 독일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면서, 드디어 광우병 파동은 새로운 단계로 치닫게 됩니다. 광우병에 걸린 첫번째 소가 발견되자, 독일 당국은 "이 소는 스위스에서 건너온 소다. 독일 소들은 안전하다" 라면서 바람을 가라앉히려고 했습니다. 이런류의 태도는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광우병 걸린 소를 잘못 먹고 vCJD에 걸리면 "뇌에 구멍이 뚫려서 죽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안은 매우 커졌습니다. 독일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규제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2001년 1월까지, 독일 안에서 9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 집니다.
이 2000년말의 독일 광우병 파동을 기점으로, 전 유럽이 광우병 파동에 휘말리게 됩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속속 광우병이 발견되었습니다. 동물성 사료를 지지했던, 당시 독일 농업장관 칼-하인츠 풍케는 사표 쓰고 물러났습니다. 물러난 농업장관을 대신해 자리에 앉은 레나테 퀘나스트 농업장관은 광우병 논란을 완전히 없애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 30개월 이상된 소, 40만 마리를 모두다 도축해 없애 버리기로 했습니다. 이 엄청난 작업을 위해서, 독일 정보는 15억 마르크 이상, 거의 1조원에 가까운 돈을 퍼붓기로 했습니다.
(비교적 멀쩡한 젊은 시절의 칼-하인츠 풍케)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은 영국만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고, 또한 그 과정에서, 광우병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는 설이 정설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90년대말까지만 해도, 국내 유력 일간지에서, "인간 광우병이 쇠고기와 상관 없고, 그저 유전일 뿐이다" 라는 기사를 내놓아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고 하기까지 했는데, 그런 안심은 완전히 물건너 가 버린 것입니다.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유럽 각국의 쇠고기와 소 관련 제품들을 반입하는 것이 여러나라에서 금지되었고, 많은 나라들이 광우병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중대한 계기였습니다.
특히 이때 일본 정부에서는, 소와 관련된 일체의 접촉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에서, 소에서 나온 성분과 관련된, 유럽산 화장품, 의약품들까지 금수하는 조치에 착수합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색출해 없애고 있는 상황에서,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의 쇠고기도 아닌, 그 소의 추출물로 만든 제품, 그것도 그 추출물을 먹는 것도 아니고, 바르는 것에 불과한 화장품까지 제제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당시 유럽에서 엄청나게 수입되는 화장품을 일거에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방책이었기 때문에, 일본내의 화장품 회사들은 이러한 조치를 은근히 반갑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우리 일본은 결코 일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겠소)
"화장품, 소가죽으로도 광우병이 인간에게 옮아온다" 라는 요즘 도는 이야기는 바로 이때 일본의 조치에서 상당부분 유래하는 일입니다. 일본이 이렇게 유럽의 쇠고기 관련 제품에 대해 철저히 반입을 금지하자, 유럽은 단결하여 일본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네 나라도 지금까지 소한테 고기 먹이고, 문제의 영국산 육골분도 일본에서 돌아다녔는데, 오히려 너네 나라 관리 상황이 더 부실한 것 아니냐?" 하는 문제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 소는 그렇다면 안전한가?" 에 대한 고민은 일본 국민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얻게 되어서, 일본에서도 광우병에 대한 관심과 연구, 조사가 발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광우병의 총본산 영국에서 광우병이 퍼져나간다고 생각했던 당시 널리 퍼진 생각과는 의외로, 영국의 지구 반대편에 있던 일본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된 것입니다.
5. 광우병이 아시아로
2002년 5월 13일 아침. 일본 홋카이도의 구시로(釧路)시 보건소에는 갑자기 무단 결근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29세의 여자로 수의사였던 직원이었는데, 그날 아무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건소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대체 무슨 일로 출근하지 못한다는 전화 한 통 하지 못한 것인가 의아하게 여겨서, 동료 직원이 이 출근하지 않은 여자의 집에 찾아가 보게 되었습니다.
집에 찾아가 보니, 여자는 죽은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2002년 구시로)
놀란 동료 직원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홋카이도 경찰은 여자가 자살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유서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유서의 내용은, "광우병을 찾아내지 못해, 책임감을 느낀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의사는 그로부터 3일전이었던 5월 10일, 소 한마리를 진찰하고, "신경계통에 이상은 있어 보이나 큰 병은 아니다" 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소가 도축된 후에, 다시 한 번 검사를 거치면서 이 소가 병에 걸린 정도가 아니라, 저 무시무시한 "광우병"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재검사하는 과정을 통해, 이 소는 "광우병"에 걸린 소로 최종 결론이 납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 두 번의 추가 검사가 없었다면, 광우병에 걸린 소가 멀쩡한 소로 판단되어, 일본 사람들의 식탁에 올랐을 것이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이 자살 사건은, 광우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어떤 식으로 일본 사회에 퍼져 있는가를 나타내는 어떤 상징적인 사건처럼 회자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2001년 9월이었습니다.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 이후, "소의 원료가 들어간 화장품도 금지"라는 기준을 내놓을 정도로 철저히 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땅 안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었으므로, 이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제길...: 다케베 쓰토무 농림수산상)
일본 정부에서는 허겁지겁 국민들 사이에 확산된 공포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케베 쓰토무(武部勤) 농림수산상은 영국의 예를 보면, 광우병은 뇌나 척수, 눈 등을 통해서만 옮겨지는 듯 하므로, 그 부분을 먹지만 않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유럽산 화장품을 금지하던 등의 과거와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크지 않았습니다. 한편, 반대로, 이미 광우병에 대한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정리 국면에 있던 유럽으로서는 일본의 이러한 상황을 내심 반기는 면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광우병에 관련된 연구, 조사, 규제를 수행하게 되면, 관련 기술은 고스란히 광우병의 본산인 영국에서 전수될 것이 확실했으니 말입니다.
결국 일본 정부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합니다. 즉, 전국 100여개의 검사시설을 총 동원해서, 일본의 소라는 소는 모두 광우병 검사를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일본의 전수 조사 정책입니다. 소라는 소는 모두 조사해 보겠다는 것은, 광우병이 상당히 큰 문제를 일으켰던, 영국, 독일에서 실시된 적이 있던 것인데, 일본에서는 첫번재 광우병 소가 발표된지 얼마되지 않은 초기부터,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여, 재빨리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과감하게 이런 태도로)
다시 말해서, 일본 정부는 설령, 광우병이 일본에 퍼진다 하더라도, 소라는 소는 모두 조사하기 때문에, 식탁에 올라가는 일본소는 안전한 것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꽤 그럴듯 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직후,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터지면서,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슬쩍 잊혀지는 듯도 하였습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철저한 광우병 조사 정책은 나름대로 전화위복의 효과를 노리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검사를 하지 않아서 광우병에 걸렸는지 아닌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다른 나라 쇠고기를 먹을 바예야, 검사를 반드시 통과하곤 하는 일본 쇠고기를 먹는게 더 안전하지 않느냐고 선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생각은 이러한 조치가, 향후에 국제 무역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바탕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이 쇠고기 개방을 두고 서로 협상을 하게 된다면, 일본이 일본에서 하는 것처럼, 한국도 모든 쇠고기 마다 광우병 검사를 반드시 해서 안전기준을 똑같이 맞추자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우병 검사는 비용이 드는 일이고, 결국은 쇠고기 값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값이 높은 일본산 쇠고기가 오히려 부담이 적은 일입니다. 또한, 이렇게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광우병에 대한 조사, 연구 기술이 준비된다면, 그 기술 자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본소를 다 조사해나가다 보니, 광우병에 걸린 소들이 한 마리, 두 마리 계속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이나,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 때처럼 많은 소들이 떼거리로 발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잊을만하면 한 마리씩 꾸준히 발견되었습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일본소는 광우병 검사를 통과했으니, 다른 나라 소보다 더 안심하고 먹으라고 선전했는데, 몇몇 매장에서 소의 원산지를 속여서 파는 경우가 발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실수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를 먹게 될 위험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거 원산지 속이기는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만)
원산지를 속인 소가 유통되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포에 휩싸이자, 당시 일본에서는, "검사를 통과하지 않은 소라도, 그 고기 한 번 먹었다고 죽지는 않는다" 라는 말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소 한 마리 한 마리를 다 검사하는 일본 소가 안전하고 다른 소는 불안하다" 라는 선전을 해 왔던 통에, "검사 통과 안하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라는 불신감이 생기기도 해서 쉽게 공포감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3년말에, 일본에서는 모든 일본소 한마리 한마리가 어떻게 자라서 어디로 유통되는지를 다 기록해서, 인터넷에 공개하는 제도를 실시합니다. 그래서, 어떤 쇠고기 제품을 사먹을 때, 그 쇠고기 제품의 등록번호를 조사하면, 그 쇠고기가 어떻게 자라나서 어떤 검사를 통과한 소인지 확인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근본적으로 쇠고기의 원산지를 속이기 어렵게 만들었고, 쇠고기의 원산지를 속이면 금새 적발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의 근본적인 충격은, 광우병이 영국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영국산 제품을 상대적으로 많이 수입하지도 않는, 일본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우병이 어떤 나라나 지역에 특정된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퍼져 있는, 혹은 퍼져 나가는 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형국)
또, 광우병이 지속적으로 계속 발견되기도 하고, 철저한 연구와 조사 속에서, 광우병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도 계속 보고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소가 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 라는 단순무쌍한 설명이 더욱 더 인기를 끌고 퍼져나갔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이런 불안을 타고, 우리나라의 한 학자는 상당히 기묘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6. 광우병에는 국경이 없지만, 고기 써는 사람에게는 조국이 있다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과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광우병에 대한 관심이 돌게 됩니다. 그런데, 2000년대초 한국이 광우병에 대처하는 태도는 몇가지 사회적인 이유 때문에 다소간 꼬여들게 됩니다. 그 모습은 유럽 각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모습이 됩니다.
우선 한가지 주목해 볼만한 것은,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이 심화될 무렵에, 우리나라는 구제역 사태를 이미 겪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축들 사이에 구제역이 돌아서, 가축들이 죽어가기 시작했고, 때문에, 우리는 이미 쇠고기나 쇠고기 제품들의 수출이 봉쇄된 상황이었습니다. 구제역은 상당히 기승을 부려서, 수많은 축산농가들이 이미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도 꺼림칙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광우병이 아닌 구제역 때문에 이미 좀 깔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는 광우병 문제가 본격화 되기도 전에, 이미 구제역 때문에, 축산물 사태를 이미 겪고 헤쳐나가는 분위기로 흘러가 있었습니다. 역대 광우병 파동들에서 중요한 기점들은 대체로 나라들 간에, 서로 그 나라의 제품을 규제하고, 얼마까지 규제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서로 논박하고, 토의하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서로 쇠고리를 어디까지 금지할 것인가, 어디까지 들여 놓을 것인가를 싸우면서, 문제가 발전하고, 또 새로운 사실이 대두되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구제역 때문에, 이미 우리나라 쇠고기, 쇠고기 가공 제품등의 일본, 대만 수출등이 봉쇄된 상황이었고, 국내에서도, 어떤 병의 실태를 파악한다기보다는, 손해본 축산농가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것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진 상황이었습니다.
(구제역 현장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당시 이한동 총리: 이 양반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또한가지 중요한 상황은 2001년 무렵이 IMF 사태를 극복해 나가는 고비였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텔레비전에서 "돈을 좀 써서 경기를 띄워보세" 하는 광고를 틀어대던 시절이기도 했고, 다같이 힘든 와중에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지는 말아야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광우병 문제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고, 상황을 밝히기 보다는, 최대한 축산농가 농민들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곱게 넘어가자는 태도가 매우 강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의 선명한 사례 중에 하나는 소위 "갈비 먹는 소" 사건입니다.
(갈비가 어때서, 만만한게 갈비탕인데)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과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쇠고기에 대한 소비가 위축될 기미를 보이자, 농림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우리나라는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에서 동물성 사료가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다른 동물성 사료의 반입도 최대한 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광우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구제역 때문에, 축산농가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우병에 관한 나쁜 이야기가 너무 퍼지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일단 영국산 동물성 사료가 금지된 것이 2000년의 일이니,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 때로부터만 따져도, 무려 12년 동안이나, 영국산 동물성 사료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2년이 지난후에, 동물성 사료를 금지해 놓고, "이제 금지 했으니 문제 없다"라고 하는 말이 과연 설득력 있는가 하는 의심은 일단 지우기 어렵습니다.
더 조롱당할만한 일은 두번째 조치인, "동물성 사료 유입 제한 정책"을 두고 벌어집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정부 당국의 이야기는 "소가 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이 생기는데, 우리는 그것을 막으니까 문제 없다"라고 요약되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정부가 말만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버립니다.
문제는 IMF 사태 이후에, 음식물 찌꺼기를 줄이고, 농가에 사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추진되던, 음식물 찌꺼기 재활용 사업이었습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다가 가공해서, 동물의 사료로 쓴다는 계획은 IMF 사태 이후에, 서로 도우며 알뜰하게 살아 보려는 정책으로 널리 선전되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광우병에 대한 위와 같은 발표를 한 이후에도, 음식물 찌꺼기를 소의 사료로 사용하는 사업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농림부는 동물성 사료의 유통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는 했지만, 산하의 농촌진흥청에서 백주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사업 조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예 소갈비집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가 사료로 바뀌어 소에게 먹여진 경우가 드러나면서, 당시 언론에서 선전하던 바로 그 대로, "소가 소를 먹는 상황"이 정확히 재연되자, 이것은 잘팔리는 기사거리가 되어, 농림부에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농림부에서는, "아무 고기나 먹는게 문제가 아니라, 스크래피 병에 걸린 양을 먹는게 문제이므로, 음식물 찌꺼기 사료는 안 위험하다"라면서, 88년 영국 광우병 당시에 내려졌던 잠정결론을 부랴부랴 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은 멋있게 보이려고, 약자로 "RDA"라고 부릅니다.)
또 한가지 상당히 문제가 심각했던 사례는 국내 vCJD 의심 환자의 검사 문제였습니다. 국내에 CJD 환자는 수십명 규모로 희귀하지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2001년에, 30대 남자가 CJD 증상을 보여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는 통상적인 CJD와는 달리, 젊은 나이에 발병 했으므로, vCJD 일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당국에서는 이 환자가 영국 쇠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고 보이고, 그렇다고 쇠고기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므로, 광우병에 옮겨온 CJD 일리는 없다고 발표해 버립니다. 말하자면, "한국에는 광우병이 없기 때문에, 광우병이 없다" 라는 식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이후에 생검을 한 후에도, vCJD가 아닌지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vCJD의 징후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라는 점만을 홍보하여, 마치 "vCJD가 아니다" 라는 듯이 신문기사와 보도가 돌도록 놓아두어 버렸습니다. 당시 이 병이 vCJD 인지 아닌지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망한 환자의 시신에서 소뇌를 부검해 봐야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확인 작업을 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부검의 중요성)
이러한 사건들은, 당시 우리 정부 당국이 철저하게 광우병을 조사할만한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결정한 조치들이 분명히 이행되도록 집행하고 감독하고 위반하는 사람을 처벌할만한 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커녕, 상황을 이해할만한 기술자 조차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한 농림부 관계자가, 상황을 아는 사람을 몰라서, 인터넷에서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는지 검색해 보는데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실토하는 보도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건은, 유명한 모 교수의 "광우병 내성소" 소동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을 통해 이름을 날리고 있던 한 교수가, "유전자 변형과 동물 복제 기술을 이용해서, 광우병 내성소를 극비리에 연구하고 있고, 3년이면 광우병을 정복할 것이다"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극비리에 연구하는 내용을 왜 결과도 나오기 전에, 학술지도 아닌 신문기자에게 먼저 알려줘서 전국에 공개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더 황당한 것은 이것은 기본적으로 광우병이 퍼져도 잘 안죽는 소를 동물 복제를 통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광우병이 사람에게 옮겨지는 것을 막는데는 효과가 결정적이라고 보기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의 방침은 나름대로 확고했는지, 광우병에 대한 기술적인 조치나, CJD 파악을 위한 정책은 거의 아무 변화가 없던 상황이었는데도, 이 교수의 연구를 파격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 사람은 얼마후에, 광우병에 관한 검사를 의뢰하기 위해, 자신의 소들을 일본의 연구 시설로 보내면서, 기자들이 "광우병 내성소 일본간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게 했습니다. 이것은, 광우병 검사 기술이 없어서, 소를 일본 연구소에 보내서 부탁하는 형편이면서도, 놀랍게도, "일본에 광우병 극복 기술을 전해주는 왕인 박사가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준 것과 버금가는 업적"이라고 신문지상에 소개되었습니다. 물론 변변한 실험 자체가 진행되지도 못했습니다.
(we both reached for the gun~)
이 특이한 교수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7. 상황 반전
2001년 일본 광우병 파동으로, 세계 전체에 광우병이 화제거리가 된 상황에서, 쏟아지는 광우병 관련 보도는 한국과 일본의 축산 농가에 계속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모든 소를 전부 검사해서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만 식탁에 오르게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 광우병 소가 발견되어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편, 한국은 매년 1천마리 이상의 소를 뽑아서 검사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초기에는 검사 방법 자체가 부실했던 데다가, 검사하는 소들은 의무적으로 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검사에 통과할만한 소만 검사한다"라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캐나다에서 광우병과 흡사한 병이 사슴에게 생기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문제의 캐나다산 사슴(엘크)에서 나온 녹용이 국내에 대량 유통되었으므로, 이것이 한 번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녹용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증거는 사실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녹용은 한국 사람들이 푹 고아서 그 물을 마시는 재료라는 면에서, 뒤숭숭한 상황을 만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엘크)
한편, 비슷한 시기, 2000년 유럽 광우병 파동의 뒷수습을 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별별 이야기가 다 쏟아져 나오면서, 아시아의 민심을 더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와 통제 조치를 유럽 전체 차원에서 만들기 위해, 잦은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미 광우병이 상당히 퍼진 나라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 쇠고기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서로 입장차이를 빚었습니다.
즉, 광우병을 이미 많이 겪은 나라들은 광우병에 대한 검사와 통제 조치, 동물성 사료에 대한 금지 조치를 강조했습니다. 이런 나라들은 이미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스스로 엄격한 검사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고, 이미 동물성 사료를 금지한 상태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자기 나라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나라와 경쟁조건을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고, 또 광우병 검사, 통제 기술을 수출할 수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광우병을 덜 겪은 나라들이나, 쇠고기를 수입하는 나라들은, 광우병에 대한 검사 보다는, 나이가 많이 든 소를 유통시키는 것을 금지하거나, 쇠고기의 뼈와 뇌를 유통시키는 것을 금지하자는 쪽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나라들은 자기 나라 안에서 갑자기 사료를 바꾸거나, 어려운 검사 통제를 도입하기 보다는, 수출하는 나라들이 수고해서 뼈와 뇌를 발라내고, 소들의 연령과 나이를 잘관리하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뼈를 발라내고 연령과 나이를 관리하느라 쇠고기 수출국이 부담이 생겨서 비용이 더 들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자기 나라 축산농가들에게 유리해지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중요하게 논의된, 이상의 두가지 이야기, 즉, 소를 키우는 방법(사료, 검사방식)과, 소를 죽이는 방법(도축 연령, 뼈와 뇌를 버리는지의 여부)는 후일 많은 나라들의 쇠고기 협상에 한 기준이 됩니다.
(1583년에 그려진 그림. 오른쪽은 엘리자베스 여왕, 중앙의 소는 네델란드를 상징)
유럽에서 여러 논쟁을 벌이는 시기에, 이러한 나라간의 대립 분위기를 타고, 다양한 의견과 추측들이 흘러나옵니다. 특히, 이때 유럽은 미국이 소를 키울 때 성장 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에 시비를 걸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미국 당국은 미국의 학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유럽 소들의 광우병 위험을 공격하도록 유도 했습니다. 성장 호르몬이 아무리 나쁘다 한들, 광우병 만큼 나쁘겠냐는 투로, 광우병의 무시무시한 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곤 했습니다.
자주 인용된 것으로는 영국 존 콜린지 교수가 이야기한, "수천 수만명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있습니다. vCJD의 잠복기간이 30년정도일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래서, 광우병 파동이 처음 벌어진 1988년 이전에 멋모르고 광우병 걸린 소의 뇌와 척수를 먹은 사람들 중에, 상당히 많은 숫자가 이미 vCJD에 걸려 있고, 이 사람들은 지금은 멀쩡하지만, 사실은 광우병에 관한 조치들이 취해지기 전에 병에 걸린 사람들이어서, 이 사람들이 다 죽는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았던 것입니다.
이 존 콜린지 교수의 이야기가, 요즘 우리나라에 돌아다니는, 광우병은 잠복기가 30년이 넘고, 수천만명이 광우병에 죽는다라는 이야기의 발단으로 보입니다. 요즘 돌아다니는 이야기는, 이처럼 vCJD 잠복기가 소가 걸리는 광우병 잠복기로 잘못 옮겨진 경우가 많고, 또 88년 이전 상황을 겪은 영국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뜻에서 사용한 수천-수만이라는 숫자가, 광우병에 걸려서 죽을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수천만명이 죽는다"로 잘못 옮겨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런 공포 분위기가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나온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합니다.
(뭐 이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습니다만)
다른 이야기로,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영국 퀘니버러 마을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세 명의 사람이 vCJD에 걸렸는데,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한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정육점에서 쇠고기의 뇌와 척수를 발라낸 칼에 뇌와 척수의 조각이 묻어 있던 것이, 여러 사람의 고기를 썰때 묻어서 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가장 비관적인 상황에 관한 추측이었고, 당시 연구 결과로 볼 때 크게 확신할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요란한 분위기를 타고, 이야기거리가 되었고, 미국 학자의 해설과 함께 미국과 영국의 방송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도는 이야기 중에, "칼로 고기를 썰기만 해도 광우병이 퍼진다"는 이야기는 바로 이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나온 말로 보입니다. 뇌와 척수의 조각이 칼에 붙어 있다가 고기에 함께 들어가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고기 썬 칼로도 전염"으로 과장되기는 했습니다만, 이 역시, 당시 나온 이야기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광우병 위협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 당국은 다른 나라 쇠고기 제품을 막아내기 위한 무역장벽으로 이러한 연구들을 활용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90년대부터, 가축을 "비자연적으로 기르는 것" 비판 여론이 점차 생겨나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동물 보호론과 함께, 드넓은 벌판에 소를 방목하는 옛날 방식 미국 농법에 대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종의 환경운동이었습니다. 하다못해 미국 만화에 나오는 초능력 영웅 캡틴플래닛이 미친 소떼들과 싸우는 에피소드도 나왔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소에게 고기를 먹이다가 망했다"라는 주장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는 때문에 미국 내에서 상당히 발달하기도 했습니다.
(캡틴 플래닛)
2000년대초의 광우병 사태는 이처럼 나름대로 국제적으로 심각한 수준으로 계속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과 일본의 당국으로서는 상당한 문제거리로 다가 오게 됩니다. 날이 갈 수록 광우병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들이 자꾸 돌기 시작하니, 축산농가를 도울 방법이 막막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대로, 광우병에 대한 낙관론이 서서히 나오기도 했습니다. 88년 영국 광우병 파동, 내지는 96년 영국 광우병 파동 이후로, 철저한 광우병 방지 조치를 취하면서, 더 이상 광우병이 생기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즉 지금 발견되는 광우병에 걸린 소나, vCJD 환자들은 그 조치 이전에 이미 잘못되었는데, 잠복기 동안 발병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 발병하고 있는 것일 뿐, 이제 새롭게 광우병이 퍼져나고 있지는 않다고 본 것입니다.
광우병에 대한 낙관론은, 전세계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경향에 이유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광우병에 대한 조사는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는데, 광우병에 걸린 소들은 거의 사라지는 추세이니, 이것은 곧 새로 생기는 광우병은 없다는 뜻 아닌가,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2000년대 초무렵, 우리나라 당국에서는 곧 광우병은 없어지며, 광우병에 걸린 소의 척수를 먹지 않는 한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고, 설령 잘못해서 소의 척수를 좀 씹어 먹었다하더라도, vCJD로 발병할 확률은 낮다는 주장을 주로 가져와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쇠고기 시장을 살리기 위한 수법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광우병에 대한 낙관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지나친 낙관론의 예시: 다음 편을 보면, 드디어 모든 비밀이 밝혀 지겠구나!)
그렇지만, 광우병과 관련된 문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기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의 효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한들, 뇌의 기능이 점점 멈추어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치는데, 감정이 안정되기란 어려웠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축산농가들을 살려낼 묘책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유럽은 광우병 문제로 여전히 굳게 닫힌 상태였고, 이러한 상황을 언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광우병 문제가 언제 쯤 되면 지구에서 사라질지 하는 점도 제대로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2003년 "카르멘" 잠실 주경기장 공연을 준비하던 기획진과 제작진들은 결국, 유럽에서 투우에 사용하는 소를 데려오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들은, 고심 끝에 투우에 쓸 수 있는 소를 미국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마침내, 투우사는 스페인에서, 투우에 쓰는 소는 미국에서 구해오는 방법으로 잠실 주경기장에서 투우 장면을 펼치기로,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까지 광우병 문제를 보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류의 문제는 고전적인 외교나 행정 문제의 틀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광우병 문제는 그렇다고 그냥 보건이나 방역 문제에 그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우병 문제에는 생화학과 분자생물학, 신경의학과 보건위생학이 연결되어 있었고, 동시에 경제학과 통계학, 통상정책과 홍보정책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형태의 문제들을 먼저 이해하고, 보다 명확한 기술을 보여주는 쪽이 우세할 수 있는 문제 였습니다. 정부가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처리하는데 얼마나 능력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광우병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앞으로 가면 갈 수록 더 중요해 질 것으로 보입니다.
(불어 공부해서 외교관 된 사람도, 이런 것들과 얽힌 문제에 나서야 하는 세상)
광우병 문제는 점점 장기화 되고, 그 때문에 점점 더 골치 아파지고 있었습니다. 외국과의 통상문제, 광우병에 대한 보건 문제, 광우병으로 위축된 국내 축산농가를 돕는 일 등등이 계속 얽혀들어서 해결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고민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농림부 당국자들에게 2003년 12월 24일,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도착하게 됩니다. 이 선물은 미국의 당국자들에게는 커다란 재앙이었습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그 밖에...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prion)의 가장 큰 특징은 이것이 "살아 있다"라고 하기 어려운, 단순한 단백질로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생명현상과 달리, 프리온은 DNA 없이 퍼져나갑니다. 지구의 생물들이 따르고 있는, 중심 원리(central dogma)를 벗어나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어찌보면, 프리온은 작은 살아있는 생물이라기보다는, 자꾸 숫자를 불려나가는 특성이 있는, 복잡한 독약 가루, 소에게 해를 끼치는 괴상한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릅니다.
살아 움직이면서 핵이 분열하고, DNA가 복제되어 늘어나는 일반 생물에 비하면, 프리온은 죽어있는 살덩어리 단백질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만합니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프리온은 마치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좀비와 비슷한 형국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프리온에 대한 현상은 기존의 전통적인 생물학에서 배치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고, 프리온에 관한 질병에 대한 연구도 다른 병에 비해서는 이해가 떨어집니다.
프리온은 1백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도 버티고,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류를 치료 불가능의 방법으로 죽여 버리고, 지구의 생물학에서 통용되어온, 중심 원리를 거스르는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마치 외계 생물체 같아 보입니다. 지구보다 훨씬 뜨거운 금성이나 수성에서 온 우주의 침입자(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일지도 모릅니다. 영국에서 굳이 광우병이 창궐한 것은, 영국에 이 놈들이 가장 먼저 착륙했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물론, 마지막 문단은 황당무계하고도 이치에 닿지 않고 어림없으며 믿어서는 안되는 소리로, 이런 소리 한다고 동네 통반장 아주머니가 더운날 음료수 한 잔 사주지도 않습니다. 진지하게 연구해서 프리온이라는 것의 정체를 밝힌 미국의 스탠리 프루시너는 1997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글/ 창조한국당원 게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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