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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야권…‘아름다운 패배’는 없다


등록 :2016-02-05 19:23수정 :2016-02-06 07:28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4·13 총선 전망
정치는 결과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결국 나쁜 것이다. ‘아름다운 패배’는 현실 정치에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는 산수다. 수학이 아니다. 공식이 간단하다. 덧셈과 뺄셈이다. 뭉치면 이긴다. 분열하면 진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도저히 질 수 없었다. 그런데 졌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인제 후보의 탈당과 출마였다. 이인제 후보는 무려 500만표(19.20%)를 득표했다. 여당표가 갈렸다.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표차는 겨우 39만표(1.53%포인트)였다.

 

2002년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후보는 ‘제3후보’였던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 단일화로 이회창 후보를 꺾었다. 정권을 놓친 사람들은 두 차례 같은 실수를 반복한 뒤에야 교훈을 뼈에 새겼다.

 

그 뒤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기본 전략은 언제나 ‘우리는 뭉치고 상대는 갈라친다’였다. 새누리당과 친여 성향 이데올로그들은 10여년 동안 ‘여권 단결-야권 분열’ 프레임을 만들어 확산시켰다. 특히 ‘호남’과 ‘친노’를 이간했다. 호남을 중도나 ‘합리적 진보’로 치켜세웠고, 친노에 종북과 운동권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웠다.

 

4·13 국회의원 선거는 이런 ‘여권 단결-야권 분열’ 프레임의 효과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에서 치러진다. 어떻게 될까.

 

 

여권 1997·2002대선 패배 뒤
‘여권 단결-야권 분열’ 전략
결국 호남-친노 갈라치기 성공

 

종편·보수신문은 ‘여권 서포터’
야권 수도권서 연대 실패하면
‘새누리 200석’ 저지 쉽지 않아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달리 지역구마다 승부가 난다. 이론적으로는 49% 득표율의 정당이 지역구 의석을 단 한 석도 못 건질 가능성이 있다. 소선거구제의 마술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대표가 만든 국민의당은 호남 민심을 놓고 각축하고 있다. 호남은 야당의 ‘영혼’이니 당연하다. 언론도 두 야당의 호남민심 쟁탈전을 중계하고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번 선거를 호남만 치르는 건가? 아니다.

 

지역구 의석이 현재의 246석에서 253석으로 늘 경우 예상 의석을 살펴보자. 수도권이 122석(서울 49, 인천 13, 경기 60)이다. 지금보다 서울과 인천이 각 1석씩, 경기는 8석이 늘어난다. 지역구 전체의 반에 가깝다. 이번 선거의 승부처는 수도권이라는 얘기다.

 

 

 

 

야권 수도권 연대 못하면 여권 ‘역대급 승리’ 못 막는다

 

 

지역구 전체 의석의 반이 수도권
비수도권 다 합쳐야 영남과 동일
그런데도 온통 관심은 호남 쏠려

 

새누리는 수도권 30%만 돼도 과반
일 자민당식 영구집권 진입할 수도

 

‘진박’ 공천 둘러싸고 잡음 있지만
‘애국’ 앞에선 분열할 가능성 없어

 

어설픈 명분싸움 끝에 이별한 야권
다당제로 포장해 분열 책임 피하고
이해타산 묶여 연대 성사 어려울듯

 

 

 

 

호남은 얼마나 될까. 28석(광주 8, 전남 10, 전북 10)에 불과하다.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말이 있다. 달팽이의 촉각(觸角) 위에서 싸운다는 것인데 작은 나라끼리의 싸움을 의미한다. 의석수로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지금 와각지쟁을 하고 있다.

 

눈을 다른 지역으로 돌려보자. 영남은 무려 65석(부산 18, 울산 6, 경남 16, 대구 12, 경북 13)이다. 호남 28석과 충청 26석(대전 7, 충남 11, 충북 8), 강원 8석, 제주 3석을 다 합치면 영남과 같은 65석이다. 현재의 지역대립 구도가 깨지지 않는 한 영남과 충청, 강원에서 강세인 새누리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47석을 여야가 절반씩 나눠 갖는다고 치고 19대 국회 권역별 정치지형(충청·강원 24석)을 반영해서 대략 계산하면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30%(37석)만 차지해도 과반 의석이 된다.

 

야권이 수도권 의석 70%를 확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2004년 17대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수도권 76석(70%)을 획득한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이었다. 이번 4·13 선거에서 야권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저지할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표는 목표 설정을 잘못했다.

 

수도권은 오히려 여당이 압승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 분열은 새누리당의 기회다. 요즘 국회와 새누리당 당사에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의 발길이 잦다. 당내 경쟁자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8년 18대 선거 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당시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무려 81석(73%)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70% 의석을 차지하면 어떻게 될까. 대충 계산해도 ‘200’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200석이면 국회에 일본 자민당처럼 보수 기득권 영구집권 체제가 들어서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이 무력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믿기 어려운가?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 1996년 15대 선거 결과는 신한국당 139, 새정치국민회의 79, 통합민주당 15, 자민련 50, 무소속 16이었다. 신한국당과 자민련을 더하면 189석이다.

 

2008년 18대 선거 결과는 통합민주당 81, 한나라당 153, 자유선진당 18, 민주노동당 5, 창조한국당 3, 친박연대 14, 무소속 25였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에 친박무소속연대(12)를 더하면 197이다.

 

여와 야는 선거에 임하는 전략과 태도에서도 차이가 난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진박’ 공천을 둘러싸고 전쟁중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친박과 비박 세력이 분열할 가능성은 없다. 이유가 뭘까.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둘 다 이른바 ‘애국세력’이다. 애국세력은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고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자칭 보수우파가 계속 집권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권이 바뀌면 나라가 망한다고 정말로 믿는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수가 분열하면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애국이라는 명분을 기득권 수호라는 이해타산과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어설픈 명분 싸움 끝에 이별했다. 그 뒤 양당은 분열 프레임의 주술에 걸린 좀비처럼 행동하고 있다. 왜 그럴까.

 

유럽식 다당제가 분열 프레임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유럽식 다당제는 우리 정치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론이다. 그런데 2017년 대선에 대비해 전국 조직을 구축해야 하는 안철수 의원의 이해타산, 이번에 낙선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야권 경쟁자를 제거한 뒤 4년 뒤를 노려볼 수 있는 출마 희망자들의 이해타산이 절묘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야권은 앞으로 연대가 어려워 보인다.

 

‘여권 단결-야권 분열’ 프레임이 유통되는 통로는 언론이다. 친여 성향의 일부 신문과 종편(종합편성채널)이 중심이다. 요즘 종편 토론의 단골 소재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벌이는 야권 주도권 다툼이다. 여야 대치 구도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가 복거일은 최근 ‘민란의 추억’이라는 칼럼에서 “안철수 현상은 본질적으로 민란”이라며 “특히 안 의원은 ‘총선에서 야권 연대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해 자신이 실패에서 배우는 정치가임을 보여줬다”고 치켜세웠다.

 

“‘양당체제 극복’ 성공할까”

 

“20년 만에 국회 3당체제 도전…안철수 ‘이번이 마지막 기회’”

 

“안철수의 국민의당, 야권연대 끊어야 양당구도 깬다”

 

국민의당 창당 다음날 아침 어느 신문의 1면 머리기사, 3면 머리기사, 사설의 제목이다. 다당제로 포장된 야권 분열 프레임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더 강렬해질 것이다.

 

결국 여권의 완벽한 단결과 야권의 분열, 그리고 여권의 승리를 염원하는 언론의 지원 속에 치러지는 4·13 선거는 여당에 ‘역대급 승리’를, 야당에 ‘역대급 패배’를 안길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볼까?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사정에 매우 밝은 전략통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 정치는 갈수록 국민들과 괴리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때마침 안철수 신당이 출현했다. 안철수 신당의 정치혁신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새누리당에서 영남의 중도보수 세력을 뜯어내야 한다. 그런데 충청의 중도 세력조차 끌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호남을 석권할 가능성도 없다. 안철수 의원은 이런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4·13에서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더라도 정치지형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 안타깝다.”

 

그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수도권에서 연대하지 않으면 야당이 완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선거 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폭주를 걱정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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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남기다" 보성에서 서울까지 걷는다

 

가톨릭농민회가 국가 폭력에 맞서 '백남기 도보순례'를 시작합니다

16.02.05 20:57l최종 업데이트 16.02.05 20:57l

 

 

이 땅에 살고 있는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신나게 일하고 재미나게 놀고 사이좋게 살다 죽는 평범한 일상이 요즘처럼 절실할 때가 있었던가 싶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이 죄스럽고 미안하여 부담을 한 짐 지고 살아가야 하는 야만적인 세상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2016년 지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은 이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고통스럽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 원 보장하라"는 농민들의 정당한 외침이 있었다. 이에 대한 국가의 응답은 경찰의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물대포였다.

집회 진압 과정에서 가톨릭농민회 백남기 임마누엘(전 가톨릭농민회 전국부회장, 전남연합회 회장) 농민이 10m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경찰이 정조준한 물대포에 맞았다. 그는 의식을 잃고 70여 일이 넘도록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당일 경찰은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향해, 또 그를 구조하려던 사람들을 향해, 후송하는 구급차에도 계속해서 물대포를 쏘아대며 반인륜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명백히 국민을 상대로 한 국가의 잔인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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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동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
ⓒ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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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서울에 올라왔던 이유

지난해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은 왜 새벽밥을 먹고 일찍 서울에 왔을까? 정부와 일부 언론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언급도 외면하지만 "10만이 넘는 국민들이 왜 서울 시내에 모였는지" 더 외면했다.

당시 농민들은 "쌀값 보장과 TPP 가입 반대로 농민생존권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 비정규직 양산하는 노동개악 안 된다"고 외쳤다. 빈민들은 "대책 없는 노점 강제철거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시민들은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보장하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안 된다"고 외쳤다.

이렇게 당시 1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 "정부는 제발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는 것이었다.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에 쌓인 국민들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땅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으며, 국가는 이런 국민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며 들어주고 보호해줄 의무가 있지 않는가?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차벽과 물대포를 포함한 폭력적인 공권력으로 국민들을 공격하고 철저히 외면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사건이 발생한 지 70여 일 지난 오늘날. 지난해 11월 14일 국민들이 요구한 사안이 어떻게 되었나를 살펴보자. 당시 박근혜 정부는 폭력시위가 우려되어 차벽과 물대포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아예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작정한 처사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농민들의 쌀값 보장 요구에는 지난 2015년 12월 29일 밥쌀용 쌀 3만 톤 추가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의 노동개악 반대 요구에는 지난 1월 22일 정부 행정지침 발표를 강행했다. 또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에는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요구에는 집필진 미공개 밀실 집필을 강행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박근혜 정부 3년차, 물대포 직사로 차가운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진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공권력이 국민을 상대로 가한 국가의 폭력이다. 백남기 농민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짓밟힌 사건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국가폭력은 독재권력의 국민 무시가 최고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하느님의 섭리처럼 발생하였다. 1960년 김주열, 1979년 오원춘 납치사건,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 1987년 박종철과 이한열, 1991년 강경대와 김귀정 사망 사건이 그렇다. 이렇게 발생한 국가폭력 사건은 4.19, 부마항쟁, 6.10 항쟁으로 이어져 정치와 세상을 바꿨다. 이번 백남기 농민의 국가폭력 사건도 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백남기 대책위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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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대책위 농성장에서 쾌유 기원 미사를 드리고 있다.
ⓒ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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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아래 백남기 대책위)가 요구한 "대통령의 사과와 경찰청장의 파면 등의 책임자 처벌, 두 번 다시 이러한 국가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마련"은 현재로 해결이 요원하다. 

대책위의 요구는 약 11년 전, 2005년에 전용철 농민이 전국농민대회가 열린 여의도에서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맞아 죽임을 당했을 때 노무현 정부가 했던 최소한의 조치(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 대통령의 사과, 경찰청장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허나 박근혜 대통령은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를 '테러 단체'에 비유했고 당시 시위진압 경찰 간부를 승진시켰다. 또한 1500명이 넘는 집회 참가자를 수사했지만 백남기 농민의 가족과 농민단체가 지난해 11월 18일 고발(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현장지휘관, 살수 경찰을 살인미수로 검찰에 고발함)한 건에 대해서는 고발인 조사 외에 아무런 조치가 없다.

최소한의 인간적 사과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그야말로 비상식, 비정상, 몰염치한 정부다.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10년 전보다 훨씬 후퇴하였음을 정부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이제 백남기 대책위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박근혜 정부와 싸워서 한국 정치상황을 바꾸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 4.13 총선을 앞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볼 작정이다.

2월부터는 백남기 농민의 밀밭이 있는 보성에서 서울까지 도보순례를 계획하고 있다. 순례 지역에 있는 국민들에게 국가폭력 사건을 알리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함께 일어설 것이다. 민중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이 땅의 주인이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국민임을 선언할 것이다.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린 국가폭력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언제라도 국가폭력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대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백남기 농민은 평생을 정의와 평화, 생명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전남 보성에서 우리밀 농사를 지으며 땅과 자연과 세상을 살리는 가톨릭 농민운동의 지도자였다. 가톨릭농민회 역사에서, 시작한 싸움에 포기란 없었다. 수세 거부, 농협 민주화, 함평 고구마 사건, 오원춘 사건 등 독재 권력과 맞서 싸워 매번 승리하였다.

이번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도 가톨릭농민회에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소명이라 여기고 있다. '가농' 50년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정의, 평화, 생명의 힘으로 반드시 끝장을 볼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이 행복한 일상을 보장받는 민주공화국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백남기 농민이 쾌유하실 때까지 우리가 '백남기'가 되어 국가폭력 사건의 해결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보자"고 호소한다. 내가 바로 '백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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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요 백남기님, 함께가요 밀밭으로! 도보순례 일정 웹자보
ⓒ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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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손영준님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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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어나 여행 가야지…

아빠, 일어나 여행 가야지…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는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다. 그날
 집회·시위를 현장에서 관리했던 담당자들은 대거 승진했다.
김연희 기자  |  uni@sisain.co.kr
 

옷은 비닐 팩에 담겨 있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회색 줄무늬 내의, 청바지, 남색 남방, 검정 바람막이가 마구잡이로 절개돼 있었다. 응급실에서 옷을 벗기지 않고 잘라서 제거한 탓이다.

백도라지씨(34)는 돌려받은 남색 남방을 알아봤다. 지난해 10월, 도라지씨가 아버지에게 준 생신 선물이었다. 등산화는 어버이날 준 선물이었다. 파란색 나일론 조끼에는 ‘가자! 11월14일 서울로! 밥쌀용 쌀 수입 반대-보성군농민회’라고 적혀 있었다. 물대포를 맞은 옷에서는 캡사이신과 최루액이 섞인 지독한 냄새가 났다. 나중에 경찰과 검찰 조사 때 증거로 내기 위해, 도라지씨는 옷을 세탁하지 않았다. 베란다에 걸어놓고 말렸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옷은 비닐 팩에 담겨 있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회색 줄무늬 내의, 청바지, 남색 남방, 검정 바람막이가 마구잡이로 절개돼 있었다.  
ⓒ시사IN 이명익
옷은 비닐 팩에 담겨 있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회색 줄무늬 내의, 청바지, 남색 남방, 검정 바람막이가 마구잡이로 절개돼 있었다.

주머니를 뒤지니 꼬깃꼬깃 접힌 1만원권 두 장과 묵주가 나왔다. 천주교 신자인 백남기씨가 항상 지니고 다니던 묵주였다. 도라지씨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묵주를 여러 번 비눗물에 닦아냈다. 이 묵주는 동생 민주화씨(30) 손에 채워졌다. 민주화씨가 네덜란드로 돌아가며 묵주를 차고 갔다. 민주화씨에게 묵주는 아버지의 분신이다. 민주화씨는 아버지의 묵주를 쥐고 기도한다.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가 80일째(1월25일 기준) 의식불명 상태다. 뇌파가 잡혀 뇌사 상태는 아니지만 뇌뿌리와 대뇌 절반 이상이 손상됐다. 인공호흡기 등 의료기기의 도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의료진은 남은 시간을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예상했다.

그날 이후 도라지씨의 삶도 바뀌었다. 6년간 다니던 회사를 휴직했다. 오전 9시와 저녁 6시, 출퇴근 시간에 맞춰졌던 일상은 오전 10시30분과 저녁 8시, 중환자실 면회 시간 기준으로 돌아간다. 30분간 짧은 면회 시간에 그는 아버지에게 수다를 떤다. “빨리 일어나, 이렇게 누워 있으면 허리 아파서라도 일어나겠다.” 반응이 있는지 보려고 허리춤도 꼬집어본다. 그러나 “세상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큰딸”이라고 도라지씨를 불렀던 아버지는 답이 없다.

80일 동안…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백남기씨는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기 위해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 가마니(80㎏)에 17만원인 쌀값을 2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쌀 한 가마니 값은 오히려 15만원으로 떨어졌다. 백씨는 겨우내 자라는 밀을 심어두고 보성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지난해 12월19일 3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도라지씨(왼쪽)와 민주화씨가 인사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지난해 12월19일 3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도라지씨(왼쪽)와 민주화씨가 인사하고 있다.

사건 당일 제일 먼저 병원에 도착한 사람은 서울에 사는 도라지씨와 남편이었다. 도라지씨는 “물대포에 맞았으니 많이 젖었겠구나 생각했지, 의식 없이 사경을 해맬 줄은 상상도 못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던 아들 두산씨(32)는 어머니와 밤새 고속버스를 타고 보성에서 올라왔다. 민주화씨는 아들 지오와 남편, 네덜란드인 시부모와 한국에 들어왔다. 지난해 12월, 손자 지오는 중환자실에 있는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 얼마 뒤 민주화씨도 어린 아들이 있는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세 살 지오와 백남기씨는 ‘절친’이었다. 지난해 6월, 1년 만에 한국을 찾은 손자를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해 백씨는 새끼손톱에 파란색 네일아트를 받았다. 백씨는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한 손자와 장구를 두드리고 베개로 장난을 쳤다. 할아버지의 작은 장난에도 지오는 까르르 웃어댔다. 백씨는 손자가 다녀간 뒤로 매일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로 돌아간 지오는 레고에서 머리카락 색이 하얀 인형을 찾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민주화씨는 자기 전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지오를 보며 바닥에 엎드려 소리 없이 울었다. 민주화씨는 1월27일(현지 시각)부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기간을 맞아 관광객으로 붐비는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직접 만든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한다.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 사진 밑에는 ‘아버지가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여전히 의식이 없다. 정부의 사과도 전혀 없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는 영어 문구를 썼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맞느냐며 놀라워했다. 1인 시위를 지켜보던 네덜란드 경찰은 “같은 경찰로서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백남기씨(오른쪽)와 손자 지오는 ‘절친’이었다. 그러나 지오는 중환자실에 있는 할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네덜란드로 돌아가야 했다.  
백남기씨(오른쪽)와 손자 지오는 ‘절친’이었다. 그러나 지오는 중환자실에 있는 할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네덜란드로 돌아가야 했다.
  1990년대 초 농활 왔던 학생들이 찍은 백씨의 가족사진.  
1990년대 초 농활 왔던 학생들이 찍은 백씨의 가족사진.

백씨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80일 동안, 경찰과 정부의 사과는 없었다. 진상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사건 하루 뒤인 11월16일 “경찰 살수차 운용은 전반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23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국회 현안보고에서 “결과가 중한 것만 가지고 무엇이 잘못됐다, 잘됐다고 말하는 건 이성적이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백남기씨 가족은 전국농민회총연맹, 가톨릭농민회 등 농민단체와 함께 지난해 11월18일 경찰 관계자들을 살인미수(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했다. 피고발인은 강신명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총 7명이다. 고발 이후 두 달이 지났지만 검찰은 기소 여부도 결정하지 못했다. 도라지씨는 “만약 교통사고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미 사고 낸 사람은 처벌을 받고 보험사를 통해서 보상도 다 이뤄졌을 거다”라고 말했다. 가족 고발을 대리한 박주민 변호사는 “사안의 중대성과 통상적인 수사 진행 속도를 고려했을 때 기소 결정이 굉장히 늦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사이 집회·시위를 현장에서 관리했던 서울경찰청 담당자들은 지난해 12월 정기 인사에서 대거 승진했다.

도라지씨는 1월11일에 충남 홍성지원에서 살수차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다. 물대포 상단에 설치된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다. 살수 조작 요원은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로 이 영상을 보며 물대포를 조종한다. 경찰은 백남기씨가 넘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며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수를 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도라지씨는 “아빠를 쏘고 잠시 이동했다가 다시 아빠 쪽으로 왔을 때 아빠가 바닥에 누워 있고 다른 분들이 구조하러 오는 모습이 보인다. 분명히 조준했다”라고 말했다. 반면 경찰 측 참관인으로 나온 서울지방경찰청 박창환 경비3계장은 “충분히 보인다는 것은 가치 판단의 문제”라며 확답을 회피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백민주화씨 페이스북</font></div>네덜란드로 돌아간 둘째 딸 민주화씨가 1월27일부터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백민주화씨 페이스북
네덜란드로 돌아간 둘째 딸 민주화씨가 1월27일부터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백씨가 손꼽아 기다리던 ‘칠순 여행’

백씨가 입원한 서울대병원에는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같이 올라왔으니 같이 내려가야 한다”라며 보성군 이웃과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천막 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오후 4시에는 이곳에서 ‘백남기 임마누엘 쾌유 기원 미사’가 열린다. 도라지씨는 “아무 연고도 없는데 병실로 찾아와 울고 가시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1990년대 초, 농활로 마을을 찾았던 서울대 의대 졸업생들도 중환자실 앞을 찾았다. 이제는 모두 의사나 교수가 된 이들은 중환자실에 들러 백남기 ‘이장님’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한 의사는 농활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도라지씨에게 전해줬다. 사진에는 젊은 백남기씨와 어린 삼남매가 찍혀 있다. 전남 보성군 웅치면 마을 주민들은 백씨네 몫까지 김장김치를 담갔다. 보성역 앞에도 천막 농성장이 차려져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백남기씨는 중환자실에서 해를 넘겼다. 백씨는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 10월 칠순을 맞아 네덜란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둘째 딸 민주화씨네를 처음 찾아가는, 백씨로서는 손꼽아 기다린 여행이었다. 그 여행은 이제 기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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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의 손주 곧 탄생, 사자 '세실' 죽음 이후

'풍운아'의 손주 곧 탄생, 사자 '세실' 죽음 이후

남종영 2016. 02. 05
조회수 193 추천수 0
 

‘세실’ 마지막 연구자  브렌트 스타펠캄프 인터뷰 

올 3월 탄생 예정, 친구 '제리코'가 새끼와 어미 지켜줘
사자을 지켜야 아프리카 자연 보전, 사자 세계유산 지정 추진

 

Cecil_the_lion2.jpg» 사냥꾼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전 당당했던 수사자 세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사자 한 마리가 세상을 바꿀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7월1일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 백수의 왕 세실은 미국의 치과의사 사냥꾼 월터 파머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참수한 사자 머리를 여행가방에 넣어 챙겨 가는 서구 부호들의 ‘트로피(전리품) 사냥’에 전세계 여론은 경악했다. 제3세계 국가가 돈을 벌기 위해 제도적으로 트로피 사냥을 허용하고, 서구의 보전단체조차 야생보전을 위해 이를 받아들이는, 포스트식민지 시대 정치·경제 체제의 복잡한 이면(■ 관련 기사참수된 사자 ‘세실’, 마을을 위한 ‘처녀 제물’처럼 죽어갔다 )도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전세계가 사자 세실을 위해 촛불을 들었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요란한 논란에 비해 바뀐 건 많지 않다. 
 
지난해말 미국 정부는 중·서부 아프리카의 사자를 멸종위기종에 포함시켜 산 사자와 트로피의 반입 요건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짐바브웨 검찰은 사냥꾼 월터 파머에 대해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며 불기소했고 그를 인도한 사냥 가이드만 재판을 받고 있다.
 
또 하나의 관심은 사자 그 자체에 있었다. 사자의 생태적 특성상, 한 프라이드(사자의 한 무리)의 우두머리 수사자가 죽으면, 이웃 영역의 수사자가 치고 들어와 암사자들을 점령하고 새끼들을 죽여버린다. 
 
세실은 어미 3마리와 새끼 7마리로 구성된 프라이드의 우두머리였다. 세실의 자손은 영아살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황게국립공원에서 9년째 사자를 관찰하고 있는 브렌트 스타펠캄프(38) 연구원과 지난달 26일부터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고아’가 된 새끼들과 그 어미들의 소식을 들었다. 2008년부터 세실을 모니터링한 그는 사냥꾼을 제외하곤 가장 마지막으로 세실을 목격한 이다.

Brent lion tracking.jpg» 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 소속으로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에서 사자를 관찰하고 있는 브렌트 스타펠캄프 연구원.

 
“잘 지낸다. 건강하다”
 
-사자 세실이 죽은 뒤, 남겨진 그의 무리를 봤나? 안전하게 잘 크고 있나?
 
“한 달에 한 번쯤 본다. 잘 지낸다. 건강하다. 지난번에는 무리 중 암사자 하나를 잡아 인공위성추적장치(GPS)가 달린 목걸이를 부착했다. ‘놉훌레’(Nobhuhle)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름답다’는 뜻이다. 지피에스 목걸이 덕분에 실시간으로 세실 무리의 경로를 파악하게 되었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한다.”
 
-세실 무리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름은 있나?
 
“놉훌레가 우리가 이름을 붙인 유일한 사자다. 원래 세실 무리에는 어미 3마리와 새끼 7마리가 속해 있었다. 또한 제리코 프라이드와 연대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세실이 죽고 난 뒤, 세실 무리에서 새끼 한 마리가 사라졌다. 오래되지 않아 어미 한 마리가 또 사라졌고. 그들이 모두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1월 그 어미 사자와 새끼가 돌아왔다! 너무 놀랐다. 바로 어제도 세실의 가족들 모두가 안전하게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라지기도 하는가? 어디를 갔다온 걸까?
 
“무리에서 얼마간 사라지기도 하지만, 이처럼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온 것은 본 적이 없다. 우리도 놀랐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도 수수께끼다.”
 
모든 아프리카 동물이 그러하지만, 사자 무리는 특히 사냥에 취약하다. 사냥꾼들은 맨숭맨숭한 얼굴의 암컷보다 갈기를 휘날리며 카리스마를 뽐내는 수컷을 박제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게 수사자가 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쓰러진다. 이웃 사자가 들어와 프라이드를 접수한다. 영아살해가 자행되고 이에 저항하는 어미가 다치거나 죽으면서 프라이드는 붕괴된다.
 
사실 지난해 7월 세실의 죽음 직후 두 사자의 ‘실종’도 이런 비극적 붕괴의 전조로 여겨졌다. 실제로 세실의 영토는 이웃 사자 부베지(Bubezi)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부베지는 세실 프라이드의 영토의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아빠를 잃은 새끼와 어미들은 행동반경을 좁혀야만 했다. 
 
하지만 겁먹은 가족의 옆에는 옛 친구 ‘제리코’가 있었다. 세실이 살아 있을 적, 제리코는 세실의 연대 대상이었다. 각자 자신의 프라이드를 거느리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고 이 영토를 지배해왔다.
 
-제리코가 다른 수컷의 침입을 막아준 건가?
 
“그렇다. 제리코가 세실 무리를 보호했다고 보면 된다. 세실의 가족은 지금 제리코의 지배영역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놉훌레에게 인식표를 부착한 뒤에도 제리코는 항상 세실 가족에서 500m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세실 프라이드의 암사자들은 새끼들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숙련된 엄마들이다. 아직도 공격당한 적이 없다.”
 
사자 사회에서는 인수합병과 합종연횡의 정치학이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세실은 산전수전을 겪은 ‘풍운아’였다. 원래 세실은 국립공원 동쪽 ‘백스판스’(Backspans)에서 세력을 키웠으나, 다른 프라이드의 공격을 받아 변방으로 쫓겨났다. 
 
세실은 거기서 다시 자신의 프라이드를 착실히 성장시켰다. 암사자와 새끼들이 한때 20마리에 이르렀으나, 다시 수컷 둘의 공격을 받아 쫓겨났다. 그때 만난 사자가 제리코였다. 세실과 제리코는 연대해 각각의 프라이드를 성장시켰다. 그러던 중 사냥꾼의 총탄에 세실이 숨졌고, 고아가 된 새끼와 암사자들 그리고 제리코 프라이드만 남은 것이었다.
 
사라졌다 돌아온 ‘산다’
 

stock-photo-grandchiildren-in-the-making-130339645.jpg» 지난해 11월27일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에서 수사자 ‘산다’가 한 암사자와 교미를 하고 있다. 산다는 지난해 7월 미국인 사냥꾼에 의해 죽은 사자 ‘세실’의 새끼다.


-세실의 새끼 중 하나가 교미하는 장면이 포착됐다며?
 
“산다(Xanda)라고 불리는 다섯 살 수사자다. 지금의 세실 가족은 아니고, 세실이 백스판스에 있었을 적 교미해 얻은 수컷이다. 산다는 세 살 때 백스판스 프라이드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 뒤로 우리 연구팀은 이 새끼 사자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커서 돌아와 백스판스 암컷 세 마리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종의 근친번식이다. 대부분 피하긴 하지만, 야생사자는 작은 수준의 근친번식 정도는 유전적 결함 없이 잘 버틴다.”
 
-사자 모니터링은 어떻게 하나?
 
“매일 아침 눈 뜨고 처음 하는 게 휴대전화에 뜨는 사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많은 시간을 트럭에서 사자를 관찰하면서 지낸다. 어떤 걸 먹고,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하는지 지켜본다. 이런 행동은 모두 기록되어 장기 생태조사의 자료로 활용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시간 추적이 가능한 지피에스 목걸이를 다는 일이다. 마취제를 사자 몸에 명중시켜야 달 수 있는데, 나는 운 좋게도 여기서만 88마리에 성공했다.”
 
-사자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나?
 
“국립공원 경계 밖으로 나가면 긴장한다. 만약 소떼 등 가축이 있는 곳이면, 근처 직원에게 메시지를 띄우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소떼를 격리시키는 한편 때에 따라서는 사드럼과 부부젤라(아프리카 나팔)를 이용해 사자를 안전한 곳으로 유인한다. 다른 사자들의 문제도 없는지 확인한다. 이때 기회가 되면 사자에게 지피에스 목걸이를 부착한다. 나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실의 죽음 이후 짐바브웨는 무엇이 변했나?
 
“크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사냥산업을 어떻게든 교통정리 해야 한다는 자각이 확산된 건 분명하다. 사냥 가이드 시오 브롱코스트의 재판이 진행중이다.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세실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잘될 거다. 황게국립공원은 세 곳의 ‘카방고 잠베지(KAZA) 트랜스프런티어 야생보전구역’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사자와 함께한 역사가 있고 사자를 보전하는 문화가 있다. 국제사회가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니, 사자 사냥이 사라질 거라고 느낀다. 물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사자 서식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연간 13억달러가 필요하다. 사자 사냥에 의존하지 않고 야생을 보전하려면, 탄소상쇄 프로그램이나 사파리 관광 등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아프리카 국가들은 사자사냥 쿼터를 판 돈으로 공원 관리와 지역개발에 투자한다.) 사자를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자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자는 생태·경제·문화적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종이다. 사자를 보전하는 것은 그들의 서식지와 사냥감, 즉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다. 이 전략이야말로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경로 중 하나라고 믿는다.”
 
산다의 새끼가 태어난다면 세실의 손주가 되는 셈이다. 사자의 임신기간이 넉달이니 3월말께다. 세실의 죽음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웠고 그래서 미래가 과거보다 나아진다면 세실의 자손들은 평화롭게 번성할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죽음의 도미노' 부르는 사자 사회의 특성

수사자 한 마리 쏘면 30마리가 총알 맞는다

 

Cecil and Jericho.jpg» 제리코(위)와 세실(아래)는 연대하며 각각의 프라이드를 다스렸다. 지난해 7월 세실이 사냥꾼의 총탄에 맞아 죽은 뒤, 제리코는 세실의 새끼와 어미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자 세실은 지난해 7월 미국인 치과의사 사냥꾼 월터 팔머에 의해 참수되어 죽었다. 아프리카 평원에서 서구의 대부호들이 벌이는 트로피(전리품) 사냥에 대해 세계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세실의 무리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세실이 암사자 3마리와 새끼 7마리를 두고 죽었다. ‘죽음의 도미노’가 이들에게 덮칠 수 있었다.
  
사자가 멸종위기에 처한 이유는 서식지 감소 말고도 트로피 사냥에 의한 죽음의 도미노 현상이 있다. 사자 멸종의 도미노 현상이란 무엇일까? 우선은 사자 사회의 생태적 특성을 알아보자.
 
사자는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 중 하나다. 북극곰이 단독자로 바다얼음을 유랑하고, 범고래는 강한 결속력을 갖는 가족 생활을 하듯이, 사자도 특유의 사회집단을 형성한다. 
 
사자는 전형적인 ‘일부다처제’ 사회다. 알파 수컷인 수사자 한 마리가 암사자들(어미들) 그리고 새끼들을 거느리는 구조다. 보통 5~6마리에서 10마리가 한 무리를 이루는데, 많을 때는 30마리에 이른다. 이러한 사자 한 무리를 ‘프라이드’라고 부른다.  
  
수사자가 프라이드의 모든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데 크게 공헌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냥을 암사자가 진행하고 수사자는 기껏해야 주변을 경계하거나 무리를 보호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백수의 왕’이라지만 사냥은 쉽지 않다. 성공률은 기껏해야 20~25%다. 암사자들이 열심히 노력해 사냥감을 얻어오면 수사자는 가서 공짜 점심을 즐긴다. 
 
수사자는 갈기가 멋지긴 하지만 사냥에 적합한 몸이 아니다. 덩치가 크고 노출이 잘 되어 암사자만큼 순발력 있게 움직이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수사자는 암사자에 기생해 산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수사자는 다른 프라이드나 떠도는 수컷으로부터 자신의 무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암사자는 자식들의 먹이를 챙기는 ‘내무부 장관’, 수사자는 외침으로부터 프라이드를 방어하는 ‘국방부 장관’ 정도 된다.
 
사자 무리는 각각의 지배 영역이 있고 무리 사이 쟁투를 통해 우두머리가 바뀐다. 외부의 수사자가 프라이드의 우두머리를 공격해 쓰러뜨리면, 그 프라이드는 새로운 수사자가 지배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프라이드를 인수한 수사자가 구 지배자가 낳은 새끼들을 죽이는 ‘영아살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암사자들은 저항하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면서 혼란이 발생한다. 암사자들도 부상을 입거나 죽는다. 죽음의 도미노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 사회에선 무조건 공격하고 점령하는 폭압의 정치만 구사되는 게 아니다. 수사자는 국방부 장관뿐만 아니라 ‘외무부 장관’이 되기도 한다. 피의 혈투와 영아살해, 정권 전복만 있으면 사자 사회는 고달플 것이다. 그건 효율적인 외교전략이 아니다. 
 
그래서 프라이드는 간혹 서로 연대하기도 한다. 사자 세실이 허망하게 죽은 뒤, 그의 어미들과 새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Cecil_the_lion_at_Hwange_National_Park_(4516560206).jpg» 한때 20마리에 이르는 사자로 프라이드를 구축했던 세실의 당당한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세실은 ‘풍운아’였다. 한때 20마리에 이르는 프라이드를 구축하기도 했으나 번번이 다른 수컷의 공격을 받고 자신의 왕국에서 내쫓겼다. 
 
2014년 제리코를 만나면서 세실은 다른 전략을 취한다. 즉, 제리코와 연대하며 자신의 프라이드를 구축한 것이다. 세실과 제리코는 비슷한 영역을 활보하고 다니면서도 상대방의 가족을 해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세실이 허망하게 죽고, 연구자들은 제리코가 세실의 새끼들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했다. 제리코는 세실 프라이드를 공격적으로 점령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영아살해는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제리코가 옆에 있음으로 해서, 세실 프라이드는 바깥 영역의 수컷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았다. 제리코가 ‘호위무사’가 된 것이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연구원은 인터뷰에서 “제리코는 세실의 어미들과 새끼들에서 500미터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며 “사실상 제리코가 세실 프라이드를 보호해준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사냥꾼이 수사자 한 마리를 쏘아 죽이면, 사자 30마리를 죽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프라이드의 수사자가 교체되면서 일어나는 피의 살육전이 사자 개체 수를 감소시킨다는 얘기다. 사자 세실은 인간의 총탄에 쓰러졌지만, 옛 동료 제리코의 ‘우정’은 죽음의 도미노를 막았다. 그게 인간의 우정과 같은 것인지 우리로선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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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3대 복지, 재래시장 상인들 “숨통 틔워준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2/05 11:16
  • 수정일
    2016/02/05 11: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르포] 성남시 ‘청년배당’에 호떡집이 웃는 까닭

성남시 3대 복지, 재래시장 상인들 “숨통 틔워준다”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에 위치한 남한산성시장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에 위치한 남한산성시장ⓒ민중의소리
 

“새벽 도매시장에 가면 다른 지역에서 온 상인들이 부러워해요”

성남 중원구 남한산성시장에서 12년째 생선 가게를 운영 중인 차인태 씨(43)의 말이다. 차 씨는 매일 아침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가락시장으로 생선을 사러 간다. 그는 도매 시장에서 만난 인근 지역의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성남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는 왜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일까.

그의 가게가 있는 남한산성시장은 설 명절을 앞두고 장을 보러 온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시장은 20년 전 은행골목시장으로 시작해 지난 2014년 남한산성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걸어서 10분이면 남한산성 입구에 다다르다 보니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도 심심치 않게 들르는 곳이다.

차인태 씨가 타 지역의 상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이유는 성남시의 정책 때문이다. 성남사랑상품권은 재래시장을 비롯해 영세한 상점가를 살리기 위해 성남시가 운영하는 지역 화폐다. 성남시는 지난 1월부터 3대 무상복지정책으로 청년배당과 산후조리지원금 90억원을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 상품권은 성남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해 지역 상권으로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전에는 9대 1 비율이었다면 지금은 5대 5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차 씨는 3일 정도 모아둔 상품권들을 서랍에서 꺼냈다. 1만원, 5천원 상품권 50여 장이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차 씨에 따르면 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권은 총 3가지였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온누리상품권과 성남사랑상품권,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공동 쿠폰이 그것이다. 예전에는 온누리상품권이 전체 유통 상품권 중 9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율이었지만 올해 초 성남시에서 상품권을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그 비율이 비슷한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차 씨는 “전국에 전통시장이 등록된 곳만 1500개 정도인데 작년 한 해 1300개로 준 걸로 알고 있다. 1년 새 200개가 사라질 만큼 전통시장은 어렵다”면서도 “그래도 여기는 이러한 상품권도 있고 시장의 자체적인 노력도 있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남한산성시장 배득영 상인회 회장에 따르면 3대 복지정책 시행 이후 시장 전체 매출이 15~20% 정도가 증가했다.

3일치 들어온 성남사랑상품권을 들고 있는 상인 차인태 씨
3일치 들어온 성남사랑상품권을 들고 있는 상인 차인태 씨ⓒ민중의소리

호떡을 파는 한미나(49)씨는 매일 오후 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장사를 한다. 호떡은 1개 700원, 3개에 2000원이다. 점심시간도 다가오고 출출함도 때울 겸 호떡 하나를 주문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호떡을 기다리며 ‘호떡도 상품권으로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 기자의 질문에 한씨는 “물론”이라고 답했다.

한미나(49)씨는 최근 청년배당이 지급되면서 상품권을 사용하는 손님이 늘었다고 했다. 한씨는 “손님 중에 '우리 딸이 청년배당 받아서 산다’며 자랑하면서 사가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년에 우리 딸도 만 24세가 돼서 청년배당 받을 수 있다”며 내심 기대했다.

“청년들이 상품권을 받고서 부모님께 드리는 경우도 많다는데 어떻게 하실거냐”고 묻자 한 씨는 “3만 원만 달라고 하죠 뭐”라며 웃었다.

이번에는 질문을 바꿔 “청년들이 배당받은 상품권을 직접 쓰지 않고 부모가 대신 쓴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녀는 “말도 안 된다. 이것 자체가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악의적”이라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위치한 금호재래시장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위치한 금호재래시장ⓒ민중의소리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아파트 대단지에 위치한 금호 재래시장이었다. 금호 재래시장은 외관상으로는 여느 아파트 상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입구에 ‘금호 재래시장’이라는 간판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한참을 헤맸을 터였다.

시장은 지하 1층은 식품, 1층은 여성 의류, 2층 식당가로 이뤄져 있었다. 이 곳은 1990년대 분당 신도시 계획 당시 재래시장 부지로 선정된 14곳 중 하나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현재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루 유동인구는 약 2,500명 정도로 전통시장 특유의 왁자지껄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손님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엄마한테 딸기 사다 주려고 한다면서 사가더라”

박진식 씨는 21년째 금호시장 지하 1층 식품 매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고 있다. 박 씨는 대목을 앞두고 배달을 나가기 위해 과일 박스가 쌓인 복도 사이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상인회장으로서 “상인들한테 우리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무조건 하자고 했다”며 “성남사랑상품권 가맹점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의지로 금호시장은 시장 전체가 가맹점으로 가입되어 있다. 시장 건물 밖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우리 금호전통시장은 성남사랑 상품권을 적극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아파트 단지 내에 걸려있었다. 박 씨는 “현수막을 보신 손님들이 상품권을 쓰기 위해 더 많이 찾아와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씨에 따르면 분당 지역은 기존에 성남사랑상품권의 유통량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무상복지 정책이 시작되면서 들어오는 성남사랑상품권의 개수가 확실히 늘기 시작했다. 그가 아내의 핸드백 속에서 4일간 모아놓은 상품권 더미를 꺼냈다. 그는 “오늘만 해도 25만원어치는 들어왔다”며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박 씨는 “실제로 식품 매장의 경우 상품권이 늘면서 전체 매출의 10% 가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청년배당이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과연 청년들이 상품권을 쓸까’하고 의구심을 가졌다고 했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실제로 청년들은 작게라도 상품권을 사용하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 그는 “과일 가게다 보니 큰 돈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한테 딸기 사다 주려고 왔다며 상품권을 내미는 청년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점포도 반응은 비슷했다. 맞은편 수입 식품점 주인도 “청년배당 이후 엄마들 뿐 아니라 청년들도 많이 오는 편”이라며 “평소에는 하루 1장도 들어올까 말까였는데 지금은 평균 10장 정도씩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들, 온누리 상품권에 비해 불편하다는 지적도

한 상인은 “성남사랑상품권은 온누리 상품권에 비해 불편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온누리 상품권의 경우 상가번영회에서 바로 현금으로 바꿔 주는데 반해 성남사랑은 가게를 비워놓고 은행에 가야 한다”며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에겐 불편함이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상인도 “아직까지는 가맹점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재래시장 뿐 아니라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맹점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27일 지역 전통시장 26개 상인회 회장들을 만나 “전국적으로 새누리당이나 언론이 집중폭격을 하지만, 정작 성남시 안에서는 시민들이 이해도가 높아서 선의를 잘 알아주고 있다”며 “앞으로 생활보조비, 처우개선비, 수당 등 신규 복지지출을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줄 생각”이라며 확대 방침을 밝혔다.

이날 성남지역 상인회는 이러한 방침에 대해 “성남시의 성남사랑상품권 활용 정책이 복지사업의 본래 취지와 실질적 효과까지 얻는 일거양득의 정책이며 어려운 우리 성남 상인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환영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장 안에 걸려있는 성남사랑상품권 가맹점 표시
시장 안에 걸려있는 성남사랑상품권 가맹점 표시ⓒ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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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반도평화보장의 유일한 길은 북미평화협정 체결> ... <박근혜퇴진·북침핵전쟁연습중단·코리아연대탄압중단촉구 집회>

  • <코리아반도평화보장의 유일한 길은 북미평화협정 체결> ... <박근혜퇴진·북침핵전쟁연습중단·코리아연대탄압중단촉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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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연대(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는 4일 오전10시30분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앞에서 <박근혜퇴진·북침핵전쟁연습중단·코리아연대탄압중단촉구 집회>를 개최하고 <북미평화협정 체결하고 미군은 이땅을 떠나라>라고 촉구했다.

     

    코리아연대 김병동공동대표는 여는말을 통해 <이땅은 지금 전쟁위기에 놓여있다. 코리아연대는 전쟁위기를 구조적으로 안착화시키려는 미국을 규탄하며 미대사관앞에서 1인시위를 매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종로경찰서는 코리아연대의 1인시위를 미대사관측의 요청이 있었다며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평화로운 1인시위가 미대사를 해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땅의 민주주의는 죽었고, 인권은 바닥에 떨어졌다.>고 개탄했다.

     

    이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이때에 <대통령>이 평화협정체결에 앞장서야 함에도 오히려 대북방송을 재개하며 전쟁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미군이 주둔이후 우리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져갔다.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하는 것이 답이다. 미군은 이땅을 떠나라.>고 촉구했다.

     

    우리사회연구소 권오창이사장은 <주한미군 몰아내고 조국통일 앞당기자!> 외친후, <미제국주의는 이윤을 위해 살인, 전쟁도 불사한다.>면서 <1990년대초 소련동구권이 붕괴되자 미국은 북을 먹잇감으로 선택해 <악의축>이라며 핵전쟁연습을 매년 진행하며 북을 몰아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박근혜<정권>이 싸드배치한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국민에게 고스란이 부담된다. 또 중국과의 전쟁정세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꼬집고, <코리아연대회원들을 <이적단체>운운하며 감옥에 가뒀는데 <이적>은 바로 박근혜가 하고 있다. 거꾸로 된 세상을 바꿔 새세상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교계도 전쟁위기를 조장하는 미국과 박근혜<정권>을 규탄했다.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목사는 <진정한 인간의 삶을 폭압하는 것이 제국주의>라며 <미제국주의는 근현대사 100년동안 또아리를 틀며 코리아민중들을 압제해왔다.>고 일갈했다.

     

    계속해서 <외교는 동북아정세를 보고 우리의 평화와 행복을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정권>은 이 외교를 말아먹고 있다.>면서 <개념이 있다면 민중들을 위해 자주적으로 북쪽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북이 수소탄을 개발한 것은 미제를 압제하고 자주국가가 되기 위한 것이다. 남에 핵 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언급하고, <종미사대정권 박<정권>을 내쳐야 한다.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리아연대는 성명을 통해 <코리아반도의 정세는 한마디로 일촉즉발의 전쟁전야에 있다.>며 <미국이 곧 스텔스핵폭격기를 출격시키고 북침핵전쟁연습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박<정권>이 대북심리전방송을 재개하고 <전쟁담화>를 하며 제재소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대해 민족으로 이름으로 가장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코리아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없애고 공고한 평화보장체제를 수립하는 유일한 길은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북남)관계를 자주통일의 길로 전환시키는 길뿐>이라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박<정권>이 어리석게도 미국과 공조하며 동족과 전쟁하자는 길로 계속 간다면 역사가 보여주듯이 온민족의 지탄속에 박근혜는 그 선친처럼 파멸적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박<정권>이 아무리 파쇼적으로 공안탄압한다고 해도 스스로 세운 성스러운 목표를 향한 정의의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집회가 끝난후, <북미평화협정 체결하고 미군은 이땅을 떠나라!>·<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살인진압 공안탄압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가로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미대사관앞에서 출발해 북인권사무소-세월호광장을 거쳐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했다.

     

    행진후 참가자들은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정리집회를 열고 마무리했다.

     

    정리집회에서 한 대학생은 <탄저균실험이 이땅 곳곳에서 16차례나 이뤄졌고 북침핵전쟁연습이 우리삶의 터전에서 공포를 안고 이뤄지는 이 현실에서 자신들의 처세와 권력을 위해 <미군없이는 우리나라가 있을 수 없다.>며 민중들에게 진실을 감추고 공안탄압을 자행하며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성토하고, <진정 우리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주남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의 매국정권과 그 하수인<견찰>은 미국의 요구라면 탄저균이 들어와도 코리아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침핵전쟁인 진행돼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서 <자신들의 권력과 명예를 위한 일만 할뿐 민중의 생명따윈 안중에도 없다. 이러한 박<정권> 퇴진돼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성명전문이다.

     

    상호공멸의 핵전쟁을 막기 위하여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은 이땅을 떠나라!

     

    코리아반도위에 핵전쟁의 먹구름이 또다시 불어오고 있다. 지난 1월 북의 수소탄시험에 남이 대북심리전방송을 재개하고 미국이 B-52폭격기를 출격시켰다. 이에 북은 대남전단살포를 시작하였다. 박근혜<대통령>은 본질상 선전포고인 <전쟁담화>를 하고는 마침내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를 사실상 결정하였다. 미국과 남이 유엔과 언론을 통해 북을 고립시키는 와중에 남에서 <북한인권법>제정이 임박하였다. 그리고 곧 B-2스텔스핵폭격기가 출격하고 키리졸브·독수리미남합동군사연습이 재개된다고 한다. 그러자 북은 2월중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관련기구에 통보하였다. 코리아반도의 정세는 한마디로 일촉즉발의 전쟁전야에 있다.

     

    북은 정부성명을 비롯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의 핵무장이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으로부터 시작된 필연적 귀결이라면서 자위적 목적임을 분명히 해왔다. 이는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이 전환된다면 북은 미국과 함께 비핵화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북은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에서 미군이 철수되며 북미수교가 이루어지면 평화적으로 핵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두번만 밝히지않았다. 1994년 북미제네바합의와 2000년 북미공동코뮈니케의 기본내용도 이와 동일하다. 1953년 7,27정전협정을 비롯해 북미간의 합의를 파기한 것은 명백히 미국이다. 실제로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나라도 미국이고 코리아전쟁때 북을 핵공격할 것을 검토하였던 나라도 미국이며 지금도 북침핵전쟁연습을 연례적으로 벌이며 공공연히 핵공격위협을 하는 나라도 미국이다.

     

    그러나 남은 미국을 분별없이 추종하며 제재소동을 일으키고 대북심리전방송을 재개하며 지난 8월사태를 재연시키려 하고 있다. 그 배경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 두려워 <북풍>을 유도하는 것이든, 민중총궐기를 두려워하며 공안통치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든 코리아반도에 핵전쟁정세를 격화시키는 어떠한 언행과 정책도 철저히 반민족적이고 반평화적이며 반민중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미국이 곧 스텔스핵폭격기를 출격시키고 북침핵전쟁연습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박<정권>이 대북심리전방송을 재개하고 <전쟁담화>를 하며 제재소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대하여 민족의 이름으로 가장 강력히 규탄한다. 코리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민족공멸의 핵전쟁이며 인류파멸의 제3차세계대전이기 때문이다. 

     

    코리아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없애고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유일한 길은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북남)관계를 자주통일의 길로 전환시키는 길뿐이다. 만약 박<정권>이 어리석게도 미국과 공조하며 동족과 전쟁하자는 길로 계속 간다면 역사가 보여주듯이 온민족의 지탄속에 박근혜는 그 선친처럼 파멸적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코리아연대는 박<정권>이 아무리 파쇼적으로 공안탄압한다고 하여도 스스로 세운 성스러운 목표를 향한 정의의 투쟁을 결코 멈추지않을 것이다. 21세기레지스탕스 코리아연대는 폭압적이고 호전적이며 극우적인 박근혜<정권>이 무너지고 북침핵전쟁·세균전연습을 벌이는 미군이 떠나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진두에서 가장 용감히 투쟁할 것이다.

     

    북침핵전쟁·세균전연습 중단하고 미군은 이땅을 떠나라! 
    북미평화협정 체결하고 미군은 이땅을 떠나라!
    대북심리전방송 중단하고 싸드배치 철회하라!
    코리아연대 탄압하는 박근혜폭압<정권> 퇴진하라!

     

    2016년 2월4일 
    21세기레지스탕스 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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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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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와의 동거 3개월… 지옥을 보다

 
[나나이(Nanay), 슬럼을 떠나다 ①] 재난과 죽음의 동거 중인 필리핀 난민
 
| 2016.02.05 07:37:38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들이었습니다. 목이 꺾이고 물에 퉁퉁 불은 시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습니다. 시체를 그저 쌓아둘 공간도 모자랐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공간 속에 뒤섞였습니다. 발 아래로는 구더기 떼가 득실거렸습니다.

농구장, 대피소, 시체, 그리고 태풍. 에블린이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 단어들입니다. 

 

 

▲필리핀 마닐라 도시 빈민 밀집 지역 '사와타'. ⓒ프레시안(손문상)


2009년 9월이었습니다. 태풍 '온도이'는 필리핀 마닐라 전역을 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한 달 치 비가 불과 반나절 만에 쏟아졌습니다. 

강가에 있던 에블린의 집은 완전히 물에 잠겼습니다. 세간을 챙길 틈도 없이 지붕 위로 올라가 보니, 동네는 제 모습을 잃은 채였습니다. 바로 코앞에서 이웃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악을 지르며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도, 집들도, 가축들도 모두 다 떠내려갔습니다. 

그렇게 에블린의 가족은 '기후 난민'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에는 야외 농구장이 많다. 이곳은 필리핀 기후 난민들의 임시 대피소로 쓰이기도 한다. ⓒ프레시안(서어리)


재난과의 죽음의 동거 

필리핀은 자연 재해가 무척 잦은 나라입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 데다 태풍의 주요 경로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매년 지진, 태풍으로 인한 이재민이 속출합니다. 지난 2013년 필리핀 타클로반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은 6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4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낳기도 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아태 지역 기후변화와 이주에 관한 대처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은 해수면 상승, 홍수, 토양 퇴화 등으로 대규모 난민 발생 가능성이 매년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은 재난과 죽음의 동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고향을 잃은 이재민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대개는 야외 농구장에 임시 대피소를 차리고 적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을 지냅니다. 시체가 뒹굴고, 땅에 묻히지 못한 관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끔찍한 곳에서. 바로 에블린의 가족처럼 말이죠.

 

 

 

▲사와타 풍경. ⓒ프레시안(손문상)

▲사와타 풍경. ⓒ프레시안(서어리)


강제 이주, 그러나 다시 마닐라로… 버림받는 여성들 

필리핀 정부에 매년 늘어나는 기후 난민들은 골칫덩이입니다. 기후 난민들이 머물던 곳들은 점차 슬럼화되고, 그 지역이 점차 넓어져 도시 미관을 해치니까요. 결국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는 건, 산꼭대기, 황무지 같은 싸디싼 땅에 이들을 몰아넣는 일입니다. 더욱이 지난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를 앞두고는 대규모 강제 이주를 단행했습니다.

마닐라에서 차로 2시간 거리 정도 떨어진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시의 '타워빌'. 이곳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강제 이주민 밀집 지역입니다. 정부는 타워빌 1구역에서 5구역까지 차례차례 난민들을 밀어 넣었고, 최근엔 6구역을 조성해 또다시 강제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타워빌 전경. ⓒ프레시안(손문상)


누군가는 말합니다. 정부가 알아서 새로 살 동네를 마련해주면 고마운 것 아니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부가 집을 구해주긴 하지만 무상 임대가 아닙니다. 민간업자로부터 대량으로 주택을 공급받은 정부가 이주민들에게 20년 이상 조건으로 장기 임대를 합니다. 가뜩이나 가진 것도 없는 이주민들은 정착도 하기 전에 '렌트 푸어'가 되는 셈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부의 강제 이주 지역은 기본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입니다. 타워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엔 물도, 전기도 나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 일자리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집이 있으면 뭘 하나요. 이주민들은 흙 파먹고 사는 신세가 될 뿐이었습니다. 

결국 남편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시 마닐라로 떠났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용직 막노동밖에 없지만 그래도 마닐라로 가면 돈은 벌 수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면 300 페소(약 7500원) 정도의 수입이 생깁니다. 

문제는 교통비였습니다. 타워빌에서 마닐라까지 매일 왕복 4시간을 오가는 데 드는 교통비만 100페소(약 2500원)입니다. 일당의 3분의 1이 교통비로 나가는 셈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지요. 마닐라로 떠난 남편들은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대부분 평일에는 마닐라에서 지내다 주말에는 타워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뜸해지기 일쑤였습니다.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은 결국 버림받았습니다. 

타워빌은 점차 절망의 마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프레시안(서어리)


타워빌에 들어선 작은 봉제 센터가 만든 꿈 

그러던 2011년 어느 날, 동네 곳곳에 벽보가 붙었습니다. '타워빌에 봉제 센터가 생기니, 이곳에서 무료로 기술을 배우라'는 안내였습니다. '캠프'라는 한국 NGO 단체가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황무지 같은 동네에서 뭘 하겠다는 걸까 의심도 많았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40여 명의 여성이 자원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천 쪼가리들을 자르고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습니다. 함께 웃고 떠들 친구도 생겼습니다. 4개월 간의 교육이 끝나고는 근사하게 졸업 기념 패션쇼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인근 교회에서 단체 주문이 들어와 직접 제작한 티셔츠를 납품하기도 했습니다. 봉제 센터에서 배운 기술로 얻은 첫 수입이었습니다.

 

 

 

▲타워빌에 세워진 봉제 센터. ⓒ프레시안(손문상)


이후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음울한 기운만이 가득하던 타워빌 곳곳에선 이제 엄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봉제 센터에서 일을 마친 엄마는 식료품을 한 아름 안은 채 유치원에서 놀던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갑니다. 

4년 전 이 동네에 들어선 작은 봉제 센터는 마을 주민들에게 단순한 일터가 아닙니다. 타워빌에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은 마법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제가 해드릴 타워빌의 이야기는, 절망이 아닌, 재봉틀처럼 힘차게 돌아가는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계속)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바로 가기 : "나나이(Nanay), 슬럼을 떠나다") 

 

 

▲퇴근 후 손자를 데리고 가는 타워빌 주거 여성 에블린. ⓒ프레시안(손문상)

▲봉제 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회의 모습.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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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요격 어려워, "허풍" 냉소적 시각도

국방부 "북 미사일, 영해 침범시 요격"현실적으로 요격 어려워, "허풍" 냉소적 시각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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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04  15: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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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가 북한의 마시일이나 잔해가 영해를 침범할 경우 패트리엇 미사일로 요격할 것이라고 4일 밝혔다. 사진은 패트리엇 미사일 발사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북한이 오는 8일부터 25일사이 위성 발사를 예고한 가운데, 국방부는 북한의 미사일이나 잔해가 영해를 침범할 경우 요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재 패트리엇 미사일이 배치됐으나, 요격 가능성에 회의적 시각도 제기된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4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미사일 또는 잔해물 일부가 우리 영토에 낙하될 경우 요격할 수 있도록 방공작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 영토 내 낙탄 지역과 피해정도에 따라서 자위권 차원의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변인은 "현재 북측이 발표한 궤도상으로는 백령도 상공을 통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통과할 때 고도는 약 180㎞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며 북한 미사일이 통상적인 영공범위인 100㎞이내를 지나거나 영토.영해에 떨어질 경우 요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격미사일로 현재 방공무기체계인 패트리엇(PAC-2) 미사일을 제시했다. 하지만 PAC-2 미사일은 요격 고도가 약 15㎞인 파편형 유도미사일로, 미사일 종말 단계 하층방어용이어서 영공 침범시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요격률이 30%에 불과해 영토.영해 낙하 대응에도 맞지않아 요격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북한 핵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국면에서 별로 할 일이 없는 국방부가 언제나처럼 허풍치고 있다(정부 소식통)"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를 인정하듯 문 대변인은 "현재 우리가 가용할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나온 재원으로는 100%는 제한되겠지만 부분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와 관련해 그는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를 진행 중인 것으로 지금 판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 군은 긴밀한 한.미 공조 하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활동을 집중 감시 중이고, 미사일 발사 시 이를 탐지.추적하기 위한 전력 배치를 완료한 상태"라며 현재 그린파인 레이더, 이지스함, 공중항공통제기 등 감시자산을 가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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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 연세대 정외과 교수 "탐지거리 짧은 사드? 중국이 웃는다"

"작전권 포기해놓고 핵무장하자?
반미종북파인 데다 철도 없는 사람들"

[인터뷰] 최종건 연세대 정외과 교수 "탐지거리 짧은 사드? 중국이 웃는다"

16.02.05 07:56l최종 업데이트 16.02.05 09: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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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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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해, 사드 핵심 장비인 AN/TPY-2 고성능 X-밴드 레이더를 탐지거리 2000km 이상인 전진배치용(FBR·Forward-based Radar) 모드가 아니라 600km 수준인 종말단계 요격용(TBR·Terminal-based Radar) 모드로 운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처럼 굳어지고 있다. 중국의 강력 반발을 감안해, 중국까지는 들여다볼 수 없는 수준으로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외과 교수는 "중국이 웃는다"고 일축하면서 "중국 입장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는 미국의 촉수가 더 턱밑으로 오는 것이고, (X-밴드 레이더가) 600km모드이든 2000km모드이든 그 촉수는 늘 확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MD(Missil Defence, 미사일방어체계)망은 네크워크이기 때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계속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며 "10년 후에는 X밴드 레이더 성능이 크게 좋아질 것이고, 그러면 한국에 들어온 사드도 당연히 업그레이드 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2010년에 "방패와 창의 안보딜레마: 일본의 TMD구축과 중국의 대응 역학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쓰는 등 MD와 사드 논란과 관련해 초기부터 목소리를 내온 소장 학자다.

그는 "사드는 주한미군기지에 배치한다는 점에서 사드를 어떤 모드로 운용하는지 우리도 검증할 수가 없다"면서 "탄저균도 우리가 모르게 서울 한복판에 들여온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핵무장론자들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서는 "그들이야말로 종북이고 반미"라며 "그렇게 진정으로 자주국방을 하자는 것이면 전작권 전환 주장부터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드 관련 문제를 '총정리'한 이 인터뷰 내용은 남북관계전문 팟캐스트 <한통속>으로 들을 수 있다.

☞ 팟빵에서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듣기
☞ 아이튠즈에서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듣기 

다음은 3일 만난 최 교수와의 문답 요약.

- 사드는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있나.
"북한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쐈다면 한반도가 전쟁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장사정포를 비롯한 각종 포와 미사일을 발사할 텐데 그중에서 핵미사일을 구분할 수 있을까. 또 실제 발생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북한이 미사일만 발사하는 경우 최대 1천 기의 미사일 중에서 딱 한발이 핵미사일이라며 지상 50~150㎞의 고고도 구역을 50여 기의 사드 미사일이나 10~15km 저고도방어용인 패트리어트로 막아낼 수 있을까.

현재 상황은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한 일단은 우리가 맞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이 '선빵'을 날릴 경우 확실히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우리는 전시작전통제권도 갖고 있지 않다. 목소리만 컸지 (2010년) 연평도 포격 때는 제대로 응징도 못했다. 북한에게 잘못된 신호가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 자체를 막기 위한 예방외교가 가장 중요하다."

"사드 들여오면 한미동맹은 중국견제용 지역동맹으로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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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 고고도 방어 미사일 시험 발사 장면(2013.9.10.)
ⓒ 미국 국방부 미사일 방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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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여전히 사드와 MD는 별개인 것처럼 얘기한다.
"MD는 다양한 촉수들과 허브들을 중앙에서 통제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다. 미사일에 대한 다층 방어를 위해 촘촘한 촉수들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사드다.

미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유럽과 일본 등에 MD를 촘촘하게 네트워크화 했고, 현재의 타깃은 중국과 북한이다. 일본은 MD에 적극 참여했으나, 한국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북한을 억제하기 위한 것인데, 한국에 사드가 들어가게 되면, 한미동맹은 대북 억제뿐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지역 동맹이 되는 것이다. 사드는 무기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국제정치적인 의미가 더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중국이나 북한 미사일을 막으려면 한미일의 모든 촉수가 가동돼야 하기 때문에 결국 한미일이 군사협력체가 돼야 하고, 그것은 결국은 한미일의 정보체계를 일체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음 주쯤 미 국방부 예산안이 발표된다고 하는데 그 양대 축의 하나가 중국을 견제하는 MD 부분이다. 이미 미국은 해군 자산의 60% 이상을 아시아에 배치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만큼 촉수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2014년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상호 운용성 개선'에 합의했고, 같은 해 12월에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이 맺어졌다. 또 올해 1월 22일에 국방부는 올해 안에 한미일 군사 당국 간에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채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게 MD와 다 연결돼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본다. 현재 상황까지 오기 위한 여러 가지 협약들이 있었다. 또 미국 입장에서는 그동안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을 가로막은 것이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과거사 문제였는데, 이것도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 간 합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치워버렸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미국 인사들이 사드 도입에 대한 세일즈 차원의 변죽을 올렸고, 한편으로는 북한의 위협은 퍼펙트한 것으로 만들었다."

- 중국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사드의 핵심장비인 AN/TPY-2 고성능 X-밴드 레이더를  탐지거리가 최대 2000km인 전진배치용(FBR·Forward-based Radar)이 아니라 600여km인 종말단계 요격용 모드로 운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게 해결방안이 될까.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이 웃는다. 중국 입장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는 미국의 촉수가 더 턱밑으로 오는 것이고, 600km 모드이든 2000km모드이든 그 촉수는 늘 확장이 가능하다. MD망은 네크워크이기 때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10년 후에는 X밴드 레이더 성능이 크게 좋아질 것이고, 그러면 한국에 들어온 사드도 당연히 업그레이드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중국이 반발하는 것이다.

또 탐지거리가 600여km인 종말단계 요격용 X밴드 레이더를 사용한다고 치자. 중국에게 이걸 어떻게 확신시킬 것인가. 중국 장교를 상주시킬 것인가. 사드는 미군 기지에 배치할 텐데, 계속 보고받는 것도 아니고 탐지거리를 늘리는 것을 우리는 또 어떻게 알 것인가."

"탄저균 몰랐다, 사드 운용모드를 한국이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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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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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를 업데이트 시켜도 한국은 알 수 없을 거다?
"한국에 2만8천 명의 미군이 있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들의 출입국을 우리 국방부가 보고받나? 통상 5천 명 이상 움직이면 한국에 통보하기로 돼 있지만, 이들이 인천공항 통해 우리 출입국 도장 찍고 오가는 게 아니라 오산 미군 비행장으로 온다. 사드를 탐지거리 짧은 걸로 사용하는지 어떤지 우리도 검증할 수가 없다. 탄저균도 우리가 모르게 들여온 것 아닌가. 그런데 사드 모드를 우리가 확인할 수 있을까?

저는 북한 억제 차원에서 한미동맹 지지자다. 북한 억제가 중요한 국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미동맹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중교역량이 한미, 한일 교역량 합친 것보다 많고, 우리가 여기서 매년 400억 불 정도의 흑자를 보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돈을 벌고 있는 나라가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인가? 우리의 이익이 아니라 동맹인 미국의 이익 때문에? 동맹은 국익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지, 국익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가장 큰 나라 옆에서 살고 있다. 지금 젊은이들은 거기 가서 사업도 하고 직장도 잡아야 하는데, 우리가 그걸 견제한다? 돈도 벌고 공존해야 하는 중국을 적으로 취급하면 진짜 적이 된다.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겠나."

- 사드 배치에 따른 비용이 아직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2개 포대에 4조 원 정도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하는데, 결국 그 비용은 한국이 부담하게 되지 않을까?
"초기에 미국이 부담할 거다. 그러다 우리에게 넘길 텐데, 직접 지불하는 게 아니라 방위비분담을 늘려주는 방식이 될 것이다. 미국이나 우리 국방부도 국내 비판여론을 의식하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는 간접 지불이 될 것이다. 4조 원이면 인천공항 절반을 만들 수 있는 돈이고, 서울시 초중고 학생들에게 4년간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

- 박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사드는 당장 도입할 수 있는 무기도 아니지 않나.
(지난해 4월에 카터 미 국방장관은 "아직 생산 단계 있기 때문에 현재 세계 누구와도 아직 사드 배치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 바 있다).
"그것도 문제다. 미국에 재고가 있느냐 없느냐 문제도 있지만, 무기 자체 효용성도 검증이 안됐다.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그 실험의 맹점은 미리 언제, 어디서 쏜다는 것을 알고 맞춘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드 도입론자들의 주장대로 북한이 남한에 60~70도의 고각으로 꽂을 경우 사드가 커버한다는 구역의 미사일 체공시간이 1분이 채 안 된다. 이걸 어떻게 맞추겠나.

지금 우리는 사드라는 나팔만 불고 있다. 그러면 안보에 대한 체감 긴장만 올라간다. 당장 결정해도 1년 후가 될지 언제 도입될지도 모르는 무기체계를, 비핵화를 추진해야 하는 지금 단계에서 논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가 팔짱 끼고 웃고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나요? 핵실험 이후 바로 사드 국면이 됐다. 안 그래도 남북관계 단절됐는데, 한중관계는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사드를 한국에 보내야 하는 세력들, 미국에서 전략무기 관련 예산이 줄고 있기 때문에 위협을 증폭시키고, 사드를 생산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 천문학적 금액의 무기들을 자꾸 들여오지만 안보위협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남북 간의 불신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우선 상대적으로 쉬운 문화, 경제교류부터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3자가 중재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북포용정책이 지속됐다면, 개성공단이 5배 정도 이상 커졌을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덜 위협적인 북한이 됐을 수도 있고, 혹 북한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졌을 때 '왜 그러냐'고 북한 어디에 연락해야 하는지는 알았을 거다. 지금은 베이징, 워싱턴, 도쿄, 모스크바에 가서 '북한 왜 저런대' 하고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확성기 틀어놓고 만족해 한다. 블랙코미디도 아니고 비참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을 강조하면서 통일준비위원회도 만들었다. 의미 있고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비핵화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6자회담과 남북관계 안정인데, 이걸 포기하고 통일준비를 말한다. 연애도 못하는데 결혼이 대박이라는 거나 다름 없다."

- 4차 핵실험 이후 핵무장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종북이다. 북한의 길을 가자는 거다. 한미동맹을 깨자는 것이기 때문에 반미파이기도 하다. 우리가 핵을 개발하면 북한처럼 국제제재를 받고 고립된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되겠나. 철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진정으로 자주국방 하자는 거면 왜 전작권 환수 주장은 안 하나, 왜 국산무기 개발은 제쳐놓고 미국 무기 쓰자고 하나. 자주국방 하려면 미리 판을 깔아놔야지, 웬만한 건 다 동맹 뒤에 숨어 있으면서 핵무기를 개발하자고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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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문 10답으로 정리하는 버니 샌더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2/04 15:36
  • 수정일
    2016/02/04 15: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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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

 

 

1941년 9월 8일생. 뉴욕 브루클린 지역 출신.

 

1981-1989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1991-2007 버몬트 주 연방 하원의원

 

2007- 현재. 버몬트 주 연방 상원의원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유대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다. 부친의 친지들은 폴란드에서 살고 있었으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모두 사망.

 

그다지 독특할 것도 없는 유대계 미국인인 한 정치인이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하여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누구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무난하게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혜성처럼 나타난 버니 샌더스는 과연 누구인가? 사실 뭐 별로 궁금할 것도 없지만 다들 궁금해하니 덩달아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런 건 은하계 유일의 민족정론지인 본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긴급하게 버니 샌더스 후보자와의 독대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 10가지의 질문을 물어보기로 했다. 진짜냐고?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시라. 본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니까..

 

 

문 1) 반갑다. 혜성처럼 등장하여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어디에 있다가 갑툭튀 한 것인가?

 

반갑다. 최근 인터넷과 여론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나를 갑툭튀라 하면 곤란하다. 72년 버몬트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참여한 이후 줄곧 정치를 해왔다. 니들이 몰랐을 뿐이지.

 

물론 처음에는 계속 낙선했지만...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연방 하원 의원, 상원 의원을 하며 오래동안 기반을 닦아 왔다. 내가 시장을 한 벌링턴 시가 미국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도시라는 건 알고 있나? 2006년에 부자 감세 법안을 비판하면서 의회에서 8시간 30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는 건? 그런 레전드 영상이 있으니 찾아보고,

 

나를 과소평가하지 말아 달라.

 

샌더스가 요청한 동영상. 정확하게는 8시간 34분 29초다.

 

 

문 2) 미안하다. 어쩌다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나?

 

원래 젊어서는 빨갱이였다. 대학 시절 인종차별 철폐 투쟁에 나섰다가 경찰에 체포된 경력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아주 어려서 히틀러를 보고 정치를 배웠다. 잘못된 정치인이 선거에 승리할 때 한 사회가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보면서 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berniemayor.jpg

출처 - <AP>

 

사실 그렇잖은가. 정치라는 것은 정말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도구인 반면, 인류를 스스로 멸종시킬 만큼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같이 훌륭한 사람이 해야 되는 거다.

 

안 그러면 망해. 망한다고. 지금 미국처럼...

 

 

문 3) 좋다. 오래동안 갈고 닦은 정치인이라는 건데, 어떤 정치를 했고, 앞으로 하겠다는 건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정치를 시작한 이래, 30년 넘게 내가 주구장창 주장해오던 게 있다. 불평등 문제다.

 

미국이 최근 수십년간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이 상위 1%에게 몰렸고, 빈곤층은 더욱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무너졌다. 이건 공정하지 않은 거다. 내가 당선된다면, 거대 은행을 해체하고, 최저임금을 올리겠다.

 

사람들은 나보고 과격하다고, 극단주의자라고 하는데, 그러다 진짜 과격한 맛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에서 부자의 세금을 깍아주고, 최저임금 인상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거부한다면 그 자가 바로 극단주의자이다.

 

 

문 4)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비판이 아니다. 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다. 한국에 있으신 몇몇 분덜은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런 사람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란 지금처럼 부자들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액 선거자금 기부자들에게 조종받지 않고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복지가 빵빵한 북유럽을 생각하면 대강 비슷하다 하겠다.

 

 

문 5) 알겠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아이오와주에서 49.54%를 득표하며, 49.89%인 클링턴에게 아깝게 패배했다.

 

결과적으로 지긴 했지만, 진 게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지율에 거품이 있는 거 아니냐고 나를 비판하던 사람들은 슬슬 겁을 먹기 시작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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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nn>

 

게다가 아이오와 경선 이후 후원금이 쇄도하고 있다. 이제 물이 들어오고 있다고 본다. 노를 열씸히 저어 보겠다.

 

아, 클링턴은 괜찮은 정치인이다. 현명하고 노련하고 준비된 대통령 후보감이다. 그런데 말야. 오바마 정치를 보더라도 대기업 눈치 보고 군산복합체 눈치 보고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겁쟁이들 눈치 보고 그러면서 뭔가를 바꿀 수 있을까? 뭔가를 바꾸는 것, 개선을 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 고통을 외면하고 문제 해결의 속도를 늦추고 있는 자들, 가진 자들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유연한 후보이며, 내가 불러일으킨 문제의식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보다야 못하지만...

 

 

문 6) 미국의 선거 과정은 돈이 솔찬케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 금수저인가?

 

그것도 심각한 문제다. 가진 자들에게 집중되는 돈을 분산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진 자들이 내는 후원금을 받아 당선이 된다면 도대체 뭘 어떻게 바꾸겠다는 얘기인가?

 

수퍼팩의 후원을 받아야만 당선될 수 있는 대통령이라면 아예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내가 수퍼팩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금수저냐고? 뭔 소린가? 원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걸 영어로는 실버 스푼이라고 하는데 금수저는 또 뭐냐? 난 이번 선거를 1인당 2700달러 이하의 소액 후원을 통한 모금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큰 돈이 모였다는 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거다. 한쿡말로는 십시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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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큼씩 여러 사람이 모아줬다"

출처 - <Reuters>

 

 

문 7) 총기 문제에 있어 쪼금 애매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진보 정치인이 총기 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라, 약점이라면 약점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 그건.. 내가 버몬트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이다. 총기는 그게 그렇게 니들처럼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른 구석이 있는 문제다. 미국의 역사를 보란 말이다. 원래 각자 다 총 한 자루씩 차고 다니면서 건설한 국가라고.

 

힐러리가 총기 규제에 적극적이니, 오히려 중도층이 나에게 쏠리는 효과가 있지만, 이건 못 들은 걸로 하고... 근본적으로는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양 극단으로 갈려서 황당한 법이나 만들고 그런 식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합리적으로 하자. 합리적으로.. 총 들이대지 말고.

 

 

문 8) 공립대학 등록금을 없애겠다는 '무상교육' 정책을 냈다. 이거 가능한가? 재원은?

 

한국도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들었는데, 미국은 더하다. 교육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 졸업장은 이제 또 하나의 고등학교 졸업장과 같다. 기본으로 장착해야 한다는 말이다. 근데 돈이 없어서 대학에 못 가는 학생이 있어서 되느냔 말이다. 가족 소득이 대학 진학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상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이미 대학 등록금이 없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못할 거 없다.

 

재원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을 것이다. 더 자세히는.. 상위 1%에게 세금을 걷겠다. 그럼 될 거다.

 

 

문 9) 음.. 알겠다. 지난 1차 경선 토론회에서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을 언급하지 않는 등 네거티브 전략을 쓰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그렇게 고고하게 해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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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nn>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난 정치인들이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서로를 공격하고 헐뜯는 얘기로 시간을 때우는 것은 정말로 자원의 낭비이며 유권자들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생각을 한다.

 

상대가 학창 시절에 무슨 잘못을 했는가를 이제 와서 따지는 것보다는 상대가 지금 의회에서 무슨 법안을 만들고 있는지를 얘기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른데 도대체 비싼 밥 먹고 무슨 그런 시간 낭비들을 많이 하는지..

 

혹시 내가 구린 데가 많아서 그러냐고? 날 탈탈 털어봐라. 70이 넘은 나이에 나처럼 털릴 거 없는 사람도 드물 거다.

 

난 그러한 인생을 살아오질 않았다.

 

 

문 10) 지금까지 고난도 질문에 답변하느라 수고 많았다. 끝으로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직접 만나 중동 문제 등에 관해 브리핑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무슨 얘기가 오갔는가? 궁금타.

 

사실, 미국에서도 아무리 정치를 많이 해도 국제적인 문제를 백악관 밖에서 알기는 무척 힘들다. 아마 클린턴 후보와 나를 공평하게 대함으로써 자신이 클린턴을 미는 거 아니냐는 의혹도 해명하고 경선 과정에서 흥행도 좀 해주고 그러려고 그러는 거 같은데..

 

하여간 불러줘서 재미있는 얘기 많이 들었고 맛있는 거 줘서 잘 먹었다. 역시 바마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것 같다. 기특한 젊은이야..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런 자리에서 오가는 얘기는 다 국가 기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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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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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 대선을 위한 민주당 후보 경선과정에 참여해 Feel the Bern! 이라는 구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과의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은하계 최초로 텔레파시를 이용해 진행하는 인터뷰를 보신 소감이 어떠신가? 본지는 보통 했다하면 이 정도다.

 

결과적으로 그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사실 그 이전에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미국 대선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힘, 수퍼팩의 지원 없이 오로지 개인 후원자들의 소액후원만으로도 기록적인 후원금 모금액수를 달성하고 있고, Feel the Bern 쇼핑몰의 상품들이 거의 매진 딱지를 붙이고 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뭔가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벌어들이는 거의 모든 돈이 몇십 년간 상위 1%들에게만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 월스트릿의 금융회사들을 아예 쪼개버리자는 그의 제안들이 미국의 일반인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소리이다.

 

샌더스의 주장들이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고?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내 주장이 너무 과격한 게 아니라, 상위 1%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지금의 이 현실이 너무 과격한 거야. "

 

 

하기사, 사실상의 야당 대표가 보내는 난을 사실상 거절해 버리는 사실상 과격한 대통령 밑에서 살다보니 사실상 뭐가 과격한지도 모르게 되어 버린 지 너무 오래인 것 같다.

 

그리고.. 부럽다.

 

 

 

 

 

 

 

물뚝심송,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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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총선, 무엇이 달라지고 바뀔까?

4·13총선, 무엇이 달라지고 바뀔까?
 
 
 
김용택 | 2016-02-04 09:49: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6년 4월 13일은 제 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선거일입니다. 이번 총선은 선거일 현재 19세 이상 국민(1997년 4월 14일 이전 출생자)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피선거권은 선거일 현재 25세 이상의 국민입니다. 주요일정을 보면 선거일 전 120일인 예비후보자는 2015년 12월 15일부터 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 전일까지 등록이 가능하며 후보자 등록기간은 3월 24~ 3월 25일로 선거일 전 20일부터 2일간입니다. 후보자의 선거운동 기간은 3월 31일부터 4월 12일까지입니다.

☞. 2016 달라지는 주요 선거제도

<집행유예자, 수형자에게도 선거권 부여>

2016년 총선에서는 일반범으로써 형이 확정된 집행유예 자 및 1년 미만 징역·금고형 선고를 받은 수형자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됩니다. 개정 전 선거법에는 집행유예자와 수형자는 선거권을 제한해 왔지만, 이번 2016년부터는 형이 확정된 집행유예자에게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재·보궐선거 연 1회 실시>

지난 선거까지는  연 2회 실시하던 보궐선거를 올해부터는 4월 중 첫 번째 수요일 연 1회 실시하게 됩니다. 

개정 전 : 연 2회 실시 4월 및 10월 중 마지막 수요일 ✓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와 동시 실시(지방선거와 보궐선거등은 별도 실시) ✓보궐선거등의 공무원등의 사직기한 : 후보자등록신청 전까지

개정 후 : ✓연 1회 실시 ✓4월 중 첫 번째 수요일 ✓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와 동시 실시(지방선거와 보궐선거등도 동시 실시) ✓보궐선거등의 공무원등의 사직기한 : 선거일 전 30일까지

<예비후보자 전과, 학력 공개>

지금까지 예비 후보자의 전과나 학력에 대해 공개규정이 없었으나 이번 4·13 총선부터는 예비후보자의 전과와 학력공개가 의무화됩니다.

개정 전 : 예비후보자 전과․학력 공개 규정 없음.
개정 후 : 예비후보자 전과․학력 공개 의무화

<선거운동>

이번선거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시각장애선거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물을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선거는 시각장애선거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물 작성는 임의사항이었지만 이번 4·13선거부터는 대통령·지역구국회의원·자치단체장선거 후보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를 제출하되, 책자형 선거공보에 음성출력 가능한 전자적 표시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고, 점자형 선거공보 미제출 시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개정됐습니다.

<후보자·배우자 투개표 참관...>

그밖에도 사전투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신설되고, 선관위가 선정한 개표참관인을 허용하고, 후보자·배우자의 개표참관과 유권자도 개표를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사전투표에 있어 관내·관외 구분 기준을 변경했습니다. 이와 함께 투표함 봉쇄·봉인시 투표함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투표관리관 외 정당, 후보자별 지정한 참관인 1명씩 봉인지에 도장 또는 서명'할 수 있도록 개정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지난 선거에서 끊임없이 부정선거 논란의 빌미를 제공해 왔던 ‘투표용지와 유권자의 개표참관기회 확대’ 그리고 ‘투표함 봉인 시 투표참관인의 도장이나 서명을 봉인지에 서명을 의무화’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선거까지 무효표가 나오게 했던 원인 중의 하나인 투표용지사이의 여백문제도 ‘투표용지 후보자란 사이에 여백을 두어야 하도록…’ 개정해 무효표를 최소화하도록 배려했습니다.

하지만 유의할 점은 예전과 다르게 두 후보자(정당)에 걸쳐 기표를 하면 무효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종전까지 회송용 봉투를 교부하지 아니한 구역은 구·시·군 관할구역으로 규정했으나 이번 선거부터는 ‘구·시·군위원회 관할구역 안에 2이상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는 경우에는 관내·관외 구분 기준을 국회의원 지역구로 변경’하도록 해 논란의 소지를 없앴다는 점입니다.

<제한금지 및 벌칙>

이번선거에 신설된 조항 중에는 특정지역 사람 및 성별 비하 모욕 등에 대한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선거운동을 위하여 정당, 후보자,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나 형제자매와 관련하여 특정 지역·지역인 또는 성별을 공연히 비하·모욕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 신설하고,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나 형제자매와 관련하여 특정 지역·지역인 또는 성별을 공연히 비하·모욕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 조항이 신설되었다는 점입니다.

대표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대리인입니다.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수준만큼 향유할 수 있습니다. 공정한 선거를 통해 유능하고 양심적인 선량을 선출하는 것은 유권자의 의무요 권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번 4·13총선이 사상 유래 없는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로 우리사회가 좀 더 투명하고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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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화 촉구, 광주 시민문화제

5월광장 앞 6m 소녀상 "할매, 우리가 다 기억하제라"

[현장]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화 촉구, 광주 시민문화제

16.02.04 05:22l최종 업데이트 16.02.04 05:2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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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굴욕 합의 전면 무효화를 촉구하는 시민문화제 '할매, 우리가 다 기억하고 있제라'가 3일 오후 7시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에서 열렸다.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가슴에 하얀 나비 형상이 비춰지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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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청산, 역사 정의 실현'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한 시민이 태극기를 든 채 이날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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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우리가 다 기억하고 있제라!"

높이 6m의 소녀상이 세워진 '5월 성지'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3일 오후 7시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에서 열린 시민문화제 '할매, 우리가 다 기억하고 있제라'에 참석한 시민들은 "일본군 '위안부' 굴욕 합의의 전면 무효화를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 지역 예술인들이 주도한 이날 문화제에선 설치미술 작가 이성웅씨가 만든 높이 6m의 소녀상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공기를 채워넣은 형태의 소녀상 제작을 준비한 이씨는 자신의 기획을 주변 예술가들과 공유했다. 이후 이씨의 생각에 공감한 이들이 머리를 맞댔고 이번 문화제까지 준비하게 됐다. 또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도 이날 문화제를 위해 힘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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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여대 무용과의 박선욱 돋움무용단이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앞에서 '아리랑 변주곡'에 맞춰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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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이날 문화제 직전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해 12월 28일, 할머니들의 의견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문이 나올 때부터 화가 치솟았다"며 "예술가로서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 제가 해오던 설치미술로 많은 사람들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욕해도 되나?"라는 반문으로 분노의 마음을 표현한 이씨는 "바쁜 삶을 핑계로 큰 관심을 갖지 못했는데 약 한 달 동안 소녀상을 제작하다 보니 할머니들의 문제가 내 일처럼 느껴지더라"라며 "많은 분이 이 큰 소녀상을 보고 할머니들의 고통을 계속 기억해준다면 앞으로 이런 일은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번 박 대통령에 이어, 이번 박대통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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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옆으로,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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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악그룹 '얼쑤'가 높이 6m의 소녀상이 놓인 무대 위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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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문화제를 준비한 예술인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무대에 올라 시민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사회를 맡은 연극인 오성완씨, 가수 김원중씨, 밴드 조아브로와 프롤로그, 타악그룹 얼쑤, 바리톤 이호민씨, 박선욱 돋움무용단 모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들의 재능을 내놓았다. 이날 모인 200여 명의 시민들은 '한일 합의 전면 무효', '위안부의 눈물, 거래 대상이 아닙니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예술인들의 공연이 이어질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사회자 오성완씨는 "거의 30년 만에 사회를 봐야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잠 한 숨을 못잤다"며 "지옥같은 세월을 지나 먼 길을 돌아온 소녀들이 피묻은 치마를 감추고 방황할 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제라도 내 마음 한 편의 조그마한 죄스러운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던지고 오늘 많은 분과 그 뜻을 함께하고 싶다"며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2016년 2월 3일 밤 9시 이후에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위안부라는 말을 검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을 대표해 외국과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정부가 당사자 할머니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자기 편의에 따라 협상을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해를 구하려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 70년 넘는 아픈 역사를 100억 원으로 치부하고 잊어버리려는 자세를 묵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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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김원중씨가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앞에서 자작곡 '꽃을 심으리 그대 가슴에'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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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제에 참석한 한 시민이 '위안부의 눈물, 거래대상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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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문화제에선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공연이 이어졌다. '바위섬'으로 유명한 가수 김원중씨는 자작곡 '꽃을 심으리 그대 가슴에'를 부른 뒤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좋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박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과의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았더니(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또 다른 박 대통령(박근혜 대통령) 때 이런 일이 생겼다. 이 추운 겨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러분과, 이 자리를 준비한 예술인들 모두 대단하다. 정치인들보다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소녀상 앞 가득 메운 촛불 "정부 정신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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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여대 무용과의 박선욱 돋움무용단이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앞에서 '아리랑 변주곡'에 맞춰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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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그룹 '희희락락'이 무대 위에 설치된 높이 6m의 소녀상 앞에서 '홀로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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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프롤로그는 직접 만든 노래 '소녀'를 부르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표현했다.

맨발의 소녀의 그림자 뒤에서 저들은 무엇을 하는가/ 꼬옥 움켜쥔 두 주먹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하얀 나비의 피눈물을 누가 씻어주나/ 찢기고 찢겨진 치마 위에 피눈물 어찌할까/ 잊고 또 잊고 잊으려해도 잊을 수가 없네/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려 해도 지울 수가 없네/ - 프롤로그 '소녀' 중

노래를 마친 프롤로그의 포컬 최성식씨는 "이 곡을 만들기 위해 하루 꼬박 날을 세우며 많은 자료를 읽었고, 정말 많이 울었다"며 "소녀상에 있는 작은새, 그림자, 하얀 나비, 빈 의자의 의미를 알게 됐고, 그 의미를 가사에 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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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난 후, 시민들은 무대에 올라 소녀상에 직접 '헌화(獻火, 촛불을 바침)'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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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후, 시민들은 무대에 올라 소녀상에 직접 '헌화(獻火, 촛불을 바침)'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소녀상 앞의 빈 의자와 바닥은 시민들이 놓고 간 촛불로 가득찼다. 

문화제에 참석한 주아무개(여, 43)씨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들끓던 여론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사그라지고 말았다"며 "오늘 문화제를 통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게 됐고, 하루 빨리 할머니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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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난 후, 시민들이 놓고 간 촛불이 소녀상 앞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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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핵공방 3라운드의 전말과 해법

미국은 북핵보다 평화를 더 두려워한다<기고> 북미 핵공방 3라운드의 전말과 해법 - 장대현
장대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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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03  16: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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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당초 <통일뉴스> 2월 3일자 칼럼으로 쓰여졌지만 분량과 내용이 많아 요지는 칼럼으로 올린 뒤 전문을 다시 기고문 형식으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장대현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불안은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확장된다

   
▲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존 케리 미국 국무부장관이 동북아 순방에 나섰지만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차는 1주일, 2차는 2주일, 3차는 3주일, 4차는 4주일을 넘기고 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말이다. 1,2,3차까지는 “별거 아니다” 서둘러 덮더니 이번에는 4주일이 넘도록 다른 뉴스로 넘어가질 못한다. 수구언론 말이다.

모두 왜 이럴까? 4차의 폭발력이 1차보다 4배 증가한,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100배에서 1000배, 아니 그 이상도 커질 수 있는 까닭이다. 수소폭탄이 아니라고? 미 의회조사국의 보고서(1월 7일), 케리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기자회견 발언(1월 28일), 미 정부관리를 인용한 CNN(1월 28일)보도 등 논쟁은 이미 종결됐다. 수구언론의 진심어린 걱정은 거기서 유래한다.

그들은 먼저 불안하다. <언제든지 우리를 일격에 절멸시킬 수 있는 절대무기를 가진 북한의 '결정적 한 방' 앞에 철저히 무력한 우리(조선일보 2016년 1월 8일)> <결국 북한 핵개발의 전략적 최종 목표는 SLBM에 소형화한 수폭을 장착해 1만 km 이상 날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는 것이다. 북한에 과연 그런 날이 올까? 20여 년간 우리는 이 질문을 하면서 매번 ‘그런 날’을 맞고 있다.(동아일보 2016년 1월 8일)>

불안은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확장된다. <미국은 북핵을 없애고 싶어 하지만 손에 흙 묻히면서까지 나설 마음이 없다. 중국이 시늉만 한줄 알면서도 “북한을 손봐달라”고 칭얼대는 게 전부다.(중앙일보 2016년 1월 18일)> <미국은 한국을 '핵우산'으로 보호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 핵무기의 버튼이 미국의 손안에 있는 한...한국의 안전은 국지적이고 2차적일 수밖에 없다.(조선일보 2016년 1월 19일)>

수구언론이 미국에 대한 불신감을 이처럼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며 공개적으로 표출한 적은 1945년 9월 미군정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북핵이 다소 불안해도 미국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더 불안하다는 게 1,2,3차까지 수구언론의 자세였다면 이제 그것이 크게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만큼 이른바 북핵 문제는 시급하고 심각하다. 답은 있을까?

북미 핵공방 3라운드, 그 시작과 끝
 

   
▲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를 위한 국제적 대화틀로 자리를 굳혔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사진은 2007년 2.13합의 직후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문제풀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면서 어디서, 왜 틀렸는지 찾아내는 것이 오답을 정답으로 고치는 출발이다. 그럼 이른바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25년 여 공방 속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확인할 것 한 가지. <그간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핵 개발이 중단됐었다.(중앙일보 2016년 1월 8일)> 그렇다. 북핵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정지 가능한 보통기관차였다.

북핵 공방을 간추리면 1) 북의 제1차 선비핵화 2) 북의 제2차 선비핵화 3) 북의 선비핵화 거부와 미국의 협상 거부 등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 즉, 북의 제1차 선비핵화는 1994년 11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무려 8년 동안 지속된다. 북이 흑연감속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1992년 이전에 추출한 핵물질(과거 핵)과 1994년에 인출한 폐연료봉(현재 핵) 등 핵시설과 물질을 동결, 폐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2,000MW의 경수로, 연간 50만 톤의 중유,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제공하기로 한 제네바합의(1994년 10월)에 따라 북은 1994년 11월 핵 활동 동결을 선언하고 이어 NPT에 복귀한다. 완벽한 선비핵화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경수로는 무소식(2000년 2월 착공)이었고, 관계정상화 협상은 거부되었다.

1998년 8월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 미국을 다시 협상장으로 이끌어내면서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뮈니케가 합의된다. 북이 제네바합의를 준수(즉, 북의 선비핵화)하고 또한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대가로 미국은 경수로 약속을 이행하고 적대관계 종식과 평화보장체계 등 관계정상화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 유예가 추가된 제2의 제네바합의다.

이렇게 해서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선비핵화를 유지하는 외교적 성과를 챙긴다. 그렇다면 북은 무엇을 얻었나? 클린턴의 뒤를 이은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초 “이라크와 이란과 북은 악의 축이다” 즉, 북을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한다. ‘선비핵화’ 했더니 ‘후전쟁위협’인 거다.

<켈리 특사 일행은...10월 2일 서울에 왔다...그는(켈리) 북한의 고농축우라늄계획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으며, 이를 폐기하라고 통보하기 위해 평양에 간다...‘협상’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러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드디어 판을 깨려 하는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피스메이커. 임동원 지음. 511-513쪽)>

그랬다. 2002년 10월 3일 평양을 방문한 미 국무부 켈리 대북특사 일행은 북을 자극하여 “우라늄보다 더한 것도 만들 수 있다”는 발언을 듣는데 성공(?)한다. “합의를 먼저 위반한 것은 북”이라며 미국은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제네바합의를 파기한다.

이에 북은 2002년 12월 핵시설 봉인을 풀고 감시 카메라를 제거하는 등 핵 활동 재개에 돌입하고 2003년 1월 NPT를 또다시 탈퇴한다. 그로부터 2년을 질주한 북은 결국 2005년 2월 핵무기보유를 선언한다. 이 동력에 이끌린 북미의 새로운 합의가 바로 2005년 9월의 6자회담 9.19공동성명이다.

6자회담 참가국이 모두 같이 약속하는 형식의 이 합의에서 북과 미국은 각자의 핵심 요구사항을 1조와 2조로 나누어 배열한다. 1조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의 “북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고 NPT와 IAEA에 복귀한다” 2조 <관계 정상화>의 “북과 미국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가 바로 그것이다. 3조는 <경제협력과 에너지 지원>이다.

여기까지는 제네바 합의와 대동소이하다. “두 번 속으면 내 잘못”이라는 말을 떠올렸을까? 북은 안전장치가 필요했을 게다. 9.19공동성명은 4조에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한다”는 것, 5조에서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단계적 방식으로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 것 등이 포함된다.

안전장치는 세 가지다. 첫째 6자회담 참가국이 6자회담의 목표로 합의한 것은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점이다. “북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비핵화”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고 하듯 북도 “미국의 핵을 다리에 묶고 살 수는 없다”는 거다. 한반도 남쪽의 핵은 1990년대 초반에 모두 철수했다? 미국의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핵폭격기 등이 무시로 드나들며 수시로 전쟁연습을 하는데도?

둘째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협상을 한다.”는 약속이다. 여기서 직접 관련 당사국이란 한국전쟁의 당사자인 남, 북, 미국, 중국 등을 말한다. 이 4자가 한국전쟁의 종식을 선언해야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이 시작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도 가능해진다. 셋째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즉 ‘먹튀’는 안 된다는 거다.

‘말 대 말’의 차원에서 9.19공동성명은 우리를 설레게 했다. 자, 그럼 ‘행동 대 행동’을 보자. 9월 20일 미국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 예금계좌를 동결한다. <“한 손으로 악수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상대방의 뺨을 때리는 형국”을 연출해놓고도 BDA제재와 6자회담은 별개의 건이라고 주장하는 미국도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칼날 위의 평화. 이종석 지음. 344쪽) <북한 계좌 2.200-2.500만 달러를 2005년 9월 동결한 것은 북한 경제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유일한 효과는 후속협상을 18개월 동안 궤도 이탈 시켰다는 점이다.(크리스토퍼 힐 회고록. 313쪽)> 이로써 북의 핵 활동 제동장치 해제 기간은 하염없이 늘어났고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이 터진다.

협상욕구에 다시 불이 붙은 미국은 한사코 거부하던 북미 양자협상에 응하는 등 적극성을 발휘했으며 그 결과 2007년 2월 2.13합의가 나온다.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라는 이름의 그 합의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하여 단계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상호 병렬적으로 취한다”고 명시한다.

북은 “재처리시설을 포함, 영변의 핵시설을 폐쇄, 봉인하고 IAEA 사찰단의 복귀를 초청”하며, 미국은 “북과의 전면적인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협상에 나서고, 북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과정을 개시하며, 북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하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가”고,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 북미 관계정상화, 북일 관계정상화, 경제 및 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등 다섯 개의 실무그룹을 설치”하고, 참가국들은 또한 “중유 5만 톤 상당의 긴급 에너지 지원을”한다는 등이다.

6월 25일 미국이 BDA 북 동결 자금을 풀고, 7월 15일 중유 5만 톤이 도착하자 북은 그 날부터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한다. 이는 그 해 10월 3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 즉, 10.3합의로 이어진다.

간추리면 이렇다. 1조(한반도 비핵화)는 “북은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신고한다”. 2조(관련국간 관계정상화)는 “미국은 북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키며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 기초하여 북의 조치들과 병렬적으로 북에 대한 공약을 완수할 것이다”. 3조(경제 에너지 지원)는 “중유 100만 톤 상당을 제공하며, 구체적인 것은 실무그룹 논의에서 결정한다" 등이다. 이것이 ‘말 대 말’이다.

그럼 ‘행동 대 행동’은? <싱가포르에서 회동한 결과 성김과 헤이늘의 북한 방문이 허용되었다...두 사람은...1만 8천 쪽 짜리 자료를 가지고 왔다. 영변 시설 가동에 대한 자료인데 19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양이었다...우라늄 흔적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며 일축됐다.(크리스토퍼 힐 회고록. 362-363쪽)> 2008년 5월 8일의 일이다.

이어서 북은 6월 26일 핵 시설과 물질에 대한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한다. 그리고 <6월 27일...북한은 영변의 냉각탑을 폭파함으로써 선언 내용을 이행했다...CNN을 포함한 전세계 텔레비전 카메라가 이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했다. 부시 대통령은 오벌 오피스에서 현장을 지켜보면서 참모들에게 이렇게 얘기 했다. “저것이야말로 검증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네요.”(같은 책 367쪽)>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이 증언하는 것처럼 북은 9.19공동성명 2단계 조치 즉, 핵 시설 불능화, 핵 프로그램 신고를 모두 이행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2단계 조치가 부여한 의무사항 즉,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 교역법 적용대상 삭제, 중유 95만 톤 제공,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 논의 진전 등을 이행했나?

아직 한 게 없다. 그렇다. 동시행동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1단계에서 핵 활동을 동결하고 2단계에서 핵 시설을 불능화하는 등 9.19공동성명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과정은 명백한 북의 선비핵화였다. 또 다시 어음을 끊어주고 현찰을 받은 미국, 이번에는 제대로 결재를 할까?

영변 냉각탑을 폭파한 지 두 달 후인 8월 26일 북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불이행은 10.3 합의 위반이므로 핵시설 불능화를 중단한다”. 9월 19일에는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중” 등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미국은 10월 12일 마침내 북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11월 4일 대선 이후 미국은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왔다. 2008년 12월 12일 조선일보 기사다. <부시(Bush) 행정부에서의 마지막 북핵 6자회담은 끝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곧 지난 3년 반 동안 미국의 협상을 이끌었던 크리스토퍼 힐(Hill) 국무부 차관보의 ‘북핵 외교 실험’이 결국 실패로 막을 내리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핵심 쟁점인 검증의정서 부분에서 북한이 전날의 완강한 입장을 바꾸지 않아 실질적인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힐 차관보는 의장성명이 나오기도 전에 회담장을 떠났다.> 핵심쟁점은 북의 핵신고서에 대한 검증의정서 채택이며, 여기서 북이 타협을 거부해 6자회담이 결렬되었다는 논리다. 정말일까?

답안지는 2008년 7월 12일의 <제6차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언론 발표문>이다. 동 합의문서는 서문에서 “참가국들은 제2단계 조치의 전면적, 균형적 이행에 대해 중요한 합의를 이루었다”면서 1조 <검증체제>에서 “검증조치는 시설 방문, 문서 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및 6자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기타조치를 포함한다”. 2조 <감시체제>에서 “감시체제의 임무는 비확산 및 북에 대한 경제, 에너지 지원을 포함한 각자의 공약을 이행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3조 <시간계획>에서 “모든 참가국들은 2008년 10월말까지 중유 및 비중유 지원을 완료한다”. 6조 <제3단계 조치>에서 “6자회담을 계속 진전시켜 나가고, 동북아시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한다” 등으로 구성된다.

미국이 주장하는 “북의 핵신고서에 대한 검증의정서 채택”은 제1조의 검증조치에는 없는 것이므로 “6자가 만장일치로 합의”해야만 핵심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북은 그것이 2단계 조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확인했다. 복잡하고 지루하더라도 조금 더 보자.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베이징 회담이 끝나고 지난 13일 “북핵 검증 체제가 없으면 앞으로 대북 에너지 지원을 위한 중유선적은 더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을 제외하고 6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나머지 5개국이 대북중유제공 중단을 양해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음날 러시아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외무차관은 "러시아는 6자 비핵화 합의에 따라 북한에 대한 연료 공급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러시아는 결코 대북 중유제공 중단에 동의한 적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16일에는 중국이 러시아를 거들고 나서 미국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번 수석대표 회담에서 채택된 의장성명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면서 “성명에는 참가국들이 이번 회담에서 10.3 합의에 기술된 대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와 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 제공을 병렬적으로 이행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이 분명하게 제시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중유 지원은 핵시설 불능화의 대가로 북한에 제공하는 것으로 검증의정서 채택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러시아 측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다.(연합뉴스. 2008년 12월 18일)>

미국이 검증의정서를 들고 나온 것은 명백한 돌출행동, 합의위반, 9.19공동성명 파괴행위였던 거다. 왜 그랬을까?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클린턴 대통령 말기의 대북외교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보면 앞뒤가 맞기도 하다. 정말 그럴까? 여기 힌트가 하나 있다.

<성김과 헤이늘은 검증프로토콜을 마련하려고 북측과 진지한 협의를 지속했다. 북한 측 인사 중 한 명은...우리가 뭔가에 합의하고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프로세스 진행을 약속했다. 만약 우리가 북한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이 같은 협의를 해왔다면, 아마도 작업을 수행하기위해 수용할 만한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협의에서 그것은 내가 워싱턴에 돌아가 누구를 납득시킬만한 제안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즉시 거부했다.(크리스토퍼 힐 회고록. 368쪽)>

암호전문 같은 이 조심스런 외교관의 글에서 핵심은 “북한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다면 수용할만한 것이었는데 북한이어서 거부했다”는 문장이다. 즉,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기 때문에 안되는 게 아니라 북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다. 맞다. 임기가 끝나서 못하는 것이라면 임기가 넉넉한 다음 대통령은 협상에 나서는 게 당연하다.

<9일 시작되는 키 리졸브(KEY RESOLVE) 및 독수리 연습은...이지스함은 종전의 5척 안팎보다 2척 가량이 많은 7척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이번 연습 기간이 예년에 비해 2배가량 늘었는데...(2009년 3월 9일. 조선일보)>

<AP통신에 따르면 클린턴 (국무)장관은 자카르타발 서울행 비행기 기내에서...오바마 행정부가...“평양에서 독재체제가 변화할 가능성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2009년 2월 20일. 연합뉴스)>

<클린턴 장관은...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회동에서...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북미관계 정상화도 요원하다...(2009년 3월 4일. 중앙시사매거진 뉴스위크)>

핵 활동을 동결한 채 북미관계 정상화, 4자 종전선언,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등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북에게 미국은 그 반대의 것을 안겨줬다. 4월 5일의 북 인공위성 발사와 5월 25일의 2차 핵실험이 “너무 빨랐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북의 입장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2009년 1월 20일)까지 핵 동결 18개월을 ‘참은’ 거고, 인공위성 발사까지 21개월을 ‘기다린’ 거다.

자, 이제 지루한 독자들을 위하여 속히 결론으로 가보자. 1998년 8월 1차 인공위성 발사, 2005년 2월의 핵 보유 선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등 북의 강력한 군사력 시위는 어김없이 미국의 협상동기를 자극하였다. 따라서 북의 2차 핵실험 역시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낼 것이다? 하여 중단된 6자회담이 다시 열릴 것이다?

일단 대화가 시작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들어 첫 북-미 대화에 나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2월) 6일 한국을 거쳐 8일 방북한다...이번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및 북핵 협상의 재개 여부를 결정짓는 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2009년 12월 4일. 동아일보)>

협상을 재개하려면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진짜로 동시 논의하자는 북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교토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보즈워스 특사에게 영구적인 평화협정 체결이 우선순위이고 북미관계 정상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반면에 그동안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이 재개되면, 4자(미.중.남북)간 한반도 평화포럼을 개최하여 9.19 합의에 따라 한반도 평화조약(peace treaty) 체결을 논의할 것으로 보도했다.(2010년 1월 28일 통일뉴스)>

더 이상 선비핵화가 먹히지 않고, 더 이상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미국은 단호히 협상을 거부한다. <당시 회담에서 보즈워스 특사는...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9·19공동성명 이행 등을 촉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및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의 선행을 주장해 대화가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국이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대북 접근에 주의를 기울였고...( 2013년 6월 16일. 연합뉴스)>

이로써 북핵 공방 제3시기, 즉 “북의 선비핵화 거부와 미국의 협상 거부”시기가 도래한 거다. 클린턴의 미국이나 부시의 미국에게 북핵 저지가 국익이듯 오바마에게도 동일하다. 그럼에도 그가 임기 중 북의 수소폭탄 실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가 그것보다 더욱 두렵기 때문이다.

그게 왜 그토록 두려운 걸까? 간단한 사례 하나.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면 먼저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 종전선언을 하면 휴전협정 당사자 중 하나인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된다. 그러면 미국이 유엔군사령부의 모자를 쓰고 한국에 미치는 군사적 기득권의 상당부분이 재설정되어야 한다. 또한 유엔사후방기지라는 명목으로 미국이 거느린 일본의 미군기지(본토4개, 오키나와 3개)도 존립근거를 잃게 된다. 한국에 대한 기득권 약화는 물론 동북아 패권유지를 위한 전략적 이익이 흔들리는 거다.

답은 아주 가까이 있다

   
▲ 2005년 9.19공동성명 채택 당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은 최근 자서전을 통해 북핵 협상의 일단을 밝혔다. 사진은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제 4차 2단계 6자회담 당시 숙소에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는 힐 수석.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의 수소폭탄 실험 직후 미국 국무장관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전화를 건 다음 기자회견을 자청 “중국의 대북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미국이 시험을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답을 쓰기 싫기 때문에 “내 시험지가 아니다”버티는 거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2009년 1월) 13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적대관계를 그대로 두고 핵문제를 풀려면 모든 핵보유국들이 모여 앉아 동시에 핵군축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며 북미 간 관계정상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2009년 1월 13일. 통일뉴스)>

조엘 위트는 말한다. “2020년이 되면 북은 최대 100개의 핵무기를 갖게 된다”. 북도 말한다. “핵억제력의 규격화, 표준화 단계에 들어갔다” 전략적 인내가 전략적 혼수상태라면 누군가 흔들어 깨워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

<나는 두 사람(라이스 부시 2기 국무장관 내정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에게 말했다. “우리가 협상에 주저하는 자세를 한국 등에 보인 점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북한과 기꺼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북한과의 관계를 위해서가 아닙니다...좀더 중요하게는 한국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크리스토퍼 힐 회고록. 258쪽)>

<이제부터라도 외교다운 진짜 외교를 해야 한다. 그것은 북한 붕괴론의 환상에서 깨어나 북한의 구미를 당길 만한 카드를 갖고 평양과 워싱턴이 대타협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북한의 핵 포기와 맞바꾸는 ‘그랜드 바겐’을 추구하되 일단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고 협상을 하는 동안에는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2016년 1월 26일. 중앙일보)> 답은 아주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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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강 위력한 핵무기 철두철미 미국 겨냥”

 
 
“미국의 대북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패배”강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2/04 [03:13]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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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강위력한 핵무기가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연합뉴스는 지난 3일 조선 매체가 3일 핵무기 개발이 한국이 아닌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내부의 발언을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조선 사회과학원 리정철 사회정치학연구소 실장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에게 "조선의 혁명무력은 남조선군 같은 것들을 상대로 보지 않으며 우리의 강 위력한 핵 무력은 철두철미 미제의 핵전쟁 소동과 핵위협 공갈을 끝장내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강력한 전쟁억제력이다"라고 밝혔다.

 

사회과학원 리정철 사회정치학연구소 실장은 "현재의 상용무력만으로도 남조선군과 남조선 강점 미체 침략군을 단숨에 괴멸시킬 수 있는 우리 인민군대가 무엇 때문에 동족의 머리 위에 핵폭탄을 퍼 붓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일성종합대 리호 부교수도 "현 미국 행정부가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해놓은 것은 미국의 머리위에 떨어질 거대한 철추의 무게를 몇 배로 불쿠어(불려. 커지게)놓은 것"이라며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고 강조했다.

 

리호 부교수는 "미국의 장단에 춤을 추는 크고 작은 적대 세력들도 제재와 같은 맹목적인 추종으로 차례질(돌아갈) '이익'과 손해를 가늠해보아야 한다."며 현재 가시화하는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의 대북제재 움직임을 경계했다.

 

조선은 지난달 6일 수소탄 핵 시험을 실시한 이후 줄곧 핵시험이 미국에 맞선 '자위적 조치'라며 핵무기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정책변화를 통해 평화롭게 공존할 것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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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가 열리던 2000만년 전 바닷가에 핀 돌꽃

동해가 열리던 2000만년 전 바닷가에 핀 돌꽃

조홍섭 2016.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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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3-2> 경주 방사상 주상절리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희귀

 2㎞에 걸쳐 서거나 눕고 펼쳐져 있어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던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 화산활동 활발

 

 용암이 수직으로 분출하다 식어

 화도에서 수평방향으로 퍼져 

 

 물 고인 가운데 작은 연못 중심으로 부채꼴

 장작을 쌓아놓은 듯 누워있는 것도

 

 

j0-1.jpg» 경주 양남 주상절리대의 전경. 세계적으로 드문 방사상 주상절리이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주상절리는 제주 중문·대포 해안의 것이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 70곳 가까이 있다. 무등산 입석대·서석대,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협곡, 울릉도 국수바위 등 곳곳에 화산활동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주상절리는 매우 독특하다. 다른 주상절리가 절벽에 기둥 모양으로 서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양남 주상절리는 꽃이 핀 것처럼 한 점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펼쳐져 있다. 대체 어떻게 이런 형태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진 걸까.

 

 

 

j5.jpg» 양남 주상절리대는 군사시설이 지전돼 일반에 공개되자 관광객이 몰려들어 호텔, 카페 등이 들어섰고 주상절리를 상표로 한 빵도 만들어 판다. 사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지난달 13일 찾은 양남 주상절리 군은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 약 2㎞에 걸쳐 서거나 눕고 펼쳐져 있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책로인 파도소리 길을 따라 500m쯤 가면 방사상 주상절리가 나온다. 물이 고인 중앙의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짙은 색깔의 현무암 기둥이 부채꼴로 누워있다.
 
주상절리를 이루는 기둥의 지름은 평균 40㎝이며, 단면 형태는 5각형이 많다. 꽃 모양의 주상절리 말고도 장작을 쌓아놓은 듯 누워있는 주상절리도 눈에 띈다.

 

 

 

j1.jpg» 장작을 쌓듯이 누워있는 주상절리.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지표면에서 급속히 식을 때 생긴다. 용암이 수평으로 흐르다 식으면 용암이 맞닿은 공기와 지표면에서 식어 수직방향의 기둥이 형성된다. 흔히 보는 주상절리가 이렇다. 그러나 용암이 수직으로 분출하다 식으면 용암이 흐르던 화도에서 수평방향으로 퍼진 방사상 형태의 주상절리가 형성될 수 있다.

 

 

 

j2.jpg» 양남 주상절리의 생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은 마그마가 수직으로 솟다가 화구에서 식어 굳었다는 것이다. 오른쪽 원이 화구의 중심이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j6.jpg» 아래에서 본 방사상 주상절리. 정면의 원이 화구의 중심부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장윤득 경북대 지구시스템학부 교수는 “지하의 마그마는 지층이 불안정한 곳을 따라 수직방향으로 솟아오르기도 한다. 마그마가 위로 솟아오르던 통로의 마그마가 냉각되어 방사상 주상절리로 형성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생성 과정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김민석 박사(울산 경의고 교사)는 “용암이 호수처럼 고인 용암연에서도 이런 형태의 주상절리가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j0.jpg» 양남 주상절리는 동해가 열리고 일본이 떨어져 나가던 2000만년 전 지각변동 때 생겼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방사성 주상절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물지만 어떤 과정으로 이런 형태가 이뤄졌는지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정밀한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곳 주상절리를 이루는 현무암의 형성 연대로 직접 측정된 바 없다.
 
주상절리의 중심부를 굴착해 기반암이 나오면 용암연이고 그렇지 않으면 화구로 볼 수 있다. 이를 규명하려면 물리탐사 등 정밀조사가 필요하다.
 
양남 주상절리는 약 2000만년 전인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 때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가 확장돼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던 때로 화산활동이 활발했다.

 

 

 

j7.jpg» 지질공원은 보전과 교육, 그리고 지역주민의 경제 활성화가 주 목적이다. 양남 주상절리대는 지질명소로서 이미 보전과 관광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이곳은 애초 군부대 안이어서 알려지지 않다가 2009년 군부대가 이전돼 일반에 공개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한적하던 바닷가가 주상절리가 유명해지면서 산책로와 함께 카페, 호텔 등 편의시설이 들어섰고 주상절리를 상표로 한 빵까지 판매되고 있다. 
 
김정훈 경북도 지질공원 담당자는 “주민이 지질유산의 가치를 알 때 틀림없이 보전된다.”라며 “이 지역을 보전과 관광, 교육이 결합되는 곳으로 가꾸겠다.”라고 말했다. 

 

 

 

경주/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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