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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다와야 '유머'지

 

re님의 [덧글을 안썼어야 했다]에 관련된 글.

1.

 

re님이 [섹스 10도^^]라는 글에 덧글을 달고선 블로그 공간에 대해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구나", "조심조심 피해다녀야지"라고 한다. 말걸기는 어떤 기분인지 알. 듯. 말. 듯. 하다.

 

아주 다른 가치 체계, 사고 방식을 가진 이들과 '대화'나 '소통'을 하기란 무척 힘이 든다. 단지 '생각이 다르구나' 정도라면 '갑갑함'만으로 끝이다. 물론 그 정도만으로도 꽤 진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가치 체계나 사고방식의 차이'가 사회적인 위계, 다수와 소수, (일말의 힘이라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서 드러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섹스 10도^^]는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서 남자의 성욕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불쾌(그 이상이겠지)하기 짝이 없는 '유머'이다. 이런 '유머'에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나는 웃겨', '불쾌한 이유가 뭐야?', '어차피 말장난이잖아' 따위로 답을 해버리면 '좌절'을 맛보게 한다. 아마도 이 '좌절'은 '쟤랑 얘기해 봐야 소용 없지' 정도가 아닐 것이다.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들이 '아랫것들'을 이리 비꼬고 저리 비꼰 '유머'를 내뱉을 때마다 편견, 차별 따위를 계속 안고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 각인하게 될 것이다. 그 따위 '유머'를 공개적으로 떠드는 자들을 '꼴통 새끼'로 여기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구나", "조심조심 피해다녀야지"라는 re님의 말은 알 듯 말 듯 하면서도, 웬지 말걸기가 억울해진다.

 

2.

 

사람들마다 취향이 달라서 유머러스한 이야기나 코메디에 대한 반응도 제각각이다. '푸하하하' 웃기도 하지만 '안 웃겨' 조롱하기도 한다. 이 정도라면 취향이 달라 반응도 다른가 보다 하면 끝날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불쾌해!'라고 얘기한다면 그 유머나 코메디에는 '어떤 이해 관계'가 내재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해 관계가 내재한 유머나 코메디는 특정 상대자를 비하하거나 부정하게 표현하거나 하찮게 표현하기 일쑤다. 상대를 낮추어야 자신이 올라가니까. 그래서 권력에 대한 조롱은 항상 유머러스 했고 인기도 많았다. 힘 없는 다수에게 즐거우니까.

 

[섹스 10도^^]도 '유머'일까? 이를 보고 재밌다고 한 사람들이 있긴 하니 '유머' 같긴 하다.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떤 이해 관계 때문에 그럴까? 이를 보고 불쾌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떤 이해 관계 때문에 그럴까?

 

이를 보고 불쾌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면 그들을 비하했을 가능성이 높다(비하 당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연대의식이나 윤리의식 때문에 불쾌해 했을 수도 있다는 뜻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유머'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덕목이 필요하다.

 

"난 너희를 비하하기 위해 이 유머를 즐긴단다."

 

결코, "안 웃겨?", "왜 불쾌해?", "왜 그런지 얘기해 볼래?"가 아니다.

 

 

어쨌든 이 '유머'는 '황당한 야망'을 열 개 뽑은 것이다. 자기 성욕을 채울 수 있는 여자를 골라서 그 여자를 '뻑가게' 만들고 싶은 '야망'이다.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이런 '야망'을 잘도 정리해 놓았다. 야망이 웃긴가? 그보다는 자신들의 야망을 그렇게 우습게 표현해도 좋은가? '유머'는 '유머'다와야 '유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