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et g3 ql17 / agfa ultra100 / 어느 놀이터
canonet g3 ql17 / agfa ultra100 / 어느 놀이터
canonet g3 ql17 / agfa ultra100 / 광화문 지하도
질렀다.
중학생 시절 교보문고를 놀이터 삼아 유유자적 관람하던 중,
수입서적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한 반고흐 작품집.
(그림과 설명이 적절하게 조합된 것으로 유명한
taschen 출판의 'VAn Gogh-The Complete Paintings'이다.)
당시 가격으로 거금 25,000원(지금은 70,000원이네..)!!
용돈을 모으고 모아 큰 맘 먹고 덜컥 구입했다.
그 후 꼴에 본 건 있어가지고,
벽다방에서 코코아 한 잔 뽑아서는
햇볕 좋은 놀이터에서 우아하게 고희의 그림에 푹 빠졌더랜다.
이제 그 나이에 딱 두 배 된 오늘,
'매그넘 코리아 사진집'에 꽂혔다.
사진을 처음 배울 때부터 귀에 딱지가 지도록 들은
그 매그넘~~~!!!
그들이 한국을 찍었다....그것도 248장이나!!
(총 2400장 중에서 엄선한 사진 248장이란다...)
7월 중순 이후에 배송된다는데..이거 쫌 설레이겠는걸~!
그나저나, 사진전도 가야하는데...
혹시 관심 있으신 분 계신감유??? 같이 갈까요~!!
(사진출처 : 교보문고)
2008년 6월 30일,
시청 앞에서 진행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전,
미사에 함께하기 위해 온 어느 스님의 인터뷰 내용중에서...
"쥐를 잡으려면, 흑묘든 백묘든 힘을 합쳐야 한다."
아래의 글은 싸이코월드 이슈공감 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날 당신은 훌륭한 주방장이 운영하는 고급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주방장의 추천 요리를 맛있게 먹던 당신은 음식 안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합니다.
"저기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어요."
나긋한 목소리로 식당의 사장인 주방장에게 이 사실을 알린 당신에게
주방장이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거 깨끗해요. 저 매일 머리도 감고, 그 음식도 마지막에 한 번 익혔기 때문에
그냥 드셔도 아무렇지 않을 거예요. 혹시 나중에 문제 생기면 책임질테니
안심하고 그냥 드세요."
주방장의 어처구니 없는 답변에 당신은 다시 한 번 조용히 항의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왔으면
당연히 사과하고 다시 음식을 내오던가, 환불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주방장이 다시 대답합니다.
"괜찮다니까 왜 그러세요. 정 못 믿겠다면 먹지 마세요. 안 먹으면 될 거 아니에요!
내게 일부러 머리카락 넣겠어요? 맛있는 음식 만드려고 하다 보니까 그럴 수도 있는거지.
그거 하나 이해못하고 말이야. 다같이 잘 살아보자고 해도 힘든 이 시기에 괜히 시비야!"
화가 난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언성을 높이며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식당 종업원들이 당신을 에워쌌습니다.
"이거 왜이래요? 주방장 나와서 이야기 좀 합시다. 잘못된 건 인정해야 되는거 아냐?"
흥분한 당신은 점점 목소리가 높아갔고, 반말과 함께 욕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종업원들이 당신의 어깨를 누르며 경고를 합니다.
"어이, 여기서 이러면 안되지! 조용히하고 먹던 거 마져 먹던가, 아니면 나가!
이래도 못 알아들으면 멀쩡히 걸어 나가기는 힘들거야."
너무나 열 받은 당신은 종업원들을 밀치고 주방장에게 거칠게 항의합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들렸습니다.
"저 사람 왜저래? 처음에는 조용히 잘 하더니 이거 완전 난동이네. 깡패야 깡패!"
"혹시 다른 식당에서 이 집 망하게 하려고 보낸 양아아치 아냐?"
"젊은 사람이 해도 너무하는구만. 주방장이 다 잘 살아보자고 하잖아.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자기 밖에 몰라."
"난 일산에서 여기까지 이거 먹으러 왔어. 우리 어렸을 때는 땅에 떨어진 것도 먹었어!"
"항의를 하려면 조용히 점잖게 해야지, 저게 무슨 경거망동이야?!
당신같이 욕하고 난동피우는 사람은 항의할 자격도 없어!"
아쉽게도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사족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언론에서는 지난 6월 10일의 촛불집회가 비폭력 시위로서의 성공적 사례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의 집회 양상 또한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혹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 또는 주장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빠져있어 이곳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보수 언론과 중립적 관망자들은 집회의 정당성을 '폭력사용 여부'라는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여기에는 '폭력사용은 곧 악'이라는 윤리 공식이 깔려있다. 즉, 이들은 집회의 의도나 목적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에만 관심을 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촛불집회 참가자(혹은 지지자)들도 동조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수렴된 '촛불집회는 비폭력 집회로서 바람직한 모델이다.'라는 명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불완전하고 또 위험하다.
과연 이번 촛불집회가 비폭력이었는지 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는 폭력에 대한 정의를 다시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술한 명제에서 쓰인 '폭력'은 '불법한 방법으로 행사되는 물리적 강제력'을 의미한다. 때문에 쇠파이프가 등장하자 언론과 여론의 태도가 변화한 것이다. 하지만 폭력이 이와같은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언어 폭력'처럼 심리적 폭력도 포함된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현상을 보면 촛불집회는 완벽히 비폭력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수의 군중이 모인 것 자체가 심리적 폭력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의 태도와 정부의 자세가 조금이라도 변화한 것은 바로 그들이 대중의 규합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코 비폭력의 아름다움에 탄복하고 감동하여 동의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점을 간과한 채 이번 집회를 완벽한 비폭력 집회로 규정하고 권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어 '비폭력성'이 집회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잣대가 될 경우 소수자들의 집회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언론과 여론의 행태를 볼 때, 소수자들의 집회는 극단적 행동이 나오기 전까지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투쟁이 마지막 승부수로 던지던 물리적 저항마저 이제는 '비폭력성'이라는 새로운 굴레에 묶이고 만 것이다.
그럼 이 글의 의도가 비폭력성을 부정하고 폭력성을 긍정하자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비폭력성이 허구이니 폭력성을 드러내자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성이 가능할 수 있도록 그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투쟁이 곳곳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기에 극단적인 폭력적 저항이 발생한다. 따라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나아가 우리나라의 시위 문화가 한 걸음 성숙할 수 있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소수자들의 외침이 온전히 확산되어 그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시위의 비폭력성에 대한 것만큼 그들의 목소리에 민감해져야 할 것이다. 즉, 비폭력 시위가 잠재적 폭력성을 갖지 이전의 단계에서도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폭력 시위에 전제되어야 할 우리의 자세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과연 그러한가?
다음은 간디의 '힌두 스와라지'의 일부이다.
영국은 인도를 취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국에게 인도를 넘겨준 것입니다.
영국인이 힘이 있기 때문에 인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국인을 붙잡
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명제를 입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인들은 원래 무역을 하러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바하두르(동인도)회사를
떠 올려 보십시오. 누가 그것을 바하두르로 만들었습니까? 영국인들은 애초
왕국을 건설할 때 아무런 의도도 없었습니다. 누가 그 회사의 직원들을 도와
주었습니까? 누가 그들의 은을 보고 마음이 혹했습니까? 누가 그들의 상품을
샀습니까? 역사는 이 모든 일을 우리가 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단번에 부
자가 되려고 우리는 그 회사 직원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인도가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 하는 (가상)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은 비슷한 역사적 상황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전례를
모방했을 때 실현되는 명제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당시의 인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여기서 우리의 행동
에 따라 역사는 반복될 수도 있고, 역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했고 또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주권을 위임 받은 자들의 결단이다. 그들의 결단이 우리의 선택과 일치를
이루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의 선택에
反하는 결정을 내리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자, 이제 선택하시라.
내일부터 저는 교생입니다..^^
실습 나가는 중학교 친구들이 우리 주일학교 친구들처럼
저를 사랑으로 받아줄지,
제가 그 친구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지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설레입니다.
(무엇보다 저의 컬트적인 개그가 통할지가 관건입니다.ㅎㅎ
주일학교 친구들은 안티팬만 더 늘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네요.--;;)
지금처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경험이 될 것이라 믿으며
저는 이만 내일을 준비하렵니다.
방쌤의 좌충우돌 교생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