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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하반기 다섯 번 출간되고 폐간된 월간 잡지 대만정론을 같이 읽는 모임을 광주의 몇몇 지인들과 세 번 진행했다. 이 잡지의 중요성은 훗날 민진당을 비롯한 분리주의적 경향을 갖는 정치, 사회, 문화, 사상의 원시축적과 같은 위상을 가진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 시기는 당국체제가 아직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이 잡지의 구성원들도 국민당에 비판적인 세력들이 혼거하고 있는 상태이긴 했다. 1976년이 되면 또 다른 분화가 출현하고, 1979년을 거치면서 본격적 분기와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
이 잡지를 읽으며 드는 단상은 이런 것이다.
이 잡지의 국민당 비판의 주된 기조는 자유주의적 정치개혁(선거제도 개혁) 및 사회개혁(교육, 농민, 노동 등)이다.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의 필요성은 사실상의 중국과의 '분리'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 논리에서 보면 대만이 더이상 중국이 아니게 될 때, '자유주의'적 개혁은 장애 없이 적용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대만에서 중국을 지우면 지울수록, 대만은 '자유주의'를 채워넣을 수 있는 '보편'적 주체/대상으로 재탄생한다. 물론 가상적으로 대만은 외부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족적 국가/사회 단위로 설정된다.
이와 같은 보편주의적 맥락에서 '대만' 특수적인 것이 발굴되고 '대만인', '대만사' 등등의 이데올로기가 구축된다. 이는 사실 국민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식민주의적인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만을 반복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나태함과 진부함도 문제이지만, 대만을 중국과 분리하면서 사실상 일종의 '표백'을 거쳐 보편주의의 순수한 대상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큰 문제다.
대만을 중국적인 것과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언어문화, 역사적 생활양식, 지식사상 등등 중국적인 것을 버리면 남는 것은 아마도 이른바 '원주민' 정도일텐데... 결국 '분리주의'는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유효하게 의미가 드러날 뿐,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탈역사화'이자 '역사의 무화'이다. 마치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던 인류학자들이 '미개'한 지역의 사람들을 연구조사하여 얻어낸 지식들처럼, 대만의 분리주의는 대만의 '식민주의' 엘리트(사실상 제국주의의 지적 대리인)에 의해 서구에 대비해서 발견되는 대만적 특수성/차별성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분리주의가 포함하고 있는 '대만적인 것'이 과연 '대만' 민중의 역사와 삶에 기반한 것인지는 논쟁적이게 된다. 사실 이 논쟁은 대만의 '식민' 경험을 일차적 과제로 포함하고 있다. '대만'이 '상해' 또는 '북경'과 달리 하나의 '사회'로 간주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식민(분단)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탈식민이 아직 도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식민성을 지속하더라도 '사회' 단위가 될 수 있고, 동시에 '분리주의'의 기반이 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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