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가던 밤
모로코에 가고 싶다. 기류 변화로 덜커덩거리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한다. 죽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살아서는 언젠가 모로코에 가고 싶다고. 혼자서 유배당한 듯이 헤메이는 완전한 자유의 느낌을... 어떤 여행자이건 꿈꾸지 않겠냐만은.
비행은 하나의 심연을 향한 도약이다. 기수가 올려지고 항공기가 지면과 경사를 이룰 때 창문 밖으로 돌아볼 때에야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이륙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잠시 나를 불러들인 직전의 깊은 잠 뒤에... 나는 국경을 넘으러 간다고... 가방에 넣어둔 김연수 선생의 책을 다시금 떠올린다.
"공간이동"이란... 삶의 양식을 전환하는 일이지, 똑같이 살기 위해 하는 건 아니라고.
"여행할 권리"란... 매년 똑같은 의례를... 반복하며 거기에 의미를 채워갈 때만 유의미한 그 경험이 깨진 순간, 나에게 생겨버렸다고. 사랑조차도 나를 붙잡지 못하게 되었다고.
언제나 변화의 요구는 설렘과 긍정이 아니라 고통과 후회에서 나온다고.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후회하는가. 딱히 후회하는 일은 없다. 상실감이 제일 크고, 내 삶이 달라질 것인가 하는 그만큼. 여기엔 두 가지 면이 있다. 실제로 내 삶의 내용이 달라질지 회의적이라는 것과, 삶에서 어떤 질적인 변화도 통계상 잡히는 미혼-애인 없음이라는 지표에 의해 무화된다는 느낌. 죽으면 그만인 만큼 한번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의지를 불태워 보는 건데... 열심히 사는 걸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더라도 무의미하다는 식의 소리는 안 들으면 좋겠다. (하략)
__2008년 9월 12일, 상하이 가는 밤 비행기가 이륙하는 도중에. 유일하게 적은 여행 메모.
이런 거 쓴 것조차도 잊어버렸는데... 오늘 저녁 우연히 발견.
진짜 두서없는데... 그 순간의 느낌이 조금쯤은 살아나는 것도 같다.
비행기의 기수가 지면에서 떠오른 채 완전히 바퀴를 떼기 전 창밖을 내다 보았다.
거기엔 온통 어둠뿐이었다. 그 한순간의 두려움과 떠나고 싶은 마음... 뭐 그런 것.
목감기, 기침감기, 콧물감기를 거쳐 눈에 열이 올라 잠 못 이루는 짬에 타이핑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