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란 누구나 자신의 아이들이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모든 부모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에게 조카가 넷 있다. 남동생의 아이들과 누나의 아이들. 동생의 아이들이야 이제 아직 어린 아이들이지만 누나의 아이들은 큰 애가 고3이니 어린애가 아니라 어른인 셈이다.

누나는 자신의 아이들이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들보다 똑똑하기를 바라지도 않는 듯하다. 공부를 잘 못해도 아이들을 그렇게 야단치는 것을 보진 못했다. 아이들이 그냥 평범하게 잘 자라 주길 바랄 뿐이란다. "사회에 나가서 공부 잘하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은 소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하게 산다. 그러니까 지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게 더 낫다."

그런데 나는 조카들이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 평범하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지 않다. 조카들은 집에서는 서로 원수처럼 싸우지만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베스트 프렌드란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들어와서 문자하고 채팅하고, 심지어 채팅 창을 5개까지 열어놓고 수십 명과 동시에 채팅을 하기도 한다. "야 책 좀 읽지?" 그러면, "삼촌은 책 읽는 게 재미있나?" 그런다.

그러면서도 학원은 열심히 다닌다. 학원 왜 가냐 물으면, "삼촌은 말이 안 통해. 학원을 가야 친구들을 만나지. 학원 안 가고 혼자 있으면 좋나?" 사실 조카들에 대한 기대는 순전히 내가 만들어낸 억지 환상인지도 모르겠다. 차분하고 조용하고 책을 읽고 피아노 치고, 엄마와 대화하고 뭐 이런. 현실은 영 반대다 왈가닥에다 투덜이에다 고집불통이고 책보다 연예인 나오는 텔레비전 쇼 프로를 더 좋아한다. 내가 말하면 삼촌은 자기만할 때 그러지 않았냐고 대꾸한다.

나와 누나는, 동생은 그 때 아주 어렸는데,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그냥 산으로 들로 쏘다닌 것 외엔 뭐하면서 하루를 보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에 올라갔다. 산에서 참꽃(진달래)을 따고 소를 먹이고 꼴을 베고, 강에서 놀았다. 그 시절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10살이 되는 해 부산으로 이사를 왔는데, 곧 적응하여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 때는 바다가 놀이터였다. 내가 영화 "친구"의 첫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 때는 그렇게 놀았기 때문이었다. 거리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다니고 동네 야구부를 만들어 야구를 하고 싸움박질 하고 그런 놀이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면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조카들과 나는 이미 삶의 방식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나는 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더 이 책을 읽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랑 자연 누비며 진짜 공부해요"

입력: 2008년 05월 02일 17:14:13 (경향신문)

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문용포, 곶자왈 작은학교 아이들 |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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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조천읍 선흘리에 가면 아담한 학교가 있다. 이름하여 ‘곶자왈 작은학교’(cafe.naver.com/gotjawal)다. 이 학교는 이른바 ‘학습’을 위한 정규학교가 아니다. 이 학교 재학생들은 다만 머털도사와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 뿐이다. 한데 신기하다. 그렇게 어울려 노는 가운데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세상에 대해 배워나간다. 그것이 머털도사, 아니 문용포 선생님의 교육방식이다.

2년 전 문을 연 곶자왈 작은학교는 마을학교의 역할과 자연학교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방과 후에 혹은 주말에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길러나간다. 제 앞가림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학교의 모토이다.

책은 머털도사와 작은학교 아이들이 사계절 동안 신나게 논 체험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아이들은 봄이면 들에 나가 냉이와 달래, 쑥, 광대나물 등 봄나물을 캐고 다듬어 부침개를 부쳐 먹고 꽃과 나무, 벌레 등을 관찰한다.

머털도사가 아이들에게 입말로 차분하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구성된 책은 작은학교 아이들의 체험활동과 아이들이 쓴 시, 활동상을 담은 사진과 일러스트 등이 더해져 생생하다. 한데 그 기록은 철저히 체험에 바탕하고 있다. 머털도사는 아이들에게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아는 것이 우선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지식으로서의 앎보다 스스로 느끼게 하고 체험해서 얻는 앎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는 맨발로 땅 위를 걸으며 때론 까칠하고, 때론 촉촉하고 때론 푸석푸석한 땅의 느낌을 온몸으로 느껴보라 권하며 오름에 올라가면 양지바른 땅 위에 누워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여태껏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며 자란 아이들은, 직접 제 몸으로 차근차근 숲을 이해해 나가면서 버섯은 썩은 나무에서 자라고 풀잎으로도 피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적을 올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일이다. 밝고 바른 아이로 자라기 위해서는 세상이란 남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

며칠 뒤면 어린이날이다. 못다한 사랑을 값비싼 선물로 잠시 때우려 하기보다, 아이들이 세상을 체험하며 스스로의 힘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인세의 50%는 곶자왈 작은학교와 분쟁지역 평화도서관을 돕는 데 쓰인다고 하니,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자녀를 둔 부모 등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1만원. 〈 윤민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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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5 10:59 2011/11/15 10:59

내가 책이나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제주의 4.3을 알게 된 것은 90년대 후반 조성봉 감독과 함께 일하면서였다. 나는 함께 작업해보지 않겠느냐는 조성봉 감독의 제의로 조 감독의 작업실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했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조성봉 감독이 <제주 4.3 항쟁>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헌트"의 감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조성봉 감독을 만나 처음으로 "레드헌트"를 보았다. 충격적이었고 비극 그 자체였다. 당시 조성봉 감독은 막 "레드헌트 2"의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가 강요배의 그림도 그 때 처음 접했다. 지난 4월 3일은 <제주 4.3 항쟁> 60년이 되는 날이었다.

동백꽃 지다…강요배 그림·김종민 증언 정리 | 보리


경향신문(2008년 03월 28일 17:08:45)

“둘째 오빠가 행방불명되어 버리자 우리는 졸지에 ‘폭도집안’으로 몰렸어요.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당시 열세 살이던 나까지도 서북 청년회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 난 그때의 충격으로 성장이 멈춰, 다 자란 후에도 몸무게가 30㎏밖에 되지 않았어요.”

제주 4·3 항쟁이 50주년을 맞는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2년에 걸쳐 분단을 막고자 한라산에 올랐던 1만4000여명에 달하는 일반인들이 희생됐다. 아들이 산으로 사라졌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총살을 당했고 임신부가 대검에 찔려 죽었다.

처참했던 역사는 부정됐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당사자들이, 관련자들이 세상을 떠나갈 즈음이 되어서야 공식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하나 뼛속깊이 그 신산스러운 역사를 간직해온 개인들의 상처는 시간이 지났다고 쉬 아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즘 4·3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책은 사라지는 역사, 기억되지 못하는 역사를 상기시기키 위해 만들어졌다. 강요배씨가 80년대 말부터 제작했던 연작 역사화에 4·3 당사자들 34명의 증언을 모으고 책 앞뒤에 서경식 도쿄 경제대 교수가 쓴 추천의 글과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의 해설을 덧붙였다.

제주도 사람이었던 화가 강요배씨도 젊은 시절엔 정작 4·3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한다. 그는 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직접 4·3 관련자들의 증언을 듣고 답사를 다니면서 연작 역사화 ‘동백꽃 지다’ 50여점을 제작했고, 10여년 전 동명의 전시회를 통해 발표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과 똑닮은 생생한 증언을 읽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작가가 참혹했던 역사를 온몸으로 이해한 뒤 그려낸 그림을 보다 먹먹해진다. 예술의 사회적 책무를 운운하는 시대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사회의 상처, 숨겨진 역사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보듬는 일 역시 예술가의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만5000원 〈 윤민용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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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5 10:54 2011/11/15 10:54

누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경향신문 2007. 11. 17)


우리 주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의 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야 한다’는 사람과 ‘휴일에도 나와서 일해주면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후자에 속하는 편인 필자로서는 읽는 내내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책이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성실해야 한다” “노동은 내 존재의의” 등의 신념을 철저히 내면화하며 살아온 ‘범생이’에게 ‘노동지상주의’를 근본부터 꼬집는 이 책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라는 구호는 한국사회에서 1980년대만 해도 자본가를 향한 공격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불과 20년 사이 이 구호는 ‘유연한’ 고용·해고 덕에 낙오된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이데올로기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라는 정기간행물을 발간해온 독일의 좌파 지식인 그룹 ‘크리시스(Krisis)’는 이러한 변화는 ‘노동지상주의’ 자체가 가진 한계에서 나온 당연한 귀결로 본다. 이들은 ‘일자리 창출’과 ‘완전고용’을 이루겠다는 좌파와 우파 모두의 다짐은 부정돼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누가,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완전 고용돼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더욱 근본적인 입장이다.

우리는 ‘여유로움’이 ‘자유시간’으로 바뀐 세상에 살고 있다. 여유로움은 무언가를 획득하려는 활동 과정에서 분리된 여분이 아니라 그 자체가 완전히 자립적인 삶의 목적이었지만 자유시간은 더 많은 노동을 뽑아내기 위한 준비시간일 뿐이다. 비극은 ‘추상적 노동’이라는 것이 생겨난 근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에서 시작한다. 가치 증식이라는 목적만을 향해 움직이는 상품생산 경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은 구체적인 활동과 시간의 리듬에서 분리돼 나와 양과 질로 ‘추상화’됐다.

저자들은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노동-마르크스주의자들이 당혹스러워하며 페이지를 넘겨 버렸던 그 ‘어두운’ 마르크스를 외면하지 않고 말이다. “‘노동’은 그 본질상 자유롭지 못하고, 비인간적이며, 비사회적이고, 사적 소유에 의해 조건지어지고, 사적 소유에 의해 창조된 활동이다. 사적 소유의 지양은 ‘노동’의 지양으로 이해될 때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1845). 단지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을 경영, 시장, 교환과 돈에서 해방시키자는 뜻이다. 공허해 보이기도 하고, 현실성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근본적 문제제기는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본래 놀이인(호모루덴스)으로 태어났다’는 호이징하의 말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김남시 옮김. 1만5000원

〈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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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5 10:47 2011/11/15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