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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있었던 일들은 아니지만, 기왕에 메모해 두었던 거,
조금 수정해서 남긴다. 시간나면 더 추가할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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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아침.
늦지 않았어? 아내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앗, 몇시지? 습관적으로 옆에 놓인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6:42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동공 속으로 빨려들어왔다. 아아아, 큰일났다. 내가 타야 하는 KTX는 대전역에서 7시 16분에 출발한다. 앞뒤로 KTX야 또 있지만, 밀양역에 서는 KTX는 드물었고, 10시까지 삼랑진양수발전소를 가려면 이 기차를 놓쳐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감기기운이 있어서 몸을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너무 곤히 잠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승용차를 타고 쉬지 않고 달리면야 시간에 댈수는 있겠지만 내 몸의 상태는 그렇게 무모하게 운전을 할 정도가 아니었다. 상황이 파악되자마자 화장실로 뛰어들어 5분만에 머리를 감아치우고 치약은 그냥 집어서 가방에 넣었다. 옷을 갈아입는 시간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고, 6시 55분이 되기 전에 나는 승용차의 시동을 걸고 있었다.
대전역으로 내달렸다. 다음 신호등에 주의를 기울이며 신호등과 신호등 사이에서는 최대한의 속도를 냈다. 대전역까지의 기록이 12분이었던가, 그걸 갱신했나 모르겠다, 암튼 7시 10분에 나는 대전역 매표소에 있었다. 몸이 힘들때는 굶어서는 안되지. 상행선 승차장에는 김밥을 파는 곳이 있다. 삼각김밥과 녹차 한병을 사들고 다시 육교를 건너서 하행선으로 뛰어내려가니 KTX가 그리로 달려들고 있었다.
김밥에 녹차를 마시고 나서 그 와중에 가방에 챙겨온 쌍화탕 한병을 마시고 나서야 차창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어, 눈왔네. 차창 밖으로 멀리 내다보이는 산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그제서야 우리 아파트며 하상도로가 비에 촉촉하게 젖어있던 것이 생각났다. 비가 오고 또 눈이 저렇게 왔구나. 그리고는 다시 아득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밀양역에 선다는 안내방송에 다시 눈을 떴다. 고개를 들어 차창밖을 내다 보았다. 낯선 풍경이다. 그래, 내려야지. 휘청거리며 내렸다. 밀양역에서 잠깐 쉬었다가 삼랑진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면 된다. 육교를 오르려다가 거기에 차 시간표가 붙어있길래, 내가 탈 차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돌아보니, 낯익은 사내가 거기에 서 있다. 무턱대고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선 물었다. (아닐텐데 하면서도) 지부장님이세요? 아니, 서부본부장이십니다. 옆에 선 동지가 소개했다. 일행은 둘이었다. 그제서야 그 동지들이 나와 같은 KTX에서 내린 것을 알았다.
본부장 동지가 택시를 타자고 제안을 했고, 덕분에 9시에 벌써 우리는 삼랑진양수발전소의 노동조합 사무실에 도착했다. 차 한잔 느긋하게 마시고, 발전용량이나 조합원 현황에 대한 얘기도 듣고, 교육자료도 한번 읽어보고, 그래도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양수발전소는 용량에 비해 유지인원은 적은 편인듯, 60만킬로와트용량의 무주양수나 70만킬로와트용량의 산청양수나 조합원은 사오십명 정도였고, 무주와 같은 규모의 밀양양수발전소도 마찬가지였다. 주간근무자들 중에서 필수인원을 제외하고 스무명 정도가 교육장에 모였고, 비정규개악법안의 문제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혼자서 떠들어댔다.
11시가 조금 지나서 교육은 끝났다. 삼랑진역에서 내가 타야 할 기차는 11시 55분엔가 있었고 지부장이 그 시간에 늦지 않게 차로 데려다 주었다. 삼랑진에서 밀양까지 무궁화호, 밀양에서 30여분 기다려 서울로 가는 KTX로 갈아타는 환승표를 끊고, 승차장으로 나갔다. 정오를 앞둔 바람은 무척 찼고,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은 나와 또 한 사람밖에 없었다.
3월 24일 낮.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악착같이 먹어야 회복이 빠르다. 13살 이후 홀로 객지를 전전한 나는 그것만큼은 익숙했고 철저했다. 평소 같으면 우유 하나로 때웠을 수도 있는 30여분의 대기 시간에, 몸살기가 있다는 이유로, 밀양역을 빠져나와서 주변 식당을 살폈다. 돼지국밥이라는 메뉴가 식당의 유리창에 새겨져 있다. 돼지국밥이라, 뭐지?
잘 고아낸 국물에 밥을 말아낸 것은 여느 국밥과 같은데, 돼지국밥에는 특이하게도 돼지수육을 얇게 썰어서 풍성하게 넣었다. 그러고 보니 국물도 돼지뼈 국물인가 보다. 작년에 일본에서 먹었던 기름기 넘치는 라면국물이 떠올랐는데, 냄새와 맛은 그것보다 훨씬 낫다. 김치와 깍두기, 새우젓과 양파에 더해서 부추겉절이가 넉넉하게 겯들여졌다. 생각보다는 먹을만했다. 4천원-
이렇게 시시콜콜 적다가는 세월만 잡아먹겠다. 돼지국밥의 고깃덩어리 몇 점은 남기고 밀양역으로 뛰었다. KTX에 곧 탔고, 고단한 몸을 챙겨 잠을 청했다. 아침에 봤던 눈 덮인 산들도 다시 보지 못하고,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데, 누군가 옆에 앉는다. 대전이었다. 대전부터는 정기권으로 움직이는 구간이니까, 자리를 자유석칸으로 옮긴다. 또 잔다.
3시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전철로 갈아타고 민주노총 사무실로 간다.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4시에 시작한다. 그 전에 몇 통의 메일로 결재서류들을 챙기고 전화로 간단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중앙위원회는, 직전의 주요 사업장노조 간담회로 인하여 시간을 약간 넘겨 시작했는데,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한시간 남짓 비정규개악안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수련회도 아닌, 중앙위원회에서의 교육은 이례적인 일인데(아마 처음이 아니었을까) 그 내용이 비정규개악법안과 권리보장입법안이라는 것이 흔쾌하지는 않았다. 민주노총 중앙위원이면 조합원 3천명당 1명씩 배정되니까 최소한 단위노조 위원장이나 연맹의 주요 간부들인데, 작년 9월부터 난리가 난 비정규개악안에 대해서 아직까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교육의 배경이라니, 교육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지금 와서야 받는다는 것이 쪽팔리는 것 아닌가. 바로 오전까지 같는 내용의 교육을 여러 차례 하고 다닌 나로서야 복습과 자기점검의 의미가 더해졌으니 뭐 나쁘지도 않았다만.^.^
그래서 중앙위원회는 5시 30분에 가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161명 중에 85명이 참석해서 성원을 아슬하게 넘었다. 안건은 총파업투쟁 건 딸랑 하나이고, 비정규입법과 관련한 총파업투쟁을 중심으로 심의, 의결해 달라는 것이 주문사항이었지만, 위원장 책임하에 사회적교섭을 추진하겠다는 중집위 결정이 더 첨예한 대립각을 만든다. 사회적 교섭안을 대의원대회에 상정하지 말고(그래서 파국은 피하고) 일반적인 교섭의 원칙 안에서 집행부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라고, 이른바 (초반동적이라 지목된) 제3의 안을 제안한 원흉(?)^^으로 지목된 나로서도 사회적 교섭에 관한 중앙위 결정사항은 신경을 쓸수밖에 없지.
회의자료의 그 부분만 인용해 본다.
<3. 지도집행력의 회복>
(1) 추진의 방향
가. 대의원대회 등 민주주의 회복 문제
-대의원들에게 설문조사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대의원대회 방식과 시기 등을 채택.
-각급 단위별 대책 논의: 연맹, 지역본부별 의결단위에서 논의하여 대책방안 모색.
나. 사회적 교섭 추진 건
-사회적 교섭 추진 관련해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개최하여 "비정규입법"을 최우선 과제로 논의토록 추진.
-사회적 교섭과 관련, 적절한 시점에 대의원대회 소집, 승인 여부 결정.
(2) 각급 집행, 의결단위의 소집 및 논의
-중앙집행위원회, 중앙위원회 등을 통해 당면한 사업의 의결과 집행.
-각급 조직별로 현안 문제의 해결과 방안 논의.
이미 중집위(3/17) 결정에 대한 문제가 다양하게 제기되었던 터라서, 여러가지 수정안이 나왔다. '대의원대회 등 민주주의 회복 문제'를 '대의원대회 등 기능과 역할 수정 문제'로 바꾸자는 의견을 포함해서 제안되었던 수정안 중에서 사회적 교섭에 관한 대표적 수정안은 다음과 같다.
(수정안)
나. 사회적 교섭 추진 건
-4월 비정규확대저지 투쟁과 관련한 노사정 교섭을 추진한다.
-사회적 교섭 추진 건은 비정규확대 저지 투쟁 후 적절한 시점에 중집, 중앙위를 열어 추진여부를 결정한다.
-비정규확대법안 강행처리시 사회적 교섭안은 폐기한다.
하지만, 이즈음 민주노총 회의는 좀처럼 수정안을 허용하지 않는다. 안이 하나 제출되면 그것에 대한 의견을 회의의 성원들에게 물어야 할텐데, 주로 의장이 하나하나 반박하거나 설득하려 한다. 이수호 위원장은 비정규직 관련해서 사회적 교섭을 전술적으로 이용할 것이며, 오늘의 안건은 사회적 교섭과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했고, 이석행 총장은, 전날에 내가 사무처장단 회의에서 제기했던 의견(총파업투쟁의 힘있는 결의에만 집중하고 사회적 교섭건을 갖고 논란을 벌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을 받아 상당히 수정한 것이라며,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서는 대의원대회를 꼭 거칠 것'이라고 직권 추진의사는 과도하게 알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어쩌라고? 원안대로 통과시키자고 한다. 저리도 도저한 원안사수론이 민주노총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구나.
3월 24일, 밤.
시간이 흐르면 회의는 또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합리적인 의견 개진조차도 회의방해책동으로 규정하고 야유가 쏟아진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원안통과를 밀어부치는 집행부의 고집에 급기야 원안통과의 문제점을 제기했던 한 동지가 퇴장하고, (성원을 확인하면 이미 정족수 미달이 된 상태에서) 한 동지의 성원확인 요청을 달래가면서, 구차하게 총파업결의를 중심으로 안건은 원안통과되었다. 집행부의 원안 사수 노력에 경배를!
민주노총 회의에 숱하게 참석했지만 참석하는 회의마다 이토록 허탈하고 힘이 빠지기는 올해 들어서이다. 그렇다고 회의를 빠지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니겠나. 참, 나도 수정안을 내기는 했다. 총파업투쟁을 보란듯이 잘해내면 <3.지도집행력의 회복>은 절로 될 것 아니냐, 괜히 논란벌이지 말고 삭제하자, 했더니, 앞서 이석행 총장의 답변이 그 수정안에 대한 반박 과정에서 나왔다.
9시가 다 되어, 연맹의 중앙위원들이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앉자마자, 회의진행에 관해서 큰소리가 난다. 여러시간 발언 한번 안하고 있던 어느 중앙위원이 원안 통과에 대해 집행부를 성토하고 있다. 총파업을 조직하러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현장을 누비는 노동조합 위원장 동지였다. 올갱이 해장국에 반주 한잔 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무주리조트에 가야 한다. 과기노조 전임자, 대의원 합동수련회가 거기에서 낮부터 진행되고 있는데,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끼어들어서 일정을 망쳤다. 대전-삼랑진-무주로 끝날 예정이었는데.
KTX를 타면 신기하게도 15분 정도 짧고 깊은 잠을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11시 10분쯤 대전에 도착할 예정인데, 자다가 전화를 받았다. 과기노조 사무처장의 전화, 무주에 눈이 펑펑 내린다고, 아쉽긴 하지만 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역에 내려서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대전역, 밤 11시 20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긴 이런데, 무주엔 눈이라고? 허허, 혼자서 웃음짓는데, 한점, 두점, 난데없이 성긴 눈발이 날리더니 이내 와르르 쏟아진다.
신기루였나, 차를 타고 전조등을 켰더니 그새 말끔히 사라졌다. 다른 동지들도 전화를 했다. 눈이 와서, 회의장에서 숙소까지도 차가 올라가기 힘들다고, 이성우한테 주려고 거제도에서 마련해온 싱싱한 생선회가 있는데, 안됐지만 오지 말라고, 전화기 안에서 사람들이 깔깔대고 있었다. 하루 일과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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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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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은 부경지역 한끼 식사로 정말 인기 있는 음식입니다. 딴 안주 안시켜도 소주 한 병 후딱 비울수 있는 안주기도 하구요. 서울에는 예전에 한두군데 돼지국밥집 있었는데 요즘은 안 보이더군요. 아 침넘어간다^^ 24일 중집위는 뭐..--;;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