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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포한 대조선 적대행위는 쓰디쓴 참패로 종말

 

 

 

북, 미국에 상대 똑똑히 알고 덤벼라
 
횡포한 대조선 적대행위는 쓰디쓴 참패로 종말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4/22 [08:13]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미국과의 일전불사, 임전무퇴, 필승불패를 외치는 조선은 전시 상태에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조선이 한미당국을 향해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상대를 똑바로 보고 덤비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기사를 내 보냈다.

조선로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은 “미국이 남조선괴뢰들과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라는데 맞도장을 누른 후 조선반도정세는 더욱 험악한 지경에로 치닫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22일 국제면에서 “그 누구의 국지도발시 미제침략군이 남조선괴뢰군과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이 계획은 남조선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을 강화하고 임의의 시각에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을 도발할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려는 기도의 산물로서 미국이 우리를 반대하는 전면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몹시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의도를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국이 북남사이에 국부적인 무장충돌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미제침략군을 자동적으로 개입시킬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가지게 되였다는데 이 계획의 위험성과 엄중성이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지금 미국은 이 계획에 따라 본토와 태평양방면에서 미제침략군의 핵전쟁장비들까지 총 발동시켜 임전태세를 갖추게 하고 있다.”며 긴장 격화의 원인이 미국임을 주장했다.

신문은 미국이 독수리 훈련에 동맹국들과 참가시키고 방대한 군사무력을 투입한 사실을 언급하고 한미 당국 관계자들의 호전적 발언을 문제 삼으며 “우리(조선) 공화국의 더없이 성스러운 기념비들을 감히 해치기 위한 천인공노할 음모를 꾸미고 백주에 서울한복판에서 깡패무리들을 내몰아 반공화국 집회라는 것을 벌려놓고 우리 최고 존엄의 상징을 훼손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마랗고 “이 극악무도한 망동은 최고 존엄을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우리 군대와 인민을 더는 참을 수 없게 건드리고 있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또한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평화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우리 인민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우리 공화국이 전후 오늘까지 조선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협정으로 바꿀데 대한 제안을 비롯한 수많은 평화 제안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해 성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온 것도 숭고한 평화 애호적 입장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였다. 우리 인민에게 침략자들과 맞설 힘이 없어서도 아니며 더욱이 의지가 나약해서도 아니였다.”며 조미 사이에 평화적 해결 노력을 위해 인내력을 발휘했음을 강조했다.

이어 “그러나 미국의 역대 통치배(한국 대통령)들은 우리의 이러한 평화 애호적 입장을 나약성의 표현으로 오판하고 그릇된 대조선 침략정책에 매달려왔다.”며 21세기에 들어 와서도 대북 적대 정책이 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현 오바마 미행정부는 저들의 실패한 대조선적대시정책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오늘 그것을 더욱 강행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미국을 성토했다.

아울러 북의 인공위성 발사와 3차핵시험에 대한 미국과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의의 부당성을 확인하고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위성발사권리를 난폭하게 침해하고 반공화국핵 압살소동을 계단식으로 확대하고 있는 미국 등 적대세력들의 전횡과 횡포에 우리 공화국은 부득불 자위적인 지하 핵시험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핵개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특히 핵 무력 건설을 부단히 높이는 것은 정당하다며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침략자들이 그것을 기어이 강요하려 하는 형편에서 단호히 맞받아나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노골적인 핵공갈과 위협이 강화되는 조건에서 우리도 핵으로 그에 대응하는 것은 응당하다.”고 정당성을 피력했다.

로동신문은 “미국은 핵 공갈을 포함한 횡포한 적대행위로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고 단호한 결심을 꺾어보려고 어리석게 놀아대지 말아야 한다.”면서 “미국의 핵공갈 책동에 놀랄 우리 군대와 인민이 아니다. 우리의 핵억제력은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수호하는 강력한 담보이며 미국의 핵전쟁도발책동을 짓부시는 만능의 보검이다. 우리에게는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핵에는 핵으로 맞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신문은 “전후 수십년 동안 다지고 다져온 전쟁억제력이 굳건하기에 우리의 배심은 든든하다.”면서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불을 지르는 경우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선군의 위력을 총 폭발시켜 긴장격화의 악순환을 영원히 끝장내버릴 것”이라고 조미대결전을 통한 결산을 시사했다.

신문은 “미국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지역의 미군기지들, 남조선은 물론 주일미군 등 모든 적대상물들이 우리의 과녁에 들어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반미대결전으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적대행위를 짓 부셔버리고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려는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변의 의지이며 단호한 결심”이라고 미국과의 일전이 불가피하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미국은 다국적무력까지 동원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핵전쟁도화선에 기어이 불을 달려고 발광하고 있지만 상대를 똑바로 보고 덤비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미, 호전 세력은 지난 세기 50년대에 청소한 우리 공화국을 잘못 보고 달려들었다가 패망의 쓰디쓴 맛을 본데서 교훈을 찾고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미국이 또다시 상대를 잘못 보고 감히 선불질을 한다면 침략자들의 본거지는 흔적도 없이 초토화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한미 당국은 조선에 대해 강경- 대화- 맞대응- 대화 – 강경 맞대응의 과정을 밟고 있어 긴장격화의 시간이 장기화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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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니면 회생불능한 미국경제

전쟁이 아니면 회생불능한 미국경제

우리사회2013.04.21 05:49

 

한반도 전쟁이 사실상 발발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한미연합군은 지난달 22일, 한미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 사소한 국지전이 발발하더라도 즉시에 미군을 자동 개입시키고 한국군의 작전권을 한미연합사로 이양하는 방안을 미련했다. 이에 북한은 개성공단을 잠정 중단시켰다. 북한은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서부전선 인민군을 전진 배치시켜 실제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현 시기에 있어 한반도 전쟁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이 갈수록 무너지고 있는 변화에 대한 반작용이다. 북한의 핵보유와 경제건설에 인접한 한국과 일본은 커다란 자극을 받게 된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대북강경책을 앞장서서 관철시켜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파탄 직전의 미국경제

미국의 다우존스 주식가격이 오르고, 미국경기가 다소간 플러스 국면으로 전환했다고 해서 미국이 경제를 잘 지탱하고 있으며 나아가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볼 개연성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이 지탱하는 경제는 미국독점자본의 경제이며 부자들의 경제일 뿐이다. 미국은 미 독점자본을 지탱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남유럽 등 유럽연합 국가들과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위기를 전가하고, 미국민의 민생을 옥죄일 수밖에 없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은 양적완화조치로 이야기되는 달러를 무더기로 풀어서 미국경제를 지탱해보려 했으나 그 반대급부로 연방정부의 빚이 너무 늘었다. 16조 달러, 1경 7500조 원을 넘는 미 연방정부의 빚은 미 의회가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계속 승인해주기 어렵게 만든다. 미국의회는 부채폭등 시 정부예산을 자동삭감하는 시퀘스터 방안을 통과시켰고 올해 초 시퀘스터가 발동돼 미국은 올 한 해에만 853억 달러의 예산을 줄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최소 75만 명, 최대 200만 명의 미국인들이 ‘무급휴가’로 민생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지난달 21일에는 미 상원이 2013회계연도 예산안에 합의해서 미국이 가까스로 연방정부 폐쇄사태를 면하게 됐다. 그러나 이는 단지 미 의회가 절벽 문제를 해결할 몇 달 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미국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는 나라 빚을 갚기 위해 고위직 공무원들의 월급반납을 종용하고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부터 월급의 5%(187만원)를 국고에 반납하기로 했다. 국방부의 척 헤이글 장관과 애슈턴 카터 차관은 70여만 명의 국방부 직원들이 14일간 의무 무급휴가를 가게 된 것에 상응해 14일분의 급여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행정실(EOP) 소속인 예산관리국(OMB) 직원 480명도 1일 무급휴가 통보를 받았다.

‘시퀘스터’(연방정부 재정지출 자동삭감)로 노인 의료보장 제도인 메디케어 예산이 삭감되면서, 암 진료 거부가 일어나고 있다. 미 뉴욕의 노스쇼어혈액종양내과연합(NSHOA) 클리닉들이 환자 1만6000명 가운데 3분의 1의 진료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클리닉들은 이미 몇 주 전부터 환자들에게 진료 중단을 통보했다.

동북아 버리면 몰락하는 미국경제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강력한 경제적 잠재력을 가진 동북아를 떠난다는 것은 세계달러패권을 영원히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동북아에는 미국의 경제정책에 사실상 맹종하는 한국과 일본이 있으며 미국 연방정부 채권의 최대구매자인 중국이 있다. 만일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요구해서 미국이 이에 응하며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면, 미국의 동북아 패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일본은 독자적인 핵무장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우익인사들을 중심으로 ‘주일미군 철수’ 여론이 폭발할 것이다. 한국보수세력도 핵보유의 끊임없는 유혹에 빠져 미국의 동북아 개입체제는 사실상 와해될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언제까지나 미국채권을 구매해 줄 리도 없다. 중국은 더욱 더 북한과 외교를 중시하게 되고 미국의 고립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이 동북아에서 떠나는 것은 미 달러경제패권의 핵심 기둥을 포기하는 것과 같으므로 미국은 절대로, 한반도에 위기가 촉발되고 심지어 자기 본토가 핵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동북아에서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세계적 패권국이 외부세력에 의해 패권을 스스로 내려놓은 경우는 전례가 없다. 중국 금나라는 몽고에 저항하다 임금이 붙잡혀 처형당했으며 나치 독일도 불가침조약을 파기하면서 소련을 침공했지만 결국 베를린을 함락당하며 히틀러는 자살했다.

특히나 자본주의가 보편화된 21세기의 오늘날, 독점자본의 독점이익은 오로지 군사적 침략과 패권으로 유지돼 왔다. 그런 측면에서 패권국가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군사개입은 독점자본의 선택권이 아니라 필연적 결론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미국 거대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의 F-35 CTOL 60대를 도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F-35 60대의 가격은 무려 12조 원(108억 달러)이며 향후 30년간 운용할 때 추정되는 운영비는 3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켜 놓고 수십조 원의 군사무기를 판매하는 상투적 수법이 한반도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다.

전쟁반대에 힘을 모아야

그런 측면에서 현 시기 한반도 전쟁 위기는 한반도 평화체제로 대변되는 동북아 체제전환이 일어나고 주한미군 철수가 실현될 때까지 강도 높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전쟁위기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산통이다. 동북아의 모든 관계국들이 진정한 호혜평등, 상호 공존하는 다극화 시대로의 순조로운 이행을 위해 이 땅의 모든 지성들은 전쟁반대로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 위 원고는 통합진보당 <진보정치>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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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 “천안함 확신못해 영화 만들었다”

 

 
[단독 인터뷰] 전주영화제 첫 상영 ‘천안함프로젝트’ 제작 “종북·불이익 없을 것”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천안함이 서해상에서 침몰해 46명의 젊은 장병이 희생된지 3년이 지나면서 진실규명의 의지나 관심이 사라진 정치권·언론과 달리 영화계에서 천안함 의혹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제기됐다.

우리 사회 모순과 탄압의 실상을 고발한 영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를 제작해 화제를 뿌렸던 정지영 감독이 이번엔 천안함 사건의 의혹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관객들에게 의문을 던진다. 정 감독은 오는 25일부터 개막되는 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다큐영화 부문(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에서 상영되는 <천안함프로젝트>(감독 백승우)의 제작과 기획을 맡았다.

이 영화는 3년 여 동안 굳혀진 ‘북한 어뢰에 피격된 폭침사건’이라는 정부 발표와 다른 시각과 의문점을 조명하면서도 왜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고 고발했는지에 대한 비이성의 실상을 드러낸다.

백승우 감독은 전현직 군 장성·장교들의 고소로 3년째 재판을 받고 있는 신상철 서프라인즈 대표의 법정 공판을 재연하는 구성, 폭발이 아닐 경우 어떻게 군함이 갈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반영했다고 18일 밝혔다.

영화에선 신상철,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등 여전히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배우로는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가시꽃’ ‘추적자’와 영화 ‘공공의 적’ 등에 나왔던 강신일씨 및 여러 연극인들이 출연한다.

천안함프로젝트는 오는 27일과 5월 1일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배우들의 경우 법정신(scene) 재연을 비롯해 감독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는 역할을 한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제작됐다.

   
14회 전주영화제에서 27일 상영될 예정인 정지영 감독의 '천안함 프로젝트(감독 백승우)'
 
   
14회 전주영화제에서 27일 상영될 예정인 정지영 감독의 '천안함 프로젝트(감독 백승우)'
 

정치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침묵하고 있는 이 사건의 의혹을 영화로 나오기까지는 정지영 감독의 결심이 컸다. 정 감독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 대해 우파 인사들이 ‘빨갱이’ 운운할 때마다 ‘여전히 의심이 있는데, 왜 저런 말을 함부로 하지,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부러진 화살>을 찍고난 지난해 초 우연히 신상철 대표를 만났다. 그가 고소를 당해 재판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재판은 명예훼손 사건이기 때문에 사실관계 여부가 확정돼야만 명예훼손 여부를 가릴 수 있다”며 “그래서 다큐멘터리로 찍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관심을 갖고 있던 백승우 감독에게 연구를 맡겼다. 1년 여에 걸친 제작 끝에 인터뷰 방식과 의문점을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기법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으로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프로젝트>를 통해 던지고 싶은 메시지에 대해 “이 영화는 우리사회의 소통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힘있는 자가 (시민들에게) 의문을 더 이상 갖거나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면 소통이 막힌다. 우리 사회의 만연된 화두인 소통의 문제를 이 사건이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 친북 또는 종북 딱지가 붙을 수 있을지 우려가 되지 않느냐고 묻자 정 감독은 “내가 궁금해서 알고 싶다는데 왜 종북딱지가 붙느냐”며 “이미 우리사회가 그렇게 돼버렸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된다 해도) 불이익이 없을 것으로 본다. 많은 국민들이 천안함 문제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고, 마음속에 의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 감독은 “국민이 우리를 종북주의자로 매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지영이 종북주의자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이 겉으로는 해결됐다고 여길지 몰라도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지영 감독
이치열 기자 truth710@
 

천안함의 의문점에 대해 정 감독은 “아직도 내가 의심하는 것은 ‘한국 정부와 국제조사단의 내놓은 결과를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인정했나, 스웨덴 등 전문가들은 정부발표를 인정한 것인가, 나는 왜 이런 결론에 대해 의심을 품는가’ 하는 것이 의심스럽고 안타까웠다”며 “특히 폭발이었을 때 나타나는 상처와 효과가 없다는 의문의 경우 문제제기할 수는 있으나 반드시 (이런 의문이) 옳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정부 발표에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을 때 명확한 해명과 의문을 풀 수 있는 해답을 못들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3년 여 동안 진실규명에 무관심해지고 민주당마저 입장이 뒤바뀐 천안함을 둘러싼 사회적 세태에 대해 “무엇보다 언론이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정치권이야 북한 관련 문제만 생기면 전전긍긍하고, 자칫하면 빨갱이로 몰린다고 여기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렇다 쳐도 언론은 좀 당당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제작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역시 이런 사회적 세태와 분위기에 따른 것이었다. 정 감독은 “가장 어려운 문제는 비용문제였다. 나와 회사에서 일부 투자하고, 투자를 받으려 했으나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투자의사를 보였던 이들도 발을 뺐다”며 “이런 현실이 좀 슬프다”고 털어놨다. 정 감독은 “하지만 출연에 응해준 배우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에게는 한없이 고맙다. 박수를 쳐줬으면 좋겠다. 이는 당연한 것인데 용기라고 평해야하는 사회가 됐다”고 씁쓸해했다.

정 감독은 천안함 사건의 의문이 조사를 더 해서라도 말끔히 해소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정 감독은 지난 2월 말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지금까지 군사적 충돌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는 이 시점에 영화가 상영된 점에 대해 “이 시점에 이 영화가 나오면 사람들이 욕할 것이라는 걸 나도 다 안다”며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그동안 국민들에게 일종의 학습된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엄격히 얘기해서 나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는 집단으로 본다”며 “북한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왜 하겠느냐. 문제는 이길 수 있다는 오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해서라도 북한과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지영 감독
이치열 기자 truth710@
입력 : 2013-04-18 16:51:30 노출 : 2013.04.20 20: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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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는 채식이 아닌 육식 코너로 가셨다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4/21 08:46
  • 수정일
    2013/04/21 08:4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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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는 채식이 아닌 육식 코너로 가셨다네

 
청전 스님 2013. 04. 19
조회수 4578추천수 1
 

 
달라이 라마의 음식
 
버터차마시는스님들.jpg
*버터차를 마시고 있는 티벳의 스님들. 출처: 더티베트미러(www.ilovetibet.kr)
 
티벳 고원의 식문화는 육류가 주종을 이룬다. 매일 고기를 먹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미수가루 같은 짬빠와 차(茶)잎을 버터와 소금에 넣고 끓인 버터차(Butter Tea), 그리고 고기가 티벳 음식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 확실한 모모(Momo)라고 부르는 만두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지만, 평소에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독한 겨울바람에 마른 야크나 염소, 양 한 마리를 부위별로 잘라 들고 다니다 차고 다니는 단도(칼)로 그냥 베어 먹기도 한다. 한마디로 고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문화다. 자연환경이 논밭 농사를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보니 먹거리도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야채라는 것은 당초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1959년 인도로 망명 나온 티벳 사람들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람이 어찌 야크처럼 풀을 먹고 산단 말이냐!”
 
야크구글.jpg
*야크. 티벳과 히말라야 주변, 티벳어를 쓰는 몽골에서 주로 사육되는 긴 털을 가진 소의 일종. 출처 : 위키피디아
 
달라이 라마 존자님은 주로 무얼 드실까? 티벳과 인도는 지형이 달라도 너무 다르고 또 음식 문화도 판이하게 다르니 드는 생각이다. 처음 망명 시절, 존자님도 인도 전통 음식 문화를 따르려 했다. 즉 고기를 안 먹고 채식주의자가 되어보겠다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병원 신세를 지셨다. 황달에 걸리셨다고 한다. 이후 주치의의 권고로 약간의 고기를 먹는 처방전을 따르신다.
 
달라이라마1.jpg
*지난 4 월 초 이탈리아 북부 볼자노<Bolzano>지방에서 법문 마치고 질문을 듣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
 
한번은 남인도 타밀 지방에서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큰 행사가 열렸다. 인도에서는 행사를 마치면 부페식 음식 잔치가 따르는데, 주최 측에서는 남인도식 전통 채식 식단을 정성껏 준비했었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는 넌베지(Non Veg.) 즉 채식이 아닌 육식 코너로 가셨다. 이튿날 이 지역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큰 제목으로 사회면 톱기사로 게재되었다.
 
The H. H. Dalai Lama is not Vegetarian.
달라이 라마 성하(聖下)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이게 무슨 큰 내용이라고 신문 사회면 톱기사 제목으로 뽑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인도의 채식주의 전통에 어긋나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나 보다. 그러나 티벳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신은 다른 것처럼 음식에 대해서도 매우 소탈하시다. 어느 나라에 가시더라도 그 나라 음식을 맛나게 잡수신다. 한번은 한 서양 기자가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가?” 하고 물었다.
 
“맛있는 음식은 아무거나 전부, 그런데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무엇이나 최고로 맛있던데요.”
 
한때 이곳 왕궁 우편창고에 한국 라면이 줄지어 들어왔었다. 어떻게 말이 와전 되었는지 몰라도 당신께서 한국 라면을 즐겨 드신다는 소문이 퍼진 것 때문이었다.
 
“어떤 외부 음식도 당신에게 올릴 수 없다.”
담당 시자 스님의 귀 뜸이다. 역대 달라이 라마의 비극적인 죽음의 대부분은 중국 청나라 요리사가 만든 음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여기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를 친견 할 때 예물로 인삼 종류를 많이 올리는데 이것 또한 그대로 왕궁 부설 티벳 의료원으로 보내진다. 장의학(藏醫學)에서도 우리 인삼을 귀한 약재로 쓰이니 매우 유용한 보시인 셈이다.
 
여름철로 기억하는데 한국 매스컴에서 존자님 건강이 안 좋다고 한 모양이었다. 뜬금없이 한 비구니 스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님, 존자님께서 건강이 안 좋다고 하니 제가 전복죽을 좀 쑤어다 드릴까요?”
 
하도 어이가 없어,
 
“뭐라고? 전복죽! 차라리 보신탕을 가져오지 이 머저리야!”
 
존자님에 대한 존경이 지나치다 보니 ‘전복죽’ 운운까지 가게 되었던 모양이다. 존자님은 남방불교 비구 전통에 따라 오후불식(午後不食), 즉 오후에는 음식을 드시지 않는다. 한국 선방이나 토굴에서도 강도 높은 수행 중에는 졸음을 쫒고 의식이 늘 깨어있도록 저녁을 먹지 않는 스님들이 더러 있다.
 
육고기 중심인 티벳인들과 어울리다 보니 종종 웃지 못 할 일도 생긴다. 사실 이 사건이 필자가 여기 살아오면서 지금까지도 내 최고의 흉으로 책 잡혀 있으니까. 몇 년 전에 프랑스에 계신 나이 드신 할머니가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국땅에서 30여년을 살고 계신 그 분은 어렸을 때 먹어본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잘 아는 지라 특별히 뭘 먹고 싶은 게 없냐는 물으셨다.
 
“조구(조기)요.”
 
조기구이.jpg
*맛있게 구어진 조기 두 마리.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각설탕 식구들(sunwly.blog.me)
 
그러자 한국에서 빠리로 공수된 조기를 인도까지 챙겨 오셨다. 도착하자마자 후라이팬에 두 마리를 구워 그 자리에서 죄다 한 점도 안남기고 먹어버렸다. 그런데 같이 있던 티벳 스님들이 이걸 보고 당신네들끼리 수근 대며 아래 말을 하면서 킥킥대고 많이도 웃으셨다.
 
“꼬리아 겔롱기 냐 첸포 니 싸쏭. 데양 땡 찍라!”
(한국 비구승이 물고기 큰 놈 두 마리나 먹어버렸다네. 그것도 한꺼번에!)
 
그게 뭐가 그리 우스운 일이냐고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더 가관이었다.
 
“어떻게 비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중생을 자비심 없이 그렇게 뜯어먹느냐?”
 
물고기는 죽어도 눈을 뜨고 있다고 설명해 줘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당신네 끼리 모이면 킥킥대고 웃으시는 게 바로 필자가 먹은 조기 사건 때문이다.
 
평균 해발 3,4천 미터인 티벳 고원에는 큰 호수가 많이 있고 이 호수에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티벳인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물고기만큼은 절대 금기 식품인 것이다. 죽어서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잡으려면 야크를 잡아라.”는 속담처럼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살업(殺業)의 과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단순 철학논리로 한 중생 잡아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는 뜻이리라.
 
달라이 라마는 돼지띠이니 올해로 79세다. 시자 스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오후불식 중 하루 일과가 힘들어 허기질 때는 초코렛을 드신다고 한다. 그 말에 참 인간적인 모습을 느낀다. 꾸밈없는 스승이 보여주시는 사람 몸을 가진 한 유정의 모습을 보기에. 흔히 이름 있는 고위 성직자들이 몰래 가지기 쉬운 위선을 벗어난 모습이기에 말이다.
 
달라이라마2.jpg
*4 월 15 일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주최측의 행사 모자를 쓰고 법문하시는 달라이 라마
 
나날이 반복되는 생로병사 사고(四苦)의 바다를 떠돌다 짜증나는 일을 겪으면 언제나 생각나게 하는 당신 말씀 한 자락으로 이 글을 마친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에,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기에서 소중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소중한 삶을 낭비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말씀인데, 곁들여 이웃에게 자기희생이 따른 배려라면 최고의 인생길이라고 누누이 말씀 하신다.
 
 
여름이 시작되는 천축 땅에서, 비구 청전 합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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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스님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광주 대건신학대에 다니다 송광사 방장 구산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88년 인도로 떠나 히말라야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매년 여름 히말라야 최고 오지인 라다크를 찾아 고립된 티베트 스님들과 오지 주민들에게 약과 생필품을 보시하고 있다. 어느 산악인보다 히말라야를 많이 누빈 히말라야 도인.
이메일 : cheongjeon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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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권은희 수사과장, 경찰 사명감 위해 나서"

누리꾼 "권은희를 지켜라"

13.04.20 16:09l최종 업데이트 13.04.20 16:09l

 

 

"게시글을 분석해 볼 때 정치 관여 행위는 인정할 수 있지만,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지난 18일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 발표를 하면서 한 말이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가 대한민국 경찰서장 입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서 '법과 질서'는 오간데 없는 대한민국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하루만에 경찰 내부에서 경찰 윗선이 수사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일보>는 20일 권은희(39)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19일 "국정원 여직원 등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고발장을 제출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 초까지 경찰 상부가 지속적으로 수사에 개입했다"며 "윗선의 흔들기 때문에 실무진은 수사에만 집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20일자 1면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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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도 같은 날 권 과장과 인터뷰를 통해 "서울경찰청은 16일 밤 분석을 끝낸 자료를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만 이용한 뒤 이틀이 지난 18일 밤에야 수서경찰서에 건네줬다"며 "국정원 직원 김씨가 제출한 하드디스크 등을 김씨에게 돌려주려다가 수서경찰서 수사팀의 강한 항의를 받고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겨레>는 다른 기사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이 지난해 대선을 사흘 앞둔 12월16일 갑자기 발표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 수사 결과는 일선 수사팀이 아닌 서울지방경찰청이 만든 수사보고서에 근거했고,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를 넘겨받은 지 30분 만에 보도자료로 언론사에 배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만약 경찰 상층부가 수사에 개입했다면 국정원 직원 댓글만큼 심각한 문제다. 명백한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이 수사를 맡은 수서경찰서에 전화까지 했다. 국정원 직원이 대선에 개입하는 것도 모자라 진실을 밝혀야 할 경찰 수뇌부까지 정치에 개입한 것이다.

권 과장 폭로가 사실이라면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정원과 경찰이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공모했다는 의혹마저 들게 하는 일로 경악할 일이다. 우리는 공권력이 정치에 개입한 아픈 역사를 가졌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까지 했다가 결국 정권 종말을 맞았다. 독재자 박정희가 1972년 10월 '유신쿠데타'를 일으킨 이유 중 하나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에서는 지고, 개표에서는 이겼기 때문이다. 부정개표가 없었다면 박정희는 이기기 힘들었다는 말이다. 1980년대 군대생활을 한 사람은 경험했을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정권때는 대놓고 군부정선거를 하지 않았지만 투표소에 들어갈 때 은근히 압력을 행사했음을.

그러므로 공권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경찰은 "정치 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초등학생보다 못한 논리를 주장했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 축소은폐를 지시했다. 이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 그럴 수 없다. 검찰은 국정원 선거개입만 아니라 경찰 수뇌부의 축소은폐 시도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

한편 누리꾼들은 축소은폐를 폭로한 권은희 과장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DrPyo)는 "권은희 과장은 경찰관으로서의 직업윤리, 사명감 위해 나섰다"면서 "원세훈, 김용판 등은 권력위해 선거개입 수사개입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요? 전 권은희 과장이 앞으로 죽 훨씬 더 행복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권은희 과장의 '국정원 사건 진실 규명' 수사노력은 일단 실패했습니다. 원세훈, 김용판의 '대선 승리' 공작은 일단 성공한 것 같다"며 "하지만, 권 과장 앞길엔 밝고 당당한 미래가, 원과 김 앞엔 불안하고 두려운 미래가 기다린다"고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작은 승리를 했지만, 진짜 승리자는 권은희 과장이란 말이다.

그러면서 표 전 교수는 "'원세훈의 몰락' 이제 보이시나요? 이미 김형욱, 장세동 등 수없는 몰락들을 봤으면서도. 경찰 고위간부들은 어떤가요? 권력에 충성바치고 국민 국가 농락하다 쇠고랑차던 모습들 다 잊었던 건가요? 현직있는 분들 제발, 잘보고 잊지마세요"라며 경찰들이 진실을 위해 싸워라고 촉구했다.

@hcr****는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을 경찰수뇌부가 은폐한 정황이 일선 경찰간부의 용기로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군요"라며 "두려움 없이 진실을 밝힌 참경찰 권은희 수사과장께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고 했다. @jyk****도 "권은희 수사과장폭로 트친님들 이나라에 진정한 양심있는 경찰 권은희씨를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welov*****는 "국정원직원의 하드디스크 분석뒤 결과도 수사실무팀에 안알려주고 컴퓨터 돌려주려한 서울청에 만약 권은희 수서 수사과장이 '당신들 위법행위다'며 항의 안했더라면 우린 지금의 반쪽짜리 수사결과마저 못 볼뻔했다"고 한탄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하야 한 이유는 '도청'보다는 진실은폐와 '거짓말'때문이다. 국정원과 경찰이 진실을 숨기고, 은폐했다면 그 결과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다. 그것이 두려워 검찰도 경찰처럼 축소 수사를 한다면 국민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영원히 숨길 수 없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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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북 미사일능력 부인한 이유

 

미국 본토 엄습한 핵피격 공포
 
[한호석의 개벽예감](59) 오바마가 북 미사일능력 부인한 이유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4/20 [22:32] 최종편집: ⓒ 자주민보
 
 

미국 군부가 겪은 12분간의 핵피격 악몽

“북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경보도 없었고, 예고도 없었다. 나는 ‘국가군사합동정보센터(National Military Joint Intelligence Center)’에서 근무하던 기간 중에 처음으로, 유일하게 미국군의 모든 무장체계가 몇 초 사이에 긴장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당시 (북이 발사한) 그 미사일이 어떤 종류의 미사일인지 알지 못했고, (피격범위가) 미국 전역일 것으로 직감하였다. 우리가 12분 동안 어떻게 행동해야 했겠는지 생각해보라. 미국의 도시 한 개를 잃어버릴 판이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했을까? 우리는 12분 안에 해답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 우리는 태평양 연안이 피격범위에 든 것으로 판단하였다가, 곧바로 하와이가 피격범위에 들었다고 판단하였다. 그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는 것이 나중에 확인되었기 때문에, (북의) 1993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위의 인용문은 북이 미국을 향해 중거리미사일을 위협발사하였던 1993년 5월 30일, 당시 미국 국가군사합동정보센터에서 근무 중이던 미국 해군 정보장교 마크 커크(Mark Kirk)가 들려준 경험담을 <AP통신>이 2001년 4월에 보도한 것이다. 그 보도기사에서 마크 커크는 북이 불시에 미국 본토를 향해 핵타격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직감한 미국 군부가 “끔직스러운 체험”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북이 미국과 남측에게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을 선포하고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미국 본토를 조준한 핵타격미사일을 발사대기상태에 진입시킨 오늘, 미국 군부가 20년 전에 겪은 경험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북과 미국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때로부터 꼭 40년이 되던 1993년 봄, 두 나라의 정전상태는 전면전이 폭발하기 직전처럼 극심하게 격화되었다. 오늘도 그렇지만 20년 전에도 전면전 위기를 촉발시킨 원인은 미국의 대북전쟁위협에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3년 1월 출범한 클린턴 행정부는 출범초기부터 북미관계를 악화시키며 전쟁위기지수를 고의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북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녕변핵시설을 정밀타격으로 날려버리겠다고 협박, 공갈하였다.

북은 미국의 그런 협박과 공갈에 강경하게 맞서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즉각 전시동원령을 선포하며 전면전 태세에 돌입하였다. 그런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속에서 북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어 미국에게 불시에 결정타를 날렸으니, 그것이 바로 중거리미사일 위협발사였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데이빗 생어(David E. Sanger)는 <뉴욕 타임스> 1993년 6월 13일 보도기사에서 북이 1993년 5월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서술하였는데, 당시 북의 중거리미사일 발사로 혼비백산한 미국이 쉬쉬하며 관련정보를 은폐하는 바람에, 데이빗 생어도 부정확한 정보만 갖고 그 보도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년 동안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던 관련정보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실상이 나타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3년 당시 북은 사거리 1,300km의 준중거리미사일 화성-7, 사거리 2,000km의 준중거리미사일 화성-8, 그리고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미사일 화성-9를 각각 실전배치하고 있었다.

북이 1993년에 그처럼 준중거리미사일과 중거리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었는데도, 미국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미국 정찰위성이 제아무리 북측 상공에서 감시, 정찰을 계속한다 해도 인민군의 은폐활동과 기만활동 앞에서는 그처럼 실효가 없는 것이다.

1993년 5월 29일 화성-7 한 기를 위협발사한 북은 5월 30일에도 화성-8과 화성-9를 각각 한 기씩 위협발사하였다. 5월 29일 북이 동해 쪽으로 위협발사한 화성-7은 일본 자위대의 반항공레이더에 포착되었는데, 5월 30일에 위협발사한 화성-8과 화성-9는 일본 자위대의 반항공레이더 탐지범위를 뛰어넘은 강력한 미사일이었다. 그 날 북은 화성-8을 남서쪽으로, 화성-9를 동북쪽으로 각각 쏘았는데, 함경북도에서 남서쪽으로 발사된 화성-8은 동중국해 상공을 넘어 서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군사전략거점 괌(Guam)을 향해 날아가더니, 괌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서태평양 해상에 탄착하였다. 그리고 함경북도에서 동북쪽으로 발사된 화성-9는 일본 쓰가루 해협(津輕海峽) 상공을 넘고, 북태평양의 미국 영토 미드웨이제도(Midway Islands) 상공을 넘어 하와이(Hawaii)를 향해 날아가더니,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에서 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해상에 탄착하였다.

위에 인용한 마크 커크의 경험담은, 북이 불시에 위협발사한 중거리미사일 화성-9가 서태평양 상공을 건너 하와이를 향해 초고속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12분 동안 미국 군부가 겪은 실제경험을 수록한 것이다. 북이 핵타격미사일을 미국 본토를 향해 쏜 것으로 직감한 미국 군부는 기겁하고 당황망조하였다. 그들을 향해 화성-9가 날아간 12분은 그들의 숨통이 막히는 듯한 핵피격 악몽의 시간이었다.

화성-9 위협발사로 핵피격 악몽을 겪으며 혼비백산한 미국은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양자회담에 황망히 끌려 나갔으며, 북이 요구한 대로 미국은 북의 주권을 존중하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공동성명에 굴욕적으로 서명하였다. 북이 위협발사한 중거리미사일 화성-9는, 미국을 혼비백산케 하고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게 할 만큼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북은 녕변핵시설 정밀타격을 노리던 강적을 중거리미사일 한 방으로 단숨에 굴복시켰으니, 당시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었던 핵강국들인 러시아나 중국이 따라할 수 없는 기습공격력을 과시한 것이다.

세계 최강이라 자처하던 미국은 그 날 북이 위협발사한 화성-9의 위력 앞에서 너무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상 처음 북미양자회담에 끌려 나가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한 것이 자기들에게 너무 큰 치욕이었기 때문에, 화성-9 존재 자체를 은폐하였으며, 북미공동성명 채택에 대해서도 쉬쉬하며 넘어갔다.

화성-9의 기억을 재생해야 하는 까닭

지난 20년 동안 지속되어오는 북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서방세계의 끝없는 오판과 착오는, 미국이 자기를 굴복시킨 화성-9 존재 자체를 철저히 은폐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 기이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서방세계의 언론계와 군사전문가들이 끊임없이 반복해오는 북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오판과 착오를 넘어서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북이 화성-9를 위협발사하여 녕변핵시설 정밀타격을 노리던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킨 20년 전 경험에 대한 재인식이다. 재인식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1993년 5월 당시 북은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미사일 화성-9를 실전배치하고 있었는데, 그에 관한 정보가 서방세계에 처음 알려진 때는 2004년이다. 서방세계에서 인민군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군사전문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가 2004년 8월 4일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ane's Defense Weekly)>에 발표한 글에서 북의 중거리미사일 실전배치에 관해 서술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이 화성-9를 위협발사하여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킨 때로부터 무려 11년이나 지난 뒤에 화성-9의 존재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북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서방세계의 오판과 착오가 얼마나 심한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북의 중거리미사일 실전배치에 관한 버뮤디즈의 서술도 사실은 미국 정찰위성이 2003년 9월 초에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중앙일보> 2003년 9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 정찰위성은 북의 공화국 창건 55주년 열병식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 인근 미림비행장에 모습을 드러낸 중거리미사일(화성-9)을 촬영하였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북은 화성-9를 열병식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미국 정찰위성이 보내온 영상자료에 따르면, 당시 미림비행장에 모습을 드러낸 화성-9는 6축12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있었다.

또한 서방세계 언론매체들은 북이 2005년에 화성-9 18기를 이란에 수출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북이 화성-9를 다른 나라에 수출한 것은, 그 중거리미사일을 대량생산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 중거리미사일보다 성능이 한 급 높은 화성-10을 이미 실전배치하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2010년 3월 9일 <연합뉴스>는 남측 정보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하여, 북측이 사거리 3,000km 이상의 신형 중거리미사일을 2007년에 실전배치하여 중거리미사일 사단을 창설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것은 화성-9를 배비한 인민군 사단이 편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화성-9를 배비한 사단이 있으므로, 화성-10, 화성-11, 화성-12, 화성-13을 각각 배비한 사단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위에 언급한 다섯 종의 핵타격미사일을 각각 배비한 여러 사단들로 편성되어 있는 것이다.

인민군 미사일부대 외곽경비 근무경험이 있다는 탈북자가 2013년 3월 16일 언론대담에서 꺼내놓은 경험담에 따르면, 중거리미사일 여단에 배속된 1개 대대마다 중거리미사일 9기씩 배치되었다고 한다. 그가 말한 인민군 미사일부대 편제를 보면, 1개 여단에 배속된 5개 대대 가운데 미사일을 운용하는 대대는 3개이므로, 1개 중거리미사일 여단에 배치된 화성-9는 총 27기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2010년 3월 9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서는 북이 신형 중거리미사일을 2007년에 증강하여 기존의 중거리미사일 여단을 사단으로 확대, 개편하였다고 하였으므로, 2007년에 신설된 1개 중거리미사일 사단에 미사일을 운용하는 대대를 5개씩 배속시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개 중거리미사일 사단에 배치된 화성-9는 총 45기로 늘어난 것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브루스 벡톨(Bruce Bechtol)은 2010년 10월 13일 미국 언론보도기사에서 북의 중거리미사일 총보유량이 200기 이상이라고 추산한 바 있으므로, 그의 추산에 따르면, 화성-9 45기를 배비한 중거리미사일 사단이 5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1993년 5월에 미국을 향해 화성-9를 위협발사하였던 북이 그로부터 20년 동안 그 미사일의 보유량을 꾸준히 늘려왔으므로, 2013년 4월 현재 225기에 이르는 화성-9가 실전배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1993년 5월 30일 북이 하와이 쪽으로 위협발사한 화성-9 탄두부에는 모의탄두가 들어있었다. 실전발사가 아니라 위협발사였으므로 당연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화성-9에는 실제로 어떤 탄두가 탑재된 것일까?

북만 그러한 게 아니라, 다른 미사일강국들도 일반폭약으로 만든 재래식 탄두를 중거리미사일에 탑재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하고 생산하고 운용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비용 대 효과’를 따져보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중거리미사일에 파괴력이 약한 재래식 탄두를 탑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거리미사일은 산화제를 1분당 60kg씩 연소하며 비행하는데, 산화제 값은 1kg에 60달러나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화성-9가 하와이 쪽으로 날아가 태평양 해상에 탄착하기까지 12분 동안 비행하였으므로 화성-9가 연소한 산화제 총량은 720kg이며, 그것을 가격으로 환산하면 43,200달러다. 중거리미사일에 들어간 다른 비싼 핵심부품들은 그만두고, 산화제 값만 보더라도 화성-9가 얼마나 값비싼 무기인지 알 수 있다.

그처럼 값비싼 화성-9에 값싼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면, 겨우 학교 운동장만한 넓이의 대상물밖에 타격할 수 없게 된다. 4,000km를 날아가는 중거리미사일에 학교 운동장만한 넓이의 대상물밖에 타격하지 못하는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는 어리석은 나라는 없다. 이런 사실만 봐도 화성-9가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런데 북이 그런 화성-9를 1993년 5월에 위협발사하였다면, 20년 전에 벌써 중거리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화성-9를 위협발사하였던 1993년 당시 북이 중거리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는 찾을 수 없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북은 20년 전에도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물론 1993년 당시 북이 보유한 핵탄두는 질량이 1,000kg 정도가 되는 1세대 핵탄두였을 것이다.

1993년 당시 북이 질량 1,000kg 정도의 1세대 핵탄두를 보유하였던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파키스탄의 핵탄두 개발경험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글로벌 시큐리티(Global Security)>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다섯 단계에 걸쳐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핵무력 강화과정을 밟아갔는데, 파키스탄의 1세대 핵탄두 질량은 1,158∼850kg이었고, 2세대 핵탄두 질량은 900∼750kg이었고, 3세대 핵탄두 질량은 750∼500kg이었고, 4세대 핵탄두 질량은 500∼400kg이었고, 현재 보유한 5세대 핵탄두 질량은 450∼200kg이다. 핵무기부문과 미사일부문에서 기술수준이 북보다 뒤쳐진 파키스탄이 지난 15년 동안 그처럼 다섯 단계에 걸쳐 핵탄두를 소형화하였으므로, 북은 시기적으로 파키스탄보다 훨씬 더 앞서서, 그리고 파키스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으로 핵탄두를 소형화하며 20년 동안 핵무력 강화를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북의 핵탄두 소형화에 비례하여 북의 중거리미사일 사거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은 화성-9의 사거리를 4,000km라고 2004년에 추정하였는데, 인민군 미사일부대 외곽경비 근무경험이 있다는 탈북자가 2013년 3월 16일 언론대담에서 꺼내놓은 경험담에 따르면, 그가 북에서 군복무를 할 때 참석한 인민군 학습강연에서는 화성-9의 사거리가 5,000km라고 언급되었다고 한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이 오래 전에 추정한 사거리보다 인민군 학습강연에서 비교적 근래에 언급한 사거리가 1,000km 더 늘어난 까닭은, 화성-9의 핵탄두를 소형화한 것에 비례하여 사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형화된 핵탄두를 탑재한 화성-9의 사거리는 이전보다 1,000km가 더 늘어난 5,000km인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북이 외부에 공개한 중거리미사일은 화성-9와 화성-10 두 종류이며, 외부에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화성-13 한 종류다. <글로벌 시큐리티>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북이 만든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3)의 핵탄두 질량은 650kg이고, 최대 사거리는 12,000km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화성-9와 화성-10의 차이는 단탄두와 다탄두의 차이이며, 도로이동식 발사체계와 잠수함 발사체계의 차이다. 1993년 5월 30일 북이 위협발사한 화성-9는 지상에서 이동하는 자행발사대에서 쏘는 단탄두 중거리미사일이었고,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 북이 처음 공개하였고,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경축 열병식에서 또 다시 등장시킨 화성-10은 바다속에서 잠항하는 잠수함에서 쏘는 다탄두 중거리미사일이다. 북은 지난 20년 동안 중거리미사일 성능을 부단히 향상시켜 잠수함 발사 다탄두 중거리미사일까지 만들어냈던 것이다.

잠수함 발사 다탄두 중거리미사일을 만들어낸 것은, 북의 기술력이 핵무력 강화의 최고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의 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는 바람에 오판과 착오에 빠진 서방세계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오늘 북이 실전배치한 각종 핵타격미사일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적국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왜곡선전은 미국의 관행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중국이 가까운 장래에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할 만큼 미사일 개발의 진척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미사일 능력은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것은 <워싱턴 포스트> 1977년 8월 24일 보도기사에 인용된, 1970년대 후반 중국 미사일 능력에 관한 미국 국방정보국의 전망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미사일 개발경험이 입증한 대로, 미국 국방정보국의 그런 전망은 엉터리였다. 중국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5(DF-5)를 1981년에 실전배치하였다. 둥펑-5의 성능을 계속 향상시킨 중국은 1983년 11월에 사거리를 종전의 12,000km에서 15,000km로 늘렸고, 종전의 단탄두를 다탄두로 대체하였다. 이것은 세계를 놀라게 한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그렇다면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이 4년 뒤에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중국이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1987년 이후에나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77년 당시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이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몇 해 뒤에 실전배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이 이미 1971년에 사거리 10,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사거리 1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사업을 곧 완료하고 몇 해 뒤에 실전배치하게 되리라는 정보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 국방정보국은 위와 같은 정보판단을 내렸으면서도,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왜 그처럼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것일까? 1977년 당시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지 않고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중국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곧 실전배치할 것이라는 정보가 미국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 핵피격 공포가 미국 사회 전반을 엄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국방정보국은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왜곡선전을 내돌렸던 것이다.

적국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왜곡선전을 내돌리는 미국의 관행은 36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하다. 이번에는 미국 국방정보국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여 북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왜곡선전을 하였다. 북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왜곡선전에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야 할 만큼, 미국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해 느끼는 핵피격 공포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2013년 3월 16일에 방영된 미국 NBC 텔레비전방송 대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제껏 정보당국이 분석한 내용에 근거하여 말하면, 나와 행정부가 내린 결론은 북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가졌다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배배 꼬아서 말하기는 하였지만, 그는 북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을 갖지 못했노라고 공언한 것이다.

북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도 핵탄두를 중거리미사일에 탑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당시 북이 위협발사한 화성-9가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미국 군부가 핵피격 공포에 빠져 혼비백산하였는데, 20년이 지난 이제 와서 북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인용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궤변이라는 점은, 미국 국방정보국이 2013년 3월에 작성하여 2013년 4월 11일에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일곱 장짜리 군사정보보고서 ‘역동적 위협 평가 8099: 북의 핵무기 프로그램(Dynamic Threat Assessment 8099: North Korea Nuclear Program)’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하원의원 한 사람이 인용하는 바람에 언론에 유출된 그 보고서 내용을 보면, “국방정보국은 현재 북이 탄도미사일로 운반할 수 있는 핵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중간 정도의 자신을 가지고(with moderate confidence) 내린 평가다. 하지만 (북의 핵타격 미사일의) 신뢰도는 낮을 것”이라고 서술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정보평가내용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자, 화들짝 놀란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그 날 저녁에 서둘러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내가 덧붙여 말하는 것은, 하원의원이 읽은 그 대목이 미국 국가정보계에서 공식 채택된 평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북은 핵타격미사일에 필요한 충분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하면서 국방정보국 보고서 내용을 부인하였다. 조지 리틀(George Little) 국방부 대변인도 황급히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북의 정권이 위의 평가보고서 인용구절에서 언급한 핵능력을 완전하게 시험하고, 개발하고, 시위하였다고 보는 것은 부정확한 판단”이라고 지적하면서 국방정보국 보고서 내용을 부인하였다.

이튿날인 2013년 4월 12일 제이 카니(Jay Carney) 백악관 대변인도 백악관 출입기자단 앞에서 “북이 핵탑재 미사일을 배치할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싶다. 이것이 우리의 평가”라고 하면서 국방정보국 보고서 내용을 확실하게 부인하였다. 북이 실전배치한 핵타격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비롯한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 데 복무한다”고 규정한 법령까지 북의 최고인민회의에서 제정되었는데도, 미국 국가정보국장, 국방부 대변인, 백악관 대변인은 북의 핵타격미사일 실전배치를 부인하는 헛소리를 이구동성으로 늘어놓았다.

그런데 <중앙일보> 2013년 3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제임스 윈펠드(James Winnefeld) 미국 합참본부 부의장은 2013년 3월 15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특별기자회견에서 화성-13에 대해 언급하면서 “열병식 때 나온 KN-08 미사일 6기가 가짜란 주장이 있었지만, 우리의 판단으로는 (그 미사일이) 미국까지 도달할 사거리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교도통신> 2013년 3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3월 20일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찰스 재코비(Charles H. Jacoby) 미국 북부사령부 사령관도 화성-13에 대해 언급한 대목에서 “(화성-13이) 미국 본토에 직접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처럼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미국 합참본부 부의장이나 미국 북부사령부 사령관은 북의 핵타격미사일 실전배치를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그 핵타격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였는데, 4월에 들어와서 미국 국가정보국장, 국방부 대변인, 백악관 대변인은 그런 사실을 부인하였고, 최근에는 오바마 대통령까지 언론에 나서서 그런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워싱턴에서 그처럼 상충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 까닭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이 핵타격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날려버리겠다는 발언이 미국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핵피격 공포가 미국 사회 전반을 엄습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북이 2013년 4월 1일 화성-10 두 기를 실은 특별수송열차를 원산 인근으로 보내고, 강원도와 함경남도 각지에서 핵타격미사일을 실은 자행발사대를 7대씩 민활하게 기동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미국에서 핵피격 공포가 더욱 확산된 것이다.

미국에 핵피격 공포가 얼마나 심각하게 확산되었는지는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워싱턴 포스트> 2013년 4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세계 최대 검색창인 <구글(Google)>에서 북과 관련된 검색조회수가 2013년 4월에 들어와 갑자기 폭증하였는데, 북이 제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던 2006년 10월에 비해 무려 일곱 배나 많은 검색조회수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 사용되는 <트위터(Twitter)>에서 북에 관한 사용자들의 관심도가 2013년 4월에 들어와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한다. 또한 미국 성인인구 가운데 약 36%가 북에 관련된 보도기사를 일상적으로 검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처럼 핵피격 공포가 조성된 분위기 속에서, 북의 핵타격미사일 실전배치를 인정한 미국 국방정보국 보고서 내용이 미국 언론에 흘러나왔으니, 미국 군부는 물론 백악관까지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언론에 나서서 북의 미사일 능력에 관한 미국 국방정보국 평가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북의 미사일 능력을 터무니없이 평가절하한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핵타격미사일 발사단추를 누르기 직전의 사격대기상태에 돌입해 있다. 이것은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지난 3월 29일 최고사령부 긴급작전회의에서 내린 사격대기명령을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즉각 수행한 것이다.

오늘 전시상황에 처한 북미관계의 급박한 움직임을 살펴보면, 미국의 운명을 결정할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핵타격미사일 발사시각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1814년 9월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 함대가 미국 수도의 관문인 볼티모어를 함포사격으로 초토화한 이래 200년 동안 외국군대의 총알 한 발도 떨어지지 않았던 미국 본토에 핵피격 공포의 시간이 악몽처럼 흐르고 있는 것이다.(2013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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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개입 쇼’ 벌인 경찰, 이젠 ‘깃털 뽑기’

 

 
 
[집중분석] ‘도둑질’맞는데 ‘가택침입’ 일 뿐 ‘절도’는 아니다?
 
육근성 | 2013-04-20 09:33:5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불거진 건 지난 12월 11일. 대선 8일 전이었다. 경찰은 여직원 김씨의 노트북 등을 제출 받은 지 사흘 만에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다. 투표 시작 50여 시간 전에 강행된 수사결과 발표는 어떤 식으로든 18대 대선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지난 12월 16일 밤... ‘경찰의 대선 개입 쇼’

 

 

경찰은 12월 16일 밤 11시에 진행된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에서 대선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한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국정원 여직원과 국정원에게는 면죄부를, ‘국정원 댓글 여론조작’의 최대 수혜자인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에는 난처한 국면에서 탈출할 수 있는 ‘퇴로’와 함께 역공의 빌미까지 챙겨준 셈이다.

 

 

3일 만에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던 경찰이 대선이 끝나자 뒷짐을 지기 시작한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언론에 의해 폭로되면 마지못해 움직였다. ‘여직원 김씨의 아이디가 새롭게 발견됐다’, ‘김씨가 오유 사이트에서 게시글에 대해 찬반 표시를 했다’, ‘정치·사회 관련 글을 올린 흔적이 있다’라는 식으로 최소한의 사실을 인정하는 시늉만 했다.

 

 

그러던 경찰이 최종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간을 질질 끌다가 공직선거법 공소시효 두 달 앞두고 비난여론에 밀려 내놓은 수사결과다. 경찰의 발표는 예상보다 더 황당하다. 제대로 된 수사결과가 아니다. 권력 눈치 보느라 부단히 고심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다.

 

 

‘도둑질’ 맞는데 ‘가택침입’일 뿐 ‘절도’는 아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씨(29.여)와 이씨(39), 일반인 이씨(42)를 국가정보원법 위반(정치 관여) 혐의로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인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해서는 ‘면죄부’를 줬다. 수사결과를 발표한 수서경찰서장은 “이들이 올린 게시글에서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발견하지 못해 선거 운동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글을 게재하고, 특정 정당을 비호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았던 이들이다. 이런 행위가 대선 직전에 이뤄졌는데도 선거법을 위반한 게 아니라니. 법 적용의 상당성과 형평성을 무시한 처사다. 그렇다면 이들이 국정원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댓글 여론조작’에 나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선거 시기에 특정 후보의 정책과 공약에 대해 간단한 의사를 표시해도 선거법 위반으로 시민단체들을 처벌했던 사례가 수두룩하다. 동일한 법적 잣대를 적용했다면 국정원 직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어야 옳다. 도둑질을 했는데 가택침입죄만 묻고 절도죄는 적용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5개월 동안 경찰이 한 일? 국정원 봐주고 새 정부 눈치보고...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단이 ‘댓글 여론조작’에 동원됐다는 정황과 제보가 많다. ‘댓글’ 목록이 상부로부터 하달되면 그 것을 인터넷 상에 유포하는 식으로 ‘댓글 공작’이 진행됐다는 증언도 있고, 이를 확인한 언론보도도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달랑 3명만 검찰에 송치했다.

 

 

깃털만 처벌하고 몸통은 비켜가는 전형적인 ‘꼬리자르기’ 수사다. 경찰의 수사발표대로라면, 저들 3명은 윗선의 지시도 없이 근무 중에 사무실을 빠져나와 온종일 특정 정당과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달았다는 얘기가 된다. 말이 되는가?

 

 

소환에 불응한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단다. 5개월 동안 여직원 김씨의 직속 상관에 대한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5개월 동안 대체 경찰이 무엇을 했을까. ‘국정원을 봐주고 새 정부 눈치 보는 것’이 전부였나 보다.

 

 

“서울경찰청이 집요하게 수사에 개입했다”

 

 

경찰에게 수치스러운 수사결과 발표였다. 5개월 전에는 ‘국정원의 정치개입 행위는 없었다’고 말해놓고 이제 와서 말을 바꿔 정치개입 사실을 인정한 경찰이다. 경찰 스스로 대선에 개입한 사실을 증명한 꼴이 됐다. 공범’이 공범을 수사한 셈이다.

 

 

<연합뉴스>는 “이번 수사과정을 잘 알고 있는 경찰 A씨부터 ‘민주당이 수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이후 수사 내내 서울경찰청의 지속적인 수사개입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고 있다. A씨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경찰청이 얼마만큼 집요하게 축소 수사를 요구했는지 잘 드러난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A씨의 증언 내용이다.

 

 

“수서경찰서가 김씨의 컴퓨터에서 대선과 관련한 78개의 키워드를 발견해 서울청에 분석을 의뢰했으나 그쪽(서울청)에서 이러면 신속한 수사가 어렵다며 수를 줄여서 다시 건네 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

 

 

“서울청은 김씨(국정원 여직원)의 컴퓨터에서 나온 문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일이 김씨에게 허락을 맡고 파일을 들춰 봤다.”

 

 

“(증거물품인 김씨의 컴퓨터 2대에 대해) 수서경찰서의 잇따른 반환 요청에도 서울청에선 그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수사팀의 강한 항의를 받고서야 뒤늦게 돌려준 것으로 안다.”

 

 

▲대선 50여시간 전. '경찰 대선개입 쇼'를 주관한 두 주역. 김기용 전 경찰청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모두 떠났다. 왜 일까?

 

 

새누리당의 황당한 ‘비틀기’, 국민 공분 부추겨

 

 

국민들은 경찰 수사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데 새누리당이 불쑥 나서 황당한 주장을 했다. 국민의 울화통을 터지게 하려고 작심이라도 한 건가.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의 말이다.

 

 

“당시 야당이 국정원 직원을 감금하고 인권을 짓밟은 불법사항을 경찰이 수사했다는 얘기를 못들었다. 이에 대한 수사를 촉구한다.”

 

 

 

참 입 가볍고 철 없는 대변인이다. 국정원 여직원이 불법을 저지른 게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감금과 인권 타령이다.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 당시 박 대통령의 목청 높인 주장에 대해 여론의 비난이 쏟아질 것이 우려되기 때문에 선수를 친 것인가.

 

 

검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래도 국민들은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우려하고 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의 최종 수혜자가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지난 12.19대선이 부정선거로 결론 나는 것을 박 대통령과 새 정권이 앉아서 구경만 하겠는가.

 

 

그 입 다 어디갔나?

 

 

그 입들 다 어디 갔나 궁금하다. 성폭행범이나 쓰는 수법으로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해 놓고 인권침해를 했다고 핏대를 올렸던 그 입 다 어디로 갔을까. 국정원 여직원이 피해자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문란케 한 가해자의 하수인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 입들에게 충고하겠다.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여론을 호도한 주장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 바란다.

 

 

12.16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김기용 전 경찰청장과 김용판 전 서울청장이 주연과 연출을 맡아 벌인 ‘쇼’라는 게 드러났다. 경찰의 대선개입 ‘쇼’를 연출한 장본인들이다. 처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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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19 오후 7:16:33

 

 

책이 인기를 끌면 그 책의 저자는 기쁘기 마련이나 동시에 씁쓸한 마음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책에 대한 수요가 그 책이 지적하는 현실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경우다. 지난 2월 12일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한 날 출간된 <극장국가 북한>(권헌익·정병호 지음, 창비 펴냄, 원제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은 날로 심각해졌던 한반도 긴장 상황과 함께 2개월간 꾸준히 이목을 끌었다. 저자들은 "이런 관심이 혹시 '극장'이라는 말이 주는 묘한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북한을 다룬 많은 책들이
국제정치학 서가에 꽂힌 것과 달리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베트남 전쟁의 추모 문화를 연구한 <학살, 그 이후>(유강은 옮김, 아카이브 펴냄)로 잘 알려진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케임브리지대 인류학 박사), 그리고 대북 인도적 구호 활동, 탈북 청소년 교육 사업 등 현장에서의 실천을 계속해 온 정병호 한양대학교 교수(일리노이대학교 인류학 박사) 등 두 명의 인류학자다.

이들은 북한이
경제적 곤궁과 외교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에 '과시하는' 거대한 공공예술 행사, 대형 기념물 등 상징을 분석했고 이것이 권력의 정통성 강화, 이념의 전파를 위해 고도로 고안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저자들은 이렇듯 과시적 상징에 온 힘을 기울이는 북한의 모습을 클리퍼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발리 연구에서 등장시킨 '극장국가'란 그릇에 담아내는데, 이는 연구의 질문 그 자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무엇인가? 부제인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다. 막스 베버는 전통적 권력, 관료적 권력과 구별되는 '카리스마 권력'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북한은 어떻게 안정적으로 카리스마 권위의 3대째 세습을 이룰 수 있었을까? 책에서 우리는 이 질문을 '극장국가'라는 개념의 도움을 받아 함께 살펴보게 된다.

 

▲ <극장국가 북한>(권헌익·정병호 지음, 창비 펴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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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민족이나 그것을 인지하고 살아본 경험이 없는 많은 독자에게, 북한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국가'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곧바로 마주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 북한에는 카리스마 권력의 독특한 마력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잘 아는 대단히 능란한 정치 지도자가 있었다. (…) 북한은 현대 세계에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또 하나의 나라'일 뿐이라는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은 옳다." 저자들의 오랜 고민과 연구가 담긴 이 책은 '이상한 국가를 고치고 말겠다'라는 북한에 대한 거세지는 강박적 시선의 물줄기 위에, 그 흐름을 바꾸는 작은 돌을 얹어 놓는다.

지난 4월 12일 오후 연세대학교 연희관에서는 이 책의 주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한 '사회인문학 저작 비평회 Ⅱ <극장국가 북한>의 이론과 의미'라는 포럼이 열렸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사업단의 주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권헌익, 정병호 두 저자가 직접 참여해 토론자인 이우영(북한대학교대학원), 김영선(연세대 국학연구원)은 물론, 함께 한 학자·학생·시민들과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오간 열띤 비평의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해 싣는다. 저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일부 새롭게 만들거나 각색했고, 진행 순서를 다소 바꾸었다. 행사의 사회는 김성보 연세대 국학연구원 부원장(사학과 교수)이 맡았다. <편집자>

"여기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극장국가 북한>은 북한과 관련해 실천과 학문을 함께 해 온 정병호, 북한 문제를 사회주의 역사의 보편적 시각으로 접근해 온 권헌익 두 저자가 일궈낸 뜻깊은 연구의 결과다. 두 사람이 북한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연구를 함께 하게 된 경위를 듣고 싶다.

정병호 : 개인적으로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북한 어린이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이 그 시작이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일본문화론 수업을 하던 당시, 근처에서 '우리 어린이집'이라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활동을 했었다. 그때 북한 어린이들의 발육·성장 장애 문제를 접하면서 너무 심각하다 싶어 구호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분단 체제의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북한을 공부하게 되었다. 분단 체제가 나를 단련시켰다고 할까.

구호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베이징 등에서 노련한 전문가들을 만났고, 여러 협상의 기술과 접하고 거기에 당해보기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다 처음으로 평양에 가게 되었을 때 많은 충격을 받았다. 탁아소에서 아이들이 '우리는 꽃봉오리, 해님을 보면 따사롭고 복에 넘친다'는 노래를 진심으로 눈물겹게 부를 때 '여기선 뭔가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를 직감했다. 인류학자로서 정말 관심을 갖고 파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때그때 걸려 있는 실천적인 과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데이터를 모으면서 작업을 연기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는 어린이들의 발육 상태와 영양 문제를 제대로 조사하기 위해 옌벤 지역으로 갔고,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북한을 탈출해 오는 아동들의 생존 조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직접 보고들을 수 있었다. 거기서 베이징이나 평양에서 접한 북한과는 전혀 다른 결의 북한을 만났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평양과 마찬가지의 '해님과 꽃봉오리' 정신은 관철되고 있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아이들을 끝까지 도와주지 못하고 떠나오는 데 대한 커다란 죄책감이 있었다. 여기 서울에서는 크게 실감나지 않겠지만 비행기로 고작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그곳에서는 정말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생존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보고도 아무 도움을 못 준다는 사실, 나만은 언제든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다른 현실로 순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비참하고 또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던 중 옌벤 쪽에서 만난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2000년 무렵엔가 듣고, 하나원(북한 이탈 주민들의 사회 정착 지원을 위하여 설치한 통일부 소속기관)에다 '하나둘 학교'를 세우게 됐다. 하나원이라는 이름에 담긴 통일부의 지향점이 '하나가 되자'는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는 '하나둘 학교'를 통해 둘이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전혀 다른 사회화 과정과 의미 체계 습득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에 국가를 바꾸고 과거를 폐기하여 '하나'가 되라는 요구가 얼마나 큰 억압이고 폭력인지 아이들을 보며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은 하나여도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경험을 가져가자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그렇게 탈북 청소년 교육 사업을 하면서 탈북자 관련 다큐멘터리나 미디어 보도에 노출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다큐멘터리 중 하나가 <서울 트레인(Seoul Train)>(짐 버터워스·아론 루바스키·리사 슬리스, 미국, 2004년)이라는 작품이다. <서울 트레인>은 옌벤에서 몽골에 이르기까지 탈북자들의 탈출 전 과정을 밀착 취재하면서 그 모든 어려운 현실과 그들의 인권을 둘러싼 정치적인 문제들까지 다룬다. 이 작품을 만든 미국 작가들은 인도적 지원 단체나 탈북자 정치의 비인도성에 대해 알고 있었고, 미국 하원이나 유럽 연합 인권 위원회 등 국제 사회에서 탈북자를 어떻게 이미지화하는지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시각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 ⓒRowman & Littlefield

우리 내부에도 북한에 대한 왜곡이나 굴절이 있지만, 남북관계를 결정하는 실질적 힘을 가진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그것보다 더한 발췌, 왜곡, 이미지 소비가 만연하고 있다. 이런 것을 우려하던 차에, 권헌익 교수가 브뤼셀에서 이 작품을 보고 나를 찾아주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남북 문화 통합 연구 때문에 몇 번 만나 뵌 적이 있었다. 남북 문화 통합 연구는 조한혜정 교수(연세대학교)가 1990년대에 시작해서 오늘 토론자로 나온 이우영 교수, 정진경 교수(충북대학교), 권혁범 교수(대전대학교) 등도 참여했던 연구다. 나도 구호 활동을 하면서 점점 북한이 남한 사회에서 거론되는 방식으로 아주 예외적인 집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 국제 사회주의 역사의 흐름 속에 하나의 유형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포스트 소셜리즘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면서 권혁범 교수와 함께 쿠바나 헝가리 등의 국가에 찾아가 조사를 해봤는데, 포스트 소셜리즘 연구가 결코 '사이드'로 할 만한 게 아니라는 사실만 절실히 깨닫고 돌아왔다. 세계사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전문가와 결합되지 않으면 결실을 맺기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일단은 접고 있던 차에 권헌익 교수의 연락을 받게 됐다.

권헌익 교수는 영어권에 퍼져 있는 남북관계 관련 정보가 대단히 편향되고 왜곡되어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학술 연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 나도 이에 공감해 우선 영어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지난해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라는 결과물로 나왔고, 이를 번역하여 올해 <극장국가 북한>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다.

기어츠와 베버의 눈으로 들여다 본 극장국가

-제목에 나오는 '극장국가'가 북한을 바라보는 틀로 주목받고 있다. 이 극장국가론은 어떠한 배경을 갖는가. 또 막스 베버의 정치 이론도 주요한 참고점으로 제시되는데, 어떤 지점에서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아울러 이런 사회과학적 이론에 기반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이 북한 연구에서는 상당히 드문 편인데, 이것이 기존의 북한 연구와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학문적으로 어디쯤에 자리매김 되는지 듣고 싶다.

권헌익 : 정병호 교수는 동아시아 차원, 그리고 실천적 사고에서 북한을 연구해 왔고 그래서 북한 관련한 실증적 지식이 많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나 역시 주로 시베리아, 베트남 지역과 관련한 비교 사회주의 체제 연구를 계속했기 때문에 북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인류학자인 저자 둘은 북한을 조금 더 현대 사회 이론, 정치 이론, 권력 이론 속에서 보편화하는 작업으로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책을 쓰다 보니 어떤 구도가 잡히게 됐다. 내 생각에 그 구도란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자로서 역사에서 배우는 입장에서 집필하는 한편, 역사학에서 비교적 강조를 덜 하고 어려움을 겪는 개념화에 대한 사회과학적 틀을 제시하려 했다고 할까. 두 분야가 만나면 북한 연구에 어떤 진전이 있을 거라고 봤다.

저자 둘은 작업을 시작하면서 먼저 기존의 북한 연구에서 등장하는 '가족 국가론'과 '유격대 국가론' 등 역사학자들이 제시했던 틀을 가지고 읽고 배우고 토론하게 된다. 거기에서 머물 수는 없었고,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 틀을 이 가족 국가론, 유격대 국가론과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여기서 들여오는 중요한 이론가 두 사람이 클리퍼드 기어츠와 막스 베버다.
 

▲ 클리퍼드 기어츠. ⓒccs.research.yale.edu

인류학자라면 누구나 마주치는 이름인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 1926~2006)는 20세기 미국의 상징인류학과 해석인류학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기어츠는 1970년대 인도네시아 발리 네가라(왕국)의 사례를 연구했고 여기에서 겪은 탈식민지 국가의 상징 권력에 대한 고민을 '극장국가'라는 틀로 표현했다. 어떤 체제, 상황에서는 권력 창출에 있어 물리적 강제가 아닌 화려한 의례나 공연 등 상징과 과시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예술이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서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가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인민들의) 노동이자 국가 경영의 일환, 정치의 중앙으로 들어오는 의미에서의 예술이다. 이는 국가의 목소리를 인민에게 전달하고 인민이 국가의 목소리를 인지·체득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국민과 국가를 통합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중요하게 들어온다. 기어츠는 인류학사에서 굉장히 베버적인 사람이었고 또한 베버를 넘어서려 무진 애를 쓴 사람이다. 극장국가론에도 베버의 영향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 베버는 물리적 힘을 권위로 전환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상정하고, 각각의 권위 형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된다고 이해했다. 그가 비교하려고 한 대표적인 세 가지 전형의 정치적 권력은 카리스마 권력, 전통적 권력, 합리적-관료적 권력이고, 그 중에서 특히 카리스마 권력에 관심을 가졌다. 이 카리스마 권력 이론이 극장국가 이론, 그러니까 예술-정치의 관계 혹은 예술정치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과 거의 동등하게 (중요한 요소로) 이 책에 들어오게 된다.

전통적 권위 혹은 법-관료제 등 우리가 현대 국가의 권위 형태로 이해하는 시스템들이 위기 처했을 때, 마치 호랑이가 뛰어 오르듯 카리스마적인 인물 하나가 역사의 지평으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권위를 창출하려고 한다. 책에서 우리는 이러한 카리스마 권위를 20세기 역사에 있어 중요한 권력 형태로 보았다. 베버는 이러한 카리스마 권위에 매우 주목하면서도 그것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체제로서 지속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고 봤고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권력 형태로 여겼다. 이 권위는 리더(카리스마적 인물)와 추종자 사이의 마술적 관계에서 성립되기 때문에 특정한 위기 상황이 끝나면 사라지고, 결국 전통적 권위나 제도적 권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전반에 걸친 실제 역사의 과정이었으며, 베버의 이론상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리는 20세기 역사의 창출물인 북조선이라는 국가가 체제의 모든 힘을 기울이면서 의식적으로, 또 나름대로 카리스마 권력의 비영속성을 극복해 냈다고 보았다. 물론 북한의 지도자가 일부러 막스 베버의 이론을 읽고 '이걸 극복해 보자'고 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웃음). 여하튼 비교사회주의 연구에 등장하는 '정치가 예술이고 예술이 곧 정치'인 완벽한 합치의 예에 베버 식의 사회과학적 시각을 들여오고 다시 북조선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주체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기어츠를 들여오면서, "북한이라는 극장국가가 비영속적이라 여겨졌던 카리스마 권위를 통해 어떻게 영속적인 권위를 이루게 되었나"란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정리한 셈이다.

앞서 이 책의 구도에 대해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대화'라고 말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이 인문-사회과학을 연결하는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기존의 역사학적 연구에서 제시됐던 북한을 정의하는 틀을 중요하게 가져오면서, 거기에 인류학자에게 익숙한 상징과 정치라는 틀을 가지고 사회주의 혁명 국가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전반적인 중요성을 비교 사회주의학적인 차원으로 다루었다. 또 이것이 막스 베버의 권력 유형론이라는 사회과학의 중요한 틀과도 만나게 된다.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은가? 현실을 보라!"

-책을 쓰면서 저자들이 가졌던 주된 고민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어판이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계속 북한 문제로 시끄러운데, 이러한 상황을 보며 드는 고민 역시 궁금하다. 그것을 책의 메시지와 연결 지어 이야기한다면?

권헌익 : 책에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특정성을 강조하는 현대 인류학의 상대주의적인 접근 방식과 보편 이론화를 상기해야 하는 현대 사회과학의 접근 방식이 북한이란 주제 앞에서 첨예하게 부딪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대 인류학과 기존의 북한 연구에서 강조되는 내재적인 접근 방식은 어떤 체제나 시스템에 대해 좋다 나쁘다, 잘 됐다 못 됐다와 같은 도의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그 자체의 의미나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안으로부터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게 나의 학문 분과에서 토대적인 경향이 있다 보니 거기에 익숙했는데 이번 연구를 전개하면서 과연 거기에서 끝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민족에 있어서나 국제적으로나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문제인 북한 문제에 대해서 그냥 상대주의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참고로 정병호 교수는 상대론 쪽에 약간 더 가깝고, 나는 상대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를 하면서 약간 개종을 한 상태다. (웃음) 성향이 비슷하지만 이 책을 쓰면서 조금 달라졌던 두 사람이 만난 책이라고 할까. 그런 면이 재미도 있었다.

정병호 : 이 책의 한국어판이 우여곡절 끝에 올해 2월 12일에 나왔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웃음) 그래서 출간된 주말에 거의 대부분의 일간지에서 전면 혹은 반면을 털어 서평을 실어주었고 곧 2쇄를 찍었다. 남북 간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책이 잘 나가는 것을 반가워할 수만은 없더라. 책을 사는 분들이 정말로 책을 얼마나 읽는지는 모르겠다. 보시다시피 이 책 표지가 참 화사하다. 이런 표지와 '극장 국가'라는 부분이 우리에게 핵실험과 전쟁 위기라는 절대적 불안감을 해소시켜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대가 끝나면 막이 깨끗이 내리고 우리는 무사히 현실로 돌아오게 될 거라는 숨은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극장으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저자들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현실을 가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가상 또한 너무나 쉽게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도 악몽처럼 기어츠가 쓴 <네가라>의 첫 장을 읽는다. 그는 한 왕국의 최후의 날을 그리고 있다. 네덜란드 군인이 왕국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 그저 항복만 하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수 있을 때 왕은 화려하게 장례식 행렬을 만든다. 곧 네덜란드 군인들이 무차별로 쏘아대는 총탄 속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자살적인 행진을 하는 것으로 왕국은 운명을 마감한다.

<네가라>를 다시 볼 때마다 이 극장국가의 현실이 실제 우리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한 순간 뒤바뀔 수 있는 현실 위를 걷고 있으면서도 북한과의 관계와 그 운명을 완전히 남의 손에 맡겨놓고, 체념과 불감증과 무기력에 빠져있는 이 상황이야말로 초현실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북한 문화론 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공포감을 유포시킨다는 악평을 듣고 있다. (웃음) 그러나 제대로 바라보면 우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인류학 연구'에 '이것'이 없는 이유?

-북한에 대해서는 좌우 할 것 없이, 연구자-일반인 할 것 없이 어떤 도덕적 강박증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느니,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느니 하면서 윤리 교사 행사를 하려고 한다. 이렇게 북한에 대한 합리적 논의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두 저자의 유의미한 연구 결과는 시도 자체로서 굉장히 소중하다. 또한 북한 연구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국제정치학에만 갇혀 있는데, 그래서 인류학적인 시도인 <극장국가 북한>이 더욱 각별하다. 몇 년 전 통일연구원에서 북한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보고서를 낸 것이 국가 기관에서 욕망을 다룬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 게 21세기 한국의 현실이다. 앞으로는 이런 인류학적 연구를 비롯하여 심리학적인 연구도 많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아쉬움에 질문을 섞어 세 가지 정도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구성원 쪽 연구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북한 연구의 원천적인 난점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또 국가론이니까 권력 주체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주민들에 좀 더 주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시도 자체가 주민들을 수동적으로 그릴 가능성이 있다. 동의기제를 논할 때 비로소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는데, 사실 세뇌하고 동의는 다른 것이지 않나. 정병호 교수는 평양도 자주 방문하고, 이제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탈북자도 많다. 두 저자 모두 인류학자인 만큼 그 장점을 발휘해 인류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심층면접 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았겠나 싶다. (토론자 이우영)


권헌익 : 중요한 지적이다. 일단 정병호 교수는 북쪽에 네트워크가 많고 나 역시 넓지는 않지만 아주 가까운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취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과 나눈 대화가 나름의 방식으로 반영되었다고 본다. 예컨대 직접적으로 '아리랑 축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오랜 신뢰·친분 관계로 맺어진 이들과의 대화가 (연구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특정한 방법론을 연구한 것이다.

사실 나는 베트남에서 연구를 전개한 경험이 있어서 연구자에 대한 그러한 억제가 익숙해져 있는 편이다. 북한 뿐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 연구에서는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중국 연구에서는 1980년대 들어서부터, 그리고 소련 연구에서는 최근 들어 그런 시도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게 가능한 상황이 되면 이미 탈 사회주의 상황이기 때문에 시간 관계에서 상당히 어긋난다. 탈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웬만해서 '옛날 어려울 때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일반적인 인류학적 접근 방식으로 우리의 관심에 따라 구성된 질문을 가지고 취조해가는 방향이 아닌, 사람들이 얼마만큼 (극장국가의) 상징을 내재화했는가를 보려고 했다. 그리고 사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아래로부터의 실증적 연구(결과)는 영구히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당 방법론과 지역적 토대가 특정하게 관계 맺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이걸 어떻게 교정해 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미래에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부분이 있으리라고 본다.

정병호 : <꽃 파는 처녀>를 북쪽 사람들과 함께 본 적이 있는데, 보는 내내 "저 지주 놈을 때려죽이지 못해?" 이러면서 난리가 난다. 활자로, 영화로, 뮤지컬로 이 이야기를 얼마나 숱하게 봐 왔겠나. 다음에 무슨 대사가 나올지 아는 사람들이 판소리 추임새를 넣듯 그 흥을 타는 거다.

또 하나, 내가 만난 탈북 청소년들 중에는 언제, 누구보다 먼저 소년단에 입단했는가를 자기 성취의 첫 번째 기억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탁아소에서부터 시작되는 교육 과정에서 탈락과 배제를 계속해서 경험시키는 것이다. 가령 아리랑 축전을 준비하는 여고생에게 있어 최대의 형벌은 '본선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린 아이들을 억지로 훈련시켜서 내보내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아리랑 축전에 참여했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성취감이다. 우리로 치면 '올림픽에 출전해 보았다'라는 성취감이라고 할까.

이러한 수용태도나 학교 등 훈육의 과정, 생애 주기를 따라가며 정서적인 측면의 반응들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다면 (수용자 측면에서의 연구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한 권의 책 속에서 이것까지 담아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 이야기되는 지배자-피지배자 사이의 동의, 수용 관계를 논함에 있어 한 부분을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카리스마 권력의 경우 카리스마적인 지배자가 있고 거기에 동의를 하거나 하지 않는 피지배자가 있을 텐데, 극장국가의 경우 기획하는 지배층-수용하는 피지배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관객도 무대의 일원으로서 전체가 하나의 의례를 행하는 의미로 알고 있다. (사회자 김성보)

권헌익 : 지적한 대로 대형 의례의 경우 관객이 곧 배우, 참여자다. 이런 '참여' 과정은 인민들 스스로 국가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주체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카리스마 권위 이론으로 들어가면 앞서 이우영 교수가 적절하게 지적했듯 승인(recognition)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추종자들이 지도자의 권위를 승인해야지만 그 카리스마 권력이 유지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베버 이론에서 승인 문제는 실증적인 것이 아니라 개념적인 것으로 얘기된다. 사실 권력의 승인은 북한처럼 극단적으로 닫힌 사회가 아니라 할지라도, 즉 열린 사회에서도 실증적으로 밝혀내기 어려운 문제다. 어떤 사회든 그 구성원에게 '너희 나라 지도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면 심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어쨌든 피지도자가 국가의 의례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그 참여로써 형성된 지도자의 권위에 대해서는 '승인'을 해야 하는, 참여와 승인 간의 복잡한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것은 에밀 뒤르켐으로 들어가면 이론적으로 해소는 되겠지만 그렇게 개념적으로 끝낼 성격의 문제는 또 아닌 것 같다. 역시 나중에 올 누군가가 실증적 자료를 기반으로 밝혀내 주었으면 한다. (웃음)

-두 번째 아쉬움은 아리랑 축전이나 혁명열사릉 등 제시된 상징적 장치, 의례들에 위계 관계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점이다. 책 표지에 아리랑 축전 사진이 나오니까 이를 가장 중요하게 느끼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은데 과연 실제로도 그런가? 다른 기획들과의 차이는 없는가? 상징 권력들은 어떻게 연결되어서 작동하고 있는가? 이런 물음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결론' 장이 좀 낯설었다. 전체적으로 냉철하게 거리를 둔 분석을 하다가 갑자기 마지막에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베버의 설명과는 달리 특수하게) 카리스마 권력이 잘 작동하고 있다. 여러 극장국가의 기획을 동원해 그것을 유지하고 있고, 세습도 했다'라는 설명 뒤에 '그렇지만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가 오는 격이다. 이론적인 결과물과 현실적 판단 사이의 간극이라고 할까. (이우영)


권헌익 : 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인류학에서 상징과 상징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한 가지 상징에 대한 연구보다 더 중요하다. 베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미줄'을 연구해야 한다. 아리랑 축전과 혁명열사릉의 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봤다면 그것은 책의 분명한 한계라고 본다. 이건 앞서 말한 것처럼 아래로부터의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락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한계가 맞는 것 같다.
 

▲ 북한의 예술 공연 '아리랑'의 한 장면. ⓒ류재수


남북관계 벗어나 남북관계 보기

-사람들을 의례에 참여하게 하고 그들이 참여함으로써 주권을 공유하게 되는 과정에서 국가 폭력 문제가 개입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반적인 차원과 극장국가론에서 특화된 차원에서 이는 어떻게 다른가? 극장국가론에서는 물리적 폭력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건지, 아니면 아예 드러나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

권헌익 : 여기에는 구체적이기보다 약간 개념적인 설명이 동반될 것 같다. 1950년대 냉전의 경우, 한국과 같은 주변부에서는 국가 폭력이 전쟁이라는 물리적인 형태로 나왔는데 동시대 미국 사람들은 그것을 상징으로, 즉 수사학적인 의미에서의 폭력(가령 매카시즘)으로 경험한다. 기어츠가 상징 권력을 강조하며 극장국가론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인 20세기 후반기에 전 지구인들의 겪은 경험 상의 차이가 있다. 기어츠는 양쪽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어츠는 상징적 힘을 강조하기 위해 그것(물리적인 폭력)을 쓰지 못했다.

이를 베버와 기어츠의 관계에서 읽어보면, 베버는 현대 정치를 제도적, 관료적 권력으로 설명하는데 기어츠가 여기에 '그게 다가 아니다. 상징 권력도 중요한 힘이다'라고 반기를 든 셈이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공포와 상징적인 공포 양쪽의 교차를 봐야 하는데 기어츠는 그 교차관계보다 한쪽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할까. 마찬가지 측면에서 우리 책에서도 물리적 강제에 대한 언급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남한에서도 발견되는 연좌제나 혈연 내 연대 책임, 강제 문제 등 '국가 대 개인'이 아닌 관계에서의 물리적 강제기제를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이것들을 어떻게 병존시켜야 할지 불명확했다. 특정한 테마를 갖고 있는 저작에서 이 모든 것을 함께 다루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1970년대 초 닉슨과 키신저가 끌어낸 '데탕트' 국면과 그 이후에 걸친 남북한의 독재 정치, 1989년의 소비에트 붕괴, 1990년대 중반부터 촉진된 선군정치의 출현 등의 북한 체제 변동에 있어 저자들은 '아시아적 맥락'에서의 냉전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앞서 열거한 역사적 변동에 있어 북한의 '1970년대'라는 시간대가 갖는 중요성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앞서 우리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해를 지칭하는 '1989년 이후'라는 연대기적 구도를 무작정 아시아의 상황에 적용하는 데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 개념은 우리가 흔히 냉전의 종결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격변을 서구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 북한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는 '1989년 이후'라는 구도만으로는 적절히 이해할 수 없다. (…)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일주일"(닉슨 대통령이 자신의 1972년 중국 방문에 대해 쓴 표현)(…)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 1972년이 1989년보다 탈냉전의 글로벌 정치경제 체제 형성의 시작을 보여준다는 주장은 오늘날 여러 세계 체제 이론가들이 말하듯 나름의 일리가 있다." (70~72쪽)

그러나 여기에 남북한 체제의 적대적 상호 의존성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냉전 체제와 교차하여 남북한을 하나의 분석 범주로서 접근할 때, 혹은 '분단 체제'라는 분석 틀을 저작의 주제에 적용해 볼 때 새롭게 포착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토론자 김영선)

권헌익 : 냉전에는 남북 간 전쟁, 미소 간의 대립, 북한-중국-소련 사이에서의 관계 등 여러 모습이 있지만, 1970년대에 북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양극 체제(미, 소)에서 삼극 체제(미, 중, 소)로 변하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물론 남한 역시 중요한 변수였지만, 저쪽 입장에서 보면 중소 분쟁이나 미중 간의 악수로 인해 국제 관계가 완전히 복잡해지는 상황이 너무나 중요했다는 것이다.

남북이 같은 민족이니까 우리 중심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남이 아닌 '우리의 타자'를 이해하는 데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우리(남한)의 생각보다 우리가 북한에 중요하지 않은 것,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렇기에 북한의 역사가 그렇게 발전한 것이고 말이다. 가끔은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에서 남북한 중심을 벗어났을 때 그것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

중앙과 지방, 동심원 질서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여성 탈북자들이 나와 북한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맥주의 맛부터 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평양과 그 외의 지방이 매우 다르다는 얘기를 하더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느끼면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이를 느끼는지, 그걸 안다면 어떻게 그 차이를 삼키는지 의문을 가지게 됐다. 극장국가론이나 카리스마 권력의 세습을 가지고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 궁금하다.

정병호 : 평양과 그 외의 지방은 현격한 차이가 있고, 그 사이는 지리적으로도 국경 관리 수준까지는 못 가도 굉장히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다만 극장국가적인 퍼포먼스나 예술적 상징의 전달 체계는 가장 낮은 단위의 행정구역, 교육기관까지 관통되고 있다고 한다.

전에 놀랐던 일화가 하나 있다. 기근 시기에 평양에서 찍은 엘리트 탁아소 아이들의 퍼포먼스를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자 의사한테 보여주었더니 '우리 함경도 촌동네 아이들이 먹을 걸 못 먹으면서도 저걸 똑같이 했다'고 감탄한 것이다. 즉 적어도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한, 이러한 상징성의 전파는 상당한 우선순위에서 사회 활동의 근간이 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아리랑 축전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양에서 열리기는 하지만 전국에서 모여 든다. 2006년에 아리랑 축전이 열렸을 때 남한의 매체는 물론 통일부 사람들까지도 '북한이 저걸로 외화벌이를 노렸는데 잘 안 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검색을 해보면 '무리한 아리랑 축전, 외화벌이 실패' 운운하는 당시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전국에서 평양으로 모여든 수백 만의 주민들은 이것을 보고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고,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구나'를 느끼고 돌아갔다고 한다. 남한 사람들이 아리랑 축전을 보고 얼마나 기가 죽고 놀랐을지를 아주 자긍심에 차올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중앙) 권력자가 아니었고 지방의 중간 혹은 하급 관리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사례들로 볼 때 극장국가라는 설명이 사회·경제적인 특혜의 유무나 격차 양상보다 상징 체계의 보급 면에서 훨씬 더 보편성을 갖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으로 말하자면 모두가 (경제적인) 차이를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탈북자들은 무조건 서울에서 살기를 바라며, 한 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거의 폭동까지 일으킨 적도 있다.

권헌익 : 중앙과 변방 관련해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책에서 이것을 두 방향의 관계로 설명하는 챕터가 있다. 하나는 방금 정병호 교수가 말한, 아리랑 축전이나 집단 제전 등 변방에 사는 사람들이 중앙으로 모이는 경우다. 이런 실천만큼 중요한 것이 반대의 방향이다. 즉 중앙의, 그것도 중심 중의 중심인 사람들이 무리를 이끌고 변방의 끝까지 가는 '현지 지도' 실천이다. 중앙에서 변방으로의 이동은 카리스마 권력 형성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카리스마는 오히려 권력자가 변방의 구석으로 가서 땅바닥에 앉아 농민, 노동자들과 지방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면서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김일성의 카리스마 정치가 현재의 김정은 시기와 다른 부분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김일성 스스로 어떤 이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중앙집권화된) 카리스마 정치를 극단화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제어 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스스로 신비화만 한 게 아니라, 때로는 바닥으로 내려와서 사람들을 껴안고 만지고 하면서 평범한 사람 같은 행위를 보인 것이다. 물론 김정은 체제에서도 이런 행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카리스마 권력 형성에서 중심->변방 이동 축이 점점 더 약해진다고도 볼 수 있겠다.

우리가 북한이나 다른 사회주의 체제를 볼 때 피라미드식 위계질서에만 집중하기 십상인데, 이와 동시에 혹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중심-주변이나 내부-가장자리의 관계, 즉 동심원적 구도다. 이는 꼭 평양과 지방 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혁명열사릉에 가도 중심이 있고 이를 에워싸고 퍼져 나가는 동심원 구조가 보이며 중심과의 거리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진다. 이 중앙의 기원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부터 병존하는 피라미드식 위계질서와의 관계, 이것들이 어떻게 교차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앞으로의 북한 연구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 지난 15일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이한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남한도 극장국가다?

-책을 읽으며 어떤 면에서는 남한도 극장국가나 카리스마 권위의 세습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기어츠 이론을 남한에 적용시킨 논문도 읽은 적이 있다. 가령 박근혜는 물론 선출 권력이지만 대중의 심성 속에는 아버지인 박정희의 카리스마 권력과 그 신화가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 북한의 카리스마 권위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다른 체제로 확장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한편 정치와 예술이 합일된 형태는 다른 파시즘 국가, 특히 스탈린 시기 소련의 경우에서 강하게 목격되는데, 이렇게 다른 사회에도 적용이 가능한지 알고 싶다.

또 극장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김정일이란 개인의 성향이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부연하자면 김일성 시기에는 예술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정도가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는 것과 유사한 정도인데 김정일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다른 것 같다. 북한이 극장국가로 보이는 데에는 김정일의 개인적 취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아니었을까? 책의 결론 부분은 '이제 극장국가 그만 좀 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보이는데 김정일이 사라진 지금 어쩌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다못해 예전만큼 (극장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지 않나 싶다. 이러한 의문에 따른다면 '극장국가 북한'이라는 이론화 과정은 김정일의 성향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병호 : 우리가 말한 극장국가가 북한이라는 특수한 경우만을 설명하기 위한 틀은 아니며, 기어츠도 그 시기의 발리를 사례로 취했던 것이지 거기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경우라고 보지 않았다. 정치학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그러나 실제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권력 작동 방식으로서 이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적용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본다.

김정일의 개인적 특성이 영향을 미친 면은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건 김정은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주의해서 볼 것은 (카리스마 권력) 세습의 경우, 3대째의 세습이 이뤄지면서 이미 체제화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김정은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 황장엽이 '그깟 놈'이라는 말을 했고 한 거대 일간지가 이 말을 머리기사 제목으로 다뤘는데, 그걸 보고 체제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일본의 천황제처럼 오래된 체제와 비교할 수야 없겠으나 그런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체제화된다는 것은 그게 누구든 (권력의 크기로서) 대치 가능하다는 뜻이다. 가령 김정은이 아니라 다른 누가 권력을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그 체제가 상징과 믿음의 체계로 경직되어 작동하고 있는 한 그 자리에서는 계속 같은 힘을 가질 거라는 얘기다. 그 외형은 메이지 천황처럼 강력할 수도 있고 다이쇼 천황처럼 존재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스타일은 달라도 권력은 온존되는 체제의 작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국가의 의미를 갇힌 정형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새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가령 '극장국가적 요소'라는 차원에서 볼 때 북한이 국가 독점적 이미지 산업의 제조를 했다고 한다면, 남한은 투표라는 자유 경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권위의 세습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고 본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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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남조선 무기는 골동품 가소롭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4/20 10:41
  • 수정일
    2013/04/20 10: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 "남조선 무기는 골동품 가소롭다."
 
“미국 본토방위 급급 남한 돌볼 여유 없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4/20 [08:5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미국이 국방력을 과시하는 토마호크 미사일 그러나 조선은 지넌달 20일 이를 요격하는 시범 훈려을 통해 성공시키는 장면을 보여줬다. ©
조선은 남한 정부 당국이 엄청난 비용을 들이며 사오거나, 국산화한 첨단 군사 장비들은 쓰지도 못할 골동품들을 잔뜩 긁어모아놓고 신주 모시 듯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조선을 똑바로 알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0일 ‘골동품에 명줄을 건자들의 허황한 망상’이라는 제목의 정세론 해설을 통해 “골동품 무기로 그 무슨 ‘집무실창문타격’이니, ‘지휘부창문타격’이니 하고 고아대는 것이야말로 가소롭기 그지없다.”고 조소했다.



로동신문 정세론 해설은 “오늘의 조선반도정세가 1960년대의 푸에블로호사건 때나 1990년대의 조미 핵 대결전 때보다 전쟁위기가 더 고조 되었다는 것은 내외여론의 일치한 주장”이라며“지난 세기 50년대의 조선전쟁전야나 다름없다는 견해를 제출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만큼 조선반도에서 전쟁발발은 시간문제로 되고 있다. 그러나 괴뢰 호전광들은 일촉즉발의 초긴장상태에 이른 현 파국적 사태에는 전혀 아랑곳없이 우리에게 최대최악의 정치 군사적 도발을 걸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신문 정세론해설은 ‘한미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서 규정 된 동상 제거 사실을 전하고 “괴뢰 호전광들의 분별없는 망동은 우리의 연속적인 초강경공세와 단호한 군사적대응의지에 질겁한 자들의 단말마적 발악으로써 우리에 대한 핵선제 공격위협을 더욱 노골화하는 것으로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나 북침야망을 기어이 실현해보려는 흉악한 계책의 발로”라고 고발했다.

신문 정세론 해설은 “비극은 괴뢰 호전광들이 저들의 군사적 능력은 물론이고 미국의 전쟁머슴꾼에 불과한 가련한 처지에 대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면서 “얼마 전 남조선의 한 신문은 괴뢰군의 전투기들에 탑재되어 있는 미국제 공대지 순항미사일(SLAM-ER)의 발동기에서 결함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고 전하면서 “이 미국제순항미사일은 괴뢰 호전광들의 ‘도발원점은 물론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강력하고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족집게식 정밀타격‘에서 기본타격 수단들 중의 하나로 되고 있다. 그러나 미, 국방성은 괴뢰들에게 순항미사일을 팔아먹으면서 모방생산이 두려워 기술정보도 넘겨주지 않았으며 분해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정세론 해설은 “미, 국방성은 미군에 1기당 8억원으로 조달한 순항미사일을 괴뢰들에게는 20억원에 팔아먹었다.”며 “이것은 미국이 괴뢰들을 얼마나 업수(업신)이 보며 허술하게 대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세론해설은 계속해 미국의 수입무기나,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국산 무기들이 성능미달로 쓸모 없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해마다 엄청난 자금을 퍼부어 수없이 끌어들이고 있는 무장장비들에 불량품들이 들어있는 것도 그렇지만 자체로 개발한 것들도 사고가 꼬리를 물어 괴뢰군부의 골치 거리로 되고 있다.”며 “한쪽에서 북침전쟁연습에 돌아치던 괴뢰군의 탱크와 장갑차들이 도로난간을 들이받고 굴러 떨어졌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포신이 폭발하는 등 각종 사고들이 그칠 새 없다.”고 폭로했다.

로동신문은 특히 “조선괴뢰 호전광들은 자기는 물론이고 우리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다. 우리는 그 어떤 침략세력도 단매에 쳐부실 수 있는 강력한 공격수단들과 방어수단들을 다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 백두산 혁명강군의 실전타격연습에서 위력이 발휘된 각종 무장장비들은 내외의 폭풍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북정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며 ‘전시작전통제권’도 가지지 못한 남조선괴뢰들이 쓰지도 못할 ‘골동품’들을 잔뜩 긁어모아놓고 신주 모시듯 하면서 그 무슨 ‘집무실창문타격’이니, ‘지휘부창문타격’이니 하고 고아대는 것이야말로 가소롭기 그지없다. 괴뢰 호전광들의 북침야망이야말로 언제 가도 실현될 수 없는 허황한 개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 절하하며 사태를 객관적으로 볼 것을 주문했다.

또한 “더욱이 상전이 펼쳐주는 ‘핵우산’이 우리의 핵 불벼락을 막아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말하고 “우리의 초강경대응에 질겁하여 본토방위에 급급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지금 제 하수인을 돌볼 여유가 조금도 없다.”며 미국의 핵우산 방어 전략도 말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그렇다. 쪽박 쓰고 벼락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라며 “남조선괴뢰들은 불을 즐기는 저들의 모험적 망동이 비참한 멸망으로 이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명심하고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미국은 조선의 어떤 공격도 막아 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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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주년 4.19혁명 기념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

 

"4월혁명 정신으로 통일조국 완수"
제53주년 4.19혁명 기념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
 
 
2013년 04월 19일 (금) 13:57:33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민족민주운동단체들은 서울 국립4.19민주묘지에서 합동참배식을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민족민주운동단체들은 "4월혁명 정신으로 통일조국을 이룩하자"고 결의했다.

이날 낮 12시 서울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사월혁명회, 한국진보연대, 통합진보당 등 민족민주운동단체와 정당 관계자들이 합동참배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 낭독한 선언문에서 참가자들은 "우리 민족사에 찬연히 빛나는 4월혁명 53주년을 맞이했다. 지금 국민들은 박근혜정부가 민주주의도 민생도 남북관계도 역주행시킨 이명박 정부를 답습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재 한반도에 어느 때보다 전쟁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라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올해를 평화협정 체결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힘을 다 바쳐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주, 민주, 통일 4월혁명 정신은 자주통일 6.15공동선언과 평화번영 10.4선언으로 국민의 가슴마다 살아있다"며 "우리는 끝내 4월혁명을 완수하여 자주와 민주의 통일조국을 이룩해 내고야 말 것"이라고 결의했다.

 

   
▲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 '4월혁명 53주년 선언문'을 읽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참배식에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진달래는 다시 피고 영령을 기리는 오늘, 우리는 다시 찾아왔다. 4월은 끝나지 않았다"며 "우리 민중의 힘으로 민족자주의 뜻으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통일의 터전 위에 민생복지를 꽃피우는 그 날까지 우리의 4월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오종렬 고문은 "이제 뜻있는 모든 전사들, 지사들, 그들에 끝나지 않고 우리들의 뜻이 자주민주통일의 그 염원이 전 민중의 생존에 직결된다는 것을 대중의 언어로 대중 속에 다가가야 한다"며 "우리 모두 떨쳐 일어나자. 대중의 품으로 달려가자"고 말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4.19 혁명은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독재자를 끌어내린 민중 승리의 역사이자,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함성이 온 누리에 퍼진 자랑스러운 역사"라며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5.16 군사쿠데타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염원을 짓밟고 유신독재의 암흑기를 가져왔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쓰러져간 민중들의 염원을 실현시켜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정희 대표는 "박근혜 정부는 취임 하기 전부터 대선 공약을 뒤집어 엎고 독선과 불통의 정치로 노동자,농민,서민의 삶을 무시하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며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언제나 민중과 함께 당당하고 굳건하게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합동참배식에는 민족민주운동단체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했으며, 분향과 참배로 4.19혁명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 사월혁명회 회원들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당 관계자들이 분향과 참배를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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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앞에서 눈물 글썽글썽, 변호사에게 무슨 일이?

[책소개] <노동자의 변호사들 - 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사건 10장면>

13.04.19 16:22l최종 업데이트 13.04.19 16:47l

 

'변호사'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말쑥한 정장을 입고 법정에서 현란한 말솜씨를 뽐내는 모습? 검은 가방을 들고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는 모습? 우리는 특히 후자의 변호사들을 텔레비전에서 가끔 본다. 재벌 회장이 탈세나 횡령으로 소환됐다는 뉴스 리포트 속 변호사들은 종종 재벌 회장의 대리인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김앤장' '율촌' 같은 대형 로펌의 이름은 이제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수백억 원을 탈세하고 그 돈으로 비자금을 만든 재벌 회장도 물론 변호 받을 권리는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하지만 재벌에게 막대한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들이 무죄 선고나 솜방망이 판결을 끌어내는 동안,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 밖에서 혹은 법의 이름으로 카운터 펀치를 연타로 맞는다. 부당해고, 노조 파괴, 공권력 투입, 어마어마한 손해배상 청구….

<노동자의 변호사들> 표지
ⓒ 미지북스

 

대한민국 헌법 32조는 말한다. 노동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을 제공해야 한다고. 헌법 33조는 말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인간적 근로조건과 노동3권은 대한민국이 노동자들과 맺은 최소한의 약속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그 약속은, 원래 무슨 글자가 쓰여 있었는지 잘 보이지 않는 낡은 광고판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권리가 법에 어떻게 쓰여 있는지도 모르는 노동자들, 설령 권리를 알아도 비싼 변호사를 찾아갈 엄두를 못 내는 노동자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노동자를 위해 법정에서 싸우는 사람들
 

▲ 민주노총 법률원 단체사진 창립 11년째를 맞는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변호사·노무사·간사들. 왼쪽에서 5번째 흰 셔츠를 입은 사람이 권두섭 변호사. 사진은 지난 2월 21일 촬영분.
ⓒ 민주노총법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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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들이 있다.

내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 <노동자의 변호사들>은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의 변호사들(또 노무사들)의 이야기다. 창립한 지 11년째인 민주노총 법률원에는 약 30여명의 변호사·노무사·간사들이 오늘도 기울어진 정의를 바로 세우려고 뛴다. 대형 로펌을 포기하고 이곳에 온 변호사들의 일상과 고민, 그들이 씨름해온 노동 사건들, 자기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싸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나와 만화가 최규석이 취재와 인터뷰로 엮어냈다. 내가 법률원이 걸어온 길과 법정 싸움을 주로 다뤘다면, 최규석 만화가는 변호사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앞서 잠깐 언급한 고급 승용차나 세련된 사무실 따위는 노동변호사들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파업과 농성 현장을 뛰어다니며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증거를 찾는다. 연행된 노동자가 있으면 그들은 새벽에도 경찰서 유치장으로 달려간다. 밤샘은 기본이고, 여성 변호사들도 급하면 고무줄로 머릴 질끈 묶고 법정에 나간다. 로펌 변호사들은 건당 거액의 성공 보수를 받지만 법률원 변호사들을 찾아오는 노동자들은 수임료조차 제대로 못 내기 일쑤다. 그럼에도 그들은 법전과 자료에 파묻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필살의 논리'를 찾는다. 그들이 싸우는 검찰과 사법부는 어떤가. 여전히 노동운동을 무슨 범죄로 보고 구속자가 많을수록 성과를 올렸다고 보는 보수적 의식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노조에 유리한 자료는 아예 무시하거나 누락하고,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 보고 판결을 내렸어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끼워 맞췄다는 생각이 들어요. 변호인단에게도 압수수색권을 좀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공사 측 자료를 압수해서 파업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증거를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권두섭 변호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 2부 6장. 파업은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중

저 철탑이나 종탑에 올라가는 노동자들만큼, 변호사들 역시 불리하기 그지없는 법의 전장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세간을 시끄럽게 한 노동사건도, 재판이 시작되면 이미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바로 그때 노동법을 둘러싼 결정적인 판례들이 나온다. 판례는 사건에 해당되는 노동자는 물론 전체 노동자에게 미친다. 판례에 따라 파업이 합법이 되거나 불법이 되며, 해고가 정당화되거나 무효화되고, 근로조건이 악화되기도 또 개선되기도 한다.

물론 고용주에게 유리한 판결은 즉각 집행되는 반면 노동자에게 유리한 판결은 겨울잠 자는 곰처럼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나 어떤 판결이 나느냐에 따라 노동자들의 싸움에 명분이 실리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명분이 있을수록 노동자들은 오래 버틸 수 있고 승리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노동변호사들은 밤샘 하고 휴가를 포기하면서 미친 듯 일에 매달린다. 한 예로, 2012년 여름 안산의 자동차부품회사 SJM이 용역깡패를 동원해 직장폐쇄를 자행했는데 이 사건으로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들은 아무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

미끄러지고 있는 노동기본권
 

▲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미끄러지는 노동기본권 현재 금속노조법률원 김태욱 변호사와 여러 노동변호사들이 정리해고 원인의 위법성을 놓고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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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도깨비 도로'란 곳이 있다. 겉으로 분명히 오르막인데, 기어를 중립에 두고 있으면 자동차가 슬슬슬 위로 올라간다. 중력의 법칙이 무시된다. 정말 무슨 도깨비가 차를 끌어당기는 건가 신기한데, 그럴 리는 없다. 착시현상이다. 지형 때문에 눈에 오르막길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리막길인 것이다.

그런데 이 도깨비도로 같은 곳이 바로 대한민국 법정이다. 법정은 스스로 공평무사한 곳이라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법정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그곳은 기업주와 주주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판결은 그들의 이익을 향해 구른다. 헌법에는 버젓이 노동3권이 있다는데 어째서 노동기본권은 자꾸 미끄러지는 것일까. 노동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국가가, 아주 교묘하게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법전문가들은 국가가 초래하는 노동기본권의 위기를 세 측면에서 지적한다.

첫째는 법 자체로부터 오는 위기다. 국가가 노동기본권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법을 제정·도입하는 경우이다. (중략) 둘째로는 법의 적용으로부터 나오는 위기다. 사법부는 법 조항을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해석하고 정부는 자의적으로 법 집행에 나선다. (중략) 셋째로는 필요한 법을 만들지 않아서 생기는 위기다. 정작 필요한 법을 국회에서 제정하지 않거나 미루는 것이다. - 2부 여는 장. 위기에 처한 노동3권 중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창립멤버이자 현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와 나는 그동안 법률원이 다뤄온 수백 가지 노동사건 가운데 어렵게 골라 열 장면을 구성했다(참고로 이 책은 권 변호사의 14년의 경험과 각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각 장면들은 언급한 노동기본권의 위기를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만 몇 개 들어보자. 권 변호사는 비정규직 보호법은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말한다. '보호'하는 법이 악법이라니? 비정규직 보호법은 도리어 불안정 고용, 간접 고용을 정당화하는 근거라는 것이다. 2003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원청회사가 하청업체를 폐업시켜 노조 조합원들을 싹 쫓아낸 일이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1980년대에 악명 높았던 '식칼테러'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간접 고용 구조를 이용해 손에 피 안 묻히고 노동3권을 무력화한다. 변호인단은 재판에서 원청이 사용자라는 걸 밝혀냈지만, 해고까지 철회시키진 못했다. 하지만 변화된 판례가 조금씩 쌓여 최근 현대자동차에게 하청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이 나오게 됐다.

사실 나부터, 평소 노동문제에 진보적 시각을 지녔다고 생각했지만 노동기본권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몰랐다. 나는 노동운동이 탄압받는 것은 이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라서 그런 거라고 단순하게 이해해왔는데(물론 그것은 여전히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말은 뒤집어 말하면 자본주의에 잘 순응하면 불이익이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그러나 진실은 이미 이 사회의 법적 제도적 기초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데 있다. 이 사실을 모르면, 노동기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기본권이 미끄러져가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TV를 보면서 왜 노동자들은 만날 '불법 파업'만 하느냐고 혀를 차곤 한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의 파업은 대부분 불법인지, 자문해본 적 있는가. 외국에 비해 노동자들이 유난히 과격해서인가. 권두섭 변호사의 말이다.

"파업이란 단지 노동자가 사용자를 위해 일을 안 하겠다는 거잖아요. 법원은 그게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사용자를 속이거나 신체를 힘으로 구속한 것이 아닌데도요." - 2부 6장. 파업은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중

업무방해죄란, 조직폭력배가 남의 가게 앞을 가로 막고 "자릿세를 안내면 장사 못 할 줄 알아" 할 때 적용하는 바로 그 법이다. 그런데 헌법 33조에 따라 파업권이 있는데도 법원은 노조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한다. 법원은, 파업은 기본적으로 범죄이며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법적 책임을 면제해준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그 정당한 사유 다투기가 또 하늘의 별 따기라며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된 나라 중에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들은 파업은 나쁜 거라고 세뇌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노동자가 된다. 노동자가 파업할 권리를 포기하고 노동기본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권리를 알아야 권리를 지킨다

나는 사건마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을 인터뷰했다. 사건의 배경과 본인들의 경험담을 듣기 위해서다. 그런데 장기투쟁 중인 노동자들의 경험은 언어만으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만큼 고통의 흔적이 몸에 배인 터다. 변호사들 역시 이런 정서의 노동자들과 매일 만나고 상담을 하다 보면 감정적 갈등을 겪는다. 권 변호사의 고백이다.

"상담하다 보면, '노조 그만하시라'는 말이 목까지 찰 때가 있어요. 조합원도 얼마 안 남고 사측에 다 포섭당하고, 싸우느라 힘은 힘대로 드는데 복수 노조되면서 교섭권 없는 소수 노조로 전락하고, 우울하죠. '이제 노조 그만하시고, 멀리 보고 가세요.' 이런 말을 하고 싶지만 상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잖아요." - 2부 4장. 이 사람은 노동자일까 아닐까 중

최규석 만화가가 그린 우지연 변호사는, 판사가 재판을 빨리 종결하려 하자 그만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고 한다. 이대로 끝나면 불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해고되고 징계당한 노동자들의 얼굴이 스쳐갔을 것 같다. 우 변호사의 얼굴을 본 판사가 이렇게 말했단다. "원고 소송 대리인이 울려고 해서 종결 못 하겠네요." 변호사들이 논리와 증거로만 싸우는 건 아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그렇게 일할 수는 없다.

끝으로, 책을 쓰며 든 한 가지 걱정을 이야기할까 한다. 이 책의 독자들이, 노동자로 살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노동기본권이니 노동조합 같은 데서 관심을 끄고 열심히 제 한 몸이나 지키자고 생각하진 않을까? 자, 법정은 기울어져 있다. 상대는 박근혜 정부다. <88만원 세대>를 읽은 청년들이 '88만원 세대가 안 되려면 정신 차리고 스펙 관리하자'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기도 한 것처럼, 이 책도 그런 결과를 낳진 않을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권리에 대해 알아야 권리를 지킬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노동 교육' 한 번 받지 않고도 판사가 되고 교수와 CEO가 되는 나라다. 다들 스티브 잡스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노동3권은 뭔지 모르는 청년들이 넘친다(애플에는 '스티브 되다 - being steaved'라는 말이 있다. 잡스의 말 한 마디로 부서가 바뀌거나 해고됨을 뜻한다). 학교도 언론도 노동기본권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과 같은 부족한 노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을 지키는 일은 사막에서 물을 지키는 일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고용주에게 내맡기는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엄마저 잃지 않으려면 노동3권만큼은 보장받아야 한다. 그것을 지키는 일은 힘들지만 꼭 필요하고 인간적이며 가치 있는 일이다. 노동변호사들이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며, 또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노동자의 변호사들> (오준호·민주노총법률원 글·최규석 그림 | 미지북스 | 2013.04. | 1만5000원)
이 기사를 쓴 오준호님은 <노동자의 변호사들>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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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북한 잠입취재, 최고 시청률… 화면은 ‘썰렁’

 

 
[백병규의 글로벌포커스] 동행 학생들 대학에 공개서한 “기자 동행취재 알았다”

백병규 언론인 | bkb21@hanmail.net

 

“BBC의 위장 잠입 취재보다도 대학 당국이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이 우리를 더 위험에 빠트렸다.”

영국 BBC 파노라마의 북한 위장 잠입 취재 논란과 관련해 취재팀과 동행했던 런던정경대(LSE) 학생 10명 가운데 6명이 공식적으로 학교 측의 처사를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내 BBC 편을 들었다.

밀라 아키노바 등 학생 6명은 17일 크레이그 칼훈 런던정경대 학장과 이사회 의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BBC 기자들과 함께) 북한을 여행했던 것 보다 대학 측이 이런 사실을 공개하고 문제를 삼으면서 우리가 더 위험에 처해졌다고 판단한다”면서 “대학 측이야말로 우리의 신변 안전 문제가 걸린 사안을 두고 당사자인 우리와 단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보도 사실과 다른 것 많다”

이들은 공개서한에서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면서 최대 논란이 되고 있는 BBC 취재팀의 사전 고지 여부와 관련해 “북한으로 출발하기 전 런던에서 BBC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합류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으며, 이런 사실이 (북한 당국에) 발각될 경우 억류되거나 추방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베이징에서 존 스위니가 BBC 기자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들은 “BBC 파노라마가 ‘북한 잠입취재’를 방영한 것에 대해서도 이의가 없다”며 BBC 입장을 지지했다.

학생들의 이같은 공개서한은 그동안 BBC 측이 밝혔던 취재 경위와 대략 맞아 떨어진다. 학생들에게 잠입취재의 위험성을 충분하게 고지하지 않았다는 런던정경대 측과 여타 언론들의 비판에 대해 BBC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잠입취재 사실과 그 위험을 충분히 알렸다”고 반박했었다. 런던에서 북한 여행팀을 모집할 때 개별적으로 두 번에 걸쳐 기자들이 동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것. 또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들어가기 전에 존 스위니 기자와 카메라기자, 그리고 이번 북한 여행을 조직한 토미코 스위니 LSE 강사가 스위니 기자의 아내로 취재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고지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 학생들에게 ‘서면’으로 동의를 받지는 않았으며, 스위니 기자가 자신의 신분을 런던정경대 ‘교수’라고 기재한 것 등은 논란의 소지가 없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현지 호텔 주변에 둘러쳐진 철조망 앞에서 몰래 리포팅하고 있는 존 스위니 BBC 기자. 동행한 대학생들을 인간방패로 활용했다는 논란 때문인지 15일 방영된 ‘북한, 잠입취재’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진=BBC <파노라마> 화면.
 
실제 BBC는 이 취재 계획을 면밀히 추진해왔으며, 위험 지역 취재 가이드라인에 따라 ‘리스크 관리’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에서 취재팀의 구성을 동행한 학생들에게 알린 것도 그 일환이었다는 것. 당초에는 스위니 기자의 신분만 밝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합류한 카메라기자가 ‘스파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자 전체 취재팀의 구성을 학생들에게 알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BBC는 이와 관련, “만약 취재팀은 물론 동행한 학생들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기획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억류’ 혹은 ‘추방’의 상황까지를 고려해 취재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실제 이 취재 계획은 취재 보도국 최고 책임자에게 보고됐으며 승인 아래 추진됐다.

여행자거나 방문단의 일원으로 신분을 가장해 취재하는 방식은 BBC의 취재 보도 지침에서도 정상적인 취재가 불가능할 경우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다만, 동행자나 협력자들의 신상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안전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또 BBC는 물론 다른 서방 언론들도 북한을 비롯해 폐쇄적인 국가나 지역을 취재할 때 이런 위장 취재 방식을 활용하곤 한다. 한국 언론들이 북․중 국경 지대나 고구려나 발해 유적지 등을 취재할 때 여행자를 가장해 취재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파노라마> 최대 시청률 기록… 잠입취재 논란 한 몫

이번에 BBC <파노라마> 취재팀의 잠입취재가 특히 논란이 된 것은 북한 측이 스위니 기자의 잠입 취재 사실을 파악하고, 런던정경대와 동행했던 학생들에게 항의 및 경고 이메일을 보낸 것이 발단이 됐다. 뒤늦게 스위니 기자의 위장 취재 사실을 파악한 북한 당국이 이메일을 보낸 것. 학생들에게는 북한의 법률을 어겼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런던정경대는 학생들의 신변 안전 문제와 BBC가 잠입 취재 사실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한 잠입취재’의 방영 중단을 요구했다. BBC가 이를 거절하자 대학 측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대다수의 영국 언론들은 BBC의 이번 취재 방식에 대해 학생들을 인간방패로 활용한 비윤리적인 취재방식이었다고 몰매를 가했다. 지난해 사망한 BBC 간판 진행자 지미 새빌의 미성년자 성추행 파문에 이어 정치인의 성 스캔들 오보로 BBC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이번 사안은 자칫 BBC에 결정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스위니 기자의 잠입취재에 동행했던 다수 학생들이 BBC의 입장을 지지함에 따라 그나마 곤경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BBC가 거센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스위니 기자의 ‘북한 잠입취재’를 방영할 수 있었던 것은 어쨌든 나름 취재 보도 윤리의 기본을 지켰기 때문이다. 동행했던 10명의 학생 가운데 2명이 ‘공개적’으로 BBC가 자신들을 인간방패로 활용했다고 비난하고 나섰지만, 다수 학생들의 증언에 비춰 볼 때 취재팀이 동행할 것이라는 점을 나름 충분히 고지한 것만은 사실로 보이기 때문이다.

BBC <파노라마>의 이번 방북 잠입취재에 대한 보다 매서운 비판은 되레 다른 데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티모시 가턴 애쉬 교수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핵전쟁 위협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북한의 ‘현재 상황’을 취재하려 한 BBC를 매도해서도 안되겠지만, 그 프로그램이 정작 보여준 것이 뭐냐고 묻는다. 환자는 없는 텅 빈 병원, 황량한 거리 풍경 등을 화면으로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북한의 피상적인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BBC <파노라마>가 “북한의 실상을 보여줄 것”이라고 호기 있게 선전했지만, 북한 현실에 대한 분석과 진단은 대부분 전문가나 탈북자에서 따온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했다지만, 과연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느냐는 반문인 셈이다.

예정대로 15일 밤 방영된 30분짜리 ‘북한 잠입취재’는 평균 51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시청률 20.3%. <파노라마> 평소 시청자 수보다 최대 69%나 증가한 수치다. <파노라마>가 2007년 1월 방송시간대를 월요일 밤 8시30분대로 옮긴 이후 최고 시청률이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때였기도 하지만, 잠입취재 논란이 시청률을 크게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굳이 BBC와 런던정경대의 손익 계산을 해본다면 BBC의 압승이란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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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4-18 16:28:52 노출 : 2013.04.19 0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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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보국장·원세훈은 어디가고... 직원 둘이 한 짓?

[분석] 대선개입 밝혀낼 선거법 위반 혐의는 제외시켜, "축소수사" 비판

13.04.19 09:26l최종 업데이트 13.04.19 10:09l

 

 

▲ 경찰, 대선기간 '국정원 정치개입' 확인 이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이 18일 오후 지난해 대선기간 발생한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과 공범인 일반인을 국가정보원법 위반(정치개입)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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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지난 4개월여 동안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 민간인 이아무개씨 등 세 명이 지난해 8월부터 12월 초까지 올린 글 400여건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왔다. 이를 바탕으로 400여건 가운데 100여건의 글이 '국정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국내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제9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18일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들의 행위는 선거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지난 대선과 직결되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빠지면서 '축소수사'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은 이날 수사결과 발표에서 일관되게 '국정원의 대선개입 혐의'만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국정원 김씨 등의 혐의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에 관여한 것으로 보는 '적극적 의사 표시'나 '선거운동'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들이 올린 400여건의 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경찰이 4개월여간 벌인 수사를 통해 내린 결론은 '이들이 국내정치에는 관여했으나 대선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인터넷 댓글 작업'이 국정원법 위반에는 해당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 2명과 이들을 도운 민간인 1명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 초까지 400여건의 글을 올렸다. 특히 이들이 문제의 글을 올린 기간에는 ▲박근혜(새누리당)·문재인(민주통합당) 대선후보 확정(8-9월) ▲안철수 대선후보 출마 선언(9월) ▲안철수 대선후보 사퇴(11월) 등 민감한 대선일정들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게다가 이들이 올린 글은 대부분 정부와 여당(박근혜 후보)에 유리하고, 야당(문재인 후보)에 불리했다.

술 마셨는데 음주는 아니다?..."선거법 위반혐의 유효" 권 수사과장은 교체돼

그런 점에서 이들의 댓글 작업이 대선과 전혀 무관하다고 경찰이 판단한 것은 '축소수사'의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날 일부 기자들도 "술을 마셨는데 음주는 아니라는 것이냐?"고 따져물었을 정도다.

경찰의 수사결과는 스스로 밝혀온 내용과도 어긋난다. 이 사건 초기 수사실무자였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난 1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경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않고는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까지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던 권은희 과장은 수사도중 갑자기 교체됐다(2월 4일). 경찰쪽은 "정기인사에 해당한다"고 해명했지만, 민감한 사안을 수사하고 있던 수사과장을 교체한 데는 '외풍'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게다가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사흘 전까지만 해도 경찰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혐의를 두고 있었다. 지난 15일 안재경 경찰청 차장은 "국정원에서는 개인적 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정원의 조직적인 개입 여부를 종합적으로 다 수사할 것이다"라며 "댓글을 단 직원이 윗선의 지시를 받고 행동에 옮겼는지 조사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국정원 중간 간부들도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 국정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면 그것은 대선개입 의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찰 고위간부인 안 차장의 발언이 답보상태의 경찰수사에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무마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사흘 뒤에 발표한 수사결과는 그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 2명이 저지른 일로 만들어 버렸다"

경찰은 '인터넷 댓글 공작'의 진원지로 의심받고 있는 심리정보국의 민아무개 국장도 조사하지 못했다. 이광석 서장은 "민 국장이 출석요구에 불응했다"며 "조사가 안된 상태라 '혐의가 있다,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석한 한 관계자는 "4월 초 서면으로 한번 부르고 이후에는 문자로도 한번 더 연락했다"며 "전화는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안했다"고 해명했다.

민 국장을 조사해야 원세훈 전 원장까지 이어지는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경찰에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을 민주통합당에 제보했던 전직 국정원 직원은 "원세훈 원장이 지시하지 않고 민 국장이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국 경찰수사는 원세훈 전 원장에게도 이르지 못한 셈이다.

민주통합당의 '원세훈게이트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서 활동중인 김현 의원은 "지난 15일 경찰청 차장이 '국정원의 조직적인 개입 흔적이 있다'며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여지를 남겨두었는데 그런 절차를 제대로 밟지도 않은 채 사실상 경찰수사를 종결했다"며 "결국 경찰은 이번 사건을 국정원 직원 2명이 저지른 개인적인 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김현 의원은 "공직선거법 혐의로 걸어야만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부분이 특정되는데 그것을 사실상 무혐의로 처리했다"며 "이는 상부의 지시에 따른 정치(대선)개입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이 대북심리전 차원에서 활동했거나 개인적으로 인터넷 활동을 벌인 것으로 축소해버린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현 의원은 "경찰은 국정원의 비협조를 핑계로 민 국장도 소환조사하지 못하는 등 국정원에 굴복했다"며 "경찰은 외풍을 지나치게 세게 받기 때문에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상대로 한 수사를 하기 버겹다"고 꼬집었다. 그는 "앞으로 검찰-경찰-국정원의 삼각편대의 개혁을 어떻게 이루어낼지가 남은 과제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경찰의 축소수사 징후는 대선일 직전인 지난해 12월 16일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이미 감지됐다. 당시 김 청장은 이례적인 시간대인 오후 11시에 "김씨가 특정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박근혜-문재인 대선후보의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지 1시간 만이었다는 점에서, 편파적인 대선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대선 전 개입 흔적 확인하고도 없다고 발표했다...양심선언 나올 수도"

대선을 몇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오후 국정원 직원 인터넷 불법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서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문을 열어 달라"며 협조를 요청하고 있으나, 안에 있는 국정원 여직원이 문을 잠근 채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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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씨가 나중에 '오늘의 유머'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 특정후보와 연결되는 글을 올리거나 관련게시물에 찬반을 표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수사결과 발표에서 후자조차도 국정원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당시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여러 개의 아이디로 활동하며 대선 등과 관련한 글을 올린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도 한밤중에 그런 흔적이 없다고 발표해 권은희 수사과장 등 수사팀에서는 불만이 컸다"고 전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언제든지 양심선언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국정원 직원의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을 추적해온 민주통합당의 한 인사는 "공직선거법 혐의를 적용하게 되면 '박근혜 후보 지지 활동' 등까지 수사할 수 있어서 수사는 박근혜 후보 캠프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하지만 경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뺌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쪽까지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차단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인사는 "아직 검찰조사가 남아 있고, 채동욱 검찰총장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부분까지 조사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검찰로서는 (검찰수사 뒤에 진행될) 국정조사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경찰로부터 송치받은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사건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고소·고발사건을 병합해 수사할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현 여주지청장)이 팀장을 맡은 특별수사팀에는 공공형사수사부장과 공안부·특수부·형사부·첨단범죄수사부 소속 검사 6명이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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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쥔 양날의 칼, 전쟁!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북한이 변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강호제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19 오전 7:20:16

 

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하지만 전쟁이 과학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1800년대 나폴레옹 전쟁 당시 처음으로 과학기술자들이 전쟁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인지되어 등용되기 시작하였고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과학기술력이 전쟁을 종결짓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전쟁을 수행하는 당시에는 물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수많은 물자들이 소비되고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들이 죽게 되며 각종 생산시설을 비롯한 문명의 근간이 되는 시설들이 파괴된다. 전쟁을 수행하지 않을 때에도 전쟁을 대비해서 비축하는 물자들은 생산에 투자되지 않고 사람들이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매몰'되어 버린다. 이렇게 보면 전쟁은 경제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공포, 혹은 전쟁에 대한 기억은 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시 전쟁을 겪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강한 동기 부여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위정자 입장에서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활용하여 사회 구성원들을 쉽게 통제하기도 하였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폭 장면. 당시 전쟁에서 핵기술을 이용한 무기가 처음 등장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그런데 전쟁이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된 현대에 와서는 간접적, 심리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차원에서 전쟁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전쟁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과학기술 연구에 투자를 많이 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마련된 새로운 기술들은 전쟁 수행 혹은 전쟁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게 된다. 그렇게 숙성된 기술은 이후 민간 영역으로 전이(spin-off)되어 새로운 생산력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전쟁은 과학기술을 매개로 하여 경제발전과 연결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변화를 잘 살펴보면 너무나 많다. 대표적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발달된 레이더기술을 들 수 있다. 강력한 전자기파가 물체 표면에서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성질을 이용한 레이더 기술은 전자레인지 기술로 전이되었다.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전자기파는 반사하지 않고 흡수되어 그 물체의 온도를 높여준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물 분자가 전자기파를 잘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 전자레인지의 기본구조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레인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냉동식품의 유행과 함께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주었다. 가사노동의 해방이라고도 불린 전자레인지의 보급은 부족해진 남성 노동자의 자리를 여성 노동자들이 채우게 해주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핵분열 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제를 발견하면서 만들게 된 '핵폭탄' 제조 기술이 원자력 발전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문자 발명과 인쇄술의 발명에 버금가는 정보혁명을 가져온 인터넷의 개발도 사실은 핵전쟁 이후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찾는 과정에서 착상된 것이다. 핵전쟁 이후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될 상황을 대비하여 정보를 분산 저장하고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네트워크망을 구성하다가 인터넷이 개발된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서 전달되는 신호체계는 핵 관련 연구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을 찾다가 마련된 것이다.

북한 경제에 미친 전쟁의 부정적 영향

전쟁 수행이나 전쟁 준비 과정은 북한 경제에도 일차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남북은 독자적으로 경제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북한은 1950년이 되어서야 겨우 전쟁 직전 상태의 경제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44년 북한 지역의 공업 총생산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1946년에 26%까지 떨어졌다가 1949년에 95.5%까지 올라갔다. 처음으로 장기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2개년 계획(1949~1950)을 수행한 첫해에 달성한 결과인데 다음 해인 1950년에는 133.2%로 올릴 예정이었는데 한국전쟁의 발발로 이는 무산되었다.

전쟁의 피해는 참혹했다. 휴전 직후 평양 시내에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단 2채뿐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1951년 국영 및 협동단체 공업 총 생산액은 전쟁 전 수준의 반도 안 되었다고 한다. 특히 중공업 분야의 피해가 컸는데 연료공업은 8.7%, 야금공업은 8.4%, 화학공업은 7.7%로 감소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중공업 부문은 거의 정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본격적인 전후복구사업(3개년 계획, 1954~1956)을 시행한 북한 경제는 1956년에 대략 전쟁 직전 상태를 벗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가 집중되었고 막중했던 중공업 분야는 해방 직전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하였다. 발전공업은 1944년에 비해 86%, 연료공업은 80%, 화학공업은 93%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결국 북한이 1944년 수준을 회복하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다는 뜻이다. 한 순간의 전쟁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가량의 시간을 날려버린 것이다.

전후복구 사업 직후 수행된 1차 5개년계획(1957~1960)이 예상보다 높은 성과를 거두면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원래 계획이 대폭 수정되었으며 계획 기간도 1년 단축되었다. 북한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당시 공업 생산액 성장률은 1958년 42%, 1959년 53%까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도성장 추세가 꺾인 것도 전쟁 때문이다. 1962년부터 채택된 국방-경제 병진 노선으로 인해 전쟁 대비에 역량을 투입하는 바람에 경제 성장을 위한 여력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1961~1965년까지 성장률은 최고 20%였지만 대략 12%로 줄었다. 심지어 1965년 이후로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쿠바 사태로 촉발된 국방-경제 노선은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대폭 국방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1970년대로 넘어가면서 북한은 군수 경제와 민수 경제를 완전히 분리하기 시작하였다. 제2경제라는 이름으로 군수 관련 경제를 민수 경제와 분리하여 집중 육성하였던 것이다. 전쟁 수행이 아니라 준비 과정에서 경제발전이 지장을 받은 것이다.

북한 경제에 미친 전쟁의 긍정적 영향

한국전쟁은 북한 경제를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험이 북한 경제가 고도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57년부터 시작된 1차 5개년 계획은 사실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계획이었다. 계획 수행에 필수적인 지원이라 할 수 있었던 소련의 원조가 계획 수행 직전에 철회되었던 것이다. 단순한 물자 지원이 끊긴 것이 아니라 기술지원까지 대폭 줄어들었다. 하지만 계획 수행 첫해부터 예상치 못한 흐름이 생겼다. 일반 대중, 즉 기층의 노동자와 농민들의 참여를 적극 추동하자는 북한 지도부의 전략이 들어맞아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던 각종 예비들이 찾아졌고 새로운 혁신들이 각 처에서 수행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1958년에는 기존 계획을 완전히 뜯어고친 새로운 계획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사회적 소유관계를 바꾼 국영, 협동농장화 작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경험 때문에 적들에 대한 적개심이 높았는데 이를 계획수행을 위한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즉 이제 땅이나 공장 등이 우리 모두의 소유로 바뀌었으니 열심히 일해도 빼앗기지 않고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는 설득 논리가 마련된 것이다. 자신이 만든 결과를 부당하게 빼앗기고 차별받았던 식민지 지배 경험과 우리의 목숨과 재산을 노리는 적들의 침략을 겪었던 북한 주민들은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를 지키자는 설득과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우리 것이 커진다는 논리에 힘을 받았다. 즉 전쟁의 경험이 결집력을 높여주었던 것이다.

또한 1960년대 이후 국방, 군수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1990년대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 기강이 흐트러졌을 때에도 군대와 군수 부문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군대는 여전히 북한 지도부의 기대를 지키고 규율, 원칙을 지키는 모범이 되었다. 또한 민간 경제 가동률이 30% 밑으로 떨어졌을 때에도 군수 경제는 70% 이상을 유지했다고 한다.

 

▲ 북한이 지난해 12월 12일 광명성 3호 발사 성공 후 공개한 로켓 발사 통제소 내부 전경. 발사대는 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해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더 결정적인 것은 국방 부문에서 개발, 발전시켰던 첨단 과학기술이 2000년대 이후 북한 경제발전의 원동력, 밑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무슨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인공위성 발사체 제작 기술과 핵무기 제작 기술, 그리고 각종 소프트웨어 제작 기술은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기계 장치 중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기계장치라 할 수 있는 인공위성 발사체를 자체적으로 제작한 실력은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각종 기계제품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낙후한 민간 부문의 생산 시설을 일거에 생산성이 높은 기계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따라서 국방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만 있으면 국방 과학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하여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기로에 선 북한의 미래

군수 경제가 민수 경제로 이전(spin-off)되기 위해서는 국방에 넣은 힘을 빼야 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이 미국과 핵문제로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요구한 것이 바로 북미 관계 정상화이다. 이것이 해결되어야만 국방에 대한 부담이 줄어 국방에 투입된 인력, 자금, 자원 등을 민수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서도 북미관계 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북한은 미사일 기술과 핵무기 제조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켜 공개했다. 2006년 2009년 두 차례의 핵시험과 미사일/인공위성 발사시험을 거치면서 일정한 방위 전력을 갖추었다고 판단한 북한은 CNC를 앞세워 국방 과학기술을 활용한 경제발전 전략을 본격화시키려 했다. 인공위성/미사일 제조에 필수적인 CNC기술을 민간 제조기술로 이전하기 위한 작업들이 급격하게 추진되었던 것이다. 군보다는 민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들이 취해졌다.

하지만 2013년 3월 이러한 변화 조짐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오히려 군이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정전협정 무용화 선언, 남북 불가침 조약 폐기, 전쟁 상태 선언 등이 이어지면서 북한 사회는 다시 전시 동원체제로 돌아서든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 위협 속에서는 북한의 변화 여지는 적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변화를 위한 전제 조건은 전쟁의 위협이 감소되고 평화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전쟁에 준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데 북한이 변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듯하던 북미 사이의 대립 양상이 최근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북미, 남북 관계가 지속 가능한 평화상태로 바뀌어 북한 사회가 근본부터 바뀔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전쟁의 가능성조차 없는 사회가 되어야만 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었다.

* 강호제 박사가 운영하는 북한 과학기술사 관련 홈페이지 바로가기
*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홈페이지 바로가기

 

 

/강호제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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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입했지만.부정선거 아니다?' 정치깡패와 국정원


 

 

 


국정원의 18대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모씨 등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검찰로 보냈습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4월 18일 국정원 직원 김씨와 일반인 이씨 등 3명을 국정원법 위반 (정치 관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씨를 비롯해 국정원 심리정보국장 A씨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심리정보국장 A씨는 그동안 국정원 직원들의 인터넷 활동을 지시했는지 조사하기 위해 두 차례나 소환통보를 했으나 불응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수서 경찰서 이광석 서장은 "게시글을 분석해 볼 때 정치 관여 행위는 인정할 수 있지만,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면서 국정원이 대선 기간에 정치에 개입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해괴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선일보는 4월19일 기사에서 마치 국정원의 댓글이 정치개입이 아니라고 했지만,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시민단체 사무국장은 선거법 위반 유죄를 받은 바 있다.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와 다르게 국정원 김씨는 지난해 12월 5일부터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사람조차 대한민국을 남쪽정부라고 부른다'는 내용으로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글을 3편이나 올렸습니다.

일반인이 그저 자기 생각을 표현했어도 선거법 위반이었는데,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여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행위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괴한 해석이 나왔습니다.

2007년 선관위는 인터넷 논객 등 네티즌 618명을 선거법 93조 위반 혐의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습니다. 그들이 올린 글이 대선 후보, 특히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비방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국민이 정치적 표현을 하면 선거법 위반이지만, 국정원은 단순한 정치 개입에 불과하다는 경찰 수사를 보면서 대한민국 법은 고무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4.19 혁명의 시작, 3.15 부정선거, 그리고 제3대 대통령 선거'

오늘은 4.19 혁명 53주년입니다. 4.19 혁명은 이승만의 독재 정치가 근간이었지만,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4.19 혁명의 계기였습니다. 3.15 부정선거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보려면 우선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를 살펴봐야 합니다.
 

 

 

 


1956년 5월에 열린 제3대 대통령 선거 및 제4대 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그대로 표현된 선거였습니다. 계속된 이승만의 독재 정치에 대해 민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 구호를 통해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도전했는데 이런 민주당 신익희의 모습은 많은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진보당 대통령 후보 조봉암은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며 이승만의 반공통일과 전혀 다른 통일론을 주장하며 파문을 일으켰지만 뜻밖에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비록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선거운동 중에 갑자기 사망하면서 이승만이 재집권했지만, 당시 이승만이 득표했던 504만여표와 함께 신익희가 기표된 무효표가 무려 185만표가 나온 점은 이승만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이승만은 20만여표를 득표했지만 무효표가 28만여표 나와, 만약 신익희가 살아 있었다면 이승만의 낙선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정,부통령 선거를 따로 했던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였던 민주당 장면이 자유당 이기붕을 무려 20만여 표 차이로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됐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1956년 선거 결과를 놓고 정권 재집권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하려고 계획했고, 그것이 바로 3.15부정선거의 배경이 됐던 것입니다.

 

 

▲국정원 정치개입 예상도, 출처:한겨레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자행된 것이 아닙니다. 2010년부터 슬슬 제기된 정권 재교체에 대한 여론이 불거지자 시작된 것입니다.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 홍보 등이 단순한 홍보가(아니 왜 국정 홍보를 국정원이 할까요? 대한민국 정보기관은 광고회사?) 아니라는 사실은 민심이 정권 재교체로 돌아서는 2009년 'MB맨' 원세훈이 국정원장에 취임하고 난 뒤 2010년부터 시작됐다는 점으로 알 수 있습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신익희에게 사실상 대패했기 때문에 3.15부정선거를 자행했듯이 국정원도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재집권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직적인 선거 개입을 했습니다. 결국, 4.19혁명이 일어난지 53년이 됐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불법 선거가 이루어졌던 국가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 3.15 부정선거의 숨은 공신, '정치깡패'

4.19혁명의 배경이었던 3.15부정선거의 시작은 자유당 이기붕 때문입니다. 이기붕은 자신이 부통령으로 당선되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줄 이승만조차 대통령으로 당선될 확률이 낮자, 부정선거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놓고(그러나 3.15부정선거를 보면 거의 모든 국가기관이 조직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부정선거를 자행할 수 없으니, 깡패를 내세워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합니다.

 

 

▲1960년 4월 18일 정치깡패 100여명은 3.15 선거 무효 시위를 벌인 고려대생을 무참히 폭행했다.

 


1960년 2월 13일 영등포구청에서는 장택상의 대통령 후보 추천서류를 깡패들이 난입해 빼앗는 테러가 발생합니다. 당시 이를 취재하던 사진기자 수명은 깡패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카메라가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1960년 3월 7일에는 민주당 경남도당부 거제군당 선거사무장이 반공청년단 소속 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고,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수천명이 '3.15 선거 무효'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이자, 대한반공청년단과 유지광 휘하 화랑동지회 깡패들이 쇠갈고리와 곡괭이 등을 휘두르며 고려대생을 집단 폭행했습니다.

 

 

▲1957년 장충단 공원에서 열린 야당 시국강연회에 깡패들이 난입해 연단을 불태우고 폭행하는 테러를 벌였다.

 


정치깡패들은 대통령 선거에 직접 개입도 했지만, 선거 전부터 각 지역에서 민심을 조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이승만을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폭행했고, 민주당에 선거 자금을 대려는 지역유지들에게는 회사와 가게에 난입하여 협박도 일삼았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한참이나 남았던 1957년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정치깡패들은 야당이 주최하는 장충단 공원 시국강연회에 난입하여 연단을 불태우고 참가자들을 폭행하는 테러를 자행합니다. 당시 주범이었던 유지광은 재물손괴죄로 구속됐습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이 선거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국정원 직원을 '국정원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1957년 장충단 집회 방해는 정치깡패가 벌인 사건을 보면 선거 개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사건은 조직적인 정치 개을 통한 포괄적인 선거 개입이자 부정선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3.15부정선거는 단순히 대통령 선거기간에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여론을 조작하고 야당을 탄압하고 민심을 협박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 권력자의 영원한 충신이자 행동대장 정치깡패'

3.15부정선거의 숨은 공신이었던 정치깡패의 특징을 보면 권력의 비호와 특혜를 받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1960년 2월 10일 대한반공청년단은 자유당으로부터 1억환의 정치자금을 받았는데, 반공청년단은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했고, 자유당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깡패 대부분이 반공청년단에 가입하면서 결국 반공청년단은 합법적인 깡패들의 조직이 됐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유지광을 멋진 남자로 표현했지만, 사실 유지광은 법정에서 임화수,이정재가 선거 개입을 발뺌하자 울먹거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3.15부정선거의 핵심 깡패가 유지광인줄 알고 있지만, 유지광은 대학물을 먹은 인텔리 깡패였다는 극적인 사실과 유일하게 사형을 받지 않고 살아남아 철저히 본인이 미화된 자서전을 냈기에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뿐입니다.

또한 이정재는 이미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기붕과 정치적 갈등(서대문 갑에 출마하려던 이기붕은 자신의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해지자 이정재의 고향 이천으로 출마지역을 옮겼다)때문에 힘을 잃었고, 임화수가 그 모든 정치깡패로서의 힘을 이어받았습니다.

 

 

▲정치인들과 함께 이승만에 절 하는 임화수

 


유지광이 그저 행동대장에 서열 10위에 불과한 인물이었지만 임화수는 이승만과 직접적인 교류가 있을 정도의 핵심 거물이었습니다. 명색은 반공청년단 종로 지부장었지만, 그의 집에는 경찰서 경비전화가 설치됐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전화기 자체가 설치 어려운 면도 있지만, 끊기지 않고 직통으로 연결되는 경비전화는 관공서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임화수가 타고 다니는 지프차 번호를 신임 경찰들은 무조건 외워야 할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교통 범칙금을 떼지 못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찰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자유당 이기붕과 경무대 곽영주, 그리고 이승만까지 이어지는 그의 정치적 배경에 있었습니다.
 

 

' 정치깡패의 몽둥이와 반공예술인단, 국정원의 대북심리전단'

1959년 1월 발족한 대한반공청년단은 신도환을 단장으로 총재에는 이승만, 부총재에는 이기붕을 추대하며 조직됐습니다. 이들은 임화수가 조직을 운영하면서 야당의 정치 활동에 대한 테러와 폭행을 가하며 자유당 정권의 행동대로 활동합니다.

 

▲이승만 청년단 총재의 세포조직 확장 지시사항(좌)반공쳥년단 깡패들의 테러(우)


반공청년단이 야당 사무실을 습격하고 야당 인사를 폭행하고 선량한 시민에게 협박을 줘도 절대로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고 설사 경찰이 출동한다고 해도, 그들은 반공청년단을 체포하지 않고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습니다.

테러를 자행하는 깡패들의 조직이었던 청년단 총재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부가 아니라 범죄자들의 아버지에 불과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승만의 반공예술인단 접견 기념 사진(좌)제4대 대통령 출마 이승만 환영 예술인대회(우)

 


1959년 3월에는 임화수를 주축으로 '반공예술인단'이 결성되고, 연예인들이 전국을 돌면서 춤과 노래,공연을 벌이며 이승만을 옹호하고 야당을 비난합니다. TV가 없던 시절 가수와 코메디언 등의 연예인들의 구경거리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었고, 이는 지금으로 말하면 심리전과 같은 효과를 보였습니다.

심리전하니 국정원의 대북심리전단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1960년 대통령 선거에는 이승만의 반공예술인단이 전국을 누비며 예술인들 동원한 심리전을 펼쳤고, 2012년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심리전을 펼친 것입니다.
 

 

▲임화수가 법정에서 가벼운 판결에 살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좌)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MB(우)

 


오늘은 4.19혁명 53주년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4.19혁명의 숭고한 희생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까? 물론 조금이나마 당시의 민주주의 열망은 이어지고 있지만 53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들의 피 값에 비해 완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60년 정치깡패가 몽둥이와 연예인단을 동원해 테러와 심리전으로 정치에 개입했던 사건과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본질에서 무엇이 다릅니까? 정치에 개입했지만 부정 선거는 아니라는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를 보면 반공청년단이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폭행해도 먼 산만 바라보며 서 있던 경찰이 생각납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읍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뻐해 주세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 4·19 혁명에 참여, 희생된 당시 한성여자중학교 학생, 진영숙(16세)의 마지막 편지"

어쩌면 우리는 어린 학생보다 더 철이 없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4.19혁명때 희생당했던 모든 분께 미안하고,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4.19혁명 53주년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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