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znews.com/culture/content/2013-11/08/content_8727627.htm
[2013/11/8, 심천상보深圳商報의 인터뷰]
비판이 아니라, 단지 진실의 기록을 추구할 뿐…
<문화광장>: <그곳>에서는 노동자 계층을 썼고, <시체운반공의 자손>에서는 3농문제를 다뤘으며, <네온>에서는 기녀를 다뤘는데,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기층 민중에 대해 그토록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조정로: 그 소설들에서 내가 쓴 인물들은 모두 기층 사람들이다. 작금의 소설 창작에는 좋지 않은 기풍이 있다. 서방인들이 이렇게 쓰면, 우리도 이렇게 쓰는 식인데, 자신의 ‘조종(祖宗) 18대’를 욕하고 서방의 독자들에 영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상층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도 이렇게 쓰는 경향도 있는데, 이는 다 지도 간부들의 개혁과 거짓된 헛소리의 사상을 찬양하는 것이다. 스타들, 지도 간부, 중산계급의 생활이 일정 기간 동안 문학 창작의 주류가 되었는데, 이는 정말 황당무계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국가의 진실한 면모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 상태와 절대 분리될 수 없다. 대다수 사람들의 느낌이 이 사회의 진실한 면모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마음 속 소리를 표현하는 작품이 필요하다.
<문화광장>: 평론에서 당신을 ‘기층 서사’의 대표자라고 규정하고, 기층 인민을 위해 시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정로: 내가 기층에 대해 쓰고, 작품에 늘 그 고통과 억울함으로 가득하다고 하는데, 이러한 평가는 정확하지 않다. 이론가들은 늘 대상을 어떤 종류로 규정짓기를 좋아하겠지만, 사실 나의 소설은 대학생활, 관료사회, 상인, 농민 등등 여러 부류에 다 걸쳐있다.
문학은 영역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어떤 종류이든 모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 독자가 보기에 내가 비판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데, 나의 비판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나는 소설을 하나의 무기 또는 불만 토로의 경로로 삼지 않는다. 나는 그저 진실되게 기록하고, 진실되게 시대를 반영하며, 사건들을 제대로 쓰고, 사람들을 제대로 써낼 뿐이다. 한 작품이 나오고 나서 어떤 효과가 있을 지는 내가 고려하는 범주 밖이다. 나는 이 방면에는 좀 우둔한 편이어서, 어떤 홍보 방안을 생각하거나, 평론가가 좋아할 지 등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는다.
창작은 양심에 따르면 그만이다.
<문화광장>: 당신은 보통의 개체를 부각시켜 사람들의 생활상태를 반영하고자 희망하는 것인가?
조정로: 14, 15세기 서방의 계몽 시대에 ‘개인화’ 이론이 출현하였고, 개인의 눈으로 사회를 보고, 총체에 대한 개인의 저항을 주장했고, 개인의 눈으로 시대와 사회를 보고, 사회 속의 개인의 영향과 역할을 표현할 것을 주장했다. 그들 그 시대의 개인화는 진실된 심리적 세계를 써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 80년대 우리에게로 넘어와서 ‘사인화私人化’로 오해되었다. 그래서 개인의 감정적인 이야기를 묘사하는 상흔문학과 같은 일련의 소설이 출현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인화라는 이해는 너무 협소한 것이다. 개인화는 개인을 시대 속에 놓고 인식하고, 개인과 시대 사이에 연계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어떤 시대에도 불행은 있다. 해체된 개인만 그것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출발해서 주목 받지 못하는 기층 사람들의 생활을 주목했던 것이다.
<문화광장>: 현재의 문학 창작에 대해서 가장 깊이 느끼는 바는 무엇인가?
조정로: 사실 창작은 양심에 따르면 그만이다. 그렇게 많은 고상한 것은 없다. 지난 세기 80년대 이후의 주류는 기교를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무엇을 쓰는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서방의 소설도 겨우 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기교를 마음껏 부렸다. 우리가 그 꽁무니를 쫓아서는 미래가 없다. 나도 모더니즘 및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문학을 가지고 노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아픈 것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사람들에게 이 시대에 대한 작가의 진실한 느낌과 고통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만족
<문화광장>: 오늘 당신의 문학적 성취가 당신의 기대에 다다랐다고 보는가?
조정로: 이와 관련해서 나는 지나치게 높은 요구를 갖지 않고,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가늠해 본 적도 없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 만족한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정말 문학의 영역에서 종적으로 그리고 횡적으로 비교를 한다면, 내가 보기에 뒤쳐지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나는 진실된 기록을 하고 싶고, 이게 나의 문학적 자각이며, 그러려면 냉철한 사고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각종 유혹에 저항한다. 예를 들어 상을 받는 것, 여러가지 생활의 편의 등의 유혹이 그렇다. 그리고 여러 압력과 공격에 대해서도 버텨내야 한다. 게다가 개인의 능력에 대한 검증도 거쳐야 한다. 나는 한번도 꾀를 부린 적이 없다. 물론 우둔한 자는 우둔한 나름의 복이 있기도 하다.
<문화광장>: 당신은 여전히 창작을 유지하고 있는가?
조정로: 나는 자신을 늘 ‘부업 작가’로 규정한다. 지금도 부업으로서의 창작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흥미는 이미 비교적 확장된 편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지금 여러 젊은 친구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근래의 문학, 특히 엄숙 문학이 이미 주변화되었는데, 사실 해외에서는 여러 창작이 모두 존재하고, 엄숙한 리얼리즘 작품이 여전히 주류이다.
<문화광장>: 작금의 문단에 대한 관심은 유지하고 있는가?
조정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고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사실 나의 독서는 아주 다양한데, 그럼에도 근래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품은 잘 읽지 않는다. 젊은 세대의 작품은 보통 친구들이 추천해줘야 읽는다. 현재 문예계는 소그룹으로 분화되는 경향이 매우 심각한데, 문예계는 본래 명예와 이익의 장소이고, 빨리 유명세를 탈 수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작가는 되도록이면 부업적이고, 취미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사고의 냉철함을 유지하면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명예와 이익에서 비롯된 글 쓰기를 하게 되면, 어떻게 진실되게 생활을 반영할 수 있겠는가.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