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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제20차 중집위원회는
18일 낮 3시에 시작해서 19일 새벽 3시쯤 끝났다.
문제의 마지막 안건(소위 산별노조운동의 원칙과 기준)에서
나는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그 자신조차 안건의 맥락과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한데도
중앙위원회에 직권상정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오류투성이의 회의자료를 작성한 실무책임자에게 목소리를 높였고,
몇몇 동지들의 차분한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우리는 소수에 불과했고 회의는 별 소득없이 끝났다.
(그것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하기로 한다)
회의가 끝나고 숙소로 들어간 직후
이정미 동지의 부음을 들었다.
하지만,
여러 날의 강행군과 잇따른 사건들로 인하여
오후가 되어서야 장례식장에 갈 수 있었다.
작년 8월, 동지를 처음 만났을 때
아픈데도 웃음이 그윽하게 넘치던 그 얼굴이
내가 늘 기억하는 동지의 모습이다.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우리들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편히 잠드소서.
*************
이정미(향년 40세)
- 청구성심병원 지부장
-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 병노협 및 미조직센타 활동
- 2006. 8. 19 03:20 위암으로 운명.
*장지 : 추후 공지(예정지-마석모란공원)
*발인 : 8월 22일 아침(정확한 시간은 추후공지)
*영안실 :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영안실 2층 3호실
*연락처 : 영안실-02-207-2014, 현정희-011-9837-0289, 최경숙-017-737-1607
이정미 동지의 삶(1993년 청구성심병원 입사 - 현재)
1993년 3월 청구성심병원 분만실 간호사로 입사
교수의 추천으로 을지병원에 입사하려 했으나 결혼을 하면서 남편 직장과 가까운 동네에 신혼집을 마련하게 되어 집에서 가까운 청구성심병원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1994년 노동조합 교육 선전부장
1995년 첫째 아들 출산
1996년 초 응급실 부서이동
말 노동조합 위원장 당선
위원장 당선 당시 임신 중이었으며 이때 한창 노개투 투쟁이었는데 만삭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노개투 투쟁을 열심히 전개.
1997년 3월 둘째 아들 출산
1999년 지부장 연임.
2000년 10월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당선
2001년 4월 위암 발병, 위절제술
2002년 중소병원 담당 부위원장 활동 - 방지거 병원 투쟁 등
2003년 보건의료노조 회계감사
- 보건의료 노조 부위원장의 역할을 하면서 전국으로 돌아다니며 활동을 해야 했는데, 건강에 무리가 되어 보건의료노조 활동을 접을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과 같이 일하는 동지를 생각하며 다시 활동할 것을 결심.
-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집단산재(정신질환)투쟁에 주도적으로 결합
2004년 1월 위암 재발
한방과 기치료로 투병하기로 결정. 체력여건상 수술하기도 힘들다고 판단. 이후 CT상 위암이 작아진 것으로 결과 나옴.
2005년 병노협 및 미조직센타 활동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 빚 청산을 위해서 재정 담당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면서 준비활동을 시작.
2005년 9월
청구성심병원 당시 지부장의 분만휴가 기간 동안 노동조합 지부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직무대행 임금을 조합의 빚 청산에 사용하자고 제의함.
2005년 10월 6일 암의 전이
심한 복통과 설사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입원했을 때 암이 복벽에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며 장루수술만 함.
2005년 11월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서 항암치료를 시작
한방치료 및 기치료를 병행하며 힘든 투병 생활을 하고 있음.
2006년 3월 10일 항암치료 마지막 6차까지 다 마친 상태임.
2006년 5월 장천공으로 서울대병원 입원
2006. 8. 19 03:20 운명. 서울대병원 영안실 2층 3호실
댓글 목록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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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결국...부가 정보
곰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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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참, 저 이재유입니다. 브로그 만들었습니다.부가 정보
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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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예...결국...곰탱이>> 이러다가 얼굴도 못보고 여름이 다 가겠네요. 블로그는 진작에 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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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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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정미 동지의 남편은 영결식에서 아내가 평소 좋아했던 노래 "어머니"를 다같이 불러달라고 했다. 그보다 앞서 두 아이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을 때 흐느낌과 통곡으로 화답했던 우리는 눈물 콧물이 뒤섞여 내리는 노래를 간신히 불러낼 수 있었다. 그나마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내야 했지만...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둥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가누나
아아 우리의 승리 죽어간 동지의 뜨거운 눈물
아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려움없이 싸워나가리
어머님 해맑은 웃음의 그날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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