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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옆 사람과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볼 때가 많다. 꼴불견같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이어폰을 통해 귓속에 음악이 울리고 있으므로 그 소리보다 더 크게 말해야 얘기를 알아들을 수 있다. 생물시간에 배웠던 것을 찾아보면, 이것이 베버의 법칙이다. 같은 종류의 두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최소 차이는 자극의 강도에 비례하고, 처음 자극과 나중 자극의 크기 사이에 일정한 값 이상의 차이가 있어야만 그 자극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베버의 상수 K는 두 자극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최소 차이를 처음 자극의 세기로 나눈 값이다. 베버의 상수가 작을수록 그 감각은 예민하다. 예컨대, 시각 K = 1/100, 촉각 K = 1/200, 청각 K=1/7, 미각 K=1/6인데, 촉각이 가장 예민하고 미각이 가장 둔한 것이다. 청각의 베버상수는 1/7이므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은 이어폰 음량보다 최소한 1/7만큼 더 큰 소리가 나야 알아들을 수 있다. 시각의 베버 상수는 1/100이므로, 형광등의 밝기가 100룩스라면 1룩스 이상의 밝기가 더하거나 약해져야 그 밝기 변화를 감지한다.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500일이 넘게 투쟁을 벌이고 있는 금강화섬 조합원들에게 공장을 인수한 자들이 19억 3천만원이라는 손배가압류를 청구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517일 장기투쟁이 무색하고, 배달호와 김주익 동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손배가압류의 망령이 다시금 섬뜩하다. 하지만 500일은 아니더라도 수백일은 우습게 뛰어넘는 투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19억 3천만원이 적게 보일만큼 수십억원대의 손배가압류 결정문들이 즐비한 현실에서, 나는 베버의 법칙을 떠올려 본다.
70년대에는 한 노동자의 분신만으로 온 나라가 경악하고 학생과 지식인들이 우르르 청계천으로 몰려가 싸웠다. 지금 각지에서 수백 일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은 절절한 연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끼리끼리의 품앗이 투쟁도 버거운 듯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정규직 철폐와 산별노조 건설을 외치고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대공장과 하청공장, 사무직과 제조업,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이 따위 수식어들 모두 떼어내고, 그야말로 노동자 그 이름으로 하나되는, 연대 투쟁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이를테면 노동자투쟁의 베버 상수는 1/200, 1/100은 고사하고 턱없이 높아진 듯하다.
감각의 순응 현상을 아는가? 일정한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감각기관의 역치가 커져 더 큰 자극을 주기 전에는 자극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구리를 찬물에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이윽고 죽는다. 우리 노동자들이 베버의 법칙쯤은 무색하게 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노조 간부들이 평소 교육하고 연설한 내용만 앞장서서 그대로 실천하면 베버의 상수가 0으로 근접하지 않을까.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200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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