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무제
분류없음 2014/10/08 10:11함께 사는 친구의 어머니께서 보내신 전자메일을 받았다. 창호지에 둑둑둑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일터에서 그것을 읽고 집에 와 다시 읽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시 한구절을 읊조렸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누가 지은 시인지, 저 구절 다음이 무엇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저 구절은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노래'라는 시의 첫 소절이었다.
조그만 사랑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하루를 꼬박 생각하고 황동규의 저 시를 서너 번 더 읽고나서 답장을 드렸다. 어르신께서 손아래사람에게 그토록 공손하고 정갈하게 글을 내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싶어서였다. 간만에 어른다운 어른을 봤다. 나도 어른이 되어야지.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구나. (이 곳 시간으로 오후 2시 48분, October 8th,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