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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당 선관위가 결정한 바에 대한 반론글이다.
갑자기 당게에서 옮기고 싶어져서..
ㅇ 쓴 날 : 200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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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게시판의 실명화는
<인터넷 실명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당 정책부장 문성준입니다.
여러 분야 중 정보통신정책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프라이버시권과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권리를 포함하는 정책이지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2001년 9월 22일, 제2기 4차 중앙위원회가 제정한 <당규 15호 민주노동당 정보통신 운영 규정>을 입안한 당시 실무자이기도 합니다.
비례대표 후보선출 선거를 위해 선관위가 당원게시판을 실명표시화했습니다. 선관위는 '과열', '이런 저런 과장'과 '명예훼손'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렇게 결정했답니다.
1. 선관위는 권한 밖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 형식의 문제
[당규제15호]은 <실명게시판>이라 하더라도 "실명을 확인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다"(제21조 제3항)고 규정하면서, "실명을 이용하여 접근을 제한하는 기술적 조치"를 하려면, "1. 사회적 통념상 온라인상의 소수자와 약자(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들이 구성한 소모임 등이 보호를 요청할 경우. 단, 실제 위협적이고 지속적인 공격이 있을 경우로 한한다", "2. 당내 특정 조직/기구의 활동 특성상 구성원 외의 이용자가 접근해서는 안되는 경우", "웹메일, 채팅, 커뮤니티 등의 서비스 특성상 인증을 거쳐야만 하는 경우"(제28조)에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당규제15호]는, 이를테면, <실명게시판>과 <실명인증게시판>을 내용적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실명게시판>은 자율적으로 실명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운영되는(강제이동 가능) 게시판이고, <실명인증게시판>은 게시판 이용 권한을 줄지 판단할 때 실명을 확인하는 기술적 절차를 두는 게시판입니다. 그렇다고 실명이 항상 드러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참고로 당에서 통하는 실명과 주민등록상 실명도 다릅니다)
[당규제15호]는, 이미 실명인증으로 운영되는 게시판에 실명이 드러나도록 하는 조치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실명인증을 거친 당원만 이용하는 <당원인증게시판>을 <당원인증+실명표시게시판>으로 변경하는 것은, "실명을 이용하여 접근을 제한하는 기술적 조치"([당규제15호] 제28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애초부터 필명이 인정된 가운데 운영이 되어 자리 잡았고, 사실상 당원게시판 이외의 게시판에서는 당론 형성을 위한 의사 표현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세 가지 경우(제28조의 예외들)가 아니면 기술적 조치를 해서는 안됩니다. 선거기간동안에 한하여 <당원인증게시판>을 <당원인증+실명표시게시판>으로 운영하는 것은 위의 세 가지 경우 어디에도 해당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재 당의 당규를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실명을 이용하여 접근을 제한하는 기술적 조치" 권한은 선관위에 없으며, 상집이 구성하는 게시판운영위원회에게만 있습니다. 선관위는 선거와 관련한 조치를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부정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선관위가 <당원인증게시판>을 <당원인증+실명표시게시판>으로 변경할 수는 결코 없는데, 당원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중에 비례대표 선거와 관련이 없는 필명글을 강제로 실명표기글로 바꾸는 조치를 선거와 관련한 조치로 확대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이번 당원게시판의 실명표기화는 <인터넷 실명제>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 내용의 문제
지금으로 봐서는 위의 당규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형식적인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형식이나 절차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념적이고 내용적인 목표에 적합할 때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제가 앞서 말씀드린 형식의 문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당규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해석도 왜 이리 엉망이냐고 비난해도 좋습니다.
우선, 국회가 준비한 <인터넷 실명제>와 당원게시판의 실명표시화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인터넷 실명제>는 주민등록번호를 식별자로 하여 주민등록 DB나 신용평가 DB를 이용하여 실명을 확인한다는 면에서 이번 선관위의 조치와는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선관위의 주장을 보고 있노라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결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선관위는 해명글에서,
인터넷 실명제는 실명으로'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정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명게시판과 함께 자유게시판을 '동시에' 운영하는 중앙선관위의 결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실명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당의 정책이 견지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입장을 부정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당의 정책이 견지하는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사전에 표현을 위축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전에 표현을 위축시키지는 않지만 명백한 인권침해 대해서는 사후에 제재를 가해야 하며, 특히 소수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는 미리 강구해야 한다는 게 당 정책의 기본방향입니다.([당규제15호]를 잘 보시면 이러한 입장을 구현하기 위한 고민이 엿보일 겁니다.)
우선, 익명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표현의 자유에서 익명표현은 타협할 수 없는 기본입니다. 인터넷에서 글을 작성할 때, 즉 자기표현을 할 때 실명을 강제하는 것은, 국회 앞에서 데모할 때 누가 데모하는지 경찰에 실명명단을 제공하는 것과 같으며, 책을 출판하거나 신문·잡지에 기고를 할 때 필명을 사용 못하게 하는 조치와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래서 국회가 추진하는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가 박정희의 긴급조치와 같은 것입니다.
당원게시판을 실명표시게시판으로 만들어서 자유게시판과 나란히 운영하여 익명성을 보장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것은 사기에 가깝습니다. <당원인증게시판-자유게시판> 체제에서는 자유게시판은 죽은 게시판입니다. 사실상의 여론 형성, 즉, 당원들이 발언하고 듣고 싸우고 논쟁하는 살아 있는 게시판으로는 당원게시판만 남은 것이지요. 이 상황에서 당원게시판을 실명표시게시판으로 변경하는 것은 그 조치의 시간만큼 당원들의 표현의 위축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입니다. 왜냐하면, 실제 유일한 여론 형성의 공간에서 익명성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익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적(敵)인 자유주의 사고가 아닙니다. 표현의 익명성은 힘이 불균형한 가운데 정치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입니다. 이번 선거는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입니다. 비례대표 중 일부는 국회의원이 될 것입니다. 즉, 당내에서도 권력자 중의 권력자입니다. 우리당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일반 당원의 권력 차이는 대단히 클 수밖에 없습니다. 선관위는 <당원인증게시판>을 <당원인증+실명표시게시판>으로 바꿈으로써 일반 당원의 익명의 권리보다 당내의 권력자가 흠집 잡히지 않을 권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선관위 조치의 본질입니다. 또 하나 선관위가 행한 건, 비례대표 선거와는 무관한 글을 올리는 당원의 익명권을 무참히 박탈했다는 것입니다.
국회도, 당선관위가 말했듯이, "경선이란 언제나 과열될 수 있으며 이런 저런 과장과 명예훼손 등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 또한 많"다는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것입니다. 실명표시는 실명의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한테는 표현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면서도, 정작 악랄한 인간의 악랄한 악선동에는 무력합니다. 접속자체가 실명으로만 가능했던 PC통신 시절에도 명예훼손은 만연했고, 소위 부작용으로 폐쇄된 CUG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떤 당원이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자신은 희생하되 목표는 달성해야겠다고 맘만 먹으면 실명표시화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죽어도 싫은 후보가 있다면 시연해 드리겠지만 없어서 못하겠군요.^^
깨끗하고 정책대결이 되는 선거가 바람직합니다. 지저분하고 흠집내기만 만연한 선거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쾌하지요. 그건 도덕적인 잣대입니다. 주관적이기도 합니다. 불쾌한 모든 걸 사전에 예방하고 제재하고자 하는 게 바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권력의 속성입니다.
3. 그렇다면 대안은?
2000년도부터 2001년도까지 <인터넷 내용 등급제>로 긴 싸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주노동당도 그거 하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썼습니다. 기자들이 찾아와서 <인터네 내용 등급제>의 대안은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없으면 될 걸, 만들면 안될 걸 만드는 놈들한테 만들지 말라고 한 것뿐인데 대안이라뇨.
이번 선관위의 당원게시판의 실명표시화 조치에 대한 대안은 없습니다. 그냥 예전처럼 하면 됩니다. 다만, 앞으로 좀 구상해 볼 만한 아이템은 있습니다. 당은 어차피 1년 내내 선거하는 조직 아닙니까. 지역에서부터 중앙까지. 모든 당직, 공직후보 선거를 위한, 당원들의 시선을 끌만한 통합 컨텐츠를 구성해서 운영하는 것이지요. 지지고 볶고 싸울 인간들 다 모이는 곳. 이곳에 가면 쌈구경도 하지만, 감동과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는 곳 말이지요. 사실 선관위가 당원게시판 실명표시화한 것은,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실명표시로 운영되는 선거게시판 만들어봐야 당원게시판만큼 사람들이 몰리지도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또 하나, 이런 일 생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당규제15호]도 개정해야 할 듯합니다. 더 정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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