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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어떤 집권을 꿈꾸는가?

민주노동당이 요즘 또 다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지난 3월 당 대회에서 부결된 '개방형경선제'가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의 강력한 요구로 '민중경선제'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당을 휘졌고 있기 때문이다.



1. 절차의 민주성이 훼손되고 있다.


죽은 줄 알았던 개방형경선제가 다시 민주노동당을 휘졌고 있다.

개방형경선제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이미 ▲당최고의결기구인 당대회에서 부결되었고, ▲다시금 개방형경선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대선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없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2006년부터 2007년 초까지 2007년 대선을 준비해야할 막중한 시기에 당은 개방형경선제 도입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논란과 분열 사태를 겪어야 했다.

결국 지난 2007. 3. 11 당대회에서 개방형경선제를 도입하기 위한 당규개정안이 부결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고, 아쉬워하는 동지들은 그 동지들대로 승복을 하며 대선 준비에 돌입했다.


그런데 당대회 부결로 이미 죽은 줄 알았던 개방형 경선제가 민중경선제란 이름으로 다시금 부활하여 민주노동당을 대선 준비가 아니라 후보 결정방법을 놓고 일단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당대회 결정을 뒤엎고, 불과 6개월 여 남은 대선 준비를 하기에도 부족한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민중경선제라는 이름으로 죽은 개방형경선제를 부활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주술사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다.


나는 형식적 민주주의, 즉 절차의 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용적 민주주의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가 다수를 인정하고, 소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슬기롭게 결합하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상호 충돌은 불가피한 것 같다. 그건 다수파와 소수파의 (이해)관계가 충돌될 운명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파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근거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려고 할 때 소수파의 의견을 묵살하고 표결로 모든 문제를 처리하려고 한다. 확장하면 국회의 입법작업도 마찬가지고, 축소하면 경기도당 내의 회의구조도 그렇다.


소수파는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때론 형식적 민주주의에 맞서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확장하면 국회의 FTA 강행처리에 맞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점거하는 것이 그것이고, 축소하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폭력사태가 그것이다.


이렇듯 형식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는 늘 대립될 운명이며, 불복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다수파, 그것도 절대 다수파가 형식적 민주주의인 표결에 불복하는 데 있다.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나 위원장이 민주노동당 내 (절대)다수파 NL 혹은 연합파에 속한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또한 민주노총 조합원은 민주노동당 당원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입장에 있는 다수파의 한 수장이 자신을 포함한 당대회에서 표결에 의해 처리된 결과에 불복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본질적으로 양대 최고 권력인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을 동시에 장악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국정의 책임을 야당에게 또는 언론에게, 심지어 국민에게 돌리는 것과 논리적으로 이어져 있다.


나는 노동부문 할당 중앙위원이다. 정말 한마디 하고 싶다. 민주노총이나 잘 하시라!!



2. 그대는 어떤 집권을 꿈꾸는가?


개방형경선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또한 ‘집권’을 동시에 말한다. 마치 대중에게 대통령후보 경선을 열어놓으면 표가 집결되고, 집권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처럼 얘기한다. 물론 맞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자. 우리는 어떤 집권을 원하는가? ‘집권’ 자체를 원하는가? 아니면 ‘민중이 주인 되는’ 집권을 원하는가? 만약 ‘집권’ 자체로 중요하다면 한나라당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최소한 통합신당으로라도 가야하지 않겠는가?


‘민중이 주인되는’ 집권!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는 이미 80대 20을 넘어 90대 10으로 갈리고 있다. 이 90을 상대로 90의 이해를 충실히 수행하면 우리가 다수권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이제는 폐기해야할 교조적 관점인가?


90의 이해를 충실히 수행하는 정책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어딘지 모르지만 있다면 민주노동당 아닌가? 우리가 그러한 정책을 만들고, 비전을 제시하고, 후보를 만들어 그것을 중심으로 민중을 조직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만 실패해도 희망이 있는 것 아닌가? 왜? 그렇게 했을 때만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누구를 중심으로 뭉쳐야 할 것인지?’를 대중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덩어리는 키워놨는데, 그 덩어리가 뭔지, 누구를 위하는지 불분명하면 희망이 없음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멀리 볼 것도 없다. 노사모를 봐라. 어떻게 컸는지? 왜 컸는지? 그리고 왜 소멸하는지!!


세력을 키워가고, 집권을 위하는 데에는 대의명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단순한 입발림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가 아니라, 파탄난 민중의 생존을 책임지겠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확신시키고, 확산시킬 수 있는 대의명분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 대의명분을 누가 만드는가? 민주노동당인가? 아니면 여전히 고통의 변두리로 밀려나지만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주변을 맴돌고 있는 90이 만드는가? 분명하지 않은가? 누가 만들지 말이다! 누가 정책을 결정할지 말이다! 누가 후보를 결정해야 할지 말이다!


우리의 정책을, 우리의 후보를, 대중이 선출해야한다고? 그런가? 대중이 결정했으니 대중이 책임지는 건가? 정책까지도 말이다. 그게 대중에 대한 신뢰고, 대중성 획득인가? 아님 지독한 무책임인가? 대중에게 맡겨야 한다면 정당이 뭐가 필요한가? 당을 여론조사기관으로 대체하면 그만 아닌가? 당비(자금)가 필요하다고? 당을 여론기관으로 바꿔 우리가 원하는 집권을 할 수 있다면 난 기꺼이 당비를 내겠다!!


뭐가 그렇게 자신이 없는가? 책임정치가 무엇인가?


분명 그럴 날이 올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현실적인 집권을 앞두고 계급적 타협 방안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분열하는 날이 말이다. 그러나 그건 먼 훗날의 얘기 아닌가? 지금은 뻥 뚫린 서민들의 멍든 가슴을 조직하여 반란을 선동해도 될 시점이 아닌가? 무엇이 무서운가?


지금 우리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초기 단계이다. 대중성을 찾기 보다는 당의 민중 중심성을 지켜내고 키워내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집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전매차액 2억 원 이상 불로소득에 대하여 중과세 하자는 입법안조차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에서 부결되는 현실이다. 그러고도 민중 중심성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부결을 주도한 인사가 현재 민주노총의 사무총장이다. 이것이 우리의, 민주노동당의, 민주노총의 현실이다!!


올리비에 롤랭의 말대로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가진자들이 만들어놓은 노름판인 ‘여론’으로 대체할 것인가? 우리가 ‘가/진/자’라면 그렇게 하자!! 가진자를 위/한/다/면 그렇게 하자!!



3.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은 무엇인가?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여겨지는 건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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