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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겁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 겁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이름을 거론하자니 너무나 많은 동지들이 떠오릅니다. 저를 이만큼 건강한 간부로 활동가로 있게 해 준 소중한 분들. 저를 믿고 따라준 형님, 동생, 친구들. 이 의미있는 투쟁, 힘겨운 투쟁에 끝까지 남아 준 동지들 모두가 저에겐 희망이었습니다."

 

고 박종태 동지의 유서 중에서 눈에 밟히는 대목이다.

 

처음 문자로 그의 죽음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그저 우리나라 자살율 1위를 구성하는 하나의 사건인 줄로만 알고

곧바로 달려가지 못했다.

둘째날 아침 박 동지의 죽음의 의미를 뒤늦게 알고는

병원으로 달려갔고 촛불집회에 다시 가고 집회에 뛰어갔다.

 

유서를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살아서 투쟁할 수 있는 동지가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 화가 났고

결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을 특별한 죽음으로 몰아세운 것이 아팠고

관짝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는 말뜻을 새삼 확인하면서 진저리쳤고

동지의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동지가 죽지 않았을 때보다 아주 쬐금밖에 더할 수없다는 것이 슬펐다.

 

이런 감정조차 

이미 여러 동지들의 죽음을 통해 익숙해진 것이라는 것도

나를 매우 부끄럽게 하고

하던 일을 자꾸 멈추게 한다.

 

...........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넘어가려 했는데,

마음이 일렁거려서 몇 마디 끄적거려 본다.

오늘은 그의 주검이 발견된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빈소 앞

 

촛불집회 첫날, 5월 4일, 대전 중앙병원 앞

 

용역들과 경찰들, 5월 5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촛불집회 둘째날, 5월 5일 저녁,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화물연대 투쟁결의대회, 5월 6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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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눈물

1.

살면서 

어쩌자고

참 많은 눈물들을 만났다.

 

슬픔, 격정, 흥분, 감동, 그 무엇이든

눈물은

구체적이고 실존적이고 솔직하다.

 

어젯밤 늦게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한 동지에게서

또 눈물을 만났다.

 

15년을 친하게 어울렸어도

한번도 만나지 못한 눈물 앞에서

술잔을 연거푸 권하는 것과

손수건을  꺼내드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속절없이 우는 사람은 끝까지 울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눈물을 기억하리라.

 

2.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동지의 눈물을 기억하기 위하여

여기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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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신임 집행부에게 바란다

오늘부터 우리 연맹 새 집행부의 임기가 시작된다.

누가 쓰라고 해서 써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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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을 기억하라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보자들이 내세웠던 공약을 잊고 산다. 자신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한두 개는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연맹의 선거에서 제시되는 공약은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당선자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온전하게 기억하고 늘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 임기 2년은(그 임기를 다 채울 욕심도 없다고 했지만) 공약을 구체화하고 실천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기간이다. 다만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현재의 연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버리고 잊어라.


제대로 된 총력투쟁을 조직하자

고용불안, 정리해고, 임금삭감, 비정규직 확대, 연금제도 개악, 공공기관 사유화·통폐합·경영효율화, 그 어떤 투쟁과제라도 적당히 싸워서 지켜낼 것은 없다. 사력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노동자들이 벌이는 모든 투쟁은 목숨을 거는 총력투쟁일 수밖에 없다. 총력투쟁은 기본이고 총파업투쟁은 여러 전술 중의 하나인데, 파업을 못하면 총력투쟁으로 포장하는 것이 고질이 되었다. 총력투쟁이든 파업투쟁이든 당위적인 결의와 획일적 지침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 뼈저리게 경험했다. 연맹 집행부가 전국을 구석구석 누비면서 현장간부들을 만나고 직접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물론, 두 산업노조와 직할협의회로 나눠진 상황에서 효율적인 역할 분담은 필요하다.


통합산별의 전망을 명확히 제시하자

올바른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투쟁은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지만 현행의 법과 제도는 산별노조의 교섭과 투쟁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고 도리어 발목을 잡는 형편이다. 게다가 복수노조 교섭창구 일원화에 대한 정부의 방침도 기업단위 수준에서 맴돌고 있어서 산별노조는 그야말로 투쟁의 한 길로 가야 하는 처지이다. 직할협의회로 느슨하게 엮인 노조들이 안팎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통합산별 건설에 함께 하도록 새 집행부는 명쾌하고 설득력있는 전망을 조속히 만들어내야 한다.


작은 소리를 귀담아 듣자

연맹을 이루는 노동조합의 업종은 매우 다양하고 규모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모든 노동조합에 대의원을 배정하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연맹까지 전달되기는 쉽지 않다. 연맹과 일상적으로 소통하려면 중앙집행위원회의 성원이 될 정도로 큰 조직이거나 투쟁을 아주 독하게(크게 또는 오래) 해야 한다. 현장에서 웅성거리는 작은 목소리들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연맹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제도(예를 들면, 현장옴부즈만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에게 철저하자

연맹 집행부는 임기 중에 연맹이 벌이는 모든 사업의 공과에 대해서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 성공은 남한테 넘기더라도 책임을 떠넘기지 말자. 실패한 사업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자. 실패가 두려워서 계획한 사업 추진을 머뭇거리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자기만족적이거나 평가만을 위한 사업평가가 아니라 다음 사업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평가를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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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3시간째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골라서 보고 듣고 있다.

 

오후에 무주에 가야 했는데 못갔다.

그렇다고 해서 밀린 일을 다 끝낸 것도 아니다.

 

10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는 내리고

무주에서 회의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 도저히 못가겠다고 말했는데

곧바로 다른 곳에서 전화가 왔다.

 

신성동에서, 이제는 보직을 맡고 있는

연구소의 옛 조합원들이 모여서 술마시고 있으니

오랜만에 한번 보자는 전화였다.

시간 나면 술 한잔 하자는 얘기를 이전에 했던 터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성동으로 차를 몰았다.

어디인지는 그 동네 도착하면 알려주기로 했으므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사람도 저사람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까 통화하고 나서 겨우 30분쯤 지났을 뿐이다.

잠시 후에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어랍쇼, 시끄러운 음악에 파묻혀 목소리는 잘 듣기지도 않는데

말의 앞뒤가 어긋난다, 이 사람 취했구나, 생각이 미치는 순간

안녕히 가세요, 하고서 전화를 끊는다.

 

별 도리 없이 집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차라리 잘 되었지 뭐야, 하면서.

집에 도착하니 술자리의 다른 일행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래방이라서 전화온줄을 몰랐다면서

나를 초대했던 동료는 많이 취해서 사라졌다고.

그 또한 술을 제법 마신 상태인 것 같아서

다음에 보자고 했다.

 

일주일치의 피로가 몰려오는 듯 잠깐 잠이 밀려온다.

며칠 전에 집으로 배달된 사노준 특보 3호를 한페이지씩 읽어간다.

절반쯤의 내용은 공허하다. 내 의식의 공허함을 반영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노동절을 5.1절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5.1절이지? 왜?

그러고 보니 5.1절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쓰이긴 했지만

새삼 개운치 않다. 유래를 찾아봐야겠다.

노동절이면 충분한 것 아니냐.

 

잠은 금세 달아났고, 내친 김에 사노준 홈피에 첨으로 가봤다.

낯설지 않은 풍경과 낯설지 않은 성명서, 논평들을 읽어가다가

민주노총혁신대토론회 자료집(3월12일)이 눈에 띈다.

다운받아서 읽다 보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대목이 이어진다.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장기하가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출연한것이 걸렸다.

이하나, 음, 정부가 싫어하는 행사 사회를 봤다고

졸지에 프로그램마저 도중하차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봤던 적이 있다.

한번 볼까...

 

HD 동영상 4편을 다운받아서 하나하나 봤다.

김창완밴드&크라잉넛&요조
MC몽&린&장근이
바비킴&전제덕&윤하

드렁큰 타이거 & Bizzy
Windy City
임창정 & 김창렬
다이나믹 듀오
킹스턴 루디스카

yb(윤도현밴드)
이하나 & 김광민
클래지콰이
장기하와 얼굴들 

 

모르는 사람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고

나는 아직 음악에 푹 빠져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 차려놓고

서울 회의에도 가야 하고 오후에는 어떤 모임에도 가야 하고

다시 저녁에는 미국에서 온 후배를 만나기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

음악도 술처럼 시간을 술술 잘가게 하는 거로구나.

 

만사 제쳐두고

다른 것에 이렇게 몰입하는 것, 참 오랜만이다.

베란다 밖을 살펴 보니 비는 좀 그친 듯하다.

 

언제 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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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15일에 여기에 글을 썼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간 나는 무얼 했던가.

 

16일은 우리 지부 창립 21주년 기념일이었다. 정읍에 가서 조합원들과 낮술 마시고

대전에 와서 다시 조합원들과 저녁술을 마셨다. 그리고 날모동지들을 만나서 술을

더 마시고 취하고 말았다.

 

17일은 아침 10시에 청와대 입구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11시부터는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 뒷문 앞에서 집회가 있었다. 그리고 주요 사업장 투쟁전략회의가 있었고.

연맹으로 달려가서는 정책담당자회의를 했다. 술 한잔 마시고 대전으로 갔다.

 

18일, 토요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전엔 잠시 여유를 부렸다. 오후에는 신랑과

신부가 모두 나로서는 각별한 결혼식이 리베라호텔에서 있었고 그 뒷풀이가 바이젠

하우스에서 있었다. 이른바 하우스 맥주를 배불리 마셨다. 그 술기운이 완전히 가시

고 난 새벽 1시에 장보러 나섰다.

 

19일, 가사노동에 가장 바쁜 일요일이다. 오전에 서둘러 하루치의 일을 어지간히 해

놓고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장애인차별철폐대행진'에 참가했다. 어른 반, 아이들 반,

장애인 반, 비장애인 반, 두루 어울려 걸었고, 그리고는 해질 무렵까지 공연을 함께 봤

다.

 

20일, 별일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통폐합되어 신설되는 콘텐츠진흥원의 노동조건을

둘러싸고 노사, 노노 간에 어려움이 있다고, 위원장과 함께 서울로 달려갔다. 고용승계

를 법적으로 보장해놓고도 사직서를 강요하는 사용자의 방침은 일단 막았고, 노사합의

로 노동조건을 변경하기로 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밤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21일, 과학의 날. 과천국립과학관에서 치러지는 기념행사에 이명박이 참가한다고 해서

집회신고도 미리 내고 간부들이 새벽부터 달려갔는데, 나는 가문비가 독서실 등록을

위한 전쟁을 치르는 날이라 따로 출발했다. 가문비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움직이더니

독서실 등록을 무사히 마쳤다. 10시 30분부터 안산 해양연구원에서 중앙위가 있었다.

저녁까지 회의를 하다가 막판에 성원 부족으로 산회했다(이번 집행부에서 처음). 해양

지부 간부들과 저녁을 먹고 대전에 도착해서 지역의 동지들과 술을 마셨다.

 

22일, 오늘. 아침 10시부터 지역본부 대표자회의가 있었고, 오후 4시부터는 용산에서

연맹의 복수노조대응회의가 있었다. 모두 끝내고, 저녁을 먹고, 상암동 DMC(Digital

Media City라나..)에 자리잡은 Culture Contents Center에 와서 20일에 만났던 통폐합

기관의 노동조합 간부들이 밤샘회의를 하는 것을 참관하고 있다. 아니 참관이라기보다는

회의가 혹시 난마처럼 꼬이게 되면 풀어주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위원장과 나, 그리고 2명의 본부 상근자들이 함께 밤샐 작정을 하고 있다. 통합하게

되는 각 기관의 노조 또는 직원대표들(이들도 최근 조합원이 되었지만) 열댓명이 모여

열띤 회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주중에는 대전에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내일은 대전에서 2개의 밀린 원고

를 써야 하는데 또 무슨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날지 알수없다. 정책위원장이라면 책상

머리에 붙어앉아서 할 일도 많으련만 허구헌 날 길 위에 있으니 야단이다. 암튼, 내 블

로그가 넘 썰렁해서 중얼거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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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

 

1.

점심으로 콩국수 한 사발 말아먹고

모처럼 일요일에 사무실에 나왔다.

 

집에 있어도

집을 나서도

밀린 일은 끝이 없고

쉬는 날에 넓다란 사무실에 와서 혼자 일하면

일에 능률이 오를까 기대했는데

이런, 너무 덥다.

 

4월 중순이 이러하니

5월부터 8월까지(임기가 그 때까지^^) 어찌 버틸꼬?~.~

 

암튼, 생각난 김에

콩국수에 대한 얘기나 간단히 하자.

 

2.

여러번 콩국수를 해먹었지만

뭔지 모르지만 2% 부족했다.

 

지난 수요일에 서울에 갔다가

어떤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김치찌개, 섞어찌개 같은 것들이 1인분에 6천원이고

어랍쇼, 콩국수가 1그릇에 8천원이라고 붙어 있다.

 

이거 뭔가 있나 보다 싶어서 콩국수를 주문했다.

헌데,

흔하게 고명으로 얹은 계란, 오이채, 토마토 따위 하나 없이

샛노란 콩국에 쫄면같은 국수만 달랑 그릇에 담겨나왔다.

뭔가 범상치 않군, 하면서 젓가락을 들이댔더니

오호, 이 고소하고 질박한 콩국의 맛에

쫄깃한 국수가 씹히면서 어우러지는 것이 훌륭했다.

 

두부 해먹으라고

부모님과 처가에서 작년 가을에

각각 국산콩 2말씩 보내주셨는데

두부만으로는 다 소화하지 못하고

이제 두유랑 콩국수도 열심히 해먹어야 할 판이라서

집에 와서는 곧바로 인터넷을 뒤졌다.

 

3.

그리하여 오늘

내가 만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콩국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결론...

맛있는 콩국은

좋은 콩과 물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

예전에 고소한 맛을 보강하려고

땅콩이나 잣 같은 걸 조금씩 넣기도 했는데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 간을 맞추려면 약간의 소금은 있어야 하는구나.

 

-콩을 찬물에 충분히 불린다. 여름은 6시간쯤, 추울 때는 밤새...

-끓는 물에 8분쯤 삶는다.

-찬물로 씻고, 주물러서 콩껍질을 완전히 제거한다.

-콩과 물을 1:1로 넣고 믹서에서 곱게 간다.

-이렇게 만든 콩국이 너무 진하면 저마다 입맛에 맞게 물로 약간 희석하면 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

-콩을 오래 삶으면 메주콩 냄새, 즉 콩내가 많이 난다.

-콩을 덜 삶으면 콩 특유의 비린내가 난다. 적어도 5분은 넘겨야 한다.

 (시간이 애매하면 삶는 도중에 콩을 꺼내어 먹어보라~)

-콩껍질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콩물이 부드럽지 않고 씹히는 건데기가 많다.

 

콩국이 다 되었으면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국수를 말아 먹으면 끝.

국수는 어떻게 하느냐고?

오늘은 일단 집에 있는 소면으로 때웠는데

생면을 사다 써도 좋고

아니면 밀가루만 갖고 반죽을 치대서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좋겠지.

 

콩국수 좋아하는 분들, 한 번 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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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비

이번엔 공공노조 기관지 <공공노동자>에 기고했음....

 

<꼼꼼>이 당분간 안나오니까

<공공노동자>에 연재해 달라고 해서

'내 손으로 만드는 별미'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어랍쇼, 한달간 쉬었던 <꼼꼼>이 또 나온다네...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딴짓만 하고 다닌다고

한 소리 듣겠다...ㅋ

 

                                                     정성이 빚어내는 오묘한 맛, 떡갈비
 
떡갈비는 전라남도 고유의 음식으로, 맛은 좋지만 먹기에는 다소 번거로운 갈비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지난 2월에 전라도 지역으로 1박 2일 가족여행을 나섰다가 담양과 해남 지역의 떡갈비를 맛보았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지만 1인분에 2만원이 넘는 떡갈비를 마음껏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아빠가 떡갈비를 해주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갈비탕이나 갈비찜은 집에서 이따금 해먹긴 했지만 떡갈비는 지난 여행에서 먹어본 것이 처음이라서 막상 약속을 해놓고서도 한참 망설였습니다. 요리책을 펼쳐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재료나 만드는 방법이 각양각색이었고, 자칫하면 평범한 햄버그스테이크를 만들게 될 것 같았거든요. 사실 떡갈비는 쇠고기를 잘게 다져서 반죽을 만들어 빚는다는 점에서 햄버그스테이크와 만드는 방법이 매우 흡사합니다.
 
여러 차례 공부하고 궁리하다가 마침내 3월의 어느 주말에 찜갈비 덩어리를 넉넉히 샀습니다. 정육점에서 갈비살만을 분리해서 팔기도 하지만 갈비의 살과 뼈를 분리하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된 떡갈비가 탄생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갈비를 종이타올로 꼭꼭 눌러서 핏기를 모두 빼고 갈비뼈에 붙은 뼈껍질이나 막 부분을 일일이 제거하고 나서 갈비살을 일일이 다지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또 하나의 새로운 음식에 도전한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작업을 경쾌하게 해주었습니다.
 
처음 만든 떡갈비에 대한 식구들의 평가는 지난 여행에서 먹어본 것들보다 맛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호주산 찜갈비 800그람쯤 사는데 2만원쯤 들었는데 몇 갑절 이상의 값어치를 한 셈입니다. 등심구이나 안심스테이크에서 맛볼 수 없는 오묘한 맛은 2시간을 오롯이 바친 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식구들의 호평에 힘입어 3월 들어 두 번이나 떡갈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재료 준비>
-갈비 800그람 또는 갈비살 500-600그람
-밤 2-3개, 대추 5-6개, 호두와 잣 약간: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씹는 맛과 영양을 더해 줍니다. 모두 잘게 다져서 준비합니다.
-양념: 참쌀가루 2큰술, 배즙 3큰술, 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 설탕 0.5큰술, 꿀 1큰술, 다진 파 2큰술, 다진 양파 3큰술, 마늘 1큰술, 레드와인 1큰술, 소금과 후추 약간
-소스: 간장 2큰술, 육수 2큰술, 꿀 2작은술, 설탕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추 약간
 
<만들기>
(1) 갈비에서 살만 분리해서 일일이 썰어서 다집니다. 칼로 총총 다지면 칼날에 기름이 묻어나오는데 종이타올로 닦아가면서 다지다보면 자연스럽게 기름기가 줄어듭니다.
(2) 밤, 대추, 호두, 잣 등의 견과류를 곱게 다집니다. 잘게 다질수록 떡갈비가 잘 뭉쳐집니다.
(3) 다진 갈비살과 견과류, 준비된 양념을 섞어 치대면서 반죽을 합니다. 반죽은 어느 정도 끈기가 있어야 잘 뭉쳐지고 또 익어도 쉽게 덜어지지 않으므로 많이 치대는 것이 좋습니다.
(4) 반죽을 절편 정도의 크기로 모양을 만들어서 후라이팬에 얹어 약한 불로 굽습니다. 양쪽 표면이 익으면 소스를 약간 끼얹어서 속까지 익힙니다.
 
※ 떡갈비는 갈비살로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갈비살을 성글게 다지고 곱게 다진 일반 쇠고기를 섞어 반죽해서 만들면 갈비의 씹히는 맛도 살아있고 모양새도 예쁘게 만들기 쉽습니다. 이 때 갈비살과 일반 쇠고기의 비율은 1:1 정도나 2:1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 떡갈비는 석쇠구이를 해서 먹어야 제 맛을 냅니다. 하지만 집에서 일일이 석쇠에 굽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후라이팬에 놓고 소스를 끼얹으며 약한 불로 구워도 맛은 괜찮고, 정히 석쇠구이를 원한다면 후라이팬에서 살짝 익힌 다음 석쇠 위에서 직화구이 냄새가 배도록 다시 한 번 가볍게 구워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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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에 살던 집

 

아침에

어릴 적 친구가 카페에 올린 이 사진을 보고

숨이 잠깐 멎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이사가서 살던 곳이다.

왼편에 보이는 건물이 마을의 오래된 재실이고

오른편에 보이는 집이 내가 살던 곳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과 호롱불을 켜고 살았고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다가 군불을 지피면서

지직거리는 라디오에서 벌어지는

마루치 아라치와 파란해골 13호의 전투를 듣곤 했다.

 

비가 내리면 저 연못 둑에 쭈그리고 앉아서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드리우고 수십마리의 붕어를 낚기도 했고

폭우가 쏟아지면 본능적으로 상류로 솟구쳐오르는

미꾸라지들을 양동이로 가득 잡아서 어른들 술안주감으로 바치기도 했고.

 

지금은 모두 베어낸 모양인데

집집마다 누에를 치던 시절이었으니

저 연못과 집 사이에는 뽕나무가 가득 자리잡고 있어서

오디(뽕나무열매) 따먹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마을은 뒷동산을 넘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우리집은 뎅그라니 외딴 곳이었으니

한적하고 고즈넉하고 전망좋고 시원하고....

 

저기서 놀던 때가 어언 36년 지났고,

저 마을을 떠난 것이 32년쯤 되었나 보다.

 

그 당시에야 산 넘고 물 건너 한나절을 가야했지만

지금은 대전에서 1시간 반이면 갈터인데

조만간 한번 가봐야겠다.

가서 내 어릴 적 흔적 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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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경기장에서 김연아를 보다

지난 주부터 연일 출장에다가 주말까지 모임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제, 월드컵 예선 북한전을 한다고 일산에 사는 여동생이 가문비를 초대했다.

수업이 채 끝나지 않은 시간에 감히 서울로 함께 갈 친구는 아무도 없고,

내가 자의반 타의반 1시간쯤 일찍 퇴근해서 가문비랑 함께 기차타고 서울로 갔다.

 

남북 축구,

한국 팀은 내내 공을 갖고 놀았지만 헛방이었고,

반면에 그걸 막아내는 북한의 수비나 순식간에 몰아치는 역습은 대단했다.

막판에 골이 터지지만 않았어도 참 할말없는 경기였지.

(김치우가 교체 투입될 때, 가문비가 몹시 좋아하면서,

 이제 김치우가 한 골 넣고 끝날 거야, 하고 말했다.

 우연인지 행운인지 김치우가 곧 골을 넣었고,

 축구에 관해 내가 가문비보다 더 많이 아는게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음...ㅎㅎ)

 

응원의 열기는 뜨거웠는데

지나치게 한국팀으로 쏠려서 거슬리더군.

특히 선수 소개할 때는 모두에게 골고루 환호를 보내면 좋으련만

북한 선수들 소개할 때는 주변에서 나만 손뼉치고

박지성과 박주영 소개할 때는 운동장이 떠나갈 듯했다.

 

전반전 끝나고 우리 앞에 김연아가 나타났다.

갈채가 쏟아지는데 옆에서 동생이 한마디 한다,

정말 국민영웅이구만...예쁘네....

 

몇마디 연설을 하고 나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연설에서 한 번, 인터뷰에서 두 번 강조하기를,

선수들에게 부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

김연아 자신이 이미 여러 번 겪었던 터,

선수에게 부상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고 하는 얘기라서

더 가슴이 먹먹하고 애틋했다.

 

경기 끝나고

100미터 달리기를 해서 마지막 기차를 간신히 탔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가 훨씬 지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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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봄밤, 윤가브리엘의 감사의 시간으로 초대함



1.

4월 3일 번개 1차 프로그램은 윤가브리엘님과 함께 할까 합니다.

윤가브리엘님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의 대표이고,

2004년부터 에이즈운동을 '온몸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여 건강이 나빠졌지만,

지지하는 사람들과 후원인들의 몸과 마음의 지원을 받아

또 새봄을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윤가브리엘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분은

아래 '기고글'과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글] 다시 살아봐야겠다 희망은 내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6782

 

[영상] 희망은 사람의 몫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media_report&nid=39601

 

2.

회비와 참가비는 따로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녁식사를 준비했고 몇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함께 이 행사에 참가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준비된 프로그램에 함께 하면 되겠지요.

프로그램 중에는 퀴즈풀기도 있는데

위에 소개된 영상을 보고 오면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이 날 행사를 사진찍거나 인터넷에 올릴 경우에는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주는 것입니다.

(에이즈라면 아직도 예민한 이슈라는 거, 아시죠?)

 

참, 번개 1차 프로그램을 이것으로 준비하는 제 입장에서는

혼자라도 약간의 후원금은 준비할 생각인데,

혹시라도 같이 할 분은 제게 미리 5천원쯤 보태 주세요.^.~

 

3.

번개 2차 프로그램은 맥주로 할까, 소주로 할까, 막걸리로 할까,

아니면 파격적인 다른 어떤 것으로 할까,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습니다.

9시 30분쯤에 대학로 어드메쯤으로 이동해서

본격적으로 술마시며 얘기하는 자리로 만들까 합니다.

 

이벤트 응모자들께 드리는 선물도 이 자리에서 전할 것입니다.

(선물은 아주 평범한 걸로 준비했습니다. 일일이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죄송)

 

2차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1차에 합류하지 못하는 분들도 자유롭게 합류하면 좋겠습니다.

 

4.

번개 3차 이후 프로그램도 있느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제가 이날은 대전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므로

1명이라도 남을 때까지 번개는 진행됩니다.

그 1명이 술에 아주 취했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겠지요..ㅎㅎㅎ

(그러나, 실제로는 모두 적당한 시간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겠죠?!!)

 

암튼 444444 이벤트에 응모했던 분들,

초대받은 분들과 초대받지 못했더라도 함께 하실 분들,

언제 오실 건지

여기 덧글을 남겨주십시오.

아니면 저에게 문자를 주십시오.

 

특히, 1차부터 함께 할 분들은

4월 3일 6시 이전에 저에게 문자를 남겨 주십시오.

혼자 행사장소에 가기 어색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모여서 같이 들어가면 좋을 듯합니다.

 

제 전화번호는 011-451-7760입니다.

이번 번개에 참석하지 못해서 아쉬운 서울 경기 지역 분들은

언젠가 있을 대전 번개로 오시면 되겠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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