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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당히 치밀하고, 나름대로 꼼꼼하게 진행한 터라 준비 단계서부터 기록이 상당한 여행이 이번 시베리아-몽골여행이다. 그 여행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 준비가 거의 끝나야 할 때이지만 그렇지 못해 마구 몰린다고나 할까.
내가 외국 여행 경험은 일천하지만 시베리아-몽골 여행은 쉬운 여행은 아닌 듯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리 맘 조리고 괴로운 여행 준비일 줄이야.
나는 꼭 시베리아-몽골을 특별히 가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긴 여행'을 원했기 때문에 제안에 응했다. 그러다가 시베리아의 도시들과 바이칼호, 몽골의 초원과 사막 이야기를 찾아보고선 너무나 가고 싶어졌다. 그 때부터 조금씩 설레임을 느꼈고 그것조차도 작은 행복감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설레임이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여행을 '갈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미 예약 등을 마친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게 중에는 되돌릴 수 없는 돈도 상당액 지불한 상태이다. 또 하나는 함께 가기로 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깬다는 게 인간적으로 너무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갈 수밖에 없는 건 '출장'이지 '여행'일까?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원만했던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일단 돈이 걸리니 액수를 맞추기 위해 여행지를 이래 바꾸고 저래 바꾸고, 여행 국가(또는 도시)에서의 관광 내용도 이래 바꾸고 저래 바꾸고. 예약도 원만하게 된 건 하나도 없고. 환율은 떨어지기만 하는 듯하더니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고. 400만원 어치 사진 장비(내 인생에서는 중요한 도구들이다!) 들고 가야 하는데 여행자 보험은 이걸 감당하지 못하고. 가네 마네 늦게 출발하게 어쩌네 일행 하나는 2주도 남기지 않고 하루에 한번씩 말이 바뀌고. 포기할까 싶으면 또 하나는 꼭 가고싶다고 소망을 밝히고. 하여튼 짜고 치는 고도리판(겉으로만 공모 사업)에 순진하게 낄 때부터 재수에 옴이 붙었던 것 같다.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지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되는 기쁨. 어처구니 없는 신비감 때문일지라도 그게 어디야. 그게 행복감 아닌가. 여행 직전에 난 그 기쁨을 상당히 잃었다. 퇴직금 땜에 얼토당토 않은 일들은 벌어지니 여행 준비도 시원치 않게 진행된다. 이래가지고서는 돈만 왕창 들인 짜증스런 세월을 보낼 듯한 느낌이 든다. 돈도 몇 푼 없고 벌지도 못하는 백수 주제에 퇴직금 쪼개서 반은 사진 장비 사고 반은 해외 여행 가는 정신 나간 짓거리 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미쳤지 내가.
내면에서 솟는 열정의 에너지를 느끼는 게 여행인데 오히려 짜증의 기운만 가득하다.
짝꿍은 막상 여행을 떠나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 한다. 하지만 준비가 개판이니 기분 좋을 때보다는 후회 짙은 짜증만 가득할지 모른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봉착해도 해결하는 과정이 여행이라지만 그 어려움을 즐기면서 넘기려면 지금의 나같은 태도로는 어림도 없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에이씨! 되는 일도 없고 짜증 만땅! 이 시절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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