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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산의 추억?

어제 아침부터 오늘 새벽 2시까지

안산에서 연맹 중앙집행위원회(수련회-사업계획, 재정대책 등등),

새벽 4시까지 술마시기,

아침에 영등포로 달려가서

낮 1시까지 공공연대 회의(워크샵-사업평가, 계획 등등),

점심먹고는 모처럼 과기노조 동지들과 어울려 보려 했더니

어제 오늘 쌓인 일이 장난이 아니다, 곧장 사무실로 왔다.

 

잠시 짬을 내어

여러 게시판을 둘러보고 나니

내 게시판이 휑뎅그렁하다.

 

흔적이나 남기지.

마감을 한참 넘겨서

어제 새벽에 휘갈겨 써보낸

<네트워커> 원고가 편지함에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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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무색무취의 유기용제. 공업용 세척제와 타이어 접착제 등의 소재로 쓰이는 물질. 신체에 직접 노출될 경우 호흡기를 통해 독성이 침투하여 신경장애를 일으킬 수 있음. 독성이 강하여 인체에 흡수될 경우 신경·호흡기·소화기 및 각종 장기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유기용제를 제조·취급하는 사업장에서는 환풍기 같은 각종 안전시설 설치 및 보호구 착용 등이 의무화되어 있음.

 

태국 노동자 8명이 집단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 원인물질이라고 하는 노말헥산(n-Hexane)에 대해서 일반적인 사항을 간추려 읽었다. 노말헥산, normal Hexane, 노르말헥산, 그렇게 소리내어 읽어보니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 되살아난다. 식물을 추출해서 새로운 약리활성물질을 찾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나는 메탄올, 벤젠, 클로로포름, 헥산 따위의 용매들을 벗삼아 실험실에서 지냈다.

 

학원 실험실은 새내기 혹은 예비과학자들에게 24시간 편의점처럼 언제나 활짝 열린 공간이었다. 연이은 실험과 시험에 짓눌린 몸으로, 밤이면 그 곳에서 술도 마시고 잠도 잤다. 실험실 구석에 매트리스 침대를 깔고 누우면 이따금 옆 실험실에서 도망친 흰쥐들이 가슴팍에 올라타서 사람을 놀라게 했다. 거기에 넘치던 것들이 헥산과 같은 유기용매들이었다. 발암성이 높은 벤젠조차 환기장치를 갖추지 않은 곳에서 대충 쓰곤 했으니, 헥산쯤이야 참으로 만만한 물질이었다. 실험실 안전과 유기 용매의 독성에 대해서는 교과서적인 경각심만 있었을 뿐 실험실의 환경은 7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으니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는’ 대한민국 88년 올림픽의 영광이 무색하게, 꽃다운 열다섯 나이의 문송면은 수은중독으로 숨지지 않았겠나.

 

그 때 우리는 간혹 낄낄대며 농담처럼 얘기하곤 했다. 나중에 누군가 암에 걸려 죽으면 실험실에서 마신 용매들 때문이라고. 그 말이 씨가 되었을까, 나의 두 선배는 나중에 교수가 되어 실험실로 복귀했는데, 한 선배는 간 기능이 난데없이 크게 떨어졌고 또 다른 선배는 몇 년 전에 젊은 나이로 돌연 세상을 등졌다. 건강하고 쾌활했던 선배의 사인이 간암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련하지만 정겹고 열정적이었던 실험실의 추억을 뚫고, 클로로포름과 벤젠고리의 기억이 섬뜩한 죽음의 무게로 나를 덮쳤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발성 신경장애라는 낯선 딱지를 달고 온 노말헥산을 만난다. 나에게 헥산이라는 이름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앉은뱅이로 만든 원인물질이기에 앞서서,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이 땅의 과학기술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안전불감증의 선연한 징표이다. 대덕연구단지만 하더라도 최근 2년 사이에 잇따른 폭발사고로 인하여 젊은 학생과 연구원들이 죽거나 혹은 크게 다쳤지만, 아직은 기억할만한 하나의 사건일 뿐, 사회적으로 미연에 방지해야할 재난은 아닌 듯하니 말이다.

(200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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