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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1)

 

3월부터 가급적이면 차를 타지 않고 걷기로 했었다.

그리고 지난 6주일 동안 그 다짐은 잘 지켜졌고

내 차는 주로 4킬로미터 반경을 벗어나는 일정에만 쓰여졌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은 내 오랜 바램이었는데,

그래서 작년에는 자전거를 타고 자주 오가기도 했는데,

집에서 연구소까지 거리는 대략 3킬로미터쯤, 자전거로 오가기에는 너무 가깝고,

지역본부를 비롯하여 다른 곳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다소 멀었다.

 

게다가 맨날 고정된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번씩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하는 처지에서 보면

차 없이 다니는 것이 참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저러한 핑계로

말로는 걷고 싶다 자전거타고 싶다고 하면서

차를 포기하지 않고 아주 가까운 거리조차 선뜻 차를 몰고는 했다.

 

차를 버리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정작 엉뚱한 곳에서 왔다.

3월에 가문비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아침일과가 무척 바빠졌고,

아침마다 운동이라도 해보자는 계획은 엄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저녁이야 회의, 사람, 술 따위로 아침보다 더 악조건이니

최소한의 운동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겼다.

 

결론이 걷기였다.

연구소까지 걸어가는데 30분 가까이 걸리니까

무조건 연구소는 걸어서 가고 걸어서 온다,

그래서 하루에 최소한 1시간은 걷기로 한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오전에는 일단 연구소로 걸어서 출근을 한다, 차를 쓸 일이 있으면

다시 우리 아파트로 돌아와서 차를 몰고 나간다,

이렇게 작심했고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바쁜 일상이 나를 늘 몰아세우는 것처럼 살았지만

뚝섬의 사무실로 오가던 하루 4시간 반의 시간을 생각하면

기껏 왕복 1시간 걷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일단 걷기로 맘먹고 나자 걷는 게 재미있어졌다.

점심약속에 혼자 신성동으로 나가면서도 걸어서 갔다오고

둔산에 영화를 보러가서도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차를 몰고 가깝지 않은 거리에 가서 술을 마셔도

차를 두고 걸어오면 마음이 가벼웠고,

다음날 그 차를 가지러 걸어서 가는 길도 즐거웠다. 

 

목련이 지고 나서 새순이 어떻게 움트는지

수양버들가지에서 봄빛이 어떤 빛깔로 피어나는지

지나치는 연구소들의 철조망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지

차를 타고 다니면서 놓쳤던 풍경들을

걸으면서 비로소 하나하나 눈여겨보게 되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이 봄을 내게 느끼게 해준 것은  걷기 덕분이었다.

내 생활에 다시 큰 충격적인 변화가 오기 전까지는

나는 아마 사시사철 걷기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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