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1

분류없음 2014/11/06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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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모 사이트에서 힛트를 치며 (going viral) 아일랜드인들을 맨붕에 빠뜨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안녕하세요 케이티 씨, 

케이티 씨의 입사 지원이 반려되었음을 알려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지원하신 곳(학원)에서는 (케이티 씨가 아일랜드 출신이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술을 너무 마시는 알콜중독으로 유명하므로) 케이티 씨와 같은 분을 고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일랜드는 영국 땅인 북쪽은 빼고 더블린을 수도로 쓰는 남쪽이 되겠다. 술 많이 마시는 것으로 치면 서유럽에서는 러시아 정도 유명세를 치른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케바케라는 진리가 있듯이 꼭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아닐 것이다. 

한국의 한 사설학원에서 인력공급 용역회사에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노동자 공급을 의뢰했고 그 용역회사는 크레이그리스트를 통해 리쿠르팅을 했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리쉬, 케이티는 이력서를 넣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반려 통보를 받았다. 뚜껑이 열린 케이티, 친구들과 이 이야길 나누었겠지. 

 

그러나 링크 기사를 가만히 읽어보면 왜 한국의 사설 학원이 저 말도 안되는 거절 이유를 내세웠는지 추측할 수 있다. 바로 '아이리쉬 악센트'. 그리고 기사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케이티라는 아이리쉬 여성의 인종이나 외모 등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라고 추측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한국에서 대학 시절에 만난 외국인 교수(들)와 사설학원에서 만난 몇몇 인스트럭터(들), 그리고 밴쿠버 ESL에서 영어공부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내 영어실력이 아주 형편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특히 '듣기'가 그랬다. 거의 모두 CBC 뉴스에서 앵커들이 말하는 것처럼 발음했기 때문에 듣는 데엔 큰 지장이 없었다. 듣기에 지장이 없으니 말하는 것, 쓰는 것에도 별 무리가 없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커피를 사고 그런 과정에서 겪는 혼란함 따위야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이겠지, 라고 여겼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선 같은 과 친구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십대 후반부터 오십대 초반까지,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유러피안부터 오대양 육대주에서 이민 온 다양한 인종과 국적, 내이티브 (원주민: 이 나라에서 내이티브라는 말은 북미대륙에서 아주 옛날부터 살던 원주민들에게 주로 쓴다. 백인들에게 내이티브라고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도 있었다. 당연히 쓰는 어휘, 악센트, 언어습관, 태도가 제각각이었다. 특히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하는 말은 그냥 소음으로 들렸다. 한국식으로 해석하면 "지미 존나 드러운 섀꺄랑 썸타는데 밀당 이거 존나 개야" ... 그냥 뭐 이런 식이다. 그 나이 또래들만 알 수 있는 은어와 각종 줄임말.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가장 적응하기 힘든 억양은 남아시안 영어 억양이었다. 우리말로 치면 약간 혀짧은 소리와 독특한 인토네이션. 도무지 컨텐츠에 집중하기 어려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곤 했으니 상대는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동아프리칸들과 라티노들이 섞어 쓰는 "에" "에" "에" -- 이것은 심지어 일본인들의 "아노 (あの)", 한국인들의 "어" "응" 과 비슷한데도 -- 이 중간 휴지음이 지독히도 거슬렸다. 듣다보면 신경질이 날 때도 있지만 신경질을 내면 안된다. 절대 안된다. 차라리 집에 와서 문 닫고 화장실에서 소리를 지르면 질렀지 면전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못배워먹은 인종차별주의자" 인증하는 꼴이 된다. 무엇보다 그 상대방에게 대단히 큰 실례다.  

 

지금은, 음... 

적응이 됐다.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길을 걷다가 뒤에서 누가 얘기를 하면 백인인지 흑인인지 황인인지 아니면 어느 대륙에서 온 사람인지 정도는 대충 짐작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제는 발음이나 억양보다는 그 사람이 말하는 컨텐츠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훈련의 성과. 

 

미국만 쳐도 발음이나 억양이 수백 개에 이르고 캐나다만 해도 이렇게 다양한데 만약 한국의 영어교육 공급자와 소비자가 미국/캐나다 방송국 영어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본토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들이 모두 손석희 같은 아나운서처럼 말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 오기 전 나의 삶을 반추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구나 싶다. 모든 일은 늘 그렇지만, 겪어보기 전엔 --- 모른다. 

 

하지만 기분이 참 엿같을 것 같다. 레쥬메를 냈는데 아래와 같은 답장을 받으면. 

 

안녕하세요 꽃개 씨, 

꽃개 씨의 입사 지원이 반려되었음을 알려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지원하신 곳에서 (꽃개 씨가 남한 출신이고 남한 사람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알콜중독으로 유명하므로) 꽃개 씨와 같은 분을 고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2014/11/06 02:09 2014/11/06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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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터널

분류없음 2014/11/04 05:12

1994년 10월 21일. 그날은 금요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해의 여느 화요일, 목요일 밤에 늘 그랬듯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놀았다. 당시 월, 수, 금 저녁마다 중학생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터라 학생회, 동아리, 학회의 월수금 행사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화요일, 목요일은 나에게 해방의 날이었다. 

 

아침에 물을 사러 교문 밖으로 나갔다. 구멍가게에 들러 물을 사고 급히 갈증을 해소할 생각에 텔레토비 쭈쭈바를 샀다. 값을 치르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텔레비젼을 보며 혀를 끌끌 차셨다. 어쩌나, 애들이 생짜로 죽어버렸으니, 저거 죄다 죽었을거야. 

 

아주머니, 무슨 일이에요. 

 

성수대교 다리가 분질러져서 버스며 승용차며 죄다 아래로 빠져부렀어.  

 

 

구멍가게 차양 아래에서 텔레토비 쭈쭈바를 입에 물고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 다리가 무너지고 상판 위에 있던 차량들과 그 차에 탄 사람들이 강물에 빠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매일 한강철교를 건너 학교를 오가면서도 한강 북단과 남단을 잇는 그 구조물이 무너진다는 건 -- 무너질 수 있다는 건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학생회실에서 남아 쭈쭈바를 기다리는 선배들과 동기들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차양 아래에서 계속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급히 달려 학생회실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그 비극의 정체를 깨달았다. 동기들 가운데 무학여고를 졸업한 친구들이 있었다. 성수대교를 조석으로 건너던 친구들이 있었다. 눈물바다로 변해버린 학생회실. 내 손에 들린 텔레토비 쭈쭈바 비닐봉투. 

 

그 바로 전 해에는 부안 앞바다에서 훼리 호가 침몰했고, 이듬해에는 삼품백화점이 무너졌다. 그 뒤로도 숱하게 많은 대형인명사고가 줄을 이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서민들이었다. 나의 부모님, 형제자매, 친척, 동기, 선후배, 이웃. 평범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천년대 초반에는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 뒤 얼마간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사무실의 한 동료는 한동안 나를 '김예민'이란 별명으로 불렀다.

 

그리고 올해 세월 호가 침몰했다. 배에 있던 어린 친구들은 대부분 --- 운명을 달리했다.  

 

냉정하게 말해 어느 한 해 안전했던 적이 없었다.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되는 그런 연도는 한국 현대사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올해 유독 깊고 심각한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지난 1994년 이래, 상상할 수 없던 일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 뒤 -- 엄청나게 큰 대형 다리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 지하철에 불이 나 승객이 모두 질식사할 수 있다는 것, 대형 훼리가 바다 한복판에서 그대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 백화점과 같은 대형건물이 백주대낮에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각각의 사건을 통해 몇백 명 단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어른이 된 뒤 올해 유독 깊고 깊은 절망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절망 이상의 감정이다. 무력감,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는. 그냥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나보다, 라는 무력감.

 

* 이 감정을 치료해야  바로 다음 코스인 노예로 가는 길을 차단할 수 있을텐데.   

* 나이가 들어 깨달을 것을 깨달을 때가 되어 -- 그러니까 때가 되어 그럴 수도 있고,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면서 갖는 거리감 (상대화; 객관화) 때문일 수도 있고. 

 

 

2014/11/04 05:12 2014/11/04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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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체화

분류없음 2014/10/24 09:11

제목: 습관의 체화體化

 

며칠 전 다운타운에 있는 한국인 마을에 들렀다. 팔구십년대 한국 소도시 읍내를 연상케하는, 그래서 어쩐지 정감이 가는 그 곳에는 중국인을 상대로 틈새장사를 하는 중국 식당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생긴 중국 만두가게. 입간판을 읽어보니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필경 그 거리에 즐비한 여느 한국인 식당처럼 고용인들에게 최저임금 이하를 지불할 가능성이 높다. 맛은? 한 번 시도해보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만두를 빚던 아낙네가 중국어로 인사를 한다. 중국어라곤 워아이니 밖에 모르니 영어로 대꾸하는 수밖에 없다. 또 다시 이 아낙네가 뭐라뭐라 중국어로 말하니 내실에서 젊은 처자가 나온다. 주문을 하고 카운터에 서서 기다리는데 그 만두아낙네가 계속 빤히 쳐다본다. 살짝 웃으면서 날씨 이야기를 했으나 쇠 귀에 경 읽기. 뚱한 얼굴로 계속 쳐다보면서 위아래로 스캔한다. 한국에 있을 때도 왕왕 겪었던 일인지라 그이의 바디랭귀지를 애써 통역한다면 "이 인간은 대체 정체가 뭐야, 남자야 여자야" 정도 되겠다. 한국에서 그런 일을 겪을 때엔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거나 불쾌한 표정으로 쏴붙였지만 여기에선 그냥 웃어준다. 웃는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나의 출신 인종이 동아시안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무례한 시선과 스캐닝을 일삼는 (?) 사람들은 대부분 동아시안들이라는 거. 그 가운데 중국인, 나이드신 분들이 압도적이며 간혹 한국인들도 있다. 인디아-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지의 남아시안들은 대부분 나처럼 생긴 동아시안, 즉 걸그룹처럼 생기지 않은 동아시안에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때때로 예의 중국인들처럼 쳐다보는 코카시안들이 있긴 하다. 인종을 불문하고 여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나 이 나라 비즈니스 문화를 겪은 사람들은 저렇게 대놓고 쳐다보진 않고 눈치껏 쳐다보거나 말을 시킨다. "모자 이쁘다. 어디서 샀니?" "레고 시계 그거 진짜야? 멋지다 얘" "날씨가 정말 개떡같아 그치?" 뭐 이 정도. 지루한 통근, 통학 가운데 짧은 재미를 타인과 함께 누리는 방식이다. 내 기억으론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말을 걸거나 쳐다보다가 웃으면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 취급을 했던 것 같다. 요즘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독특한 복장의 한 백인 여성의 목부근에 새긴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개 구(狗).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견(犬)도 아니고 하필이면 구(狗). 민망했다. 나의 시선을 느낀 그 백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내 문신 멋지지? 너 이 글자 알아?" "으응, 문신 멋지다. 강아지로 알고 있는데. 나 강아지 진짜 좋아해" (사실을 말하는 것임에도 이 대목에서 약간 비겁한 느낌이 드는 건 느낌 탓인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 여인, 갑자기 자기가 왜 개 구(狗)를 문신했는지 설명한다. 둘 다 내릴 준비를 하던 차라 주의깊에 듣지 못했기도 하고, 이 여인네가 너무 빨리 얘기해 따라잡지 못한 탓도 있지만 대충 이해한 것으로는 여성을 비하할 때 쓰는 bitch 라는 말에 대한 자기 자신의 해석이다. 가끔 사람들이 bitch 라고 욕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자기는 그 사람들에게 bitch가 어때서? 라고 되받아친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는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자기 엉덩이에 암컷 강아지를 일컫는 또 다른 한자 타투가 있는데 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응, 설명해줘서 고마워.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 우리는 이내 환승장에서 내렸다. 나는 전차를 타러, 그녀는 지하철을 타러 갔다. 

 

엄밀히 따지자면 '구(狗)'는 내가 환장해하는 강아지들, 개들을 일컫는 적당한 글자는 아니다. 어감 상, 모란시장에 있을 육고기들 같은 기분이지 예전에 함께 살았던 반려견 이슬이나 동네에서 아침저녁으로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는 강아지 친구들을 이르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그 느낌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니까 나는 가령 '개고기'라는 글자를 자기 몸에 문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는 '합리적 사고'를 하고 있었으므로 그 백인여인네를 불경하거나 의아하게 쳐다봤을 것이다. 무언가 나와 다른, 내 생각과 다른 것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어떤 행동심리적 기제가 나로 하여금 그 여인네를 쳐다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이런 행동 --타인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는 몸에 베인 행동; 타인의 불필요한 시선을 잡아당기는-- 을 의식적으로 차단하거나 훈련을 지속하여 태도를 교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구(狗)냐 견(犬)이냐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다. 구(狗)-견(犬)에 대한 나의 이해, 합리적이라 이해하는 나의 이해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맥락은 이 여인네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내용(contents)을 자신의 몸(body), 문자(text), 그리고 문신(tatooing)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구(狗)든 견(犬)이든 내 몸에 반영구적 글자나 그림을 새길 생각은 아직 없다. 이것은 그 여인네와 나의 차이일 뿐, 누가 옳은지 그른지 따위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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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좀 그만 봐 by Steve Langhorn

 

 

 

* 그림도 잘 올라가네. 블로그 스킨은 역시 구관이 명관. 보수 만세 

 

2014/10/24 09:11 2014/10/2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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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찾아

분류없음 2014/10/21 11:24

조금씩조금씩 간신히 밀어서 열어젖힌 세상의 것들이, 앞으로 나아갔던 것들이 확확확 뒤로뒤로 가는 듯하다. 눈뜬채 코베이는 느낌. 아니면 이게 바로 그 '정상'사회라는 건가. 그런 것일까. 

 

 

우리 모두 힐링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이승만 박정희 이래로 민초들은 살기에, 살아남기에 바빠 자기 자신을 살피는 것을 하지 못했다, 그 방법을 배울 수 없었다. 사치였다. 한국전쟁 이래로 지금처럼 참혹한 시대는 없었다. 그 옛날에는 먹는 것이 문제였고 살아남는 것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먹어도 살아남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이다. 살아있되 살아있지 못한 삶. 

 

 

힐링이 필요하다. 나가서 싸울 힘도 기운도 정신이 들어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인간이라는 자존감, 살아남겠다, 일어서겠다는 자/존/감. 힐링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건 좀 잔인하다. 이 힐링, 우리 엄마들에게 또 그 보살핌과 베품과 품는 역할을 요구하는 건 너무너무 잔인하다. 

 

컨텐츠를 자세히 읽어보면 엄마들에게 힐링을 책임지라는 것은 아니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약간 뭔가 신경질적으로 쓰고 싶은데 원치않는 마초들이 꼬이는 탓에 오늘은 패스. 이 마초들은 내가 개어린 소녀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 말인즉슨 만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슴없이 비매너의 덧글을 남긴다) 

 

엄마들은 어쩌라고. 고작 한다는 말이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고? 이 처절한 떠넘기기. 출하를 기다리는 바짝 마른 오징어에서 오징어먹물 쥐어짜듯 모성을 착취하는 이 잔인한 마초사회. 

 

엄마들도 바쁘다. 엄마들도 슬프다. 우리 엄마들에게도 비엄마들이 누려야 하는 것과 같은 힐링이 필요하다. 교육자 자신도 교육받아야 한다. 엄마들도 인간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나무처럼 서 있는 나무가 아니란 말이다. 자연이나 신이 아니란 말이다. 

 

 

 

 

* 블로그 스킨은 역시 구관이 명관. 보수 만세 

 

2014/10/21 11:24 2014/10/2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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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이명관

분류없음 2014/10/21 05:08

블로그 스킨을 몇 차례 바꾸고 이것저것 해보았으나

 

결론은 구관이 명관. 하던대로. 

 

우유부단하다가도 결정을 하면 남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가도 클래식한 것을 선호한다거나. 

내면의 보수保守성이 이럴 때 잘 드러나는구나. 

 

암만, 누가 뭐래도 구관이 명관. 

보수補修 만세. 

 

 

 

 

 

 

2014/10/21 05:08 2014/10/21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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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소고

분류없음 2014/10/15 06:50

1.
 
끝까지 심장 떨리게 하는구나. 이죽일놈의야구. 
살다살다 삼성과 두산을 응원하는 날이 오다니... 아, 야구 몰라요~~
정규시즌 우승과 포스트시즌진출 4팀을 가리는 일 (이라고 쓰고, 사실은 트윈스가 4등을 하는지 안하는지) 종당에는 결론이 나겠지만 이건 좀 심하다. '무진'기행이 따로 없구나. 
 
 
2.
 
오늘 이메일로 도착한 야구인 소식. 
김성근 감독이 진보정의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초대받으셨다.
제목은 "야신 김성근, 9회말 역전의 리더십" 
 


진보정의연구소는 한국의 제도권 정당 가운데 하나인 정의당의 부설연구소인 것 같다. 정의당은 옛날 민주노동당을 떨치고 나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사민주의 지향 정당인 것 같다. 진보 (progress) 가 급진 (radical) 내지 좌파 (left / far-left) 로 취급당하는 한국의 뒤틀린 정치사회 지형에서 그래도 이렇게 계속 한 길을 고집하는 데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사민주의가 옳은지 그른지, 제도정당 운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대중을 만나기 위한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
더불어 야구를 겁나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다들 이름은 들어 알고 있을 "김성근"을 초대해 이런 대중강연을 준비했다는 것은 그 시도만으로도 가치있는 활동이다. 더럽든 깨끗하든, 똥이든 된장이든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배우면 된다. 
 


그런데 이 행사 포스터와 소식을 접하고 주최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고 난 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든다. 마치 청년 실업과 이의 진보적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단체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를 불러 강연회를 하는 것과 비슷한 시추에이션이라고나 할까. 

 
김성근 감독은 야구계에 아로새긴 그의 입지전적 경험과 결과로 볼 때 가장 근대적인 인물이다. 나에겐 마치 박정희나 히틀러, 스탈린 같은 인물. 그에게 가장 맞지 않는 방식은 아테네의 민주주의, 볼셰비키의 민주집중제, 가라타니 고진의 제비뽑기다. 그는 권력을 최대한 집중하여 대중의 자원을 풀가동하여 결과를 뽑아내는 가부장적 리더다. 따라서 그는 그가 리더가 될 때 '권력의 집중'을 원한다. 이 집중 아래 개개인 대중이 지닌 자원을 대상화하여 결과를 도출한다. 시스템과 개성? 그는 그런 따위의 것엔 관심이 없다. 그에게 조직력이란 성적 (결과)에 수직비례하는 나중의 값을 지닐 뿐이다.
 


'리더십'을 다루는 자리에 이런 분을 모셨다?
짐작하기엔 섣부른 감이 아직은 많지만 정의당이 생각하는 리더십의 여러 가지 컨텐츠 가운데 이런 것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3. 
 
롯데와 한화, 기아 등의 세 팀. 감독을 갈아치울 확률이 높다. 김성근 감독을 모시겠다는 말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일이 년 안에 드러나는 가시적인 성적(결과)을 원한다면 김성근 감독 밖에는 답이 없다. 따라서 내가 귀여워해마지않는 이글즈는 제발 김성근 감독님을 모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글즈는 이제 막 2군 팜 시설도 만들었고 미래가 창창한 선수들이 많다. 갈매기로 따지자면 로이스터 뒤로 정을 끊었기 때문에 갈매기 감독이 되셔도 크게 상관은 안하련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이 롯데로 가신다면 -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 2년 안에 짤릴 각오는 반드시 하셔야 한다. 아, 1년이 될 수도 있다. 타이거즈는? 글쎄 잘 모르겠다. 중립. 
 


지금까지 말한 것은 온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당연하다. 

2014/10/15 06:50 2014/10/1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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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의곤란

분류없음 2014/10/13 02:17

성격 탓인지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에 한참 걸린다. 그래도 나름대로 적응을 잘하는 (adaptable) 편이긴 하지만 몇 가지 어려운 게 있다. 그게 바로 물과 음식이다. 물은 아무 물이나 마시면 설사를 하기 때문이고 음식은 처음엔 '냄새', 다음엔 '기억' 때문에 고생한다. 

 

며칠 전 새로운 케이크에 도전. 바로 레드 벨벳 케잌 (Red Velvet Cake). 

한국에 있을 때엔 케이크를 먹을 일이 별로 없었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생김새 대비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생긴 것은 아주 작고 별로인데 이삼천 원을 호가하는 그 가격이 나에겐 합당하지 않았다 (unreasonable) 고 하면 리저너블한가? 생일이나 행사 때엔 만 원이 훌쩍 넘는 케이크를 사다가 초를 켜고 그러는 행위도 마뜩잖았다. 뭐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사다주거나 그랬지 내 돈 주고 내가 먹을 케이크를 샀던 일은 없다.

 

이 나라에선 케이크가 '일상'이다. 밥을 먹으면 후식으로 케이크를 찾는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대부분 케이크를 찾는다. 이 땅에 처음 쳐들어온 유러피안 사람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거나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행사에 가서 밥을 먹으면 케이크는 뭘로? 하고 묻는다. 아놔, 케이크밖에 없니? 하고 물으면 브라우니? 하고 대답한다. 젠장. 케이크나 브라우니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래도 룸메이트의 생일. 

아주 조금 로맨틱한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레드벨벳케잌을 9.99달러 주고 샀다. 덩어리가 별로 크지 않아 금방 먹겠지, 했는데 웬 걸. 아직도 남았다. 이것은 너무 달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달다. 지난 번에 먹었던 레몬씨부렁케잌보다 몇백 배는 더 달다. 고문이다.

그런데 지난 밤에 일고여덟 수저를 먹게 됐다. 그냥 먹게 되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케이크를 먹는 건가? 중독인가, 일종의? 먹고 났더니 속이 더부룩하고 끼룩끼룩거려서 힘들었다. 서너시간이 지난 뒤에야 트림이 나왔다. 그러고도 답답해서 와인을 한 잔 먹은 뒤에야 비로소 속이 편해졌다. 이 케이크는 비록 나에게 고통을 줬지만 냄새와 기억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우선 생긴 것이 여느 케이크처럼 삼각형으로 얍삽하게 빠지지 않고 직사각형이었고 냄새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냄새. 그리고 중간에 끼인 초콜릿이 매력적이었다. 달디 단 고통 속에 음전히 앉아있는 다크초콜릿 조각들. 너의 기억들. 

 

다음은 파코라 (pakora). 

남부 인디아 음식인 이것은 이민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행사에 가면 항상 나오는, 빠지지 않는 감초같은 음식이다. 나에겐 약간 '집회만두' 일명, 못난이만두를 떠올리는 비쥬얼을 제공하므로 친근감이 간다. 치킨, 새우, 채소 등속을 버무리고 이집트콩가루에 섞어 커리, 큐민, 코리안더 등의 향신료를 첨가해 튀겨낸다. 내 경험상으론 사람들이 주로 채소파코라를 많이 먹는다. 나도 도전. 만들지는 못하겠고 한 접시를 샀다. 워매~~~~~~~~~~~~~~~~. 너무 맵다. 이것도 고문이다. 대체 무엇이 이렇게 매운 맛을 내는 거냐. 너는 누구냐. 사온 날 배가 고파 세 덩어리 먹고 바로 체했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나로서도 감당할 수 없던 이 채소파코라. 

냄새는? 별로 나쁘지 않았지만 기억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집회나 행사장에서 먹는 것 외에 내 돈 주고 다시 사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한국음식들은 기억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수가 실질적인 맞닥뜨림에서 기대를 실망으로 돌려놓는다. 결국 섭식에 관한 한, 답은 내가 직접 해먹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아이고... 

 

 

 

2014/10/13 02:17 2014/10/13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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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해몽

분류없음 2014/10/09 02:59

아침에 잠깐 꿈을 꿨다. 

 

군대에 오라는, 군에 입대하라는 서류를 받았다. 영장이다. 신체검사를 어디에 가서 하라는 서류도 있었다. (신체검사를 입영 영장을 받은 다음 하라는 것을 보면 정말 꿈은 맞다. 순서가 뒤죽박죽) 부들부들 떨면서 갔다. 몸무게를 재는데 바늘 눈금이 40 언저리를 가르켰다. 몸무게 미달로 입영보류 결정. (보류일 뿐 면제는 아니니까 이런 꿈을 나중에 또 꿀 가능성이 있다.) 기분이 그럭저럭했다. 

 

이 나라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 압박을 많이 받을 때,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군에 입대하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자발적으로 입대한 적은 없고 대부분 영장 같은 것을 받고 그 서류를 들고 위병소를 향해 걸어가거나 길거리에서 납치당하다시피해서 끌려가는 꿈. 아마 옛날에, 1997년에 길거리에서 갑자기 체포당한 기억이 내 몸 어디엔가 남아서 그렇게 꿈에 나타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등 시민인 여성이라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 가운데 하나인 국방의 의무를 직접 수행할 까닭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런 꿈을 종종 꾸는데 일등 시민인 남성들은, 특히 예비역들은 얼마나 더 많이 자주 이런 꿈을 꾸거나 시달릴까. 예비군 훈련까지 마쳤는데도 영장을 받는 꿈을 꾸고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는 사람들의 말이 떠오른다. 그 때엔 그냥 웃고 말았는데 막상 나의 것이 되고 보니 보통 우울한 일이 아닐세. 

 

함께 사는 분께서는, 

오버나이트 시프트 자리가 난 공장에 어플라이를 해볼까요, 라고 묻고 나서 그 기억이 남아 그런 꿈을 꾼 게 아니겠는가. 하고 가만히 답을 하셨다. 사실 어제 저녁 공장조립반 야간 시프트 자리를 구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오늘까지 마치기로 한 레쥬메를 아직도 마치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심리상태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그런데 숫자 40은 뭘까. 혹시 내 몸무게가 40대로 떨어졌다는 신호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곤란하다. 며칠 전엔 12, 13, 두 개의 숫자가 꿈에 나왔으니 12, 13, 40을 넣어 복권을 사볼까. 

 

 

2014/10/09 02:59 2014/10/09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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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무제

분류없음 2014/10/08 10:11

함께 사는 친구의 어머니께서 보내신 전자메일을 받았다. 창호지에 둑둑둑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일터에서 그것을 읽고 집에 와 다시 읽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시 한구절을 읊조렸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누가 지은 시인지, 저 구절 다음이 무엇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저 구절은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노래'라는 시의 첫 소절이었다.

 

조그만 사랑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하루를 꼬박 생각하고 황동규의 저 시를 서너 번 더 읽고나서 답장을 드렸다. 어르신께서 손아래사람에게 그토록 공손하고 정갈하게 글을 내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싶어서였다. 간만에 어른다운 어른을 봤다. 나도 어른이 되어야지.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구나. (이 곳 시간으로 오후 2시 48분, October 8th, 2014) 

 

 

 

2014/10/08 10:11 2014/10/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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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스디이

분류없음 2014/10/04 05:11

BSD (Balanced Self Determinism). 한국어로 뭐라고 옮기는 게 가장 적절할지 아직 못 찾았다. 

 

Life Skills Coach Training이라는 게 있다. 학교 공부를 할 때 가장 낯선 과목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에는 서바이벌 스킬과 이것을 가르치는 인스트럭터를 양성하는 건가 하고 다소 나이브하게 생각했는데 수업을 들을수록 단계가 올라갈수록 복잡했다. 

 

양차대전이 끝나고 전쟁에 복무했던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온 전후. 북미 대륙엔 노동력이 넘쳐났다. 초등교육도 마치치 못했던 사람들, 이전엔 부엌에만 머물러던 여성들이 전선으로 나아갔고 이들의 조상이 나고 자란 '유럽'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부양했다. 인간이되 인간일 수 없던 흑인들은 전쟁이 끝나면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고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의 일원이 된 여성들도 전쟁이 끝나면 이등시민 대접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전선이 태평양으로 확대되면서 이 양상은 더 도드라졌다. 전쟁이 끝났다. '정상적인 남자들'도 일할 데가 부족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는 베이비붐을 낳았다. 그러나 사회 서비스와 사람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팽창한 군수산업 덕에 자원은 여기저기 넘쳐났지만 먹을 것은 여전히 부족했고 사람들의 분노는 치솟았다. 분노를 흑인과 여성에게 투사하는 백인쓰레기들 (White trashes) 이 넘쳐났다. 자연스레 사회복지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진다. 어쩔 수 없이 나타난 자본의 움직임이었다. 

 

이 과정에 나타난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Life Skills 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이를 가르치고 계도하는 것이었다. 교정시설을 필두로 커뮤니티마다 이것을 적용하는 트레이닝 코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다. 예를 들면 돈관리 하는 법, 공공서비스 이용하는 법, 시간관리 하는 법, 분노를 다스리는 법, 동네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법, 자신의 장점을 계발하는 법 등을 가르치고 나눈다. 미국의 방법과 캐나다의 방법, 철학이 다소 다른데 미국은 좀 더 프랙티컬하고 담백하다. 캐나다의 것은 참가자와 코치의 관계에 좀 더 방점을 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참가자 개인의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하나,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그것은 동일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게 이 BSD (Balanced Self Determinism) 이다. 어떤 행동을 하고 결정을 할 때 나의 이익을 우선에 두되 동시에 다른 이의 이익과 요구도 존중한다는 것이다. BSD 를 다룰 때 함께 논의대상으로 올리는 것엔 OD (Other Determined Behaviour) 와 SD (Selfish Determined Behaviour) 가 있다. 전자는 타인의 이해와 요구에 우선적으로 복무하려는 행동태도를 말하고 후자는 무조건 나의 이해와 요구에 복무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몸이 너무 아프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OD의 입장에 서는 사람은 아픈 데도 불구하고 일단 출근해서 일을 한다. SD의 입장에 서는 사람은 일단 병가를 쓰고 본다. BSD의 입장에서는 일단 나 스스로 지금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것을 권한다. 아파서 출근하기 어려운 정도라면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다른 사람, 혹은 나의 수퍼바이저에게 일단 나의 상태를 알려야 한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을 미룰 수 있는지, 미룰 수 없다면 수퍼바이저나 동료가 이 일을 떠안을 수 있는지 '부탁'해야 한다. 미룰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다면 이 판단을 수퍼바이저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일을 잊고 나의 완쾌를 위해 오늘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두어 시간 정도 쉰 뒤 출근할 수 있다면 그 시간만큼 양해를 구하는 '부탁'을 해야 한다.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된다. 

 

이 수업 내용을 접했던 처음에는 SD는 당연히 아니고 OD의 입장에 따르는 결정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일단은 맡은 임무를 완수하고 난 뒤 휴가를 신청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여지껏 함께 고생한 게 있는데 내가 아프다고 빠져버리면 우리 공동의 프로젝트는 허공으로 날아가는 거 아닐까. 그런 우려 때문에.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맹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의 가치대로 그 상대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함께 공동작업을 했는데 누군가 아프다고 빠져버리면 그 사람을 '탓하고' '비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는 거다. 그래서 OD의 입장에 서는 사람들은 '홧병'을 얻거나 불평불만을 하게 될 경향이 현저하게 된다. 불평불만이라도 밖으로 하면 괜찮은데 대부분 혼자 끙끙 앓다가 속병에 걸린다.

 

뭘 당연한 얘길 하고 그래. 당연히 BSD가 맞는 거구먼, 이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여기에서 요체는 그 BSD의 말하기, 듣기, 판단하기, 설득하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그 총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르친다. 가령 나의 수퍼바이저가 SD의 사람이라면 내가 요청하는 병가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결과는? 관계 파탄의 전조가 올 수 있고 업무의 효과도 덩달아 추락하겠지. OD라고 다를 게 없다. 아픈 사람을 먼저 걱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되는지 안되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무조건 그 일을 자기가 떠안으려 한다. 일이 잘 될 리 만무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BSD의 관점에 선 설득의 기술, 양해의 기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 하나가 '절대 무리하지 않기; 서두르지 않기' 이다.  

예를 들어 이 도시에서는 예고없는 지하철 연착이 아주 흔한 일이다. 따라서 개인 승용차가 없는 사람들에게 '지각'은 양해의 좋은 구실이 된다. 오늘 지하철에 사고가 생겨서 늦을 것 같아요, 라고 미리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일은 거의 없다(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게 함정). 그러나, 만약 "그러니까 니가 더 일찍 나왔어야지!" 대놓고 비난하면 비난한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왜냐, 지하철 연착은 개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프로젝트 발표를 앞둔 아침에 전화 한 통 없이 늦게 나타난 뒤에 "지하철 연착으로 늦었어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정말로 똥이 된다. 미리 연락을 해서 지하철 연착으로 늦을 것 같지만 내 부분은 이렇게저렇게 하고 싶어요, 라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북미대륙의 비즈니스 문화에서는 SD를 당연히 싫어하긴 하지만 또 상대적으로 OD를 착취한다. 네가 한다고 했잖아, 네가 한다고 해서 하는 건데 뭘 더 바라는 거지? 이런 식이다. 개인의 결정을 간섭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지만 그 결과 또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에서는 OD를 대놓고 강요하거나 당연시 여긴다. 공동체나 조직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조금만 BSD에 근접하려 하면 당장 비난을 받거나 SD 취급을 받는다.  

 

어느 나라나 지역의 문화가 더 옳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에게 리스크를 지우는 방식보다는 그 리스크를 미리 예방하는 방식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4/10/04 05:11 2014/10/0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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