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스디이

분류없음 2014/10/04 05:11

BSD (Balanced Self Determinism). 한국어로 뭐라고 옮기는 게 가장 적절할지 아직 못 찾았다. 

 

Life Skills Coach Training이라는 게 있다. 학교 공부를 할 때 가장 낯선 과목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에는 서바이벌 스킬과 이것을 가르치는 인스트럭터를 양성하는 건가 하고 다소 나이브하게 생각했는데 수업을 들을수록 단계가 올라갈수록 복잡했다. 

 

양차대전이 끝나고 전쟁에 복무했던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온 전후. 북미 대륙엔 노동력이 넘쳐났다. 초등교육도 마치치 못했던 사람들, 이전엔 부엌에만 머물러던 여성들이 전선으로 나아갔고 이들의 조상이 나고 자란 '유럽'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부양했다. 인간이되 인간일 수 없던 흑인들은 전쟁이 끝나면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고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의 일원이 된 여성들도 전쟁이 끝나면 이등시민 대접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전선이 태평양으로 확대되면서 이 양상은 더 도드라졌다. 전쟁이 끝났다. '정상적인 남자들'도 일할 데가 부족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는 베이비붐을 낳았다. 그러나 사회 서비스와 사람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팽창한 군수산업 덕에 자원은 여기저기 넘쳐났지만 먹을 것은 여전히 부족했고 사람들의 분노는 치솟았다. 분노를 흑인과 여성에게 투사하는 백인쓰레기들 (White trashes) 이 넘쳐났다. 자연스레 사회복지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진다. 어쩔 수 없이 나타난 자본의 움직임이었다. 

 

이 과정에 나타난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Life Skills 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이를 가르치고 계도하는 것이었다. 교정시설을 필두로 커뮤니티마다 이것을 적용하는 트레이닝 코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다. 예를 들면 돈관리 하는 법, 공공서비스 이용하는 법, 시간관리 하는 법, 분노를 다스리는 법, 동네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법, 자신의 장점을 계발하는 법 등을 가르치고 나눈다. 미국의 방법과 캐나다의 방법, 철학이 다소 다른데 미국은 좀 더 프랙티컬하고 담백하다. 캐나다의 것은 참가자와 코치의 관계에 좀 더 방점을 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참가자 개인의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하나,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그것은 동일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게 이 BSD (Balanced Self Determinism) 이다. 어떤 행동을 하고 결정을 할 때 나의 이익을 우선에 두되 동시에 다른 이의 이익과 요구도 존중한다는 것이다. BSD 를 다룰 때 함께 논의대상으로 올리는 것엔 OD (Other Determined Behaviour) 와 SD (Selfish Determined Behaviour) 가 있다. 전자는 타인의 이해와 요구에 우선적으로 복무하려는 행동태도를 말하고 후자는 무조건 나의 이해와 요구에 복무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몸이 너무 아프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OD의 입장에 서는 사람은 아픈 데도 불구하고 일단 출근해서 일을 한다. SD의 입장에 서는 사람은 일단 병가를 쓰고 본다. BSD의 입장에서는 일단 나 스스로 지금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것을 권한다. 아파서 출근하기 어려운 정도라면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다른 사람, 혹은 나의 수퍼바이저에게 일단 나의 상태를 알려야 한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을 미룰 수 있는지, 미룰 수 없다면 수퍼바이저나 동료가 이 일을 떠안을 수 있는지 '부탁'해야 한다. 미룰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다면 이 판단을 수퍼바이저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일을 잊고 나의 완쾌를 위해 오늘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두어 시간 정도 쉰 뒤 출근할 수 있다면 그 시간만큼 양해를 구하는 '부탁'을 해야 한다.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된다. 

 

이 수업 내용을 접했던 처음에는 SD는 당연히 아니고 OD의 입장에 따르는 결정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일단은 맡은 임무를 완수하고 난 뒤 휴가를 신청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여지껏 함께 고생한 게 있는데 내가 아프다고 빠져버리면 우리 공동의 프로젝트는 허공으로 날아가는 거 아닐까. 그런 우려 때문에.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맹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의 가치대로 그 상대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함께 공동작업을 했는데 누군가 아프다고 빠져버리면 그 사람을 '탓하고' '비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는 거다. 그래서 OD의 입장에 서는 사람들은 '홧병'을 얻거나 불평불만을 하게 될 경향이 현저하게 된다. 불평불만이라도 밖으로 하면 괜찮은데 대부분 혼자 끙끙 앓다가 속병에 걸린다.

 

뭘 당연한 얘길 하고 그래. 당연히 BSD가 맞는 거구먼, 이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여기에서 요체는 그 BSD의 말하기, 듣기, 판단하기, 설득하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그 총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르친다. 가령 나의 수퍼바이저가 SD의 사람이라면 내가 요청하는 병가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결과는? 관계 파탄의 전조가 올 수 있고 업무의 효과도 덩달아 추락하겠지. OD라고 다를 게 없다. 아픈 사람을 먼저 걱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되는지 안되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무조건 그 일을 자기가 떠안으려 한다. 일이 잘 될 리 만무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BSD의 관점에 선 설득의 기술, 양해의 기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 하나가 '절대 무리하지 않기; 서두르지 않기' 이다.  

예를 들어 이 도시에서는 예고없는 지하철 연착이 아주 흔한 일이다. 따라서 개인 승용차가 없는 사람들에게 '지각'은 양해의 좋은 구실이 된다. 오늘 지하철에 사고가 생겨서 늦을 것 같아요, 라고 미리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일은 거의 없다(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게 함정). 그러나, 만약 "그러니까 니가 더 일찍 나왔어야지!" 대놓고 비난하면 비난한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왜냐, 지하철 연착은 개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프로젝트 발표를 앞둔 아침에 전화 한 통 없이 늦게 나타난 뒤에 "지하철 연착으로 늦었어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정말로 똥이 된다. 미리 연락을 해서 지하철 연착으로 늦을 것 같지만 내 부분은 이렇게저렇게 하고 싶어요, 라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북미대륙의 비즈니스 문화에서는 SD를 당연히 싫어하긴 하지만 또 상대적으로 OD를 착취한다. 네가 한다고 했잖아, 네가 한다고 해서 하는 건데 뭘 더 바라는 거지? 이런 식이다. 개인의 결정을 간섭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지만 그 결과 또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에서는 OD를 대놓고 강요하거나 당연시 여긴다. 공동체나 조직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조금만 BSD에 근접하려 하면 당장 비난을 받거나 SD 취급을 받는다.  

 

어느 나라나 지역의 문화가 더 옳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에게 리스크를 지우는 방식보다는 그 리스크를 미리 예방하는 방식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4/10/04 05:11 2014/10/0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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