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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노동부문 최고위원은 선출되지 못하였다. 투표율 49. 63%. 말걸기에게는 민주노동당이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산된 기억이 없다. 그럼 초유의 사태였나?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블랙코미디였던 이번 선거는 말걸기의 오래 전 희미한 기억을 일깨운다.
97년 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확실하진 않다. 말걸기가 다니던 단과대학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총학선거나 다른 선거와 함께 하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재선거일 것이다. 선관위는 각 학과 학생회장 등으로 하여금 재선거에서 흔히 겪기 쉬운 투표율 올리기에 매진하였다.
당시는 대학의 학생회가 붕괴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의 영화란 없었다. 학생회를 이끄는 자들에게는 학생회의 명맥 유지가 대단히 중요했다. 말걸기도 학생회가 여전히 '운동권'의 둥지였으면 했다. 하지만 어쩌랴! 붕괴하는 학생회의 장을 선출하는 선거, 그것도 원래 일정이 아닌 재선거에 유권자들의 절반 이상은 냉담했다. 대단히 각성한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들만의 잔치'에 애써 공들일 필요가 없으니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지. 투표 마감은 다가오는데 50%에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
대학엘 다니면서는 학생회 활동을 주욱 했었고 후배들의 활동도 도왔던 말걸기는 선거 진행에 관심이 많았다. 마지막 날 오후, 선거는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던 단과대 안터(로비)에 나갔더니 과학생회장이 말걸기에게 말을 건다.
"말걸기! 4학년이나 복학생 등등 중에 휴학생이나 뭐 그런 사람 없어? 여기 명부에서 찾아 줄래?"
"얘도 휴학했고, 쟤도 휴학했는데... 근데 왜?"
"선거 정족수에서 빼려고. 투표율이 50%가 되지 않을 것 같거든."
"잉? 그런 게 어딨어. 선거하기 전에 선거인명부는 확정하는 거 아냐? 지금 빼면 안되지."
투표 시간은 종료되었다. 언제나처럼 개표는 계단식 강의실에서 공개했다. 말걸기도 주루루 쫓아 들어갔다. 두 개의 선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양 선본의 운동원들과 후보들, 선관위 구성원들이 다수였다. 그리고 말걸기 같이 여기저기서 찾아온 학생회 활동가들. 선관위는 각 학과 학생회장 등의 도움을 얻어 선거인명부에서 휴학생 등을 골라내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을 유권자 총수에서 제외했단다. 근거를 설명했다. 학년초라 학생처에서 받아온 명부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단다. 그러니 뺄 수 있단다.
띠~용~ 이럴수가! 말걸기는 당시만 해도 제 눈에 벗어나는 건 절대 못보는 작자라서 손 번쩍 들고 발언을 했다. 그럼 안되지! 선거인 명부는 선거 전에 수정했어야지. 그때도 충분히 할 수 있었잖아. 그때 안해 놓고 투표율 땜에 지금 하면 안되지! 선거 무효!
거의 말걸기가 혼자 개기는 분위기였는데, 말걸기가 계속 개표 진행을 방해하자 다들 혐오와 짜증이 섞인 눈초리로 말걸기를 쏘아붙였다. 쪽수가 안되면 져야지 뭐.
당선자는 가려졌고 뒷풀이가 열렸다. 두 선본의 뒷풀이 중 좌파 계열 연합 후보의 뒷풀이 장소엘 쫓아 갔다. 거기에 아는 녀석들도 많고, 무엇보다 NL이 다굴한 뒷풀이엘 가면 끈적여서 못 버티니... 하여튼 뒤풀이 장소에 선관위원장도 있었다. 선관위원장은 95학번으로 당시 영문과 학생회장이었다. 현 사회당의 조직 기반이었던 '공동체 학생연대'의 조직원이었다. 술을 한참 마시더니 선거인명부 조작이 그래도 맘이 걸렸나 보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 선거인 명부를 조작한 사실을 인정한다거나 선거가 무산되면 자기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다나 어쩐다나... 허거덕. @.@'
'저것이 몇이나 처먹었다고 벌써 정치적 생명 따위나 운운하고 지랄이야. 씨발, 운동권 다 썩었다 썩었어!' 나이 먹으면 이 상황에서 정치적 생명 운운해도 되나? 역시 이런 점에서 말걸기도 모자랐던 시절. 그 자리에서 선관위원장과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얼굴 익고 잘 아는 후배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제발 선거 결과를 뒤집어라. 그 중 하나가 선관위원장과 같은 조직원이었던, 나름대로 믿음이 가는 후배였다.
다음날 선거 결과 공고가 붙었다. ㅇㅇㅇ과 ㅇㅇㅇ이 각각 정회장,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공고. 조직 라인도 없는 말걸기는 어디 가서 쪽수 모으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세상이 망해가는구나 한탄만 하였다. 그런데 그 날, 어쩌면 다음 날. 믿음을 갖고 있던 '공동체 학생연대'의 그 후배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말걸기가 선거 결과에 문제제기하는 자보를 붙일 줄 알았다. 그 정도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퍽! 퍽! 퍽! 우당당탕! @.@~
이런 개새끼들이 다 있나. 지네 조직원이 책임지고 있던 선거관리가 개판 되었는데 자기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직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선거결과에 문제제기를 해야지, 왜 빽도 조직도 없는 말걸기한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그래! 하지만 비겁했던 건 '공동체 학생연대'만이 아니었다. 학생회를 장악한 NL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고 대장정이나 21세기 진학련도 마찬가지였다.
아, 줄 없는 활동가의 비애여!
아니다. 말걸기는 줄 없이 살래...
선거는 선출을 위한 절차다. 그런데 어떤 선거는 투표율 규정 때문에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선출을 위해 선거를 치렀는데 선출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10여 년 전 말걸기가 겪었던 선거는 원래 선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거였다. 그런데 운동권들이 장난쳐서 억지로 달성시켰다. 그러니 학생회가 망하지. 절차에 충실한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내용적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운동권의 독선과 오만을 관철시키고자 한 짓이었다. 그러니 외면당하고 그래서 투표율은 낮아지고, 그 때문에 또 억지를 부리고. 운동권의 악순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싹이 트고 있었다.
8월 31일에는 민주노동당이 장난칠 기미를 보였다. 사실 두번째 투표 연장은 꽤나 편법적으로 보인다. 그래도 0.38% 미달로 억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민주노동당 노동부문 최고위원 선거 결과는, ①어처구니 없는 이영희의 컴백, ②이영희를 추천한 현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만, ③민주노총 지도부가 사람 심는 노동부문 최고위원 제도의 부당, ④점점 한심해지는 민주노동당의 작태에 대한 당원들의 심판이거나, 그에 따른 무관심의 표출이다.
위의 네 가지 평가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이해하는 평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율 넘기기 위한 당, 혹은 선관위의 노력이 미진했다는 한심한 평가가 도사리고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말걸기는 (근거는 없지만) 이덕우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선관위원들의 의중은 이를 의식하고 있었던 걸고 믿고 있다. 매끄럽지 못하여 항의를 받는 한이 있어도 돈 발라쳐 전화 돌리고 6시간 연장하는 따위의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라고 50%를 넘길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도박이긴 해도.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의 압력, 당 지도부의 협박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지도부(혹은 그 중 일부)는 선거관리의 미숙함으로 인해 투표율이 50%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해서는 안된다. 그런 소리 하는 새끼는 진짜 나쁜 새끼다. 악당에 불한당에 양아치다.
중요한 건 선거 평가를 제대로 해서 현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만함에 경고를 주고, 그리고 노동부문 최고위원 제도의 문제점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당의 일반적인 선거 내지는 투표 제도의 문제점도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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