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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6 깨달음

깨달음

2013년 10월 26일 오후 3:26
 

2013 겨울호 <인간사상>에는 "2.28, 5.18 그리고 6.4: 냉전과 실어"라는 글이 실릴 예정이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내가 왕 선생님의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왕 선생님은 이 글을 읽고는 나의 글이 본인이 해명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면서, 반가운 답글을 보내왔고, 똑같이 <인간사상>에 기고가 된 상황이다. 같이 실릴 지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흥미롭게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아는 느낌인데, 바로 상호 이해 속에서 각자 풍부해지는 교류 방식인 셈이다. 

 

 

그저께는 갑작스런 호출에 같이 술을 한 잔 하게 되었는데, 중간에 이동하는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왕 선생님이 다리가 안 좋아 목발을 짚고 이동하다보니 길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한동안 문제만 던져놓고 답을 하지 못했던 '문학'의 의미가 드디어 정리된 듯 한 느낌을 얻게 되었다. 왕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답을 얻은 셈이다. 물론 이를 글로 풀어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사실 답은 이미 어느 정도 주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전리군 선생님의 '다르게 쓴 역사'를 분석한 글에서 다루었던 "역사를 돌보는 두 가지 방식"으로서 "문학"과 "학술"의 관계에서 제시된 바 있다.(이 글은 아마 곧 한국에서 단행본에 실려 발표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다시 답을 얻었다 함은 이 관계가 역사-문학/학술-정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윤리-미학'과의 관련으로 확장되면서, 좀더 완정성을 갖는 체계로 풍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체의 삶의 완정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이와 변증법적으로 공동체의 역사적 진보를 추동하는 관계상을 말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나와 왕 선생님의 관계처럼...

 

 

이것이 강하게 '답'으로 깨달아진 것은 '현대성'의 관철 하에서 나의 삶이 겪었던 모종의 단절, 소외, 불행에 대한 반성적 인식으로부터 현실적 실천과 미래의 구상이 도출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리'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모름지기 '실천'은 '역사' 안에서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문학/예술적 실천 밖에 없는 셈이다. 나와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짧고 불안한 주체성'과 '그들'의 '길고 존재감을 갖는 주체성'의 대비에서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모범적 삶을 강하게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계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서양에서는 다소 일찍 단절된 것 같고, 제3세계,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변증법적 극복의 방향이 제시되었으나 냉전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다시 이원적 틀에 갇힌 듯 하다. '그들'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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