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의 재구성

2008/07/02 00:21 생활감상문

오늘은 오랜만에 배탈이 나서 고생을 했다.

딱히 상한 음식을 먹은 건 없는데... 왜 배탈이 났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럴 만하더라.

 

아침 일찍 배가 고파 잠에서 깼다. 어제 저녁 6시 반쯤 저녁밥을 먹었으니까...

밥 먹은 지 거의 11시간쯤 되어서였다.

 

6시도 안 되었는데 아침을 먹기는 좀 뭣 해서, 냉장고에서 두유를 하나 꺼내 마셨다.

(찬물도 안 마시는데, 깨자마자 찬 두유를 마셨으니 배탈 사유 1)

반바지에 티셔츠로 갈아입고...  세탁기에 빨래 넣고 불림 코스 작동해 놓고...

(날이 제법 흐렸는데, 런닝 안 입었으니 배에 찬바람 드는 게 당연. 배탈 사유 2)

간만에 강바람이 맞고 싶어서... 한강으로 걷기 운동하러 갔다.

(꼬박 2주간 마감한답시고, 집회도 한 번인가 가고, 헬스는 전혀 안 갔다.)

 

서강대교 근처인 상수동 출구에서 한강 자전거 도로로 나가서

양화대교까지는 쉼 없이 걸어서 30분 조금 넘게 걸린다.

간만에 들꽃 향기도 맡고, 습기는 좀 있지만 상쾌한 아침바람에 열심히 걸었다.

 

집에서 6시 반쯤 나왔는데 양화대교 도착하니까 7시 5분쯤.

운동 안 하던 다리로 열심히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서

교각에 기대서 잠깐 앉아 있었다.

 

노래가 하고 싶어서 한두 곡 가만가만 부르고 있었다.

알렉스의 <화분>도 불러보니 역시 가사를 잘 모르고..- -;;

가사 완벽히 외는 몇 곡 중 하나인 <사랑의 찬가> 한국어 버전을 나름 심취해 부르는데...

저기 멀찍이서... 뭔가가 풍덩 물에 빠진다.

첨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사람인가 싶다. 에구머니... 어쩌지?

 

지갑도, 휴대폰도 없이, 덜렁 열쇠꾸러미 하나 들고 나간 아침운동이었다.

나도 모르게... "사람이 빠졌어요!"하고 소리를 지른다.

(정말 사람인지는 확신이 없지만, 혹시 모르는 거 아닌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지... 지나가던 아저씨 하나만 조금 쳐다보더니...

안 보인단다. 내 눈엔 뭔가가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데....

한참을 놀래서 쳐다보는데... 사람 빠졌다는 사람 아무도 없다.

지나가던 아저씨도.... 아닌 것 같다며... 경찰을 부르기는 쫌 그렇지 않냔다.

그래도 사람 빠졌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만 아름답단다.

아름다운 마음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 살리지 못한다면...

계속 찜찜한데... 워낙 먼지라(강 한가운데보다 먼 지점이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면서 돌아섰다.

(아침부터 놀랬으니 배탈 사유3)

 

다시 열심히 걸어오면서 딴 생각하다가.... 좀전의 소동은 잊어 버린다.

집에 오니 열심히 걸은 만큼 배가 고프다.

옷도 안 갈아입고 어제 끓인 된장찌개에 풋고추 하나 썰어넣고 다시 끓이고,

냉동실의 밥 전자렌지에 돌려 한 그릇 쓱쓱 비벼 먹는다. 아, 맛나다.

식초와 고춧가루까지 제대로 뿌려놓은 오이지 냉국이랑 먹으니 더 맛있네.

(아침부터 매운 풋고추에 찬 냉국을 먹었으니 배탈 사유4)

 

밥 먹자마자 양치하고, 바로 머리 감고 샤워한다.

(이러니 배에 또 찬바람 들어간다. 배탈 사유 5)

 

날도 약간 흐린데.... 점심때 저자 미팅 있다고...

배까지 바람 숭숭 통하는 꽃무늬 원피스 입고 출근한다.(배탈 사유6)

 

뭔가 속이 편하지 않은데... 출근하자마자 생각없이

커피부터 챙겨 마신다. 배 아플 때 피해야 할 우유까지 듬뿍 부어서...

나름 수제 카페라떼다.(배탈 사유 7)

 

그래서 결국 배탈이 났다.

아침 내내 화장실 들락날락... 미팅 준비도 해야 하고...

10인 이상 사업장 되서 새로 작성하는 근로계약서 및 취업규칙 회의도...

집중 못하고.. 자세도 기우뚱.. 불량 직원 모드로 참석. 계속 시계만 보면서.

아아... 또 배 아파서 화장실로 뛰어가면... 사장님 이하 전 직원 있는데... 무슨 망신이고 걱정하면서.

 

배탈엔 화장실이나 갔다가 굶는 게 최고인데....

필자라 한 점심약속 이니... 굶지도 못하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밥도 먹고,

또 카페라떼 마시고 2시간 반이나 수다 떨다 온다.

긴장해서인지... 미팅 때는 가라앉은 듯한 배앓이가

회사 돌아오자마자 또 계속된다.

 

배 따뜻하게 한다고 뜨거운 차를 마셨더니 더 아프더라.

그냥 미지근한 물밖에 대안이 없더군.

 

저녁엔 H양이 생협에서 산 물건 받으러 놀러왔는데... 같이 밥도 못 먹어주고...

겨우겨우 둘이 <체인지> 8화 다운받아서 같이 시청하고... 결국 저녁은 안 먹었다...

9시 넘어서야 겨우 새로 구운 쌀빵 두 조각. 그나마도 먹지 말걸. 아주 편하지는 않다.

 

생각해 보니...

더위에, 마감에 체력은 약해져 있고...

회사에서 잠깐씩 트는 에어컨에도 아직 적응이 안 되어 있다.

딱 배탈나기 좋을 때다....

역시... 사고는 순간의 방심(제일 큰 건.. 밥 먹자마자 샤워한 거?) 때문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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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2 00:21 2008/07/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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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이  2008/07/03 2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훗.. 간만에 포스팅 좀 하고 싶어서... 어깨에서 힘 빼고 몇 줄 썼더니만... 이게 어찌 블로그진에 오른단 말인가T T. 망신망신 대망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