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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선언과 대대 사수, 그 사이

민주노총 제2차 중앙위원회가 있었다.

27명의 중앙위원들이 22일에 강행되는 대의원대회에 대해서

강행해라, 하지 말라, 하며 제가끔 열변을 토했고,

정회 후에 의장(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이렇게 정리를 시도했다.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테니, 대의원대회 사수를 위해

 노력해 달라, 오늘 회의가 표결까지 가지 않도록 해 달라, 당부드린다.

 

분열과 파행으로 치닫는 대의원대회를 강행하는 것은

민주노총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나로서는

의장의 발언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어서 되물어 보았다.

 

=1) 2월 22일 대의원대회는 한다, 2) 장소는 경희대 크라운관이다,

 3) 안건은 이미 공지된 3가지(위원장 신임, 사회적 교섭, 남북교류기금사용)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되는가?

 

의장이 거듭 그렇다고 했다.

자칫하면 파국으로 치닫을 지도 모르는 대의원대회가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모두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다, 정말로 걱정이다 하면서

중앙위원회가 집행부의 당부만으로 끝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것은 회의가 아니라 중앙위원 간담회나 토론회라 부르는 게 낫다)

정말로 걱정이다, 그렇게 나는 말했다.

 

나의 마지막 발언에 대해서 집행부의 임원이

그렇다면 표결을 하자고 응수를 했지만, 나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세 가지 문건을 접했고, 참담한 심경으로 그것을 읽었다.

 

 

 



하나는, 민주노총 중앙위원 동지들께 드리는 전국비정규노동조합대표자연대회의(준)의 호소문이었다. 회의실 입구 탁자에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각 게시판마다 올려져 있으니 찾아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사회적 교섭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중단하고 법 개악 저지와 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발전노조의 가장 오래된 해고자(전력노조 해고자라는 게 맞지만) 박주석 동지가 우리 연맹 게시판(자유게시판 12611)에 올린 "내가 분신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다음으로 읽었다. 읽었다기보다는 흐느꼈다.

 

-가장 구체적인 탄압 속에서 성장한 우리들이라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노사협조주의에 가장 구체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뿜어내는 노사협조주의에, 사회적 교섭에 결코 방관자가 되거나 또는 침묵으로 동조하거나 양비론으로 그들을 돕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온몸으로 저항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내가 아는 조수원 열사, 양봉수 열사, 김시자 열사는 모두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의 희생양들입니다. 그들은 다수의 횡포에 맞서 저항한 사람들입니다. 또다시 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들의 사회적 교섭을 저지할 수 있다면, 나도 기꺼이 우리 동지들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더럽게 살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속리산에서 있었던 정기대의원대회 이후, 나는 줄곧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장에서 한 노동자가 분신을 하는 환영에 휩싸이곤 했다. 지난 2월 1일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신나가 뿌려지는 것을 보면서 까마득하게 내 몸이 추락하는 기분을 느꼈던 것은 진작부터의 불안감때문이었다. 신나를 뿌렸던 그 동지는 경위보고와 총연맹 대의원 사퇴서에서 "지금 게시판에 퍼부어지는 온갖 비난을 보면, 그 때 제가 왜 분신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제가 조금만 더 냉정했고,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구석에서 조용히 신나를 껴얹고 불을 질렀겠지요" 하고 썼다.

 

민주노총을 상대로 분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니란 얘기이다. 막아야 한다. 막아야 한다. 지금 대의원대회를 강행하는 것은 분신이든 그 무엇이든 극단적 갈등과 충돌과 예기치 못한 사고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나에게 충격을 던진 문건이 하나 있었다. 끝에 "2005. 2. 12. 민주노총 교선실장 이수봉 드림"이라고 이름이 쓰인 것이다. 물론 이수봉 실장이 직접 작성했는지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 문건은 대의원대회를 사수하자는 것이었다.

 

-대의원대회를 사수하자. 관건은 폭력과 의사진행방해가 없는 대회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참관인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토론은 하되 고의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호히 경고조치하고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셋째 질서유지대가 충분히 조직되어야 합니다. 우선 500명을 목표로 조직되어야 합니다.

-긴급제안을 하겠습니다. 첫째 각 연맹은 대중조직을 발동해주십시오.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민주노총 폭력추방결의대회를 진행해 주십시오. 둘째 ...가능한 모든 현장조직들은 전조직원 동원령을 내려주십시오. 민주노총 사수 결의대회를 대대 장소 근처에서 진행해 주십시오.

-동지들 분명히 합시다. 대중조직의 정당한 의사진행과정을 야비한 전술로 방해한 쪽이 누구입니까?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참아왔습니까? 얼마나 설득해왔습니까?

 

아아, 더 이상 인용하고 싶지도 않고 일일이 논평하고 싶지도 않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가면 2월 22일에 우리는 어떤 사태를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소소한 얘기지만, 의장은 오늘 집행부가 파국을 피하고 민주노총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연휴 동안 내내 의견을 달리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래,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는 "만나자"고만 했지, 그 사람들이 애써 만나겠다고 하는데도 시간이 없다면서 실제로 "만나지는 않았다"! 또 다른 노력도 했다고 했지. 속리산 대의원대회를 유회시키기 위한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제기하면서 그 증거인 문건은 집행부의 노력의 일환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그러한 음모론에 대해서는 오히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고 나는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말했었다.

 

지독히 심란하다. 왜 나는 그 회의장에 끝까지 앉아 있었을까, 자괴감이 여러번 들었다. 자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자고 내일도 새벽 첫차로 빨리 사무실 가야 하는데, 내일 아침 우리 연맹 중집위라도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데, 아니아니, 차라리 지금 느끼는 이 심경을 밤을 새서라도 써야 되는것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혼란스럽다. 의연하자. 차분하자. 남은 기간이라도 동지들과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

 

한가지만 덧붙이고 끝내자. 22일 대의원대회를 원만하게 개최하기 위해서 집행부가 회의자료에 제시한 것은 다음 세 가지 준비사항이 전부이다.

 

-민주노총 최고의결기관인 대의원대회에서 60만 조합원의 대표인 파견대의원들의 정확한 발언과 의결을 보장하는 대의원대회장이 마련되도록 한다.

-이번 2.22 개최 예정인 35차 임시대의원대회는 회의 진행 내용이 완전공개되도록 하며, 대회장소의 규모에 따라 참관인원은 별도의 참관석을 마련하여 참관할 수 있도록 한다.

-대의원대회 진행에 있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가맹.산하조직에서는 안전요원을 선출하여 대회가 원만히 성사되도록 한다.

 

후우, 이 중에서 세번째 내용은 오늘 조직담당자 회의에서 반발이 커서 폐기되었다던가 유보되었다던가... 이런 걸 보면서 앞서 소개한 이수봉 문건의 끔찍한 내용들을 떠올린다면 내가 너무 과민한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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