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뛰어다니는 윗층 아이들
- 2016
-
- 정의당 상무위원회 사태
- 2016
-
- 부족함과 초라함(2)
- 2014
-
- 오랜만에 홍아(2)
- 2014
-
- 다정한 모녀(4)
- 2011
낭만의 섬, 제주에 놀러 갔었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파트너, D200과 그 친구들 몇을 데리고 갔다.
너무 무거운 짐은 돌아다니기에 불편하니 몇 친구들은 집에 두었다.
광고마냥 '낭만'은 확실히 짧았다.
별로 구경도 못한 것 같은데 다시 '생활'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무슨 일인지 공항은 사람들로 미어 터져 어수선했고
말걸기도 덩달아 정신이 붕붕 떴다.
정신없이 한무더기의 빽빽한 무리 사이를 힘겹게 지나는 순간,
뒤로 돌려 매고 있던 사진가방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설마!
가방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D200과 그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꼬?
갑작스레 밀려오는 공허함에 한동안 몸이 얼어 있었다.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며 다시 쳐다보고 쳐다보고.
이번에는 비어 있는 걸 알면서도 손을 넣어 D200과 친구들을 찾았다.
여전히 가볍게 빈 가방바닥만을 훑을 뿐이었다.
허탈한 기운이 가슴을 답답하게 눌렀다.
뭘 어찌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야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자기길만 걷고 있었다.
도둑이 기다려줄 리도 없는데 도둑을 찾다가 포기했다.
심히 허탈해서 경찰에 신고할 맘도 생기지 않았다.
그 비싼 것들을 어찌 다시 장만할 수 있나?
이사비용으로 모아두고 있는 목돈으로 D200은 마련할 수 있겠지.
그래도 되나?
포기한 채 다시 서울로 돌아오려다,
문득 사진동호회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못 찾는다 하더라도 경찰에 신고하고 Nikon에 시리얼 넘버를 알리는 게 좋다는...
도둑이 바보라 자기 것처럼 사용하다가 AS라도 맡기면 모를까
확실히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이란 공허를 약간 채우기도 한다.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하러 갔다.
도둑 맞은 물품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경찰이 물건을 찾기 위해 애쓸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담당자의 태도에 약이 올랐다.
신고를 받은 담당자는 피해액을 산출하기 위해 직접 도단 물품마다의 값어치를 매겼다.
이건 얼마, 저건 얼마.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피해액을 꼭 알아야 한다면 말걸기한테 대충 물어보고 적어두면 될 것을.
그런데 지켜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대부분 어처구니 없게 싸구려 물건인양 취급했다.
딱 하나만 비싸게 매겼는데 그것도 어처구니 없었다.
오히려 너무 비싸게 값을 매겼기 때문이었다.
도둑 맞은 것도 황당한 마당에
경찰까지 뻘짓하고 앉았으니 슬 짜증이 밀려왔다.
값을 매기려면 제대로 매기라고 짜증 섞인 항의를 하였다.
항의에 대한 경찰의 반응이 압권이었다.
"에이~ 싸게 매긴다고 자존심 상하셨구나? 도둑 맞은 것보다 더 기분 나쁜가봐~"
허걱. 뭐 이런 경찰이 다 있는고.
이 얄미운 경찰의 실실 쪼개는 표정에 화가 났다.
그런데... 경찰이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말걸기의 품을 떠나 거대한 공허를 남긴 D200과 친구들을 그리도 싸구려로 취급하는 게 불쾌했다.
도둑에게 갔어도 그들의 체면은 구겨지지 않았으면 했다.
진심을 들키면 확실히 화가 난다.
어찌어찌 신고는 끝냈고 돌아왔다.
왜 이리 맘이 괴로운지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왜 그리 상실감이 컸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떠올릴수록 그 경찰은 정말 얄밉다.
오히려 도둑을 원망하는 맘은 별로 없고 경찰 얄미운 맘만 남았다.
왜 그러지?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