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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횡설수설

연맹의 핵심 활동가 한 동지가

정기대의원대회가 끝나면 그만두겠다고 했었다.

가뜩이나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판에

정책과 기획에 탁월한 역량을 가진 그 동지가 그만두면

연맹도 연맹이지만 내가 받는 타격이 워낙 클 것이기에,

가는 사람 잡지 말자고 하던 내 입장을 180도 바꾸어서

몇 달만이라도 같이 일하자고 사정도 하고

술이라도 한번 마시면서 얘기 좀 하자고 했더니

올해 들어 술도 끊었다고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

 

중집위 수련회와 공공연대 워크샵 모두 마치고

해양지부에 가서 과기노조 동지들과 함께 술이나 마시려 했는데

일 때문에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던 어제,

임원회의에서 골칫거리들을 다루고 나오니까

그 동지랑 술마시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무조건 달려갔지.

 

 



먼저 도착한 동지들이 복분자술을 마시고 있길래 몇 잔 들이키다가

이걸로는 취하지도 않겠으니 소주 마시자고 선동해서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소주와 안주로 배를 채웠고,

그 술보다 많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 동지와의 첫만남의 기억부터 시작해서

나를 출마하게 만든 몇 가지 계기를 만든 사건들을 회고하면서

그러고도 어떻게 내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갈 수 있느냐고 타박했고,

동지는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에이, 거짓말 마세요, 를 반복했다.

 

지난 번에 동지는 나에게

일이 너무 힘들어서 혈압도 올라가고 신경안정제까지 먹고 있다면서

자기한테 봐달라 하지 말고

사무처장(나)이 자기를 좀 봐달라고 간청했었다.

어지간하면 그러고 싶다, 하지만 연맹사정 잘 알지 않느냐,

파견, 채용 등등으로 인력을 늘여갈 테니

제발 몇달만 봐주라 사정도 하고 얼르기도 했는데,

별무소득이고, 애꿎은 소주잔만 잘도 비는구나.

 

그러다가 KTX막차(10:30) 놓치고, 무궁화호 막차(11:00)도 놓치고,

마지막 남은 고속버스(12:00)까지 모두 놓쳤다.

집에 전화를 했더니 아내는 택시를 타고라도 오라고 했고,

그래 그러마 하고 일단 강남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달렸다.

대전가는 택시 없냐고 했더니 어떤 기사가 반색을 하며

자기 고향이 옥천이니 자기 차로 가자고 해서 일단 타고 봤더니

고속도로에 일단 올라타고 흥정을 한다.

15만원이란다, 으악.

10만원 안될까요? 안돼요, 14만원 합시다, 악.

그러는데 집에서 또 전화가 왔고

전화기를 켠채로 요금 흥정을 계속했더니

이윽고 그냥 자고 오란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서 다시 터미널로 돌아갔다.

하필이면 오늘(28일) 모든 임원들이 각기 다른 행사로 일정이 빼곡하여

급기야 나까지 대구지하철노조 정기대의원대회(10:00)에 참가하기로 했으니,

서울서 잔다고 일이 해결되는게 아니다.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간다.

남대문 시장 근처를 지나다가 사우나 간판을 보고 내렸다.

요금 7천원에 목욕도 하고 잠도 두어 시간 잤다.

첫차(05:30)를 타고 집에 가니 오전 7시,

옷갈아 입고 이빨 닦고

대구로 가는 기차(08:17)를 타려고 7시 40분에 집을 나섰으니

48시간만에 집에 와서는 40분 머무른 셈이다.

 

동대구역에서 내려 지하철타고 거의 끝까지 와서는

물어물어 대구지하철노조를 찾아왔다.

작년 7월 21일에 파업을 시작해서

2005년 1월 28일 현재, 총파업투쟁 189일차, 현장투쟁 104일차 진행중이다.

한나라당 일색의 대구지역 반노조 정서에도 참 끈질기게 싸우는 노조,

우리 연맹의 추천으로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표창도 받았지.

 

투쟁이 해를 넘겨 반년 이상 계속되고 있으니 조합원들도 조금씩 지쳐

어서 빨리 끝나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인데,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참 의연하다.

연맹 위원장을 대신해서 한 말씀 하라는데,

오래동안 끈질기게 투쟁하는 곳에 오면 할말이 참 궁색하다.

싸우지 않는 자 어찌 해방의 의미를 알겠나, 노래가사만 생각난다.

그래도 몇 마디 했다.

힘내자고, 나도 열심히 하겠노라고.

사무처장 맡으니 연설같은 거 안해서 좋았는데...

 

회의는 계속 진행되고

참관하다가 노조 사무실로 와서 이러고 있다.

빨리 서울로 가려 했는데, 위원장이 점심은 먹고 가라고 붙잡아서,

뿌리치지 못했다.

 

참, 2월 18일은 대구지하철참사 2주기이다.

시민안전을 위해서 대구지하철노조는 오늘도 투쟁하고 있고,

그 날에는 추모행사를 벌일 것이라고 한다.

손님들이 왔다.

그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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