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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신당, '옛' 정치의 '새' 정렬에 그칠까?

[장석준 칼럼] 금배지 획득한 안철수와 '새 정치'

장석준 진보신당 부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25 오전 7:07:30

 

나는 이 글을 재보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쓰고 있다. 그간의 여론 조사를 보면, 노원(병)에서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것과 연관된 주제의 글을 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안철수 후보의 국회 입성 여부가 '안철수 현상'의 앞날을 좌우하며 그가 주장하는 '새 정치'의 실현을 판가름하리라는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의 시각은 다르다. '안철수 현상'은 국회의원 안철수 없이도, 아니 자연인 안철수 없이도 계속 반복될 운명이다. 그것을 낳은 구조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철수 현상'이 이 낡은 구조의 산물인 한 그것의 타파를 내용으로 하지 않는 '새 정치'는 이미 '새' 정치가 아니다. 즉, 안철수 후보가 주장하는 '새 정치'는, 적어도 그 현재 버전은 진정한 '새 정치'와 거리가 멀다. 이런 것들이 이미 분명하기에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안철수 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 정치를 지배하는 두 가지 사실이다. 하나는 양당제화의 강한 힘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힘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자리 잡은 대의 제도들에서 비롯된다. 결선 투표제조차 없는 대통령 중심제 그리고 소선거구 중심의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 그것이다. 이 모든 제도가 다 숨 막히는 승자 독식 게임 룰로 수렴한다. 이에 따라 정당 구도는 주요 선거를 전후해 항상 한 개의 거대 여당과 한 개의 거대 야당으로 정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강력한 힘에도 한계는 있다. 한국의 양당제는 아직 불안정하다. 제도 요인들에 의해 '강요된' 양당제화다. 시민 사회에 깊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린 양당 구도는 아닌 것이다. 그러려면 양대 정당이 시민 사회의 여러 구성 요소들(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계급, 계층이다)을 반분하며 각 요소들과 유기적 연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두 정당 중 한 쪽은 그런 것 같다. 새누리당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한 쪽은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불안정하다는 것이며, 양당제가 아니라 양당제'화'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양당제화 압박에 더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 '강요된' 양당 구도가 대통령제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기에 버거워한다는 점이다. 그 요구 조건이란 결선 투표제 없는 대통령 중심제가 요구하는 당선 가능성 그리고 대통령제 특유의 행정부-입법부 분립을 돌파할 통치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들이 대통령 혹은 그 후보라는 개인들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상당 기간 양 김의 영향력이 살아 있을 때는 이게 충족하기 쉽지 않은 난제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제도와 현실이 서로 어긋나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프레시안(최형락)

이 경우에도 비대칭성은 존재한다. 새누리당 쪽은 2000년대에 이명박, 박근혜라는 두 인물을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랬다. 반면 그 반대쪽은 그렇지 못하다. 민주통합당을 이루는 여러 정파들은 양당제화 압박 속에 살아남는 데는 유능하지만 대통령제가 요구하는 인물 군을 형성하는 데는 무능함을 입증했다. 시민 사회와의 조직적 연계가 약하기에 당 안에서 새 인물이 성장할 경로도 부족하다. 이것이 바로, 새누리당 반대쪽의 정치 통로를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집권 가능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민주통합당의 현재 모습이다.

다름 아닌 이 두 사실의 교차점 위에 '안철수 현상'이 자리한다. 양당제화 압박 때문에 새누리당 반대편에 거대 정당이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이 당이 대통령제의 요구 조건에 부응하기 힘든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안철수'의 무대 진입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안철수'는 자연인 안철수가 아니어도 좋다. 만에 하나 안철수 후보가 이번 재보선에서 낙선하더라도 한국 정치는 반드시 제2, 제3의 '안철수'를 불러들이게 되어 있다. '안철수 없이도' 안철수 현상은 지속될 운명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역설과 마주한다. 안철수 후보의 핵심 비전은 '새 정치'인데, 안철수 현상을 지속시키는 토대는 이 나라의 '낡은 정치 구조'라는 것이다. 이 구조 덕분에 안철수 현상이 있다. 그럼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 비전에는 그 구조를 타파할 내용이 담겨 있는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 정족수 축소 따위는 그런 구조의 타파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오히려 안철수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새 정치'의 모호했던 '새로움'마저 빛을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그가 착수해야 할 것은 자신의 존재와 양당제화 압박 사이의 수렴점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 정치'는 이제 새누리당 반대편을 '새롭게' 통합 정렬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조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철수 신당'은 결코 '신당'일 수 없다. 그것은 자유주의 정치 세력 '헤쳐 모여'의 2010년대 중반 버전, '옛' 정치의 '새' 정렬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새 정치'는 결코 이런 내용으로 한정될 수 없다. 안철수 바람이 분 작년 한국 대선 몇 달 전 프랑스에서도 대선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멜랑숑 바람이 있었다. 사회당 왼쪽의 좌파들을 대표해 출마한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15퍼센트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며 기염을 토했다. 그도 '새 정치'를 말했다. 하지만 그의 '새 정치'는 많이 달랐다.

그는 '시민 혁명'을 이야기했다. 그는 '제헌의회'를 말하고, '제6공화국' 수립을 부르짖었다. 새 공화국의 최대 과제는 민주주의를 경제와 사회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새 공화국은 정치 제도 일체를 바꿔야 한다. 흔히 이원 집정제라 불리는 프랑스식 대통령제는 완전한 내각 책임제로 바뀌어야 한다. 전면적 비례 대표제와 남녀 동수제를 실시해야 한다. 대중의 직접 참여 통로를 확대해야 한다. (멜랑숑의 대선 공약집인 <인간이 먼저다>(강주헌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을 참고하라.)

'새 정치'란 이런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정치 '구조'를 타파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프랑스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 더더욱 그 '구조'는 소선거구제이며 대통령제이고 그것들이 서로 부조응해 일으키는 시끄러운 소음이다.

달리 말하면, 이제는 무엇보다 전면적 비례 대표제(독일식이든 스웨덴식이든)로의 전환을 외칠 때이고 내각 책임제(정당 내각제) 개헌을 요구할 때이다. 그래서 부자 정당과 서민 정당이 확연히 갈리고 필요하면 정규직 정당과 비정규직 정당이라도 생겨 그들 사이에 대립하고 합작하며 충돌하고 타협하는 일이 우리들 자신의 장기판 놀음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재보선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 이 '새 정치'를 요구하는 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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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전자전쟁. 핵전쟁 어떤 전쟁도 승리

 

 

 

북, 전자전쟁. 핵전쟁 어떤 전쟁도 승리
 
“전면대결전 속 승리의 광장 보고 있다” 확신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4/24 [10:3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인민군은 전자무기와 핵무기보다 강한 것은 혼연일체 일심단결에 있다고 강조햇다. ©


조선 인민군은 천만대적에도 두려울 것이 없으며 국지전이나 전면대결전, 판갈이 전자전쟁도, 핵전쟁에도 자신 있으며 전면대결전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승리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4일 조선인민군 창건 81돐을 즈음하여 ‘백전백승의 최정예 강군’이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봄시위와도 같은 거대한 힘이 분출하고 있다. 선군의 나날 이 땅에 묻어온 우리의 피땀이 어떤 군력을 다졌으며 그것이 민족의 운명꽈 미래를 어떻게 담보하는가를 보여주는 격동의 나날이 흐른다, 불패의 혁명무력에 대한 인민의 신뢰와 자부는 하늘을 찌를듯 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로동신문은 “세계대전을 치르고도 남을 방대한 핵타격 집단을 드세게 제압하는 강군, 포악한 원수들의 핵무기에는 핵무기로, 무력시위에는 무력시위로 맞서며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결사 수호하는 강군이 최전방에 있다.”며 “조국통일대전의 신호탄과 함께 하늘, 땅,바다에서 일시에 진군 또 진군할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건군절을 앞둔 이 시각에도 만단의 전투태세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멸적의 공격 진지들에서 발사 직전의 격동상태에 있는 화선용사들에게 인민은 뜨거운 전투적 경의를 보내고 있다.”면서 “백두산 혁명강군! 우리에게는 얼마나 믿음직한 군대가 있는가. 무적의 군력으로 지키는 자주권과 존엄이란 얼마나 영예로운 것이고 필승의 군력으로 담보되는 포부와 미래는 얼마나 희망 넘친 것인가.”라고 지긍심을 드러냈다.

신문은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 인민의 군대로 긍지 높고 무적필승의 위용을 떨치는 백두산 혁명 강군이야말로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남기신 최대의 애국유산이며 이런 고귀한 유산을 물려받은 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크나큰 행운이며 자랑”이라는 김정은 원수의 어록을 싣고 “조선은 강군이 지켜선 나라이다. 혁명무력이 인민에게 줄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절대적인 믿음”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정론은 “낱낱이 보았다. 형형색색의 최신핵전략무기들이 어떻게 이 땅과 인민을 위협하는가를 다 보았다.”며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며 미친 듯이 덤벼드는 원수들의 본성을 속속들이 꿰뚫어보았다. 조선반도를 노리고 전개된 수많은 침략의 전초기지들과 발진기지들, 떼무리를 지어 밀려드는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들이라고 미국을 겨냥했다.

또한 숫적으로 본다면 열세라는 점을 언급하며 “조선반도(한반도)에서 튕기는 한 점의 불꽃이 세계대전으로 번질까봐 누구나 우려하며 조선을 두고 걱정의 시선을 모으고있는 것은 우연치 않다.”면서 “그러나 이 땅에서는 어떤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가. 우리는 비상한 체험을 하고 있다. 온 세계가 우리와 함께 진짜 일당백의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고조미사이의 엄중한 정세 속의 힘의 관계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또한 “우리의 자호와 명칭이 새겨진 무장장비들과 초정밀타격수단들이 인민의 신심을 백배해준다.”며 “단숨에 미제의 침략 기지들을 초토화하고 남반부를 해방할 폭풍전야의 공격 진지들앞에서 원수들이 전율하고 있다.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된 핵무기까지 가진 강군의 기상 앞에 대적이 혼비백산하고 있다.”며 일당백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이어 “얼마나 강 위력한 전투대오가 이 땅에 준비되어있는 것인가. 반미전면대결전은 끝나지 않았어도 우리는 이미 전승의 광장을 보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승리의 축포가 터져 오른다.”고 승리를 확신했다.

아울러 세상을 둘러보면 강뤼력한 무기들을 내세우며 군사 최강을 논하는 대국들이 있지만 그러나 “오늘 우리가 자기의 군대를 그렇듯 최정예강군으로 보란 듯이 떠올리는 것은 다종화 된 핵무기 때문만이 아니다. 저격무기로부터 시작하여 장갑무력은 물론 초정밀 무인타격기들과 전략로켓에 이르기까지 우리 식의 최첨단군사장비들로 무장된 군종, 병종들 때문만도 아니다.”라며 조선인민군이 강군인 것은 사상의 강군, 정신력의 강군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상과 신념에 있어서나 애국정신에 있어서 당할 군대가 없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질과 승리에 대한 신심이 체질화,전통화된 군대가 바로 조선인민군이다.

특히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에 따라 1호 전투 근무태세에 들어가던 날 최전연의 한 병사가 쓴 일기가 있다.”고 말하고 “…미제의 운명은 병사의 주먹 안에 있다. 조국통일대진군의 신호탄이 오르기만 하면 미국 땅은 십자가로 꽉 들어찬 거대한 공동묘지로 될 것이다.…놈들이 항공모함을 많이 끌고 올수록 좋다. 강선에 보낼 파철은 많을수록 좋다. 더 많은 집을 짓고 싶어하고 더 많은 기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인민들에게 우리는 그 쇠붙이들을 전리품으로 보내줄 것이다.…”라는 일기를 소개했다.

로동신문은 “엄청난 대적이 눈앞에서 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고 있는 때에 이런 배심을 안고있는 수많은 무쇠주먹부대, 맹호부대, 비수부대, 호랑이비행사들이 조국의 전방을 지키고 있다.”며 “원수들은 조선인민군의 전략로켓이나 방사포보다 이 기질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로동신문은 “오늘도 《미래와 핵무기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오만하게 줴치던 미제가 시간이 갈수록 갈팡질팡하면서 공포에 떠는 원인도 다른데 있지 않다.”면서 “이 세상 어느 군대도 가질 수 없는 수령결사옹위정신, 조국수호정신이 뼈 속 까지 배인 우리 군대 앞에 강적이란 없다.”고 확언했다.

신문은 “천만이 수령결사옹위의 자폭용사, 조국수호의 불사신들인 이런 군대에게 접어드는 것이야말로 적들 자신이 고백하였듯이 천연바위를 초불로 태워보려는 망상이 아닐 수 없다.”며 “백두산 혁명 강군은 싸우지 않고도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최정예강군”이라고 천명했다.

이 매체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과 6.25전쟁에서의 전과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원수의 선군 장정의 길을 소개하고 “조국통일대진군의 작전도우에 붉은 화살표를 힘있게 그으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이 누구이신가를 물어보라.”며 천만 장병들은 “그이는 우리의 위대한 전우이시다!”라고 일시에 대답할 것이라고 게재했다.

로동신문은 “인류의 경탄 속에 강군의 새로운 전성기는 폭풍치며 흐른다. 백두산 혁명 강군이여, 끝까지 승리하라.”며 “백두산대국의 위대한 원수, 희세의 천출명장을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영예를 위훈의 금별 메달로, 전승의 축포성으로 빛내며 무적필승의 그 기상을 온 세상에 우뢰처럼 떨치라.”고 위훈창조를 추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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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 요원 죄수명 X 독방 자살, 쥐도 새도 모른 진실

모사드 요원 죄수명 X 독방 자살, 쥐도 새도 모른 진실

 
김수빈 2013. 04. 23
조회수 10698추천수 0
 

오스트레일리아 국영방송 2년 뒤 정체 폭로
비극으로 끝난 ‘첩보인생’ 전모 속속 드러나
 
2010년 12월, 24시간 감시되는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한 사내가 목숨을 끊었다. 그의 이름도, 정체도, 죄목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죄수명 X(Prisoner X)'사건은 2년이 넘도록 소문만 무성한 채로 묻혀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월, 호주의 언론에서 그가 이스라엘과 호주의 이중국적을 지닌 모사드 요원이었다고 폭로했다. 모든 언론의 관심이 이 모사드 요원의 쓸쓸한 죽음에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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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남동쪽에 위치한 람라에 위치한 아얄론 감옥. 여기에는 라빈 총리의 암살자 이갈 아미르를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독방이 있다. 이 독방은 다른 감옥과 격리되어 있어 오직 교도관들만이 드나들 수 있다. 당연히 가장 위험한 범죄자들만을 가두어 두는 곳이다.
 
자살한 수감자... 이름도 죄목도 몰라
 
2010년 12월 15일 오후 8시 19분, 이 독방에 갇혀 있던 한 사내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떠한 이유로 이 독방에 갇혔는지, 그리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교도관들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심지어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도 이스라엘의 한 언론사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다가 몇 시간만에 삭제되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모든 언론에 보도 금지령이 내려졌다. 자살자가 모사드 요원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급 장성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호주발 특종 “수감자는 모사드 요원”
 
의외의 돌파구가 나온 것은 호주였다. 호주의 국영방송인 ABC에서는 2013년 2월 12일, 방송을 통해 당시 자살한 수감자가 34세의 벤 지기어이며, 감옥에 갇히기 전에 모사드 요원으로 일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관련 보도가 봇물치기 시작했다. 이미 해외 언론에서 보도가 나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의 보도 금지령도 별 효력이 없었다. 결국 2년 넘게 숨겨져 있던 '죄수명 X의 진실'이 하나씩 백일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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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명 X' 벤 지기어의 일생
 
벤 지기어는 1976년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둘 다 호주의 유대인 사회에서 유력 인사였다. 호주에서 법학을 공부한 지기어는 90년대 중반 이스라엘로 건너가 군 복무를 마치고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한다. 그는 2001년경 다시 호주로 돌아가 로펌에서 일한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스라엘의 로펌인 헤어조그 폭스 앤 니먼(HFN)에서 일한다. 그가 정확히 언제부터 모사드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각종 보도 내용과 증언들을 짜맞추어 볼 때 2004년경으로 여겨진다.
 
그는 2006년에 이스라엘에서 결혼하여 두 명의 딸을 두었다. 그리고 2009년,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취득하기 위해 다시 호주로 돌아온다. 보도에 따르면 지기어는 이 기간 동안 이란과 사우디 출신의 친구들도 사귀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경 호주의 보안정보부(ASIO)가 지기어를 심문하면서 그의 운명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보안정보부는 그가 계속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여권을 새로 만든 것에 대해 추궁하면서 레바논과 이란을 방문한 것이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는지 등을 물었다 한다.
 
정확한 시점은 알려진 바 없으나(2월경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기어는 체포되어 가명으로 아얄론 감옥에 갇힌다. 호주 당국은 ABC의 보도가 나오고 이틀 후, 2010년 2월 24일에 지기어의 체포 사실을 통보받았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텔아비브의 호주대사관에서는 자신들에게 그런 정보가 전해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해당 정보가 호주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사이에서 오갔음을 암시한다. 2010년 3월, 지기어의 변호인이 감옥에서 지기어를 면회했다. 변호인은 "그가 자살을 시도할 것이란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이성적인 상태였고 가능한 법적 조치에 대해 고려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 15일, 그는 자살로 추정되는 방식으로 사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젖은 시트를 화장실의 창에 감고 목을 매달았다 한다. 의심을 자극하는 것은, 그가 갇혀 있던 곳이 24시간 감시되는 특수 시설이었다는 사실이다.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에서 자살을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해명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레츠>의 보도에 따르면 독방에는 수감자의 호흡과 신체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장치가 달려 있다고 한다. 50초 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경비실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10초 후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면 알람이 작동한다. 사람들의 의심은 끊일 줄 몰랐다.
 
이스라엘 첩보작전에 호주 여권 악용 의심
 
호주의 보안정보부는 왜 지기어를 추궁했을까? 호주에서는 합법적으로 1년에 한 번 이름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지기어는 적어도 네 차례 이상 벤 알렌, 벤자민 버로우즈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다. 그는 호주 당국이 의심하고 있던 이스라엘-호주 이중국적자 세 명 중 하나였다. 당국은 지기어가 이스라엘 첩보 작전에 호주 여권을 제공하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수 차례 바꾼 것으로 의심했다.
 
실제로 호주와 캐나다, 아일랜드, 뉴질랜드, 스위스, 그리고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의 여권은 첩보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권이다. 이들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큰 의심을 받지 않는다. 가장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여권을 들고 이란을 방문한다고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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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0년 1월 19일에 발생한 하마스 고위 관계자 마무드 알마부 암살 사건에서, 암살조 중 적어도 네 명 이상이 호주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에 지기어가 연루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증폭되었다. 총 26명으로 이루어진 모사드의 암살조는 두바이의 한 호텔방에서 마무드 알마부에게 약물을 주입한 후 질식시켜 살해했다. 호주, 영국, 아일랜드, 독일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고 암살 후 모두 현장에서 빠져나갔다.
 
사건 발생 후, 호주는 자국 여권의 악용에 대해 이스라엘에 강력하게 항의한 바 있다. 호주 정보기관의 추궁을 받고는 지기어가 모사드 작전에서 호주 여권이 어떻게 위조되어 사용되었는지를 실토하였고, 그로 인해 첩보작전에 제약을 받게 된 이스라엘이 지기어를 수감시킨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모사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가명으로 독방에 갇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경우라고 말한다. 호주의 정보기관에 지기어가 정보를 주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대체로 우호적인 이스라엘과 호주의 관계를 볼 때 이 정도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기어가 호주의 이중첩자 노릇을 하고 있었으리라는 대담한 가설도 제기되었다.
 
‘죄수명 X’의 또다른 사례
 
이스라엘이 이름까지 숨긴 채로 독방에 가둔 사례는 지기어가 처음이 아니다. 가장 유명한 '죄수명 X'의 사례는 마커스 클링버그의 것을 들 수 있다. 클링버그는 폴란드 태생으로 가족을 홀로코스트로 모두 잃고 이스라엘로 온 화학무기 전문가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기밀 연구를 담당하는 이스라엘생물학연구소(IIBR)의 차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소련의 스파이였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2차 대전 중 소련군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이스라엘로 이주한 이후에는 이스라엘방위군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면서 중령까지 진급하였는데 1950년대부터 소련의 정보요원과 접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국외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와 국내정보를 담당하는 신벳은 60년대부터 클링버그를 의심하였으나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클링버그는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한다. 그러나 1983년, 신벳은 클링버그를 납치하여 알려지지 않은 곳에 그를 가두고 심문을 시작했다. 열흘 후 클링버그는 사상적인 이유로 소련에 이스라엘의 정보를 넘겨주었음을 실토했다. 그는 20년형을 언도받고 텔아비브 남쪽에 위치한 아쉬켈론 감옥에 아브라함 그린버그라는 가명으로 수감되었다. 재판을 받을 당시에도 가짜 이름으로 재판을 받아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한다. 고령과 건강상의 문제로 가택 연금을 받게 되면서도 클링버그는 각종 감시와 도청에 시달려야 했다. 2003년,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그는 딸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떠났다. 신벳에 의해 회유되어 이중첩자가 된 소련의 정보요원이 클링버그를 밀고했다는 사실이 재판 이후 알려졌으나 자세한 내용은 일절 공표되지 않았다.
 
새로이 밝혀진 사실: 헤즈볼라에 정보원 누설
 
이스라엘은 호주 외교통상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벤 지기어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3월 24일, 독일의 <슈피겔>과 호주의 <페어팩스>의 공동 탐사보도로 지기어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지기어가 모사드에서 주로 했던 일은 유럽 등지에서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국가(이란, 시리아 등)와 연관된 기업에 침투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현장에서 물러나 텔아비브에서 모사드 내근직을 맡게 되었다. 다시 현장에서 뛰고 싶은 마음에 그는 헤즈볼라와 연관된 유럽 사람을 이중간첩으로 고용하고자 2008년말 만났다.
 
지기어가 자신을 증명하려고 그에게 이스라엘의 레바논 정보원 두 명의 이름을 제공하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었던 지아드 알홈시, 무스타파 알리 아와데는 모두 2009년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지기어의 헤즈볼라 연락책은 도리어 그를 속인 것이었다. 2010년 초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을 때 지기어는 헤즈볼라 연락책에게 추가로 전달하려던 정보가 담긴 CD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첩보 현장으로 무리한 복귀 시도... 결국 비극으로 이어져
 
"지기어는 그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성취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프로페셔널한 자와 맞닥뜨렸다."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인용한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지기어의 친구들에 따르면 지기어는 공공연히 자신이 모사드에서 일한다는 것을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한다. "어떤 때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떤 스파이가 스스로를 스파이라고 밝히겠나? 오랫동안 이곳 저곳을 드나들곤 하니 정말 스파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선 원래 자주 여행하는 사람을 두고 농담으로 스파이라고 말하곤 한다." 지기어와 군 복무를 같이 했던 친구가 <맥클래치 뉴스페이퍼스>에 한 말이다.
 
자신의 군 복무 경험과 함부로 누설하면 안 되는 모사드 요원으로서의 신분을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던 지기어의 성격으로 볼 때, 현장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참기 힘든 굴욕이었을 것이다. 지기어는 모사드의 상관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면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만의 첩보 작전을 꾸미고 실시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비극이었다. 24시간 감시되고 있는 독방에서 '자살'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도 이스라엘 당국이 지기어를 은밀하게 살해했으리라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기어를 죽임으로서 이스라엘 당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자존심과 자기 과시욕이 강했던 지기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목숨을 끊었다고 보는 편이 보다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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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 “국가안보 고려해야”
NGO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
 
2월 12일, 호주발 최초 보도가 나오고 닷새가 지난 17일, 이스라엘의 총리 벤야민 네타냐후는 처음으로 해당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보안과 정보 활동에 대한 과도한 노출은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해할 수 있다. 어떠한 논의에 있어서도 결코 안보 이익을 가볍게 여기만 안 되는 이유이다. 이스라엘의 현 상황에서 이는 중심적인 이익임에 틀림없다. 안보전력이 조용히 일하여 우리가 이스라엘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 한편 이스라엘 시민권리 연합(ACRI)의 댄 야키르는 2010년 당시 법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민주국가에서 당국이 국민을 비밀리에 체포하고 공중(public)이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게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호주와 이스라엘 정보기관 알력의 산물
두 국가에게 모두 버림받은 시민의 비극
 
2년 넘게 잠잠했던 이 사건이 다시 점화된 데에는 호주의 보안정보부의 역할이 컸다. 호주 ABC를 통해 이 사건의 전모를 최초로 밝힌 기자에게 정보를 준 것이 바로 호주의 보안정보부였기 때문이다. 분명 모사드와 보안정보부 사이의 갈등 때문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이 지기어의 사망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직 모사드 요원인 마이클 로스(가명)는 <데일리 비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호주 보안정보부의 조치를 두고 "모사드의 작전능력에도, 호주의 유대인 공동체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기어의 가족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비판했다.
 
서로 마주친 적은 없으나 지기어와 같은 부대 소속으로 활동했다는 마이클 로스는 지기어에 대한 모사드의 무분별한 관리에도 일침을 가했다. 호주로 몇 차례 씩이나 보내어 이름을 바꾸고 여권을 새로 발급받게 하는 것은 신분을 노출시킬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로스는 지기어가 공중에 어떠한 위협이 되는 인물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독방에 가둘 필요가 있었는지 반문하기도 했다.
 
벤 지기어의 죽음은 이스라엘과 호주의 정보기관 사이의 충돌과 자존심 세고 과시욕이 컸던 한 사내가 얽힌 복잡한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호주 양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어느 나라로부터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던 한 시민이 목숨을 내던진 하나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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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정통성에 의문” 민주당의 뒤늦은 각성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4/24 09:47
  • 수정일
    2013/04/24 09: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통령 정통성에 의문” 민주당의 뒤늦은 각성
 
“어차피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vs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편집부 | 등록:2013-04-23 13:11:32 | 최종:2013-04-23 15:42: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뒤늦게 각성한듯한 민주통합당 문희상 대표


“네가 진작 했어야 할 일을 내가 해주지” (영화 다크나이트)

지난해 말 국정원게이트의 꼬리가 잡힌 이후 시민들은 그동안 제1야당이 진작 했어야 할 일들을 대신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정보기관의 대선개입을 부정선거에 준하는 행위로 보고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던 것은 재야인사들과 언론, 시민들이었습니다.

선거개입을 지시한 국정원장의 내부지령이 공개됐고, 이를 실제로 실행하던 직원이 현장에서 발각된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국정원게이트가 현 정권의 정통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안임은 드러난 사실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런 정황이 밝혀진 뒤에도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엄정 수사 촉구’ 수준의 모범생같은 태도로 일관해 왔고, 대통령과 여당은 오히려 이 사건을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규정하고 역공을 펼쳐왔습니다.

제1야당이 뜨뜨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하자 국정원사건과 관련된 ‘제대로된 목소리’는 재야와 시민사회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표창원 교수는 “워터게이트를 능가하는 헌정유린사건”으로 규정했고, 박찬종 변호사는 “정권은 유한하지만 경찰은 영원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제대로 된 목소리가 재야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찰의 입장에서 재야의 목소리와 원내 127석을 가진 제1여당의 목소리는 그 무게감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과 관련해 수많은 논평을 발표했던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이같은 평가가 억울할지 모르나, 국정원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난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국정원사건의 전말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에서 워터게이트를 떠올리지 못했던 민주당의 모습은 낫놓고 ㄱ자 모르는 백치와 다름없었습니다.


이제야 번지수 찾은 민주당

이제 여건이 무르익었다 판단한 것일까요? 어제 민주통합당이 국정원사건과 관련해 대여 총공세모드로 전환한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정원게이트는) 국정원과 경찰이 야합해서 저지른 헌정파괴 국기 문란 사건이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전 국민을 기만한 두 기관의 반국가 범죄를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건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 경찰의 중간발표 직후 국정원 여직원은 무죄라며 민주당에 인권 유린에 대해 사과하라고 한 적이 있다. 거짓말임이 명명백백해졌다. 민주당은 경찰과 국정원의 천인공노할 범죄행위에 대해 국정조사 등 모든 걸 동원해 진실을 밝히겠다. - 22일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국정원사건과 정권의 정통성의 연계를 이야기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어 설훈 의원은 수위를 더욱 높여 박근혜 대통령을 압박했습니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이 없었다면 대선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사실대로 밝혀졌다면, 대선 결과는 어땠을까?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정원, 경찰 등은 민주당에 잘못을 덮어씌우면서 민주당이 불법을 자행한 것처럼 만들어놓았다, 거짓말이었고 결국 민주당은 대선에서 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거짓 위에 세워진 대통령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서 철저하게 파헤치도록 지시해야 대통령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검찰은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을 확실히 수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에 분명한 의문이 있을 것이다. - 22일 설훈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

 

이들 발언의 핵심은 “선거개입이 아니었다면 대선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입니다. 사건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꼬박 4달이 걸린 셈입니다. 민주통합당은 진작 머리에 띠를 둘렀어야 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의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사건의 핵심에 관한 언급을 언론과 시민사회에 떠맡겼던 것이죠. 늦은감이 있지만 민주당의 각성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관련글 - 권은희 과장의 분노와 라면상무의 분노

▲ 국정원사건의 국면전환을 이끌어낸 권은희 과장


‘분노의 각성’ 이끌어낸 양심의 힘

용기있는 양심의 힘은 참 놀랍습니다. “한마디만 더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찰고위층의 협박까지 적나라하게 폭로한 권은희 과장의 용기는 점차 회의론이 지배하던 국정원게이트의 국면전환을 이끌어냈습니다. 수사과정에서 경찰고위층이 지속적으로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그녀의 폭로는 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과정을 지켜보며 냉소와 회의로 돌아섰던 시민들에게 ‘분노의 각성’을 이끌어 냈고, 유약함의 상징과도 같았던 민주당에게 조금이나마 야성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경찰로부터 국정원사건 수사를 넘겨받은 검찰특별수사팀은 어제 대선개입의혹 수사과정에서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당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검찰의 수사의지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지만, 권은희 과장의 폭로와 검찰의 수사의지 천명, 민주당의 공세 등 몇 일 사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국정원게이트를 둘러싼 기류의 변화를 감지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기류의 변화는 그동안 '여직원 감금'에 대해 책임지라며 궁색한 역공을 펼쳐왔던 대통령과 여당측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더이상의 역공이 어려워진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방어하는 차원에서라도 수사에 협조해야 할 상황에 몰렸습니다.


“어차피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vs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전자는 현실을 말하고 있고, 후자는 당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비이성과 편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희망과 당위를 말하는 사람들이 순진한 몽상가 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변화는 당위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냉소와 회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표창원 교수나 권은희 과장이 ‘어차피 밝혀내지 못할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사건의 양상이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아찔합니다. 그들은 이번 싸움이 쉽지 않은 싸움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당장 코앞에 와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고난의 길을 택한 이유은 현실보다 당위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인들의 용기 앞에서 “어차피 밝혀지지 않을거야”라는 범인들의 회의는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문희상 대표의 발언처럼 민주당이 국정원게이트의 전모를 밝히는데 당력을 집중한다면 얻을 것이 많습니다. 대선 이후 비정상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민주당의 당권경쟁은 많은 지지자들을 등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국정원게이트가 등돌린 민심을 되찾아 올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현재 실질적으로 제도정치권 내에서 수사기관을 압박할 수 있는 세력은 127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 유일합니다. 이런 이유로 야권지지자들은 민주당을 바라보는 입장과 무관하게 민주당의 공세를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놓고 먼 미래의 대안을 논할 한가한 상황이 아닌 것이죠. 당위를 떠나서라도 민주당이 국정원사건에 사활을 걸어야 할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뒤늦게 포문을 연 만큼 민주통합당이 제1야당에 걸맞는 위엄으로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히 밝혀질 때까지 제 역할을 다하길 기대합니다.


( * 시사블로거 다람쥐주인님이 23일 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하에 소개합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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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운하 뺨치는 500조 사기극, 박근혜 노리나?

[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집착하는가 ②]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 대학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23 오전 11:21:59

 

"우리의 숙원인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또 무산됐습니다. 핵연료 재처리에 여전히 미국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대신 현행 협정 시한을 2년 연장하는 선에서 절충안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19일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무산
소식을 전하는 문화방송(MBC) 권재홍 앵커의 멘트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언제부터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우리의 숙원"이 되었을까요?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핵발전소의
쓰레기를 핵연료 재처리로 정말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소리 높여 반대하면서, 왜 핵폭탄 원료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핵연료 재처리를 한국 정부는 "숙원"이라며 목소리를 높일까요?

그 복잡한 사정을
일본 마쓰야마 대학 장정욱 교수가 이번 주 5회에 걸쳐서 파헤칩니다. 장 교수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거짓말은 그만! 핵연료 재처리로는 절대로 핵발전소의 쓰레기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비용만 수백조 원이 든다! 또 핵연료 재처리는 잘못하면 동북아시아의 핵확산 도화선에 불을 댕기는 위험한 일이다!" <편집자>
 

● 첫 번째 글 : 한미 원자력 협정, 그 뒤에 숨은 검은 음모는?


사용 후 핵연료 94~96퍼센트 재처리? 탁상공론이다!

전기 출력 100만 킬로와트 핵발전소(경수로)는 1년(12개월)에 약 20톤 정도의 우라늄(U) 연료를 소비한다. 현재 국내의 경수로(원자로)는 18개월마다 돌아오는 정기 검사 시에 핵연료의 3분의 1을 새 연료로 교환한다. 그러니 경수로 내에는 대략 핵연료가 60톤 정도가 들어 있는 셈이다.

핵분열을 제어하는 감속재를 물(輕水)을 쓰느냐 중수((重水)를 쓰느냐에 따라서 원자로는 경수로와 중수로로 나뉜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월성 1~4호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수로이다. 핵연료 안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는 물질로 중수로는 천연우라늄(U235(0.720퍼센트)+U238(99.275퍼센트)+U234(0.0055퍼센트)을 쓰는 반면에 경수로는 천연우라늄에서 우라늄235(U235)의 농도를 높인 농축 우라늄을 사용한다.

- 고리 1호기(경수로)의 핵연료 : 3.8퍼센트의 우라늄235(U235)+96.2퍼센트의 우라늄238(U238) (나머지 경수로의 핵연료 : 4.5퍼센트의 우라늄(U235)+95.5퍼센트의 우라늄238(U238))

- 월성 1~4호기(중수로)의 핵연료 : 0.7퍼센트 천연우라늄+99.3퍼센트의 우라늄238(U238)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는 연료 교환을 자주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로의 핵연료 교환 주기가 3~5년인데 반해서,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는 그 주기가 1년 정도다. 이렇게 핵연료 교환 주기가 짧다 보니, 중수로의 사용 후 핵연료 폐기물의 양은 경수로와 비교했을 때 4~5배 정도 많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농축우라늄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열화우라늄이 나온다. 열화우라늄은 우라늄235(U235)의 함량이 천연우라늄의 0.7퍼센트보다 낮은 것을 말한다. 열화우라늄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 탄환의 원료로 쓰여서 뉴스에 등장했던 바로 그 물질이다. 이것으로 탄환을 만들면 우라늄의 비중과 발열 때문에 콘크리트, 철판 등의 관통력이 커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추진하는 이들의 주장을 검증해 보자.

경수로에서 3년간 사용한 사용 후 핵연료 1톤을 수조에서 3.5년간 냉각시키면 그 부산물은 [표1]과 같다. 그 안에는 약 40종의 핵종(질량수로 따지면 약 100종 이상)이 들어 있다. 재처리 추진파는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서 94~96퍼센트(감손(減損)U235(0.9퍼센트)+U238(92.7퍼센트)+Pu(1.1퍼센트)+MA(0.1퍼센트))를 재활용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 사용 후 핵연료의 구성. ⓒ장정욱


이런 주장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실제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재활용 비율은 겨우 1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공정 중의 손실 및 투입 에너지를 고려하면 에너지 수지(收支)는 마이너스가 되기 쉽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재처리 추진파는 사용 후 핵연료로 혼합산화물(MOX) 연료를 만들어서 경수로에서 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Thermal-recyle). MOX 연료는 우라늄238(U238)과 플루토늄(Pu) 3~9퍼센트를 혼합한 핵연료다. 하지만 단지 플루토늄 11킬로그램을 이용한 것에 불과해 재활용 비율은 1.1퍼센트 수준이다.

사용 후 핵연료 안에 들어 있는 우라늄235(U235)와 우라늄238(U238)은 불순물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사용하는 MOX 연료의 우라늄238(U238)은 농축 공정에서 폐기한 순수한 우라늄238(U238)을 이용한다. 그 양도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우라늄238(U238)보다 7.8배나 많다. 즉, 재처리 후의 불순물이 섞인 우라늄238(U238)은 고스란히 쓰레기로 남는다.

따라서, 고속로에서 MOX 연료 또는 금속 연료를 사용할 경우에도 플루토늄(Pu) 11킬로그램과 MA의 1킬로그램으로 재활용 비율은 1.2퍼센트에 불과하다. 더구나 MA의 연소를 위해서는 고속로의 상용화가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MA를 핵연료에 혼합해서 사용하는 것도 아직 실험 단계이다.

가령 고속로의 상용화가 가능하더라도, 100년 이상은 경수로와의 공존(병행)이 예상된다. 따라서 경수로의 우라늄을 농축할 때의 열화우라늄238(U238)이 전량 소비된 150~200년 후에나 94~96퍼센트의 재활용률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재처리의 경제성을 고려하면 지금처럼 천연우라늄을 농축하여 이용하는 쪽이 훨씬 낫다.
 

ⓒ연합뉴스


재처리의 경제성도 없다! 최대 수백조 원?

재처리는 천연자원의 단순한 리사이클이 아니다. 재처리를 위해서는 핵발전소의 가동과는 별도로 거대한 규모의 시설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추진파가 주장하듯이 플루토늄을 영구적으로 반복 사용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반복되는 재처리 과정에서 플루토늄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방사성 폐기물도 대량 발생한다.

추진파는 핵발전소 부지 내에 고속로, 파이로-프로세싱 방식의 재처리 공장, 연료 가공 공장을 함께 건설하는 통합형 고속로(Integral Fast Reactor, IFR)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1984년 미국의 아르곤국립연구소(ANL)가 제안하였던 방식인데, 경상북도가 추진을 요구하는 '원자력 클러스터'가 이에 비슷한 형태이다.

IFR은 미국 정부가 핵확산 우려로 고속로 개발의 중지를 선택하자, 이에 대응한 미국의 고속로 추진파가 내세운 임기응변적인 대책의 성격이 강하다. 현재 파이로-프로세싱 상업 공장은 아직 없다. 실험실 수준에서 부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상업 공장의 건설비 및 운영비에 대한 정확한 자료(수치)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상업화된 습식 방식의 재처리 공장의 비용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일본에 건설 중인 로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습식)의 사례를 가지고 비교한다.

일본은 기존의 작은 원형 규모의 토카이(東海) 재처리 공장 이외에 상업용 규모의 로카쇼무라(六ヶ所村) 재처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그러나 2006년 완공 예정이던 이 로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은 19회나 연기되어 2013년 10월에나 완공될 예정이다. 건설 비용도 당초 계획(7000억 엔)의 3배인 2조4000억 엔(약 24조원)으로 늘어났으며, 2013년 10월의 완공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으로 추가적인 비용의 투입도 불가피하다.

이 공장은 사용 후 핵연료를 이용한 최종 실험 중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유리 고화 시설이 고장 나서 중단되었다. 중단 중에도 사용 후 핵연료의 관리(약 2000억 원), 공장의 경비방사선 관리(약 2000억 원), 인건비(약 1300억 원) 등의 연간 약 1조1000억 원이 필요한 공장이다. 단일 공장으로서는 세계 최고액의 건설비가 투입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2003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6년부터 2046년까지의 40년간의 무사고 운전가정한 상태에서 재처리 비용은 합계 18.8조 엔(약 180조 원)이었다. 참고로, 2002년의 일본전기사업자연합회는 30조 엔(약 360조 원)으로 추산을 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 재처리 과정을 완성하고자 할 경우에는, 재처리 공장뿐만 아니라 우라늄 농축 공장, MOX 연료의 가공 공장, 초우라늄(TRU) 원소의 중간 처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수송 및 처분과 관계된 공장들의 해체 비용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추진파는 파이로-프로세싱 방식의 건식 재처리에 필요한 설비의 숫자가 적어서 소규모 시설이 가능하므로 경제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앞으로 핵발전소의 보급 확대로 발생할 세계적인 우라늄 가격의 상승 및 자원의 한계를 염두에 두면, 파이로-프로세싱의 높은 재활용률은 준(準)국산 연료의 공급을 가능하게 해 또 다른 비용 절감 효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일본의 18.8조 엔(약 188조 원)은 사용 후 핵연료 3만2000톤의 처리 비용의 추산으로, 톤당 약 58.7억 원이 소요되는 셈이다. 그런데 핵심 시설인 재처리 공장의 건설 비용이 벌써 약 3배로 증가해 있는 만큼, 기타 비용도 3배 증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재처리 비용은 톤당 약 176억 원이 될 것이다. 2010년 9월 현재, 국내 경수로의 사용 후 핵연료 4986톤에 이를 적용하면, 처리 비용은 약 88조 원에 달한다. 그리고 매년 증가하는 경수로의 사용 후 핵연료 약 380톤의 6.7조원도 더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겨우 1.1퍼센트의 재활용률을 위해 이런 막대한 재원을 투입할 여유는 없다.

그리고 일본의 재처리 비용(18.8조 엔)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최종 처리장과, 앞으로 설명할 고속로의 개발 비용 등을 포함시키면, 총 40조 엔(약 480조 원) 이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덧붙이면, 2011년 11월의 일본원자력위원회의 자료에는 재처리가 직접 처분의 약 2배의 비용이 드는 걸로 되어 있다.

앞에서 살펴본 Termal recycle에 사용하는 MOX 연료의 가격은 하나에 약 8.9억 엔(약 89억 원)으로 보통 농축 우라늄의 핵연료 가격 1억~2억 엔(약 10억~20억 원, 시장 가격에 따라 변화)에 비해 최소 4배나 비싸다. 게다가, 전력의 발생량도 우라늄 연료의 약 8할에 지나지 않는다. 즉,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의 이용은, 우라늄만의 이용보다 경제성이 없다.

2000년대 초의 소위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구호처럼, 일시적으로는 핵발전소의 보급이 확대될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보급 확대의 경우에도, EURATOM(유럽원자력공동체)의 2008년차 보고서를 보면, 미발견 우라늄 자원 등을 고려할 경우, 2008년 말의 세계의 가동 중인 핵발전소 432기의 3배 즉 약 1200기의 연료를 100년 이상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라늄의 가격 상승에 따라서는 바닷물 속에 포함되어 있는 거의 무한정의 우라늄(약 45억 톤)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 핵무기의 해체로 나오는 핵연료도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더욱이, 후쿠시마 사고 후에는 강화된 안전 대책의 높은 비용 및 셰일 가스(Shale gas)의 대량 생산 등으로, 선진국에서의 핵발전소 건설은 사실상 곤란한 상황이다.

가령 재처리를 할 경우에도, 소규모 파이로-프로세싱 시설의 경제성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이다. 특히 고온의 공정이 많아서 기기의 손상 및 교환이 빈번하여 운영비가 상승할 가능성도 크다. 또 재처리 후의 새로운 금속 연료는, 앞서 말했듯이 핵분열을 방해하는 불순물이 많다. 고속로의 상용화가 없다면, 현재의 경수로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계속)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 대학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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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전쟁'을 일본의 부흥으로 생각하는 '자민당'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서면서 우려했던 일본의 우경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4월 23일 일본의 '다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의원 168명이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를 맞아 집단 참배까지 했습니다.

그 전에도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168명의 국회의원이 대거 신사 참배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아베 신조 내각뿐만 아니라 일본 정치 자체의 우경화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일본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도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외교부 논평이나 주한 일본 대사 소환, 일본 방문 취소 등이 있겠지만, 그 정도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것은 지금 일본이 벌이는 행태가 한국에는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극우 정치가 앞으로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를 알아보면서, 과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일본을 대할지도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

'극우 세력, 일본 국회를 장악하다'

이번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일본 국회의원이 168명이나 참석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이 대거 일본 국회에 진출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12월 16일 일본은 중의원 해산에 따른 중의원 총선을 실시했습니다.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정을 심판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의외로 총선에서 우파 자민당과 극우 성향의 유신회가 압승했습니다.

 

 

▲출처:국회입법조사처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기존 230석에서 4분의 1로 줄어든 57석을 획득했지만, 보수 우익이었던 자민당은 선거 전 118석에 불과했던 의석수를 무려 294석이나 획득하며 압승을 거뒀습니다.

12.16 총선에서 자민당과 민주당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부분도 있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극우로 분류되는 '일본유신회'가 기존 11석에서 54석으로 거의 민주당과 대등한 의석수를 확보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본 극우성향의 정치인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함으로 현재 일본의 정치 지형은 한마디로 극우 세력의 연합군이 생성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진보 성향이 있거나 외교,안보에서 유화적인 입장을 지녔던 친한파 국회의원 대부분이 12.16총선에서 탈락함으로 일본 국회는 자민당,일본유신회,다함께당 등이 장악했습니다.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 국회는 현재 극우에 가까운 정당들이 대거 진출했습니다. 이런 극우 성향의 국회의원과 정당이 국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중의원에서 재가결할 수 있는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를 넘는 325석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결국, 평화 헌법 수정이나 헌법 수정을 위한 예비 절차를 중의원에서 가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극우 정당들이 앞으로 무엇을 국회에서 다룰지는 그들이 내건 공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자민당과 유신회는 공통으로 일본의 군국주의를 막아주고 있는 평화 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무장 강화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는 "일본은 핵을 보유해야 한다"등의 발언과 더불어 일본의 핵연료기술과 무기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습니다.


극우적인 공약을 내걸었던 극우 정당들이 일본 국회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얼마든지 헌법을 개정하고 법을 제정해서 그들이 꿈꾸는 군국주의를 실현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 천황이 꿈틀대는 일본'

일본의 천황은 말 그대로 신입니다. 일본에서 천황이 왜 중요하냐면 신이 다스리는 일본은 영원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천황의 위상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추락했습니다. 일본 천황이 인간이 됐다는 사실은 일본 국가의 존재가 추락했다는 맥락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극우세력은 어떻게 하든 천황을 일본을 대표하는 국가 원수로 만들면서 천황의 권위를 복위시키고자 그토록 애를 썼습니다.

1960년 기시 내각은 최초로 일본을 방문하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수상이 아닌 천황이 영접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천황의 권위를 복원시키기 위해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 황궁까지 천황과 미국 대통령의 카퍼레이드까지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민의 반대에 밀려 이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일본 천황의 권위를 복원하려고 노력했던 인물들이 자민당 내 '국가기본문제 동지회'와 '황실문제간담회'와 같은 극우 정치인들입니다. 그들이 천황의 권위를 복위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의 상징인 천황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천황과 함께 더불어 실패했던 그들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다시 한번 그들의 군국주의를 일으키려는 탐욕 때문입니다.

천황의 권위 복원 과정에서 1992년 아키히토 천황의 중국 방문 시 사죄의 문구 발표와 1994년 요미우리 신문이 발표했던 헌법 개정안에서의 천황의 장이 격하됐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우 정당과 정치인들이 대거 일본 정치를 장악하면서 천황에 대한 신격화는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자민당은 공약에서 '2월 11일 건국기념일' 기념식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의 건국기념일은 초대 일본 천황이었던 진무 천황이 즉위한 날로 이 날을 건국기념식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일본의 건국은 천황으로 시작했으며, 이는 일본이 천황 국가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겠다는 의도입니다.

아베 신조 내각은 자민당의 공약대로 오는 4월 28일에 일본 천황이 참석하는 '주권회복일' 기념식을 열기로 했습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돼 일본이 미군정 점령 체제에서 벗어난 날을 '주권회복일'로 규정하고 천황까지 참석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실패가 담긴 과거를 부정하고 이제 새롭게 자신들만의 역사를 만들겠다는 의도입니다.


 

 

 


일본의 근대화를 만든 메이지 유신에서 천황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봉건 영주가 무너지면서 갈 곳 잃은 사무라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무기로 '대일본 제국과 천황 폐하'를 외치며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습니다.

일본이 국가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할 때마다 나오는 말이 천황이며, 천황 중심제에는 항상 무사도라 불리는 침략 속성이 내재하여 있습니다.

1970년 미시마 유키오가 '일본 정신의 회복'을 절규하며 언론이 보는 가운데 할복했을 때도 주장했던 국가제도는 '천황 중심제 국가'였으며, 그의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할복 사건을 일본에서는 오히려 순국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은 천황이 '주권회복일'이라는 국가 기념식에 참석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 미일동맹이 깨지면 한국과 전쟁할 수 있는 일본'

한국 보수와 우익은 흔히 북한이 남한을 침략해도 일본은 한국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그저 '희망'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북한과 더불어 한국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과 한국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말한 사람은 일본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입니다.

 

 

▲ 자민당 '국가기본문제동지회' 가메이 시스카 의원의 한일전쟁 발언을 보도한 1986년 10월 동아일보 기사.

 


1986년 일본 자민당의 '국가기본문제 동지회'의 가메이 시즈카 의원은 '한국이 일본 교과서와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의 내정에 자꾸 간섭하다가는 10,20년후 미일 안전보장체제가 없어지면 한일 간에도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누가 보장하겠느냐'는 발언을 했습니다.

자민당의 '국가기본문제 동지회'는 앞서 말했던 천황의 권위를 복원하려는 극우 정치 세력이고, 이들의 계파는 지금의 자민당 아베 신조 내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당시 이 발언은 아베 신조 내각을 구성하는 자민당이 앞으로 한일 관계에서 선택하는 방안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86년 7월 일본 자민당은 압승을 거뒀는데, 당시 자민당은 교과서 문제,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안보 문제 등에서도 극우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이런 자민당의 핵심 계파 중의 하나였던 가메이 시즈카가 말했던 '미일 안전보장 체제'가 2012년에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자민당 공약

○ '일미동맹' 강화를 토대로 '국익을 지키고 주장하는 외교'를 전개
○ 자유롭고 풍요하고 안정된 아시아 실현을 위해 이웃 국가와 우호협력관계
○ 북한 핵 실험,중국의 군사력 증가,러시아 군사력 변동 등 안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원,예산 강화
○ 미국의 신국방전략과 연동하여 자위대의 역할을 강화
○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을 제정함



우리는 착각합니다. '한미일 동맹'이라고, 그러나 일본은 결코 한국과 동맹을 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웃 국가와 우호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는 일본의 생각은 1986년이나 2013년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설마 미국과 일본의 동맹이 깨질 수 있느냐는 반문을 하겠지만,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제든 일본과 미국의 동맹은 깨질 수 있으며, 그들의 동맹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을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북한,중국,러시아의 군사적 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일본의 재무장이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런 그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일본 국가의 위상 높이기 차원이 아닌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는 군국주의 부활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본은 결코 한국의 동맹이 아닌 그저 우호를 협력하는 이웃 국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 되며, 1986년이나 지금이나 미일동맹이 깨진다면 일본은 언제든지 한국을 침략할 수 있다는 무서운 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 불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나치즘과 같은 이상한 민족주의'

아베 총리는 2006년에도 극우성향의 인사를 각료로 기용하여 일본의 자위권 행사와 헌법 개정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아베 내각의 이런 움직임은 오히려 지지율을 하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2.16 중의원 총선에서 일본 국민은 실패한 민주당의 심판과 더불어 극우 세력인 일본 자민당과 유신회를 선택해 일본의 불황과 문제를 타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출처:국회입법조사처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극우세력인 '일본유신회'가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율에서 자민당 27.6%에 이어 20.4%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일본 국민이 자민당과 함께 극우세력을 정치적 대안으로 선택했다는 증거입니다.

일본은 오랜 경기 침체와 2011년 3.11 대지진으로 국가적인 위기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극우 민족주의 분위기가 인기를 얻고 대안으로 나왔습니다. 일본 극우 정치인들은 기회를 틈타 일본을 군국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야욕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이지, 지금 일본의 분위기는 마치 히틀러 시대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히틀러는 독일 경제 침체기에 나와 독일을 이끌며 전쟁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1929년 검은 목요일로 시작된 경제 대공황으로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직자가 6백만 명으로 늘어나는 시기에 나치당은 18.3%의 득표율로 독일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이 됩니다. 그 후 히틀러는 총리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는 총통으로 침략전쟁을 일으킵니다.

독일 경제가 실패하면서 민주주의 정당들이 모두 국민의 외면을 받았던 것처럼 일본의 민주당도 경제 실패와 무능력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독일과 일본인 모두는 그들의 국가를 살리는 방법은 민족주의 극우밖에 없다며 나치당과 자민당,일본 유신회를 선택했습니다.

<아이엠피터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일본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는 독일 히틀러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의 출생 배경은 물론이고 오사카 경제 부흥 등을 통해 현재 트위터 팔로워가 백만이 넘는 그의 인기를 보면 간혹 무섭기도 하다>


7월이면 일본 참의원 선거가 열립니다. 현재 아베 신조 내각은 지지율이 70%가 넘으면서 일본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실패했던 천황 권위 복원이나 평화헌법 수정,자위대 무장 강화를 할 수 있는 배경과 시기가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명의 조선인이 소형 십자기에 묶인 채로 총살을 당한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그동안 일제강점기 때 벌어진 사건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1907년 대한제국이 멀쩡히 존재했던 시기에 벌어진 일본군의 만행이었습니다.

일본은 대한제국이 있는 상황에서도 조선에서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단순한 호기심으로 철도가 건설되는 곳에 갔던 조선인들을 재판도 없이 총살했습니다. 또한 일본군은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조준 사격했을 때 사람이 총에 맞고 죽는지 알아보는 총기 살상 능력 실험을 이들에게 자행했습니다.

대한민국이 결코 일본의 침략 전쟁에 당하는 일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환율 정책에 쩔쩔매고, 아직도 미군에게 작전권이 있는 상황에서 무엇으로 일본을 막아낼 수 있는지 알려주실 분 계십니까?
 

 

▲한국 우익 보수는 대한제국이 망했던 시절 일본을 통해 조선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자들과 비슷하다.

 


일본은 수십 년 동안 그들의 침략적인 본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움직임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이 됐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의 무력시위와 도발에도 미국을 비롯한 일본의 경제 수탈도 막아내지 못하면서 스스로 지킬 국방력도 없습니다. 그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습니다.

미국이 없으면 북한을 막아내지 못하는 나라,
미일동맹이 깨지면 일본의 침략전쟁을 당할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한국입니다.

외세의 침략 속에 스스로 힘이 없어 무너졌던 대한제국의 아픔이 다시 나오지 않으리라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대한제국의 무능력함을 욕했던 우리가 불과 백 년이 지난 시기에 또다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바라보고 있으며, 무능력함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역사는 비슷하게 재연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과연 수십 년이 지난 미래에 어떤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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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의 인면수심

고승의 인면수심

 
조현 2013. 04. 23
조회수 80추천수 0
 

 

이체노헤 쇼코-.jpg

 

 

 

일본 평화·인권운동가 이치노헤 쇼코 운쇼사 주지
최대종파 ‘조동종’ 첨병 노릇 다룬
‘조선 침략 참회기’ 책 펴내고 방한
“한국 불교도 정부 논리 경계해야”

“일본 불교는 침략전쟁에 대해 참회할 자신감마저 잃어버렸다.”

 

일본의 평화운동가이자 아오모리현 운쇼사 주지인 이치노헤 쇼코(64·사진) 스님의 말이다. 22일 서울 장충동 장충단공원 내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장충단공원은 을미사변으로 희생된 충신을 기리는 공원이자 안중근의 총탄에 죽은 조선 침략의 선봉장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조동종의 사찰 박문사가 있던 신라호텔 앞이다. 1939년 안중근 의사의 차남 안준생이 박문사를 찾아 아버지의 죄를 눈물로 사죄했다는 바로 그곳이다.

 

이치노헤 스님은 안중근과 안준생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최근 <조선 침략참회기>(동국대출판부 펴냄)를 냈다. 일본 불교의 최대종파인 조동종이 일제 때 조선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밝혀낸 적나라한 고발서다.

 

이 책엔 1895년 명성황후 살해사건에 조동종 승려 다케다 한시가 깊이 관련된 사실과 조선 침략을 위한 청일전쟁·러일전쟁 때 조동종 승려들이 제국주의 일본의 첨병 구실을 하고, 한일 강제병합에 발맞춰 전 사원에서 병합 축하 법요를 봉행하는 등 조선인의 황민화 정책에 앞장선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가 일본 우익의 협박 속에서 이처럼 치부를 파헤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일제강점기 조동종의 절이었던 전북 군산의 동국사에 ‘일본 조동종의 참회문’을 담은 ‘참사문비’를 세우는 일을 주도했다.

 

인권·평화·환경운동에 앞장서는 단체 ‘촉광’의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92년 조동종이 당시의 잘못을 반성하는 참회문을 발표하고도 실제적인 참회 행보가 뒤따르지 못한 것을 보고, 일본의 양심을 깨우기 위한 좀더 과감한 활동들에 나서고 있다. “조동종에서 ‘좌선의 신’이라고까지 불린 사와키 고도는 러일전쟁 때 병사로서 참전한 뒤 ‘사람을 많이 죽인 것’을 자랑했다. 고승들은 국가의 깃발 아래서는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죄가 없다는 논리를 이끌어냈다.”

 

일본 불교의 국가 예속성을 꼬집은 이치노헤 스님은 “한국 불교도 남북의 분단이나 긴장 상황에서 정부의 말만을 되풀이하지 않고, 불교관에 따라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 조동종에는 사찰의 불상 아래 인쇄기를 놓고 전쟁반대 문건을 인쇄해 배포하다가 발각돼 처형당한 우치야마 구도 스님 같은 분들도 있었다”며 자신의 책을 통해 ‘진짜 불교인’으로 깨어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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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없는 미국’과 ‘전쟁 없는 한반도’ 같을까, 다를까?

 

 
<기고> 오바마의 ‘논리파괴’ 발언, 그 배경은? - 장대현
 
 
2013년 04월 23일 (화) 00:29:04 장대현 tongil@tongilnews.com
 
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미국 상원, ‘총기규제법 표결’ 조차 부결.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 상원은 “총기 구매자의 신원, 전과 조회를 의무화”하는 법안과 “반자동 총기, 10발 이상의 탄창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 등 가장 초보적인 2건의 총기규제법을 “찬반 표결에 부칠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표결, 100명의 상원 의원 중 46명이 반대, 부결시켰다. 이로써 표결에 부쳐질 자격조차 박탈당한 채, 총기규제는 또 다시 무력화되었다.

작년 12월 14일 미국 코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20명과 교사 6명 등을 포함한 대규모 총기 살해사건이 발생, 온 국민이 슬픔에 젖어 있는 동안에도 20일 애틀랜타 주의 고등학교, 21일 펜실베니아 주의 시골마을 등에서 잇달아 총기난사 사건이 터지면서 총기규제 여론이 90%까지 치솟고, 이를 등에 업은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규제법 통과를 강력하게 촉구한 데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원에서의 표결이라는 점 등 모든 조건이 두루 양호했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미국 상원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감행한 것일까? “어린이들이 곰인형 처럼 쓰러진 TV화면에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에만 오바마 대통령은 추동력을 가질 것이다”라는 대표적인 총기옹호자 칼리파노(존슨 전 대통령 보좌관)의 말과, “전국총기협회는 용서가 없는 주인이다. 한번 찍히면 아웃되는 일진 아웃제이다”라는 클린턴 전 대통령 자서전의 한 대목이 답을 일러준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다음 선거를 생각해야 하는 미국의 정치인들은 유권자보다 총기협회가 더 무서운 것이다. 미국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미국식 금권정치의 한계를 뚫고 올라서지 못하는 한, 그리고 민주, 공화 ‘오십 보 백보’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는 미국식 보수정치 강매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지 못하는 한, 미국인들에게 총기규제법은 안타깝게도 난망하다.

무기상을 일컬어 ‘죽음의 상인’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자기 생명까지를 거래에 포함하는 영화 속 뜨내기 소매상이 아닌, 미국 총기협회쯤 되면 그들은 이미 ‘죽임의 상인’이다. 거래의 자유를 반영구적으로 누리는, 규제 받지 않는 죽임의 상인, 그들을 규제할 방법은 정녕 없는가?

글로벌 ‘총기협회’, 미국 군수자본.

미국 총기협회가 미국이라는 제한된 구역에서 총기 등 한정된 품목만을 판매한다면 무한히 열려있는 세계시장을 향해 총망라, 모든 무기를 시판하는 또 다른 무기상들이 있다.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 등 거대 군수자본이 바로 그들이다. 그 가운데 1등을 달리는 록히드마틴은 1년 매출이 우리의 1년 국방예산보다 많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먹성을 가졌다.

그들의 고객은 첫째 미국정부다. ‘내수’의 경우, “향후 10년 동안 국방예산을 4,780억 달러 줄인다”는 2011년 예산통제법은 그들에게 중대한 ‘규제’로 돌출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2014 회계연도 (기초)국방예산으로 5,266억 달러, 즉 예산통제법이 정한 상한선보다 520억 달러나 많이 배정, 그들을 규제에서 해방했다. 이로써, 무기획득에는 2013년보다 100억 달러가 증가한 993억 달러, 연구개발에는 41억 달러가 늘어난 675억 달러가 각각 퍼부어진다.

두 번째, ‘수출’의 경우 그들은 적대국 또는 잠재적인 적대국(중국 포함)을 제외한 세계 각국을 고객으로 하는데, 그 중에서 한국은 최대의 소비자다.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고 적도에서 난로를 팔아라!” 구호가 말하듯, 자본주의 경영학의 핵심주제는 ‘수요창출’이다. 파키스탄에 최첨단 전투기를 먼저 팔고, 그 숙적인 인도가 아연실색하는 순간 동일 기종을 인도에 팔아먹는 식이다. “총을 가진 악당을 막는 유일한 길은 총을 가진 착한 사람입니다”라는 미국 총기협회의 영업방식을 글로벌화한 것이다. 북한의 로켓발사를 유엔제재로 가격하고, 3차 핵실험을 3~4월 대규모 전쟁연습으로 두드려 시뻘겋게 전쟁위기를 달군 다음, 그 불에 아파치 헬기 1조 8천억 원 어치를 구워먹고, 12조 원 이상의 차세대전투기 FX 사업을 들이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터라, 우리 한국이 ‘울며 겨자 먹기로’ 천문학적 무기구매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 즉 한반도의 평화체제는 그들에게 대재앙이다.

오바마의 ‘논리파괴’ 발언, 그 배경은?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 14일 “북한이 비핵화를 결정하면 (중국을 위협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을 제거할 수 있다”<4월 16일 중앙일보>고 발언하는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 ‘대화와 타협’의 분위기를 슬쩍 조성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미국 엔비시(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논리파괴적인 발언을 했다. “나는 북한이 핵탄두를 탄도 미사일에 얹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이는 첫째, 3월 15일 알래스카 등 미국 서부해안에 2017년까지 지상발사 요격미사일(GBI) 14기를 추가 배치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북한은 지난달 3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지난해 4월에는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KN-08)을 선보였으며, 대포동 2호 미사일로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렸다”<4월 5일 시사인>고 발언한 것과 완전히 배치된다. 둘째, 4월 11일(미국 시각) 미국의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공화당의 더그 램본(콜로라도) 의원이 공개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통해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미국 국방부 정보국(DIA)의 보고서 내용과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셋째, “인공위성은 가능하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불가능한 나라”는 “50미터를 던질 수는 있으나 10미터를 던질 수는 없는 투창선수”와 같은, 그 자체로 논리파괴적인 발언이다. 넷째, 북한이 3월 29일 심야작전회의를 통해 미국 본토를 핵미사일로 공격하는 작전지도를 공개한 것은 미국을 향한 명백한 ‘핵 위협’이다. 냉전 시기 소련을 포함, 미국에게 이토록 ‘직설적’으로 공개 위협을 한 사례는 없다. 만약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가능성’이라면 그 치명적 위협을 미국이 아직도 ‘방치’하는 현 상황은 군사학의 관점에서 설명 불가능하다. 명문대 출신에 유능한 변호사를 거친 미국의 현직 재선 대통령이 이 모든 정황을 모를까?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우리 아이들을 탱크로 치여 숨지게 한 미군들을 재판한 미국 법정이 그들의 유죄를 몰랐을까? 미국은 자기들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기꺼이 ’논리파괴‘를 감수하는 것이다.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통한 핵무기 운반 능력’을 인정하면 그 ‘치명적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와 타협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것은 케리 국무장관이 살짝 드러낸 것처럼 동아시아 MD의 축소, 즉 동북아의 실질적 군축의 시작을 의미하며, 그것은 결국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연결될 수 있다. 이는, 미국 군수자본의 경영위기, 도산위기의 시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0년 간 그들은 북의 ‘핵과 미사일 능력 향상’을 시장 확대의 호기로 사용했고, 지금도 그런 관성대로 질주하고 있다.

북의 인공위성 발사 이후 미국의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미국의 MD강화”를 촉구했다. 3월 미국 국방부는 알래스카 등 서부 해안의 MD능력을 50% 증강하겠다고 발표했으며, 4월 괌 미군기지에 고고도방어체계(THAAD)를 ‘몇 주안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동해 인근에 MD의 레이더감시체계인 X-밴드를 배치하고, 요격미사일을 탑재한 이지스함을 한국에 급파했다. “적국의 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필수적 비용”이라는 명분을 제공하는 점에서 국방예산감축 시대 미국 군수산업의 활로가 MD라는 것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무기상은 언제 ‘전업’하나?

무기상이 무기거래를 포기하는 경우는 오직 하나, 그 무기거래가 자기의 목숨을 위협, 결국 자기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하는 것이다. 미국의 모든 전문가는 “북이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그것은 미국을 직접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미국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더욱 불행하다. 전문가들의 합창을 못 들은 척,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북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공언하는 것은 “개성공단은 절대 폐쇄 못할 것”이라고 북을 자극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3,4월 가열된 전쟁위기 국면이 북의 ‘괌과 하와이 타격 능력 입증’으로, 그것이 미국의 유엔 대북제재 강화로, 그것이 다시 북의 ‘미국 본토 타격 능력 입증’으로 점차 온도 상승한다면, 그 와중에 상대의 ‘핵 선제타격’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끝없이 타오를 것이며, 그러다가 불꽃은 튈 수 있다. 너무나 위험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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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이여! 박근혜의 미국방문을 무산시키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4/23 09:36
  • 수정일
    2013/04/23 09: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네티즌들이여! 박근혜의 미국방문을 무산시키자
 
[제안] 백악관, 미 의회, 미 국무성, 주한 미국대사관의 홈페이지를 ‘클릭’ 하라!
 
꺾은 붓 | 2013-04-22 09:55: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역대 한국정부 수반이 미국정부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미국에 있어서는 아프리카의 부족이나 남태평양의 손바닥 만 한 군도의 추장부터 시작해서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원수를 초청하는 그렇고 그런 일상사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정부나 미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한국의 집권자가 불법으로 정권을 강탈했던, 선거를 거쳐 합법적으로 집권을 했던 한국정부수반의 위상은 한 단계 격상되고 정권의 안정을 꾀할 수가 있다.

총칼로 정권을 강탈한 박정희가 이미 한국의 실권을 틑켜 쥐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케네디가 박정희를 초청하여 박정희의 귀에다 대고 “반드시 민주주의를 하라!”는 오금을 박으며 돌려보냄으로써 박정희가 18년 동안 합법적인 정권을 가장해 집권을 할 수가 있었고, 미8군사령관에게 있는 작전권(당시는 전시/평시작전권 모두 미8군사령관에게 있었음)을 어기고 군 병력을 이동하여 일으킨 12.12군사반란과 5.18광주민중항쟁을 유혈진압 하여 미국에서도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을 보류하고 ‘살인마’로 부르던 전두환이 김대중에게 ‘내란음모’라는 소설 같은 죄명을 들러 씌워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려하자 다급한 미국 측에서 김대중의 구명 때문에 할 수 없이 레이건 대통령이 전두환을 초청을 하여 “김대중의 사형을 집행하면 그 다음 날로 한미관계는 끝이다!”고 쐐기를 박아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전두환이 김대중의 감형을 단행하고 해외추방형식을 빌려 석방함으로써 미국망명길을 터주고 전두환 정권이 안착을 할 수가 있었고 그 연장 선상에서 노태우정권까지 태어 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수치스럽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의 뼈아픈 현실이다.

국세가 허약하여 스스로 중국의 조공 국을 자처하던 조선시대 중국 명나라나 청나라황제가 형식적으로나마 조선국왕의 책봉을 윤허한다는 칙서와 다름없는 현대판 책봉제도의 부활이다.

선거와 개표에서 온갖 부정으로 당선된 박근혜가 오바마의 초청으로 미국방문을 앞두고 있다.

미국도 한국 대선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므로 1국빈방문 2공식방문 3공식실무방문 4실무방문 네 단계의 방문 중 끝에서 두 번째인 공식실무방문 형식으로 박근혜를 초청하였다. 이게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

표면적으로야 첨예한 대립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얽히고설킨 남북관계를 협의하기 위해서라지만, 박근혜 입장에서는 정권 안착을 위해 미국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뒷거래로 미국방문을 애걸복걸하다시피 하여 얻어낸 미국방문일 것이다.

만약 박근혜가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그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관의 불법 선거개입, 개표과정에서의 수많은 의혹, 각료 임명과정에서 코미디보다도 더 웃기는 국정의 난맥상 등을 다 쓸어 덮고 박근혜정권이 안착을 할 수 있는 절호의 뒷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한 미국방문이라고 한국 국민들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있을 것인가?국민들이 나서서 박근혜의 미국방문을 막아야 한다.

네티즌들이 나서서 이미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대로 백악관, 미 의회, 미 국무성, 주한미국대사관 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한국 대선에서의 부정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미국의 양심세력을 움직여 박근혜의 미국방문을 어떻게든 무산시켜야 한다.

이미 양국의 외교채널을 통해 조율을 거친 후 세부적인 일정이 잡혔고 세계만방에 공포된 미국방문계획을 취소시키거나 일정을 무기한 연기시키기에는 힘이 벅차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미국방문을 무산시킬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바마와의 회동에서 오바마가 한국 대선에서의 부정을 강력하게 거론할 수도 있게 만들 수가 있다.

그 어느 경우건 박근혜의 힘이 빠지고 늦게 부화한 병아리가 된서리를 맞은 꼴이 되어 박근혜정권이 안착을 할 수 없게 된다.

이게 단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집단의 힘으로는 가능하고, 이게 집단지성의 힘이다.

미국대통령이 한국정부수반을 초청한다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는 미국대통령이 한국에서 있었던 대선과정에서의 모든 불/탈법을 눈감아 주어, 한국 대선이 공명정대하게 치러졌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여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선거부정으로 당선된 사람의 초청을 재고하거나 취소하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 됩니다.

자-!
네티즌들이여!
당신의 분발을 기대한다.
당신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만큼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길 수 있다.
당신의 지성에 호소한다.
백악관, 미 의회, 미 국무성, 주한 미국대사관의 홈페이지를 ‘클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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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브릿지투자증권 파업 1년, 무너진 '다리' 세우려는 이들

 

 

"노동 운동가 출신 회장, 외국계 '먹튀'보다 더 했다"

[현장]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파업 1년, 무너진 '다리' 세우려는 이들

김윤나영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22 오후 6:48:02

 

 

증권회사에 다니는 송현지(33) 씨는 매일 오전 자취방에서 출근을 준비한다. 19일 오전에도 송 씨는 어김없이 집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자 그는 대형 빌딩 숲 속에 자리한 천막 농성장에 들렀다. 정장 차림 대신 면바지배낭 차림이다.

송 씨는 1년째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3일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가 파업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당시 임직원 199명 가운데 92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아직도 매일 70-80명이 투쟁하러 회사로 나온다.

다른 파업 참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1년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좋아하던 커피도 끊어야 했다. 주변에는 사무직 여직원들 한 무리가 커피를 들고 벚꽃이 핀 거리를 지나갔다. 송 씨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와 친언니와 오피스텔을 구했던 그는 파업이 길어야 한 달, 아무리 길어도 석 달이면 끝날 줄 알았다. 1년이나 갈 줄은 모르고 계약을 연장한 오피스텔 월세가 60만 원이었다. 가족들에게 번번이 손을 벌리기 미안하다. "계약 끝나면 이제 다른 집 알아봐야죠."
 

▲ 송현지 씨 ⓒ프레시안(최형락)


외국 투기 자본 뒤에 들어온 '노동 운동가' 출신 회장

송 씨가 골든브릿지투자증권(당시 브릿지증권)에 입사한 때는 2004년 7월이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면 사회적인 시선이 좋아서" 부모님도 많이 좋아하셨다. 그의 연봉은 4200만 원. 금융계치고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먹고살기 부족한 금액도 아니었다.

불행히도 송 씨가 입사한 해는 영국계 사모 펀드인 BIH(브릿지 인베스트먼트 홀딩스)가 회사를 '먹고 튀려던' 즈음이었다. 회사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직원들이 '먹튀 방지' 싸움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외국계 투기 자본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유상 감자를 통해 투자 자금 2200억 원을 회수하고도 1000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50개가 넘던 지점이 20개 이하로 줄었다. 남은 직원들은 당황스러웠다.

외국계 자본이 녹록지 않다고 깨달을 무렵,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현 이상준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노동 운동을 했으며, 사무금융노조의 전신인 전국보험노조연맹 홍보국장을 지냈던 이력을 노조 측에 내세웠다. 이 회장은 노조 측에 '노사 공동 경영(ESOP : 우리 사주 신탁 제도)'을 제안했다. 노조는 "노동 운동가 출신으로 노동자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던 이 회장을 받아들였다. 송 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이제 회사가 잘 풀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금융위 "골든브릿지증권, 회삿돈 빼돌려 계열사 불법 지원"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산산이 깨졌다. 조짐은 이전부터 있었다. '노사 공동 경영'을 위해 인수 당시 50억 원을 출연한다는 약속은 3년 뒤에나 이뤄졌다. 인사 이동을 둘러싸고도 노사 간 소소한 충돌이 있었다. 송 씨는 "대구 사는 사람을 회사가 부산으로 보내서 반발하니, 회사는 노조가 너무 간섭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직원들이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계열사 부당 지원'이다. 경영진이 모회사인 골든브릿지 그룹에 수십억 원을 부당 지원해 부실 계열사인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을 지원하도록 도왔다. 노동조합은 "회삿돈을 빼돌려서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맞섰지만, '경영에 간섭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임직원들은 허탈해 했다. '노사 공동 경영'은 말뿐이었다는 것이다.

부당 지원을 둘러싸고 노사 공방이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17일 금융위원회는 골든브릿지증권에 '계열사 불법 지원'을 이유로 과징금 5억7200만 원을 부과했다. 파업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회사 측은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송 씨는 회사의 '부실 경영'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압구정 지점에서 5년간 일했다가 강남 지점으로 갔는데 회사가 점포를 폐쇄했다"며 "이 회장이 사업을 벌이면서 차린 '금융 판매 회사'에서 손실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지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오전 7시 반까지 출근해서 새벽 1-2시까지 수당이나 대체 휴가 없이 일하는 날이 잦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묵묵히 일했다.
 

▲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로비 앞 사무실의 빈 책상들. 파업 초기 노조원들은 사무실 출입을 두고 용역 직원들과 대치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사 공동 경영' 파기하고, 창조컨설팅과 계약?

'노사 공동 경영'을 먼저 파기한 쪽은 사측이었다. 2011년 10월 회사는 노동조합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노조가 단협을 이유로 인사와 경영권에 관여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는 "정리해고 시 합의한다"는 단체협약 문구를 "협의한다"로 바꾸자고 했다. 노조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이었다. 결국 노조는 지난해 4월 파업에 들어갔다.

사측이 '노조 파괴 전문 노무법인'으로 알려진 창조컨설팅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노조가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송 씨는 "돌이켜 보니 공격적으로 파업을 유도하고 용역을 투입한 과정이 유성기업이나, 한국쓰리엠 등 창조컨설팅이 투입된 다른 사업장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가 일부러 파업을 유도한 것도 창조컨설팅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회사 관리자들이 감사팀, 재무팀 등 비밀 관리 유지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 공문을 보낸 것도 도마에 올랐다. 급기야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지난해 11월 회사가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노조 파괴'에 나선 정황을 포착해 부당 노동 행위 혐의로 골든브릿지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파업 이후 소송전도 본격화됐다. 노조는 지난해 8월 이상준 회장과 남중정 사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노조는 이 회장이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것 외에도 회삿돈 수십억 원을 들여 사모 펀드를 조성해 제주도 리조트를 샀고, 이 리조트를 이 회장이 개인 자택으로 쓰고 있다고 고발했다. 노조는 또한 이 회장이 모친에게 회사 법인 카드를 쓰게 했다며 이 회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외국계 투기 자본 피했는데, 국내 자본도 답 없다"

송 씨의 하루는 회사 앞 천막 농성장에서 시작했다. 회사 앞은 조합원 60여 명으로 가득 찼다. 부장급부터 막내 사원까지 다양했다.

김호열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 지부장은 19일 천막 농성장 앞에서 "금융감독원이 사측을 중징계하기로 한 원안을 통과시켰다"며 "이 회장이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고용 안정, 근로 조건 보장도 없다. 경영진·대표 이사·회장까지 기소·처벌되는 회사를 누가 우호적으로 보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송 씨는 일정표를 받았다. 천막 농성장, 5층 사무실 앞, 로비 앞을 차례로 지켜야 한다. 송 씨와 함께 5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타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송 씨는 "방금 탄 사람이 인사 경영 관리자"라며 "내가 내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니 나가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송 씨는 "법적으로 파업 중인 직원이 자기 사업장에 들어갈 수 있는데도, 회사에서 못 들어가게 했다"고 토로했다.

송 씨를 따라간 5층 사무실과 로비 앞 복도에는 큰 화분이 놓여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손팻말을 든 송 씨가 자리 잡는다. 그는 "우리 보기 싫다고 얼마 전부터 회사가 복도 양옆을 화분으로 다 막아 놨다"고 설명했다. 피켓 시위를 하는 직원들은 저마다 책을 읽거나 휴대 전화로 웹서핑을 했다. 송 씨는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책을 꺼내 들었다. "파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본사 5층 복도 양옆에 놓인 화분들. ⓒ프레시안(최형락)
▲ 송현지 씨는 "파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파업하는 동안 회사에서 받은 상처도 많다. 용역이 투입돼 들려 나간 기억도 있다. 송 씨는 "얼마 전까지 하루 종일 같이 일하고 같이 점심 먹고 같이 생활하던 직원을 쫓아내고 용역을 투입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아찔하던 순간도 있었다.

"지난해 7-8월까지는 회사가 검정색 정장 차림의 용역 20-30명을 투입해서 조합원들을 들어냈어요. 6월쯤 로비에 있는 영업부서 정수기에 물 마시러 갔는데 용역이 막았어요. 용역이 들어가려는 조합원을 때리려고 쇠로 된 날카로운 무기를 손에 차는 거예요. 다행히도 (무기를) 꺼내다가 걸려서 우리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누가 그 쇠 무기에 맞았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파업 초기에는 동료들이 미행을 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몇몇 조합원들이 회사 맞은편 봉고차 안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발견했다. 쫓아가 사진을 보니 조합원들이 퇴근하는 사진, 회의하는 사진은 물론이고 담배 피우는 일상까지 다 찍혀 있었다고 했다. 노조 간부들이 서울 불광동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실에 가는 모습도 있었다. 노조는 사진 찍은 사람을 개인정보법 위반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사진을 유포하지 않으면 합법"이라고 했다.

파업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서명한 임직원들에 대한 '부당 징계'도 구설에 올랐다. 회사가 지점장급 직원에게 4개월 이상 지하 창고에서 근무하게 하고 반성문 쓰기를 종용했다. 송 씨는 "회사는 징계한 사람들 일부를 전화, 컴퓨터도 없이 책상만 있는 지하 창고에 가둬놨다"며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맹비난했다.

"회장이 노동 운동가 출신이라 회사가 잘될 줄 알았는데, 외국계 '먹튀' 자본이 아니라 국내 자본이라 나을 줄 알았는데, 국내 자본도 답이 없어요."
 

▲ 골든브릿지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돌아가며 로비, 5층 사무실, 천막 농성장을 지킨다. ⓒ프레시안(최형락)


"다리는 이미 무너졌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야죠"

오전 10시에 모이는 노동조합 일정은 매일 오후 4시 반에 끝난다. 문화제가 있으면 밤 9-10시까지 일정이 빼곡하다. 그동안 다녀본 파업 사업장도 많다. 쌍용차 평택 공장, 재능교육, 코오롱,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부산 한진중공업도 갔다. 장기 파업 사태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영업 직원들도 영업 전단지 돌리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싫어했는데, 지금은 다들 전단지의 달인이 됐어요. 부장급 직원도 '경영 정상화'를 알리는 전단지를 시민들한테 돌려요. 한번은 같은 금융계가 몰려 있는 여의도에서 전단지를 돌렸는데, 받아주지 않아서 섭섭해 했더니 부장님이 그러는 거예요. '우리도 옛날엔 그랬다.'"

송 씨는 "쌍용차 앞에서 장기 파업이라고 말도 못하지만, 파업 1년도 길다"며 "가정이 있으신 분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밝아보여도 속은 다 문드러져 있어요. 한 번 터지면 줄줄이 눈물이에요. 가정 문제나 경제 문제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내한테 이혼을 요구받는 남편도 있고, 집에 가면 아이들이 아빠와 눈을 안 마주친대요. '예전에는 정장 입고 출근했는데, 아빠는 왜 등산복 입고 나가?'라고요. 백일 된 아이 두고 파업 현장 나온 아이 엄마는 젖도 못 뗀 아이가 눈에 밟혀 울었어요."

송 씨는 "처음 파업을 시작했을 때 1년까지는 참아보자 했는데, 막상 1주년이 눈앞에 닥치니 금전적으로도 힘들고 주위 시선도 곱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티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있고, 경영진의 비열하고 악질적인 모습을 보고서 어느 회사에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송 씨의 하루가 저물 무렵, 회사 앞에는 "약속이 깨지면 다리(브릿지)가 무너집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그는 "다리는 이미 무너졌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감시·감독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도 공공적인 원리로 운영돼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국계 투기 자본의 탐욕도, 계열사 부당 지원도 제대로 감시·감독하지 못했어요. 검찰도 금융위 결과가 나오니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움직이고 있어요.

저희 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빨리 파업을 끝내고 회사를 정상화하고 싶어요. 회사만 잘 살리면, 경영진이 회삿돈만 안 빼돌리면 잘 클 수 있는데, 일터로 복귀해서 다시 잘해보고 싶어요. 좋은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김윤나영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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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 댓글사건과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박근혜 대통령을 우습게 만든 '국정원 직원'

[게릴라칼럼] 국정원 직원 댓글사건과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3.04.22 19:08l최종 업데이트 13.04.22 19:08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조사가 시작된 지 30분만인 오전 11시 20분경 수사관이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혐의사실을 추궁하자 갑자기 "억"하며 책상 위로 쓰러졌다.'

전날 술을 마셔 갈증이 난다고 했을 때 냉수까지 가져다 준 친절한 경찰 조사관. 그가 박종철을 앞에 앉히고 조사를 하면서 책상을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했다. 고문치사 하루 만에 나온 치안본부(현 경찰청) 사인규명 발표였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 믿는 사람은 없었다. 야당뿐만 아니라 보수 일간지마저도 경찰 발표 내용을 믿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수세에 몰린 경찰 당국은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수사 발표 며칠 뒤 수사관이었던 조아무개씨 등 2명을 구속하면서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숨진 사실을 시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진실은폐였다. 19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는 새로운 진실이 밝혀진다. 박종철 고문치사는 박처원 치안본부 5차장의 주도 아래 5명이 가담한 사건이며 구속된 2명의 수사관은 거액의 돈과 협박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은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앞뒤 맞지 않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수사 발표
 

▲ 경찰, 대선기간 '국정원 정치개입' 확인 이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이 18일 오후 지난해 대선기간 발생한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과 공범인 일반인을 국가정보원법 위반(정치개입)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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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입은 했지만 대선 개입은 아니다."

지난 18일 수서경찰서가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해 국정원 직원 2명과 일반인 1명을 국정원법 위반 협의로 검찰에 기소하면서 밝힌 수사 내용이다. 비록 대선기간에 정치관련 글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꼭 대선에 영향을 준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라고 본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누리꾼들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와 다른 게 뭐냐"며 조롱에 가까운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조사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5일, 대선을 불과 3일을 남겨 놓은 지난해 12월 16일 경찰 측은 "국정원 여직원 김씨의 노트북 등을 분석한 결과 대선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전무하다"는 수사 발표를 대선후보 마지막 TV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11시에 긴급하게 발표했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기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지체 없이 발표했다는 게 당시 경찰 측 해명이었지만, 숱한 의혹을 덮은 채 일방적으로 내놓은 수사 발표는 편파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대선 직전인 12월 16일 밤 11시에 이루어진 수사 발표는 또 다른 선거 개입이었고, 진실은폐와 왜곡이었던 셈이다.

정치 개입은 맞지만 대선 개입은 아니라는 경찰의 조사 발표. 이번에도 그래서 미덥지 못하다. 최소한 이번 발표가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얻으려면 두 번의 발표가 왜 서로 다른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대선 직전에 이루어진 졸속 발표에 대해 사과라도 있어야 마땅하다. 또한 수사 외압과 관련된 의구심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마땅하다.

이런 해명이나 사과 없이 처음 발표 때는 무혐의에 가까운 발표를 하고 이제와 정치 개입은 맞지만 대선 개입은 아니라는 수사 발표는 또 다른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턱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궤변을 덮기 위해 수사관 2명에게만 죄를 미루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 때를 떠올리면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 발표를 믿지 못하는 건 과연 필자만의 생각일까?

특히,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수사를 총괄했던 권은희 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서울경찰청은 물론 경찰청까지 동원돼 수사 내내 부당한 개입이 이뤄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밝힌 내용만으로도 경찰의 수사 발표 내용은 용도 폐기해야 마땅하다. 대선 관련 78개 키워드를 발견했는데도 4개 키워드만 줄여 조사하도록 지시한 서울경찰청. 더욱이 국정원 여직원 김씨의 불법 선거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언론에 흘리지 말라고 주의를 전달했던 경찰 고위 관계자들의 행위는 변명의 여지없는 압력이고 명백한 범죄행위다.
 

▲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앞 권은희 수사과장 대선을 며칠 앞둔 2012년 12월 11일 오후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 불법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직원이 문을 걸어 잠근 가운데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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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이 지난달 18일 폭로한 이른바 원세훈 원장의 '핵심적 지시 강조 사항'은 국정원 내부 게시판을 통해 전달된 광범위한 정치 개입·선거 개입 행위였다. 국정원이 여론 조작, 주요 국내 정치 현안에 적극 개입, MB정부 국정운영 홍보, 4대강 사업에 실질적 개입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국정원 최고 권력자의 이런 정치개입과 선거 개입 행위와 말단 여직원의 댓글 사건을 과연 따로 놓고 볼 수 있을까?

국정원 여직원 개인이나 한 부서의 계획된 음모가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또한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사항이 단지 개인의 빗나간 충정의 발로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 개입은 맞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라는 경찰의 수사 발표는 국민들에게 의혹과 반감을 키울 뿐이다.

박종철을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던 전두환 정권. 광주민주화운동의 폭력진압자로 지목된 당시 내무부장관 정호용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때릴 수 있느냐"며 고문을 부인했었다. 이는 진상규명과 책임지는 자세는 뒷전으로 미룬 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얄팍한 언변에 불과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새누리당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70년대, 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이런 이야기가 진행이 될 수 있느냐"며 진실이 드러날 경우 야당이 책임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새누리당 대선 캠프 박선규 대변인이었다.

아무 말이 없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다. 정보 최고책임자가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공공연하게 국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여론을 호도했다는 사실이 경찰 발표로 드러났다. 선거 개입은 아니라고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부당한 개입의 흔적은 너무나 많다. 70~80년대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야당을 몰아붙이던 새누리당, 이제 결단이 필요하다. 드러난 일부의 진실만으로 이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7일 오전 충남 천안 서북구 이마트 앞 유세에서 유권자와 지지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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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쌍한 여직원 결국 무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사과 한 마디 안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라고 하더니 사람이 먼저가 아닌가 봐요. 인권유린에는 말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 직전인 12월 17일 박근혜 후보가 경찰 발표를 근거로 이 사건을 불법감금과 인권유린, 야당의 선거 공작으로 규정하며 발언했던 천안 유세의 일부분이다. 그 '불쌍한 여직원' 이 결국 정치 개입을 한 혐의로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민들의 의혹에 대해 제대로 답해야 한다. 국정원 여직원과 국정원장 원세훈, 국정원장 원세훈과 이명박 대통령 사이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춰 명명백백하게 가려내야 한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칼을 빼들지 않으면 안 될 위기다. 서둘러 덮고자 하는 사건은 결국 더 크게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26년 전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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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건, 민주당의 마지막 반전카드 될 수 있나

 

황교안 “안보위기 상황, 표현의 자유 제한할 수 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국정원 사건, 민주당의 마지막 반전카드 될 수 있나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경찰 내부에서 ‘경찰 수뇌부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팀에 압력을 넣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국정원 정치개입, 경찰 은폐 축소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오늘의 유머’ 운영방식을 분석한 메모 등을 확인하고도 중간수사 발표를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철저히 수사할 것을 촉구하면서 국정조사 카드를 꺼냈다. 검찰은 민주당 고발건과 경찰 송치건을 종합해 수사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중 국정원을 압수수색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 공이 넘어간 상황에서 검찰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밝혀낼지 주목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적용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미국에서도 안보 상황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계가 바뀌어 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검찰이 노량진본동 재개발 사업비 180억 원을 횡령한 조합장 최아무개씨를 조사하면서 야당 중진 국회의원의 비서관 계좌에 억대 자금을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대가성 여부를 수사 중이다. 해당 의원은 비서관에 선을 그었다.

정치권과 재계가 대체휴일제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대체휴일제 도입을 위해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을 의결했다. 하반기에 도입될 것으로 보이지만 2015년 3·1절전까지는 휴일과 주말이 겹치는 경우가 없다. 이에 재계는 기업 경영부담을 거론하며 수십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반발했고, 정치권은 내수진작 효과가 있다고 맞받아쳤다.

임기가 1년 남은 민선 5기 기초자치단체장들의 공약이행률이 43.1%로 확인됐다. 약속한 공약은 1만 1035개다. 이중 이행이 완료된 공약은 지난 15일 기준 4763개다. 공약 남발과 재정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지만 ‘부자동네’ 강남벨트의 공약이행률도 상위권은 아니다.

다음은 2013년 4월 22일 월요일 아침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국정원 정치개입 파문 확산… 야 “국정조사” 정치쟁점화>
국민일보 <“직업교육은 독일 성장의 뿌리”>
동아일보 <교통사고 8.7% 줄고 정지선 준수율 10%P↑>
서울신문 <1년 남은 기초단체장 공약 절반도 못 지켜>
세계일보 <19대 국회 ‘초선 파워’ 실종>
조선일보 <한국, 늙은 日에 경제 활력 역전당했다>
중앙일보 <면죄부 받은 엔저 … 일본만 웃다>
한겨레 <“남자가 내 기저귀를 간다고?”…할머니는 겁이 났다>
한국일보 <야당 중진의원 측에 억대 로비 정황>


황교안 법무부 장관, “안보 상황에 표현의 자유 제한할 수 있다”

황교안 장관은 “50년대 미국에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아니더라도) 위협의 경향성이 높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원칙이 변경됐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1면 기사 <“미국도 냉전 땐 표현의 자유 제한 … 한국 안보 상황 그때보다 더 위험”>에 따르면, 그는 1950년대 안보 상황과 현재 한국을 비교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이 한국전쟁과 동·서 냉전이 벌어졌던 1950년대 미국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면서 “지금 우리 판례는 명백한 위협이 있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원칙조차 흔들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중앙일보 12면.
 

경찰 윗선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축소·은폐지시 일파만파

한겨레는 1면 기사 <국정원, ‘오유’ 면밀 분석했다/ 경찰은 증거 확보하고도 은폐>에서 경찰이 대선 전인 지난해 12월 14~16일께 오늘의유머 운영방식을 분석해 메모한 국정원 직원 김씨에 대한 증거를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서울경찰청은 12월 16일 밤 11시께 ‘국정원 직원 김씨의 혐의를 확인할 수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이 사건의 수사주체인 수서경찰서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면서 “보도자료가 올 때까지 수서경찰서의 수사팀은 김씨의 혐의가 발견됐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 한겨레 1면.
 

문제가 되는 대목은 보도자료를 건네받은 수서경찰서가 서울청에 무혐의 근거를 요청하자 서울청이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누락한 A4용지 2장짜리 증거분석 보고서를 보냈다는 점. 그러나 서울청은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결과, 하루 4000쪽에 달하는 김씨의 인터넷 검색 기록은 물론 그의 구체적인 아이디와 닉네임 내역 등을 확인한 상태였다.

한겨레는 “서울경찰청은 김씨가 작성한 ‘오유’ 운영방식 분석은 물론 △하루 4000여쪽에 이르는 과도한 인터넷 검색 기록 △김씨의 활동이 ‘오유’에 집중된 사실 △김씨가 사용한 구체적인 아이디와 닉네임 내역 등 국정원 활동에 의혹을 가질 만한 내용은 증거분석 보고서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사건, 민주당의 마지막 반전카드 될 수 있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폭로 뒤 재점화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국회에서도 정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국정원 정치개입 파문 확산… 야 “국정조사” 정치쟁점화> 제하 제목 기사에서 민주통합당의 반응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민주통합당은 21일 이 사건을 ‘국정원과 경찰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면서 “또 당내 ‘원세훈게이트 진상조사위’ 차원의 대응과 함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와 정보위원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따질 방침”이라고 전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 실시도 주장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민주당 김현 대변인은 “이성한 경찰청장은 김기용 전 경찰청장과 김용판 전 서울청장, 경찰 고위 간부들의 행동이 독자적 판단이었는지 수사해야 한다”며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내부 감찰을 실시하고 국민 앞에 소상히 보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향신문 3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부장검사)은 이르면 이번 주중이나 이달 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향신문은 <검찰, 이르면 주초에 국정원 압수수색… 강제수사 돌입 ‘예고’> 기사에서 “검찰은 국정원 여직원 김씨 등의 불법 정치개입이 국정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독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경향신문은 “원 전 원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독대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 전 대통령의 지시 개입 묵인 여부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압력받은 사람은 있는데 가한 사람은 없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폭로에 대해 경찰청은 아전인수의 반응을 보였다. “전화는 했지만 압력은 아니다”라는 것이 서울청의 입장이다. 권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경찰청 고위관계자가 수차례 전화를 걸어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불법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흘리지 말라’고 지침을 줬다”고 말했지만 경찰청은 “권 과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경향신문은 3면 <경찰청 “전화는 했지만 압력은 아니다”> 제하 제목 기사에서 20일자 경찰의 해명자료를 거론하며 “해명 보도자료에는 경찰청이 이런저런 이유로 수사에 간섭한 정황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경찰청은 “서울경찰청을 통해 주의를 줬다”고 인정했는데 이는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유출하지 말라’는 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매뉴얼에는 ‘수사 중인 사건은 수사종결 전까지 원칙적으로 공표가 불가하지만, 중요 사건의 경우 지방청과 사전 협의 후 발표할 수 있다’고 돼 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경찰청이 수서경찰서에 ‘매뉴얼대로’ 개입한 모양새다.

경찰청은 지난 2월 2일 ‘경찰이 국정원 직원에 대해 공직선거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을 당시 수사팀에 전화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 공직선거법 적용 여부는 수서경찰서에서 흘러나온 것인데 이에 대해 경찰청은 “사전에 보고를 받지 않은 내용이 보도가 돼 진상파악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경찰청 실무자가 수서서 수사팀에 판례 내용 등 보도 경위를 질의한 사실은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지난 2월 4일 민간인 이모씨가 이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보도가 나간 뒤에도 수서경찰서에 주의를 줬다. 경찰청은 “서울경찰청을 통해 ‘반복적으로 수사 내용이 특정 언론에만 보도됨에 따라 수사팀에 주의를 촉구한 사실이 있다”며 “하지만 수사팀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경향신문은 “경찰청의 해명은 ‘서울지방경찰청을 통해 주의를 줬고, 경찰청 실무자가 수사팀에 질의를 한 것이다’로 요약된다”면서 “하지만 일선 수사팀 입장에서는 상급기관의 주의나 질의 전화도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노량진 재개발조합장, 야당 중진의원 측에 억대 로비 정황

검찰이 노량진본동 재개발 사업비 180억 원을 횡령한 조합장 최아무개씨를 조사하면서 야당 중진 국회의원의 비서관 계좌에 억대 자금을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대가성 여부를 수사 중이다. 한국일보는 1면 머리기사 <야당 중진의원 측에 억대 로비 정황>에서 “정·관계 로비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져 수사 결과에 따라 커다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박순철)는 지난 1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철거전문업체 J사를 압수수색해 이 정황을 포착했다. 이 업체는 노량진본동 재개발사업의 철거 용역을 수주했다.

한국일보는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2009년 중순 J사에서 당시 야당 의원 비서관이던 A씨에게 1억 6000만 원이 유입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검찰은 조합장 최씨가 J사와 평소 금전거래가 잦았던 점에 비춰 J사를 통해 인허가 관련 로비자금을 건넸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비서관 A씨는 18대 국회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했으나 현재는 활동하고 있지 않다. 해당의원은 “A씨는 잠시 일하다 오래 전에 그만둔 사람”이라며 “(돈 거래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고 최씨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대체휴일제 두고 재계 반발

정치권과 재계가 대체휴일제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대체휴일제 도입을 위해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을 의결했다. 하반기에 도입될 것으로 보이지만 2015년 3·1절전까지는 휴일과 주말이 겹치는 경우가 없다. 이에 재계는 기업 경영부담을 거론하며 수십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반발했고, 정치권은 내수진작 효과가 있다고 맞받아쳤다.

경향신문 <‘대체휴일제’ 법안 국회 본회의 상정 앞두고 설전> 제하 제목 기사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대체휴일제 때문에 추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연 4조 3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조업일수가 줄어들어 최대 28조 1000억 원의 생산감소액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권은 내수진작 효과가 있을뿐더러 이 같은 재계의 논리가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안행위 새누리당 간사인 황영철 의원은 21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휴일이 늘어나면 오히려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발전할 수 있어 내수진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국내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많은 편이면서도 노동생산성은 크게 낮기 때문에 근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대체휴일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재계 ‘대체휴일제’ 아전인수격 반대> 기사에서 “휴일이 1.5일 늘어나 생기는 추가 관광지출(2조8000억원)과 생산 유발효과(4조9000억원) 및 고용유발효과 8만5000명 등의 순기능은 눈감은 분석이란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연차휴가 등 휴일이 선진국에 비해 적지 않다는 경총의 주장에 대해 “대기업들이 쉬는 날로 계산한 연차휴가의 실제 사용 비율(대기업 32.3%, 중소기업 45.1%)이 절반에도 못미친다”고 보도했다.

“경총은 연차휴가 사용비율을 늘려 휴식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근로자들이 연차휴가를 쓰지 못하는 것은 적절한 대체인력 공급이 되지 않는 현실 때문이라는 지적은 빠져있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대체휴일제 도입 무조건 반대할 일인가>에서 “세계 최장 근로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생각하면 마냥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를 통해 일자리는 물론 수출 제조업 위주의 경제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체휴일제는 지난해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이로 인해 새로 생기는 휴일은 연간 2.2일 정도다. 경향신문은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34개 회원국 중 최장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는 국내총생산(GDP) 상위 17개국의 평균보다 30.5%를 더 일한다. 반면 노동생산성은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경향신문은 “만성적인 연장·휴일근무에 시달리는데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며 “최악의 산업재해 후진국이라는 오명도 이와 무관치 않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장시간 노동 관행은 바꿀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기초단체장 임기 1년 남았는데 공약 실천은 뒷전

서울신문이 기초단체장의 공약이행률을 분석했다. 서울신문 1면 머리기사 <1년 남은 기초단체장 공약 절반도 못 지켜>에 따르면 민선 5기 기초자치단체장들의 공약이행률은 43.1%다. 서울신문은 “공약 남발과 재정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서울신문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공동으로 실시한 ‘기초단체장 공약 이행 및 정보 공개 평가’ 결과에 따르면 전국 227개(공석, 재·보궐 선거 지역 등 20곳 제외) 기초단체장들이 선거 때 약속한 공약은 1만 1035개다. 이중 이행이 완료된 공약은 지난 15일 기준 4763개로 43.1%다.
 

   
▲ 서울신문 1면.
 

대전지역 기초단체장의 평균 공약이행률은 70.5%로 가장 높았고, 서울 55.2%, 경기 55.1% 순으로 나타났다. 충남 30.3%, 전북 32.8%, 경북 33.2%은 이행률이 저조했다. 광역단체별 평균점수로 보면 광주 지역 평균 83.8점, 대전 83점, 부산 79.4점이었다. 서울은 77.1점이고 충남 55.6점, 울산 56점, 강원 52.6점 순이다.

이광재 매니페스토본부 사무총장은 “표심을 잡기 위해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한 게 1차적인 원인이며 경기 침체에 따른 지방 세수 감소 같은 재정 압박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약이행은 재정자립도와 무관해 보이는 결과도 제시됐다. 부자동네 강남 자치단체장들의 공약이행률 또한 상위에 들지 못했다. 서울신문은 5면 기사 <공약이행, 재정자립도와 무관… ‘부자’ 강남벨트도 상위권 못들어>에서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소위 ‘강남벨트’는 연도별 목표달성도, 공약이행 완료율 모두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인수위가 약속한 낙하산 방지법, 어디로 갔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공기관 낙하산 근절’을 목표로 관련 법 개정 의지를 밝힌 바 있지만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내용이 생략됐다. 동아일보가 업무보고에서 빠진 국정과제를 살펴봤다.

동아일보는 “정부 부처들이 대부분 업무보고를 마무리한 가운데 적잖은 국정과제들이 업무보고에서 빠지거나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청와대는 대외적으로 ‘국정과제 100% 이행’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들은 내부적으로 ‘현실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 동아일보 10면.
 

동아일보 10면 기사 <국정과제서 슬그머니 꼬리 감춘 ‘낙하산 근절’>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배포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연평균 근로시간을 202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국정과제 목표는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116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423시간이나 많다.

인수위는 전 국민 대상 스포츠체력 인증제를 연내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주무부처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시기를 2015년으로 늦췄다. 동아일보는 “국방부는 업무보고 자료에서 ‘국가 재정증가율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국방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국정과제 내용을 제외했다”고 전했다.

인수위가 낙하산 방지에 대한 의지를 밝혀 시민사회가 주목한 국정과제도 실종됐다. 인수위는 “공공기관 낙하산을 근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공기관에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동아일보는 “하지만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선 관련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최근 인수위 출신인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등 새 정부 관련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가면서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개발은행, 한국 경제성장률 2.8%로 전망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아시아 주요국 중 최하위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조선일보 B2면 기사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아시아 주요국 중 최하위권”>에 따르면, 21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4%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아시아에서 경제 규모가 큰 개발도상국 11개국 가운데 싱가포르(2.6%)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것”이라고 조선일보는 보도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전망을 보면, 중국이 8.2%로 가장 높고 인도네시아 6.4%, 필리핀 6.0%, 인도 6.0%, 말레이시아 5.3%, 베트남 5.2%, 태국 4.9%, 파키스탄 3.6%이 뒤를 이었다. ADB는 아시아권의 평균 경제 성장률을 2012년 6.1%보다 높은 6.6%로 전망했다.
 

   
▲ 조선일보 B2면.
 

이를 두고 중앙일보는 6면 기사 <한국 올 경제성장, 아시아 11개국 중 끝에서 두 번째>에서 “‘아시아의 4마리 용 가운데 가장 앞서 달리던 한국’은 옛말이다. 이젠 아시아권에서 경제 성장률 꼴찌를 다투는 신세가 됐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ADB 보고서는 세계의 ‘성장 모범생’이었던 한국이 열등생으로 떨어졌다는 확인증서”라면서 “세계 각국이 속속 오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성장궤도로 복귀하고 있는 상황인데 유독 우리는 성장률 2%대의 저성장 늪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입력 : 2013-04-22 07:38:52 노출 : 2013.04.22 08: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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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행길 백범의 말 "내가 살면 얼마를 사느냐"

북행길 백범의 말 "내가 살면 얼마를 사느냐"
저 또한 그랬습니다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출판 뒷이야기

13.04.22 09:18l최종 업데이트 13.04.22 09:30l

 

권중희 선생 미국 보내기 마지막 보고 기사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이 말은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 어귀 돌에 새겨져 있다. 사람과 책의 관계를 한 마디로 요약해 주는 명언이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저자와 출판사(편집자), 디자이너 그리고 인쇄소, 제본소의 여러 분들의 노고로 비로소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진다. 또 저자는 한 권의 책을 집필하고자 자료 수집을 위해 온갖 정성을 쏟기 마련이고, 언저리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지난 4월 17일 수요일, 오후 1시 교보문고 옆 한 한식집에서 다섯 사람이 모여 내가 최근에 펴낸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의 매우 간소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내가 애초 초대하려는 손님은 안두희를 저승으로 보낸 부천에서 택시기사를 하시는 박기서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10여 년 끈질기게 추적한 권중희 선생을 대신한 부인 김영자씨 두 분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이번 책을 펴낸 준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그리고 서평을 써 주신 고상만 시민기자가 당신도 박기서 선생과 구연도 있을 뿐더러 꼭 두 분을 꼭 뵙고 싶다고 하여 동참을 원해 그래서 나까지 모두 다섯 사람이 되었다.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출판기념회를 갖고자 만난 다섯 사람들(오른쪽부터 안두희를 저 세상으로 보낸 박기서 선생, 권중희 선생 부인 김영자 씨, 필자, 고상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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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동안 30여 권의 책을 펴냈다. 내가 1989년 첫 작품집 <비어 있는 자리>를 펴내자 그때 제자들이 주관하여 이대교수 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던 바 있었다. 이후에도 몇 제자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어주겠다고 하였지만 늘 사양해 왔다. 언저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출판기념회를 갖지 않은 채 매번 조용히 보냈다.

어쩌면 하찮은 이 이야기를 내가 굳이 쓰는 까닭은 이 글이 '권중희 선생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보내기' 성금을 모아주신 오마이뉴스 올드 팬에게 드리는 나의 마지막 보고 기사이기 때문이다.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전경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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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에 넘어지다

지난해 봄(2012, 2), 나는 조상 산소를 수목장으로 이장하기 위해 월정사 뒤 지장암 전나무 숲에서 나무를 고르다가 그만 빙판에 미끄러졌다. 그때 오른 손을 땅에 짚었는데 통증이 심해 병원에 가보니 엄지손가락에 금이 가서 한동안 그 부분을 깁스하고 지냈다. 의사는 나에게 오른 손 사용을 당분간 금했고, 실제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컴퓨터 자판을 두들길 수가 없었다.

지난날 나는 내 영혼이 담긴 박도체 육필로, 그것고 만년필만으로 원고를 쓴다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글쓰기를 거부해 왔다. 그런 내가 그 언제부턴가는 자판으로 두들기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도록 별 수 없이 문명의 노예가 돼 버렸다. 그런데 그즈음 오른 손목 깁스로 자판을 두들길 수 없으니 보통 좀이 쑤시는 게 아니었다.

늘그막에 나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생활자세와 태도도 그렇게 익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 당분간은 내 머릿속의 글을 우려내지 말고, 이 참에 재충전, 곧 내 골 빈 머리를 알차게 메우자.'

그래서 날마다 원주시립도서관을 다니면서 독서로 지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선우진 회고록 <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이라 책을 발견한 뒤 대출받아 날개에 있는 저자의 소개를 보고 깜짝 놀랐다.

'2009년 5월 별세'

나는 순간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함과 동시에 그 몇 해 전 선우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언제 조용한 자리를 마련하여 백범 선생님 마지막 행장 이야기를 듣기고 언약했는데 이럴 수가. 다행히 책 속에는 선우 선생이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 두셨다.

나는 그 책을 밤새우다시피 읽으면서 문득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백범 선생 암살자 안두희를 추적한 김용희, 곽태영, 권중희, 박기서 등 네 분 가운데 김용희 선생을 제외한 세 분은 내가 직접 만났고, 특히 권중희 선생은 2003년 10월에 만나 이듬해 3월까지 5개월 동안 거의 매일, 미국에 가서는 한 방에서 47일 동안, 가족 외 가장 여러 날 한 방에서 동침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권 선생에게 별 별 이야기를 다 들었고, 또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드나든 이야기, 미주 동포들의 백범 선생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정성 그리고 암살자의 최후 숨통을 끊게 한 박기서 선생의 이야기 등도 하나의 역사이기에 한 권의 책으로 써서, 먼저 권중희 선생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 누리꾼들에게 바쳐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정말 그때 그분들은 너무 고마웠다.

NARA에서 찾은 문서 목록과 문서 및 백범 김구 배후 관련 기록물 목록과 자료를 묶은 서류철 5권
ⓒ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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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 보관소에 맡긴 유품

내 오른 손에 깁스를 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엄지손가락이 거의 원상으로 회복되었다. 나는 곧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를 집필하기로 기획하면서 자료수집에 들어갔다. 마침 오마이뉴스에 보낸 내 기사는 이미 출력하여 '감동과 좌절 150일간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서류 봉투에 보관 중이던 것을 찾아 다시 읽어가면서 이 책에 담을 내용을 추려 뽑았다.

백범 선생에 대한 자료와 암살자 안두희의 자료는 백범기념관을 찾아가 홍소연 자료실장에게 부탁드리자 기념관 서고에 비치 중인 자료를 알려줘 쉽게 해결되었다. 그런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와 권중희 선생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찾아가 활동한 기록물을 입수치 못해 난감했다.

그 문서기록철은 모두 5권으로 미국 현지 'Kim Koo Research Team' 장 재미 유학생 이선옥 씨가 애써 만든 것으로 귀국 후 권중희 선생이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권중희 선생이 2007년에 작고하여 부인 김영자씨에게 그 서류의 보관 여부를 전화로 문의했다. 김영자씨는 권 선생이 돌아가신 뒤 집을 줄여 이사를 다니는 바람에 권 선생의 유품들은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어 어느 이삿짐 보관센터에 맡겼다고 하면서 아직도 그들이 권 선생 유품을 보관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답변을 듣고 캄캄했다.

그러나 부인에게 이삿짐 보관센터에 가서 찾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말이 도저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 내 메일함 주소록에 남아 있는 미국 유학생 이선옥씨에게 부탁하자 며칠 후 답장이 왔다.

백범 선생이 중매선 부부 이야기

박도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선옥입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지난 2주 동안 출장에, 집안일에, 양육에, 공부까지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늘 바쁘지만, 그럼에도 마음의 평정과 중심 잡힌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따금 NARA에서 박유종 선생님(박은식 선생 손자로 나를 줄곧 도와주신 분)을 뵙습니다. 그때마다 박도 선생님 안부도 듣고 또 전합니다. 나의 남편(주태상 씨)은 지금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고, 저는 얼마 전 과거사진실위원회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행정안전부소속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해외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도 선생님이 요청하신 작업 보고서 및 주요 문서를 번역해 놓은 것과, 보고서 뒤에 별첨 형태로 첨부된 김구 관련 직, 간접 문서와 관련 문서 가운데 CIA에서 수거해 찾아볼 수 없었던 문서 목록까지 보내드립니다. 참조 하세요. 다행히도 예전 컴퓨터에 잘 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지금 보니, 그때 참 열심히 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마이뉴스 누리꾼 여러 분들의 염원이 담긴 성금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사명감과 책임감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저와 남편은 김구 암살배후 진상규명을 위한 자원봉사자로 만난 인연 때문에 서로 알게 되어, 2005년 5월에 남편과 아내로 굳게 서약하고 지금까지 두 아이의 아빠와 엄마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큰딸 이름은 주민지로 다섯 살입니다. 둘째 아들은 주승민으로 세 살이고요. 저희 가족사진 보냅니다. 예쁘게 봐 주세요. 추워지는 가을, 선생님 건강에 유의하세요.

2012. 10. 13. 미국 메릴랜드에서 이선옥 올림.

백범 김구 암살 배후 관련문서를 찾는 일을 함께 하다가 부부가 된 이선옥 주태상 가족
ⓒ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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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 구내 식당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토론하는 '김구 리서치 팀'. 오른쪽 부터 권중희, 이도영, 박유종, 정희수, 이선옥, 주태상, 김봉렬 ebs pd. 이때부터 이선옥 주태상 두 사람은 서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때부터 서로 전류가 통한 모양이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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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우리가 미국 NARA를 찾아갔을 때 이선옥씨는 유학생 신분으로 김구 관련 문서를 찾는 일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는데, 그때 동참한 재미 동포 주태상씨와 만난 인연으로 부부 사이로 발전했다. 그들 부부의 중매는 결국 백범 선생이 서신 셈이다. 이선옥씨가 보내준 가족사진을 보니 놀랍고도 반가웠으며 엄청 기뻤다. 아마 하늘에 계신 백범 선생님도, 권중희 선생님도 두 분의 앞날을 축복해 주실 것이다.

그런데 이선옥씨가 보내준 자료는 나의 갈증을 해소치 못했다. 나는 다시 우리가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은 중요 문서를 수고롭지만 다시 NARA에 찾아가서 스캔하여 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나의 무리한 부탁인데도 이선옥씨는 조금도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고 시간 나는 대로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NARA로 가서 문서를 다시 찾아 스캔하여 보내주겠다는 답신을 보내왔고, 부탁한 지 40여일 만에 그 서류 복사본이 내 메일함에 도착했다.

NARA에서 찾은 김구 관련 문서
ⓒ NARA(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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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전문 398은 문서가 총 7장입니다. 그 가운데 해당문서는 한 장이구요. 전문 427은 총 27장입니다. 그 중 해당문서는 세 장입니다. ……

일단, 작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마이크로필름 실에서 필름형태로 찾아야 했고… 순서대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예상보다 문서가 많아서 혹시 몰라, 필름 형태의 문서를 카피하여 왔습니다.

전문 427의 경우, 제가 일단 보관하겠습니다. 박 선생님께서 전문 전체가 필요하시면, 스캔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제가 보낸 자료가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박도 선생님, 건강하세요. 도움 더 필요하시면 말씀하시구요.

박 선생님을 미국에서 꼬옥 뵈었으면 합니다. 저는 당분간 한국에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족정기를 되살리시려는 선생님의 뜨거운 애국심과 노고에 감사드리며….
2012년 11월 29일 미국 메릴랜드에서 이선옥 올림.

백범 김구 선생님
ⓒ 백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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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 저자의 현실

나는 이 모든 자료들을 들춰보면서 미친듯이 자판을 두들겨 갔다. 나는 집필하는 가운데 어려울 때마다 <백범일지>를 펼치거나 백범 선생 만년의 사진을 바라보면, 마치 백범 선생님이 내 등을 두드려 주신 듯 힘이 솟았고, 또 어려운 일들이 이상하게 술술 풀려갔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하는 기간 참으로 행복했다. 멋진 분과 영혼을 교감하기 때문이었다. 왜 우리는 이런 위대한 분을 지도자로 모시지 못하고 동족이 쏜 총탄으로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을까. 나는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했다. 그 결과 지금도 남북 휴전선 일대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2012년 9월 30일 한가위 날, 나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이 책의 원고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2013년 1월 20일에 탈고했다. 가장 염려스러웠던 출판사 문제는 그동안 내 책을 11권이나 내 준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가 이번에도 팔을 걷어주었다. 아무튼 그분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2008년에 호남의병전적답사기인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를 눈빛출판사에서 펴냈는데 초판 1000부 가운데 아직도 절반 정도가 재고로 남아 있기에 여간 미안치 않았다. 이상하게도 독립운동 이야기는 생각보다 책이 팔리지 않았다. 그 원인을 내가 잘못 쓴 내 탓이라고 돌리지만 뭔가 우리 사회는 '의(義)'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각계각층 윗자리는 거의 대부분 '의(義)'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30여년간 근무했던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출판계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은 내가 책을 30여 권 펴냈다면 인세로 꽤 돈을 모은 줄 아는데 사실 내가 쓴 책은 대부분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거나 근현대사 자료 발굴에 관한 책들이라 어떤 책(항일유적답사기)은 답사비는커녕 사진 값(그때는 필름 카메라였기에)도 뽑지 못했다. 한국전쟁 사진집인 <지울 수 없는 이미지>는 자료 수집 차 내 개인돈으로 두 차례나 더 NARA에 가서 스캔해 와 출판했으나 여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했는데 메이저 신문에서조차 아무런 사전 양해도 없이 내가 애써 수집해온 사진을 자기들 마음대로 게재했다.

그런데도 책이 나오면 여기저기서(심지어 도서관조차도) 무료로 기증해 달라 하고, 어떤 친구는 사인해서 우송해 달라고 하여 아주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정치지망생들이 선거 때마다 책을 공짜로 마구 뿌려 출판계에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2004년 3월에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를 처음 만났는데, 그 무렵 그 출판사 직원은 대여섯 명으로 내가 찾아가면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제비처럼 "어서 오세요"라고 합창하였다. 그런데 이즈음에는 직원이 한 사람뿐으로 출판사 편집실에 가면 썰렁하기 짝이 없고, 나도 이태 전 평생 처음 원주에서 33평 짜리 미분양 아파트를 한 채 사서 지내고 있는데, 아내가 지난해부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줄여 더 좁은 곳으로 이사 가자고 간청하는 걸 미루어오다가 며칠 전에 하는 수 없이 부동산에 내놓았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출판사와 저자의 현실이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동안 30여 권의 책을 냈고, 앞으로도 더 내주겠다고 선약한 출판사도 있다. 많은 작가 가운데는 원고를 쌓아두고도 책을 내지 못한 분도 숱하다. 어느 하루 서울나들이 길에 지하철을 타고 가며 주위 열 사람을 무작위로 골라 무엇을 하는가 보았더니 그 가운데 여덟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래서 인문이 죽어버린 대한민국은 민족반역자 후손들이 나라를 흔들고, 온통 부정부패 비리로 얼룩진 이들이 의사당에서 큰소리를 치고 있다. 돈에 환장한 일부 백성들은 아파트 값만 올려준다면, 내 손에 단돈 몇 푼만 집어준다면 친일파 후손은 물론이요, 온갖 사기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잡범 투기꾼도 상관치 않고 지도자로 뽑아주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게 이 나라를 망치는 길인 줄도 모른 채….

대한 독립만세!

나는 10여 년 독립운동 관련 책을 쓰고자 국내외를 답사하거나 자료를 뒤적이면서 왜 그분들이 "맞아죽거나 굶어죽거나 추위에 얼어 죽는 고통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하였는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분들은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의 안일을 버렸기 때문이다.

일찍이 시인 이육사는 감옥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누렸다. 내가 의병전적지에서 만난 기산도 의사, 백낙구 맹인 의병장, 김태원·김율, 김원국·김원범 형제 의병장 등, 여러 순국선열들은 일제의 사냥개가 되고 권력의 하수인이 된 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분들은 일제강점기에 감옥 바깥세상보다 오히려 감옥 안이 더 마음이 편안하다는 그런 자세로 독립운동을 했다. 사실 그런 기쁨과 마음가짐이 아니고서는 독립운동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짜 독립운동가들은 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하면서도 "대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다음은 1948년 4월, 백범 선생이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고자 북으로 떠나기 전에 기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이다.

"나는 남조선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일생을 바쳐서 오로지 자기 동족을 구하고 국가를 사랑한다는 내가, 몇 해 남지 않은 여생을 안락하게 보내기 위하여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동포의 지옥행을 앉아서 보고만 있겠는가."

그리고 또 북행 날 아침 백범 선생의 앞길을 막는 이들에게 말씀하신 대목이다.

"내가 가면 공산당에 붙들려서 오지 못할까 염려해서인 줄 안다. 그러나 내가 살면 얼마를 사느냐. 제발 나의 길을 막지 말라."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백범 선생의 이런 말씀들을 문헌에서 찾아 옮길 때 너무 감동하여 밤잠을 설치곤 했다. 바로 이런 기쁨에 나는 늘 밑지는 독립운동 이야기를 바보처럼 쓰며 살고 있다. 사람 같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을 존경하고 바라보는 일이 가장 즐겁고 보람되기 때문이다.

'민족혼은 살아있다' 권중희 선생이 손수 쓴 휘호다. 오른쪽은 권중희 선생이고 왼쪽은 필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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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은 살아있다

2004년 1월 31일, 권중희 선생은 미국으로 가면서 인천공항 쓰레기통에 태우던 담배와 라이터를 모두 버렸다. 그런 뒤 어느 날 밤 권 선생은 숙소에서 고국에 있는 부인으로부터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는 전화를 받고, 곧 구내매점으로 가서 담배를 사와 소파에 앉아 불에 붙였다.

"박 선생, 내가 사내자식으로 일구이언을 해 볼 참으로 낯이 없소."
"아닙니다. 태우세요. 저도 집사람한테 그런 전화를 받았으면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 겁니다."
"안두희를 추적 응징한 나에게 대한민국은 가난과 징역살이를 시켰소. 내 인생은 안두희로 삐끗했지만 진짜로 민족정기와 정의, 양심이 펄펄 살아 있는 나라에 단 하루라도 살고 싶소."

그분은 다시 담배를 물고는 나에게 간청했다.

"두 전직 대통령 머리에 정의봉을 한 방만 내리치면 아마도 그들 베갯잇 속에 꼬불쳐놓은 돈까지 다 꺼내놓을 겁니다. 또, 영부인들 엉덩이에다 안두희에게 놓은 대침 한 방씩만 꽂으면 사돈팔촌까지 장롱 속 깊이 꼬불쳐 감춰놓은 돈은 물론이고, 그들 고쟁이 속에 숨겨둔 퀴퀴한 돈까지 다 게워내며 제발 살려달라고 싹싹 빌 겁니다. 이 일이 성공하면 비로소 대한민국에 부정부패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첫 날이 될 겁니다.

보세요, 그들이 거들먹거리며 잘 살아가니까 그 다음 후임자들이나 그 친인척들이 죄다 그대로 답습치 않습니까. 그들이 먹은 돈을 게워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정의는 살아나지 않습니다. 공권력이 아무리 설쳐도 도둑들을 절대로 근절시키지 못합니다. 박 선생, 우리 귀국하면 그 일을 나와 같이 합시다."

다음은 2005년 6월 17일, 박기서 선생이 백범 묘소에서 나에게 한 말이다.

"백범 선생님을 시해한 안두희 그 자는 인간쓰레기입니다. 배운 게 부족한 제가 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인간쓰레기를 치우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작부터 청소부 심정으로 그를 처치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만고역적 안두희, 그런 자가 호의호식하면서 천수를 다 누린다면 이 땅에서는 교육이 안 되지요. 우리 후손을 볼 낯도 없어지고요. 사실은 그런 자와 같은 하늘 아래서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고요.

저는 천주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십계명에도 살인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도 왜 종교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랄까, 대의랄까, 국가 정의를 위해 그를 처단하는 게 옳다는 신념에서 모든 벌을 받을 각오하고 그를 단죄하였습니다."

나는 그분 앞에 대학을 나온 내가 부끄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분을 만나 그런 말씀을 듣고 글로 옮겨 쓰는 일이 행복했다. 그러면서 이 책이 나와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받으면 가장 먼저 권중희 선생을 대신하여 부인 김영자씨와 박기서 선생을 모시고 밥 한 끼 나누고 싶었다.

후원자 유무상통마을의 방구들장 신부님('영웅 안중근'에 이어 이번에도 작가와 출판사를 위해 후원해 주셨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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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눈빛출판사에서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초판 1000부가 나왔다. 이 소식을 듣고 미리네 유무상통마을의 방구들장 신부님이 선뜻 300부를 구입해 주셨다.

시민기자 고상만씨가 "'안두희 뒤의 검은 손' 백범을 죽인 진짜 범인"이라는 서평을 써준 덕분으로 책이 출판된 사실이 오마이뉴스 누리꾼들에게 알려져 그분들의 도움으로 한 달 만에 2쇄를 찍게 되고, 지난 15일 내 통장으로 1쇄 인세 전액 128만 7천원이 입금되었다.

나는 즉시 지금도 부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하시는 박기서 선생에게 쉬는 날을 문의하자 수요일과 일요일이라 하여, 우리 다섯 사람은 지난 주 수요일인 4월 17일, 서울에서 가장 찾기 좋은 광화문 네 거리 비각 앞에서 만나 출판기념회를 가진 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돌비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끝으로 우리 다섯 사람이 즐겁게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신 오마이뉴스 누리꾼 여러분과 오마이뉴스 편집부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지난날 나는 의롭게 살지 못했지만, 앞으로 남은 날 의롭게 사신 분의 이야기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올곧고 쉽게 써서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일을 죽는 날까지 하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출판에 얽힌 뒷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박도 올림"

덧붙이는 글 | 2013. 4. 19.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집중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다시듣기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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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한미정상회담, '박근혜 해법'을 제시하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박 대통령, 신뢰 프로세스 구체화해야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임경훈 서해문집 편집인(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21 오후 1:47:14

 

한반도에 드리웠던 위기의 먹구름이 조금씩 걷힐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대화의 뜻이 있음을 밝혔고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중일을 방문하고 북한 비핵화 대화에 대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냈다. 케리는 마지막 방문지인 중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과 함께 6자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주 빨리(very quickly) 움직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도 나온 상태에서 이제 관심은 5월 7일에 있을 한미정상회담으로 쏠리고 있다.

4월 18일 <프레시안>은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정세 변화를 면밀하게
진단하고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4월 18일 북한은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화를 원한다면" "도발 행위를 중단, 사죄"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를 철회"하라고 밝혔다. 정세현 총장은 북한이 내건 '조건절'에 주목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5월 7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최우선순위로 놓고 대화에 임하라고 주문했다.

정 총장은 이 과정에서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에 비해 속도가 뒤처지는 것 같다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확신을 북한에 심어주면 자연스럽게 남북 관계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정 총장은 3월에 한미독수리훈련이 시작되는 바람에 박근혜 정부가 얘기한 신뢰 프로세스를 구체화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면서 한미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방향성에 대해 합의한 뒤, 국민적 동의를 구하며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북한도 핵보유국 지위에 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실험을 두 번 성공한 것 가지고 국제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핵보유국 지위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군사적 안전 보장과 경제지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편집자>
 

▲ 정세현 원광대 총장 ⓒ서해문집


프레시안 :

지난 8일 북한의 개성공단 잠정 폐쇄 조치로 최고조에 이르렀던 한반도 안보 위기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의사 표명,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대북 대화 제의 등으로 일단 소강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중일 방문을 마친 케리 장관이 대화 제의를 한 데 대해 북한이 강경 반응을 보였습니다.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을 통해 "한미 양국이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 모든 도발 행위들을 즉시 중단하고 전면 사죄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러한 북한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정세현 : 북한의 화법에서는 조건절이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때는 조건절이 주절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을 때도 있어요. 조건절은 그냥 넘어가고 주절에서만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핵심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도발 행위들을 즉시 중단하고 전면 사죄하라"는 주절보다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북한이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이란 표현을 쓴 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의 대화 제의에 화답한 것으로 보입니다. 케리 장관의 발언에서 뭔가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봐야 해요. 케리 장관은 양제츠(杨洁篪) 중국 국무위원과 회담한 후 발언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미중 양국이 노력할 것이며, 이를 매우 빨리(very quickly) 진전시키기 위해 두 나라가 추가 협의(further discussions)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2005년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6자회담은 물론 2자회담, 4자회담도 가능하다고 얘기했어요. 북한은 그걸 보고 '괜찮은 메시지구나' 하고 판단한 뒤 이런 반응을 보인 걸로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 득실을 많이 따졌을 거예요.

물론 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은 2005년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내세우면서 비핵화보다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먼저 논의하자고 요구할 겁니다.


프레시안 : 2자회담, 4자회담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세현 : 만약 6자회담부터 열자고 한다면 판을 어떻게 짤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협상과 기싸움, 물밑 접촉 등을 거쳐야 합니다. 일을 쉽게 풀려면 미국과 북한이 먼저 만나서 판을 어떻게 짤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한 뒤에 6자로 가는 게 빠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2.13 합의는 형식은 6자회담이었지만 그전에 2006년 11월부터 미북
양자가 틀을 짜놓고 6자회담에서 추인받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실천 로드맵인데,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이 복잡합니다. 9.19공동성명은 미국에서는 국무부가 주도하여 2005년 9월 19일에 합의됐는데. 바로 다음 날인 9월 20일부터 재무부 쪽에서 북한의 불법 자금 세탁에 이용된다는 이유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경제 제재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9.19공동성명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죠. 아무리 다른 부서라지만, '한 대통령 아래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북한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죠. 그러면서 '미국이 우리를 살살 달래서 우리 핵능력만 약화시키고 실질적으로 우리 뒤통수를 때려서 무장 해제를 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으면서 바로 핵폭탄 만들 준비를 했습니다.

결국 그로부터 1년 후인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하지 않습니까? 핵실험을 하고 나니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을 압박하던 부시 정부가 11월에 북한과 양자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해주면 되겠느냐. 9.19공동성명이 매력적인가? 우리가 그동안 사정이 있어서 이행하지 못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하자.' 이렇게 하면서 그 이행 계획을 만든 게 2.13합의입니다. 어쨌든 북미 양자 협의가 선행됐기 때문에 짧은 기간 안에 6자회담에서도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2자회담이 매력적입니다. 4자회담, 6자회담으로 가기 위해서는 2자회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일 겁니다. 18일에 "대화를 원하다면"이라는 토를 달았지만, 사실은 거기에 북한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죠.

4자회담이 북한에 매력적인 이유는 9.19 공동성명 4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9.19 공동성명은 6개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1항이 한반도 비핵화, 2항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3항
에너지 등 대북 경제 지원, 4항이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입니다. 구체적으로 4항은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고 돼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별도의 포럼 관련 당사국이란 한반도 정전 체제 및 평화 체제와 관련된 남북미중 4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남북미중 4자회담은 곧 한반도 평화 체제에 관한 논의를 의미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4자회담이라는 것이 6자회담보다 핵심이에요. 한반도 평화체제를 요구하는 북한으로서는 4자회담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이 반가운 일일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를 원한다면"이란 표현을 쓰게까지 만들었는데, 이렇게 띄워놓고 또다시 미국에서 북한을 향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느니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들어가는 조치를 선행하라"느니 하는 식으로 나오면 북한은 미국의 진의가 뭐냐 하면서 의심하고 대화 테이블에 안 나올 겁니다.

그동안 북미대화, 북핵회담의 역사를 보면 클린턴 정부 때부터 그래 왔습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가 모양을 만들어 놓은 뒤 그 이행을 위해서는 실무자들이 들어갑니다. 이들은 대부분 북한
전문가나 외교 전문가가 아니라 핵 검증 전문가들입니다. 이들이 들어가서 사사건건 "이건 이렇게 고쳐라", "저건 저렇게 고쳐라" 하면서 미국 쪽에서 합의 사항을 이행할 시간을 자꾸 늦춥니다.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도 이행 못 한다" 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원칙적인 합의를 해놓고 난 뒤 이런저런 기술적 이유를 대면서 자꾸 지원을 늦추니까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본심이 뭐냐는 의심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북한은 미국이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더 강수를 뒀죠. 그런데 우리는 미국에서 원인을 제공했던 부분은 생각 안 합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니까. 그런데 국제 정치, 외교에서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쪽은 계속 좋은 친구(good guy)이고 다른 쪽은 계속 나쁜 녀석(bad guy)일 수 있겠습니까? 엄연히 상대가 있는 문제인데.

박 대통령이 4월 9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위기를 조성하면 타협하고 지원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된다고 발언했는데, 좁은 대롱을 통해 북한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식으로 보게 됩니다. 대롱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라버리고 보는 것이죠. 미국도 약속 위반을 많이 했습니다. 클린턴 정부만 해도 1994년 10월 21일에
제네바 기본 합의를 체결해놓고 17일 후인 11월 7일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한 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제네바 기본 합의를 제대로 이행을 못 했습니다. 그다음부터 북한은 미국의 본심을 의심하게 됐습니다. 자신들의 핵 능력만 동결시키고 시간을 끌면서 다른 방법으로 북한을 와해시키려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죠. 그래도 클린턴 정부 때까지는 성의 있게 나가면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은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2002년 10월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제기하기까지 북핵 문제는 없었습니다. 북한이 경수로 건설에 대한 기대 때문에 핵 활동을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부시가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구실로 경수로 건설을 중단시키니까 2003년부터 북한은 IAEA 사찰관을 추방하고 핵 활동을 재개하는 등 강수를 두었습니다. 이에 부시 정부는 북핵 문제를 다자회담 방식으로 풀자면서 5자회담을 제의했고, 북한이 다시 6자회담을 역제의해 2003년 8월 6자회담이 성사됐습니다. 장시간 협상을 거쳐 2005년 9.19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BDA 제재가 시작된 거죠.

이런 지난 역사 때문에 북한이 미국의 진의에 대해 계속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오바마 정부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확고한 자세를 확립해야 하는데, 그것을 한국 정부가 촉진시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평화협정 문제를 우선적으로 협의하는 4자회담을 열어도 좋다는 열린 자세로 나가 북한 핵 활동의 진전을 막아야 우리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협정을 뒤로 미루면 북한은 회담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서 핵 활동은 계속할 것이고요. 그렇게 계속 시간을 보내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북한에 핵멱살 잡혀 헉헉거리면서 미국에 매달려 핵우산도 확대해야 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도 사야 되고 국방 예산도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4자회담도 좋다, 북미회담도 빨리 열어라',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합니다.


프레시안 : 케리 장관의 대화 제의에 북한이 내심 관심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겠군요?

정세현 : 그렇죠. 북한이 말로는 사죄하라 뭐하라 했지만, 20일 정도 남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좋은 말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독수리 훈련 종료 이후 상황까지 고려한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한이 저 정도 나오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는 데 우리가 미국을 리드해나가야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북핵 문제가 우리만큼 절박한 것이 아닙니다. 이란 문제가 더 중요하고. 북핵은 해결되면 좋고 안 돼도 크게 나쁠 것은 없는 것이에요. 핵기술이 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로 이전만 안 된다면, 즉 핵 비확산만 보장된다면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은 하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을 용인하는 것이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국방부에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국방부나 군산복합체에 북핵은 꽃놀이패예요. 우리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이지만.

프레시안 : 2005년 9.19공동성명 때와 달리 3차례 핵실험에 성공한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국이라고 하는데, 만약 북한이 회담 테이블에 나온다면 핵보유국 지위로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핵보유국 인정을 해줘야 회담에 나올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죠. 이미 그런 뜻을 비쳤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평가들이 나오니까 북한은 "이제 비핵화회담은 필요없다. 핵군축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었지요. 4월 20일에도 그런 요구를 내놓았지요. 북한으로부터 그런 요구나 주장이 나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케리 장관의 한중일 순방 후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핵탄두의 미사일 탑재 능력은 없다고 본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기술 수준이 아직 핵보유국이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을 수 있는 경량화, 소형화 기술이 없다는 겁니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미국이 절대 인정 안 할 겁니다.

그럼 핵보유국 인정을 안 해주면 북한이 회담에 안 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데, 아마 평화협정 문제의 진지한 논의에 대한 의지가 확인되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 2월 12일 북한의 핵실험 보도. 북한은 '제3차 지하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북한도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핵실험 3번 해서 2번 성공했는데, 그걸 가지고 핵보유국이라 하는 건 대내용이죠. 2번 실험한 걸로 국제적인 핵보유국 인정은 받기 힘들 거예요. 파키스탄의 경우를 보면 적어도 5번은 해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크게 걱정할 대목은 아닙니다.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잘 풀려나가면 북한도 핵보유국 주장을 계속하면서 회담 진전을 가로막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보다 시급한 것이 평화협정이기 때문입니다. 군사적 안전 보장을 받아야 하니까. 나아가 미국과 수교가 돼야 국제 사회의 경제 지원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미국과 수교한다는 것은 단지 미국의 경제 원조뿐만 아니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곳에서 대북 차관을 제공받으려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이 승인을 해줘야 하니까요.

프레시안 : 미국은 핵 비확산에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반면 우리는 반드시 비핵화까지 이루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양국의 정책 목표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정세현 : 미국의 본심이 뭐냐는 것을 따져봐야 합니다. 아마 미국은 비핵화면 좋고 비확산도 크게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일 겁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이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히 비핵화를 고집하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외교에서 공식적인 입장(official statement, proclaimed policy)과 본심(real intention, real strategy)이 이율배반적인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공표해왔던 공식적 입장에 입각해서 미국을 압박하면 국제 평화 유지 책임을 자처해온 미국이 '사실은 내가…' 하면서 본심을 내세우기는 힘듭니다. 공식적으로는 비핵화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비확산이 군산복합체의 본심일지는 모르지만, 국무부와 백악관, 국방부까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비핵화입니다. 명분 면에서 미국이 비확산을 공식 입장으로 채택할 수 없는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또 그게 국제적으로도 말이 됩니다.

가끔 전문가들의 기고문이나 토론 내용을 보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비핵화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수령님의 유훈이다"라는 표현을 북쪽에서 많이 쓰는데, 이건 자신들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없애려면 남쪽 것도 없애야 한다는 것이죠.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식으로 말하면 조선반도의 비핵화인데 이걸 북한의 비핵화로 동일시하는 경우, 남북대화나 6자회담에서 중대한 착오가 생길 수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도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반도 남쪽 미군의 전술핵은 1991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채택 때 모두 철수했습니다.

그 뒤 한반도 안보 위기 때마다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해도 미국이 거절했습니다. 전술핵을 들여오는 것은 비밀리에 할 수 없는 일이고, 핵을 들여오면 당장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미국 지상군의 핵무기는 없습니다. 다만 핵우산을 통해 북한 미사일에 대응해 요격 미사일을 쏴줄 수도 있고, 괌 등의 기지에서 핵항모나 스텔스 전폭기에 탑재하고 있는 핵무기를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없앤 건 아닙니다.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 우리식으로 하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 속에는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키려면 남쪽도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가 실려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만 뺐으면 우리는 걱정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부산에 입항하는 미군 핵추진 잠수함이나 이지스함에 싣고 다니는 무기 중에 핵미사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한반도 해역에 출몰하지 말라는 게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 요구, 한반도 비핵화 요구입니다.

프레시안 : 오는 5월 7일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간의 한미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한국 정부의 전략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정세현 :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두 정상 간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공감대를 구축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을 협의해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케리 장관이 이번 한중일 순방 과정에서 언급한 2자회담, 4자회담 방식으로 일을 시작해서 핵문제 해결의 수순을 빨리 밟자고 요구해야 합니다.

지난번 정세토크에서 얘기했던 '힐러리 해법'을 다시 추진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바마 1기 때 힐러리 국무장관이 내놓은 해법의 골자는 9.19 공동성명의 4항이었던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협의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힐러리 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이 세 가지를 해주겠다고 했었죠. 첫째가 미북 수교, 둘째가 평화협정 체결, 셋째가 경제 지원이었습니다. 오바마 정부 출범 초기인 2009년 2월 13일에 처음 이 얘기를 했고, 1차 북핵실험 이후 7월 23일과 11월 21일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런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비핵-개방-3000'을 내세우며 북한의 선비핵화를 요구한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결국 진전을 보지 못했죠.

미국으로서는 이명박 정부가 자꾸 말리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그런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온 말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입니다. 북한이 위협적인 행동을 해도 거기에 놀라지 않고 자세를 바꿀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애매한 정책을 정당화하는 개념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오바마 1기 정부의 발목을 잡던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2자회담, 4자회담 빨리 해라. 평화협정 겁낼 것 없다"며 제안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번 정세토크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미 지난 1992년 1월 미국을 방문한 김용순 당시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가 아놀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에게, 그리고 2000년 10월에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북한과 수교만 해주면 평화 유지자로서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용인하겠다고 말한 바가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평화협정 문제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2000년 10월 김정일-올브라이트 회담 내용을 확인·다짐하는 절차는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과 조건이라면 우리 입장에서도 평화협정 논의를 못 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 미군의 주둔 문제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많지만, 2009년 힐러리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대책도 없이 평화협정 우선 논의를 제안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이번 케리 장관의 4자회담 언급도 난데없이 튀어나온 얘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번 정상회담에서 '힐러리 해법'과 '케리의 4자회담 구상'을 좀 더 현실성 있게 수정·보완한 '박근혜 해법'을 미국에 제안하고 합의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프레시안 : 그렇지만 평화협정 논의를 빌미로 북미 관계가 너무 진전되면 한국이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통미봉남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고, 또 개성공단 문제라든가 남북 관계 개선에 관한 요구가 나오지 않을까요?

정세현 : 모양새로는 남북 관계가 먼저 풀리고 긴밀해지는 토대 위에서 미북 관계가 빨리 개선되도록 촉진하고 도와주는 게 좋죠. '선 남북 후 북미'가 모양이 좋은데. 불행히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명박 정권에서 계획을 세웠던 독수리 훈련이 너무 세게 진행됐어요. 훈련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와서 더 강해진 건 아니에요. 대개 보면 올해 훈련 계획을 전년도에 세웁니다.

김영삼 정부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부 말년인 1992년 가을에 국방부가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결정해버리니까 새 정부 들어 김영삼 대통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훈련에 들어갔고, 이게 한 원인이 되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죠. 1992년에는 남북대화 진전을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했었는데,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팀스리트 훈련을 1993년에 재개하니까 북한이 발끈한 거죠. 당시 팀스피리트 재개를 결정한 미국 측 주역이 바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국방장관이었고 아들 부시 대통령 때는 부통령으로서 네오콘의 수장 노릇을 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던 딕 체니였습니다.

1993년에 팀스피리트 훈련이 재개되면서 그해 3월 북한이 NPT 탈퇴 선언을 하자 북미 대화가 먼저 시작됐어요. 핵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미국이 미북 대화를 시작하려 하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그걸 막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김영삼 정부의 견제나 불평은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고 북핵 문제 해법을 논의했습니다. 우리가 못 하게 말리는데도 미국이 자기 필요 때문에 그냥 가버리니까 미북 간에는 대화가 있고 남북 간에는 대화가 막히는 상황, 이것이 통미봉남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김영삼 정부 시기의 그러한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무작정 미북 대화를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권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차피 키리졸브, 독수리 훈련 때문에 남북 관계도 꼬이고 개성공단도 막힌 상황에서, 개성공단이 시급하다 할지라도 남북관계는 뒤에 시작해도 좋다는 열린 자세로 북미 대화가 먼저 될 수 있도록 밀어주면 북한도 개성공단 등과 관련된 남북 대화에 나오리라고 봅니다. 물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그것대로 지금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 문산읍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관계자들이 출경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 30분경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단 10명의 개성 방문을 불허했다. ⓒ뉴시스


최근 정부의 남북 대화 관련 발표 내용을 보면, 남북 관계 의제를 개성공단에만 국한하려는 것 같은데, 이것도 입장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성공단 출입과 조업 재개만 얘기한다면 북한에게는 큰 매력이 없습니다. 개성공단 문제를 얘기하려면 자연히 이명박 정부 시기 중지됐던 2단계 200만 평 개발을 다시 시작하자는 얘기를 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의 규모를 지금보다 확대하자는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으라는 것이죠.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이 중단시켰는데. 우리가 중단시킨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개성공단 출입 자유화하고 같이 묶어야 당국 차원의 대화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두 문제를 포괄적으로 묶어서 당국 간 경제 회담으로 시작하여 이후 장관급 회담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취해야 합니다. 개성공단 문제 하나만 가지고 마치 계란 노른자만 쏙 빼먹으려는 식으로 접근하면 별 효과를 못 볼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남북·미북 관계가 동시에 가면 좋겠지만, 필요하다면 미북 관계가 한발 먼저 나가도 좋다는 자세로 접근하는 게 북한으로 하여금 북핵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길이라고 국민들에게 설명하면 될 것입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에 그런 전향적 자세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것도 아직 구호 차원이지 구체적 내용이 없고, 이번 위기 대응 과정에서 우왕좌왕했다는 비판도 있던데, 한반도 평화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걸로 보시는지요.

정세현 : 신뢰 프로세스에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사실인데 신뢰 프로세스를 구체화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구체화할 수 있는 시점인 3월부터, 그전보다 한층 강도가 높아진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이 시작됐죠. 키 리졸브 훈련은 비록 도상훈련이라고 해도 북한의 심장부를 타격한다는 개념으로 훈련을 했다는 것이 북한을 자극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북한이 강경 대응한 거 아닙니까. 바로 이어진 독수리 훈련에서는 B-52, B-2 폭격기에, F-22 전투기가 뜨고 핵잠수함, 이지스함까지 왔다갔다 하니까 북한이 그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 저항하지 않았습니까? 신뢰 프로세스의 내용을 구체화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시간도 없었죠.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는데 한미정상회담에서 신뢰프로세스의 방향성에 대한 합의를 한미 간에 먼저 끝내놓고 그걸 토대로 내용을 구체화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정권 출범 6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앞으로 5년 가까이 쓸 것을 미리 내놓는 건 대통령이 그 분야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대통령이 아닌 한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니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자신이 1971년 7대 대선 때부터 남북 관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었고, 15대 대선 직전에는 아태 평화재단을 통해 3단계 통일론까지 내놨기 때문에 그때는 로드맵이란 게 있었습니다. 지금의 신뢰 프로세스에는 그런 게 없지만 한미정상회담 이후 만들면 됩니다. 이전 정부에서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진 선례를 잘 따르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로드맵을 만들 때는 외부 전문가들 의견을 잘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대북 정책은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중론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 핵심에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신뢰 프로세스의 로드맵을 만들어서 우선 국민들부터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북한에 써먹으려면 그 대상인 북한의 이해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에게도 남북 관계 발전에 대한 신심을 줘야 하거든요.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받으려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널리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북 정책에 관한 한 비밀 군사작전 계획이라면 몰라도 남북 관계 특히 통일 문제에는 국민적 동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방부와 통일부의 차이가 그것이에요. 공개적으로 해야 하고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야만 대북 차원에서 추동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국제적 협력을 끌어들이는 데서도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하면 북핵 문제가 풀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있습니다. 핵실험 등 북한의 행동에 대해 중국이 불쾌해하고 있다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중국 대북 압박을 주문하고 있는데.

정세현 : 북한이 핵문제로 하도 중국을 곤란하게 만드니까 중국도 짜증이 날 수도 있죠. 하지만 더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중국은 후진타오(胡錦燾) 주석 후반기부터 동북3성 진흥 계획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계획 속에는 길림성 쪽에서 나진·선봉으로 나가는 출해권을 확보하는 문제가 아주 중요합니다. 중국이 자기 돈을 투자해서 나진·선봉 쪽으로 고속도로 등의 인프라를 만들고 있어요. 그것은 중국의 경제 부흥에 북한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뜻입니다. 또한 중국은 서쪽으로는 신압록강 대교를 건설 중입니다. 신압록강 대교는 앞으로 남한으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이 중국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을 어떻게든 자기 편으로 끌어안아야 하는데 자꾸 골치 아픈 일을 벌이니까 중국도 피곤할 겁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북한을 관리하라고 주문하는데 여기에 또 반응을 안 할 수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세게 나가다 북한이 튕겨 나가면 동북3성 진흥 계획이 무너집니다. 동북3성에서 생산하는 물자를 중국 내륙으로 수송하는 데도 북한을 통해야 편하고, 수출할 물건들을 나진·선봉을 통해 상하이나 홍콩으로 옮기는 물류비용이 훨씬 싸게 먹힙니다. 나진·선봉·신의주는 중국 경제 순환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북한을 중국보고 내치라고 하는 것은 순진한 요구입니다.

중국이 눈앞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도 북한을 함부로 내칠 수 없지만 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우리는 한미동맹이 최고인 줄 알고 그것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중국이 외국과 맺은 조약 중 가장 강력한 것이 1961년 맺은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입니다. 그 닷새 전인 7월 6일 김일성이 소련에 가서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를 만나 '북·소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6월 29일 평양을 떠난 뒤 7월 6일에야 동맹조약을 체결했으니, 사실은 그동안 소련이 북한의 요구를 잘 안 들어주었다는 얘기죠. 소련과 어렵사리 조약을 체결한 뒤 바로 중국으로 가서 11일에 북·중 동맹조약을 체결한 겁니다. 두 조약 1조에는 똑같이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하거나 개전상태에 놓이게 되면 상대방은 지체 없이 군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만큼 강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련의 조약 효력 기간은 10년이고 이후 5년씩 연장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 중간에 한쪽이 문제 제기를 하면 고칠 수도 있었습니다. 5년씩 연장해오다 1992년 러시아 쪽에서 이런 조약은 부담돼서 안 되겠다면서 북한에 폐기를 통보했습니다. 그런 후에 2000년 9월 '북·러 신(新)우호선린협력조약'을 새로 체결했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이제 일반적 우호관계가 된 것입니다. 조소동맹은 이미 1992년에 끝났죠. 반면 조중동맹 조약은 20년 기간으로 하되 또 20년씩 연장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폐기하려면 쌍방이 합의해야 합니다. 지금도 강력하고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이 중국에게는 중요한 국가라는 얘기죠. 사정이 이런데 중국보고 북한을 내치라? 그건 물정을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

더 근본적인 건 한(漢)나라, 당(唐)나라 이래 중국은 전통적으로 주변 유목민족들이 중국을 괴롭혀도 그들을 다스리는 데 군사적 조치가 아닌 화친(和親)으로 다스려왔다는 것입니다. 귀찮게 하면 먹을 것을 주거나 공주를 시집보내 그 왕을 사위로 만들어서 관리하는 식으로 화친(和親) 외교를 했습니다. 중국 외교에는 기미부절(羈縻不絶)이란 중국 외교 방침도 있습니다. 기미는 소나 말의 고삐와 재갈이란 뜻인데, 고삐를 느슨하게 놔두고 일정한 테두리에서 움직이게 하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려 하면 경고를 하거나 제재를 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국 외교의 기본이고 전통 외교의 방식입니다. 그게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저우언라이(周恩來) 평화공존 5원칙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내정불간섭.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평화공존, 호혜평등입니다. 주변국이 중국의 수염을 뽑으려는 짓만 안 하면 웬만하면 다독거려서 데리고 가는 것이 중국 주변 외교의 기본입니다.
 

▲ 정세현 원광대 총장 ⓒ서해문집


오늘날 중국 외교 방침은 4자성어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덩샤오핑(鄧小平) 시절 도광양회(韜光養晦, 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로 시작해 힘을 기른 뒤 후진타오 시대인 2003년부터는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 2004년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적으로 참여해 내 뜻을 관철시킨다)를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시키는 대로만 안 한다, 행동이 필요하면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었죠. 그러다 2005년에 와서는 화해세계(和諧世界, 세계와 조화롭게 어울린다)를 얘기했습니다. 조화롭게 만든다는 뜻이지만, 그 말 속에서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주변국들과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얘기는 골치 아픈 놈들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자기 말을 듣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시진핑(習近平)은 중화부흥(中華復興), 중국의 꿈(中國夢)을 들고 나왔습니다. 화해세계와 연결되면서도 "중국은 하늘 아래 가장 가운데 있는 나라다. 이게 중화다"라는 걸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흥시키겠다는 방침으로 나가는 데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미국과 관계 설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게 붙어 있는 북한을 어떻게든지 안정적으로 관리해야만 중화부흥으로 가면서 동북아에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국에다 대고 북한을 버리라니요? 중국이 러시아에 가서 낡은 무기 사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도, 파키스탄과도 손을 잡고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했죠. 미국이 베트남에 가서 협력을 한 데 이어 러시아에도 손을 뻗치려 하니까 중국이 이를 차단하기 위해 수호이-35 전투기 같은 낡은 무기를 사줬습니다. 러시아더러 중국 편이 되든지 아니면 최소한 중립을 지키라는 얘기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가서 200억 달러를 차관으로 주기로 한 것이나, 잠비아에 50억 달러를 원조하겠다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걸 보면서 시진핑 시대 중국 외교가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의 '3개 세계론'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오쩌둥 시절 중국은 미국 중심 나라들을 1세계, 소련 중심 나라들을 2세계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그 축에 못 끼거나 둘 다 상대 안하는 나라들인 아프리카, 동남아 등의 나라들을 3세계로 분류하고, 그들에게 중국과 손잡고 미국, 소련에 대항하자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중국의 패권을 확립하겠다는 것이 '3개 세계론'이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천하 3분론관도 비슷한데, "지금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 안 된 나라들은 모두 중국 편으로 만들겠다. 그렇게 해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과 한번 힘겨루기를 해보자", 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도 북한은 중국에게 중요한 나라입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중국에 어떤 합리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중국에 기대할 수 있는 건 북한이 비핵화를 확실히 할 수 있게 설득하는 일입니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방식은 잘 안 쓸 거라고 봅니다. 아무튼 북한의 비핵화가 중국에도 바람직합니다. 비확산은 중국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는 용인하되 대외 확산만 못하도록 막으면서, 북한의 핵무기를 빌미로 중국에 대한 군사적 봉쇄 조치를 강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중국도 비확산보다는 비핵화를 바란다?

정세현 :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한중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 중국이 확실한 입장을 정립하도록 협조를 해야죠. 뭐든지 미국에게만 부탁하거나 매달리지 말고, 북핵 문제 때문에라도 독자적인 중국 외교를 강화해야 합니다.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임경훈 서해문집 편집인(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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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폭로에 맞서는 경찰수뇌부 ‘꼴불견’

 

 
권은희 폭로에 맞서는 경찰수뇌부 ‘꼴불견’
 
[집중분석] 경찰수뇌부 VS 일선 수사관...기막힌 공방전
 
육근성 | 2013-04-21 09:08:1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선 투표 55시간을 앞두고수서경찰서장이 ‘심야 브리핑’하겠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에 착수한지 불과 3일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 김씨 사건이 대선과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가 개입된 한판의 ‘쇼’였다.

 

 

‘국정원 게이트’에 맞서 홀로 싸워온 권 과장

 

 

그 상황에서 시선을 끄는 일선 경찰수사관이 있었다. 초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당시 직책)이 바로 그다.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몇 차례 소신발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던 그가 돌연 서울경찰청장의 인사명령으로 다른 곳으로 전보된 건 지난 2월 4일. 당시 경찰은 권 과장의 전보 이유로 “과장급 경정의 경우 통상 근무기간 1년이면 교체하는 것이 인사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등 진보 언론의 판단은 달랐다. 권 과장의 경질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관련이 있다고 본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종로서, 남대문서, 영등포서 등에서 1년 넘은 경정급 7명이 서장의 특별요청으로 그대로 잔류한 점을 들어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중요한 사건을 맡고 있는 권 과장에 대해 잔류 요청을 하지 않은 저의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권 과장은 2005년 여성 사법고시 최초로 경찰에 특채된 ‘변호사 출신 경찰’이다.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며 수사발표 시가와 발표 내용 등을 놓고 경찰 수뇌부와 잦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신과 원칙을 주장하는 그에게 부담을 느낀 ‘윗선’이 ‘내부 인사방침’을 빌미삼아 그를 경질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던진 ‘수사 개입 폭로’

 

 

보수편향된 주장을 펴는 <조갑제닷컴>은 권 과장이 경질되자 이를 환영하는 글을 게재했다. ‘경축! 제멋대로 방첩비관 파헤치던 수사과장 교체’라는 글을 통해 “윗선과 마찰까지 빚어가며 무리하게 방첩기관의 업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권은희 수사과장의 교체는 환영할 일”이라며 “경찰은 더 나아가 즉시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권 과장이 입을 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경찰의 황당한 수사발표가 있자마자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찰 수뇌부가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현직 일선 수사관이 경찰수뇌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권 과장에게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일 수 있지만 여론은 권 과장 편이다. 경찰 수뇌부도 당분간 권 과장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권 과장은 경찰수뇌부의 수사 방해와 은폐 행위를 조목조목 짚었다. 상당히 심각한 내용도 들어있다. 대선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정치개입을 한 국정원과 경찰이 한패였다는 얘기다. 권 과장의 폭로 내용이다.

 

 

충격적 내용...경찰은 국정원과 한패

 

 

▲수사팀(권 과장)이 국정원 여직원 컴퓨터에서 대선 관련 78개 키워드를 발견하고 해당 키워드를 이용한 하드디스크 분석을 서울경찰청에 의뢰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이 ‘키워드 수를 줄여서 제출하라’고 요구해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등 4개로 축소됐다.

 

 

 

▲서울청이 국정원 직원 김씨의 컴퓨터에 들어 있는 문서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일이 김씨의 허락을 받았다.

 

 

▲경찰청과 서울청 고위관계자들이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했다. ‘국정원 직원에 대해 공직선거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가자 경찰청 고위간부가 수사팀에 전화를 해와 집요하게 캐물었다.

 

 

▲경찰 고위간부가 수사팀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국정원 직원 김씨에 대해 불법선거 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언론에 흘리지 말라”는 취지의 지침을 내렸다.

 

 

▲국정원 김씨와 함께 댓글 작업을 한 이씨의 존재가 드러나자 경찰 상부가 개입해 수사팀에 주의를 줬다.

 

 

▲국정원 김씨의 컴퓨터 2대에 대해 서울청 디지털증거분서팀에게 분석을 의뢰했지만, 분석결과가 수사팀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중간수사결과(2012.12.16)가 발표됐다. 수사팀이 서울청에 강력하게 항의해서야 수사발표 이틀 후 분석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수사 막판 보고라인에서 권 과장이 제외돼 있었다.

 

 

▲중간수사결과는 일선 수사팀(권 과장)이 아닌 서울청이 만든 수사보고서에 근거했으며, 수서경찰서는 서울청으로부터 이를 넘겨받은지 30분만에 보도자료로 언론에 배포했다.

 

 

▲수사책임자(권 과장)조차 경찰이 중간수사결과라며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을 알지 못했다.

 

 

▲서울청이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핵심 증거물을 수사팀에게 돌려주지 않으려 했으며, 심지어는 이를 피의자 김씨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등 지속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경찰수뇌부 VS 일선 수사관...기막힌 공방전

 

 

권 과장의 폭로에 대해 경찰청이 반박하고 나섰다. 경찰수뇌부가 일선 수사관 한 명을 상대로 공방을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터진 둑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경찰수뇌부의 몸부림이 꼴불견이다. 서울청이 권 과장 폭로 내용에 대해 반박하면 권 과장이 이를 재반박하는 식의 공방전이 벌어진다.

 

 

▷서울청:하드디스크 분석 키워드를 줄이라는 식으로 개입한 게 아니다. 대선과 상관없는 단어가 많아 ‘박근혜’ ‘문재인’ 등 4개만 선정한 것이다.

=>권 과장: 키워드 선정은 수사실무팀의 권한이지 분석을 의뢰받은 서울청의 소관이 아니다.

 

 

▷서울청:국정원 김씨가 분석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참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권 과장:사생활 보호와 분석시간을 핑계로 김씨에게 허락을 받은 파일만 열어 볼 수 있게 했다.

 

 

▷서울청:사전에 보고되지 않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돼 수사팀에게 경위를 물어본 것이다.

=>권 과장: 경찰청에서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수사에 대해 압력을 넣었다.

 

 

▷서울청:수사 중이므로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유출하지 말라는 취지의 주의를 준 것은 있다.

=권 과장:경찰청 고위간부가 수차례 전화를 해 ‘불법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흘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권 과장의 신변이 걱정된다

 

 

경찰 수뇌부와 일선 수사관이 벌이는 공방전이 가관이다. 언론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부하 직원 한명과 설전을 벌이는 경찰 수뇌부. 체통이고 수치심이고 다 내던졌나 보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예기다. 어쩌다가 경찰이 이렇게 됐을까. 떳떳하지 못한 게 얼마나 많기에 체면까지 내던지고 일선 수사관의 일거수일투족에 저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우려되는 건 권 과장의 신변이다. 경찰수뇌부가 들고 일어선 상황에서 일개 일선 수사관이 버텨봤자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는가. 권 과장 같은 유능하고 올곧은 인재가 경찰을 떠나는 건 국민에게도 큰 손실이다.

 

 

중차대한 정치적 사건이라서 더욱 그가 걱정된다. 자칫 부정선거 논란으로 번질 판인데 박 정권이 중립적인 판단을 하겠는가. 막판에 상황이 꼬일 경우 경찰 수뇌부를 비호할지언정 바른 말 하는 권 과장을 보호하지는 않을 게 뻔하다. 야당과 국민여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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