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의 눈은 빛에 대한 반응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눈의 기능은 빛과 관련하여 발전하고 퇴화한다는 것이다. 생명체의 모든 감각 기관은 그 역활과 기능이 환경과 작용하고 반응하는 관계를 통해 진화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눈은 다른 감각 기관에 비해 더 우월하다. 우리는 밝은 햇빛을 쫓아 터전을 일구면서 살아온 것이다. 눈의 기능이 다른 기능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다. 빛은 진리고 어둠은 악이라는 이분법이 인간 문명을 지배한다.

11살에 처음 안경을 했는데, 사실 10살부터 책을 읽을 때나 무얼 볼 때 잘 보지 못했다. 가난한 집에서 안경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다. 결국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 맞은 편 거리에 위치한 안경점에서 시력을 검사하고 처음 안경을 착용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눈이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을 갖고 있었다. 시력을 잃으면 글을 읽을 수 없고 영화를 볼 수 없다. 나는 중학생이 되고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 동네에서 가까운 2본 동시 상영 극장에 드나들었다. (당시 입장권이 100원이었고, 얼마 후 200원, 300원으로 인상되었고, 고등학생 때는 500원으로 인상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더 자주 극장에 갔다.) 중, 고등학교 때는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소설을 읽었다. 내 방이 없었기 때문에 다들 자는 사이에 진짜 호롱불 같은 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그래서 눈은 점점 더 나빠졌다.

만약 시력을 완전히 잃으면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없으니 음악만 듣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경제적으로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으면 음악만 듣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시력을 잃으면 먹고 살 수 없고, 결국 삶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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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6:17 2024/08/21 16:17

한국경제

기사 2024/05/18 21:53

쓰레기 신문 <한국경제>도 읽을 만한 글들이 있다.
연극, 영화, 전시, 도서와 관련한 글들은 읽을 만하다.

내가 있는 대학 공동연구실은 처음 생길 때부터 <경향신문>을 구독했는데, 재작년부터 신문 지국에서 <한국경제>를 함께 보내준다. 아마 구독을 바라는 홍보용일 텐데 이게 아직도 계속 온다. 아주 가끔 몇 개 기사를 읽는다. 문화 정보를 다루는 면을 가끔 펼쳐 보는데 오늘은 쌓여 있는 신문을 하나 집어서 펼쳐 이 글을 읽었다. 단순한 공연 정보라기에는 좀 셈세하고 비평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글이다.

>> 마침내 홀로 선 19세기 신여성 노라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노라'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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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8 21:53 2024/05/18 21:53

불현듯 든 생각들

일상 2024/05/14 21:25
살다 보면 한두 가지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는 모양이다. 나는 소년기와 청년기 시절 전혀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을 평생 직업으로 갖게 된 것과 고양이를 만나 함께 살게 된 일이다.

나는 소년기에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청년기에는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도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나는 서른이 조금 지나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먹고 살고 있다. 이제 나이 오십 중반이고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로 강의하며 산 세월이 20년이니 대학을 떠나 다른 직업을 구하기는 물건너간 셈이다.

50이 되기 이전에는 자주 "이 망할 대학"을 빨리 벗어나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대학에서 짤리지 않고 정년까지 붙어 있을 수 있기를 기원하는 꼴이 되었다. 나이 탓이다. 점점 도전적이고 새로운 뭔가를 추구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은 대학을 65세까지 무난히 붙어 있다 나중에 해도 된다고 위안하는 것이다.

고양이와 만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감상적인 편이라 나이가 들어도 드라마를 보면 감정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연민을 잘 느끼고 정서적으로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마흔 이전에는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관심이 없으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마흔이 조금 지나면서 학내에서 길에서 고양이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마흔까지 나와 세계에 대한 시각이 너무 견고해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두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튼 고양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접촉하고 연결되는 과정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어떤 필연적인 계기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이런 고민들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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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21:25 2024/05/14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