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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보유 인정하되 사용할 수 없도록 할 억제방안 있다"

[신년인터뷰 ①] 결정적 이해관계 공유로 전쟁억제 '인문지리적 억제' 제안한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

  • 기자명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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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24 19:47
  •  
  •  수정 2023.01.2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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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은 최근 남과 북이 경제와 안보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남북안보경제동맹'을 구축해 항구적 평화와 현실적 통일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자는 제안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조천현]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은 최근 남과 북이 경제와 안보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남북안보경제동맹'을 구축해 항구적 평화와 현실적 통일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자는 제안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조천현]

남과 북이 경제와 안보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남북안보경제동맹'을 구축해 항구적 평화와 현실적 통일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자는 제안이 제시돼 눈길을 끈다.

만약 그것이 좌절되면 남북 모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결정적 상호 이해관계를, 지상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는 핵심 기동로 3개의 축선에 견고하게 축성해 전쟁을 억제하자는 '인문지리적 억제' 방안은 중간단계쯤의 계획에 해당한다.

제안자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18년 준장으로 예편한 한설 전 육군연구소 소장.

미국 중심의 일극체계가 급격히 약화되는 국제관계를 심사숙고하고, 불신으로 점철된 상호 불신을 극복하려면 현실적 이해관계를 공유해야 한다는 고민의 산물이다.

당면한 위협으로 평가하는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서는 현실로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전쟁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는 입장을 비롯해 파격적 주장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무엇보다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평화, 남북관계의 궁극인 통일을 위해 가야할 길이라는 지향이 뚜렷하다.

핵무기 한방만 떨어져도 뉴욕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고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기지인 평택기지도 0.5kt의 핵으로 소멸될 수 있는데, 감히 핵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허장성세는 무지를 넘어 광인의 언사라고 일축한다.

그가 파악하는 한반도 유사 전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한반도를 향해 날아드는 미국의 전략자산을 전술핵무기로 제압한다. 상황이 악화되면 전략핵무기로 미 본토 타격도 불사하고 여의치 않을 땐 저위력 전술핵으로 남쪽의 전략대상도 공격한다는 것.

남측에 비해 비교열세인 재래식 무기를 대체한 저위력 전술핵 사용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지만 군사작전을 입안하는 군인들에게는 '상식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은 제네바합의를 비롯해 번번히 북과의 약속을 결정적으로 어겼으며,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눈치를 보느라 북을 '배신'했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미국과 한국의 거듭된 합의 불이행이 지금의 불안정한 북미, 남북관계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 하는 당사자인 남과 북 당국에 대해서도 점수가 후하진 않다.

남과 북은 공히 서로에게 당하는 위협은 최대한 '과대평가'하지만 상대를 겨누는 자신의 위협은 최대한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최근들어 격화 조짐을 보이는 남과 북의 군사행동이 실제 위기로 비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남측 보수정권의 공격적 태도로 미루어 정전체제 관리 업무를 유엔사로부터 이관받는 문제에 신중해야 되며, 그 전에 당사자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한 전시작전권 전환을 매듭짓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남북안보경제동맹'이 튼튼히 자리를 잡기 전까지 주한미군의 공백은 현상유지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표시했다. 

냉철한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무작정 반북주의'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이른바 주사파로 통칭되는 '감상적 통일주의'에 대해서도 반북주의에 악용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한설 전 소장과의 인터뷰는 설 명절 직전인 지난 20일 서울 종로1가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아래는 일문일답 전문.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남북경제한보협력의 방향을 찾아갈 것이고, 그 길에서 협력방안도 구체화될 것이다. [사진-조천현]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남북경제한보협력의 방향을 찾아갈 것이고, 그 길에서 협력방안도 구체화될 것이다. [사진-조천현]

南 경제력과 北 안보능력 중심 힘 합치는 '남북경제안보동맹' 필요

□ 이승현 기자: 북의 핵보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만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계신다. '남북안보경제협력', '인문지리적 억제'라는 표현인데, 관심이 가는 방안이긴 하지만 현실성에 다소 의문이 제기된다. 

유사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북 내륙투자 모두 중단된 상황아닌가. 미국이 원치 않고 또 보수세력이 반대하는 것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먼저 '인문지리적 억제'방안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문지리적 억제' 방안의 현실적 추진력을 어디서 찾거나, 만들수 있겠는지 설명해달라.

■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 : 먼저 제가 '인문지리적 억제'라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남북관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가야 될 것인가라는 고민이 먼저 있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한 전략, 중간단계로 생각해 본 것이다.

평화냐 통일이냐를 고민하지만, 궁극적으로 남북관계는 통일이 되어야겠죠.

그런데 실제로 현 시점에서 통일이라는 말은 굉장히 아득하고 멀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이야기해 왔지만 통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 시점에서 주의·주장만해서는 통일이 이뤄지기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잘 안됐던, 쉽지 않은 것들을 그저 통일이라고 계속 말만해서 되겠느냐는 거다. 그것보다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통일에 앞서 우선 평화 공존하고 공동 번영하는 과정이 먼저 아니겠느냐는 생각이다.

사실 그동안 통일을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대표적인 북한의 무력 통일 시도였고, 남한은 또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고 달려들었던 것 아닌가. 다 실패했고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에서 지금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그게 뭔지는 아직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당장 드러나는 것은 미국과 중국간의 패권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 다음 중국·러시아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는 그동안 미국이 유지해왔던 강고한 통제체제, 일극체제가 약화되고 있다. 남쪽이나 북쪽 모두 유사한 입장에 처했지만 특히 남한은 앞으로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경제블록화가 가속화되면 중국의 도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심각하고 강력해질 것이다.

강력한 중국의 도전은 우리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텐데, 미국에 기대어서 중국의 도전을 극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그동안 주창했던 자유무역체제를 버리고 완전히 보호무역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대만이나 한국, 일본으로부터 산업생산 능력을 완전히 미국쪽으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편에 들었다가는 중국의 배척을 받게 되는 상황이고, 실제로도 우리가 경제적으로 중국에 맞설 수도 없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그야말로 각개격파되기 딱 쉽다고 생각한다.

사실 북한이 우리보다 여건은 좋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훨씬 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도 중국이 경제력으로 개입해 들어오면 어려워 질 것이다.

남한은 당장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확대를 자체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미국의 힘은 어차피 빠질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일본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손잡을 수 있는 관계도 아니지 않나.

그렇게 보면 결국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협력의 대상은 북한일 수밖에 없다.

북한을 도와주고 말고하는 그런 상황을 떠나서, 남한과 북한이 서로 공동 생존을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미리 준비를 하자. 남과 북이 협력을 한다면 어떤 모델이 될 거냐. 제가 보기에는 그게 바로 남한의 경제력과 북한의 핵을 바탕으로 한 안보능력을 중심으로 힘을 합치는 '남북경제안보동맹'이다. 그런 시스템을 갖춰가자는 것이 남북협력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협력의 방향을 찾아갈 것이고, 협력방안도 구체화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럼 '인문지리적 억제'는 뭐냐. 남북이 좀 더 구체화해 나갈 협력방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문지리적 억제 실현의 조건
미국 : 현실적으로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
         대중견제시 핵심국가인 북한을 필요로 함

          -북 비핵화 목표 포기, 즉 제재해제와 대중견제 협조 옵션 교환으로 전환

             -현실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중립이상으로 바뀌지 않을 것
        제국의 총체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음

한국 : 유엔사로부터 정전관리 업무 반드시 이전받아야

         현 정접협정에서도 남북미 합의하면 인문지리적억제방안 구현 가능
         평화협정은 주한미군 철수 초래

          -힘의공백 지대 발생, 중,일 등 진입 가능성 높아 안보불안 요소

          -실질적 평화체제 구축 후 평화협정으로 마무리 필요

핵무기는 어떤 재래식 군사력으로도 감당못해..전쟁 안 일어나게 하는 수밖에

□ 남북안보경제협력과 인문지리적 억제로 전쟁을 예방하고 현실적인 협력관계를 진전시키자는 말씀인데, 전쟁 억제에 대해서는 조금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이 갖고 있는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다. 일차적으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하는 방법, 그걸 '인문지리적 억제'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남북경협 문제가 아니고 남북 경제협력을 이용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그런 방안을 찾아보자는 거다.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충돌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6.25전쟁과 같은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그걸 제도화,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상전에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다나 공중에서도 충돌은 벌어질 수 있지만 그런 거는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굉장이 많다. 그런데 지상전에서 충돌이 생기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지상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군대용어로 '접근로'라고 하는데, 먼저 서울에 이르는 접근로, 또 철원에 있는 주요 축선 접근로, 동해안의 축선 접근로 등 세군데가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 축선이 된다. 그곳에서 남북이 서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면 기본적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문제는 남북 경제협력의 방식인데, 핵심은 상대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말했던 햇볕정책도 실제로는 일종의 흡수통일을 위한 수단이나 방식이었지만 내부 설득을 위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히 남쪽에서 자기를 흡수통일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정책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적대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지 않나.

또 하나는 이제까지 우리가 해왔던 방식은 북한의 값싼 인건비 얻어가지고 떠드는 그 정도에 불과했지 않나. 그래서는 북한도 얻어가는 게 별로 없는 거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남북의 상호 이해관계가 서로 묶여야 된다.

남한도 북한과의 협력 관계에서 얻어가는 게 양도불가, 즉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야 된다. 북한도 남한과의 교역 또는 협력관계가 이걸 놓치면 안될 정도로 치명적으로 중요해야 된다. 그렇게 하려면 북한으로서도 단순히 인건비 수입 정도 수준 가지고는 안되는 거지.

그러려면 남한도 북한과 첨단기술이나 산업을 '쉐어'(공유)할 수 있어야 된다.

먼저 개성과 파주를 좀 넓게 묶어서 첨단산업단지를 운영하자는 거다. 그런 곳에서 첨단 상품을 만들어내야 중국제품과 경쟁력도 생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나가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인건비 등은 북한 내부에 공급망을 만들어서 산업화되도록 해야 한다.

남한만큼은 아니더라도 북한이 최소한 상당한 수준의 산업화 과정을 같이 진행해서 서로 승수효과를 가지도록 해서 최종 산물인 상품이 중국과의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원의 경우는 굉장히 넓은 지역인데 이거 지금 다 놀리고 있지 않나. 거기를 남북이 식량기지화해서 미리 식량안보를 위한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산과 설악산 지역은 그걸 다 합쳐서 잘 관리만 하면 하와이나 스위스 못지 않은 관광자원인데, 지금 활용을 못하고 있다. 

이 세 지역을 크게 묶어서 남북이 서로 주권도 어느 정도 양도해 가며 제3자에 의한 관리체계를 만든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북 외 미·중·일·러 주변국 '인문지리적 억제'에 모두 동참하도록 

□ 남북이 일정 정도 주권을 양도해 제3자가 관리하는 체계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미국도 포함될 수 있나.

■ 상당한 관리 권한을 양도해서,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총독' 비슷하게 유지해서 관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이 될지 아니면 어떤 다른 형태가 될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결국 관련 당사국이 어느 정도 참여하는 게 좋겠지.

투자도 있어야 하겠는데, 남한만의 능력보다는 국제투자도 유치해야 하니까 당연히 미국, 일본 등 주변 당사국에서 투자를 해 온다면 항구적인 안정이나 평화에 대한 보장도 되겠지.

통일은 남북간 삶의 수준이 비슷해져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 여건은 되어야 통일에 대한 실질적인 토론이 가능하지, 지금처럼 구호로서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중간단계로서 최소한 '인문지리적 억제'를 통해서 그 다음의 발전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제도나 체제의 변화가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다.

일단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현실적인 문제는 주변국가들이 이런 현상변경에 대해 당연히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데 있다.

마침 다행인 것은 현재 여건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 따라 우리도 대비를 할 수 있고, 해야된다는 거죠.

지금 윤석열 정권이 과거의 반동적인 상황으로 가고 있지만 그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고 그런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미리 사전 청사진을 그려놓고 남북간에도 전문가들이 만나서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방적인 주장을 던져놓고 무슨 베를린 선언 뭐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고 북한도 같이 참여해서 실제 역량에 대한 평가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합의해서 추진해야 하는데, 암흑기로 보이지만 지금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인문지리적 억제' 방안을 어떻게 추진해 나가느냐는 건데, 결국은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치권력이 중요하다. 과거 노태우 정권 때 전시작전권 '환수' 주장을 했기 때문에 완전한 성과는 아니더라도 '평시작전권'으로 줄어들었지만 일단 외형적인 변화는 가져오지 않았나.

대통령의 확고한 국정철학이 반영된 '인문지리적 억제' 방안이 제시되고 국민들의 동의와 합의를 거쳐 정책으로 추진되면, 미국·중국·일본이 현상변경을 원치 않는다고 할지라도 쉽게 막기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이런 과정이 필요하고 주변국들과도 이익이 서로 공유되는 설득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인문지리적 억제' 방안에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좀 복잡하게 얽혀 있긴 하지만 지금 변화된 상황에서 남북 당사자의 굳은 의지나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제안하신 방안에 대해서 북쪽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 제가 보기에도 북쪽이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을 것 같다. 지금 북한도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게 가장 중요하잖나. 사실 북한은 핵무장도 됐고 결국은 정권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성과가 있어야 된다. 

인민생활을 향상하려면 북한이 어디서부터, 누구와 손을 잡고 할 수 있겠나. 결국 남한과 손을 잡지 않으면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북한은 지금까지 그렇게 하려고 2018년에 크게 노선과 전략을 변경을 했다가 이용만 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문재인 정권이 북한을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실제 실현 가능한 협력방안을 찾아보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이 뭐라고 한마디하면 꼼짝 못하고 그쪽으로 넘어가 버리면서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협력같은 건 못했거든.

그 당시 김정은은 문재인과 두번이나 정상회담을 하고 백두산에도 초청하는 등 그야말로 환대를 다했는데, 문재인은 이용만 한 거지.

사실 문재인이 남북정상회담 선언 다음에 바로 개성공단 재개하겠다는 한마디만 했으면 그건 누구도 못 막았지, 누가 그걸 막겠어.

그런데 70%이상 지지를 받는 그런 좋은 여건이었지만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단 말이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권력을 갖게 되었으니 처음부터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지.

한 전 소장은 북한의 강대강 전략기조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협상 여지는 항상 열려 있으며, 강경한 대남 군사행동과 언급에 대해서도 계속 될 일은 아니라고 짚었다. [사진-조천현] 
한 전 소장은 북한의 강대강 전략기조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협상 여지는 항상 열려 있으며, 강경한 대남 군사행동과 언급에 대해서도 계속 될 일은 아니라고 짚었다. [사진-조천현] 

북의 우려는 오직 미국.. 그러나 협상 여지는 있다 

□ 2018년 이후 무르익던 남북 화해 협력 분위기가 2019년 2월 북미간 하노이 노딜로 결정적으로 전환됐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며, 심각한 불신을 드러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후 강대강-정면대결로 노선을 변경했하고 핵무력 강화를 기조로 미국의 굴복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의지는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또 다른 변화 가능성이 있는지.

■ 지금은 확 돌아섰지만 그래도 일정한 어떤 여지는 항상 남겨놓고 있다고 본다. 여전히 말은 강하게 하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항상 여지를 남겨두는 특성이 있다.  그 사람들은 권력이 오래 가기 때문에 우리처럼 단기간에 무슨 결정을 볼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항상 그 다음에 내놓을 수 있는 어떤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그게 지금까지 북한을 관측한 결과라고 저는 평가한다.

□ 지난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물리적 힘을 실제적인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하는 등 대적 방향을 선명하게 천명하지 않았나.

■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는 것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전부 자기가 처한 위험은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의 위협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남한은 북한의 위협을 극대화하면서 자신이 북한에게 가하는 위협은 최대한 과소평가하고, 북한은 자기들이 미국으로 받는 위협은 극대화하지만 자기가 남한에 가하는 말과 행위로 하는 위협은 과소평가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냉정하게 보면, 북한이 받는 위협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단 말이지. 북한은 특히 세계 최대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북한이 받아들이는 위협은 우리가 북한에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의 개입과 도전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면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확보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없고 혼자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지.

그리고 성공하지 않았나. 대단한 거지. 역사적으로 그걸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우리가 무모하다고 평가하겠지만 시간이 지나서 북한이 생존하고 어느 정도 번영을 하게 되면 그때는 아마 북한 입장에서는 최고의 선택이고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할 거다.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역사적 평가라는 측면에서는.

이제 북한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남한이 아니다. 전시작전권도 없는 남한이 군사적으로 공격해 오는 건 별 의미도 없다. 

미국만 억제하면 한반도 평화는 북한이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북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남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기세'나 '분위기'에 관한 문제이지 실질적인 '위협'이나 그런 건 없다고 본다.

물론 하겠다고 하면 아주 제한적인, 전면전화되지 않는 국지적인 충돌이나 위협은 가능하겠지.

그런게 소위 말하는 북방한계선(NLL)에서 도발이나 휴전선 전방에서 제한적인 총격사건, 이번에 문제된 무인기정찰 정도의 도발일 것이다.

그런건 남한에 위협을 가하고 겁을 먹게 하려는 정도이지 남한 자체를 때려가지고 뭘 하겠다는 것 아니지.

남한을 향해 뭘 쏜다고 얘기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한에 핵을 쏘면 북쪽도 피해를 받지 않나.

핵보유국가와 전쟁하겠다는 건 어리석은 일

□ 그 문제는 뒤에 자세히 묻겠다. 아무튼 북한은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겠다고하면서 국방력 강화를 계속하고 있지 않나. 실제로 북한의 이런 의지가 현실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실현 가능하다고 보나.

■ 이미 북한의 그런 전략은 상당히 성공했다고 본다. 북한이 최근 들어 화성포-15형부터 17형까지 발사하면서 작년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북한 핵문제를 지금처럼 다루면 안되겠다는 여론이 굉장히 많다.

미국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 같은 이는 북한과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언론에서도 그와 같은 논의가 꽤 많이 나오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나라라면 핵 보유국가와 전쟁으로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건 어리석인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했던 제임스 매티스가 북한과의 핵전쟁 검토지시를 받고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근무 첫날 성당에 찾아갔던 일화도 있지 않나.

미국이 멸망한다는 거지. 방법이 없다. 핵으로 한방 맞으면 끝난다. 워싱턴이나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이런 곳에 한방 떨어지면 미국은 그냥 바로 무너진다. 패권이고 뭐고 없다.

미국이 북한을 초토화시키면 뭘 하나. 세컨드 스트라이크도 의미없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미국에 맞아서 아주 멸망을 하더라도 미국도 그렇게 한방만 맞으면 재기불가능하다.

미국에서 뉴욕이 사라져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나. 이건 건물 하나가 날라가는 게 아니라 500만명 정도가 갑자기 싹 사라져버리는 거다.

워싱턴하고 두 군데만 맞아 떨어지만 미국에 남는 게 뭐가 있나. 그냥 미국 전체가 다시 서부개척시대로 돌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건 군사적 지식이 없더라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

그게 더 이상한 일이고 이해 안되는 일이다. 이런 걸 미국의 전략가들이 모르겠나. 당연히 안다. 그러니까 매티스 같은 사람이 성당에 뛰어가서 기도부터 했다는 것 아닌가.

핵전쟁의 위험이 상식적이라는 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이해관계가 미국에 켜켜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북한 제2경제위원회에서 2022년 12월 31일 오전 당중앙에 초대형방사포 30문을 증정했다. [사진 출처 - 노동신문]
북한 제2경제위원회에서 2022년 12월 31일 오전 당중앙에 초대형방사포 30문을 증정했다. [사진 출처 - 노동신문]

□ 북한의 전술핵 전선배치가 작년에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준비되고 유사시 전개되는 전개되는 시나리오는 어떻게 되나.

■ 전술핵 운용부대 전선배치에 대해서는 정보사항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현재 북한의 실력으로는 야포 정도에 0.1~0.1킬로톤(kt) 정도의 소형 핵무기를 탑재해서 사용하는 건 별로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방사포에 싣는 것은 기본이고 포병 포탄에 탑재하는 건 초보적인 기술이다. 미국에서 이미 그렇게 해왔고 그건 별로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작년에 했던 것 처럼 북한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이 말하는 전술핵무기는 여러 가지 층위가 다른데, 최근에 말하는 전술핵무기는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전개할 때 이를 타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말한다.

또 한반도 영역을 벗어난 범위에서 동해안에 들어오거나, 전쟁 발발시 미국 증원전력이 들어오는 경우 일본에 타격하거나 그와 비슷한 정도의 수준에서 대응하는 것을 전술훈련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실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때 일본이나 미국의 증원전력이 한반도로 오는 것을 타격하는 것이 전술핵무기이고, 전략핵이라면 미국 본토를 겨냥한 것이다.

괌기지나 태평양에서 들어오는 전력이나 항모전단을 상대로 약 1천km 미만의 사거리로 타격할 수 있는 무기, 그리고 한반도에서 지상전에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도 준비는 나름대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술핵무기가 남한을 공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한의 재래식 전력이 북한보다 훨씬 위에 있다는 점도 역설적으로 북한의 전술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더욱 높인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전차나 탱크를 다 만들어가면서 우위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방사포나 야포에서 쓸 수 있는 핵을 가지려는 것은 기본적인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책임있는 국방 당국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구상하고 실시할 것이다.

이건 현실적인 이야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북한은 전술핵무기로 미국의 항모 전단이나 항공기가 전개되지 못하도록 타격해서 파괴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로 반격을 하면, 북한은 다시 미국 본토에 타격을 하겠지.

그런 이후에 한반도에서 지상전이 발발하거나 전면전이 발생하면, 북한은 남한의 주요 전력을 대상으로 타격을 가할 것이다. 그런 일은 당연한 프로그램이라고 봐야지. 핵을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준비를 할 것이다.

0.5킬로톤 한발이면 평택기지 소멸.. 기본 소형 핵무기는 어려운 수준 아니야

□ 전술핵무기에 대한 설명은 잘 들었다. 저위력이라고 하지만 전술핵이 실제 사용됐을 때 극히 위험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위력은 얼마나 되며 정밀하게 통제가능한지 알고 싶다.

■ 의도한대로 제한된 범위에서 딱 맞춰서 통제할 수 있다. 그건 이미 몇십 년 전부터 해왔던 기술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한국에도 1960년대에 이미 있었다.

0.1킬로톤(kt)의 핵으로 가로 세로 약 2㎢ 범위내의 인명과 장비를 완전히 소멸시킨다. 통상 대대급 전개 공격 규모가 2㎢ 정도 되니까 포탄 한발이면 거기 있는 모든 게 소거되는 셈이다.

이런 포탄 몇발이면 사실은 미국의 평택기지도 끝난다. 0.5킬로톤 한발만 떨어지면 방공호에 있는 사람은 살아남겠지만 10㎢ 위에 있는 사람과 장비는 싹 사라진다.

□ 방사능 피폭 문제는 남지 않나. 바람을 타고 날아가던지 할텐데 제한된 범위로 통제는 어렵지 않을까.

■ 북한 입장에서는 나라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최후의 순간인데 그런 우려는 이미 고려사항이 아니겠지. 그런 문제까지 생각할 수는 없다.

그걸 쓰고 안쓰는 문제는 정치적 선택의 영역이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군인들은 준비는 다 한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정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단 한번의 남북간 총돌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지를 잘 모른다는 거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과 발생하는 충돌을 가지고 그렇게 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전쟁 상태에 갔을 때, 즉 미국을 억제하는 데 실패하고 실제 전면전이 벌어지면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남아야 될 것 아닌가. 또 그렇게 하겠다는 이야기이고.

□ 미국의 전략자산 같은 것들이 전개되기 전에 이걸 저지하기 위해 전술핵이 사용되고, 이도 여의치 않을때는 전략핵 타격도 불사한다. 나아가 한반도 전체가 전장화되고 지상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저위력화된 전술핵도 사용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말씀이다.

■ 정상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은 군인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 우려되는 게 군인들 본인들도 그런 현실적 가능성에 대해 생각들을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 통상적으로 이런 군사적 긴장이나 갈등이 고조될 때 주식시장의 추이를 보고 했었는데, 작년에 그렇게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이 굉장히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

■ 그건 기본적으로 전쟁이 안 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누구도 감히 전쟁을 못 일으킨다. 북한은 자기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킬 수가 없다. 전쟁을 일으켜 봤자 재래식 전력으로는 남한을 점령해서 군사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역량이 안된다.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휴전선도 못넘어 온다.

오히려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미국이나 남한이지. 그런데 남한은 단독으로 전쟁을 못 일으킨다.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는데, 북한의 핵이 미국을 확고하게 억제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은 안 일어난다.

미국이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한반도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북한이 핵무장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했다는 말은 유감스럽게도 객관적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한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 다른 질문을 드리겠다. 작년 말 북한 무인정찰기 관련 우리 대응태세 문제점이 부각되는 과정에 일각에서는 북한의 적진정찰-검수사격(초대형방사포)-무기증산 스케줄이 비일상적 군사작전이라는 우려가 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 북한의 활동과 우리가 처한 위협을 과대평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사실은 북한이 윤석열 정권한테 "니가 자꾸 대북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우리는 이렇게 나간다. 내가 이렇게 나가면 너 어떡할 건데"라고 응수타진한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할 게 없지 않나. 가서 공격할 수가 있나, 겨우 무인기 날리는 거지.

그런데 무인기를 날리면 어떻게 되느냐. 즉각 한국에 있는 유엔사가 한국 정부와 군에 대해 규제를 한다. 

유엔사는 북한이 정전협정 위반하는 것을 규제할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남한이 위반할 경우에는 제재한다. 전쟁을 방지하는 가장 일차적인 정전관리 책임이 유엔사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처음이라서 그냥 했겠지만 우리 군과 정부가 독자적으로 계속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도 남한이 이상한 짓을 해서 자기들이 전쟁에 끌려가고 싶지 않거든. 전쟁은 자기가 원해서 선택하는 것이지, 상황에 끌려서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남한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하는 거지.

사실은 그래서 군사적 주권을 가지고 그런 공세적 행동을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저는 유엔사로부터 적어도 정전관리 권한을 회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된다. 먼저 우리 스스로 정전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된다.

정치권이나 군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해 도발하거나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서 그들의 도발을 자초하면 안된다. 우리가 잘못하는 게 없는데 북한이 도발하는 경우에는 거기 강력하게 응징을 해야 되겠지만, 최근에 드러난 윤석역 정부의 행태는 북한에 대한 반감 같은 것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렇게 되면 안된다.

특히 인문 지리적 억제를 하려면 유엔사가 갖고 있는 정전관리 기능은 반드시 가져와야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南 공세적 행동 위험.. 정전관리 능력 갖춰야, 전시작전권 전환 마무리가 급선무

□ 전시작전권은 한미연합사 소관이고 정전관리 업무는 유엔사에서 하는데 그걸 우리가 가져오겠다면 미국이 반대할텐데, 방안이 있나.

■ 그건 당연히 안 주려고 하겠지. 가장 큰 문제는 남한의 정치권력이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이 없다는 거다. 그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유엔사는 남한을 믿지 못한다.

소위 진보 정권이나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유엔사가 남북교류의 방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측면 외에 남한의 보수정권이 굉장히 공격적인 정책을 펴서 전쟁 발발 상황이 우려되는 일이 있다는 거다.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는 거지. 

먼저 미국이 원치 않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남북간 교류협력이 그냥 이뤄지면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우려다. 그러면 동북아지역에서 패권 유지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가 상실된다는 측면이 하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남한의 보수정권이 공세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려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하는 거다.

그러니까 유엔사는 남북교역을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이 마음대로 통제하게 되는 부정적인 기재로도 작용했지만 남한 보수정권의 위험한 행동을 못하게 한 긍정적인 기능도 함께 보아야 한다.

□ 두 가지 측면 중에서도 유엔사나 한미연합사를 미국이 계속 쥐고 가려는 데 대한 근본적인 요구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 그게 있지. 당연히. 미국이 자신의 패권 유지를 하기 위해 중국을 억제하거나 러시아를 견제하는데서 한국처럼 중요한 위치가 없다.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인 거지.

더군다나 한국은 공급망이라는 차원에서도 미국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으니 그런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 지난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전쟁동원준비와 실전능력제고에서 전환을 일으키는 해', '물리적 힘을 더욱 믿음직하고 확실하게 다지는 실제적인 행동에로 넘어갈 데 대한 구체화 된 대미, 대적 대응방향'을 언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 대규모로 전개될 한미연합군사훈련과 관련해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남과 북, 미국 정책당국에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 이미 훈련을 하는 건 다 결정이 됐고 결국 하게 될텐데. 특히 미국은 기존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를 먼저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공적이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먼저 있어야 하는데, 사실은 철저히 실패했단 말이지.

기존의 실패한 행위를 정책으로 계속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닌가. 이미 하노이 회담 당시 방향을 잘만 선택했었다면 지금의 북한은 미국이 크게 위협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적대관계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북한의 미사일 개발 같은 것도 중간에 중단시킬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고, 사실은 남북, 미북간 합의를 가장 먼저 두번의 큰 합의를 위반한 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지 않나.

북한의 핵개발 포기 대가로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경수로 발전소 건설과 중유 공급을 주 내용으로 하는 1994년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도 그랬고, 2007년 6자회담 결과 서명한 2.13합의도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동결로 무산되어 다 무너졌지. 남북, 미북간 기본합의를 위반한 건 사실은 미국이었다. 

그러니까 북한으로선 더 이상 미국을 믿을 수가 없지 않나.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그랬다. 합의를 하고 무너뜨리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북한도 그런 미국과 합의를 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 하노이 결렬도 북미간 세번째 합의쯤 되는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합의의 방향을 바꾼 거니까.

자기들이 해 온 정책의 결과가 이러한데, 이걸 북한의 잘못으로만 떠 넘기고 국내정치적으로 책임을 모면하려는 식으로 해서는 미국은 패권유지도 어렵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유력한 중국 견제방법은 북한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건데, 실패한 거지. 앞으로는 그렇게 안된다. 북한도 그렇게는 안할 거다.

미국에게 남은 건 북한을 중국과의 관계에서 조금 멀리 떨어지게 하는 정도, 아주 잘해도 중립화시키는 정도 밖에 할 수가 없다. 절대로 북한이 미국편을 들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략 전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의 북한을 적대적인 관계로 보기보다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협력대상으로 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시기가 문제일 뿐 윤석열 정권은 상당한 경기침체나 경제위기에 닥칠 것이 분명한데, 미리 준비해서 북한과 협력을 잘하면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오롯이 뒤집어 쓸 수밖에.  

한마디로 북한을 위협으로 생각하느냐, 기회로 볼 것이냐에 따라 위기는 다른 양상으로 닥칠 것이다.

저는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해결방안 없는 열정적인 통일주의자나 무작정 반북주의자 모두 위험하다고 본다.

□ 무작정 반북주의에 대한 우려는 이해되는데, 통일지상주의는 무슨 이야기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 통일이라는 건 민족적 과업이죠. 그러나 열정과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방안이 있어야 한다. 전략이나 이론없이 그저 우리 민족이니까 통일한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하는 식으로는 통일이 안된다고.

구체적인 현실과 현실이 부딪히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상태이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른바 '주사파'로 통칭되는 감상적 통일지상주의는 실질적으로 남북관계를 강화하고 협력,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로 작용하기 쉽고 반북주의자들에 의해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지 않나.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반북주의, 반공주의자들이 강력한 주류이다. 이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거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남북 적대관계가 훨씬 더 낫다고 본다. 

노동자를 탄압하려면 북한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거야. 당장 오늘 내일 지급할 인건비가 중요한 그들로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나 주사파를 활용하는 거지. 그건 뻔하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북한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을 아주 다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공부도 좀 더 많이해서 현실적인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 올해는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올해 정전협정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계기라도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데, 조언이 있다면.

■ 남과 북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북한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지만 남한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유감스럽지만 그게 현실이다. 북한이 남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우리는 자주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의사결정 권한이 없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남한의 시민단체, 시민운동이 종전선언하자, 평화협정 하자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결국 미국이 움직여야 되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지. 남북 간에 평화협정하고 종전선언한다고 해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바꿀 수 있겠나. 못바꾼다.

정전협정에 사인은 미국과 북한이 했지 남한은 없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권한을 위임했으니까 당사자라고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이고, 결과적으로 사인은 하지 않았다. 정전협정은 군사령관이 사인한 협정인데, 그 당시 우리는 작전 군사적인 권한도 없었다.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한반도 문제에서 남한은 당사자가 아니다. 당사자 자격이 없다.

시민단체 사람들은 남한이 한반도 문제 당사자 자격을 먼저 회득하겠다는 노력부터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종전선언, 평화협정하자고 하면 사실 미국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무런 영향도 없는 찻잔속의 태풍에 불과하다.

북한 입장에서도 남한 시민단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지 실제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으로 질적인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겠나.

한국정부도 그렇게 가려면 먼저 전시작전권 전환해야지. 그래야 종전선언, 평화협정에 들어가는 거지.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미북 평화협정을 얘기했던 건 아예 순서가 틀린거다.

평화협정 하기 전에 먼저 우리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을 끝내고 정치적 협상으로서 해결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 정부는 자주권을 갖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자격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전시작전권 전환부터 시작해 정치적 협상으로 전환된 평화협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협정은 단순히 어떤 문서에 서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의 지속가능성이 제도화되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앞서 여러 차례 강조한 '인민지리적 억제' 같은 것들이 갖춰져야 한다. 

앞으로도 한국 정부가 당사자 자격을 갖지 않은 채 그런 주장을 계속한다면 북한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고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는 그런 보장을 뭘로 믿겠나.

남북한의 가운데 그야말로 미·일·중·러가 다 들어와서 있던지,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에 다시 외국군대가 들어오는 건 말이 안되니까, 남북간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인문지리적 억제' 같은 방안이 갖춰져야 그것이 전시작전권 환수,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본다.

□ 그 과정에 유엔사나 한미연합사령부의 역할도 조정될 수 있겠다. 또 평소 글쓰신 걸 보면 미군의 철수로 인한 공백은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던데.

■ 그러니까 전작권 전환을 해서 우리가 주권을 가지는 것하고 동북아 지역에서 미군이 빠져나감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은 또 다른 문제다.

남북한이 완전하게 경제·안보 동맹으로서 역량을 갖추면 미군이 빠져나가도 공백이 안 생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만약 미국이 나가면 여기에 중국과 일본의 각축전이 벌어진다. 러시아도 끼어들겠지. 오히려 더 불안정해 질 수 있다.

사실 현상변경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다. 현상변경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느냐가 중요한데,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주한미군은 나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 현실적인가 하는 의문은 있다.

우리는 전쟁을 겪은 나라다. 미·일·중·러의 각축장이 될 수 있는 한반도에 어느 한 힘이 빠져나가면 그만큼 뭔가 밀고 들어 온다. 중국이 제일 먼저 밀고 들어오겠지.

우리는 중국이 그렇게 밀고 들어오면 감당 못한다. 미국이 일정 부분 군사적으로 중국을 억제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 진보적 입장에서는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게 있다. 주한미군에 또 다른 긍정적인 순기능이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인가.

■ 아니 뭐 그런 것보다 현상유지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다. 현상유지는 평화를 유지한다는 걸 의미한다. 현상유지가 깨지면 정치적 불안정이 생기고 그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군사적인 충돌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변화를 관리하고 추구해 나가는 것이냐, 아니면 어떤 공백이 생겨서 감당 못하는 변화가 생기는 걸 어쩔 수 없이 그때 가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느냐의 차이인 건데.

그렇게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 잃을 수 있는 게 너무 많지 않나.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상황을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바꿔나가는 게 현명하다는 거지.

주한미군 문제는 예전 김대중 대통령이 철수하면 안된다고 했던 그런 맥락으로 이해한다. 상당기간 그렇게 되겠지만 좀 있다보면 주한미군이 철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미 트럼프가 그런 얘기를 했고, 미국도 특정한 변화가 생기면 해외에 나가있는 군대 운용이나 안보전략에 대한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겠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그에 대한 준비는 해야지.

그런 점에선 영원히 주한미군이 점령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한 전 소장은 "정치지도자는 항상 평화와 대화를, 또 평화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진-조천현]
한 전 소장은 "정치지도자는 항상 평화와 대화를, 또 평화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진-조천현]

정치지도자는 항상 '평화' 말해야.. '적' 운운은 상식 결여

□ 오랜 시간 전쟁과 평화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언급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던 것이 불과 얼마전이다. 군 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은 동로마제국 시기 군사학논고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동로마제국의 군사이론은 스파르타의 군사학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쟁은 군사, 경제, 정치외교적인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이야기는 전쟁을 군사적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군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쟁을 준비해야 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은 평화를 군사적으로만 대비해선 안된다. 

국가간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화를 해야지.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항상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평화와 대화를, 또 평화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평화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교역을 확대하고 이익을 공유하며, 서로 갈등을 해소하는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그렇게 되지 않았던 건 제국주의간 패권경쟁이 너무 치열하게 벌어져서 외교적인 방법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에는 그런 대화와 외교에서 실패한 거다. 가장 크게 실패한 영국은 이념적 차이가 있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독일과 유화정책을 펴지 않았나. 이론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영국이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을 억제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념적 접근이 전쟁 발발로 귀결된 것이다. 그렇게 평화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데 실패한 영국은 패권을 상실했다.

이념에 치중해서 국가이익이 무엇인지를 간과한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실패사례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다소 유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을 '적'이라고 지칭한 것은 국가지도능력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지도자는 그러면 안된다.

우리나라는 지금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를 관리하는 대통령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권에서 안보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전쟁과 평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관리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돼 있다고 본다.

군인들은 당연히 '적'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게 훈련도 시키고 정신무장도 시켜야 한다. 

국방백서는 국방부가 정치적인 평가를 하는 거니까 거기서 북한을 적이니 뭐니 규정하는 걸 이상하게 볼 일도 아니다.

다만 세계 어느 나라도 타국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주적으로 명시하면 짊어지게 되는 어마어마한 부담이 있지 않나. 그런 걸 모르니까 '대화가 더 필요한 상대이고 이해관계를 해소해야 되는 나라' 정도로 표현해도 될 이란한테도 '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어느 누가 제3국을 적이라고 표현하나. 그런 건 미친 짓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다. 지난해 11월 북의 군사대응 중 울산 80km 앞바다 전략순항미사일 2발 탄착과 울릉도 북방 NLL 공해상 탄착에 관해 남북의 발표 내용이 서로 엇갈리는 대목이 있었다. 진실은 무엇인가?

■ 저도 모르지. 다만 몇 차례 김여정이 나와서 우리 군 발표를 부정했는데, 거짓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 군이 탐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감시공백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추정을 해 보는 건데, 북한이 좌표까지 찍어서 발표를 했으니까 내가 책임자라면 창피하더라도 가서 찾아봤을텐데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

찾아봤는데 없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고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모르겠다. 군이 그랬다는 것도 못들어봤고 정보영역이니까.

하여튼 북한이 쐈을 가능성이 높고 우리가 못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마지막 질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계속 군 생활을 하셨는데, 평소 좌우명으로 생각하는 문구가 있다면.

■ 제가 뭐 대단하게 좌우명으로 삼고 그런 건 없고 군대에 처음 들어가면서 우리 어머니께서 저에게 '선비는 곁불 쬐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항시 새기고 있다.

가급적이면 이해관계에 끼거나 제 이익을 위해서 나서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건 아마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한다.

크게 제 인생을 관통하는 좌우명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한다.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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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없애버리자? 이 글 먼저 읽어보시길

[넥스트브릿지] 국민연금 개혁에 앞서 풀어야 할 오해들

23.01.25 07:09최종 업데이트 23.01.25 07:09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 9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국민연금을 받는 약 622만명의 연금액이 물가상승을 반영해 기존보다 5.1% 인상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모두가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그러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올바른 방향으로 국민연금이 개혁되기 위해 먼저 풀어야 하는 오해들이 있다.

국민연금 제도는 명칭 그대로 모든 국민의 안정적 노후를 보장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1988년에 도입되었다. 35년이 흐르는 동안 적지 않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넓은 사각지대, 충분하지 못한 보장 수준으로 대다수 국민에게는 미덥지 못한 노후보장 수단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고령화로 인한 재정불안정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유포되고 이러한 우려에 편승해서 아예 국민연금을 없애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공적연금이 지급 불능 사태에 빠지는 일은 없다. 세금을 걷거나 화폐를 발행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국가는 지급할 능력이 있다. 고령화가 아주 빠르게 진행 중이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 재정이 위협받고 있다지만 역설적이게도 국민연금 보장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인구 절반이 65세가 되는 먼 미래에도 국민연금 지급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4%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즉, 고령화가 국민연금을 붕괴시킬 거라는 위협은 매우 과장된 것이다.

오히려 다른 나라 공적연금과 달리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가진 강력한 소득재분배 기능에 대한 고소득자들의 불만과, 공적연금이 발달하면 민간보험 비즈니스가 위축되기 때문에 고소득자들과 민간보험사들이 국민연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유포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들이 국민연금의 기금고갈론, 지불불능설, 미래세대폭탄론 등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에 대해 유포되고 있는 부정적 인식이 국민연금의 바람직한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이것들이 어떤 점에서 오해인지 살펴보자.

노인에 대한 공적연금 지출규모 크지 않다

첫째,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이 은퇴 세대에 너무 관대해 국민연금 재정을 위협한다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인부양비와 공적연금 지출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보면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노인인구 비중에 비해 공적연금 지출규모가 형편없이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고령층 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 가입을 꺼리는 사람들을 가입 유도하기 위해 보험료를 매우 낮게 책정하고 급여 수준을 매우 높게 설정했던 것은 사실이다.

1988년 당시, 오늘날 우리들이 이렇게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 못했고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를 부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강하게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생소했던 국민연금이 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이자율이 10%에 이를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강제 저축을 위해서는 그 정도 인센티브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했기 때문에 절대적 기준으로는 용돈연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재정안정성을 너무 강조해 이후 소득대체율을 하향 조정하고 보험료율을 올리는 개혁을 진행해서 보장성이 너무 낮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2007년 연금개혁이 있었고 20년에 걸쳐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내린다고 결정함에 따라 소득대체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먼 미래에도 공적연금 지출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 [그림1] 노인부양비(65세 인구/생산가능인구) 장기 전망 출처 : European Commission, The 2021 Ageing Report(2021). 통계청, 장래인구특별추계, 2017-2067년, 보도자료(2019). ⓒ 정세은

 

▲ [그림2] 공적연금 지출 장기 전망(GDP 대비 %) 출처 : European Commission, The 2021 Ageing Report(2021). 국회예산정책처,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전망(2020). ⓒ 정세은

  

▲ [표1] 국민연금 장기 총수입, 총지출 및 수지(2018년 전망) 출처: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2018 국민연금재정추계(2018). ⓒ 정세은


[그림1]을 보면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2030년대 초반이 되면 노인부양비가 OECD 평균을 넘고 이후에는 OECD 평균보다 매우 커지게 되는데, [그림2]를 보면 공적연금 지출규모는 2070년이 되어도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표1]에 따르면 2070년에 국민연금 지출규모는 GDP의 8.9%에 불과한 수준이다.

미래에 공적연금의 사각지대가 사라진다 해도 빈곤한 노인들이 대다수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 연금개혁을 한다면 소득대체율을 다시 적정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주요 개혁 내용에 포함되어야 한다. 

부과식 공적연금에 기금고갈은 문제 되지 않는다

둘째, 2003년부터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수행됐는데 추계 이후 언론의 관심은 예외 없이 기금이 언제 고갈되는가에 있었다. 지난 2018년에 수행된 4차 재정계산에서는 국민연금기금이 2057년에 소진되는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런데 가령 2057년에 기금이 고갈되면 뭔가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는가?

언론에서는 기금 고갈이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가고 있지만 기금 고갈이 문제 되는 것은 민간연금의 경우이다. 민간연금은 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보험료를 받고 그것을 불려서 수익을 붙여서 돌려주기 때문에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공적연금은 부과식 제도로서 현세대에 보험료를 걷어 은퇴세대에 연금으로 지급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미래세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급불능을 염려할 이유가 없다. 기금고갈로 연금을 못 받게 된다는 것은 그 미래세대가 은퇴할 때쯤 생산인구가 하나도 없어야 일어나는 일이다.

공적연금을 운영하는 거의 모든 국가가 기금 축적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갑자기 경제위기가 찾아온다거나 할 때 그 해의 보험료 수입이 충분하지 않으면 연금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예비적 차원에서 소규모의 완충기금만을 보유할 뿐이다.

그렇다면 부과식 연금제도를 가진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기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가? 부과식이 아니라 민간연금처럼 적립식인 것은 아닌가? 답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국민연금이 기금이 많은 이유는, 국민연금을 시작할 때 기금을 조금 쌓아두면 미래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완화해 줄 수 있지 않겠냐는,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원래 국민연금을 설계할 때 기금 유지를 중요한 목표로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금의 소진은 자연스럽고, 그 이후 국민연금 제도는 예비금을 적정 수준 보유하면서 미래의 생산인구가 미래의 은퇴인구를 잘 부양하도록 재원 마련 제도를 잘 설계하면 되는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금의 소진 자체가 아니라 주식이나 채권 형태로 된 기금이 대규모(2020년 GDP 45.1%)여서 기금을 현금으로 바꿔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대량의 주식과 채권이 금융시장에 나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금을 현금화할 때 금융시장이 충격받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근로소득에만 보험료 부담시키는 제도 바꿔야
 

▲ [표2] 부과방식비용율 및 GDP 대비 급여지출 추이(2018년 전망) 출처: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2018 국민연금재정추계(2018). ⓒ 정세은


그런데도 기금 소진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는 것은 기금이 소진된 이후 은퇴세대가 미래세대에 비해 너무 많아 은퇴세대를 부양하기 위해 폭탄 수준의 높은 보험료를 부담하게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만일 충분하지 않은 보장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장성까지 올린다면 미래에 내야 할 보험료 수준은 더욱 높지 않겠는가?

이러한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에는 지난 4차 재정계산의 결과로써 2070년에 거의 30%에 이르는 부과방식비용률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부과방식비용률이란 은퇴세대의 연금지급을 위해 생산세대에게서 보험료를 거둘 때 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마치 세금에서의 과표와 같이) 대비 보험료를 얼마를 걷어야 하는가 보여주는 지표를 의미한다.

기금이 소진된 이후 생산인구의 근로소득에 대한 보험료만으로 연금을 지불한다면, 30%의 부과방식비용률은 미래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보험료(물론 개인과 고용주가 나누어서 내기 때문에 개인이 내는 것은 그 절반이겠지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근본적으로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미래에 근로소득자의 근로소득으로만 국민연금 재원을 마련해야 할까? [표2]에서 'GDP대비 보험료부과 대상소득총액'을 보면 전체 GDP 중 약 30%만의 소득에 보험료가 부과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령화 인구가 절반에 육박하는 미래에 은퇴세대 부양을 미래 생산인구의 근로소득에만 지우는 제도에서는 그 인구의 부담이 과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미 우리보다 앞서서 저출생 문제를 경험한 선진국들이 공적연금에 국고를 투입하고 있다. 만일 우리도 미래의 부족한 재원의 일부를 보험료 인상으로 마련하고 그 나머지를 국가가 책임진다고 하면 보험료를 그렇게 높게 올릴 필요가 없게 된다. 지난 4차 재정계산의 계산에 따르면 현행 9% 보험료율이 유지될 때 2070년에 GDP 대비 약 6.6%의 적자 발생을 전망했으므로 국가가 절반을 감당한다면 보험료를 올려 감당할 부분은 GDP 대비 3.3% 정도가 된다.

따라서 바람직한 국민연금 해법은 보장성은 당장 올리되 보험료는 서서히 올리는 개혁이다. 보험료는 적정한 상한선을 두고 그 수준에 이르면 인상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부족한 부분은 국고를 투입해서 해결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연금 재정불안정이 야기되는 근본 이유가 저출생이나 저성장과 같이 국민연금 제도의 틀을 벗어난 데 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수지 균형을 후세대 근로소득에 대한 보험료로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따라서 국고 투입은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현세대와 후세대간의 의미 없고 소모적인 대립을 해결하는 관건이다. 국민연금에 장차 국고가 투입된다면 국가는 더욱 절실하게 저출생, 저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설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을 보험료 인상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사회적 갈등만 심화될 뿐 희망적인 돌파구가 마련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관심 영역은 한국경제 성장과 분배 선순환 문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조세 및 재정정책 등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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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대신 실수만 남는다…윤 대통령의 ‘할 말 많은’ 새해 보고



등록 :2023-01-24 09:13

수정 :2023-01-24 09:15

배지현 기자 사진

배지현 기자 구독

 

정치BAR_배지현의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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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식품의약품안전처·질병관리청 새해 업무보고에 참석해 머리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옛날에 선거 때 막 돈 쓴다고 그러면 선거자금은 뭐 한 100억을 뿌렸는데 막상 유권자에게 돌아가는 건 10%만 돌아가도 선거에 이긴다는 옛날 얘기가 있었잖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쏟아낸 마무리 발언 중 일부입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약자 복지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검증되지 않은 얘기나 국정과제 핵심과는 거리가 먼 사례 등을 들며 5000자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대통령실은 이번 부처 업무보고가 시작되기 전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를 국민에게 직접 보고하는 형식의 ‘대국민 보고’가 될 것이라고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18개 부처 가운데 15곳이 업무보고를 마쳤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은 긴 분량에도 요점을 알기 힘든 ‘난수표’에 가까웠습니다.

 

대통령 업무보고는 취임 뒤 두 번째입니다. 지난해 여름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의 독대로 진행한 첫 업무보고와는 달리 부처 관계자뿐 아니라 전문가와 정책수요자 등이 참석한 대규모 업무보고였습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핵심 정책에 관한 대통령의 생각을 부처 공무원들과 민간이 직접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오로지 국민과 국익만 생각하고 나아가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확고한 철학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업무보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공개된 윤 대통령의 발언은 번번이 입길에 올랐습니다. 짧게는 9분에서 길게는 28분 동안의 마무리 발언에선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학교 다닐 때 국어가 재미가 없었다. 우리말을 무엇 하러 또 배우나. 저도 학교 다닐 때 국어가 재미가 없었다. 문학 하시는 분들은 청록파, 이런 것을 국어라고 했지만 그게 아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또 “어떤 시라든가 이런 거를 놓고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뭔가 자기의 느낌을 적는다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한다면 재미없어 할 사람이 아마 없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으나, 실제 교과서엔 이미 그런 내용이 있어 윤 대통령이 현실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마무리 발언이 길어지다 보니 불필요한 발언도 적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일본도 이제 머리 위로 (북한의) 아이아르비엠(IRBM·중거리탄도미사일)이 날아다니니까 방위비를 증액하고 소위 반격 개념을 국방계획에 집어넣기로 하지 않았나. 그걸 누가 뭐라고 하겠나”(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라고 말해 방위비 증액을 뼈대로 한 일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을 용인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난 9일 복지부 업무보고에선 연금개혁의 기초작업을 강조하면서 뜬금없이 대법원 표결을 비유로 들기도 했습니다. “어떤 케이스가 대법원에 올라가면 대법원에 법관이 13명이다. 올라가자마자 대법관끼리 표결을 하는 게 아니다. 충분히 연구하고 자료조사하고 회의도 하고, 전원합의로 결론이 안 날 때마다 표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연금개혁도 기초 자료수집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예를 든 것이지만, 표결을 위한 자료 수집과 국민여론 수렴을 위한 기초 작업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이번 업무보고에서는 정부 정책을 국민에게 소개하는 ‘대국민 보고회’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야권을 겨냥하는 ‘정치적 발언’도 적지 않았습니다. “과거 정부가 부동산 문제와 환경 문제를 어떤 정치와 이념의 문제로 인식했다”(3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생산되는 쌀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소화하느냐와 관계없이 무조건 정부가 매입해주는 이런 식의 양곡관리법은 농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4일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 등이 그것입니다.

 

대통령실은 매번 업무보고가 끝난 뒤 대통령의 전체 발언을 정리해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은 사전 원고 없이 즉석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전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갖고 있던 평소 생각, 소신, 철학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대통령실 일부 인사들은 “대통령이 아는 게 얼마나 많으면 즉흥 발언을 20분 넘게 하겠느냐”며 추어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실 주변에서도 윤 대통령의 ‘폭포수 발언’을 두고 우려가 나옵니다. 국정 철학이나 기조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발언 속에서 부적합한 사례, 부적절한 인용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핵심 메시지는 사라지고 실수만 부각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게 대통령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국민에게 각인되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장편소설보다는 명료한 ‘한 줄의 시’일 것입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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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바뀌는 부동산 정책... 핵심은 ‘규제지역 해제+세금 감면’

부동산 전매제한 기간 완화하고, 분양가상한제 주택 실거주 의무도 폐지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01.03. ⓒ뉴시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전방위적인 부동산 규제완화로 올해부터 부동산 제도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 핵심은 지난 정부에서 집값을 잡기 위해 추진했던 규제를 다 풀고, 다주택자들의 세부담은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작년부터 시작된 대세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 집값을 떠받치려는 모양새다.
 

강남3구·용산구 빼고 규제지역 다풀었다... 전매제한·실거주 의무 완화도


우선 지난 3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발표된 것처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이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해제됐다.  

국토부는 기존에 규제지역으로 남아있던 서울 전역과 경기도 4개 지역(과천, 성남 분당·수정, 하남, 광명) 중 강남 3구와 용산구만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으로 유지하고 나머지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했다. 규제지역에서 풀린 지역은 대출, 세제, 청약, 거래 등 집을 사고파는 전 과정에 대한 모든 규제가 완화된다.

분양가상한제 대상 지역도 강남·서초·송파·용산구만 남겨놓고 모두 해제됐다. 마포·성동·강동 등 서울 14개구와 경기 과천·하남·광명 내 236개동이 분양가 상한제 대상지역에서 해제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은 5∼10년의 전매제한 규제와 2∼5년의 실거주 의무 등이 풀린다.

국토부는 의무적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야 했던 도심복합사업과 주거재생혁신지구에도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주택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규제지역에 적용하는 전매제한 및 실거주 의무도 대폭 완화한다. 오는 3월부터 수도권에서 최대 10년인 전매제한 기간은 3년으로, 비수도권은 최대 4년에서 1년으로 축소된다.

또 수도권의 경우 공공택지(분양가상한제 적용) 및 규제지역은 3년, 서울 전역이 포함되는 과밀억제권역은 1년, 그 외 지역은 6개월로 완화된다. 비수도권은 공공택지(분양가 상한제 적용) 및 규제지역은 1년, 광역시 도시지역은 6개월로 완화하고 그 외 지역은 전면 폐지된다.

전매제한 완화는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다. 시행령 개정 이전에 분양을 받았더라도 전매제한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개정된 시행령을 소급 적용받을 수 있다.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적용되는 실거주 의무도 폐지된다. 이는 거주이전을 제약해 수요가 많은 신축 아파트 임대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현재는 공공택지의 경우 실거주 의무기간이 최대 5년, 민간택지는 3년인데 이 의무가 아예 사라진다.

다만 실거주 의무 폐지는 주택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법 개정 전에 실거주 의무가 부과됐더라도 소급적용 받을 수 있다. 또 법 개정과 별개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정이 해제된 지역에서는 이후 분양되는 주택은 실거주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
 

아파트. (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청약관련 규제도 풀린다... 금액 상관없이 중도금 대출 허용


청약 관련 규제도 대다수 해제된다. 국토부는 현재 분양가 12억원 이하만 가능한 중도금 대출 보증을 모든 분양주택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당초 9억원 이하로 제한했던 중도금 대출을 지난해 11월 말 12억원 이하로 완화했는데 올해는 아예 이 규정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1인당 5억원까지로 제한했던 인당 중도금 대출 한도도 폐지한다.

국토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대출 보증 규정과 은행시스템 준비를 거쳐 올해 1분기 내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특별공급의 분양가 기준도 없애기로 했다. 현재 투기과열지구에서는 분양가가 9억원을 초과할 경우 다자녀 가구 등 특별공급 대상 물량에서 배제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 기준을 폐지해 분양가와 관계없이 모든 주택에서 특별공급이 가능하도록 한다. 다음 달 중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을 완료해 분양가 제한을 없앨 예정이다.

무순위 청약의 자격요건을 완화해 다주택자도 청약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한다. 앞서 지난 2021년 5월 문재인 정부는 청약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무순위 청약 신청 자격을 ‘무주택자’로 제한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1년 9개월여만에 다시 다주택자에게 무순위 청약 신청 자격을 부활시킨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2월 중 주택공급규칙 개정을 통해 다주택자도 무순위 청약에 지원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청약 당첨된 1주택자에게 부과되는 기존주택 처분 의무도 폐기하기로 했다. 현재 규제지역과 수도권·광역시 분양 아파트의 경우 추첨제 1순위 물량의 25%는 1주택자도 당첨이 가능하나 기존주택을 처분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국토부는 이 규제를 아예 없앤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다음 달 중으로 주택공급규칙 개정을 완료하고 청약시스템 정비를 거쳐 상반기 안에 시행할 방침이다. 개정안 시행 이전에 청약 당첨된 경우에도 소급 적용받을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 자료사진 ⓒ뉴시스

 

다주택자  세부담 줄이고, 대출규제도 푼다


종합부동산세는 기본공제가 공시가 9억원으로 올라간다. 1가구 1주택자는 공시가 12억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준다. 2주택자 중과도 폐지된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도 과세표준 12억원 이하는 중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규제지역 내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 금지 규제도 해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 전 지역을 비롯한 규제지역에서 다주택자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30%를 적용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일시적 2주택자의 종전주택 처분기한은 신규주택 취득일부터 2년 이내에서 3년 이내로 연장된다.

일시적 2주택 특례제도는 1세대가 1주택을 보유하면서 이사 등을 위해 신규주택을 취득해 일시적으로 1세대 2주택이 된 경우, 종전주택을 처분기한 내 양도하면 양도세·취득세·종부세 관련 1세대 1주택 혜택을 적용하는 제도다.

다음 달 중 공포·시행되며 발표일부터 시행일까지의 매물동결을 방지하고 일시적 2주택자에게 조속한 혜택을 주기 위해 12일부터 소급해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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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미국의 핵우산을 못 믿는 이유는?

“주한미군이 실효적 인계철선...핵무기로 핵무기 상쇄 못해” [CNN]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3.01.23 11:00
  •  
  •  댓글 0
 
 
 

미국 [CNN]이 21일(현지시각) “한국인들은 왜 미국 핵우산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 내에서 핵무장론이 힘을 얻는 배경을 분석했다.  

10년전만 해도 주변부에 머물렀던 한국 내 핵무장론이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뭘까? [CNN]은 “핵전쟁 시 미국이 한국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까”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이 바뀐 상황을 지적했다.

미국 본토에 대한 핵 보복 타격 가능성은 미국의 관여를 제한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연구위원은 “한국이 핵무기를 갖는다면, 북한의 공격에 우리 스스로 대처할 수 있다. 미국이 관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국 정부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2만 8,500명의 주한미군을 빼고 싶다고 했으며, 왜 미국이 한국을 지켜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2024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미국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한국 자체 핵보유 ’라는 구상을 수면 위에 올렸다. 미국은 둘 모두에 부정적이다. ‘한국과 공동 핵 연습을 추진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바이든 대통령이 “No”라고 일축했다.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지금까지 (확장억제가) 잘 작동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말을 바꿨다. 지난 2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그것(주-확장억제)만으로는 국민을 납득시키기 힘들다”고 했지만, 지난 19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때는 “미국의 확장억제를 완전히 신뢰한다”고 말했다. 

[CNN]은 “일관성 없는 메시지는 양측 누구의 우려도 거의 잠재우지 못한다”고 윤 대통령의 처신을 비판했다.  

미국 싱크탱크에서는 일부 절충안도 거론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지난 19일 “핵 공동기획 틀”을 만드는 것이 “동맹 간 신뢰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미들베리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도 공동 기획과 연습이 “핵무기 (보유)나 핵 공유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했다.

이 방안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 여당 의원들은 실망할 운명이라고 [CNN]이 지적했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는 “한반도에 미국 핵을 재배치하는 건 군사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 내 전술핵무기도 부족하고, 한국 내 벙커에 넣는 것도 어렵고, 북한의 매력적인 목표물이 된다며 “당신이 한 일이 당신의 능력을 저하시켰다”고 꼬집었다.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다 최근 ‘개종’한 정성장 위원은 미국의 확장억제는 한계에 도달했고 한국의 핵무장만이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후폭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우선 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비확산체제(NPT)에 반항한 대가로 한국 내 원자력발전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핵공급그룹(NSG)이 핵연료 공급을 중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내 핵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이고 중국이 이러한 상황을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중국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무엇이든 차단할 것”이라고 봤다. 

핵무장의 여파를 고려할 때 한국은 이미 미국이 제공해온 것들로부터 위안을 찾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고 [CNN]은 충고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앙킷 판다는 “주한미군 2만 8,500명이 아주 실효적인 인계철선”이라고 봤다. 

제프리 루이스는 “핵무기의 재밌는 점은 당신의 핵무기가 그들의 핵무기를 상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짚었다. “이스라엘은 핵무장 했지만 이란의 핵무장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핵무기가 이란 핵무기로부터 느끼는 위협을 근본적으로 상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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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기후재난 심각하다며 석탄발전 수출은 ‘국익’ 묘사”



기후운동가 5명 인터뷰, 한국언론의 기후위기 보도 진단

정쟁에 종속된 기후위기 보도… ‘핵발전’ 기사 쏟아내

‘뉴스룸 인식 부족·수익구조 영향’ 등 원인 꼽아

한국 언론이 기후위기를 정치·경제 분야에 종속된 주제로 다루는 한편, 언론사 수익구조에 지배된 결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일관된 의제를 펴지는 못한다는 기후 운동가들의 평가가 나왔다.

 

김천수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이건혁 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신우열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후위기 시대,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역할과 책임’ 연구보고서에서 국내 기후 운동가들을 심층인터뷰한 내용을 이같이 밝혔다. 논문은 뉴스통신진흥회 연구보고서로 지난달 27일 온라인에 게재됐다.

 

논문은 5명의 기후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국내 기후위기 보도에 대한 평가를 담았다. △김원상 기후솔루션 국내커뮤니케이션 담당자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장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을 인터뷰했다. 논문은 크게 △연합뉴스의 기후위기 보도 분석 △국내외 언론의 기후변화 대응 사례 조사 △국내 기후변화 보도에 대한 환경단체 전문가 인식조사로 구성됐다.

▲가디언의 2022년 기후 서약 페이지 갈무리. 가디언은 2019년 환경 문제를 앞장서 보도하며 관련 보도에 상업적, 정치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화석연료 채굴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등 내용을 담은 서약을 발표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기후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이 그간 정치·경제 보도에 기후위기를 종속시켜왔다고 입을 모았다. 기후위기 의제 가운데 핵발전 관련 보도를 양산하는 현상이 일례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기후위기 대응의 한 축인 에너지 문제만 과도하게 집중해 보도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는 정쟁화 때문”이라고 했다.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국에서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인간이 배출한 화석연료 때문인가를 둘러싸고는 정치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다. 핵발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주된 논쟁이 형성된다”며 “일부 언론은 탈원전 정책을 매우 진영논리로 접근하면서 핵발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뉴스룸 우선순위에서도 기후위기 의제는 정치와 경제 이슈에 밀린다. 환경 전문가들은 해외 주요 언론사들이 기후위기를 주요 섹션에 올려 보도하는 반면 한국에선 “기후위기 기사를 환경이나 과학 섹션의 하위 범주에 포함”하거나 “온라인판에만 싣고 지면이나 방송 뉴스에서는 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 같은 문제가 기후위기의 본질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한다고 봤다. “기후위기는 간(間) 영역적, 횡단적 특성이 있어 정치, 경제, 사회, 노동, 환경, 문화, 예술 등 전 영역과 관련 있는 문제”이며 “편집국 구성원 전체가 자기 영역에서 기후위기를 다뤄야 (한다)”며 “논조가 판이한 보도를 동시에 싣는, 기후위기에 대한 철학도 이해도 부재한 언론사(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기후위기 시대,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역할과 책임’ 연구보고서

이지언 국장은 “아시아 지역 기후 피해가 심각하면 외신 등을 통해 사건사고로 보도하면서 기후위기를 들먹이다 한국 석탄발전의 아시아 수출 문제에 대해서는 국익, 외화, 소득 등 경제 프레임으로 보도하는 언론사가 많다”며 “이런 이슈들이 통합적이고 연계되어 있다는 언론사 철학과 관점이 부재한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고 기후위기 대응이 언론의 중점 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사의 수익구조가 보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김원상 기후솔루션 국내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가령 화석연료 기업들의 입김으로 화석연료 비판적인 기사나 칼럼에 대한 검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언론의 수익 모델과 관계들이 화석연료와 관련된 기관이나 기업과 밀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지언 국장도 “언론의 독립성 공정성 측면에서 기후위기 보도는 쉽지 않은 도전 과제”라며 “기업들, 특히 화석연료 체계와 얽히지 않은 기업이 드문 상황”이라고 했다.

 

기후위기를 직접 언급하더라도 탄소배출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단발성 보도에 머무는 경향이 많다. 논문은 “이는 한국 언론의 높은 보도자료 의존도와 무관하지 않다”며 “정부의 정책 홍보나 기업의 이른바 ‘그린워싱’이 사실상 별다른 확인 과정 없이 기사화되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황인철 국장은 “긴 호흡으로 여러 사건을 하나로 엮어내려면 기자에게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만 그걸 허락하는 데스크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언론사 차원의 의지와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단발성 흥미 위주 보도도 잦다. 특히 남반구의 기후재난으로 인한 인명피해 보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환경전문가들은 “지진·해일·태풍·가뭄·산불 등 대형재난은 전통적으로 뉴스 가치가 높은 사건들이긴 하나 그 재난의 여러 단계 중 특정 단계에 보도가 집중됨으로써, 뉴스이용자들의 그 사건과 기후위기를 유기적으로 연결 지어 생각할 거리를 언론이 던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보도들이 시민을 ‘계몽 대상’이자 ‘소비자’로만 비춘다고도 지적했다. “소비자로서의 행동, 예컨대 일회용품 덜 쓰기나 텀블러 사용하기에 초점 맞추는 경향이 있고,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의 참여와 행동은 조명하지 않는다”(황인철 국장)는 것이다.

 

기후위기 보도에 적합한 뉴스룸 만들어야, 언론사간 협업도

 

이들 전문가는 한국 언론사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적합한 뉴스룸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환경전문가들이 보았을 때 기성 언론의 ‘순환식 출입처 제도’는 기후위기에 대한 전문성을 쌓기에 적합하지 않다.

 

논문은 “언론사 내 기후변화팀 신설과 확대는 바람직하긴 하나 기존 뉴스룸 시스템의 특성이 남아 있는 한 기후위기 취재를 해당 팀에서 전담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각 언론사가 기후위기에 적합한 조직구조를 지속해서 연구하고 실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 지배적이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편집국 안에 기후 의제를 전담하는 데스크를 신설하거나, 경영진과 편집국 책임자가 기후위기 의제를 적극 다룰 것을 지시하는 것 등을 제시했다. 언론사 간 협업도 강조했다. 가디언과 허프포스트, 리빌, 마더존스, 아틀란틱 등 언론사가 ‘프로젝트 클라이밋 데스크’를 구성한 것처럼 기후위기를 다루는 언론사들의 협력체를 꾸리라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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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길 발걸음 ‘꽁꽁’ 묶은 한파···제주공항서 최소 162편 결항

윤기은 기자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 공항사진기자단사진 크게보기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 공항사진기자단

설연휴 마지막날인 24일 한파와 강풍으로 인해 일부 항공편과 배편이 결항 조치되면서 귀경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묶이게 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 제주공항을 떠날 예정인 비행기 234편 중 162편이 사전 결항 조치됐다.

대한항공은 이날 제주에서 김포, 부산, 청주, 광주를 각각 잇는 출발·도착 항공편 총 44편 운항을 모두 멈춘다. 제주항공도 오후 3시 이전 출발·도착 항공편 40편을 결항하기로 했다.

제주지방항공청과 공항공사는 제주공항 대설과 강풍에 따른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항공편 변경을 위해 공항에 방문하는 승객을 위한 안내요원을 추가 투입했다.

이날 기상 악화로 인천과 섬을 잇는 14개 항로 중 9개 항로의 여객선 운항도 통제됐다. 이에 따라 인천∼백령도와 인천∼연평도, 인천∼덕적도 등 9개 항로를 오가는 여객선 11척의 운항이 중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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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삼목∼장봉 등 항로의 여객선 3척은 이날 휴항하며, 강화도 하리∼서검 등 3개 항로의 여객선 4척은 기상 상황에 따라 운항 여부가 결정된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당초 24일 하루 동안 3500명이 여객선과 도선을 이용해 인천과 섬 지역을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인천운항센터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35분 기준 풍랑특보가 내려진 인천 앞바다와 먼바다에는 3∼5m의 높은 파도가 일고 초속 12∼18m의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제주와 목포, 진도, 완도, 여수 등을 잇는 8개 노선의 여객선 또한 사전 결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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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524] 미국 항공모함은 왜 긴급 대응 작전 포기했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1/23 09:42
  • 수정일
    2023/01/23 09: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3/01/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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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간첩선에 비공식적으로 승선한 승조원 7명

2. 저인망 어선들이 간첩선을 감시하였다

3. 조선의 무서운 징벌이 시작되었다

4. 나무막대기보다 못한 미국의 핵우산

 

1. 간첩선에 비공식적으로 승선한 승조원 7명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이 미국의 최신형 신호 정보수집 간첩선 푸에블로호(USS Pueblo)를 나포하였던 때로부터 어언 55년 세월이 흘렀다.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전투원 31명이 박정희를 제거하려고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던 1.21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불과 이틀 뒤에 일어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두 사건이 이틀 간격으로 연속 일어나는 바람에 정세는 극단적으로 험악해졌다. 1968년 당시 서울에서 살고 있었던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중학생 철부지였는데, 전쟁이 곧 터질 것 같다고 수군거리던 동네 어른들의 근심 어린 표정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조선인민군의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에 관한 자료들이 지난 55년 동안 남과 북, 미국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되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산만하게 보도된 자료들을 가지고 심층정보를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에 얽혀있는 깊은 사연을 정밀하게 추적해보자.

 

푸에블로호

취역일 -1945년 4월 7일

재취역일 - 1967년 5월 13일 일반환경조사보조선 2호(Auxiliary General Environmental Research-2)로 위장하고, 신호정보수집 간첩선으로 재취역되었음.

배수량 - 895t

선체 길이 - 54m

선체 폭 - 9.8m

항행 속도 - 시속 23.5km

승조인원 - 장교 6명, 사병 70명

해상 정탐 장비 - 미국의 최신형 신호 정보수집 장비와 무선통신 장비가 탑재되었음. 

무장 - 12.7mm M2 중기관총 2정 

 

1967년 12월부터 미국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과 해군은 조선인민군의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해상 정탐작전을 합동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국가안보국-해군 합동 해상 정탐작전에 신호정 보수집 간첩선들인 푸에블로호와 배너호(USS Banner)가 동원되었다. 

 

미국 국가안보국과 해군이 푸에블로호에 내린 비밀지령은 조선 동해안에 접근해 조선인민군이 발신하는 레이더 전파를 감시하고, 무선 교신을 도청하고, 조선인민군 잠수함 엔진이 돌아갈 때 발생하는 기계 동음 음파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잠수함 엔진이 돌아갈 때 발생하는 기계 동음 음파는 잠수함마다 서로 다르므로, 미국군이 음파 정보를 확보하면, 바닷속에서 잠항하는 잠수함이 조선인민군 잠수함인지 미국군 잠수함인지를 식별하고 공격 여부를 신속히 결정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의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해상 정탐 지령을 받은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5일 일본 요꼬스까(橫須賀) 미해군 기지에서 출항하여 1월 11일 일본 사세보(佐世保) 미해군 기지에 잠시 들렀다가 동해로 들어갔다. 

 

푸에블로호의 공식 승조인원은 76명인데, 당시 푸에블로호에 승선한 총인원은 83명이었다. 7명이 비공식적으로 승선한 것이다. 7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들은 푸에블로호에 탑재된 최신형 해상 정탐 장비들을 다루는 특수요원들이었다. 그들은 푸에블로호 갑판 위에 설치된, 지름이 5m나 되는 커다란 포물면 안테나(parabolic antenna)를 사용하여 자기들이 확보한 감시자료와 도청자료를 미국 본토 메릴랜드주에 있는 국가안보국에 주기적으로 송신하였다. 

 

1968년 1월 2일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이었던 러쎌 스미스(Russel J. Smith)가 1급 비밀문서를 작성했다. 1968년 1월 3일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장 리처드 헬름스(Richard M. Helms)는 이 비밀문서를 결재했다. 이 비밀문서는 39년이 지난 2007년 12월 기밀해제 조치에 따라 세상에 알려졌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미국 해군 함선 배너호(USS Banner)의 자매 함선인 푸에블로호가 신호 정보수집 함대에 추가로 포함된다. 이 두 함선은 신호 정보수집 함선들의 새로운 활동 영역인 북조선 영해에서 각각 다른 시간에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비무장지대에서 북조선이 취하는 적대적 태도를 보거나, 북조선 영해에 침입한 남한 선박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면, 북조선이 이 두 함선에 대해서도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비밀문서를 보면, 미국은 푸에블로호를 조선 영해로 진입시켜 조선인민군의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해상정탐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고, 푸에블로호와 배너호를 해상정탐작전에 차례로 투입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은 푸에블로호가 조선 영해로 들어가 은밀히 해상 정탐을 감행하다가 조선인민군에 발각되어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도 예상하였다. 그러나 미국 국가안보국과 해군은 그런 위험 예상을 무시하고 푸에블로호를 해상 정탐 작전에 내몰았다. 

 

▲ 북한의 전리품이 된 푸에블로호.     

 

2. 저인망 어선들이 간첩선을 감시하였다

 

1968년 1월 20일 오후, 푸에블로호는 함경남도 신포 마양도 앞바다에 도착해 해상 정탐을 개시했다. 마양도에는 조선인민군 해군 제167잠수함대가 주둔하는데, 조선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해안 동굴식 잠수함기지가 그 섬에 있고, 해군 조선소도 그 섬에 있다. 매우 중요한 군사 전략거점들이다. 

 

1968년 1월 20일 해 질 무렵, 조선인민군 구잠정(sub chaser) 1척이 나타나더니 푸에블로호로부터 3.7km 떨어진 해상을 지나갔다. 구잠정은 바닷속에서 잠항하는 적 잠수함을 찾아내어 폭뢰로 격침하는 전투함선이다. 푸에블로호 함장 로이드 부커(Lloyd M. Bucher, 1927~2004)는 조선인민군 구잠정이 자기들 곁을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으로 여기고 안심했다. 그래서 그들은 마양도 군사 전략거점에 대한 해상 정탐을 이튿날까지 계속 감행했다. 

 

마양도 앞바다에서 해상 정탐을 마치고 거기를 떠난 푸에블로호는 남쪽으로 내려가 1968년 1월 22일 아침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원산은 조선인민군 해군기지와 잠수함기지가 있는 중요한 군사전략 거점이다. 푸에블로호는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려도의 해안선에서 12.2km 떨어진 영해 안으로 들어가 원산 군사전략 거점에 대한 해상 정탐을 감행했다.  

 

그런데 그날 정오경 뜻밖의 정황이 생겼다. 이에 관한 사연은 당시 푸에블로호 부함장이었던 에드워드 머피(Edward R. Murphy, Jr.)가 최근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회고담에 들어있다. 2023년 1월 20일 <자유아시아방송>에 그의 회고담이 실렸다. 회고담에 의하면, 1968년 1월 22일 정오경 조선의 저인망 어선(trawler) 2척이 나타나더니 푸에블로호로부터 약 30m 떨어진 곳까지 바짝 접근하였다가 사라졌고, 얼마 후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 다시 나타난 저인망 어선 갑판에서 사람들이 푸에블로호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쌍안경으로 살펴보기도 하고 사진 촬영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한 감시활동이었다. 푸에블로호를 감시한 조선의 저인망 어선은 논1호와 논2호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푸에블로호 함장 부커는 수로측량 활동을 표시한 위장 깃발을 돛대에 올려 걸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육안 관측과 사진 촬영을 계속하면서 푸에블로호를 근접 감시하던 논1호와 논2호는 오후 4시경 어디론가 사라졌다. 푸에블로호는 일본 요꼬하마(橫浜) 인근 가미세야(上瀨谷)에 있는 미국 해군기지 지휘관 해군 소장 프랭크 존슨(Frank L. Johnson)에게 조선의 저인망 어선 2척이 접근하여 자기들을 감시했다는 사실을 무선으로 보고했다. 그러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제7함대는 푸에블로호에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상징후에 관한 보고를 받고서도 아무런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그날 밤, 푸에블로호는 자기 주변에서 18척의 선박들이 움직이는 정황을 감시레이더를 통해 포착했다. 오전 1시 45분경 푸에블로호 주변 수역에 있는 조선 선박에서 신호탄이 발사되었으나 조선인민군 전투함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운명의 날이 밝았다. 1968년 1월 23일 아침, 푸에블로호 함장 부커는 푸에블로호가 지난밤에 조선의 해안선으로부터 약 40km 떨어진 먼바다까지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해안선으로부터 21km 떨어진 수역으로 다시 접근해 해상 정탐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국가 주권이 미치는 해역을 영해라고 한다. 원산 앞바다에서 해상 정탐을 감행하던 푸에블로호가 조선의 해안선으로부터 21km 떨어진 수역으로 들어갔던 1968년 당시 조선의 영해 범위는 해안선으로부터 22km에 이르는 해역으로 정해져 있었다. 해안선으로부터 5.5km에 이르는 해역을 영해로 인정한 미국이 자기의 낡은 영해법을 폐기하고, 해안선으로부터 22km에 이르는 해역을 영해로 인정하는 새로운 영해법을 채택한 때는 1977년이었다. 이런 사정은 1968년 당시 조선과 미국이 서로 다른 영해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1967년 12월 미국 해군 제7함대 사령부는 푸에블로호를 조선에 대한 해상 정탐작전에 동원하면서, 조선 영해의 외측 한계선은 해안선으로부터 22km에 그어졌으므로, 해안에 접근하되 해안선으로부터 24km 안으로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런 지시를 받은 푸에블로호는 강원도 원산 해안으로부터 21km 떨어진 해역에 들어갔으면서도 자기들이 조선 영해를 침범하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푸에블로호는 조선 영해를 1km 침범한 것이었다. 만일 다른 나라의 선박이나 항공기가 조선 영해 안으로 들어오면, 조선은 그것을 침범으로 간주하고, 격추 또는 격침하거나 나포한다. 자주권을 생명처럼 중시하는 조선은 미국군이 자기 영토, 영해, 영공을 0.001mm만 침범해도 그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조선에서 “미제의 무장간첩선”이라고 부르는 푸에블로호가 조선 영해 안으로 1km나 침범해 적대적인 해상 정탐까지 감행하였으므로, 미국은 격노한 조선의 징벌을 피할 수 없었다.  

 

3. 조선의 무서운 징벌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조선의 무서운 징벌이 시작되었다. 20세기 세계사에 수록된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는 조선이 미국에 내린 무서운 징벌이었다. 

 

1968년 1월 23일은 화요일이었다. 동해의 대기 온도는 영하로 떨어져 날씨는 매우 추웠다. 그날 오후 12시 15분경 동해 수평선 너머에서 갑자기 나타난 조선인민군 전투함선 1척이 푸에블로호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 전투함선은 조선인민군 해군 제155군부대 관하 전투함대에 소속된 구잠정 35호였다.  

 

구잠정 35호 

배수량 - 215t

선체 길이 - 42m

선체 폭 - 6m

항행 속도 - 시속 52km

승조인원 - 30명

무장 - 57mm 함포 1문, 25mm 쌍렬 중기관총 1정, 폭뢰발사기 4문, 폭뢰 12발 

 

푸에블로호로부터 약 900m까지 바짝 다가온 조선인민군 구잠정 35호는 “2분 내로 국적을 밝히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공포에 질린 푸에블로호 해군 병사들은 돛대에 성조기를 올려 걸었다. 바로 그때 조선인민군 P-4 고속어뢰정 3척이 나타나 구잠정 35호와 함께 푸에블로호를 포위했고, 조선인민군 미그-21 전투기 2대가 나타나 푸에블로호 선체 위에서 낮은 고도로 선회하며 위협 비행을 하였다. 잠시 후에는 P-4 고속어뢰정이 1척 더 현장에 나타나 가세했다. 푸에블로호는 독 안에 든 쥐처럼 조선인민군 전투함선 5척의 포위망에 완전히 갇히고 말았다. 

 

푸에블로호는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려고 단말마적인 몸부림을 쳤다. 바로 그 순간,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라는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의 함성과 함께 57mm 함포와 기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57mm 포탄 한 발이 푸에블로호 갑판 위에 높이 달린 포물선 안테나에 정확히 명중했다. 명중탄 한 방으로 5m 지름의 원형 표적을 날려버리는 놀라운 포격술이었다. 포물선 안테나 파편 조각들이 푸에블로호 갑판에 우박처럼 우두둑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구잠정 35호가 57mm 함포를 푸에블로호 흘수선으로 발사하지 않고 포물선 안테나로 발사한 것이나, P-4 고속어뢰정 4척이 어뢰를 발사하지 않고 기관포를 발사한 것은 그들이 격침 전투가 아니라 나포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푸에블로호 선실에서는 미국 해군 병사들이 조선인민군에게 기밀문서를 압수당하지 않으려고 약 1,000kg이나 되는 문서 더미를 쌓아놓고 허겁지겁 불을 질렀고, 도끼와 망치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선실 내부의 전자 장비들을 파괴하는 소동을 피우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전투함선 5척은 죽음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푸에블로호를 향해 기관포를 사격했다. 긴급구조를 요청하라는 함장의 명령을 받은 무전병 돈 베일리(Don Bailey)는 일본 가미세야에 있는 미국 해군 제7함대 기지에 긴급구조요청신호를 날렸다. 

 

푸에블로호가 항복하지 않자 조선인민군 전투함선들은 또 다시 두 차례 사격을 퍼부었다. 미국 해군 병사 3명이 비명을 지르며 선실 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기관총수 두웨인 하지스(Duane Hodges)는 직격탄을 맞고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포위망에 걸려든 푸에블로호는 격침당하거나 아니면 항복해야 하는 절망적 상황에 빠졌다.

    

구잠정 35호가 푸에블로호 선미에 달라붙었다. 조선인민군 전투원 4명은 번개처럼 푸에블로호로 옮겨 타고 습격전을 벌였다. 전투원들은 조타실에 들이닥쳤다. 조타실에서는 함장 부커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서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누가 함장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손가락으로 부커를 가리키면서 서툰 로씨야 말로 “까삐딴?”이라고 물었다.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부커는 공포에 질린 두 눈을 껌벅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조타실 작전 탁자 위에 놓인 종이와 연필을 가져가 해군 장교 모자를 쓴 사람 얼굴을 쓱쓱 그리더니 그것을 부커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제야 부커는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자기를 찾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체념한 듯 손짓으로 자기가 함장이라고 알렸다.  

 

푸에블로호를 습격한 조선인민군 전투원 4명은 함장 부커를 비롯하여 해군 장병 82명을 전원 포로로 생포했다. 조선과 미국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한 이후 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했으므로, 푸에블로호 해군 장병들은 전쟁포로로 생포된 것이다.

 

미국 해군 전쟁포로 82명은 푸에블로호 갑판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푸에블로호 취침실에 있는 침대보를 찢어 전쟁포로들에게 나누어주고 뒷사람이 앞사람의 두 눈을 가리고 두 손목을 차례로 묶으라고 명령했다. 두 눈이 가려지고 두 손목이 뒤로 묶인 미국 해군 전쟁포로 82명은 항복의 표시로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이 극적인 장면은 세계 최강이라고 떠들어대는 아메리카제국이 사회주의조선과의 대결에서 완패를 당하고 무릎을 꿇은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갑판에 쪼그리고 앉은 미국 해군 전쟁포로 82명은 살을 도려내는 동해의 겨울바람을 온몸에 맞으며 원산항으로 끌려갔다. 푸에블로호가 원산항에 입항한 시각은 당일 오후 7시경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두 손이 꽁꽁 묶인 그들은 바지를 입은 채 오줌을 싸는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강이라고 떠들어대는 미국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 푸에블로호 미군 수병들이 나포되어 북에 끌려가는 모습과 영해를 침범하여 간첩행위를 했음을 인정한 미군들의 자필 진술서.    

 

4. 나무막대기보다 못한 미국의 핵우산

 

조선인민군이 오후 12시 15분경에 개시한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는 오후 3시 45분경에 조선인민군의 완승으로 결속되었다. 미국 해군 함선이 총 한 방 쏴보지 못한 채 적국 해군에 나포된 사건은 미국 건국 이래 전무후무한, 가장 충격적인 치욕 사건이었다. 조선인민군이 미국 해군 간첩선을 나포해 원산항으로 끌어갔다는 엄청난 소식은 전파를 타고 널리 퍼졌다. 조선에서 승리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워싱턴은 경악과 충격으로 발칵 뒤집혔다. 전 세계 진보적 인민들은 “인류 공동의 적인 미제의 면상을 보기 좋게 후려친” 조선의 강용한 모습을 찬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과 관련하여 워싱턴에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것은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어 원산항으로 끌려가는 위급한 정황에서 미국 해군 제7함대는 긴급구조요청을 받았는데도 왜 아무런 대응 작전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 의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조선인민군 해군에 나포되어 원산항으로 끌려가던 바로 그 시각,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32,000t급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USS Enterprise)가 원산에서 남쪽으로 약 800km 떨어진 해상에 있었고, 그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F-4 전폭기 2대가 항공모함 주변 공역에서 초계비행을 하고 있었고, F-4 전폭기 4대가 항공모함 비행 갑판 위에서 무장을 갖추고 즉시 출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초계비행 중이던 F-4 전폭기 편대가 원산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가면, 30분 만에 사건 현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위급한 정황에 빠진 푸에블로호가 긴급구조요청을 무선통신으로 보낸 시각은 당일 오후 12시 30분경이었고, 조선인민군 해군에 나포된 시각은 당일 오후 3시 15분경이었다. 그러므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에서 긴급발진한 F-4 전폭기 편대가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약 2시간 45분이었다. 그러나 30분 만에 사건 현장에 도달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면서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는 푸에블로호 구출작전을 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사실상 포기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왜 푸에블로호 구출작전을 포기한 것일까?

 

미국의 해군사 연구가 케네디 힉크먼(Kennedy Hickman)은 ‘냉전: 푸에블로호 사건(Cold War: USS Pueblo Incident)'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의문을 풀어줄 단서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케네디 힉크먼의 논문에 의하면, 당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에 함재기로 배치된 F-4 전폭기들은 공대공미사일만 장착했고, 공대함미사일은 장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F-4 전폭기들에 장착된 공대공미사일을 공대함미사일로 바꿔 달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서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군사력사 연구가 세바스티엔 로빈(Sebastien Robin)은 ‘북조선의 위기: 1968년에 평양은 미국인 82명을 생포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공격하지 않았다(North Korea Crisis: Back in 1968, Pyongyang Captured 82 Americans (But Washington Did Not Attack)"는 제목의 논문에서 의문을 풀어줄 단서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세바스티엔 로빈의 논문에 의하면, 사건 당일 푸에블로호가 보내온 다급한 구조요청을 받은 미국 해군 제7함대는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긴급히 연락하여 미국 공군에 구출 작전을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미국 공군은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F-105 전폭기 12대를 긴급출격시켰으나, 그들은 원산 앞바다를 향해 비행하다가 한(조선)반도 남측 상공에서 기수를 돌려 가데나 공군기지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서술내용들은 이치에 닿지 않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당시 오산 미공군지지과 군산 미공군기지에 F-4 전폭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전폭기들을 긴급출격시켰다면,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얼마든지 전개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은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포기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적국에 나포된 해군 함선을 구출하는 작전을 포기하는 엄청난 정치적 결정을 내릴 권한은 최고 권력기관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만 행사할 수 있다. 1968년 1월 24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은 푸에블로호 구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백안관 국가안보회의를 긴급히 소집했는데, 그 회의에서 푸에블로호 구출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이 분명하다. 포기 결정에 관한 백악관의 비밀문서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날 백악관의 포기 결정에 참가한 당시 국무부 장관 딘 러스크(David Dean Rusk, 1909~1994)의 발언을 들어보면 전후 맥락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1968년 1월 24일 푸에블로호 구출 문제를 논의, 결정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했던 딘 러스크는 1월 26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비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했다. 극도로 민감한 푸에블로호 구출문제를 다루는 비공개 청문회였으므로, 회의록은 당연히 비밀문서로 분류되었다. 회의록은 42년이 지난 2010년 7월 14일에 기밀 해제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회의록에 의하면, 당시 비공개 청문회에 출석한 국무부 장관 딘 러스크는 푸에블로호 구출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조선에 군사 보복을 감행하는 경우, 조선이 대미전쟁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의록에 의하면, 비공개 청문회에 참석한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 셔먼 쿠퍼(John Sherman Cooper, 1901~1991)는 미국이 윁남전쟁을 하고 있는 판에 조선전쟁도 일어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므로 푸에블로호 구출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의록에 의하면, 그 자리에 참석한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 칼 문트(Karl E. Mundt, 1900~1974)도 미국은 윁남전쟁이 끝날 때까지 또 다른 전쟁을 벌이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1968년 당시 미국은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능력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은 자기들이 중시하는 최신형 신호 정보수집 간첩선 푸에블로호 구출 작전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료에 의하면, 1968년 당시 주한미군기지의 핵무기 저장고에는 전술핵무기가 무려 950발이나 비축되어 있었고, 그것을 탑재할 F-4 전폭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1968년 당시 조선은 핵무기를 한 발도 갖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잔뜩 쌓아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전술핵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정치적 결정 능력과 군사적 작전 능력을 갖지 못했으면, 전술핵무기는 수류탄보다도 못한 것이다. 

 

55년 전 조선인민군의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 승리는 미국의 핵우산이 굉장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지금 조선은 전략핵무력과 전술핵무력을 완비한 핵강국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변화된 정세에서 미국의 핵우산은 말이 핵우산이지 나무막대기만도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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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인근 음력 설 행사서 총격사건··· 최소 10명 사망

김태훈 기자
 

미국 로스엔젤레스 인근 몬트레이 파크에서 21일(현지시간) 벌어진 총격사건으로 현지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로스엔젤레스 인근 몬트레이 파크에서 21일(현지시간) 벌어진 총격사건으로 현지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 도시에서 음력 설 행사 직후 최소 10명이 숨지는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AP통신, LA타임스 등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오후 10시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몬터레이 파크 시내 가비 애비뉴에 있는 한 댄스클럽에서 한 남성이 반자동 총기를 난사했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이날 사건으로 최소 10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으며 “용의자가 현장에서 달아나 처리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밝혔다. 부상자들은 가까운 의료시설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까지 용의자가 검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신원도 발표되지 않았다.

몬터레이 파크는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약 16㎞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약 6만명의 도시로, 아시아계 주민이 약 65%에 달해 인구비중이 높은 곳이다. 이날은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열린 2일간의 음력 설 축제 기간 중 첫 날이어서 사건 발생 직전 근처의 축제 현장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모였다.

미국에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급증한 바 있다. 때문에 중국,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계 인구가 밀집한 이 지역에서 열린 음력 설 축제 기간에 맞춰 또다시 혐오범죄 성격을 띤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지 경찰은 아직까지 용의자의 신원과 행방, 범행동기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사건 현장인 댄스 클럽에 친구와 함께 있었다는 주민 웡웨이는 그가 화장실에 있을 때 총격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실에서 나온 뒤 총격을 가하는 용의자 주변에 시신 3구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바깥으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가 본 시신 중에는 해당 댄스클럽의 주인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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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 사건이 발생한 길 건너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씨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명이 자신의 영업장에 뛰어들어와 ‘문을 잠그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총격을 피해 최씨의 식당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또한 최씨에게 “범인이 여러 발의 탄약을 소지하고 재장전이 가능한 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가비 애비뉴 주변에 출동한 경찰관과 구조대원들이 피해자들을 이송하는 영상과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을 총기난사로 규정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수사결과를 계속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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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송출중단에 통일TV “외부 압력받은 것 아니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1/23 08:45
  • 수정일
    2023/01/23 08: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KT “북한 이념 체제 우월성 선전해 계약해지 통보”…여권에서도 통일TV에 부정적

통일TV “KT 시대착오적 태도, 제재 납득할 수 있어야” 행정소송 검토

KT가 지난 18일 통일TV의 송출을 중단해 논란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 국가정보원이 간첩 수사 상황을 보수매체를 통해 흘리며 공안정국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경찰도 건설노조 등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서는 분위기에서 북의 상황을 알리는 방송의 송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통일TV 측은 “북 관련 정보만 통제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비정상적 상황이 분명하다”며 이번 결정에 대해 “외부적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겨레 기자 출신인 진천규 통일TV 대표의 지난해 11월 국회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통일TV는 지난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방송채널사용사업 등록증을 받고 지난해 8월17일부터 IPTV 채널 올레tv(현 지니TV)에서 24시간 방송을 송출했다. 진 대표가 2017년 10월 개인 자격으로 방북 취재를 시작해 18차례 방북 취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측의 저작권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저작권사무국과 10개월 동안 평양에서 협의해 2018년 8월 통일TV와 협력하겠다는 북측 공식문건을 발급받았다.

 

이후 진 대표는 2019년 1월과 7월 과기부에 북한 관련 콘텐츠를 24시간 전문편성하는 통일TV 등록을 2회 신청했지만 과기부는 방송법 제6조 ‘방송의 공익성을 심히 저해할 우려’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진 대표는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등록 요건을 모두 갖췄음에도 추상적인 방송법 조항을 과도하게 적용해 발생하지도 않은 과도한 우려를 이유로 PP등록을 불허한 것이 위법·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외교부, 국정원, 통일부 등 여러 부처에서 통일TV 등록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고 특히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통일TV 준비위원회 상임고문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종찬 전 국정원장, 권영길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행정심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일TV는 지난 2020년 11월 세 번째로 과기부에 등록신청서를 접수했고 지난 2021년 5월 등록증을 받았다. 진 대표는 “지난해 10월7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북한방송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며 권 장관이 이러한 내용을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한 사실을 함께 거론했다.

 

이런 가운데 KT가 “IPTV 채널 평가 과정에서 통일TV(채널번호 262)가 김정은 찬양, 북한 이념·체제의 우월성 선전 등에 관한 내용을 지속 방송해왔음을 확인했다”며 “이는 당사와 채널 공급 계약서상 법적·국가적·사회적 공익을 중대하게 저해하는 행위로 방송사업자로서 공적 책임 수행과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해 18일자로 통일TV와 계약해지·송출을 긴급히 중단한다”고 밝힌 것이다.

 

지니TV는 이후 262번 채널을 통해 “지니TV에서 제공 중인 통일TV는 방송 프로그램 내용상 문제 등으로 인해 고객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방송 프로그램 제공이 중단됐음을 안내한다”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다. 이어 “관계 법령을 준수하고 방송사업자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고객님께 더 좋은 방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고 KT 홈페이지에도 같은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

▲ 지난 19일 SBS 보도화면 갈무리

 

SBS 19일자 보도를 보면 조선중앙TV 영상을 소개하면서 방송 진행자가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한 지 10년, 가장 앞세운 화두는 인민대중 제일주의였다”라거나 “자력갱생의 의지에서 비롯된 ‘주체철’의 탄생, 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도 눈여겨봐야 할 역사인 것 같다” 등의 발언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TV 승인 과정에 대해 “어떻게 정상 채널로 편성되어 반영되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통일TV 채널 (사업자) 등록을 허락한 것에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 따져봐야 되겠다고 보고 있다”고 한 발언도 함께 리포트에 담았다.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통일TV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것이다.

▲ 진천규 통일TV 대표(오른쪽). 통일TV 홈페이지 첫 화면 갈무리

 

이에 통일TV 측은 20일 “KT는 그 어떤 주의나 경고 단 한 번 없이 방송송출 폐쇄조치를 단행했다”며 “그야말로 30년 케이블 방송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거를 자행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통일TV는 “(프로그램) ‘북녘의 하루’는 북의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방송한 내용을 정리 분석해 편견과 선입견 없이 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시청자 여러분께 알리는 프로그램”이라며 “우리로 치면 KBS인데 최근 북 방송의 가장 큰 변화로는 다양한 생활정보 및 여러 형태의 공익광고, 뮤직비디오 형식의 음악방송도 등장하고 코믹 드라마도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북 사회의 기본 언론관으로 북은 혁명운동의 선전선동 도구로 언론의 사명을 규정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체제우월성 선전과 지도자의 연설 혹은 현지지도에 대한 찬양으로 채워져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중앙TV를 전하는 것에 대한 특수성을 설명한 대목이다.

 

통일TV는 “제작팀이 늘 염두에 두는 것은 북의 방송 자체가 찬양과 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바 아무리 공들여 편집을 해도 북의 생생한 방송이 전파를 타는 순간 언제든 민원이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라며 “설립당시부터 늘 염두에 두었던 원칙은 북의 실상을 생생히 전달하되 이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긴다는 것”이라고 했다.

 

“함부로 비난의 칼날을 대지 않고 그렇다고 미화해서도 안 되는” 이유에 대해 통일TV는 “아직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조건도 감안해 통일TV 제작팀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에 기여하는 보람으로 성실하게 방송해 왔고 북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으려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KT 측에 “도대체 어느 부분이 어떤 법률을 위반했는지, 무엇이 공익을 해쳤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무조건 체제선전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송출중단을 시켰는데 그렇다면 북 방송을 아예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통일TV는 지난해 7월22일 정부가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텔레비죤’ 등 북 언론에 대한 국내 공개 허용을 검토한다고 발표한 것을 거론하면서 “글로벌 시대에 지구촌의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있는 국민들에게 북 관련 정보만 통제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비정상적 상황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KT의 결정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 태도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라며 “어떤 방송국에 대한 제재를 할 때는 그 절차가 투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출석요구, 소명의 기회조차 한번 없이 송출부터 중단한 것은 그 어떤 외부적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고 했다.

 

임직원 생존권 문제도 언급했다. 통일TV는 “방송은 각종 기자재 설비를 갖추는데 수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고 기획, 촬영, 편집 등 다수의 제작종사자를 필요로 한다”며 “임직원 일동은 KT의 일방적 방송 송출 중단조치는 통일TV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국민의 기본적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정으로 규탄하며 하루빨리 다시 송출 정상화시킬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통일TV는 “평와와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변호사들과 연대해 방송송출 중단의 부당성을 알리고 함께 투쟁하겠다”고 했다. 통일TV 측은 이번 중단 조치에 대해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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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세대'가 '산업역군' 기업에 보내는 충고

[현장] 출범 이후 1년 지난 한국의 '그레이 그린' 운동 60+기후행동

이상현 기자  |  기사입력 2023.01.22. 08:32:59 

 

"저희는 산업화와 그 다음에 성장체제를 만들어온 세대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돌아보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장의 엄청난 그늘에 대해서, 그리고 그 그늘 안에서 살아갈 많은 약자들과 청년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어요."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

 

책임에서 비롯된 마음일까. 추운 날씨였지만 초록색 목도리를 두른 60대 나승인 씨는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종이 한 장을 나눠주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역에 위치한 포스코타워 앞이다. 19일 12시 점심시간에 맞춰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들에게 나 씨는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며 종이를 건넸다. 포스코그룹 계열사인 삼척블루파워가 강원도 삼척에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이다. 

 

양복을 입고 사원증을 두른 이들은 슥슥 몸을 피해가며 나 씨의 손을 그대로 지나쳐 갔다. 오히려 초록색 목도리를 두르고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노인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기 바쁘다. 

 

속상할 법도 하지만 나 씨는 "날씨가 추우니까 주머니에서 손을 안 빼는 거지"라며 되려 웃었다. 뽑아온 종이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지만 "두고두고 나눠주면 된다"며 차곡차곡 모아 다시 챙겨갔다. 

 

나 씨는 이날 전라북도 무주에서 올라왔다. 원래 교직에 종사하던 나 씨는 지역 마을교육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다가 퇴직 무렵, 기후위기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를 실감했다. 어느 정도 마을교육 기반을 닦았다고 생각한 그는 노년의 새로운 목표로 '기후운동'을 선택한 채 '60+기후행동'에 가입했다.

 

 

 

 

 

 

기후위기 대응하는 할아버지·할머니...탑골공원에서 포스코타워로 오기까지

작년 1월19일, 탑골공원에서 모인 실버세대가 "기후위기 대응 노인이 함께 하겠습니다" 외친 일은 한국의 그레이 그린(Grey Green) 운동의 상징이 됐다.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구성된 60+ 기후행동은 '노인 보호구역'이라고 불리는 탑골공원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겨내는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 노인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 이후 1년 뒤인 2023년 1월19일, 여전히 지구가 불타고 있는 시급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119' 역할을 하겠다는 노인들이 119(1월19일)에 다시 모였다. 이번엔 포스코타워 앞이다. 본인들이 경험했고, 만들어온 '산업문명'의 두 얼굴을 다시 한 번 직시하겠다는 위치 선정이었다. 

 

초록색 목도리와 모자를 쓴 60+기후행동 회원 20여명은 철강 산업으로 산업화를 함께 이끌어온 포스코에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라고 외쳤다. 산업화 세대가 '산업역군' 기업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충고였다. 

 

"우리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이끌고 친환경·저탄소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포스코의 노력을 알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는 온실가스 위에 쌓아올린 성이며, 지금도 그 성을 높여가고 있다. 

 

포스코의 탄소 중립 노력을 수포로 돌려 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삼척 석탄 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하고 대신 진정한 시민기업으로서 지구와 미래, 그리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탄소중립의 실현에 앞장서 주길 요청한다."

 

산업화 세대로서 충고를 보낸 회원들은 느린 걸음으로 피켓을 들고 건물 앞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60+기후행동만의 특별한 움직임인 '어슬렁 시위'다. 각을 맞춰 행진하고, 구호를 외치는 보통의 행진과 달리 이들은 손수 적어온 피켓을 들고 건물 앞을 그냥 돌아다닌다. 

 

삼삼오오 짝을 맞춰 돌아다니는 이들은 별다른 구호를 외치지도 않고 그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어슬렁 어슬렁 건물 주변을 돌아다닌다. 가끔씩 신명나는 소리의 꽹가리를 치기도 하지만, 배회하는 걸음은 차분했다.

 

▲2022년 1월19일 탑골공원에서 발대식을 가진 60+기후행동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23년 1월19일, 서울강남구 포스코타워 앞에 섰다. ⓒ녹색연합

 

노인들이 만들어가는 누구보다 젊은 기후운동 

 

"어떻게 보면 제일 '꼰대'스러운 집단인데 그 반대로 운동 방식이 제일 젊고 재밌다고 하시더라구요."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가 어슬렁 돌아다니며 말했다. 윤 대표는 "Only one earth(하나뿐인 지구) 너희도 지구도 행복한 세상을!"이라고 파란색,초록색으로 적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젊은 기후운동'이라 말하는 건 본인의 평가가 아니라 주변의 평가라고, 연말과 새해에 소위 말하는 '386' 운동권 출신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그렇게 연락이 왔다고 덧붙였다. 한 활동가는 "2022년 가장 '핫'한 시민운동"으로 60+기후행동을 꼽았다고도 말했다. 

 

윤 대표는 60+기후행동이 얼마나 재밌게 활동하는지, 얼마나 '핫'한지에 대해 웃으며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60+기후행동 회원들로 구성된 밴드 '방탄노년단'이다. 

 

단체 창설 이후 전체 모임을 기획했더니 120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처음 회원들을 만나는 자리니까 재밌는걸도 해보자라는 생각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회원들이 밴드를 꾸렸다. '광야에서' 등 3곡을 부르며 밴드는 '대박'이 났고, 회원이었던 한 시인이은 '방탄노년단'(BTN)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윤 대표는 회원들과의 만남을 설명하며 "너무 재밌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Only one earth(하나뿐인 지구) 너희도 지구도 행복한 세상을!"이라고 파란색,초록색으로 적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프레시안(이상현)

 

누구보다 젋게 활동하는 60+기후행동을 이끄는 대표 중 한 명이 윤정숙 공동대표다. 현재도 녹색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한국에는 없던 새로운 운동방식"이라고 지난 1년 간의 60+기후행동을 평가했다.

 

지금까지는 없던 노년들의 젊은 기후행동에 60세 이상의 그레이 세대가 반응했다. 활동을 기획했을 때부터 "하루에도 수 십명씩" 가입 문의가 쏟아졌다. 현재는 200명이 넘는 회원이 함께한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2주마다 '줌'(화상회의)을 통해 만났고, 올해에는 지역 지부 설립도 앞두고 있다. 

 

회원들은 1년 동안 '기후현장'을 바쁘게 돌아다니기도 했다. "산호초가 죽어가는 제주 해변, 구상나무가 쓰러져 가는 지리산 정상, 석탄발전소가 들어서는 삼척 해변 등지"에서 60+기후행동 회원들은 어슬렁거렸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불러주셨어요. 안 간 곳이 없어요. 부산도 가고, 충남도 가고 그랬죠. 그리고 청년들이 그렇게 많이 불러줘요. 저번에는 청년기후기후긴급행동과 두산중공업의 재판 현장에도 회원들과 찾아가기도 했죠. 피켓에 뭐라고 적을까 생각하다가 '너희들이 옳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렇게 적어서 찾아갔죠." 

 

윤 대표는 청년들과의 연결점을 강조했다. "기후위기는 미래세대의 일"만은 아니라며 기후위기 앞에서 '세대갈등'은 없다는 게 60+기후행동의 목표이자 지향점이다. 10대~50대로 구성된 자문위원을 두고 활동을 공유하고, 조언을 받기도 한다. 노년층만의 운동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문제'인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늘 세상에서 세대갈등이 어쩌고, 제로섬(Zero-sum) 게임처럼 말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잖아요.  이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 (노년과 청년이) 손잡을 수 있고, 손 잡자고 우리가 얘기를 하고 있어요. 기후위기에서 세대 갈등만 얘기하지 말고 세대 연결, 연대, 협력 이런 거 만들고 싶어요." 

 

▲2021년 60+ 기후행동 출범선언에 참여한 오지혁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다른 세대와의 연결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환경정의

 

기후운동의 '뒷배'이자 노인들과의 동행 

 

60+기후행동 회원들은 함께 어떻게 청년들의 '뒷배' 역할을 해주면서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작년 회의에서 '전체 재산의 10%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상속하자'라는 논의가 나온 이후 올해는 '청년 기후활동가 기본소득'도 구상 중이다. 모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나온 아이디어들이다.

 

"기후운동을 하다보니까 기본적인 생활의 안정이라는 게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것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 때와는 다르게 지금 세대는 학생운동하고 감옥갔다 오고 그런 세대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활동가들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기후운동을 하는데 다시 생계 문제에 봉착해서 다니고 싶지 않은 회사로 돌아가야 하고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세대 운동권 친구 중에 돈 많이 번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자'라고 생각했어요. 이 일은 개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면서 사회 전체를 위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유형·무형의 상속을 앞으로 계속해나갈 겁니다." 

 

은퇴하는 동년배들을 위한 교육도 기획 중이다. "성인이 된 이래 30~40년간 자신을 지탱해온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할 수 있는 교육이다. 이른바 60+인생전환 아카데미다.

 

윤 대표는 이 교육을 통해 “다른 세대랑 어떠게 손잡을 것인가, 사회적 불평등이나 자기 삶의 방식을 어떻게 전환해볼까” 고민할 수 있는 ‘신바람’ 나는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이상현)

 

"우리 세대가 다급함, 책임감, 연대감 가져야죠" 

 

인자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동과 회의를 계속해나가는 60+기후행동이지만 현재 상황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점은 회원들이 공유하는 의식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이유도 "열정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돌아가는 걸 보니 마음이 너무 급하다"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 에너지 계획보니까 너무 좌절스럽더라고요. 재생에너지 줄이고, 석탄 유지하고, 원전 올리고 이런 거는 너무 좌절스럽더라고요. 그런 거에 대한 다급함을 느껴요. 세계적으로는 청년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막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 것에 비해 지금 우리 기존 세대, 시니어 세대들은 그것에 대한 다급함, 책임감, 연대감 이런게 너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뭐라도 하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거죠." 

 

뭐라도 해야겠는 60+기후행동은 올해도 다급하게, 그러나 재미있는 활동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적게는 5000원부터 연금을 많이 받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이, 회비를 내면서 시인,언론인,교수,활동가,예술인 출신의 노인들이 기후운동을 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민주화 시대를 돌파해오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던 저력이 있어요. 올해도 본격적으로 뭔가를 해봐야죠."

이상현

사라지는 것과 잊혀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과 기후변화를 공부했다. 들리지 않았던 말까지, 끝까지 듣는 기자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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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의 직격] 못 살겠다, 갈아보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에 반발하며 퇴장하고 있다. 2022.12.11. ⓒ뉴스1

 
설 연휴를 맞는 마음이 편치 않은 시민이 많을 것같다. 고금리, 고물가, 난방비 폭등, 일자리 불안, 쌀값 하락, 남북관계 악화 등등.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생활비는 늘어나는데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와중에도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서 말로 사고를 치고,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국회의원들은 사탕발림같은 문자나 보내고 현수막이나 걸고 있다. ‘정치의 부재’ 또는 ‘정치의 실종’ 상황이다.

이런 상황인데 명절에 가족들과 친인척들이 모이면 정치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평소에는 관계가 좋다가도, 정치 얘기만 나오면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 얘기의 주제가 어느 정당이 어떤 문제를 해결했고, 다른 정당은 또 다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긍정적인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는 어떤 잘못을 했고, 어느 당은 이래서 안 되고’ 하는 부정적인 얘기가 명절 밥상 위를 뒤덮고 있다.

무능, 독선, 부패의 원인인 승자독식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 각자가 지지하는 정당을 가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정당도 존재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좀더 나아가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표도 공정하게 인정되어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정당의 표도 공정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권력도 득표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 그게 공정한 시스템이다.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한 시민이 투표를 하고 있다. 2022.06.01 ⓒ민중의소리

지금의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만 키우는 역할을 하는 배경에는 승자독식의 정치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만약 51%의 지지를 받으면 51%에 해당하는 권력만 가지는 시스템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소수파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불만이 적을 것이다. 소수파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들도 그만큼의 권력을 나눠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51% 또는 그 이하의 지지를 받았는데, 100%의 권력을 가지게 되는 시스템이 있다. 그러면 당연히 불만이 생긴다. 소수파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않는 것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100% 권력을 가지게 된 쪽에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권력에 취해 독선을 저지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 권력을 가진 쪽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상당수도 실망해서 돌아서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딱 그렇다. 50%도 안 되는 득표율로 집권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마음대로 대통령실을 이전하는가 하면, 민생 대신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심지어 여당 대표 선거까지 개입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것은 여당인 ‘국민의 힘’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통령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의 대부분도 1표라도 더 많이 받는 쪽이 당선되는 시스템이다. 2등, 3등 후보를 찍은 표는 사표가 된다. 그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생각과 마음은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선거에서 진 쪽도 더 잘해서 다음번 선거에서 이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권력을 쥔 쪽이 잘못하는 것만 비판ㆍ비난하려고 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정책으로 경쟁할 이유가 없다. 정책을 연구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무능ㆍ독선ㆍ부패를 지적하면서 심판하자고 하는 편이 훨씬 쉽다.

비수도권 지역의 어려움도 승자독식 때문

이것은 국가 단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도 일어난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승자독식의 구조에 지역주의까지 작용하면서, 한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수십 년 이상 집권하는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이렇게 되면 지역에서 100% 권력을 가진 쪽은 나태하고 게으르기 쉽다. 어차피 자신들이 선거에서 이길 것이고,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까지 장악하고 있다.

정치세력 간의 ‘의미있는 경쟁’이 없다 보니, 정책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지배정당의 공천을 누가 받느냐만이 중요하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낙하산 공천, 줄서기 공천이 등장한다. 그래서 지역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선출직들이 권력을 잡는다.

이런 지역일당 지배체제가 흔히 ‘지방소멸’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낳았다. 지역정치에서 경쟁이 상실되다 보니, 천편일률적이고 구태의연한 사업들만 펼쳐진다. 예산은 낭비되고 대안은 논의되지 않는다. 지역에서는 사람이 빠져나가고 지역 자체가 침체하고 정체되어도, 선출직들은 오로지 차기 선거에서 ‘한번 더 해 먹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이다.

중앙에서 예산이나 개발사업을 따 온다고 해도, 생색내기에 그치거나 근시안적인 대책에 불과하다. 지역에 사람이 모이고 지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니,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특정정당이 지역을 일당 지배하고 있지만, 100% 유권자들이 이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은 아니다. 대구ㆍ경북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표가 20-30% 정도 있고, 호남에도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표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표가 상당수 있다. 그러나 그 표들은 대부분 사표가 되니,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

이처럼 ‘의미있는 경쟁’이 사라진 지역정치는 비수도권 지역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1950년대 선거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등장했었다. 그 당시의 구호는 도저히 못 살겠으니 정권을 바꿔보자는 구호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사람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는 희망을 주지 못해 왔다.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국회 사무처에서 21대 국회의원 뱃지를 공개하고 있다. 2020.04.13 ⓒ민중의소리
지금의 집권세력이 너무나 싫어서 ‘일단 바꿔보자’는 얘기에 공감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집권세력을 바꾼다고 해서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가 해결될까?’ 라는 질문에 과연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사람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지금 가장 먼저 갈아치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승자독식과 지역일당 지배체제를 낳은 선거제도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표심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 또한 지역에서의 일당 지배체제를 타파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 그 방안으로 거론되는 여러 제도들이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접점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대통령도 최소한 결선투표제로 뽑아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강화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시민혁명은 이런 시스템의 개혁으로 이어져 왔다. 4.19. 혁명은 헌법개정으로 이어졌고, 1987년 6월 민주항쟁도 헌법개정으로 이어졌다. 나중에 군사쿠데타로 퇴보를 했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계를 맞았든, 그래도 당시에는 제도 개혁의 성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16년-2017년의 촛불은 제도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것이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최대 실책이다. 충분히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의 윤석열 정권을 낳은 원인이기도 하다.

만약 탄핵에 참여했던 ‘탄핵연합’을 선거제도 개혁과 헌법개정의 ‘정치시스템 개혁연합’으로 이어갔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상황을 맞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선거제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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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지만 도전하는 거죠,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와 시니어 배우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한국사회는 오는 6월이면 전 국민이 1년에서 2년까지 나이가 어려진다. 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이른바 ‘만 나이’로 바뀌며 발생하는 전 국민의 연소화다. ‘외국과 계산법이 달라 불편하다’는 표면상 이유와 별개로 한국인의 나이는 사회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대상이다. 특히 나이를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진 노인세대의 등장은 과거의 ‘상식’을 현재의 ‘편견’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 ‘노인세대’의 변화를 이끄는 이들은 과거 한국사회의 문화, 가치, 소비 등의 변화를 이끌었던 베이비붐 세대와 이른바 X세대다. 한국 인구 구조상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흔히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이중 맏이인 1955년생 77만명은 이미 2020년 65세로 법정 노인인구 대열에 합류했다. 막내인 1963년생 역시 올해 60대에 진입한다. 이들에 뒤이어 X세대가 노인세대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중위연령인 44.3세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다. 연령대에 대한 정의에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4050세대가 X세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세대 스스로 본인이 ‘노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2년에 한 번씩 국민노후보장패널 조사를 발표한다. 지난해 12월 제9차(2021년도) 본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조사기간은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였고, 조사대상은 4024가구다. 개인 기준으로 따지면 6329명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노후생활에 대한 조사다. 이때 노후시작 연령은 ‘노인이 됐다고 생각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응답자들은 평균 69.4세를 노후시작 연령으로 인식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50대 미만은 67.9세를 노후시작 연령으로 삼은 반면, 50대는 68.8세, 60대는 69.1세, 70대는 70.1세 등으로 점차 노후시작 연령을 높게 잡았다. 쉽게 말해, 한국사회의 베이비붐 세대, X세대 등은 앞으로 최소 10여년은 자신을 노인으로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60대지만 도전하는 거죠,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법적 정의와 사회적 인식 사이에서 발생한 괴리는 ‘젊은 노인(YOLD·욜드)’이라는 모순적 단어를 만들었다. 이를 굳이 ‘뉴 그레이’, ‘액티브 시니어’ 같은 영어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노인을 두고 완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건 아니지만 기업들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그레이 이즈 더 뉴 핑크(Grey is The New Pink)’라는 표제 아래 다양한 시도를 쏟아내고 있다. 나잇대별로 공략 가능하던 목표 상품(for aged)들이 이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상품(ageless)로 대체되고 있다. 2040세대가 즐겨찾는 스타벅스, 애플, 테슬라 등의 상품을 5060세대 역시 똑같이 선호하는 현상이 시장에선 이미 나타나고 있다.

패션업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엄마와 딸이 옷장을 공유하는 콘셉트의 화보가 등장한다. 대중이 쉽게 찾는 스파(SPA) 브랜드의 경우 애초에 나이 구분 없이 의류를 판매한다. 취미·여가 활동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유튜브에 ‘중년 부부 캠핑’만 검색해봐도 5060세대가 떠난 캠핑 동영상이 쏟아진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기던 활동적인 취미 분야에까지 젊은 노인들이 큰 손으로 등장했다.

 
 
 

좋은 잠을 꺼내먹어요

무엇보다 큰 변화는 일시적 취미생활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인생 2막을 여는 경우다. 이는 평생 매달렸던 직업과 ‘결별’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나이’로 인한 신체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대중문화, 예술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른바 ‘시니어 배우, 모델’의 등장이다. 주간경향은 단순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변화를 보기 위해 시니어 배우 지망생들을 찾아나섰다. 60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꿈을 찾은 ‘어르신’들의 찐한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곧 설 연휴다. 부모님을 만나뵙고 그들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한번 여쭤봐도 의미 있는 일이 될 듯하다.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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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훤칠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녀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공간에 속속 모여들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아니면 생김새만으론 나잇대를 짐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동그랗게 배치된 의자에 앉아 파란 표지의 책에 각자 열중해 있는 이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누군가 공부하는 중년의 모습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딱 그 모습이었다.

오후 2시가 되자, 손에 든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이들이 고개를 든다. “연습 시작하죠”라는 소리에 맞춰 다소 느슨해져 있던 분위기가 이내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모두 12명이 정확한 순서에 맞춰 미리 준비한 말들을 딱딱 내뱉었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TV 드라마나 연극을 보는 듯했다. 사실 이들이 맞춰보고 있는 것은 실제 연극의 한 부분이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를 제외하면 이 공간에 모인 사람 모두 평생 배우활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살아왔다는 점이다.

연극의 남자주인공 역할을 맡은 로렌조박(활동명)은 올해로 예순다섯 살이 됐다. 평생 패션·광고대행사에서 일했다. 2021년 연기를 시작했다. ‘왜 60이 넘어 연기를 시작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실상 마흔다섯 살 정도면 정년인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늘 불안했다”며 “평생을 남을 뒷받침하는 역할만 해왔는데 한 번쯤은 ‘내가 주인공이 돼서 해보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 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그러면서 “나이를 이유로 망설이며 하고 싶은 일을 참고 살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의 남자주인공을 맡은 시니어 배우 로렌조박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의 남자주인공을 맡은 시니어 배우 로렌조박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시대가 변했다. 이미 외모만으로는 한 사람의 나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해진’ 사회적 상황 역시 나이에서의 해방을 재촉한다. 특히 고도경제 성장 시대를 이끌고 향유한 베이비붐 세대와 개인주의, 합리성, 창의력을 무기로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과 혁신을 선도해온 X세대가 어느덧 각각 노인과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젊다. 애플워치를 손목에 차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즐겨 마신다. ‘뉴 그레이’의 물결이다. 이들의 등장은 “과연 늙음과 젊음의 물리적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김 대표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동시에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동년배’들을 재촉하는 인물이다. 최근 열중하고 있는 작업은 시니어 배우들을 발굴하고 자신이 만든 무대에 데뷔시키는 일이다. 열아홉 살에 연극배우로 데뷔해 한복 모델, 뮤지컬 배우, 극작가, 작사가, 연출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본인 스스로 “해보고 싶은 일들을 다 해봤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의 열정은 각종 제약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저 60대예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시니어 배우들이 좀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김 감독과 얘기를 나눠봤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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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에 출연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어떤 연습을 하고 있나.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를 준비 중이다. 정식 무대에 서기 전 출연진들과 함께 대사를 맞춰보고 있다. 배우들은 모두 ‘케이 드림웍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니어 배우들이다. 대본 역시 이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썼다. 연극계 최고 스타로 50년을 군림한 주인공이 치매에 걸리며 생기는 일들을 다룬 감성 코믹극이다. 치매환자를 보살피는 당사자인 아들, 딸, 며느리 등이 겪는 속내를 보여주고자 했다. 시니어들은 한 번쯤 겪어봤거나,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보니 연습 중에 눈물을 흘리는 배우도 있었다.”

-시니어 배우라는 용어가 낯설다.

“12~13년 전쯤 한국에 ‘시니어 모델’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정규 프로그램이 있어서 등장한 개념은 아니고, 평소에 ‘잘 생겼다. 예쁘다. 모델해도 되겠다’라는 이야기를 듣던 중·장년층 중 ‘실제 무대에 설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생긴 변화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몇몇 에이전시에서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실제 데뷔를 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이로 인해 시니어 모델에 대한 꿈과 열망, 호기심이 폭발했다. 이들의 활동 영역이 모델에서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물리적 나이로 구분할 수도 있나.

“내가 1963년생으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다. ‘할머니, 할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나와 같은 세대가 시니어 세대로 진입했다. 우리 연극의 경우는 60대 이상이 주축이다. 가장 어린 며느리 역할을 40대가 맡고 있다. 대부분 처음 연극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다. 집에서 손주를 보거나 1년에 한두 번 친구들과 모여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전부였던 시니어 세대의 일상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새로운 분야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성취감도 느끼고 싶어하는 기존과는 다른 욕구를 가진 이들이 등장했다. 대부분 물질적·시간적 여유가 있고, 건강한 이들이다. 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름 화려한 직업적 경력을 갖추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배우, 모델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보면 취미로 시작하는 분들과 실제 프로 배우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로 나뉜다. 취미로 시작하시는 분들은 ‘나는 여기까지만 즐길 거야’라는 선이 있다. 아마추어 동호회나 문화센터 등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으로서 이용한다. 반면 프로가 되려는 분들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이들은 대부분 젊었을 때 모델일을 한 경험이 있거나, 아역배우 출신이다. 인플루언서나 개인 라이브 방송 등으로 진출을 꿈꾸는 분들이 있고, 전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손잡고 연예계 데뷔 과정을 밟는 분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돌고 돌아 자기 인생의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피워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맥락은 같다.”

-직업으로서 시니어 배우, 모델이라면 뚜렷한 이미지가 다가오지는 않는데.

“시니어를 언어적 개념으로 보면, 직업이나 전문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또 육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시니어라고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분들도 시니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정의에 맞춰 그럼 ‘시니어 배우’는 누구일까 생각해봤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추어 단역배우’, ‘취미로 모델, 배우 활동을 하는 사람들’ 정도로만 구분돼 있다. 모델료를 주지 않고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심지어 돈을 내고 무대에 서야 하는 사람들 정도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노인이 직업배우로 데뷔를 하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다.

“맞다. 생계형으로 도전하는 분들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젊었을 적 꿈을 늦게라도 실현해보고 싶은 이들이거나 기존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 도전하는 분들이 많다. 어떤 목표로 시작을 했든 시니어 배우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직업적 관점에서 놓고 보면, 실리냐 명분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얘기다. 실리를 택한다면 이들을 프로 배우로서 출연료를 받아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끔 성장시켜야 한다. 반대로 명분에 중점을 둔다면 이들의 활동이 세상을 좀더 이롭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최선은 나 혼자 즐기고 재밌는 일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쪽이라고 본다.”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김한나 공연그룹 드림뮤드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준비 중인 자선공연은 기여의 한 형태인가. 이들은 어떻게 모이게 됐나.

“시작은 SNS 등에 공지를 냈다. 이런 자선공연이 있는데 재능기부를 할 시니어 모델, 배우나 동호회 활동을 하는 분들은 찾아와 달라고 했다. 이분들에게 출연료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함께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열고, 이로 인해 수익이 발생한다면 전부 보육원에서 퇴소해 살길이 막막한 청년들을 돕겠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다행히 오랜 연극배우 생활을 한 나를 믿고 많은 시니어 배우 지원자들이 찾아와 주셨고, 오디션을 통해 최종 스무 명 정도를 선발했다. 나 역시 모든 노하우를 총동원해 이분들을 배우로 거듭나게 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연히 교육은 전부 무료다. 시니어 배우들에게는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이로 인해 기부도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중이다.”

-자선공연이 시니어 배우, 사회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배우를 꿈꾸며 돈을 내고 학원은 다닐 수 있겠지만 시니어들이 실제 무대경험을 쌓을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모델로 쇼를 한번 나가려고 해도 모델료를 받기는커녕 참가비를 내야 한다. 그러면 대체 언제까지 돈을 들여 막연한 꿈을 좇을 것이냐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좋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이 경험을 쌓을 무대가 없다면 시니어 배우들은 계속 아마추어로 머물며, 돈을 내고 무대에 서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무대를 제공해 이들이 경험을 쌓게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사회에 기부하는 구조로 바꾸려고 한다.”

-많은 공연 무대가 갑자기 생기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한국 뮤지컬계는 주로 기존 외국작품들을 들여와 별도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비싼 라이선스를 지불하고 들여온 작품에 이름도 모르는 배우들을 쓰겠나. 이른바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에게만 배역이 돌아간다. 이런 일이 장기화되면 신인들의 등용문이 막히게 된다. 시니어 배우들도 예외가 아니다. 극작가로서 작품을 쓰게 된 이유 중에는 이러한 상황도 포함돼 있다.”

-실제로 창작 뮤지컬도 쓰고 있다고 들었다. 같은 이유인가.

“우선, 창작 뮤지컬이라는 용어는 정체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한국형 뮤지컬’로 바꿔 불러야 한다. 수십년을 뮤지컬과 연극을 하다 보니 관객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겼다. 작품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언제 그런 이야기들을 전달할 수 있을지 기약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극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 꿈을 가진 시니어 배우들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더했다.”

-결국 유료공연이 가능해야 이들이 아마추어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시어머니 시집보내기>는 보육원 퇴소 청년들을 돕기 위한 공연이지만 관람은 유료다. 배우들은 재능기부를 하는 것이고, 기본적인 교통비 정도만 지급한다. 이와 별개로 유료 공연인 만큼 관객들이 그만큼 가치 있는 작품을 봤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시니어 배우들 역시 이 부분에서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관객들에게 프로로 대우받으려면 시니어 배우들도 노력해야 한다. 한 해에 예술대학에서 문화계로 배출하는 인원이 엄청나다. 배우는 넘쳐나는데 막상 그들을 소화할 작품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검증 안 된 시니어 배우들을 3만~4만원짜리 유료 공연에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 장벽을 깨부수려면 시니어 배우들 스스로 계속해서 연습해야 한다.”

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 사진/K드림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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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어머니 시집보내기> 사진/K드림웍스 제공

 

-왜 시니어들한테 판을 깔아줘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인가.

“내가 시니어 배우이기 때문이다. 사실 각종 무대에서 활동한 많은 프로가 자신이 시니어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배우라고 나이를 잊고 살 수 있나. 자신의 재능을 나이가 들었다고 감추며 사라지기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지금까지 40여년간 무대에서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앞으로 15~20년 더 활동할 수 있다면 이왕이면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이면 더 좋지 않을까.”

-나이나 정보가 부족해 무대의 꿈을 포기하는 분도 많다. 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일단은 정확한 자기진단이 필요하다. 이 일을 하려면 전문가에게 교육 및 훈련을 받아야 한다.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가족의 동의도 중요하다. 젊은 친구들도 연극, 뮤지컬계로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그들보다 더 뒤늦게 시작하는 만큼 그에 못지않은 각오가 필요하다. 무대에서는 모두가 공평해야 한다. 시니어라고 한 수 접어줄 수는 없다. 나이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시니어로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계까지 가보려고 노력하는 데서 예상치 못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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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목베기', '생체실험' 알린 작가 죽음, 일본 극우의 타살이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너무나 잔인하고 엽기적인 난징 대학살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3.01.21. 12:26:19 최종수정 2023.01.21. 21:52:12

 

이즈음 일제의 징용과 노동 착취에 희생됐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새삼 뜨겁다. 일본 쪽에선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이미 그 문제는 끝났다는 오랜 궤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지난날 저질렀던 전쟁범죄는 '과거사'란 이름으로 21세기 오늘에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다.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는커녕 부정하는 일본 쪽의 고집스런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일본이 부인하는 전쟁범죄 현장 가운데 하나가 중국 난징(南京)이다. 1937년 12월13일부터 6주 동안 난징에서 벌어졌던 대학살은 워낙 끔찍했기에 20세기 전쟁범죄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인구 100만 명이 살던 도시에서 무려 30만 명이란 희생자 규모도 규모려니와, 살해 방식도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칼로 잇달아 목을 베 죽이고, 생매장해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강간한 뒤 죽였다. 

 

야만과 엽기라는 잣대로 보면, 일본군이 난징에서 저질렀던 잔혹행위는 인류 전쟁사에서 그 어느 전쟁보다도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권을 비롯해 일본 각계에 뿌리내린 극우파들이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완전 허구의 소설이다"라며 부인한다는 점이다(그래서 일각에선 이들을 '허구파' 또는 '부정파'라 부른다). 그들은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겐 협박이나 과격행동도 서슴지 않아왔다. 2004년 11월 9일 미 캘리포니아주의 외딴 고속도로 갓길에서 권총 자살한 아이리스 장(Iris Chang)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일본 극우파들의 협박에서 비롯됐다. 

 

누가 아이리스 장을 죽였나 

 

1997년 갓 서른 살의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중국명은 장춘루)은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 The Forgotten Holocaust of World War II)으로 단박에 화제의 인물이 됐었다. 그때껏 영어로 된 난징 대학살과 관련된 대중적인 책은 드물었기에, 특히 전쟁과 같은 어두운 과거사에 딱히 관심이 없던 서구 사회의 젊은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논란이 일자, 극우파들이 은밀하게 나섰다. 전화, 편지, 이메일 등 여러 수단으로 협박을 했다. 그녀의 차 앞 유리창에 쪽지를 두고 가기도 했다.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면서, 남편과 두 살 난 아들을 둔 그녀는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거나 전화 도청을 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인들에게조차 그녀가 어디로 오고가는지 말하지 않았다.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약물로 우울증 치료를 받는 상황에 내몰렸다. 끝내는 새벽에 혼자 차를 몰고 집을 나와 고속도로 갓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식은 자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살이 아닌 타살에 가깝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극우파들이 그녀를 죽였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주미 일본대사에게 '유감' 말고 '사과' 요구
 
<난징의 강간>이 입소문을 타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미국의 언론들도 관심을 쏟게 됐다. PBS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상업광고나 오락성 프로를 하지 않는 공영방송의 성격을 지닌 PBS는 미국과 유럽에서 특히 지식층이 즐겨보는 채널이다. 책이 나온 1년 뒤인 1998년 12월 난징 학살 61주년을 맞이할 즈음 PBS는 저녁 뉴스 시간대에 아이리스 장과 사이토 쿠니히코 주미 일본대사 사이에 짧은 화상 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사이토는 일본의 직업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으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 동안 워싱턴에서 주미 대사를 지냈다. 그 무렵 뉴욕에서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던 필자는 집에서 PBS 뉴스를 듣다가 그 토론을 지켜보게 됐다. 지금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 하나. 사이토는 난징에서의 일본군 만행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진지하게 사과를 하지 않는 교활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아이리스 장이 사이토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 무엇보다 먼저 일본은 기본적인 사실들을 부인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과(apology)와 함께 희생자들에게 배상(reparation)을 해야 하죠. 아울러 (난징 대학살에 관련한 서술을 왜곡 또는 축소하도록 만드는) 일본 교과서 검정을 멈춰야 합니다. 

 

사이토 :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폭력으로 말미암아 불행한 일(unfortunate incidents)이 벌어졌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 그런 말은 전적으로 정확하지 않아요. ‘사과’라는 단어를 들어보질 못했어요. (PBS 방송 진행자를 향해) 당신은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요. (일본 대사가) ‘일본군이 한 짓에 대해 개인적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진심으로 말했다면,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유감’(regret)이니 ‘회한’(remorse)이니 ‘불행하게 일어난’(unfortunately happen) 따위의 용어는 사과가 아니지요. 

 

일어 번역본은 없는데 비판서가 베스트셀러 

 

<난징의 강간>은 출간 뒤 단시일 안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동아시아 3국에서 가장 일찍 번역본을 낸 곳은 중국으로, 1998년 번역본이 나왔다. 한국에는 이 책의 초판 번역본이 1999년과 2006년에 나왔고, 2014년 제목이 조금 바뀌어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난징 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으로 나왔다. 지금은 미국 출판사와의 계약이 끝나 절판 상태로 일반 서점엔 책이 없다. 

 

문제의 일본에선 번역본 출간을 둘러싸고 엄청 시끄러웠다. 극우파들은 반일위서(反日僞書)라며 출간을 막으려 들었다. 협박을 견디다 못한 출판사가 책의 일부 내용을 고치자고 옥신각신하다 계약이 파기됐다. 2007년에야 일어 번역본이 나왔다. 그 10년 사이에 <난징의 강간>을 비판하고 전쟁범죄의 진실을 왜곡하는 책들이 엉뚱하게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괴이한 현상이라고 봐야할까. 

 

▲ 아이리스 장이 죽은 뒤 중국 난징대학살기념관에 세워진 조각상. ⓒx li

 

100인 목베기, 성폭행, 생체실험...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45일 동안 난징 시민들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본군은 포로로 잡은 중국군(당시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군)을 양쯔강변에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집단 학살했다. 일본군 장교들은 군도로 누가 빨리 더 많은 포로의 목을 베느냐며 ‘100인 목 베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길 가던 민간인들도 붙잡혀 생매장 당했다. 한마디로 온갖 잔혹한 전쟁범죄들이 한꺼번에 난징에서 저질러졌다. 

 

아이리스 장이 고발한 일본군의 전쟁범죄상은 너무 끔찍해 글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거나, △배를 가르고 사지를 절단하거나 △여러 명씩 묶은 채 구덩이에 넣은 다음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거나 △수백 명을 연못으로 끌고 가 알몸 상태로 살얼음이 언 연못에 빠뜨려 죽이거나 △허리까지 땅에 파묻고 사나운 개를 풀어 물려 죽도록 했다. 이렇듯 일본군의 만행은 잔인함의 극치를 이루었다. 성폭행도 심각했다. 

 

재미로 목 베기 살인 시합을 벌였던 것처럼 일본군은 재미로 강간과 고문을 일삼았다. 난징의 거리 곳곳에서 다리를 벌린 채 죽어있는 여자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일본군은 강간 후 여성의 성기에 병이나 나무막대를 꽂아놓기 일쑤였다. 남자들 역시 일본군의 비웃음 앞에서 온갖 치욕을 겪어야 했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범하라는 일본군의 명령을 거부한 남자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했다. 한 여성을 윤간한 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중국인 승려를 잡고 그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라고 협박했다. 승려가 거절하자 일본군은 그의 성기를 자른 뒤 살해했다. (아이리스 장,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미다스북스, 153-154쪽)

 

위에 옮긴 글처럼, 장의 책에서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읽기가 힘든 곳은 갖가지 성범죄 실태를 고발하는 대목이다. 저자 자신도 "난징의 강간은 역사상 가장 엄청난 집단 강간으로 기록될 것"이라 말한다. 적어도 2만 명에서 많게는 8만 명의 난징 여성들이 성범죄에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전반기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도 심각한 성범죄가 벌어졌고, 2만 명쯤의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 보스니아보다 60년 앞서 난징 여성들은 죽음보다 더한 시련을 겪은 셈이다.

 

강간당한 여성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양쯔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아기들이 태어나자 바로 죽였다. 이들 두고 장은 책에서 “수치심과 자괴감에 시달린 중국 여성들은 사랑할 수 없는 자식을 기르느니 차라리 영아 살해를 선택했다”라고 풀이했다. 중국은 12월 13일을 ‘난징 대학살 국가 추모일’로 정하고 해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층이 참석하는 대규모 추모 행사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일본군의 또 다른 잔혹상은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생체실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양쯔강 가까운 곳에 있는 병원을 실험실로 바꿔 유행성 질환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1644부대를 운용했다. 이 부대원들은 중국인 죄수나 포로에게 독극물, 세균, 독가스를 주입하면서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살해됐고, 시신들은 부대 소각장에서 처리됐다. 1644부대는 생체실험을 통해 세균전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731부대(하얼빈 소재)와 판박이다. 

 

▲ 일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매장 당하는 난징 시민들. 

 

난징재판과 도쿄재판 

 

일본이 패한 뒤 난징 학살에 대한 전범재판이 벌어졌다. 범죄 현장인 난징과 일본 심장부인 도쿄에서였다. 난징 재판은 1946년 8월부터 1947년 12월까지 이어졌다. 피고는 몇 명 안됐지만, 1000명이 넘는 중국인 피해자들이 증인으로 나와 460여건의 살인, 강간, 방화, 약탈에 대해 증언했다. 칼로 목베기 시합을 벌였던 일본군 장교 2명이 피고석에 섰고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두 피고는 구차한 변명과 거짓말을 늘어놓아, 법정을 메운 방청객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난징에서의 전쟁범죄로 처벌 받은 일본군 고위장성은 둘뿐이다. 하나는 일본군 6사단장 타니 히사오 중장으로, 일본에서 강제 송환돼 난징 법정으로 불려나와 총살형을 받았다. 그의 처형 모습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난징 남쪽의 형장으로 몰려갔다. 다른 하나는 일본 중지나방면군 사령관 겸 상해파견군 사령관을 지냈던 마쓰이 이와네 대장이다. 그는 도쿄에서 열렸던 극동국제군사재판 뒤 교수형으로 죽었다. 

 

난징 전쟁범죄로 처벌 받은 고위 책임자가 일본군 장성 2명뿐이라고?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난징의 강간>의 저자 아이리스 장도 “난징 강간의 주요 범죄자들과 그 살육을 막기 위해 권한을 행사했어야 할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법정에 서지 않았다”고 탄식한다.(253쪽) 

 

히로히토는 학살 책임 없다? 

 

법정에 불려가야 마땅할 전범자 가운데 하나가 일본 국왕 히로히토의 삼촌뻘인 아사카 야스히토다. 그는 마쓰이 이와네가 폐결핵으로 몸져눕자, '사령관 대리' 직함으로 지휘권을 물려받고 난징 점령을 지휘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전쟁범죄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도쿄재판에 불려가지 않았다. 패전국 일본 통치의 전권을 휘둘렀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 지배층에게 선물해준 '히로히토를 비롯한 황족에 대한 면책권' 덕분이었다. 

 

일본 국왕 히로히토는 난징 학살에 책임이 없을까. 아이리스 장도 <난징의 강간> 끝부분에 그런 의혹을 던진다. 난징 대학살뿐만 아니라,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 중국 본토, 진주만과 동남아에서 저질렀던 침략 전쟁에 책임을 지고 도쿄 전범재판의 피고석에 섰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히로히토(1901년 생)는 1989년 사망 때까지 '천황'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다음 주 글에서 좀 더 살펴본다). 

 

오히려 히로히토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거론했던 소수의 일본인들은 극우파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아이리스 장이 협박을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테면, 나가사키 시장 모토시마 히토시는 히로히토 사망 2주 뒤 바로 등 뒤에서 쏜 총알로 폐를 관통 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그 총격 사건은 "난징 학살 따윈 없었다"는 일본 극우파의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 난징 법정에서 총살형이 선고된 타니 히사오 일본 육군중장. 

 

“나는 전범자였다” 참회의 목소리들 

 

난징 학살 자체가 없었다고 우기는 극우파들과는 달리, 자신의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뜻을 밝힌 일본인들이 없지는 않다. 1954년 랴오닝 푸순 전범관리소에 수용됐던 전 일본군 소령 오타 하사오는 난징에서 중국인 포로와 민간인들을 학살한 뒤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밝히는 44쪽 짜리 고백서를 써냈다. 

 

이에 따르면, 1937년 12월15일부터 사흘 동안 양쯔강에 내다버린 시신은 오타의 부대가 1만9000구, 다른 부대가 8만 1000구, 또 다른 부대가 5만 구 등 모두 15만 구였다고 한다. (아이리스 장, 161쪽. 오타가 수용됐던 푸순전범관리소는 점진적인 사상 개조를 통해 일본인 전범 가운데 다수를 반전 평화주의자로 바꾸었다. 푸순에 대해선 김효순,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서해문집 참조하기 바람.) 

 

난징 학살 당시 일본군 16사단 20연대 소속 상등병으로 있었던 아즈마 시로는 1987년 <아즈마 시로 일기: 소집병이 체험한 난징 대학살>이란 체험기를 통해 그날의 끔찍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중국 난징에서 열린 대학살 50주년 추도식에 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중국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그의 체험기 내용을 둘러싸고 옛 전우로부터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고, 일본 극우파의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난징과는 직접 관련은 없지만, 만주 731부대 소속 소년대원(미성년 군속으로 업무 보조역)이었던 시즈오카 요시오도 양심 고백을 한 인물이다. 731부대에서 죽은 쥐와 벼룩을 이용해 세균무기로 쓰일 세균 배양 작업을 거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쟁이 끝나고 푸순전범관리소에 갇혔다가 1956년 풀려나 귀국했다. 그 뒤로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 모임 등을 통해 “일본이 중국에서 저질렀던 죄행은 피해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고 무겁다”며 사죄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김효순, 410-412쪽 참조) 

 

앞서 살펴본 아즈마, 시즈오카 두 사람은 1998년 일본 평화운동가들과 손을 잡고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지난날 일본의 전쟁범죄를 증언하려 했다. 하지만 ‘전쟁범죄자’란 이유로 시카고 공항에서 미국 입국이 거부당했다. 미 법무부 특별수사국의 입국 금지 명단에 오른 이유는 그들 자신이 전쟁범죄를 고백해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뒤 열린 뉴욕 행사장에는 아이리스 장이 나와 인사말을 했다.) 

 

이를 두고 당시 <뉴욕 타임스>는 “이들의 전쟁범죄 고백이 일본에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는데도, 미국에서 입국 감시자 명단에 오른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극우파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은 사람들이 입국을 거부당하다니...누구를 위한 입국 금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본 극우파들의 영향력은 지금도 미국이나 한국에서 알게 모르게 작동하고 있다. 

 

끝으로 다시 짚어보는 물음 두 가지. 첫째, 일본 국왕 히로히토는 어떻게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지지 않고 ‘천황’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가. 둘째, 그가 전쟁범죄의 책임을 지지 않았기에 전후 일본에 생겨난 심각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다음 주 글에서 이런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보려 한다.

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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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첫날 불쑥’, 이태원 분향소 나타나 조문 흉내 내고 돌아간 이상민

코앞 ‘붉은 목도리’ 유가족 몰라보며 수행원에게 “안 계신가?”, 사퇴 요구는 무응답...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분통’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이 장관이 분향소에 머문 시간은 5분이 채 안 된다. 희생자 유가족이 목이 쉬어라 촉구한 ‘사퇴 요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분향소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동행한 수행원에게 연신 유가족의 위치를 물은 이 장관은 오직 ‘분향소에 갔고, 유가족을 만났다’는 형식만 갖춘 뒤 자리를 떠났다.

이태원 참사 발생 85일째인 이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간 이 장관을 보며 유가족은 또 한 번 가슴이 찢겼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수행원들과 대화하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항의에도 유가족 텐트 들추며 막무가내,
눈물 고인 유가족에게 이상민 “제가 여러 번 말했는데 한번 만나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시민대책회의) 측에 따르면, 이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수행원들과 함께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부근 이태원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사전에 어떤 연락도 없던 일방적인 방문이다. 시민대책회의 측은 이 장관이 머문 시간은 “길어봐야 3분 내외”라고 했다.

이 장관은 먼저 희생자 영정에 헌화한 뒤 주변을 기웃거리며 유가족을 찾았다.

이날 분향소에는 조문객을 맞는 유가족 두 명과 소수의 자원봉사자만 있는 상태였다. 유가족들은 전날 오전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서울역에서 설 귀향객들을 대상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연대를 호소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오는 22일에는 분향소에서 설맞이 상차림을 진행한다. 때문에 상차림을 준비하는 이날 유가족은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 연휴와 맞물려 시민들의 분향소 방문도 평시보다 드물었다.

이 장관의 지시에 수행원들은 ‘유가족 찾기’에 나섰다. 급기야 한 수행원은 분향소 옆에 설치된 유가족들 쉼터 텐트의 문을 동의 없이 열기까지 했다. 현장에 있던 이미현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이 “막 열어보지 마시라”며 항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황당한 행동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 장관은 분향소 앞에서 붉은색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을 코앞에서 보고도 자신의 수행원에게 “유족분들은 안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텐트를 확인하고 나온 수행원도 “지금은 안 계신 거 같다”고 답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피눈물, 상처, 고통을 의미하는 붉은 목도리를 항상 두르고 있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유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이 실장이 “연락도 없이 이렇게 막 와서 조의 표했다는 걸로 끝내려고 지금 온 건가. 공식적인 사과 입장이라도 가지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반발했지만 이 장관은 답이 없었다. “국정조사에서 이 장관 사퇴 요구하는 것 못 보았나. 어떤 면목으로 지금 여기에 온 건가”라는 비판에도 이 장관의 수행원만 “유가족에게 위로 말씀드리려고 한다.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부랴부랴 다른 수행원이 이 장관 곁으로 와 붉은 목도리를 두른 한 유가족의 존재를 알리자 이 장관은 그제야 유가족에게 가 자신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소개하며 “얼마나 마음의 상심이 크시냐”고 말했다.

이 장관을 마주한 이 유가족은 눈에 눈물이 가득 찬 모습으로 울먹이며 “(상심이) 너무 크다. 표현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장관은 “내일이 설인데”라고 했고, 유가족은 희생자 영정 사진을 가리키며 “설인데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없다. 가족과 못 지내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이 장관은 “정말 마음이 아프다. 어쨌든 이런 젊은 청년들을 잘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글쎄요. 무엇을 하실 건가”라며 허탈한 심경을 표출하는 유가족에 이 장관은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유가족 한 명과 55초의 대화를 마친 이 장관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걸어가는 이 장관의 등 뒤로 “사퇴하라”는 외침이 들렸지만, 이 장관은 반응하지 않았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예고 없이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유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2023.01.21.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영상 갈무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도둑 조문” 규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사퇴 요구는 묵살한 채 불쑥 분향소를 방문한 이 장관의 “도둑 조문”을 강하게 규탄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성명서를 내 “유가족에 대한 배려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장관과 그 보좌진들의 행동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 장관은 의도적으로 유가족과 시민이 가장 없을 것 같은 날에 시민분향소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또한 ‘한번 만나자’는 이 장관에게 유가족협의회는 “행안부 관계자는 지난 11월 유가족과의 비공식적 만남만을 요구하면서 유가족협의회의 전체 만남은 거부하기까지 했다”며 “이 장관이 진정으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다면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른 책임을 인정해 사퇴함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유가족협의회에 직접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한 뒤 조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대책회의도 성명을 통해 “참사 책임자로서 통렬한 반성과 사죄의 말도 없이 도둑 조문을 와 유가족을 위로한다며 뻔뻔한 행태를 보였다”며 “자신의 위치와 책무를 망각하고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아 위로 운운하다니. 이러한 조문은 어떤 위로도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 측의 합동분향소 기습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해 12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의 반발에 30초 만에 자리를 뜬 바 있다. 당시 한 총리는 분향소에 와 그 주변에서 진을 치던 극우단체 회원과 악수하고, 분향소를 벗어나는 과정에는 무단횡단까지 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범칙금을 냈다.
 

“ 김도희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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