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별연습

아침에 엄마가 갑자기 이상해지셨다.

성연이가 학교에 가면서 할머니에게 습관대로 '다녀오겠삼' 하고 나가자

엄마는 또 습관대로 방에서 나오셨다.

 

보통은 베란다 창문을 열고, 아이가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시는데,

오늘은 베란다를 못 찾으시는 거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 방문, 저 방문을 기다시피 기웃거리시며,

'여기가 어디여?'를 반복하신다.

금새, 아이를 보러 가시려 했던 '목적'도 잊으신 거다.

 

그 다음부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시더니

급기야 나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시고, 누워서 잘 일어나시지도 못하신다.

 

자리를 봐 드렸는데, 좀 있다보니 냄새까지 난다.

말로만 듣던 대로 벽에 X칠 한다는 그런 상황이다.

그러시더니 전혀 사리분간을 못하시는 분이 배가 고프시단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옷을 갈아 입혀드리려고 하다가, 너무나 배가 고파하시는 거 같고,

일어서시지 못하실 정도이니 기력이 떨어지신 거 같아

꿀물을 타 드리려고 급히 마트에 가서 꿀을 사왔다.

 

꿀을 사오면서 안양에 사는 큰누나한테 전화를 했다.

큰누나도 당황하기는 나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가게를 정리(매매)하는 문제 때문에 바로 못 갈 것 같아 매형만 보내니 우선 병원에 모시고 가 응급조치를 하고 있으라고 한다.

역시 급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평소와는 달리 형제인가보다...

 

꿀물을 타서 드렸는데도 배가 고프시단다.

밥을 드리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마트에 가서 잣죽을 하나 사왔다.

그 사이에 엄마는 정신이 약간 들어온 것 같았다.

헝크러진 머리를 만지시며, 비녀를 찾는다.

 

내가 비녀를 찾아 주며, '이거 뭔지 알아?' 물으니, 아신다고 답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머리가 문제가 아니야. 엄마 똥 싸신 거 같은데.' 하니까, '그래? 내가 왜 그랬을까?' 하신다.

'머리는 좀 있다 만지고, 좀 괜찮으면 화장실 가서 씼고, 옷 갈아 입어야겠어.' 하니까 그대로 따라 하신다.

 

그사이에 난 잣죽을 데워 드리는 데, 한 그릇을 다 비우시곤 춥다며 이불을 덮고 누우신다.

그러시고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이사이 큰누나에게서 전화가 왔고, 문자를 받은 아내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엄마가 상태가 좀 좋아지셨다고 하니 누나는 전화를 바꿔달라고 한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상당히 많이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인 것 같다.

 

좀 있다 매형이 오셨고, 매형이 오셨을 때 엄마는 평소의 모습을 거의 회복하셨다.

매형은 있었던 일을 죽 들으시더니 아마 엄마의 지병인 당뇨 때문에 당이 떨어져서 갑자기 그러신 거 같다고 하신다. 당뇨가 있으신 분들이 과로를 했든지, 식사를 거르면 갑자기 당이 떨어져 그러는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도 별로 드시지 못했다. 상태도 평소와 조금 다른 거 같았고...

어찌됐든 매형이 오신김에 엄마를 모시고 고깃집에 가서 갈비를 함께 먹었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맞으시는 링겔 주사나 맞겠다고 한다.

 

그렇게 때풍이 지나갔다.

매형이 가시고, 난 누나한테 고맙다고 전화를 했다. 물론 누나는 거꾸로 나한테 고맙다고, 애썼다고 위로를 한다.

그러면서 이런 게 '이별연습'이라고 한다.

언젠가 한번은 있을 '이별'을 미리 연습하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