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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기술적 판단으로는 발전소 가동을 즉각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대외적인 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정부는 현장의 과학기술자들의 소견을 무시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봐라, 과학기술자들의 말을 듣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더란 말이다! 그 후에도 기술적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이 핵발전소의 안전관리를 대신하기가 일쑤였다. 핵발전소에는 대개 과학기술부의 관료와 핵 규제기관의 연구원들이 조를 이루어 체류하고 있고, 주요한 사항에 대한 판단과 보고는 관료의 몫이다.


기억이 어렴풋한데, 아마 97년 여름쯤이었던 듯, 경기도 일대에 폭우가 쏟아졌다. 비로 인한 피해가 상당했는데, 그해엔 특히 전방부대의 막사들이 산사태 등으로 인해 대거 매몰되고 젊은 장병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한 연구기관에서 정부의 의뢰를 받아 그 원인을 조사했고 곧 보고서까지 작성되었다. 그러나 보고서는 끝내 공개되지 못했다. 추측하건대, 막사의 자리를 잡고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재해에 대비한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판단들이 일방적으로 무시된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국방관료들의 농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엇비슷한 사례들이 많은데, 이런 사건들은 대체로 노동조합을 통해서 뒤늦게라도 밝혀지고 문제가 제기된다. 내부의 양심선언이나 고발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구조화된 사건에서 한 개인의 양심과 소신에 찬 행동이란 참 무력하기 짝이 없다. 직장에서 내쫓기거나 왕따를 당해서 외톨이가 되거나! 간혹 이런 얘기를 하면 과학기술자 사회도 그러냐고 반문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과학기술자 집단 또한 사회, 정치적인 맥락에서 구성되고 유지된다는 점에서 이 사회의 한 축소판일 뿐이다. 금강산 댐 건설 목적이 서울을 수몰시키는 것이니 성금을 모아 평화의 댐을 쌓아야 한다고 국민을 우롱했던 인간들 중에는 교수며 과학기술자들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구조적인 모순과 비리에 저항하고, 과학기술은 자본의 이익창출의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을 골고루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믿으며, 과학기술자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노동조합으로 뭉친 지 벌써 19년이 다 되었다.


그 때 그 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자본의 이해에 놀아나는 갖가지 프로젝트 더미에 짓눌려 신음하는 자신의 삶을 이따금 돌아보는지, 연구현장을 채우고 있는 비정규직 과학기술자들을 정규직 관리자의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은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 기억이 까마득하게 옛일은 아닌지, 과거 한 때 자신을 분노하게 했던 관료적 통제와 억압이 지금 자신에게 가해진다면 정면으로 맞장뜰 자신이 있는지! 다시 6월 항쟁의 기억과 마주하며, 나 자신에게 또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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