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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진 찍으러 가는 걸 '출사'라고 하더군. 20년 넘게 간간이 사진을 찍었지만 얼마 전에야 알아들은 말이다.
말걸기 대가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퇴직금 반 뚝 잘라서 사진기 샀는데, 그게 Nikon D200이다. 트렌드 쫓으려 의도했던 건 전혀 아닌데 최근 최고로 인기 있는 DSLR 사진기란다. 선택은 잘 한 듯.
이 사진기를 사고자 맘 먹은 후에 D200클럽에 가입을 했다. D200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사진동호회다. D200이 출시된 게 작년 말이라 이 동호회는 최근에 첫 지역모임을 추진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서울/경기 지역의 회원들이 처음으로 모인 출사가 지난 18일(일)에 있었다.
시베리아-몽골 여행 가기 전에 이것저건 할 것도 많아서 망설이다가 흔치 않은 배움의 기회가 되리라 믿고 D200클럽 서울/경기 첫 모임에 나갔다. 말걸기는 첨 만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서먹한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10시간 가까이 함께 돌아다니니 한결 편해지면서 자신감도 생긴 듯.
광화문에서 모여 경복궁-인사동-북촌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클럽 회원 중 하나가 애초의 계획에는 없었던 '모델'을 데리고 왔다. 전문 모델은 아니고 친구들은 데려 온 것이다. 하루 죙일 줄창 여성 모델 사진만 찍었다. 사진이란 것도 남성이 지배적인 문화인 듯. 젊은 여성 모델이 없었다면 대단히 밋밋한 출사 모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여성을 모델로 경복궁 곳곳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관람객들에게는 사진 찍는 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한 20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한 장소에서 모델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니 그것도 볼거리인 듯. "누구지? 모델이야? 탤런트야? 유명한 사람인가봐"하는 소리도 듣는다.
우르르 몰려다니니 뻔뻔해진다. 주위에 피해를 준다거나 못되게 군다는 뜻은 아니고, 혼자서는 왠지 창피해서 못할 촬영을 한다고나 할까. 자신감이 생기니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마구 렌즈 들이밀고 찍게 된다.
몇 가지 중요한 정보도 알게 되었고 500컷이라는 막샷 날리고 보니 배우는 것도 있었다. 훌륭한 색상, 명암 등을 만들어내려면 사진기의 기계적 특성도 잘 알아야 하고 후보정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 무엇보다도 사진에도 연출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름대로 좋은 결과.
D200클럽의 회원들은 아주 정중한 사람들이었다. 자부심도 대단하고. 이 사람들은 사진을 잘 찍거나 못 찍거나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은 다 인정하는 배려도 있다. 이런 자리 가면 '명품' 렌즈 몇 개 씩 들고 오는데 말걸기는 기죽어서 처음에는 가방도 못열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이 사람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더라. 물론 무슨 렌즈가 좋고 뭐가 명품이고 등등 끝없이 장비 얘기는 하지만 좋은 렌즈만 부러워 하더라.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 중 딱 사람만 아주머니였고 나머지는 몽창 남자. 대부분 아저씨들. 사진 장비에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무지 돌아다녀야 한다. 그때문인지 '가족 관계'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른 감수성이지만 현실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태껏과는 다른 문화 공간에 끼는 게 힘들기는 하다. 그 공간이 풍기는 기운에 나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이지. 뭐, 그래도 구체적인 매개가 있는 만남은 오히려 쿨하다.
시베리아-몽골 여행 직전에 좋은 사진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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