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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미디어충청에 써보낸 글.
77일간의 저항을 기억하라
[서평] '77일,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 사진 기록'
80년 5월 광주는 그 시대를 살았으나 그 지역을 비켜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이 광주에서 싸우거나 숨져간 사람들에게 빚진 것이라’ 느끼게 했다. 사람들은 계엄령 아래 철저히 차단된 보도 통제를 뚫고 전해져온 국가권력의 야만적 폭력에 전율했고, 그것에 온몸으로 맞선 투쟁의 자취들을 접하면서 통곡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를 앙다물고 변혁의 꿈을 갈무리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 부채의식이 80년대 이후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우리 사회 정치적 민주주의의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있어난 일은 29년 전에 광주에서 일어난 일과 어떻게 다를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일만 해오던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공장 밖으로 내몰고는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무참하게 폭력을 가했으며 급기야 그 과정에서 6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총을 쏘지는 않았지만 고무총탄을 쏘았고 유독성 최루액, 치명적인 테이져건과 해머, 경찰 특공대의 집단 린치는 사실상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아비규환의 참상을 만들었다. 공장 밖에서는 자본이 동원한 구사대와 용역들이 물과 음식물과 전기와 의약품을 차단했고, 심지어 쇠파이프로 노동자의 가족들과 연대온 사람들을 서슴없이 공격했다. 정리해고라는 사망선고를 받은 노동자들은 오로지 맨몸으로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잔인한 폭력에 맞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77일간, 그들은 고립무원의 섬에 갇혀서 극단의 상황으로 내몰렸지만 분연히 저항했다. 자본과 권력은 집요하게 '산자'와 '죽은 자'를 나누고, '파업참가자'와 '파업불참자'를 분열시켰지만, 노동자들은 머리를 맞대며 토론하고 스스로 갈 길을 차분하게 결정해 나갔다. 오로지 함께 살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지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연하고 의로운 저항 앞에서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본의 광기는 물 한 모금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다쳐도 치료받지 못하게 했으며 잠조차 잘 수 없게끔 만들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생체실험실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바깥의 '노동자'와 '인간'들은 무엇을 했던가. 지금 여기가 2009년 대한민국인가 의아했을 정도로 야만적인 폭력이 판치는데 그것을 제압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전국을 누비며 눈물로 호소했고 연대하러 온 사람들은 이어졌지만 공장을 둘러싼 바리케이트와 철조망과 폭력집단의 벽을 넘지 못했다. 모두 발만 동동 굴렀다. 빤히 보이는 공장 안에서 가공할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분노가 모자랐던 것일까, 단결력이 약했던 것일까, 바깥 사람들은 참으로 무기력했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으로 갈라놓고도 정부는 그것을 법치라고 했다. 법치를 내세운 폭력 앞에서 공장을 아꼈고 일을 사랑했던 노동자들은 77일만에 저항을 일단 멈췄다.
그것은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77일,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 사진 기록>은 이 싸움이 얼마나 정당한 것이며 이후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차분하게 기록하여 보여주고 있다. 77일간 자신들이 선택한 길을 함께 걸었던 진정한 동지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고립된 공장 안에서 희망을 일구는 노동자들의 공동체가 거기에 담겨 있다. 짐승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공존하는 순간들이 거기에 들어 있다. "당신은 정말 예뻐요" 하는 수줍은 고백과 "여기 인간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절규가 절절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사진모음은 결코 감정에 의탁하지 않고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해고는 곧 살인이며 그것에 저항하는 투쟁은 필연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희망의 기록이며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고 의지이다. 그래서 사진들은 대체로 밝고 씩씩하다.
2009년 10월, 노사간의 합의서를 무시하고 쌍용자동차의 자본은 여전히 투쟁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을 공장 밖에서 차단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사회적으로는 보이지 않은 폭력이 77일의 투쟁 이후 또 다른 77일이 더하도록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2009년 여름에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갇혔던 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부채의식이 이윽고 천박하고 야만적인 한국의 자본주의를 아래로부터 갈아엎는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이 사진기록을 통해서 내가 다시금 반추하는 역사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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