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도 생계를 위한 노동이 되면 좀 달라진다. 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또 좋아하는 건 많이 다르다. 그래도 공부한 댓가로 먹고 살고 있고 썩 잘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견디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에게 공부는 읽고 쓰는 일이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읽는 건 재미있고 즐겁지만 쓰는 일은 힘들고 고역이다. 읽고 잘 쓸 수 있어야 연구자로서 직업을 유지하고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 읽는 게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에 자주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생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아마 곧 그런 상황에 처할 공산이 크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물론 읽으면서 최소한의 정리를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냥 읽는 재미에 빠져 읽기만 하면 막상 글을 써야 할 순간이 되었을 때 앞서 읽은 것들이 글을 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읽은 것들이 다 나의 지식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겠지만 논문은 글을 지어내는 식으로는 쓸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것들을 다시 읽고, 정리하고, 메모한 글들을 끄집어내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사태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공부는 읽고 쓰는 일이라는 걸 자주 잊는다. 칸트는 숭고와 관련하여 상상력의 두 가지 작용을 이야기하는데, 상상력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상을 순차적으로 포착하고 포착한 부분들을 하나의 통일적 단위로 총괄하는 능력이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상상력이 순간적이든 연속적이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을 파악하여 그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분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상상력은 순차적으로 포착하고 총괄할 수 없는 대상과 직면했을 때 좌절한다. 칸트는 이걸 상상력의 무능력이라고 부르고 상상력은 숭고의 대상과 마주할 때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고 좌절한다. “포착은 무한히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총괄은 포착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더 곤란해져서, 곧 그 최대 한도에 도달한다. (...) 왜냐하면 포착이 최초에 포착된 감각적 직관의 부분 표상들이 상상력 안에서 이미 소멸하기 시작하는 데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계속 포착을 진행하면, 상상력은 한편에서는 얻는 것만큼 또 한편으로는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괄에는 상상력이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최대가 있는 것이다.” 상상력의 두 작용인 포착과 총괄은 다른 기능이다. 대상을 포착할 때는 무한히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총괄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다. 대상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이전에 포착한 부분들을 잊어버려 대상을 하나의 통일적 단위로 종합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는 것이다. 마치 공부는 무한하게 계속할 수 있지만 공부를 계속할 수록 앞서 공부한 것들을 점점 잊어버려 하나의 주제로 종합할 수 없는 사태를 맞게 되는 것과 같다. 연구자에게 공부가 노동인 이상 어느 순간 멈추고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고 총괄하여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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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하자면 나는 삼성전자초기업노동조합을 지지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익이 곧 보편적 이익이라는 생각을 갖기는 어렵다. 노동운동이 사라진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개별 이익집단의 아귀다툼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한국에는 노동운동이 죽었다. 민주노총부터 노동조합 운동을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 투쟁으로 생각한다. 이념이 없으니 비전이 없고 미래도 없다. 자본가들과 정치 지배자들은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쳐 저들 계급의 이익을 모도하지만 노동자들은 모래보다 못한 존재들이다. 노동자들이 하나의 사회계급으로 형성되지 못한 미개한 자본주의 국가 한국에서 계급투쟁을 기대할 수 있으랴. 계급이 없으니 계급의식도 없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정규직 노동조합이고, 현장(공장) 노동자들의 조직이 아니다. 실제로 화학물질을 만지고 처리하는 노동자들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래도 현실을 좀 파악할 필요가 있어 구글에서 검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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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그냥 좋은 도구다. 도구라는 말이 도구가 가지고 있는 여러 논란들을 단순화해주는 측면이 있다. 그래도 도구는 도구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효과와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책과 컴퓨터의 차이가 엄청난 것처럼 인공지능은 그냥 컴퓨터가 아니다. 인간이 기억력에 한계가 있으니 활자를 통한 기억의 외부화와 컴퓨터로 인간의 기억을 외부화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2026년 현재, 중동에서 들려오는 포성은 단순히 국경선의 변화나 정치적 주도권의 향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란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이 얽힌 이 거대한 화약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발을 딛고 선 대지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 전쟁을 바라볼 때,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인간의 '이기심'과 '오만'이 지구라는 공동의 터전을 어떻게 제물로 삼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